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G. Book 1. Chapter 4-6 : The Liberation of God and the Way of the Filial Child – 하나님의 해원성사와 효자의 길

① 참아버님이 걸어오신 복귀의 길
6.1. The path of restoration True Father has walked

하나님 뜻을 이루어 드리겠다고 결의한 것을 내가 잘 압니다.
I fully understand what it is like to determine to fulfill God’s will.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다는 걸 알고,
I know what God’s love is like,

무릎을 꿇고 감사하며, 용서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and I know that I must both kneel in gratitude and walk the path to offer forgiveness.

피가 터지더라도 해방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원한에 사무친 하나님임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No one has known that God is filled with bitter grief that compels Him to walk the path of liberation even though His blood might be shed.

나는 고문에 쓰러져 가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를 안 했습니다.
I did not pray to God asking Him to save me even when I collapsed under torture;

나를 구해 달라고, 내가 몰려 다녔지만 하나님 앞에 내 갈 길을 지켜 달라고, 날 구해 달라고 기도 안 하는 사람입니다.
and though I was pursued, I did not pray to God asking Him to protect me on my path or to save me. As a man of character,

나는 사나이로서의 내 여력을 갖고 있고
I have my own reserve of strength.

내 기백을 갖고 있고 싸울 수 있는 자체력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I have the spirit and the inner strength to fight.

내 힘이 부족해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나를 구해 주겠지, 그전에는 내 힘으로….
I say to myself, “God will probably save me if I collapse unconscious due to lack of strength. But before that, with my own power…

내가 가기 전에 하나님은 미리 앞에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 I know that God is waiting, preparing things in advance before I go. (138-358, 1986.1.24)


통일교회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God is with the Unification Church.

만약에 내가 ‘저놈의 자식 저거!’하며 분을 참지 못해 입을 다물고 ‘두고 봐라. 몇 개월만 두고 봐라.’ 그러면 옥살박살되고 터져 나가더라 이겁니다.
If I were to lose my temper, thinking “that good-for-nothing!” and think to myself, “You wait and see; just wait a couple of months,” in the end that person would be broken in pieces.

그걸 보면 이상하지요?
Wouldn’t it be strange to see such a thing?

그래서 혀를 깨물면서 내가 많이 참습니다.
That is why I bite my tongue and control myself.

내 입으로 저주를 못 합니다.
I cannot curse others with my mouth.

참부모의 이름을 가진 내가 내 입으로 저주를 할 수 없어서
As the True Parent, I cannot use my mouth to curse others.

입을 물고 있어도
Even as I hold back my words,

그 원한을 다 하늘이 풀어 주더라 이겁니다.
Heaven releases me completely from my bitter feelings.

그걸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 같아요? (162-205, 1987.4.12)
When you see this, don’t you think God loves me?


주인된 국권을 가지고 아시아의 5천 년 문화를 자랑할 수 있는 백의 단일민족의 권위를 갖추어 주권국가의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하나도 없지 않느냐 이겁니다.
Nobody ever became a congressman or president of this nation while its sovereign rights were intact, with the authority of a homogeneous people clothed in white, proud of its five-thousand-year culture in Asia.

해방 후에 나는 그런 국회의원을 만들고 그런 대통령을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I was thinking of the possibility of seeing such a congressman and president.

이건 내 소원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걸 원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You must understand that this was not just my wish but God’s wish as well.

그렇게 될 때 아시아는 우리 손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When this happens, Asia will be in the palm of God’s hand.

세계는 내가 지시하는 대로 하나님이 지향하는 곳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 틀림없음을 믿기 바랍니다.
Please have faith in the fact that the world should head towards the place God is also heading. (171-190, 1988.1.1)


원한의 씨를 품고 있는 내가 안식이 어디 있어요?
Harboring bitter grief in my heart, how can I take a rest?

갈 길이 바쁩니다.
My path is a busy one,

천년사를 전부 풀며 가야 할 갈 길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since I must walk this path to resolve everything from a thousand years of history.

나는 40평생 눈물의 길을 벗어나지 못한 걸음을 걸어온 사나이입니다.
For forty years of my life, I could not avoid taking the path of tears.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This continues even now.

북녘땅이 하나님의 새로운 사랑의 동산을 맞이하여 거기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싹터야 될 텐데….
North Korea should have welcomed the new garden of God’s love where young people who can praise God can spring up.

하나님을 배반한 싹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셨는데,
Yet seeing them tainted by those who betrayed God, He had to turn away His face.

그 얼굴을 돌이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We have to make it so that God can turn His face back.

내가 하나님을 모시고 들어가 그것을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하겠다는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Since I entered North Korea with God and with this system of thought that restores things to their original state,

그러한 것을 공산세계도 고마워해야 하고,
the communist world should thank me,

민주세계는 더더구나 고마워해야 할 것입니다.
and the democratic world should be even more grateful to me.

그곳을 향해서 전진할지어다!
Let us march forward to this place! (173-116, 1988.2.7)


서대문 형무소에서 어떤 전도부인이 통일교회에 죽자 사자 나오다가 내가
자기 역성대로 안 하니까 떨어져 나가서 ‘잘됐군.
At Seodaemun prison, a lady evangelist who had persevered for a time in the Unification Church but who then left after things did not turn out the way she wanted, said to me, “Oh, this has turned out well for you.

