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G. Book 1. Chapter 3-3 : Jesus’ View of God Based on the Parent-Child Relationship – 예수님이 부자관계 신관 천명

① 신약시대는 양자의 시대
3.1. The New Testament Age is the age of the adopted son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야곱이 승리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서 종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When Jacob triumphed and earned the name Israel, he did not triumph as God’s son but as God’s servant.

이래서 종의 종으로부터 종의 위치로 복귀하고,
This way, people were restored from the position of the servant of servants to the servant’s position,

종의 위치로부터 신약시대에는 양자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and then in the New Testament Age from the servant’s position to the position of the adopted child.

로마서 8장 23절을 보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Romans 8:23 says: “but we ourselves, who have the first fruits of the Spirit,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groan inwardly as we wait for adoption as sons, the redemption of our bodies.”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양자 되기를 고대한다고 했습니다.
They said that they were eagerly waiting to be adopted sons who could call God “Abba, Father.”

신약시대에 아무리 잘 모시고 잘 믿던 신앙자들도,
Even the most ardent people of faith in the New Testament Age,

목사, 장로, 학박사를
whether they were ministers, elders, or people holding doctorates,

물론하고 전부 다 하나님 앞에서는 양자입니다.
and so forth, are all adopted children before God.

솔직한 얘기입니다. 양자가 되자 그겁니다. 양자라는 것은 혈통이 다르다릅니다.
I am speaking to you frankly. They want to be adopted children. Adopted children have a different lineage. (154-257, 1964.10.3)


예수가 무엇으로 한 단계 올라가느냐?
What step was Jesus elevated to?

이 땅 위에 인간이 타락함하여 인류의 조상이 없어졌기 때문에
After humankind fell on earth, the ancestors disappeared.

조상의 자리로 올라가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은 양자의 자리에서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 앞에 상속권을 대할 수 있는 아들의 명분을 갖게 됩니다.
Therefore, when Jesus was elevated to the ancestor’s position, the Israelites could be engrafted as God’s adopted sons and receive the right of inheritance.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8장을 보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This is why Romans chapter eight says, “but we ourselves, who have the first fruits of the Spirit, groan inwardly as we wait for adoption as sons,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라고 되어 있고,
the redemption of our bodies,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 and also, “For you did not receive the spirit of bondage again to fear, but you received the Spirit of adoption by whom we cry out, ‘Abba, Father.’”

양자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They could only become adopted sons.

지금 기독교인들은 양자입니다.
Today’s Christians are adopted children.

양자는 핏줄이 다릅니다.
Adopted children have a different lineage.
(154-337, 1964.10.5)


양자는 직계의 아들과 다른 것입니다.
An adopted son is different from the son of direct lineage.

양자는 만약 직계 아들이 오게 되면,
Whenever the son of direct lineage comes,

밤이나 낮이나 어느때나 서슴지 않고 자기의 모든 전체의 소유물을 직계아들 에게 갖다줄 수 있어야 합니다.
the adopted son should be able to give him everything he possesses without hesitation, whether it is night or day.

그 소유물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양자의 입장에 서 가지고도, 양자로 택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The possessions do not belong to him. Thus, even though he stands as an adopted son or was chosen as an adopted son,

직계의 아들이 태어나게 되었을 때 아이구자식이 왜 태어났노?’ 이러면 안됩니다.
when the son of direct lineage is born, he should not say, “Why was this wretch born?”

이것은 사탄의 근성입니다.
This is satanic nature.

하나님이 아담을 지을 때 천사장이 그 아담을 보고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When God created Adam, the archangel should have been delighted to see Adam.

좋아해야 할 텐데 왜 태어났노?’이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So, he cannot say, “Why was he born?”

양자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양자는 아들을 보호해야 되는 것입니다.
The adopted son should know that he must protect the son.

직계 아들이 복중에 있을 때에도 아이구 안 태어났으면 좋겠는데…’해서는 안 됩니다.
When the son of direct lineage is in the womb, the adopted son should not say, “Oh, I wish he were not going to be born.”
(49-135, 1971.10.9)


양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What must you do to be an adopted child?

