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G. Book 1. Chapter 1-7 : Assessing the Existing Views of God – 기존 신관들의 문제점

① 기성신관은 이율배반적이다
7.1. Existing doctrines of God are contradictory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반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There are various questions raised against religious doctrine.
They include the question

하나님이 과연 있는가?’
Does God really exist?

하나님이 전지, 전능, 무소부재하고 지선(至善), 사랑이며, 지미(至美)하고,
God is said to be omniscient, omnipotent, omnipresent, possessing utmost goodness and beauty. He is said to be a being of love,

심판의 주이며, 인류의 아버지 등으로 표현하지만
the Lord of judgment, and the Father of humankind.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Yet how do we know these descriptions are correct?

‘가만 있어도 좋을 하나님이 왜 우주를 창조하였는가?’,
Why did God create the universe, when He could have just remained quietly by Himself?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무엇일까?’,
What is the purpose for which God created the world?

‘창조에는 방법이 있었을 것인데 그 방법은 무엇일까?’,
There must have been a certain method to the creation.

절대선(絶對善)인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왜 약육강식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What would that method have been? Why does the phenomenon of the so-called law of the jungle appear in this world created by the God of absolute goodness?

인간이 타락해서 죄의 세계가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완전한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 왜 타락하게 되었는가?’ 등이 그것입니다.
It is said that the Fall has led to the world of sin, but why did human beings, created by the perfect God, fall? (122-302, 1982.11.25)


하나님이 문제가 많습니다.
God has many problems.

전지전능하다면서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해요?
If He is all-knowing and all-powerful, why did He allow Jesus to be nailed to the cross?

십자가의 도리가 아니면 구원할 수 없어요?
Is salvation impossible without the cross?

그거 어떻게 대답할 거예요?
How are you going to answer this?

전지전능하다면서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구원할 수 없다면 그런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입니다.
If God is all-knowing and all-powerful yet still unable to save Jesus from the cross, such a God is a cruel God

인간 앞에서 추방해야 할 하나님입니다. 믿긴 뭘 믿어요?
whom we should chase away. How can we believe in Him?
(136-128, 1985.12.22)


하나님은 인간을 타락하게 해놓고 왜 슬퍼하는가 하는 근원을 파헤쳐서,
There has been no one who sought to understand, by digging into the root cause of God’s grief after the Fall,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으며,
what the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human beings is,

또 전지전능하시다는 하나님이 왜 이렇게 무능한 하나님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알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33-216, 1984.7.19)
and how the supposedly all-knowing and all-powerful God has become so impotent.


지금까지 신학자들이나 영계를 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탄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So far, although many theologians and spiritual mediums have known about the existence of Satan,

전지전능한 하나님 앞에 반대하는 사탄을 왜 방어하지 못했느냐 하는 문제는 몰랐습니다.
they have not been able to understand why the all-knowing and almighty God could not prevent Satan from opposing Him.

이것이 영계를 통해 가지고도 문제입니다.
This is a problem even throughout the spirit world.

어느 때든지 하나님편으로 가려면 반드시 사탄이 방해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Whenever you try to go to God’s side, Satan will surely interfere. Satan opposes us from many directions,

다방면에서, 일방이 아닌 팔방에서 반대하게 되는데, 그걸 왜 하나님이 간섭하지 못하고 제재하지 못하느냐?
not just one. But why is God unable to intervene and punish him?

이런 문제가 지금까지 수수께끼입니다.
This has been a riddle until now.

영계를 통해도 그것만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This is one thing that cannot be known even through relating with the spirit world. (133-86, 1984.7.10)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만 년 역사를 통해 인류를 이끌어 나왔는데
The all-knowing and all-powerful God has been leading humankind throughout the tens of thousands of years of history.

어찌하여 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세계로 이끌어 가지 못하고,
Why then is it that history is not heading toward a world

종국에 와서는 이와 같이 낙망과 절망의 세계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느냐?
where goodness is realized but instead has ended up heading toward a world of despair and hopelessness?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This is a serious problem

신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내용도 되는 것입니다.
that can lead to people concluding that there is no God.

