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79 to 37-209:  회고와 현재

회고와 현재
1970.12.27 (일), 한국 전본부교회

37-179
회고와 현재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아침을 살피시옵소서. 오늘은 역사과정에서 잊을 수 없는 1970년도의 마지막 안식일이옵니다. 일년 동안 저희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위해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흘 후면 1971년도를 맞이하게 되는 이 자리에 당신께서 친히 강림하시옵소서.

1970년도까지 한 많은 복귀의 역사를 엮어 오시면서 수고해 오신 아버지를 생각해 볼 때, 이해에는 기필코 승리적 기반을 조성하여 하늘의 영광의 한때를 맞이하고자 출발하였는데, 벌써 금년 한 해를 다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일년을 지내고 보니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부족했고 충성을 다하지 못했음을 또다시 뉘우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새해에 있어서는 좀더 보람 있는 생애의 일편을 남기기 위하여 새로운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부족한 자신을 개탄하면서,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아 주시기를 바라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청파동 본부를 마음으로 그리워할 것이옵니다. 그중에는 아버지 앞에 죄송스러운 마음에 눈물짓는 자녀도 있을 것이옵니다. 또한 자기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아버지의 내적 사정과 외적 사연을 스스로 체휼하면서 일년을 보내고 아버지 앞에 감사하는 자녀도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처하여 있는 환경과 머물러 있는 위치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몸 마음 조아리며 아버지의 큰 은사를 바라고 있는 자녀들이 많을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그들을 지켜 주시옵고 더더욱 아버지의 사랑을 베푸시어서 그들을 동정하시옵고, 그들을 친히 주관하시어서 내일의 역군으로서 보람된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흘러가는 세월 속에 저희의 생애도 묻혀 그저 넘어가는 그러한 무의미한 하루, 무의미한 한 해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이 생애노정, 한 번밖에 오지 않는 날들과 해를 맞이할 적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할줄 아는 아들딸이 되고, 하늘이 자랑하고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1970년도에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서울을 중심삼고 움직여진 모든 일들을 생각해 보면, 어떤 때는 아버지께서 마음으로 염려하는 때도 있었사옵고, 어떤 때는 당신께서 저희들과 함께 필승의 기반을 닦기 위하여 수고하시는 것을 직접 대할 때도 있었사옵니다. 지내고 나니 이 모두를 아버지 앞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1970년도의 기반 위에서 1970년대를 장식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뜻 앞에 자랑이 되고, 아버지의 영광의 터전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역사로써 장식할 수 있는 중요한 이 1970년 한 해를 저희들에게 마련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은 서울 도성을 중심으로 해야 할 책임을 아직까지 다하지 못하고 있사오니, 이제부터라도 550만이나 되는 이 서울 시민들이 당신의 품에 품길 수 있도록 마음과 몸으로 불철주야 지성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시민이 하늘의 자녀가 되고, 이 도성이 하늘의 축복받는 도성이 되어 만세계의 수많은 도성에 자랑할 수 있는 도성이 되게 해야겠사오니, 언제나 당신의 마음이 같이하시는 중심 수도가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자랑하실 수 있고 당신께서 찾아온 보람이 있는 백성이 되게 하시어 세계 만민의 마음이 집중될 수 있는 본향의 도성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민들의 마음이 당신께서 바라시는 천운의 방향과 일치되게 하시어서, 당신께서 소원하시는 나라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선한 백성으로 삼아 주시옵소서. 이 도성의 시민들이 아버지 앞에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이 사무쳐 그 마음이 천상세계의 수많은 선조들은 물론이요, 천천만 성도들이 바라는 소원과 서로 화합하여 당신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속히 와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서울을 중심삼고 되어지는 모든 일들이 당신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일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아직도 통일교단의 저희들 모두가 책임져야 할 중차대한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1970년을 보내는 이 아침에 당신의 사랑이 더욱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지난 일년 동안 가호하여 주신 당신의 그 사랑 앞에 감사드리면서 앞으로도 당신께서 저희들이 기거동작(起居動作)하는 모든 일체를 친히 주도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이 싸워 나가고 개척하는 노정에 당신의 무한하신 긍휼의 마음이 풍부하게 깃들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다시 올 수 없는 1970년도에 마지막으로 맞는 거룩한 안식일이오니 당신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에게 새로운 결의를 요구하시려거든 각자의 마음 깊은 곳에 은밀히 찾아오시어서 분부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시키기 위하여 저희들을 불러 모으셨사오니, 각자의 결의와 각자의 자각과 각자의 맹세로 다시 한 번 다짐 하는 가운데 1971년도를 맞이하게 인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아침에도 서울 도성에는 수많은 교단의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하늘의 뜻을 바라보면서 끝날에 자기들이 행할 바의 길을 알지 못하여 얼마나 애절하게 몸부림치고 있사옵니까? 그들에게 갈 길을 명시하여 주시옵고, 들려오는 소문을 통하여, 혹은 나타나는 결과를 통하여 당신의 품에 품겨질 수 있게끔 역사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남아진 날들 위에도 아버지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곳을 위하여 마음을 묶어 정성들이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외로이 나가 싸우고 있는 당신의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을 이렇게 내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당신의 모든 사정을 그들이 알게 됨으로써 아버지여, 그들이 소원하는 것이 당신께서 소원하는 것과 일치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들이 개척자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당신께서 개척하고 있는 그 입장과 같게 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당신의 일을 그들에게 인계하시어서, 이 민족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선두에 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딸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더우기 지금은 40일 개척기간이오니, 이 기간에 하늘을 위하여 뜻의 길을 가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뜻은 결코 정지할 수 없사옵고, 결코 주저할 수 없사옵기에 저희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강하고 담대한 입장에서 통일시켜야 되겠고 하늘의 입장을 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다짐할 수 있는 이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년 한 해동안 저희들을 살펴 주시고 저희들의 전후 좌우 상하를 관찰하시어 이끌어 주신 당신의 은사에 진정으로 감사드리옵니다. 또한 이 한 해로 말미암아 큰 결과를 거두게 하여 주심과 오늘의 통일교회의 입장을 정면으로 적나라하게 드러 낼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사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각자의 가정 가정에 있어서도 어린 자녀들의 마음에 그들이 새로운 시대의 기수가 될 수 있는 통일의 무리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들도 아버지 뜻 앞에 있어서 같은 반열에 동참함으로써 영원하신 아버지의 후예가 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축복받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가정들 위에 당신께서 다시 한 번 새로이 통고하시어서, 그들이 하나되어 그들이 원하는 하나의 민족을 편성하고 나라를 편성하여, 그 나라를 아버지 앞에 봉헌해 드리기 위하여 온갖 정성과 충성을 기울이게 하시옵소서. 이 한국 강토를 위하여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내일의 승리를 찬양할 줄 알고 조국을 그리워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뜻을 사모하고 뜻을 위해 싸워 나가는 모든 생활환경이 아버지의 사랑권에서 벗어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일치되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아버지 앞에 완전히 바쳐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고, 통일의 족속이 되고, 통일의 세계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금 여기에 당신의 부족한 자녀들이 엎드렸사오니, 이들이 누구를 위한 자신인가를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움직였고, 무엇을 느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덧없는 나 자신을 위해서, 아무런 결과도 찾지 못한 외로운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입시켰던 것을 슬퍼하고,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하늘의 유업을 위하여 스스로를 아버지 앞에 몽땅 바쳐드릴 수 있는 거룩한 모습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러한 모습이 되기 위하여 다시금 아버지 앞에 마음 깊이 결심 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 각자를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고, 남아진 시대에 있어서 맡겨진 사명과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끔 당신께서 보호하고 육성하여 주시옵소서. 이 한 해에 있었던 모든 일을 감사드리옵니다. 남아진 며칠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수많은 백성들이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신년의 계획을 세우는 그와 같은 모든 자리가 당신의 뜻을 중심삼고 일치가 되어 움직일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7-183
말 씀
오늘 하루를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는 과거가 연결되어 있고 미래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즉, 현재라는 것은 현재 그 자체만으로서는 존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한 개체를 두고 볼 때, 나라는 존재는 과거의 결실체요, 미래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나 자신이라는 것은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나 자신이 아니라, 한국을 연결시키고 세계를 연결시켜 모두가 관련된 입장에 있어서의 중심의 자리를 요구하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과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현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며, 자기를 중심삼고 미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37-184
하나님과 인간이 처해 있는 현재의 입장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떠나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과거를 생각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현재를 생각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데 있어서는 나쁜 것을 중심삼고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을 중심삼고 과거를 생각하려 하고, 현재를 생각하려 하고, 미래를 생각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좋은 과거를 가지고 나와야 되는 것이고, 현재에 있어서도 좋을 수 있는 입장을 개척해야 되는 것이며, 또한 그 이루어진 터전 위에 미래의 보람 있고 가치 있는 결과를 그리며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 결과가 자기 자체의 생활뿐만 아니라 민족과 세계에 좋은 것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현재의 우리 인간들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인간이 그러하듯이 하나님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 하나님 자신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하나님 자신이 창조하시기 시작하면서부터 창조물이 설정되는 과정을 거쳐 창조목적 완성의 중심체로서 인간을 지으시던 과거를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원치 아니했던 타락의 결과를 가져온 뒤부터 지금까지의 비참한 복귀역사를 거쳐 나온 것을 생각하실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과거를 중심삼고 볼 때, 그 회고 가운데 잊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처음에는 물론 창조의 위업이 성사되어 나가는 결과를 두고 무한히 기뻐하셨겠지만, 무한한 소망과 무한한 기대를 가지고, 내일의 창조의 실현을 과시할 수 있는 중심인 사람을 보고 온갖 희망과 희열의 대상으로 바라보시던 기쁨의 한때가 있었겠지만 그러한 기쁨이 변하여 생긴 생각지도 않았던 이 엄청난 타락의 결과 때문에 천세 만세를 거쳐오면서 한스러운 투쟁의 역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될, 다시 개척자의 사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될 하나님 자신의 입장, 그것도 소망을 두고 하는 개척이 아니라 그 마음마음마다, 대하는 사사건건마다 슬픔을 개재시켜 슬픔의 한 고개를 넘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나오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과거는 회상하면 할수록, 회고하면 할수록 슬픔을 가중시키는 회상이요, 회고가 될 수 있었던 역사인 것을 우리는 짐작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복귀를 개척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현재의 입장을 두고 볼 때, 과거와 현재가 다른 것이 무엇이냐? 오늘날 이 넓은 천지 가운데에는 수많은 종교인들이 있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에 지금까지 슬픔을 지니고 나오신 하나님 앞에, 과연 에덴 동산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소원을 되찾아 드릴 수 있는 종교단체나 혹은 그런 종교를 믿는 자녀들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막막한 현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재에 계신 하나님은 기쁜 하나님이 되시기는 커녕 도리어 슬프신 하나님, 소망을 가질 수 없는 하나님, 낙망 속에서 후회하시는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7-185
슬픔을 기쁨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중요한 현시점
그러면 이런 실상을 두고 우리가 하나님의 입장에서 세계를 관찰한다면 이 지구상에 새로운 소망의 일점, 새로운 소망의 한 터전이 과연 어디에 있겠느냐?

