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Part 2. Chapter 2. Moses and Jesus in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2.5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1.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1.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1) 믿음의 기대 (1) THE FOUNDATION OF FAITH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不信)으로 말미암아 제 1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When the first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ended in failure due to the disbelief of the Israelites,

모세가 그의 ‘믿음의 기대’를 위하여 세웠던 바로궁중 40 년기간은,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Satan claimed the forty years of Moses’ life in Pharaoh’s palace during which he had laid the foundation of faith.

그러므로 모세가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을 출발하기 위하여는 사탄 침범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바로 궁중생활 40 년기간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는 기간을 다시 찾아 세워,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Hence, for Moses to begin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he had to lay anew the foundation of faith by completing another period of forty years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his lost forty years in the palace.

모세가 바로를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들어가 다시 40 년기간을 보내게 되었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This was the purpose of Moses’ forty-year exile in the wilderness of Midian.(Acts 7:30)

이 40 년기간에는 이스라엘 민족도 모세를 불신한 죄로 더욱 더 비참한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During this forty-year period, the Israelites’ lives in Egypt became even more miserable as the penalty for their disbelief in Moses.

모세는 미디안 광야 40 년으로 ’40 일 사탄분립기대’를 새로이 세웠기 때문에,
Moses went through a second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during the forty years he spent in the wilderness of Midian.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할 수 있게 되었었다.
There he restored the foundation of faith needed to embark upon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애급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급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급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애굽기 3 장 7~10 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God then appeared before Moses and said:I have seen the affliction of my people who are in Egypt, and have heard their cry because of their taskmasters; I know their sufferings, and I have come down to deliver them out of the hand of the Egyptians, and to bring them up out of that land to a good and broad land,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to the place of the Canaanites . . . and now, behold, the cry of the people of Israel has come to me, and I have seen the oppression with which the Egyptians oppress them. Come, I will send you to Pharaoh that you may bring forth my people, the sons of Israel, out of Egypt. —Exod. 3:7-10


(2) 실체기대
(2)THE FOUNDATION OF SUBSTANCE

모세는 미디안 광야 40 년으로써, ’40 일 사탄분립기대’를 다시 만들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동시에, 다시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였다.
Once Moses restored the foundation of faith in the wilderness of Midian, he also secured the position of Abel.

따라서 제 1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경우와 같이,
Accordingly, as in the first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벨의 입장에 있는 모세를 절대로 믿고 따르면,
if the Israelite people in the position of Cain had believed in and followed Moses with unquestioning faith and obedience,

하나님의 말씀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므로
they would have entered the promised land, the land of milk and honey.

여기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할 수 있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In so doing, they would have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lai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제 1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려 하였을 때에, 모세가 애급인(埃及人)을 쳐죽였던 것과 같은 목적으로,
God worked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first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hen Moses struck and killed an Egyptian.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때에는
Similarly, to work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하나님이 모세에게 3 대 기적(삼대기적(三大奇蹟))과 10 재앙(십재앙(十災殃))의 권능을 주시어 애급인을 치게 하심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God granted Moses three signs and ten plagues with which to prevail over the Egyptians.

모세가 사탄편을 쳐야 하는 이유는 위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The reasons God had Moses strike the satanic side were, as already elucidated:

첫째 사탄편이 침범한 장자의 입장을 탕감복귀하고,
first,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position of the eldest son which Satan had defiled;

둘째 이스라엘로 하여금 애급에 대한 미련을 끊게 하고,
second, to cut off the Israelites’ attachment to Egypt;

셋째 모세는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던 것이다(출애굽기 4 장 1~9 절).
third, to let the Israelites know that Moses was sent by God.(Exod. 4:1)

그리고 모세가 애급인을 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으니,
There was yet another reason why Moses could strike the Egyptians.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아브라함의 ‘상징헌제(象徵獻祭)’ 실수로 인한 애급고역(埃及苦役) 400 년 탕감기간을 다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30 년이나 더 고역을 당함으로써(출애굽기 12 장 41 절),
Although the Israelites had already completed the due indemnity period of four hundred years as slaves in Egypt, they had suffered thirty additional years of affliction.(Exod. 12:41)

그들의 탄식이 하나님에게 상달되어 하나님의 긍휼을 자아내게 되었었다는 사실이다(출애굽기 2 장 24~25 절).
God heard their cries and groaning and answered them with compassion.(Exod. 2:24-25)

3 대기적은 복귀섭리노정(復歸攝理路程)에 있어서 무엇을 예시하셨던가?
The three signs which God provided for Moses and Aaron to perform foreshadowed the work of Jesus.

첫째 기적은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보여주신대로(출애굽기 4 장 3~9 절)
The first sign was given when God commanded Moses to cast down his staff, and it became a serpent. (Exod. 4:3-9)

모세의 명령에 의하여 아론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던 지팡이를 바로 앞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되었다.
When Aaron later performed this sign before the Pharaoh at Moses’ command, the Pharaoh summoned his magicians and had them cast down their staffs,

이것을 본 바로도 그의 술객(術客)들을 불러 지팡이를 던지게 하자 그것들도 역시 뱀이 되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변하여서 된 뱀이 그들의 것을 모두 삼켜버렸다(출애굽기 7 장 10 ~12 절). 그러면 이 기적(奇蹟)은 무엇을 예시한 것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구주(救主)로 오셔서 사탄세계를 멸하실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which also became serpents; but Aaron’s serpent devoured their serpents.(Exod. 7:10-12) This sign symbolically foreshadowed that Jesus would come as the Savior and destroy the satanic world.

하나님 대신 신(神)으로 세워진 모세(출애굽기 7 장 1 절) 앞에서 기적을 나타냈던 그 지팡이는, 장차 하나님 앞에서 이렇듯 기적을 나타내실, 권능적인 면에서의 예수님을 상징한 것이었다.
The staff symbolized Jesus. Just as the staff displayed miraculous power in front of Moses, who represented God, Jesus was to come with such power and perform miracles before God Himself.

그와 동시에 또 지팡이는 대신 의지자며 대신 보호자로서 불의(不義)를 쳐서 바른 길잡이의 사명을 하는 것이어서,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전 인류 앞에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오실 것을 보여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사명적인 면에서의 예수님을 상징하기도 했던 것이다.
Moreover, a staff provides protection and support for people to lean on; it smites injustice and leads people on the right path. Symbolizing Jesus, Moses’ staff disclosed the missions which Jesus was to accomplish at his coming.

그리고 예수님을 상징하는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또한 뱀의 역할도 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The transformation of Moses’ staff into a serpent also symbolized the work of Jesus.

예수님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한복음 3 장 14 절)라고, 자기를 뱀으로 비유하셨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Jesus likened himself to a serpent, saying, “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John 3:14)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로우라고도 하셨다(마태복음 10 장 16 절).
He also said to his disciples, “Be wise as serpents.”(Matt. 10:16)

이것은 원래 인간조상이 악한 뱀에게 꼬임을 당하여 타락되었으니, 이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선한 지혜의 뱀으로 오셔서, 악한 인간들을 꼬여 선으로 인도해야 되기 때문에,
Jesus meant by this saying that he came as the good serpent of wisdom who entices and leads fallen people on the path of goodness. He was thus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Fall caused by the evil serpent who cunningly tempted the first human ancestors.

제자들도 선한 뱀으로 오신 예수님의 지혜를 본받아 악인(惡人)들을 선도(善導)해야 된다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다.
Therefore, his disciples were to learn Jesus’ wisdom and guide the sinful people in the way of goodness.

한편 또 모세의 뱀이 술객의 뱀을 삼켰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늘 뱀으로 오셔서 사탄 뱀을 삼켜 멸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었다.
Moreover, when Moses’ serpent devoured the magicians’ serpents, it signified that Jesus would come as the heavenly serpent to swallow up and destroy Satan, the evil serpent.

둘째 기적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모세가 첫번 손을 품었을 때 그 손이 문둥병에 걸렸었다.
The second sign was given when Moses, upon God’s command, put his hand into his bosom and it became leprous.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그 손을 다시 품었을 때, 그 병든 손이 깨끗이 나아버렸던 것이다(출애굽기 4 장 6~7 절).
Then God commanded him to put his hand into his bosom a second time, and it was healed.(Exod. 4:6-7)

이 기적은 장차 예수님이 후아담으로 오셔서, 후해와의 신성(神性)이신 성신(전편 제 7 장 제 4 절 Ⅰ)과 더불어 속죄(贖罪)의 역사(役事)를 하시게 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셨다.
This miracle foreshadowed symbolically that Jesus would come as the second Adam and, together with his would-be Bride (the second Eve, later manifested in the Holy Spirit) perform the work of redemption.

