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Part 2. Chapter 2. Moses and Jesus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2.6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3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1) 믿음의 기대
(1)THE FOUNDATION OF FAITH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이 실패로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Because the Israelites turned faint-hearted upon hearing the report of the faithless spies,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ended in failure.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ended in failure.

모세가 이 노정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세웠던 미디안 광야 40 년 기간은 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고 말았다.
The forty years Moses had spent in the wilderness of Midian to restore the foundation of faith were invaded by Satan.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정탐(偵探) 40 일 기간을 믿음과 순종으로 찾아 세우지 못함으로써, ‘날’을 ‘해’로 환산하여 광야를 떠돌아 다니다가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오는 40 년 기간은,
result of the failure of the mission to spy out the land, the people had to wander in the wilderness for forty years, one year for each day of the forty-day spy mission, until they returned to Kadesh-barnea.

모세에게 있어서는 제 2 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에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여 제 3 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한 기간이었다.
As a For Moses, this forty-year period was to separate Satan, who had invaded the previous foundation of faith, and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hird course.

따라서 이 광야 40 년 기간을 오직 믿음과 충성으로 성막(聖幕)을 모시고 표류하다가 가데스바네아로 다시 돌아온 모세는,
Moses honored the Tabernacle with faith and loyalty throughout the entire forty years of wandering in the wilderness. By the time he returned to Kadesh-barnea,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세울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서 이 노정의 민족적인 ‘실체헌제(實體獻祭)’를 위한 아벨의 입장도 확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he had complete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Accordingly, he also secured the position of Abel for the foundation of substance.


(2) 실체기대
(2) THE FOUNDATION OF SUBSTANCE

이스라엘 민족이 정탐 40 일 노정을 믿음과 순종으로 찾아 세우지 못하고 불신과 반역(反逆)으로써 실패하였으므로 ‘성막을 위한 기대’는 여전히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제 2 차 노정을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는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second course ended in failure when, due to the people’s persistent disbelief, Satan defiled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그러나 성막을 충성으로 받들고 모셨던 모세의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는 여전히 남아져 있었기 때문에,
However, at least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remained, preserved by Moses’ continued devotion.

이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표류(광야표류(曠野漂流))의40 년기간을, 변치않는 신앙으로 성막을 받들고 있는 모세에게 순종굴복함으로써 정탐 40 일에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는 기대를 세우면,
If, upon this foundation, the Israelites had faithfully followed Moses through the forty years of wandering in the wilderness, thus establishing the basis for the separation of Satan,

그 때에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가 조성되는 동시에 성막을 위한 기대도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they would have set up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Tabernacle and completed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그리고 이 기대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믿음과 순종으로, 성막을 중심한 모세를 받들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면,그때에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에 있어서의 ‘실체기대’는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If they had then honored and obeyed Moses and entered Canaan in faith, they would have complete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For Moses, the forty years of wandering in the wilderness was the period required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hird national course.

따라서 광야 40 년 표류기간은 모세에게 있어서는, 제 3 차 노정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한 기간이었고,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는 ‘성막을 위한 기대’를 세워가지고 제 2 차 노정에 그들이 모세를
받들고 성막을 건축하던 입장으로 돌아감으로써, 제 3 차노정의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기 위한 기간이었다.
For the Israelites, the goal for this period was to accomplish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third course. They were to do this by establishing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thereby returning to the state of grace which they had enjoyed in the second course when they first constructed the Tabernacle under Moses’ direction.


ㄱ) 모세를 중심한 실체기대
1) THE FOUNDATION OF SUBSTANCE CENTERED ON MOSES

석판(石板)과 성막(聖幕)과 법궤(法櫃)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받게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는 이미 위에서 밝힌 바 있다.
The tablets, the Tabernacl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became necessary in the second course only because the Israelites lost faith in the wilderness.

즉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복귀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그 ‘출발을 위한 섭리’로서 나타내셨던 3 대 기적(삼대기적(三大奇蹟))을 불신하는 입장에 섰었기 때문에,
Soon after they crossed the Red Sea, they forgot the three signs which God had granted when conducting the dispensation to start.

그들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40 일 시련기간을 거치게 하신 후에, 석판과 성막과 법궤의 3 대 은사(三大恩賜)를 주셨던 것이다.
To restore this through indemnity, God tested the people through a forty-day period while Moses was on the mountain. He then gave them three manifestations of divine grace: the tablets of stone,the Ark of the Covenant and the Tabernacle.

그리고 또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복귀하려 하였을 때, 라반이 야곱을 열번이나 속였던 것을(창세기 31 장 7 절) 탕감복귀하기 위하여10 재앙(십재앙(十災殃))을 내리셨던 것인데, 이스라엘이 또 이것을 분신하는 입장에 섰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십계명(十誡命)의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
Moreover, God had granted the ten plagues, which were to restore Laban’s ten deceptions of Jacob in Haran. Yet when the Israelites lost faith even after witnessing these, God attempted to restore the ten plagues through indemnity by giving the Ten Commandments.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모심으로써 3 대 은사와 십계명을 지키게 되면, 그들은 제 2 차노정에서 3 대 기적과 10 재앙으로 애급(埃及)을 출발하던 입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If the Israelites had renewed their faith by honoring the three manifestations of divine grace and obeying the Ten Commandments, had enjoyed when they left Egypt under the power of these miracles.

따라서 이스라엘민족이 믿음과 순종으로 모세를 따라 광야 40 년의 탕감기간을 마치고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온 후, 모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서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모시고 받을었더면,그들은 제 2 차노정에서 3 대 기적과 10 재앙으로 애급을 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의 목적을 이루었던 입장에 다시 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Accordingly, in the third course the Israelites should have completed the forty-year indemnity period by following Moses in faith and obedience through the wilderness.
they would have returned to the state of grace they After they returned to Kadeshbarnea,
they should have stood with Moses upon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and exalted the tablets, the Tabernacle and the Ark. Had they done so, they would have stood in the position they had enjoyed at the completion of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second course, when God struck the Egyptians with the three signs and ten plagues.

그런데 석판은 법궤의 축소체요 법궤는 성막의 축소체이므로 결국 석판은 성막의 축소체이기도 하다.
The tablets were a smaller representation of the Ark; the Ark was a smaller representation of the Tabernacle; hence, the tablets were a smaller representation
of the Tabernacle.

