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0 to-7-336: 찾으시려던 예수님

찾으시려던 예수님
1959.10.18 (일), 한국 전본부교회

7-310
찾으시려던 예수님
마태복음 23:29-39

[기 도]

아버지시여! 오늘 이 시간은 예수와 역사적인 거리가 있는 시간이옵니다. 역사에는 거리가 있으되 심정의 세계에는 거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예수를 믿는 저희들이 되지 말고 심정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예수를 알고 믿을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제 말씀을 보았사오니, 이 말씀을 하시던 예수의 초초한 성상을 그리면서 마음으로 슬퍼하며 그 앞에 머리 숙일 수 있고, 호소하던 그때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무친 마음, 간절한 마음, 황공한 마음이 저희의 몸 마음에 어리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 알 수 없는 사이에 주의 황홀한 은사를 느껴 감사드리고, 보내신 메시아의 성상은 천상이 옹호하여 받들어야 할 존재였으나 땅 위에 나타나 처참한 행로를 가신 것을 슬퍼하고, 그의 수고를 염려하고, 그의 분함을 분히 여기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때의 선조들의 행치 못한 모든 것을, 오늘 저희들이 심정적으로 인계 받아 그들 대신 예수의 위로자가 되고 위안자가 되게 하여 주사옵고, 그분 앞에 소망의 상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는 얼마나 불쌍한 분이었사옵니까? 민족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교단을 바라보는 그의 심정을 통곡밖에 남아 있지 않았사옵니다. 천륜의 섭리를 책임져야 했던 그의 사정을 인간이 알지 못하였습니다.

사정을 통해야 할 인간을, 심정을 나누어야 할 교단을, 같아 살아야 할 민족을 뒤에 놓고, 홀로 밤중에 산중을 헤매시던 그의 심정을 아는 자 없었습니다. 오늘 저희들은 예수를 모르면서 따르고, 예수를 모르면서 믿는 자들과 같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불쌍한 그의 심정을 붙들고 한없이 울어줄 수 있으며 한없이 염려할 수 있으며, 그를 위해서는 죽음의 자리도 개의치 않는 저희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이 무엇 때문에 왔습니까? 여기에서 가르쳐 줄 것은 세상의 어떤 학문도 아니요 학식도 아니옵니다. 마음의 안식처를 찾기 위하여 모였사옵고, 본연의 심정과 연락하여 아니 갈 수 없으며,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으며, 심정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이 되기 위하여, 하늘 앞에 회개하고 청산하기 위하여 저희들이 모였을 진대, 자기 스스로 섰다 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긍휼의 손길과 긍휼의 지팡이가 아니면 여지없이 쓰러져 사탄의 제물이 된다는 것을 알고 감사드릴 줄 알며 사무친 심정이 넘쳐흐르는 아들 딸들을 만들기 위하여 이 자리를 허락하신 것을 아오니, 이제 말씀을 전하는 자도 말씀을 받는 자도 그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역대의 선조들과 인연되고 한날을 세우기 위하여 하늘이 수고하신 결과로 오늘 저희들이 상봉한 것을 알고 있사오니, 마음으로 느끼고 심정으로 체휼하여 새로이 결심하는 바가 있다 할진대, 그것은 오늘 이 시간에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수고의 실적을 통하여 선조들, 혹은 선지, 혹은 의로운 사람들이 동원하여 다리를 놓고 인연을 이어나와 내 한 자체가 실체적으로 빚어졌다는 것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바라보는 심정, 대하는 성상은 다를지라도 아버지와의 인연을 맺는 데 있어서 같은 마음으로 움직이고 같은 심정으로 동하여 같은 모습으로 빚어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사탄은 이와 같은 터전을 노리며 저희 앞에 사망의 장벽을 가로놓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힘과 능을 가하여 주시옵고 성삼위신이 보호하시는 가운데 승리의 영광만이, 재창조의 영광만이, 존귀의 영광만이, 자랑할 수 있는 것만이 저희 자체에서 빚어질 수 있으며 느껴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외로운 식구들 지방에 널리어 이 시간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곳곳마다 같은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올 때,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7-312
말 씀
잠깐 드리려 하는 말씀은 `찾으시려던 예수님’입니다. `찾으시려던 예수님’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7-312
예수님을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
우리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는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찾으시려 했던 분이었습니다. 이 예수는 택한 이스라엘 민족의 갖은 수고의 노정을 거친 후에 찾으신 분이었습니다. 또 그 예수는 찾으시려는 하늘의 뜻과 모시고자 하는 백성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수고하신 분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예수 하나를 놓고 하늘의 인연이 엉클어져 있고, 하늘이 택한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인연과 시대적인 인연과 미래적인 인연이 엉클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이 예수를 완전히 찾으실 때, 이스라엘을 택한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이 예수를 하나님이 완전히 품으실 때, 선민 이스라엘을 품는 것이요, 예수와 더불어 즐기며 사는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예수를 완전히 찾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할 수 있으며, 예수를 완전히 모시는 것이 타락한 후손, 구원을 바라며 나아가는 우리 인류의 소망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천주적인 예수를 찾기 위하여, 하늘은 타락 이후 예수가 올 때까지 갖은 수고를 하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이러한 예수 한 분을 모시기 위하여 택한 선민들은 역사노정에서 말할 수 없는 핍박의 길과 죽음의 길을 갔고, 쓰러졌다 일어서고 일어섰다 쓰러지고 또 일어서는 싸움의 역사를 거듭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한을 품은 이스라엘 선민은 예수 한 분을 붙들 때에, 그 한이 풀릴 수 있고 예수를 보내기 위해 수고하신 하나님의 한도 풀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왔더랬습니다.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일하였습니다. 예수는 이땅에 와서 우리를 위하여 싸웠습니다. 하늘을 위하여 참고 싸웠습니다. 죽음의 길까지도 홀로 갔습니다. 예수는 틀림없이 시대를 위하여 왔고, 미래를 위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역사의 한을 풀지 못한 입장에 있고, 시대의 한을 풀지 못한 입장에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예수가 왔다 간 이후 2천년이 지난 이날, 예수가 다시 와야 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예수가 다시 필요한 시대입니다. 오늘 이후 미래에도 예수는 필요합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하늘은 예수를 보내시고 소망하시는 대로 찾아지기를 얼마나 고대하셨을 것인고. 예수는 이 땅에 와서 위로는 하늘의 위신과 아래로는 땅의 위신을 대신하여 서기를 얼마나 고대하셨을 것인가. 그러나 예수는 자기의 위신을 세워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는 민족 앞에 나타나 만민을 통치할 수 있는 만왕의 왕으로 하늘의 황태자로 군림하기를 고대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차지하고라도 4천년 동안 준비해 온 이스라엘 민족은, 죽는 한이 있어도 예수를 놓지 말아야 하고 또 예수도 죽더라도 이스라엘 민족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었는데, 죽음을 앞에 놓고 서로 서로 나눠지고 서로 서로 갈라졌으니, 예수는 민족 앞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이 땅 위에서 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었던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명을 갖고 왔던 예수, 그는 역사적인 사명감과 시대적인 사명감에 충천해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사망의 물결에 휩쓸려 아우성치는 인류를 구원하려는 심정이 불탔던 예수였습니다. 그 예수, 그러한 예수, 메시아요 하늘의 독생자이신 예수를 모신 자가 있었느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늘이 예수를 걸어 놓고 찾는 것이 있다 할진대 무엇을 찾을 것인고? 예수를 통하여 찾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예수를 아는 자를 찾을 것입니다. 진정 예수를 아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자요, 하나님을 아는 자는 예수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처해 나오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예수를 알아 모셔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예수를 잃어버려야 했고, 하늘도 예수를 잃어버려야 했으며, 예수 자신도 사명을 땅 위에 남겨두고 죽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실을, 우리들은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7-314
예수를 모시는 백성을 그리워하신 하나님
6천년의 역사가 경과한 오늘에 있어서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일 것인고? 땅위에서 예수를 다시 찾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가 지상에 왔던 목적을 다 달성하고 하나님의 우편에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갖추어 승리의 경배를 드린 줄 알고 있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가시면서 이 땅 위에 성신을 보냈습니다. 성신을 보내놓고 하늘의 심정을 대신하여, 아버지가 찾으시는 모습으로서 나타나기 위하여, 완결 짓지 못한 사명을 책임지기 위하여 영계에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예수의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고? 예수가 기도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늘이 4천년 동안 준비하여 예수를 보내시고 그를 통하여 찾으시려던 것은 승리의 모습, 십자가의 예수가 아닌 영광의 예수였습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신 목적은,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이 찾으시려던 예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예수는 하늘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후대 사람들은 믿기를 바라셨던 예수를 어떻게 대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믿는 사람이 예수를 대하는 것이나, 예수가 하나님을 대하는 것이나, 하나님이 예수를 대하는 것이나, 하나님이 민족을 대하는 것이나 같아야 합니다. 같은 목적하에 움직여서 그 목적이 이루어진 자리는 슬픔과 고통이 아니라 승리의 영광, 온 하늘땅이 즐거워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 한날, 그 날에 움직일 수 있는 예수, 자랑할 수 있는 하나님과 그 예수를 최고로 모실 수 있는 백성을 하늘은 그리워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이 예수를 땅에 보내신 목적이요, 예수를 믿게 한 목적이었으나 아직까지 지상에서 그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연고로 예수는 다시 와야 됩니다. 다시 와야 돼요. 예수가 승리하여 세운 영광의 동산, 하나님이 즐거워하실 수 있는 그 세계는 어디 갔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심중에, 예수의 심중에만 남아 있습니다.