하나님의 아들이 저 꼴이야?’ 하더라구요.
Would this happen to the son of God?

‘그래, 내가 감옥에서 사라질 사나이가 아니야.
I answered “Yes, I am not someone who will disappear in prison.

나는 해방의 세계를 향해 도약할 것이다.’했어요.
I will make great leaps toward a liberated world.

잊혀지지 않아요, 그놈의 얼굴이.
I will never forget her face.

요전에 다 비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됐구나 했어요.
I heard that she recently died in miserable circumstances, and I felt pity for her.

나는 그러고 사는 사람입니다.
This is how I live.

5대 주권자들이 나를 어떻게 대했다는 것을 다 압니다.
I know everything about how the five presidents of Korea treated me.

그렇지만 표시를 하지 않습니다.
Yet I do not show this.

복수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I do not seek revenge.

모르니까.
They did not know.

내가 한번 만나서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I have to meet them and teach them.

말을 다 하고 나서 청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204-118, 1990.7.1)
After saying what I need to say, I have to resolve everything.

선생님 자신은 이 땅에 올 때에 어떤 입장에 섰느냐?
When I came to this earth what position was I in?

하나님의 원한의 심정이 남겨진 아들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 형제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 부부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 부모로서 완성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을
As the son, sibling, couple and parent in whom God’s heart of bitter pain remains,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그 한의 고개를 탕감하여 풀어 주는 자리에 섰습니다.
I stood in a position to indemnify and release God’s anguish at its pinnacle by giving the perfected love that could not be given before.
(234-140, 1992.8.10)


타위적(他爲的)인 것이 아니면 안됩니다.
Everything exists for the sake of others.

하나님이 타위적인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투입, 투입, 투입해 가지고 참사랑을 번식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Based on God’s ideal of creation to live for the sake of others, God had to invest, invest, and invest Himself to multiply true love.

이럼으로 말미암아 천하를 커버하고 본향 땅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As He did, we have to spread it throughout the universe and return to the original homeland.

돌아가는 데는 원수로서 발길로 차는 것이 아닙니다.
When we return, we should not kick others away as our enemies.

이것을 사랑으로써 자연굴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We have to bring them to naturally submit to us through love.

자연굴복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자리를 못잡습니다.
Without this natural submission, God cannot find His position.

내가 술수를 쓰려면 누구한테 지지 않습니다.
If I were to use trickery, I would not be defeated by anyone.

그렇지만 그걸 알았기 때문에 참아온 것입니다.
However, knowing that we must bring them to submit,

불같은 성격에 지금까지 40년 참자니 오죽했겠나? 하나님이 나보다 더할 텐데 오죽했겠나 이말입니다.
I have been restraining myself. Can you imagine how difficult it has been for me to suppress my fiery character for forty years?!

한번은 내가 뒤를 돌아보니, 하나님이 나를 품으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

How much more difficult would it be for God, Who is more intense than I am! (219-93, 1991.8.25)


당신은 나의 사랑의 중심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복종하겠습니다. 당신을 절대로 따르겠습니다.’하면서 돌아보니 또 그렇게 나를 품으시는 것입니다.
Once I turned to look back, and God, who was following me, embraced me in tears. When I turned to say, “You are the center of my love; I submit to You; I will absolutely follow You,” God embraced me again.

그 자리가 얼마나 위대한 자리냐?
How great it is to be in such a position!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하나님의 자리를 주시듯이
Just as God gave me His position,

이제 나도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자리를 여러분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I must also give God’s position to all of you.
(215-341, 1991.3.1)


역사를 회고해 볼 때, 40년 전 선생님은 나라에 몰리고 기성교회에 몰리고 전부 몰려 Looking back in history, forty years ago I was hunted by the nation and hunted by the established churches.

광야에 쫓겨난 고아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My position was that of an orphan expelled into the wilderness.

이런 자리에서 역사적인 기준을 다시 찾아 세계적인 판도를 만들어야 할 뜻을 앞에 놓고,
From such an awful position, I had to fulfill God’s requirement to restore the historical standard and create a global foundation!

이 뜻을 이루어야 하는 선생님의 입장이 얼마나 기가 찼겠어요? 2차대전 이후 하늘편으로 확정해 놓은 승리적 기독교 문화권과 자유세계를 통치하는 미국의 기반을 다 잃어버린 자리에 있었습니다.
I had lost the victorious Christian cultural sphere that had been established on Heaven’s side after World War II, and the foundation of America, the nation that governs the free world.

주인된 입장에서
In the position of the owner,

이걸 잃어버린 비통함과 다시 40년 탕감복귀해야 할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I could not help thinking about the intense grief of losing this foundation and about having to accomplish the task of restoration through indemnity again, over a forty-year period.

