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Part 2. Chapter 1. The Providence to Lay the Foundation for Restoration 2-1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IN NOAH’S FAMILY – 노아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 THE FOUNDATION OF FAITH – 믿음의 기대

제 2 절 노아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SECTION 2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IN NOAH’S FAMILY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Cain killed Abel, thereby preventing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in Adam’s family from being accomplished.

그러나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변할 수 없는 것으로서,
Nevertheless, God had predestined absolutely the fulfillment of the purpose of creation,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고 이루시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아벨이 하늘을 대하여 충성했던 그 심정(心情)의 터전 위에서, 그의 대신으로 셋을 세우셨다(창세기 4 장 25 절).
and His Will remained unchangeable. Hence, upon the foundation of the loyal heart which Abel demonstrated toward Heaven, God chose Seth in his place.(Gen. 4:25)

그리하여 그 후손에서 노아의 가정을 택하시사, 아담가정의 대신으로 세우시어 새로운 복귀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From among Seth’s descendants, God chose Noah’s family to substitute for Adam’s family and commenced a new chapter in His providence.

창세기 6 장 13 절에 모든 혈육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홍수심판(洪水審判)을 하신 것을 보면, 그 때도 말세였던것이 분명하다.
It is written that God judged the world by the flood: “ And God said to Noah, ‘I have determined to make an end of all flesh; for the earth is filled with violence through them; behold, I will destroy them with the earth.’”(Gen. 6:13 )This shows us that Noah’s time was the Last Days.

왜냐하면 홍수심판 후 노아가정을 터로하여 메시아를 보내심으로써,창조목적을 완성하려 하셨기 때문이다.
God intended to accomplish the purpose of creation after the flood judgment by sending the Messiah upon the foundation laid by Noah’s family. For this reason.

그러므로 노아가정도 먼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고,
Noah’s family was responsible to fulfill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다음으로 그 기대 위에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복귀하는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and then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substance.

아담가정이 복귀하지 못하였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지 않으면아니 되었던 것이다.
They were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which Adam’s family had failed to lay.


Ⅰ. 믿음의 기대 – THE FOUNDATION OF FAITH

1.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
1. THE CENTRAL FIGURE FOR THE FOUNDATION OF FAITH

노아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復歸攝理)에 있어서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through Noah’s family,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中心人物)은 노아였다.
Noah was the central figure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담으로 이루시려다 못 이루신 뜻을 대신 이루시기 위하여 아담으로부터 1600 년을 지나 10 대만에 노아를 부르셨다.
God called Noah ten generations or sixteen hundred biblical years after Adam for the purpose of fulfilling the Will which He had intended to realize through Adam.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일찍이 아담에게 축복하셨던 것(창세기 1 장 28 절)과 마찬가지로
Accordingly, God bestowed His blessings upon Noah, “be fruitful and multiply,”(Gen. 9:7 ) much as earlier

노아에 대해서도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셨던 것이다(창세기 9 장 7 절).
He had bestowed the three great blessings upon Adam.(Gen. 1:28 )In this sense,

이러한 의미에서 노아는 제 2 인간조상이 된다.
Noah was the second ancestor of humanity.

노아는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悖壞)하여 강포(强暴)가 땅에 충만한때에 부름을 받아(창세기 6 장 11 절),
Noah was called when “the earth was filled with violence.”(Gen. 6:11)

120 년간이나 갖은 조롱과 비소를 받아가며, 하나님의 명령에만 절대 순종하여, 평지도 아닌 산 꼭대기에 방주(方舟)를 지었다.
Enduring all kinds of derision and mockery, he worked for 120 years on a mountain to build the ark in absolute obedience to God’s instructions.

그 때문에 하나님은 이것을 조건 삼아 노아가정을 중심하고 홍수심판(洪水審判)을 감행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Upon this condition of faith, God could bring on the flood judgment centered on Noah’s family.

이러한 의미에서 노아는 제 1 믿음의 조상인 것이다.
In this sense, Noah was the first father of faith.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알고 있지만,
Although we commonly regard Abraham as the father of faith,

원래는 노아가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아래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같이,
in fact, Noah was to have had that honor. As we shall see,

그의 아들 함의 범죄로 인하여 노아의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사명은 아브라함에게로 옮겨졌던 것이다.
it was due to his son Ham’s sinful act that the mission of the father of faith was transferred from Noah to Abraham.

