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Part 1. Chapter 4. The Messiah: His Advent and the Purpose of His Second Coming 1-3 JESUS’ DEATH ON THE CROSS –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

Ⅲ.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
3. JESUS’ DEATH ON THE CROSS

우리는 먼저 성경 상에 나타난 사도(使徒)들의 언행(言行)을 중심 삼고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의 죽음이 당연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Was Jesus’ death on the cross the most desired Will of God? Let us first examine the words and deeds of the disciples as recorded in the Bible.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느낀 뚜렷한 하나의 정염(情念)이 있었으니,
There was one unanimous feeling evident among the disciples concerning the death of Jesus: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억울하게 여김으로써 분개하고 서러워 했다는 것이다.
they were grief-stricken and indignant.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 준 유대인들의 무지와 불신을 통분이 여겼으며,
Stephen, for example, burned with indignation over the ignorance and disbelief of the Jewish leaders,

그들의 행위를 패역무도(悖逆無道)한 것으로 여겨 저주하였다(사도행전 7 장 51 – 53 절).
and he condemned their actions, calling them murderers and rebels.(Acts 7:51-53)

그뿐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기독교 신도들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내려왔던 것이다.
Christians since then have commonly shared the same feelings as the disciples of Jesus’ day.

만일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예정에서 온필연적인 결과였다면,
then it might have been natural for the disciples to grieve over his death,

사도들이 그의 죽음을 서러워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인정이겠지만,하나님의 예정대로 이루어진 그 섭리(攝理)의
결과에 대해서 그렇게도 분개하고 저주했을 리는 없는 것이다.
but they would not have been so bitterly resentful over it,nor so angry at those Jewish leaders who caused it.

이것으로 보아 예수님은 온당치 않은 죽음의 길을 걸어가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We can infer from their bitter reaction that Jesus’ death was unjust and undue.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과연 하나님의 예정(豫定)에서 되어진 필연적인 결과였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Next, let us examine from the viewpoint of God’s providence whether the crucifixion of Jesus was inevitable as the predestined Will of God.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선민을 부르시어
God called the chosen people of Israel out of the descendants of Abraham.

저들을 보호 육성하시고, 때로는 그들을 고난과 시련으로써 인도하셨다.
He protected them, nurtured them, and at times disciplined them with tribulations and trials.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시어 위로하시며, 장차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굳게 약속하셨던 것이다.
God sent prophets to comfort them with the unshakable promise that one day He would send them a Messiah.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성막(聖幕)과 성전(聖殿)을 지음으로써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게 하시고,
He prepared them to receive the Messiah by having them build the Tabernacle and the Temple.

동방박사(東方博士) 시므온, 안나, 세례요한 등을 보내시어 메시아의 탄생과 그의 현현을 널리 증거 하셨던 것이다.
When Jesus was born, God proclaimed his advent. He sent the three wise men from the East as well as Simeon, Anna, John the Baptist and others to testify widely.

특히 세례요한에 대해서는 그가 잉태(孕胎)될 때 천사(天使)가 나타나서 증거한 사실을 유대인들이 다 알고 있었고
(누가복음 1 장 13 절),
Concerning John the Baptist in particular, many people knew that an angel had appeared and testified to his conception.
(Luke 1:13 )

그가 출생할 때에 되어진 이적은 당시의 유대 성중(城中)을 크게 놀라게 하였다(누가복음 1 장 63 절 – 66 절).
The miracles surrounding his birth stirred all of Judea in expectation. (Luke 1:63-66)

뿐만 아니라 광야에 있어서의 그의 수도생활(修道生活)은 모든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가 메시아가 아닌 가고 생각케 할 정도로 놀랄만한 것이었다(누가복음 3 장 15 절).
Furthermore, John’s ascetic life in the wilderness was so impressive that many people questioned in their hearts whether perhaps he was the Christ. (Luke 3:15)

하나님이 이렇듯 위대한 세례요한까지 보내시어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 하게 하셨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유대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God’s purpose behind sending such a great personality as John the Baptist to bear witness to Jesus as the Messiah was to encourage the Jewish people to believe in Jesus.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 어디까지나 이스라엘로 하여금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하려는 데 있었기 때문에,
Since God’s Will was thus to have the Jewish people of that time believe that Jesus was their Messiah, the Jewish people,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할 이스라엘은 그를 메시아로 믿어야만 했었다.
who were trained to live by God’s Will, should have believed in him. Had they believed in him as God desired,

만일 저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다면,
would they have even entertained the thought of sending him to the cross?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고대해 왔던 그 메시아를 누가 십자가(十字架)에 내주었을 것인가?
Would they have wanted any harm to come to the Messiah whom they had so long and eagerly awaited?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 길에 내준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반(反)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However, because they went against God’s Will and did not believe that Jesus was the Messiah, he was delivered to be crucified.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길을 가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We must understand, therefore, that Jesus did not come to die on the cross.

