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Part 2. Chapter 2. Moses and Jesus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3.3 THE FAILURE OF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 제 2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3. 제 2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3. THE FAILURE OF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세례요한의 불신(不信)으로 말미암아 제 1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섭리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When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ended in failure due to John the Baptist’s faithlessness,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여 몸소 광야 40 일의 고난을 당하시면서 제 2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셨던 것이다.
Jesus took John’s mission upon himself and suffered hardships in the wilderness for forty days. Thus, Jesus restored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그런데 앞에서 말한 바 3 대 시험(삼대시험(三大試驗))에서 예수님에게 져버린 사탄은 예수님 앞을 얼마 동안 떠났다고 하였다(누가복음 4 장 13 절).
It is written that Satan, who was defeated in the three temptations, left Jesus’ side “until an opportune time,” (Luke 4:13)

사탄이 얼마 동안 떠났다는 말은, 아주 떠난 것이 아니라 다시 예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었다.
indicating that Satan had not left Jesus for good but might confront him at a future date.

과연 사탄은 불신으로 돌아간 제사장(祭司長)과 교법사(敎法師) 등을 중심한 유대민족, 특히 예수님을 판 제자
가룟 유다를 통하여 다시 예수님 앞에 대립하고 나섰던 것이다.
As a matter of fact, Satan did confront Jesus, working primarily through the Jewish leadership, the priests and scribes who disbelieved in Jesus. In particular, Satan confronted Jesus through Judas Iscariot, the disciple who betrayed him.

이와같이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인하여, 제 2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섭리를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룰 수 없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 섭리를위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할 수 없게 되어 제 2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Due to the faithlessness of such people, Jesus could lay neither the foundation of substance nor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for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hus ended in tragic failure.


Ⅲ. 제 3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3.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1. 예수를 중심한 영적 가나안 복귀노정
1. THE SPIRITUAL COURSE TO RESTORE CANAAN UNDER JESUS’ LEADERSHIP

제 3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에 관한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다.
In discussing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we should first understand in what respects this course was different from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이미 위에서 상세히 말한 바와 같이,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의 대상은 메시아의 상징체인 성막(聖幕)이었다.
As was explained in detail, the focus of faith for the Israelites in the third national course was the Tabernacle, the symbol of the Messiah.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모두 불신으로 흘러갔을 때에도,
Even when the Israelites fell into faithlessness,

이 성막만은 모세가 금식 40 일기간으로 세웠던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 여호수아에 의한 정탐 40 일 사탄분립기간으로 조성되었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서, 계속 그 뜻을 받들어 나온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그대로 서 있었던 것이다.
the Tabernacle remained intact, standing upon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which Moses had laid during his forty-day fast. When Moses also became faithless, the Tabernacle remained intact, preserved by Joshua’s stewardship and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which he had laid during the forty-day mission to spy out the land.

그러나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유대민족의 신앙의 대상은 성막의 실체로 오신 예수님이었는데, 그의
제자들마저 불신으로 돌아갔었기 때문에,
However, in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the focus of faith for the Jewish people was Jesus himself, who came as the fulfillment of the Tabernacle. When even his disciples became faithless, Jesus had to walk the path of death and be crucified, as he had foretold,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한복음 3 장 14 절)라고 하신 말씀대로,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John 3:14 ),

그의 육신을 십자가(十字架)에 내주시어 죽음의 길을 가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이와같이 유대민족은 영육(靈肉) 아울러 신앙의 대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As a consequence the Jewish people lost the one who should have been the spiritual and physical focus of their faith.

제 3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과 같이직접 실체노정으로써 출발하지 못하고,
They no longer had a basis upon which to begin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as a substantial course, as the Israelites had when they commenced the third national course.

제 2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신앙의 대상으로 세워가지고, 먼저 영 적노정으로써
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Rather, Christians, as the Second Israel, were to begin this course as a spiritual course by exalting the resurrected Jesus as their focus of faith.

예수님이 이 성전(예수님)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한복음 2 장 19 절)고 말씀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Foreseeing this, Jesus said, “Destroy this temple, and in three days I will raise it up.”(John 2:19)

그러다가 마치 여호수아가 모세의 사명을 계승하여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였던 것과 같이,
Then, just as Joshua succeeded to Moses’ mission and completed the third national course,

예수님은 재림(再臨)하셔서 초림(初臨) 때의 사명을 계승하시어,
Christ at the Second Advent will succeed the mission of Jesus.

제 3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영육 아울러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He will complete, both spiritually and physically,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우리는 이러한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을 보더라도, 예수님께서 처음 오셨을 때와 같이 육신을 쓰시고 다시 오시지 않으면,
Accordingly, unless the returning Christ comes in the flesh, as Jesus did,

처음 오셨을 때에 이루려 하셨던 복귀섭리의 목적을 계승 완수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he cannot inherit Jesus’ mission, much less fulfill the purpos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1) 영적인 믿음의 기대
(1 )THE SPIRITUAL FOUNDATION OF FAITH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배반함으로 인하여, 제 2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서,
When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ended in failure due to the Jewish people’s rejection of Jesus,

예수님이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40 일 금식으로 세웠던 ‘믿음의 기대’는 사탄에게 내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the foundation of faith which Jesus had laid during his forty-day fast from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was lost to Satan.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의하여 그 육신을 사탄에게 내주신 후에는,
After Jesus gave up his body on the cross, he resumed John the Baptist’s mission spiritually.