(cf. Christology 4.1. When describing the foreshadowing of Jesus’ course, the Korean text uses “Holy Spirit” to refer to Jesus’ female counterpart. However, the Holy Spirit became the spiritual female counterpart to Jesus only after he was crucified without fulfilling God’s original providence, which included taking a Bride on the earth. Together Jesus and his would-be Bride were to have fulfilled the marriage of the Lamb and become the True Parents. For clarity, we will use “would-be Bride” when the text is alluding to Jesus’ intended Bride on earth. —Ed.)

첫번 손을 품음으로써, 고칠 수 없는 문둥병에 걸렸다는 것은, 처음에 천사장(天使長)이 해와를 품음으로써 인간이 죽음의 입장으로 타락해버렸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The first time Moses put his hand into his bosom and it became leprous symbolized the Archangel embracing Eve to his bosom, an act which tainted humanity with incurable sin.

그리고 그 손을 다시 품어서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것은 인류의 부성신(父聖神) 되신 예수님이 오셔서 인류의 모성신(母聖神) 되신 성신(전편 제 7 장 제 4 절 Ⅰ)을 복귀하여,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마태복음 23 장 37 절) 전 인류를 다시 품어 중생(重生)시킴으로써, 완전복귀한다는 것을 표시하신 것이었다.
The second time Moses put his hand into his bosom and it was healed foreshadowed that Jesus, the True Father, would come and restore his Bride, the True Mother, and hat they would embrace humanity to give them rebirth “as a hen gathers her brood under her wings.”(Matt. 23:37)

셋째 기적은 강물을 육지에 부어서 피가 되게 한 것이었다(출애굽기 4 장 9 절). 이것은 무기물(물)과 같은 생명 없는 존재가 유기물(피)과 같은 생명 있는 존재로 복귀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었다.
Restoration would then be complete. To perform the third sign, God instructed Moses to pour water from the Nile on the ground and it would turn to blood.(Exod. 4:9)

물은 타락되어 생명을 잃은 세상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므로(요한계시록 17 장 15 절) 이 기적은 장차 예수와 성신이 오셔서 생명을 잃어버린 타락인간들을 생명 있는 자녀로 복귀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The symbolism of this sign lies in water, an inorganic substance, being transformed into blood, the substance of life. Water is a biblical symbol for the fallen multitudes(Rev. 17:15) who have no life in them. Thus, this sign foreshadowed that Jesus and the Holy Spirit would come and resurrect fallen humanity, deprived of life, to become the living children of God.

위와 같은 3 권능을 나타내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 앞에 장차 예수님과 성신이 인류의 참부모로 오셔서, 전 인류를 자녀로서 복귀하고,
God had Moses and Aaron perform these three signs in order to fulfill symbolic indemnity conditions upon which Jesus and the Holy Spirit would later come to Israel as the T rue Parents.

사탄에게 빼앗겼던 창조본연(創造本然)의 4 위기대(四位基臺)를 복귀할 수 있는 상징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They would restore the original four position foundation which had been lost to Satan and give rebirth to all humanity as their children.

다음으로 모세가 하나님에게 자기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요구하였을 때,
When Moses, who was not eloquent, asked God for someone to speak on his behalf,

하나님은 그 형 아론(출애굽기 4 장 14 절)과 아론의 누이가 되는 여선지(女先知) 미리암(출애굽기 15 장 20 절)을 주셨다.
God provided Moses’ older brother Aaron,(Exod. 4:14) and also Miriam the prophetess, Aaron’s sister.(Exod. 15:20)

이것은 장차 말씀의 실체이신 예수님과 성신(요한복음 1 장 14 절)이 오셔서, 타락으로 인하여 말씀을 잃어버린 인간을 말씀의 실체로 복귀하실 것을 형상적으로 보여주신 것이었다.
This symbolically foreshadowed that Jesus and his would-be Bride, the incarnations of the Word,(John 1:14) would come and restore human beings—who had lost the Word at the Fall—as the incarnations of the Word.

그러므로 아론과 미리암이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입장인 모세의 뜻을 받들고,
In the course to restore Canaan, Aaron and Miriam were given the mission to uphold the will of Moses,

그의 대신으로 영도(領導)의 사명을 했던 것은,
who was in the position of God, and to exercise leadership on his behalf.

장차 예수님과 성신(聖神)이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대신 속죄(贖罪) 사명을 하실 것을 형상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In the future, Jesus and the Holy Spirit would uphold the Will of God in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and take on the mission to redeem our sin.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바로 앞으로 나아가는 도중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다. 그 때에 모세는 그의 처(妻) 십보라가 그의 아들을 할례(割禮)함으로써 죽음을 모면하였던 것이다(출애굽기 4 장 24~26 절).
At God’s command, Moses went to meet the Pharaoh. On his way, the Lord appeared before him and tried to kill him. Moses’ life was saved when his wife Zipporah circumcised their son.(Exod. 4:24-26)

모세는 할례로써 그 시험을 이겼기 때문에 그의 가족이 살아났었고,
She helped Moses overcome the trial and saved their family.

따라서 이스라엘이 애급(埃及)에서 나올 수 잇게 되었으니,
This circumcision made it possible for the Israelites to be liberated from Egypt.

이것도 장차 예수님이 오실 때에 이스라엘 민족이 할례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It foreshadowed that even when Jesus came, God’s work of salvation could not be accomplished unless the people underwent an internal circumcision.

그러면 할례는 어떠한 뜻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Let us examine the deeper significance of circumcision.

인간조상은 사탄과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음에 따라 양부(陽部)를 통하여 사망의 피를 받았었다.
When the first human ancestors fell through a sexual relationship with Satan, they inherited the blood of death through the male sexual organ.

그러므로 타락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로 복귀하기 위하여는,
In the course for fallen people to be restored as God’s children,

그 탕감조건(蕩減條件)으로 양부를 쳐서 피를 냄으로써, 그 사망의 피를 뽑았다는 표시의 조건으로 할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God established the rite of circumcision as a condition of indemnity: cutting the foreskin of the male sexual organ and letting blood flow from it.

그러므로 이 할례의 근본 의의는 첫째로 사망의 피를 뽑는 표요,
Circumcision signifies removing the blood of death.

둘째로는 남자의 주관성(主管性)을 다시 찾는 표이며,
Circumcision is also a sign of the restoration of man’s right of dominion

셋째로는 본성(本性)의 자녀의 입장을 다시 찾는 약속의 표인 것이다.
and a sign of promise that God will restore people as His true children.

그런데 할례의 종류에는 마음할례(신명기 10 장 16 절),
There are three types of circumcision: circumcision of the heart,(Deut. 10:16)

육신할례(창세기 17 장 10 절), 만물할례(레위기 19 장 23 절) 등 세 종류가 있다.
circumcision of the foreskin,(Gen. 17:10) and circumcision of all things.(Lev. 19:22-23)

다음으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10 재앙(十災殃)의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구출하셨으니(출애굽기 7 장 10~12 장 36 절),
Through the ten plagues, God had Moses liberate the Israelites from Egypt.(Exod. 7:14-12:36)

이것도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이적(異蹟)과 기사(奇事)로써 하나님의 선민(選民)을 구원하실 것을 보여 주신 것이었다.
This, too, foreshadowed that in the future Jesus would come with miracles and signs to save God’s chosen people.

야곱이 하란에서 21 년간의 고역(苦役)을 할 때에, 라반이 응당 야곱에게 주어야 할 품삯을주지 않고 열 번이나 그를 속였었다(창세기 31 장 7절).
When Jacob was suffering twenty-one years of hardship in Haran, Laban cheated Jacob ten times and did not give him his due wages.(Gen. 31:7)

그렇기 때문에 야곱노정을 걷는 모세노정에 있어서도,
Likewise, in Moses’ course, which was patterned after Jacob’s course,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한도에 넘는 고역을 시켰을 뿐 아니라,
the Pharaoh not only continued to afflict the Israelites beyond the preordained time period,

열 번이나 그들을 놓아 준다고 하면서 매번 속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탕감으로 10 재앙을 내려 바로를 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he also deceived them ten times with the false promise that he would release them. As recompense for this, God was entitled to strike the Pharaoh with the ten plagues.

