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Part 2. Chapter 2. Moses and Jesus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3.2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 제 2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Ⅱ. 제 2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2.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1. 믿음의 기대
3.2.1 THE FOUNDATION OF FAITH

(1)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심
(1 ) JESUS TAKES ON THE MISSION OF JOHN THE BAPTIST

세례 요한은 완성한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복귀한 아담형의 인물이었다.
In relationship to Jesus, the perfect Adam, John the Baptist came in the role of the restored Adam.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그 때까지의 섭리역사상(攝理歷史上)에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왔다 간 모든 중심인물들이 다하지 못하였던 사명을 완전히 이루어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He was to establish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thus completing all the unfinished missions of the central figures of the past who had labored to restore the foundations of faith and substance.

그리고 이 기대 위에서 믿고 따르는 유대민족을 인도하여, 전체적인 섭리의 기대와 함께 예수님께 인계해 드린 후,믿음과 충성으로 그를 따르고 모셔야 했던 것이다.
Upon this foundation, he was to present all the fruits of providential history to Jesus and guide the Jewish people, who trusted and followed him, to receive Jesus. Finally, he himself should have attended Jesus with faith and devotion.

세례 요한은 자기도 모르고 행한 일이었지만,
Even though John the Baptist did not know it,

요단강에서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것은(마태복음 3 장 16 절)
the baptism which he gave to Jesus at the Jordan River (Matt. 3:16)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쌓아온 모든 것을 예수님 앞에 인계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was in truth a ceremony of offering Jesus all of John’s lifelong accomplishments for the sake of God’s Will.

그러나 그 후에 세례 요한은 점점 예수님을 의심하고 배신하는데 이르렀으므로,
Nevertheless, because John the Baptist gradually came to doubt Jesus and finally even undermined his work,

세례 요한을 메시아와 같이 믿고 따르던(누가복음 3 장 15 절) 유대인들은 자연히 예수님을 불신하는 처지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전편 제 4 장 제 2 절).
the Jewish people, who had the highest esteem for John, were compelled to disbelieve in Jesus.(cf. Messiah 2.2)

따라서 세례 요한이 제 1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을 위하여 세웠던 믿음의 기대는 사탄의 침범을
당하고 말았다.
Consequently, the foundation of faith which John had laid for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was invaded by Satan.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예수님 자신이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여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함으로써, 제 2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Jesus himself now had to take on John’s mission and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of faith in order to set out on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예수님이 광야에서 40 일간 금식(禁食)을 하시면서 사탄을 분립하신 것은,
When Jesus fasted for forty days in the wilderness, it was to separate Satan for the very purpose of restoring the foundation of faith;

바로 세례 요한의 대신 입장에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however, for this he lowered himself to assume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로 영광의 주(主)로 오셨으므로,
Jesus, who came as God’s only begotten Son and the Lord of Glory,

원칙적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고린도전서 2 장 8 절).
was not meant to walk a path of suffering. (I Cor. 2:8)

그러나 그의 앞길을 곧게 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던 세례요한(요한복음 1 장 23 절,누가복음 1 장 75 절)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당했어야 할 고난을 예수님 자신이 당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Rather, it was for John the Baptist, born with the mission to make straight the way of Jesus, (John 1:23; Luke 1:76) to go through tribulations.

이와같이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면서도 세례 요한 대신으로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을 출발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자기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16 장 20 절).
However, because John did not complete his responsibility, Jesus had to undergo suffering in John’s place.Jesus enjoined Peter not to reveal to the Jewish people that he was the Messiah (Matt. 16:20) because, although he was the Messiah, he had assumed John’s role for the purpose of beginning this phase of the providence.


(2) 예수님의 광야 40일 금식기도와 3대시험
(2) JESUS’ FORTY-DAY FAST AND THREE TEMPTATIONS IN THE WILDERNESS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40 일 금식기도(禁食祈禱)와 3 대시험(三大試驗)에 대한 먼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을 알아야겠다.
Let us examine the remote and immediate causes behind Jesus’ forty-day fast and his three temptations.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반석(磐石) 앞에 섰던 모세가 불신(不信)으로 돌아가 그것을 두 번 쳤기 때문에,
In the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hen Moses stood before the rock, he turned faithless and struck the rock twice.

