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H of May 9, 2012


HDH of May 9, 2012
Cheon Jung Gung

Korean Transcript:

한국 청평
다음은 아버님 말씀의 일부분입니다.
(임도순 회장 성화 휘호 하사하심) 하늘땅이 정한 거예요. (박수) 영계 가게 되면 총 전체가 회합할 얘기야. 그게. 고생도 많이 하고 가정 전체가 중천지에 대표적인 가정이에요. 깨끗이 하나도 남김없이, 자기 자랑을 남김없이 가정 전체 끝까지 가면서 누구 가까운 자리에서 도와주지도 못했습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엄덕문이든가 누구든지 여기 집을 지으면 안 된다는 몇인가? 둘레 가까운 깊이에 땅을 메워가지고 내가 기둥을 세울 때 내가 책임자로 기둥을 세우는데 세워서 수택리 수련소 지었고 청평수련소를 지었고, 지금 오늘은 뭐냐면 내가 돌아와서 모든 거 다 끝났습니다. 이제는. 어제까지.
오늘은 우리 신준이 생일이라지?「예. (어머님)」이날에 아이들이 밤에 화합의 기념날로 부모를 모시는 기념날로도 정해가지고 어디 갈 곳도 내가 정해 주고 기다려서, 오늘 밤이지?「예. 저녁. (어머님)」
이때에 지금 내가 얘기할 때는 모든 통일교회 부모님을 잘 믿고 반대하던 사람도 다 갔어. 요전에 우리 삼촌 어머니 갔다는 얘기도 듣고, 내가 거문도 있다가 돌아오면서도 원전이 어떻게 되었나 알아도 보지 않고 그러면서, 어저께는 흑석동에 있는 우리 외사촌 누님이 되는데 동생이 나서, 아마 그도 내 뒤에 따라와서 얘기하려 할 때 가정적 말은 지금 내 돌아가는 이 길 앞에선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아마 어머니의 건강 때문에 그런다…. 알아봤나? 모르지?「새벽에 전화를 받았는데, 어제 아버님 뵙고 가서 아버님 말씀을 전했더니 원기가 훨씬 돌아오셔서 또 오랫동안 더 사실 것 같다고 그럽니다. (김효율)」
지금 친척 가운데는 제일 가깝고 제일 속살로도 믿고 보호해주는 누님입니다. 내가 20대부터 그 남편 가정들이 일본 탄압 때 참 극단적인 어려운 자리에 몰려가지고 만주로 시베리아 벌판으로 가는데 자기 혼자 남아가지고 형제와 가까운, 나밖에 없어요. 어려워도 나를 붙들고 한 20년동안 결혼하고 만주에서 20년 가까이 돌아올 때도 자리를 못 잡고 어려운데 내가 도와주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요전에 내가 효율이한테 얘기 했지만, 집이라도 사주고 이럴 수 있는 것 못하니까 돌아올 때 푼전 달달마다 백만원 2백만원 좋지만 협회에서 공식적인 2천만원을 떼주라고 했어요. 가정에 대한 책임을 나 어느 가정 하나도 못했습니다.
임도순이 요전에, 물론 선생님의 아들딸도 있었지만 여기에 원필이 가는 것도 내가 여기 있으면서도 돌아가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영전에 대한, 원필이에 대한 내가 무엇을 써줬던가. 인사도 못하고 보낸 거 마음에는 걸려요. 참 가까운, 그래도 박보희와 더불어 동창생이고 충청남북도가 개척할 때 우리 통일교회가 책임을 지고 개척을 했고 농도원 일도 전부 다 개척, 이런 사람들이 뒷바람이 되어 도와준 그 사실을 잊을 수 없어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오면서 저 테이블에서 빨리 한 마디, 어머님이 상당히 심명옥이 사랑했습니다. 어렵더라도 누구 믿을 수 없으니 그 가정을 믿고 이래라 저래라, 남미로 가도 어디를 가든지 배후에서 염려해주는데, 오늘도 각별히 여기 떠나기 전에 아버님 앞에 얘기하여 어려운 것이 이 양반이 갔으니 뭘 한 자 써 줘야 되는데 훈독회 시간 가기 전에 내가 안다구. 나중에 보자고 그래가지고 적어줬어요.