영적인 세례요한 사명자의 입장에서, 40 일 부활기간(復活期間)으로사탄분립의 영적기대를 세우심으로써,
During the forty-day period from his resurrection to his ascension, Jesus triumphed over Satan and broke all his chains.

제 3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영적 노정을 위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셨던 것이다.
By doing so, Jesus restore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piritual course in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40 일의 부활기간(復活期間)을 세우시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안 사람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This is the heretofore undisclosed reason behind this forty-day period.

그러면 예수님은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어떻게 세우셨던가?
How, then, did Jesus lay the spiritual foundation of faith?

예수님이 메시아로 나타나실 때까지는 하나님은 유대 선민(選民)들과 함께 계셨다.
God had personally been guiding His beloved chosen people until the time Jesus appeared as the Messiah.

그러나 그들이 메시아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배반한 순간부터, 하나님은 그들 선민을 사탄에게 내주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로부터 배척당한 독생자(獨生子) 예수님과 함께, 선민을 버리고 돌아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Yet from the moment they turned against His only begotten Son, God tearfully had to turn His back and allow Satan to lay claim to them.

그러나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신 목적은 선민을 비롯한 전인류(全人類)를 구원(救援)하시려는데 있었으므로,
Nonetheless, God’s purpose in sending the Messiah was to save the Jewish people and all humanity.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탄에게 내주시고서라도 전 인류를 구원하려 하셨던 것이다.
God was determined to save humankind, even though it meant delivering Jesus into the hands of Satan.

한편 또 사탄은 자기편에 서게 된 선민을 비롯한 전 인류를 모두 하나님에게 내놓게 되더라도, 메시아인 예수님 한 분을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다.
Satan, on the other hand, was fixed on killing one man, Jesus Christ, even though he might have to hand back all of humanity, including the Jewish people, to God.

그 이유는 하나님이 4 천년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제 1 목적이 메시아 한 분을 세우시려는데 있었으므로,
Satan knew that the primary goal of God’s four-thousand-year providence of restoration was to send the Messiah.

사탄은 그 메시아를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전섭리(全攝理)의 목적을 깨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He thought that by killing the Messiah he could destroy the entire providence of God.

이와같이 되어 하나님은 예수님을 반대하고 사탄편으로 돌아간 유대민족을 비롯한 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In the end, God handed over Jesus to Satan as the condition of indemnity to save all humankind,

그 탕감조건(蕩減條件)으로 예수님을 사탄에게 내주시게 되었던 것이다.
including the Jewish people who had turned against Jesus and fallen into Satan’s realm.

사탄은 자기의 최대의 실권을 행사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임으로써,
Satan exercised his maximum power to crucify Jesus,

그가 4 천년 역사노정을 두고 목적해 왔던 바를 달성한 것이 되었다.
thereby attaining the goal he had sought throughout the four-thousand-year course of history.

이처럼 예수님을 사탄에게 내주신 하나님은 그 대가로서 이스라엘을 비롯한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시게 되었다.
On the other hand, by delivering Jesus to Satan, God set up as compensation the condition to save sinful humanity.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여서 죄악 인간(罪惡人間)들을 구원하실 수 있게 되었는가?
How did God achieve this?

사탄이 이미 그의 최대의 실권을 행사하여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탕감복귀원칙(蕩減復歸原則)에 의하여 하나님에게도 최대의 실권을 행사하실 수 있는 입장이 성립되었다.
Because Satan had already exercised his maximum power in killing Jesus,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restoration through indemnity, God was entitled to exercise His maximum power.

그런데 사탄의 최대 실권행사(實權行事)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최대 실권행사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것이다.
While Satan uses his power to kill, God uses His power to bring the dead to life.

여기에서 사탄이 그의 최대 실권행사로서 예수님을 죽인 것에 대한 탕감조건으로 하나님도 최대의 실권을 행사하시어 죽은 예수님을 부활(復活)시키시고,
As compensation for Satan’s exercise of his maximum power in killing Jesus, God exercised His maximum power and resurrected Jesus.

온 인류로 하여금 그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접붙이어(로마서 11 장 24 절) 중생(重生)케 하심으로써 구원을 받도록 하신 것이었다.
God thus opened the way for all humanity to be engrafted with the resurrected Jesus and thereby receive salvation and rebirth.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잘 아는 바와같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과 같이 생활하시던 그러한 예수님은 아니시었다.
It is clear from the biblical record that the resurrected Jesus was not the same as he had been when he had lived with his disciples before his crucifixion.