예수님을 상징하는 그 반석(고린도전서 10 장 4 절)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던 것이다.
As a result, the rock, symbolizing Jesus,(I Cor. 10:4 )was defiled by Satan.

그것은 후일 메시아로 오셔서 모세노정을 본보기로 걸어야 할 예수님의 노정에 있어서도,
This act affirmed the possibility that centuries later, when Jesus came to walk in the footsteps of Moses’ course,

예수님의 앞길을 곧게 하기 위하여 오게 될 세 례요한이 불신으로 돌아가게 되면 반석되시는 예수님 앞에도 사탄이 침범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 되었다.
John the Baptist might become faithless and Satan could then attack Jesus, the fulfillment of the rock.

따라서 이 행동은 메시아에 앞서 올 세례 요한을 중심한 믿음의 기대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기도 하였다.
Moses’ act also affirmed the possibility that Satan might invade the foundation of faith laid by John the Baptist.

그렇기 때문에 반석을 두 번 친 모세의 행동은, 바로 세례 요한이 불신으로 돌아가게 될 때에 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예수님 자신이 세례 요한의 대신 입장에서 광야로 나아가 40 일 금식과 3 대 시험(三大試驗)을 치르지 않을 수 없게 한 원인(遠因)이 되었었다.
Moses’ act of striking the rock twice was the remote cause which, should John lose faith, would compel Jesus to endure a forty-day fast and face three temptations in the wilderness for the purpose of restoring the foundation of faith.

사실상 세례 요한이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전편 제 4 장 제 2 절 Ⅲ),
John the Baptist actually did become faithless (cf. Messiah 2.3 )

그가 세웠던 ‘믿음의 기대’에는 사탄이 침범하였던 것이니,
and Satan invaded the foundation of faith which John had laid.

이것이 근인(近因)이 되어 예수님은 몸소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40 일 사탄분립의 기대’를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하여 광야에서의 40 일 금식과 3 대 시험을 겪지 않을 수 없으셨던 것이다.
This was the immediate cause of Jesus undertaking a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by fasting for forty days and overcoming the three temptations. By doing this from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Jesus restored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of faith. It is written that after forty days, Satan tested Jesus three times.

그러면 사탄이 3 대시험을 하게 된 목적은 어디 있는가?
What was Satan’s purpose in giving Jesus the three temptations?

마태복음 4 장 1 절 내지 10 절을 보면, 사탄은 예수님에게 돌을 보이면서 그것으로써 떡이되게 하라고 하였고,
First, he showed Jesus stones and tempted him to turn them into loaves of bread.

또 그를 성전(聖殿) 꼭대기에 세우고 자기에게 경배하면 온 세상을 다 주겠다는 등 세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Next, he took Jesus to the pinnacle of the Temple and challenged him to throw himself down. Finally, Satan took Jesus to a very high mountain and offered to give Jesus all the kingdoms of the world if he would fall down and worship him. (Matt. 4:1-10)

태초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서 그 개성의 완성,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human beings and gave them three great blessings—perfection of individual character,

자녀의 번식, 그리고 피조세계(被造世界)에 대한 주관 등 세 가지의 축복(祝福)을 하셨다(창세기 1 장 28 절). 그러므로 인간이 이것을 완성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인 것이다.
multiplication of children, and dominion over the natural world (Gen. 1:28) —by which they might accomplish the purpose of creation.

그런데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킴으로써 이 세 가지 축복을 이루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그 창조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By inducing the first human ancestors to fall, Satan deprived humankind of the three great blessings and thus prevented the fulfillment of the purpose of creation.

그런데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이 세 가지의 축복을 복귀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accomplish the purpose of creation by restoring these blessings.

사탄은 축복 복귀의 길을 막기 위한 그 세 가지의 시험으로써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Therefore, Satan tempted Jesus three times in an attempt to prevent him from restoring the three blessings and accomplishing the purpose of creation.

그러면 예수님은 이 3 대 시험(三大試驗)을 어떻게 받으시고 어떻게 이기셨는가?
How, then, did Jesus confront and overcome the three temptations?