그러면 이 재앙(災殃)들은 또 무엇을 예시(豫示)하였는가를 알아보자.
Among them, the ninth and tenth plagues had particular significance.

애급 편에는 3 일간의 어둠이 있었고 이스라엘에게는 3 일간의 광명이 있었으니,
For the ninth plague, God blanketed Egypt in thick darkness for three days, while in the places where the Israelites dwelt there was light.(Exod. 10:21-23)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오시면 사탄편은 흑암이요, 하늘편은 광명으로 분기(分岐)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This foreshadowed that when Jesus came, darkness would blanket Satan’s realm while light would shine upon God’s people, and the two sides would be separated.

다음으로 하나님은 애급(埃及)의 장자(長子)와 육축(育畜)의 맏것을 모조리 쳤으나 이스라엘은 양(羊)의 피로써 이것을 면할 수 있었다.
For the tenth plague, God killed all the firstborn among the Egyptians and their cattle, while instructing the Israelites to paint lamb’s blood on the lintel and door posts of their houses so that the angel of death would pass over them.

이것은 사탄편에 있어서의 장자는 가인의 입장이었으므로 이것을 쳐서 아벨의 입장인 차자(次子)로 하여금 장자의 입장을 복귀케 하기 위함이다.
The firstborn of the Egyptians, on the satanic side, were in the position of Cain. God struck them in order to restore the Israelites, in the position of the second son Abel, to the position of the eldest son.

이 재앙도 역시 장차 예수님이 오시면 당초에 장자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섭리노정(攝理路程)을 먼저 출발한 사탄편은 망하고,
Satan had seized the position of the eldest son and thus took the lead in the course of history, leaving God in pursuit.(cf. Parallels 7)

차자의 입장인 하늘 편은 예수님의 피의 대속(代贖)으로 인하여 구원(救援)을 받는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This plague foreshadowed that at Jesus’ coming, the side of Satan would perish, while God’s side, in the position of the second son, would be saved by the redemption of Jesus’ blood.

모세는 또 애급에서 많은 재물을 취해 가지고 왔는데(출애굽기 12 장 35~36 절), 이것도 장차 있을 예수님의 만물복귀(萬物復歸) 를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Moses brought abundant wealth out of Egypt.(Exod. 12:35-36)This foreshadowed the restoration of all things, to take place at Jesus’ coming.

하나님은 재앙의 이적을 내리실 때마다 바로의 마음을 강퍅(剛愎)하게 하셨으니(출애굽기 10 장 27 절),
After each plague, God hardened the Pharaoh’s heart.(Exod. 4:21; 10:27)

그이유는 첫째, 바로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어,
There were several reasons for this. First, by repeatedly manifesting His powers,

하나님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고(출애굽기 10 장 1~2 절),
God wanted to show the Israelites that He was God.(Exod. 10:1-2)

둘째로는 바로로 하여금 있는 힘을 다하여서 이스라엘 민족을 붙잡다가 할 수 없이 단념하게 하심으로써,
Second, God wanted the Pharaoh to make his best efforts in holding on to the
Israelites before forcing him to give them up;

자기의 무력함을 깨닫고 이스라엘이 애급을 떠난 후에도 그들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then the Pharaoh would realize how powerless he was and abandon any lingering attachment to the Israelites after they left.

그리고 셋째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로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하여 애급에 대한 미련을 끊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Third, God wanted the Israelites to cut off their attachment to Egypt by provoking in them strong feelings of hostility against the Pharaoh.

제 1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모세가 애급인(埃及人)을 쳐 죽이는 것으로써 그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었다.
God worked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first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hen Moses killed the Egyptian.

그러나 그들이 모세를 도리어 불신하였기 때문에, 이 노정은 출발도 해 보지 못한 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었던 것이다.
However, this course was aborted when the people distrusted Moses.

그러나 제 2 차노정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은 그 ‘출발을 위한 섭리’로서 보여주신
In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second national course, God granted the Israelites the three signs and ten plagues.

3 대 기적(삼대기적(三大奇蹟))과 10 재앙(十災殃)을 보고, 모세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진정한 이스라엘의 영도자(領導者)라는 것을 믿게 되었었다.
When the Israelites witnessed these miracles, they came to believe that Moses was truly sent by God as their leader.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민족적인 믿음의 기대’ 위에서 아벨의 입장을 확립한 모세를 믿고 따르는 입장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They believed and followed Moses, the Abel figure who had laid the national foundation of faith.

그들은 드디어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있게 되었었다.
Hence, the Israelites could embark upon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일시적으로 이와같이 모세에게 순종굴복(順從屈伏)하였다고 해서 그것으로 곧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However,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required more of the Israelites than a short-lived trust in and obedience to Moses while he was working these miracles.

왜냐하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섭리노정(攝理路程)에 사탄이 침범하여, 오랜 섭리의기간을 사탄에게 내주었던 것이므로,
Due to their previous failure to fulfill this condition, Satan had claimed the entire providential course to restore Canaan.

모세에 대하여 가인의 입장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기간’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蕩減復歸)하기 위하여 이 광야노정의 전 기간을 두고 순종과 굴복으로 모세를 믿고 따라가지 않고서는 ‘타락성을 벗기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Now the Israelites had to restore that course by remaining faithful and obedient to Moses for the duration of their journey. Only in this way would they fulfill the national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순종하여 광야노정을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민족적인 실체기대’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Until they had traversed the wilderness with unwavering faith in Moses and entered the land of Canaan, the national foundation of substance would not be established.

이와같이 하나님은 제 2 차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에 있어서는 그 1 차 때보다도 더 큰 은사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The dispensation to start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as conducted with greater grace than that of the first course.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불신 때문이었으므로, 제 2 차 노정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이 세워야 할 탕감조건(蕩減條件)은 더 가중되었던 것이다.
Yet, since the prolongation had been due to their disbelief, the indemnity condition which the Israelites would have to fulfill was correspondingly heavier.

즉 제 1 차 노정에 있어서는 그들이 모세를 믿고 따르기만 하였더면,
In the first course, if the Israelites had followed Moses,

블레셋의 곧은 길로 인도되어 야곱의 하란노정 기간수인 21 일간이면 가나안 복지(福地)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they would have been led along the direct route by way of the land of the Philistines and would have entered Canaan in twenty-one days—a period corresponding to Jacob’s twenty-one-year course in Haran.

그런데 제 2 차 노정에 있어서는 출애굽기 13 장 17 절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같이, 만일 그들이 블레셋 땅의 곧은 길로 인도되면 전쟁을 보고 두려워함으로써, 제 1 차 노정 때와 같이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 애급땅으로 되돌아갈까 염려하시어,
However, in the second course, God did not lead the people along the direct route. He was worried that when they encountered the warlike Philistines, they might again turn faithless and return to Egypt.(Exod. 13:17)

하나님은 그들을 이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홍해(紅海)를 건너고 시내광야를 돌아 21 개월 걸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노정을 취하게 하셨던 것이다.
Instead, God led them across the Red Sea and through the wilderness in a long detour. God planned to bring them into Canaan after twentyone months.

이와 같이 되어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21 개월 광야노정(曠野路程)을 출발하게 되었다.
Thus, the Israelites began a twenty-one-month wilderness course under Moses’ leadership.

그러면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와같이, 이 노정이 어떻게 장차 오실 예수님을 중심한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본보기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Let us study this course and examine how it served as the model course for Jesus to lead humanity on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모세에게 굴복한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거기에서 희생(犧牲)을 드릴것을 허락했을 때에,
When the Pharaoh grudgingly gave Moses permission for the Israelites to make sacrifices in Egypt,

모세는 그리함은 불가하나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것은 애급사람의 미워하는 바이온즉
Moses demanded more, saying: It would not be right to do so; for we shall sacrifice to the Lord our God offerings abominable to the Egyptians.

우리가 만일 애급사람이 보는 데서 희생을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대로 하려 하나이다(출애굽기 8 장26~27 절)라는
If we sacrifice offerings abominable to the Egyptians before their eyes, will they not stone us? We must go three days’ journey into the wilderness and sacrifice to the Lord our God as he will command us. —Exod. 8:26-27

말로써 바로을 속여 자유허여(自由許與)의 3 일 간을 얻어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나왔다.
Moses asked for three days’ leave with the intention to deceive the Pharaoh and lead the people out of Egypt altogether.

