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 to 4-89: 오! 아버지여 어서 오시옵소서

오! 아버지여 어서 오시옵소서
1958.03.09 (일), 한국 전본부교회

4-64
오 아버지여 어서 오시옵소서
에베소서 1:15-23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들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이 천태만상이오나, 저희들의 생활 가운데 아버지의 성품이 나타나게 하시고, 아버지께서 동하면 저희들도 동할 수 있고, 아버지께서 정하면 저희들도 정할 수 있는 의의 실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연약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무릎을 끓고 천성을 향하고 있는 것을 아버지께서 아시오니, 비록 저희들의 몸이 속된 데에 사로잡혀 영원하신 아버지의 은사를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저희의 몸이 속된 바의 모든 것을 굴복시키어 당신의 형상을 저희의 마음 몸을 통하여 나타내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또 그러한 섭리의 뜻과, 섭리의 은사와, 섭리의 사랑이 저희들에게 연하고 있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몸으로 감지할 수 있게, 아버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은 오늘도 절대적인 선을 향하여 달리고 있사옵는 데, 몸은 속된 것을 취하려고 마음을 대해 끊임없이 반격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옵니다. 그러하오니, 아버님, 저희의 마음 몸이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와 저희와의 심정의 간격을 타개하시어서 사탄이 운행할 수 있는 발판을 저희 몸마음에서 완전히 제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은 오늘날까지 저희의 마음을 중심삼은 몸을 붙안고 사랑하고자 원했사오나, 아직까지 충정어린 아버지의 성상과 형상 앞에 완전한 미의 대상체로 나타나지 못하고 있사옵나이다. 이것이 역사적인 서러움이요, 탄식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앞에 무릎 끓을 수밖에 없는 몸 마음이요, 죄악에 물들었던 몸 마음이요, 아버지의 충만한 은사를 바라는 부족한 몸 마음이오니, 이제 저희들, 가진 것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몸 마음 전체를 아버지께서 붙들어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것이 저희의 것이 아니옵고 아버지의 것이었사오니, 아버지께서 함께하여 주시옵고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의 성상 앞에 기쁨을 돌려드리고 아버지의 마음에 호응하는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제 저희들, 아버지께서 6천년 동안 소원하시던 그 소망의 기준을 갖추어 아버지의 존전 앞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게 허락해 주시고, 아버지께서 안식하실 수 있도록 당신의 성상을 나타내드리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주의. 주장과 인간이 갖고 있는 권리, 이 모든 것은 없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하오니 저희의 마음과 몸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근본 입장에 들어가 새로이 폭발되어 오는 힘과 부활의 눈을 저희의 마음에 갖출 수 있게 하시고, 자신을 중심한 생활을 버리고 천주를 중심한 생활로서 돌이켜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로 하여금 민족을 대신하는 개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세계 인류를 대표하고 온 피조만물을 대신하는 대표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머리를 숙여 경배함으로 말미암아 6천년 동안 사무쳐 있던 원한의 그 심정을 풀어드릴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아버지께서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날 아버님의 존전이 그리워서 모인 수많은 제단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불쌍한 자리에서 탄식하고 있는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이 민족이 설사 아버지의 뜻을 모르고 사망권에 사로잡혀 있더라도, 생명의 제단에 속해 있는 무리들도 많사오니, 아버지, 그들에게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승리의 한 동산을 건설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룸으로써 만우주가 기뻐할 수 있는 한날이 어서 속히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의 모든 것을 다 드리오니, 아버지, 기쁨으로 받아 주시옵고, 아버지의 것으로 다 주관하시옵소서. 이 시간 전하고자 하는 말씀을 중심삼고 재창조의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고,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둘이 되지 말게 하시옵소서. 저희의 몸을 중심삼은 천륜의 뜻이 급하다는 것을 알았을진대, 저희의 마음이 자동적으로 움직여 아버지의 뜻을 효율적으로 이루어 나갈 수 있게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아버지의 심정을 내 심정으로 체휼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맡겼사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4-66
말 씀
오늘 여러분 앞에 말씀드리고자 하는 제목은 ‘오, 아버지여! 어서 오시옵소서’입니다. 이런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4-66
본연의 에덴동산과 하나님
타락이 없는 동산은 하나님이 만물과 더불어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는 동산이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롭게 찾아가서 의논할 수 있는 동산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동산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을 위하여 지은 모든 피조만물도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영광의 동산이요,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의논할 수 있는 기쁨의 동산입니다. 그런데 타락이라는 명사가 생겨난 그 날부터 하나님을 대할 수 없는 인간이 되었고, 하나님과 함께 즐길 수 없는 만물이 되었다는 것을 또한 우리들이 잘 아는 바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길이길이 같이 거하시기 위해서 인간을 만물의 중심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피조만물이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모든 피조만물이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드릴 수 있어야 했는 데, 그런 피조동산이 되지 못한 연고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는 날을 역사의 종점으로, 하나의 소망의 표준으로 세워 놓고 섭리해 나오시게 되었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새로이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의 혈통을 받은 오늘날의 수많은 인류와 타락의 종족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러분이 찾고, 그리워하며, 흠모하는 그 이상의 동산은 어떠한 동산일 것인가? 그 동산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동산이요, 창조주를 모셔놓고 그 창조주의 기쁨을 내가 같이 느낄 수 있는 동산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기쁨을 우리 인간들을 통하여 만물에게까지 전달해 줄 수 있는 동산인 것입니다. 