예수는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왔습니다. 하늘이 세우신 이스라엘 선민을, 유대 나라를 지극히 사랑하고 품어 주고 그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 그들이 죽으면 예수도 죽고 그들이 살면 예수도 살아야 할 철석같은 인연을 맺기 위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인연을 갖기 위하여 예수는 민족을 대하여 외치고 부르짖었으나, 민족은 그 인연을 유린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내놓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공동목표인 그 목적이 이 땅위에 성취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를 통하여 생사의 분기점을 세우려 하였으나, 그 기준이 지상에서 이루어지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은 다시 인간 세상을 침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와 성신은 영적으로 이 세계를 이끌어 나오고 있습니다. 2천년 동안 무수한 싸움의 역사를 거듭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를 찾기 위한 것이었으나, 예수와 택한 민족이 하나되지 못하여 예수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 앞에 버림받게 되었고, 하나님은 다시 영적인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놓고 메시아를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가 왔다 간 이후 영적으로 다시 메시아를 보낼 것을 약속하시고, 실패한 이스라엘의 복귀운동을 해 온 것이 지금까지의 2천년 역사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때는 어떤 때인가. 끝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끝날은 무슨 날? 하늘이 소원하시는 날이 가까와오는 때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다시 세우시어 소원성취하는 날이 끝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뇨? 창조본연의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세워 이 땅 위에 창조본연의 세계가 이루어지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 끝날 죄악된 사탄세계에 살고 있는 여러분은, 하나님이 찾으시려던 예수를 바로 모실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은 끝날 예수님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세계가 되기를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계는 하나님이 예수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택한 민족 택한 자녀가 있다 할진대, 그를 들어서 예수 앞에 자랑할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하시면서,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참아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은 하나님이 예수 앞에 드러내 놓고 자랑할 수 없는 세계가 되었습니다.

이 땅에 다시 예수가 오신다면, 그는 이 땅의 인간들을 거느리고 만왕의 왕으로 군림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또 우리들은 역사적인 슬픔과 역사적인 한을 해원하여 그를 승리의 왕자로 모시고, 그가 하늘 앞에 드릴 영광을 대신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땅 위의 인간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7-316
예수를 드러내고 싶어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가 오시는 그 때에 선한 세계가 나타나기를 고대하실 것입니다. 예수의 소원은 무엇일 것인고. 선한 나라의 승리자로서 선한 백성을 통치하고,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그 목적을 이루어 하늘 앞에 승리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러한 예수와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가 다시 와야 할 끝날은, 예수님 당시, 즉 2천년 전 이스라엘 민족앞에 예수를 보냈던 그때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4천년 동안 불쌍한 선민을 위해 수고하시고, 그들을 지도하시고,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면서 끌고 나와 예수에게 인계하신 것은, 예수를 배반하는 민족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유대교단을 세운 것은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척하는 선봉에 서는 교단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 앞에 양과 같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민족은 누구보다도 예수 앞에 양중의 양이 되어야 했습니다. 교단은 물론이거니와 이스라엘 민족도 예수가 동하면 동하고 예수가 서하면 서하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민족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민족을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앞에 보이고 싶었던 택한 이스라엘의 위신이 꺾어지게 될 때, 예수가 보고 싶은 교단을 보지 못하고, 찾고 싶고 세우고 싶은 사랑하는 자녀, 혹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찾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실 때에, 하늘은 슬퍼하셨고 통곡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4천년 동안 참아나온 하늘의 분한 심정이 폭발되었다는 것을 그 때의 백성들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하늘을 알았기에, 그런 입장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고 슬퍼하시는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임을 알았기에, 몰리고 배척받고 거처할 곳도 의지할 곳도 없이 쫓겨다니는 그 마당에서도 `아버님, 제가 죽는 것을 한하지 마소서. 저의 서러움을 한하지 마소서. 저의 분함을 한하지 마소서’ 하시며 하나님을 위로하셨던 예수의 심정을 그 누가 알았던고?

예수가 죽는 그 순간, 하늘이 4천년 동안 수고한 이스라엘 민족은 일시에 사탄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택해 세운 유대교단이 사탄의 함정에 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역사적인 수고와 역사적인 공적을 존중하던 예수는 하나님의 수고가 허사됨이 너무 안타깝고 너무 분해서, 자기 몸이 갈래갈래 찢기면서도 아버지 앞에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런데 그 심정을 누가 알았습니까?