이 3 일기간은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헌제를 위하여 사탄분립에 요(要)한 기간이었기 때문에,
This three-day period had the same significance as Abraham’s threeday journey to Mt. Moriah, which he needed in order to sever his ties to Satan before he could offer Isaac as a sacrifice.

그 후 이것은 섭리노정(攝理路程)을 출발할때마다 사탄 분립에 필요한 탕감기간이 되었던 것이다.
Since Abraham’s time, this has been the indemnity period required for the separation of Satan at the outset of a providential course.

따라서 야곱이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려 할 때에도, 라반을 속이고 하란을 떠나 사탄을 분립한 3 일기간이 있었다(창세기 31 장 19~22 절).
When Jacob embarked upon the course to restore Canaan, there was a three-day period when he cut off ties to Satan by deceiving Laban and leaving Haran.(Gen. 31:19-22)

이와 마찬가지로 모세에게도 그가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하여서는, 바로를 속이고 자유행동을 취하여 사탄을 분립하여 3 일기간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Likewise, at the outset of this national course, Moses asked for a leave of three days with the intention of deceiving the Pharaoh and liberating his people from bondage.

그리하여 이것은 후일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사탄분립을 위한 3 일기간이 있은 후에야 영적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출발을 하시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도 되었다.
Jesus, too, would begin the spiritual course of restoration only after passing through three days for the separation of Satan before his victorious resurrection.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장정(壯丁) 60 만명이 라암셋을 출발한 것은 정월 15 일이었다(출애굽기 12 장 6~37 절, 민수기 33 장 3 절).
The Israelites, who numbered some 600,000 according to the Bible, departed from Rameses on the fifteenth day of the first month by the Hebrew calendar.(Exod. 12:37; Num. 33:3)

이스라엘 민족이 3 일기간을 뜻맞게 세워 숙곳에 이른 후에는,
They upheld God’s Will throughout the three-day journey to their first campsite at Succoth.

하늘이 은사를 내리시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앞길을 인도하셨다(출애굽기 13 장 21 절).
From that time forth, God granted them the grace of a pillar of cloud by day and a pillar of fire by night to guide their way.(Exod. 13:21)

모세노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 낮(양)의 구름기둥은,
The pillar of cloud which led the Israelites by day (yang) symbolized Jesus,

장차 이스라엘 민족을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으로 인도할 예수님을 표시하고,
who would one day lead the people of Israel in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밤(음)의 불기둥은 여성신(女性神)으로서 그들을 인도할 성신(聖神)을 상징했던 것이다.
The pillar of fire by night (yin) symbolized the Holy Spirit, who would guide them as the feminine Spirit.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지팡이로 홍해(紅海)를 가름으로써 이것을 육지와 같이 건넜으나 그들의 뒤를 추격해 오던 애급의 병거는 다수장(水葬)되어 버리고 말았었다(출애굽기 14 장 21~28 절).
At the shore of the Red Sea, upon God’s command, Moses stretched out his staff and parted the waters; then he led the Israelites across on dry ground. The Egyptians chasing them in chariots were drowned when the waters closed up and engulfed them.(Exod. 14:21-28)

이미 위에서 논한 바와같이 바로 앞에 선 모세는 하나님을 상징하였고(출애굽기 7 장 1 절),
As was explained earlier, Moses represented God before the Pharaoh,(Exod. 7:1)

모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실 예수님을 상징하였다.
and Moses’ staff symbolized Jesus, who would manifest God’s power in the future.

그러므로 이 기적은 장차 예수님이 오실 때에,
Hence, this miracle foreshadowed what was to happen when Jesus came.

사탄은 예수님을 따라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걷는 신앙자들의 뒤를 추격할 것이지만, 지팡이의 사명자로 오시는 예수님이 철장(鐵杖)으로(요한계시록 2 장 27 절, 시편 2 장 9 절)
Satan would pursue the faithful ones who followed Jesus in walking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but Jesus would raise the rod of iron(Rev. 2:27; Ps. 2:9.

그들 앞에 가로놓인 이 고해(苦海)의 세상을 치면, 이 고해도 평탄한 길로 갈라질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의 갈 길은 열리고 추격하는 사탄은 멸망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전편 말세론(末世論)에서 이미 밝힌 바와같이, 철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The rod of iron signifies God’s Word; cf. Eschatology 3.2.2.)

그리고 요한계시록 17 장 15 절에는 이 죄악세상을 ‘물’로 비유하였다.
and strike the troubled sea (The Bible uses water as a symbol for the sinful world. (Rev. 17:15)

우리가 이 세상을 고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통념(通念)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Hence, this world is sometimes referred to as a “troubled sea.”)of this world. The waters would divide and reveal a smooth path upon which the believers would walk, while Satan in pursuit would perish.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건너서 애급(埃及)을 떠난 후 제 2 월 15 일에 신광야에 이르렀다(출애굽기 16 장 1 절).
The Israelites crossed the Red Sea and arrived at the wilderness of Sin on the fifteenth day of the second month.

이때부터 하나님은 그들이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만나와 메추리를 내려 먹이셨으니(출애굽기 16 장 35 절),
From then until the day they arrived at habitable land, God fed them with manna and quail.(Exod. 16:13-35)

이것은 장차 예수님의 살(만나)과 피(메추리)를 모든 인간에게 주실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The manna and quail signified the life-giving flesh and blood of Jesus, which God would provide during the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그러므로 요한복음 6 장 48 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너희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Thus, Jesus said: Your fathers ate the manna in the wilderness, and they died. . . . I am the living bread which came down from heaven; if anyone eats of this bread, he will live forever . . . unless you eat the flesh of the Son of man and drink his blood, you have no life in you. —John 6:49-53

이스라엘 민족이 신광야에서 떠나 르비듬에 장막(帳幕)을 쳤을 때,
When the Israelites left the wilderness of Sin and camped at Rephidim,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시어 호렙산의 반석(磐石)을 쳐서 물을 내어 그들에게 먹이셨다(출애굽기 17 장 6 절).
there was no water for the people to drink. God commanded Moses to strike the rock at Horeb that water might spring forth from it. Moses did so and gave the people water which saved their lives.(Exod. 17:6)

고린도전서 10 장 4 절에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하였으니,
St. Paul wrote, “The Rock was Christ.”(I Cor. 10:4)

이 행사는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생명수(生命水) 샘물로(요한복음 4 장 14 절) 모든 사람을 살리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Accordingly, the miracle of water from the rock foreshadowed that the Messiah would save all humanity with the water of life, of which Jesus said, “Whoever drinks
of the water that I shall give him will never thirst.”(John 4:14)

모세가 다음에 시내산에서 받게 되는 두 석판(石板)도 예수와 성신(聖神)을 상징하지만,
The two tablets of stone Moses received on Mt. Sinai symbolized Jesus and his would-be Bride;

반석(磐石)은 석판의 뿌리가 되므로 이것은 또한 하나님도 상징한다.
the rock, which was the root of the tablets of stone, symbolized God.

모세가 석판의 뿌리가 되는 반석을 쳐서 샘물을 내어,
When Moses struck the rock and gave the people water,

이스라엘 민족을 먹여 살린 터전이 있기 때문에, 이 터전 위에서 모세가 석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법궤(法櫃)와 성막(聖幕)을 지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this laid the foundation upon which he could receive the tablets of stone and build the Ark of the Covenant and the Tabernacle.

여호수아가 르비듬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
Joshua fought with the Amalekites at Rephidim.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손을 내리면 패하였다.
Whenever Moses held up his hands, the Israelites prevailed; whenever Moses let his hands drop, they suffered a reverse.

그러므로 아론과 훌은 돌을 쌓아 모세를 그 위에 앉히고, 그의 손을 내려지지 않도록 좌우에서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Aaron and Hur had Moses sit on a pile of stones and held his hands up on the left and the right,

그 앞에서 싸운 여호수아는 아말렉왕과 그 백성을 쳐서 승리하였다(출애굽기 17 장 10~13 절).
thus enabling Joshua to vanquish the king of the Amalekites and his troops.(Exod. 17:10-13)

이것도 장차 예수께서 오실 때에 되어질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으니,
This also foreshadowed what would happen when Jesus came. Joshua symbolized
the believers,

여호수아는 예수를 믿는 신앙자를, 아말렉은사탄세계를,그리고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고 서 있는 것과 그 앞에서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쳐서 멸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예수님과 성신의 3 위신(三位神)을 모신 신앙자들은 그 앞에 오는 모든 사탄을 멸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the Amalekites symbolized the satanic world, and Aaron and Hur symbolized Jesus and the Holy Spirit. Aaron and Hur holding up Moses’ hands and enabling Joshua to vanquish the Amalekites foreshadowed that faithful people who worship the Trinity—God, Jesus and the Holy Spirit—will defeat every devil who confronts them.