아담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In the case of Adam, it was explained that although he should have been the central figure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앞서 설명한 바와같은 이유로 말미암아 자기가 직접 헌제를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he could not offer the sacrifice himself. Noah’s situation was different.

그러나 노아는, 이미 아벨이 ‘상징헌제(象徵獻祭)’를 뜻맞게 드림으로써 하늘을 대하여 충성(忠誠)했던 그 심정(心情)의 터 위에서 부름을 받았고,
He was called by God upon the foundation of Abel’s loyal and faithful heart in making an acceptable symbolic offering.

그는 또 혈통적으로 보더라도 아벨 대신 택함을 받은 셋(창세기 4 장 25 절)의 후손이었으며, 뿐만 아니라 그의 위인(爲人)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義人)이었기 때문에(창세기 6 장 9 절), 그는 방주를지어 그것으로써 직접 하나님에게 상징헌제를 드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In regard to his lineage, Noah was a descendant of Seth, who had been chosen to replace Abel. Furthermore, Noah was a righteous man in the sight of God.(Gen. 6:9 ) For these reasons, he was qualified to make the symbolic offering to God by building the ark.


2.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
2. THE OBJECT FOR THE CONDITION IN RESTORING THE FOUNDATION OF FAITH

노아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條件物)들은 방주(方舟)였다.
The object for the condition by which Noah was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was the ark.

그러면 그 방주의 의의는 무엇이었던가?
The ark was full of symbolic significance.

노아가 아담대신 제 2 인간조상의 입장에 서기 위하여는,
Before Noah could stand in place of Adam as the second human ancestor,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내주었던 천주(天宙)를 탕감복귀하기 위한 조건을 세워야 한다.
he first had to make an indemnity condition for the restoration of the cosmos, which had been lost to Satan due to Adam’s fall.

따라서 신천주(新天宙)를 상징하는 어떠한 조건물을 제물로서 하나님 앞에 뜻 맞게 바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Hence, the object for this condition, which Noah had to offer in an acceptable manner, should symbolize the new cosmos.

이러한 조건물로 세웠던 것이 바로 방주였다.
He offered the ark as this object.

방주는 3 층으로 지었는데,
The ark was built with three decks,

그 이유는 3 단계의 성장기간들 통해서 창조된 천주를 상징하기 위함이었다.
symbolizing the cosmos which had been created through the three stages of the growing period.

한편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식구가 여덟이었던 것은, 노아가 아담 대신의 입장이었으므로,
The eight members of Noah’s family who entered the ark represented the

일찍이 사탄에게 내주었던 아담가정의 여덟 식구를 탕감복귀하기 위함이었다.
eight members of Adam’s family who, having been invaded by Satan, had to be restored through indemnity.

방주가 천주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Thus, the ark symbolized the cosmos;

그 안에 주인으로 들어간 노아는 하나님을 상징하였고,
Noah, its master, symbolized God;

그의 식구들은 전인류(全人類)를 상징하였으며,
the members of his family symbolized humanity;

그 안에 들어간 동물들은 만물세계 전체를 상징했던 것이다.
and the animals brought into the ark symbolized the entire natural world.

이와같이 방주가 완성된 후에 하나님께서 40 일간의 홍수심판(洪水審判)을하셨는데, 이 심판의 목적은 무엇이었던가?
After the ark was completed, God judged the world with the flood for forty days. What was the purpose of the flood?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Creation,

인간은 한 주인을 대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human beings were created to serve only one master.

음란(淫亂)에 빠져서 이미사탄을 대하고 있는 인류를 하나님이 또 하나의 주인의 입장에서 대하시어 비원리적인 섭리를 하실 수는 없었던 것이다.
Since humankind was under bondage to Satan, full of corruption and debauchery, for God to relate with them He would have to assume the position of a second master. That would be unprincipled.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대하시어 섭리하실 수 있는 대상을 세우시기 위하여 사탄의 상대가 되어 있는 전 인류를 멸하시는 홍수심판의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Therefore, God brought about the flood judgment, eliminating sinful humanity in order to raise up a family who would relate only with Him.

그러면 심판기간(審判期間)을 40 일로 정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Why did God choose a forty-day period for the flood?

