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G. Book 15. Chapter 1. Section 1God’s True Love Is the Motivating Force for the Creation – 창조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참사랑

제15권 천일국 주인의 생활
Life of an Owner of Cheon Il Guk

제 1 장 창조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참사랑
God’s True Love Is the Motivating Force for the Creation

1) 참사랑은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중심
True Love is at the Center of God’s Desire

하나님은 진리의 대왕, 선의 대왕, 참의 대왕, 사랑의 대왕입니다.
God is the great King of truth, goodness, trueness, and love.

그렇다면 하나님이 본래부터 있었겠어요, 생겨났겠어요?
Did He exist from the very beginning, or did He come into being?

하나님도 커 나왔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Even God has grown. We must know this.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How can we know it?

하나님의 본성을 닮은 모든 것이 작은 세포에서 자라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We can know it from the principle that causes everything that resembles God’s original nature to start as a small cell and grow.

그렇다면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커 나왔느냐?
So what has made God grow?

사랑 때문에 커 나왔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커 나왔습니다.
He has grown because of love, an absolute love wherein God is the subject partner of love

사랑의 주체가 하나님이고, 인간은 그 사랑의 대상입니다.
and human beings are His object partners. (243-278, 1993.1.28)

하나님은 참사랑 때문에 천지를 창조했습니다.
God created heaven and earth, not just to see human beings, but for the sake of love.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은 사람을 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창조한 것입니다.
God cannot possess love by Himself, nor can He feel it on His own. Certainly, He contains love,

사랑은 하나님 혼자 못 가집니다. 혼자 사랑을 못 느낍니다. 물론 자체 내에 사랑이 있지만 원만히 화합하는 기쁨이 충만한 사랑을 못 느낍니다.
but He cannot experience the kind of love that overflows with the joy of being in perfect harmony all by Himself.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 피었더라도 향기가 나야 하고, 아무리 향기를 가졌더라도 바람이 불어야 향기가 날리는 겁니다.
No matter how beautiful a flower may be, it must give off a fragrance; no matter how sweet its fragrance is, the wind must blow for that fragrance to be spread about.

그러니까 바람과 같이 상대적 자극의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So, as the flower needs the wind, God, too, needs an object partner who will stimulate Him. (210-223, 1990.12.23)

참사랑은 하나님이 창조할 때의 근원적 힘입니다. 원동력입니다.
True love is God’s fundamental motivating force by which He creates;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좋아하는 것은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this is why He likes true love more than anything.

하나님도 우리같이 밥도 잡수시고, 눈도 있고, 코도 있고, 다 있습니다.
He can eat, just as we do. He has eyes and a nose, as well. He has all those things.

그런 분인데, 그 분이 좋아하는 것이 뭐냐 하면, 우리 인간들이 좋아하는 황금덩이가 아닙니다.
That is the kind of being He is. However, what He likes is not the lumps of gold that human beings covet.

그건 언제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He can make those things anytime He wants.

그 다음에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The same is true with knowledge.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God is omniscient and almighty.

지식의 대왕이요, 능력의 대왕입니다.
He is the great King of knowledge and ability. (212-295, 1991.1.8)

참사랑의 깊이는 하나님이 태어날 적부터의 그 밑창까지 포괄한다는 얘기입니다.
The depth of true love incorporates everything, going all the way back to the beginning — when God was born.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You have no idea how deep it is!

하나님이 존재하기 시작한 근원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깊은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It started at the very origin of His existence.

일생 동안 살고도 다 거기까지 못 가니, 저 세계에 가서도 영원히 그것을 향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Even after a lifetime, we can never get there, and even after going to the next world, we will continue developing toward that goal for eternity.

그래서 부부끼리 싸우고 서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So it is inconceivable that husbands and wives would fight and separate from each other.

하나님 자체도 자라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Even God has grown and developed.

하나님이 그 깊이까지, 출발과 더불어 근원을 같이했다는 것입니다.
To the very depth of His beginning, He has had the same origin as true love.

근원은 하나님이 먼저가 아니라 사랑이 먼저입니다.
At the point of origin, God was not first; love was first.

하나님은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 왜 이성성상이에요?
We say God has dual characteristics. Why dual characteristics?

사랑 때문에 이성성상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Dual characteristics are cherished because of love. (246-286, 1993.4.20)

참사랑은 하나님도 마음대로 행차할 수 있는 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True love can be a bridge that God can use as He wishes for His travels.

모든 사지백체가 사랑을 중심삼고 언제나 표면에서 하나돼도 오케이고, 내면에서 하나돼도 오케이입니다.
When the physical parts of the body are all united in love everything will be okay, and when the inner aspects are united everything will be okay.