우리는 먼저 여기에서 사탄이 어떻게 되어 예수님을 시험하는 주체로 설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First, let us examine how Satan came to be in a position to impose temptations on Jesus.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불신과 모세의 실수로 말미암아, 사탄이 예수님과 성신(聖神)을 상징하는 두 석판(石板)과 반석(磐石)을 취함으로써 그는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의 주체적인 입장에 서게 되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밝혔다.
Satan first took such a dominant position when, in the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he claimed possession of the rock and the tablets of stone, which symbolized Jesus and his would be Bride. This was possible because Moses broke the tablets of stone and struck the rock twice in anger at the faithlessness of the people. he claimed possession of the rock and the tablets of stone, which symbolized Jesus and his would be Bride. This was possible because Moses broke the tablets of stone and struck the rock twice in anger at the faithlessness of the people.

그런데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이르러, 사탄을 분립하여 메시아의 갈 길을 곧게 하기 위한 사명자로 왔던 세례 요한(요한복음 1 장 23 절)이 그 책임을 다 하지 못하게 되자 모세 때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불신(不信)과 불순종(不順從)으로 돌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미 모세노정에서 예시(豫示)하신 대로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는 주체적인 입장에 서게 된 것이었다.
In the worldwide course, when John the Baptist failed his responsibility, the Jewish people became as disbelieving and disobedient as the Israelites were in Moses’ time. Therefore, as God had already foreshadowed in Moses’ course, Satan rose to a position of power from which he could impose temptations on Jesus.

그러면 여기에서 그 시험(試驗)의 경위를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예수님이 광야에서 밤낮 40 일을 금식(禁食)하시고 난 뒤, 사탄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태복음 4 장 3 절)는 시험을 하였다.
After Jesus completed the forty-day fast in the wilderness, Satan appeared before him and tempted him, saying, “If you are the Son of God, command these stones to become loaves of bread.” (Matt. 4:3)

그런데 모세가 광야에서 40 일 사탄분립기대 위에 섰던 석판(石板)을 깨뜨리고 반석(磐石)을 두 번 쳤던 행동과, 세례요한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그 돌을 사탄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Satan had possession of the stone. He had claimed the water-giving rock and the tablets of stone based on the condition first set by Moses’ mistakes and then brought to fruition by John the Baptist’s faithlessness. Moses had first obtained the stone after fulfilling dispensations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in the wilderness.

이것을 다시 찾기 위하여 예수님도 광야로 나아가 40 일을 금식하여 사탄을 분립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To purify and recover the stone, Jesus fasted in the wilderness for forty days.

사탄은 예수님이 돌을 찾기 위하여 광야에 나오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Satan was well aware that Jesus went into the wilderness for this purpose,

따라서 옛날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광야노정에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불신으로
흘러 돌을 사탄이 가지게 되었던 것과 같이,
and his intention in giving the first temptation was to keep the stone in his possession. Jesus suffered from hunger in the wilderness, just as the Israelites had in Moses’ day. When the Israelites could not overcome their hunger but fell into faithlessness, this eventually let Satan claim possession of the stone.

이제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광야노정(曠野路程)에 있는 예수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굶주린 가운데 있으니 어서 불신으로 돌아가 그 돌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것으로 떡이나 되게 하여 주린 배를 채우면, 그 돌은 사탄이 영원히 가지겠다 하는 뜻이었다.
Likewise, if Jesus were to lose faith and satisfy his hunger by turning the stone into bread, abandoning his effort to restore the stone, Satan would possess the stone forever.

이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 장 4 절)고 하셨다.
Jesus’ answer to this temptation was,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proceeds from the mouth of God.” (Matt. 4:4)

원래 사람은 두 가지의 영양소로써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Originally, human beings were created to live on two kinds of nourishment.

즉 자연계로부터 섭취하는 영양소로서는 육신(肉身)이 살아가고,
The body lives on the nourishment obtained from the physical world,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는 영인체(靈人體)가 살아 가는 것이다.
while the spirit lives by receiving the love and truth of God.

