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7 to 37-110: 통일교회의 현재의 입장

통일교회의 현재의 입장
1970.12.22 (화), 한국 전본부교회

37-07
통일교회의 현재의 입장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 나오는 데 있어서 여러분 가정에서의 개인적인 십자가는 떠났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가고 있는 길 앞에는 아직 십자가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여러분 개인을 대해 가지고 지도했던 선생님의 입장과, 오늘의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중심삼고 대하는 선생님의 입장은 다릅니다. 그러면 어느때가 더 심각한 때냐? 그때도 심각했지만 지금 이때가 더 심각합니다.

37-07
교회는 발전했으나 식구들은 후퇴한 이유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의 심정적인 자세가 그때보다 많이 변하였습니다. 역사적인 배경이 달라지면서 통일교회 교인들이 변화 발전된 것 같지만, 이것은 점진적인 발전이 아니라 점진적인 후퇴와 같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통일교회는 점진적인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옛날보다 선생님이 더 심각한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먼 훗날을 중심삼고 국가와 민족을 대해 일해 나왔었습니다. 해원성사해야 할 한때가 기필코 온다는 것을 알고 그때를 바라면서 어려움을 참아 나온 것입니다. 이제 바라던 그때가 왔습니다. 그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는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께서 중심인물을 두 번 택해 가지고 역사한 때가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을 두 번 택해 가지고 역사를 했지만 그것은 조건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인물을 한 번 택하시고 그 중심인물이 때를 놓쳐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 인물을 다시 세워 두 번, 세 번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때를 한 번 놓치면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때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지금의 통일교회 식구들은 초창기에 핍박박던 외로운 식구들보다 더 비장한 심정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촌보도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자리에서 싸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인으로 말미암아 발전해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왜 이런 차이가 있게 되었느냐? 여러분은 선생님과 같이 심각한 입장에 서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일체를 하나님과 동화되어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한다는 것을 느끼지만, 오늘날 여러분들은 자기의 어려움을 중심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려움을 더 생각하고 동정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어려움은 잊어버리고 자기만을 동정해 주기를 바라는 입장에 서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갈 길이 막혀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37-08
절대적인 것의 속성
여러분, 참다운 효자는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보통의 환경에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가진 기반 위에서 응당히 부모에게 해야 할 도리를 다하면서 예법을 갖추어 효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부모의 유산도 없고 가진 재산도 없는 입장에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온갖 노력과 정성을 다하여 자식된 도리로써 부모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갖춘 환경에서 효도하는 자와 어려운 환경에서 자기 스스로 개척하여 효도하는 자를 비교할 때, 이것은 천양지차입니다.

신앙에서 말하는 생명이라는 것은 둘이 타협해서 되어지거나 환경과 인연을 맺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자리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이 절대적인 자리는 모든 사람이 바라보고 춤추며 좋아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절대적인 자리는 지극히 고독한 자리입니다. 절대라는 것은 상대요건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 자리는 지극히 어렵고, 지극히 답답하고, 지극히 고독하고, 위험하다면 지극히 위험한 자리입니다.

그 절대적인 것이 진행할 수 있는 방향은 어떨 것이냐? 두 방향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위한 절대존재는 악 때문에 후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악 앞에는 갈 수도 없습니다. 언제나 선한 자리에서의 절대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 엘리야도 호렙산에서 하나님께 `오직 나만 남았나이다’ 하고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그 사회의 모든 사람과 제사장까지도 바알신 앞으로 가 버렸지만,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서 있는 사람은 엘리야 혼자였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귀한 것입니다. `나밖에 없습니다’ 하는 자리, `이 땅 위에 많은 인류가 있지만 그 가운데 아버지 앞에 남아진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하는 자리가 절대적인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을 자각해 가지고 독자적으로 새로운 창조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어려운 길도 개척해 나가겠다고 각오하고 나설 수 있어야만 하나님이 재창조역사를 출발하는 데 있어서 상대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런 자리에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독자적인 자리에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기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창조원칙을 따라 재창조의 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독자적인 기준을 어떻게 자각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절대적인 자리는 지극히 외로운 자리입니다. 무엇 때문에 외로우냐? 인간이 타락하여 악하게 되었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슬프냐? 악한 환경에 있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그것이 축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자리는 무엇 때문에 비참한 것이냐? 악한 세상 가운데 하나의 점밖에 안 되는 선한 자리이기 때문에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비참함이 비참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비참한 환경을 개척하고 고독한 환경을 타파하게 되면 거기에서 고독을 능가할 수 있는 새로운 선의 기쁨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의 기쁨은 어디에서 발생하느냐? 여러분은 무슨 좋은 일이 있으면 자랑을 합니다. 예를 들어 시험 점수가 10점밖에 안 되는 학생들 가운데 11점 맞은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은 어떻게 하겠어요? 자랑하겠어요, 안하겠어요? 자랑할 것입니다. 그러면 11점이 제일입니까? 그것을 제일이라고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볼 때는 10점밖에 안 되는 수많은 교파와 수많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조금 낫다고 `통일교인이 이만하면 자랑해도 되겠지’ 하면 되겠습니까? 그 절대적인 기준은 천리 만리 떨어져 있는데 자기가 낫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잘난 사람이에요, 못난 사람이에요? 절대적 기준에서 봤을 때는 미쳐도 대낮에 미쳤다는 것입니다.

또, 90점 맞은 사람들 가운데 91점 맞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자신을 자랑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낫기는 하지만 절대적 기준에서 보면 그 사람도 미친 사람입니다. 조금 덜 미친 노이로제 현상권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 100점을 중심삼고 볼 때 99, 999 하고 여기에 9자를 십만 개, 일억 개 이상 아무리 갖다 붙여도 100점에 대할 수 있습니까? 100점에는 대하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그 차이는 털끝만큼도 없어 보입니다. 눈으로 보면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눈이 깜박깜박하는 것과 여러분의 눈이 깜박깜박하는 것이 같지요? 그렇지요?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절대 틀리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절대 존재의 속성은 유일해야 되고, 불변해야 되고, 영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37-11
절대적인 생명
생명이 절대적이에요, 상대적이에요? 「절대적입니다」 절대적인 것으로 하고 싶다는 거예요. 절대적인 것은 누구나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절대자 앞에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시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에 절대적인 요소가 있다면 절대자가 절대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절대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 있기 때문에 절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생명체를 절대시하려고 하느냐? 하나님이 내 생명체를 상대적 입장에 두고 좋아하시기 때문에 절대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절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절대자라 해도 외발 가지고 움직일 수 없습니다. 외발로 암만 움직이려고 해도 그냥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좋기는 뭐가 좋겠습니까? 여러분도 혼자 앉아서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좋습니까? 혼자서 `아, 나는 백만장자가 되어 돈이 이렇게 많다. 아이구 좋다’ 하면서 좋아 할 수 있습니까? 한편으로는 좋다고 하더라도 나 혼자 좋아해서는 안 되겠다고 하면서 이것 보고 좋아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좋아해 줄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절대자의 자리는 외로운 자리입니다. 거기에 자기의 기쁨이 있다 하더라도 안팎으로 지니고 있는 그 기쁨은 자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쁨의 자극을 받기 위해서 천지를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 절대자의 상대적 입장이요, 그 절대자는 우리의 상대적 입장에 섰는데도 상대를 절대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좋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속닥속닥 이야기할 수 있고, 웃고, 무엇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혼자 있으면 그럴 수 없습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좋은 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서로 상대적으로 주고 받으면 그때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가 상대적 입장에서 우리를 절대시하는 입장에 세운 것은 좋아하기 위해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좋아하기 위해서…. 창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좋아하느냐? 손으로 만지는 것 가지고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비둘기를 만져 보았어요? 비둘기를 잡아서 만져 보면 보들보들하고 아주 말랑말랑합니다. 만져 볼수록 정이 듭니다. 한번 잡아서 만져 보세요, 어떤가. 손으로 만질 때 좋다고 느껴지는 것이 손으로만 좋은 거예요? 무엇이 어떻게 좋은 거예요? 만지고 있는 손만 좋아해요, 보고 있는 눈만 좋아해요? 그것만이 아니라 내 몸 전체가 좋아합니다. 그러니 밥먹는 것도, 냄새맡는 것도, 보는 것도 몸 전체가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좋기는 다 좋은데 그중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상대자밖에 없습니다. 내가 `얘야’ 하고 부르게 되면 상대적으로 `네에’ 하고 대답하고, `야’ 하고 부르면 `응’ 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를 다정스럽고 부드럽게 `여보오’하고 부르면 다정하고 부드럽게 `왜 그래요’ 하고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퉁명스럽게 `여보’ 하고 부르면 똑같이 `왜 불러’ 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산울림과 마찬가지로 다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먹는 것입니까? 그것이 제일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밥을 보면 좋다고 먹지만 그런 것은 일시적이라는 거예요. 실컷 먹고 나면 먹을 것을 더 주어도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대해 가지고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나는 잊어버릴래. 싫어’ 하는 사람이 있어요? 봐도 봐도 자꾸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보아도 또 보고 싶고, 또 보아도 또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네가 앞에 서고 내가 뒤에 서고 하면서 수레바퀴같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하다가는 현재의 입장까지 언제 오겠나? 지금 6천년 역사가 출발했던 자리에서부터 돌아가고 있잖아요. 그렇지요? 그러니 빨리빨리 이야기하자구요? 「천천히 해주십시오」 천천히 하자구? 「예」 아침 못 먹게 되면 배가 고프잖아요? 「먹고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먹고 나도마찬가지예요? (웃음)

하나님의 상대의 자리에 서려면 절대적인 가치를 지녔다는 공인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 창조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절대자가 사람하고 비슷한 원숭이를 하나님의 상대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로 공인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원숭이를 보고 `원숭이님’ 할 수 있도록 원숭이가 그런 소성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숭이님, 이리로 왕림하십시오’ 할 수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37-13
인체는 신비의 왕궁
과학에서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모든 존재물은 자연 발생하여 진화발전한 것이다. 창조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것이 맞습니까? 원숭이와 사람은 차원이 다릅니다. 인식 기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원숭이 세계에 꿈이 있을 수 있어요? 인륜 도덕과 같은 내용이 있을 수 있어요? 없다는 겁니다. 원숭이의 생활은 일방적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입체적입니다. `그러면 일방적인 것이 어떻게 입체적이 되느냐’고 물으면, `그것은 적응해서 그렇다’고 할 겁니다. 수작이 좋지, 적응이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선생님이 한 가지 물어봅시다. 여러분, 하나님 봤어요? 하나님을 못 본 사람 손들어 봐요. 하나님은 언제나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까요? 「예」

여러분, 눈이 어떻게 생겼어요? 새까맣게 생겼지요? 이 눈이 깜박깜박하면서 윙크하기도 하는데 얄궂은 것입니다. 이 눈이 태어날 때부터 `나 눈으로 태어난다’ 하면서 태어났겠어요, 태어나다보니 눈으로 태어났겠어요? 「태어나다 보니 눈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이 눈이 생길 때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이 눈이 모태 안에 있을 때 내가 태어나게 되면 태양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습니다」 몰랐다면 눈이 어떻게 이 태양을 볼 수 있게 생겨났을까요? 「선천적이기 때문입니다」 선천적인 것?

그러면 종지조상인 아담 해와의 눈이 생겨날 때도 `나는 그저 태어나다 보니 이렇게 생겨났다’ 했겠어요, 아니면 `태양이 있는 것을 알고 이렇게 생겨나야 되겠다’ 해서 생겨났겠어요?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만약 눈 자체가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생겨나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아마 눈에게 물어보면 `내가 눈으로 생겨나면서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알았다는 것이 태양보다 먼저겠어요, 나중이겠어요? 「알았으면 먼저 있어야 됩니다」 먼저여야 되는 것입니다. 다 알고 태어났다는 거예요. 눈이 이렇게 생긴 것은 밖으로 나오면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안 존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귀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귀가 생겨나면서 이 땅 위에 공기가 있는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이 귀가 무엇 때문에 밖으로 이렇게 만들어졌겠어요? 공기가 도망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공기 속의 음파를 잘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멋진 화음통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장난감처럼 `얘 귀야, 네 마음대로 이렇게 돼라’해서 그렇게 되었겠어요?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이렇게 되는 것이 있어요?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가 나올 수 있겠어요?

그러니 귀 자체가 이런 화음통을 달고 나올 때에는 이 땅 위에 공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알았습니다」 귀 자체는 몰랐다고 하더라도 본체는 그런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모두 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귀가 뒷쪽으로 거꾸로 붙었다면 어떻겠어요? 뒤집혀 붙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말이 잘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큰일날 것입니다.

또, 코를 생각해 봅시다. 이 코가 이 땅 위에 태어나서 공기를 통해서 냄새를 맡아야 하는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다 알고 나왔지요? 「예」 그런데 만약 코가 거꾸로 붙었다면 어떨까요? 소낙비가 오는 날에는 큰일나겠죠? 생각해 보세요. (웃음) 그러니 코가 얼마나 멋지게 생겼어요? 소낙비도 자연히 방지하면서 냄새도 맡을 수 있게끔 코가 나발 모양으로 얼마나 잘 되어 있습니까? 공기가 들어오면 코가 잘 감독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공기 중의 불순물들을 놓치지 않고 감독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보다 잘 알았나요, 못 알았나요? 여러분들보다 코가 나아요, 안 나아요? 「낫습니다」

또, 입은 밥도 잘 먹어야 하지만 말도 해야 합니다. 이 입술을 보면 말을 할 때 얼마나 찰감태기처럼 합니까? 위로 올라가라 하게 되면 생각과 동시에 쑥 올라가고, 내려가라 하게 되면 생각과 동시에 내려간다는 거예요. 그런데 생각하고 나서 말하려고 하는데 이게 닫혀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말할 수 있어요? `야’하고 누구를 부르려고 생각하고 나서 입이 닫히려고 하는데 벌어져 있으면 되겠습니까? 생각과 더불어 박자가 척척 들어맞게 되어 있습니다.

또, 혀를 보면 그 무슨 재간이 있는지 잘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참 멋없이 생겼습니다. 손바닥 같은 혀가 어디에 쓸 데가 있습니까? 그런데 이놈의 혀가 천지에 비상한 재간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다 알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혀가 없으면 말할 수 있어요, 없어요? 어떤 경우에는 길게도 되고, 어떤 경우에는 납작하게도 되고, 어떤 경우에는 동그랗게도 되고, 여러가지로 변합니다. 사람이 발음할 때도 뭉퉁, 뭉퉁, 미끈, 불쑥, 찔숙 이렇게 제멋대로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이빨이 나 있습니다. 이것이 아주 위험합니다. 얼마나 위험한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린애 손보다 더 연한 것이 혀입니다. 그런데 이빨이 밤낮 마주치는 그 사이를 혀가 들락날락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위험한가. 아마, 혀는 이빨이 움직일 적마다 원자탄이 지금 내 앞에서 부딪치는 것 같을 것입니다. (웃음)

그렇지만 아무 사고가 없다는 거예요. 이빨과 가끔 서로 마주치면서 끝이 조금 물리는 때는 있지만 혀를 깨물어서 잘리는 것은 없습니다. 이게 어쩌면 그렇게도 잘 알고 서로 박자를 잘맞추면서 잘 놀아나느냐 이겁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혀야, 너 이런 말을 할 때는 큰소리 내면 큰일난다’ 하고 생각하면서 말하고, 이빨이 마주칠 때는 `주의해라. 주의해라’ 하면서 주의를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잘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혀는 밥 먹을 것을 알고 태어났다는 거예요. 또한 이빨도 반드시 무엇을 깨물어 먹어야 할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손을 보더라도 이것이 앞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뒤로 구부러진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그래도 이것이 앞으로 구부러져서 무엇이든지 전부 다 잡을 수 있다는 겁니다. 손이 생겨나면서 그걸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몸은 신비의 왕궁입니다. 신비의 왕궁. 무슨 과학자니 무슨 학자니 하는 사람들이 뭐라 해도 그것은 다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손가락 하나를 연구해서 책을 쓴다면 몇천만 권의 책을 써도 다 못 쓴다는 것입니다. 인체가 신비의 왕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는 400조 이상 되는 세포가 전부 다른 작용을 하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을 확대시키면 이 우주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무 충돌없이 조화를 이루어 하루의 생활, 일년의 생활, 일생의 생애를 영위할 수 있는 신비로운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그것이 그냥 그대로 자연히 적응하고, 자연이 발전한다고 말합니다. 이놈의 자식들….

37-16
힘의 작용 법칙과 진화론
하나에서 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에서 둘이 되려면 여기에 플러스되는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 힘을 누가 보태 주느냐? 그 자체가 힘을 파생시켜 나가면 발전하는 거예요? 그런 원칙은 없는 거예요. 제3의 힘이 부가되지 않으면 커지지 않는 것입니다. 시일이 갈수록 힘은 소모되는 것입니다. 전기에서 입력과 출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입력과 출력이 같아지는 법이 있습니까? 입력된 전기가 출력되어 나가면 그 힘이 커지겠어요, 작아지겠어요? 절대 작아지는 것입니다.

진화론에서는 발전이 어떻게 됩니까? 진화론은 입력과 출력의 법칙과 반대입니다. 세상에 이런 원칙이 어디 있습니까? 진화론은 절대 커지는 것이지요? 「작아집니다」 진화가 작아진다는 말이에요?

진화론에서는 아메바가 자연 발생해 가지고 점점 커 올라가서 원숭이로 진화발전하고 사람으로 진화발전했다고 합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그것이 커지는 거예요, 작아지는 거에요?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의 원칙에 있어서는 입력과 출력이 같을 때 절대로 커질 수 없습니다. 작아지는 것입니다. 힘의 소모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힘이라는 것은 작용을 하여 생겨나는 것입니다. 작용 없이는 힘이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을 부정해요? 힘이 작은 데서부터 생겨서 커졌다고요? 그런 논법은 이제 끝나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체를 두고 보면 태어날 때부터 전부 다 알고 태어났습니다. 그렇지요? 나는 몰랐지만 내 아버지 어머니는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만들어 놓고 `너는 태양 빛이 있기 때문에 요렇게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눈이 몇 층으로 되어 있습니까? 흰 자위, 검은자위, 눈동자로 되어 있습니다. 소생 장성 완성으로 딱 들어맞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코도 보면 구멍이 하나, 둘 있고 안쪽에서 하나로 합해집니다.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귀도 보면 그렇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종합되어 가지고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손가락도 접어 보면 이렇게 하나 둘 셋입니다. 전부 살펴보면 이렇게 셋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 질서정연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37-17
하나님을 상징하고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눈
여러분도 자신의 얼굴을 보고 내 얼굴이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눈을 보면 신기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기한가 가만히 들여다 보세요. 눈을 보면 눈까풀이 창살같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것을 만들었을까요? 이것이 필요한 줄 알았어요, 몰랐어요? 「알았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눈은 쓰레기통이 되는 것입니다. 동풍이 불고, 서풍이 불고, 남풍이 불고, 북풍이 불게 되면 먼지들이 다 눈에 들어갈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눈썹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을 깜박깜박해서 눈에 먼지가 들어가더라도 깨끗이 청소해 준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뻣뻣하게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큰일나는 것입니다. 이 눈까풀이 청소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그걸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 눈썹은 뭐예요? 송충이같이 시커멓게 생겨 가지고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씩이나 이마에 떡 달라붙어 있습니다. 이것을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야, 잘 붙었구만’ 하고 기분 좋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떡 버티고 있으면서 필요하지 않는 것을 제거시킨다는 거예요. 그 털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기에 눈썹이 없다면 이마에서 땀이 흐르면 어디로 가겠어요? 눈속으로 직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눈썹이 있기 때문에 피해 가는 것입니다.

또, 눈은 안으로 약간 들어갔지만 가장자리는 드러나게 해 놓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 눈물이 흐를 때에는 그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쪽으로는 절대 못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행동으로 설명하심) 그렇지요?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몸이 얼마나 신비로운지 모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것을 가만히 보면서 `하나님이 눈썹을 만들더라도 이렇게 기묘한 재간으로 만드셨구나’ 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것이 쓸 데 있는 거예요, 쓸 데 없는 거예요? 「쓸 데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 갖다 붙였습니까? `이것도 자연 발생이다’ 하겠어요? 눈썹도 자연히 발생한 것입니까? 자연히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눈을 이렇게 배치했습니까? 만약 이 눈이 머리 뒤에 붙었으면 어떻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런 것을 알아야 됩니다.