택함을 받았다는 사람, 하나님을 모신다는 사람은 수없이 많았으나, 애달피 외치고 애달피 부르짖는 예수의 심정과 사정을 안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렇듯 사정을 통할 수 없었던 예수를 여러분은 믿고 있습니다. 심장이 찢어지는 가슴, 예수는 그 가슴을 부여안고 쓰러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여러분은 믿고 있어요. 이제 우리들은 끝날에 이 예수를 드러내 드려야겠습니다. 이 예수를 배반한 유대교 앞에 드러내야 되겠습니다. 배반한 이스라엘 민족 앞에 드러내야 되겠습니다. 배반한 가나안 7족 앞에 드러내야 되겠습니다. 사탄세계 앞에 드러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역사상에 예수를 드러낸 자 그 누구뇨? 없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예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예수를 이 땅 위에 승리의 왕자로 나타내고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의 소원도 그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단이 있습니다. 소위 믿는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자랑하지 마십시오. 역사는 모순된 노정을 거쳐왔습니다. 역사의 흐름은 냉엄한 입장에서 판결지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찰나에도 역사는 인연되어 있거늘, 공포가 찾아 들어오는 이 때, 혼란하고 혼돈되어 중심을 잃어버리는 이 때에 여러분 자신들은 어떠한 심정, 어떠한 인연, 어떠한 가치를 갖고 천상의 한을 염려하고 있습니까? 천상의 원한을 풀어 드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7-318
배반당해 홀로 남은 예수
예수가 왔다 간 이후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는 남아 있습니다. 배반한 형태는 남아 있으되 배반당했던 형태는 어디 갔느냐. 사라졌습니다. 배반당하여 죽어가면서 남긴 한서린 예수의 말씀은 남아 있는데, 예수의 심정과 사정은 어디 갔느냐? 하늘을 대신하여 싸움을 지도해야 할 예수, 땅을 대신하여 승패를 겨루어야 할 예수였는데도 불구하고, 남지 않아야 할 것이 남아 있고 남아 있어야 할 예수의 터전은 남아있지 못한채 다시 끝날이 되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기독교인들, 자칫 잘못하면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고 누가 자신하겠습니까? 유대교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입니까?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을 세기말, 끝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끝날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나타난 진리를 찾아 헤매는 것이 하늘의 뜻에 맞는 것이 아니요, 형식에 매여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하나님이 세우신 예수님은 모르는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도둑과 같이 나타났습니다. 영광의 왕자가 도둑과 같이 왔습니다. 호화찬란한 왕궁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똥거름내 나는 마굿간에서 태어남이 웬말입니까?

그런 자리에 태어난 예수를 메시아로 믿으라고 권하던 동방박사는 어디 갔느뇨? 그럼 예수를 메시아라고 증거하던 목자는 어디 갔느뇨. 안나, 세례 요한 일당은 어디 갔는고. 다 가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이 가버리니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도 갈 수밖에, 유대교단도 갈 수밖에… 그리하여 예수는 홀로 남아졌습니다. 홀로 남아진 예수님입니다. 홀로 남아진 예수.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시고 싸우시어서 세우고자 하셨으나, 홀로 남아진 예수, 하늘이 거느렸던 수많은 장병을 다 잃어 버리고 홀로 남은 예수, 교단을 다 잃어버린 예수, 민족을 잃어버린 예수였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믿고 있는 이 성경말씀은 배반당한 예수의 말씀입니다. 수많은 사도들은 예수를 배반할 뿐 아니라 말씀도 배반했습니다. 말씀도 배반당하고 자신까지도 배반당하던 예수였습니다. 하늘이 그처럼 배반당 할 예수를 세우시기 위해서 4천년을 수고하셨습니까? 아니올시다. 예수는 왜 믿는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고 예수의 분함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믿어야 합니다. 천당에 가든 지옥에 가든 개의치 않고,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의 소원을 풀어주고, 지옥의 왕자가 될지라도 하나님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믿어야 할 텐데 `예수가 망하든 하늘이 어떻게 되든 나만 천당가면 됐지’ 합니다. 이것은 강도보다 더 합니다. 신앙이 본질적으로 틀렸어요. 오늘날 이러한 기독교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가는 것이 통일신도들이 가는 길입니다.

찾아야 할 예수는 역사적인 예수입니다. 역사적인 예수. 그 예수는 시대적인 예수입니다. 또 그 예수는 미래적인 예수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전개하려던 역사가 잘려 버렸습니다. 시대도 잘려 버렸고 미래도 잘려 버렸습니다. 갈 곳 없는 예수가 돼버렸다는 것을 알아요?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신 역사적인 인연의 결실체로 오신 예수를 붙들고 울고 불고 죽고 살고 해야 할텐데 다 잃어버렸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을 붙들고 가야 했던 예수는 그 민족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 이후에 예수가 주관할 수 있는 참다운 후손들이 되어 있느냐? 오늘날 이 시대는 예수를 또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인연을 가지고 천상의 사명을 대신하여 왔던 분입니다. 그런 분이 땅에 와서 과거를 잃어버린 것만으로도 분한 일입니다.

