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G. Book 1. Chapter 1-1 : Chapter one The Original Being of God – 하나님의 본체

1) 하나님은 무형의 주체시다
Section 1. God Is the Incorporeal Subject Partner

1.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
1.1. The incorporeal God

하나님은 어떠한 형체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God is without form.

크다고 하면 무한대요,
If we should conceive of Him as large, He is infinitely large,

작다고 하면 무한히 작은 분이십니다.
and if we should conceive of Him as small, He is infinitely small. (1970.10.13)


하나님은 과연 계시는가?
Does God really exist?

누가 꼬집어서 ‘아야’하고 소리치는 것보다도, 배가 고파 밥을 먹는 것보다 더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이 있느냐?
Can God be felt as more real than the pain that makes you say “ouch” when someone pinches you, or more real than the experience of eating when you are hungry?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This is the question.

진짜 하나님이 계시다고 할 때,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When we know that God truly exists, all problems will be solved. (89-72, 1976.7.11)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We have a mind.

마음은 보이지 않아 없는 것 같지만 있는 것입니다.
The mind is invisible and may not appear to exist; yet it exists.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where is mind?

머리에 있느냐, 심장 가운데에 있느냐?
Does it exist in the head,  or in the heart?

마음은 내 몸 어디에나 있습니다.
Mind exists throughout your body,

내 몸 가운데 없는 데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with not even one cell within your body where it is not present.

하나님도 이 세계가 하나님의 몸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The same is true for God. Because this world is like His body, He is present everywhere in the world.
(38-242, 1971.1.8)


하나님은 볼 수가 없습니다.
You cannot see God.

여러분, 힘이 보여요?
Can you see energy?

하나님은 에너지의 본체이기 때문에 영계에 가서도 볼 수 없습니다.
Since God is the original body of energy, you cannot see God even in the spirit world. (105-193, 1979.10.21)


지혜로운 하나님,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은 중앙에서 마음대로 거동할 수 있는 무형적인 존재로 계시면서 주관하는 것이 제일 편리하겠다고 생각하신 겁니다.
The wise, all-knowing, and omnipotent God thought that it was most convenient to rule as an incorporeal being who could move around freely in the midst of things.

하나님은 무형이니만큼
Since God has no form,

존재세계를 마음대로 뚫고 오더라도 조금도 지장이 없습니다.
He can pass through things at will without any problem.

여러분, 몸뚱이로 하나님이 와서 마음대로 지나가더라도 여러분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God may come to your body and pass through it, but you would not notice.

하나님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러분들의 몸뚱이를 마음대로 밟고 지나가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When you doze off, God may walk on your body as He pleases without you noticing.

그러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How convenient!

그러니까 하나님은 생각 끝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계시는 것이 제일 편리할 것이다 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됐다 하는 논리는 가당한 논리입니다.
So it is plausible to say that God chose to remain invisible because He thought that it would be most convenient. (138-167,1986.1.21)


우리는 공기가 통하는 것을 모릅니다.
We are normally unaware of the air around us.

공기가 통하고 있지만 그걸 못 느낍니다.
The air is there, but we do not feel it.

공기가 통하는 것도 못 느끼는데 하나님이 통하는 것을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If we unaware of the air circulating around us, how can we be aware of God?

하나님은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것이 최고의 편리한 방법입니다.
It is most convenient for God to remain invisible.

그러면서 이 큰 우주를 보자기로 싸고도 남을 수 있는,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At the same time, He has to be more than big enough to wrap around this huge universe.

무형의 하나님이지만
Although God is without form,

하나님의 마음은 이 우주보다 더 큰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He requires a mind that is bigger than this universe. (138-167,)


여러분! 사랑 가지고 있어요?
Do all of you here have love?

생명 가지고 있어요?
Do you have life?

여러분의 혈통을 이을 수 있는 정자나 난자 다 가지고 있지요?
You all have sperm or ova to continue your lineage, don’t you?

양심도 가지고 있습니까?
Do you also have a conscience?

그렇다면 사랑을 본 적이 있어요?
Then, have you ever seen love?

생명, 혈통, 양심을 봤어요?
Have you seen life, lineage or conscience?

그 존재의 현상은 알지만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Although you know they exist, you can neither touch nor see them.