그러므로 법궤나 성막은 석판이나 그의 뿌리 되는 반석(磐石)으로써 표시할 수 있는 것이다.
The Ark and the Tabernacle may thus be represented by the tablets or their root, the rock.

따라서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가데스바네아를 출발하는 것으로써 시작되는 것이다.
Therefore, the thir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as to begin at Kadesh-barnea upon completing a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rock.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믿음과 충성으로 성막을 받들고 모세를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그 때에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짐으로써 모세를 중심한 실체기대(實體基臺)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Henceforth, had the Israelites honored the Tabernacle with faith and devotion and followed Moses into Canaan, they would have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required for the foundation of substance in the third national course.

그러면 하나님은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어떻게 이루려 하셨던가?
How did God intend to conduct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rock?

광야 40 년기간을 뜻앞에 세우지 못하고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을(민수기 20 장 4~5 절) 살리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모세로하여금 이스라엘의 회중(會衆) 앞에서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하여가지고 그들에게 마시게 하셨다(민수기 20 장 8 절).
During the forty years of wandering in the wilderness, the Israelites again fell into complaint and faithlessness. To save them, God instructed Moses to strike the rock with his staff that it might yield water and give drink to the people.(Num. 20:4-5, 8)

만일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한 번 쳐서 샘물을 내어 먹임으로써,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권능을 새로이 깨달아 그를 중심하고 하나가 되었더면, 그들은 모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서서, 반석을 중심한’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었을 것이다.
Moses should have struck the rock only once.The awe-struck Israelites then should have united with him, thereby standing with him upon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In this way, they would have fulfilled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rock.

그리하여 그때부터 모세를 믿고 순종하여 그를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갔더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게 됨으로써, 제 3 차 노정의 모세를 중심한 실체기대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모세는 물이 없다고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는 백성을 보자,격분하여 치밀어 오르는 혈기(血氣)를 누르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기 때문에,
However, when Moses heard the people murmuring against him and complaining that they had no water to drink, he raged in uncontrolled anger and struck the rock twice.

하나님께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수기 20 장 12 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Whereupon God said to him: Because you did not believe in me, to sanctify me in the eyes of the peopleof Israel, therefore you shall not bring this assembly into the land
which I have given them. —Num. 20:12

모세는 이와 같이 한 번 쳐야 할 반석(磐石)을 두 번 침으로써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기대’도 이루지 못하게 되어, 드디어 약속받은 가나안 복지(福地)를 눈 앞에 바라보면서 끝내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다(민수기 20 장 24 절, 민수기 27 장 12~14 절).
By striking the rock twice when he should have struck it only once, Moses undermined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rock. As a consequence, he was not permitted to enter the promised land. He could only gaze upon it from a distance at the end of his life.(Num. 27:12-14)

우리는 이제 반석을 한 번 쳐야 하는 이유와, 두 번 친 것이 어떻게 되어 죄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겠다.
Let us investigate why Moses should have struck the rock just once, and why his striking it twice constituted a sin.

요한계시록 2 장 17 절에서는 예수님을 흰 돌로 상징하였고,
The rock is a symbol for Jesus Christ.(I Cor. 10:4; Rev. 2:17)

한편 또 고린도전서 10 장 4 절을 보면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그런데 타락론(墮落論)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리스도는 생명나무로 오신 분이시므로(요한계시록 22 장 14 절),
Since Christ came as the tree of life,(Rev. 22:14; cf. Fall 1.1.1)

반석은 곧 생명나무이기도 하다. 한편 창세기 2 장 9 절의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에 있어서의 장래(將來)할 완성한 아담을 상징한 것으로서, 이 생명나무도 또한 반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반석은 그 완성한 아담을 상징하기도 하다.
the rock may also be seen as the tree of life. The tree of life is also a symbol for perfected Adam in the Garden of Eden; hence the rock symbolized Adam in perfection.

그런데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장차 반석이 될 그 아담을 쳐서 타락시켰다.
In the Garden of Eden, Adam should have matured to become the ideal represented by the rock.

따라서 아담은 생명나무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창세기 3 장 24 절), 그는 또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생명수(生命水) 샘물을 영원히 그 자손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반석도 되지 못하였다.
Yet when Satan struck him and caused him to fall, Adam could not become the tree of life or the rock which could give his descendants the water of eternal life.

그러므로 모세가 지팡이로 치기 이전, 샘물을 내지 못하던 반석(磐石)은 바로 타락된 아담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the waterless rock, before Moses struck it the first time, symbolized fallen Adam.

사탄이 장차 생명수를 낼 수 있는 반석으로 성장하고 있던 아담을 한 번 쳐서 타락시킴으로써,
To indemnify Satan’s act of striking Adam and preventing him from becoming the rock which could give the water of life,

그를 ‘샘물을 내지 못하는 반석’으로서의 아담이 되게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샘물을 내게 함으로써,
God had Moses strike the rock once. When he hit the rock once and it yielded water,

‘샘물을 낼 수 있는 반석’으로서의 아담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려 하셨던 것이다.
Moses fulfilled an indemnity condition to restore Adam as the water-giving rock.

그러므로 모세가 한 번 쳐서 생물을 내게 된 반석은 바로 생명나무로 오셔서 타락한 인간에게 생명수 샘물을 주실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The rock, struck once, symbolized Jesus who was to come and give fallen humanity the water of life.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니 나의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 장 14 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Therefore, Jesus said: Whoever drinks of the water that I shall give him will never thirst; the water that I shall give him will become in hi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John 4:14

따라서 모세가 반석을 한번 치는 것은 타락된 제 1 아담을 완성한 제 2 아담 예수님으로 탕감복귀(蕩減復歸)할 수 있는 조건으로서 허락된것이었다.
Thus, God intended that Moses strike the rock once as an indemnity condition for fallen Adam to be restored in the person of the second, perfected Adam—Jesus.