그런데 타락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However, since fallen people cannot receive the Word directly from God,

요한복음 1 장 14 절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지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써 그 영인체 들이 살아 간다.
their spirits have life by the words of Jesus, who came as the incarnation of God’s Word. (John 1:14)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6 장 48 절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고 말씀하시면서 계속하여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한복음 6 장 53 절)고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떡을 먹고 그 육신이 살아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써 온전한 삶이라고는 할 수 없다.
Jesus said, “I am the bread of life. . . . unless you eat the flesh of the Son of man and drink his blood, you have no life in you.” (John 6:48-53) He meant that a person does not live a complete and wholesome life merely by eating bread to keep his body alive.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의 입으로 나온 말씀이 육신으로 화하여 모든 사람의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지 않으면 온전한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His life is not full unless he lives by Jesus, who came as the life-giving nourishment for the spirit.

그런데 모세가 석판(石板)의 뿌리 되는 반석(磐石)을 두 번 침으로써 그 돌은 사탄의 소유로 돌아갔었다. 이렇게 사탄의 것이 되어진 그 돌은 바로 모세가 잃어버린 그 반석이었고 또 그 석판이었으므로, 그 돌은 결국 사탄의 시험을 받고 있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한 것이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2 장 17 절에 돌을 그리스도로 상징하고, 고린도전서 10 장 4 절에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한 것을 보아서도 분명하다.
Indeed, the stone in Satan’s hands—signifying the rock and the tablets of stone which Moses had lost—symbolized the very self of Jesus (I Cor. 10:4; Rev. 2:17 ) who was being subjected to this temptation.

그러므로 사탄의 첫째 시험에 응한 예수님의 대답은 결국 내가 지금 아무리 굶주린 가운데 있을지라도, 육신(肉身)을 살리는 떡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이 너로부터 시험을 받고있는 자리에서 승리하고 나서 온 인류의 영인체(靈人體)를 살려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이 되어야 하겠다는 뜻이었다.
In his reply, Jesus meant that although he was starving, he was less concerned about obtaining the bread which could keep his body alive than he was with becoming the incarnate Word of God who could nourish every spirit with life. With that heart, Jesus was determined to triumph over Satan.

그러므로 이 시험은 예수님이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시험을 받아 이김으로써, 개성을 완성한 메시아의 입장을 찾아 세우는 시험이었던 것이다.
Furthermore, this test was conducted so that Jesus might re-establish the position of the Messiah,

이처럼 원리적인 입장에서 뜻을 대하는 예수님의 말씀과 태도에 사탄은지고 말았다.
the one who has attained perfection of his individual character, by overcoming the temptation from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그리고 예수님이 이 첫번 시험에 승리하여 개성(個性)을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제 1 축복(第一祝福)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Jesus defeated Satan because he spoke and acted in full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 By his victory over this temptation, Jesus fulfilled the condition to restore the individual nature to perfection and thereby established the basis for the restoration of God’s first blessing.

다음으로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聖殿)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마태복음 4 장 5~6 절)고 하였다.
Next, Satan brought Jesus to the pinnacle of the Temple and challenged him, saying, “If you are the Son of God, throw yourself down.” (Matt. 4:6)

그런데 요한복음 2 장 19 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성전이라고 하셨고,
Jesus referred to himself as the Temple, (John 2:19)

또 고린도전서 3 장 16 절에는 성도(聖徒)들을 일러 하나님의 성전이라고도 하였으며, 고린도전서 12 장 27 절에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지체(支體)라고 하였다.
and it is written that Christians are temples of God (I Cor. 3:16) and members of the body of Christ. (I Cor. 12:27)From this we can understand that

따라서 예수님은 본성전(本聖殿)이요 성도들은 그 분성전(分聖殿)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Jesus is the main temple while the believers are like branch temples. Jesus came as the Lord of the Temple.

이와 같이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공으로 오셨으므로, 사탄도 그 격위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웠었다.
Even Satan had to acknowledge his position; thus he put Jesus on the top of the Temple.

