CSG. Book 15. Chapter 4. Section 1 God’s Hope for Humankind –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

제 4 장 천일국 백성이 되는 길
Chapter Four The Way of Becoming Citizens of Cheon II Guk

1)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
Section 1. God’s Hope for Humankind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의 사랑에 화합하여 살고, 온 하늘 땅이 하나님의 사랑을 즐거워하면서 그 사랑을 실제 생명의 중심으로 세운 가운데 전부가 하나되어 사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뜻이었습니다.
God’s original intent for creation was to live with humanity centering on one purpose in harmony with one love, to have all of heaven and earth enjoy His love and to have everything live as one with His love established as the actual center of life.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Yet due to the Fall of Adam and Eve, God’s love remained His.

즉, 인간과 관계를 맺어야 할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과 관계맺지 못하고 인간에게서 떠나게 되었고, 온 피조세계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He was to establish it in His relationship with humankind. Yet He was unable to do so and it departed from them and from the entire world of creation.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세우시려는 그 사랑을 중심삼고 온 만물을 규합하여 하나님과 만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그 한 날을 소망하시면서 지금까지 6천 년 역사를 경과해 나오고 계십니다.
Consequently, God has spent the last six thousand years hoping for the day when, centering on the love He wanted to establish, He could bring together all the things of creation and live in joy with them.

그러나 아직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온 피조만상이 하나로 통일되지 못한 채 그 하나님의 이념은 이념대로 남아 있고 찾아야 할 소망의 사랑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However, they have still not been united through His love, and accordingly His ideal and the love of His hope which should have been established remain unfulfilled.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기필코 이루기 위하여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Thus, God has been guiding the providence to this day in order to accomplish His will at all costs.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 타락 이후 지금까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고,
Ever since the Fall, He has been doing so for a long time until now, regardless of the ages,

인간을 대하여 믿을 수 있는 마음과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마음을 찾기 위하여 오랜 동안 섭리해 오셨으나 아직까지 그것들을 이루지 못하고 찾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in order to fulfill His hope and recover His trust and love towards humanity; yet even now He has been unable to do either. (1-88, 1956.6.6)

창세 이후 지금까지 우주적인 승리의 한날을 맞지 못하신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인간을 통하여 소망하시는 그 승리의 날을 맞으려 하시는 것입니다.
God, who has not been able to enjoy a single day of universal victory since the Creation, desires to usher in that day through people on earth.

그렇기 때문에 지상의 인간들이 그날을 찾아드리지 못하면, 이 땅에서 인간을 유린하고 있는 사탄을 처치할 수 없을 뿐만이
Hence, if they do not bring about that day, Satan who has trampled on them cannot be eliminated.

아니라 천상에서 하나님 앞에 인간을 참소하는 사탄의 세력도 물리칠 수 없습니다.
Moreover, the satanic powers that accuse humanity before God in heaven cannot be driven away.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수고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Thus, God does not mind any hardship or sacrifice or struggle.

어떠한 희생도 개의치 아니하시며, 어떠한 싸움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오늘 이
시간까지 여러분 개개인을 세우시기 위하여 방패가 되어 나오셨던 것입니다.
He has been a protective shield to this day in order to find and select each and every one of you.

이것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When we consider this, we can know God’s desire.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개체 개체를 세우시어,
He has chosen each and every one of you and has separated you from the enemy Satan —

인간을 타락케 했던 원수 사탄을 분별하여 사탄이 주관하는 악의 역사를 종결시키려 하시는 것입니다.
who brought the Fall upon humankind — in order to terminate the evil history of satanic dominion.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어 드리고, 하늘 앞이나 만물 앞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고,
We should fulfill God’s desire and become people who can stand proudly before Him and all the things of creation,

하나님 앞에 승리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and return the glory of victory to Him.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수고하여 오신 섭리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Only then can the purpose of the providence which He has pursued by dint of unremitting toil be fulfilled. (2-301, 1957.6.30)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소망의 인격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셨는데, 그 아담과 해와가 타락해 버린 것입니다.
God created Adam and Eve and fervently desired that they would become the people of character of His hope,

타락 전부터 품어오신 그리운 심정, 타락 전부터 품어오신 소망의 심정을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해와가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마음에는 슬픔이 사무치게 된 것입니다.
but, they fell as the ancestors of humankind, thereby betraying the desires and hopes which He had cherished since long before the Fall, and causing Him tremendous grief.

아담 가정에 대해 하나님은 슬픔의 심정, 분함의 심정을 억제하며 그리운 마음을 다시 찾기 위하여 가인과 아벨을 세우셨으니,
You all should think about how God, who suppressed His heart of sorrow and indignation towards Adam’s family, yet chose Cain and Abel for the purpose of recovering that longing heart.