오늘날 시대, 역사적인 종말시대의 예수가 다시 나타난다면 역사적인 인연을 세워야 됩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역사적인 인연을 세워야 돼요. 역사적인 인연을 세우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늘날 기독신도들은 이스라엘과 같은 민족, 혹은 예수를 배반한 유대교단 같은 교단 말고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기준에서 예수를 받들어 드릴 수 있는 제2이스라엘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신도들은 성경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전하는 근본 정신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족보를 캐고 무엇을 논위하더라도 그 족보의 위신과 가치를 책임성 있게 다룰 수 없으면 족보를 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7-320
예수의 진정한 부모 형제
예수는 하나님의 위신을 세우기 위하여, 역사적으로는 4천년 동안 하늘의 뜻을 받들면서 희생한 수많은 선지자들의 해원을 위하여 왔었습니다. 시대적으로 사탄세계에 사탄의 유린을 받고 있는 민족의 분함을 해원하기 위하여 왔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못하고 갔습니다. 못하고 갔어요. 해원하러 왔는데 못하고 갔으니, 다시 와야 할 운명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고 계신 것은 무엇이뇨? 예수가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이뇨. 선의 나라입니다, 선의 나라. 승리의 나라요, 영광의 나라요, 기쁨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선한 사람을 만났습니까? 못 만났습니다. 예수는 형제들한테서 몰려났습니다. 부모한데서도 몰려났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를 그렇게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세웠겠어요? 예수를 그렇게 만들라고 유대교단을 세웠겠어요? 아담 이후 4천년 동안 섭리의 뜻을 인계시켜 나오면서 요셉 가정으로 예수를 보내실 때 그렇게 대접하라고 보냈겠어요? 30여년 동안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생활하면서 메시아를 모시기 위하여 준비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그렇게 모시라고 보냈겠어요? 다 가버렸습니다.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예수가 이 땅 위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민족이 저버리고, 예수는 자기를 맞기 위하여 준비한 민족의 뒤를 따라오던 사탄과 정면충돌하게 된것입니다. 예수를 맞아 놓고 돌아서서 사탄을 향해 반격을 해야 할 택한 선민들이 다 가 버리고, 홀로 남은 예수가 일선에 서서 싸우다 돌아가신 그 길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늘의 정병들을 선두에 세워 놓고 사탄세계를 향하여 행군의 명령을 해야 할 예수였는데, 당신만이 남고 다 가 버렸습니다. 동방박사는 어디 갔으며, 안나는 어디 갔으며, 목자는 어디 갔으며, 세례 요한이 어디 갔으며, 요셉 가정은 어디 갔으며, 그 형제 친척은 어디 갔으며, 교단은 어디 갔으며, 민족은 어디 갔으며, 나라는 어디 갔느냐? 다 지나갔습니다. 다 지나갔어요. 다 지나갔으니, 예수님은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죽었다는 이 인연을 맺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다시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이 나라는 망해버리지만, 하늘은 바라볼 것이다 하는 예수였기 때문에 천상에 올라가 그 민족을 위하여 다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예수의 사정이 이러하다면 예수의 소원이 무엇이겠어요? 참다운 제자를 찾는 것입니다. 예수가 찾는 그 참다운 제자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제자요, 예수가 증언할 수 있는 제자입니다.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예수가 편안히 쉴 수 있는 환경을 이루어 드린 적이 있었습니까? 예수에게 가정이 있었어요? 예수의 모친과 동생이 찾아 왔을 때에 그는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자라야 나의 모친이요 나의 동생이라 했습니다. 예수에게는 모친도 없고 동생도 없었습니다. 예수에게는 친척도 없고 민족도 없었습니다. 예수에게는 가정도 없고 형제도 없었습니다. 안 그래요? 예수님은 그것이 분하여 죽은 후 영계에서도 모친과 형제, 종족, 민족, 교회, 나라, 세계를 찾아나왔는데, 그것이 기독교 2천년 역사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찾아 세우신 이스라엘을 잃어버리고 이 땅 위에 한 조각의 소유물도 세워 놓지 못하고 갔기에, 다시 와야 합니다. 예수를 중심삼은 예수의 가정, 예수의 종족, 예수의 민족, 예수의 나라, 예수가 꿈꾸던 세계를 이루지 못하고 갔으니, 다시 와야 돼요.

여러분들, 끝날에 다시 와야 할 예수께 또 다시 서글픔이 미쳐질까봐 염려하는 자 있습니까? 예수의 동생이 되어 봤습니까? 이것을 하늘은 묻고 싶은 것입니다. 나이 많은 분들, 예수의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서 예수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 보았습니까? 예수와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그렇게 아끼고 그 아들 딸을 위하여 뼛골이 녹아나고, 자기에게 피곤함과 어려움이 엄습해와도 그것을 개의치 않고 붙안고 눈물흘리는 신앙생활을 해 보았습니까?

어느날 이 땅 위에 예수는 다시 찾아옵니다. 무엇 때문에 오느뇨? 사랑하는 제자를 다시 찾기 위해서 옵니다. 역사노정에서 배반한 제자들을 다시 찾아가서 머리를 숙이게 하고 끌어모아서 그들을 중심삼고 뜻을 세워 나와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한이요 예수의 한입니다. 이런 한을 남긴 것이 우리 선조들의 수치요, 우리 역사의 수치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사도를 높이 높이 받들어 모시고, 그들이 하늘의 자극한 사랑을 받는 자로 알고 있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알고 보면 그렇지 않아요. 그들은 인류를 대표하여 위안해 드려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죽고 나서 용서를 빌어야 했던 신세였음을 한해야 됩니다.

7-322
참다운 하늘나라의 식구
예수가 부활한 후에 찾아 모셨던 자들은 어떤 자였습니까? 배반했던 제자의 일당들이었습니다. 구원섭리를 하는 데 있어서 제자들을 용서해 주고 기쁨으로 맞이해야 했던 예수의 심정을 누가 알았느냐.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한없이 서러웠던 것입니다. 서럽지만 가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땅 위에서 영적으로라도 발판을 잡으려니, 다시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류를 맞고자 하신 예수 앞에 대표자로 택한 사도들이 배반하고 인류를 대표한 제자들이 배반하니 전체가 배반한 것이 되었기에,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를 붙들려 할 때 막았던 것입니다. 그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들은 슬프신 예수를 배반한 자들입니다. 우리들이 훌륭하다고 모시고 있는 그 사도들 가운데 예수를 배반하지 않은 자가 한사람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들을 믿고 있는 여러분들도 같은 배반자의 종족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배반하지 않은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배반자의 종족이기에 배반, 배반, 배반을 거듭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악의 생활을 하고 있어요.

예수가 다시 찾아올 때 그 예수 앞에 용서받아야 할 무리가 되어 있으니, 하늘의 슬픔은 언제 끝날 것이냐. 언제 끝날 것이야? 우리들은 예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역사적인 인연을 세우려 하고 시대와 미래의 인연을 세우려 하던 분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서글픈 곡절을 땅에 남기고 갔으니, 그 한을 맡아 지는 것이 신부들의 사명입니다.

여러분들, `주여 오시옵소서! 내 죄 보따리를 다 맡아 주시옵소서! 주여 오시옵소서’하며 주가 오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대합니까? 내가 잘 먹고 잘 살고 좋기 위해서입니까? 자기의 관이나 자기의 목적을 세워 놓고 하늘을 대하는 사람은 어느 한때의 배반자가 됩니다. 신앙관이 어떻고 주의가 어떻다 해도, 하나님과 천성천하의 모든 존재물들이 `옳다’하고 판정하기 전에는, 어떠한 종교나 어떠한 사람도 `나를 따라라’ 할 수 없습니다. 뭐 `우리 교파를 믿어야만 좋아, 우리 교파를 따라야만 돼’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얼마든지 통일교회를 지나 가십시요. 이런 입장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찾으려는 예수, 예수가 찾으려는 그 자체, 예수를 찾으려 하는 우리들, 이제 우리는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애쓰지 말고, 죽기 전에 예수의 사랑받을 수 있는 동생이 되어야 합니다. 아벨편에 서려면 동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죽기 전에 예수가 그의 심정을 다 털어 놓을 수 있고 그 가슴에 있는 비밀을 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랑하는 제자, 예수가 모든 것을 인계해 줄 수 있고 또 그것을 인계받을 수 있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있듯이 예수는 `내가 아직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하는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시는 예수를 바라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끝날에 다시 세우려 하시는 예수, 하늘이 찾으려 하시는 예수, 우리가 모셔야 할 예수, 예수 자신이 세우려 하는 그 예수, 그 분을 알고 모셔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제자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들 딸이 되어야 합니다. 승리한 하늘의 아들 딸이 있다 할진대, 그 아들 딸에게는 사도까지 굴복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내 동생아, 사랑하는 내 식구야’ 하며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사도들은 그의 종이 될 것입니다. 사도까지 무릎을 꿇고 경배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또 이단이라 할지 모르지만 그건 모르는 사람들의 말입니다. 여러분, 신부라는 명사는 사도들을 놓고 한 말이 아닙니다. 신부라는 명사는 사도들 앞에 허락한 명사가 아니예요. 허락했으면 무엇하러 다시 오시겠어요? 후대의 인간들 앞에 허락한 말씀입니다. 똑똑히 아십시오. 자녀라는 명사는 사도들 앞에 허락한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배반하지 않는 후대의 아들 딸을 위하여 한 말입니다.