하나님이 역사 이래 몇십만 년, 몇백만 년 걸려 가지고도 못한 인간의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Can you imagine how aghast I was, knowing clearly that I could have brought history to its conclusion – something even God could not do for hundreds of thousands or millions of years!
(135-187, 1985.11.13)


나는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것을 모르고,
I have accomplished these tasks oblivious to rain and snow.

밤을 아침같이, 새벽같이 느끼면서
Nightfall was like dawn,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이 놀음 해온 사람입니다.
and I would even forget to eat.

편안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I could not take this lightly because I knew God and felt the serious responsibility that comes with knowing God.

하나님을 안 죄, 누구보다도 비통한 하나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More than anybody else, I knew how sorrowful God was.
내 일신이 갈갈이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Thus, even if my body were torn apart,

가루가 되어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crumbled into dust and blown away,

이 모든 날아가는 세포는 하나님의 한점의 세포라고 울부짖을 수 있다면
all those scattered cells could still cry out as God’s cells.

사나이로 태어나서 보람있는 죽음이라고 하면서 죽음길을 찾아 뒤넘이치고 있습니다.
I grappled with this path of death, accepting it as a worthy death for a man.

뒤넘이치다 보니 망할 줄 알았는데, 없어질 줄 알았는데
As I grappled with this, people thought I would perish and disappear,

이렇게 되었습니다.
but things have turned out like this. (137-178, 1986.1.1)


하늘땅의 사무친 원한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기 때문에 피를 토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을 위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
Since I knew the great and bitter pain that was entrenched in heaven and earth, I had to comfort God even when I was vomiting blood.

내가 죽게 되었으니, 하나님, 나를 살려주소.’라는 기도를 할 수 없는 참부모의 입장에 서야 할 비통한 사연을 그 누가 알았어요?
Who could ever understand the bitter reality of my position as the True Parent, in which I could not pray, “I am about to die.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God, please save me”? Nobody knew of this.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만이 알아 주셨습니다.
Only God. Only He understood my heart.

아무리 통일교회를 따르는 사람이 많지만 레버런 문의 사상에 하나가 다 안 되어 있습니다.
Even though many people follow the Unification Church,none of them is one with my thought.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All of you must understand this.

통일가라는 것이, 오늘날 해방권에 선 통일가라는 것이 싸구려가 아닙니다.
A substandard Unificationist community cannot stand in the sphere of liberation.

축복받았다는 패들이 움직이는 그 거동거리가 오늘날 악마의 사촌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내가 압니다.
I know that the behavior of those who have received the Blessing is nowadays like that of the devil’s cousins. (145-332, 1986.6.1)


내싸움이 아직까지 부족하고 내가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격이부족하다하고,
God would offer a hundred thanks to the brave man who would confess that he has not fought enough,

내가 서러워할 때 아버지께서 눈물 흘릴 것을 염려하면서,
that he lacks the qualifications to shed tears, or that he is concerned that the Father would shed tears if He saw him in sorrow.

내가 매맞는 자리에서 참기 어려운 비통한 자리에 설 때
God would offer those thanks to the brave man who, in the unbearably bitter position of being whipped,

하나님이 처참한 자리에 설까봐 염려하여 ‘내 비통함은 아무것도 아니요,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요, 내 슬픔은 아무것도 아닙니다.’하고 이를 악물고 내 눈물이 떨어질 때 하늘의 눈물이 떨어질까봐 염려하고 울부짖고 원수를 갚기 위한 도상에서 선봉장으로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용자가 있다 할진대 그 용자 앞에 하나님이 백배 사례한다는 것입니다. ‘
would worry that God would be in a miserable position or who would be concerned that God would shed tears when he cries through clenched teeth, “My grief is nothing, my pain is nothing, my sorrow is nothing.” God would offer those thanks to the brave man who would cry out and raise the flag of victory as the vanguard on the path to take vengeance upon the enemy.

네 이름을 충신이라 할까, 네 이름을 효자라 할까, 네 이름을 열녀라 할까? 지상의 역사상에 어떠한 귀한 자가 있다 하더라도 너 이상 귀한 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나님 자신이 머리를 숙여 사례한다는 것입니다.
God would express His gratitude one hundred times, saying, “Should I call you a patriot, should I call you a son of filial piety, or should I call you a virtuous person? In all the history of the world there has been no person more precious than you.” (153-269, 1964.3.26)


나 문총재는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외로운 길을 걸어온 사람입니다.
To this day, I, Rev. Moon, have walked a lonely path as an individual.

외롭지만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Though it has been a lonely path, I know God more deeply than anyone else does.

역사시대에 외로운 자리에서 비통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그곳을 저주하면서 자기에게 복을 빌어 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In history, many lonely people cursed their circumstances while asking for blessings. Yet, centering on God’s grieving heart,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걱정 마십시오.’했습니다.
I did not think like those people. Instead, I said, “God, do not worry.”

그게 다른 것입니다.
That is a different way.

내가 개인적인 시련 때문에 후퇴할 사나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I am not a man to retreat due to personal trials.

세계의 시련을 넘고 하나님을 해방하고 죽겠다는 사나이가 개인적인 과정에서 항서를 쓸 수 없습니다.
A man who pledges to die only after overcoming the trials of the world and liberating God cannot write a letter of surrender during that individual course.