그리고 거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한것은, 주인공의 위치에서 떨어져 타락한 인간의 입장으로 돌아가면 자기가 예수님 대신으로 성전 주관자(主管者)의 위치를 점령하겠다는 뜻이었다.여기에서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마태복음 4 장 7 절)고 대답하셨다.
When Satan dared Jesus to throw himself down, it meant that he wanted to usurp Jesus’ position as the Lord of the Temple by enticing Jesus to fall from that position to the lowly state of a fallen person. At that moment Jesus answered him, “You shall not tempt the Lord your God.” (Matt. 4:7)

원래 천사(天使)는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의 주관을 받도록 창조된 것이므로 타락한 천사는 마땅히 예수님의 주관을 받아야 한다.
Originally, angels were created to be governed by people who have realized their God-given nature.

따라서 천사가 예수님 대신으로 성전주관자의 입장에 서려 하는 것은 비원리적(非原理的)인 행동인 것이다.
Hence, even fallen angels should rightfully submit to Jesus, their Lord.

그러므로 이와같은 비원리적인 행동으로 원리적인 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의 몸 되신 예수님을 시험함으로써,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리에 서서는 안 된다.
Accordingly, it was an unprincipled act for an angel to attempt to usurp the position of the Lord of the Temple from Jesus.

더구나 예수님은 제 1 차 시험에 승리하여 개성을 복귀한 실체성전(實體聖殿)으로서 성전의 주인공의 입장을 확립하셨기 때문에, 사탄의 시험을 받을만한 아무런 조건도 없으니.
Jesus’ response meant that Satan should not test God by tempting Jesus, the incarnation of God, who works His providence in strict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 Moreover, by prevailing in the first temptation and restoring his individual character as
the incarnate Temple, Jesus had already secured the position of the Lord of the Temple.

이제는 예수님 자신을 시험하지 말고 물러가라는 뜻이었다.
Therefore, Satan had no condition to tempt Jesus again, but should have retreated at that point.

이렇게 하여 둘째 시험에 승리함으로써, 본성전이시고 신랑이시며 또한 인류의 참부모로 오신 예수님은,
By overcoming the second temptation, Jesus, the main temple, the bridegroom and the True Parent of humanity,

모든 성도들을 분성전과 신부와 참자녀의 입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 하나님의 제 2 축복(第二祝福)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셨던 것이다.
opened the way for all people of faith to be restored to the positions of branch temples, brides and true children. Jesus thus established the basis upon which to restore God’s second blessing.

다음으로 사탄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이끌고 가서 천하만국(天下萬國)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Finally, Satan took Jesus to a very high mountain and showed him all things under heaven and all their glory, saying,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태복음 4 장 9 절)고 시험하였다.
“ All these I will give you, if you will fall down and worship me.” (Matt. 4:9)

원래 아담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만물세계(萬物世界)에 대한 주인공의 자격을 상실하고 사탄의 주관을 받게 됨에 따라,
Due to Adam’s fall, human beings lost the qualification to be the lords of creation.

사탄이 아담의 대신으로 만물세계의 주관자로 서게 되었다(로마서 8 장 20 절).
They fell under the dominion of Satan, who usurped Adam’s position as the creation’s
master.

그런데 완성한 아담격으로 오신 예수님은 고린도전서 15 장 27 절에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두셨다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대로 피조세계(被造世界)의 주관자이시었다.
Coming in the capacity of a perfected Adam, Jesus was the Lord of creation, as it is written, “For God has put all things in subjection under his feet.” (I Cor. 15:27)

따라서 사탄도 이러한 원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Because Satan knew this from his understanding of the Principle,

예수님을 산 위로 인도하여 만물의 주인공의 자리에 세워 놓고, 태초에아담이 사탄에게 굴복한 것과 같이 제 2 아담된 예수님도 사탄에게 굴복하라고 시험했던 것이다.
he led Jesus to the top of the mountain in recognition of his position as the Lord of creation. Satan then tempted Jesus, hoping that Jesus, the second Adam, might also submit to him as Adam had submitted in the beginning.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태복음 4 장 10 절)고 대답하셨다.
Jesus replied, “Begone, Satan! for it is written, ‘You shall worship the Lord your God and him only shall you serve.’” (Matt. 4:10)

천사(天使)는 원래 부리는 신(神)으로서(히브리서 1 장 14 절),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배(敬拜)하고 섬기게 되어 있었다.
Angels were created as ministering spirits (Heb. 1:14) to revere and serve God, their Creator.