그런 동산이 되지 않는 다 할진대 하나님의 모든 창조의 이념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요, 인간이 역사과정을 걸어나오며 받을어온 섭리의 뜻도 실패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을 바라보고 나오던 만물마저 탄식권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뼈저리게 느끼는 한날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내 마음이 이런 심정에 동하고 내 몸이 이런 느낌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늘을 향하여 창조주의 모습을 그리워할 수 있고, 만물을 대해서 본연의 미를 갖춘 자체가 되어야만 아버지가 운행할 수 있는 부활된 실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창조주와 온 천주의 피조물 앞에 자기 자체를 드러내놓고 분석할 수 있는 한 시간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한 시간이 없다면 하나님의 심정이 여러분이 몸에 스며들 수 없을 것이요, 만물의 탄식이 여러분을 통화여 해원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래, 하나님을 모셔놓고 살아야 할 인간이요, 하나님을 모시고 즐거워해야 할 만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인간은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 우리를 주관해야 할 주인공을 잃어버린 상태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고아와 같이 불쌍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그 순간부터 우리들은 새로운 섭리의 뜻을 찾아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인간들이 옛날 에덴에서 잃어버린 창조주를 우리의 아버지라 부르고, 에덴에서 잃어버린 선의 동산이 원래 우리가 살아야 할 생활환경이라고 느낀 때가 있었던가. 오늘날까지 수천년의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그런 때가 아직까지 인간 세계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4-68
인간의 사명
오늘날 우리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는 절대 유일한 하늘의 선을 대신할 수 없고, 우리들이 아버지를 감히 대할 수 없는 타락된 죄악의 후손인 것을 인식한다 할진대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일으켜 세워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찾아드려야 하겠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리고, 다 희생시키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들의 선조가 바라던 이념의 주인공인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여러분의 생활권내에 나타낼 수 있어야만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 나타내고, 만물 앞에 나타내는 그날을 갖지 못한다 할진대는 선조들이 역사노정에서 지금까지 걸어왔던 섭리의 노정은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잠자는 마음을 일으켜서 무엇을 해원해야 할 것인가, 몸을 일으켜 무엇을 향하여 달음질쳐야 할 것인가. 오로지 에덴에서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 대하여 가지셨던 간절한 마음을 해원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대해 창조의 미를 느끼면서 인간 대하여 즐거워하시려던 그 아버지의 심정을 실체적인 시간권내에서 여러분이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러한 마음이 없다 할진대는 아무리 역사적인 종말시기에 그 이념의 동산이 온다 할지라도, 아버지가 이 땅 위에 다시 현현하는 날이 온다 할지라도, 여러분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과 나 사이의 간격을 누가 좁혀 줄 것이며 이러한 원한의 구렁텅이를 누가 청산해 줄 것인가. 이것이 역사적인 탄식이요 원한이었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나와 하늘 사이의 간격을 누가 만들었는 가.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인한 죄악의 혈통이 이것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밟고 올라가 하늘의 혈통을 받음으로써 몸 마음에서부터 하늘과 관계맺어야 하고, 자신을 중심삼은 가정과 사회·국가·세계·천주를 하늘과 관계맺게 해야 할 사명이 여러분 앞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해 보게 될 때, 스스로 천륜 앞에 죄의 혈통 물려받은 모습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지금까지 탄식하신 이유이며, 만물이 탄식한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러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수고의 역사를 거쳐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을 걸어놓고 내적인 모든 담을 밟고 올라서서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었던,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형상을 대신하여 `아버지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과 복귀의 인연을 맺어 잃어버렸던 이상의 동산을 찾아나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복귀하여 옛날에 타락하지 아니한 아담 해와를 대하던 그 기쁨의 동산을 건설하고 하늘의 기쁨을 기점으로 하여 세계적인 이념을 창건하기 위해 섭리하시는 역사가 구원섭리역사요, 오늘날 우리들이 걸어나가야 할 복귀역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복귀의 노정을 걷고 있는 여러분이 자기 한 자체를 천륜의 노정 앞에 냉정히 세워놓고 비판하여 보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는 가, 어떠한 입장에서 허덕이고 있는 가를 반성해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 위치와 방향을 인간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인륜을 대표하는 종교가 세워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앙이란 명사를 세워 역사과정에 종교를 중심삼아 인간을 찾아나오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까지 하나님은 쉴 사이 없이 인간세계에서 인간과 같이 살기를 원하여 수고해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신이신 연고로 시간적인 거리를 초월한 심정을 갖고 오늘날까지 인류를 찾아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의 하나님은 자신을 배반하였던 인간들을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여 찾아 나오셨으나 그 하나님을 맞이한 인간들은 많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우리는 타락의 후손된 입장에서 마땅히 하늘 앞에 채찍을 받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섭리를 맡아오는 수고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내 한 자체는 일개인이요 삼천만 가운데의 한 사람이로되, 내 한 개체가 하나님을 모실 수 있고 하나님을 이 땅에 임재케 할 수 있는 자녀가 된다 할진대는 , 삼천만 이상의 가치를 가진 존재가 될 것이요, 24억 인류 전체 이상의 가치를 가진 존재가 될 것입니다. 또한 피조세계에 있는 피조물 전체 이상의 가치적 존재가 될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모습의 우리를 대하고 싶으셔서 수고하여 오신 아버지이심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70
인간과 하나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심정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자신에게 있는 중요한 부분의 가치를 망각하고 살 때가 너무 많습니다. 역사노정을 거쳐서 찾아오신 하늘이 항상 내 주위에서 운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또 내 생활환경에 하늘이 거하시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 여러분은 역사적인 노정앞에, 시대적인 섭리의 뜻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할 것입니다.