비겁할 수 없습니다.
He cannot be cowardly.

여편네가 반대해도 잘라 버렸습니다.
Even though my wife opposed me,

자식이 반대해도 잘라 버리고, 부모가 반대해도 잘라 버리고,
my children opposed me and my parents opposed me,

나라가 반대하는, 4천만, 6천만이 반대하는 길을 간 사람입니다.
I cut them off in order to walk this path. I walked the path in spite of opposition by my nation of 40 million or even 60 million people.
(175-257, 1988.4.24)


시간이 너무나 짧습니다.
Time is so short.

일생에 이것을 고치고 또 채워 놓기 위해서는 시간이 없습니다.
A lifetime is not enough time to rectify this and compensate for it.

선생님의 생애가 그렇습니다.
That has been my life course.

그래서 세속적으로 보면 선생님의 생애는 불쌍한 것입니다.
So from a secular viewpoint, my life would be pitied.

하나님께 ‘선생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고 한번 물어 봐요.
Try asking God, “What kind of person is Rev. Moon?

선생님은 통곡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느끼면서,
” The pain I feel causes me to lament in sorrow;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을 가지고 몸부림치는 것과 같은 비통함을 체휼하고 있습니다.
I am experiencing bitter pain like that of a man writhing in agony while having his heart cut out.

선생님은 지상에서 비참한 남자입니다.
On this earth I am a miserable man.

그러한 고생을 누구도 모릅니다.
Nobody knows about my suffering.

자기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다 잘난 체하고 으스대고만 있지,
People may boast about themselves, thinking they are wonderful.

선생님의 고생을 모릅니다. 어머님도 모릅니다. (213-278, 1990.1.21)
Yet they do not know my suffering. Even Mother does not know.


하나님이 6천 년 간 수고해서 남긴 공적을 다 잃고, 흥남수용소를 찾아간 선생님의 비통한 사연을 여러분은 모릅니다.
None of you knows the bitter circumstances of my going to Heungnam prison after I lost all the foundation for which God had toiled for over six thousand years.

고향을 떠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Leaving my hometown was not the problem.

처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My wife and child were not the problem.

하늘땅의 미래의 소망으로서 해방의 민족이 되어 나를 환영하려 했던 그 무리가 구름속 지옥으로 꺼져 가는, ‘
It seems like yesterday that I cried for those who, as the future hope of heaven and earth, were to welcome me as liberated people.

암흑세계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통곡하면서 다시 만나자고 소리를 지르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But they vanished into hell in the clouds, disappearing into the world of darkness, even while I cried out to them that we would meet again.
It seems like yesterday that I proclaimed,

너희들은 꺼져 갔지만 나는 다시 내 갈 길을 가서 광명한 아침 해를 안고 너희들을 다시 찾아가서 해방해 주겠다!’고 선언한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Although you have disappeared, I will keep to my path and bring the bright morning sun to find and liberate you again!”

쇠고랑을 차고 소리를 지르던 그 소리를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I cannot forget the sound of my shouting this while in chains.

어려울 적마다 기도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220-205,1991.10.19)
I cannot forget the times I prayed while in difficulty.


하나님, 당신은 이런 분이셨죠?
When I ask God, “God, are You not this kind of person?

내가 아는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The God I know is like this.”

할 때 하나님이 손을 잡고 통곡을 하며 ‘어떻게 네가 그걸 알았느냐? 내 아들아!’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God would take my hand and weep profusely, asking, “How did you find that out, my son?”

그 말을 듣게 되면 하나님은 통곡을 하게 됩니다.
When God hears this He will weep.

목을 놓고 통곡하는 그 음성이 얼마나 크겠어요?
Then how loud the sound of His weeping will be!

그 인연은 천년 역사에 연장시킬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기 때문에 눈물을 닦고,곡소리를 그치고 ‘내 아들아!’하는 것입니다.
God knows that this situation cannot continue for a thousand more years. Thus, He wipes away His tears, stops His weeping and says, “My son!”

그럴 수 있는 아들이 필요하고 딸이 필요한 하나님의 입장을 알아야겠습니다.
You must understand God’s need for such a son and daughter. (176-263, 1988.5.11)


나는 하나님의 참용사가 될 것이다.
“I will become God’s true soldier.

그 어떤 하나님을 위한 전장이 비참할지라도
No matter how terrible this battlefield for God may be,

나는 그 전선에 참여할 것이다.’하는 것이 선생님의 정신입니다.
I will join the front line.” That is my spirit.

아무리 세계의 핍박이 몰려와도. 고독단신의 핍박의 자리, 고통의 자리에서도 나는 하나님에게 불평 한번 안 했어요.
I never once complained to God even when the world’s persecution swarmed about me – even when I was in a position of utter loneliness due to persecution and suffering.

이것이 레버런 문의 자랑입니다.
This is what I can take pride in. (193-73, 1989.8.20)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어라.
Have absolute faith in God!