그러므로 타락한 천사인 사탄도 그에게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 원리요,
By his answer, Jesus indicated that according to the Principle even a fallen angel like Satan should worship God;

따라서 사탄은 마땅히 창조주 하나님의 몸으로 나타난 예수님에게도 굴복하고 경배하며섬기는 것이 원리라는 것으로 예수님은 대답하셨던 것이다.
by the same token, he should honor and attend Jesus, who came as the body of the Creator.

더구나 예수님은 이미 두 번의 시험에 승리하여 하나님의 제 1, 제 2 축복을 복귀할 수 있는 기대(基臺)를 조성하셨으므로 그 기대 위에서
Furthermore, by overcoming the two previous temptations, Jesus already had laid the basis upon which to restore God’s first and second blessings.

하나님의 제 3 축복을 복귀하여 만물세계를 주관해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니, 이미 승리의 기대 위에 선 만물세계를 걸어 놓고는 더 이상 시험받을 여지가 없다는 뜻으로 원리적인 대답을 하셨다.
Upon this foundation, he would naturally restore God’s third blessing and govern the creation. Jesus said, “Begone, Satan!” because there was no longer any basis for Satan to contend with Jesus over the natural world, which already stood on the firm foundation of his victory.

이렇듯 예수님은 셋째 시험에도 승리하시어, 피조세계(被造世界)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제 3 축복(第三祝福)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셨다.
By prevailing in the third temptation, Jesus set up the condition to restore dominion over the natural world—God’s third blessing.


(3) 40일 금식과 3대 시험으로 사탄을 분립한 결과
(3) THE RESULT OF THE FORTY-DAY FAST AND THE THREE TEMPTATIONS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인간이 정(正) 분(分) 합(合) 3 단계의 과정을 거치어 4 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루어야만 하나님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Creation, God’s purpose of creation is to be realized only when human beings pass through the three stages of origin, division and union and establish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그러나 인간은 그 4 위기대를 이루어 나오는과정에서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However, Satan blocked this ideal while the first human ancestors were still in the process of building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이제까지의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도 역시 3 단계까지 연장되어 내려오면서 40 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워가지고, 상실되었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코자 하였던 것이다.
Therefore, in the cours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with its prolongations through three stages, God has tried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all that was lost by working to fulfill dispensations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그런데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면서도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3 단계의 시험에 승리하여 ’40 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우셨다.
Jesus prevailed over the three temptations and fulfilled the forty-day fast as a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이것으로써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역사노정에서, 3 단계로 연장하시면서 ’40 일 사탄부립의 기대’로써 찾으시려 했던, 다음과 같은 모든 조건들을 일시에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Thereupon, Jesus restored through indemnity, all at once, the following conditions which God had been seeking to fulfill through all the dispensations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throughout history.

즉 첫째로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제 2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셨으므로,
First, in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Jesus restored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그 때까지의 섭리노정(攝理路程)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찾아 세우려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In so doing, Jesus restored all that had been offered to God over the course of the providence for the purpose of laying the foundation of faith,

즉 가인 아벨의 헌제,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의 헌제, 모세의 성막, 솔로몬의 성전 등을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including: the offerings of Cain and Abel, Noah’s ark, Abraham’s sacrifice, Moses’ Tabernacle and King Solomon’s Temple.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아담 이후 4 천년 간의 종적인 역사노정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中心人物)들의 실수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모든 ’40 일 사탄 분립기대’를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복귀하시었다.
Furthermore, Jesus restored through indemnity, all at once, all the dispensations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conducted during the four thousand years since Adam, lost despite the best efforts of central figures to lay the foundation of faith. These

즉 노아의 심판 40 일,
These included: Noah’s forty-day flood judgment,

모세의 3 차의 40 년기간과 2 차의 40 일 금식,
the three fortyyear periods in the life of Moses and his two forty-day fasts,

정탐 40 일,
the forty-day mission to spy out the land,

이스라엘의 광야노정 40 년,
the Israelites’ forty years of wandering in the wilderness,

그리고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 년,
the four hundred years from Noah to Abraham,

애급고역 400 년,
the four hundred years of slavery in Egypt,

그리고 그 후 예수님 때까지에 있어졌던 모든 40 수의 기간을 전부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383 쪽
and all other periods characterized by the number forty which had been lost since the Exodus.