그러나 모세가 하늘편에서 한 번 쳐서 샘물을 내게 된 반석을 또 한 번 친 행동은 장차 복귀한 반석으로 오셔서 만민에게 생명수 샘물을 먹여 주실 예수님을 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이스라엘의 불신과 그것을 목격한 모세가 혈기(血氣)로써 반석을 두 번 친 행동은, 장차 예수님이 오실 때에도 이스라엘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반석의 실체되시는 예수님 앞에 사탄이 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조건을 성립시킨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죄가 되었던 것이다.
However, when Moses struck the rock the second time, after it had already brought forth water, it represented the possibility that Jesus might be struck. In other words, Moses’ act of striking the rock twice in anger at the faithlessness of the Israelites set up the condition that when Jesus came, if the Jewish people were to turn faithless, Satan would have grounds to confront Jesus, the fulfillment of the rock. This is why Moses’ act constituted a sin.

모세가 석판(石板)을 한번 깨뜨린 것은 복귀할 수 있었으나, 반석을 두번 친 실수는 복귀할 수 없었으니 그 이유는 어디 있었던 것인가?
Although Moses’ act of breaking the tablets of stone could be restored, his mistake of striking the rock the second time could not be restored. Why is this so?

복귀섭리(復歸攝理)로 보아 석판과 반석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In the context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the tablets of stone and the rock were related as external and internal.

십계명(十誡命)이 기록된 석판은 모세의 율법(律法)의 중심이요,
The tablets of stone, inscribed with the Ten Commandments,

따라서 구약성서(舊約聖書)의 중심이다.
were the core of the Mosaic Law and the heart of the Old Testament.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은 이 석판이상(石板理想)을 믿음으로써 그 시대의 구원권내(救援圈內)에 들어갈 수 있었다.
Israelites could receive the salvation available in the Old Testament Age by upholding the ideals contained in the tablets.

이러한 의미에서 석판은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외적인 표시체임을 알 수 있다.
The In this sense, the tablets of stone were an external representation of Jesus who was to come.

그런데 고린도전서 10 장 4 절에 반석(磐石)은 곧 그리스도라고 하신 말씀대로, 반석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동시에 석판(石板)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 그것은 석판의 실체이신 예수님의 뿌리 곧 하나님도 상징하는 것이다.
The rock, on the other hand, not only symbolized Christ; as the root of the tablets of stone, it also symbolized God, the origin of Christ.

그러므로 석판은 외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반석은 내적인 것이다.
The tablets of stone were external; the rock was internal.

또 석판은 몸으로 비유한다면 반석은 마음에 해당하며,
If we liken the tablets to the body, the rock corresponds to the mind;

석판은 성소(聖所)라고 한다면 반석은 지성소(至聖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석판을 땅이라고 한다면 반석은 하늘에 해당하는 것이다.
if we liken the tablets to the earth, the rock corresponds to heaven.
if we liken the tablets to the holy place, the rock corresponds to the most holy place;

그러므로 반석은 석판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내적인 표시체인 것이다.
In short, as an internal representation of Christ, the rock had greater value than the tablets of stone.

이와같이 석판은 예수님에 대한 외적인 표시체였으므로, 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상징하는 모세 앞에(출애굽기 4 장 16 절, 출애굽기 7 장 1 절), 예수님의 외적인 표시체로 세워졌던 아론을 상징했었다.
As an external representation of Jesus, the tablets of stone also symbolized Aaron. Aaron was an external representative of Jesus as he stood before Moses, the representative of God.(Exod. 4:16; 7:1)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아론을 시켜 금송아지를 만들었기 때문에(출애굽기 32 장 4 절), 아론이 깨어짐에 따라서 석판도 깨어지게 되었었다.
When the Israelites pressured Aaron to make the golden calf,(Exod. 32:4) Aaron himself lost faith, and this led to the breaking of the tablets.

그러나 아론이 르비듬에서 반석 샘물을 마신 터전 위에서(출애굽기 17 장 6 절) 회개함으로써 소생(蘇生)할 수 있었기 때문에,
Nevertheless, Aaron could be revived because he repented while still standing upon the foundation of having drunk the water from the rock at Rephidim.(Exod. 17:6)

아론을 상징하는 석판도 반석 샘물의 내적인 터전 위에서 다시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움으로써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When he did so, the tablets of stone symbolizing Aaron could also be refashioned and restored based on the internal foundation of the water from the rock.

그러나 석판의 뿌리가 되는 반석은 그리스도와 그의 뿌리되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친 행동은 만회할 수 없었던 것이다.
However, since the rock—the root of the tablets of stone—symbolized not only Jesus but also God, his origin, striking the rock the second time could not be undone.

그러면 모세가 반석 2 타(磐石二打)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던가?
What were the consequences of striking the rock twice?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쳤던 것은 불신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에 대한 혈기(血氣)를 참지 못한 결과였기 때문에(시편 106 편 32~33 절),
Moses struck the rock the second time because he was overcome by uncontrolled rage at the people’s faithlessness.(Ps. 106:32-33)

이 행동은 결국 사탄의 입장에서 행한 것이었다.
He acted under the influence of Satan, even on Satan’s behalf.

그러므로 반석으로 이루시려던 ‘출발을 위한 섭리’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Consequently, the dispensation to start which God had intended to carry out based on the rock was defiled by Satan.

이렇듯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외적인 행동은 사탄의 행동으로 돌아갔으나,
Although externally Moses’ act of striking the rock a second time proved to be a satanic act,

내적인 실제에 있어서는 그 반석에서 샘물을 내어 이스라엘을 먹여 살렸던 것이다.
still in a deeper, internal sense he gave drink to the people with the water which flowed from it and saved their lives.

그렇기 때문에 애급(埃及)에서 나온 외적인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나님이 예정하신 가나안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This reaffirmed the prophecy God had given earlier(Num. 14:28-34 ) that the external Israelites, those who were adults when they left Egypt, could not enter Canaan as was promised, except for Joshua and Caleb.

모세도 120 세를 1 기로 소망의 땅을 눈 앞에 바라보면서 죽고 말았다(신명기 34 장 4~5 절).
Moses, too, would die without fulfilling his long-cherished dream of entering
the promised land.(Deut. 34:4-5)

그러나 여호수아가 모세의 대신으로(민수기 27 장 18~20 절), 반석 샘물을 마시고 성막을 받드는광야노정 가운데서 출생한 내적인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민수기 32 장 11~12 절).
On the other hand, the internal Israelites, those who were children at the time of the Exodus from Egypt or were born during the wilderness course when the people drank water from the rock and honored the Tabernacle, would enter Canaan under the leadership of Joshua,(Num. 32:11-12) who succeeded Moses.(Num. 27:18-20)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행동이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 반석에서는 샘물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었다.
Since Moses’ act of striking the rock twice allowed Satan to invade, we would not expect the rock to have yielded water.