이 지구상에는 많은 나라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선진국으로서의 문명을 자랑하는 나라도 있고, 혹은 나름대로 자기 나라가 세계에서 축복받은 나라요, 자기 민족이 축복받는 민족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나라와 민족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는 입장을 넘어 가지고 본다면 하나님의 기대와 소망이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한국땅에서 핍박의 노정을 걸어온 보잘것없는 이 통일교회의 무리가 하나님께서 현재 세계를 놓고 바라보시는 소원의 중심이 되는 한 자체라고 생각해 볼 때, 이것은 뜻을 중심삼은 현재의 입장에서 말할 수 없이 막중하고도 놀라운 은사라면 은사일 수도 있는 반면 두려운 일이라면 두려운 일이라고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그런 입장에 서 있다 할진대는, 통일교회의 현재는 귀중하고도 엄청난 세계적인 사건을 맞이한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역사들을 회고해 볼 때 그 역사는 슬픔의 역사로 연속되었지만, 오늘날 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나타난 현재는 슬픔의 역사로 연결되어져서는 안 됩니다. 슬픔을 전환시켜 가지고 기쁨의 결과를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그야말로 역사시대에 없는 가장 중요한 현재 이 시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흘러간 역사시대에 뜻의 길, 혹은 섭리의 뜻을 따라 나온 역사상의 수많은 선조들과 오늘날 이 뜻을 대하고 나오는 통일교회의 우리 식구들을 비교해 보게 될 때, 지난날의 선조들이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한 그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소원 앞에 기대할 수 없는 역사를 남기고 오히려 슬픔을 가중시킨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늘의 기쁨과 소망을 재현시켜야 할 사명이 통일교회에 있다 할진대 통일교인 개개인에게 맡겨진 사명이라는 것은 엄청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다시 낙심시켜서는 안 될 것이며, 기쁨과 소망의 일념을 하나님 앞에 제시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과거에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이 자기의 과거를 회고해 본다면 기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건 다 흘려버려야 할 과거입니다. 또, 역사시대에 자기 민족이 훌륭했었다고 자랑할 수 있는 문화권을 가진 민족이라 하더라도 그 좋았던 과거는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슬픔 가운데 사라져 버릴 사건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는 역사시대의 귀하던 모든 문명과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뜻을 대하여 충효의 정열을 다 퍼부으며 죽음길을 가면서까지 수고하여 이룩해 놓은 그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깊은 마음 가운데 기쁨으로 남길 수 있고 회고의 조건으로 남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할진대, 오늘날 통일교회의 일원으로서 맡은 바의 책임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왔다 갔던 세계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남겨 놓은 사건들, 즉 추억의 대상으로 되어 있는 그런 사건들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하루의 생활과 살아 나가는 일년의 기간, 혹은 앞으로 살아갈 10년 20년을 더 중요하게 보고 계시다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슬픔의 역사를 재현시키고, 되풀이하는 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슬픔의 역사를 탕감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 식구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현재가 흘러간 하나님의 슬픔을 동반하는 그런 현재가 되지 않고, 또한 앞으로 올 미래의 어느 한때에 찬양할 수 있는 그러한 현재가 되지 않는다면, 기쁠 수 있는 역사라는 것은 미래에 남아질 수 없고, 또 미래에 가서 현재를 되돌아볼 때 회고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조건으로도 남아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 현재는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 버리는 시간과 기간이 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미래에 온갖 규탄을 받고 슬픔의 역사를 이어주는, 원통하고도 비통한 사실(史實)로 남아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현재 우리가 처한 입장이 얼마나 엄청난가를 여러분이 깨달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37-187
현재의 시점에서 남겨야 할 것
사람이라는 존재를 두고 볼 때, 현재의 사람이나 과거에 왔다 간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가치의 중심이 되려고 하는 것은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어떤 입장에서 본다면 선을 그리워하고, 선을 위해 투쟁하는 데 있어서는 옛날 사람들보다 도리어 현재가 못한 입장에 있지만, 우리에게 지워진 시대적인 사명이나 역사가 요구하는 그 표준은 엄청난 기준이라는 것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가는 걸음이 역사의 주추가 되고, 역사의 정신이 되고, 과거의 모든 슬픔을 해원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볼 때, 그 길을 가고 있는 여러분의 생애야말로 무의미한 생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향진(向進)하는 그런 생애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한 선(線)으로의 향진이 아니라 평면적인, 더 나아가서는 입체적인 향진인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기를 역사시대의 모든 선지선열들은 바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도 우리 자체에 대해서 그와 같은 역사의 중심으로 내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중심적 존재가 되기를 고대하실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 개체는 그 한 개체로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러한 역사적인 중심과 역사적인 소원과 역사적인 기대 가운데 서 있는 존재라는 것을 항상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앞으로 1970년대, 1980년대, 혹은 2천년대, 나아가 3천년대의 많은 역사과정을 거치겠지만,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이냐? 1970년도, 1970년도에 통일교회가 거쳐 나오는 데 있어서 시기적 한계선이 있을 것입니다. 또, 현재라고 하는 시점에 있어서 넘어가야 할 정상이 있을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볼 때 개인적인 정상이 있을 것이고, 가정적인 정상이 있을 것이고, 민족, 국가, 세계적인 정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상을 넘어갈 수 있는 한때라는 것은 세계의 시대에 있어서, 혹은 하나님의 섭리역사시대에 있어서 두 번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한 번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원히 한번밖에 없는 그 시점을 어느때, 어느 누가 거쳐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때를 맞는 과정에 있지만, `그 어느때보다 확실히 이때다’라고 단정하고 자신하고 넘어 가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정상의 한 순간이 현재 우리의 생활권내에서 굽이치면서 내 생활과 내마음이 세계를 거쳐 넘어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한번 밖에 없는 이때를 놓칠소냐 하는 마음으로 정성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성현 중의 성현의 마음을 대표할 것이요, 의인 중의 의인의 생활을 대표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어떤 이상을 추구해 나온다 할진대는 그 사람은 이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최고봉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이 현재는 평범한 현재가 아닙니다. 특히 통일교회가 걸어가고 있는 이 1970년대라는 기간은 평범한 시대권의 한 파동이나, 어떠한 하나의 지표, 또는 주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시대에 있어서 최고봉을 이룰 수 있는 그런 기간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재가 얼마나 귀중하고 얼마나 엄청난 때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때에 충성의 도리를 다하여 승리의 결과를 다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스스로의 욕구라든가 자기의 가중된 충성이라든가 자기의 정성의 일념을 투입시켜 충만하고 원만한 한때, 전후좌우로 어떠한 빈틈도 없이 꽉 찰 수 있는 현재의 한때를 남겨야 합니다. 그것이 과거의 선조들이 바라던 소원일 것이며, 오늘날 세계인들이 마음으로 추구하는 표준이 될 것이며, 또한 미래의 우리 후손들이 바라는 선조에 대한 최고의 기대가 될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도 그렇겠지만, 복귀섭리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현재를 바라보시면서 후회스럽던 지난 과거를 청산짓고 미래를 향하여 자랑스럽게 밀고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기원으로 만들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한 때, 어느 한 순간을 중심삼고 면면을 결정짓고 넘어갈 수 있는 때가 없다고 하면 슬픈 과거의 역사는 청산될 수 없는 것이요, 기쁠 수 있는 현재는 미래에 남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슬픈 역사 그대로를 계승할 수 밖에 없다는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그 어떠한 수난의 곡절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에서 도피해서는 안 됩니다. 주저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입장에서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바라는 하나의 정상을 위해 결정타를 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체의 결정적인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결의에 찬 개인, 결의에 찬 통일제단이 되었다 할진대 이는 전세계의 역사를 종합하여 해원성사할 수 있는 하나의 승리적 기반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수 있는 기반을 결정지을 수 있는 우리 자체, 우리 교회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37-189
민족의 불신사를 기쁨으로 결실시켜야 하는 통일의 무리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생각해 볼 때, 통일교회는 2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 20여 년의 역사 가운데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 혹은 하나님의 섭리사 가운데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거기에는 민족의 불신사(不信史), 즉 민족이 불신했다는 과거밖에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3정권을 거치면서 수많은 교단으로부터, 혹은 민족으로부터 규탄을 받고 생활환경에 있어서 몰림받았던 그 사실이 과연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이 되겠느냐 할 때, 그것은 자랑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회고해 보면 그 역사는 슬픔의 역사를 이어나오신 하나님의 마음에 불신의 배반사를 계승한 슬픈 기간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그 역사는 이 민족의 수치를 자극시키고, 민족의 미완성을 자극시키고, 각자의 불신을 자극시켜 각자가 다시 한 번 소망을 희구하도록 하는 슬픔의 역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교단의 슬픈 역사를 어느 한때의 기쁨의 역사로 바꿔치느냐 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도 원하실 것이고, 지금까지 배반하고 반대했던 대한민국 자체도 원할 것이며, 대한민국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조들도 원할 것입니다. 하늘의 운세가 한국을 중심삼고 결정적인 위치를 정하게끔 섭리의 닻이 내려진 입장에서, 하늘의 뜻을 대해 나오던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은 물론 지상에 있는 피조세계가 슬픔의 결과를 남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누가 기쁜 결과를 남길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아니요, 다른 민족도 아니요, 다른 사람도 아닙니다. 오늘날 보기에 부족하고, 보기에 지쳐 있고, 보기에 미숙한 우리 통일교단의 통일의 무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은 뛰는 맥박 소리와 울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가 평상시와 같지 않은 그런 맥박, 그런 고동소리로 느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 생애에 있어서 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선생님의 최고의 한계선을 넘는 것을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지냈다면 그 알지 못한 것이 슬픔으로 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알 수 있는 그 기준을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정상과 인연맺을수 있게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자기도 그 정상을 넘었다는 가치를 지니지 않고 이상세계에 같이 참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37-191
보다 큰 기준을 품고 싶으신 하나님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은 어떤 것을 택하겠습니까? 그런 때가 오게 될 때, 혼자 넘을 것 같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하든지 선생님을 따르는 무리와 더불어, 축복받은 가정과 더불어 넘을 것 같습니까? 선생님은 통일교회뿐만 아니라 통일교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민족과 국가와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와 함께 넘고 싶은 마음인 것입니다. 봄날이면 봄날의 환경에서, 그 중심의 자리를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서 넘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그 범위를 개인에게 국한시키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가정으로 넓히고, 종족으로 넓히고, 국가로, 전세계로, 천주까지로 넓혀 가지고 그 한때를 같이 넘고 싶으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기쁜 날을 갖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그런 날이 단 한 번밖에 없기 때문에 그 역사적인 한때를 온 세계 만민과 더불어 맞이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또 지도자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까지 개인의 승리를 들어 세계적으로 찬양할 수 있는 때를 못 가지셨습니다. 또한 가정을 들어 세계적으로 찬양할 수 있는 때도 못 가지셨고, 어떤 특정한 종족을 통해서도 세계적인 승리의 때를 갖지 못하셨고, 민족을 중심삼고도 승리의 입장을 갖지 못하셨습니다.