왼쪽으로도 믿을 수 없고, 바른쪽으로도 믿을 수 없고, 동서남북 전후좌우 전부 다 믿을 수 없더라도 절대적으로 믿다 보니 중앙선에 가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믿게 되면 하나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If you have absolute faith in God – even when you cannot find faith on the left side or right side, on the north, south, east or west, on the front or back, on the left or right – you will find yourself on the center line.

절대적인 자리,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You will find the absolute position, the place where God resides.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풀리게 됩니다.
With absolute faith, you will find one position. From there everything will start to be resolved.

그렇기 때문에 신앙에는 독재성이 많습니다.
In the way of faith, many things are ordained.

의논할 수 없습니다.
There is no discussion.

틀어져 있으니 강제로라도 각도를 맞춰야 됩니다.
Because your life of faith deviates, its angle must be adjusted, even by force.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우리 인류가 얼마나 고통스러우냐
이겁니다.
In light of this, how great is God’s pain and the pain of humankind! (188-225, 1989.2.26)


6.2. A lifetime devoted to God’s liberation
하나님의 해방을 위한 한평생

내가 분하다면 얼마나 분에 사무치겠나요?
You do not know how angry this makes me!

역사 이래 나 이상 분에 사무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There cannot be anyone in history who feels greater indignation than I do.

통곡하라면 나 이상 통곡할 사람이 없습니다.
When I weep, there is no one who weeps more bitterly than I do.

이 땅 위에 천년 역사를 품고 잃어버린 슬픔을 안고 통곡하는, 문총재가 가슴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면서 통곡하는 거기에 못 미칩니다.
No one could weep more than I do. I feel God’s heart flowing from my heart as in tears I embrace a thousand years of history on this earth, embracing the lost sorrow.

그런 뿌리를 전부 우겨싸고 앉아 거기서 자기가 잘먹고 잘살겠어요?
Can you cover up that root, sit there, eat your fill and live in comfort?

그런 간나 자식들이 죽어 자빠진 사체는 개도 안 뜯어먹습니다.
Even dogs would not eat the carcass of such a wretch.
(180-50, 1988.8.20)


언제나 기분 좋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어려운 탕감의 고개를 태연하게 넘고, 하나님을 계속 모시며 하나님을 위로하며 고개를 넘지 않으면 평화의 지상천국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Unless a man goes over that difficult mountain pass of indemnity while calmly and happily attending and comforting God, the kingdom of peace on earth will not appear.

그 대표자, 공적인 사람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Such a representative and public person is lonely.

누군가 한 사람이 일어서서 ‘문선생님은 이러한 일을 하시고…’라고 한마디 할 때 선생님은 통곡하는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When somebody stands up and says, “Rev. Moon did such things as this…,” I feel like bursting into tears.

나이가 들어 눈물이 모두 메마른 70의 할아버지가 되어 있는데도,
Even though I am an old man of seventy whose tears should have all dried up,

아무도 그 슬픔의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는 외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I harbor a loneliness that cannot stop the flow of tears of sorrow.

그러한 부모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You must never forget that there is such a parent.
(183-86, 1988.10.29)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Think about how much time

내가 감옥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5년 이상 감옥생활을 했지만 비가 내리는 처마 끝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바위를 뚫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I have spent in prison, more than five years in all. Think about how rain dripping from a gutter will gradually make a hole in a rock.

‘내 사랑의 눈물방울이 하나님의 가슴속에 엉클어진 한의 바위를 뚫을 수 있으면, 그럴 수 있으면…’하면서 그런 물방울을 보고 통곡한 사정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None of you would know how bitterly I wept as I gazed upon those drops of water, thinking how much I wished that the teardrops of my love could bore a hole through the rock of anguish embedded in God’s heart!

흘러가는 물길을 바라보면서 ‘이 물줄기가 하나님을 모셔 가지고, 그분이 찾아와 목욕할 수 있는 맑은 줄기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Gazing upon a flowing stream I thought how wonderful it would be if this stream could be pristine water, serving God so that He could come and bathe in it!

인간으로서 그럴 수 있는 보금자리, 안식처를 하나님께 마련해 드릴 수 있는 자식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How wonderful it would be if I could be a child who could prepare such a home or resting place for God!

그런 심정의 깊은 세계를 여러분이 체험 못하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Unless you experience that deep world of heart, you have nothing to do with God. (185-45, 1989.1.1)


여러분 얼마나 참아 왔어요?
How long have I suppressed my indignation?

기가 막혀 이 오관이 다 한꺼번에 막혀 통곡한 사실이 얼마나 많아요?
How many times have I been overwhelmed to the point that all five of my sensory organs were choked up?

여러분을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It was not for the sake of meeting all of you.

인류의 주권자들을 굴복시키기위한 것입니다.몸뚱이와 총칼이 아닙니다.
It was for the sake of bringing the rulers of humanity into submission, but not through my body, or by guns and swords.

사랑의 핏줄을 통해서 그들을 감화시켜 자연굴복시키지 않으면
Unless I bring them to natural surrender by influencing their hearts through the lineage of love,

천지에 하나님이 바라는 평화의 동산이 오지 않습니다.
God’s desired garden of peace will not come to heaven and earth.