천륜의 뜻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할 인간들인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섭리의 뜻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위신과 품위를 망각하고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괴로운 심정을 여러분은 느껴야 되겠고, 또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염려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이러한 창조주를 우리의 신앙의 주체로 모시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을 중심삼고 믿고 있다면 그는 하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개체를 본다면 24억분의 1에 불과한 인간이지만, 하늘은 온 천주를 대신한 가치의 존재로서 우리를 믿으려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려 하시고, 우리와 더불어 살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오늘날 인간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무한대의 소망을 갖고 나를 대하시는 데, 나는 한계적인 소망을 갖고 하늘을 대하고 있으니 이 한계적인 소망과 무한대의 소망의 차이를 해소시키는 일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 이 차이가 크면 클수록 내 일신에 대해 사탄이 하늘 앞에 참소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와 같은 몰림 속에, 역사적인 죄악권내에 들어와 있는 자신들을 인정하여 천륜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회개의 심정을 가지고 자신이 다시 빚어질 수 있는 하나의 흙과 물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자기가 가진 주장 때문에 천륜을 도외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움직이고 저지르는 것이 한개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민족, 혹은 전세계 혹은 온 천주에까지 연결된다는 이 한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일을 하늘은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오늘날 여러분이 맡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처해 있는 입장에서 그 일을 맡아 섭리의 뜻 앞에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우선 하나님의 소망의 기준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창세 당시에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즐거워하시던 그 아버지의 심정을 알아야 되겠고, 창조해 놓으시고 즐기시려던 창조의 이념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심정으로 이 세계를 창조하셨는 가? 하나님이 무한히 믿어줄 수 있는 만물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 무한히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지으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구태여 신앙이란 명사가 필요없는 일체적인 이념권내에서 그와 우리가 몸과 마음의 관계와 같은 불가분의 일체성을 갖추어서 수많은 세월이 지나가도 하늘을 대해 변함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일체적인 입장에 서서 믿음이라는 명사까지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인간을 믿어주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원히 믿어주고자 하시려던 하나님의 그 마음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또 인간에게 영원한 당신의 생명을 주입시켜 영생불사의 모습으로 이 땅 위에 세워 놓고자 원하셨으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영원히 하나가 되어서 일체적인 이념에 젖고 온 피조만상이 화동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터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이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하나님의 생명의 흔적이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어릴 수 없게 되었고 우리들의 선조는 하나님의 창조이념의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4-72
인간타락의 결과
그런데 인간만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피조만물까지도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권 밖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움직임을 만물에게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미의 자극적인 충동을 나타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을 중심하여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는 참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인간 시조가 하나님을 모시고 참부모가 되어 살았던들 그 자녀들은 영원히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가정적인 이념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후손들은 타락한 부모의 혈통을 받아 사탄을 하나님 대신 모시는 생활을 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바라신 선의 동산을 우리의 선조들이 깨뜨린 연고로 후손인 우리들은 그 죄의 유업을 받아서 죄의 침범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믿어서는 안 될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가져서는 안 될 즐거움을 가지게 되었으며, 해서는 안 될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 한 자체를 생각해 보면, 나는 하늘이 믿지 못할 나요, 하나님이 대할 수 있는 생명체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랑의 심정을 지니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타락의 부모를 가진 후대의 인간들은 본연의 동산, 영원한 천국 세계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즐거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갖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권내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즐겁게 살아야 할 인간들이 그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세계가 죄의 세계가 되어 인간들은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고, 가져서는 안 될 생명을 가졌고, 해서는 안 될 사랑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와 같이 믿지 못할 세계가 됨으로 말미암아 믿지 못할 노정이 남게 되었는 데 이것이 영계의 지옥이요, 지상의 지옥인 것입니다.

