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Part 2. Chapter 2. Moses and Jesus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3.1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 제 1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제 3 절 예수를 중심한 복귀섭리
SECTION 3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UNDER THE LEADERSHIP OF JESUS

천사(天使)를 주관해야 할 아담(고린도전서 6 장 3 절)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도리어 사탄의 주관을 받아서 지옥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하여 후아담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그 자신이 사탄을 굴복시켜 천국을 복귀해야 하는 것이다.
In the beginning, Adam should have governed the angels; ( Cor. 6:3) but due to his fall, human beings came under Satan’s dominion and formed a hellish world. To restore this through indemnity, Jesus came as the second Adam to personally bring Satan to submission and establish the Kingdom of Heaven.

그러나 이미 제 1 절에서 상술(詳述)한 바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사탄이 예수님과 성도들에게 순종굴복할 리가 없으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원리적인 책임을 지시고 야곱과 모세를 세워 장차 예수님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본보기노정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However, Satan, who does not submit even to God, would by no means readily yield to Jesus and people of faith. Therefore, taking responsibility for having created human beings, God raised up Jacob and Moses and revealed through them the model course by which Jesus could subjugate Satan.(cf. Moses and Jesus 1.1)

야곱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상징적(象徵的)인 노정을 걸었고, 모세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형상적(形象的)인 노정을 걸었으며, 예수님은 그 실체적(實體的)인 노정을 걸으셔야 했던 것이다.
Jacob walked the symbolic course to bring Satan to submission, while Moses walked the image course. Their courses pioneered the way for Jesus to walk the actual course.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세가 사탄을 굴보시켜 나아갔던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사탄을 굴복시킴으로써,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완수하셔야 했던 것이다.
In walking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Jesus followed the model demonstrated in the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hen Moses was working to subjugate Satan.

신명기 18 장 18 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그들의 형제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고 하신 말씀 중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先知者) 하나라고 하신 것은 바로 모세와 같은 노정을 걸으셔야 할 예수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God told Moses, “I will raise up for them a prophet like you from among their brethren; and I will put my words in his mouth, and he shall speak to them all that I command him.”(Deut. 18:18) By “a prophet like you,” God was referring to Jesus, who was to walk the same course Moses walked.

그리고 요한복음 5 장 19 절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워 보여주신 본보기노정을 그대로 걷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When Jesus said, “the Son can do nothing of his own accord, but only what he sees the Father doing; for whatever he does, that the Son does likewise,”(John 5:19) he meant that God had revealed the model course through Moses and that he was following in Moses’ footsteps.

상세한 것은 이미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復歸攝理)에서 논하였지만, 모세를 중심한 3 차의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과, 예수님을 중심한 3 차의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전체적인 윤곽을 비교 대조하면서,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를 노하여 보기로 하자.
Let us examine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centered on Jesus, drawing relevant comparisons between the three national courses to restore Canaan under Moses’ leadership and the three worldwide courses to restore Canaan under Jesus’ leadership.


Ⅰ. 제 1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1. 믿음의 기대
1. THE FOUNDATION OF FAITH

제 1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中心人物)은 세례 요한이었다.
In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the central figure entrusted with the mission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was John the Baptist.

그러면 세례 요한은 어떠한 처지에서 그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었던가?
From what position was John supposed to accomplish this mission?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모세가 석판(石板)을 깨뜨린 것과 또 반석(磐石)을 두 번 친 것은,
In the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under Moses’ leadership, Moses broke the tablets of stone and struck the rock twice.

장차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그를 중심한 유대민족이 불신(不信)으로 돌아가면,
This set up conditions for Satan to strike the body of Jesus—the fulfillment of the tablets and the rock—should the Jewish people of his day not believe in him.

석판과 반석의 실체인 예수님의 몸도 칠 수 있다는 조건을 사탄에게 허락하는 표시적인 행동이 되었다는 데 대해서는 이미 모세노정에서 논급하였다..
For Jesus to be released from this condition, the chosen people entrusted with the mission to prepare for his coming should have united around the Temple, the image representation of the Messiah who was to come.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조건을 피하시게 되려면, 그의 강림(降臨)을 위한 터전을 닦아 나아가는 선민(選民)들이 장차 오실 메시아의 형상체인 성전(聖殿)을 중심하고 하나가 되어야 하였다.
However, over the years the Israelites repeatedly lapsed into faithlessness and thus multiplied conditions for Satan to attack Jesus.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은 항상 불신의 길을 걷게 되어, 장차 오실 예수님 앞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을 성립시켜 왔으므로, 이러한 조건을 막기 위하여 선지자(先知者) 엘리야가 와서 발알의 선지자와 아세라의 선지자를 합하여 850 명을 멸하는 등(열왕기상 18 장 19 절), 사탄분립의 역사(役事)를 하고 승천하였던것이다(열왕기하 2 장 11 절).
To erase these conditions, God sent the prophet Elijah. Elijah worked to separate Satan by defeating the prophets of Baal and Asherah, 850 altogether,( Kings 18:19) and then ascended to heaven.(II Kings 2:11)

