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Part 1. Chapter 3. Eschatology and Human History 5-1 THE LAST DAYS, THE NEW TRUTH AND OUR ATTITUDE – 말세와 새 말씀과 우리의 자세

제 5 절 말세와 새 말씀과 우리의 자세
SECTION 5 THE LAST DAYS, THE NEW TRUTH AND OUR ATTITUDE

1. 말세와 새 진리
1. THE LAST DAYS AND THE NEW TRUTH

타락인간(墮落人間)은 종교에 의하여, 신령(神靈)과 진리(眞理)로써(요한복음 4 장 23 절) 그의 심령(心靈)과 지능(知能)을 깨우쳐서 그의 내적인 무지를 타개하여 나간다.
Fallen people have been overcoming their internal ignorance by enlightening their spirituality and intellect with “spirit and truth” through religion.

그런데 진리에 있어서도 내적인 무지를 타개하는 종교에 의한 내적인 진리와 외적인 무지를 타개하는 과학에 의한 외적인 진리의 두 면이 있다.
“Truth” may be divided into two types: internal truth as taught by religion, which helps people overcome internal ignorance, and external truth as obtained through science, which helps people overcome external ignorance.

따라서 지능에도 내적인 진리에 의하여 깨우쳐지는 내적인 지능과 외적인 진리에 의하여 깨우쳐지는 외적인 지능의 두 면이 있는 것이다.
Accordingly, we can discern two aspects within the intellect: the internal intellect, awakened by internal truth, and the external intellect, awakened by external truth.

그러므로 내적인 지능은 내적인 진리를 찾아 종교를 세워 나아가고, 외적인 지능은 외적인 진리를 찾아서 과학을 세워 나아가는 것이다.
Religions develop as the internal intellect pursues internal truth, while science advances as the external intellect pursues external truth.

신령은 무형세계(無形世界)에 관한 사실들이 영적 오관(五官)에 의하여 영인체(靈人體)에 영적으로 인식되었다가,
“Spirit” in this context denotes the inspiration of Heaven. Cognition of a spiritual reality begins when it is perceived through the five senses of the spirit self.

이것이 다시 육적 오관에 공명되어 생리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며,
These perceptions resonate through the five physical senses and are felt physiologically.

진리는 유형세계(有形世界)로부터 직접 인간의 생리적인 감각기관에 의하여 인식되는 것이다.
Cognition of truth, on the other hand, arises from the knowledge gleaned from the physical world as it is perceived directly through our physiological sense organs.

따라서 인식도 영육(靈肉) 양면의 과정을 거쳐서 오게 된다.
Cognition thus takes place through both spiritual and physical processes.

인간은 영인체와 육신이 합해야만 완전한 인간이 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Human beings become complete only when their spirit self and physical self are unified.

영적 과정에 의한 신령과 육적 과정에 의한 진리가 완전히 조화되어 심령과 지능이 아울러 깨우쳐짐으로써,
Hence, the experience of divine inspiration gained through spiritual cognition and the knowledge of truth obtained through physical cognition should become fully harmonized and awaken the spirituality and intellect together.

이 두 과정을 통해 온 양면의 인식이 완전히 일치될 때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과 전피조세계(全被造世界)에 관하여 완전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It is only when the spiritual and physical dimensions of cognition resonate together that we can thoroughly comprehend God and the universe.

이와 같이 하나님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지에 빠진 인간으로 하여금, 신령과 진리에 의하여 심령과 지능을 아울러 깨우치게 함으로써,
God thus assists ignorant, fallen people to elevate their spirituality and enlighten their intellect through spirit and truth.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여 나아가는 섭리를 하신다.
By these means, God conducts His providence to restore people to the original state before the Fall.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이러한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아서, 그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높아지게 되는 것이므로,
In the course of history, people’s spiritual and intellectual levels have gradually been elevated due to the merit of the age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그를 깨우치기 위한 신령(神靈)과 진리(眞理)도 또한 점차로 그 정도를 높이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Hence, the quality of spiritual experience and the depth of religious and scientific knowledge have risen accordingly.

그러므로 신령과 진리는 유일(唯一)하고 영원불변(永遠不變)하지만,
Spirit and truth are unique, eternal and unchanging.

무지한 상태로부터 점차 복귀되어 나아가는 인간에게, 그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범위나 그것을 표현하는 정도나 방법은 시대를 따라 달리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38~139
However, the degree and scope of their teaching and the means of their expression will vary from one age to another as they restore humankind from a state of utter ignorance.