신이 없다면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이상이라든가 혹은 평화의 세계,
If there were no God, would humankind have the possibility to dream of the ideals we long for,

인간들이 추구해 나가는 유토피아적 내용이 미래에 가능한 것으로 인간들 앞에 맞아질 것이냐?
the peaceful world and utopia that we seek, in the future?

지금까지 오랜 역사노정을 통해서 생각하는 사람 혹는 무수한 철인들이 그와 같은 세계를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미달해서 현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될 때,
Throughout our long history, thinking people and numerous philosophers have failed in their pursuit of such a world and left the world in its present state. Considering this fact,

미래에 우리들에게 그런 희망의 세계를 가져다 준다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we cannot assume that such a world of hope will come about in the future.
(130-18, 1983.12.11)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왜 사탄을 그렇게 두는 걸까요?
Why does the all-knowing and all-powerful God leave Satan alone?

하루 저녁에 모가지를 잘라서 처단해 버리면 될 것인데
He could just execute him one night by cutting off his head,

왜 그냥 둘까요? 그거 왜 둬요?
but why does He leave him be? Why just leave him be?

그게 종교에 있어서 제일 난문제인데, 그게 간단한 내용이예요?
This is the most difficult question in religion. Is it a simple matter? (127-112, 1983.5.5)


지금 수많은 종교인들은 ‘하나님’하면 영광의 보좌에 앉아 계신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이시다, 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분이시다.
Many faithful people think of God as sitting on the throne of glory as an omniscient, omnipotent, and omnipresent being with absolute authority.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슨 고통이니 슬픔이니 그러한 개념과 상관없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This is why they think that God has nothing to do with such concepts as suffering or sorrow.

그러면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하느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다, 이렇게 부릅니다.
If Christians ask what kind of being God is, they would say, God is our Father.

그리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 모든 신자들은 죄악된 세상에서 회개를 해야 되고 신앙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They say that all believers who call Him Father should repent and practice faith in the sinful world.

부자의 관계에 있는데 하나님과 인간이 이렇게 이율상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God and man are related as parent and child, yet they are said to be in contradiction. (123-154, 1983.1.1)


오늘날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거룩하고 전지전능하신 분으로서 공의의 심판주로 보좌에 앉아서 만민을 심판하는 심판장이다.’라고 하는데,
Today Christianity pronounces, God is the holy, all-knowing, and omnipotent being, and the Judge who sits on His throne as the righteous Lord of Judgment who judges all people.

여러분, 재판장이 좋아요?
Do you like judges?

재판장을 10년 했다가는 병이 들어 죽습니다.
If a judge serves for ten years, he will get sick and die;

죽는다기보다 병이 들어 나가 자빠집니다.
if he does not die, he will at least become seriously ill.

병이 안 들면 그건 가짜들입니다.
If he does not get sick, he is a fake.

남의 생명을 빼앗는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했을텐데,
Judges sometimes pass death sentences,

자기가 내린 판결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and yet their verdicts cannot be absolutely right.

논법이, 해설법이 여러 가지 방향이 있는데,
There are many different ways of seeing the situation,

자기 판결에 의해 그 사람의 생사문제를 결정짓는 놀음을 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and still their judgments decide whether someone lives or dies.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It is a serious matter.

우주의 공법에 비추어 보게 될 때 법이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Judgment, from the human perspective of universal laws often misses the true mark in light of universal law.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사람은 10년 판사 하면 병이 나야 된다 이겁니다.
For this reason, a righteous person would get sick after being a judge for ten years. (198-285, 1990.2.5)


자, 그러면 이 천지의 대주재 되는 하나님이 있다면 한번 물어 봐야 합니다.
We should ask Him about this.

하나님을 중심삼고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보좌에 앉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Today’s Christians say that God is sitting on the throne as the all-knowing and all-powerful God.

