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G. Book 1. Chapter 4 -2 : God’s Grief and Shock at Losing His Son and Daughter – 아들딸 잃은 충격, 슬픔의하나님

① 영원한 독자를 잃은 하나님
2.1. God lost His eternal and only son

순수한 본질적인 사랑을 지닌 하나님 앞에 이상적 대상으로 그리던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여 떨어져 나갔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겠어요?
How sorrowful God was when Adam and Eve committed the Fall and sank away from Him! They were to have been the ideal partners for God, who embodies the pure essence of love.

지극히 지극히 비통했을 것입니다. 어떤 인간보다도 지극히 슬펐을 것입니다.
God’s sorrow exceeded that of any person. He grieved so very deeply.

그 내용이 깊고 가치있는 내용일수록 비참 중의 비참이다 이겁니다.
The deeper and greater the value of what was lost, the deeper the sorrow.

그런 하나님이 잃어버린 자식들을 다시 찾기 위해 복귀의 길을 더듬어 나서는 것입니다.
This is the situation of God, who has pursued the way of restoration for His lost children. (127-18, 1983.5.1)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그렇게 믿고 있는데도 자식이 배반할 때,
When parents believe in their beloved children but are betrayed by them,

그 믿음에 비례해서 부모가 받는 충격과 고충,
there is no describing the shock, distress,

그리고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and misery those parents experience based on that trust.

또한 생명을 걸고 서로 사랑했던 사람이 배반하고 배척하여 불신할 때도 역시 말할 수 없이 비참합니다.
When people betray, reject and mistrust those who have loved them with their lives, it causes unspeakable misery.

그러한 자리에서 몸부림치며 겪는 고통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You cannot understand unless you experience that struggle and suffering yourself.

말만 가지고는 알 수 없습니다.
It cannot be understood merely by words.

이것은 세상일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This is evident in the affairs of the world.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되어 비참해졌느냐?
Then how did God become as miserable as He is?

하나님은 막연한 하나님이 아닌 구체적인 하나님입니다.
God is not a nebulous God but a tangible God.

우리 인간과는 최고의 관계를 가진 하나님입니다.
Human beings should enjoy the highest relationship with God.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있다면, 인간과 더불어 기쁨으로 출발해서 끝이 없는 영원을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출발의 기점을 보는 것입니다.
God’s joy was to begin by finding a starting point from which He could begin a journey in happiness with human beings, heading toward infinity and eternity.

그런데 그 출발의 기점을 인간으로 인해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아담과 해와의 타락입니다.
But God lost the basis upon which to begin, due to the Fall.
(20-205, 1968.6.9)


세상에서도 부모가 환갑이 넘어 낳은 만득자(晩得子)인 7대 독자(七代獨子)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절망 중의 절망일 것입니다.
How desperate it is when an only son born into a lineage of seven generations of only sons dies, especially if this son were born when his parents were advanced in age!

젊으면 또 낳을 수 있지만
If the parents were young they could have more children.

만득자로 태어난 7대 독자가 죽는다면
However, if an only son born into a lineage of seven generations of only sons dies,

7대권을 계승하려던 조상들의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how anxious will his ancestors be for the lineage to continue beyond the seventh generation?

조상들은 자기의 후손, 자기의 핏줄을 통해 세계에 없는 만복을 받고
싶어합니다.
Through their descendants and lineage, ancestors want to receive numerous blessings transcending this world.

그러니 자식이 죽는다면 부모는 따라 죽고 싶을 것입니다.
If their children die before they do, parents themselves feel like dying.

그런데 아담은 7대 독자가 아니라 영원한 독자(獨子)입니다.
Adam’s position was like that of the only son – the eternal, only begotten son, not merely the only son after seven generations.

하나밖에 없는 아담을 가정을 이루게 하여 창조의 대업을 이룬 자리에 세우려 하였는데, 그 아담이 죽었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Can you imagine how profoundly God’s heart was broken at the death of Adam, who was to establish an everlasting family and accomplish God’s great endeavor of Creation?