목이 무엇 때문에 왔다갔다하고 움직입니까? 눈 때문에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눈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무슨 생물이든지 생겨날 때 가만히 보게 되면 눈부터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개구리도 알에서 생겨날때 보게 되면 눈이 아주 큽니다. 눈부터 생겨난다는 거예요. 그것 이상하지요? 그래서 눈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코는 아담 해와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얼굴은 우주를 상징합니다. 얼굴 중앙에 있는 코가 아담 해와를 상징한다는 거예요. 코가 잘생겨야 잘산다고 그러지요? 코가 못생겼으면 아무리 잘생긴 얼굴이라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코가 잘 생겼으면 아무리 못난 얼굴이라 해도 균형이 잡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코가 납작하게 생긴 사람을 보면 `아이구 재수없어’ 그럽니다. 벌렁코를 보면 흉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코가 잘 생겨야 됩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의 코를 자꾸 바라보면 기분 나쁩니다. (웃음)

사람의 성격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성품은 천성을 따라오기 때문에 눈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서 도둑놈 사촌쯤 되는 사람 고르라고 하면 대번에 골라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 선생님이 전문가입니다. 관상쟁이는 아지니만 말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을 시집 장가 보낼 때 좋은 신랑도 만나게 해주고 나쁜 신랑도 만나게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 정성을 많이 들인 사람에게는 좋은 신랑을, 정성을 안 들인 사람에게는 얼굴이 잘생겼어도 나쁜 신랑을 만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될 것이 아니겠어요? 그의 선조가 선하고 후손이 뜻을 위해 충성했으면 좋은 신랑을 만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기에 대해서 반대합니까? 아가씨들 거기에 대해서 반대해요?

37-19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최고의 걸작품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얼굴을 보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또, 머리를 한번 봅시다. 이건 고슴도치 같은 머리카락으로 싸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잘 싸여 있다는 것입니다. 보자기로는 쌀 수 없으니까…. (웃음) 중요한 부분은 싸 주는 것입니다. 머리가 참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다른 부분은 다 내놨는데, 왜 머리만 쌌느냐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겨드랑에도 털이 다 나 있지요? 그게 무엇인 줄 알아요? 펌프통이예요, 펌프통. 발산작용을 하는 나발통이라는 것입니다. 다 필요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걸 보게 되면 사지백체가 긴요하게 잘 배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설계가 중의 설계 대왕님이 설계한 것입니다. 그러니 눈을 볼 때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겠어요, 안 계신다고 하겠어요? 「계신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굳이 갖다 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다 알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날 때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태어났어요, 모르고 태어났어요? 「알고 태어났습니다」 태어나 가지고 남자 혼자라면 기분이 나쁠 것 아니예요? 또, 여자로 태어나고 보니 여자 혼자라면 기분 나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 여자가 태어날 때 남자가 있는 것을 알고 태어났어요, 모르고 태어났어요? 나는 비록 모르고 태어났지만, 나를 낳아준 분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남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남자로 이렇게 태어난 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여자가 있기 때문에 남자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다 알고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보면 하나님이 계셔요, 안 계셔요? 하나님이 계시나 안 계시나 생각해 보세요. 대번에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코를 보면, 코 속에 코털이 나 있습니다. 파이프에 뭐 막힌 것이 있으면 기분이 나쁘겠지요? 파이프가 막혀 있으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원리 파이프는 미끈하게 생겨 가지고 그저 훅 불면 공기가 휙 나갈 수 있어야 하는 데 거기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콧구멍도 그렇게 무사통과하게 되어 있으면 좋은데, 왜 복잡하게 털이 막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구멍이 보이는가 한번 들여다보세요. 거꾸로 해서 들여다보아도 안 보입니다. 안 본 사람은 이따가 밥먹기 전에 친구의 콧 구멍을 들여다봐요. 선생님 말이 맞는가 안 맞는가. 털로써 잘 막아 놓았거든요. 털이 전부 다 가운데를 향하여 나 있어 가지고 잘 막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공기가 주로 가운데로 들어가는데 먼지는 들어가면 안 되니까 털이 가운데로 향해 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 같애요. 안 그런 것 같애요? 한번 들여다 보세요. 아직 그것도 모르고 살고 있구만…. (웃음) 이것을 볼 때 우리 인체가 얼마나 신기한지 모릅니다.

머리카락은 나무와 마찬가지입니다. 머리카락을 잡고 비벼보면 어디가 뿌리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나뭇잎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알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것들을 보게 되면 전부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하나가 긴요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백과사전을 통해 가지고 연구하고 결정해 가지고 설계하여 백 퍼센트의 가치를 가진 걸작품으로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사람이 자연 발생하여 그냥 생겨났어요? 이놈의 자식들….

여러분, 손톱이 얼마나 귀한지 알아요? 손톱이 없으면 어떻게 물건을 잡겠어요? 손톱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려면 손톱을 한번 빼보세요. 얼마나 귀한지 알 거예요. 그리고 손바닥과 손등을 보세요. 가죽이 다르게 생겼습니다. 그 하나하나를 가만히 보면 어쩌면 그렇게도 적합하게 잘 배치 배열되어 가지고 잘 만들어져 있는지 보면 볼수록 신비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잘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자체가 신비하다는 것입니다.

37-21
영원한 사랑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계시나 안 계시나 한번 물어 봅시다. 통일교회 원리와 관계없는 입장에서 나 자신을 놓고 보았을 때 나를 만든 주인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없다고 생각합니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공산당들에게 물어 봐도 꼼짝 못할 것입니다.

남자에게 `너는 남자가 아니고 여자다’ 하면 `내가 왜 여자냐 나는 남자다’ 할 것입니다. `정말이냐?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가 왜 다르게 생겼느냐’ 이렇게 물으면 대답을 못 하는 거예요. `이것도 모르면서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 하고 묻게 되면 공산당도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코가 왜 이렇게 생겼어? 그것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 하면 꼼짝 못하는 겁니다. 이런 작전으로 나가도 괜찮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십니까, 안 계십니까? 안 계신다고 한다면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눈은 무엇을 보아야 되느냐? 눈은 좋은 것을 보아야 합니다. 영화를 보는 데도 나쁜 영화를 보려고 합니까, 좋은 영화를 보려고 합니까? 좋은 영화를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보기 위해서 갑니까, 무엇을 느끼기 위해서 갑니까? 좋은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귀도 좋은 것을 들으려고 합니다. 나쁜 것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쁜 것을 들으려면 음악감상은 왜 합니까? 차라리 변소에 가서 나팔 부는 소리나 듣지. (웃음) 그래 음악감상은 무슨 소리를 듣겠다는 것입니까? 좋은 소리를 듣겠다는 것입니다. 좋은 소리 중에서도 최고의 좋은 소리를 듣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는 것도 최고 좋은 것을 보고, 듣는 것도 최고 좋은 것을 듣고, 냄새 맡는 것도 최고 좋은 것을 맡고, 만지는 것도 최고의 좋은 것을 만지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좋은 것의 최고는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주인, 사라의 대왕님은 누구시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나이가 20세쯤 되면 사춘기인데, 그때가 되면 남자는 여자가 어떠한지 알게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아가씨를 아내로 맞아 가지고 선한 아버지가 되어 보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합니까, 안 합니까? 「생각합니다」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그러면 색시를 얻는 데 있어서 나쁜 색시를 얻겠다고 하는 총각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한 사람도 없구만. (웃음) 또, 여자들 중에 나쁜 신랑에게 시집가겠다고 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이 있으면 기분 잡치는 것입니다. 뭐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먹는 것, 만지는 것 등 모든 것에서 좋은 것만을 느끼려고 합니다. 사람이 감각기관을 통해서 느끼는 데에 있어서 좋은 것을 느끼게끔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것이 뭐냐? 행복이란 말을 하는데 그것은 사람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상대를 한번 보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보면 볼수록 보고 싶고 영원히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이 일시적으로 좋았다 나빠졌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사랑이여’라고 하지요? `나는 당신을 일년 동안만 사랑하겠소’ 하는 부부가 있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떤 것이 좋습니까? 영원히 사랑한다고 해야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사람이 백 년도 못 산다고 `당신을 삼백 년만 사랑하겠오’ 할 것입니까? 백 년도 못 산다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당신을 삼백 년만 사랑하겠오’ 한다면 그 부인의 기분이 어떻겠어요? 기분 잡쳐요, 안 잡쳐요? 아가씨들 대답해 보세요? 기분 잡쳐요, 안 잡쳐요? 「잡칩니다.」 (웃음) 삼백 년 사랑한다 하면 되겠지 하면 돼요? 삼백 년 살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말은 듣기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이렇게 폭이 넓고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사랑하는데 오늘은 좋고, 내일은 나빠지는 것이냐? 아닙니다. 점점 입체적으로 되어 갑니다. 피라미드같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또, 수정체 같다는 것입니다. 수정체는 깨져서 가루가 되어도 같은 결정체 모양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을 수정의 결정체와 마찬가지입니다. 붙이면 붙일수록 그 모습은 피라미드가 되는 것입니다. 나뭇가지로 말하게 되면 큰 나뭇가지와 작은 나뭇가지의 모양은 같습니다. 크고 작은 것의 차이는 있지만 모양과 본질은 같다는 것입니다.

37-23
사랑의 중심인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해야
사람의 행복이 어디에 있느냐? 좋은 것에 있습니다. 그 좋은 것은 어디에 있느냐? 눈만 좋다고 해서 행복이 아니요, 입만 좋다고 해서 행복이 아닙니다. 코만 좋다고 해서 행복이 아니요, 귀만 좋다고 해서 행복이 아니요, 촉감만 좋다고 해서 행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감각이 총동원해서 `아이고 좋아’ 할 수 있는 자리가 행복의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가게 되면 시고, 짜고, 쓰고, 맵고, 단맛이 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미라는 것이 있지요? 오미와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자극적인 욕망을 끊을래야 끊고 싶지 않은 기쁨의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영적 세계를 체험하게 되면 그런 자극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밥을 안 먹어도 먹은 것보다 좋고, 캄캄한 밤이라 해도 대낮보다 좋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나쁜 것이 없습니다.

만일에 어떤 부부가 훅 불기만 해도 두루룩 굴러가는 꽁보리밥을 한 알 한 알 주어 먹더라도 사랑하고 웃으면서 산다면 그들이 행복하겠습니까, 불행하겠습니까? 「행복합니다」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불행을 극복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행복은 죽음도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어느 때까지 사랑하겠느냐고 묻게될 때, 젊었을 때까지만 사랑하겠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쁩니다」 어느 때까지 사랑하기를 바라느냐? 「영원히」 `영원히’ 이기도 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 다음에 영원히 사랑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영원은 미래를 중심삼고 전체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몽땅 주어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영원히’는 전체적이요, `죽을 때’ 까지는 몽땅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기 아가씨들은 이제 시집가게 되면 남편에게 틀림없이 `당신, 날 사랑하오’ 하고 물어 볼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 `나를 몽땅 사랑하오, 조금 사랑하오’ (웃음) 이렇게 물었을 때 몽땅 사랑한다고 대답해야 기분 좋아한다는 겁니다. 남자도 그렇다는 거예요. 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조화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는 것도 사랑을 위해서 보고, 듣는 것도 사랑을 위해서 듣고, 냄새 맡는 것도 사랑을 위해서 냄새 맡고, 먹는 것도 사랑을 위해서 먹고, 만지고 행동하는 것도 사랑을 위해서 만지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사랑을 중심삼은 것이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분이므로 욕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일 욕심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미워하라.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다’라고 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지킬 것 중의 첫째가 무엇이라고요? 「계명」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제일 법칙이지,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법칙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에게 사랑이 없으면 사랑의 주인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해 주면 그 사랑이 여자의 것입니까? 그 사랑이 여자의 것이에요, 남자의 것이에요? 여자의 것도 아니고 남자의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의 것이냐? 그것은 뿌리의 것입니다. 뿌리에 달린 것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뿌리와 하나되어 붙들고 있으면 그 사랑이 누구의 것이 됩니까? 「내 것 됩니다」 내 것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은 하나님의 사랑에 달라붙으라는 것입니다. 달라붙으면 그 사랑이 자기 것 되는 것입니다.

37-25
어떤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느냐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인데 사랑하는 데는 죽도록 사랑해야 됩니까, 일시적으로 사랑해야 됩니까? 「죽도록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할래요, 죽도록 사랑하지 않을래요? 「사랑하겠습니다」 어디 죽도록 사랑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벼락을 맞아 죽더라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도록 사랑해야 된다면 죽기 전까지는 못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백두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에 있는 반석을 갈아 밭을 일군 후 감자를 심어서 그 감자로 하나님을 봉양할 수 있어요? 하겠어요, 안하겠어요? 「하겠습니다」 그거 해야 합니다. 그때는 소가 없어서 사랑하는 아내를 소 삼아 가지고 밭을 일구었다면 벼락을 맞겠어요, 안 맞겠어요? 아내를 소 삼아서 밭을 일군다 할 때 하나님이 `야야! 그만둬라’ 한다면 하겠어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정성을 다 하라 했으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그러다가 여러분의 아내가 죽었는데 하나님이 이제는 너의 아들을 소 삼아 일 시키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자기 아들을 잡아 제사지내려 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보통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도 그런 놀음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어요? 사랑한다면 어느 정도 사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최고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결혼할 때 서로 죽도록 사랑하겠다고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그냥 죽도록 사랑한다고 하는 말과 `죽─’ 하고 10년, 100년, 억만 년 하다가 `도록 사랑한다’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을 원합니까? 그냥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을 원합니까? 여기 여자들 대답해 보세요. 그냥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보다 `죽─’ 하고 억만년 하다가 `도록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더 좋아할 것입니다.

이것이 십년 백년 천년, 이렇게 길수록 더 좋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만나 가지고 `죽─’ 그 다음에 10년이 지나 가지고도 `죽─’ 또, 50살 늙어 가지고도 `죽─도록 사랑한다’고 할 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 아내는 자기 영감님이 어찌나 좋은지 모른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배가 나와서 낑낑거리더라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죽도록 사랑한다고 해서 `내가 죽지’ 하고 죽는다면 그것은 싸구려입니다. 죽더라도 이 세계를 몽땅 내 것 만드는 주인의 자리에서 죽는다면, 쓰레기통에 나가 자빠져 죽게 되더라도 그 사람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의 가치를 지닌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나랏님도 베옷을 입고 제단을 쌓아 천제(天祭)를 드리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삼천만 민족의 마음을 전부다 한마음으로 묶어 하나님 앞에 바치는 일을 한다면 그럴수록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해야 하느냐? 천하에 둘도 없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된 자리에서 죽도록 사랑하기를 하나님이 바랄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다니니까, 통일교회 문 선생님이 가르쳐 주었으니까 몰리고 쫓겨다니면서 할 수 없이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겠다는 아들딸이 되겠어요, 아니면 통일교회를 믿고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어떠한 나라의 왕들 앞에 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그들을 전부 굴복시킬 수 있는 권위와 가치를 지녀 가지고, 만세가 찬양할 수 있는 단 한 분의 자격자가 되어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아들딸이 되겠어요? 여러분들 같으면 어떤 아들딸을 원합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천주적인 아들딸이 되어 가지고 정성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위해 죽겠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그것이 고맙게 생각하겠어요, 안 고맙게 생각하겠어요? 여러분들이 현재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위해 죽기를 바라겠어요, 안 바라겠어요? 여러분들이 지금 상태로 죽겠다고 해도 반가와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여러분이 죽어도 영계에서는 골치덩어리라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컸을 때, 하나님이 필요로 하실 때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계점이 어디냐? 이것을 생각할 때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언제 현재 우리의 입장까지 이야기하지요? 에덴 동산의 상대적 관계의 내용을 중심삼고 시작해 가지고 이야기했습니다. (녹음상태가 좋지 않아 일부분 중략)

37-27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싶지 않는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남자에게는 여자, 여자에게는 남자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사랑은 남자의 것이 아니요, 여자들이 좋아하는 사랑도 여자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혼자 있을 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까? 안 생기지요?

여자대학교에서 축제 때 제일 예쁜 여학생을 뽑는 데 퀸(queen)이라고 하나요? 여왕이 된 사람을 여자들이, `나의 애인이여, 당신이 나를 몰라 주게 되면 큰일난다’ 하면서 러브 레터(love letter)를 보내고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고 합니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여자들이 남자들에게는 `내가 당신을 사랑하오. 날 살려주시오’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사춘기의 여자들이 17, 8세쯤 되면 남자가 쓱 스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좀 부끄러워하기는 하지만 여자가 그러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자들 솔직히 그렇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렇지요? 처녀들은 잘난 총각들이 지나가게 되면 마음속으로 저런 남자를 내 남편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선생님에게는 솔직히 대답해요. 그래요, 안 그래요? 여기 도깨비 같은 남자들은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웃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중화적 주체이시고, 이성성상의 주체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님이 이성성상의 주체가 아니고 단성성상의 주체로 계셨다면 큰일날 뻔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하나님에게는 남자나 여자나 다 좋아할수 있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를 다 좋아하시고 그들을 보고 만족해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 한번 알아보고 싶지 않아요? 알아보고 싶어요, 알아보고 싶지 않아요? 「알아보고 싶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심각해야 합니다. 얼마만큼 심각해야 되느냐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은 이 길을 나오면서 일주일 동안 밤을 밝힌은 것은 보통이었습니다. 칼을 꽂고 생명을 내걸고 그런 일을 한 적이 많았습니다. 눈이 물크러질때까지 하나님을 그리워해 보았습니다. 아침에 솟는 태양 빛을 제대로 못 볼 정도였습니다. 이렇게까지 수고하면서 이 길을 닦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뭐예요? 다 건달꾼들이지요? 건달꾼. 이 `건’자는 마를 `건'(乾)자라 해야 될 거예요. 마른 것이 도달했다는 거예요. 이것은 깨깨 말라죽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제 여러분은 습달(濕達)꾼이 되어야 됩니다. 윤달(潤達)꾼이 되어야 됩니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가 쌓고 있는 공적인 일은 가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믿고 있는 기준에 있는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알려면 몇천 년을 연구한다 해도 다 알지 못할 겁니다.

내가 아직까지 하지 않은 말이 많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아무리 선생님에 대해 알려고 해도 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얼마나 심각해야 되겠어요? 여기에 비해 인간이 죽고 사는 것은 간단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왜정 때부터 고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동네를 사랑하지 못하고는 군(郡)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 사선을 넘어서서 사랑해야 합니다. 내 자체가 사선에서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의 힘으로는 무사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 기준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맺어야 합니다. 그 선 이상에서부터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고귀한 사랑을 가진 데서부터 새로운 역사적인 사랑의 천국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이라서 여러분이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들어 두세요.

37-29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행복
그러니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한번 알아봐요. 하나님의 사랑을 무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마치 따스한 봄날에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땅에는 아지랭이가 아른거리고, 벌레가 나돌고, 개미들도 세상 구경하겠다고 발랑발랑 기어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에는 버들 강아지가 움트고, 개구리가 봄날의 새노래를 부르고, 떼를 지어 날아드는 벌 나비를 반기는 그런 환경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환경에 취해서 잠이 드는 것 같은데 잠은 들지 않고 기분 좋아서 영원히 좋다 할 수 있는 그런 맛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찾으시는 이상상대를 중심삼고 느끼는 기분은 나비가 날고 벌이 날아드는 꽃동산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이 둔한 남자들은 그것을 모를 겁니다. (웃음) 기분 좋다는 거예요.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손을 꽉 쥐고 악수를 합니다. 악수할 때 반갑다고 `아하, 이거 오래간만이군’ 하면서 손을 꽉 잡으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기분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에라, 이 자식아’ 하면서 발로 차버리라는 것입니다. (웃음) 반가우면 손을 꽉 쥐어요, 안 쥐어요? 「꽉 쥡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면 좋아합니까? 「좋아합니다」 좋아하고 싶은 것이지 좋아하기는 뭘 좋아해요? 알아야 좋아하는 것이지 모르면서 어떻게 좋아합니까? 그렇게 좋아하며 잡으면 손을 풀지 못한다는 겁니다.

여기 있는 아가씨들, 시집가서 남편이 자기를 사랑해 주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사람은 솔직해야 되는 것입니다. (웃음) 사랑해 준다면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예 남편 옆에 딱 붙어 가지고 사는 거예요. 남자가 소 앞발 같은 손으로 여자 손을 꽉 잡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영화를 보아도 그런 영화를 보고 싶어합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아이고, 당신 손은 참으로 곱소’ 하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커플을 이루어 사랑을 하면 딱 맞붙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까지는 안 되겠지만 이 이상의 심정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가지고 산다면 하나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전부 다 하나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세계에서 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디 가서 살려고 합니까? 선생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선생님은 그런 경지에서 언제나 춤추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목을 잘라 죽인다고 하고 뭐 어떻게 한다고 협박을 하고 핍박을 해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겨울에 찬바람이 불어와 기분좋게 정신들게 해주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밥을 굶는 자리에 있어도 그 고통이 나를 정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인 것입니다.

행복이란 무엇이냐? 전후 좌우 상하가 통하지 않는 것이 없고, 관할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없는 자리가 행복한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는 자리라고 해서 울지 않습니다. 오히려 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스런 자리라 해서 비참한 자리가 아닙니다. 행복의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자기의 자세를 천하에 드러낼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에는 앞으로 시련이 클 것입니다. 그런 깊은 내용을 이야기는 안 하지만, 여러분이 `아, 우리 선생님은 이렇게 고생하셨고, 이렇게 수난의 길을 거쳐서 만민을 위해 개척자의 주인공이 되어 이러한 전통을 세웠다’ 할 때 그 자리는 뭇 사람들이 `아이구 좋아라’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렇지만 그 자리는 비장한 자리입니다. 죽고 사는 경계선에 접해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은 역사시대에 한 번밖에 태어날 수 없는 주연배우입니다. 그러니 잘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독이시고 사탄은 참소조건을 거는 자요, 여기에서 나는 멋진 주연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런 기분으로 가야 됩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역사를 둘러메고, 모든 시대를 거치면서 억천만세의 인류를 거느려 가지고 시대를 초월한 자리에서 이것을 몽땅 같은 심정권내로 일치화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무한한 가치가 여기에서 발굴되는 것입니다.