후편제 3 장 제 2 절 Ⅳ에서 논술하는 바, 10 수는 귀일수(歸一數)인 것이다.
The significance of the forty-day period should be understood in terms of the meaning of the numbers four and ten. The number ten signifies unity.(cf. Periods 2.4)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 이후 10 대 만에 노아를 찾아 세우셨던 목적은,
It was ten generations after Adam when God called upon Noah to restore

아담을 중심하고 이루지 못하였던 뜻을 노아를 중심하고 탕감복귀하여,
through indemnity the Will which He could not fulfill through Adam.

하나님에게로 재귀일(再歸一)시키기 위한 10 수 복귀의 탕감기간(蕩減期間)을 세우시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By fulfilling a period of indemnity containing the number ten, God meant to bring the dispensation back into unity with His Will.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위기대(四位基臺)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Furthermore, since the goal of restoration is to complete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4 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으로써 각 대(代)를 세우시는 섭리를,
God worked to raise up each of these ten generations by setting up an indemnity period to restore the number four.

노아에게 이르기까지 10 대에 걸쳐서 계속하여 오셨던 것이다. 따라서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기간은 40 수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기간이었던 것이다.
In total, the period from Adam to Noah was an indemnity period to restore the number forty.

그런데 당시의 인간들의 음란으로 말미암아,
Due to the lustfulness of the people of those days,

이 40 수 탕감기간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however, this indemnity period of the number forty was defiled by Satan.

하나님은 노아 방주(方舟)를 중심하고 4 위기대를 완성하는 섭리를 다시 하시기 위하여,사탄의 침범을 당한 이 40 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으로 40 일 심판기간을 세워 가지고,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려 하였던 것이다.
The dispensation of Noah’s ark was God’s new attempt to complete the four position foundation.Therefore, God set the period of the flood judgment at forty days as the indemnity period to restore the number forty, which had been defiled when the earlier period was lost to Satan. By fulfilling this numerical period of indemnity, God intended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이와같이 되어 40 수는 그 후의 탕감복귀섭리노정(蕩減復歸攝理路程)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사탄 분립수로 필요하게 되었다.
The number forty thus became characteristic of dispensations for the separation of Satan, which are necessary for restoring the foundation of faith.

그 예를 들면 노아심판(審判) 40 일을 비롯하여,
There are many examples of this: Noah’s forty-day flood;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의 400 년,
the four hundred years from Noah to Abraham;

이스라엘 민족의 애급 고역(埃及苦役) 400 년,
the Israelites’ four hundred years of slavery in Egypt;

모세의 두 차례에 걸친 금식기도(禁食祈禱) 40 일,
Moses’ two forty-day fasts;

가나안 정탐기간(偵探期間) 40 일,
the forty days of spying in Canaan;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표류(曠野漂流) 40 년,
the Israelites’ forty years of wandering in the wilderness;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왕의 재위기간(在位期間) 각 40 년,
the forty-year reigns of King Saul, King David and King Solomon;

엘리야 금식 40 일,
Elijah’s forty-day fast;

니느웨멸망에 관한 요나의 예언(豫言) 40 일,
Jonah’s prophecy that Nineveh would be destroyed in forty days;

예수님의 금식기도 40 일과 부활기간(復活期間) 40 일 등은 모두 사탄을 분립하는 탕감기간이었던 것이다.
Jesus’ forty-day fast and prayer in the wilderness; and the forty-day period from Jesus’ resurrection to his ascension.

한편 성경을 보면 그 심판이 끝날 때에, 노아가 방주(方舟)에서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보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In the Bible we read that at the end of forty days of rain, Noah sent forth from the ark a raven and a dove.( Gen. 8:6-7 )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실 섭리를 어떻게 예시(豫示)하셨던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Let us examine what future providential situations this foreshadowed, as it is written,

왜냐하면 아모스 3 장 7 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 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Surely the Lord God does nothing, without revealing his secret to his servants the prophets.”(Amos 3:7)

방주를 하나님이 뜻 앞에 합당한 것으로 세움으로써, 천주(天宙)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는 심판 40 일기간은,천지창조(天地創造)의 이상(理想)이 실현될 때까지의 혼돈기간(창세기 1 장 2 절)에 해당되는 기간이었다.
By building the ark and passing through the forty-day flood judgment, Noah fulfilled an indemnity condition for the restoration of the cosmos. The flood corresponds to the period of chaos before the creation of the universe when “the Spirit of God was moving over the face of the waters.”(Gen. 1:2)

따라서 40 일이 끝날 때에 방주를 중심하고 나타내 보이셨던 행사는,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완료한 이후의 전역사노정(全歷史路程)을 상징적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Accordingly, the works which God performed around the ark at the end of the forty-day flood symbolized the entire course of history following God’s creation of heaven and earth.