이렇게 일이 틀어졌을 때 어떠했겠습니까?
How would He feel that everything had gone wrong in the way it did?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6천년 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십니다.
Even after six thousand years, God has not recovered from the shock of Adam and Eve’s Fall. (20-210, 1968.6.9)


원래 창조원칙을 보면,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Creation,

사랑 일체 이상권 내에 나가게 되면 영원한 소유주가,
when God advances into the ideal realm of oneness in love,

사랑을 중심삼은 주체자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He is to be the central eternal Owner and Subject Being of love.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중심이 되어야 했는데 사탄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However, Satan took His place as the center.

천지(天地)가 지천(地天)이 되고 전부 거꾸로 된 것입니다.
Therefore, heaven and earth became inverted, turned upside down.

하나님 자신이 참된 이상으로 바라던 사랑이상,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된, 한 몸이 된 것은 가를 수 없어야 할 것인데,
Nothing should have interrupted the oneness based on God’s true love, His ideal of love.

그 핏줄도 하나님의 직계 자녀가 되어야 할 것인데
Humanity’s lineage should have originated from God,

그것이 틀어짐으로 말미암아 반대가 됐다는 것입니다.
but because it deviated, it went the wrong way.
(206-236, 1990.10.14)


인간의 비참상을 매일매일 시간시간 바라보는 그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겠느냐?
Can you imagine how much it breaks God’s heart to observe human misery every hour of every day?

내 아들이 그렇게 병신이 됐다 할 때, 왕자 왕녀의 영광을 찬양해야 할 존재가 똥구덩이가 돼 가지고 지옥으로 거꾸로 꽂혀 버렸다 할 때,
What happened to God’s dignity when His son and daughter, whom He intended to glorify as prince and princess, became cripples, fell into a dung pit, and were stuck upside down in hell?

전지전능하다는 하나님의 위신이 뭐가 돼요?
Where can we find the authority and confidence of the all-knowing and omnipresent God?

절대적인 하나님의 위신이 뭐가 돼요? 그 얼굴을 들 수 있겠어요?
What became of the absolute God’s dignity? Can He show His face? (218-240, 1991.8.19)


아들이 희생되면 아버지가 아들을 죽으라고 내버려 두던가요?
Can a father turn a blind eye to his dying son?

이런 관점에서 사랑의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인 우리를 죽을 자리에 내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From this point of view, God as a loving Father cannot abandon us, His object of love, simply to die.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면 이상적 세계를 만들어서 부활시켜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If He is all-knowing and all-powerful, God should make an ideal world and revive His children.

부모의 사랑을 두고 볼 때 그것은 가능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This is more than possible when considering the nature of parental love.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는 자리에 계실 것이기 때문에,
If God exists He would surely be capable of this.

우리를 그러한 이상적인 부활권으로 옮겨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Thus, we can conclude that God should move us to the realm in which we can be resurrected to the ideal.

하나님이 죽을 수 있는 곳, 비참한 곳에 우리 인간을 살도록 둔 것이 아니라,
God did not abandon us to misery and death

우리 인간을 고차원의 세계로 데려가기 위한 하나의 관문으로 그런 곳을 두었다면 야,
but placed us before the gateway into a world of a higher dimension.

그거 멋진 일이다 이겁니다.
How wonderful that is! (67-219, 1973.6.21)


창조주의 위신까지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위신까지도,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의 실존성까지도 잊어버리고, 그런 심정으로 아담과 해와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Putting aside His dignity as the all-knowing, almighty and omnipresent Creator, God’s heart longed to love Adam and Eve even to the point of forgetting His own existence.

그러한 입장에서 타락한 아담과 해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느냐,
Can you imagine how He felt as He looked upon fallen Adam and Eve from such a position?

이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This is something you need to understand. (7-291, 1959.10.11)


오늘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닙니다.
Human beings today are not God’s children.

