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G. Book 14. Chapter 4. Section 2 Absolute Loyalty and Filial Piety that Moves God –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절대 충효

2)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절대 충효
Section 2. Absolute Loyalty and Filial Piety that Moves God

노아 할아버지는 핍박이 심하고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했기 때문에 그 환경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Noah could overcome intense persecution amidst troubled circumstances by pouring every ounce of energy into his work.

하나님의 법도 앞에 자식으로서 충효의 도리를 다할 뿐이라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나갔던 것입니다.
He went forth with a humble heart merely to obey God’s laws as His faithful and filial child.

하나님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환경의 비정함을 느끼고, 서러움을 당했으나 그런 때일수록 노아 할아버지는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갔기에 그가 가는 길을 막을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The more Noah went before God, the more sorrow he felt from his heartless environment, and he would go to God shedding tears of repentance with a sorry heart. No one could block his path.

그렇게 해서 120년 동안을 지내 온 노아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Just think about Noah who endured for 120 years.

노아 한 사람을 놓고 사탄세계는 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고 반대할 수 있는 대로 반대했지만,
The satanic world set all sorts of schemes in motion to attack that one person, Noah, opposing him in every way possible;

하나님이 중심으로 세운 그 기준에서 노아는 추호도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but he did not deviate in the slightest from the standard God had set.

그 기준은 천주의 절대적인 중심으로 세운 것이요,
That standard established the absolute center of the cosmos,

우주의 정의의 인간으로 세운 것이요,
the man of righteousness of the universe,

참의 승리자로 세운 것입니다.
and the victor of truth.

그래서 하나님은 이 기준에 반대되는 모든 원수의 요소들을 청산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As such, God wanted to eliminate all elements of His enemies who opposed this standard.(18-159, 1967.6.4)

살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일생 동안 충성의 도리에 변함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Walk the way of loyalty unswervingly all the days of your lives.

자기의 입장과 환경이 자기를 평하면 평한 것만큼 우리의 무대는 세계로 확대된다는 겁니다.
As much as the people around you criticize you, to that degree our sphere of activity will expand toward the global level.

오늘날 국내 사정을 중심삼고 뒤넘이치지만 환경이 편하면 편할수록 세계를 중심삼고 뒤넘이쳐야 됩니다.
Today we have to grapple with our local state of affairs, but as our situation eases,

세계를 위해서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we will start to take on global issues.

그래서 세계를 위해 충성하는 하나님의 아들딸을 모셔 놓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고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Let us therefore hasten the day on which God can proudly welcome and bless His sons and daughters who exemplify loyalty to the world.

그래야만 비로소 한국에 안식이 벌어집니다.
Only thus will the peace of the Sabbath break out all over Korea for the first time.

여러분들이, 삼천만 민족이 세계를 위해서 충성의 도리를 다하고,
When the thirty million people of this country have accomplished their duty of loyalty to the world,

세계 만민이 한국으로 말미암아 자기들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다고 충성할 수 있는 환경의 터전을 맞이하게 될 때,
and all the world’s peoples acknowledge that they had been able to become God’s sons and daughters with the help of Korea, and subsequently fulfill their own duty of loyalty,

비로소 한국에는 안식의 터전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then, for the first time, the foundation for the Sabbath in Korea will have been laid. (155-263, 1965.10.31)

오늘날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고해서 이 역사적인 환경을 만들어 놓고,
God has toiled assiduously until now to create a providential culture or epochal period in Korea.

혹은 시대적인 때를 우리에게 맞이하게 해줄 수 있는 때가 왔다면 여기에서 충성하는 소같은 사람들이 나와야 됩니다.
As that moment has arrived, we need to be people who are as faithful as cows.

아브라함의 제단 가운데 3대 제물이 있나니 하나는 비둘기요, 하나는 양이요, 하나는 소입니다.
There were three sacrifices on Abraham’s altar: the pigeons, the sheep, and the heifer.

지금 때는 상징적인 형으로 보게 되면 소 시대입니다.
Today is now symbolically the age of the heifer.

소를 하나님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God likes cows.

소 시대! 잡아먹기 위해서 좋아할까요?
The age of the heifer! Do we like cows because we can butcher and eat them?

소를 좋아하는 것은 고기 먹기 위해서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That is not the case.

농부가 소를 좋아하는 것도 미래에 잡아먹을 고깃덩이가 뭉쳐 있으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부려먹기 위해서입니다.
Farmers do not like cows because they can slaughter them for food either.

부려먹고 또 고기를 먹고, 먹고 먹고 또 먹는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They put cows to all kinds of work, and then perhaps eat them later.
That is how it is.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뭣이 돼야 돼요? 돼지가 돼야지요?
Then, what do you need to become in order to be God’s sons and daughters? Do you need to become a pig?