그는 이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자리에 계셨기 때문에 육안(肉眼)으로는 볼 수 없는 분이었다.
The resurrected Jesus was no longer a man seen through physical eyes, because he transcended time and space.

그는 제자들이 문을 닫고 있는 방 안에도 문득 나타나셨는가 하면(요한복음 20 장 19 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갑자기 나타나시어 오랫동안 동행하기도 하셨다.
He appeared to his disciples inside a room with closed doors. (John 20:19) He accompanied two disciples traveling toward Emmaus for a long distance.

그러나 그들은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면서도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지 못하였으며(누가복음 24 장 15~16 절), 이와같이 나타나셨던 예수님은 또 어디론가 갑자기 사라져버리기도 하셨던 것이다.
Yet they did not recognize him until much later, when he made himself known, at which point he suddenly vanished out of sight.(Luke 24:15-31)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육신을 제물(祭物)로 십자가에 내주신 후 이렇듯 부활 40 일의 사탄분립기간으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세우심으로써,
By passing through the forty-day period of his resurrection and thereby separating Satan, Jesus lai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piritual course.

만민의 죄를 대속(代贖)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셨다.
He thus opened the way to redeem humanity’s sins.


(2) 영적인 실체기대
(2 ) THE SPIRITUAL FOUNDATION OF SUBSTANCE

예수님은 영적(靈的)인 세례요한 사명자의 처지에서, 영적인 부활 ’40 일 사탄분립기대’를 조성하심으로써
Through his resurrection appearances, Jesus fulfilled the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while standing in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in spirit.

영적 참 부모의입장에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동시에,
He thereby lai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piritual course in the position of the spiritual True Parent.

또 영적인 자녀의 입장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영적인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셨다.
At the same time, from the position of a child, he secured the position of Abel for fulfilling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그리하여 예수님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광야 표류(曠野漂流)40 년의 탕감기간(蕩減期間)을 지남으로써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과 같이, 제 3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This spiritual foundation of faith which Jesus laid for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was comparable to the foundation of faith which Moses laid for the third national course through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모세 때에는 ‘성막을 위한 기대’를 세우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God had worked the dispensation to start in Moses’ day by having him establish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그러나 부활(復活)하신 예수님은 갈릴리에 흩어졌던 제자들을 거두어 모으시고, 자신이 석판과 성막과 법궤의 영적인 실체가 되어,제자들에게 기사(奇事)와 이적(異蹟)의 권능을 주심으로써(마태복음 28 장 16~18 절)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However, the resurrected Jesus was himself the spiritual fulfillment of the tablets of stone,the Ark of the Covenant and the Tabernacle.He gathered his scattered disciples from all over Galilee and worked the dispensation to start by giving them the power to perform signs and miracles.(Matt. 28:16-20; Mark 16:15-18)

여기에서 가인의 입장에 선 성도(聖徒)들은, 이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영적인 세례요한 사명자로서 영적인 아벨의 입장에 있는 부활하신
The resurrected Jesus stood spiritually in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and the position of Abel. The faithful believers stood in the position of Cain.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라 ‘타락성을 벗기 위한 영적인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영적인 실체기대를 복귀하게 된 것이다.
By believing in Jesus and following him devotedly, they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restored the spiritual foundation of substance.


(3)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
(3 )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에 돌아가신 후에 남은 열한 제자는 모두 힘없이 흩어져 있었다.
Upon Jesus’ crucifixion, his eleven remaining disciples were demoralized and scattered.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그들을 다시 한 곳으로거두어 모으시고, 영적 가나안 복귀의 새로운 섭리를 시작하셨던 것이다.
After his resurrection, however, Jesus gathered them in one place and commenced a new phase of the providence:

제자들은 가룟유다 대신으로 맛디아를 택하여 12 제자의 수를 채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숨을 바쳐 믿고 모시고 따름으로써,
the restoration of spiritual Canaan. The disciples chose Matthias to replace Judas Iscariot and fill the vacancy among the twelve.

‘영적인 실체기대’를 조성함에 따라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를 복귀하였다.
By believing in Jesus and following him at the cost of their lives, they laid the spiritual foundation of substance and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 기대 위에서, 영적인 세례요한 사명자의 입장으로부터 영적인 메시아의 입장을 확립하고 성신(聖神)을 복귀함으로써, 영적인 참 부모가 되어 중생(重生)의 역사를 하시게 되었다.
Thereupon, Jesus and the Holy Spirit became the spiritual True Parents and began the work of giving rebirth.

즉 사도행전 2 장 1 절 내지 4 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Ever since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 at the Pentecost, (Acts 2:1-4)

오순절(五旬節)에 성신이 강림하신 후,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적인 참아버지로서,
the resurrected Jesus as the spiritual True Father and the Holy Spirit

영적 참어머니 되신 성신과 합하여 역사하심으로써,
as the spiritual True Mother have worked in oneness to grant spiritual

성도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접붙이게 하시어 영적 중생의 역사를 하시기 때문에,
rebirth by spiritually engrafting believers with themselves.