(3) 성막을 중심한 복귀섭리
(3 )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AND THE TABERNACLE

우리는 먼저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받게 된 경위를 알아야겠다.
The Israelites received the tablets of stone, the Tabernacl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이스라엘 민족은 아말렉과 싸워서 승리한 후 제 3 월 초에 시내광야에 이르렀다(출애굽기 19 장 1 절).
Let us first examine how they received them. The Israelites arrived in the wilderness of Sinai at the beginning of the third month, after their victory over the Amalekites.(Exod. 19:1)

여기에서 모세는 장로(長老) 70 인을 거느리고 시내산으로 올라가 하나님을 뵈었다(출애굽기 24 장 9~10 절).
Moses then took seventy elders and climbed Mt. Sinai to meet God.

하나님은 특별히 모세를 시내산정(山頂)으로 부르시사,
Moses alone was called to the summit of Mt.

석판에 기록한 십계명(十誡命)을 받기 위하여 40 주야의 금식(禁食)을 하라고 명하시었다(출애굽기 24 장 18 절).
Sinai, where God commanded him to fast for forty days to receive the Ten Commandments inscribed on the tablets of stone.(Exod. 24:9-10, 18)

모세는 시내산에서 금식을 하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법궤와 성막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출애굽기 25 장 31 장).
During his fast, Moses received God’s instructions concerning the Ark of the Covenant and the Tabernacle.(Exod. 25-31) When the forty-day fast

그리고 40 일간의 금식이 끝났을 때 모세는 십계명을 기록한 두 석판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것이다(출애굽기 31 장 18 절).
was over, Moses received two tablets of stone, inscribed by the finger of God with the Ten Commandments.95

모세가 이 석판(石板)을 가지고 시내산에서 내려와 이스라엘 백성 앞으로 나아갔을 때, 그들은 아론을 시켜 금송아지를 만들어 가지고,
When Moses came down from Mt. Sinai with the two tablets of stone and went before the Israelites, he found them worshipping a golden calf. During Moses’ absence, they had instructed Aaron to make it,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埃及)에서 인도한 신(神)이라고 섬기고 있었다(출애굽기 32 장 4 절).
and when he had fashioned it, they proclaimed that this was the god who had led them out of Egypt.

이것을 본 모세는 대로(大怒)하여 손에 들었던 석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려버리고 말았던 것이다(출애굽기 32 장 19 절).
Moses’ anger burned hot when he saw this. He threw down the tablets of stone and broke them at the foot of the mountain.(Exod. 32:1-19)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처음것과 같은 석판을 깎아 만들어 오면 거기에 다시 십계명의 말씀을 써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출애굽기 34 장 1 절).
God appeared again to Moses and told him to carve another pair of stone tablets identical to the first pair, promising that He would again give them the Ten Commandments.

이 말씀을 받은 모세가 다시 40 주야를 금식하였을 때,
Moses presented himself before God on the mountain and fasted for forty days a second time.

하나님은 그의 석판에 다시 십계명을 기록하여 주셨다(출애굽기 34 장 28 절).
God dictated the Ten Commandments to Moses, and Moses wrote them on the tablets.(Exod. 34:1, 27-28)

모세가 이 석판을 가지고 다시 이스라엘 민족 앞에 나타났을 때
Moses took these tablets and went before the Israelites again.

비로소 그들은 모세를 받들게 되어 법궤를 만들고 성막을 건축하였던 것이다(출애굽기 35 장 ~ 40 장).
This time they honored Moses. In obedience to his directions, they built the Ark of the Covenant and constructed the Tabernacle.(Exod. 35-40)


ㄱ. 석판 성막 법궤 등의 의의와 그 목적 차트 석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THE SIGNIFICANCE AND PURPOSE OF THE TABLETS OF STONE, THE TABERNACL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What did the tablets of stone signify?
석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세가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을 받았다는 것은, 타락으로 인하여 제물로만 하나님을 대해 오던 복귀기대섭리시대(復歸基臺攝理時代)는 지나가고,
When Moses received the tablets of stone inscribed with God’s Word, this signified the passing of the Age of the Providence to Lay the Foundation for Restoration,

타락인간이 말씀을 복귀하여 그것으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복귀섭리시대(復歸攝理時代)에로 들어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when fallen people could relate with God only through sacrifices, and the beginning of the Age of the Providence of Restoration, when they could relate with God through the revealed Word.

그리고 이미 후편 서론(緖論)에서 밝힌 바와같이,
It was previously explained that if Adam and Eve, (cf. Restoration 1.2.1)

말씀으로 창조되었던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었더라면,
who were created by the Word, had become perfect,

그들은 말씀의 완성실체가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타락됨으로 인하여 말씀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었다.
they would have become the incarnations of the Word. Instead, they fell and lost the Word.

이제 모세가 40 일 사탄분립기간으로써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石板)을 찾았다는 것은,
Moses received the two tablets inscribed with the Word at the end of a forty-day period for the separation of Satan.

사탄세계로부터 잃어버렸던 아담과 해와를 상징적인 말씀의 실체로 복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This signified the symbolic restoration of Adam and Eve as incarnations of the Word.

따라서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은 복귀한 아담과 해와의 상징체로서 장차 말씀의 실체로 오실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했던 것이다.
Accordingly, the two tablets symbolized restored Adam and Eve, and also symbolized Jesus and his would-be Bride who were to come as the incarnations of the Word.

성경에 예수님을 흰 돌로 상징하였고(요한계시록 2 장 17 절) 또 반석은 곧 그리스도(고린도전서 10 장 4 절)라고 하신 이유는여기에 있는 것이다.
Christ is symbolized in the Bible by a white stone, (Rev. 2:17) and it is written, “the Rock was Christ.”(I Cor. 10:4)

이렇게 두 석판은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하기 때문에,
As symbols of Jesus and his would-be Bride,

결국 이것들은 또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것이되기도 한다. 339
the tablets of stone were also symbols of heaven and earth.

다음으로, 성막(聖幕)의 의의는 무엇이었던가?
Next, what did the Tabernacle symbolize?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성전(聖殿)을 자기의 몸으로 비유하셨다(요한복음 2 장 21 절).
Jesus likened his body to the Temple in Jerusalem.(John 2:19-21)

그리고 또 예수님을 믿는 성도(聖徒)들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셨던 것이다(고린도전서 3 장 16 절).
We who believe in him are called God’s temples.(I Cor. 3:16)

그러므로 성전은 예수님의 형상적인 표시체인 것이다.
The Temple was thus a representation of Jesus in image.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제 1 차 가나안복귀에 성공하였더면,
If the Israelites had succeeded in the first course to restore Canaan under Moses’ leadership,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곧 성전을 짓고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준비를 하였을 것이었다.
then as soon as they entered the land of Canaan they would have built the Temple and prepared to receive the Messiah.

그러나 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제 1 차 노정은 출발조차도 해 보지 못하였고,
Yet due to their disbelief, the first course was aborted at the start.

제 2 차노정에서는 홍해(紅海)를 건너 광야에서 떠돌아다니게 되었으므로 성전은 건축하지 못하고 그 대신 성막을 지었던 것이다.
In the second course, God led them in a roundabout way across the Red Sea and through the wilderness. God could not have them build the Temple, but instead had to settle for the Tabernacle, which could be moved from place to place, as its substitute.

그러므로 성막은 예수님의 상징적인 표시체인 것이다.
Like the Temple, the Tabernacle was a representation of Jesus, but in symbol.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을 지을 것을 명하실 때에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출애굽기 25 장 8 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When God commanded Moses to build the Tabernacle, He said, “ And let them make me a sanctuary, that I may dwell in their midst.”(Exod. 25:8)

성막은 지성소(至聖所)와 성소(聖所)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The Tabernacle was divided into two parts: the holy place (sanctuary) and the most holy place (holy of holies).

지성소는 대제사장(大祭司長)만이 1 년에 한 번씩 들어가 헌제(獻祭)를 하는 곳이다.
Only the high priest could enter the most holy place, and only once a year when making the sacrifice of the Day of Atonement.

그리고 거기에는 법궤가 안치되어 있어서
The most holy place was where the Ark of the Covenant was kept.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는 곳이므로,
Here was the place where God made Himself present.