그러면 까마귀를 방주에서 내보내어, 물이 마를 때까지 왕래하게 하신 것은(창세기 8 장 6~7 절) 무엇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던가?
What was foreshadowed when Noah sent forth the raven, which circled about looking for a place to land until the waters subsided?

이것은 마치 인간창조 직후에 천사장(天使長)이 해와의 사랑을 노렸었고, 도 가인과 아벨이 헌제(獻祭)를 할 때에도 사탄이 그들에게 침범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과 같이(창세기 4 장 7 절),
It signified that Satan would be looking for a condition through which he could invade Noah’s family, just as the Archangel vied for Eve’s love soon after the creation of human beings, and just as Satan couched at the door looking for an opportunity to invade the offerings of Cain and Abel.(Gen. 4:7)

다음으로 노아가 비둘기를 방주(方舟) 밖으로 세 번 내보낸 것은 무엇을 미리 보여 주신 것이었던가?
What was foreshadowed when Noah sent forth the dove three times?

성서에는 물이 준 것을 알아보기 위하여 비둘기를 내보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Although it is written in the Bible that Noah sent out the dove to see if the water had subsided, that was not its only purpose.

그러나 단순히 그것만이 목적이었다면 비둘기를 내보내지 않고 창문으로 직접 내다보아도 알 수 있었을 것이고, 설혹 그 문들이 모두 봉해져 있었다 하더라도 비둘기가 나갈 수 있는 구멍으로 내다 보아서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Certainly Noah could have looked out the opening from which he set forth the dove to examine the situation for himself.

그러므로 비둘기를 내보냈던 목적은 물이 준 것을 알려고 했던 것보다 더욱 중요한 데 있었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 숨겨 있는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겠다.
The sending forth of the dove had a deeper significance connected with the mysterious Will of God.

하나님이 노아를 통하여 홍수심판(洪水審判)이 있을것을 선포하신지 7 일 후에(창세기 7 장 10 절) 홍수가
시작되어,
Sevendays after God proclaimed the flood judgment through Noah, the flood began.(Gen. 7:10)

40 일 심판기간이 지난 후에 첫번 비둘기를 내보냈다.
Forty days later, the dove was first sent out.

그런데 이 비둘기는 물 위를 왕래하다가 발 붙일 곳이 없어서 다시 방주로 돌아가니, 노아가 그것을 받아들였다고 기록되어 있는것이다(창세기 8 장 9 절).
It flew about but then returned to the ark because it found no place to land, and Noah took it back inside.(Gen. 8:9)

이 첫번 비둘기는 첫 아담을 상징한 것이었다.
The dove, when it was sent out the first time, represented the first Adam.

따라서 이 말씀은 창세전(創世前)부터 하나님 안에 있었던 그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이, 아담이라는 완성실체(完成實體)로 실현되기를 원하시어 그를 지상에 창조하셨던 것인데,
God created Adam with the hope that His ideal of creation, which He had cherished from before time, would be realized in Adam as the perfect incarnation of the divine ideal on earth.

그가 타락(墮落)되었기 때문에 그를 중심하고는 지상에 그 창조이상을 실현할 수 없게 되어,
Due to Adam’s fall, however, God could not realize the divine ideal on earth through him.

하나님은 할 수 없이 그의 뜻 성사를 후일로 미루시고 그 이상(理想)을 일시 지상으로부터 거두어 들이셨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었다.
God thus had to withdraw His ideal from the earth for a time and postpone its fulfillment to a later date.

그다음에 7 일을 지나 노아는 다시 그 비둘기를 내보냈다.
Seven days later, Noah sent forth the dove a second time.

그러나 그 때에도 역시 물이 다 마르지 않았기 때문에 지상에 내려앉지를 못하고,
Still the water had not yet dried, and again the dove returned.