영적 구원섭리만을 이루시게 되었다(전편 제 4 장 제 1 절 Ⅳ).
This is the work of spiritual salvation,(cf. Messiah 1.4)

따라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권내에는 사탄의 영적 참소조건(讒訴條件)이 청산되어 있으므로,
which established a realm of resurrection inviolable by Satan.

그것은 영적인 면에 있어서의 사탄의 불가침권(不可侵權)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Even though we may by faith unite with Jesus in spirit,

타락인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그와 하나가 되어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그의 몸은 여전히 사탄의 침범을 당한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육적 구원은 의연(依然)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게 된다.
our bodies are still liable to Satan’s attack, as was the case with Jesus himself. In other words, our physical salvation still remains unaccomplished.

그러나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그와 함께 영적으로 사탄 불가침권내에 있게 됨으로써,
Still, if we believe in the resurrected Jesus, he will guide us to enter spiritually his realm of resurrection, which is invulnerable to satanic invasion.

사탄의 영적인 참소조건을 면하고 영적 구원만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There we are released from the conditions which allow Satan to accuse us, and we are spiritually saved.


(4) 영적 가나안 복귀
(4 ) THE RESTORATION OF SPIRITUAL CANAAN

기독교 신도들은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 위에서 영적인 메시아로 서게 된 예수님을 믿고 모심으로써, 영적 가나안 복귀만을 완성하게 되었다.
By believing in and serving the resurrected Jesus, who stands upon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Christians can accomplish the restoration of spiritual Canaan and enter its realm of grace.

그리하여 영적 가나안 복귀의 혜택권내에 있는 성도들의 육신은 십자가(十字架)에 의하여 사탄의 침범을 당한 예수님의 육신과 같은 처지에 서게 됨으로써,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나 다름 없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원죄(原罪)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로마서 7 장 25 절),
On the other hand, the physical bodies of Christians stand in the same position as Jesus’ body, which was assaulted by Satan through the crucifixion.Christians are still stained with the original sin (Rom. 7:25 ) and are just as much in need of purifying themselves from satanic influences as were people who lived before the coming of Jesus.

성도들도 도한 예수 재림을 위한 사탄 재분립(再分立)의 노정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전편 제 4 장 제 1 절 Ⅳ).
Hence, Christians still must walk the course for the separation of Satan to prepare for the Second Coming of Christ.(cf. Messiah 1.4)

모세를 중심하고 섭리하셨던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성막이상(聖幕理想)은,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적 실체성전(實體聖殿)을 중심하고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The resurrected Jesus is the spiritual fulfillment of the Temple. He realized worldwide the ideal of the Tabernacle which Moses had upheld in the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The most holy place and the holy place, representing the spirit and flesh of Jesus, were fulfilled as spiritual realities through Jesus and the Holy Spirit.

그 지성소(至聖所)와 성소(聖所)는 그것들이 상징한 바 예수님과 성신(聖神), 예수님의 영인체와 육신이 영적 실체로 이루어졌고, 속죄소(贖罪所)의 이상(理想)은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에 의하여 이루어짐으로써, 거기에 하나님이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게 되었다.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는 그 속죄소에서, 인간시조가 타락된 후에 그 앞을 가로막았던 그룹을 좌우로 갈라 세우고, 법궤 안으로 들어가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을 맞이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로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히브리서 9 장 4~5 절).
The ideal of the mercy seat has been realized through the works of salvation given by Jesus and the Holy Spirit, enabling God to appear in their works and impart His Word. On the mercy seat, where God’s Word is proclaimed, the cherubim that had blocked our path since the Fall were parted, opening our way to enter the Ark of the Covenant and receive Jesus, the Tree of Life. There we can partake of the manna provided by God and witness the greatness of God’s power that once caused Aaron’s staff to bud.(Heb. 9:4-5) As we have learned by studying Moses’ course, the delays in God’s providence were not predetermined, but were caused by people’s faithlessness.

이와같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의 재림은 모세노정을 통하여 보더라도 그것이 기정적(旣定的)인 섭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Likewise, Jesus’ crucifixion and the need for his return were not originally predestined by God.


2. 재림주님을 중심한 실체적 가나안 복귀노정
(2 ) THE COURSE TO RESTORE SUBSTANTIAL CANAAN UNDER THE LEADERSHIP OF CHRIST AT THE SECOND ADVENT

제 3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과 같이 실체노정(實體路程)으로 출발하지 못하고 영적노정으로 출발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는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이다.
We have already explained why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began as a spiritual course, not as a substantial course like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 위에서, 영적 메시아로 계시는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으로 출발한 제 3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영적 섭리는, 2 천년의 유구한 역사노정(歷史路程)을 지나서, 오늘날 세계쩍으로 그 영적 판도를 이루게 되었다.
This spiritual providence began when, upon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Jesus could stand as the spiritual Messiah and his followers believed and obeyed him. This providence has passed through a long two-thousand-year course of history, expanding to construct a worldwide spiritual dominion.