「아니요」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Of course we are talking about things figuratively.

그분이 대왕 소와 같은 이런 충성과 지성을 인간을 위해서 들여왔기 때문에,
Because God is like the greatest king of cows who offers loyalty and devotion for the sake of humanity,

자녀를 위해서 들여왔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들도 소와 같은 그런 분 앞에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소 새끼와 같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who are His children, thus we of today, as His children, have to become like calves before Him.

그렇다고 소 새끼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Of course, I am not saying that you should literally become a calf. It is a figurative expression. (156-17, 1965.11.2)

이 온 천지간에 나보다 더 하늘 앞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거늘, 그 사람이 누구일 것이냐?
You have to wonder about whether there is someone else who is being more loyal to Heaven than you are.

혹은 동쪽이냐, 흑은 서쪽이냐? 어느 곳에 있을 것이냐?
Would he be from the East or from the West?

이것을 궁금해 해야 됩니다.
You have to wonder about this.

충성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인가? 궁금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충성하는 사람일 것이냐?
If there is a loyal person, then what kind of person is he?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 것이냐?
What kind of work does he do?

그런 것이 궁금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You have to evaluate this very carefully. (155-248, 1965.10.31)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는데 있어서는 일보도 양보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On your path of loyalty to God, you should have the conviction that you will not yield even an inch.

어떠한 사람, 어떠한 충신, 누구보다도 내가 한 발짝이라도 더, 요만큼이라도 앞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Determine that you will go even one extra step more than any other person or loyal subject.

땅 위에서 살다 간 영인들, 땅 위에서 열심히 일하고 간 영인들 이상으로,
Work harder than any person who ever lived on earth.

그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모든 공적인 일에 열심히 일한 이상으로 실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You must live up to a higher standard than those who were loyal to their country and toiled assiduously for the public good.

한 치라도 더 해야 됩니다. 철칙이 그렇습니다.
Go even the extra mile. This is an iron rule. (102-98, 1978.11.26)

종의 시대에 있어서 절대적인 충성을 하고, 양자시대에 있어서 생활면에서 절대적인 충성을 해야 합니다.
In the age of the servant, you must fulfill absolute loyalty.
In the age of the adopted child, you have to practice absolute loyalty in your life.

이렇게 2대의 환경을 거치지 않고는 양자로서 하나님의 직계 자녀와 일체될 수 있는 기준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If you do not go through these two stages, you cannot reach the standard to become one with God’s begotten children.

하나 될 수 있는 기준을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You cannot reach the standard of being unified mind and body with God.

땅의 세계를 중심삼고 하늘 세계와의 관계를 맺는 일을 대표적으로
세계에서 처음 한 민족이 제3이스라엘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The representative people who accomplished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the task of connecting the earthly world with the heavenly world will become the Third Israel. (45-82, 1971.6.13)

여러분들이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참고, 그 환경에 있어서 모든 한적인 요건을 여러분의 일신으로써 이것을 탕감 해원하겠다고 몸부림쳐야 되겠습니다.
You have to endure with the heart of yearning, and you must struggle with all your might in every situation you are in to indemnify and liberate all the elements of God’s grief.

그런 사람은 쓰러지지 않고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You should bear in mind that a person with this kind of heart will never stumble or fail.

쓰러졌다고 해서 이제는 주님 앞에 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늘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you do stumble, and you think that there is no way to go before the Lord, remember that God is alive.

하늘은 지금까지 참으면서 나온 연고로, 살아서 그와 같은 입장에서 정성을 다하여 충성하다가 쓰러진 그런 무리는 또다시 일으켜 하늘 앞에 기도라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요,
Even if He has been enduring until now, and so, when you stumble in the cause of loyalty and devotion while yet alive, He will raise you up and open the way for you to at least pray,

또 지금부터 살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요,
and He will show you the direction how to live from then on.

또 그들을 일으켜 협조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Then He will send you people who can help you. (153-255, 1964.1.7)

하나님이 보실 때에 민족의 내적 심정을 울릴 수 있고, 천주의 내정을 관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From God’s point of view, you have to become a person who can make the internal heart of your people cry. You should also be a person who can realize the internal heart of the cosmos.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애정을 가진 그 효자 효녀는 깊은 비운이 감도는 자리에서도 그 비운의 주인공이 된 왕이면 왕, 부모면 부모의 마음을 풀어 드리고 그 배후의 전부를 혼자 막아 해결해야 합니다.
The filial sons and daughters who can lovingly relate to God even in the position of great misfortune must comfort the heart of the unfortunate head of the household, whether it is the king or the parents. Then such a son and daughter should single-handedly tackle all the problems surrounding the situation and solve them.

이런 충효의 인연을 가진 사람이 천당에 가는 것입니다.
Those having such a mind of loyalty and filial piety will go to the Kingdom of Heaven.