심판주로 오셔서 나쁜 놈은 지옥 보내고 좋은 놈은 천국 보내고.
They say that, as the Judge, He sends bad people to hell and good people to heaven.

그거 보고 좋아하는 하나님이라면 미친 하나님입니다.
But if God were joyful to see this, He would be a crazy God.

하나님은 선악을 초월한 절대선의 자리에 계십니다.
God dwells in the place of absolute goodness, which transcends good and evil.
(194-32, 1989.10.15)


기성교회 목사들은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가지고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다고 그러는데,
Christian pastors say that God is sitting on the throne as the omniscient, omnipotent, and omnipresent being,

그거 무슨 재미예요?
but would that be interesting?

보좌에, 왕좌에 몇만 년 그냥 앉아 있으면 궁둥이가 다 물러질 거
아니에요?
If He sat on a throne for tens of thousands of years doing nothing, would not His buttocks become flabby?

여러분, 앉아 있는 걸 좋아하거든 한 3일 동안만 앉아 있어 보라구요. 그래서 하나님은 뭘하고 있느냐?
If you like sitting, try sitting for just three days.
(192-29, 1989.7.2)


기독교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영원히 영광 가운데…
So what is God doing? According to Christianity, God is sitting on the throne in eternal glory…

혼자 앉아 서 무슨 영광이예요?
But if He is alone, what kind of glory is that?

영원 전부터 오늘날까지 한 자리에 앉아서
Is God sitting in one spot for eternity and saying,

오 내 권력 좋구만.
Oh, I so much like my power,

내 이 전지전능하고 요사스러운….
my omniscience, mysterious…

그거 뭐해요?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사는 것입니다.
Really? What use is that? God, too, has always been living centered on love.

이러한 논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The logic of this is undeniable. (191-22, 1989.6.24)


하나님이 자기 마음대로 할 것 같으면 왜 지금까지 수만 년 역사,
If it seems God can do everything as He pleases, why did He allow human beings to become like they are over our long,

인류역사를 말하게 되면 85만 년에서 150만 년까지 잡고 있는데, 그런 기나긴 장구한 세월 동안 왜 인간을 요꼴로 만들어 왔어요?
drawn-out history, said by some to be 850,000 to one and a half million years?

그렇다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This could lead us to conclude that God does not exist;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는 말도 못하는 것입니다.
we could not even talk about an all-knowing and all-powerful God.

이거 다 허황한 논법입니다.
But that would be faulty logic.

왜 못 하느냐 이겁니다. 왜 못 하느냐?
Why is it that God cannot do as He pleases? Why can’t He?

조건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162-186, 1987.4.12)
It is because He is constrained by circumstances.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될 것이냐?
What would happen if man had not fallen?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거룩하신 분이고 우리 인간은 속되다고 하지만, 잘못 알았습니다.
Today, Christianity teaches that God is all-knowing, all-powerful and holy, while we human beings are profane, but they are wrong.

저나라에 가 보라구요.
Go to the spiritual world and see.

오늘날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자기들도 하면서…
They, too, call God Father just as people do on earth today.

그 아버지라는 게 뭐예요?
Who is this father?

거룩하고 상대할 수 없는 관계에서 아버지란 말이 벌어져요?
If the holy God were unable to enter a relationship with people, could we call Him Father?

그건 벌써 처음부터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There is a logical contradiction there from the outset.

모순 투성이라는 것입니다.
It is completely contradictory.

그렇지만 문총재가 말하는 것은 사리에 닿습니다.
But what I am saying makes sense. (240-191,1992.12.13)


내가 이런 얘기를 왜 하느냐?
Why am I saying this?

하나님이 처음으로 인간을 아들딸로 지었는데,
God created human beings as His sons and daughters,

그 아들딸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것을 봤겠어요,
못 봤겠어요?
but do you think God has seen them dancing and singing while praising
God, or not?