37-31
진짜 자랑할 수 있는 것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공적인 입장에서 고통을 당하게 되면 거기에서 역사를 정복할 수 있는 가치가 발굴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지나갔고 실체는 없다 하더라도 그 사연만은 천년 만년 양심세계에서 계속적으로 웅변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연이 얼마나 고귀한 것입니까?

여러분들에게 자랑할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이겠습니까? 내가 어느 때에 세상에 없는 진수성찬을 대접받아서 잘 먹었다고 자랑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자기 배를 위한 사람입니다. 그런 것을 자랑하게끔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다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나는 이렇게 싸워 왔다 하는 내용입니다. 자랑할 것은 그것 밖에 없다는 거예요.

본래 사랑이 가는 길, 좋은 것을 찾아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나를 위해 가는 길이 아니라 남을 위해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만민은 왜 하나님을 좋아하느냐?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사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들딸을 위하여 사시는 분입니다. 그 아들달이 만민이니 하나님은 만민을 위하시는 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하나님이 아들딸에게 준 계명이요, 타락한 인간을 복귀하기 위한 계명이라면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이겠습니까? 이와 반대라는 것입니다. `나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아들딸 아무개를 사랑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첫째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도둑놈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아들딸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첫째 계명으로 삼고 나오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온갖 희생을 다하여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시지 못하고, 주고 싶어도 주시지 못하는 한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입장에 계시기에 그분에 대해 항거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주는 것입니다.

본래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렇게 이렇게 해주어야 할 선물이 있는데, 조금밖에 주지 못하니 약소하다 이겁니다. 너무 약소하여 줄 수 없으니 몽땅 하늘편 사람 되는 그때를 바라시면서 참고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끝날까지 참고 나가기 위해서 한계선으로 그어 놓은 것이 바로 말세입니다.

그러면 하늘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도 부끄러워하고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세계가 무슨 국이에요? 「천국입니다」

여기 있는 백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그 백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다 주었다 할 때, 백 사람은 그 한 사람을 위해서 돌려주어야 되겠어요, 안 돌려주어야 되겠어요? 「돌려주어야 됩니다」 그러면 누가 부자예요? 그러니 백 명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방법에는 자기 하나를 희생하며 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는 또다시 점령이 없습니다. 완전히 점령하는 비법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우리들을 이용해 먹기 위해 주었다 할 때는 점령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진정 그 사람들을 위해 살다가 죽었다 할 때는 나머지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그에게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민이 다 하나님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37-33
통일교회의 전통
1960년대의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자기를 생각하는 자리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럼 무엇을 생각했느냐? 첫째는 하나님을 생각했고, 둘째는 선생님을 생각했습니다. 알겠어요? 그들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청춘시대를 이 뜻을 위해 바친 것을 위로해 주었고, 수난의 길에서 홀로 참아 나가면서 개척자의 선봉에 섰던 것을 불쌍히 여겼고, 이러한 선생님을 중심삼고 같이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괴로움과 고독을 놓고 누구보다도 가까운 자리에서 눈물 흘렸던 사람들이 1960년대의 통일교회 식구들이었습니다.

효자는 자기의 입장을 잊어버리고 부모의 사정을 먼저 생각하며 눈물어린 마음으로 부모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충신은 국가가 난세에 처해 있을때, 자기 일신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군왕의 어려움을 먼저 염려하면서 충성의 도리를 다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잊어버리고 자기의 이익과 모든 것을 희생하는 데서 충효의 극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출발 당시에 하나의 전통적인 극이라면 극, 발원이라면 발원, 모체라면 모체, 발생이라면 발생의 동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자기를 위하는 자리에서 완전히 탈피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식구들에게는 하나님이 첫번째였고, 두번째는 선생님이었고, 자기들이 세번째였던 것입니다. 이게 원칙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좋은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싶어했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선생님께 드리고 싶어했고, 선생님이 없을 때는 선생님이 사랑하는 식구들에게 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가졌던 때가 핍박받았던 초창기의 시대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전통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만 한다면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어디에 가든지간에 같이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워할 때에도 하나님을 첫번째로 그리워하고, 두번째로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세번째로 식구들을 그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는 없습니다. 이러한 것이 내 마음이 갖추어야 할 자세입니다.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떻게 나왔느냐? 선생님 자신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선생님도 이 길을 개척해 나오면서 그리움이 있었다면 하나님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청년 시절에도 여자를 그리워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남자의 위신을 가지고 시시하게 여자에게 당신을 사랑한다느니 뭐 이런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공의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이 나라의 주인을 그리워하고,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성현들을 그리워하고 존중시했습니다. 하나님을 무한히 존중시한 동시에 역사를 지탱할 수 있는 중심적인 사상의 주인공이 있으면 그 주인공을 존중시했습니다. 존중시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에 급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찾아진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어하시는 만민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37-34
최고로 하나님을 사랑해 보라
어느 정도까지 사랑해야 하느냐? 자신의 의식이 몽롱하게 될 때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 미쳐 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 가지고 망한다면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극에까지 가 보라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극은 망하지 않으면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동지를 거치면서 추위가 극한 동삼의 때가 지나면 자연히 봄의 때를 맞는 것처럼 새봄을 향하여 재봉춘할 수 있는 한 길이 틀림없이 모색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해 보라는 거예요.

영계에는 지금까지 이 땅에 왔다 간 수십 조 되는 영인들이 있고 이 땅위에도 수십 억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선생님은 그 사람들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둘째 가라면 싫다는 거예요.

그러면 사랑하는 데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 `이렇게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 하는 자리, 어떠한 심각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어야 하느냐?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하다고 성품을 다하여 내 자신이 천번 만번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절개를 지니고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결정적 자아를 어떻게 발굴해 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가는 선생님의 길은 핍박의 길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나라여 나를 핍박하라. 세계여 나를 핍박하라. 영계에 있는 수많은 악령들아 모두 동원되어 나를 핍박하라. 핍박을 할 때에는 일시에 총동원해서 하라’ 하며 나왔습니다. 그런 초점 속에서 항거를 받는 입장에 서더라도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내가 하나님을 미칠 듯이 사랑하는 것을 보여 주고 증거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자’ 이것이 선생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데 있어서의 한계점이 어디냐? 그것은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시시껄렁한 자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꽃다운 청춘시절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재촉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 때에는 머리를 안 들고 다녔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 선생님에게 반한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참으로 곤란한 점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보기에는 얌전해 보이는데 얄궂다는 거예요. 여자들 배짱이 남자보다 더 두둑합니다. 뭐 좋은 상대가 있으면 눈을 깜박깜박하면서 말이예요….

여자들 가운데는 선생님을 협조해 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다 당해 냅니다.

37-35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야
선생님은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여러분들처럼 새옷을 입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전부다 고물상에 가서 헌옷을 사서 입었습니다. 천명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나이가 어찌 뻔뻔스럽게 갖출 것을 다 갖추어 대로를 활보하며 다닐 수 있느냐 하면서 나왔습니다. 천리의 공법 앞에 치러야 할 대가를 청산하지 못한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갖기 위해, 좋은 것을 먹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하면서 식당에 가더라도 고급 식당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식당에 가더라도 제일 말석에 앉는다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자리의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생각하며 이런 놀음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학생시절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교복을 벗어 던지고 노동판에 가서 일했습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석탄을 나르는 일도 해보았고, 배도 타 보았고, 머슴살이도 해봤습니다. 온갖 일을 다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고락이 어떤 것인가를 다 알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고락을 겪으며 살고 있는 인간들을 해방시키는 책임자가 되어 이들을 완전히 해방시켜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누구보다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리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부모의 심정권을 초월하여 하나님 앞으로 복귀시켜야 할 책임을 느꼈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 그러한 뒷골목도 찾아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술집 아가씨와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곳에 오게 되었는가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그녀의 부모 이상 슬퍼하고, 그녀의 오빠 이상 통곡할 수 있는 심정을 어떻게 유발시키느냐를 생각하며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자의 옷을 입고 빌어먹은 때도 있었습니다. 알겠어요? 여자도 되어 본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것입니다. 인생철학이 아닌 인간철학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노동자도 되어 보고 농민도 되어 보아야 합니다. 농촌에 가서 농사일을 하더라도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김을 매라면 김을 못 매나 밭을 갈라면 밭을 못 가나 다 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직장 생활도 해봤습니다. 별의별 일을 다 해보았다는 거예요. 구들장도 놓아 보았고, 벽돌도 쌓아 보았고, 굴뚝도 쌓아 보았습니다. 무엇이든 하라면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사주 봐주는 것까지 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느 때 어떤 위험이 닥쳐 온다 해도 내 일신이 먹고 사는 문제로 하나님 앞에 염려를 끼치고 살 그런 졸장부가 아닙니다. 지금도 발벗고 나서면 문제없습니다.

여러분도 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지게꾼 노릇, 구루마꾼 노릇도 해보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에 있을 때도 그런 노릇을 해보았습니다. 외국 사람의 종살이도 해보라는 것입니다. 땀을 흘려 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일본 동경에 가면 긴자(銀座)라는 번화가가 있습니다. 그 거리는 선남선녀들이 아주 잘 차려입고 다니는 일본에서 제일 번화한 곳인데, 선생님이 학생복을 벗어 던지고 전신주를 실은 구루마를 끌고 가면서 `너 이 녀석들 길을 내주나, 안 내주나 보자’는 생각을 하고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신주 실은 구루마에 치이면 손해인데 비켜야지 별 수 있어요?

인생에 있어서 심각한 입장에 부딪쳐 보아야 인생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는 노동자냐, 너는 어떤 사람이냐? 그 자리는 어떠한 위대한 영웅들이, 위대한 위인들이 웅변을 하고 설교를 해도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없는 멋진 자리라는 것입니다. 힘차게 땅을 딛고 서는 그 한 발자국에는 역사가 주름잡히는 놀음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땀을 흘리라는 것입니다. 힘이 들더라도 치달을 수 있는 길이 있거든 땀을 흘리며 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산 철학입니다.

37-37
고난의 길을 걸어온 통일교회
통일교회가 그렇게 출발했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에 대한 선생님의 지도방법은 30세 전까지는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절망의 도가니에 들어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 절망의 도가니 가운데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여 `햐’ 하고 환희의 함성을 지르면서 `오늘이 없었더라면…’ 하며 결의를 새롭게 다지며 함성을 지르는 사나이나 아낙네가 되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못한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 맺기 위해서는 지극히 고독한 자리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지극히 외로운 자리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 가서도 자기를 위해 통곡하지 말고 수난의 길을 가는, 복귀의 운명권내에 있는 인류를 대신하여 슬퍼하면서 하나님을 대하기 좋은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사장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모든 계급을 초월하여 그럴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과 담판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하나님도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언제 그런 때를 가져 봤어요? 그저 조금이라도 편한 자리만 찾아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사망의 구덩이를 지키는 데 필요한 파수꾼으로서 이 어려운 고빗길을 내가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지금까지 선생님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은 다 싫어합니다.

그런데 내가 가는 길을 막던 사람들은 다 망해 버렸습니다. 또, 이상한 것은 선생님의 친구란 친구는 하나님이 다 데려갔습니다. 내가 세상에 미련만 갖게 되면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죽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나이 서른 살 전후에 다 데려갔습니다. 그것은 왜냐? 하나님을 완전히 믿지 않고 사람을 믿으면 못 가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선생님은 무서운 사람이라는 거예요. 뜻을 앞에 놓고 인간 끼리끼리 가까와지는 자리에만 서면 하나님은 그들을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누구에게도 함부로 마음을 주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 식구들에 대해서는 부자의 관계로 인연맺어져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그렇게 싸우고 그렇게 격리시켰던 그 순정을 전부다 퍼부을 곳을 지금까지 지니고 나온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참으로 처량한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매맞고 쫓기며 핍박받았던 사람들은 천하의 그 누구보다도 선생님 앞에 가까운 심정적 인연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선생님을 전부다 좋아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디 가게 되면 어디에서 살든 간에 전부다 선생님이 가는 곳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여러분은 선생님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는 그럴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적어도 3년 이상 선생님과 같이 있으면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부자의 인연이 맺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3년노정이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37-39
하나님과 심정의 인연을 맺는 자리
그러면 그 심정을 어디에서 맺어야 하느냐? 여러분의 안방에서 맺는 것이 아닙니다. 일선에서 맺어야 합니다. 그 타락한 세계의 일선이 어디냐? 하나님과 사탄이 판가리를 짓는 판문점과 같은 자리인데 인간이 사탄 앞에 참소를 받고 하나님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일선입니다. 그런 일선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고, 선생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사랑하고 선생님이 사랑하는 백성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조건을 전부다 수습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한 뜻을 중심삼고 나오는 데 있어서 과거 초창기에 통일교회 교인만이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아들을 사랑하고, 다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세계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는 나라도 넘어가야 됩니다.

그런데 그 세계는 지금과 같은 사탄세계가 아닙니다. 그 세계는 심판의 과정을 거쳐 청산을 지어 가지고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계입니다. 그러면 청산은 누가 짓느냐? 나 자신이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이것을 청산지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심판 기준은 다릅니다.

1960년대를 거치면서 해 나온 것이 무엇이냐? 우리를 반대하던 높은 담벽을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1960년대까지 해 나오던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담벽, 가정적인 담벽, 종족적인 담벽, 민족적인 담벽, 국가적인 담벽입니다. 3정권의 반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3시대 3정권 3주권의 반대를 받지 않으면 안 되고, 3국가의 반대를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3대 종파의 반대를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반대를 받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반대를 받아 나오면서도 지금까지 쭉 개척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1960년대는 어떤 때냐? 개인적으로 하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사탄이 반대하지 않는 터전을 닦는 때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반대의 담벽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때였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1970년대는 어떤 때냐? 가정적으로 하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핍박의 담벽을 완전히 무너뜨려야 하는 때입니다. 여기에서 개인의 목적은 무엇이냐? 개인의 목적은 나라가 아니라 가정입니다. 지금 처녀 총각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디에 귀결되느냐? 나라입니까, 가정입니까? 「가정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개인의 목적이 무엇이라고요? 「가정입니다」 가정의 목적은 국가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국가를 향해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회든지 가정이 없는 사람은 믿어 주지를 않습니다. 그렇지요? 「예」

개인의 목적이 무엇이라고요? 「가정」 가정의 목적은? 「국가」 국가의 목적은? 「세계」 세계의 목적은? 「천주」 천주의 목적은? 「하나님」 하나님의 목적은? 「사랑」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맨 나중에 남는 것이 무엇이예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맨 나중에 남는 것이 무엇이에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진대 그 중의 제일은 무엇이라고요? 「사랑」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37-40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제일 귀한 선물을 주시려고 `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서로 사랑하자’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과 인간이 같이 사랑하자는 말입니다. 이 말이 좋은 말이에요, 나쁜 말이에요? 이 말은 누가 사랑하자고 하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사랑의 살림살이를 하려니 서로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려고 했던 것을 인간이 배반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탕감원칙에 의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탕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조건을 들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느 자리에 섰느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이 예수님이지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것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원리 중에서도 깊은 내용은 앞으로 자세히 가르쳐 줄 겁니다. 아직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통일교회에 다니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은 통일교회에 대해서 3분의 1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통일교회 다니다가 `아이고 난 이제 지쳤소. 대학원이나 가야지. 출세가 좋지. 하나님이 뭐야.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없을 것 같기도 한데 뭘 아나? 더 가봐야 알지’ 하면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은 통일교회에 대해 3분의 1도 모르고 떨어진 것입니다.

왜 3분의 1밖에 모른다고 하느냐 하면 선생님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니 하나님에 대해서는 더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가르쳐 준 그 내용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원리는 예수님을 중심삼은 내용만 가르쳐 준 것입니다. 원리가 가르쳐 주고 있는 표준이 어디까지냐 하면 예수님을 해원성사해 드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을 해원성사해 주는 내용을 가르쳐 주었지, 통일교회 문 선생을 해원성사해 주는 내용은 안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르쳐 주었어요, 안가르쳐 주었어요? 「안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니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모르니 하나님을 해원성사해 드려야 하는 내용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믿다가 낙심해서 떨어진 사람들은 통일교회에 대해서 3분의 1도 모르고 떨어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점수로 말하면 33.333…점도 못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대학을 졸업하려면 1학년을 거쳐 2학년, 3학년, 4학년 과정을 다 마쳐야 됩니다. 그런데 1학년 반쯤 다니다가 그만두었다면 그 대학교와 관계가 있어요, 없어요?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은 가정을 사랑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얼마나 불쌍한가 생각해 보세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믿으면서 뭐 어떻고 어떻고 하지만 그 예수님이 얼마나 못나고 불쌍한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정을 사랑해 봤습니까, 나라를 사랑해 봤습니까, 천주를 사랑해 봤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해 봤습니까? 못 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사랑하려고 애썼지만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못났습니까? 그런 사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37-42
사랑을 하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한 예수님
그러면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을 만났느냐? 가정은 그만두고라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라도 만났느냐?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 사랑해 봤어요? 못 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년 공생애노정 동안 천신만고끝에 모은 그의 제자들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면서 죽느냐 사느냐의 판가리를 짓는 심각한 기도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자라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동산 아래서 코를 골며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시험에 들지 말고 깨어 기도하라’ 하고 깨워 놓고 가서 기도하고 와 보니 또 졸고 있고, 또 깨워 놓으면 또 졸고 있으니 예수님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그러한 제자들을 사랑했겠어요, 못 했겠어요? 개인도 사랑하지 못한 입장의 예수님이었습니다.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못 해본 것도 한인데 사랑을 받아 보았느냐 하면 받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이었으면 예수님이 왜 죽습니까? 뜻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사랑은 영생인데…. 그러니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랑해 줄 수 있는 기준까지 올라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예수님이 천주의 사랑을 받아 봤어요? 영계 육계의 사랑을 받아 봤느냐는 거예요? 받았아요, 못 받았아요? 「못 받았습니다」 그러면 세계의 사랑을 받아 보았어요? 나라의 사랑을 받아 보았어요? 가정의 사랑을 받아 보았어요? 개인적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 보았느냐는 거예요. 어머니의 사랑도 받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못받아 보았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의붓자식이었기 때문에 복중에 있을 때부터 어머니 아버지가 매일 싸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마리아의 눈치를 보고, 요셉의 눈치를 보면서 안정되지 못한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있었어도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예수님이었습니다. 또, 아버지가 있다 해도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형제의 사랑도 받아 보지 못한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하지 않는데 형제들이 사랑하겠어요? 밥을 먹어도 찬밥을 먹어야 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요셉은 더운 밥이 있으면 한 그릇이라도 자기 아들딸에게 더 주려고 했지 예수님한테 주려고 안 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그러니 친척이나 동네 사람들이 전부다 예수님에게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생아로 태어난 처량한 예수님이었기에 누가 알아 주었겠습니까? 쫓기고 몰림받는 서글픈 자리에서 어느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예수님이었습니다.

37-43
예수님의 한과 인간의 구원 완성
통일교회 식구라는 말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복귀원리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 때까지 인간들이 실수한 것입니다. 그 이상은 안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은 어떻게 해야 이루어지는가? 구원이 안 이루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것을 알아 가지고 탕감해야 합니다.

첫째는 예수님 앞에 이스라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유대교가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되지 못하였기 때문이요, 그 다음은 세례 요한 가정과 요셉 가정이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하였기 때문이요, 다음은 요셉 가정에서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마리아가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구원이 안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의 어머니가 하나되지 못하였는데 형제들이 하나될 수 있어요? 친척이 하나될 수 있어요? 교회가 하나될 수 있어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구원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는데 누가 하나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동생들도 하나되지 못했는데 누가 하나될 수 있겠으며, 친척이 하나되지 못했는데 누가 그와 하나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으로 볼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무엇 때문에 세웠으며, 유대교를 무엇 때문에 세웠으며, 요셉 가정과 세례 요한 가정을 무엇 때문에 세웠습니까? 모두다 예수님을 위해서 세워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패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 예수님 앞에 반기를 들고 다 도망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준비해 놓았던 기반이 송두리째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누구만 남아졌느냐?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본래 서야할 곳은 가정의 기반 위에, 교회의 기반 위에, 나라의 기반 위에 서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기반이 다 무너졌기 때문에 예수님이 설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니 사탄이 마음대로 그를 집어삼켰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설 수 있는 기반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운명에 처함으로 말미암아 죽음길밖에 갈 길이 없었으니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한이 무엇이냐? 가정을 못 가진 것이 한이요, 종족을 못 가진 것이 한이요, 교회를 못 가진 것이 한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통치하여 세계를 찾고 천주를 찾은 후 하나님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해야 하는데 이것을 하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천상세계에서 이것이 예수님의 한으로 남아진 것입니다. 이 한을 풀지 않고서는 인간의 구원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우리는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해서 예수님 대신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를 가져 가지고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 대신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에 달린 형제를 가져 가지고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탕감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가정을 사랑해야 되고, 친척을 사랑해야 됩니다. 친척 가운데는 아저씨 아주머니가 있을 것이고, 이들의 자녀가 있을 것입니다. 또,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을 것입니다.