그 소망을 이루어 주지 못하고 그들은 도리어 하나님께 슬픔만 가한 사실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합니다.
You should think of how instead they compounded His grief and how His hope still remained unfulfilled.

그 후 1600년이란 세월을 지나 다시 노아를 세우셨으나 결과는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Sixteen hundred years later God chose Noah but the outcome was the same.

거기서 또 400년을 지나 아브라함을 세우셨으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He then chose Abraham after another four hundred years but once again the outcome was the same.

그리워하던 한 사람을 만나 심정을 나누고자 하셨으나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이 품으신 그리움의 심정을 온전히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God wanted to meet a person of His longing and to share His heart but Abraham too could not fully release God’s heart of longing.

그리하여 3대를 거치면서 수천년 동안 품어오신 그리움의 심정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야곱 가정을 세우셨으나
Then through three generations God chose Jacob’s family for the purpose of having people become aware of His yearning heart that He had harbored for thousands of years.

그 가정을 놓고도 뜻을 완전히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His will, however, was yet again not fully realized through this family.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놓으시고도 이러한 그리움의 심정을 터놓고 얘기할 수 없고, 가르칠 수도 없고, 지배할 수도 없는 자리에서, 그들의 뒤를 따라오셔야만 했던 하나님의 사정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We should understand God’s situation where He was forced to run after the Israelites — even though He had chosen them — without being able to reveal His heart of yearning to them, through which He would have educated and led them.

그리워하시던 하나의 민족의 형태를 땅 위에 세워 놓으시고 그 민족이 도탄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은 그리워하는 마음만큼 거기에 비례하여 고충을 느끼시고 슬퍼하셨으며 어려움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We should know the fact that God raised on this earth a singular race of His yearning, and that whenever they fell into distress, He suffered, felt sorrow and went through difficulties in proportion to the intensity of His yearning heart.

하나님은 오랜 역사노정을 거쳐오는 동안 그리움의 심정을 우리의 마음에 심어주고 역사에 심어주고 세계에 심어주기 위하여 싸워 나오셨습니다.
God had endeavored throughout the long course of history to plant that yearning in our hearts, into history and into this world.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대하는 물건 하나에도 하나님의 그리움이 젖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Hence, we should bear in mind that every object we deal with is soaked with His longing.

우리가 대하는 식구에게도 역사적인 하나님의 그리움이 스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We should bear in mind that the members we deal with,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세계에도 하나님의 그리움이 스며 있다는 것입니다.
and even the nation and this world in which we live, are also steeped in His longing.

그러므로 우리가 눈을 들어 하나님이 지으신 만상을 바라볼 때, 그 만상이 하나님
의 간절한 그리움의 대상이라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For this reason when we lift our faces and gaze at God’s creation we should feel that they are all objects of His fervent longing.
If that is the case with all the things of creation,

만물도 그러하거니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어떻겠습니까?
how much more so would it be for human beings who are their lords?

비록 악한 모습이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한 기준을 놓고 그리워해 오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느끼게 될 때, 하늘 앞에 진정으로 감사드려야 합니다.
You should truly offer thanks to God when you become aware of the fact that He has always longed for people based on a certain standard, though they were evil in form.
(8-93, 1959.11.22)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수많은 서러움의 역사과정을 거쳐 오시면서도 인류를 버리지 못하시고 붙안고 나오시는 내용은 무엇인가.
Why was it that God couldn’t forsake humankind, but rather clung onto them, undergoing continuously the historical course of countless sorrows to this day?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해 너는 내 친아들딸이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It was because He wanted to be able to say to them, “You are my begotten sons and daughters.”

이런 이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싸워 오셨습니다.
He has been battling until now to realize such an ideal.

하나님의 선의 동산에서, 하나님이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만물이 화동하는 가운데 만물의 주인 자격을 갖추어 하나님 앞에 `나의 아버지여!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In God’s garden of goodness in which He stood in glory, Adam, in the capacity of the lord of creation, could stand before Him amidst creation which was harmonized as one centering on His love saying, “My Father! Please be glorified!”

라고 할 수 있었던 아담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런 가치를 상실했습니다.
yet due to his fall lost that value.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세 이후 본연의 아들딸이 나와 ‘`아버지’라 부르는 그 한마디의 음성을 듣고 싶어하시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You should understand that God wants to hear the sound of His original son and daughter, who emerged after the Creation, calling Him Father.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그 아버지는 죄악의 입장에서 불려질 그런 아버지가 아닙니다.
The Father that we call upon today cannot be addressed from a position of sin and evil.

그러므로 우리는 죄악의 세상에서 벗어나 선의 이상 동산에 들어가야 합니다.
Accordingly, we must escape from this sinful and evil world and enter the ideal garden of goodness,

그 이상동산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동시에 기쁨에 도취되어 살 수 있는 세계입니다.
which is a world where humanity can manifest God’s glory while living enraptured in joy.