그리하여 마치 모세의 영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여호수아가 대신하여 실체노정으로 걸어서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완수하였던 것과같이, 예수님은 지금까지의 영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재림(再臨)하셔서 실체노정으로 걸으시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완수하심으로써, 지상천국을 이루셔야 하는 것이다.
While Moses could enter Canaan only in spirit, Joshua walked the national course as a substantial course and actually conquered the promised land. Likewise, while Jesus has been restoring Canaan as a worldwide spiritual realm, Christ at the Second Advent is to complete this third worldwide course as a substantial course and build the actual Kingdom of Heaven on earth.

이와같이 재림주님은 초림(初臨) 때에 실체로서 이루시려던 지상천국을 그대로 이루셔야 하기 때문에, 실체인간으로 지상에서 탄생하셔야 되는 것이다(후편 제 6 장 제 2 절 Ⅱ 참조).
Christ at the Second Advent must realize, on earth, God’s ideal which was left unfulfilled at the First Coming. For this reason, he must be born on earth in the flesh. (cf. Second Advent 2.2)

그러나 재림주님은 초림 때의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을 탕감복귀하셔야 하기 때문에, 마치 그의 초림 때에 유대임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영적 복귀섭리의 고난(苦難)의 노정을 걸으셨던 것과 같이,
Since Christ at the Second Advent must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cours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left unfinished at Jesus’ coming, he may have to follow a similar course. Jesus encountered disbelief among the Jewish people and had to walk a course of bitter suffering.

재림때에 있어서도 만일 제 2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그 영적인 고난의 노정을 다시 실체로써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Likewise, if Christians, the Second Israel, reject Christ at the Second Advent, he will have to go through tribulations comparable to those Jesus suffered. He will have to repeat Jesus’ painful course and restore it through indemnity, but this time during his earthly life.

예수님이 그러나 그(예수님)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 버린 바 되어야 할찌니라(누가복음 17 장 25 절)고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For this reason, Jesus said, “But first he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is generation.” (Luke 17:25)

그러므로 예수님은 초림 때에, 그를 위하여 소명(召命)되었던 제 1 이스라엘 선민을 버리시고 기독교 신도들을 제 2 이스라엘 선민으로 세워가지고 새로이 영적인 섭리노정을 이루어 나올 수밖에 없으셨던 것과같이,
At the First Coming, Jesus at the end had to forsake the First Israel, which had been called for his sake, and elect the Christians as the Second Israel to commence the new spiritual providence.

재림 때에도 기독교 신도들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그들을 버리시고 새로이
Similarly, at Christ’s Second Coming, if the Christians reject him in disbelief, he will have to abandon them,

제 3 이스라엘을 세우시어 실체적인 섭리노정을 이루어 나아가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raise up a Third Israel, and work with them to bring the providence to its fulfillment on the earth.

그리하여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에도 처음 오셨을 때와 같이, 그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한, 세례 요한의 사명(요한복음 1 장 23 절)을 가지고 올 선구자(先驅者)들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되면,
if the Lord’s forerunners, who are entrusted with missions like that of John the Baptist, do not complete their responsibilities,

재림주님 자신이 또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제 3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섭리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실체적으로 만드셔야 하기 때문에,
then he will have to lower himself to assume the role of John the Baptist and establish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ubstantial course in the thir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고난의 길을 걷지 않으실 수 없게 되는 것이다.
I In such an eventuality, he will walk a path of suffering.

그러나 재림주님은 아무리 고난의 길을 걸으신다 하여도, 초림(初臨) 때와 같이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되지는 않는다.
However arduous the path he may walk, Christ at the Second Advent will not die without fulfilling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류의 참부모님을 세우시어(전편 제 7 장 제 4 절 Ⅰ.1)
This is because God’s providence to raise up the True Parents of humankind (cf. Christology 4.1.1)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이루시려는 섭리는, 아담에서 예수님을 거치어 재림주님에 이르기까지 세번째인 재림 때에는 당연히 그 섭리를 이루시게 되어 있으며,
and fulfill the purpose of creation through them will be successful on the third attempt. This providence began with Adam, was prolonged through Jesus, and will bear its fruit without fail at the Second Advent. Moreover, as will be discussed below,

더구나 후편 제 4 장 제 7 절에 논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 이후 2,000 년의 영적 복귀섭리는, 그를 위한 사회 조성을 위하여 민주주의시대(民主主義時代)를 이루어 놓았기 때문이다.
(cf. Parallels 7.2.6 ) God’s spiritual providence of restoration during the two thousand years since Jesus’ day has prepared a democratic social and legal environment which will protect Christ at the Second Advent.

예수님은 그 초림때에는 유대교의 반역자(反逆者)로 몰려서 돌아가셨지만,
Jesus was killed after being branded a heretic by the Jews and a rebel by the Roman Empire.

그가 재림하시는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설혹 그가 이단자(異端者)로 몰리우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죽음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In contrast, even if Christ at the Second Advent is persecuted as a heretic, in the democratic society to which he will come, such accusations will not be sufficient grounds for him to be condemned to death.