37-45
대한민국의 현재 입장과 여러분이 해야 할 일
예수님이 언제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랑해 봤느냐? 못 해 봤다는 거예요. 아저씨 아주머니를 사랑해 보았느냐? 못 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직계가 아닌 고모나 고모부를 사랑해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방에 연결되어 있는 사돈의 팔촌까지 사랑해보지 못한 불완전한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이 사랑해보지 못한 그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종족을 사랑해야 되고, 예수님이 사랑해 보지 못한 유대교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통일교회는 이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성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천국에 가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이방의 백성도 사랑해야 합니다. 가인과 같은 이스라엘의 입장에 있는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소원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것을 필생의 생업으로 알고 나라를 사랑하고, 겨레를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을 사랑했다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반을 닦지 않고서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은 이 원칙에서 맺어진 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사랑을 하는 데는 얼마만큼 사랑해야 되느냐? 역사시대의 어떠한 부모보다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역사사대의 어떠한 형제보다도 어떠한 종족보다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역사시대에 하나님 앞에 충성을 했던 교법사들보다도 선두에 서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데는 그들이 머리 숙일 수 있는 충성을 하여, 교회를 완전히 사랑했다는 결정적인 권한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갖고 오신 책임과 사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만 주권 국가를 대표하여 4천년 수난의 길을 거쳐 공들인 터전으로 말미암아 찾아진 이스라엘 나라의 주권자로서 하늘 나라의 주권을 상속받아야 할 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주권자 앞에 이스라엘 나라가 굴복하였더라면 로마와 직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로마는 지중해 일대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런 로마와 연결되어 세계적인 기반이 마련되었더라면 세계는 예수님을 중심삼은 하나의 기독교 문화를 형성하여 통일적인 기반을 완전히 형성할 수 있었을 텐데 이것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로마의 속국이 된 것은 더 큰 로마를 물고 있는 이스라엘 나라만을 끌고 들어가게 되면 로마를 비롯한 세계를 다 낚을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와 같은 입장에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예수님의 한이 맺혀 있으니 그 한을 풀어야 됩니다. 탕감복귀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가 나와야 합니다. 이것이 참부모의 도리입니다. 이처럼 통일교회에서는 다른 어떤 종교가 하지 못한 참부모의 인연을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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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여러분에게는 참부모가 있어야 되고, 참가정이 있어야 되고, 참종족이 있어야되고, 참국가, 참세계, 참 하나님이 있어야 됩니다. 지금의 하나님은 본연의 하나님의 자리에 있지 못합니다. 그러니 참하나님이 있어야 된다는거예요.

예수님이 자기의 부모를 얼마나 사랑하고 싶었겠느냐? 그러니 여러분은 역사를 대표한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형제를 얼마나 사랑하고 싶었겠느냐? 그러니 여러분은 형님 중의 최고의 형님이 되어야 하며, 오빠 중의 최고의 오빠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수많은 종족들이 죽을 입장에 처했을 때 우리 종족을 살려달라고 할 수 있는 종족적인 대표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교회가 빠졌는데 이것은 민족권입니다. 그러니 교회를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유대교를 사랑해야 했습니다. 유대교의 대제사장보다 더 사랑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섰었어요?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유대교를 통해 가지고 메시아를 보내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수난의 길에서 망해야 할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유대교를 붙들고 그 메시아를 고대해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호해 주셔서 남아졌던 것입니다. 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메시아와 하나되지 못한 사연이 얼마나 서글프고 괴로왔겠습니까? 이것이 틀어지는 날에는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수고하신 모든 것이 헛것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지 못했지요? 나라를 사랑하지 못했지요? 우리가 이것을 복귀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대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 못한 것도 원통하지만 사랑받지 못한 것도 원통하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사랑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요셉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습니다. 자기 일신의 체면과 사정을 넘어 예수님을 위하여 쫓겨나고 매맞아 객사하는 신세가 되더라도,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미쳐서 사랑하다가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머니인 마리아 앞에 세 번씩이나 통곡하면서 하소연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30세가 될 때까지 어머니가 자기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보따리를 싸 짊어지고 집을 나와 공생애 노정을 출발했던 것입니다.

37-47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마리아와 요셉
그러면 어머니인 마리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예수님이 장가갈 수 있는 상대적 인연을 갖추게끔 역사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그런 기반을 완결짓기 위해서는 모자 협조가 이뤄진 가운데 아들이 가야 할 한스러운 길을 어머니가 전부다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나서 예수님의 신부를 택정하여 요셉 가정 기반 위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성혼식을 올려 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꿈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리아 자신은 자기의 생활문제, 자기의 상대문제에 얽매여 살기에 급급했습니다.

본래 마리아는 요셉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이런 깊은 원리적인 이야기는 언제 시간을 내서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나가서 싸우다가 지쳐 돌아오면 기합을 줘서 다시 돌려보낼 때 선물로 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알아야 무엇을 하지요.

예수님은 요셉의 사랑을 못 받았고 마리아의 사랑도 못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을 했을 때, 예수님은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했던 것입니다. 아들이 장가갈 것은 염려하지 않고 남의 잔치에 와서 뭐가 어째요? 마리아가 천륜의 해원성사를 이루어야 할 고비에 개인으로 온 예수님이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천륜의 해원을 풀어야 할 것은 염려하지 않고, 오히려 백번 천번 있을 수 있는 시시한 잔치에 와서 걱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을 보고 제자들이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나이다’ 했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만이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했다는 거예요 못 했다는 거예요? 못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 지금 기독교가 그것을 모르니까 눈감고 아옹하는 식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사랑했느냐? 사랑했어요, 못 했어요? 「못 했습니다」 초막절이 가까와졌을 때 동생들까지도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는데 형님은 왜 이러고 있소’ 라고 비난했습니다. 제자들이 바라고 있는데 자기들과 틀어박혀 있다고 하면서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요한복음 7장에 나와 있습니다. 친척들도 예수님에게 바알세불이 들려서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랬어요, 안그랬어요? 유대교회도 예수님이 바알세불이 들렸다고 했고, 나라까지 예수님을 선동분자로 몰아쳤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라가 동원되고, 교회가 동원되고, 종족과 가정의 부모 형제가 모두 동원되어 가지고 예수님 앞에 무릎 꿇고 절대 복종하겠다고, 천년 만년 충신의 도리를 다하며 하늘의 법도를 따르겠다고 맹세를 해야 할 입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부다 예수님을 멸시했고 그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원성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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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같은 자리에서 고난의 길을 걸은 통일교회
사랑을 받지 못한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해 드리고, 사랑을 하지 못한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해 드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서 해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은 그런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탕감복귀하려니 그런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가정을 버렸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8남매나 되었던 형제자매를 다 버렸습니다. 처자까지도 버렸습니다.

그렇게 버리는 것은 영원히 버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탕감노정을 거쳐 가지고 재봉춘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입니다. 울음으로 갈라지는 것은 기쁨으로 상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늘 부모를 중심삼고 아담 해와가 이별하였던 역사적인 한을 풀려니 지상에서 평면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생애노정을 개척하여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선생님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4천년 역사의 기반 위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유대 나라를 전부 잃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다시 2천년 동안 기반을 닦게 하여서 6천년 역사를 종합하여 이스라엘 나라의 입장에 한국을 세웠고, 유대교의 입장에 기독교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기독교권내의 택한 무리들을 중심삼고, 수많은 민족과 종파를 중심삼고 연결시킬 수 있는 재림사상을 고취하는 동시에 신령역사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준비시켜 나왔습니다. 세례 요한과 같은 선지지와 열두 제자와 같은 그런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만약 세례 요한과 열두 제자가 규합하여 예수님을 받들어 모셨더라면 예수님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날 한국 기독교를 중심삼고 벌어져 나왔지만 세례 요한과 열두 제자가 돌아서서 뿔뿔이 흩어진 것과 같이 이들도 역시 그렇게 돌아섰습니다. 지금까지 신령한 집단은 그와 같은 놀음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에 있어서 통일교회 문 선생이 그러한 역사적인 탕감을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수많은 교회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해야 됩니다. 교회를 사랑하려면 가정을 찾아야 합니다. 가정을 찾기 위해서는 요셉 가정과 같은 그런 기반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팎의 모든 문제를 내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 가지고 역사적인 모든 심정적 기준이 엇그러진 것을 다 풀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시대적 환경은 못 갖추더라도 역사에 상충되지 않게끔 순리적 법도에 따라 가정적 기틀을 기성교회가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성교회에서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신령한 사람들을 통해서 다 준비했지만 그들을 만나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 더벅머리 총각인 예수님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을 누가 믿겠느냐는 거예요. 선생님이 한번 말을 하였는데 믿지 않게 되면 나라가 꺾여져 나가고, 민족이 꺾여져 나가고, 종족이 꺾여져 나가고, 가정이 꺾여져 나가고, 교회까지도 꺾여져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수난의 길을 극복하면서 그런 환경이 될 때를 바라보면서 싸워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사람이 오늘 복귀의 책임을 지고 있는 통일교회 문 선생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해방 후 기독교를 중심삼고 출발하려 했지만 틀어져 나갔습니다. 예수님이 유대교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를 수습하기 위한 결정적 기회를 잡아서 출발하려 했지만 틀어져 나갔던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가정적 기반을 중심삼고 교회와 나라를 연결시키려 했던 모든 것이 틀어져 나갔습니다. 기성교회가 여기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수님이 반대를 받아 이방 종교를 통하고 이방 민족을 거쳐서 다시 돌아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문 선생도 그래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원수의 나라를 다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북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북에서는 전부가 원수입니다. 적국이었습니다. 발을 디디는 곳이 전부가 원수였다는 것입니다. 나라와 교회는 물론 백성까지도 선생님을 때려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주먹으로 대하게 되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수없이 희생 봉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열번 맞고도 그들을 위해 복빌어 주고, 천번 천대를 받더라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는 작전을 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이와 같은 작전을 해 나온 것입니다. 천번 만번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참아 나오셨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37-51
아들을 살리기 위해 어떤 시험도 받으셔야 하는 하나님
하나님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오셔야 했으니, 지금까지 억울한 분을 풀수 없는 사정이었습니다. 억울하게 죽어 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떠한 시험이라도 당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정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시험을 당하면서도 지금까지 극복해 나온 것입니다. 천년 한스런 사연이 일년 동안에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묵묵히 극복해 나오는 것입니다.

원수의 창끝 앞에 서 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원수로부터 가해지는 어떠한 욕도 감수하면서 구원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원수 앞에 굴욕을 당하는 것도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렇게 고생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이신 것을 선생님이 알고 있는데 고생을 한다 해도 10년, 20년, 1대밖에 더 고생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년 생애에 그런 길이 첩첩이 가로 놓여져 있어도 이 길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이걸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나라도 잃어버리고, 교회도 잃어버리고, 가정도 잃어버리고, 다 잃어버린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가정을 버렸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북으로 떠날 때 성진 어머니와 성진이를 버리고 갔습니다. 선생님이 가정을 가지게 된 것은 교회를 연결시키고 나라를 연결시켜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라와 연결되지 못했고 교회와도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가정의 기반은 가졌지만 이스라엘 나라, 유대교와 연결되지 못한 입장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가정을 모르는 입장에서 모든 인연을 끊고 원수의 세계인 이북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다시 탕감역사를 거쳐오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길에 섰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부모 처자를 다 버리고 그런 길을 갔던 것입니다. 나에게는 어머니가 있어도 어머니가 아니요, 아버지가 있어도 아버지가 아니요, 형제가 있어도 형제가 아니요, 처자가 있어도 처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갖지 못하고 맞이하지 못한 한을 품은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부모를 만나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없었고, 처자들을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어머니 아버지는 선생님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의 형제들은 선생님을 위해서 희생하던 형제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만고의 어떤 효자보다도 나은 모습으로서 직행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닌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방 직후, 2차 대전 직후에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교계와 나라에 연결시켜 아시아에서부터 세계로 전개시킬 수 있는 경계선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일족을 중심삼고 연결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이었지만 교회가 반대하고 나라가 반대하니 선생님은 할수없이 예수님이 갔던 길을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알겠어요?

37-53
뜻을 위해서 선생님이 걸어야 했던 노정
선생님의 그 장면을 보면 예수보다 더 비참하고 서러웠습니다. 사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예수님보다 나은 자리에 서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형제들이 예수님보다 나은 자리에서 선생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교회의 사랑을 못 받았고 나라의 사랑을 못 받았습니다. 이게 한이 라는 거예요.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을 받고도 교회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나라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와 나라에 연결시키는 일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사랑하는 부모와 처자식을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다시 돌아와야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성진 어머니가 천년 사연의 한을 극복하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참아 나왔더라면 오늘 선생님 가정에 불상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끝날에는 자기 부모라고 해서 부모를 모실 수가 없습니다. 남한 땅에 발을 들여 놓을 때도 처자를 먼저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게 되면 다시 탕감노정을 걸어야 됩니다. 그래서 성진이는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이 길을 다시 닦아 1960년에 성혼식을 할 때까지, 부모의 자리에 설 때까지 성진이와 같이 살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살아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성진이를 김원필이한테 맡긴 것입니다. 그것은 성진이가 가인적인 장자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원통한 역사가 벌어진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아내가 있어도 아내를 만날 수 없었고, 자식이 있어도 자식을 만날 수 없었으며, 부모가 있어도 부모를 찾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평양에 갔을 때 거기서 한 시간 반이면 고향 집에 갈 수 있었지만 집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나오기를 그렇게 고대하고 정성을 다하여 기다리던 부모 형제를 찾아가지 못하는 서글픈 탕감의 노정을 걸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를 사랑하고 처자를 사랑하는 것 이상 사탄의 아들딸을 더 사랑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편성하는 데 있어서도 나와 더불어 부모도 그들을 사랑해야 하고 처자도 그들을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만 이들이 종족의 틀이 되는 것이요, 교회의 틀이 되는 것이요, 민족의 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것을 다시 소생시켜 찾을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길에서 성진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고 통일교인을 사랑했습니다. 선생님은 이북에 있었어도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니 할수없이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소문이 난 것은 바로 그것에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당하지 못할 심정의 십자가를 선생님이 졌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서러움, 교회를 잃어버린 서러움도 서러움이었지만, 그것보다도 6천년의 한을 풀기 위한, 가정적인 기반을 못 가졌던 예수님의 한을 풀기 위해서 세웠던 가정적 기틀을 다시 잃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이것이 더 서럽고 분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재차 편성해서 가정적 기반을 다시 세운 것이 현재의 가정입니다. 알겠어요?

37-54
돌고 돌아온 탕감역사
1960년도에 성혼식을 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가정의 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진이 어머니가 반대를 했기 때문에 이 가정의 틀을 중심삼고 이러한 역사적인 소생의 과정을 거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 안 되면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성진 어머니가 해와의 입장이고, 희진이 어머니는 마리아 입장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데리고 애급으로 간 것처럼 희진 어머니도 희진이를 데리고 일본에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탕감복귀역사는 이렇게 돌았습니다. 그래 철부지한 여러분들이 스승에 대해서 알아요?

희진이는 일본 오무라 수용소에서 3년 이상을 자랐습니다. 원수의 철창에서 자랐습니다. 희진이는 세상의 어떠한 아들보다도 귀한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도를 세우기 전에는 사랑을 중심삼고 부자의 인연을 맺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진이 손목 한번 안 잡아 주었습니다. 아버지로서 한번 똑바로 대해 주지 못했다는 거예요. 냉정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내 아들을 사랑하기 전에 가인을 먼저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찾아 세운 제2 이스라엘을 먼저 사랑하고 난 후에 아들딸을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입니다. 섭리는 원칙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복귀역사를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마리아가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죽을 고비에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가 1960년대에 있어서 희진 어머니를 중심삼고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희진 어머니는 바다를 건너가 일본에서 모험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적응하고 다시 돌아올 때는 민족이 환영하면서 맞이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실패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실패한 것과 같은 결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진이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인연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진이는 객향에서 태어나 객향에서 죽었습니다. 알겠어요? 예수님도 객향에서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햄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지에서 십자가에 돌아갔던 것입니다. 희진이도 어머니가 책임을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운명길을 갔습니다.

1969년도에 통일교회 식구 전체를 동원시켰을 때 식구들은 여기에 별로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희진이가 `통일교회 식구들이 안 나가면 나라도 나가야 되지 않느냐’ 하면서 나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갔지만 지금도 희진이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희진이가 손해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30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30대 이하 10대, 20대에서 죽은 영인들은 복귀할 수 없습니다. 그럼 그들을 누가 연결시키느냐? 그들은 영계에 가더라도 십자가의 혜택권내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희진이가 타계함으로 말미암아 10대, 20대권의 영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그 권내의 영인들에게 크나큰 복귀의 혜택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그가 죽었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매정했다는 것입니다. 천법은 엄하고도 매정한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비로소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게 되었습니다. 6천년의 역사 가운데 아담, 예수, 재림주 시대에까지 탕감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해와에 해당하는 것이 성진 어머니이고, 마리아에 해당하는 것이 희진 어머니이며, 재림시대의 어머니에 해당하는 것이 현재의 어머니입니다. 알겠어요?

37-56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그런 어머니가 나왔기 때문에 비로소 사위기대가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국진이까지 태어남으로 인해 하늘의 운세가 통일교회로 온다는 거예요. 복귀역사는 여러분도 모르는 가운데 그렇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을 가려가는 데는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십자가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무슨 십자가의 길을 가느냐? 지금까지 심정의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수님은 육적인 십자가의 길을 갔지만 선생님은 심정의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여러분이 참고로 알아 두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도 선생님은 통일교회 교인들을 선생님의 아들 성진이보다 더 사랑합니다. 선생님은 내 자신과 혈족을 희생시켜서라도 대한민국과 세계를 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선생님이 예수님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의 한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라를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교회가 어떤 교회냐? 기성교회입니다. 선생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나라는 이 한국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사랑할래야 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직접 사랑할 수 있는 권을 만든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단입니다. 만약 기성교회가 선생님을 믿고 따랐다면 통일교단은 필요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믿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 혼자 직접 아벨 교단으로 통일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기성교회는 가인적인 교단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벨 혼자서는 절대로 하늘나라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도 가인을 데리고 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낙원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얘기를 하자면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기 때문에 나중에 시간이 되면 얘기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천국에 가려면 가인과 하나되어 부모를 모시고 가야 합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하면, 가인 아벨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열매가 둘이 되었다는 거예요. 천국에는 사랑의 열매가 둘이라는 말도 없거니와 그런 모양도 볼 수 없습니다.

본래 천국은 사랑의 열매가 하나로 인연되어서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가인 아벨로 갈라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와 같은 입장에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벨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입장에 서야 하는데 아벨은 두번째 열매입니다. 이 두번째 열매가 첫번째 열매의 자리에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생이 형님 자리에 서서 첫번째 사랑의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형님은 동생의 자리에 서서 동생이 하는 일을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매에는 계통적으로 형이 있고 동생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가 형이 되겠다고 우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못하면 부모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복귀되지 않으면 부모를 못 맞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앞에 가인이 누구냐? 여러분이 아벨이 되려면 가인이 없어 가지고는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가인이 없어 가지고는 무엇이 될 수 없다고요? 「아벨요」 따라서 개인적인 아벨이 되려면 개인적인 가인이 있어야 되고, 가정적인 아벨이 되려면 가정적인 가인이 있어야 되고, 종족적인 아벨이 되려면 종족적인 가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민족적인 아벨이 되려면 민족적인 가인이 있어야 되고, 국가적인 아벨이 되려면 국가적인 가인이 있어야 되고, 세계적인 아벨이 되려면 세계적인 가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37-58
민주주의, 공산주의, 통일주의
그러면 세계적인 가인이 누구냐? 공산당입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중에 어느 것이 먼저 나왔느냐? 민주주의가 먼저 나왔습니다. 공산주의, 즉 마르크시즘(Marxism)은 120년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데모크라시(Democracy)는 4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형이예요? 아벨이 형이 되면 됩니까? 민주주의는 아벨의 터전을 계승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나온 것이지 아벨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무슨 말이냐? 가인이 나오기 전에 있었던 것은 무엇이냐? 천사장입니다. 그 천사장형 세계를 이룬 것이 민주주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세계는 아들된 아담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아담을 중심삼은 민주주의 시대가 아닙니다. 형제가 다 같을 수 있어요? 형이 있고 동생이 있어야 질서가 잡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고 통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형님 될 수 있는 주인된 아벨이 와야만 민주세계에 질서적인 형제의 인연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세계적인 사조가 달라졌습니다. 그것은 전승 국가들이 수많은 패전국가를 해방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상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왜 그러냐? 형제적 인연의 세계가 다가오고 있으므로 질서를 세우려면 모든 국가가 다 같은 자리에 서야 되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그 질서는 누가 결정하느냐? 주인의 입장인 아벨이 와서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 결정을 받으려면 다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2차세계대전 이후 강대국들이 식민지 국가를 해방시켰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다 들어 맞는 것입니다. 그런 깊은 내용을 이야기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참고로 대충 알아 두길 바랍니다.