이러한 두 세계의 모순된 입장이 오늘날 나를 걸어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지옥의 불신이 나를 대해 호소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대해 호소하고 있습니다. 즉 한편에서는 세상의 사망의 사랑권이 나를 대해 호소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나에게 영원한 신앙을 갖기를 호소하고 있으며, 영원한 사랑을 갖기를 호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처한 자신인 것을 여러분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이 몸뚱이는 하나님의 탄식권내에 있는 만물을 섭취하며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탄식권내, 즉 죄악권내에 있는 내 몸 자체를 분석해 보면, 선의 요소보다도 악의 요소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 전체적인 생의 노정에서, 신앙의 노정에서, 사랑의 노정에서, 이 악이 더 강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가 이 피조세계를 지으신 목적은 인간을 중심삼고 이루어질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마음속 깊이 느껴지는 어떠한 상처, 어떠한 굴곡이 여러분에게 부딪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살인강도라 할지라도 자신의 악한 행동에 대해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천륜의 법도가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천륜의 법도를 어기고 타락했을망정, 그 천륜의 법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천륜의 법도를 어기고 악한 일을 했을 때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이 땅의 어떠한 것도 믿을 수 없고, 땅 위의 어떠한 생명도 의지할 수 없고, 땅 위의 어떠한 사랑도 느낄 수 없어 만우주를 대해 탄식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믿어줄 수 있고, 내 마음이 영원히 즐길 수 있는 사랑을 갈구하면서 울며 탄식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선의 뜻을 위하여 염려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선과 악의 수효를 비교해 보면 악이 선에 비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효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인류의 서러움을 대신하여 선을 찾기 위한 간절한 서러움에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를 믿어주어야 할 하나님께서 믿어주지 못할 입장에 계신 그 서러움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본래는 믿어주어야 할 인간이었고, 사랑해야 할 인간이었고, 하나님의 생명체가 되어야 할 인간이었는 데 그 인간을 믿을래야 믿을 수 없고, 생명을 같이할래야 같이할 수 없으며, 사랑을 같이할래야 같이할 수 없게 된 이 서러움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4-74
생명의 인연, 사랑의 인연
여러분은 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슬픔이 남아 있는 땅이여! 하나님의 서러움의 담을 쌓고 있는 인류여!’라고 탄식하면서 그 하나님 대신 안타까와 할 하나의 사람이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나타나지 않을 것인가 하고 유의해야 되겠습니다. 만일 그러한 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다면 하나님의 수고의 역사도 수포로 돌아가고, 사탄의 참소 조건, 즉 죄로 인한 탄식의 조건이 남아진 세계에서 살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자신이 죄인된 것을 잊고, 앞길이 막혀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그 막힌 입장에서 소망을 갖겠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바라보시는 하늘의 심정은 더욱 처참한 입장에 처해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을 배반한 선조의 혈통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내가 이와 같이 죄악의 피의 결실체라면 이 몸을 무엇으로 폭발시켜 그 죄악을 없앨 것인가. 이제 여러분은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이념과 새로운 믿음,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사랑을 가지고 하늘의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6천년 동안 나를 찾으시려는 하나님의 그 간절한 심정을 느껴 저희 또한 간절한 마음으로 `아버지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부르짖을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는 가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고 어떠한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고자 이 땅 위에 나타났었으나 다 꺾여져 나갔습니다. 그러한 역사의 반복이 지금까지의 복귀의 역사라는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복귀의 원한에 사무친 하나님은 지금까지 안타까운 심정을 품고 참아나오셨습니다. 즉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배척받는 가운데서도 참으셨고 배반당하는 노정에서도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우리를 세워 놓고 이날까지 소망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정을 마음에 뼈저리게, 피살에 사무치게 느껴본 때가 있었습니까? 여러분은 진정으로 지금까지 역사하신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이시요, 나를 위해 수고하신 아버지이심을 자신의 몸 마음으로 느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백성들이 가진 것이 없고 불쌍하다 할지라도, 우리 가운데 하늘의 소망을 대하고 하나님의 염려를 지니고 하나님의 믿음의 마음을 갖고 이 땅 위에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또는 그러한 모임, 그러한 민족이 된다 할진대, 하늘의 전권적인 위업을 계승 못한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불쌍한 이 민족, 의지할 곳 없는 이 민족, 소망할 곳 없는 이 민족이 이제 가져야 할 소망은 무엇인가? 죄악에 대한 회개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이 민족은 천국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에덴동산에서 거할 수 있고, 창조이념의 목적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민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버려야 할 타락인간을 버리시지 못하고 다시 찾으려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과 인간은 원래 어떠한 인연이 맺어져 있었던가? 생명의 인연이 맺어져 있었고, 사랑의 인연이 맺어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끝날에 세계 인류를 동원시켜서 우리들이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인연맺었던 생명 그 자체, 사랑 그 자체를 찾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그것을 찾기 위하여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믿어줄 수 있고, 영원한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영원히 의논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인간이 되기를 바라셔서 지금까지 역사하고 계십니다. 타락한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인간을 지금까지 찾아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4-76
예수님은 어떠한 분으로 오셨던가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믿을 수 있는 인간이 되지 못했는 데 영원히 믿을 수 있는 그 심정기준은 누가 갖고 있는 가? 하나님이 갖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심적 기준을 가진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었는 데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그 생명의 심적 기준을 하나님이 갖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또 영원한 사랑의 심적 기준을 가진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었는 데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의 심적 기준도 하나님이 갖고 계십니다.