다음에는 앉을 수 있다는 표시로서 다만 감람나무 잎사귀를 입에 물고,
This time it carried in its mouth an olive leaf,

다시 방주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창세기 8 장 10~11 절).
indicating that there would be a place for it to land the next time.(Gen. 8:10-11)

둘째 번으로 내보낸 이 비둘기는 창조이상(創造理想)의 ‘완성실체’로서 다시 오실 제 2 아담된 예수님을 상징한 것이었다.
The dove, when it was sent out the second time, symbolized Jesus, the second Adam, whose coming would be God’s second attempt to realize the perfect incarnation of the divine ideal on the earth.

따라서 이 말씀은 예수님이 복귀섭리(復歸攝理)를 완성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실 것이지만,
These verses foreshadowed that if the chosen people were to disbelieve in Jesus at his coming,

만일 유대인들이 불신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는 지상에 머무실 수가 없게 되어 그 뜻을 완전히 이루지 못하실 것이기 때문에,
then he would have “nowhere to lay his head” (Luke 9:58 )and thus would not be able to realize God’s complete Will on the earth.

부득이 그는 재림(再臨)하셔야 할 것을 약속하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예시하신 것이었다.
In that situation, Jesus would have to go to the cross and return to God’s bosom,
leaving behind the promise of the Second Advent.

물론 이 예시는, 만일 그 때에 땅에 물이 말라서 비둘기가 내려 앉아 먹을 것을 찾을 수 있었더면 그 비둘기는 결코 방주(方舟)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인데, 물이 채 마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로 다시 돌아갔던 것과 같이, 장차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잘 믿고 모시면, 그는 결코 죽지 않고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이루실 것이지만, 만일 그들이 불신으로 흐르지 않고 지상천국을 이루실 것이지만, 만일 그들이 불신으로 흐르게 되면, 예수님은 부득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재림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The dove returned to the ark because the water had not yet dried up. By analogy, had more of the Jewish people faithfully attended Jesus, he would have found a secure place to stand among them. He would not have been crucified and would have gone on to build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그런 후 또다시 7 일이 지나서 노아는 세번째로 비둘기를 내 보냈다.
After another seven days had passed, Noah sent out the dove for the third time.

그런데 이때는 이미 물이 말랐었기 때문에, 다시는 비둘기가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창세기 8 장 12 절).
This time the dove did not return to the ark, for the ground was dry.(Gen. 8:12)

이 셋째 번의 비둘기는 제 3 아담으로 오실 재림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The dove, when it was sent out the third time, symbolizes Christ at the Second Advent, who is to come as the third Adam.

따라서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This foreshadowed that when Christ comes again,

반드시 지상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되어 다시는 그 이상이 지상에서 거두어지는 일이 없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he will surely be able to realize God’s ideal of creation, which will never again be withdrawn from the earth.

제 3 차의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노아는 비로소 방주에서 땅으로 내려와 신천지(新天地)를 맞이하였다.
When the dove did not return, Noah finally disembarked from the ark and walked upon the earth, which had been purged of sin and made new.

이것은 제 3 아담으로 인하여 창조이상이 지상에서 이루어질때, 비로소 요한계시록 21 장 1 절 이하의 말씀대로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하나님의 장막(帳幕)이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This foreshadowed that when the ideal of creation is realized on the earth through the work of the third Adam, the new Jerusalem will descend from Heaven and the dwelling of God will be with men.(Rev. 21:1-3)

이 비둘기를 세 번 내보낸 실례(實例)로써, 예정론(豫定論)에서 밝혀진 바와같이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는 그 섭리의 대상인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을 다하지 못하면, 반드시 연장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The foreshadowing in this story should be interpreted in light of the principle explained earlier: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may be prolonged if the person entrusted with the providence fails in his responsibility.(cf. Predestination 2)

아담의 불신으로 인하여 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후아담으로 오셔야 할 것과 만일 유대인들도 불신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부득이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어 제 3 아담으로 재림(再臨)하셔야 할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Due to Adam’s faithlessness and failure to complete his responsibility, Jesus had to come as the second Adam. Furthermore, if the Jewish people were to disbelieve in Jesus and thus fail to complete their responsibility, Christ would certainly have to come again as the third Adam.

그리고 여기에 기록되어있는 7 일이라고 하는 기간은, 천지(天地)를 창조하실 때에 7 일이라는 기간이 있었던 것과 같이, 그것을 다시 찾아 세우는 데에도 섭리적인 어떠한 기간이 지난 후가 아니면 아니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Just as the creation of heaven and earth took a seven-day period, the seven-day intervals for sending forth the dove indicate to us that the restoration of heaven and earth requires certain providential periods of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