그러니까 이게 천력 중에 ‘천기 3년’이라는 말 쓴 것도 새로운 시대에 전환시대에 맨 첫 가정이 되었기 때문에 축하 조국광복 필승 대표자 임도순 만세. 휘이익!(휘파람 부심) 자 그랬으니 나는 뭘 해야 돼? 내가 거기에 참부모와 통일교회 일동 해가지고 문선명 이름 쓰고 축화. 화할 때는 이 화자 쓴 것이 아니야. ‘화합 화’자. 우리는 하나 되어서 이룬 것을 선생님과 같이 일동이 되어서 축화하자. 하나되어서 화합하자. 그런 뜻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표정이 영계 전체가 총괄을 열어서 축하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 이런 긴장한 시간이 되는구나. 저런 돌아간 다음에 축화 글을 남긴 것이 처음입니다. 알겠어요? 돌아가는 마지막 길에 내 가정을 중심삼고 이 시대에 있어서 참부모와 통일교회 가정 일동입니다. 그리고 문선명. ‘축’자가 끝이 아니야. 언제나 화하는 거예요. 친화(親和). ‘배 화’자입니다.
창조하더라도 조가 여기 화합할 수 있는, ‘될 화(化)’자가 아니에요. ‘배 도(도)’ 변에 ‘입 구(口)’. 밥 먹는 영계에서도 먹고 살아야 일동이 이런 축하할 수 있는 기념날로 삼게 하기 위해서 저런 내용을 쓴 것도 아시고 이것은 여러분들의 필승의 내용이야. 돌아갈 때도 저런 것을 대표로 써 준 것으로 알고 그 세계에 같이 들어가 협조해야 되겠다는 공동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선생님도, 선생님이 돌아가더라도 저런 말을 붙일 수 없습니다. 그걸 알고 오늘 이걸 짓는데 축하의 마음을 가지고…. 선생님도 갈 날이 가까워 왔어. 제일 가까운 축하의 하나의 기념날 된다 하는 마음 가지고 지내주기를 바래요. 아시겠어요?「예.」
그 생애 비참했습니다. 누가 도와주지를 않았어. 그걸 알고 우리 가정도 그 뒤를 따라가는데 참부모와 통일교 가정 일동 문선명, 축하라는 것은 나만의 축하가 아닙니다. 늘상 같이 할 수 있는 축하에 여러분 가정도 그렇게 지내기를 바라면서 저런 글을 남겼다는 것을 기억해주기를 바래요. 알겠어요?「예.」
저와 같은 가정 뒤에 남길 것은 여러분 식구에요. 가정 식구입니다. 그렇게 알고 마지막 끝 맞는데 새로운 출발하는데 저 말씀을 믿으면서 여러분들이 일실에 대신 표어를 우리 대신 보냈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내면 여러분 가정에도 좋을 거예요. 아시겠습니까?「예.」박수로 환영해요. (박수)
우리 엄마 미안해요. (어머님 손을 잡으심) 그동안 많이 심명옥이를 돕고 싶은 마음도 못 도와줬습니다. 그렇게 알고 기억에 남기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선생님도 갈 날도 멀지 않았어요. 그걸 알고 여러분 가정을 잘 단속해주기를…. 참부모와 통일가정 일동 문선명 축하에요. ‘같이 하나되어 기념하자. 하는 뜻입니다.’ 심각한 내용입니다. 그렇게 기억해주기를 바라겠어요.
전선자가 여자 대표 한 마디 해야 되겠네. 빠지니 안 됐어. 노래든가 한 마디 해봐요. 너도 불쌍한 여자 아니야? 통일교회 불쌍한 여자야. 끝까지 혼자 남아서 여자를 대신해서 가정도 어렵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복잡한 걸 두고 자기 혼자 이런 기반을 닦아, 그래 임도순이와 내적으로 가까울 수 있는 사연이 있기 때문에 여자 대표한 대표로서 한 마디 하고 추모의 날로 남기는 것이 좋겠어요. 얘기.
(전선자 간증) 우리 가정들 하나로 모으고 또 어떻게 해서든지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무척 노력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자리를 지금은 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