그러면 그 에덴동산의 이념을 건설할 수 있는 요소를 인간 앞에 제시하기 위하여 오셨던 분이 누구였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믿음과 생명과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이 땅 위에서 찾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오랜 역사과정을 통하여 수고하였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노아를 통하고 아브라함. 야곱. 모세를 거쳐 찾으려 했지만 그러한 기준의 인간을 찾지 못하고 4천년 동안 수고하여 비로소 찾아 세운 존재가 예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어떠한 분이었습니까? 그는 세상의 권세를 가진 분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적인 학식을 가진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시대적인 반역자로 몰림받은 분이었습니다. 죄악세상 가운데에 공의를 대신하여 몰림받았던 대표적인 주인공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가 몰림받게 되었던 것은 그의 가치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요, 무엇이 불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전세계가 불신의 땅인 연고였습니다. 생명이 없는 세계였기 때문이요, 사랑이 없는 세계였기 때문에 배척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대표자였는 가? 아담은 에덴에서 타락하여 믿을 수 있는 부모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아담의 대신자로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또는 영원히 믿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 수 없는 믿음의 주인공으로 오셨습니다. 에덴에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생명을 다시 인연맺어 주기 위해서 오셨고, 에덴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의 심중에 다시 인연맺어 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한 분인가? 그분은 믿음의 메시아요, 생명의 메시아요, 사랑의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즉 그는 믿음의 구주요, 생명의 구주요, 사랑의 구주로 오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인류역사를 주관해 오시면서 자신의 생명과 사랑이 심적 기준을 이루기를 소망했는 데 이것이 예수로 말미암아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하나님의 섭리 역사가 이 지상에서 다시 시작되었으며 복귀의 새로운 뜻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뜻을 지니고 온 예수님 앞에 그때 사람들은 실체적인 믿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념과 일체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품고 있었던 무형의 신앙의 이념, 무형의 생명의 이념, 무형의 사랑의 이념이 표현된 하나의 화신체로 나타나셨던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누구도 `오! 당신은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수고하시며 찾아온 믿음의 결실체입니다. 4천년 동안 찾아온 하나님의 소망과 생명의 실체로소이다. 오! 당신은 하나님의 이념동산에서 즐길 수 있는 영원한 사랑을 갖고 온 주인공이로소이다’라고 증거하지 않았습니다.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누구도 그의 심정을 헤치고 그의 비밀의 말씀을 이 땅위에 밝혀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2차적으로 인류에게 서러움을 빚어낸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셨지만 마음과 몸을 갖춘 하나의 실체로서 하나님의 믿음과 하나님의 생명,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지 못한 채 돌아가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영과 하나된 믿음, 예수의 영과 하나된 생명, 예수의 영과 하나된 사랑이 오늘날 인간과는 거리가 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영적인 믿음, 영적인 생명, 영적인 사랑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이 한 사실은 알고 보면 기쁜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하늘의 서러움이 맺혀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이념을 대신한 실체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실체로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고 오셨고,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오셨는 데, 그 실체를 인류가 파괴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서러운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4-78
예수의 서러움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실 때에는 영을 통하여 실체를 찾아나오십니다. 그리고 그 실체를 통하여 만물까지 찾아나오십니다. 그런데 인간이 실체를 통할 수 있는 믿음의 자격자, 실체를 대신할 수 있는 생명의 자격자, 실체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랑의 자격자가 되지 못하고, 이 일이 영적으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그것들을 영적으로만 느끼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 인류는 영적 구원의 이념을 찾아 들어가고 있고, 영적 생명을 찾고 있으며, 영적 사랑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인간이 그 실체적인 영광의 존재를 대신 이 땅 위에 모셔 놓고, 그를 영원히 믿을 수 있는 환경, 그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환경,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영적으로 이루어 나오는 것이 낙원구원섭리요, 신약 성서를 중심한 구원섭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계에 있는 영인들이 믿고 있는 믿음, 바라고 나가는 생명, 소망하는 사랑이 실체로 나타나는 한때가 이 땅 위에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에덴의 이념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간의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그 하나님을 모실 뿐만 아니라 만물과 하나되어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고의 역사노정을 거쳐 여러분과 하나되고자 하셨습니다. 이런 애달픔이 있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실체성전을 이루고, 하나님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적인 가정을 이루어 놓고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출발이 이루어졌던들 오늘날 우리에게는 천년왕국이념이 필요 없습니다. 재림의 이념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중심삼고 실체적인 믿음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실체적인 생명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실체적인 사랑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실체 부부로서 실체 자녀를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또 하나님의 실체적인 믿음의 인간이 될 수 있고, 실체적인 생명을 갖출 수 있으며 실체적인 사랑의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발판이 아직까지 지상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서글픔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천국은 네 마음에 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천국은 먼저 마음으로부터 찾아옵니다. 그런 다음에 `천국은 네 몸에 있느니라’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천국은 내 실체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한날이 인류 앞에 와야만 비로소 나의 몸이 영과 하나되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예수의 서러움이 있습니다. 마음의 천국을 대신할 수 있는 영적 천국은 이루어 놓았으나, 몸의 천국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그런 천국은 못 이루었기 때문에 다시 오셔야 할 입장에 처해 있으며,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인간들을 위해 기도하셔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처한 오늘날 인류는 실체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자신의 신앙노정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뜻을 불신했던 마음과 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의 인연과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찾아 실체화하였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여! 당신의 실체가 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항상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인간들이 되지 못한다면, 인간은 지금까지 빚져온 역사를 벗어 날 수 없고 잃어버린 천국의 이념을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류를 대해 염려하여 왔습니다. 특히 끝날에 처한 우리들을 대해 더 큰 염려를 하시며 찾고 계십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소망의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80
