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Part 1. Chapter 4. The Messiah: His Advent and the Purpose of His Second Coming 2-2 THE DIRECTION THE JEWISH PEOPLE WOULD CHOOSE – 유대민족의 갈 길

Ⅱ.유대민족의 갈 길
2. THE DIRECTION THE JEWISH PEOPLE WOULD CHOOSE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가리켜서, 그가 바로 유대인들이 고대하고 있는 엘리야라 하셨고(마태복음 11 장 14 절),
Jesus made it plain that John the Baptist was the very Elijah whom the people were so anxiously awaiting, while on the contrary,

이와 반대로 장본인인 세례 요한 자신은 이미 이 사실을 부인하여 버렸으니, 유대민족은 누구의 말을 곧이듣고 따라갈 수 있었을 것인가?
John the Baptist himself flatly negated this claim. Whose words were the Jewish people to believe?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당시의 유대인들의 눈에,
This matter obviously depended on which of the two,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두 분 가운데서 누가 더 믿을 수 있는 인물로 비쳐졌던가 하는 데 따라서 좌우될 문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Jesus or John, appeared more credible and respectable in the eyes of the people of that time.

그러면 먼저 당시 유대민족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 것으로 보여졌을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자.
Let us examine how Jesus must have appeared to the Jewish people.

예수님은 빈천(貧賤)한 목수(木手)의 가정에서 생장(生長)한 하나의 배우지 못한 청년이었다.
Jesus was an uneducated young man who grew up in the poor and lowly home of a carpenter.

이러한 청년이 이름 없이 일어나 스스로 안식일(安息日)의 주인이라 칭하면서 유대인들이 생명과 같이 여기는 안식일을 범하였다 (마태복음 12 장 1 – 8 절).
This unknown young man suddenly appeared and called himself the “Lord of the Sabbath” while apparently defiling the Sabbath, which pious Jews kept with utmost reverence. (Matt. 12:1-8)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대인의 구원의 푯대인, 율법(律法)을 폐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마태복음 5 장 17 절).
Jesus thus gained the reputation of one who wanted to abolish the Law, which for the Jews was the basis of salvation.
(Matt. 5:17 )

따라서 예수님은 유대인의 지도자들에게 몰린 바 되어,
Therefore, the leaders of the Jewish community persecuted Jesus.

하는 수 없이 어부(漁夫)를 불러 제자를 삼았으며,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함께 먹고 마셨다(마태복음 11 장 19 절).
Jesus was compelled to gather disciples from among simple fishermen and to befriend tax collectors, prostitutes and sinners, with whom he would eat and drink. (Matt. 11:19)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유대인의 지도자들보다도 세리들과 창기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고(마태복음 21 장 31 절) 주장하셨던 것이다.
Even worse from the standpoint of the Jewish leaders,Jesus asserted that the tax collectors and prostitutes would enter the Kingdom of Heaven ahead of them.(Matt. 21:31)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머리털로 씻은 후에, 그의 발에 입을 맞추고 값진 기름을 부은 일이 있었다(누가복음 7 장 37 – 38 절).
On one occasion, a prostitute came to Jesus, weeping, and began to wet his feet with her tears, wipe them with her hair, kiss them, and anoint them with a flask of precious ointment. (Luke 7:37-38)

이러한 행동은 오늘날의 사회에 있어서도 용납(容納)되기 어려운 일이어 든, 하물며 음행(淫行) 하는 여인을 돌로 쳐죽여도 말 못 하던 유대인의 엄격한 윤리사회(倫理社會)에 있어서 어떻게 허용될 수 있었을 것인가?
To accept such ministrations from a prostitute would be unseemly even in modern society; it was surely scandalous in Jewish society, with its austere ethical code wherein an adulterous woman would have been stoned to death.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을 용납하셨을 뿐 아니라 여인의 태도를 비난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도리어 그 여인을 칭찬하셨던 것이다(누가복음 7 장 44 – 50 절, 마태복음 26 장 7 – 13 절).
Yet Jesus not only approved of her lavish attendance; he even praised her and chastised his disciples when they rebuked the woman. (Luke 7:44-50)

한편 또 예수님은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한 입장에 세우시고(요한복음 14 장 9 절),
Moreover, Jesus seemed to place himself on an equal footing with God (John 14:9 )

자기로 말미암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다고 주장하시면서(요한복음 14 장 6 절)
and asserted that no one could enter God’s Kingdom except through him. (John 14:6 )

자기를 그들의 부모나 형제나 처자나 무엇보다도 더 사랑해야 된다고 강조하셨다(마태복음 10 장 37 절, 누가복음 14 장 26 절).
He insisted that people should love him more than they love their own parents, brothers and sisters, spouses or children. (Matt. 10:37, Luke 14:26)

예수님의 모습이 이러하였으므로,
Thus, to many, Jesus’ words and deeds appeared blasphemous.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그를 ‘마귀’의 왕 바알세불이 접한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조소(嘲笑)하였던 것이다(마태복음 12 장 24 절).
Hence, it is not surprising that the Jewish leadership rebuked and mocked him, accusing him of being one possessed by Beelzebul, the prince of demons. (Matt. 12:24)

예수님에 대한 이러한 전후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당시의 유대인들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결코 믿겨운 존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From all this, we can gather that Jesus was far from credible in the eyes of the Jewish people of his time.