예를 들면, 인간이 아직도 몽매하여 진리를 직접 받을 수 없었던 구약 전 시대(舊約前時代)에는,
For example, in the age prior to the Old Testament, when people were still unenlightened and could not directly receive the Word of truth,

진리 대신으로 제물(祭物)을 드리게 하셨고,
God commanded them to make sacrificial offerings as a substitute for the Word.

인간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높아짐에 따라 모세 때는 율법(律法)을,
In the course of time, the spirituality and intellect of human beings were elevated to the point when, in Moses’ day, God granted them the Law,

예수님 때는 복음(福音)을 주셨다.
and at the time of Jesus He gave the Gospel.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말씀을 진리라고 하시지 않고, 그 자신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다(요한복음 14 장 6 절).
Jesus made it clear that his words were not the truth itself; rather, he declared that he himself was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John 14:6)

왜냐 하면 그의 말씀은 어디까지나 진리 되신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어서
Jesus was the incarnation of the truth. His words were just a means by which he expressed himself.

그 말씀을 받는 대상에 따라서 그 범위와 정도와 방법을 달리하시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Thus, the scope and depth of Jesus’ words and the method of his teaching varied according to whom he was speaking.

이러한 의미에서, 성서의 문자는 진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요 진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only one means of expressing the truth and are not the truth itself.

이러한 견지에 입각해 볼 때, 신약성서(新約聖書)는 지금으로부터 2 천년 전에 있어,
The New Testament is but an interim textbook given to enlighten the people of two thousand years ago,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대단히 저급(低級)하였을 때의 인간들로 하여금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해 주셨던 하나의 과정적인 교과서(敎科書)였음을 알 수 있다.
whose spiritual and intellectual levels were far lower than today.

그렇다면 그 당시의 사람들을 깨우치기에 알맞도록 주셨던, 한정된 범위 내에서의 비유 또는 상징적인 표현방법 그대로를 가지고, 현대 과학 문명인(文明人)들의 진리욕구(眞理慾求)를 완전히 충족시킨다는 것은 결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The modern, scientific-minded thirst for the truth cannot be satisfied by expressions of truth which are limited in scope and couched in symbols and parables aimed specifically at instructing the people of an earlier age.

따라서 오늘날의 지성인(知性人)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는, 보다 고차원적인 내용과 과학적인 표현방법에 의한 것이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
For modern, intellectual people to be enlightened in the truth, there must appear another textbook of higher and richer content, with a more scientific method of expression.

이것을 우리는 새 진리라고 부른다.
We call this the new truth.

그리고 이 새 진리는 이미 총서(總序)에서 말한 바, 인간의 내 외 양면의 무지를 타개하기 위하여, 종교와 과학을 하나의 통일된 과제로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는 안된다.
This truth, as discussed previously,82 must be able to reconcile science and religion as one united undertaking in order to overcome the internal and external aspects of people’s ignorance.

새 진리가 나와 야 할 이유를 또 다른 면에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Let us examine some other reasons a new expression of truth must appear.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성서(聖書)는 진리 자체가 아니라 그 진리를 가르쳐주는 하나의 교과서인 것이다.
The Bible, as was noted, is not the truth itself, but rather is a textbook teaching the truth.

그런데 이 교과서에는 그 진리의 중요한 부분이 거의 상징과 비유로 표현되어 있다.
It renders important parts of the truth in symbols and in parables.

따라서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에는 사람에 따라 서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차이로 말미암아 많은 교파(敎派)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Since these are open to various interpretations, there have arisen numerous disagreements among believers, causing them to divide into many denominations.

따라서 교파 분열의 제 1 원인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성서 자체에 있기 때문에, 그 분열과 싸움은 계속 확대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The primary cause of denominational divisions lies in the character of the Bible, not in the people.

그러므로 새 진리가 나와서 상징과 비유로 되어 있는 성경의 근본내용을 누구나 공인(公認)할 수 있도록 해명하지 않는 한, 교파분열과 그 싸움의 길은 막을 수 없을 것이며,
The strife between denominations will only grow more intractable unless a new truth emerges which can elucidate the symbols and parables obscuring the essential truths of the Bible.