종보다 나아야 됩니다. 하나님편의 종보다 나아야 되고, 사탄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You should be better than the servants on God’s side and better than Satan.

왜 그래야 되느냐?
Why do you have to be so?

사탄은 본래 천사장이었는데 그 천사장은 종이었기 때문에 그 종보다도 낫지 않은 사람은 양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건 원리적입니다.
Satan was originally an archangel, a servant, and only one who is better than the servant can be an adopted child. This is according to the Principle.

그러면 그 양자는 어떤 양자가 되어야 되느냐?
Then what kind of adopted child do you have to be?

내가 하나님의 상속을 받더라도 그것은 내것이 아니라 당신의 본래의 아들딸 앞에 돌려줘야 할 상속이라는 사상을 가진 양자가 되어야 합니다.
You should be an adopted child whose philosophy dictates that although you have received God’s inheritance, it is not yours to keep but to return to His original sons and daughters.

그런 양자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This is how adopted children should be raised.

양자라는 것은 앞으로 올 아들딸을 위해 자기가 죽더라도 생명을 다하고,
The adopted child should offer his life for the sake of the coming sons and daughters.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직계의 아들딸이 태어나기를 원하고
He should hope to see the birth of the sons and daughters of direct lineage desired by God, although this may require sacrificing everything he has;

그를 위해 준비하는 마음을 언제나 지녀야 된다는 것입니다.
he should be preparing in heart for them.

양자의 이름을 세우지 않고는 아들과 상관할 수 없습니다.
Without gaining the qualifications of an adopted child, you have no relationship with the son.

천사장보다도 한 단계 높은 중간적인 존재로 출생한 것이 양자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염두에 두어야 되겠습니다. (89-203, 1976.11.22)
You should bear in mind that the one born as an intermediate being, one step above the archangel, is the adopted child.


양자라는 것은 혈통이 다른 것입니다.
An adopted child has a different lineage.

원래 신약의 출발에 있어 양자로 세워진것이 누구냐 하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Originally, the one designated to be an adopted child at the start of the New Testament was John the Baptist.

세례 요한은 천사장 대표였습니다.
John the Baptist represented the archangel.

하나님의 아들인 아담 앞에서 반대한 천사장이 아니라 아담을 끝까지 위할 수 있는 천사장편 땅 위의 대표자로 세운 것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He was designated as the representative on earth on the side of the archangel who could serve Adam to the end, rather than as the archangel who had opposed God’s son Adam.

그런데 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받들지 못하고,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함으로써 비운의 역사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But, a tragic history unfolded because John the Baptist failed to serve Jesus and become one with him. (48-92, 1971.9.5)


구약시대와 신약시대가 연결되는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You should know that the Old Testament Age and New Testament Age are connected through history.

구약을 믿고 나오는 사람들은 종으로서 양자의 혜택을 받기를 바라는데,
As servants, the believers of the Old Testament era wished to receive the benefits of being adopted children,

그것이 메시아가 오기를 바라는 이유입니다.
and this is why they waited for the coming of the Messiah.

즉 메시아로 말미암아 종의 서글픈 신세를 넘어 양자권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그들의 소망입니다.
In other words, their desire was to surmount the sorrowful circumstances of the servant and advance, through the Messiah, to the position of adopted child.

양자의 자리는 직계 아들딸이 없게 될 때,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인연이 성립되는 자리입니다.
The adopted child is entitled to receive the inheritance from the parents in the absence of a son or daughter of direct lineage.
So, God’s will,

그래서 종의 입장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뜻을 맞이할 수 있는 혜택을 받기를 바라면서 나오도록 한 것이 종의 구약시대를 지도해 나오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which oversaw the servant-level Old Testament Age, guided the people so that they could maintain the desire to transcend the servant’s position and attain the benefits of welcoming God’s will.

그러기에 그들이 종의 신세를 면하고 하나님의 상속을 받을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적인 한 때를 바라고 나온 것이며
This is why they kept longing for the privilege of leaving behind the lot of the servant and receiving God’s inheritance.