그러므로 재림주님이 아무리 고난의 길을 걸으신다할지라도, 그가 세우시는 실체적인 ‘믿음의 기대’ 위에 그를 절대로 믿고 따라 모시는 성도들이 모여서, 제 3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실체노정(實體路程)을 위한
Therefore, no matter how bitter his tribulations may be, Christ at the Second Advent will be able to lay the foundation of faith on the earth. Standing upon it, he will gather disciples of indomitable faith.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실체적인 기대’를 이루게 될 것만은 확실하다.
He will guide these followers to fulfill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establish the foundation of substance.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for the substantial course in the third worldwide course will be established without fail.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모세 때에는 반석(磐石)을 중심하고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게 되어 있었고,
When Moses was the central figure in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God worked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rock.

여호수아 때에는 반석보다 더 내적인 그 샘물을 중심하고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었다.
When Joshua was the central figure, God conducted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water from the rock, which is more internal than the rock.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초림 때에는 기사이적(奇事異跡)으로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지만,
Similarly, at Jesus’ coming, God conducted the dispensation to start through miracles and signs,

재림 때에는 그의 내적인 ‘말씀’을 중심하고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but at Christ’s Second Advent God will conduct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Word, which is more internal than miracles and signs.

왜냐하면 이미 전편 제 3 장 제 3 절 Ⅱ에서 논한 바와 같이,’말씀’으로 창조된 인간이(요한복음 1 장 3 절) 타락으로 인하여 ‘말씀’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As was explained earlier, (cf. Eschatology 3.2 ) although human beings were created through the Word, (John 1:3 )due to the Fall they could not fulfill its purpose.

하나님은 이 목적을 다시 이루시기 위하여 ‘말씀’의 외적인 조건을 세우시어 복귀섭리(復歸攝理)를 이루어 나오시다가,
To accomplish the purpose of the Word, God has been working His providence of restoration by setting up external conditions of obedience to the Word.

섭리역사의 종말에 이르러는 ‘말씀’의 실체되신 예수님(요한복음 1 장 14 절)을 다시 보내시어 ‘말씀’을 중심하고 구원섭리를 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Finally, at the consummation of providential history, God will again send the Christ, the incarnation of the Word, and complete the providence of salvation based on the Word.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심정의 인연을 중심하고 보면, 하나님은 영적인 부모로서 인간을 실체의 자녀로
창조하셨다.
The deepest explanation of God’s purpose of creation is revealed in terms of relationships of heart. As our invisible, internal Parent, God created human beings as His substantial children.

그리고 최초로 하나님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의 형상적 실체대상(實體對象)으로 창조된 아담과 해와는,
Adam and Eve were created in the image of God, as the substantial object partners to God in the pattern of His dual characteristics.

하나님의 제 1 실체대상으로서 인류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As God’s first substantial object partners, they were meant to be the Parents of humankind.

그리하여 그들이 부부를 이루고 자녀를 번식하여,
They were meant to become husband and wife, bear and raise children,

부모의 심정과 부부의 심정과 자녀의 심정으로 결뉴(結紐) 가정을 이루게 되어 있었던 것이니, 그것이 바로삼대상목적(三代象目的)을 이룬 사위기대(四位基臺)인 것이다(전편 제 1 장 제 2 절 Ⅲ 참조).
and form a family intertwining the heart of parents, the heart of husband and wife, the heart of brothers and sisters, and the heart of children. Their family would have manifested the true love of parents, the true love of husband and wife, and the true love of children. This would have been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which realizes the three object purpose. (cf. Creation 2.3.3)

이와같이 하나님은 하늘의 혈통을 이어받은 직계(直系)의 자녀들로써 지상천국을 이루시려 하셨다.
In this manner, God intended to build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through His own children, born of His heavenly lineage.

그러나 이미 타락론(墮落論)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이, 인간시조가 천사장(天使長)과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음으로 인하여, 온 인류는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아서 모두 마귀의 자식이 되고 말았다(마태복음 3 장 7 절, 마태복음 23 장 32 절, 요한복음 8 장 44 절). The primary significance of the Fall was that the first human ancestors formed a bond of blood ties with the Archangel; therefore, all of humanity has been bound to Satan’s lineage. (cf. Fall 1.3.3 ) Every human being has been born as a child of the Devil. (Matt. 3:7; 23:33; John 8:44 )

그리하여 인간시조는 하나님과 혈통관계가 끊어진 입장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이것이 바로 타락이다(전편 제 2 장 참조).
The first human ancestors fell to the position where they no longer had any connection to God’s lineage.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목적은, 이와 같이 하나님과 혈통관계가 끊어진 타락인간을 복귀시켜 가지고, 하나님 직계의 혈통적 자녀로 세우시려는데 있는 것이다.
Accordingly, the ultimate purpose of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is to transform fallen people, who have no connection to God’s lineage, into children born of God’s direct lineage.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비밀을 성서(聖書)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Let us look further at the Bible for evidence of this hidden purpose behind God’s providence.