이것은 예수님의 영인체(靈人體)를 상징한 것이었고,
It symbolized the spirit of Jesus.

성소는 보통 제사 때에 들어가는 곳으로서,
The holy place contained a lampstand, an incense altar and a table for the bread of the Presence,

이것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한 것이었다.
which were tended daily by the priests. It symbolized the body of Jesus.

따라서 지성소는 무형실체세계(無形實體世界)를, 성소는 유형실체세계(有形實體世界)를 상징하기도 한다.
Furthermore, the most holy place symbolized the spiritual world, while the holy place symbolized the physical world.

예수께서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이 위로부터 둘로 갈라졌다는것은(마태복음 27 장 51 절),
When Jesus was crucified, the curtain between the holy place and the most holy place was torn in two, from top to bottom.(Matt. 27:51 )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영적 구원섭리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This meant that Jesus’ crucifixion laid the basis for spiritual salvation,

영인체와 육신 또는 하늘과 땅이 서로 교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when the gate was opened between spirit and flesh, or between heaven and earth.

그러면 법궤는 무엇이었던가?
What did the Ark of the Covenant symbolize?

법궤는 지성소에 안치하는 언약궤(言約櫃)로서,
Enshrined in the most holy place, the Ark contained the testimonies to God’s covenant.

그 속에는 예수님과 성신, 따라서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두 석판(石板)이 들어 있었다.
It contained the two tablets of stone, which symbolized Jesus and his would-be Bride and heaven and earth.

그리고 또 거기에는 광야노정(曠野路程)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의 생명의 양식이었고,
It also contained manna, the main staple of the Israelites during the wilderness course,

또한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만나가 하나님의 영광을 표상(表象)하는 금항아리에 담긴 것이 들어 있었으며,
which symbolized the body of Jesus. The manna was placed inside a golden urn,
which symbolized the glory of God.

또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었던 아론의 싹난 지팡이(히브리서 9 장 4 절)가 거기에 들어 있었다.
The Ark of the Covenant also contained Aaron’s staff, which had demonstrated God’s power by budding and putting forth sprouts.(Heb. 9:4)

이런 점으로 보아 법궤는 크게는 천주(天宙)의,
The Ark thus represented the cosmos and,

작게는 성막(聖幕)의 축소체였던 것이다.
at the same time, was a smaller representation of the Tabernacle.

그리고 법궤 위에는 속죄소(贖罪所)가 덮였었는데,
The mercy seat was placed on top of the Ark of the Covenant.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금으로 두 그룹을 쳐서 만들어 속죄소의 좌우에 덮으면,
Two cherubim made of hammered gold were placed on either end of the mercy seat,

두 그룹 사이에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시어,
overshadowing it with their wings. God promised that He would personally appear above the mercy seat,

이스라엘족속에게 전할 모든 말씀을 주시겠다고 하셨다(출애굽기 25 장 26~22 절).
between the cherubim, and there He would give guidance to the Israelites.(Exod. 25:17-22)

이것은 장차 두 석판으로 표시된 예수님과 성신이 오시어 역사하시게 됨으로써 속죄(贖罪)가 성립되면,
This foreshadowed that when Jesus and his Bride, symbolized by the tablets of stone, come and cleanse the people’s sins,

그 속죄소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동시에,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던(창세기 3 장 24 절)
God would appear over the mercy seat and open a path between the cherubim which had blocked the way to the tree of life in the Garden of Eden.(Gen. 3:24)

이 좌우로 갈라져서 누구든지 생명나무 되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Everyone would then be able to come before Jesus, the tree of life, and receive the fullness of God’s Word.

그러면 하나님이 석판(石板)과 성막(聖幕)과 법궤(法櫃)를 주신 목적은 어디 있는가?
For what purpose did God give the tablets of stone, the Tabernacl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이스라엘민족은 아브라함의 상징헌제(象徵獻祭) 실수로 초래된 400 년 탕감기간을 마치자 3 대 기적과 10 재앙으로 애급민족(埃及民族)을치고,
When the Israelites set out for the wilderness after completing the four-hundred-year indemnity period incurred due to Abraham’s mistake in the offering,

추격해 오던 애급의 수 많은 군사와 병거를 수장(水葬)하고서 홍해(紅海)를 건너 광야길로 나섰다.
God struck the Egyptians with signs and plagues and drowned a host of Egyptian soldiers who tried to follow the Israelites across the Red Sea.

하나님의 뜻으로 보아서도 그러하지만, 이처럼 원수를 맺고 떠난 애급이었기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입장에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가나안 복귀는 기필코 이루어져야 하는 노정이었던 것이다.
The Israelites could not return to Egypt, not only because God’s Will forbade it, but because they had become bitter enemies of the Egyptians.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출발을 위한 섭리’를 그처럼 기사(奇事)와 이 (異蹟)으로 하셨고, 또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하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환경 가운데로 몰아넣으셨던 것이다.
They had no choice but to complete the journey to Canaan; God had driven them to the point of no return.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은 모두 불신으로 흘러버리고 말았다.
Nevertheless, the Israelites repeatedly fell into faithlessness during their journey.

그리고 최후에는 모세마저 불신의 행동을 취할지도 모르는 터이었다.
In the end, there was danger that even Moses might act faithlessly.

여기에서 하나님은 비록 사람은 변하여도 변할 수 없는 그 어떠한 신앙의 대상을 세워놓으시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To cope with this situation, God set up an object of faith, one which would remain unchanged even though the people might change.

즉 언제나 단 한사람만이라도 이것을 절대로 신봉(信奉)하는 사람이 있으면,
As long as even one person revered the object with absolute faith, God could continue the providential Will through him.

그러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신앙의 대상을 마치 바톤과 같이 이어받게 하면서 섭리(攝理)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려 하셨던 것이다.
That person would inherit the mission to attend the object of faith, as a baton is handed from one runner to the next in a relay race.

그러면 이러한 신앙의 대상을 무엇으로 세워야 할 것이었던가? 석판이 들어있는 법궤를 안치함으로써 메시아를 상징하였던 성막(聖幕)이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The Tabernacle, enshrining the Ark of the Covenant and the tablets of stone, was this object of faith.

그러므로 이스라엘민족이 성막을 지었다는 것은, 벌써 메시아가 상징적으로 강림(降臨)하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Since the Tabernacle represented the Messiah, when the Israelites built the Tabernacle, it signified that the Messiah had already come in a symbolic sense.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이 성막을 메시아와 같이 충성으로 받들어 가나안 복지(福地)로 복귀하면 민족적인 실체기대는 그 때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The Israelites were to revere and honor the Tabernacle as if it were the Messiah and to return to the blessed land of Canaan under Moses’ leadership. Thus, they would establish the national foundation of substance.

그리고 이스라엘이 모두 불신으로 돌아가더라도 모세 한 사람만이라도 남아서 그 성막을 지키면,
Even if all the Israelites were to fall into faithlessness along the way, as long as Moses continued to exalt the Tabernacle,

그 민족은 다시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워가지고 성막을 모시는 모세를 중심한 그기대 위에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the people would then be allowed to indemnify their faithlessness and be restored upon Moses’ intact foundation.

나아가 설혹 모세마저 불신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Furthermore, if even Moses were to become faithless,

그 민족 중의 어느 한 사람이라도 모세를 대신하여 끝까지 성막을 지킨다면,
as long as any single Israelite exalted the Tabernacle in Moses’ place,

또 그를 중심하고 불신으로 돌아간 나머지 전민족을 복귀하는 섭리를 하실 수 있는 것이었다. 342
God could work through that person to restore all the people.

제 1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지 않았더면 모세의 가정은 성막 대신이요,
If the Israelites had trusted Moses and entered Canaan in the first national course, Moses’ family would have served in the role of the Tabernacle,

모세는 석판과 법대신이며, 또 모세의 가법(家法)은 천법(天法) 대신이 되었을 것이었기 때문에,
and Moses himself would have fulfilled the roles which were taken by the tablets of ston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그들은 석판이나 법궤나 성막이 필요 없이 가나안으로 들어가 성전(聖殿)을 지었을 것이었다.
Moses’ family would have become the bearer of the heavenly law.

그러므로 석판과 성막과 법궤는 이스라엘이 불신으로 돌아감에 따라 그들을 구원(救援)하시기 위한 방편으로 주신 것이었다.
The Israelites could then have built the Temple in the land of Canaan without any need
for the tablets, the Ark, or the Tabernacle. These were given as the means of salvation only after the people had become faithless.