하나님은 아무리 울어도 본체만체 합니다.
No matter how much God weeps, we pretend not to see His tears.

아무리 슬퍼해도 본체만체 하는 것입니다.
No matter how sorrowful He is, we pretend not to see.

이것은 인간이 사탄의 혈육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This is because the human race springs from the flesh and blood of Satan.

오히려 하나님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They even celebrate to see God in sorrow,

망하는 것을 보면 좋아하며 웃는다는 것입니다.
and they ridicule His ruin.

하나님이 이런 인간을 놓고 지도하고 개척의 방향을 가르쳐 주려니 얼마나 수고로우실 것이냐?
How much trouble God takes to guide such people and teach them about the path they must forge!

하나님에게 위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섭리역사를 붙들고 나오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God could not guide providential history if He did not have a caring and sympathetic heart. (42-257, 1971.3.21)


2.2. God has been miserable throughout history
하나님의 역사적 비참상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계신다면 얼마나 분개하겠는가?
How enraged God is when He looks down on us on earth!

이 만민은 자신의 혈통적 후손이어야 하는데,
All human beings should have had His lineage,

악마가 비참한 경지에 밀어 넣고서 당신의 후손은 이렇게 처참한 입장에 처해 있다.’고 하며 하나님을 대해 조소(嘲笑)하고 있습니다.
but Satan pushes them into a miserable state and scornfully jeers at God saying, “Your descendants are miserable.” When Satan asks God,

사탄은 또 전지전능 하나님인데 이 환경을 어떻게 수습하겠습니까?’
“How will You, with all Your omniscience and omnipotence, redeem this difficult situation?”

라고 할 때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God can only be silent.

들으면서도 듣지 못한 척하고,
He has to pretend to be deaf though He can hear,

냄새를 맡으면서도 맡지 않는 척하고,
pretend not to smell though He can smell,

느끼면서도 느끼지 않은 척해야 하는
and pretend not to feel though He can feel.

하나님의 역사적 비참상을 여러분 생각한 적이 있어요?
Have you ever thought about the misery of God throughout history?
(183-19, 1988.10.29)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믿듯이, 전지전능하고 영광의 보좌에 앉은 하나님이라면,
If God were sitting on a glorious throne as the all-knowing and almighty God, as traditional Christianity believes today,

자기 아들딸이 죽어가는데 그 보좌 위에서 야, 이리 올라오너라. 내가 자리를 뜰 수 없다!’
and if He were to see His children dying, would He remain there and say, “Come up here, for I cannot leave my seat”?

그러겠어요, 보좌고 뭐고 집어던지고 내려가겠어요?
Or, would He rather abandon His throne and come down?

어떤 거예요? 그냥 있겠어요, 내려가겠어요?
What do you think? Will He just stay there or will He come down?

왕관을 벗고 뛰어 내려가겠어요?
Is He going to cast away His crown and jump down from His throne?

어떻게 하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Think about it. (123-159, 1983.1.1)


하나님이 소리를 질러 울부짖으면서 내 아들아! 내 딸아!’ 하고 부르시기를
몇만 년, 몇십만 년, 몇백만 년을 해 나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You should know that for tens of thousands of years, even millions of years, God has cried out for us, “My son and my daughter!”

그런 하나님 앞에 아버지이-!’ 하고 목이 쉬도록 불러 봤어요?
Have you ever ardently called out to God, “Father!”

혀가 말리고, 숨이 막히고, 눈이 감겨 뜰 수 없을 만큼 간절히 아버지를 불러 봤어요?
until your throat becomes hoarse and your tongue dry, until you cannot breathe and your eyes cannot open?

생명의 주체되는 그 가치를 품기 위해서 얼마나 뒤넘이쳤느냐 이겁니다.
How earnestly have you struggled to embrace that standard, which is that of the Subject of life?

