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Part 2. Chapter 1. The Providence to Lay the Foundation for Restoration 1-3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IN ADAM’S FAMILY – 아담가정에 있어서의 메시아를 위한 기대와 그의 상실

Ⅲ. 아담가정에 있어서의 메시아를 위한 기대와 그의 상실
3.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IN ADAM’S FAMILY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한 터 위에서’실체기대’를 세움으로써 이루어진다.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is established by first restoring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of faith and then establishing the foundation of substance.

그리고 헌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믿음의 기대’는 ‘상징헌제(象徵獻祭)’를 뜻맞게 드림으로써 복귀되고,
With regard to their requisite sacrifices, the foundation of faith is restored by making an acceptable symbolic offering,

‘실체기대’는 ‘실체헌제(實體獻祭)’를 뜻맞게 드림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an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is established by making an acceptable substantial offering.

그러면 이제 ‘상징헌제’ 및 ‘실체헌제’의 의의와 그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Let us examine the meaning and purpose of the symbolic offering and the substantial offering.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인 3 대축복(三大祝福)은,
The three great blessings, which are God’s purpose of creation,

아담과 해와가 각각 개성을 완성하여 부부를 이루어야 하고, 다음으로는 자녀를 번식하여 가정을 이루어야 하며,
were to be realized when Adam and Eve, having perfected their individual character, became husband and wife.

더 나아가 그들이 만물을 주관하게 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They were to give birth to good children, raise a good family, and master the natural world.

그러나 타락으로 인하여 그 3 대 축복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However, due to the Fall, the three great blessings were lost.

그것을 복귀하기 위하여는 그와 반대의 경로를 따라,
The way to restore them requires us to take the opposite course.

먼저 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과 인간을 복귀하기 위한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동시에 세워주는 ‘상징헌제’를 드림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세워야 한다.
First, we must establish the foundation of faith by making the symbolic offering, which fulfills a condition of indemnity for the restoration of all things and a condition of indemnity for the symbolic restoration of people.

다음으로는 자녀를 복귀하고 그 위에 부모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蕩減條件)을 동시에 세워주는 ‘실체헌제’를 드림으로써 실체기대를 세워 가지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야 된다.
Next, we must establish the foundation of substance by making the substantial offering, which fulfills an indemnity condition for the restoration of first the children and then the parents. On this basis, we can establish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그러므로 우리는 ‘상징헌제’의 의의와 그 목적을 두 가지로 잘라서 생각할 수 있다.
We can consider the meaning and purpose of the symbolic offering in two ways.

이미 타락론(墮落論)에서 논술한 바와같이,
First, as discussed above,(cf. Fall 4.1)

사탄이 타락인간(墮落人間)을 주관하게 됨을 인하여, 그는 인간이 주관해야할 만물세계(萬物世界)까지도 주관하게 되었던 것이다.
Satan gained dominion over the natural world through his domination of human beings, its rightful rulers.

성서의 만물이 탄식한다고 기록되어 있는 원인은 여기에 있다(로마서 8 장 22 절).
For this reason it is written, “the whole creation has been groaning in travail.”(Rom. 8:22)

그러므로 만물로써 ‘상징헌제(象徵獻祭)’를 드리는 첫째 목적은, 하나님의 상징적 실체상인 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려는 데 있는 것이다.
It fulfills an indemnity condition for the restoration of the natural world to its original relationship with God.

그리고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서 만물보다도 거짓된 자리에 떨어졌으므로(예레미아 17 장 9 절),
Second, since human beings fell to a position lower than the things of creation,
(Jer. 17:9 )

이러한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는,
in order for them to come before God, they must go through all things.

창조원리적(創造原理的)인 질서에 준하여 자기보다도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있는 존재인 만물을 통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This follows from the Principle of Creation, which requires that one approach God through that which is closer to Him.

따라서 ‘상징헌제’를 드리는 둘째의 목적은, 실체인간을 하나님 앞에 복귀하기 위한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려는데 있는 것이다.
The second purpose for making the symbolic offering is thus to fulfill an indemnity condition for the symbolic restoration of human beings.

다음으로 ‘상징헌제(象徵獻祭)’는 어디까지나 내적인 헌제이므로,
The substantial offering, on the other hand, is an internal offering.

만물과 인간의 창조의 순서가 그러했듯이, 외적인 ‘상징헌제’를 뜻맞게 드린 기대(基臺) 위에서만 이루어지게 된다.
Following the order of creation, in which God created all things first and human beings afterwards, this internal offering to restore human beings can only be made on the basis of an acceptable symbolic offering.

그러므로 ‘상징헌제’를 뜻맞게 드림으로써, 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과 인간을 복귀하기 위한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동시에 세운 후에,
After the symbolic offering fulfills an indemnity condition both for the restoration of all things and for the symbolic restoration of human beings,

이 기대 위에서 다시 인간을 실체적으로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으로서, ‘실체헌제’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we must make the substantial offering, which fulfills an indemnity condition for the complete restoration of human beings.

‘실체헌제(實體獻祭)’는 실체인간을 복귀하기 위하여, ‘타락성을 벗기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The substantial offering means fulfilling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This is essential for the actual restoration of human beings.