그려면 어떻게 되어 거기에서 샘물이 나올 수 있었던가?
How, then, was it possible for water to flow from it?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모세는 일찌기 르비듬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반석을 쳐서 샘물을 내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마시게 함으로써 반석 샘물의 터전을 마련한 바 있었던 것이다(출애굽기 17 장 6 절).
Moses had already brought forth water from the rock at Rephidim(Exod. 17:6) in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thus laying the foundation to bring forth water from the rock.

그리고 이 터전 위에서 세워진 석판(石板)과 성막(聖幕)과 법궤(法櫃)는, 다른 모든 이스라엘이 불신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40 일 금식기도(禁食祈禱)로써 세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서 그것을 굳게 지켜온 모세는 한 사람의 믿음에 의하여,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에까지 계승되어 왔었다.
The tablets of stone, the Tabernacl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erected upon this foundation were sustained into the third national course, despite the people’s faithlessness, by Moses’ unwavering devotion. He firmly maintaine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which he had laid during his forty-day fast.

그 뒤에 모세마저 불신의 입장으로 돌아갔지만 하늘을 대한 그의 심정은 변하지 않았고 또 여호수아가 그의 정탐(偵探) 40 일로써 세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서 변치 않는 신앙으로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Although Moses’ faith faltered in a moment of anger, his heart toward God remained unchanging. Furthermore, Joshua had laid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through
his absolute faith during the forty days of spying, and he continued to uphold the tablets, the Tabernacle and the Ark from that time forth.

르비듬에서 세웠던 반석(磐石) 샘물의 터전도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그대로 남아졌었던 것이다.
Thus, the foundation to bring forth water from the rock, which had been established
at Rephidim, remained intact centered on Joshua.

이와같이 모세의 외적인 불신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제 2 차 반석이 외적으로는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으나, 그의 내적인 불변의 심정과 여호수아의 믿음과 충성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내적으로는 샘물을 내어
마시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In sum, although the second dispensation based on the rock was invaded by Satan externally due to Moses’ outward act of faithlessness, it remained sound internally.
The rock brought forth water for the people due to Moses’ and Joshua’s internal attitude of unswerving faith and devotion.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은 결과적으로 사탄의 입장에서 친 것이 되어 그 돌은 사탄이 소유하게 되었다.
When Moses struck the rock the second time, he in effect struck it from the position of Satan. Satan, therefore, took possession of the stone.

따라서 그 돌의 실체로 오셨던 얘수님은, 그의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유대인들이 불신으로 돌아가자,
Accordingly, when in Jesus’ time the people disbelieved, Jesus, as the fulfillment of the stone,

일찍이 저들이 광야(曠野)에서 잃어버렸던 이 돌을 몸소 찾으시려고 광야로 가셨었기 때문에, 사탄으로부터 돌로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을 제일 먼저 받으셨던 것이다.
had to personally enter the wilderness and recover the stone. This is the reason behind his first temptation, when Satan challenged him to turn the stone into bread.

모세가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외적으로는 혈기(血氣)를 내어 반석을 두 번 쳤기 때문에,
Due to the faithlessness of the Israelites, Moses became enraged and struck the rock twice.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광야에서 죽었으나,
This gave Satan a lien on his body, which bound Moses to die outside the promised land.

내적으로는 그의 불변의 심정으로 인하여 반석의 샘물을 내어 먹였기 때문에, 영적으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However, he was able to enter Canaan in spirit because he had brought forth water from the rock by virtue of his indomitable faith.

이것은 장차 반석의 실체 되시는 예수님이 오실 때에도,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게 되면,
This foreshadowed what could happen when Jesus came as the true manifestation of the rock. If the Jewish people disbelieved,

예수님도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받아 십자가에 달리시게 됨으로써,
Jesus’ body would also suffer attack by Satan, even to the extent of being hung on the cross.

영육(靈肉) 아우른 세계적 가나안 복귀는 완수하지 못하시고,
He would die before completing the restoration of Canaan worldwide.

부활(復活)하심으로써 영적으로만 그것을 완수 하게 되시리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Nevertheless, he would still be able to accomplish the spiritual portion of restoration through his resurrection.

모세가 반석(磐石)을 두 번 친 후, 하나님은 불신(不信)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에게 불뱀을 보내어 그들을 물어 죽이게 하셨다(민수기 21 장 6 절). 그러나 이스라엘이 회개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게 하여,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만은 구원을 받도록 하셨다(민수기 21 장 9 절).
Shortly after this episode, the Israelites again complained along the way, and God sent fiery serpents which bit and killed many of them. When they repented, God had Moses make a bronze serpent and set it on a pole, that anyone might look at it and be save .(Num. 21:6-9)

이 불뱀은 해와를 타락시킨 옛 뱀 곧 사탄을 상징하였고(요한계시록 12 장 9 절),
The fiery serpents symbolized Satan, the ancient serpent (Rev. 12:9)

장대 끝에 매단 구리뱀은 장차 하늘 뱀으로 오실 예수님을 상징했던 것이다(요한복음 3 장 14 절).
who had caused Eve to fall; the bronze serpent set on the pole symbolized Jesus, who was to come as the heavenly serpent.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불신으로 돌아갔을 때는 그들을 사탄 뱀에게 내주셨다가,
Although God let the Israelites fall prey to the satanic serpent when they became faithless,

그들이 회개하고 신앙을 돌이킬 때에는 다시 구리뱀으로 살려 주셨던 것과같이,
He saved their lives with the bronze serpent when they repented and renewed their faith.

후일 예수님 때에 있어서도 유대인들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Likewise, in Jesus’ time, if the people were to disbelieve,

하나님은 그들을 사탄에게 내주시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는 것과 그 때에 예수님은 인류를 살리시기 위하여 부득이 하늘 뱀으로서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시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과,
God would have to leave them vulnerable to Satan’s attack, and Jesus would have to be hung on the cross as the heavenly serpent to save humanity.