따라서 기독교의 통일에 의한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Without this new truth, God’s providence, which comes through the unification of Christianity, can never reach its goal.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요한복음 16 장 25 절)는 말씀으로써, 끝날에 이르면 다시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이다.
This is why Jesus promised that in the Last Days he will give us the new Word of truth:
I have said this to you in figures; the hour is coming when I shall no longer speak to you in figures but tell you plainly of the Father.— John 16:25

예수님은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한복음 3 장 12 절)고하신 말씀대로,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하실 말씀을 못다 하시고 십자가(十字架)에 돌아가셨다.
Due to the disbelief of the people of his time, Jesus died on the cross without being able to teach all that was in his heart. As he said, “If I have told you earthly things and you do not believe, how can you believe if I tell you heavenly things?” (John 3:12)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까지도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한복음 16 장 12 절)고 하심으로써 속에 있는 말씀을 다하시지 못하는 서러운 심정을 토로하셨던 것이다.
What is more, Jesus added, “I have yet many things to say to you, but you cannot bear them now,” (John 16:12 ) disclosing how sorrowful he was about the inability of even his closestdisciples to receive all that he wanted to share.

그러나 예수님은 못다 하시고 돌아가셨던 그 말씀은 영원히 비밀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forever a secret, but one day will be divulged through the Holy Spirit as
a new expression of truth.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 장 13 절)고 계속하여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 말씀은 반드시 성령(聖靈)에 의하여 새로운 진리로써 가르쳐 주시게 되어 있는 것이다.
As Jesus said: When the Spirit of truth comes, he will guide you into all truth; for he will not speak on his own authority, but whatever he hears he will speak, and he will declare to you the things that are to come. —John 16:13

그리고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요한계시록 5 장 1 절)고도 기록되어 있는 바로 그 책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신 그 말씀이 인봉(印封)되어 있는 것이다.
Moreover, it is written: I saw in the right hand of him who was seated on the throne a scroll written within and on the back, sealed with seven seals. —Rev. 5:1 The words that Jesus wanted to give us are written down and sealed in this very scroll.

이에 계속하여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면,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 능히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여 요한이 애곡(哀哭)할 때에,
When John wept because he could not find anyone worthy to open the scroll and read it in heaven, on earth or under the earth, one of the elders said,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요한계시록 5 정 3 – 5 절)고 말씀하셨다.
“Weep not; lo, the Lion of the tribe of Judah, the Root of David, has conquered, so that he can open the scroll and its seven seals.” (Rev. 5:3-5)

여기의 다윗의 뿌리에서 탄생한 사자(獅子)는 바로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The Lion of the tribe of Judah, the Root of David, signifies Christ.

이와 같이 그리스도가 인류 앞에 오랫동안 일곱 인(印)으로 봉하여 비밀로 남겨 두셨던 그 말씀의 인봉을 떼시어,
The day must come when Christ will open the seven seals of the scroll, whose contents have long remained secret to humankind,

성도들에게 새로운 진리의 말씀으로 주실 때가 와야 할 것이기 때문에,
and reveal to the faithful the words of the new truth.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요한계시록 10 장 11 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기에 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This is why it is written, “You must again prophesy about many peoples and nations and tongues and kings.” (Rev. 10:11 )It is also prophesied that in the Last Days: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사도행전 2 장 17 – 18 절)라고도 말씀하셨던 것이다.
I will pour out my Spirit upon all flesh, and your sons and your daughters shall prophesy, and your young men shall see visions, and your old men shall dream dreams. —Acts 2:17

이와 같이 여러모로 보아서 말세(末世)에는 반드시 새 진리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For all these reasons, we can expect the appearance of a new expression of truth in the Last Days.


2. 말세에 처한 우리들이 취할 자세
2. OUR ATTITUDE IN THE LAST DAYS

복귀섭리역사(復歸攝理歷史)의 흐름을 보면, 낡은 것이 끝나려 할 때 새로운 것은 시작된다.
When we examine the progress of history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we find that a new dispensation begins when the old dispensation is about to end.

따라서 낡은 것이 끝나는 점이 바로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점이기도 하다.
Accordingly, the beginning of the new overlaps the conclusion of the old;

그러므로 낡은 역사의 종말기(終末期)는 바로 새 역사의 시창기(始創期)가 된다.
As darkness falls on the old history, the new history is already dawning.