성막은 예수님과 성신(聖神)의 상징적인 표시체로서 성전을 지을 때까지 필요한 것이었고,
The Tabernacle, as the representation in symbol of Jesus and his would-be Bride, was needed only until the construction of the Temple.

성전은 예수님과 성신의 형상적 표시체로서 실체성전(實體聖殿)이신 메시아가 강림하실 때까지 필요했던 것이다.
The Temple, as the representation in image of Jesus and his would-be Bride, was needed only until the Messiah’s coming as the Temple incarnate.


ㄴ. 성막을 위한 기대
2.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처럼,
Just as a foundation must be laid before we can receive the Messiah,

상징적 메시아인 성막을 맞기 위하여서도 ‘성막을 위한 기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a foundation had to be laid before the Israelites could build and exalt the Tabernacle, the symbolic representation of the Messiah.

따라서 이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는,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와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세워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Needless to say, to establish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foundations of faith and substance for the Tabernacle had to be laid.

그러면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하여서 이 두 기대를 세울 수 있었던가?
Let us investigate how the Israelites were to lay these two foundations under the leadership of Moses.

모세가 성막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금식기도(禁食祈禱)로서 ’40 일 사탄분립기간’을 뜻맞게 세우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는세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Moses was to follow God’s instructions and lay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by fasting and praying for forty days, a period for the separation of Satan.

한편 이스라엘 민족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서 성막이상(聖幕理想)을 세워 나아가는 모세에게 믿음으로써 순종굴복(順從屈伏)하면,
Upon this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the Israelites were to faithfully obey and support Moses as he worked to realize the ideal of the Tabernacle.

성막을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지고, 따라서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도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They would thus fulfill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lay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Tabernacle.

여기에서 성막이라 함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성판과 법궤를 포함하여 말하는 것이다.
The Tabernacle in this discussion includes the tablets of stone and the Ark of the Covenant.


a. 제 1 차 성막을 위한 기대
a,THE FIRST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인간은 6 일만에 창조된 말씀의 실체이다(요한복음 1 장 3 절).
Human beings were created on the sixth day to become the incarnations of the Word.(John 1:3)

따라서 이와같이 창조되었다가 타락된 인간을 복귀하시기 위한 재창조(再創造)의 말씀을 주시려는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는,
Hence, to give the Word of re-creation to fallen people for their restoration,

사탄의 침범을 당한 창조기간(創造期間)의 6 수를 성별(聖別)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God first had to restore the number six, representing the period of creation defiled by Satan.

따라서 하나님은 그 6 일 동안 여호수아의 영광의 구름으로 시내산을 덮으심으로써 성별하신 후,
For this reason, God sanctified Mt. Sinai by covering it with clouds of glory for six days,

제 7 일내에 그 구름 가운데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셨다(출애굽기 24 장 16 절).
and on the seventh day He appeared and called Moses from amidst the clouds.

모세는 이때부터 40 주야를 금식하였던 것이다(출애굽기 24 장 18 절).
From that moment, Moses began his fast of forty days and forty nights.(Exod. 24:16-18)

그것은 이미 위에서 상세히 논한 바와같이 이스라엘민족이 홍해를 건너 후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상징적 메시아인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세우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God directed Moses to set up a forty-day period for the separation of Satan in order to establish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the symbolic Messiah. God saw that this was necessary because the Israelites had fallen into faithlessness after crossing the Red Sea.(Exod. 16:1-12; 17:2-4)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복귀노정(復歸路程)에 있어서의 ‘타락성을 벗기위한 탕감조건’은, 저들이 일시적으로 모세를 믿고 순종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As mentioned above,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during the Israelites’ course to restore Canaan could not be fulfilled by their believing and following Moses only for the short time that he manifested God’s power.

그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 성전(聖殿)을 짓고 메시아를 맞을 때까지 계속하여 그러한 입장에 서 있어야만,
Rather, its fulfillment required that the people maintain such faith and obedience until they entered Canaan,

그것이 성립될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논한 바이다.
built the Temple, and received the Messiah.

이와 마찬가지로 성막(聖幕)을 세우기 위하여, ‘타락성을 벗기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이루는 데 있어서도,
Rather, its fulfillment required that the people maintain such faith and obedience until they entered Canaan,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가 ’40 일 사탄분립기간’을 지나서 성막을 세울 때까지, 그를 믿고 모시고 순종해야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금식기도(禁食祈禱)를 하는 기간에,
Likewise, to fulfill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and lay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Tabernacle, the Israelites should have faithfully obeyed Moses from the moment he climbed the mountain to undertake the forty-day fast until they had finished constructing the Tabernacle.

모두 불신으로 돌아가서 아론을 시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인도해 낸 신(神)이라고 섬겼던 것이다(출애굽기 32 장 4 절).
However, while Moses was fasting and praying on the mountain, the people all fell into faithlessness and worshipped the golden calf.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을 위하여 세워야 했던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도 이룰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Consequently,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Tabernacle was not established.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주셨다. 그러나 인간 자신이 말씀의 터를 잃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責任分擔)으로 그것을 찾아야 할 이 기간에 있어서만은 하나님도 그들의 행동을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Since human beings themselves had lost the basis for the Word, it is their portion of responsibility to recover the basis upon which to receive it again.

Hence, God does not intervene in people’s actions when they are working to restore the Word. For this reason, although God had led the Israelites with signs and miracles, He did not intervene when they sinned.

그런데 우상(偶像)을 만들어 놓고 춤을 추는 백성들을 보자마자 모세는 대로(大怒)하여 손에 들었던 두 석판(石板)을 산 아래로 던져서 깨뜨렸다(출애굽기 32 장 19 절).
When Moses saw the people worshipping the idol and dancing around it, he raged in anger. He threw down the tablets and shattered them.(Exod. 32:19)

그리하여 이것은 모세가 ’40 일 사탄분립기간’으로 세웠던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에 사탄이 침범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두 석판(石板)은 이미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후아담과 후해와로서 복귀될 예수님과 성신(聖神)을 상징한다.
As a result, Satan invaded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 abernacle. As was explained above, the two tablets of stone symbolized Jesus and his would-be Bride, who were to come as the restored second Adam and Eve.

모세가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하는 두 석판을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깨뜨렸다는 것은, 다음에 예수님이 오실 때도 만약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에돌아가심으로써,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본래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었다.
This event foreshadowed that if Jesus came and found the Jewish people faithless, he might have to die on the cross without completing his original God-given mission with his would-be Bride.

모세를 중심하고 행해진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불신은, 모세가 ’40 일 사탄분립기간’을 세운 후, 백성들로 하여금 모세에게 순종케 하심으로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이루시려던 하나님의 섭리를 좌절시키고 말았다.
The faithlessness of the Israelites at Mt. Sinai undermined God’s providence to establish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It nullified God’s arduous efforts to separate Satan from the people and cultivate their obedience to Moses.

따라서 ‘성막을 위한 기대’를 이루시려는 섭리는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2 차 또는 3 차까지 연장되어 나아갔던 것이다.
Due to their continued faithlessness, God’s providence to establish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had to be prolonged through a second and then a third attempt.


b. 제 2 차 성막을 위한 기대
b.THE SECOND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석판을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불신으로 돌아갔다.
The Israelites proved faithless in the dispensation to receive the tablets of stone, and hence to build the Tabernacle,

그러나 그들은 이미 르비듬에서 석판의 뿌리 되는 반석(磐石)의 샘물을 마신 터전 위에서 있었기 때문에(출애굽기 17 장 6 절),
but because they stood on the foundation of having drunk the water from the rock at Rephidim— the symbolic root of the tablets—they were given a second chance.

모세가 석판을 깨뜨린 후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석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어 오면 처음 석판에 써주시었던 것과 같은 말씀을 다시 써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출애굽기 34 장 1 절).
God appeared before Moses after he had broken the tablets and promised him another inscription of His Word. This time, God required that Moses himself carve the blank tablets upon which He would write the inscription.

그러나 여기에서 ’40 일 사탄분립기대’를 다시 찾아 세워, 성막(聖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지 않고서는, 석판을 중심한 성막을 복귀할 수 없기 때문에,
Furthermore, Moses could not restore the tablets of stone or build the Tabernacle around them without first restoring the foundation of faith for the Tabernacle by fulfilling once again a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모세는 다시 40 주야를 금식한 후에 십계명(十誡命)의 말씀을 기록한 제 2 차 석판과 성막이상(聖幕理想)을 복귀하게 되었던 것이다(출애굽기 34 장 28 절). 346
Therefore, Moses had to fast forty more days before he could obtain the second pair of tablets with the inscription of the Ten Commandments(Exod. 34:28) and establish the Tabernacle as the object of faith.