끝날의 성도가 지녀야 할 신앙기준
믿음에 대한 소망, 생명에 대한 소망, 사랑에 대한 소망의 모습으로 살고 있느냐를 항상 아버지 앞에 직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옳소이다 아버지여! 나는 아버지를 믿겠나이다. 아버지는 날 못 믿는 다 할지라도 나는 아버지를 믿겠나이다. 아버지는 나를 버려도 나는 아버지를 버릴 수 없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천륜이 변할지라도 천상의 어떠한 존재물이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아버지를 배반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진 주인공, 천상천하의 어느누구도 믿지 못할 자리에서 믿어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닌 하나의 주인공은 없을 것인가.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인간을 찾을 수 있는 소망의 한날을 바라셔서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서글픈 아버지의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교회가 있습니까? 인간들은 이것을 몰라주는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하늘의 뜻을 품고 세상에 나타나는 사람은 버림을 받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원수였습니다. 버림받지 않는 사람, 원수 아닌 사람은 오히려 거짓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가정에서 발붙일 곳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준비하였던 세례 요한 일파로부터 배척받았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준비해 놓은 교단으로부터도 배척 받았습니다. 택한 이스라엘, 아브라함의 혈족으로부터 핍박받았습니다. 온 인류에게 핍박받았던 것입니다. 또 영계로부터도 버림받았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기록된 성경 말씀과 같이 비참한 입장에서 운명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비통함을 느끼신 분이 우리의 구주요, 인류의 구주요, 우리의 지도자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그 예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엘리야도 이스라엘민족 앞에 배척받고 몰림을 당하여 쫓겨나갈 때에 “아버지여, 나만 남았나이다. ”라고 호소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한때를 가져 보았습니까? 3천만 민족이 모두 배척하더라도, 세계 24억의 인류가 모두 배척하고 천상에 간 모든 영들이 모두 배척할지라도 `나만은 당신을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심정을 체휼한 사람은 지옥에 갈래야 갈 수 없고, 이 땅에서 망할래야 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무엇으로 깨뜨릴래야 깨뜨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하고 호소했던 그 마음 하나가, 사망의 권한을 짓밟고 올라설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인 포인트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민족으로부터 배척받았고, 교회로부터 배척받았고, 종족으로부터 배척받았고, 또 보이지 않는 영계의 사탄에게도 배척받았습니다. 즉, 어느누구 한 사람의 친구도 없는 예수였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오늘날 인류의 구주로 나타날 줄 당시의 사람들이 꿈엔들 생각하였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새역사 창조의 기준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 불변의 심정을 갖고서 아버지가 내 생명의 주인이요, 생활의 주인이요, 사랑의 주인이라는 마음을 품고 살았던 분입니다. 예수님의 믿음과 생명 그리고 사랑은 어느누구도 자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은 기독교는 어느 민족 국가에 들어가 두들겨 맞더라도 쓰러지지 않고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나오고 있는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인류를 위하고자 할진대는 예수님이 믿었던 신앙의 내용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망의 길을 무릅쓰고 생명을 바칠 수 있었던 신앙기준, 즉 자신의 몸까지도 희생할 수 있었던 신앙기준을 끝날의 여러분들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러한 신앙의 기준이 끝날의 성도에게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4-82
하나님은 인간과 동고동락하는 실체적인 주인공
구원을 받아야 할 우리들이, 영원한 생명을 찾아야 할 우리들이 아버지의 사랑 속에 품겨지기 위해서는 , 갖은 고난과 모진 상처를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가정과 사회와 국가, 세계가 반대하더라도 그것을 밟고 올라가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붙들고 나섰던 예수의 입장에 서서 역사적인 사망의 종족을 향하여 돌진할 수 있는 하늘의 정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늘은 우리들을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하늘보좌에서 영으로 계신 하나님께서는 창세로부터 4천년을 기다려 예수님을 세우셔서 인간을 찾으려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 이후 우리의 마음을 대신한 영적 세계에서 2천년을 더 수고하여 오늘날까지 6천년의 수고의 발자취를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버님, 황공하옵니다. 아버님, 면목없습니다. 아버님, 어찌하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나를 찾기 위하여 수고해 나오신 아버지의 서글픔을 해원해 드리겠다는 아들딸의 효심을 가졌습니까? 이것이 하늘이 원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아들딸이 되었다 할진대는 예수님께서 33년 동안 긍휼의 심정을 갖고, 사랑의 심정을 갖고 아버지의 마음을 붙들고 고난 속에서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런 마음을 갖고 사망권을 밟고 올라서서 부활의 역사를 일으켜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사망권을 밟고 올라서서 부활된 영광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을 마음과 몸으로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머리로 알 때는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을 머리로 알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마음으로만 알아서 안 되고 몸으로도 알아야할 때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관념적인 신앙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마음으로 믿으면서 몸으로 체휼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끝날은 영원 불변한 믿음의 실체를 찾아 나오는 때요, 영원하신 사랑의 화신을 세우고자 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실체가 나오면 내 몸에서 불신이라는 명사는 없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아버지의 심정을 염려할 수 있는 아들 딸의 모습이 되어 아버님을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모른다면 모르거니와 안다면, 우리를 찾아 수고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의 주인공으로만 모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와 영원히 일체를 이루어 먹어도 같이 먹고, 살아도 같이 사는 , 즉 영원히 동고동락할 수 있는 실체적인 주인공입니다.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사랑의 본체요, 영원한 소망의 화신체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 예수님은 어떠한 변명도 조작도 없이 자기 자체를 잊어버리고 아버지를 대신한 뜻이라면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예수님의 발자취를 인계맡는 아들 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는 30여년의 생애를 거치면서 복음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다가 굶주린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는 즉석에서 오병이어로써 5천여 무리를 먹이는 기적도 베풀었습니다. 줄 것을 다 주었습니다. 믿음도 소개하였고, 생명도 소개하였고, 사랑도 소개하였고, 인간이 요구할 수 있는 전체를 다 소개해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말씀을 예수의 실체와 같이 받아들인 때가 있습니까? 예수의 말씀을 통하여 그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믿음의 실체라는 것을 느껴 보았습니까? 예수의 말씀을 통하여 그가 영원하신 생명의 실체라는 것을 느껴 보았습니까? 예수의 말씀을 통하여 그가 영원한 사랑의 실체라는 것을 느껴 보았습니까?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이런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예수님은 슬퍼하신다는 것입니다.

4-84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소망과 하나님의 부탁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의 노정을 걸을 때, 이 마을 저 마을로 쫓기면서 말씀하시기를 어느 한 곳 발 붙일 곳이 없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외로운 심정을 붙들고 안타까와하신 그 예수님의 말씀이 4천년 천륜의 결실을 대표하였던 말씀인 줄 그때 사람들이 알았느냐 하면, 몰랐습니다.