그러나 엘리야의 전체적인 사명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는 재림해야 했던 것이다(말라기 4 장 5 절).
Yet, because Elijah did not complete his entire mission he had to return.( Mal. 4:5)

이와같이 엘리야가 다하지 못한 사탄 분립의 사명을 맡아 완수하고, 메시아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하여(요한복음 1 장 23 절) 엘리야로 왔던 선지자가 바로 세례 요한이었다(마태복음 11 장 14 절, 마태복음 17 장 13 절).
John the Baptist was the prophet whocame as Elijah (Matt. 11:14; 17:13 ) to complete this unfinished mission to separate Satan and make straight the way of the Lord.(John 1:23)

이스라엘민족은 애급(埃及)에서 400 년 동안, 그들을 인도해 주는 선지자도 없이 고역(苦役)을 당하여 오다가,
The Israelites had suffered hardships in Egypt for four hundred years without a prophet to guide them.

그들을 민족적으로 가나안 땅에 인도하여 메시아를 맞게 해 줄 수 있는 인물로서 모세 한 분을 만나게 되었었다.
They finally met Moses, the one man who could lead them into Canaan as a nation in preparation to receive the Messiah.

이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말라기 선지(先知) 이후 메시아강림준비시대(降臨準備時代) 400 년 간, 그들을 인도해 주는 선지자도 없이 페르샤, 헬라, 애급, 시리아, 로마 등의 이방(異邦)들에게 고역을 당하여 오다가, 마침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오시는 메시아 앞으로 그들을 인도해 줄 수 있는 인물로서 세례요한을 만났던 것이다.
In a similar fashion, the Jewish people suffered all kinds of tribulations under the oppression of the gentile nations of Persia, Greece, Egypt, Syria and Rome without a prophet to guide them during the four-hundred-year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advent of the Messiah, which began at the time of the prophet Malachi.(cf. Periods 3.6) They finally met John the Baptist, the one man who could lead them to the Messiah, who was coming to restore Canaan worldwide.Thus, John the Baptist,

애급고역(埃及苦役) 400 년 간의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섰던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충효(忠孝)의 도를 배웠던 것과같이,
like Moses, was called on the foundation of a four-hundred-year period for the separation of Satan. Moses had learned to love his brethren and the traditions of his fathers while living in the Pharaoh’s palace.

메시아강림준비시대 400 년간의 사탄분립기대 위에 섰던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石淸)을 먹으면서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하늘에 대한 충효(忠孝)의 도를 세웠던 것이다.
Likewise, John the Baptist learned the way of faith and obedience to Heaven and made preparations for the Messiah while living on locusts and wild honey in the wilderness.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祭司長)을 비롯한(요한복음 1 장 19 절) 유대인들은 모두 세례요한이 메시아가 아닌가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누가복음 3 장 15 절).
His life was so exemplary that many people, including the priests and Levites, wondered whether he might be the Messiah.(John 1:19; Luke 3:15) 371

세례요한은 이와같이 ’40 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웠으므로, 제 1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In this way, John the Baptist successfully established the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and was able to lay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2. 실체기대
2. THE FOUNDATION OF SUBSTANCE

세례요한은 모세와 같은 처지에 세워졌었기 때문에, 유대민족에게 있어 부모와 자녀의 두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Since John the Baptist stood in the same position as Moses, he likewise stood in the dual positions of parent and child.

그런데 그는 부모의 입장에서 제 1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였기 때문에 동시에 자녀의 입자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입장도 확립할 수 있었다(본장 제 2 절 Ⅰ.2).
From the position of parent, he restored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of faith. From the position of child, he secured the position of Abel for the fulfillment of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cf. Moses and Jesus 2.1.2)

따라서 세례요한은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40 년간의 탕감기간(蕩減期間)을 지나고, 제 1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믿음의 기대를 세웠던 입장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운 터 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John the Baptist recovered a foundation on the world level comparable to that of Moses when he lai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first national course after forty years inside the Pharaoh’s palace.

모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모세가 애급인(埃及人)을 쳐 죽이는 것을 보고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었다.
In Moses’ day, God’s desire at the first dispensation to start was that the Israelites develop trust in Moses when they witnessed him killing an Egyptian taskmaster.

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사탄 국가인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했던 것이지만,
The Israelites were then to leave the satanic world of Egypt and travel to the land of Canaan.