또 불신을 회개하고 그의 십자가로 인한 구속(救贖)을 믿는 자들은, 누구나 구원해 주시게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Whoever then repented of his faithlessness and believed in the redemption by the cross would be saved.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한복음 3 장 14 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This foreshadowed what might happen in Jesus’ time, as he said: “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John 3:14)

이 사실은 실상 예수님을 중심한 제 3 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십자가로 인한 영적인 노정으로 출발하게 한 먼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Indeed, the episode of the fiery serpents was a remote cause of Jesus’ walking the path of the crucifixion to begin the course of spiritual salvation.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인하여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쳤을 때, 하나님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민수기 20 장 12 절).
When the Israelites were faithless and Moses struck the rock twice, God declared that Moses would not be permitted to enter the land of Canaan.(Num. 20:12)

이에 모세는 하나님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하여 달라고 간곡한 애원(哀願)의 기도를 올렸으나(신명기 3 장 25 절),
Although Moses desperately prayed to God and begged God to allow him to enter Canaan,(Deut. 3:25)

종내 그 목적의 땅을 눈 앞에 바라보면서 죽고 말았다.
he was denied entrance and died outside its borders.

이렇게 되어 그가 죽은 뒤에 그 시체를 장사(葬事)하였으나,
After his death, his body was buried in a valley in the land of Moab,

그가 묻힌 곳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신명기 34 장 6 절).
but no one knew the place of its burial.(Deut. 34:6)

이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도 유대인들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This also foreshadowed what might happen to Jesus: if the people were to reject him,

그는 십자가에 달리시게 될 것이고,
he would be crucified.

또 할수만 있으면 죽음의 잔을 면하고 세계 가나안 복귀를 이루게하여 달라고 애원의 기도를 하실 것이지만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될 것과,
Even though he might pray desperately to avoid this fate and realize the Kingdom of Heaven—as he in fact did in the Garden of Gethsemane when he prayed,

한편 그의 시체도 장사한 뒤에 간 곳을 아는 사람이 없게 될 것 등을 예시(豫示)하신것이다.
“let this cup pass from me”— he would die unable to accomplish this goal. Furthermore, after his death no one would know the whereabouts of his body.


ㄴ) 여호수아를 중심한 실체기대
2. THE FOUNDATION OF SUBSTANCE CENTERED ON JOSHUA

모세가 반석(磐石)을 두 번 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로써 가나안으로 복귀하려던 뜻은 이루어지지않았다. 그러나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민수기 20 장 1~13 절)사탄이 외적으로는 침범했지만, 르비듬 반석 샘물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는 그대로 샘물을 내어 이스라엘에게 먹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위에서도 밝혀 온 바와같이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섭리(攝理)에 대한 또 하나의 노정을 보여주셨다.
When at Kadesh-barnea Moses struck the rock twice,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journey to Canaan, which was to have been based on the rock, was not brought to pass. Although Satan invaded externally, nevertheless the foundation which Moses had laid internally when he
had brought forth water from the rock at Rephidim remained intact, and he could bring forth water from the rock at Kadesh-barnea for the people to drink. This set the pattern for what would follow.

즉 이스라엘 민족 중, 사탄 세계인 애급(埃及)에서 출생하여 광야노정에서 불신으로 돌아갔던 외적인 이스라엘에 속하는 사람들은, 정탐(偵探) 40 일을 믿음으로 세웠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반석샘물을 마시고 성막(聖幕)을 받드는 광야생활 가운데서 출생한 내적 이스라엘만이, 모세 대신의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다(민수기 32 장 11~12 절).
The external Israelites born in Egypt, who became faithless in the wilderness, all perished except for Joshua and Caleb, who had shown firm faith during the forty-day mission to spy out the land.(Num. 32:11-12) The internal Israelites, the younger generation who were born and raised in the wilderness when the people drank water from the rock and were upholding the Tabernacle, entered the land of Canaan under the leadership of Joshua.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면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잔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민수기 27 장 18~20 절)고 하셨다.
God instructed Moses to commission Joshua in his stead:Take Joshua the son of Nun, a man in whom is the spirit, and lay your hand upon him; cause him to stand before Eleazar the priest and all the congregation, and you shall commission him in their sight. You shall invest him with some of your authority, that all the congregation of the
people of Israel may obey. —Num. 27:18-20

여호수아는 정탐(偵探) 40 일기간에 불신으로 돌아갔던 온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모세가 세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위에 굳게 서서 변함 없는 믿음과 충절(忠節)로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조성하고 끝까지 그것을
받들었던 오직 두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이와같이 비록 모세는 불신으로 돌아갔으나, 석판(石板)과 성막(聖幕)과 법궤(法櫃)는 여전히 여호수아가 세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When the people were beset with fear upon hearing the reports of the spies, only Joshua and Caleb remained firm in their faith upon the foundation of faith Moses had laid through the Tabernacle. With absolute faith and loyalty, they thus established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and would honor it to the end. Although Moses’ faith faltered later on,
the tablets of stone, the Ark and the Tabernacle all remained intact upon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which Joshua laid.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모세의 대신으로 세우시고, 그 내적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에게 복종하여 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게 하심으로써, 반석 샘물을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고, 이 섭리에 의하여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감으로써 거기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가지고, 제 3 차 노정의 여호수아를 중심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여호수아)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가나안으로) 건너가서 네(모세)가 볼 땅을 그들로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신명기 3 장 28 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Therefore, God worked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course anew, this time based on the water from the rock, by elevating Joshua to Moses’ place and having the internal Israelites obey him and stand with him upon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On this basis, they were
to enter the land of Canaan, where they were to fulfill the national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In this way, God intended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substance centered on Joshua in the third national course.(Deut. 3:28)

그리고 하나님은 여후수아에게도 모세와 함께 있떤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여호수아 1 장 5~6 절)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생활 40 년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찾아 세웠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시어 이스라엘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고 명령하셨던 것과 같이(출애굽기 3 장 8~10 절),
When Moses had satisfactorily accomplished the period of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of Midian, God appeared before him and commanded him to guide the Israelites to the land of Canaan, the land of milk and honey.(Exod. 3:8-10)