아담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은 왔다 갔지만, 내가 알기로는 예수의 아들 될 자가 없습니다. 예수의 참다운 직계 자손이 될 자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다시 오신 후에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십시오.

예수가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데 누구를 찾아 오시는가? 동생들을 찾아 오십니다. 부모를 찾아 오십니다. 종족을 찾아 오십니다. 민족을 찾아 오십니다. 백성을 찾아 오십니다. 세계를 찾아 오십니다. 지금까지의 이 세상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식구라는 명사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교인이 아니고 식구가 되어야 합니다.

7-324
사도를 능가하지 않으면 따를 수 없는 예수
예수의 슬픔이 무엇인가. 겟세마네 동산의 세 제자는 어디 갔으며, 사랑하는 부모, 사랑하는 동생은 어디 갔느뇨. 예수는 다 그리웠다는 것입니다.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이 예수를 모셨던들, 예수는 안죽었을 것입니다. 종족이 예수를 모셨다면 예수는 안 죽었을 거예요. 그런데 가정에서 쫓겨나고, 하늘이 찾아 세운 세례 요한한테 쫓겨나고, 교단에서 쫓겨나고, 민족한테 쫓겨나고, 제자한테 쫓겨나니 죽을 수밖에 더 있습니까? 이런 사정을 모르고 지금까지 예수가 죽기 위하여 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게 믿고 나온 사람은 예수 앞에 제2의 십자가를 걸머지우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찾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생을 찾고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부모는 어디 갔으며, 내 형제는 어디 갔으며, 내 친척은 어디 갔으며, 내종족은 어디 갔으며, 내 교회는 어디 갔으며, 내 교단은 어디 갔느냐? 이 한을 풀기 위하여 그는 2천년 동안 `아버님, 다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세계의 대표로 왔다가 실패했사옵고, 이스라엘을 거느리러 왔다가 실패했사옵고, 교회를 거느리러 왔다가 실패했사옵고, 종족과 가정을 다 거느리러 왔다가 실패했사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래요. 알고 보니 그렇단 말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이 무엇이뇨? 혈육을 연한 형제지간에 배척받는 것을 바라보실 때에, 하늘은 얼마나 서러워하셨겠습니까? 애지중지 기른 부모마저 예수를 알지 못하여 갈라지는 것을 볼 때, 하늘은 얼마나 슬퍼하셨겠습니까? 수천년 동안 준비하여 요셉의 종족을 택해 예수를 보냈으니, 환희하고 모셔야 할 그 종족이 예수를 배반했을 때 어떠하셨겠습니까? 유대교회가 배척할 때 어떠하셨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배반할 때 어떠하셨겠습니까? 개인으로부터, 형제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보낸 자로부터, 교회로부터, 사회로부터, 국가로부터 배척받을 때, 하나님의 심정은 터질듯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늘이 다시 보내마 하신 예수는 기필코 올 것이며, 오셔서 이 시대를 책임질 것입니다. 끝날을 바라보고 있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시는 그 분을 모셔야 할 공동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분을 모셔야 할 시대는 다가오고 있는데, 어떠한 입장에 들어가야 모실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의 신앙처럼 성경만을 믿다가는 못 모십니다. 예수가 오셨을 때, 구약만 즐겨 믿다가 못 모셨어요. 무턱대고 하나님만 믿다가는 못 모십니다. 구약 때에도 신약 때에도 그러했거늘, 오늘도 그러지 않는다고 누가 단정할 수있어요? 우리는 아들 딸의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식구와 같은 입장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못 모십니다.

이제 역사적인 하나님과 아들 딸의 인연을 맺고 미래적인 하나님의 심정과 인연을 맺는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이러한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 성경 끼고 교회에나 다니면 천당가요? 어디로 가게 되나 죽어보십시오. 저는 가끔 이런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천국 간다고 뽐내던 목사들이 영계에 가서는 처량한 자리에 앉아 있단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큰소리치지 마십시오. 현실의 교회에 치력(置力)한다고 하나님의 아들 딸이 아닙니다. 누구한테 높임을 받는다 하고, 학박사라고 높임받는다 해도 하나님의 아들 딸이 아니예요.

말씀한 바와 마찬가지로 사도마저도 예수의 아들 딸과 예수의 식구가 못된다 했거늘, 땅 위의 그 누가 자칭 예수의 아들 딸이라고, 예수의 형제라고 나설 수 있겠습니까? 사도들이 왜 그런 자리에 서지 못했느뇨. 역사적인 예수를 몰라봤기 때문이요 시대적인 예수를 몰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들이 이런 아들의 입장에 나가려면 6천년의 역사적인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적인 예수를 알아야 됩니다. 27억 인류를 거느리는 시대적인 하나님, 시대적인 예수를 믿어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 시간 이후에 뒤넘어쳐 180도 다른 형태로 벌어지는 미래적인 예수를 믿어야 됩니다. 이런 자리에 주님이 오셔서 그냥 끌고 나갈 것 같습니까? 천만에요. 뒤넘이쳐야 돼요. 말도 다르고 글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릅니다. 요점은 여기에 있어요. 사도 이상의 하나님의 아들 딸, 사도 이상의 제자, 사도 이상의 신부, 사도 이상의 형제의 자리에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7-326
하늘이 찾아 세우려는 예수의 식구
역사적인 예수의 심정을 모르던 그 때의 사도들은 예수를 배반하였습니다.

역사적인 뜻을 가지고 움직이는 예수를 그들은 배반하였습니다. 미래의 뜻을 품고 움직이는 예수를 모르고 배반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배반의 역사를 가로막고 청산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친동생이 되어야 하고,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와 영원무궁토록 같이 살 수 있는 식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거든 예수와 더불어 싸움터에 나가 싸울 수 있는 백성이라도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아십니까? 이 시대의 하나님이 어떤 입장에 계시는지 아십니까?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는 배반의 역사를 되풀이할지도 모를 위험한 단계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찾으셨습니다. 인간 앞에 예수를 보내시고 예수의 동생 될 자, 예수의 식구 될 자를 찾으셨습니다. 하늘은 이것을 바라셔서 4천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요셉 가정은 예수를 사랑하고, 죽든지 살든지 그 뜻과 더불어 살아야 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가 가기 전에 신부급에 도달해 있어야 했는데 못 되었습니다. 그의 동생들 가운데에도 예수가 어디가게 될 때 `형님, 어디 가십니까? 제가 가지요’ 하는 동생이 없었습니다. 요한복음에 어떠했어요? 예수님의 형제들도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했습니다.(요7:1-9). 또 세례 요한은 성령이 하늘에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 그 분의 머리 위에 임하는 것을 보았다고 증거를 하고도 `주여! 어디 가서 어떻게 사시렵니까? ‘ 하고 물어 보았어요? 제자들이 물어 보았어요? 유대교인들이 물어 봤어요? 택함 받았다는 이스라엘 민족이 물어 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말할 수 없는 한을 품고 갔습니다.