평화의 왕국 건설이 불가능합니다. (197-348, 1990.1.20)
It will be impossible to build the kingdom of peace.


이 한 세상을 살 때 얼마나 어려움이 많아요?
There are many difficulties as we live in this world!

이거 오늘 가다가 어떻게 될지 알아요?
Who knows what will befall us today?

그 공포의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쌍한 인생입니다.
People who cannot break free from this fearful environment have a wretched life.

이 공포의 환경과 혼란 가운데 있는 나를 가르쳐 줄 스승이 누구냐?
Who will be the teacher who can mentor them amidst this environment of fear and chaos?

스승이 없습니다.
There is no teacher.

여기 서 있는 사람은 그런 문제 때문에 통곡을 하며 몸부림쳤습니다.
I had to weep bitterly and struggle because of this problem.

하나님이 있다면 왜 스승 노릇을 못 하느냐 이겁니다.
f there is a God, why could He not step into the role of the teacher?

알고 보니 하나님이 사랑을 원칙으로 한 스승이었다는 것입니다.
I Actually God is a teacher whose principle is love.

이걸 모르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Not knowing this, we harbored a grievance toward God.

사랑을 중심삼은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He is a teacher centered on love. (203-228, 1990.6.26)


요전에 한번은 피곤해서 저녁 때 들어와서 잠깐 잠들었다가 일어나 세수하고 면도하니까
Once I came back in the evening tired. I slept for awhile and woke up, washed my face and shaved.

그걸 보고 ‘아침에 일어나야 세수하고 면도하는데, 왜그래요.’ 그러면서 웃는 것이었습니다.
Mother looked at me and said, laughing, “Washing and shaving is what you do when you get up in the morning. Why are you doing it now?”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That is how I live.

마음은 하나입니다.
My heart goes in one direction.

정성도 하나입니다.
My devoted effort goes in one direction.

하나님한테 선생님이 어떤 분이냐고 기도 한번 해 보십시오.
Try praying, asking God what kind of person I am.

하나님이 통곡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God will wail in sorrow.

혓바닥이 나와서 들어가지 않을 만큼 통곡을 하십니다.
He will weep so bitterly that His tongue will come out and not go back in.

그런 사연을 갖고 사는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You have to know that those are the circumstances of my life.
(221-163, 1991.10.23)


타락한 인간 편에서는 구세주이지만,
For fallen humankind, I am the savior.

하나님의 편에서 본다면
But from God’s viewpoint,

태초에 잃어버린 참사랑의 창조이상을 이룰 참아들이요 참부모가 됩니다.
I am the True Son and True Parent who will fulfill the true-love ideal of creation that was lost in the beginning.

구세주는 타락으로 초래된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생애를 바쳐 희생의 길을 개척해 오신 분입니다.
The savior is one who pioneered the path of sacrifice, offering his life to relieve God’s anguish that began with the Fall.

영광으로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The savior is not only living in glory.

항상 하나님의 심정과 더불어 통곡하고,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하시는 분입니다.
He weeps together with God’s heart and is deeply concerned with bringing Satan to his knees.
(232-225, 1992.7.7)


누구의 하나님 만들 거예요?
Whose God are you going to make Him?

미국 하나님 만들 거예요,
Are you going to make Him America’s God?

대한민국 하나님 만들 거예요,
Will you make Him the God of Korea?

내 하나님 만들 거예요?
Will you make Him your God?

어떤 거예요? 욕심들은 많구만.
Which? You are so greedy!

내 하나님을 만들려면 민족 이상 하나님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If you want to make Him your God, you have to work for God more than for your own people.

하나님이 문총재를 좋아한다면 문총재 이상 하면 하나님이 틀림없이 문총재 이상 여러분을 좋아하실 것입니다.
If God loves Rev. Moon, and if you can make more effort than Rev. Moon, God will surely love you more than He loves me.

그건 틀림없는 공식이 아닙니까?
Isn’t that an infallible formula?

거기엔 이의가 없습니다.
There are no objections to this.

나는 나보다 하나님을 더 위로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더 봉사하고 공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I want to see people who have a greater capacity than I do to comfort God, serve God’s will, and offer distinguished service to God.

만약 나보다 못한 사람을 원한다면 그건 독재자입니다.
If I wanted people with abilities inferior to my own,
I would be a dictator. (184-224, 1989.1.1)


마라톤 선수가 스타트 라인에서 80퍼센트 와 가지고 백 미터, 천 미터 앞섰으면 뭘 해요?
If a marathon runner has completed 80 percent of the race from the starting line, takes the lead by 100 or 1,000 meters, and falls down at that point, that is the end of it.

거기서 넘어지면 그만입니다. 마라톤 챔피언이 뛰게 되면 관중들이 ‘야, 천천히 뛰어!’ 그러겠어요?
When a marathon champion runs, do the spectators say “Hey, slow down!”?

‘빨리 뛰어. 빨리!’ 쓰러질 때까지 그럽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록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They say “Run fast!” until he drops. It is the same for me. I have to set the record.

레버런 문이 최고의 기록을 지녀야 하나님이 최고의 상을 줄 때 떳떳할 것입니다.
Only when I hold the record can I receive God’s highest award with a clear conscience.