개인이 잘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세계와 연결시키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가정이 잘하고 있으면 그 가정만을 칭송하고 싶으신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이 잘한 것을 세계가 잘한 것으로 연결하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종족이 잘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세계에 연결시키고 싶어하시고, 또 민족이 잘한 것이 있으면 특정한 민족에만 남아지게 하는 것보다도 세계의 특정한 국제인으로 남아지기를 바라고 세계인으로 남아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때 기쁜 마음으로 개인을 칭송할 수 없었고, 가정을 칭송할 수도 없었으며,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들어 찬양할 수도 없었던 입장에서 지금까지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37-192
하나님의 심정에 보다 가까이 설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어야
그런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고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걸어온 과거와 현재를 생각해 볼 때, 어느 한때 통일교인으로서 우리 자신을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었던 때가 있었느냐 하면 통일교회도 역시 없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으로서 자랑할 수 있는 한때도 없었으며 종족으로서 자랑할 수 있는 한때도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가 우리를 환영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겠느냐는 문제를 두고 볼때, 대한민국만 환영해 가지고는 세계에 기쁘게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대한민국 자체를 그런 자리에 세우기 전에 대한민국이 세계화될 수 있고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한 터전을 바라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운명에 서 있는 통일교회를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운명은 어떻게 보면 슬픈 운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지내오고 지금까지 참아 나오신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내정적 심정에 가장 가까이 설 수 있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개인을 자랑하고 싶은 때가 있거든 그것을 개인의 때로만 맞으려 할 것이 아니라 가정과 더불어 자랑할 수 있는 한때로 맞이해야 하며, 가정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종족과 더불어 자랑할 수 있고, 또한 민족과 더불어 국가와 세계와 더불어 자랑할 수 있는 한때로 연결시켜서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즉, 개인과 가정과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일시에 자랑할 수 있는 한때를 맞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깊고 큰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과연 통일교회가 그런 때까지 남아질 수 있고, 또한 통일교회에 그런 것까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생애를 바쳐 수난의 길을 간다 하더라도 그것을 비통하게 생각해 가지고는 그런 한때를 연결시켜서 세계의 때로서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오늘날 결의하고 다짐하면서 신앙길을 나온 우리 통일의 무리들은 다시 혁신적인 내용을 갖추어 재차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작전해 나온 것은 오늘의 희생의 대가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천년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만민, 만세의 인연을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 가치를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이 지향해 나가는 방향이요, 노정인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나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 해방을 찬양함과 동시에 만가정과 만민족, 만국가를 찬양할 수 있는 그런 해방을 바라고 계십니다.