이 한을 푸는 날이 끝날이요, 풀지 못한 한을 청산하는 날이 심판날입니다. 심판날에 남아지고자 하는 여러분, 마음을 헤쳐 놓고 냉정한 입장에서 비판해 보십시오. 나는 하늘이 찾고자 하는 그 예수를 찾을 줄아는자가 되었느냐. 예수가 맞이하고자 하는 천국가정, 아니면 그 이념국가의 백성이라도 될 수 있는 자격자냐. 나아가서는 신부, 더 나아가서는 예수의 사랑하는 직계의 아들 딸이 되었느냐. 신부가 못 되면 아들 딸이 되고, 아들 딸이 못 되면 형제가 되고, 형제가 못되면 식구가 되고, 식구가 못되면 종족이 되고, 종족이 못되면 민족이 되고, 민족이 못되면 그 국가의 백성이라도 되어야 할 게 아닙니까? 이런 안타까운 심정을 품고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이신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 우리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고, 또 그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역사노정에 없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약에 없는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신령한 사람들이 체험하지 못하는 사실들을 우리는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목적은 주가 땅 위에 오실 때에 그의 품에, 혹은 그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 살 수 있는 식구가 되고 종족이 되고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기 위하여 모인 무리입니다.

예수 앞에 제일 가까운 자리에 서야 할 사람이 누구뇨? 신부요 형제요 자녀인데, 이를 통틀어 말하면 식구입니다. 예수의 식구인 것입니다. 예수의 식구. 이는 하나님이 고대하던 식구요, 이는 예수가 찾으려 하던 식구입니다. 이 식구를 땅 위에 세워 놓은 것이 역사적인 소원이거늘, 그 소원을 풀기 위하여 우리는 예수의 형제, 아니면 예수의 자녀가 되든지, 아니면 예수의 신부가 되든지, 아들 딸이 되든지, 아니면 적어도 종족권내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14만 4천 무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14만 4천무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불쌍한 하나님, 불쌍한 예수였습니다. 불쌍한 우리의 선조들이었습니다. 죽고 또 죽어갔지만 해원의 한날을 갖지 못한 선조들, 해원의 한날을 잃어버린 이 땅, 해원의 한날을 알지도 못하고 죽으면서 따라나온 선조들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모든 슬픈 사실들을 알아가지고 찾으시던 예수, 세우시려던 예수, 모시고 싶었던 예수를 모실 수 있는 그런 자리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섭리노정을 따라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를 보면 이민족은 불쌍한 민족이었습니다. 불쌍한 이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세계 사조는 이 민족을 걸어 놓고 뒤넘어쳤습니다. 또 오늘날은 기독교계가 이 민족을 걸어놓고 뒤넘어치고 있습니다.

7-328
기도의 순서
우리들의 마음과 몸을 가다듬어 준비해야 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이준비를 하는 데 있어서 자기 개인을 위한 준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영적인 체험을 한 사람들은 기도할 때에 자기를 위한 기도는 맨 나중에 합니다.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 기도하게 되면 누구를 위하여 기도해야 되느냐. 먼저는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주인을 만나는 시간이니, 주인의 복을 먼저 빌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예수를 위하여 기도할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해야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압니다. 예수를 위하여 기도해야 역사적인 예수의 심정을 압니다. 그 다음에는 지금까지 기독교계에서 뜻을 위하여 싸워나온 수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타락 이후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간 걸음 걸음을 더듬으면서 `제가 이들을 해원하는 제물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린 후 선지자들 앞에 `나는 그대들의 한이 땅 위에 남아있는 것을 알고 그 한을 풀고자 하오니 협조해 주시오’ 하면서 눈물 흘릴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후에 사랑하는 아들 딸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다음에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천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는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기 전에 아버지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는 30여년의 생애 동안 `하나님! 얼마나 슬프십니까? ‘하며 하나님을 위안해 드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수많은 선지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대들이 고대하고 그대들이 예언하고 그대들이 약속하였던 대신 존재로서 내가 보내심을 입었으니 그대들이 소망하는 기준에 어긋나지 않게끔 충성을 다 하리이다’ 하고.

그는 역사적인 심정을 가지고 그 시대를 위하여 기도했고, 뜻 앞에 어긋나 있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했고, 뜻을 알지 못하는 유대교회를 위하여 기도했고, 증거하고도 따르지 못한 세례 요한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과 사도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예수는 아직까지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보지 못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나에게서 이잔을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하시던 예수는 소원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간 것입니다.

이 예수가 예수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할 수 있는 날이 끝날입니다. 예수가 자신을 자랑할 수 있는 날이 끝날입니다. 예수의 한이 풀리고 그 심정에 기쁨이 넘쳐 하나님을 위안해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날이 끝날입니다. 예수는 그런 날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들 때문에, 인류 때문에, 하늘 땅 때문에 그러했습니다. 이처럼 불쌍한 예수인 것을 아십시오.