다시 말하면, 인간이 동하면 만물이 동하고, 인간이 정하면 만물이 정하게 되어 인간과 만물이 동하고 정하는 동시에 창조주 하나님도 동하고 정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In other words, it is a world where all the things of creation move and rest in sync with humanity, and God the Creator with them both.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초월하여 일체될 수 있는 이상동산인 것입니다.
Not only that, but it would also have been the ideal garden enabling oneness transcending the reciprocal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humanity.

하나님은 인간들이 이와 같이 당신과 하나되기를 바라셨고, 하나된 가운데서 놀라운 사랑을 중심삼고 기쁨에 취하는 그 한 장면을 그리시면서 그러한 세계를 창조해 오신 것입니다.
In this way, God had wanted humanity to become as one with Him,and created such a world while visualizing that situation wherein they could be enraptured in joy through such amazing love amidst that unity.

그런데 그만 인간들이 타락함으로써 이것이 자기들의 원한이 된 동시에 천륜의 원한이 되었고, 타락 이후 지금까지 그 원한에 원한을 가중시키는 슬픈 역사를 저질러 왔다는 것입니다.
Yet through their fall, human beings caused not only their own anguish but also that of God, and since then have compounded it through the continuance of that sorrowful history to this day.

그러면 하나님께서 오늘 이 땅을 대하시어 섭리하시는 최대의 희망은 무엇인가.
Then what is God’s greatest hope as He guides the providence in relation to the earth today?

그것은 타락의 부모를 갖고 있는 인류를 다시 하나님 편에 세워 놓고 나는 그대들의 영원한 아버지요,
It is to bring people born from fallen parents back over to His side and say to them

그대들은 나의 영원한 아들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I am your eternal Father and you are My eternal sons and daughters.”

그럴 수 있는 날을 맞이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들의 역사적인 소망이요, 천륜을 대하는 천적인 소망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You should realize that the historic hope of fallen humankind and the original hope of God are to be able to welcome such a day. (3-26, 1957.9.15)

오늘날 이 땅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There are many people living on earth today,

그들은 각자의 비젼과 의견을 갖고 살고 있고, 또 어떠한 주의 주장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each with their individual visions, opinions, sets of beliefs and assertions,

그러나 진심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늘 땅 앞에 자신 있게 나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yet none of them bows before God with a true heart, testifies to Him and confidently stands before heaven and earth claiming to be sent from Him.

이제 우리 인간들이 최후에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What is it that we should ultimately seek?

자기의 주의 주장과 자기의 어떤 주관적인 행동을 다 포기하고, 자기의 마음과 몸은 하나님을 대신했고 자기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행동한다고 주장하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나오기를, 오늘날까지 역사상에 왔다 갔던 많은 사람들은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Countless people who have come and gone throughout history have been waiting until now for the earthly appearance of a person who can put aside his own set of beliefs and assertions and all his proactive behavior and come forth claiming to embody God with his mind and body and acting on His behalf.

또, 하나님은 이러한 대신자가 나오기를 바라며 무한한 수고와 인내를 하시며 오랜 동안 섭리해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While longing for His representative to appear, God has endured endless hardships in guiding His providence over a long period of time.

그러므로 땅 위의 서러움이 무엇인가 하면,
What is the source of earthly sorrow?

어떤 주의가 없어서 서러운 것이 아니고, 행동하는 사람이 없어서 서러운 것이 아니며,
It is neither the absence of any set of beliefs nor that of anyone who could take action,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주장할 수 있는 주의가 없고,
but rather that of a set of beliefs that could claim to embody God’s heart and will,

하나님을 대신하여 행동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서러움이요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and that of a person who could act on His behalf.

오늘날 이 땅과 인간 세상에 널려 있는 탄식과 고통과 사무쳐 있는 모든 원한을 제거하는 일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주의 주장과 하나님을 대신하는 한 사람이 나타나야 됩니다. 그래서 섭리의 목적도 이 한 사람이요, 역사의 목적도 이 한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다시 느껴야 하겠습니다.
These must appear so as to remove all grief, pain and resentment that fill the earth and the human world today. Thus, you should remember that the time has come for you to understand that the purpose of providential history was the emergence of that one person.
(3-317, 1958.2.2)

여러분은 진정 마음으로 하나님 대신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친구를 가져야 됩니다.
You must have a friend whom you can trust with a sincere heart in God’s stead.

나아가 하나님 대신 믿을 수 있는 하나의 형제, 부모, 부부를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Furthermore, you need siblings, parents and spouses whom you can trust on His behalf.