그 뒤넘이친 비례의 기준으로 여러분의 인격의 기준이 측량되는 것입니다.
Your character is measured in proportion to your efforts to do this. (184-219, 1989.1.1)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그분을 대할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We have nothing that would enable us to relate with that all-knowing and almighty being.

더구나 타락한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의 눈은 속된 것입니다.
As we were born as fallen people, our eyes are defiled.

우리의 모든 오관 감정은 전부 속된 것입니다.
All our five sensory organs and emotions belong to the secular realm.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We have nothing that enables us to relate with God.

하나도 없지만, 공의의 법을 가지고는 상대할 수 있는 내용이 절대 없지만,
Although according to the law of heavenly righteousness we have nothing,

사랑의 법을 가지고는 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there is one single path, the law of love, through which we can relate to God.

그러므로 여러분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연한이 깊어갈수록 사랑의 철학을 가지고 살고, 사랑의 철학을 가지고 모든 것을 분별하면서 사는 신앙인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As the years go by you should become well grounded in the philosophy of love, thus becoming a person of faith leading a life of discernment in all matters.

그런 사람은 10년이 지나고 20년, 30년의 생을 거치면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동적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As ten, twenty or thirty years go by, those who do so will automatically become the people God needs. (149-37, 1986.11.1)


하나님이 수천 년 동안 복귀섭리를 하시면서 수난길을 거쳐온 것은 하나님이 마음이 좋아서 참고 나온 것일까요?
Was it due to God’s kindly nature that He endured a path of suffering through the millennia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류 역사 수만 년 동안 구원섭리를 해 나오면서도 아직까지 지치지 않고 계속하는 그 원인이 어디 있느냐?
How did God continue His providence of salvation for tens of thousands of years without becoming exhausted?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렇다?
It is not because He is all-knowing and almighty.

아닙니다. 사랑의 길을 찾아 나오기 때문에, 사랑의 아들딸을 찾아 나오기 때문입니다.
It is because He has been walking the path of love for the sake of His beloved sons and daughters.

그렇기 때문에 천년을 하루와 같이 수난길을 넘고 넘을 수 있는 위대한 힘은 사랑이었느니라!
Therefore, it is the power of love that has enabled God to triumph over a path of tribulation, feeling as if a thousand years were just one day.

그거 맞아요? 맞습니다.
Is that correct? It is. (109-281, 1980.11.2)


하나님이 불쌍해요, 불쌍하지 않아요?
Is God deserving of pity or not?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불쌍하시냐고 하겠지만
Many people doubt that the all-knowing and almighty God needs to be pitied.

아무리 전지전능하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어버린 충격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However all-knowing and almighty He may be, nothing can alleviate the shock of having lost His beloved children.

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면,
If there had been a way for God to find relief from that shock by Himself,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 년의 역사노정을 거치시면서 고생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He would not have had to suffer through a six-thousand-year course of history.
(35-88, 1970.10.4)


인간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야, 이놈아,
Even though human beings sinned, God does not just say, “Hey, you!

왜 죄를 지었느냐?’ 라고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Why did you sin?”

죄지은 사정을 잘 아시는 하나님입니다.
He knows the state of people who sin.

당신의 사정은 생각지 않고, 인간의 사정을 알아주려는 하나님입니다.
He cares about humanity rather than Himself.

슬픈 자에게는 슬픈 사정을 갖고 찾아 오셨고,
He comes in sorrow to sorrowful people,

고통받는 자에게는 고통의 사정을 갖고 찾아 오셨고,
in suffering to suffering people,

억울하고 분통한 자에게는 억울하고 분통한 사정을 갖고 찾아 오셨습니다.
and in sympathy with those feeling victimized and angry.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느 정도 사정을 통해 보았습니까?
How much have you empathized with God’s situation?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환경 가운데도 그렇게 찾아 오셨습니다.
God comes into our sphere of life in these ways.