그것이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입니다.
This is the philosophy of God’s elect in Israel. (42-281, 1971.3.27)


만물에서부터 양자적 승리권을 거치고
You should be restored and rise up, beginning from all things, through the victorious realm of the adopted son,

아들의 승리권을 거쳐 부모의 자리까지 복귀해 올라가야 됩니다.
through the victorious realm of the son, to the parents’ position.

그래서 신약시대에는 아무리 잘 믿어도 하나님의 아들은 절대 못 됩니다.
But, no matter how devout you may be, in the New Testament Age you absolutely cannot be God’s son. (48-95, 1971.9.5)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제물시했습니다.
Looking at history, the Old Testament Age used all things of creation as sacrificial offerings.

만물을 희생시켰습니다.
They sacrificed the things of creation.

만물을 희생시킨 그 목적을 인간의 해방을 위해서,
The purpose of sacrificing all things was to liberate human beings

인간의 부활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and to help with the resurrection of humankind.

만물을 희생시켜 사람들을 찾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만물을 희생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다시 찾기 위해서입니다.
The things of creation were sacrificed in order to restore people,
to regain God’s children.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제물삼았고,
In the Old Testament Age, the things of creation were used as an offering,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피를 흘리면서 이 세계의 부활권을 향하여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and in the New Testament Age, God’s children shed their blood as they moved toward the realm of resurrection in this world.

그것이 기독교를 중심삼은 역사였습니다.
This has been the history centered on Christianity.

기독교 역사는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개인, 가정, 혹은 민족, 국가들이 지금까지 희생되면서 제물적 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In Christian history, Jesus and all individuals, families, peoples, and nations that followed Jesus have been sacrificed as offerings until the present. (166-276, 1987.6.14)


구약시대에는 모세를 시켜 능력의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In Old Testament times, God had Moses bear witness to God’s power.

능력의 하나님으로 믿지 않으면 벌을 내렸습니다.
The people who did not believe in Him as the God of power were punished.

그 다음에 예수 시대에는 자비의 하나님을 소개했습니다.
Next, the age of Jesus introduced the God of compassion.

병자를 고치고…. 예수가 병자를 안 고쳤으면 몰려서 죽지 않았습니다.
Sick people were cured… Had Jesus not cured the sick, he would not have been killed.

병나서 죽는 것은 다 세상의 조상들이 잘못해 그 죄값으로 가는 것입니다.
People die of sickness to pay the price for their ancestors’ sins.

그걸 왜 살려 놓는 거예요?
Then why did he bring them back to life?

통일교회 문선생이 병 고치는 일 했으면 수십만의 병자를 고쳤을 것입니다.
Rev. Moon of the Unification Church could have cured hundreds of thousands of patients if he had tried.

병을 안 고쳐도 우리 말씀 듣고 좋아하게 되면 문둥병도 나을 수 있습니다.
Even without someone curing their disease, lepers can be healed if they hear our words and delight in them.

별의별 병이 다 낫는다는 것입니다.
All kinds of diseases can be cured. (194-334, 1989.10.30)


3.2. The adopted child can call out “father”
양자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구약시대를 지나 신약의 새아침을 맞으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선언했고,
On leaving the Old Testament Age and welcoming the new morning of the New Testament Age, Jesus declared God as the Father and

타락인간들을 양자의 자리로 올려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지어 주셨습니다.
elevated fallen people to the position of adopted child in order to bring them into a parent-child relationship with God.

양자는 핏줄이 다릅니다.
Adopted children are of a different lineage,

그러나 오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접붙임을 받으므로써 아들의 명분을 갖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but through the coming of the Lord, they were engrafted and thus able to call God “Father,” with the title of son.

하나님과 부자관계의 수립은 예수님이 아니면 그 누구도 이룩할 수 없는 천비(天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You should know that the establishment of the parent-child relationship with God was a heavenly secret that could be accomplished by no one other than Jesus.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당시 구약의 관념에 젖은 제사장이나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참람한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When Jesus called God “Father,” the priests and Pharisees, who were immersed in the Old Testament concepts of the time, heard it as a presumptuous word blaspheming God.

그만큼 예수님의 아버지 신관(神觀)은 혁명적인 신관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You should know that Jesus’ view of God as the Father was that revolutionary.

예수님은 한 단계 높여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했습니다.
Jesus went a step higher and introduced God’s love.