예수 믿고 혼자 천당 가겠다는 사람은 천당은 커녕 지당도 못 갑니다.
People who think that they can enter Heaven just by believing in Jesus shall in no way do so.

이런 사람들한테 지금까지 욕먹고 핍박받아 온 것이 분하고 원통하지만 그렇다고 총칼을 가지고 복수해서는 안 됩니다.
These people have vilified and persecuted us to our exasperation and mortification, but we cannot take revenge on them with guns and knives. (19-300, 1968.3.10)

여러분이 글씨를 쓸 때에 점을 하나 찍더라도 그때의 마음자세 여하에 따라 기쁠 수 있습니다.
Depending upon your attitude when you write, you can feel joy at just dotting an ‘i’.

또 그 한 점이 희망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At the same time, that one dot could even symbolize hope.

그렇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아무리 작은 물건을 지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외로운 입장을 메우고 기쁨을 얻기 위한 대상이므로
In relation to that, when God who made Heaven and earth created an object partner, however small, it occupied the position of a being from which He derived joy and comfort in His solitude.

그 물건은 하나님 앞에 있어서는 최고의 기쁨의 대상이 되는 것이요, 충효의 요건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As such, it brought God the greatest joy and thereby constituted an essential factor inherent in the object partner to have loyalty and filial piety.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물건을 지어 놓고 감상하면서 이것은 빼고 이것을 가하면 어떨까 하는 소망 가운데에
We can thus understand that when God ponders over His creation and wonders about the outcome of adding something here and taking away something there,

언제나 기쁜 마음을 가지고 지내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He does so always with a joyful heart amidst hope. (39-226, 1971.1.15)

하나님을 누가 해방시켜 주느냐?
Who will liberate God?

충효의 도리를 다짐하고 효성의 도리를 다하는,
Filial children resolved to fulfill their duties of loyalty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효자가 나타나 가지고 그분의 모든 십자가의 한을 책임져야 됩니다.
and filial piety with utmost devotion must appear and bear all responsibility for His anguish associated with the cross.

그런 아들딸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Such sons and daughters must appear.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해방되지 않는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Understand that, if we fail this, God will not be liberated.
(101-255, 1978.11.1)

용기를 내서 악한 세계를 무너뜨리겠다고 하면서 나설 수 있는 하나님이 된다고 하면 그 순간에는 하나님의 활동무대가 자기에 의해서 생기는 겁니다.
If, seeing your faithful determination, God takes heart and steps forward to declare, “I am going to tear down this evil world!” then, in that instant, His sphere of activity will expand due to your efforts.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어떠한 귀한 자리, 보좌, 영광의 자리에 있어서 일생이 아니라 몇 평생을 걸쳐 그 이상의 것을 플러스하더라도 미치지 못할 기쁨의 하사품일 것입니다.
This will be a gift of joy from Heaven more wonderful than any coveted position, throne, place of honor, and even awards that would be heaped upon you over not only one but over many lifetimes. You should determine to confront any kind of persecution in the course of human history and even beyond that.

역사를 넘어서까지 박해를 대해 자기가 맞서겠다고 하는, 그것이 영원의 역사를 대표한 효자 효녀들이 가야 할 길이 아니겠느냐 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This is the path filial sons and daughters who take on the responsibility to represent the history of eternity should take.

그것이 영원한 나라를 대해서 충성의 길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This is the way of loyalty to the eternal Kingdom of Heaven.
(255-121, 1994.3.10)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절대 가정, 절대 충효를 원하는 것입니다.
In conclusion, God wants absolute families who have absolute loyalty and filial piety.

지금까지 그러한 절대적인 충효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Until now, absolute loyalty and filial piety have never existed.

절대 성자,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그러한 세계적인 기반이 없으면 하나님이 지상에 강림할 수 없습니다.
Without a global foundation of absolutely divine children, namely God’s children, God cannot descend upon the earth.

하나님 혼자로서는 지상에서 아무런 역사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Alone, God cannot do anything providential on the earth.

그래서 우리가 슬픈 하나님, 불쌍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겁니다.
This is why we refer to Him as a sorrowful God deserving of pity.

지금부터 레버런 문을 중심삼고 유럽 멤버들이 처음으로 그런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입니다.
It is an amazing fact that European members who follow me are realizing such families for the first time.

어느 누구든지 모두 다 충효를 원하는 것입니다.
Everyone without exception desires loyalty and filial piety.

지금까지 이 타락한 세계에 대해서 하나님은 불쌍한 입장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Until now God has had no other option but to be in a miserable state over this fallen world.

그 하나님을 어떻게 해방할 수 있을 것이냐?
How can we liberate God?

그것은 어떻게 그러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건설하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It all depends on how we build the family, the tribe, the people, the nation and the world. (297-202, 1998.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