인간이 타락해서 쫓겨났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런 날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Because they fell and were expelled, God still has not seen such a day.

그런 하나님인 것을 기성교회 신자들은 모릅니다.
But Christians do not know this about God.

하나님이 영광 중에 있으면서 전지전능해서 무엇이든지 다 할 줄 아는데,
They think that God is in glory and that because He is all-knowing and all-powerful, He is able to do anything.

그런 하나님이라면 왜 수천 년 동안 이렇게 인간을 구원 못해 주느냐 이겁니다.
But then, they need to ask why He has not been able to save humankind during all these thousands of years.

그걸 어떻게 답변할 거예요?
How would you answer this?

그것은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It is because human beings committed sin.

죄 를 인간이 지었기 때문에 죄를 청산하는 것도 인간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Since it is they who committed sin, it is they who must liquidate it. (226-304, 1992.2.9)


하나님이 절대 바라는 것이 뭐냐?
What is it that God absolutely wants?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게 뭐예요?
That is the question. What is it that God wants?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바라는 게 뭐냐? 능력이에요?
What does God absolutely want? Is it ability?

오늘날 기성교회, 기성신학에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Today, Christian churches and Christian theology teach that since God is all-knowing and all-powerful,

공의(公義)의 심판주로 와서 선한 사람은 천국 보내고 악한 사람은 지옥 보낸다고
합니다.
as the righteous Lord of Judgment He sends good people to the Kingdom of Heaven and evil people to hell.

그런 재판장이 좋아요? 세상에 재판장이 좋아요?
Would you like that kind of judge? Do you like the judges in the secular world?

무슨 고약한 하나님이 돼 가지고 지옥으로 보내고
Wouldn’t it be nasty of God to have made it so that He sends some people to hell

천국 보내게끔 만들었어요?
and some to the Kingdom of Heaven?

논리적으로 전부 부당한 처사라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We conclude that this would be unfair. (211-75, 1990.12.29)


기성신학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은 속된 것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옵니다.
Christian theology claims that God the Creator is holy and the things He created are profane.

이것은 우주 생성의 본성적 원리에 위배되는 논리입니다.
This view, however, contradicts the original principle of the formation of the universe.

기독교의 전통적 주류 사상이 사랑이라 했는데 속된 죄인과 거룩한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될 수 있어요?
The traditional, mainstream idea of Christianity is said to be based on love, even loving one’s enemy, but how can the profane sinner and the holy God become one?

이론적 근거를 대라 이겁니다. 이론을 못 대면 허무한 것입니다. 가짜입니다.
Without establishing a basis for answering this serious question, any conclusion advanced is futile, false.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도 절대적인 하나님 자신이 절대 복종하고, 절대자인
This is why there must be a partner for the absolute God to absolutely obey,

하나님의 생명을 버리더라도 위하고 싶고 갖고 싶은 상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serve and have with Him even at the cost of His own life.(204-100, 1990.7.1)


오늘날, 기성 신학자들이 말하기를 ‘신앙 전체를 우리는 비판해야 할 때다.
Christian theologians are today saying, Now is the time to critique faith as a whole.

지금까지의 신관, 인생관에 대한 모든 것을 재검토할 때에 들어다고 합니다.
Now is the time to re-examine all previous doctrines of God and views of life.

지금까지의 신학사조는 피조물은 거룩하신 창조주와 대등한 자리에 설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Theological trends have so far upheld the view that created beings cannot stand in an equal position to the holy Creator.

그러면 사랑은 어떻게 하느냐?
Then how is love to be given?

하나님 혼자서 사랑하겠느냐?
Do you think God can share love by Himself?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은 뭐냐?
What are those things we call peace and happiness?

하나님 혼자 하겠느냐?
Can God have these on His own?

묻게 된다면 대답을 어떻게 할 거예요?
How would you answer this question?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God needs an object partner. (77-317, 1975.4.30)


이 피조세계가 생겨나게 된 동기가 뭐냐?
What motivation led to the birth of this created world?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해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God created heaven and earth because He needed love.