우리의 선조들이 이러한 운명에 있었던 것을 보고도 `나를 구원해 주시옵소서’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여러분의 기도 방식은 어떤지 모르지만 난 그렇게 안 합니다. 불쌍한 민족을 위하여 울었던 선지자들이었습니다. 민족을 위하여 울었던 예수였습니다. 교단을 위하여 울었던 예수였습니다. 그러니 정상적인 신앙노정을 가는 자라 할진대 세계를 붙들고 울고, 하늘땅을 붙들고 울고, 민족을 붙들고 울고, 교회를 붙들고 울고, 자기 식구를 붙들고 울고, 맨 나중에는 `나에게 책임을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해원이 한날, 소원성취의 한날을 갖지 못한 하늘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늘의 뜻을 찾아나간다고 하면서도 하늘의 심정을 알고 그 뜻을 받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이 땅 위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세상에서 아무리 배척을 받고 아무리 불쌍한 자리에 처한다 할지라도, 예수가 알아주는 형제가 되고, 예수가 알아주는 식구가 되며, 예수가 알아줄 수 있는 신부가 되고, 예수가 알아 줄 수 있는 아들이 된다면, 인간으로서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7-330
악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자가 만날 수 있는 예수
`나의 사랑하는 아무개야! 나는 땅 위에서 너와 같은 아들 딸을 찾기 위하여 2천년 동안 수고하였노라. 나의 죽음도 이를 위함이요, 어려움과 고통을 당함도 이를 위함이었느리라. 이제 너를 찾았으니 하늘의 복, 땅의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내 하나님 앞에 기도하겠노라’고 축복해 줄 수 있고 축복받을 수 있는 아들 딸들이 이 천지간에 나타나기를 예수는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 땅 위에 그러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 오마 하신 예수,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예수를 그리는 심정이 사무칠 것입니다. 그는 눈물없이 세상을 바라볼 수 없으며 서러움과 분통함과 억울함에 사무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늘을 보아도 억울하고 땅을 보아도 억울할 것입니다. 하늘땅의 분함을 해원해 드려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도 부족해 하며 주를 부르는 사람이 하늘과 가까운 자일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게 될 때에, 그 어머니가 가슴을 치고 울며 따르던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예수, 오늘도 나를 위하여 수고를 거듭하고 있는 예수를 생각할 때에, 눈물이 앞을 가리고 뼈 살이 에이는 듯하고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은 심정에 사무쳐서, 보는 것마다 느끼는 것마다 `황공하옵니다. 죄송합니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에 사무쳐 사는 사람이 이 땅 위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예수가 `민족의 죄가 있으면 나를 제물로 용납하여 주시옵고, 세계의 죄가 있으면 나를 제물로 하여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하며 하늘 앞에 섰던 것과 같이, 예수 앞에 그렇게 설 수 있는 형제가 나타나기를 지금까지 고대하고 계신 하늘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하늘은 식구들과 즐거워하는 예수의 모습을 보고 싶으신 것입니다. `오 사랑하는 신부여, 사랑하는 내 아들 딸아, 사랑하는 내 형제여, 사랑하는 내 친척이요! 내 소원을 성취하였으니 기뻐하자, 하늘과 더불어 기뻐하자, 땅과 더불어 기뻐하자, 역사와 더불어 기뻐하자, 시대와 더불어 기뻐하자, 미래와 더불어 기뻐하자, 하나님 축복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그 자리가 예수님은 그리운 것입니다. 그것을 찾기 위하여 땅 위에 오셔야 하는데 오지 못하고 영계에서 기도하고 있는 예수의 안타까움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분은 남이 아닙니다. 나를 위하여 수고하셨고, 나를 위하여 억울함을 당하셨으며, 나를 위하여 죽어 가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타락한 인간들도 자기형이나 동생을 위하여 피눈물을 흘리고 통곡할 줄 알거늘, 하늘의 왕자가 이 땅 위에 와서 천하고 천한 족속들을 붙들고 동생 삼기 위하여 죽어갔는데, 울 줄 모르는 자, 통곡할 줄 모르는 자가 사람입니까?

예수는 언제 와서 `사랑하는 나의 신부여, 사랑하는 내 아들 딸아, 사랑하는 형제여!’ 하면서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 것인가. 그것을 풀어야 하늘의 소원, 예수의 소원, 인류의 소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의 식구가 있다 할진대, 그는 세상에서 고립된 자일 것입니다. 하늘의 아들 딸이 있다 할진대, 그들은 악한 세상에서 미움받는 자들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수의 나라, 사탄의 도성을 궤멸시키기 위한 책임자로 나타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의 핍박을 받을 것이요, 사회에 나가면 사회의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가 그러하고 하나님이 그러하고 하늘을 위하여 죽어간 사람들이 그러했기 때문에, 역사적인 슬픔의 고개가 우리 앞에도 있는 것입니다. 그 고개를 넘고 나서 모실 수 있는 예수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그런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과 친구하기 위하여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외면하고 예수를 죽인 가책을 느껴 `오! 주여 황공망극하옵니다’ 할 수 있고, `역대의 선조들이 피 흘리고 간 역사적인 터 위에, 미래의 행로에 가담할 수 있는 영광을 내게 부여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할 수 있는 무리, 그럴 수 있는 교회, 그럴 수 있는 민족, 그럴 수 있는 국가, 그럴 수 있는 세계를, 예수는 그리워하시며 찾아오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정을 지닌 여러분도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데 뼈살이 녹아나거늘, 천정을 대신하여 찾아왔던 예수의 심정이야 어떠했겠느냐? 여러분,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사랑한다고 하는 정적인 인연과, 하나님과 예수와 나 사이의 인연을 비교해서 하늘과 예수와 나 사이의 인연이 더 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7-332
역경은 하늘의 은사가 찾아오는 터전
심정의 세계는 역사적인 거리를 초월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거예요. 어떤 권한이나 아무리 무서운 세력도 그 정적인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태산으로 막고, 혹은 온 하늘 땅을 들어 막는다 해도 그걸 막아낼 수 없습니다. 그 심정을 왕래하는 데는 장애물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심정의 주인공은 예수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맨 나중에 남을 것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와서 심정의 세계와 더불어 살아 왔기 때문에 오늘날 예수의 세력은 확대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심정에 심정을 연하여 그의 마음이 내 마음이요 내 마음이 그의 마음이다, 그와 나는 영원히 이별할 수 없고, 세상적인 어떤 조건도 그와 함께 넘어설 수 있다 하는 무리가 되어야만 예수의 제자가 되고 예수의 식구가 됩니다. 초대교회시대에 예수의 제자들을 식구의 자리까지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그 한계선을 자유자재로 늠름히 넘어설 수 있고 어떤 고개도 모두 넘어서서, 예수를 위하여 나설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느냐 하는 이것이, 지금 이 시간에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우시려는 예수는 어디로 갈 것인고. 하나님이 땅 위에 보내 세우시려던 예수는 어디 가서 설 것인고.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설 자리가 없습니다. 땅 위에 와야 할 예수인데, 올 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와서 일을 해야 하는데 동료가 없습니다. 또 잡아죽일 것입니다. 또 십자가에 몰아낼 것입니다. 또 또 속썩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구의 심정을 통하고 자녀의 심정을 통하고 신부의 심정을 통해야 합니다. 그리움에 사무쳐야 됩니다. 약속의 날이 있으니, 그리움에 사무치고 미칠 듯한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생활 감정을 억누르고 어떤 의식이나 관념을 초월하여 나를 무한히 한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어떤 힘을 체험한 사람은 기필코 천상세계에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는 2천년 전에 왔습니다. 땅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난 사람은 누구입니까? 만났다면 자기 개인을 중심삼은 예수는 만났을는지 모르지만 개인을 넘어서 가정, 가정을 넘어서 사회, 국가, 민족, 세계, 하늘 땅을 통치할 수 있는 예수를 만난 사람은 없었단 말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심정에 사무쳐야 합니다. 심정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는 해결할 도리가 없습니다. 만일에 그러한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 할진대, 여러분의 심정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있다 할진대, 그것에 끌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갔다가 괴로와 발버둥치고 나온 사람이 있다 할진대, 거기는 다시 가지 마십시오.