둘째로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메시아의 입장에서게 되셨기 때문에,
Second, by rising from John the Baptist’s position to the position of the Messiah,

하나님의 3 대축복(三大祝福)을 이루어 4 위기대(四位基臺)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셨다.
Jesus paved the way for the fulfillment of God’s three great blessings and the restoration of the four position foundation.

따라서 예수님은 헌제(獻祭)를 이룬 실체시요, 또한 석판(石板)과 성막(聖幕)과 법궤(法櫃)와 반석(磐石)과 성전(聖殿)의 실체로 설 수있게 되셨던 것이다.
Having successfully made his offering, Jesus stood as the fulfillment of the tablets of stone, the Ark of the Covenant, the Tabernacle, the rock and the Temple.


2. 실체기대
2. THE FOUNDATION OF SUBSTANCE

예수님은 인류의 참 부모로 오셔서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40 일 사탄 분립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셨기 때문에,
Jesus came as the True Parent of humanity, yet he restored through indemnity the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while standing in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부모의 자리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동시에, 자녀의 자리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셨다.
Therefore, after he restored the foundation of faith (and rose to the position of Messiah and True Parent) he stood in the position of a parent. At the same time, when he secured the position of Abel for fulfilling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he stood in the position of a child (still in the role of John the Baptist with respect to that condition).

따라서 예수님은 모세가 미디안광야에서 40 년 탕감기간(蕩減期間)을 지남으로써,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던 입장을 세계적으로 탕감복귀한 입장에 서게 되셨던 것이다.
In that capacity, Jesus through his forty-day fast attained the same position on the world level that Moses had assumed just after he had lai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by enduring a forty-year exile in the wilderness of Midian.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3 대 기적(三大奇蹟)과 10 재앙(十災殃)으로 그의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God conducted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by providing the three signs and ten plagues.

그런데 그 후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인하여 무위(無爲)로 돌아간 애급에서의 3 대 기적과 10 재앙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석판 성막 법궤의 3 대 은사와 십계명을 세우는 것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던 것은 이미 모세노정에서 밝힌 바 있다.
God conducted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by having the people uphold the three manifestations of divine grace—the tablets of stone, the Ark of the Covenant and the Tabernacle—and obey the Ten Commandments. These, as we recall, were given upon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to restore the three signs and ten plagues lost due to the faithlessness of the Israelites.

그런데 예수님은 석판 성막 법궤의 3 대 은사와 십계명(十誡命)의 실체이시기 때문에 제 2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예수님 자신이 말씀과 기사 이적(奇事異跡)으로써 그 ‘출발을 위한섭리’를 하셨던것이다.
Jesus was the fulfillment of the three manifestations of grace and the Ten Commandments. Therefore, God conducted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based on Jesus’ own words and miraculous deeds.

따라서 가인의 처지에 있었던 유대민족이, 이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세례요한의 사명을 가지고 아벨의 자리에 서 있는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르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보건’을 세워가지고 ‘실체기대(實體基臺)’를 복귀하게 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If the Jewish people (Cain) had been moved to believe in and follow Jesus, who was in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Abel), they would have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restore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would thus have been laid.

이렇게 되었더면 예수님은 이 기대 위에서, 세례요한의 입장으로부터 메시아로 서게 되고,
Standing upon this foundation, Jesus would have risen from the position of John the Baptist to the position of the Messiah.

온 인류는 그에게 접붙임을 받아(로마서 11 장 17 절) 중생(重生)되어 원죄를 벗고 하나님과 심정의 일체를 이룸으로써,
Then, by engrafting all people with himself, (Rom. 11:17) humankind would have been reborn, cleansed of the original sin, and would have become one with God in heart.

창조본성(創造本性)을 복귀하여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이루게 되었을 것이었다.
They would have restored their original, God-given nature and built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in Jesus’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