오직 마음으로 느껴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You can know about them only by feeling them through your mind and heart.

같은 논리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
Likewise, when you are asked whether God exists,

또는 하나님을 봤느냐 못 봤느냐 물을 때,
or whether you have seen Him,

못 봤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you cannot say that you have not seen Him.
(275-13, 1995.10.30)


마음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면 마음이 압니다.
When God is in your heart, your heart knows it.

하나님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When God is in your heart,

바람벽도 뚫어볼 수 있고, 가만히 앉아 몇천 년 전에 죽은 성인들을 운행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you can break through the protective  walls and communicate with the saints who died thousands of years ago.

영원하신 하나님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You can do this when the eternal God comes into your heart.

영원을 시간으로는 포착할 수 없지만 영원 안에 시간이 있습니다.
You cannot capture eternity through time; time exists within eternity.

그러니 하나님은 안 보여도 마음은 압니다.
That is why even though we cannot see God, our hearts know Him. (41-285, 1971.2.17)


하나님은 어떻게 사랑하느냐 할 때 답변하기 곤란하지요?
How does God love? This is a difficult question to answer, isn’t it?

하나님은 무형의 신이기 때문에 어디든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Since God is without form, He can go anywhere –

아씨의 눈 속에도 들어가고, 심장 속에도 들어가고…. 어디든지 안 가는 데 없이 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inside a lady’s eyes, inside her heart… He can go everywhere. There is nowhere He cannot go.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서 사느냐?
Then, where does God live?

집이 어디냐?
Where is His home?

하나님이 사는 집은 우리 마음의 한복판입니다.
God’s home is in the middle of our heart.

남자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남성적 심정이 머무르고,
God’s masculine heart lives in the heart of man,

여자의 마음에는 여성적 심정이 들어가 산다는 것입니다. (128-317)
and God’s feminine heart lives in the heart of woman.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온 천하를 요리하시는 하나님이 여기 있다고 합시다.
Suppose that God, who is omnipotent, all-knowing, and controls all of heaven and earth, were here.

힘으로 말하자면 태백산도 날려 버리고 지구성도 구멍을 낼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인데,
With His power, He could blow away Mt. Taebek and put a hole through the earth.

그러한 하나님을 여러분의 눈으로 보면서 살라고 한다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Do you think you could survive watching such a God?

하나님이 안 보이길 잘했다는 것입니다.
So it is good that God is invisible.

보이면 여러분은 신경쇠약에 걸려서 한 시간도살지못할것입니다.
If He were visible, your nerves would tremble and you could not survive for even one hour.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So you should be grateful that God is invisible.

이건 웃을 얘기가 아닙니다.
This is not a laughing matter.

지금까지 한 얘기는 내가 그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심각하게 겪었던 경험담입니다.
What I have told you now comes from my own poignant experiences.

남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더듬어 나온 경력 보고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38-244, 1971.1.8)
It is an account from my own experiences, not those of others.


만일 이 세계에 공기가 한 되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What if God decided to remove all the air in the world, leaving only one gallon?

하나님이 짖궂은 분이라면 세계 통일은 문제없습니다.
It would be a naughty method, but if God did that, world unification would be no problem.

아마 5분 이내에 통일할 것입니다.
Perhaps He would be able to do it in five minutes.

하나님이 공기를 몽땅 끌어가면서 너희들 통일할거야,안할거야?’
If God took away all the air and asked, will you unify or not?

하게 되면 세계 인류가 합창으로 ‘통일하겠습니다.’.’라고할것입니다.
all humankind would shout in unison, we will! God could unite the world in an instant using this method,

그렇게 하면 일시에 통일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공기 가지고 그렇게 안 하시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but we are thankful that God does not do that with the air.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Without air we cannot live.

이렇게 공기는 생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Air is absolutely necessary for life.

그런데 공기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도둑놈같이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Yet people gulp air like thieves without feeling grateful for it.
(38-244, 1971.1.8)


천주의 대주재 되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눈에 보이게 된다면 하나님을 서로 빼앗겠다는 싸움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If God, the great Master of heaven and earth, were visible to human eyes, wouldn’t people fight each other to capture God?

이 싸움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There would be no way to stop the battle.