37-193
오늘의 기쁨을 미래의 기쁨으로 남길 수 있는 사람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여기에 합당한 전통적 사상이나 정신적인 뒷받침을 가진 문화와 문명권이 있었느냐? 지금까지 그러한 문화와 문명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통적인 사상이나 정신적인 뒷받침을 가지지 못한 문명권은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흘러가 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통일사상으로 말미암은 이런 사상적 뒷받침, 즉 전체의 공익을 위하고 전체의 공의를 바라보면서 오늘의 기쁨을 전체의 가치에 결부시키기 위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세계와 더불어 생명을 다짐하고, 세계와 더불어 인연의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그런 주장을 가지고 나아가는 새로운 문명권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문화가 창건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영원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문명권은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역사를 빛내고 찬란한 문화를 자랑할 수 있었던 그 어떤 민족보다도 더 새롭고 입체적인 문화권을 계승, 상속시킬 수 있는 문명권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은 잘살아야 되겠다, 잘되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잘살고 잘되어야 되겠다는 것이 김씨면 김씨를 중심삼은 어느 가정의 울타리권내에서 잘살아야 되겠다, 잘되어야 되겠다고 다짐하는 것과 세계권내에 있어서 잘되어야 되고 잘살아야 되겠다고 하는 것과는 천지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전자는 과거에 가까운 삶을 사는 사람이요, 후자는 미래에 가까운 삶을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한계권내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오늘만의 기쁨을 추구하는 사람은 내일과 맞부딪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쁨은 내일이 계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기쁨을 오늘의 기쁨으로만 지내 버릴 것이 아니라, 오늘의 기쁨을 미래에 남길 수 있도록 지니고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무한한 가치를 지닐 것입니다.