세례요한을 중심한 유대민족은 로마제국을 떠나 다른 땅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권하(政權下)에 있으면서 그들을 굴복시켜 그 제국(帝國)을 하늘 것으로 복귀해야 했던 것이다.
In John the Baptist’s time, however, the Jewish people were not to leave the Roman Empire and set out for another land. They were to remain within the empire, win over its people, and restore the empire to God’s side.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세례요한을 중심한 기사 이적(奇事異蹟)을 보여 주시어,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던 것이다.
God conducted the dispensation to start by encouraging the Jewish people to believe in John through the miracles surrounding his life.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잉태(孕胎)에 관한 천사의 놀라운 예고와 또 그 부친이 이것을 믿지 않았을 때 벙어리가 되었던 기사,
At John’s conception, an angel gave a wondrous prophecy concerning the child. When his father Zechariah did not believe it, he was struck dumb, and his speech returned only after he circumcised and named the child.

그리고 그가 출생할 때에 보여주신 이적 등으로 말미암아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산중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될고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러라(누가복음 1 장 65~66 절)고 하신 성경의 말씀대로, 이스라엘민족은 세례 요한의 출생시부터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Through these and other miracles, the Israelites were convinced that John was a prophet sent by God: Fear came on all their neighbors. And all these things were talked about through all the hill country of Judea; and all who heard them laid them up in their hearts, saying, “What then will this child be?” For the hand of the Lord was with him. —Luke 1:65-66

그뿐 아니라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石淸)으로 목숨을 연명하면서 기도의 생활을 한 그의 빛나는 수도(修道)의 생애로 인하여,
Moreover, John led an illustrious life of prayer and asceticism in the wilderness, living on locusts and wild honey.

제사장들과(요한복음 1 장 19 절) 일반 유대인들이(누가복음 3 장 15 절) 그를 메시아로 오인 할 정도로 그의 신망이 높았던 것이다.
The general public and even the priests admired him so highly that many thought he might be the Messiah.(Luke 3:15; John 1:19)

모세가 바로궁중 40 년의 탕감기간(蕩減期間)을 마치고 애급인(埃及人)을 살해하였을때 이스라엘 민족이 그의 애국심에 감동되어 그를 믿고 따랐더면,
When Moses finished the forty-year indemnity period in the Pharaoh’s palace and killed the Egyptian, the Israelites should have been deeply inspired by his love for his people and followed him with faith.

그들은 홍해(紅海)를 건너거나 광야를 돌지 않고, 또 석판(石板)이나 성막(聖幕)이나 법궤(法櫃)도 필요없이 불레셋의 곧은 길을 통하여서 곧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They would have then gone straight into Canaan, without having to cross the Red Sea or wander in the wilderness, and without need of the tablets of stone, the Ark of the Covenant or the Tabernacle.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하나님이 기사 이적(奇事異蹟)으로써 믿음의 대상자로 세워 주신 세례 요한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Likewise, the Jewish people in Jesus’ time were to believe in and follow John the Baptist, whom God had raised up through miracles and signs as the focus of their faith.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복귀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Thus, they would fulfill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lay the foundation of substance, thereby immediately establishing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3. 제 1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3. THE FAILURE OF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유대인들은 세례요한이 세운 믿음의 기대 위에서, 그를 메시아와 같이 믿고 따르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요한복음 1 장 19 절, 누가복음 3 장 15 절),
The Jewish people stood upon the foundation of faith laid by John the Baptist and followed John as if they were following the Messiah.(John 1:19; Luke 3:15)

그들은 구약시대(舊約時代)를 청산하고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새로운 노정을 출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Thereupon, they brought an end to the Old Testament Age and were ready to embark upon a new course to restore Canaan worldwide.

그러나 이미 전편 제 4 장 제 2 절에서 상술(詳述)한 바와 같이,
Yet, as was explained earlier,(cf. Messiah 2)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고서도 그를 의심하는 데 이르렀고(마태복음 11 장 3 절),
John the Baptist harbored doubts toward Jesus, even though he had testified to him. He sent a delegation and asked Jesus, “Are you he who is to come, or shall we look for another?” (Matt. 11:3)

또 자기가엘리아로 왔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부인하여(요한복음 1 장 21 절),
He denied that he was Elijah even though he in fact came to fulfill Elijah’s mission.(John 1:21)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반하는 처지에 서게까지 하였던 것이다.
This not only blocked the Jewish people’s path to Jesus, it even led them to oppose him.

이로써 세례 요한은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를 떠나게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타락성을 벗기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게 되었다.
In effect, John left the position of Abel, depriving the Jewish people of the central person with whom they could fulfill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그리하여 유대인들이 ‘실체기대’를 이루지 못하게 됨에 따라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 1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This blocked their way to complete the foundation of substance or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Consequently, the first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was aborted.

이것도 모세 때와 같이 2 차 내지 3 차까지 연장되게 되었던 것이다.
As was the case in Moses’ days, it was prolonged to a second and then a third cour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