공산당은 무엇이냐? 오시는 재림주님 앞에 무엇이라고요? 가인입니다. 그래서 재림주님은 언제 오셔야 되느냐 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오시는 재림주님은 무슨 주의를 가지고 무엇을 하러 오시느냐?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주의를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처럼 `노동자 농민은 단결할지어다’ 하는 주의가 아닙니다.

통일사상은 `세계의 양심적인 사람들은 단결할지어다’ 하는 주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의 입장은 `세계의 양심 인사는 동원할지어다’ 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사상의 표어입니다. 이것은 계급을 초월한 것이요, 종족을 초월한 것이요, 흑백 인종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공산당은 오시는 주님보다 먼저 나왔습니다. 알겠어요? 통일사상은 노동자 농민을 위주한 것이 아닙니다. 하류계급이지만 상류계급을 위주로 하는 것입니다. 상류계급은 양심을 위주로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 인사 해방운동이 벌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주의는 동네에 양심적인 사람이 천대를 받으며 못 사는 사람들이 있으면 이들의 앞날을 보장해 주고, 이들에게 출세의 길을 마련해 주며 세계로 갈 수 있게끔 길을 닦아 주자는 주의입니다. 알겠어요? 「예」

37-59
탕감복귀역사의 성취와 가인 아벨
세계적인 가인인 공산당이 생겨났으니 세계적인 아벨이 나와야 됩니다. 가인이 없어 가지고는 아벨이 나올 수 없습니다. 아벨이 오기 전에 가인이 먼저 왔지요? 「예」 이것은 세계적인 가인 아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적인 가인과 아벨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국가적인 가인 아벨이 누구냐? 아담 가정에서 형제가 갈라진 것은 한 몸이 갈라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몸이 갈라진 것과 같은 나라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아벨적인 나라가 있어야 되고 가인적인 나라가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가인 주권이 먼저 세워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어떤 나라냐 하면 대한민국입니다. 이북이 남한보다 주권을 먼저 세웠어요, 나중에 세웠어요? 이북의 주권이 먼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런 나라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나라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가인적인 교회가 있어야 되고 아벨적인 교회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는 가인적인 교회고 통일교회는 아벨적인 교회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가인 종족이 있어야 되고 아벨 종족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요? 아벨 종족은 축복받은 가정들이요, 가인 종족은 축복받지 않은 가정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벨 가정이 있어야 되고 가인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아벨 가정은 현재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이요, 가인 가정은 축복가정 이외의 가정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벨 개인이 있어야 되고 가인 개인이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나되어야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되어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하나님까지 치면 모두 8단계입니다. 한 단계씩 올라갈 때마다 탕감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요? 여러분은 어떤 세상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있지? 알아요, 몰라요?

1960년대는 어떤 때냐? 1960년대 이전부터 60년도까지는 개인의 탕감복귀를 위해서 나온 때입니다. 하나님이 개인적인 아벨을 세우기 위해서 4천년이 걸렸습니다. 4천년이 걸려서 개인적인 아벨을 세웠지만 탕감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아벨인 예수님을 중심삼고 개인적인 가인인 세례 요한이 하나되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야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때에 탕감했어요, 못했어요?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개인적 탕감을 하지 못한 하나님의 슬픈 역사가 남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생님 시대에 와 가지고 지금까지 하지 못한 일을 탕감복귀해 나가는 것입니다.

37-60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천사장과 하나되어야 한다
탕감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기 생명을 버리고 자기의 사랑을 희생할 수 있는 자리에서만이 탕감복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과 자기의 사랑을 예수님 앞에 몽땅 바쳐 드렸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벨 앞에 가인이 갖고 있는 가정과 가인이 갖고있는 종족과, 가인이 갖고 있는 나라와, 가인이 갖고 있는 세계를 바쳐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래 누구의 것이야? 아담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사장이 전부 다 가져 갔다는 것입니다. 일체의 모든 것은 천사장이 가져 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주인인 아담이 달라고 하면 전부다 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네 생명도 내 것이요, 네 사랑도 내 것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할 때 천사장이 사랑과 생명을 유린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은 다 껍데기입니다. 그러면 천사장 입장의 가인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네 생명을 아벨 앞에 바쳐라. 네 사랑을 아벨앞에 바쳐라’ 할 때, `예이’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만 되는 날에는 틀림없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가룟 유다가 왜 예수님을 팔아 넘겼는지 알아요? 예수님 앞에 생명을 바쳐야 되고 사랑을 바쳐야 될 텐데 거기에서 틀어졌던 것입니다. 여기에 돈 같은 것이 문제였겠어요? 내 나라가 문제고, 내 가정이 문제고, 내 형제가 문제고, 내 자신이 문제인데 교회가 문제가 됩니까? 그래서 예수님도 `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런 생명을 바칠 수 있느냐 이겁니다. 참사랑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아벨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벨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가인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걸 먼저 알아야 되겠구만. 세밀하게 얘기하려면 한정이 없습니다. 아벨은 아담의 입장입니다. 아담의 입장인 아벨은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을 못 맺은 것이 타락입니다. 둘째는 천사장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아벨에게 있어서 천사장격 인물은 가인입니다.

아담이 있기 전에 천사장이 먼저 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있기 전에 가인이 먼저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아담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담 대신 아벨을 세우신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본래는 하나님 앞에 아담이 하나되고, 아담 앞에 천사장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타락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는 하나님과 아담이 하나되지 못하고 아담과 천사장이 하나되지 못한 것을 하나될 수 있게 땜질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37-62
아벨이 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아야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섰어요, 못 섰어요? 「못 섰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뭐예요? 그래도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믿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 섰습니까, 못섰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 같아요, 못 받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는 것 같다면 아예 보따리 싸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웃음) 원리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없게 된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엊그제도 얘기했는데 하나님 앞에 절대 순종하고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 앞에 절대 순종, 절대 복종하지 않고 사탄과 속닥속닥했기 때문에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밖에 몰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외에는 어느 것도 안중에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됐어요?

먼저 여러분이 선의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사랑도 받을 수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구장은 선생님을 대신한 심부름꾼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지구장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선생님이 사랑해 준다는 약속 밑에서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여러분이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약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약속이 선생님과 여러분에게 어떤 관계가 있느냐? 통일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무엇이냐? 부자의 도리입니다.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믿으면 선생님은 아버지이고 여러분은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걸 맺어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들의 모든 소유물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죽기 전에 아들 앞에 물려주고 싶어합니다. 아들을 잘 키워 가지고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잘 키우기 위해서 새벽같이 나와서 이 놀음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을 가져야 되느냐? 통일교회 선생님은 내 아버지이고 나는 틀림없이 택함받은 아들이다 하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은 칼이 목에 들어오더라도 부정할 수 없다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적인 신념만 가지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 말 들으니 기분이 조금 좋지요? (웃음)

어떤 면에서는 내가 기분이 나쁩니다. 이것을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여러분들을 종처럼 부려먹을 수 있을 텐데, 이것을 가르쳐 주었으니 종처럼 부려먹지 못할 것입니다. 부려먹더라도 아들과 같이 사랑하면서 코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해 주어야 된다는 거에요. 그러니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죽어도 선생님, 살아도 선생님, 좋아도 선생님 해야 합니다. 선생님을 그렇게 좋아해야 된다는 거에요.

37-63
참부모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라
그러면 선생님을 얼마만큼 좋아해야 되느냐? 자기 색시보다 더 좋아하고 자기 남편보다 더 좋아해야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자기 남편보다 자기 색시보다 더 먼저 좋아해야 할 것 아니예요? 먼저 부모의 사랑의 인연을 몽땅 내 사랑으로 하고 나서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아들딸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부모로서 오시는 참부모를 누구보다도 몽땅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외의 사랑은 일체 허용되지 않습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것과 같은데 어떻게 사랑이라는 말을 할 수 있어요? 여러분은 태어나지도 않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모르면 태어나지 않은 입장과 같다는 거예요.

참부모를 알고 난 후에는 좋아도 부모님, 슬퍼도 부모님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일체의 관심이 참부모에게만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공부에 관심이 있지’라고 할 사람도 있지만 태어나지도 않은 녀석이 벌써 그렇게 말하면 그는 망할 녀석이라는 것입니다. `나 대학 가야지’ 하는 것은 법도에 틀어진 것입니다. 또, `내 마음대로 살아야지, 언제 청춘시대가 또 있겠느냐. 원리고 무엇이고 내 멋대로 살겠다’ 하는 녀석들은 다 원리에 벗어난 녀석들입니다. 이 정도로 말하면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겠지요? 「예」

자격은 없지만 참부모와 그런 관계를 맺으면 여러분이 자녀가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자녀가 될 수 있는 첫째 조건은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지요? 하나님과 선생님은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종적인 관계에 있지만, 선생님과 여러분은 횡적인 기준에서 부자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종적인 인정을 받은 선생님은 종적인 인정을 계승받아 가지고 횡적으로 자녀를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횡적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나님의 종적인 아들의 위치에서 사랑을 받아 종적인 중심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선생님의 횡적인 사랑을 받게 되면 횡적인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53-64
복 있는 사람
그 종적인 중심은 하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통일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되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걸 알아요? 여러분들은 머리가 부족하여 몰라서 그렇지, 통일교회의 교리는 앞으로 학문적으로도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빼놓고는 이론이 성립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도 통일교회 교리는 이상이 없다는 거예요. 앞으로 신학교에서 문제가 될 것이고, 대학교의 철학과에서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 문제는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년 1월 10일경부터 대학교수 한 50명이 아카데미 하우스에 와 가지고 통일교회 원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들이 복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복있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해? 여러분들은 왕가집에 태어났는데도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눈만 크게 떠 가지고 껌벅껌벅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 시골에도 나가 보고, 세상에도 나가 보아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철없이 들어와 가지고 통일교회 울타리에서 자랐기 때문에 여기가 좋은 줄은 모르고 세상으로 한번 나가 보겠다고 머리를 내밀고 기웃기웃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는 모가지가 잘린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복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얼마만큼 복이 있어요?

예수님이 훌륭해요, 안 훌륭해요? 「훌륭합니다」 예수님은 장가도 못 가고 후손도 못 남기고 죽었습니다. 자식도 못 남겼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후손을 가질 수 있어요, 없어요?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나아요? 「우리가 나아요.」 (웃음) 그럴 수 있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37-65
통일교인의 생활자세
아들이 되려면 첫째로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아담이 완전한 아들이 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아담이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사랑을 못 받았느냐? 그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다른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출세라든가 자기를 중심삼은 생각을 하다가 타락을 했던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중심삼은 생활이나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일체를 부모한테 문의하고 부모를 중심삼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 서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여러분이 대학을 가려면 누구한테 물어 봐야 되겠어요? 「선생님께요」 여러분을 낳아 준 어머니 아버지한테 물어 봐야지요? 누구한테 물어 봐야 되겠어요? `물어 보기는 누구한테 물어 봐. 나 혼자서 결정하지. 어머니가 고생하든지, 아버지가 고생하든지 간에 내 맘대로 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이 불효예요, 효예요? 「불효입니다」 불효입니다. 그런 사람은 혓바닥 내 가지고…. (행동으로 설명하심. 웃음) 기분 나빠요?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나도 그 코에 걸려서 이 놀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없었으면 내가 얼마나 해방적이었겠나 생각해 보세요. 출세를 했다면 세계적으로 출세했을 것입니다. 돈을 모았다면 이병철이나 조중훈이보다 더 많이 모았을 거예요. 일본 사람들 껍데기도 벗겨다가 팔았을 것입니다. (웃음)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 성격에 몇천만 원, 몇억 원 가지고 만족할 것 같습니까? 한번 벌었다면 수천 억씩 벌어야지, 그런 놀음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거예요. 세계의 돈을 전부다 벌어들이든가 세계를 망하게 하든가 둘 중의 하나는 해야 만족해 했을 것입니다. (웃음) 선생님에게 그런 머리도 있다구요. 세상 사람 전부가 하늘 맞은편에서 선생님을 죽이겠다고 하는데도 슬쩍슬쩍 피해 가면서 선생님이 이렇게 다 만들어 놨거든요. 그렇지요?

앞으로 기성교회 목사들을 한 700명 정도 초청해서 원리강의를 해주려고 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그때는 `아이구, 내가 통일교회 잘 들어왔구나’ 할 것입니다. (웃음) 병신 자식이라도 우리 아버님이 훌륭한 분이구나 할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온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모르고 있는 가운데 선생님은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벨이예요, 가인이예요? 「아벨입니다」 이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아벨이야, 가인이야? 「아벨입니다」 아벨이야, 가인이야? 「아벨입니다」 어째서 아벨이예요?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53-66
먼저 역사의 한의 풀어야
그러니 먼저 역사의 한을 풀어야 됩니다. 복귀 원리가 이렇기 때문에 부모도 참부모가 있어야 되고, 눈물도 진짜 눈물, 사랑도 진짜 사랑, 주는 것도 진짜 주어야 합니다. 그래 여러분, 진짜 주었어요? 그렇다면 사탄 앞에 증거를 보여 주어야 됩니다. 사탄이 `네가 어째서 아벨이냐’ 할 때 `나는 이래서 아벨이다’ 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리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해야 됩니다」 사탄한테 져야 되겠지요? 「이겨야 됩니다」 사탄이 나에게 이렇게 하면 나는 요렇게 해서 때려 부수어야 된다는 거예요. 사탄의 목을 잡아 끌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근성은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 백 퍼센트이니까, 내 본성은 낮아지고자 하는 것이 천 퍼센트 되어야 합니다. (웃음) 남들은 전부 다 올라가자고 하지만 통일교인은 세계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오히려 내려가자는 거예요. 여러분, 내려가는 것이 쉬워요, 올라가는 것이 쉬워요? 「내려가는 것이 쉽습니다」

통일교회는 올라와 있습니다. 사상으로 보면 통일사상이 제일 높습니다. 선생님은 나보다도 더 높은 사람이 있으면 기분이 나빠서 잠을 못자요. (웃음) 하나님을 모시는 데도 하나님이 내 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잠을 자지, 그렇지 않고는 잠을 못 자는 사람입니다. 나는 남에게 지고는 잠을 안 자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고등학교 때 씨름의 챔피언이었습니다. 선생님보다도 나이가 많고 힘이 센 사람과 씨름할 때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선생님보다 세 살 많은 사람이었는데 4개월 걸려서 내가 깔아 넘겼습니다. 선생님이 그 사람을 이기기 위해서 선생님 집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붙잡고 씨름 연습을 했습니다. 이 아카시아 나무는 고질통이어서 여간해서는 꺾이지 않습니다. 그 나무의 껍데기를 벗겨 가지고 어떻게 하면 넘어뜨릴 수 있을까 하고 밤새도록 궁리를 하면서 씨름 연습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나무를 기어코 쓰러뜨리고 나서야 잠을 잤습니다. 그렇게 연습한 끝에 그 사람과 씨름을 해서 이겨 가지고 그 면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씨름이 전문이 아니기 때문에 이만하면 됐다 하고 그만 두었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이든지 한번 한다 하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한다는 것입니다. 내 성격이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손만 대면 다 세계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 우리 어린이 무용단도 세계적이 됐지요? 미국의 백악관에 가서도 춤을 추고 왔지만, 이제 일본에 가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 승공연합도 세계적이 됐지? 그렇게 다 되는 거라구요. 안 되면 내가 안 먹고 안 자고서라도 되게끔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 공장도 국가적인 기준에서 앞으로 세계적인 기준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군수산업도 우리 공장을 빼놓고는 안 될 때가 올 것입니다.

내년 12월 쯤 가면 청와대에서 싸인을 해서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런 것은 여러분들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돈 생길 것을 생각하게 되면 입이 벌어지는 거예요. (웃음) 여러분 통일교회가 돈이 있는 것 같아요, 없는 것 같아요? 「있습니다」 없는 것 같지만 있고, 있는 것 같지만 없다는 것입니다. 그거 보면 도깨비 같아요. (웃음)

37-68
통일교인이 지녀야 할 처신법
통일교인은 정신적으로는 제일 높은 곳에 올라와 있습니다. 만약 육체적으로도 올라가면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제일 밑창으로 내려가야 됩니다. 영적으로는 최고인 동시에 육적으로는 최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번에 내가 한번 시험해 본 것입니다. 통일사상이 얼마나 위대한지 테스트해 본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가정 부인들에게 남편이나 아내나 아들딸을 다 버리고 `출동하라’고 한 것입니다. 가는 데는 어디로 가느냐? 호화로운 청와대나 고관의 자리와 같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제일 낮은 자리에 종살이 하러 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 간다고 하는 사람은 모가지를 잘라 버리는 거에요. 그러면 갈 것 같아요, 안 갈 것 같아요? 「갈 것 같습니다」 역사 이래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 외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일을 대통령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통령이 이렇게 한다면 이틀도 못 가서 불평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하게 되면 기가 막히지만 소리없이 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없는 생활을 한다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꼬물꼬물거리면서 시시하게 아이들 장난질 치듯이 살림하는 사람들, 남들이야 전도를 하든지 말든지 몇 해만 더 하면 자리 잡겠다고 하는 여자들은 왕창 부숴 버려야 합니다. 탁 차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성들이면 그 정성은 들이나마나 한 것입니다.

전도를 마치고 돌아가게 되면 그릇도 없고 숟가락도 없어서 별수없이 밥을 바가지에다 퍼서 손으로 집어 먹게 될 것입니다. 또, 반찬이 없어서 소금에 찍어 먹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여러분을 못살게, 망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 남편이 몽둥이를 들고 와서 나를 때려잡겠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웃음) 그게 잘 될 징조예요, 못 될 징조예요? 「잘 될 징조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좋다고 찬양할 거예요, 싫다고 나빠할 거예요? 여러분들은 틀림없이 `우리 엄마 아빠 미쳤어’라고 할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이 그렇게 안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하셨겠어요.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이 된 것은 여러분이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걸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내려간 사람들은 잘 내려갔어요, 못 내려갔어요? 내려갔다면 얼마만큼 내려갔어요? 밥을 얻어먹는 자리까지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남편 품에서 `사랑 안 해주면 나 못 살겠소 ‘하던 자들이 이런 거러지 신세가 웬 말이뇨…. (웃음)

37-69
통일의 방안과 통일의 의지
그러면 동원된 사람이 `우리 엄마는 우리를 버리고 어디 가셨나. 밥은 누가 주나. 아이쿠 큰일 났구나’ 하고 자식만 생각하는 그런 어머니보다 꿰맨 옷을 입고도 당당히 나가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했던 어머니라고 아들딸을 대해서 교육할 수 있는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은 자식을 대해서, 너희 어머니는 역사적인 어떤 위인의 아내보다 훌륭한 아내요,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어머니와는 다르다. 비록 남보다 못한 가난한 초가집에서 살지만 너의 어머니는 세계 제일의 어머니다 하는 것을 교육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어머니를 위해서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자식들이 우리 엄마는 제일 훌륭한 엄마라고, 나라 위해 떠나가신 우리 엄마 복받아라 하고 엄마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남편도 아무개 엄마 복받아라 하고 아내를 위해 눈물 흘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적인 전통이 생겨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면 구덩이로 내려가는 데는 어떻게 내려가야 하느냐? 전부 다 차버리고 내려가야 합니다. 구덩이로 들어가면 전부 다 도망갑니다. 여기에서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구덩이로 내려갈 때 같이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통일교회 문 선생은 통일교회 아줌마들이 전부 다 구덩이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고 신난다고 하지요? 「아닙니다」 내가 지금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아닙니다」

부인들이 내려간 거기에 따라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런 자리에서는 `너의 나와 이별이 있을소냐. 네가 가는 데 내가 가고, 내가 가는 데 네가 가는 것이다’ 하면서 그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를 따라 내려가고, 선생님도 그를 따라 내려가고, 남편도 따라 내려가고, 아내면 아내도 따라 내려가고, 기성교회도 따라 내려가고, 대한민국도 따라 내려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뜻 앞에는 모두 따라 내려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우리가 가지고 나갈 때 대통령이 머리 숙이겠어요, 안 숙이겠어요? 기성교회가 머리 숙이겠어요, 안 숙이겠어요? 그런 사상을 가지고 그런 자리에 가게 되면 그들은 머리 숙이면서 지금까지 잘못 되었다고, 자신들이 엉터리라고 인정하면서 자연히 굴복한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굴복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것이 통일 방안이요, 통일의 의지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승리의 깃발을 들게 되는 날에는 삼천만 국민과, 수많은 교회와, 수많은 가정과, 수많은 개인들이 받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꺾거나 칠 원수는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평화의 천국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누구보다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있는 정성을 다해서 충절의 심정을 가해 가지고 아버지의 명령을 다 못 따라가거든 내가 거기에 미치자는 것입니다.