그렇게 하여 가정을 넘어 사회, 국가, 세계적인 무대로까지 뻗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In so doing, you are to transcend the family to embrace the society, nation and world.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신 소망이었다는 것입니다.
This was God’s cherished desire,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개인의 입장에서 몰아내어 믿을 수 없는 입장에 세워 놓고 인간세계의 어떠한 소망도 다 끊어 놓은 가운데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yet He drove individuals into situations of mutual distrust and despair of humanity in order for them to find faith in Him.

그리하여 그 믿는 사람이 합하여 즉, 형제 형제끼리, 친구 친구끼리 하나님 대신 서로 믿어줄 수 있는 관계를 맺기를 하나님께서는 바라셨던 것입니다.
In this way, He wanted believers to come together as siblings and friends to forge bonds enabling them to trust each other on His behalf.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최고의 희망인 것입니다.
It is none other than this that was His greatest hope. (4-146, 1958.3.30)

레버런 문이 사탄한테 묻기를 ‘사탄아, 네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충당시켜 줬느냐, 안 줬느냐?’ 할 때 충당해 줬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If I were to ask Satan, “Hey Satan, did I or did I not meet all your demands?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은 모든 것을 중심삼고 타락한 사탄까지도 다 사랑하고 남을 수 있도록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당당한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사탄은 ‘당신이 가는 세계는 해방이요, 당신의 소원은 이루지 못함이 없소.’ 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 he would reply that I did. As I laid a sturdy foundation for entering heaven by loving everything including even Satan with God’s original love, Satan must bless me saying, “The world you are going to is liberated. All of your desires have been fulfilled.

‘어디 가든지 당신이 원하는 것은 이루지 못함이 없고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당신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한다는 것입니다.
Everything you wish for will be fulfilled wherever you go and everything you desire will belong to you.”

‘하나님의 이름으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참가정의 이름으로 세계는 해방될지어다!’ 할 때는 ‘아멘’ 하게 되어 있습니다.
If I were to say, “In the names of God, the True Parents and True Family, the world shall be liberated!” he would reply, “Amen!”

봄이 왔습니다. 눈이 아무리 강하고 얼음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봄이 되었으니 다 녹게 되어 있습니다.
Spring has come. However strong the snow and ice may be, all will melt away because it is spring.

그러니까 봄철에는 씨를 뿌려야 합니다.
Thus, we must sow seeds in spring,

사탄이 악의 씨를 뿌렸던 이상 세계 끝까지, 미국 끝까지 씨를 뿌려라! 좋은 씨는 가정입니다.
to the ends of the ideal world and in America where Satan scattered the seeds of evil! A good seed is the family.

사탄은 딱 하나 심었습니다. 그게 타락한 아담과 해와입니다.
Satan planted just one: fallen Adam and Eve.

이제 우리는 어디서나 그걸 갈고 닦아야 합니다, 새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Now we must grind and polish it wherever we go in order to make a new family.

거기에서 모든 것을 재배할 수 있습니다.
There we can cultivate everything.

그걸 이 미국 땅에서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셨던 목적입니다.
This must be done in the land of America. That is God’s desired objective.
(189-65, 1989.3.12)

하나님이 남자 여자를 만들어 놓고 크기를 바란 것이 무엇 때문이겠느냐?
After creating man and woman, why did God want them to grow?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It was so that He could love them.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그 사랑이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는 게 좋겠어요, 낮아지는 게 좋겠어요?
If it was to love them, would He have wanted that love to increase or decrease?

하나님이 ‘야, 이놈의 자식들아!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보다 너희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커서는 안 돼!’ 그래요? 아닙니다.
Would He have said, “Hey, you! Your love for me should not surpass my love for you”? No, He would not.

그러면 영원한 하나님과 지금 여러분이 붙들고 싸우면 하나님이 더 정열적이겠어요, 약하겠어요? 정열적입니다.
If you were to wrestle with God, would He be more or less determined than you? He would be more determined.

하나님에게는 다 있습니다. 없는 것이 없습니다.
God has everything. There is nothing He lacks.

하나님이 더 정열적인 때는 어떤 때일 것이냐?
When is God more ardent?

옛날 우리 조상보다 새로운 남자 여자가 나타나서 더 정열적인 사랑을 하게 되면 하나님도 숨이 차고 그럴 것입니다.
If a new man or woman were to appear and make more passionate love than our ancestors of the past, God would also be out of breath.

그렇게 정열적인 부부를 만났다면 하나님이 인간과 떨어져서 살겠어요, 붙어서 살겠어요? 붙어서 삽니다.
If God had met such a passionate couple, would He have wanted to live apart from human beings or with them? He would have wanted to live with them.

그러므로 사랑을 중심삼고만, 사랑에서만 영원성이 있다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Therefore, you should know that eternity can be found centering on love and only in love.

참사랑에는 영원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It makes sense to say that the concept of eternity is established in true love.
(195-312, 1989.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