그런 사상, 자기를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주로 한 승리의 정상을 추구하는 사상을 지니고 하늘땅과, 과거에 왔다 간 영인들과, 현재의 인류와, 미래의 후손들이 공히 쌍수를 들어 이곳은 세계적인 정상이요 세계 만민이 기뻐할 수 있는 봄날을 맞고 있는 곳이라고 찬양할수 있는 그런 곳을 바라고 나간다 할진대는, 오늘날의 삶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 고통은 정상을 극복하고, 정상을 점령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겠느냐. 정상을 결정할 수 있는 하나의 재료로 남길 수 있는 생활은 그 누구도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보다 귀하냐 할 때, 자기를 위주로 하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주로 하는 것이 귀하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어느 역사시대를 통하여서도 그러한 한때를 들어 자랑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싶으신 한때는 어떤 때일 것이냐?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동방박사들이 와서 유향을 드리고 경배드리던 기쁨이나 혹은 천군천사가 기뻐하던 그 기쁨은 탄생의 기쁨은 될는지 모르지만 위업 상속의 기쁨은 못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창조의 위업을 완결하여 하나님께서 기쁨에 충만하시고, 만천하 피조세계가 호응하고 동조하는 찬양과 경배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며 출발하는 데 있어서의 찬양과 경배였다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출발을 통하여 과정을 거쳐 가지고 미래의 기쁨을 다짐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출발하는 자리에서의 기쁨이었지, 미래의 목적을 이룬 세계적인 정상에 있어서의 기쁨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바라던 예수님을 맞아 기쁨으로 출발했지만 출발했던 목적을 지니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비참한 운명이 남아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역사에 두 번 다시 없는 슬픔을 가중시킨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인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로 말미암아 아담 해와의 타락 때보다도 더 큰 슬픔 곡절에 부딪치셨기 때문에 그 아득함을 세 시간 동안의 어둠으로 나타내셨던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세계적인 정상으로 남기고 싶었던 그 소원을 기필코 이루셔야 하셨기에 어느 한때 어느 한 곳에서 한 분을 중심삼고 결정지어야 할 것을 다짐하시고 지금까지 수천년의 수난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를 양육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수난의 대가로 찾아진 기독교요, 수난의 역사를 탕감복귀하기 위한 기독교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신자 가운데에 수난의 역사를 장식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으며, 수난의 대가로 찾을 수 있는 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37-195
천주사적인 인연이 있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여기에서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없습니다. 그러나 절망을 느끼면서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절망에서 하늘의 소명의식을 스스로 느껴 더욱 분발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을 일으켜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운동의 기원이 이 지구성의 그 어떤 곳에서 모색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 성취와 인류의 소원 성취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한때를 위하여 몸부림치고, 이런 한때를 위하여 고생하고, 이런 한때의 출현을 고대하고 염려하는 무리가 있다 할진대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세계의 출발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것을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내가 다시 오겠다. 신랑으로 틀림없이 올 것이니 너희는 신부로 단장하라’고 했습니다. 만민과 만세 앞에 자랑으로 남길 수 있는 혼인잔치의 한 날을 약속하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럼 그 혼인잔치가 한국적이냐? 그것은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민족적인 것이 아니라 초민족적인 것입니다. 또, 그것은 종파적이 아니라 초종파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땅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것이며, 그 중심은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 중심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슬픔의 모습으로가 아니라 기쁨과 희열이 충만된 모습으로 그 한 날을 맞이하는 것이 소원인 것입니다.

이때야말로 세계적인 정상의 때요, 만민이 희망의 봉우리를 맞는 때요, 슬픈 역사를 종결짓는 때인 것입니다. 또, 이때야말로 모든 전체의 중심을 결하고, 모든 슬픈 역사를 제거하고, 새로운 기쁨의 역사가 출발할 수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과연 오늘날 통일교회가 바라는 이 이상노정에 있어서 그럴 수 있는 한 날을 가져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내온 길은 눈물의 길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수많은 무리들의 눈을 피해 가며 그늘에서, 혹은 몰림길에서 이 길을 다짐하면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만족해 하시고 바라시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들은 각성해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이상으로 각성해야 되고, 유대교단 이상으로 각성해야 되며, 예수를 따르던 사도들 이상으로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런 엄청난 천주사적인 인연이 오늘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에 맺어져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역사의 꽃으로서 등장할 수 있고, 우리의 생각 하나하나가 역사의 향기로 풍길 수 있는 것을 알고, 우리는 만민의 탄식을 전부 다 제거시킬 수 있는 청소부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사랑의 심정에 주름살이 잡혀 있고, 그 누구도 빼드릴 수 없는 마음에 못이 박혀 있는 하나님을 해원성사해 드려야 할 역사적인 대표자라는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있어서는 외적으로 차림이 초라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외적인 내 모습이 초라하거든 역사시대에 내적으로 초라한 모습으로 걸어가던 성현들을 생각하며 세계사적인 대표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해원성사하겠다고, 그들을 탕감복귀하겠다고 하늘 앞에 스스로 다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스스로가 만족하는 어떤 입장에 있게 된다면 그 만족은 내 개인의 만족만이 아니라 세계 인류와 함께 나눌 수 있는 만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더듬어 나온 것이 복귀섭리요, 인류역사인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렀고 이것을 위해서 수많은 피의 역사를 남기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민족은 나 하나만 기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7-197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재창조역사를 하시려면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진정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아느냐? 진정 하나님이 내 생활권내에 계신 것을 감촉으로 느낄 수 있으며 내 세포와 접촉되어 역사하시는 것을 확실히 아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만이 아닙니다. 현재와 미래의 하나님도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에 슬프셨던 하나님이요, 현재에도 슬프신 하나님이시라면 이 슬픔을 누군가가 가로막아야만 기쁠 수 있는 미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인데, 누가 하나님의 이 슬픔을 가로막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도록 전환시키겠습니까? 어떠한 개인이 그렇게 하고, 어떠한 가정이 그렇게 하고, 어떠한 종족, 민족, 국가가 그렇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 국가는 세계의 사조권내에 휩쓸려 가는 국가가 아니라, 그 권내에서 싸워 가지고 세계사조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선두에 선 입장의 국가라야 됩니다. 그래야만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자각을 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이때의 나라는 존재는 단순히 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부활을 대신한 나요, 시대의 맨 정상에 선 나입니다. 나무로 말하자면 종대 끝에 달려 하나의 열매가 될수 있는 나입니다. 즉, 슬퍼하고 지지리 못났다며 탄식하는 나가 아니라, 어떠한 어려움과 어떠한 고충이 있더라도 그것을 희열로 소화시켜 가지고 하나님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그 생활을 보증할 수 있는 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나가 되었습니까?

과거에 슬픔의 고빗길에서 후퇴할 수 없었던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면 내가 아무리 슬픔이 가중되는 억울한 자리에 부딪치더라도 후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후퇴라는 것을 생각하셨다면 오늘날 이 인류는 어떻게 됐을 것인가? 그런 자리를 지켜 나가신 그분이 우리 아버지, 내 아버지이고 우리는 그 아버지의 혈육을 받은 아들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의 빚을 갚아 드리고 청산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를 위해서 노력과 희생이 하나님이 하시던 것의 몇 배가 되더라도 응당히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겠다는 일념으로 나갈 때, 여러분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소원의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하신 것과 같은 슬픈 자리에 몰리게 될 때, `나 죽겠다’고 한다면 기쁨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수고하신 그와 같은 자리, 죽음길이 교차되는 그런 자리에 처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당신께서 가시는 수난길을 힘차게 넘어 보람 있는 내일의 희망의 일점으로 남겨 드리기 위해 내 피살을 그 터전 위에 남기며 가겠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이 되어서 역사가 넘어가지 못하고 역사가 뭉그러뜨리지 못하는 그 마음의 터전을 남겨 준다면, 거기서부터 하나님은 소원하시던 재창조 역사를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기필코 내가 이루어 드리겠다고 하는 데서부터 하나님의 새로운 손길이 임하실 수 있는 동기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십자가 노정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신 것이고, 또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납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면서 피살을 녹이는 죽음길에서도 원수를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할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을 알고 그렇게 가신 예수님의 마음 앞에 하나님은 제2 이스라엘권이 현현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도 그럴 수 있는 신앙 자세로 생애를 걸고 하나님을 붙들고 가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고는 천상의 위업을 이 시대와 미래의 후손 앞에 고이 남겨줄 수 있는 선한 조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7-199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금후에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있어서 행복이 찾아 온다면 그 행복을 통일교회만 받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만민과 더불어 자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승리를 하는 데 있어서도 통일교회만의 승리로 남기겠다고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역사의 지탄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새로운 미래의 소망을 계승시킬 수 있는 입장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런 터전은 남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만의 승리, 우리만의 영광, 우리만의 기쁨을 누리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축복받은 사람 중에 자기의 상대가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자기는 불행하다고 탄식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미래의 천국을 위해서 걸어 나오신 하나님의 슬픔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많은 가정 가운데 내 상대가 이런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걸 보시고 상대의 기준과 내 기준의 차이를 아실 것이니, 그 상대가 만족해 하지 않더라도 자기는 만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오래지 않는 장래에 복을 주실 수 있는 하나의 절대적인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 일생에 극복하기 어려운 수난의 길이 나타나게 될 때, 여기에서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 한스럽고 분하다고 탄식하기보다는 나에게 다시 오지 않는 한 기회로, 내 자체가 하늘과 더불어 같이 갈 수 있는 영광의 한 기회로서 고이 맞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여, 내 생명을 받아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이 그 사람의 종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죽음과 고통과 탄식은 역사와 더불어 청산되고 소망이 거기서부터 재출발되는 것입니다.