37-71
하나님의 작전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입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내 생활이 무엇이냐, 밥을 굶으면 어떻고 헐벗으면 어떠냐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사랑하는 작은 마음이 승리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거기에 행복이 깃들 수 있고 그것이 만민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갖고 슬퍼하면 죄인 중의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의 안식처와 미래의 소망의 터전이 내 앞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미래를 위해 현재의 귀함을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승리자 중의 최고의 승리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며 가야 합니다. 전법 중에서 그 이상의 무서운 전법은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작전법입니다. 누구의 작전법이라구요? 하나님의 작전법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젊은 처녀 총각들도 하나님의 작전법에 말려들어서 여기에 왔으니, 이제 갈 곳이 어디일 것이냐? 어머니 아버지의 따뜻한 품속이 아닙니다. 진수성찬이 기다리는 환갑잔치나 생일잔치하는 곳과 같은 자리가 아닙니다. 폭풍우가 사정없이 몰아치는 그런 곳, 집도 없이 석양길을 재촉하는 나그네 신세가 되어 찾아갈 곳도 없으면서 갈 길을 재촉하는 그런 자리, 오늘밤은 어디에서… `노을지는 산마루에 잠을 자는 김삿갓’ (김삿갓 노래 잠시 부르심) 그거 멋있다는 것입니다. (웃음) 비록 쇠고랑을 차고 갈망정 이렇게 멋지게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쇠고랑을 차고 평양 형무소에 갈 때 그런 노래가 나왔던 것입니다.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이 길을 갈 때 탄식과 비운 속에서도 행보를 갖추어 가지 않았는가. 천하의 모든 사람의 심정을 낚아 가지고 갈 수 있는 길이기에 모든 심정 가운데에서 사랑의 동기를 감아쥐고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내가 잡아채면 천하가 모두 뺑뺑이 끌려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게 될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을 이런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끌고 왔는데,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 정말이예요? 「예」 여러분을 그런 자리로 내몰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기분 좋아요? 「예.」 (웃음)

내가 욕심이 많다면 누구보다도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지독하다면 지긋지긋하게 지독한 사람입니다. 또, 끈질기다면 지긋지긋하게 끈질진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뻐떡이고 나온 것입니다. 지금도 젊은 사람한테 안 집니다. 말을 해도 `하나님 가라사대’ 하고 천천히 하는 것이 아니라 `다다다다…’ 하고 아주 빨리 말합니다. (웃음)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을 참 잘했습니다. 예수님이 무식하다면 무식한데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씀을 참 잘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결론을 다 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이 죽겠다고 하는 일이예요, 살겠다고 하는 일이예요? 사실대로 말하면 죽겠다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통일교회는 망한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부 망할 녀석들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 여러분도 생각할 때 통일교회가 망하고, 여러분이 망할 녀석들입니까? (웃음)

요즈음 선생님의 주가가 상당히 많이 올라갔습니다. 정보부라든가 혹은 다른 단체에서도 `승공연합의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이 제일 기분 나쁜 사람이지만, 나라를 위하려니 할 수 없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우리를 빼놓고는 방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이 아니면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상세계에서도 우리를 빼놓고는 안 됩니다. 따라서 사상계가 완전히 내려가면 그때는 우리 천지가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올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 통일교회도 내려가고, 나라도 내려가고, 교회도 내려가면 세상은 지상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가 우리의 뜻을 따라 내려가는 운동을 한다면 천국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내려가라!’ 내려가는 데는 하나님을 업고, 세계를 업고, 나라를 업고, 민족을 업고, 교회를 업고, 가정을 업고, 만민이 머리 숙일 수 있는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를 통일시켜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작전을 해 나오셨습니다. 따라서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주고자 하는 자는 받을 것이요, 받고자 하는 자는 망할 것이다. (웃음) 이건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37-73
밑창으로 내려가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집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지금 교회(전본부교회) 2층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자기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집도 없이 교회에 얹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도 집을 하나 사야 되겠지요? 「예」 무엇으로 살까? 너를 팔아 살까? 그러면 기분 나쁘겠지. (웃음) 집살까 하면 `예’ 하고, 너 팔까 하면 인상을 쓰고…. 그러면 잡아서 팔까, 그냥 팔까? 「그냥 팝시다.」 (웃음) 잡아서 팔면 많이 받을 텐데…. 그러니 가짜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가진 것은 없지만, 금년에 땅을 많이 샀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선생님이 비참한 가운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맨손으로 벌거숭이요, 외톨이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해 가지고 나왔습니다. 보리밥 가운데 도토리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보리밥 속에 들어 있는 도토리 알맹이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닌다는 것입니다. 개도 밥을 다 먹고 나서 심심할 때 한번 깨물어 보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런 어려운 고비를 겪으며 나왔습니다.

통일교회가 그렇게 나왔는데 이 고빗길을 얼마만큼 온 것 같아요? 한 5부 정도 왔을까요? 얼마만큼 왔을까요? 5부까지 왔다면 돌아갈 가망성이 있지만 5부를 넘어서 이제 뜻이 이루어져 간다 하게 될 때에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런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낮잠도 잘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낮잠은 나의 원수였습니다. 침구하고 나하고 원수입니다. 최고의 긴장된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잠을 자다가도 눈을 뜨게 되면 죄인과 같이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를 하는 생활을 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그런 것을 모르지요? 여러분들이 얼마나 편하게 지냈는가 생각해 보세요.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움직이고 싶으면 움직이는 생활을 해왔지요.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다르다는 거예요. 나쁜 의미에서 보면 여러분들이 선생님보다 낫습니다. 그렇지요? (웃음) 고생하는 데 있어서는 선생님이 여러분보다 더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나은 거예요? 「선생님이 낫습니다」

선생님보다 더 고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가 더 나아요? 「더 고생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선생님을 두고 볼 때는 누가 낫습니까? 그건 틀림없이 하나님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왜? 선생님보다 더 고생했기 때문에. 그러면, 선생님이 여러분을 하나님같이 좋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선생님보다 더 고생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을 선생님보다 더 고생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니 전부 꽁지를 끌고 다녀야 되겠다는 거예요. 내가 별의별 고문을 다 받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못 믿겠다고 하면 선생님이 여러분의 목에다 칼을 들이대서라도 믿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믿겠다고 해야 되겠나, 안 믿겠다고 해야 되겠나? 「믿겠다고 해야 됩니다」

앞으로 선생님보다 더 고생하는 사람은 통일교회에서 상속을 받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고생한 것의 10배 고생한 사람과 12배 고생한 사람이 있다 할 때 누가 일등이겠어요? 12배 고생한 사람이 일등입니다. 만일 선생님의 20배 고생한 사람이 있다면 12배 고생한 사람은 졸장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렇게 되면 앞으로 선생님의 종손과 여러분의 종손이 사돈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거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들은 머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봤습니다」 이제 말을 듣고 생각해 보고 계산해 보니 손해 안 나겠으니까 `생각해 봤습니다’ 한다는 거예요? (웃음) 이런 걸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 같았으면 교회에 들어오자마자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작전을 세우고 `아들딸 낳으면 이렇게 할 것이다’ 하고 착착 진행해 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말해 주어도 눈만 크게 뜨고 멍하게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중에는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살살 해 가면서 일을 시키고 나중에는 본전도 못 찾게 하려고 한다고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렇게 해서 선생님이 유익한 것이 뭐 있겠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밥을 못 먹고 살아요, 돈이 없어요? 선생님은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지금 미국 식구들에게 벤츠 차나 링컨 차를 사 보내라고 말만 하면 바로 차를 사 보낸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몇억짜리 집을 살 테니 돈을 보내라고 하면 바로 돈도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을 고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기분이 나쁘지요? 「아닙니다」 `차라리 그 돈이 있으면 우리를 고생시키지 말고 좀 나눠 주지’ (웃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데도 기분이 좋다는 말이예요? 「예」 별수없다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작전을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일교회 선생님이라는 간판을 걸고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자리는 하라고 해도 아무나 못하는 자리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자리를 맡아 하라고 세계에 광고를 내더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자리는 나만이 절대적으로 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 외에 다른 사람이 통일교회 선생님을 한다면 나를 좋아하듯 이렇게 좋아할래요, 안 할래요? 그러면 여러분들 나 좋아해요? 「예」 여자들도 그래요? 「예」 여자들이 날 좋아한다면 곤란한데…. (웃음) 이런 얘기는 시간이 오래 되어서 여러분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듣고 하려고 눈치 봐 가면서 하는 거예요. 그러니 재미있게 하려고 하는 얘기로 알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밑창으로 내려가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37-76
인간의 불복종으로 인한 한을 풀려면
그러면 이제 어느 정도까지 왔느냐? 아시아 정세로부터 세계정세를 다 해결할 수 있는 데까지 왔습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잠을 잘 자는데 선생님이 네시 반에 깨우려고 벨을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울렸습니다. 여러분 중에 벨 소리를 세 번 다 들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들었어요, 못 들었어요? 「들었습니다」 아주 곤하게 잠자고 있는 소년 소녀들을 일어나라고 벨을 누를 때, 누를까 말까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사실 선생님도 고달프거든. 어제 나도 일찌감치 자지 않았더랬어요. 세 시가 넘어 기도하고 나서 시계를 보니 다섯시 채 못 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깨울까 말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벨을 울렸습니다. 맨 첫번에는 벨을 길게 울렸어요? 「다 같은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그 소리를 다 들었다고요?

그러면 여러분이 잠에서 깨 가지고 뭘 했나? 일어날 때 기분 나빴지요? 「눈 뜨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기분이 나쁘니까 가만히 있었던 것 아니예요? (웃음) 잠을 자는데 갑자기 비상벨이 울리는 것은 무슨 문제가 벌어졌다는 것 아니예요? 불이 났다든가 무슨 일이 있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인 새벽에 벨이 울리는 것 아니냐 이거에요. 그런데도 눈 뜨고 가만히 있었다는 것은 기분이 나빴다는 것 아니야. 그렇지요? 「조금 나빴습니다」 조금 나쁜 것도 나쁜 것입니다. (웃음) 기분이 나빴을 거라구요. 선생님이 성전에 들어서서 여러분의 표정을 보니, 꼭 공동묘지 뒷골목에 들어선 기분이었습니다. (웃음) 선생님도 기분이 좋지 않았고 여러분도 우울해 가지고 앉아 있더라는 거예요. 지금은 기분이 어때요? 「싹 바뀌었습니다」 기분이 싹바뀌었어요? 뭐 춤출 정도는 안 되지만 나쁘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선생님은 손해 안 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안 봤습니다」 둘 다 손해 안 봤다면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았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틀림없이 아벨입니다. 여러분은 절대적으로 아벨편입니다. 어느 편이라구요? 「아벨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아벨인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락한 아담 해와의 입장과는 달라야 합니다. 나는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확고해야 합니다. 제일의 선결조건이 이것이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순종도 자연히, 복종도 자연히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불복종으로 인한 한을 풀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틀림없이 나는 무엇이라구요? 아벨입니다.

53-77
세계적인 아벨이 되려면
그러면 아벨이 나오기 전에 가인이 있어야 되는데 가인은 누구냐? 세계의 36억의 인류입니다. 가인은 36억이요, 아벨은 한 명입니다. 즉 36억 대 1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가인을 복귀해야 됩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관입니다. 메시아가 보는 사명관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메시아가 보는 세계관이 아니라 메시아가 보는 사명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졌던 사명관입니다.

세계 인류의 아벨이 되려면 개인의 아벨로서 승리해야 되고, 가정의 아벨로서 승리해야 되고, 교회의 아벨로서 승리해야 되고, 종족의 아벨로서 승리해야 되고, 민족의 아벨로서 승리해야 되고, 국가의 아벨로서 승리해야 되고, 세계적인 아벨로서 공산당 앞에 승리해야 됩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사명관입니다. 예수님의 사명관인 동시에 오시는 재림주님의 사명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가인을 굴복시키려면 국가적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준비, 민족적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준비, 교회적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준비, 종족적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준비, 가정적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준비, 개인적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하여 전체를 한꺼번에 굴복시키는 일을 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 재세시에, 메시아가 이 땅에 사는 시대에 해야 할 책임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 세계를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적인 기반을 다 닦아 놓았습니다. 세계적인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승공사상으로 그러한 기반을 닦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승공사상으로, 외적으로 세계적인 사탄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내적으로는 개인적인 사탄과 가정적인 사탄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이렇게 내적으로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심정을 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심정적으로 어느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보다, 어느 부부의 사랑보다, 어떤 자식을 향한 사랑보다도 더 높은 사랑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의 주장입니다.

37-78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통일교회
통일교회의 주의는 천주주의입니다. 천주주의는 물론 하늘과 땅을 하나로 합하는 주의지만 천주에서 주자는 `집 주(宙)’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정주의라는 것입니다.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 땅입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로 통일되면 천지가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심정을 중심삼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초월해 가지고 가정을 철옹성같이 묶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족이 문제가 아니고, 종족이 문제가 아니고, 인종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묶을 수 있다 하게 되면 세계는 하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싸우지 않고 공산당을 굴복시킬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없다 하게 되면 양면작전을 펴는 거예요. 그러면 세계는 돌아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의 이 작전권내에 세계 공산당이 말려 들었어요, 안 말려 들었어요? 지금 일본에 있는 공산당의 연차계획 제1조가 승공연합 타도라는 것입니다.

지난번 몇 차였나? 15차였나? 하여튼 조총련 자체내의 전당대회를 할 때도 북한 김일성이의 메시지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아시아에 있어서 승공연합을 완전히 철폐시켜라. 그러지 않는 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웃음)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잘된 것이예요, 못된 것이에요? 「잘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우리가 무섭다는 거예요, 안 무섭다는 거예요? 「무섭다는 것입니다」 승공연합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요, 몰라요? 그만큼 크게 되었는데 여러분들이 세계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신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가져야 됩니다. 자신을 가지려면 먼저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신념을 가지려면 이론적인 체계가 서 있어야 됩니다. 사상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강한 사상 가운데는 강한 신념이 있는 것이요, 강한 신념을 가지게 되면 강한 자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럴 수 있는 자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소련의 기관지인 `프라우다’에도 우리 승공연합에 대한 기사가 실렸고, 일본 공산당의 기관지인 `아까하다(赤旗)’에도 우리 승공연합을 때리는 기사가 매일 실립니다. 그들이 어떻게 말하느냐면, `미제국주의가 아시아에 대한 정책을 후퇴하자 이를 계승하여 나온 대표적인 신우익 단체가 승공연합이다. 그런데 승공연합은 앞으로 정책적인 모든 것을 계승받아 아시아에 방어진을 만들려고 한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청파동의 보잘것 없는 판자집에서 살고 있는 소수의 무리지만 여기에서 뻗쳐진 움직임이 세계 공산당들로 하여금 치마폭을 좁혀야 할 단계에 들어오게 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주의가 지독한 주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벌써 그만큼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미국에서도 `통일교회 문선생’ 하게 되면 무서운 존재로 알고 있습니다. 1967년도에 선생님이 미국에 가려고 할 때 미국무성에서 주한 미대사관으로 브레이크를 거는 훈령을 보냈었습니다. `이 사람은 미국에 오게 되면 미국 주권을 말아 먹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미국 입국 비자를 발급하지 말라’고…. 이렇게 미국이 선생님을 무서워한다는 거예요.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일본에 들어가려고 할 때도 일본 외무성이 세계에 있는 일본 대사관에 공문을 보내 가지고 선생님이 일본에 못 들어가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 어린이 무용단이 미국에 들어가자마자 3일만에 백안관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들어가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한 기반을 닦는 것이 쉬울 것 같아요? 국가의 행정대표도 가서 백악관에 들어가 면담하려면 6개월에서 일년쯤 전에 미리 준비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에 갈 때마다 본가집 찾아 들어가듯이 백악관에 들어가 마음대로 춤도 출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들의 안방까지 들어가 이러고 저러고 할 수 있는 기반을 다 닦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37-80
대학과 국제수련소 건립 계획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장학금을 주어서 보낼 수 있는 대학을 짓기 위해서 수십만 평 이상의 땅도 사 놓았습니다. 요즈음 보면 `선생님 지도 방법이야 어떻든간에, 대학 가겠다. 공부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대학교나 대학원을 나오게 되면 선생님이 내 신세를 지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시시하게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내가 대학을 만들어 놓고 길러서 쓰겠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대학부지를 구입하는데 지금 한 8천만 원을 투입해서 14만평의 땅을 샀습니다. 서울대학교의 땅이 약 120만 평 정도 되니까 통일대학은 그것보다 한 평이라도 더 많아야지 더 적으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래서 땅을 사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선 한 10억을 투자해 가지고 40만 평 정도 사야 되겠습니다. 그 이상 살 수 있게 되기 전에는 건물을 짓지 않을 것입니다. 40만 평 이상 사지 않으면 건물 공사를 착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대학만 만들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세계적인 수련소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청평에 65만 평 정도의 땅을 사 놓았습니다. 서울 근교의 땅값하고 같습니다. 한 평에 500원 이상씩 주고 샀습니다. 500원씩만 해도 얼마예요. 한 3억쯤 되겠지? 60여만 평이면 얼마나 크겠나? 굉장히 크지. 앞으로 거기에다 무엇을 할 것이냐? 우리 통일교회 도시를 만들려고 합니다. 각국의 통일교회 선교부가 있을 것입니다. 외국 식구들은 한국에 와서 최소한 한 달 동안 만이라도 살다가 가고 싶은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러니 그들에게 살고 싶으면 와서 살아라 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도시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국제 중앙수련소를 짓고, 고속도로를 만들어 벨을 울리면 오색인종이 최고 속력으로 차를 몰아 일시에 한 자리에 집합 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둘러 모여 춤도 추고 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벌거벗고 춤추면 얼마나 좋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웃음) 그동안 우리가 벌거벗겠다는 말도 못해 보고 벌거벗고 춤춘다고 수없이 욕을 많이 먹었는데 그 욕을 잘 먹었다는 거예요.

세상에서는 통일교회가 진짜 그런 줄로 알고 있기 때문에 가짜배기들은 못 들어오고 진짜배기들만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벌거벗고 패가망신하더라도 한번 가 봐야겠다고 심각하게 생각한 사람이 아니고는 못 들어오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여러분, 심각해요, 안 해요? 「심각합니다」 들어올 때는 구경삼아 왔을지 모르지만 이제부터는 심각해야 되는 거예요. 심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현재 통일교회는 안팎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적인 가정을 중심삼고 식구들이 심정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혈족 아닌 혈족들이 혈족 이상의 사랑의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곳은 오로지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혼란한 민주사회나 공산사회의 말기를 수습하여 위험천만한 세계의 종말의 때를 수습할 수 있는 것은 통일사상뿐입니다.

그리고 현대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보게 될 때, 심령과학이 발달함으로써 영적인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증거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진으로 영계가 있다는 자료를 수집해 가지고 세계적인 활동을 벌이는 그런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일교회 문선생을 증거하기 위해서 하나님도 동원되어 있고, 역사도 동원되어 있고, 안팎으로 전부가 동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 신이 납니까, 기가 막힙니까? 「신납니다」 신나요? 「예」 신이 나고 그 다음엔 기가 막히고 또 그 다음엔? 「기분이 좋습니다」 기분만 좋아요? 기분도 좋지만 심각하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제일 염려하는 것은 돌아쳐 들어오는 이때를 어떻게 안고추어 가지고 상처를 입히지 않고, 흘러 버리지 않고, 전부 다 고이고이 옮겨 가지고 피해 없는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세계는 통일교회 앞으로 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아무리 어쩌구저쩌구해도 통일교회 밥이라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개인을 전도 했지만 앞으로는 교단이 몽땅 넘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또, 나라가 몽땅 넘어올 때가 오는 것입니다. 돌아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가는 시대가 오게 된다는 거에요.

37-82
세계선교본부 건립계획
선생님이 공포를 잘놔요, 실포를 잘 놔요? 「실포를 잘 놓습니다.」 (웃음) 보기에는 공포 같지만 내용은 실포입니다. 이것을 누가 믿을 수 있겠어요? 여러분은 믿어져요? 「예」 공포를 놓게 되면 그것이 실포가 되기 때문에 안 믿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웃음)

이제는 내가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여의도에 땅을 사 놨습니다. 만이백여 평을 샀는데 작아서 만 평을 더 사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며칠 전 조선일보에 난 기사를 봤어요? 「예」 거기에 무엇이라고 했던가? 세계기독교심령부흥회라고 했던가? 이 녀석들은 남의 이름도 모르고 간판을 갖다 썼다는 거예요. 기분 나쁘게 선생님이 산 땅이 제일 좋은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 장소 외에는 좋은 데가 없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우리 땅이 제일 좋은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만 평을 더 사려고 합니다. 그래 가지고 거기에다 선생님이 세계선교본부를 지으려고 합니다. 우리 세계본부를 짓는 데는 얼마나 높이 지으면 좋겠어요? 한 120층, 210층 정도 지을까요? 한1200층 지으면 어떻겠어요? 그렇게 지으려면 지을 수 있다는 거에요. 높이 지을 수는 있지만 거기 올라가는 사람이 죽지 않을까 염려된다는 거예요. (웃음) 그렇게 높이 지어서 뭘 하겠어요. 그래서 세계 선교본부를 120층으로 지으려고 합니다.

선생님이 땅을 한 만평 정도 더 사려고 교섭을 하라 했더니 그 주위가 전부 다 시의 관할인데 시의 계획이 갑자기 변경됨으로써 살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 중입니다.