그리고 이러한 시기는, 같은 점에서 출발하여 각각 그 목적을 달리하여 가지고, 세계적인 결실을 하게 된 善과 악(惡)의 두 주권이 서로 교차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At such a time, the good and evil sovereignties, which had their origins at the same point yet pursued contrary purposes and have each borne their fruits on the world level, come to the point of intersection.

그러므로 이 시대에 처한 인간들은, 내적으로는 이념(理念)과 사상(思想)의 결핍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와 혼돈 속에 빠지게 되며,
Hence, those who live in this period suffer internally from anxiety, fear and confusion due to the absence of a guiding ideology or philosophy.

외적으로는 무기로 인한 알력과 투쟁 속에서 떨게 될것이다.
They suffer externally from strife and battles fought with fearsome weapons.

따라서 말세에는 나라가 나라를 치고, 민족과 민족이 상쟁하며, 가족들이 서로 결투를 하리라(마태복음 24 장 4 – 9 절)는 성서의 기록대로 온갖 비참한 현상이 실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In the Last Days, disasters and devastation will abound, as Jesus said, “For nation will rise against nation, and kingdom against kingdom, and there will be famines and
earthquakes in various places.” (Matt. 24:7)

말세에 있어서 이와 같은 참상(慘狀)이 일어나는 것은 악주권(惡主權)을 청산하고 선주권(善主權)을 세우기 위한 필연적인 현상이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참상 속에서 새 시대를 이룩하기 위한 선주권의 중심을 반드시 세우시는 것이다.
In the Last Days, it is inevitable that such devastation take place in order to vanquish the power of evil and erect the rule of good. In the midst of such wretchedness, God without fail will establish the center of the emerging good sovereignty in order to usher in a new age.

노아,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예수님 같은 분들은 모두 그러한 새 시대의 중심으로 세워졌던 분들이었다.
Noah, Abraham, Moses and Jesus were among those whom God raised up as
the central figures of their respective new eras.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적인 전환기(轉換期)에 있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새 역사의 동참자가 되기 위하여는, 하나님이 세우신 새 역사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Today, at this historical transition period, we must find the person whom God has designated as the central figure of the new dispensation in order that we might participate in this new age and give honor to God’s wishes.

이러한 새 시대의 섭리(攝理)는 낡은 시대를 완전히 청산한 터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시대의 종말기의 환경 속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는 것이므로, 그 시대에 대하여는 상충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The providence of the new age does not begin on the ashes of the old age. On the contrary, the new age sprouts and grows amidst the final phases of the old age and comes into conflict with that age.

따라서 이 섭리는 낡은 시대의 인습(因習)에 젖은 사람에게는 좀처럼 납득되어지지 않는다.
Accordingly, it is difficult for a person steeped in the old tradition to understand or accept the new providence.

새 시대의 섭리를 담당하고 나왔던 성현(聖賢)들이, 모두 그 시대의 희생자가 되어 버렸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This is why the saints and sages leading the dispensation of a new age were often persecuted and martyred as victims of the old age.

그 실 예로서 아직도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종말기였을 때에, 신약시대(新約時代)의 새로운 섭리의 중심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구약 율법주의자(律法主義者)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단자(異端者)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었기 때문에, 종내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살해당하고 마셨다.
Jesus, for example, who inaugurated the New Testament Age, came at the close of the Old Testament Age in such a way as to bewilder the faithful adherents of the Mosaic Law.

예수님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누가복음 5 장 38 절)고 말씀하셨던 이유도 또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This is why Jesus said, “New wine must be put into fresh wineskins.”( Luke 5:38)

이제 예수님은 다시 신약시대의 종말기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한 새로운 섭리의 중심으로 오셔서, 새 시대의 건설을 위한(요한계시록 21 장 1 – 7 절) 새 진리를 주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초림(初臨) 때에 유대인들로부터 바알세불이 접한 사람으로 몰렸듯이(마태복음 12 장 24 절), 재림(再臨) 때도 틀림없이 기독교 신도들에게 몰림을 당할 것이다.
Just as Jesus at his first coming was derided by the Jews as one possessed by Beelzebul, . ( 12:24)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장차 재림하시면 자기가 많은 고난을 받으며, 그 세대에 버린 바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던 것이다(누가복음 17 장 25 절).
he will similarly be persecuted by the Christians when he comes again.
Jesus therefore prophesied that at his Second Advent, “he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is generation.” ( Luke 17:25)

그러므로 역사의 전환기에 있어서, 그대로 낡은 시대의 환경에 집착되어 안도하려는 사람들은, 낡은 시대와 더불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At this historical transition period, those who are comfortably entrenched in the ways of the old age will surely face judgment, along with the old age.