37-200
축복가정 부인들이 동원되어야 하는 이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가정에 있는 아주머니들이 일선에 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지시한 것은 우리 앞에 때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의 승리가 축복가정만의 승리로 결정지어져서는 안됩니다. 통일교회의 영광은 축복받은 사람만의 영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의 승리는 축복받은 가정을 위주로 한 승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승리를 어떻게 해서 민족의 승리로 연결시킬 것이냐? 승리는 가정이라는 울타리권내에서 하는 승리가 아니라 밖에 나가 중요한 짐을 짊어지고 하는 승리라야 합니다.

가정에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자리에 선 사람들이 아주머니들입니다. 그런 아주머니들을 일선에 내세우는 것은 그 가정의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정의 승리 이전에 민족의 승리를 다짐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민족의 승리로 남아지게 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나아가 새로운 전통을 세워서 세계의 승리의 기원으로 남아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마음에서 이번 일을 결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지금 당장은 비참하게 느껴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 나가는 시일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감사의 조건으로서, 역사적인 승리의 전통으로서, 민족적인 새로운 전기가 되는 것으로서 남아질 것입니다. 전후 좌우 안팎으로 비판해 보고 타진해 봐도 그 모든 기준의 승리의 결과는 초국가적이요, 초역사적인 것으로 남아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 아들 며느리가 핍박받는다고 반대하는 부모도 있을 것입니다. 또 이제야, 자기들이 소원하던 때가 왔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타격을 가한다고 돌아서서 저주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어떻게 하늘 앞에 남아지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면 이 길을 가야 되겠다는 무리와 이 길을 막아야겠다는 무리, 이 두 군상 가운데 어느 무리가 남아지겠습니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어느 무리를 남기시겠습니까? 반대하는 무리를 남기시겠습니까,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뜻의 길을 따라 나라와 세계를 위해 가겠다고 하는 무리를 남기시겠습니까? 남아져야 할 한때인 이 시대의 주인공을 찾아 세워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이라면 이와 같이 남편을 뒤에 두고, 자식을 뒤에 두고 연약한 아낙네로서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선두에 서서 나가는 걸음 앞에 하나님께서는 같이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런 일을 단행하면서 내심에 조금도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편안한 생활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내세워 가지고 내가 이익보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익이 있다면 내 이익이 아니라 나라의 이익으로, 세계의 이익으로, 역사의 이익으로, 인류의 이익으로, 하나님의 기쁨으로 남기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원이며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정상의 표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럴 수 있는 기쁨이 통일교회 내의 기쁨으로만이 아니라, 민족과 세계의 기쁨으로 남아져서 추모의 대상, 기억의 대상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길밖에 없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런 일을 단행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그칠 것이냐? 오늘날 통일교단의 축복가정의 부인들을 중심삼고 이런 일을 한 것이 하나님이 축하할 수 있는 기원이 됐다 할 때, 하나님께서는 남편도 그러기를 바라고, 사랑하는 자녀들도 그와 같은 자리에 보내고 싶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보내는 그 자체는 비참하더라도 역사적인 전체의 비참함이 나를 넘어서 앞으로 세계 전체 앞에 미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런 길을 명령해야만 되는 하늘의 입장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가야 할 천국 노정에 있어서 통일교회 교인들의 그 결의가 어떠해야 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분석 비판해 보고, 현재 내가 어떤 입장에 처해 있는가를 확실하게 규명지어야 할 때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37-202
섭리적으로 중요했던 1970년
오늘 `회고와 현재’라는 이런 문제를 두고 생각해 볼 때, 1970년도는 역사적인 7천년에 해당할 수 있는 때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던 바대로 최고의 정상이 되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끊임없이 흘러 나갈 것입니다. 이해가 오늘날 통일교회의 운명을 중심삼고 국가를 넘어 세계 전체, 하늘 전체를 통합하여 최고의 정상이 되었다면 그것은 1971년을 지나가도 1972년에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1970년도에 그런 자리를 갖지 못했다면 1971년도에는 1970년도에 갖지 못한 수난의 길까지 가중된 수난의 길을 기쁨으로 맞을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추어서 가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1971년도에도 그런 자리를 못 가졌으면 1972년도를 맞게 될 때 1971년도에 가지 못한 수난의 길을 달갑게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춰서 가야 됩니다.

1970년대를 통하여 1980년대를 바라보는 그 기간에 정상의 한때를 만들겠다는 결의를 했다면, 지나가는 1971년부터 1979년까지의 기간에 있어서, 정상의 한때를 갖지 못하여 가중된 수난을 감수하겠다고 다짐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강하고 담대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늠름한 자세를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결판을 지을 수 있는 제단을 묶어 바쳐 가지고 제사장의 제복을 입고 만민 앞에 서서 하나님께서 슬퍼하시던 자리를 넘어서 희열의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자리, 즉 `아버지’ 하면서 목을 붙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승리는 너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만민 앞에 너를 자랑하고 싶다고 하며 내세워서 만피조세계 앞에서 축복해 주시고 자랑하며 내가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이라고 공인해 주실 수 있는 세계적인 한때를 맞이해야 합니다. 통일교인에게는 이처럼 필히 맞이하여야 할 정상의 한때가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종족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민족을 찾아야 되고, 민족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나라의 주권을 찾아야 되고, 나라의 주권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세계의 주권을 찾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뜻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금년 1970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는 많은 일을 이루어 왔으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1970년을 맞으면서 지금이 이 나라와 결판할 수 있는 한때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을 맞으면서 부랴부랴 아시아 승공대회를 계획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비장한 결의로 그 일을 계획했던 것입니다. 원래 이것은 1970년도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일시적 계획으로 이 일을 한 것은 돌발적 사태를 방비하기 위한 내적인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급히 단행했던 것입니다.

