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Part 2. Chapter 1. The Providence to Lay the Foundation for Restoration 2-2 THE FOUNDATION OF SUBSTANCE – 실체기대

Ⅱ. 실체기대 – THE FOUNDATION OF SUBSTANCE

이러한 가운데서 노아가정은 심판 40 일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인 방주(方舟)를 뜻맞게 찾아 세워 그 기대(基臺)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할 수 있었던 것이다.
Noah successfully restored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of faith by fulfilling the dispensation of the ark and thereby making a symbolic offering acceptable to God.

노아는 방주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제물로 바쳐 ‘상징헌제(象徵獻祭)’에 성공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다. 이로써 노아는 만물(萬物)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는 동시에, 인간을 복귀하기 위한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세웠던 것이다.
In doing so, Noah fulfilled both the indemnity condition for the restoration of all things and the indemnity condition for the symbolic restoration of human beings.

다음엔 이 기대 위에서 노아의 아들 셈과 함이 각각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서 ‘실체헌제(實體獻祭)’에 성공하면 ‘실체기대(實體基臺)’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Upon this foundation, Noah’s sons, Shem and Ham, were then to have stood in the position of Cain and Abel, respectively. Had they then succeeded in the substantial offering by fulfilling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they would have lai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노아가 ‘상징헌제(象徵獻祭)’에 성공한 후에, 이 가정의 ‘실체헌제(實體獻祭)’가 뜻맞는 것으로 바쳐지기 위하여서는, 먼저 ‘실체헌제’의 중심이 되어야 할 차자 함이, 아담가정의 ‘실체헌제’의 중심이었던 차자(次子) 아벨의 입장을 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었다.
For Noah’s family to make an acceptable substantial offering, Ham, Noah’s second son, was to restore the position of Abel, Adam’s second son. He was supposed to become the central figure of the substantial offering, just as Abel was the central figure of his family’s substantial offering.

아담때에는 아벨 자신이 아담의 대신으로 ‘상징헌제’를 하였기 때문에,아벨이 그 헌제에 성공함으로써 그는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동시에 ‘상징헌제’의 중심으로도 결정되었던 것이다.
In Adam’s family, Abel had successfully made the symbolic offering in Adam’s place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of faith and to be qualified as the central figure of the substantial offering.

그러나 노아 때는 함이 아니고 노아 자신이 ‘상징헌제’를 하였기 대문에,
In the case of Noah’s family, it was Noah, not Ham, who made the symbolic offering.

함이 ‘상징헌제’에 성공한 아벨의 입장에 서기 위하여는, ‘상징헌제’에 성공한 노아와 심정으로 일체불가분(一體不可分)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Therefore, for Ham to stand in the position of Abel, as one who has succeeded in making the symbolic offering, he had to become inseparably one in heart with his father, Noah.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함으로 하여금 노아와 심정으로 일체적인 입장에 서게 하시기 위하여 어떠한 섭리(攝理)를 하셨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Let us examine how God worked to help Ham become one in heart with Noah.

창세기 9 장 20 절 내지 26 절에 씌어 있는 기록을 보면, 함은 그의 부친 노아가 장막(帳幕) 안에서 나체(裸體)로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부끄럽게 여겼을 뿐 아니라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그 형제 셈과 야벳을선동(煽動)하였다.
The Bible reports that when Ham saw his father lying naked in his tent, he felt ashamed of Noah and took offense. Ham stirred up the same feelings in his brothers, Shem and Japheth.

이 때에 그들도 함의 선동에 뇌동(雷同)되어 그의 부친의 알몸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이키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그 부친의 몸에 옷을 덮었던 것이다.
Swayed by Ham to feel ashamed of their father’s nakedness and turning their faces so as not to behold the sight, they walked backwards and covered their father’s body with a garment.

그런데 이것이 죄가 되어 노아는 함을 저주하여 이르기를 그 형제의 종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This act constituted a sin, so much so that Noah rebuked Ham, cursing his son to be a slave to his brothers.(Gen. 9:20-25)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이러한 섭리를 하셨으며, 또 나체를 부끄러워한 것이 어찌하여 죄가 되었는가?
Why did God conduct this dispensation? Why was it such a sin to feel ashamed of nakedness?

이러한 내용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어떻게 되면 죄가 되는가 하는 문제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T o understand these matters, let us first recall what constitutes sin.(cf. Fall 4.5)

사탄도 어떤 대상을 세워 그와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수수(授受)의 관계를 맺지 않으면 그 존재 및 활동의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Satan cannot manifest his powers—including the power to exist and act—unless he first secures an object partner with whom he can make a common base and engage in a reciprocal relationship of give and take.

그러므로 어떠한 존재든지 그에게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어 사탄의 상대가 됨으로써 사탄이 활동할 수 있게 될 때 거기에 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Whenever a person makes a condition for Satan to invade, it means that he has allowed himself to become Satan’s object partner, thereby empowering Satan to act. This constitutes sin.

다음으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어찌하여 노아의 나체(裸體)로써 함을 시험하셨던가 하는 것이다.
Next, let us examine why God tested Ham by having him behold Noah’s nakedness.

방주(方舟)는 천주(天宙)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판 40 일로써 방주를 뜻 가운데 세운 직후에 되어진 모든 사실들을 천주창조(天宙創造) 이후에 되어지는 모든 사실들을 상징한 것이기 때문에,심판 40 일로써 방주를 뜻 가운데 세운 직후에 되어지는 모든 사실들을 상징한 것이었다 함은 이미 논술한 바와같다. 그러므로 40 일심판이 끝난 직후의 노아의 입장은 천지창조 후의 아담의 입장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We saw that the ark symbolized the cosmos,and that the events occurring immediately after the dispensation of the ark represented the events which took place immediately after the creation of the cosmos.Hence, Noah’s position right after the flood was much like that of Adam after the creation of heaven and earth.