하나님이 안 보이기를 잘한 것입니다.
So it is good that God is invisible.

만약 하나님이 보였다면 미국과 소련이 서로 자기 하나님이라고 싸우겠어요, 안 싸우겠어요?
America and the Soviet Union would fight, each claiming God as theirs.

싸운다는 것입니다.
They would.

그 싸움을 누가 말릴 수 있겠어요?
Who would be able to stop the fighting?

하나님은 전지하사, 이런 싸움이 있을까봐 무형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The all-knowing God stays invisible lest such fights break out.

하나님이 보이기를 바라는 것은 망령된 행위입니다. 안 보이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To wish that God were visible is foolish. It is better that He is not. (41-285, 1971.2.17)


이 우주는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This universe is veiled in mystery.

그 크기가 210억 광 년이나 되는 대우주입니다.
This great universe is some 21 billion light years across.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를 말합니다.
One light year is the distance light travels in a year.

1초 동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빛인데,
Light can circle the earth seven and a half times in one second,

이 빛이 1년 동안 나아가는 것이 1광년입니다.
so you can begin to conceive of how far light travels in a year.

그러면 이렇게 큰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주인은 얼마나 크겠느냐?
Then, how large must the Master be who can rule this huge universe?

키가 크다면 얼마나 크겠느냐?
If God had a body, how tall would He be?

하나님이 그렇게 크다면 하나님 자신이 거추장스러운 몸을 끌고 다닐 수 있겠느냐?
If God is as large as we say He is, would He be able to drag His cumbersome body around?

철커덕 철커덕 다닌다면 얼마나 불편하겠느냐?
How inconvenient it would be if He had to lumber about like that!

한번 움직이면 우주가 전부 놀라 자빠질 것입니다.
Every time He moved the universe would fall over in surprise.

하나님은 지혜로운 분입니다.
God is a wise being.

그래서 하나님은 ‘보이지않는 주인이 되자.’고생각했던것입니다.
This is why He decided to be an invisible Lord.
(138-167, 1986.1.21)


하나님이 얼마나 무거울까요?
Have you ever thought about God’s weight?

그걸 생각해 봤어요?
How heavy do you think He is?

하나님이 얼마나 무거워요? 근수로 달면 몇 근이나 될까요?
How many kilograms does He weigh?

몇 억만 톤이 될까요?
Perhaps billions of tons?

무겁다면 그 몸으로 다니려면 큰일이지만
If He were that heavy, He would have a big problem trying to move around.

하나님은 무형이시기 때문에 이상적입니다.
But it is ideal for God that He is incorporeal.

지갑에 넣고 다녀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Even if you carry Him inside your wallet, you will not feel any weight.

또 무형이기 때문에 아무리 좁은 바늘귀로도 오갈 수 있습니다.
Since He has no form, He can even go in and out through the eye of the smallest needle.

마음대로 운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In other words, He can move around at will.

크다 하면 크고 작다면 무한히 작기도 하여 이 우주 어디든 마음대로 운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Being infinitely large yet also infinitely small, He is free to move around anywhere in the universe.
(136-106, 1985.12.22)


제일 귀한 물건이 있다면 언제든지 가지고 다니면서
If you have something you consider most precious, you will want to carry it with you at all times.

한시도 그 물건과 떨어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You will not want to be separated from it even for a moment.

그러면 최고 보물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을 갖고 있다면,
Then if God, the greatest treasure of them all,

그분을 어디에 모시고 싶어하느냐?
was in your possession, where would you like to attend Him?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창고가 있다면 어디일 것이냐?
Is there a store room where you can store Him securely, where you can attend Him?

그 창고는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That place is none other than your heart and mind.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을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창고인 것입니다.
The human heart and mind form the store room where God can be safely attended. (41-285, 1971.2.17)


하나님은 무형이기 때문에 유형의 존재를 자기보다도 중요시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Since God is without form, the conclusion is that He should give more importance to beings with form than He does to Himself.

그래야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Only then will things begin to turn.