하나님은 광야에서 표류(漂流)하는 40 년을 오직 믿음과 충성으로 찾아 세운 여후수아를 모세 대신으로 부르시어,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여호수아 1 장 2 절)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Likewise, when Joshua accomplished with faith and devotion the period of forty years of wandering in the wilderness, God personally called him to serve in the position of Moses, commanding: Moses my servant is dead; now therefore arise, go over this Jordan, you
and all this people, into the land which I am giving to them, to the people of Israel. . . . As I was with Moses, so I will be with you; I will not fail you or forsake you. Be strong and of good courage; for you shall cause this people to inherit the land which I swore to their fathers to give them. —Josh. 1:2, 5-6

하나님으로부터 이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가 백성의 유사(有司)들을 불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러한 뜻을 전하였을 때(여호수아 1 장 10 절), 그들은 여호수아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여호수아 1 장16~18 절)라고 대답하면서, 그들은 죽기를 맹세하고 여호수아를 따라갈 것을 결의하였다.
Upon receiving this direction from God, Joshua summoned the officers of the people and conveyed God’s instructions to them.(Josh. 1:10) They replied: All that you have commanded us we will do, and wherever you send us we will go. . . . Whoever rebels against your commandment and disobeys your words, whatever you command him, shall be put to death. Only be strong and of good courage. —Josh. 1:16-18

이와같이 모세의 사명을 대신하고 나선 여호수아는 초림(初臨)때의 사명을 계승 완성하러 재림(再臨)하실 예수님을 상징하였다.
They pledged with their lives to follow Joshua. In succeeding Moses’ mission
to restore Canaan, Joshua prefigured Christ at the Second Advent,

따라서 모세노정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여호수아의 노정은, 예수님의 영적 복귀의 노정을 영육(靈肉) 아울러 탕감복귀해야 할 그의 재림노정(再臨路程)에 대한 표시적인 노정이 되는 것이다.
who will come to complete the mission which Jesus left unfinished. Just as Joshua’s course was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Moses’ course, the course of Christ at the Second Advent must restore through indemnity, both physically and spiritually, Jesus’ course of spiritual restoration.

모세가 제 2 차 노정에서 가나안 땅에 정탐(偵探)으로 보냈던 열 두 사람이 있었다(민수기 13 장 1~2 절). 그들 중 오직 충성으로 그 사명을 완수한 두 사람의 심정의 터전 위에서, 여호수아는 다시 두 사람의 정탐을
여리고성으로 보냈다(여호수아 2 장 1 절).
In the second national course, Moses sent twelve spies to Canaan.(Num. 13:1-2)
Upon the foundation of heart laid by the two spies who had faithfully completed their mission, Joshua sent two men to spy out the fortified city of Jericho.(Josh. 2:1)

그리하여 여리고 성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두 정탐인은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여호수아 2 장 24 절)라고 믿음으로 보고하였던 것이다.
When they returned from Jericho, the two spies made a faithful report: “T ruly the Lord has given all the land into our hands; and moreover all the inhabitants of the land are fainthearted because of us.”(Josh. 2:24)

이 때에 광야에서 출생한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모두 그 정탐인(偵探人)의 말을 믿었으므로, 이것으로써 과거에 40 일 정탐을 뜻맞게 세우지 못한 선조들의 죄를 탕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The younger generation of Israelites raised in the wilderness all believed the spies’ words, and this faith indemnified the sins of their parents, who had not properly completed the previous forty-day mission to spy out the land.

이와같이 내적 이스라엘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선 여호수아에게 순종할 것을 죽음으로써 맹세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여호수아와 함께 그 기대(基臺) 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Having pledged with their lives to obey Joshua, who stood upon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the internal Israelites could stand with him on that foundation.

이와같이 그들은 반석 샘물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로써, 제 2 차 노정에서 3 대 기적(삼대기적(三大奇蹟))과 10 재앙(十災殃)으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었던, 모세를 중심한 그들의 선조들과 같은 입장을 복귀하였던 것이다.
By restoring the dispensation to start based on the water from the rock, they assumed the same position as their parents had when, under Moses’ leadership, they had participated in the dispensation to start at the Exodus from Egypt when God provided the three signs and
ten plagues.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이 홍해(紅海)를 거너기 전에 3 일노정을 찾아 세웠던 것과같이,
Just as the Israelites under Moses’ leadership had passed through a three-day course before they crossed the Red Sea,

여호수아를중심한 이스라엘도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3 일 조정을 찾아 세웠던 것이다(여호수아 3 장 2 절).
the Israelites
under Joshua’s leadership passed through a three-day course before they crossed the Jordan River(.Josh. 3:2)

한편 제 2 차 노정에 있어서 3 일노정을 지난 이스라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홍해까지 인도하였던 것과같이,
In the second national course, after the threeday course was completed, the pillar of cloud and the pillar of fire led the Israelites to the Red Sea.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그들이 3 일노정을 마친 후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표상된
예수님과 성신(聖神)의 상징적 실체인 법궤가 그들을 요단강까지 인도하였던 것이다(여호수아 3 장 3 절, 여호수아 3 장 8 절).
Similarly, after the Israelites under Joshua’s leadership completed the three-day course, the Ark of the Covenant led them to the Jordan River.(Josh. 3:3, 6 )The tablets lying at the center of the Ark, and the pillars of cloud and fire both symbolized Jesus and his would-be Bride.

그리고 모세를 인도하던 지팡이에 의해서 홍해가 갈라졌듯이,
Moses used his staff to guide the way and split the Red Sea in two. Likewise,

여호수아를 인도하던 법궤가 요단강의 물 위에 서자 언덕에 넘치던 요단의 흐름이 갈라져서(여호수아 3 장 16 절), 따라온 이스라엘은 육지와 같이 강을 건너게 되었다(여호수아 3 장 17 절).
Joshua placed the Ark of the Covenant in front of the troops to guide their way. When the priests bearing the Ark of the Covenant entered the Jordan River, its waters parted, opening the way for the people following the Ark to walk on the riverbed.(Josh. 3:16-17)

지팡이는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하나의 표시체였고, 두 석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는 법궤는
예수님과 성신의 상징적인 실체였었다.
Moses’ staff symbolized Jesus; similarly, the Ark containing the tablets of stone, manna and Aaron’s staff symbolized Jesus and his would-be Bride.