그때 모든 기관들은 우리를 미워했습니다. 그런 환경을 뚫고 거기서부터 기반을 닦기 시작해 가지고 선생님이 염려하던 국가에 대한 모든 기준을 4월, 5월을 지나면서 모두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6월 초하룻날에는 결정적인 승리의 내용을 가지고 정보부장이 대통령 앞에서 승공연합을 중심삼은 통리교회의 모든 내용을 38분 동안 보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기간에 있어서의 반공연맹과의 싸움, 그 기간에 있어서의 정부의 최고 기관들의 우리에 대한 오해를 전부 무마시키는 공작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6월을 넘어서면서 우리는 한 고비를 넘기고 7월을 승리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로 삼아 가지고 9월을 정상으로 해서 10월에는 우리가 한국에 있어서의 승리적 조건으로 제시할 수 있는, 즉 새로운 역사시대, 새로운 세계 문화권 시대에 승리적 조건으로 제시할 수 있는 축복행사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축복행사가 대수롭지 않은 것 같지만 이 민족 앞에, 수많은 종파 앞에, 더구나 기성교회에게는 비수를 가하는 충격적인 사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온 수십년의 역사를 일년 동안에 서울을 위주로 하여 이 수택리 수련소를 중심삼고 작전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 목표를 중심삼고 과정을 거쳐왔는데 이제는 이것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가 문제입니다.

37-204
앞으로 통일교단이 결정지어야 할 일
지금까지 우리는 국가로부터, 민족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반대를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추방된 민족, 원수의 족속과 같은 맨 끝의 입장에서 삼천리 반도 남한 땅에 한 기준, 한 점을 마련해 가지고 그 점에서부터 지방으로 올라와 가지고 분파적인 점작전을 전개시켜 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서울에서 우리가 바라던 균등한 승리의 터전을 닦게끔 된 것입니다. 서울이 주체적인 입장에 섰다는 사실은 정상적으로 1970년대의 출발코스를 달릴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970년대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과정에 있어서 여러분은 금년 한 해를 무의미하게 지내왔을지 모르지만, 뜻을 책임지고 나가는 선생님에게는 심각한 해였습니다. 슬픈 과거를 잊을 수 있는 한때를 맞이하여, 이 한때를 통하여서 기뻐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그 기쁨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기쁨으로만 남아지게 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민족의 기쁨으로 세계의 기쁨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우리는 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가정의 부인들을 동원한 것은 비참한 것입니다. 내가 엊그제 지방의 몇몇 집을 돌아보며 엄마가 없는 아이들은 어떠한가 살펴보았습니다. 벌성벌성한 그 아이들을 볼 때 기가 막혔어요. 마음으로만 `너희들, 엄마가 보고 싶을 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너희들 엄마는 뜻을 위하여 3년 기간을 탕감해야 된다. 이 기간이 예수님의 3년 공생애 기간에서, 대상을 맞이한 기반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여성으로서 탕감복귀해야 할 책임분담의 기간이다. 그래서 이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또한 전체를 탕감시킬 수 있는 내용의 심정적 터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엄마가 동원된 것이다. 너희가 지금은 모르지만 앞으로 이것은 너희의 자랑이요, 너의 가정의 자랑이 될 것이다. 앞으로 너희의 입을 통해서 어머니를 찬양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생각하면 너희는 외로운 고아가 아니다. 마음속에 길이길이 높고 귀한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너희는 얼마나 행복하냐’ 하고 마음으로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보기에 그것은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이런 길을 가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런 길을 안 가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통일교회를 현재 입장에서의 정상으로 귀결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정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런 길을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세계적인 정상의 인연을 세울 수 있는 제일 높은 전통을 남겨 놓아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정상의 인연을 세워야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이 길을 가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1970년을 지내오면서 여러분 마음 가운데 가장 기억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는 순간이 어느때였습니까? 여러분이 걸어나온 1960년대는 하나님의 슬픔을 중심삼은 개척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슬픔의 개척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쁨의 개척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새 기준의 세계로 달려가야 할 현재 입장에서 세계를 감동시키고 세계의 전통과 세계의 사상의 기원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쁨을 느낀다면 그 기쁨을 우리만의 기쁨이 아니라 세계의 기쁨으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며, 그 기쁨을 느끼지 못할 때는 세계의 슬픔을 도리어 눈물로 바꿔칠 수 있는 마음을 앞놓아 나가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정상적인 생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살아 나가는 사람은 역사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요, 시대를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의 승리를 이어나가는 것이요, 시대의 승리를 계승시켜 나가는 것이요, 미래의 승리를 결정지어 나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느끼는 보람은 역사의 보람이요, 시대의 보람이요, 미래의 보람인 것입니다. 그러한 내가 될때 역사상의 선조들은 내편이 되는 것이요, 현세계의 인류는 나를 중심삼고 움직일 것입니다. 또 그러한 내가 됨으로 말미암아 미래의 후손들은 나를 중심삼고 모든 역사의 기쁨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단에서 결정지어야 할 일입니다.