그때까지 미는 것입니다.
I have to push myself until then. (230-186, 1992.5.3)


출발이 잘못됐습니다.
Something went wrong at the starting point.

기가 막힌 것입니다.
It was as dreadful as saying,

‘출생이 잘못되다니!
“Something went wrong at my birth!

아이고, 내가 자라나서 보니까
Oh dear, now that I have grown up,

양자도 거지떼 중에서,
I see that I am a son adopted from beggars;

고아원에서 거지새끼를 갖다가 길렀다’ 이겁니다.
I was the child of a beggar, brought from an orphanage.

이건 거지새끼보다 더 합니다.
” This is even worse than being the child of a beggar.

어릴 때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When you were young, you thought your parents were your real parents,

자라고 보니 내가 거지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but later on you realized that you were the son of a beggar.

거지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될 때 그 집에서 어떻게 돼요?
What happens to your household when people find out that you are of such lowly birth?

뒤집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Your household would surely be turned upside down,

통곡을 하고 뒤집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and people would weep bitterly.

길러 준 어머니 아버지를 자기 친어머니 친아버지로 알고 있었는데, 고아원에서 자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기가 찹니까?
How shocked you would be to find out that you were raised in an orphanage when you thought that the mother and father who raised you were your real parents!

우리 인간세계에서도 이렇게 기가 찬 일인데,
This is shocking even in the secular world.

하나님은 그것보다 더한 것입니다.
It would be an even greater shock for God

하나님의 왕권, 하늘나라의 왕궁의 황태자가 똥개새끼와 붙어 가지고 이렇게 되다니! 지옥의 왕이 되다니!
to see His crown princes who were to inherit His kingship and the heavenly palace walking around together with such people and becoming kings of hell. (216-107, 1991.3.9)


문총재와 통일교회의 부부 이념은 하나님의 핏줄을 이어받고 태어난 아들딸로서 천년만년 영원한 그 부모를 모시고, 영원히 내 아들 내 딸이라고 찬양할 수 있는 아들의 자격, 딸의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Rev. Moon’s concept and the Unification Church’s concept of husband and wife means attending the eternal Parent for a thousand or ten thousand years as a son and daughter born from God’s lineage and attaining the qualification as a son and daughter whom God can eternally praise as His own.

그 자리를 통과해야 하나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타락의 상처를 풀 수 있다는 것입니다.
Only by going through this position can you heal the wounds that resulted from the Fall and that remain in God’s heart.

해야 그 한마디에 하나님이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When you grasp God and say, “Father, how much You have toiled!”

그렇게 하나님을 붙들고 ‘아버지, 얼마나 수고했습니까?’
He will weep upon hearing your words.

복장이 터지는 통곡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He will explode into tears saying,

‘고맙구나, 내가 수천 년 역사를 이런 놀음했다.’하는 것입니다.
“Thank you; I’ve been doing this through the thousands of years of history.

인류 창조역사가 몇천만 년 됩니다.
” Tens of tens of millions of years have passed since the creation of humankind.

6천 년이 아닙니다. 그건 성경에서 문화사를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고,
It is not just six thousand years as the Bible indicates based on the history of cultures recorded in its pages.

구원섭리를 착수하기 위한 뜻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몇천만 년 됐습니다.
Actually it has been tens of millions of years since God decided to begin the providence of salvation.
(232-138, 1992.7.3)


자기 욕심 중심삼고 통일교회 이용하겠다는 사람, 별의별 짓 다 한 사람을 역사에서 내가 다 보면서도, 다 알면서도 속아 줬습니다.
In the past, I saw right through those people who came to the Unification Church with the motivation to use it for their own purposes; those people did all sorts of things.

그거 왜 속아 주느냐?
I knew who they were, yet I let them deceive me.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렇게 속아 나왔기 때문입니다.
Why did I do so? It is because God has been doing so to this day.

배신하고 돌아서는 모습을 볼 때
When people betrayed me and turned their backs,

기가 차 ‘저놈의 자식 벼락을 쳐 가지고 모가지를…. 일본도가 있으면
한번에 모가지를 쳐 버리고 싶다.’하는 분통하고 억울한 마음이 폭발되지만,
I could have exploded in indignation and resentment saying, “Those reprobates should be struck by lightning.”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하늘의 마음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그러지 못한 것입니다.
Yet when I thought about the heart of God who longs for their return, I could not do that.

불쌍한 하나님을 붙들고 용서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나오다 보니,
Each time I grasped that suffering heart of God,

그럴 때마다 마디가 생겨요.
and had the heart to forgive, a new segment,

알겠어요? 통일교회의 한 마디가 생깁니다. 참대에 마디가 있는 것처럼 마디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like that of a bamboo shoot, was created. Do you understand? A segment of the Unification Church was made.

그래서 가정적 매듭, 종족적 매듭, 민족적 매듭을 지어 나가는 것입니다.
That is how we are making family segments, tribal segments and national segments. (197-312, 1990.1.20)


역사적 스승이 살던 고통, 하나님의 역사적 고통을 흘려보내서는 안됩니다.
You should not let this historic teacher’s anguish and God’s historical pain flow by unnoticed.