다음으로 우리는 당시의 유대민족의 입장에서 본 세례 요한의 모습은 어떠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자.
How did John the Baptist appear to the Jewish people of that time?

세례 요한은 당시의 명문가인 제사장(祭司長) 사가랴의 아들로 태어났다(누가복음 1 장 13 절).
John the Baptist was born to a prominent family; he was the son of Zechariah, a priest.

그의 부친이 지성소(至聖所)에서 분향할 때에, 그 아내가 아들을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말을 곧이듣지 아니함으로써 벙어리가 되었다가, 요한이 출생하자마자 그 입이 열린 기사이적(奇事異蹟) 등으로 인하여, 온 유대고을 사람들이 크게 놀랐던 것이다(누가복음 1 장 9 – 66 절).
The miracles and signs surrounding John’s conception and birth surprised all the hill country of Judea. One day, when Zechariah was burning incense in the Temple, an angel appeared before him and announced that his wife, who was old and barren, would soon conceive a son. When he did not believe the angel’s words, he was struck dumb, and his tongue was loosed only upon the birth of the child. (Luke 1:9-66 )

뿐만 아니라 광야(曠野)에서 메뚜기와 석청(石淸)으로 연명하면서 수도(修道)하던 그의 빛나는 신앙생활을 보고,
Furthermore, John led an exemplary life of faith and discipline in the wilderness, surviving on locusts and wild honey.

일반 유대인들은 물론 제사장들까지도 그에게 혹 당신이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물어볼 정도로,
For these reasons, many Jewish people wondered whether perhaps he was the Christ,

그는 유대인들에게 훌륭하게 보였던 것이다(누가복음 3 장 15 절, 요한복음 1 장 20 절).
and a delegation of priests and Levites came to him and asked him this directly. (Luke 3:15, John 1:20 ) The Jewish people respected John to this extent.

위에서 밝힌 바 그 당시의 사정을 놓고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모습과 세례 요한의 모습을 비교해 볼 때, 과연 그들이
누구의 말을 더 믿을 수 있었을 것인가?
Considering these circumstances, when the Jewish people of Jesus’ day compared Jesus and John the Baptist, who appeared more credible to them?

그것이 세례 요한의 말이었을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사실이다.
Without a doubt, John’s words had more credibility.

따라서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을 엘리야라고 하신 예수님의 증언보다도, 자기는 엘리야가 아니라고 부인한 세례 요한의 말을 더 믿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Therefore, they naturally believed John the Baptist when he denied being Elijah more than they believed Jesus’ testimony that John was Elijah.

따라서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의 말을 믿게 되자,
Since the people believed John, they considered

예수님의 이 증언은 메시아로 자처하기 위한 일종의 위증(僞證)이 되고 말았기 대문에,
Jesus’ words to be a fabrication concocted to support his dubious claim to be the Messiah.

예수님은 자연히 망언자(妄言者)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Consequently, Jesus was condemned as an impostor.

이와 같이 예수님이 망언자로 몰리게 될 때, 위에서 논급한 바와 같은 예수님의 모습은,
Once Jesus was condemned as an impostor, the people’s disbelief in him intensified daily.

모두가 유대인들에게 있어 거리끼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불신의 정도는 점점 더 높아지기만 하였다.
They found his deeds and words more and more offensive.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불신하고 세례 요한의 말을 믿고 보니,
Since they believed John’s words over Jesus’ words,

엘리야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며,
they could only think that Elijah had not yet come. Accordingly,

따라서 엘리야가 오셨으리라 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they could not even imagine that the Messiah had already come.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유대인들은, 말라기의 예언(豫言)을 믿는 처지에 서면, 아직 엘리야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메시아로 자처하는 예수님을 버릴 수밖에 없었고,
As long as the Jewish people kept their faith in the prophecy of Malachi, they had to reject Jesus, who claimed to be the Messiah, because from their viewpoint Elijah had not yet come.

이와 반대로 예수님을 믿는 입장에 서면, 엘리야가 온 다음에야 [메시아]가 오시리라고 예언한 성경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들은 부득이 예수님을 불신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On the other hand, to believe in Jesus they would have had to deny the biblical prophecy which asserted that the Messiah would come only after the return of Elijah. Since pious Jews would not even consider denying the prophecies of Scripture, they were left with no other choice but to disbelieve in 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