또, 사람은 자기 몸뚱이보다도 보이지 않는 마음과 하나님을 더 중요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Conversely, human beings should value their invisible mind and God more than their bodies. (111-49, 1981.1.18)


1.2. In the beginning we naturally knew about God –
본래는 자연히 알게 되어 있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고 본성의 선한 부모를 통해 태어났던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란은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If humankind had not fallen, and we had been born through parents of original goodness, there would be no need to argue about whether God exists.

나면서부터 자연히 안다는 것입니다.
People would naturally know from birth.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젖먹는 법을 배워 가지고 나옵니까?
Babies begin sucking as soon as they are born, when they sense their mother’s breast in front of them.

나오자마자 눈앞에 젖이 있으면 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Do they need to learn how to suck while in the womb?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They automatically know how to do it.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If human beings had not fallen,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자동적으로  알고, 자동적으로 해결하고, 자동적으로 가야 할 입장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they would naturally recognize and cultivate their relationship with God, and automatically understand that their position is to advance towards Him.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망각해 버렸습니다.
But the Fall has made people forget everything.

그래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심하는 결과의 세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This is why the world is in doubt as to whether God exists.

이것은 비참한 사실입니다.
This is a tragic fact. (20-306, 1968.7.14)


사람은 이 우주의 피조만물 가운데에서 걸작품입니다.
Human beings are the masterpiece among the created beings of the universe.

얼 마나 걸작품이냐 하면, 여러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도 멋진 걸작품입니다.
How great a masterpiece are they? They are superb beyond imagination.

그러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사람을 만들었다면,
That being the case, when the absolute God created them,

하나님 자신이 말하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을 사람이 모르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should He have created them in such a way that they do not know what He says, sees or feels? (53-51, 1972.2.8)


하나님을닮은 아담과해와가 인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다면,
If Adam and Eve, who resembled God, had become the parents of humankind,

그 모습을 통해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인지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they would have recognized God’s constant presence in them through His works.

만일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의심을 가질수가 없게 됩니다.
Had that happened, there would be no doubts about God.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언제나 볼 수 있고,
If the Fall had not occurred,

부르면 곧 나타나도록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we would be able to sense God’s presence at any time,

그와 같은 기준이 된다면 누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 하겠습니까?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and He would appear right away whenever we called Him. If we reach that level, who will deny Hiexistence? No one.(Blessed Family – 307)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이 있다.’하는 것은 말뿐이 아닙니다.
God’s existence is not just a matter of words.

원 리를 통해 주체와 대상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불가피하게 있어야 된다는 입장이 아니라
From the perspective of the subject- object partner relationship in the Principle, we do not need to prove that God exists.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기 전에 있었던 분이요,
Rather, the position we must establish is that God existed before we had cognition of Him

내 모든 감각, 나의 일체를 주관하는 분이다 하는 입장이어야 합니다.
and that He rules over all our senses and over everything to do with us.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Awareness of this is more important than anything else.

알고 인식하는 것이 원칙이 아니라 인식하고 아는 것이 원칙입니다.
The basic rule is that awareness precedes knowledge, not the other way around.

우리가 추우면 춥다 하는 것을 알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추운 것을 느껴 가지고 알지 않습니까?
When we are cold, we first feel cold before we think, I am cold. We do not first think I am cold before we feel it. Isn’t that so?

이와 마찬가지로 신이 계시다면 신이 계신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세포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Likewise, because God exists, you must be able to feel His existence with your cells.

그 경지가 문제입니다.
Reaching that state is what matters.

다시 말하면, 체휼적 입장을 어떻게 우리가 확정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In other words, the issue is how we reach the state in which we can experience these things. (58-291, 1972.6.25)


여러분이 자다가도 ‘아버지’ 할 수 있고, 혼자말로도 ‘아버지!’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You should be able to cry out Father! even in your sleep and even when you are by yourself.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잠자는 것을 잊어버리면서 그 생활 이면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아버지’ 하게 되면, 아버지 손이 잡힙니다.
When in your daily life you forget to eat or sleep, and exclaim Father! with a deep longing, you will be able to hold His hand.

꿈 같은 사실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하면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Magical things will happen. When you call out Father! He will embrace you.

이러한 표현적 권에서 체휼적 감정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You must know that in your life of faith, the most precious thing is how you tap into those feelings that bring you those deep experiences.