이런 사실을 모르는 오늘날 기성신학의 신관(神觀)이 그래서 틀렸다는 겁니다.
Based on this, the doctrine of God in modern Christian theology is in error.

절대적인 힘의 하나님, 힘만 가지면 다 된다는 식입니다.
They say that the absolute God of power can subsist on power alone.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문화가 거쳐가는 데는 피를 흘려 왔습니다.
This is why, wherever Christian culture has gone, blood has been spilled.

서구 문명이 기독교문화를 따라 발전해 왔지만 이제 기독교문화는
Based on this logic we can foresee that, although Western Civilization has developed in accordance with Christian culture,

종말세계에 파탄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하는 것을 이런 논리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Christian culture will now have a devastating impact on the world in the Last Days.(209-29, 1990.11.25)


역사는 과학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History is heading into the age of science.

모든 근원을 파악하고 종의 기원을 탐구해 가지고 근본을 추구하는 과학의 발전시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종교도 거기에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With the advent of the age of scientific development, in which the fundamental roots of everything are investigated and our basic origins are pursued through studying the origins of species, religion must inevitably keep pace.

거기에 주체적인 관을 가지고 세계가 어떻고 창조의 내용이 어떻다는 것을 설명해 가지고
In this situation, a religion must appear having a commanding outlook that can explain the reality of the world and creation,

하나님을 입증할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할 텐데 그런 종교가 없기 때문에
and prove God’s existence. Since there is as yet no such religion,

하나님이 살아 있는 한 그런 종교의 내용을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God should prepare the substance of such a religion because He is a living God. (211-139, 1990.12.30)


인간이 절대자에 의해서 창조되고 절대자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지음받았다면
If humankind was created by the Absolute Being in such a way as to practice the love of the Absolute Being,

인간의 창조에 동기와 목적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it is clear that there was motivation and purpose behind our creation.

그 동기와 목적이 밝혀지려면 절대자가 어떤 분인가 하는 문제,
To reveal that motivation and purpose, a correct view of God,

즉 올바른 신관(神觀)이 우선 세워져야 합니다.
explaining who the Absolute Being is, should first be developed.

올바른 신관이 세워짐으로써 그분의 창조의 동기와 목적이 밝혀질 것이고,
Establishing the correct understanding of God will reveal His purpose and motivation for the creation,

따라서 평화를 위해 절대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도 명백해질
것입니다.
and thereby clarify the reason we must practice absolute love for the sake of peace. (110-253, 1980.11.27)


절대적이며 영원하고, 유일하며 불변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If the absolute, eternal, unique and unchanging God exists,

그러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견지에서 참된 사랑,
we must be able to view the origin of true love,

참된 이상, 참된 평화, 참된 행복의 기원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true ideals, true peace and true happiness from a new standpoint centering on such a God.

그런 입장에서 볼 때
From that point of view,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신관,
we can secure perspectives of God,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인생관, 하나님 자신으로 보는 물질관,
life,and material things that are aligned with God’s own viewpoint,

이것을 확실하게 하는 데서부터 비로소 새로운 평화와 새로운 행복의 세계를 우리는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and from there finally be able to welcome a world of new peace and new happiness. (77-260, 1975.4.14)


종교분쟁의 근본원인도 역시 본체론의 애매성에 있습니다.
The root cause of religious conflict lies in the vagueness of the doctrines of the ultimate reality.

절대자는 오직 하나이며 둘이나 셋이 있을 수 없음에도
The absolute being is only one; there cannot be two or three absolute beings.

불구하고 각 종교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절대자만이 바른 신이며
However, the leaders of each religion claim that only their absolute being is the true God

그 외의 신은 참신이 아니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and that other gods are not true gods.

결국 종교마다 절대자가 있는 셈이 되어 절대자가 여럿이라는 배리(背理)가
성립됩니다.
This results in each religion having its own absolute being, and fosters further contradictory ideas of the existence of many absolute beings.