그러므로 법궤 앞에서 요단강의 물이 갈라지고이스라엘이 평탄하게 가나안 땅으로 복귀하였다는 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과 성신 앞에 몰로 표시된 이 죄악세상(요한계시록 17 장 15 절)

Therefore, the parting of the Jordan River before the Ark, which allowed the Israelites to enter the land of Canaan safely, foreshadowed what would happen in the presence of Jesus and his Bride: sinful humanity, symbolized by water,(Rev. 17:15)

이 선 악으로 분립되어 심판을 받은 후, 모든 성도들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게 될 것을 보여준 것이다.
would be divided between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and face the judgment. All faithful believers would then complete the restoration of Canaan worldwide.

이때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 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 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여호수아 4 장 2~3 절)고 하셨다.
Upon reaching the Jordan River, God commanded Joshua, saying: Take twelve men from the people, from each tribe a man, and command them, “Take twelve stones from here out of the midst of the Jordan, from the very place where the priests’ feet stood, and carry them over with you, and lay them down in the place where you lodge tonight.” —Josh. 4:2-3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정월(正月) 10 일에 요단강에서 올라와서, 여리고의 동편 지경(地境)인길갈에 진을 치고 요단강에서 가져온 열 두 돌을 거기에 세웠었다(여호수아 4 장 20 절).
And thus the people did: The people came up out of the Jordan on the tenth day of the first month, and they encamped in Gilgal, on the east border of Jericho. And those
twelve stones, which they took out of the Jordan, Joshua set up in Gilgal. —Josh. 4:19-20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예시(豫示)한 것인가?
What did this foreshadow?

이미 논한 바와 같이 돌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상징한다.
As was discussed earlier, the stone symbolized Jesus.

따라서 12 지파를 대표한 열두 사람이 법궤로 인하여 물이 갈라진 요단강 가운데서 열 두 돌을 받들었다고 하는 것은, 장차 12 지파의 대표형으로 부름을 받을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이 죄악세상이 선악(善惡)으로 갈라질 때, 그 곳에서 예수님을 받들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Accordingly, when the twelve leaders representing the twelve tribes each carried a stone from the middle of the Jordan River after its waters had been divided by the Ark, it foreshadowed what the twelve disciples of Jesus, representing the twelve tribes, should do at his coming: uphold him at the very place where his Word judges this sinful world and divides it into good and evil.

그들이 열 두 돌을 받들었다가 가나안땅의 안정된 진(陳)에 한데 모아 놓았을 때, 여호수아는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여호수아 4 장 24 절)고 말하였다.
After they took the twelve stones and set them up in the camp at Gilgal in the land of Canaan, Joshua said, “So that all the peoples of the earth may know that the hand of the Lord is mighty; that you may fear the Lord your God for ever.”(Josh. 4:24)

이것은 장차 돌로서 오시는 예수님을 모시는 열두 제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한 곳에서 하나로 뭉쳐야만,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여 하나님의 전능(全能)하심을 영원히 찬양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보여준 것이었다.
This foreshadowed that the twelve disciples of Jesus should become one in heart; only then could they complete the restoration of Canaan worldwide, that all the people of the world might praise the power of God eternally.

야곱이 가는 곳마다 돌단을 쌓았던 것과 같이, 야곱의 열 두 아들의 후손인 열두 지파(支派)의 대표들도 열 두 돌을 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祈禱)의 제단을 쌓아 앞으로 성전(聖殿)을 건축할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니,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열 두 제자(弟子)가 힘을 합하여 예수님을 성전으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후일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되지 못하였을 때에,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한복음 2 장 19 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Just as Jacob built a stone altar wherever he went, the representatives of the twelve tribes, descendants of the twelve sons of Jacob, gathered together the twelve stones and built an altar in praise of God. They were eventually to construct the Temple. This foreshadowed that the twelve disciples of Jesus should join together and honor Jesus as
the Temple. For this reason, when his disciples were not uniting, Jesus
said, “Destroy this temple, and in three days I will raise it up.”(John 2:19)

과연 12 제자는 하나 되지 못하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으므로, 성전된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로써 헐렸다가 3 일 만에 부활(復活)하시어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모은 후에야 그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들어 영적인 성전으로 모시게 되었고, 또 재림(再臨)하신 후에야 실체성전(實體聖殿)으로 모실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The twelve disciples in fact failed to unite with each other, and one of them,
Judas Iscariot, even sold Jesus to his foes. Only after Jesus suffered crucifixion
and resurrected after three days was he able to bring together his scattered disciples. The disciples then honored the resurrected Jesus as the spiritual Temple. Only at his Second Coming will his followers be able to serve him as the incarnate Temple.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埃及)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하여 제 2 차노정을 출발할 때, 그 해 정월(正月) 14 일 유월절(逾越節)을 지나고 진군하였던 것과 같이(출애굽기 12 장 17~18 절),
When the Israelites left Egypt and set out for the land of Canaan, they observed the feast of Passover on the fourteenth day of the first month.(Exod. 12:17-18)

길갈에 진을 쳤던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도 그 해 정월 14 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굳게 닫힌 여리고의 성벽을 향해 진군을 하였다. 땅의 소산(所産)을 먹기 시작하자 40 년간이나 내려주시던 만나도 그쳤으므로 그때부터는 인간의 땀으로 된 곡식으로 생활해야만 되었으며, 사탄 도성의 최후의 관문을 뚫는데 있어서도 인간으로서 할 책임을 다해야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4 만의 병사가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따라 일곱 제사장(祭司長)이 일곱 나팔을 불면서 행진하고, 또 그 뒤에는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이 멘 법궤(여호수아 3 장 3 절)가 따랐으며, 최후선에는 이스라엘 전군이 연달아 진군하였던 것이다(여호수아 6 장 8~9 절).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이스라엘은 이러한 행군으로 하루에 한 번씩 6 일이나 성(城)을 돌았어도 그 성엔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그들은 인내(忍耐)와 복종(服從)으로 사탄의 침범을 당한 6 일의 창조기간(創造期間)을 탕감복귀해야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순종으로 6 일을 찾아 세운 후, 제 7 일에 일곱 나팔을 부는 7 명의 제사장(祭司長)이 성벽을 일곱 번 돌면서 7 회의 나팔소리를 끝내고 여호수아가 백성을 향하여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고 호령하자, 백성들이 이에 응하여 일제히 큰 소리로 외치니 그 성이 곧 무너졌었다(여호수아 6 장). 이러한 노정은 장차 예수님의 권능(權能)과 그의 성도(聖徒)들에 의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가로막혀 잇는 사탄의 장벽이 무너질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Likewise, the Israelites under Joshua’s leadership, who encamped at Gilgal, observed the feast of Passover on the fourteenth day of the first month of that year. Afterward, they set out for the city of Jericho. When they began to live on the produce of the land, God
stopped giving the manna which He had been providing for forty years. From that time forth, they were to make a living with their own sweat. Furthermore, until they had overthrown every last satanic city, they had to strive to the utmost to fulfill their responsibility.
As they approached Jericho, in accordance with God’s command, the Israelites put forty thousand soldiers at the forefront while seven priests blew seven trumpets as they marched behind the soldiers. Following behind them was the Ark of the Covenant carried by the
Levitical priests, and the rest of the Israelite army marched at the rear.