타락된 인간은 신령(神靈)에 대한 감성이 극히 둔하기 때문에,
Fallen people’s spiritual sensibility is extremely dull.

대개 진리 면에 치중하여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을 따라 나가게 된다.
Hence, they generally tend to adhere strictly to the letter of the truth in their efforts
to follow God’s providence.

따라서 이러한 인간들은 흔히 낡은 시대의 진리관(眞理觀)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Such people cannot readily adjust themselves to the dispensation of the new age,

복귀섭리가 새로운 섭리의 시대에로 전환하고 있어도,
even though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is moving toward it.

그들은 이 새 시대의 섭리에 쉽게 감응하여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They are generally too strongly attached to the outdated perspective provided by the doctrines of the old age.

구약성서(舊約聖書)에 집착되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따라 신약시대(新約時代)의 섭리에 호응할 수 없었던 역사적인 사실은 이것을 입증하는 좋은 예라 하겠다.
This is well illustrated by the case of the Jewish people of Jesus’ day who were so attached to the Old Testament that they could not respond to Jesus’ call to open a new chapter of the providence.

그러나 기도로써 신령한 것을 감득할수 있는 성도들은, 새 시대의 섭리를 심령 적으로 알게 되므로,
On the other hand, those believers who receive divine inspiration through prayer are able to grasp spiritually the providence of the new age.

낡은 시대의 진리 면에서는 상충적인 입장에 서면서도 신령을 따라 새 시대의 섭리에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Even though this may put them at odds with the doctrines of the old age, they will still respond to the promptings of the spirit and follow the calling of the new providence.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 중에는,
Among the disciples of Jesus,

구약성서에 집착된 인물은 하나도 없었고 오직 마음에 느껴지는 신령을 따라간 사람들 뿐이었다.
there was not one who was overly attached to the Old Testament Scriptures. Rather, they all responded to the spiritual experiences which they could sense through their inner minds.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나 양심적인 사람들이, 말세(末世)에 있어서 극심한 심령 적인 초조감을 면할 수 없게 되는 이유는,
In the Last Days, people who lead an ardent life of prayer or who live by their conscience will feel intense anxiety in their hearts.

그들이 막연하나마 신령 감득하여서, 마음으로는 새 시대의 섭리를 따르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This is because in their hearts they vaguely sense a spiritual calling and want to follow the providence of the new age,

몸을 이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새 진리에 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yet they have not come in contact with the new truth which can guide them to
act accordingly.

그러므로 신령 적으로 이러한 상태에 처한 신도들이,
These are the chosen ones who,

그들을 새 시대의 섭리에로 이끌어주는 새 진리를 듣기만 하면,
once they hear the new truth,

신령과 진리가 동시에 그들의 심령(心靈)과 지능(知能)을 깨우쳐서,
will be awakened simultaneously in their spirits and intellects by spirit and truth.

새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적인 요구를 완전히 인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그에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They will then fully understand God’s providential needs concerning the new age and will volunteer with great enthusiasm and delight.

그러므로 말세에 처한 현세인(現世人)은 무엇보다도 먼저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를 통하여 신령(神靈)한 것을 감득하도록 힘써야 한다.
We who are alive today are living in the Last Days. We should cultivate a humble heart and make the utmost effort to receive divine inspiration through prayer.

다음으로는 인습적인 관념에 집착되지 알고 우리의 몸을 신령에 호응하게 함으로써,
We should not be strongly attached to conventional concepts, but rather should direct ourselves to be receptive to the spirit,

새 시대의 섭리에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새 진리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
in order that we may find the new truth which can guide us to the providence of the new age.

그리하여 찾아진 그 진리가 완전히 자기의 몸에서 신령과 하나되어,
When we come across this truth, we should ascertain whether it leads us to become one with Heaven’s guidance.

진정한 천적(天的)인 기쁨이 심령의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게 하여 주는가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We should examine ourselves as to whether or not genuine, heavenly bliss springs forth abundantly from the depths of our soul.

이렇게 함으로써만 끝날 의 성도들은 참된 구원(救援)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Only in this way can we, the seekers in the Last Days, discover the path to true salv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