그러한 체휼의 감도, 느끼는 그 도수, 그 양의 여하가 그 사람의 신앙기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The degree and amount of your experience and feeling can be the measure of your faith.

그러한 사랑의 심정을 가졌다면 어디에 옮겨 가서
If you have such a heart of love, when you determine,

‘내가 이것을 해야 된다.’ 하게 될 때는, 하늘이여 같이해 주시옵소서.’하기 전에 벌써 하나님은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I must accomplish this, God will already be supporting you even before you ask, Heavenly Father, please be with me.

그런 것을 여러분이 느끼게 될 때는 ‘고마우신 하나님’ 하게 되는 것입니다.
Feeling His support, you will say, Thank you, God!
(58-297, 1972.6.25)


통일교회 원리는 하나님을 무형의 절대적 주체로,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The Unification Principle teaches that God is the invisible, absolute Lord with dual characteristics in harmony.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분성적 실체(分性的實體)로 아담과 해와를 만들어 놓고,
As a being of dual characteristics, God created Adam and Eve as manifestations of His duality.

이들이 장성하여 사랑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연결될 때, 종적인 입장에서 중심이되고자 하신 것입니다.
He intended to be their vertical center when they grew up and connected horizontally through love.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In other words,

아담과 해와가 성숙하게 되면
when Adam and Eve reached maturity,

하나님의 남성 성품은 아담의 마음 속에,
God’s masculine characteristics would have entered Adam’s mind

하나님의 여성 성품은 해와의 마음 속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and God’s feminine characteristics likewise would have entered Eve’s mind.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갈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This does not mean that God is divided.

그러한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의 마음 속에 임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God can be present in Adam’s and Eve’s minds because He is the Lord with dual characteristics.(138-245)


하나님 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라고 말하지요?
We say that God is a being who harmonizes dual characteristics, don’t we?

중화적 입장에서 사랑을 중심삼은 통일적 존재라는 것은 아직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But I have not yet talked about Him as a unified being of love in addition to one harmonizing the dual characteristics.

거 기에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적 존재라는 그것을 첨부해야 됩니다.
We need to add the fact that He is the unified being of love.
(223-268, 1991.11.12)

1.2. In the beginning we naturally knew about God –
본래는 자연히 알게 되어 있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고 본성의 선한 부모를 통해 태어났던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란은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If humankind had not fallen, and we had been born through parents of original goodness, there would be no need to argue about whether God exists.

나면서부터 자연히 안다는 것입니다.
People would naturally know from birth.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젖먹는 법을 배워 가지고 나옵니까?
Babies begin sucking as soon as they are born, when they sense their mother’s breast in front of them.

나오자마자 눈앞에 젖이 있으면 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Do they need to learn how to suck while in the womb?

자동적으로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They automatically know how to do it.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If human beings had not fallen,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자동적으로  알고, 자동적으로 해결하고, 자동적으로 가야 할 입장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they would naturally recognize and cultivate their relationship with God, and automatically understand that their position is to advance towards Him.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망각해 버렸습니다.
But the Fall has made people forget everything.

그래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심하는 결과의 세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This is why the world is in doubt as to whether God exists.

이것은 비참한 사실입니다.
This is a tragic fact. (20-306, 1968.7.14)


사람은 이 우주의 피조만물 가운데에서 걸작품입니다.
Human beings are the masterpiece among the created beings of the universe.

얼 마나 걸작품이냐 하면, 여러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도 멋진 걸작품입니다.
How great a masterpiece are they? They are superb beyond imagination.

그러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사람을 만들었다면,
That being the case, when the absolute God created them,

하나님 자신이 말하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을 사람이 모르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should He have created them in such a way that they do not know what He says, sees or feels? (53-51, 1972.2.8)


하나님을닮은 아담과해와가 인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다면,
If Adam and Eve, who resembled God, had become the parents of humankind,

그 모습을 통해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인지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they would have recognized God’s constant presence in them through His works.

만일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의심을 가질수가 없게 됩니다.
Had that happened, there would be no doubts about God.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언제나 볼 수 있고,
If the Fall had not occurred,

부르면 곧 나타나도록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we would be able to sense God’s presence at any time,

그와 같은 기준이 된다면 누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 하겠습니까?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and He would appear right away whenever we called Him. If we reach that level, who will deny Hiexistence? No one.(Blessed Family – 307)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이 있다.’하는 것은 말뿐이 아닙니다.
God’s existence is not just a matter of words.