다음으로 우리는 예수님 자신의 언행(言行)으로 보아서,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 과연 메시아로 오셨던 그 전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길이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Next, let us examine the words and deeds of Jesus himself to ascertain whether his crucifixion was in fact the way to completely accomplish his mission as the Messiah.

하나님의 모든 섭리가 그러했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기를 메시아로 믿을 수 있도록 언행하셨다는 것을,
Jesus’ words and deeds were meant to engender belief on the part of the people that he was the Messiah.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서 분명히 알 수 있다.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물었을 때,
For example, when the people asked him what they must do to be doing the works of God,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한복음 6 장 29 절)고 대답하셨다.
Jesus replied: This is the work of God, that you believe in him whom he has sent. —John 6:29

예수님은 또 유대인들의 배신행위를 가슴아프게 생각하시고, 호소할 곳이 없어 성을 바라보고 우시면서,
One day, when he was agonizing over the Pharisees’ disbelief and having no one with whom to share his heart, Jesus looked down sadly over the city of Jerusalem.

하나님이 2 천년 동안이나 애쓰시며 사랑으로 이끌어 온 이스라엘선민은 두말할것도 없고,
He wept as he lamented the fate of the Jewish people, whom God had so laboriously and lovingly guided for two thousand years.

이 성마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겨지지 않을 정도로 멸망해 버리고 말 것이라고 저주하시면서,
Jesus prophesied that the city would be so utterly laid waste that not one stone would be left upon another.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누가복음 19 장 41 – 44 절)고, 명백히 그 무지를 지적하셨던 것이다.
He clearly pointed to the ignorance of the people, saying, “you did not know the time of your visitation.”(Luke 19:44 )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태복음 23 장 37 절)라고 하시어,
그들의 완고와 불신을 한탄하셨던 것이다.
On another occasion, Jesus lamented the stubbornness and disbelief of the people of Jerusalem, saying: O Jerusalem, Jerusalem, killing the prophets and stoning those who are sent to you! How often would I have gathered your children together as a hen gathers her brood under her wings, and you would not! —Matt. 23:37

예수님은 자기를 위하여 증거하고 있는 성경을 보면서도,
Jesus reproached the people who refused to believe in him,

믿지 못하는 그들의 무지를 책망하시면서
even though they were familiar with the Scriptures which testified to him: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You search the scriptures, because you think that in them you have eternal life; and it is they that bear witness to me;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도다(요한복음 5 장 39 – 40 절)라고 슬퍼하셨다.
yet you refuse to come to me that you may have life. —John 5:39-40

그는 또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치 아니하나라고 서러워하시면서,
I have come in my Father’s name, and you do not receive me

이어 모세를 믿었다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한복음 5 장 43 – 46 절)
고도 말씀하셨던것이다.
if you believed Moses, you would believe me, for he wrote of me. —John 5:43-46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을 돌이키시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적(異蹟)과 기사(奇事)를 보여주셨던가.
How many miracles and signs did Jesus perform in his desperate efforts to lift the people from their disbelief!

그러나 그들은 그 놀라운 일들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바알세불이 접한 자라고 비난하지 않았던가(마태복음 12 장 24 절).
Yet, even as they were witnessing the wondrous works of Jesus, the religious leaders mocked him as one possessed by Beelzebul. (Matt. 12:24)

그리고 이러한 비참한 정경(情景)을 보시는 예수님은 때로는 나를 믿지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한복음 10 장 38 절)고도 말씀하셨다.
In the midst of such a wretched situation, Jesus cried out: Even though you do not believe me,believe the works, that you may know and understand that the Father is in me and I am in the Father. —John 10:38

그런가 하면 때로는 그들에게 화가 있으라고, 분노를 퍼붓기도 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23 장 13 – 36 절).
Then, confronting his opponents, he scathingly denounced their hypocrisy. Matt. (23:13-36 )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를 믿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도 이와 같이 저들에게 자기를
믿을 수 있도록 언행을 하셨던 것이다.
Through his words and deeds, Jesus tried to bring his people to believe in him, because it was God’s Will that they do so.

만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리고 예수님이 원하신 대로 그를 메시아로 믿었다면, 누가 그를 십자가의 죽음 길로 몰아냈을 것인가 !
If they had followed If they had followed God’s Will and believed in Jesus as their Messiah, then who among them would have dared to send him to the cross?

우리는 위에서 논증한 모든 사실로 보아,
From all the above evidence,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가 메시아로 오셨던 전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예정에서 온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we can deduce that Jesus’ death on the cross was the unfortunate outcome of the ignorance and disbelief of the people of his day;

유대인들의 무지와 불신의 결과로 온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it was not necessary for the complete fulfillment of his mission as the Messiah.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2 장 8 절 의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는 성구는, 바로 이 사실을 충분히 증거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라 하겠다.
This is well illustrated by Jesus’ last words on the cross: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know not what they do. —Luke 23:34

만일 예수님의 십자가 노정이 하나님께서 본래부터 예정하신 길이었다면,
If God had originally predestined Jesus to die on the cross, Jesus would have expected to go that path as his due course.