그 뿐만 아니라 심정을 갖고 찾아 오셨습니다.
Moreover, He comes speaking from His heart,

너는 나를 배반해도
“Although you betrayed me,

나는 네 아버지라는 마음이 있기에 6천 년이란 세월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I have searched for you for six thousand years with the heart of your Father.” (9-231, 1960.5.29)


통일교회는 뭐냐?
What is the Unification Church?

하나님의 심정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해방하자 하고 있습니다.
It teaches God’s heart and seeks to liberate God.

기성교회는 그런 말 한다고 우리보고 이단이라고 합니다.
Christian churches call us heretics because we say these things.

여러분, 잘난 대통령이라도 자식이 죽었다면 그 죽은 자식 앞에 대통령의 권위를 가지고 아들이 죽었으나 대통령은 눈물 흘릴 수 없다.’
If the son of a great president of a nation were to die, would the president maintain his dignity and say, “Even though my son has died, as president I cannot shed tears”?

그래요? 구석에 들어가서
It would be fine if he went to a corner,

코를 박고 통곡하고 나와서 쓱 쓸고 그러면 통하지만,
wept for his son and came back composed;

그러지 않으면 죽은 아들 영이 애비 이거…
but if he does not cry for his son, the spirit of his dead son would say,

애비가 아니었구만.’할 것입니다.
“My father was not really my father after all.”

죽은 영이 살아 있다면
If the spirit of his son were active,

그 애비를 도와주겠어요, 반대하겠어요?
would he help his father or oppose him?

세계 대통령이 됐든 누가 됐든
Whatever your position, even if you are the world’s president,

자기가 사랑하는 자식이 죽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고 다 그래야 됩니다.
you would surely shed tears and weep loudly when your child dies.
(196-18, 1989.12.24)


인간의 창조본연의 특권적인 가치를 상실해 버리고 타락의 구덩이가 되어 허덕이는 무가치한 인생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내정적 심정이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How miserable is God’s inner heart as He watches His children lose their original, privileged value of creation, become like fallen maggots and struggle in a life without value!

저놈의 자식들이 본래는 내 사랑과 내 생명과 내 혈통을 통해서 직계 자식이 되어 하늘나라의 영광을 차지할 것인데, 패자의 탈을 쓰고 신음과 고통과 탄식과 절망 속에서 허덕이다 생명을 끊는 자리에 있으니 그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How mortified He is to see people groaning in lamentation, suffering and despair, ending up being defeated instead of becoming God’s direct children through His love, life and lineage and attaining the glory of the heavenly kingdom!

그런 하나님은 슬픈 하나님인 것을 몰랐습니다.
Nobody knew God was so sorrowful.

그렇기 때문에 문총재는 하나님을 알고 나서 몇날 몇 주일을 통곡했습니다.
That is why I wept profusely for many days and weeks upon coming to know this God.

통일교회의 출발에는 그런 깊은 사연이 있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You should be aware that the Unification Church began amid such profound circumstances. (211-207, 1990.12.30)


하나님의 마음 속에 고통이 있는 줄 아무도 모릅니다.
No one has known how God has suffered in His heart.

역사상에 나타나시고 지금 여기에 선생님을 통해 나타나셔서 그 깊은 사명을 밝혀 냈으니까 알 수 있지,
Now, through God’s appearances in history through the revelations I received in my profound mission – and which I have shared with you – you do know.

그렇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입니다.
Without this, you would never have known.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This is a remarkable fact.

예수님도 그것을 몰랐고 알았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Even Jesus did not fully know this, and even if he had, he could not have spoken about what was in his heart.

또한 종교 지도자 중 그 누구도 그와 같이 숨겨진 우주의 비밀을 알지 못했습니다.
No religious leader has known the hidden secrets of the universe.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앞에 선생님이 나타나서 우주의 비밀이 밝혀진 것입니다.
I have come so that the secrets of the universe could be revealed in the course of human history, before the world, for the first time. (215-171, 199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