현재 사 놓은 땅 값이 약 3억 5천만 원이 되었는데 선생님에게는 돈 한 푼 없었어요. 돈 한 푼 없이 맨손으로 땅을 사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했어요, 안 했어요? 「했습니다」

오늘이 몇일이예요? 「22일입니다」 이달 30일까지 땅 값 1억 2천만 원을 은행에 납부해야 됩니다. 지금 선생님 지갑에는 몇천 원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눈깔사탕 사줄 돈밖에 안 돼요. 그런데도 이렇게 태평스럽게 가만히 있다는 것입니다. 1년만 지나면 2억 4천만 원을 납부해야 되는데 그때 가면 납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얼마 안 남아요. 그렇게 해서 선생님이 여의도에 땅을 샀습니다. 그 돈을 어디서 나서 샀겠습니까? 선생님이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금년 일년 동안 쓴 돈이 7억 원 정도 됩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한테 돈 한푼이라도 갖다 줘 봤어요? 선생님은 돈이 없어도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한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 돈을 조폐공사 뒷문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예요. (웃음)

여러분을 고생시키고 있는 것은 앞날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 세계를 동원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닦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위해 선생님이 쉬는날 없이 불철주야 준비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몇 백 교회가 넘어올 것이었는데도 그것을 보류시켰습니다. 왜? 여러분들의 위신을 세워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걸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우리가 우리 통일교회를 짓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른 교단이 통일교회로 넘어오게 될 때 그 교단에 비해서 여러분이 더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고생한 여러분들이 그때 가서 그들 앞에 위신을 못 세우면 선생님은 죽어도 그 꼴을 못 보겠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모든 기준을 세워 위신과 체면을 세워 놓자는 것입니다. 그건 왜? 여러분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 교인을 누구보다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벨의 가치와, 아벨의 자세와, 아벨의 권위와 긍지를 높여 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은 꿈에서라도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래서 금년에 될 수 있으면 교회를 지으려고 했는데, 못해도 명년 6월까지는 어떻게 하든지 각 군 소재지에 지역본부를 지으려고 합니다. 지금부터 설계해서 여러분의 등골을 빼서라도 지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예」 여기에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려요.

37-84
청평은 최적의 국제도시 건립부지
여러분 청평에도 한번 가 보고 싶지요? 「예」 거기에다 씨름장 같은 것들도 만들 것입니다. 선생님이 팔도강산을 다 다녀봤습니다. 1960년대에 여러분들을 전국 각지에다 배치해 놓고 전국의 명산을 전부 답사해 봤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도시의 닻을 어디에 내릴 것이냐? 이 기반을 어디에 닦느냐 하는 것입니다.

좋은 장소는 반드시 호수를 끼고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동해안은 서울에서 너무 멉니다. 서해안은 몇몇 도시가 집중되어 있고, 간만의 차가 상당히 심하여 물이 빠지면 간석지가 되고, 또 감탕 물이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기분이 안 난다는 거예요. 기분이 나려면 못해도 배를 타고 한시간 이상 소요되는 덕적도라든지, 팔미도 같은 곳까지 가야 됩니다. 그러니 서해안도 관광지로서 가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서울에서 멀지 않고 제일 적격인 곳은 청평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팔당도 좀 답사해 봤지만 팔당은 앞으로 도시가 확장되면 시내로 들어가게 됩니다. 서울에서 1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피서지나 관광지로 유람가는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래서 30분이상 걸리는 장소로 택하다 보니 청평 송산리를 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 지역은 참 멋있습니다. 내가 청평 지역을 중심삼고 제일 좋은 장소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선생님이 땅을 사겠다 하면 하나님이 협조해 주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사려고 하는 땅을 팔지 않겠다고 하면 그 가정에 무슨 일이 생긴다는 거예요. 돈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땅을 갑자기 살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선생님이 청평 땅을 산 것입니다. 내가 이 땅을 사겠다 하면 틀림없이 주인이 팔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땅 주인이 자기도 모르게 땅을 팔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 놓은 땅이 굉장히 넓은 땅입니다. 10리에서 15리 되는 청평호수를 중심한 중요한 지역은 우리가 다 샀습니다. 별장지대로서 좋은 곳은 모두 우리가 잡았어요. 앞으로 그곳에서 장사를 하더라도 2,3년내에 수십 배 이상 남길 수 있는 곳입니다. 첫눈에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년에 산 땅이 금년에는 10배 올랐습니다.

구라파 같은 곳을 가 보면 알겠지만 앞으로 도심지에서는 사람이 많이 안 살게 될 것입니다. 도심은 공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공기가 나쁜데 누가 살겠어요? 구라파 같은 데는 하이웨이가 되어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교외에서 산보 삼아 출퇴근하기가 좋습니다. 직장에서 4백리 떨어진 곳에서 출퇴근을 해도 한 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하기 때문에 그렇게 멀리 떨어진 교외에서 출퇴근을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게 아주 기분 난다는 거예요. 앞으로 교통이 발달되면 거리의 차이는 점점 축소되어 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 있는 사람들은 도심지에서 살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위스만 가 보더라도 자연의 경치가 좋은 호수가의 땅 값이 도심지의 땅값보다 비싼 데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서울 근교에서는 청평이 제일 좋고, 청평에서도 우리가 제일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 놨다 하고 알면 틀림없는 것입니다. 산수도 사람 얼굴이 잘난 것 같이 갖추어야 좋습니다. 기도할 장소도 아주 좋은 곳이 있고, 수영할 장소도 있고, 스키를 탈 장소도 있습니다. 그 스케일(scale)이 굉장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상적인 세계적인 도시를 청평에다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만드는 데는 여러분이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만드는 것을 감독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니 여러분은 영어 공부를 좀 하라는 거예요. 죽기 전에 영어 공부를 해 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감독이라도 한번 하고 죽어야 저나라에 가서도 체면이 선다는 거예요. 세계 사람들을 감독했다는 명찰이라도 붙이고 가야 여러분 위신이 선다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뒤로 밀려나가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앞으로 내가 여러분을 공부를 하도록 몰아 넣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학교를 졸업했을망정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해야 되겠습니다.

청평은 영계를 통해서 보더라도 좋은 장소입니다. 발전성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세계적인 도시를 만들려고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에 한 3년 이내에 몇 백만 평의 땅을 더 사려고 합니다.

37-86
복귀섭리에 있어서 돈과 사람은 언제나 있으나 때는 한때밖에 없다
여러분, 이곳 본부에 오면 기분 나쁘지요? 내가 하려고만 하면 이 건물을 당장에 쓰러뜨리고 서울 시내의 어떤 교회에도 뒤지지 않는 좋은 교회를 지을 자신이 있습니다. 350평이나 되는 수택리 수련소도 우리가 28일만에 지었는데…. 그렇지요? 지을 수 잇는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 수십개 국을 순회할 때 보니 조그만 사내 녀석들이 큰 궁전을 가지고 있고 나라를 다 팔아먹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러나 나는 세계를 말아먹겠다는 것입니다. 나쁜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 말아먹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통일교회가 컸어요, 안컸어요? 「컸습니다」

우리에게 대학교가 필요하면 대학교를 만들 것입니다. 대학교를 만들려면 대학교 총장들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대학교 총장들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내가 놀러 다니는 것 같지만 우리 식구들이 모르는 가운데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서울대학교나 다른 몇 개 대학교를 중심삼고 기반을 닦아 놓으면 반대했던 학교 전체가 원리연구회 모임을 자기네 학교에서 갖겠다고 총장끼리 싸우게 될 단계에까지 들어왔다는 거예요. 결국은 머리 싸움입니다. 실력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내적인 입장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지구장들은 40대 전후 한 사람들입니다. 이 지구장들과 중앙의 승공연합 국장들은 정계의 어디건 간에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요즈음 보면 나이 많은 장관들을 위시해 가지고 공화당 국회의원이나 간부들이 승공연합에 출입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우리 승공연합에 대통령도 왔다 가야 됩니다. 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기반을 닦아 놨습니다.

이제 한국의 승공 문제의 해결은 우리가 아니면 안 될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현재 경기도 내의 향토예비군 소대장들을 데려다가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중대장들과 여자들, 그리고 중고등학교 교직원들도 전부 다 교육시키려고 합니다. 우리 수련소가 닳을 정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작전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어중이 떠중이를 데려다가 교육받게 하는 것보다도 좀 똑똑하고 나은 사람을 교육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 1억 원 정도만 수표를 끊어서 한 사람 앞에 천원씩 해서 하루에 2백 원씩 들여 닷새만 교육하면 얼마든지 교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돈만 투입하면 양심적인 지방의 공무원들 10만 명을 교육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10만 명을 교육시켜 놓으면 나중에 그 사람들을 찾아가서 당신들 교육받을 때 천원씩 신세를 졌으니 갚으라고 한다면 천원의 세 배인 3천 원씩은 받아낼 수 있다는 거예요. 장사도 된다는 거예요. (웃음) 여러분은 돈 들 곳이 없어서 걱정이지요? 선생님은 이것 저것 돈 들 곳이 많아서 걱정입니다.

지난번에 통일교회의 아주머니들을 1,200명 동원했는데, 이 사람들에게 여의도에다가 집을 하나씩 사준다면 얼마나 들겠습니까? 한 200만 원이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200만 원씩 1,200명이면 얼마예요? 24억 원이지요? 24억 원만 가지면 그들에게 여의도에다 집을 한 채씩 사줄 수 있다는 거예요.

빌딩도 산다면 살 수 있어요, 없어요? 「살 수 있습니다」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매해 수십억 원도 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대한민국 행정부의 12개 부에 1억 원씩 3년간만 기부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3년만 그렇게 하면 그들은 선생님 앞에 자연 굴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36억 원만 들이면 3년이면 굴복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있어서 때는 한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돈은 언제나 있는 것이고 사람도 언제나 있지만 때는 한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왔는데 돈 36억 원이 문제겠어요?

37-87
희망과 포부를 가지고 달려가는 젊은이가 되라
우리가 그때를 맞았기에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호랑이 새끼가 되어야지 고양이 새끼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래 호랑이 새끼 될래요? 「예」 그러면 호랑이 소리 한번 내 보세요? 「어흐흥」 작더라도 호랑이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옹하고 고양이 소리를 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고양이 새끼가 아니라 호랑이 새끼가 되어 가지고 삼천리 반도의 쭈그리고 있는 고양이 새끼들을 다 쓸어 버려야 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 이제 여러분들이 출동할지어다! 이것이 젊은 가슴에 새로운 희망과 포부를 품고 목적하는 곳을 향해 달려가야 할 용사의 모습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가당해요, 가당치 않아요? 「가당합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대할 때 내가 여러분과 같았던 때를 생각합니다. 그때에 선생님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세요. 싸움질하고 그랬겠느냐? 어떠했을까 궁금하지요? 젊을 때에는 하나의 결심을 중심삼고 착실히 나가야 합니다.

`10년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고, 20년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고, 30년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안 되면 이렇게 결판을 지어 나갈 것이다. 역적이 아니면 충신이 되는 두 길 중에서 한 길을 갈 것이다’ 하는 결심을 하고 나왔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은 있는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였는데도 안 될 때는 깨끗이 가야 되겠다고 각오한 사람입니다. 아주 심각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같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번 결심한 것은 절대적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하는 면에서 보면 여러분들이 선생님보다 훌륭할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이 길을 안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죽어도 가야 됩니다. 실패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미쳐지는 피해가 얼마만큼 막대하다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죽어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어때요? 이 길을 가다가 쉬고 싶으면 쉬었다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여러분이 선생님보다 낫다는 거예요. (웃음) 여러분, 이 길에서 후퇴하겠어요, 후퇴하지 않겠어요? 「후퇴하지 않겠습니다」 않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몇 년간이나 이 길을 가겠어요? 「죽을때까지요」 죽고 나서도 다 못 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재림부활해서 가야 합니다. 손 내려요.

37-89
축복가정 부인들이 동원된 이유
이제 현재의 선생님 입장과 여러분의 입장만 말하고 끝내겠습니다. 선생님의 현재 입장이 어떤 것이냐? 내가 앞으로 한국에 오래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에는 오래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단정해서 얘기해 주는 거예요. 내가 한국에서 해야 할 사명과 책임은 다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기성교회를 어떻게 뜻 앞에 세우고, 이 나라 이 민족을 어떻게 뜻 앞에 세우느냐? 나아가 아벨 국가인 남한을 중심삼고 가인 국가인 북한을 어떻게 하나로 규합시키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없더라도 할 수 있습니다. 기성교회만 우리와 하나되면 남한은 문제 없고, 남한만 우리와 하나되면 북한은 문제가 없습니다.

타락은 여자가 천사장을 유인함으로 말미암아 되었기 때문에 여자를 동원해서 북한의 인민군대를 전멸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의 전법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북한의 인민군이 얼마나 될까요? 노동적위대가 작년에 130만 명이었는데 올해는 140만 명이 되었고, 또 정규군이 40만 명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합해서 200만 명에 가까운 북괴군을 대하여 남한의 여군들로 하여금 싸우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 앞에 나가서 싸우게 한다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원리의 결론입니다. 그것은 천사장이 누가 유인해서 들어왔느냐 하면 해와가 유인해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을 아버지라 하지요? 「예」 통일교회에서도 선생님을 아버지라고 하지요? 「예」 아버지는 아버지인데 진짜 아버지와 가짜 아버지가 있습니다. 가인 아버지와 아벨 아버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아담형이요, 하나는 천사장형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천사장이 아담을 추방할 수 있도록 그 동기를 누가 만들었느냐? 해와가 만들었습니다. 가짜 아버지가 생겨난 것은 여자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여자를 내세워서 복귀해야 되는 거예요. 여자들 기가 막혀요? 원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1960년대에 개인복귀 십자가 노정의 문을 열게 될 때에도 그 문을 여자가 열었던 것입니다. 여자가 십자가를 먼저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복귀 십자가 노정에서 1차로 여자 선발대 출동해서 개인 복귀의 십자가 노정을 넘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2차로 가정 복귀 십자가의 탕감시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정복귀 십자가 노정의 문을 여는 데도 가정의 아주머니들이 선두에 서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 가정의 아주머니들을 동원하였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3차는 무엇이냐? 나라를 위하여 동원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통일하기 위해 삼팔선상에 나설 때 남한의 수많은 가정들이 선발대로 일선에 출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2차 동원기간인 이번이 제일 중요한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되겠습니다.

53-90
마리아의 책임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는 모자협조를 통해서 나온 역사였습니다. 모자협조를 왜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뜻으로 볼 때,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담도 쓰지 못하게 되었고 해와도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둘 다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주인은 누가 되었느냐 하면 천사장이 아담의 입장을 대신하여 주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뿌리가 되는 새로운 혈통을 이어받고 태어난 남자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계자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를 다 잃어버렸으니 하나님이 뜻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발판마저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을 찾는데는 누구를 먼저 찾아야 되느냐? 아담을 먼저 찾아야 됩니다. 그것은 왜냐? 하나님이 창조를 하실 때 아담을 먼저 창조해 놓고 해와를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을 본떠서 해와를 창조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는 종교를 세워 복귀해 나오는데, 그 종교의 종주들은 전부 남자였습니다. 그러면 그 남자들의 소원이 무엇이냐? 남자들의 소원은 하나님이 아니라 여자였습니다. 그렇지요? 기독교의 소원이 무엇이냐? 신부를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부를 찾는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자를 통해서 태어난 아들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없어 가지고는 신부를 찾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자를 찾는 운동을 해 나와 그 기반 위에 하나의 여자를 택해서 그 여자의 몸을 통해 가지고 아들을 보내셔야 할 입장에 계셨던 것입니다. 여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의 이 세상의 남자들은 천사장시대의 남자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난 후부터는 하나님의 아들시대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대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누구냐 하면 마리아의 복중에서 태어난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누구냐? 하나님이 즐겁게 품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종의 딸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은 종의 몸이라도 빌려 가지고 종자를 받아야 되겠으니 할수없이 종의 딸을 통해서 아들을 태어나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알겠어요? 마리아는 누구라고요? 종의 딸입니다. 그 길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종의 몸을 빌려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을 남긴 것입니다.

해와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생겨나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의 몸으로서 명목상 예수의 어머니가 된 마리아는 예수님이 철이 들면 들수록 아버지를 아버지로서 마음대로 모실 수 없는 예수님의 입장을 만들어 준 것에 한을 품고 누구보다도 예수를 사랑해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자기의 체면과 위신을 버리고, 자기 일신을 잃어버리는 자리까지 각오하며 전력을 기울여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편에 서야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리아가 요셉의 편에 섰고, 요셉의 아들딸의 편에 섰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한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었느냐?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어 놓은 후에 그 아담을 본따 해와를 지었습니다. 그 창조원칙에 의하면 해와를 누가 만들어야 되느냐? 즉 예수님의 상대를 누가 만들어 줘야 되느냐? 하나님이 만들어야 되느냐? 하나님은 만들 수 없습니다. 땅 위의 부모의 입장에 있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하나님대신 예수님의 신부를 만들어 주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하지 않은 아담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계승하여 부모의 인연을 갖춘 자리에서, 해와를 창조하시던 하나님의 입장과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신부창조운동에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리하여 마리아는 그 신부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여 자기의 풍습 중에서 좋은 것을 상속시켜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여자를 예수님의 상대로 구해 주지 못한 것이 예수님의 한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상대를 구해 결혼시켜 주었더라면 거기에서 천륜의 한을 품고 에덴 동산으로 복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상대를 구하지 못함으로써 에덴 동산으로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한입니다. 그래서 첫째번 소원도 여자요, 둘째번 소원도 여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의 소임은 무엇이냐? 예수님의 가정을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리아는 비로소 모자협조의 기준에 의한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하게 되는 것이요, 아들 예수는 하늘의 옥좌에 오를 수 있는 황태자의 위신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준비를 마리아가 해줘야 했는데 이것을 못 해줬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가정을 갖는데 있어 마리아가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모자협조 문제도 미해결로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다시 찾아야 할 이스라엘 나라도 잃어버렸고, 유대교도 잃어버렸고, 세계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37-92
통일교회가 이룬 역사적인 승리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한 것이 무엇이냐? 많은 사람들을 축복해 준 것입니다. 축복을 해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닦지 못했던 종족적 기반을 닦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단이 책임 못한 것을 우리교단이 대신 이루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혜택권내에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이스라엘을 대신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보다 행복한 입장에서 요셉 가정의 마리아가 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 참부모를 중심삼고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신랑 신부로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승리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마리아가 예수님의 상대를 결정해 주지 못한 것을 탕감복귀한 자리에 서게 됨으로써 모자협조 기준을 자동적으로 완결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부녀협조의 기준도 완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사위기대를 중심삼은 자녀협조 기준인 가인 아벨 기준도 완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부부가 협조할 수 있는 자유스런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의 입장을 중심삼고 볼 때 가정을 가진 것은 교회를 갖기 위한 것이요, 교회를 가진 것은 나라를 갖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가정을 가지게 됨으로써 예수를 죽게 한 요셉가정의 실패를 복귀하는 기준 위에 서게 된 것입니다. 가정은 교회를 찾아 세우기 위해 희생해야 됩니다. 그래서 가인 입장인 기성교단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지금 남한 땅 120곳에서 축복가정을 대표하여 1,200명의 축복가정 부인들이 고생하며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37-93
3년노정의 중요성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일선상에서 이 천지를 갈라놓았기 때문에 다시 일선상에서 갈라진 심정을 규합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부녀, 모자, 모녀, 부부, 자녀의 심정적 인연이 일시에 파탄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재차 가정을 중심삼고 규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세우기 위해 이번에 축복가정 부인들이 출발한 것입니다.