재창조의 생명의 실체요, 영원하신 하나님이 소망하신 생명의 실체로서 4천년 동안 인류가 소망하여 왔던 그 뜻을 이루실 예수님인 것을 이스라엘민족은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믿음과 사랑과 생명을 가지고 나왔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몰라봄으로써 넘지 못했던 이 고개를 누가 해원해 넘어갈 것인가? 오늘 여러분이 비록 몰리고 있고 의지할 곳이 없는 불쌍한 무리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뜻을 이어받는 인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예수님이 걸었던 역사노정을 내가 다시 걷는 다는 마음과 탄식하는 심정을 갖고 민족 앞에 나타날 때가 왔습니다. 세계 앞에 나타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심정을 지닌 모습으로 민족과 세계 앞에 나타나야만 이스라엘이 배반하였던 역사를 가로막을 수 있고, 유대교가 배반하였던 역사를 가로막을 수 있고, 예수의 혈통적인 종족이 가로막던 그 모든 것을 가로막을 수 있고, 혹은 사도들이나 제자들이 배반하였던 것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 모든 것을 내 실체에서 풀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뱃새다 근처에 있는 빈들에서 수많은 무리에게 떡을 나눠 주었습니다. 그런데 떡을 먹었던 무리들이 어찌하여 다 망하였던가? 말씀을 들었던 그 민족들이 어찌하여 예수를 배반하였던가? 3년동안 같이 고생하면서 따르던 제자들이 어찌하여 예수를 배반하였던가? 그들이 배반한 이유는 말씀이 그날 그날을 위한 말씀인 줄로만 알았고, 주시는 떡이 그날 그 한시간의 배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주시는 것으로만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말씀이 자기 자신을 통하여 세상 끝까지 옮겨주어야 할 말씀인 줄 몰랐습니다. 예수가 나누어 주는 떡이 자신을 통하여 세계인류 앞에 나누어 주어야 하는 떡인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과 떡은 자신의 실체이기 때문에 내마음. 몸. 이웃. 민족. 국가. 세계의 온 인류에게까지 옮겨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뜻을 몰랐기 때문에 다 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이 주 앞에 서거나 아버지 앞에 설 때에 ‘오,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이 말씀을 주노니 이 말씀을 간직하여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되라’고 부탁하는 것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오,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네가 살아 생전 네 몸에 아버지가 임재할 수 있는 실체적인 성전이 되어다오’라고 부탁하는 것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아버지만이 내 생명의 본체요, 아버님만이 내사랑의 본체라고 느껴야 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아무도 함께하는 사람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아버님의 말씀이 같이하여 아버님의 생명의 실체로서 아버님의 사랑의 심정에 사무쳐 천륜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이 되었다 할진대는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늘날 우리는 몰리는 가운데 수많은 고난을 당할지라도 참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달픔을 참는 것은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늘땅의 탄식을 느끼면서 뼈에 사무치는 고난을 딛고 일어서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님의 친구가 될 것이요, 민족의 친구가 될 것이요, 세계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그는 세계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 안에 밖에 있느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정을 통하여 당신의 소원을 풀려고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 우리들이 머무는 것, 우리들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 모두가 아버지를 위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끊기고 물질이 없다 해도, 친구가 없다 해도, 아버지를 위한 인연이 있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땅 위에 사랑보다도, 땅 위의 생명보다도, 땅 위의 사람보다도, 아버지의 믿음이, 아버지의 생명이, 아버지의 사랑이, 아버지의 소원이 나에게 같이한다 할진대는 한이 없게 됩니다. 아버지의 그 모든 것이 나와 함께할 때 나는 이 땅 위의 뭇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4-86
하나님과의 일체감을 느껴야 한다
여러분은 어느누구보다도 민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뒤를 돌아보면서 눈물지어야 할 생애를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아버지의 소망과 믿음의 실체로 영원한 아버지의 사랑의 실체로 서야 할 아버지의 뜻을 알았으니 그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이 민족은 믿어주어야 할 친구를 서로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생명이 안착할 수 있는 하나의 참다운 가정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 민족 앞에 무엇을 남겨야 할 것인가? 믿지 못하는 민족 앞에 믿음을 남겨주어야 하고, 생명이 안착할 수 있는 가정이 없는 민족 앞에 생명의 가정을 남겨야 하고,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이 민족 앞에 사랑을 남겨야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심정을 지니게 될 때는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의 처지가 오늘의 나의 처지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즉 그의 처지가 오늘날 우리의 처지이고, 천륜의 뜻을 위해 역사과정을 거쳐왔던 우리 선조들의 처지인 것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그런고로 여러분은 이제 역사적인 배척을 받아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사탄과 싸우더라도 백퍼센트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사망의 권세라도 넘어서 그 사망세계를 가로질러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갈 수 있고, 아버지를 붙들고 6천년 동안 수고하신 그 서러움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담 해와의 실수를 청산짓고 하늘의 마음을 가진 모습으로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영광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은 힘든 가시밭길도 무릅쓰고 슬픔의 길을 거쳐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몰림을 받을 때 염려하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참아나가야 하며, 아버지께 안길 수 있는 한날을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머리로 믿을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마음으로 몸으로 믿을 수 있는 믿음의 화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생명된 예수님을 알되 머리로 알 때는 지나갔습니다. 마음으로 알고 몸으로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실체가 하나님의 믿음과 생명과 사랑을 대신하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마음으로 몸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좌’하면 천륜의 역사를 대신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가 ‘좌’하고, 여러분이 ‘우’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우’하고, 여러분이 ‘정’하면 하나님이 ‘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을 잃어버리고 가정을 잃어버린 것이 에덴동산에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탄식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슬픔을 놓고 눈물 흘리지 마십시오. 언젠가는 그 눈물을 아버지께서 씻어주시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자신이 억울하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 억울함도 아버지는 아실 것입니다.