한번 깨뜨린 석판을 40 주야의 금식기도로써 복귀하였다는 것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도 저를 믿는 성도들이 40 일 사탄분립기대로써 그를 맞을수 있는 탕감조건(蕩減條件)을 세우면, 그 기대 위에 재림(再臨)하셔서 구원섭리(救援攝理)를 다시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This time, the Israelites faithfully waited for Moses to return. Moses’ successful efforts to restore the broken tablets by forty days of fasting, and the Israelites’ faith in him, foreshadowed that Jesus, though crucified, could return and make a new beginning in his work of salvation if the believers devotedly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ceive him during the forty days of the Lord’s resurrection— a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모세가 제 2 차로 석판을 중심한 성막이상을 복귀하던 ’40 일 사탄분립기간’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순종굴복하였을 뿐 아니라,
By remaining faithful while Moses was fasting on the mountain, and then obeying his instructions to build the Tabernacle, the Israelites fulfilled the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그들은 모세의 지시를 따라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성막을 건축하였던 것이니, 때는 제 2 년 정월(正月) 초하루였던 것이다(출애굽기 40 장 17 절). 이리하여 이스라엘 선민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를 이룸으로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이룩한 터전 위에서 성막을 짓게 되었던 것이다.
This lai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Tabernacle, and hence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The Tabernacle was built by the first day of the first month of the second year.(Exod. 40:17)

그러나 위에서도 논한 바와같이, 그들이 성막을 짓는 것만으로는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실체기대(實體基臺)’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However, as was mentioned earlier, the foundation of substance in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required much more than the mere construction of the Tabernacle.

그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가 성전을 짓고 메시아를 맞을 때까지, 변치않고 이 성막을 자기들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모시고 받들어야 하였던 것이다.
In fact, until they entered Canaan and built the Temple, the Israelites were supposed to honor the Tabernacle more than they valued their own lives; they were to keep the same faith until they received the Messiah.

제 2 년 2 월 20 일, 이스라엘 민족은 구름기둥의 인도를 따라 성막을 중심하고 시내광야에서 출발하였다(민수기 10 장 11~12 절).
Israelites set out from the wilderness of Sinai, arrayed in formation around the Tabernacle and led by the pillar of cloud.Israelites set out from the wilderness of Sinai, arrayed in formation around the Tabernacle and led by the pillar of cloud.(Num. 10:11-12)

그러나 그들은 다시 불신으로 흘러 모세를 원망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시어 불로써 진(陳) 끝을 사르기도 하셨다(민수기 11 장 1 절).
Yet before long, they began to complain about their hardships and murmur against
Moses. Even after God destroyed their camp in His burning wrath, the Israelites did not repent.

이스라엘 민족은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통곡하며, 만나 외에는 생선도 외도 수박도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며 애급땅을 그리워하였다(민수기 11 장 4~6 절).
They continued to complain, lamenting that they had nothing to eat but manna. They were resentful toward Moses and longed for the meat, fruit, vegetables and luxuries of Egypt.(Num. 11:1-6)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세우고 나아가야 할 성막을 위한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게 되어,
Thus, the Israelites failed to maintain the second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and it was invaded by Satan.

이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는 다시 제 3 차로의 연장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The providence to restore this foundation was prolonged to a third attempt.


c. 제 3 차 성막을 위한 기대
C.THE THIRD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이스라엘 미족이 다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들을 중심한 제 2 차 성막을 위한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 다.
Although Satan defiled the second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Moses’ faith and devotion to the Tabernacle remained unchanging.

그러나 모세의 변함없는 믿음과 충성으로 말미암아,
Therefore, the Tabernacle stood firmly upon the foundation of faith which Moses had laid,

그 성막은 여전히 모세를 중심한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 서 있었고, 또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르비듬에서 성막의 중심인 석판(石板)의 뿌리되는 반석(磐石)의 샘물을 마신(출애굽기 17 장 6 절) 터전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40 일 사탄분립기대를 세우고, 성막을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while the Israelites still stood upon the foundation of having drunk the water from the rock at Rephidim.(Exod. 17:6) he rock, we recall, was the root of the tablets of stone, which was at the center of the Tabernacle. Upon this foundation, the Israelites were allowed to attempt yet another dispensation of forty for the separation of Satan. By obeying Moses, who still honored the Tabernacle, they were to restore through indemnity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in their third attempt.

이것을 위한 조건으로서 주신 것이 40 일 정탐기간(偵探期間)이었던 것이다.
The forty-day mission to spy out the land of Canaan was given as the condition to achieve this.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각 지파로부터 족장(族長) 한 사람씩을 모든
12 명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어(민수기 13 장 1 절) 40 일 동안을 정탐하게 하셨다(민수기 13 장 25 절).
God had Moses choose a leader from each of the twelve tribes of Israel and send them to spy out the land of Canaan for forty days.(Num. 13:1, 25)

그러나 정탐에서 돌아온 12 명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신적인 보고를 하였다.
When they returned, all the spies except Joshua and Caleb presented faithless reports:

즉 그 땅의 거민(居民)은 강하고 성읍(城邑)이 견고할 뿐 아니라(민수기 13 장 28 절),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長大)하여 자기들은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더라(민수기 13 장 32~33 절)고 하면서, 이스라엘은 그 성과 그 백성을 공격할 수 없다고 보고하였던 것이다.
The people who dwell in the land are strong, and the cities are fortified and very large . . . [it] is a land that devours its inhabitants; and all the people that we saw in it are men of great stature . . . and we seemed to ourselves like grasshoppers, and so we seemed to them. —Num. 13:28, 32-33 They concluded that the Israelites could not capture Canaan’s fortified cities or defeat its people.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원망하고 통곡하면서 새로이 한장관을 세워 애급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떠들었다.
Upon hearing this report, the Israelites again murmured against Moses. They called for another leader who would take them back to Egypt.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 백성들은 이미 그 보호자가 떠났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밥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 반면에 자기들은 여호와가보호자시니 두려워 말고 그들을 공격함으로써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자고 외쳤던 것이다(민수기 14 장 9 절).
Only Joshua and Caleb called for the people not to be afraid but to attack the Canaanites in obedience to God’s command: Do not rebel against the Lord; and do not fear the people of the land, for they are bread for us; their protection is removed from them, and the Lord is with us; do not fear them. —Num. 14:9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도리어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하였다(민수기 14 장 10 절).
The Israelites did not accept this exhortation and attempted to stone Joshua and Caleb.

이 때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시어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민수기 14 장 11 절)고 하시면서,
At that moment, the glory of the Lord appeared to all the people, and God said to Moses: How long will this people despise me? And how long will they not believe in me, in spite of all the signs which I have wrought among them? —Num. 14:11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40 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40 일의 하루를 1 년으로 환산하여 그 40 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민수기 14 장 31~34 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But your little ones, who you said would become a prey, I will bring in, and they shall know the land which you have despised. But as for you, your dead bodies shall fall in this wilderness. And your children shall be shepherds in the wilderness forty years, and shall suffer for your faithlessness, until the last of your dead bodies lies in the wilderness. According to the number of the days in which you spied out the land, forty days, for every day a year, you shall bear your iniquity, forty years, and you shall know my displeasure. —Num. 14:31-34

이와같이 제 3 차 성막을 위한 기대도 복귀할 수 없게 되어,
As a result of their lack of faith, the third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ended in failure.

제 2 차 21 개월 광야노정(曠野路程)은 제 3 차 40 년 광야노정으로 연장되었다.
Their twenty-one-month course in the wilderness was extended to forty years.


(4)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4 ) THE FAILURE OF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성막을 위한 기대’가 3 차나 사탄의침범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Due to the Israelites’ faithlessness, the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was invaded by Satan three times.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타락성(墮落性)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蕩減條件)’은 세울 수 없게 되었다.
Therefore, the national indemnity condition to remove the fallen nature was not fulfilled, and the foundation of substance for th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was not laid.

따라서 제 2 차로 세우려던 실체기대(實體基臺)를 조성하지 못하게 되어, 제 2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또다시 실패로 돌아가고, 제 3 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Consequently, the entire second national course to restore Canaan ended in failure. God’s providence was prolonged to a third national cour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