우리의 마음은 찾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전파도 아무곳에서나 작용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수신기가 있는 곳에서만 작용하는 것입니다. 상대기준이 있으면 어디서든 작용을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참다운 양심과 참다운 심정적인 기준, 하늘의 심정적인 터전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은 어디 가든지 어느 때든지 억울하고 슬픈 자리에서도 자기도 모르게 살 길이 생깁니다. 오해받는 자리에서도 살 길이 생겨요. 그 살 길은 좋은 자리에서는 그렇게 많이 안 생깁니다. 역사적인 혁명, 역사적인 발견, 역사적인 성공을 했다는 사람 가운데 평탄한 자리에서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과 직면한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런 자리에서 여러분을 찾아오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사람이 하늘 앞에 서려면 반드시 곡절에 부딪칩니다. 물질적인 곡절과 인간을 중심삼은 사정과 심정적인 곡절에 부딪칩니다. 거기에서 뒤넘어쳐 가지고 내 갈 곳이 이곳이라고 부르짖고 나가게 될 때에, 수많은 사정과 곡절에 부딪쳐 허덕이는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는 대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랬습니다. 목수인 요셉의 일을 협조해 주면서도 편안한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심정은 무한한 곡절의 노정을 거쳐 왔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이요 시대적이요 미래적인 노정에서 인류가 지나온 고비 고비 골짝 골짝을 그 마음속에서 뒤넘어쳐 넘었고, 사탄과 판가리싸움에서 승리한 기준을 세웠기에 메시아라고 주장하고 나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7-334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의 가치
심정세계에서 하늘의 심정은 영원히 차이가 없습니다. 알파요 오메가라고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사랑의 실체, 사랑의 중심 존재이기 때문에 알파와 오메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시작과 끝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정적인 세계를 향해 나가는 복귀섭리 노정에서 역사의 배경을 파고 들어가 `하나님의 심정이 여기 숨어 있구나. 오! 이 길이 우리 민족의 갈 길이다’하고 부르짖고 나설 수 있는 주의가 민족을 살릴 것입니다. 세계 역사의 배후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심정을 찾아가지고, 이것이 세계 인류가 살 길이라고 부르짖고 나서는 자가 있으면, 그는 세계 인류의 살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자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천상천하, 하늘과 땅, 영계, 전체의 심정이 이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분은 다시 오실 주님일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 땅의 개벽과 재창조, 완성의 역사는 벌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세계를 찾아 나가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요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런 길을 가야 할진대 여러분 자신은 심정의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최후에는 심정의 방향을 정해야 돼요. 세상의 그 무엇을 사랑하는 이상, 하나님을 사랑할 줄 알고, 예수를 사랑할 줄 알고, 예수가 사랑하는 세계를 사랑할 줄 알고, 예수가 사랑하는 민족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보다 큰 것을 사랑하고 난 후에 남음이 있거든 자기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반대입니다. 나라야 망하든, 세계야 망하든, 하늘이야 슬퍼하든 내 아들 딸과 나만 망하지 않으면 된다. 이것은 거꿀잡이예요. 거꿀잡이.

예수는 이것을 끊어버리기 위해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습니다. 공적인 뜻을 위해서는 사적 감정을 버려야 합니다. 가정보다도 자기가 소속된 단체를 위하여 움직이는 사람은 그 단체의 충신입니다. 나아가서 그 단체와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면 그는 국가의 충신입니다. 또 국가를 넘어서 세계의 공적인 이념을 위하여 죽는 자가 있다면 그는 국가의 역적이 되고 반역자가 될는지 모르지만 세계의 충신입니다. 더 나아가서 세계를 넘어서 하나님을 위한 길을 가는 자는 최대의 충신입니다. 예수가 그러한 대표자입니다.

인간 앞에 부여된 행복의 최대의 기준은 하나님의 참다운 종이 되고 참다운 충신이 되고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되는 것입니다. 고맙고 황공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알고 있었습니까? 여러분은 하늘이 인정할 수 있는 충신, 효자, 열녀가 되었습니까? 내 가정, 내 국가, 이 세계를 밟고 올라가서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가는 데는 늠름히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렇게 갔습니다.

내 가정이 반대하면 가정을 뚫고 나가고, 민족이 반대하면 민족을 뚫고 나가고, 국가가 반대하면 국가를 뚫고 나가고, 세계가 반대하면 세계를 뚫고 나가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악령이 반대하면 그것도 뚫고 나갈 수 있는 사무친 심정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그 심정 앞에는 사탄의 철망도 자연히 걷히고 마는 것이예요. `아버지시여! 누구보다도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 세계 어떤 인류보다도 더 사랑합니다. 예수가 사랑하던 것과 같이 나도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할 수 있는 아들 딸이 신부가 됩니다. 그런 아들 딸들이 나오면 예수가 `야, 이놈아, 네가 왜 그러니?’그럴 줄 알아요? 아닙니다. 그러한 아들 딸들이 나타나기를 2천년 동안 고대하셨습니다. 그러한 식구, 형제, 그러한 자녀를 그리워하고 땅 위에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하여 허덕이는 사람이라야, 찾고자 하시는 예수를 세울 수 있는 백성이 되고, 식구가 되고,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도, 사랑의 심정을 갖춘다면 이룰 수있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사랑은 온 하늘 땅의 어떠한 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준 손수건 하나는 억천만금과도 바꾸지 않으려 합니다. 수는 적더라도, 심정을 통할 수 있고, 예수의 골수까지 움직일 수 있고, 예수가 바라는 소망의 세계를 포괄하고도 남음이 있으며, 하나님을 안식시켜 드릴 수 있고 나란히 엎드려서 경배드릴 수 있는 아들 딸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예수와 더불어 하나님 앞에 경배드릴 수 있는 식구를 예수는 그리워하셨고, 땅 위에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해 2천년 동안을 싸우셨으며, 인간들이 그 예수와 더불어 사는 것을 보시기 위하여 하늘이 예수를 찾아 세우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이 목적을 위하여 사무치는 심정으로 개인을 넘어 민족의 한을 밟고 세계의 한의 고개를 넘어서 하늘과 인연을 맺겠다는 불타는 심정이 자동적으로 폭발되는 존재가 되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예수를 올바로 모실 수 있으며, 찾으시려던 예수로서 세울 수 있느냐 없느냐를 좌우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7-336
기 도
아버지시여! 황공하옵니다. 가면 갈수록 부족한 자신임을 발견하고 맺혀진 하늘의 한에 대해 눈물로 통곡하며 살아야 할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천정은 천정대로 남아 있고, 민족의 심정은 민족의 심정대로 남아 있는 채 서로 싸우고 뒤넘어치는 생애노정을 거쳐온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인정을 넘어서 천정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인연을 예수가 와서 세운 것을 알았사오니, 그 인연을 찾아 헤맬 수 있는 예수의 참다운 제자, 참다운 식구, 참다운 자녀, 참다운 신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러해야만 하나님이 세우시려던 예수를 세울 수 있고, 예수의 역사적인 원한도 풀 수 있고, 역대의 우리의 선조들이 범한 과오도 우리 일대에서 청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러한 입장에서 예수를 모시고 살 수있는 하늘의 식구들이 되게, 하늘이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시여, 마음에 느낀 바가 하늘로부터 시작하였거든 영원히 마음에서 사라지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뇌수에서 사라지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생명력이 사라지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필코 가야 한다면 시간과 모든 것을 초월하여 종적으로 지배하여 주시옵고, 통할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말씀과 더불어 길이 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승리를 위한 싸움노정에서 저희들이 보조할 맞출 수 있고 노력하고 충성을 다 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