The Israelites marched around the fortified city in this formation once a day for six days, but this caused no change in the city. With patience and obedience, the people were restoring through indemnity the sixday period of creation which had been invaded by Satan. After they faithfully endured through six days, on the seventh day the seven priests
circled the city walls seven times, blowing the seven trumpets, and Joshua said to the people: “Shout; for the Lord has given you the city.”(Josh. 6:16) The people raised a great shout and the city walls tumbled down.

그러므로 이 성벽은 다시 쌓아서는 아니 될 것이었으므로, 여호수아는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 계자를 잃으리라(여호수아 6 장 26 절)고 말하였던 것이다.
The conquest of Jericho(Josh. 6) foreshadowed that by the power of Christ and the
work of his followers, the satanic barrier between Heaven and earth will crumble. Once dismantled, this wall will never be erected again. Thus,
Joshua proclaimed: Cursed before the Lord be the man that rises up and rebuilds this city,
Jericho. At the cost of his firstborn shall he lay its foundation, and at the
cost of his youngest son shall he set up its gates. —Josh. 6:26

이리하여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적을 공격하게 된 여호수아는 벧호론 싸움에서의 19 왕과 메롬격전에서의 12 왕을 합하여 모두 31 왕을 멸하였으니(여호수아 12 장 9~24 절), 이것도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이방(異邦)의 왕들을 전부 굴복시키시고 그 백성들을 포섭하여 통일된 지상천국을 건설하실 것을 미리 보여준 것이었다.
Joshua then launched attacks on the enemy with insurmountable force. He defeated thirty-one kings altogether.(Josh. 12:9-24) This foreshadowed that Christ will come as the King of Kings to build the unified Kingdom of Heaven on earth by bringing all gentile kings to complete surrender and winning the hearts of their people.


(3) 메시아를 위한 기대
(3 )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이스라엘 민족은 정탐(偵探) 40 일의 사탄분립 기간을 세우지 못하여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에 실패하고, 이 기간을 재탕감(再蕩減)하기 위하여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여
광야에서 40 년을 유리(流離)하고 다시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왔다. 이때의 모세는 제 3 차 노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고,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We have learned that the Israelites failed in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hen they could not fulfill the forty-day mission to spy out the land as a condition to separate Satan. To pay indemnity for this failure, during the third national course they wandered in the wilderness for forty years. During this period, Moses lai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hird course, and the Israelites stood upon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신과 그에 따르는 모세의 반석 2 타(磐石二打)로 말미암아 이 두 기대는모두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를 중심하고 애급(埃及)에서 떠난 외적 이스라엘은 모두 광야에서 섬멸(殲滅)되었으나,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세가 세웠던 제 2 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와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서, 정탐 40 일의 사탄분립기간을 믿음과 충성으로 찾아 세웠기 때문에 ‘성막을 위한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Yet Satan defiled these two foundations due to the people’s faithlessness and Moses’ mistake of striking the rock twice. Consequently, the older generation of Israelites, except for Joshua and Caleb, perished in the wilderness. Joshua and Caleb had
faithfully fulfilled the forty-day spy mission while standing upon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second course an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which Moses had laid. They thereby established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그리하여 모세를 중심한 외적 이스라엘은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았으나, 성막을 받드는 광야생활 가운데서 출생한 내적 이스라엘은, 모세를 대신한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충성을 다하여 법궤를 모시고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을 무찌르고 소망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The younger generation of Israelites crossed the Jordan River while bearing the Ark of the Covenant with utmost faith under the leadership of Joshua, who succeeded Moses.
Then, destroying the fortified city of Jericho, they entered Canaan, the promised land.

이렇게 되어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체기대(實體基臺)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서 이 노정의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조성됨으로써, 아브라함 때에 이루어졌던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는 그의 제물
실수로 인하여 400 년 애급고역(埃及苦役)의 탕감노정(蕩減路程)을 지나서야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Based on this victory, they lai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in the third national course and established the foundation for the Messiah for this course—albeit as a people without sovereignty. The family foundation for the Messiah had been fulfilled in the days
of Abraham. His descendants passed through a four-hundred-year course of indemnity as slaves in Egypt before they could enter Canaan and there complete the nation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This required more than merely entering and conquering Canaan.

그러나 이미 후편 제 1 장 제 3 절 Ⅲ에서 상론(詳論)한 바와 같이, 그 때는 이미 타락인간들이 사탄을 중심하고 애급왕국(埃及王國) 등의 굳건한 왕국을 건설하여, 하늘편의 복귀섭리(復歸攝理)에 대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는 세워졌을 지라도 그 터전 위에 사탄에 대결할 수 잇는 하늘편의 왕국이 건설되기까지는 메시아가 강림(降臨)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As was discussed earlier in detail,(cf. Foundation 3.3) fallen people had already founded powerful nations such as Egypt, led by satanic rulers who opposed God’s providence of restoration. Therefore, even though the national foundation for the Messiah was established under Joshua’s leadership, it would be necessary to build a sovereign kingdom from which the
Messiah could confront the satanic nations of the world. However, once the younger generation of Israelites entered Canaan, they also became faithless.

그러나 가나안으로 들어간 내적 이스라엘도 또다시 불신으로 흘러, 이 섭리는 다시 연장을 거듭하여 예수님 때까지 밀려 나왔던 것이다.
Hence, God’s providence was prolonged again, and would suffer repeated setbacks until the time of 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