그리하여 가인적인 존재가 아벨적인 존재를 실체로 헌제하여 자녀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게
되면, 그것이 바로 아래에 밝혀져 있는 바와같이 부모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으로도 세워지게 되기 때문에, ‘실체헌제’는 뜻맞는 헌제가 되는 것이다.
The substantial offering is carried out when a person in Cain’s position honors the person in Abel’s position and sets him above himself as an offering.Through this, they fulfill the indemnity condition to be restored as good children. At the same time, it is also reckoned as the indemnity condition for the restoration of their parents. In this manner, the substantial offering can meet God’s expectation.

아담가정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기 위하여는, 아담 자신이 먼저’상징헌제(象徵獻祭)’를 하여 ‘믿음의 기대’를 세워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이미 논술한 바와같이 아담부터 헌제를 하지 못하였던 것은, 아담이 헌제를 하면, 그 제물은 하나님과 사탄의 두 주인이 대하게 되어 비원리적인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How can we understand the indemnity condition for the restoration of the parents? To establish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in Adam’s family, Adam should have been the one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faith by making the symbolic offering. However, as explained above, Adam could not make the offering, because if he had tried, his two masters, God and Satan, would have contended over it—an unprincipled situation.

그 밖에도 여기에는 심정적인 면에서의 이유가 또 한 가지 있다.
In addition, there is another reason from the aspect of feeling and heart.

타락한 아담은 사실상 하나님에게 천추만대(千秋萬代)에 이르는 슬픔을 안기어 드린 죄악의 장본인이었다.
In addition, there is another reason from the aspect of feeling and heart. Fallen Adam was the very sinner who caused God the heartache and grief which was to last many thousands of years.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이 직접 대하시어 복귀섭리(復歸攝理)를 하실 수 있는 심정적인 대상이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He was not worthy to be the beloved of God’s Heart, with whom God could work directly to further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 대신으로 그의 차자(次子) 아벨을 세워서, ‘상징헌제’를 드리게 하셨다.
Accordingly, God chose Adam’s second son Abel in his stead and had Abel make the symbolic offering.

이렇게 하여 먼저 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과 또 인간을 복귀하기 위한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동시에 세운 기대 위에서,
Abel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s for the restoration of all things and the symbolic restoration of human beings.

가인과 아벨이 ‘실체헌제(實體獻祭)’로써 자녀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웠더면,
If Cain and Abel had then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for the restoration of the children by making an acceptable substantial offering,

부모된 아담은 그 실체기대 위에 서게 되어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그 때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their father Adam would have shared in the victory of this foundation of substance. Thus, Adam’s family would have established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그런데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것으로써 ‘실체헌제’를 하기 위하여서는,
Before the substantial offering can be made, the central figure of the offering,

그 헌제의 중심인물(中心人物)이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the one who is to be offered, must be chosen.

그러므로 아벨의 상징헌제에는, 아담대신으로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한 것과, 또 아벨을 실체헌제의 중심인물로 결정하기 위한 것의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God had Abel make the symbolic offering for two reasons: first, to have him establish the foundation of faith in Adam’s place; second, to qualify him to be the central figure of the substantial offering.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은 가인이 세워야 했는데,
Cain was the one to fulfill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이것이 어찌하여 아담가정 전체가 세우는 결과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yet his accomplishment would have resulted in the entire family of Adam fulfilling the condition. How was this possible?

그것은 마치 인간조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It may be compared to the situation of the first human ancestors,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을 것이었고,
who could have helped God accomplish His entire Will had they obeyed His Word.

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예수님의 뜻이 이루어졌을 것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It may also be compared to the situation of the Jewish people of Jesus’ day, who could have helped Jesus accomplish his will to bring complete salvation to humankind had they believed in him.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 굴복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If Cain had yielded to Abel and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가인과 아벨이 다 함께 자녀로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운 입장에 서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both children would have been regarded as having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gether.

한편 또 가인과 아벨은 선악(善惡)의 모체인 아담을 분립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Cain and Abel were the offspring of Adam, the embodiment of both good and evil.

그들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사탄을 분립하였더라면, 그 부모된 아담은 사탄을 분립한 그 입장에서,
Had they unshackled themselves from Satan’s chains by fulfilling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then Adam, their father, also could have separated from Satan and stood upon the foundation of substance.

먼저 실체기대(實體基臺) 위에 서게 되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었을 것이다.
Thus,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would have been established by the family as a whole.

이와같이 부모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은, 상징헌제(象徵獻祭)와 실체헌제(實體獻祭)로써 세워지는 것이다.
In short, had Cain and Abel succeeded in making the symbolic and substantial offerings, the indemnity condition for the restoration of the parents would have been fulfilled.

그런데 아벨이 뜻맞는 헌제를 함으로써,
When Abel made his sacrifice in a manner acceptable to God,

아담을 중심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조건과 ‘실체헌제’를 드리기 위한 중심인물로서의 아벨의 입장은 세워졌었다.
he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store Adam’s foundation of faith and firmly secured his position as the central figure of the substantial offering.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서,
However, when Cain murdered Abel,

그들은 천사장(天使長)이 해와를 타락시킨 것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they re-enacted the Fall, in which the Archangel murdered Eve spiritually.

그리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게 됨으로써 ‘실체헌제’에 실패하여,
Needless to say, they did not fulfill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failed to make the substantial offering.

실체기대를 세우지 못하게 됨에 따라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Hence, neither the foundation of substance nor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could be established.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in Adam’s family came to nau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