내 마음 깊은 사랑을 고이 담고 저나라에서 만나거든 목을 안고, ‘당신이 슬펐던 사정을 다 알고 나도 그 도수를 맞춰 살려고 했지만 미치지 못했습니다.
You should gently retain love in the deepest part of your heart. When you meet God in the other world, you should embrace Him and shed tears, saying, “I knew of Your grief and I tried to align myself accordingly, but I could not.

이것을 용서하십시오.’
Please forgive me.

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통곡하는 마음이 앞서게 될 때는, 하나님을 붙들고 통곡하더라도 하나님이 같이 울며 붙들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If that kind of heart leads you, even if you weep while grasping God, He will weep together with you and embrace you.

그런 날이 없으면 해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I believe that liberation is not possible without that kind of day.

아내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해도 그 자리에 못미칠 것이고,
However great a wife’s love may be,

부모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해도 그 자리에 못 미치는 것입니다.
it cannot reach such a level; and however great a parent’s love may be, it cannot reach that level.

그걸 알기 때문에 해방하기 위해서 곁눈을 팔 수 없고 곁길을 더듬을 수 없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Since I know these things, in order to bring about liberation I had no time to take my eyes off that task or to go off on a tangent.(184-246, 1989.1.1)


다시 만날 때까지 불철주야, 밥이 먹고 싶거든 선생님을 생각하고, 밥을 안 먹고라도 뜻을 위해 선생님이 하는 일을 해야 되고, 잠이 오거든 잠자지 않는 선생님을 생각하고 뜻을 위해 싸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Until we meet again, you must think of me day and night; think of me when you get hungry. Even if you do not eat, do the things I do for God’s will. When you get drowsy, persevere for God’s will, thinking about me as I go on without sleep.

욕을 먹으면서도 변명하지 않고, 참고 나가는 스승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You have to think about your teacher who endures without vindicating himself in the face of slander.

그 이상의 마음의 뼈를 가지고 내일의 승리욕을 가지고 자연 굴복하는 원수의 무리를 보기 위해 스스로의 실적을 갖고 나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Being even more upright in your heart, you should be thirsty for tomorrow’s victory and go forth with the intention of gaining results and seeing your enemies surrender to you naturally.

그러한 노력을 해야만 여러분이 살 길이 있는 것이고, 이 민족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Only through these efforts can you and this people find the path of life. (82-48, 1975.12.30)


어떤 때에는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Once I received word that a member had been sentenced to death.

그럴 때에 통일교회 교주된 이 사람이 어떻게 눈물도 없이 밤을 새울 수 있었겠습니까?
How could I, the founder of the Unification Church, spend the night without tears after hearing this?

불쌍도 하지. 나라는 사람을 몰랐더라면 그렇게는 안 되었을 텐데…. 국경을 넘고 또 넘어 한번도 만나보지도 못한 스승을 따르다가 동녘의 한국을 향하여 ‘나는 갑니다.’하고 축수를 드리며 최후에 길을 가는 그들을 붙들어 주지 못하고 살려 주지 못한 심정을 여러분은 아시겠습니까?
How much pity I felt! If he had not known me, this would surely not have happened. As he walked the final path while facing east toward Korea and said, “I will go now,” and wished me a long life, do you know how my heart felt to be unable to hold onto and save such a person who followed beyond his nation’s borders the teacher he had never met?

악마 앞에 수난을 당하고 고통을 받고 포로되어 있는 그를 불쌍히 여기는
하늘의 마음을 알면서도 밤이나 낮이나 전진을 해야 한다고 내몰았던 것입니다.
Knowing the heart of heaven that pitied those who were held captive, in pain and suffering under the tribulations of the devil, day and night I had to drive people like him to march forward. (201-152, 1990.3.30)


내가 통일교회 교주 되겠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I never thought, even in my dreams, of becoming the founder of the Unification Church.

지금도 그렇습니다.
Even now it is the same.

내가 교주라는 관념을 갖지 않습니다. 평민입니다.
I do not have the concept of being the founder of a religion. I am just an ordinary man.

오늘도 양복을 안 입고 넥타이도 안 맸습니다.
Even today I did not wear a suit or necktie.

하나라도 부족한 단장을 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I am only comfortable in more minimal attire.

왜? 통일교회 식구들은 전세계에 퍼져서 이 시간에도 비오는 거리의 처마끝에서 젖은 옷을 입고 스승을 그리면서 선생님 만수무강하라고 경배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Why? Because I know that even at this hour, throughout the world members of the Unification Church with their clothes drenched in rain from a gutter are longing for me, wishing me a long life and offering bows.

복을 빌고 있는 자리를 유린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I cannot trample on situations where people are praying for me to receive blessing.

그래서 눈만 뜨면 잠자지 못하고 이렇게 사는 죄인 같은 교주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Thus, when I open my eyes, I cannot sleep. As the founder of a religion, I feel like a sinner.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이 문총재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That is why the Unification Church members cannot ignore me. (197-162, 199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