이제 내가 아버지를 떠난 줄 알았더니 내가 아버지 앞에 선 것을 알았고,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는 줄 알았더니 내 몸이 벌써 아버지의 사랑에 잠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이심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알려는 아버지는 관념에 붙잡힌 신앙의 하나님이 아니고, 실증적으로 체휼할 수 있는 , 즉 나의 생활권내에서 체휼할 수 있는 친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 39)”라고 기도했던 것과 같이 심각한 입장에서 아버지와 내가 하나된 일체성을 여러분은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소망의 믿음, 소망의 생명, 소망의 사랑이 나에게 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동하면 만물이 동하고, 네가 움직이면, 모든 사람이 내 뒤를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모든 만물이 여러분을 대하여 환희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또 그런 경지에 들어가게 될 때 남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되고,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 남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고, 남이 체휼하지 못하는 것을 몸으로 체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88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참아들딸이 되려면
이러한 인간이 본연의 에덴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할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을 느끼지 못하는 타락한 인간임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그리하여 6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24억 인류를 대신하고 천추만대의 억조창생을 대신하여 아버님 앞에 자기 한 자체를 걸어 놓고 6천년 동안 서러워하신 안타까운 심정을 붙안고 ‘아버지의 안타까운 그 모든 심정을 우리가 책임지겠나이다. 아버지의 염려와 슬픔과 고통을 나에게 맡기시옵소서. 6천년 동안 수고하신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아들로서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되겠나이다’라고 맹세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이와 같이 안타깝게 아버지를 부르고 간곡히 호소한 때가 있었습니까? 없다 할진댄 여러분은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 한 자체를 찾으셨지만 한 자체로서의 나를 찾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함은 나 하나를 사랑하기 위함이 아니요, 하늘 땅 전체를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나를 부르심도 내 한자체를 중심삼고 나를 좋게 하기 위함이 아니요, 하늘 땅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나를 믿어주려 함도 나 하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도, 나를 생명의 실체로 세우고자 하는 것도 나 하나를 위하려는 것이 아니라 온 천주를 위하시고자 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몸 마음은 영원히 여러분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늘의 은사를 받아 뜻 앞에 감사한 때가 있었습니까? 여러분은 기뻐하기 전에 먼저 눈물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기뻐하는 데 이 땅의 만민은 어떠한가? 나는 높아지고 있는 데 하늘의 영광은 드러나지 않고 있으니 하늘의 이 영광을 만민 앞에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 이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나만 즐거워 하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나를 매개로 한 하나님의 우주적인 섭리가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하실 때, 천주를 창조하신 당신의 위신까지 망각하십니다. 그분은 창조주요, 하늘과 땅의 주인공으로서 섭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하늘은 오늘날 사탄권내에 있는 여러분을 하늘 땅의 믿음과 생명과 사랑을 갖고 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알아서 하나님의 믿음을 성취하고,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사랑과 영원한 생명의 불길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타오를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생활권내에서 시간 시간 느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고, 아버지를 모시고 고난의 길을 개척해야 할 사명이 타락한 후대의 인간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모든 싸움을 다 싸워 놓고, 원수들을 무찌르고 무찌른 후 아버지께 승리의 경배를 드려야 하겠고, 여러분의 몸이 아버지의 안식의 보금자리, 여러분의 마음이 아버지의 안식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창조 당시의 아버지에게 슬픔을 체휼시켰던 것을 회상하여 ‘나를 대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영원한 모습을 대하는 것과 같이 즐거워 하시옵소서. 아버지!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상실한 뜻을 나를 대하시어서 찾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만 ‘오, 아버지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4-89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당신은 의의 선지선열들을 보내시어 우리를 찾아주셨사옵고, 예수를 보내시어 우리의 마음의 터를 가꾸어 나오셨사옵니다. 이제는 저희의 몸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실체적으로 이루어야 할 뜻이 남아 있는 것을 아옵니다. 내 한 자체는 가정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또한 만물까지도 아버지 앞에 세워드려야 하겠사오니, 아버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머무는 천국만을 건설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만물권 내에까지도 아버지께서 임재할 수 있는 실체적인 천국을 건설해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되옵나이다. 이러한 천주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할 저희들이 타락세계에 남아 있는 것을 아버지께서 보실 때에 저희들의 행로가 염려되고 안타까우실 줄 아오니, 부족하고 연약한 저희들을 아버지께서 다시 붙드시어서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신다면 저희는 낙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는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오니 아버지의 생명과 영광을 소유하기 위해 원수 사탄을 물리쳐서 아버지가 운행하실 수 있는 개체가 되고, 아버지가 운행하실 수 있는 교회와 나라, 세계와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하늘의 용장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의 마음으로는 아버지의 심정을, 저희의 몸으로는 아버지의 생명을 느껴서 만물권까지 아버지 앞에 세울 수 있는 아들딸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의 수많은 인류 앞에도 당신의 기쁨의 소식이 들려지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