그는 당연히 가셔야 할 길을 걸어가시면서 무엇 때문에 할만 하면 그 죽음의 잔을 면케 해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를 올리셨을 것인가(마태복음 26 장 39 절).
Why, then, did he pray three times, “My Father, if it be possible, let this cup pass from me; nevertheless, not as I will, but as thou wilt”?(Matt. 26:39) In truth, Jesus offered those desperate prayers because he knew well that his death

실상 그것은 인간이 타락(墮落)된 이후, 4 천년 동안이나 하나님께서 이루시려고 애쓰셨던 지상천국이 유대인의
불신으로 말미암아이루어지지 않고,
would shatter the hope of attaining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This would be a tragic disappointment to God, who had worked so laboriously to realize this hope through the long ages since the Fall.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실 때까지 고난의 역사가 그대로 연장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Furthermore, Jesus knew that humanity’s afflictions would continue unrelieved until the time of his Second Coming.

요한복음 3 장 14 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말씀하셨다.
Jesus said,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John 3:14)

이스라엘민족이 애급(埃及)에서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때,
When the Israelites lost faith in Moses on the way to Canaan,

광야(曠野)에서 모세를 믿지 않게 되자, 불 뱀이 나와서 그들을 물어 죽이게 되었기 때문에,
fiery serpents appeared and began to kill them . God commanded Moses to make a bronze serpent and set it on a pole,

하나님은 구리뱀을 장대 끝에 달게 하여 그것을 쳐다본 사람은 살게 하셨다.
so that all who looked upon the serpent might live.(Num. 21:4-9)

마찬가지로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써 만민이 지옥으로 가야만 하게 되었기 때문에,
Similarly, Jesus foresaw that due to the chosen people’s failure to believe in him, humankind would be consigned to hell.

장차 예수님이 리과 같이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신 후, 그것을 쳐다보고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을 예견(豫見)하시면서 예수님은 서글픈 심정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He foresaw that he would then be nailed to the cross like the bronze serpent in order to save all humankind, granting salvation to all who look to him. Foreseeing this eventuality, Jesus uttered this foreboding prophecy with a mournful heart.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누가복음 19 장 44 절) 그가 돌아가신 후 이스라엘선민이 衰亡한 것을 보아도,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nother indication that Jesus’ death on the cross was not the Will of God, but rather due to the disbelief of the people, is that Israel declined after the crucifixion.17. (Luke 19:44)

이사야 9 장 6 절이하에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For to us a child is born, to us a son is given; and the government will be upon his shoulder, and his name wi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or, Mighty God, Everlasting Father, Prince of Peace.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 Of the increase of his government and of peace there will be no end, upon the throne of David, and over his kingdom, to establish it, and to uphold it with justice and with righteousness from this time forth and for evermore. The zeal of the Lord of hosts will do this. —Isa. 9:6-7

이것은 예수님이 다윗왕의 위(位)를 가지고 오셔서, 영원히멸하지 않을 왕국을 세우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다.
After all, it had been prophesied that Christ would come and sit on the throne of David and establish an everlasting kingdom:

그러므로 예수님이 잉태될 때에도,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An angel appeared to Mary prior to Jesus’ conception and made a similar prediction: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누가복음 1 장 31 – 33 절)는 말씀을 전하였던 것이다.
Behold, you will conceive in your womb and bear a son, and you shall call his name Jesus. He will be great, and will be called the Son of the Most High; and the Lord God will give to him the throne of his father David, and he will reign over the house of Jacob forever; and of his kingdom there will be no end. —Luke 1:31-33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스라엘선민을 불러, 2 천년간이나 고난 가운데서 이끌어 나오신 것은,
God’s clear intention for the chosen people of Israel, whom He had led through all manner of difficulty from the time of Abraham,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내시어 영원히 존속할 왕국을 이룩하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was to send them a Messiah and build an eternal Kingdom on earth.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다가 유대인들에게 몰려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Nevertheless, when the Jewish leadership persecuted Jesus and led him to the cross,

저들은 선민의 자격을 잃어버리고 지리멸렬(支離滅裂)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민족적인 학대를 받아 나왔다.
Israel lost its qualification to be the founding nation of God’s Kingdom. Within a few generations, the people of Israel would be scattered overthe face of the earth. They have suffered oppression and persecution ever since.

이것은 그들이 신봉(信奉)해야 할 메시아를 도리어 살해함으로써,구원섭리(救援攝理)의 목적을 이루시지 못하게
하였던 그 범죄에 대한 벌이었던 것이다.
This can be viewed as the tragic consequence of the mistake their ancestors committed when they condemned to death the Messiah, whom they should have honored, thereby preventing the completion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뿐만 아니라 예수님 이후 수많은 성도들이 당하여 온 십자가의 고난도, 예수님을 살해한 연대적 범죄(連帶的 犯罪)에 대한 형벌이었던 것이다.
Moreover, not only the Jews, but also many faithful Christians have shouldered the cross as their portion for the collective sin of having killed 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