위에서 논한바와 같이, 타락되어 살육행위(殺戮行爲)를 자행했던 아담가정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었던 것이다.
Adam’s family, whose members committed the Fall and the first murder, was bereft of any relationship with God.

그러나 노아 때에 이르러, 그의 둘째 아들로서 아벨의 입장이었던 함은 그의 실수로 인하여 비록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데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노아가 충성을 다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종들의 종'(창세기 9 장 25 절)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과 간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At Noah’s time, a direct relationship with God could not be restored due to the mistake of his second son, Ham. Nevertheless, because Noah had demonstrated utmost devotion, his family could stand in an indirect relationship with God, as
a servant of servants. (Gen. 9:25 )

이것이 바로 구약 전 시대(舊約前時代)에 있어서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였다.
This was the nature of humankind’s relationship with God attainable prior to the Old Testament Age.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이르러, 그는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어서 하나님의 선민(選民)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들은 비로소 하나나미의 종의 입장으로 복귀하게 되었던 것이니(레위기 25 장 55 절),
Abraham, the father of faith, with his family established the family foundation for the Messiah. They and their descendants, God’s chosen people, were elevated to the position of God’s servants. (Lev. 25:55)

이것이 바로 구약시대(舊約時代)에 있어서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였다.
This was the nature of humankind’s relationship with God attainable in the Old Testament Age.

예수님이 오신 후,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세우신 그의 ‘믿음의 기대’ 위에 섰던 제자들은, 비로소 구약시대의 종된 입장에서 양자(養子)의 입장으로 복귀되었었다.
In the days of Jesus, the disciples, who stood upon the foundation of faith Jesus had laid from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were elevated from the position of servants to the position of adopted children.

그들이 하늘의 직계의 혈통적 자녀가 되기 위하여는, 예수님에게 절대로 순종하여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룸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To rise further from this state and become the children of God’s direct lineage, they should have first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and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by serving and obeying Jesus absolutely.

그 기대 위에 선 예수님에게 영육(靈肉) 아울러 접붙임을 받아서(로마서 11 장 17 절) 그와 일체를 이루어야 했던 것이다.
Had Jesus stood as the Messiah upon that foundation, they could have been engrafted with him both spiritually and physically and attained complete oneness with him. (Rom. 11:17 )

예수님은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원죄(原罪) 없는 독생자(獨生子)로 오셔서, 타락한 온 인류를 그에게 접붙이어 한몸이 되게 하심으로서,타락한 온 인류를 그에게 접붙이어 일체가 되게 하심으로써,
Jesus is the only Son of God, sinless and born of His direct lineage.He is the true olive tree who came to engraft all fallen people, the wild olive trees, with himself. By thus joining them in oneness with himself,

그들로 하여금 원죄를 벗고 하나님 직계의 혈통적 자녀로 복귀케 하시기 위하여 오셨던 것이다.
he was to cleanse them of the original sin and restore them as children born of God’s lineage.

예수님과 성신(聖神)이 인류의 참 부모로서, 이와 같이 타락인간을 접붙이어 원죄를 벗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창조본연(創造本然)의 혈통적인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을 우리는 중생(重生)이라고 한다(전편 제 7 장 제 4 절 참조). 그러므로 예쑤님은 돌 감람나무 된 타락인간으로 하여금 접붙이게 하시기 위하여 참 감람나무의 중심으로 오셨던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This is the work of rebirth, which was to have been conducted by Jesus and his Bride. (cf. Christology 4 )

그러나 제자들마저 불신으로 돌아갔으므로,
Unfortunately, even Jesus’ own disciples lost faith,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메시아의 자리에 서 보지도 못하고 십자가(十字架)에 돌아가셨다.
and Jesus died on the cross without having ascended from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or commenced the duties proper to the Messiah.

그리하여 부활(復活)하신 예수님이 영적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부활 40 일 사탄분립기간으로써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세우신 후, 회개하고 돌아온제자들의 신앙(信仰)과 충절(忠節)로 말미암아 영적인 ‘실체기대(實體基臺)’가 세워짐으로써, 비로소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가 조성되었던 것이다.
After his resurrection, Jesus began his spiritual course.He laid the spiritual foundation of faith through the forty days from his resurrection to his ascension a period for the separation of Satan—while standing in the position of spiritual John the Baptist.
His disciples repented and returned to serve him with faith; thus, Jesus and his disciples established the spiritual foundation of substance and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그리하여 마침내 이 영적인 기대 위에 영적인 메시아로 서신 예수님에게 영적인 접붙임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성도(聖徒)들은 영적인 자녀로서만 설 수 있게 된 것이니,이것이 바로 예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영적 복귀섭리에 의한 하나님과 타락인간과의 관계인 것이다.
Upon this foundation, Jesus stands as the spiritual Messiah and has been engrafting his faithful followers with himself—though only spiritually. As a result, faithful Christians have been elevated to become God’s spiritual children. This has been the nature of humankind’s relationship with God attainable from the time of Jesus until today.