북에서나 남에서나 동에서나 서에서나, 하늘나라에서나 지상세계에서나 아무데서나 마찬가지입니다.
The result will be the same everywhere, whether in the north, south, east or west, whether in the heavenly world or in the earthly world, or anywhere else.

사랑을 중심삼고 화합할 수 있고, 사랑을 중심삼고 자율적으로 화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Through love, the members of the body can freely interact and harmonize with one another.

그것은 사랑만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Only love has this power.

체제도 마찬가지입니다.
The same is true with organizations.

절대적으로 당을 하나님 대신 세우고 완전히 하나되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겠다는 것입니다.
When we absolutely establish a political party on God’s behalf and say we will unite, we are saying that we will do so centering on Him. (139-200, 1986.1.31)

하나님도 참사랑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복종합니다.
Even God absolutely obeys true love.

참사랑을 중심삼고는 하나님도 생명을 바치겠다고 합니다.
He would even offer up His life for the sake of true love.

남자나 여자도 참사랑이 있으면 왜 목숨을 바치려고 해요?
Why are both men and women willing to sacrifice their lives for true love?

사랑이 생명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is that love precedes life.

하나님이 왜 존재하기 시작했느냐?
Why did God begin to exist?

사랑 때문에 존재하기 시작했고 사랑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He began to exist because of love, and He exists in order to love.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었더라면 하나님도 생겨날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Had there been no concept of love, there would not have been a need for God to come into being.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모든 것은 쌍쌍제도입니다.
Thus, everything created by God is based on the pair system.

광물세계도 쌍쌍제도이고, 급은 낮지만 양이온과 음이온도 사랑을 표시하면서 엉클어져 있는 것입니다.
For example, in the mineral world cations and anions manifest love — though on a lower level — as they intermingle.

이것은 레버런 문이 이 세상에 나와 가지고 역사 이래로 처음 발표하는 것입니다.
This is being announced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as a result of my coming into this world.

하나님 자신도 참사랑을 절대시하고 그것에 절대 복종하면서 살겠다 하신다는 그 기원을 발표한 것은 레버런 문이 역사상에 처음입니다.
I am the first in history to announce that God regards true love as being absolute, and lives in absolute obedience to true love.

그것은 관념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This is not something conceptual.

이처럼 하나님은 참사랑을 찾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It is fact. Thus God created the universe in order to launch true love.
(203-103, 1990.6.17)

참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개재시키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True love cannot exist without God’s involvement.

하나님이 개재되지 않고는 참이라는 말, 참이라는 남자, 참이라는 여자, 참이라는 가정, 참이라는 진리, 참이라는 사랑이 없다는 겁니다.
Without God, not even the words man, woman, family, truth and love can be called true.

하나님이 개재해야만 그것들이 가능한 것입니다.
All of these are possible only due to God’s involvement.

하나님은 진리의 대왕이요, 선의 대왕입니다. 참의 대왕입니다. 사랑의 대왕님입니다.
He is the great King of truth, goodness, and love.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개재시키지 않은 데는 선한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For this reason, nothing good exists anywhere if God is not involved.

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빼 버리고 하는 것은 사기판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The same applies to our work: Anything done without God is fraudulent and cannot be trusted.

모든 것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This applies to everything.

하나님을 개재시킴으로 말미암아 참의 기준, 영원한 기준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So, the eternal standard, the standard of trueness, is established only on the basis of God’s involvement. (301-38, 1999.4.16)

그렇다면 참된 사랑과 거짓 사랑을 무엇으로 분별할 수 있느냐?
How, then, can we distinguish between true love and false love?

자기 중심삼고 위하려고 하는 사랑은 악마와 통하는 사랑이요,
Egoistic love connects us to the devil,

상대를 중심삼고 위하려고 하는 사랑은 천지이치와 하나님과 통하는 사랑입니다.
and altruistic love connects us to God and the laws of the universe.

여기에 경계선이 있는 것입니다.
That is where the dividing line lies.

하나님의 사랑은 주고 주고 또 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사랑입니다.
God’s love gives, gives, and gives again, and then forgets that it has given. This is true love.

나이가 많은 할머니, 90세 된 할머니가 70세가 넘은 아들에게 ‘얘, 아무개야, 오늘 어디 나가면 차조심 해라!’
A ninety-year-old grandmother tells her seventy-year-old son, “Hey, watch out for the cars when you go out today,”

하며 여전히 옛날 어릴 때의 아들과 같이 대해 줍니다.
and relates to him as if he were still the young boy of many years ago.

매일같이 반복되는 그 얘기를 90세가 넘어서 하더라도 지치지 않습니다.
She has been telling him the same thing every day well into her nineties, but she never tires of saying it.

천만 년이 가더라도 지치지 않는 그런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True love is a love that loves endlessly and untiringly. (142-333, 1986.3.14)

자기 생명까지도 투입하고 또 투입하겠다는 자리, 주고 또 주고도 잊어버릴 수 있는 자리에서만 참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True love begins with the willingness to invest even our own lives over and over, giving and giving again, but forgetting that we have given.