따라서 모든 종교의 신은 상대적인 신에 불과하였다는 결론이 되어
각 종교를 통해 세워지기로 되었던 절대적 가치관,
Since this leads to the conclusion that the gods of all religions are nothing but relative gods, the system of absolute values

즉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에 관한 이론은 상대적인 것에 머물고 있습니다.
that should have been developed through religion based on the doctrine concerning God’s love and truth still remains relative.

즉 이때까지의 종교는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절대적 가치관을 세울 수 없다는 결론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In other words, we conclude that religions to this day have not established an absolute value system to settle the confusion.

그것은 모든 종교가 절대자에 대한 정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결과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This inevitably results from the fact that no religion has been able to present the correct explanation about the Absolute Being.
(122-302, 1982.11.25)


각 종교마다 그 교리가 성립되는 근거로서의 절대자가 있습니다.
Each religion has its own absolute being as the basis of its doctrine.

유대교의 절대자는 여호와신이요,
The absolute being in Judaism is Jehovah,

기독교의 절대자는 갓(God), 즉 하나님이요,
that of Christianity, God,

회회교의 절대자는 알라신입니다.
and that of Islam, Allah.

유교나 불교는 절대자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Buddhism and Confucianism do not specify an absolute being,

유교의 덕목의 근본인 인(仁)’은 천명과 연결되기 때문에
but with the basic Confucian virtue, benevolence, being connected to the heavenly mandate,

천(天)’이 유교의 절대자라고 볼 수 있으며,
heaven can be taken as the absolute being in Confucianism.

불교에서는 제법(諸法)은 항상 변화하며 진리는 제법의 배후에 있는 ‘진여(眞如)’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니
Moreover, since Buddhism teaches that all dharmas constantly change while the truth is found in the Suchness behind dharmas,

진여가 불교의 절대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We can say that Suchness constitutes the absolute being in Buddhism.
(122-300, 1982.11.25)


새로운 종교를 위한 본체론은 종래의 모든 절대자가 각각 별개의 신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의 신임을 밝혀야 합니다.
The doctrine of ultimate reality for the new religion must reveal that the absolute beings of the different religions are not separate gods but one and the same God.

그와 동시에 그 신의 속성 일부를 파악한 것이 각 종교의 신관이었음과 그 신의 전모를 옳게 파악하여 모든 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워진 형제적 종교임을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The new religion will reveal the fact that all religions constitute a brotherhood established by God, with the theologies of each having embraced one particular aspect of God’s attributes.

뿐만아니라 그 본체론은 하나님의 속성과 함께 창조의 동기와 창조의 목적과 법칙을밝혀
The new religion will complete the picture of God. Moreover, in revealing God’s attributes and the motivation, purpose, and laws of creation,

그 목적과 법칙이 우주 만물의 운동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과 인간이 지켜야
할 규범도 결국 이 우주의 법칙,
the doctrine of ultimate reality must explain that this purpose and these laws govern the movement of everything in the universe, and that human norms are, in the end,

즉 천도와 일치함을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in accordance with this universal law that is, the heavenly way.
(122-303, 1982.11.25)


통일교회 원리가 위대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창조성이 구체적이라는 것입니다.
The greatness of the Divine Principle taught by the Unification Church is that it explains creativity in concrete terms and serves us in our understanding of the process of creation.

창조가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타락했느냐 하는 실질적인 논리가 있습니다.
Next, it provides a substantial explanation of how the Fall came about and then also presents a view of history.

그 다음엔 역사관이 있습니다.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방치해두지않고
It clearly explains how God, rather than abandoning human beings in their fallen state,

재창조하시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가 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has been working diligently for their re-creation throughout the course of history.

그런 과정을 통해서 목적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일목요연하게 파헤쳤다는 것입니다. (208-296, 1990.11.20)
It logically and plainly reveals that through this process
of restoration we will arrive at the world He purposed to achie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