그러므로 예수님 이후의 영적 부활섭리는 마치 하나님이 영계(靈界)를 먼저 창조하셨던 것과 같이 그러한 형의 영적세계를 먼저 복귀하여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타락인간은 아직 영적으로만 하나님의 대상으로 설 수 있는 것이다.
In this spiritual providence of restoration, the spirit world has been restored first, just as in the order of creation God made the spirit world first. Humanity has been elevated to stand as God’s object partners, but only spiritually.

따라서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육적으로 내려오는 원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벗어나지 못한 점에서는 구약시대(舊約時代)의 성도들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전편 제 4 장 제 1 절 Ⅳ).
However devout a Christian may be, since the original sin passed down through the flesh has not yet been removed, he is no different from a faithful person of the Old Testament Age in the sense that both are still bound to Satan’s lineage. (cf. Messiah 1.4)

이와 같이 기독교 신도들은 하나님 앞에 혈통이 다른 자녀이기 때문에 양자(養子)가 되는 것이다.
Christians are, at best, God’s adopted children, because they do not stem from His lineage.

일찍이 바울이, 성령(聖靈)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도 탄식하여 양자 되기를 기다린다고 한 이유는 실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로마서 8 장 23 절).
This explains why St. Paul lamented, “we ourselves, who have the first fruits of the spirit, groan inwardly as we wait for adoption as sons.” (Rom. 8:23)

그러므로 예수님은 온 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자녀로 복귀케 하시기 위하여 재림(再臨)하셔야 한다.
Christ will return and restore all humanity to be God’s true children. He will return in the flesh and be born on the earth, as at his First Coming.

따라서 그는 초림(初臨) 때와 같이 육신을 쓰시고 지상에서 탄생하셔서 초림 때의 노정을 다시 걸으심으로써 그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He will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course of his First Coming by walking it again.

그러므로 위에서 이미 논술한 바와 같이, 재림 예수님은 ‘말씀’을 중심한’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실체적으로 조성하시어, 그 기대 위에서 온 인류를 영육(靈肉) 아울러 접붙이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원죄를 벗고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자녀로 복귀케 하셔야 하는 것이다.
As was explained above, the returning Christ will conduct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Word and then complete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both spiritually and physically. Upon that foundation, he will engraft all humanity with himself,
cleansing them of the original sin and restoring them to be God’s children, born of His lineage.

그리하여 예수님이 초림 때에,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의 중심인물이었던 야곱의 입장을 탕감복귀하시기 위하여, 세 제자를 중심한 12 제자를 세우심으로써 가정적인 기대를 세우셨고, 다시 70 문도를 세우심으로써 그 기대를 종족적인 기대에로 넓히려 하셨던 것과 같이,
At the First Coming, Jesus laid a family foundation by choosing twelve disciples and appointing three of the twelve as his chief disciples. In this, he intended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position of Jacob, who had been the central figure for the family foundation for the Messiah. By raising up seventy followers, Jesus then expanded the scope of his foundation to the clan level. In the same manner,

그는 재림하셔서도 그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실체적으로 가정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 천주적인 것으로 복귀하시어, 그 기대 위에 천국을 이루는데까지 나아가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Christ at the Second Advent will begin by laying, both spiritually and physically, the family foundation for the Messiah. He will then expand its scope to the clan, society, nation, world and cosmos. When this foundation is secure, he will finally be able to build the Kingdom of Heaven.

하나님은 장차 예수님이 탄생하시어 천국 건설의 목적을 빨리 이루게 하시기 위하여, 제 1 차 이스라엘 선민을 세우심으로써 그 터전을 예비하셨었으나, 그들이 배반함으로 인하여 기독교 신도들을 제 2 이스라엘로 세우셨던 것과 같이,
God’s purpose in raising up the people of the First Israel was to prepare the foundation for Jesus, that he might accomplish the goal of building the Kingdom of Heaven when he came. When they turned against him, God elected the Christians to be the Second Israel.

만일 재림(再臨) 예수님의 천국건설 이상을 위하여 제 2 이스라엘로 세워진 기독교 신도들이 또 그를 배반하면,
Similarly, God’s purpose in raising up Christianity was to prepare the foundation for Christ at the Second Advent to achieve the goal of building the Kingdom of Heaven.

하나님은 부득이 그 제 2 이스라엘 선민을 버리시고, 새로이 제 3 이스라엘 선민을 택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If the Christian world should likewise turn against him, God will be left with no alternative but to forsake them and elect a Third Israel.

그러므로 말세(末世)에 처한 기독교 신도들은 예수님 초림(初臨) 당시의 유대민족들과 같이, 가장 행복된 환경 가운데 있으면서도
Therefore, although Christians in the Last Days may enjoy great blessings, in fact, like the Jewish people of Jesus’ day, their situation is extremely precarious.

한편 가장 불행하게 될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They are liable to fall into disgrace and great misfort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