창조된 아담과 해와가 서로 얼마나 가깝고 허물할 것이 없는 사이였으며,또한 얼마나 하나님 앞에 숨길 것이 없었던가 하는 것은, 창세기 2 장25 절에 그들이 서로 알몸으로 있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Adam and Eve before the Fall were close in heart and innocently open with each other and with God; as it is written, they were not ashamed of their nakedness.(Gen. 2:25)

그러나 그들은 타락(墮落)한 후에 스스로 하체(下體)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나무잎으로 가렸었고, 또 하나님이 보실 것을 두려워하여 나무 사이에 숨었었다(창세기 3 장 7 절).
Yet after they fell, they felt ashamed of their nakedness. They covered their lower parts with fig leaves and hid among the trees of the garden, fearing that God would see them.(Gen. 3:7-8)

그러므로 그드이 하체를 부끄러워했던 행위는, 하체로 범죄하여 사탄과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었다는 정념(情念)의 표시요, 하체를 가리고 숨었었던 행동은,
This shame was an indication of their inner reality, for they had formed a bond of blood ties with Satan by committing sin with their sexual parts.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범죄의식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By covering their lower parts and hiding, they expressed their guilty consciences, which made them feel ashamed to come before God.

40 일심판으로 사탄을 분립(分立)한 입장에 있었던 노아는 천지창조 직후의 아담의 입장에 섰어야 했다.
Noah, who had severed his ties to Satan through the forty-day flood judgment, was supposed to secure the position of Adam right after the creation of the universe.

이에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나체(裸體)로 있어도 그 가족들이 그것을 보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또 숨으려 하지도 않는 모습을 바라보시는 것으로써,
God expected that the members of Noah’s family would react to Noah’s nakedness without any feelings of shame and without any thought to conceal his body.

일찍이 죄를 짓기전 어디도 가린 데 없이 들어낸 나체 그대로의 인간을 보시면서 기뻐하셨던 그 심정을 탕감복귀하려 하셨던 것이다.
God wanted to recover the joyful heart which He had felt when looking at Adam and Eve in their innocence before the Fall by taking delight in the innocence of Noah’s family.

하나님은 이러한 큰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노아로 하여금 나체로 누워 있게 하셨었다.
To fulfill such a profound wish, God had Noah lie naked.

따라서 함도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과 같은 심정(心情)으로 아무 부끄러움 없이 노아를 대했어야,
Had Ham been one in heart with Noah, regarding him with the same heart and from the same standpoint as God, he would have looked upon his father’s nakedness without any sense of shame.

노아와 일체불가분(一體不可分)의 뜻 가운데서 죄 짓기 전 부끄러움을 몰랐던 아담가정의 입장으로 복귀하는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He thus would have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store in Noah’s family the state of Adam and Eve’s innocence before the Fall.

그러나 노아의 아들들은 이와 반대로 그 부친의 나체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 이를 가렸으므로,
We can thus understand that when Noah’s sons felt ashamed of their father’s nakedness and covered his body,

이로써 그들은 타락 후의 아담가정과 같이, 사탄과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은 부끄러운 몸들이 되어서,
it was tantamount to acknowledging that they, like Adam’s family after the Fall, had formed a shameful bond of kinship with Satan and were thus unworthy to come before God.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증(自證)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Satan, like the raven hovering over the water, was looking for a condition to invade Noah’s family.

그러므로 이미 까마귀로써 보여주신 것과 같이, 노아가정에 침범할 수 있는 무슨 조건이 없는가 하고 엿보고 있었던 사탄은 자기의 혈연적인 후손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나선 노아의 아들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 가정에 다시 침범 하게 되었던 것이다.
He attacked the family by taking Noah’s sons as his object partners when they in effect acknowledged that they were of his lineage.

이와같이 함이 그 부친의 알몸을 부끄러워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었기 때문에 그 행동은 범죄가 된 것이다.
When Ham felt ashamed of his father’s nakedness and acted to cover it up, he made a condition for Satan to enter; hence his feeling and act constituted a sin.

이렇게 되어 함은 ‘실체헌제’를 하기 위한 아벨의 입장을 탕감복귀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룰 수 없었으므로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도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Consequently, Ham could not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position of Abel from which to make the substantial offering. Since he could not establish the foundation of substance,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in Noah’s family ended in failure.

그러면 나체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죄가 되는가?
Is it always sinful to regard nakedness with a sense of shame?

노아는 아담의 대신으로서 아담으로 인하여 사탄이 침범한 모든 조건들을 없애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No, Noah’s was a special case. In the position of Adam, Noah had the mission to remove all of Adam’s conditions which had left him vulnerable to Satan’s attack.

그렇기 때문에 노아가정은 나체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또 그것을 가리지도 않는다는 감성과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써, 사탄과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기 전 아담가정의 입장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By demonstrating that they neither felt ashamed of Noah’s nakedness nor would attempt to cover it, Noah’s family would have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store the position of Adam’s family in its original innocence before it had joined with Satan in a kinship of blood.

따라서 나체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또 그것을 가리지도 않는 것으로 세워야 할 탕감조건은, 아담가정 대신으로 세워졌던 노아가정만이 세워야 할 조건이었던 것이다.
Therefore, this was an indemnity condition which only Noah’s family was required to fulf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