참사랑은 천지를 꿰뚫는 것입니다. 죽음의 세계도 뚫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생명의 세계도, 강한 마음이라도 어디든지 뚫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As it ascends, it can penetrate and enter anything it pleases, a strong mind, heaven and earth, the world of life, and even the world of death.

사랑이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사랑은 비밀의 방도 통합니다.
There is nowhere that true love cannot go. It even enters secret rooms.
(256-179, 1994.3.13)

제일 빠른 속도를 가진 것이 사랑입니다.
True love travels at the highest speed and

참사랑은 하나님의 창조능력과 일치된 힘입니다.
is a force in harmony with God’s creativity.

그러니 그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땅 끝에서 하나님도 ‘오소’ 하면 온다는 것입니다.
Those possessing it can even call out to God from the ends of the earth, “Please come!”

못 생긴 손녀라도 손가락만 까딱하면 할아버지가 그를 따라갑니다.
and He will. Even an ugly granddaughter has but to wiggle a finger and her grandfather will go to her.

사랑이 그렇게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사랑입니다.
That is how great love is. That is true love. (301-125, 1999.4.25)

사랑이란 것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Love does not just arise out of thin air.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영광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Glory does not arise without going through God’s love.

그 사람이 영광을 누린다 할 때는 자기 혼자 있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When we say a person is blessed with glory, we are not referring to a love in solitude,

백만장자가 되어 금밭에 앉아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or to a millionaire sitting on a pile of gold.

사랑의 인연을 완전히 갖추어 가지고 변함없이 행복한 자리에 있는 것을 영광을 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We are referring to a person who fully possesses the bonds of love and is in an unchanging position of happiness.

영광은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고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Glory cannot exist without God’s love, either.

책임을 완수한 후에, 완성 단계의 기준을 거친 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면 영광은 자동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However, when we receive God’s love after fulfilling our individual responsibility and passing through the standard of the perfection stage, glory will come to us automatically. (158-296, 1968.2.4)

참사랑은 하나님보다도 높을 수 있는 것입니다.
True love can be higher than God.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이라도 사랑의 상대는 몇 천만 배 더 훌륭하기를 바란다 그 말입니다.
That means that even God wants His love partner to be tens of millions of times more wonderful than Himself.

그 말은 거꾸로 하면, 참사랑의 대상은 하나님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In this way, an object of true love is higher than God.

여러분도 상대가 여러분보다 더 높기를 바라는 것이 사랑입니다.
It is the same for you as well. True love means you want your partner to be higher than yourself. (274-22, 1995.10.25)

참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True love is God’s love.

영계에 가면 참사랑의 빛깔과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When you go to the spirit world, you will be able to sense the colors and flavors of true love there.

그런 세계가 영계입니다.
The spirit world is that kind of world.

그 참사랑에 화하면 안 통하고 안 들리는 데가 없이 다 통합니다.
Once we embody true love, it will be possible to relate to any situation. We will be able to sense every situation.

참사랑의 주인인 하나님의 솜털이 있다면 그 솜털도 참사랑에 속해 있기 때문에 까딱하기만 해도 천하가 금방 다 압니다.
If God, the owner of true love, had fine hair on His body, even that fine hair would belong to true love, and all of heaven and earth would immediately sense its slightest movement.

예민하다는 겁니다.
Things will be that sensitive.

감정이 우주적 감정까지 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Our emotions will resonate with the emotions of the entire universe. (304-15, 1999.9.5)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들이 하나님, 창조주 이상의 자리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한 그 길을 밟아 갈 수 있는,
Godism teaches how loving human beings can walk a path that confers on them the privilege to ascend to a position even higher than the Creator.

따라갈 수 있는 방향을 가르쳐 주어서 하나님주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Godism is the ideology of true love.

하나님주의는 참사랑주의인데, 참사랑주의는 타락한 생명을 희생시키고 투입할 수 있는 길을 찾지 않는 한 그 길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It cannot be achieved without first finding the way to sacrifice and invest our fallen lives.

그래서 성경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하는 역설적인 논리를 가르쳐 줬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This is the reason the Bible taught the paradoxical logic that those who seek to die will live and those who seek to live will die. (268-162, 1995.3.31)

사랑의 길을 찾는 사람은 어떤 것을 마련해야 되느냐?
How should a person prepare before seeking the path of love?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과 부모 그리고 내가 합해야 합니다.
A person should form a union of love with God, the Parent.

그래야 비로소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Only then can there be true love.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머물 수 있는 중심입니다.
This is the center where the will of God can reside,

내가 그 뜻과 하나될 수 있는 중심입니다.
where an individual can unite with that will. (103-132, 197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