슬픔으로 엮어 오던 역사를 기쁨의 역사로 바꿔 놓아야 합니다. 그 기쁨을 내 개인적인 승리에 대한 기쁨이 아니라, 세계와 더불어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기쁨으로 연결시켜 놓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이것은 최고의 정상이니만큼 최고의 정성을 다짐해야 합니다. 최고의 인내와 극복을 다짐하면서 스스로의 신앙길을 비판하며 나가야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판해 나가게 될 때는, 어려운 십자가의 길을 슬픔으로만 지내 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드시 기쁨으로 장식해 가지고 보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지옥에서의 생활일지라도, 천국에 남아질 수 있는 생활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7-206
기 도(Ⅰ)
아버님, 어제 수택리에서 어느 교수의 말을 듣고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통일교회의 원리는 기독교의 새로운 면을 모색하였고, 불교의 핵심적인 내용을 결함없이 내포하였으며, 유교와 도교의 내용보다도 더 고차적인 내용을 갖추고 있다고 그 교수는 말하였습니다. 또한 통일교회의 원리는 이론적이고 과학적이며, 오늘날 세계의 어떠한 학문보다도 최고의 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름있는 교수를 통하여 칭송받을 수 있는 한때를 가졌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보잘것없는 코흘리개와 같은 이 철부지 통일의 무리들이 한을 풀 수 있는 때가 목전에 다가온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당신께서 이렇게 귀한 것을 보잘것없는 저희들에게 일러 주셨기에 저희들은 그것을 다 흘려 버릴 줄 알았는데, 기필코 이 민족의 지식인을 통하여 그것을 고귀하게 찬양받을 수 있는 의인의 역사를 남겼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통일교회에 남아 있는 모습들이 아무리 못나고, 아무리 무식하고, 헐벗고, 또 아무리 철부지라 하더라도 이들이 전면적으로 이런 실적을 거두기 위해 싸워 나온 역사적인 이 사실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불쌍하였던 통일의 무리들이 이제 한때를 맞이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러나 그런 실적이 10년, 20년 전에만 있게 되었던들 오늘날 인류는 신음하는 역사의 비운권내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산당의 침범을 받아 갈 길을 잃고 회개의 보따리를 풀어 놓고 자기 자신을 분석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될 비운의 자리도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탄식과 절망에 부딪쳐 가지고 갈래야 갈 수 없는 자기 자체를 두고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는 이 처량한 종말은 맞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 모든 사연은 대한민국이 책임하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한민족이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을 느끼게 될 때 이 시간도 아버지 앞에 이 민족의 부족한 모든 점을 용납해 달라고 사연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아버지,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간 20년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천상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이었으나 그렇지 못하고 한을 품고 영계에 가서 한민족의 선조들을 얼마나 참소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이날을 위하여 일하다 죽은 충신열녀들이 얼마나 딱한 사정에 몰려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럴 때마다 저희들은 이 자리를 떠나서는 결코 새로운 뜻을 모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영계에 있는 선조들이 우리가 지금까지 이렇게 수난을 당하며 고생길을 가는 것을 놓고 우리가 잘못한 것을 풀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하나의 조건을 남겼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렇게 선조들을 얼굴을 들 수 있는 자리에 세우지 않고는 그 후손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러한 눈물의 길을 걸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지난날의 슬픔에 대해서도 저희들은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선조들이 잘못하게 될 때에는 그 후손도 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한 선조의 인연이 있었기에 저희들이 부끄럽지 않는 소원의 일념을 다질 수 있었고, 또한 오늘날까지 이렇게 걸어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오늘날 한민족 가운데에는 저개발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난 것을 탄식하는 무리가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통일교회의 무리들은 피눈물나는 이 길을 가면서도 내일의 천국을 소망하며 구김살없이 늠름하고 씩씩하게 투쟁해 나왔습니다. 이것은 막막하였던 이 민족 앞에 새로운 소망의 일념을 주고, 장한 민족 창건의 기원을 만들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며, 그것이 이 민족에게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동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여기에는 눈물어린 통일교회의 역사시대가 있었기 때문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게 한스러운 어려운 길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역사상에 탄식과 비애와 핍박의 화살들은 다 지나갔사오나, 통일교회 역사만은 슬픈 역사로 남아졌사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후대 만민의 가슴 위에 스스로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한 기원이 되어 복귀도상에 있어서 세계인이 아버지와 눈물로 상봉하도록 가까운 거리로 인도할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해 주기 위함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될 때, 지나가버린 눈물의 길, 낙심의 길, 고독의 길, 처량했던 길이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역사를 장식할 수 있고, 미래에 작용되어 선한 종족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이 될 것으로 아옵니다. 그러기에 전통을 세우고자 부르짖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아버님께서는 저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런 전통을 남기라고 하셨고, 저희들은 이러한 당신의 사랑을 올바로 가르쳐 줄 수있는 전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이렇게 수고하셨다는 것을 보여 주고 가르쳐 줄 수 있는 산 전통을 세움으로써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민족정기가 종족과 민족을 넘어 초세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기원이 세워졌고 이제는 핍박하는 사탄들의 화살촉을 견뎌내고 남아지게 되었사옵니다.

오늘 통일교회 위업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일면 보면 이것은 아버님의 슬픔이었사오나 저희들은 거기에서 새로운 소망을 갖고 내일의 승리의 세계를 향하여 다시 달릴 수 있게 되었사옵니다. 이러한 시점을 맞게 하여 주신 당신의 은사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께서 수고하신 터전이 있기 때문이요,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희생한 대가인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 저희들은 거기에 감사드리면서 다시 살아 남은 현재의 조상들로서 후손 앞에 비판받는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의 승리는 통일교회만의 승리가 아니라, 민족의 승리요 한국의 승리요 세계의 승리로 남기게 하여 주시옵고, 그것을 다짐하고 나아가는 거룩한 무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민족 앞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선봉에 서게 하시옵고, 세계 앞에 끌려갈 것이 아니라 세계를 끌고 가는 무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천상세계의 조상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찬양을 받는 무리, 아버지의 사랑 앞에 부끄러움의 눈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환회의 눈물로 아버지를 위해 드리는 무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께 기쁨의 영광을 드리기 위하여 내 슬픈 모습을 잊고서 효자, 충신의 모습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여,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저희는 슬픔의 1960년대를 보내고 1970년대를 맞이하여 이 70년대에는 기쁨의 한 날을 맞을 수 있게끔 아버지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금년에 되어진 모든 전부가 아버님의 자랑이 되고 아버님의 영원한 승리가 되어 통일교회를 자랑할 수 있는 기점으로 삼아 주시옵고, 이 기점이 만민의 가슴 가슴에 이어질 수 있는 자유로운 상속의 터전이 되도록 복을 빌어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 `회고와 현재’라는 말씀을 중심삼고 저희들의 가치적인 내용이 이러한 데에 있다는 것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보람있는 1971년도를 맞고 보람있는 1970년대를 맞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최고의 정상의 기쁨을 저희가 죽기 전에 저희 일대에 맞을 수 있게끔 저희들은 분발하고 총동원할 것을 이 시간 결의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참부모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7-209
기 도(Ⅱ)
아버님, 이 몸이 생애를 바쳐 당신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 몸이 이 생명을 다 바쳐서 충성의 도리의 전통을 세우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아침에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진정한 의미의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둘도 없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 당신을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모시고 다닐 수 있고, 당신의 마음이 떠날 수 없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부디부디 그럴 수 있는 이들이 되게 격려하여 주시옵소서. 땅 위의 낙오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사오니 부디 붙들어 주시옵고, 당신의 마음 세계에 품으시어 교육하여 주시옵소서.

1960년대와 1970년대가 교차되는 1970년도를 넘기는 시점에 서 있는 이 아침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 아침에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것을 심어 주시옵소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에 대한 흠모의 심정만이 저희에게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충성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효성을 다하게 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상속해 주고 싶은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아침 통일의 자녀들이 부족한 자신들을 뒤돌아보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께서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자리에 서 있는 딸이 있거든, 제가 외로울 때 권고해 주시던 것처럼 아버지여,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마음으로 염려하는 어린 자녀들을 아버지 품에서 양육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딸들을 생각하는 남편들이 아버지 앞에 진정 효도를 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1960년대에는 축복받은 가정들이 문제되었지만, 1970년대를 맞으면서는 개문할 수 있는 영광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스러운 역사적인 서러움을 떨쳐 버리고 소망으로 찾아오는 당신의 기쁘신 날, 당신의 승리의 날을 고이 맞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를 복되게 받으시옵고, 이 1970년도에 슬픔이 있었거든 이 시간 저희들이 간곡히 요구하는 것을 들으시옵고 떨쳐 버리시옵소서.

6천년 역사를 통하여 해원성사하지 못하신 당신의 한을 해원성사하고, 1971년을 힘차게 맞이함으로써 최고의 정상의 길, 최고의 수난길도 달갑게 맞겠다고 결의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모든 전체를 당신의 긍휼 가운데서 인정하시옵고 공인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동정과 자비와 긍휼이 이들에게서 영원히 떠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