원 리를 통해 주체와 대상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불가피하게 있어야 된다는 입장이 아니라
From the perspective of the subject- object partner relationship in the Principle, we do not need to prove that God exists.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기 전에 있었던 분이요,
Rather, the position we must establish is that God existed before we had cognition of Him

내 모든 감각, 나의 일체를 주관하는 분이다 하는 입장이어야 합니다.
and that He rules over all our senses and over everything to do with us.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Awareness of this is more important than anything else.

알고 인식하는 것이 원칙이 아니라 인식하고 아는 것이 원칙입니다.
The basic rule is that awareness precedes knowledge, not the other way around.

우리가 추우면 춥다 하는 것을 알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추운 것을 느껴 가지고 알지 않습니까?
When we are cold, we first feel cold before we think, I am cold. We do not first think I am cold before we feel it. Isn’t that so?

이와 마찬가지로 신이 계시다면 신이 계신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세포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Likewise, because God exists, you must be able to feel His existence with your cells.

그 경지가 문제입니다.
Reaching that state is what matters.

다시 말하면, 체휼적 입장을 어떻게 우리가 확정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In other words, the issue is how we reach the state in which we can experience these things. (58-291, 1972.6.25)


여러분이 자다가도 ‘아버지’ 할 수 있고, 혼자말로도 ‘아버지!’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You should be able to cry out Father! even in your sleep and even when you are by yourself.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잠자는 것을 잊어버리면서 그 생활 이면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아버지’ 하게 되면, 아버지 손이 잡힙니다.
When in your daily life you forget to eat or sleep, and exclaim Father! with a deep longing, you will be able to hold His hand.

꿈 같은 사실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하면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Magical things will happen. When you call out Father! He will embrace you.

이러한 표현적 권에서 체휼적 감정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You must know that in your life of faith, the most precious thing is how you tap into those feelings that bring you those deep experiences.

그러한 체휼의 감도, 느끼는 그 도수, 그 양의 여하가 그 사람의 신앙기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The degree and amount of your experience and feeling can be the measure of your faith.

그러한 사랑의 심정을 가졌다면 어디에 옮겨 가서
If you have such a heart of love, when you determine,

‘내가 이것을 해야 된다.’ 하게 될 때는, 하늘이여 같이해 주시옵소서.’하기 전에 벌써 하나님은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I must accomplish this, God will already be supporting you even before you ask, Heavenly Father, please be with me.

그런 것을 여러분이 느끼게 될 때는 ‘고마우신 하나님’ 하게 되는 것입니다.
Feeling His support, you will say, Thank you, God!
(58-297, 1972.6.25)


통일교회 원리는 하나님을 무형의 절대적 주체로,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The Unification Principle teaches that God is the invisible, absolute Lord with dual characteristics in harmony.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분성적 실체(分性的實體)로 아담과 해와를 만들어 놓고,
As a being of dual characteristics, God created Adam and Eve as manifestations of His duality.

이들이 장성하여 사랑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연결될 때, 종적인 입장에서 중심이되고자 하신 것입니다.
He intended to be their vertical center when they grew up and connected horizontally through love.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In other words,

아담과 해와가 성숙하게 되면
when Adam and Eve reached maturity,

하나님의 남성 성품은 아담의 마음 속에,
God’s masculine characteristics would have entered Adam’s mind

하나님의 여성 성품은 해와의 마음 속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and God’s feminine characteristics likewise would have entered Eve’s mind.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갈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This does not mean that God is divided.

그러한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의 마음 속에 임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God can be present in Adam’s and Eve’s minds because He is the Lord with dual characteristics.(138-245)


하나님 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존재라고 말하지요?
We say that God is a being who harmonizes dual characteristics, don’t we?

중화적 입장에서 사랑을 중심삼은 통일적 존재라는 것은 아직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But I have not yet talked about Him as a unified being of love in addition to one harmonizing the dual characteristics.

거 기에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적 존재라는 그것을 첨부해야 됩니다.
We need to add the fact that He is the unified being of love.
(223-268, 199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