구약시대에는 모세가 사랑의 하나님은 소개하지 못하고 권세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만을 소개했습니다.
In the Old Testament Age, Moses introduced only the God of authority, God of power, and God of judgment, without being able to introduce the God of love.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을 소개했습니다.
But, Jesus introduced love.

사랑의 하나님을 소개했고 사랑의 예수님을 소개했지만 당시의 인간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Although he introduced the God of love and his own loving self, the people of his era did not accept him. (35-276, 1970.10.25)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였으므로 하나님의 바른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시대입니다.
Since the Old Testament Age was the age of the servant, God could not reveal His real form.

하나님은 아버지요, 사랑의 존재입니다.
God is the Father and a being of love.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므로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입니다.
Since God is love itself, He is the Father of love who forgives all sins.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복수하던 구약시대의 율법은 사라지고
The Old Testament law of “an eye for an eye, a tooth for a tooth” disappeared.

예수님에 의해 원수를 사랑하고 형제의 허물을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시는 사랑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Through Jesus, God revealed His true loving form in which He loves His enemies and forgives a brother’s faults, not just seven times but even seventy times seven.

아버지가 어찌 자식의 허물을 용서해 주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How could a father not forgive his child’s faults?

하나님은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God is not someone you can see;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난 존재가 예수님입니다.
in Jesus, the invisible God appeared as the visible God.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에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거하시니
This is why Jesus proclaimed his oneness with God by saying in the Gospel of John,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나를 보았은즉 아버지를 보았거늘
Therefore, if you have seen me, you have seen the Father.

어찌하여 하나님을 보여 달라 하느냐?” 하고 하나님과 일체를 주장한 것입니다.
How can you say, ‘Show us the Father’?”

그래서 바울도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For I am sure that neither death, nor life, nor angels, nor principalities,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nor things present, nor things to come, nor powers,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nor height, nor depth,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nor anything else in all creation,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 – 39)”고 하셨습니다.
will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God in Christ Jesus our Lord.”
(Rom. 8:38-39).

예수님도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Jesus came for the sake of God’s love. (4-308, 1958.10.5)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받고
You should know that from Jesus’ baptism in the Jordan River,

하늘이 열린 때부터 승천하기까지는 3년이란 짧은 세월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when heaven opened, to his ascension was a short period of three years.

예수님이 부자지관계의 신관을 천명해 놓고
You should know that although Jesus brought out the view of God based on the parent-child relationship,

구체적인 내용은 다 말 못하고 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he departed without being able to explain the details.

유대교의 메시아로 와서 세계적 메시아 노정을 개척하다가 죽었다 이겁니다.
He came as the Messiah of Judaism and died while pioneering the worldwide messianic course.

그러면 유대교는 어떻게 되느냐?
Then, what happened to Judaism?

지금까지 유대교만을 위하는 하나님으로 모시는 그 하나님 가지고는 안 됩니다.
A God who had thus far been attended as one dealing only with Judaism would not be viable.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가르쳐 줘야 할 것이 뭐냐?
What did Jesus come to teach on this earth?

구약성경에서 가르쳐준 하나님을 그냥 그대로 가르쳐 줘서는 안 됩니다.
He was not to teach about God exactly as was taught in the Old Testament.

신약시대의 하나님으로 가르쳐 줘야 합니다.
He had to teach about the God of the New Testament Age.

국가적 차원의 시대를 넘어서 이제는 세계적 차원의 시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세계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위해 공들이는 터전을 닦아야 되겠다. 이렇게 가르쳐 줘야 할 것이 이스라엘의 국가적 메시아로 온 예수님의 사명이었다는 것입니다.
The mission of Jesus, who came as the national Messiah of Israel, was to teach by saying, “Now that we are going beyond the age of the national level to the age of the global level, we must lay the foundation of making strenuous effort for the world in order to absorb it.”

그래가지고 생애를 바쳐 세계적 메시아의 권위를 찾는 것이
In this way, he was to dedicate his entire life to gaining the authority and prestige of the world-level Messiah.

예수님의 생애에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This was what he had to accomplish during his life.
(105-213, 1979.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