해와 한 사람이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나라도 잃어버렸고, 세계도 잃어버렸고, 하나님도 잃어버렸고, 부모도 잃어버렸고, 남편도 잃어버렸고, 아들딸까지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여러분이 심정적 기준을 중심심고 한꺼번에 결속시켰다는 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세우지 않고는 가정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가정 부인들이 가정을 버리고, 자녀를 버리고 전도 임지로 떠나게 되면 하나님이 이들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되면 갈라졌던 부모의 심정이 여기에서 결합되는 것이요, 갈라졌던 남편과 아내의 심정이 여기에서 결합되는 것이요, 갈라졌던 부모와 자녀의 심정이 여기에서 결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상에 해와가 타락하여 파탄시켰던 것을 한꺼번에 심정을 중심삼고 복귀하여 연결시킬 수 있는 마지막 고비가 되는 것이 이번 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한 3년 전도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예수님이 3년 노정에서 한을 남겼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3년 노정에서 맺힌 한을 풀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누가 해야 하느냐? 남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가정에서 심정적 일치 기준을 가지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그런 심정적 일치 기준을 가질 수 있는 해와, 즉 여자를 찾아 예수님 앞에 신부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현시대적 환경에서 횡적인 기반을 닦아 가지고 탕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가정의 부인들을 내세워 가지고 심정적 일치의 기준을 세움으로써, 종족적 기반을 닦고 교회와 국가를 향해 넘어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한 이번 3년 기간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37-94
대한민국이 아벨국이 되기 위해서는 남북이 통일되어야
교회는 교회로서 탕감이 있는 것이요, 종족은 종족으로서의 탕감이 있는 것이요, 가정은 가정으로서의 탕감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에 제2차로 축복가정의 부인들이 동원된 것은 제1차로 처녀들이 동원되었던 것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복귀섭리역사는 가정을 찾아 세우기 위한 역사입니다. 천국은 가정에서 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통일교회 운세시대로 들어간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 이 가정들을 교회를 중심삼고 규합해야겠습니다. 교회와 나라를 중심삼고 예수님의 한을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분립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대한민국도 분립되어 있습니다. 이 분립된 대한민국을 하나로 규합시켜야 합니다. 하나로 규합시키지 않고는 승리적 이스라엘 국가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때가 얼마나 가까이 왔는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아담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남북이 통일되어야 합니다. 그 통일방안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단결하고, 여군을 강력히 만들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여자들은 아주머니와 아가씨들 할 것 없이 모두 동원하면 북한군의 배가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삼천만이 넘으니까, 이북 국민 천 삼백 만의 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여자만으로도 이북 국민을 능가할 수 있기 때문에, 여자를 모두 동원해서 군대를 만들면 이북 군대도 때려 부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믿고 들어오고, 세상의 가정들이 통일교회를 믿게 되면, 선생님이 축복의 가치를 그들에게 설명해 주어서 골수가 새빨갛게 불이 달도록 만들어 놓고 동원하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동원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그때에는 대학교 운동장을 군대 연병장으로 만들어 가지고 그들을 훈련시킬 것입니다. 내가 총사령관이 되어 `차렷, 앞으로 갓!’ 하면 여자들이 `하나 둘, 하나 둘’ 하면서 훈련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북진통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북 인민군들과 싸울 때 여러분, 이기겠어요, 지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이기겠습니다」 절대로 이겨야 됩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나라의 승리를 다짐하고 `여자의 해방의 깃발을 세계만방에 드높일 수 있게끔 세계에 널려 있는 여성들은 여성운동을 할지어다. 그리하여 여권을 옹호해 줄 수 있는 자유의 천국을 위해 세계에 널려 있는 여성들은 갈지어다’ 이렇게 선전하는 날에는 모든 여자들이 남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가지고 모이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그 여자 장군들의 왕군이 될 거예요. (웃음) 여자들이 틀림없이 남자들의 보물을 도적질해 가지고 오게 된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올 때 전부 도적질해 가지고 나왔지요? 앞으로는 여자들이 가정을 나올 때 남자들의 보물단지를 전부 가지고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명령만 듣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것이 옳소, 안 옳소? 「옳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의 보물은 전부 여자의 주머니 안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다이아몬드 반지가 누구에게 있어요? 여자 품에 있습니다. 그것이 왜 그런지 알아요? 한 때에 써먹기 위해서입니다. 또, 보물함은 누가 맡고 있습니까? 남자가 맡고 있어요? 대통령이 맡고 있어요? 여자가 생명을 걸고 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의 여자들에게 `세계의 보물은 모두 한국으로 가져올지어다’ 하면 가져 오겠어요, 안 가져 오겠어요? 가져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사야 60장을 읽어 보세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런 승리를 하는 날에는 세계의 통일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무엇을 할 것이냐? 남자들은 절대 일선에 안 세웁니다. 역사상 지금까지의 싸움을 누가 했습니까? 남자가 도맡아서 했습니다. 여자들이 한번쯤은 싸워서 이겨야 여자의 위신이 설 게 아니예요? 그러면 남자들은 뭐해야 하느냐? 집에서 밥도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해 봐야 합니다. (웃음)

37-96
우리의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
앞으로의 때는 어떤 때냐? 그렇게 되어 가지고 아벨 국가가 찾아 세워지는 때입니다. 아벨 국가가 찾아 세워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아담 국가가 세워지고, 아담 국가가 찾아 세워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해와 국가가 세워지고, 해와 국가가 찾아 세워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천사장 국가가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국가가 세워진 후에 천사장 국가와 해와 국가를 세우려면 어렵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중국과 일본을 중심삼고 횡적인 준비를 해 나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보낸 첩자가 지금 중국 장개석 총통의 안방까지 출입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모르고 있지요? 또, 일본에서도 사또 수상의 안방까지 출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독일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이 정도로 우리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내가 여러분 같으면 잠을 안 잘 것입니다. 밥을 안 먹을 것입니다. 밥먹는 시간이 아깝다는 거예요. 한번 멋지게 일하고, 싸우더라도 가장 멋지게 싸우다 죽지, 죽더라도 시시하게 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죽어도 제일 멋지게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 미안합니다. 여자들을 치켜 줄 때는 언제고 남자들 얘기로 돌아간다고 기분나빠 할 필요없어요. 기분 나빠도 할 수 없는 거예요. 이렇게 한번 해볼 만 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꽃다운 청춘시절을 다 보내고 50 넘어 지금까지 누굴 위해 장사를 했느냐? 하다 보니 여러분을 위해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껍데기 타령만 하고 알맹이는 여러분이 다 갖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내가 세계적인 복을 받아 가지고 흥청거리게 한번 쓰고 또 출세해 가지고 여기서 `왕’ 호령하면 저기서 `웅’ 할 수 있게 만들려고 했던 것인데 내 나이 50이 넘도록 여러분을 위해 해준 결과밖에 못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니 여러분은 선생님만큼 일하라는 것입니다. 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해야 됩니다. 밥을 안 먹고 잠을 안 자고서라도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혼자서도 이만큼 세계적인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이제 이만큼 됐으니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여러분을 아들로 잘 두었어요, 못 두었어요? 「잘 두었습니다」 어디 잘 두었는지 두고 볼까요? 「예」 그럼 두고 보자구요. 또, 딸들을 잘 두었어요, 못 두었어요 「잘 두었습니다」 잘 두었어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일생을 거쳐 오면서 여러분 같은 때에는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수천 수만 가지의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것까지 생각했었습니다. 원리가 얼마나 방대합니까? 여러분은 돼지 우리에서 기르는 돼지 새끼 한 마리 몰기도 힘들지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것은 사탄을 몰고 하나님도 모는 놀음입니다. 세계를 능수능란하게 제멋대로 요리하던 교활한 사탄을 모는 놀음입니다. 하나님을 6천년 동안이나 골탕먹여 온 사탄을 모는 놀음이라는 것입니다. 독경무(讀經巫)가 경을 읽으면서 귀신을 잡아서 병에다 넣고 흔들고 하는 격입니다. 강아지 새끼 하나 맘대로 하는 것도 어려운데 세계를 녹여먹던 사탄을 몰아내고 하나님이 행차하실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이 쉬울 것 같아요? 내가 몇 년 동안 고생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몇 십년 동안 고생한 것은 너무도 작다는 것입니다. 티끌만큼도 못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러한 고생을 통해 가지고 이러한 성과를 얻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선생님이 지금 하나님도 못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7-98
예수님의 한을 해원해 드리려면
여러분이 영계를 통해서 보면 하나님이 그런 의미에서는 나보다도 문선생이 훌륭하다고 칭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 일대에 있어서의 성공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선생님의 이름은 청사에 길이길이 빛날 것입니다. 또, 선생님이 영계에 가서 당당하게 영인들에게 `여봐라’ 하게 되더라도 모든 영인들이 `예이’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선생님 가까이서 살고 싶어요, 멀리서 살고 싶어요? 「가까이에서 살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가까이에서 살게 된다면 걱정이예요. (웃음) 여러분이 지금 같아서는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눈만 크게 뜨고 좋은 것은 전부 다 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곳입니다.

조금이라도 그런 인연을 갖고 가게 되면 전부다 낙제감입니다. 믿고 자랑삼아 소개하겠다고 하다가 전부 다 낙제감을 소개한다면 선생님의 위신이 서겠어요? 선생님의 위신이 안 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결심을 하라는 것입니다. 뭔가 다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형제들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한 대신 여러분들은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시대적 환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종족복귀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종족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북에 남아 있다가 공산당한테 밟혀 죽어서 다 지하에 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나 선생님이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고 형제들을 사랑하지 못한 한을 해원성사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일대에서 사랑하지 못한 것을 여러분과의 부자의 인연을 중심삼고 해원성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고 내가 못한 것을 기쁜 자리에서 만국을 대신하고, 국가를 대신하고, 수많은 종족을 대신해서 사랑할 수 있는 종족권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러한 종족권을 찾아 세움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해원성사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의 해원을 해줄 것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어머니한테 편지를 쓰고 싶으면 하루에 열 통, 백통씩이라도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에게는 쓸래야 쓸 수 없는 때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형님은 하나님을 잘 믿는 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 형님은 가인 중의 가인이었습니다. 이 나라가 해방될 것을 알았고, 기도하면 영계에서 중요한 문제를 가르쳐 주었고, 영계로부터 명령을 받은 대로 행동하던 형님이었습니다. 그 형님이 동생인 나에 대해서 한 가지만 알았습니다. 동생이 무슨 사명을 가졌는지 그것만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 사명이 무슨 사명인지는 잘 모르지만 내 동생은 세계 역사상에 제일이라는 그것만은 확실히 알았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37-99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
그렇기 때문에 동생인 내가 집을 팔아서라도 돈을 보내 달라고 하면 틀림없이 보내 주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가인복귀의 기반을 자동적으로 갖추어 가지고 나왔던 형님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그 형님에게 내가 이런 사명을 가졌다고 말 한마디 못하였습니다. 원리라는 말조차도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내가 몰라서 말 한마디 못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고향에 돌아가면 어머니 아버지 형님을 모시고 가정에서 아침예배를 드릴 때마다 성경풀이는 기가 막히게 잘 했습니다. 어느 목사에게도 지지 않는 성경풀이를 하였지만 원리 이야기는 한마디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 나는 이런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부모 앞에도, 형제 앞에도 통고할 수 없었던 가련한 예수님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서 해원성사하지 않고는 그것을 통고할 수 없는 그런 운명길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 길을 전부 다 닦아 놓았기에 여러분들은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종족복귀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하지 못한 사랑을 하고 선생님이 하지 못한 사랑을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부모를 사랑하고, 형제들을 옛날보다 천만 배 이상 사랑해야 됩니다. 이제부터는 복귀되는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복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친척을 사랑해야 됩니다. 내가 6천년의 한을 품고 수난의 길을 걸어 찾아온 것은 이 가족과 종족을 만나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갖 정성을 다해 자기 동네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동네의 어느 곳이든 내 발길과 손길이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마을을 품고 사랑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권에 있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무한히 행복스럽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축복받은 가정들에게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고 특명을 한 것입니다. 그런 말 들어봤지요? 「예」

종족적 메시아가 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6천년의 피의 대가와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도 거둘 수 없었던 종족적 메시아의 시대적 혜택권내에 아무 공로없이 적수(赤手)로서 여러분이 섰다는 사실은 얼굴을 들고 하늘을 보기에 부끄럽고, 땅을 보기에도 부끄럽고, 흘러가는 물결을 보기에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한잔의 물을 마시는 것, 한술의 밥을 먹는 것에도 부끄러운 자신임을 느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들에게 `네가 내 편이냐’ 하고 물었을 때 그것들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공인을 받고 나서야 그들을 기쁨으로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책임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담이 책임을 못한 연고로 만물들이 수고하기 때문입니다.

벌거벗은 산을 바라 볼 때, `네가 주인을 잃어버리고 풍상에 얼마나 고생했느냐, 내가 이제 너를 사랑하니 나무를 심어 주겠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황폐한 땅을 바라보게 될 때, `얼마나 원수들에게 짓밟혔느냐? 내가 이제 너를 정성을 다하여 옥토로 만들어 주겠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식구가 가져야 할 사상입니다.

53-101
예수님 대신 나라와 민족과 가정을 사랑하라
그런 반면에 지금까지 사람들은 얼마나 고생했느냐? `어머니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누나를 잃어버리고, 형님을 잃어버리고 고아의 신세로 6천년 동안을 거쳐오면서 사탄에게 얼마나 유린당했습니까? 등에는 원수의 칼자국이 남아 있고, 앞길에는 아직도 원수의 철문이 가로막혀 있는데, 이 길을 가야 하는 우리 인간의 입장이 얼마나 불쌍하냐?’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려 주어야 할 책임이 내게 있는 것으로 알고 밤이나 낮이나 눈물 흘리며 가야 하는 것이 통일 용사들의 운명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인류 역사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삼천리 반도를 자기 몸보다도 더 사랑해야 되고, 삼천만 민중을 자기 부모 형제나 처자보다도 더 사랑해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식구는 말은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되어진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중심삼고 되어진 말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한을 해원하고 예수님보다 나은 사람이 되지 않고는 축복도 받을 수 없는 것이요, 천국도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예수님보다 나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예수가 하지 못한 사랑을 해야 하고, 예수가 사랑받지 못한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보다 낫기 때문에 축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예수님보다 낫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요셉 가정에서 예수님이 마리아와 요셉을 사랑하던 것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는 부모님을 가졌고 형제를 가졌습니다. 여러분은 형제끼리 서로서로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서로 비난 비소하는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가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은 아버지 어머니도 있었고, 동생도 있었고, 삼촌도 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었고, 사돈의 팔촌도 있었습니다. 또한 교회도 있었습니다. 전부다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지 못했고, 그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내가 사랑해야 되고, 예수님이 받지 못했던 사랑을 내가 받았다는 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디에서 세워야 되느냐? 여기에서 우리 식구끼리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식구입니다.

남자들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처녀를 보게 될 때 `야, 예쁘게 생겼으니 이 다음에 내 상대를 만들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여자들은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가 있으면 오빠같이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대신한 사람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저 사람도 예수님처럼 사랑을 하지도 못했고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했으니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인연을 맺지 못하면 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은 자기 동생 이상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있으면 예수님이 형님을 사랑하고 싶어했던 그 마음을 대신해서,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그를 사랑해야 됩니다.

37-102
사랑받지 못한 예수님을 생각하며 서로 사랑하라
여러분은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그 사랑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식구가 어디를 간다 할 때 그 뒤를 따라가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헤어지기 싫어하고 항상 같은 집에서 살고 싶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누어 먹고 싶고, 한 벌의 옷이 있으면 비록 내가 못 입더라도 상대에게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통일교회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있으면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할아버지로 생각하고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탕감하기 위해서, 그 할아버지를 예수님의 할아버지와 같은 입장에 모셔야 합니다. 또, 천대 만대 수많은 종족 가운데서 내가 이 자리에 택함을 입어 태어날 수 있도록 해주신 조상으로 알고, 역사를 대신하고 시대를 대신해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한 예수님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그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리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를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저씨 아주머니를 대해서도 마찬가지요, 사돈의 팔촌을 대해서도 전부 다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어요? 더 나아가서 예수님 당시 유대교인을 대신한 것이 기독교인이면 기독교인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전부 다 사랑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 어느 한 사람이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 예수님의 운명이었기 때문에 예수님 대신 그 뜻을 해원성사하기 위해서 이 민족을 사랑하기에 생명을 걸고 허덕이면서라도 가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 성도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한 것을 사랑해야 되겠고, 사랑받지 못한 사랑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나이 많은 사람은 자기보다 나이 어린 소년을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예수님의 할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예수님의 한이 되었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은 나이 어린 소년을 대하게 될 때에 예수의 할아버지로서 손자 예수를 대하는 것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할아버지로서 손자인 예수를 사랑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서는 할아버지로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손자와 같은 사람 앞에 경배를 하면서 하늘같이 모실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해야 됩니다.

또한 아주머니의 입장에서 어린 조카 같은 사람이 있으면 그를 예수님 대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주머니들에게서 사랑받지 못했고, 예수님 또한 아주머니들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한이기 때문에 그 한을 풀기 위해서는 자기 조카와 같은 어린 사람을 대할 때 예수님을 대신해서 자기 아들보다 더 사랑해야 됩니다.

37-104
천국은 심정의 인연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곳
형님과 같은 연령의 사람은 자기 손아래 동생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을 보게 될 때, 그를 형님이 동생을 사랑하듯이 사랑해 줌으로써 예수님이 동생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가 싫다고 하든 좋다고 하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누나가 동생 되는 예수를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한이기 때문에 누나 같은 연령에 있는 사람을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을 사내 동생같은 입장에서 극진히 사랑해야 됩니다. 자기 부모보다 더 사랑해야 됩니다. 또, 동생과 같은 연령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동생들이 형님 예수를 사랑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자기보다 나이 많은 형님 같은 사람을 예수님처럼 모시면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안팎으로 서로서로가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의 인연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가정에서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냐? 나라의 사랑을 축소시킨 것이요, 세계의 사랑을 축소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심정적인 훈련을 받아 그것이 본질적으로 여러분에게 생활화되고, 그 심정에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간절한 심정으로 동화되어 가지고 그 마음을 가정에 적용할 뿐만 아니라 대 국가적 기준 앞에도 적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 보는 할아버지를 대해서도 그 할아버지를 예수님이 고대하며 만나고 싶어했던 할아버지를 만난 것과 같이 반겨줄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의 인연이 국가간에 민족간에 사회간에 연결되어 가지고 하나로 결속되어 생겨나는 그 세계가 천국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짐을 지고 가게 되면 예수님이 도와 주던 거와 마찬가지의 마음을 가지고 젊은 사람이 그 사람의 짐을 대신 져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걸 바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참으로 천상의 복을 받은 노인이라고 자기 스스로를 찬양하고 오늘의 기쁨을 놓고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회환경을 이루려 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천국이념입니다. 또한 이것이 천주주의입니다.

따라서 가정의 형제와 같은 심정을 보편화시켜 가지고 국가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종을 초월하여 초국가적인 기준으로 세계 앞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의 인연의 바탕이 나로부터 시작하여 세계 끝까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아들딸들은 천상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무사 통과할 수 있습니다. 열두 진주문을 한꺼번에 열두 번을 들락날락하더라도 그 앞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유 천국의 왕자 왕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훈련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통일교회요, 통일교회 식구들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 식구라는 명사의 뜻을 알겠어요? 「예」 지금 안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예수님은 밥을 얻어서라도 사랑하는 어버이를 대접해 드리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습니다. 밥을 얻어서라도 삼촌을 대접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얻어 온 밥으로라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친척들 앞에 모범이 되고 사랑의 중심이 되지 못한 것이 한이었습니다. 얻어 온 밥을 가지고라도 민족을 위하고,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정성들이고 싶어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자신은 나그네 신세가 되고, 한푼도 갖지 못하여 밥을 얻어먹는 걸인이 되어 길가에서 떨고 있는 신세가 되더라도 지나가는 사람을 자기 자신 이상 사랑하고 싶어서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아들딸이 있다면 하나님의 가슴이 녹아나는 거예요. 이런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복장이 녹아나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가 고대하던 사랑하던 어떤 사람보다도 더 반갑게 맞아 가지고 그 사람 앞에 자기의 모든 것을 인계해 주면서 어머니와 아버지같이 또는 자기 아저씨같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선생님이 지금까지 싸움의 노정을 걸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노동판에 가면 노동자를 붙들고 통곡하였고, 감옥에 가면 죄수들을 붙들고 통곡하였습니다. 그들이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서 눈물이 앞서는 감정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37-106
천국은 누구의 것인가
선생님은 이런 생활 감정으로 예수님이 가셨던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사무친 흠모와 사모의 인연을 어디에 남기고 가야 하느냐? 부락을 넘고, 국경을 넘어 세계의 인종을 초월해 가지고 천상에 있는 역사적인 우리의 선조들에게까지 연결하여 하나의 심정적인 인연권에 이들을 동화시키고 통일시켜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엄청난 심정세계의 창조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예수님의 소원이요, 만인류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완수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것이요,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고, 만민의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심정해방의 봉화가 세계 만천지 앞에 들려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천국입니다.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알겠어요? 천국은 예수님의 심정을 가정에서 형성하여 가지고 그것을 전세계에 적용시켜 보편화된 세계가 천국입니다.알겠어요? 「예」

예수님이 사랑을 못 하고 죽은 것이 한입니다. 그러니 남에게 사랑받기 전에 먼저 남을 사랑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생활이었습니다. 아직까지 내가 이 나라 앞에 사랑 못 받았고, 교계 앞에 사랑받지 못했지만, 나는 사랑하기 위해 미친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 부모를 투입했고, 형제를 투입했고, 처자식을 다 투입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선생님의 이러한 사상을 전통으로 이어받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믿었다는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비판하여 이 말씀을 통해 자각과 결의를 하고 나선다면 금후의 나 자체는 달라지게 되고, 내가 바라온 세계, 내가 꿈꾸던 이상세계는 이제부터 결실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 여러분들 다 식구가 될 거예요? 「예」 될 거예요, 안 될 거예요? 「될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선생님 앞에, 예수님이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요셉을 원망하던 그런 마음을 넘어서서 누구보다도 효성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거느리고 있는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그럴 수 있느냐, 내 교회를 중심삼고 그럴 수 있느냐, 내 사랑하는 나라를 중심삼고 그럴 수 있느냐, 세계를 위해 그럴 수 있느냐, 하나님을 위해 그럴 수 있느냐 할 때, `그렇다. 할 수 있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천국은 그 사람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더라도 천국으로 직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했고 식구들을 사랑했습니까?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봤습니까? 이 나라 이 민족을 붙들고 눈물 흘리며 밤을 새워 기도해 봤느냐는 거예요?

옷을 마련해 놓고, 먹을 것을 준비해 놓고 사람을 기다려 봤습니까? 사람이 그리워서 통곡할 정도의 심정을 느껴 보았느냐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선생님과 거리가 멉니다. 현재의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의 사상을 갖춘 통일교회 식구가 아닙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37-107
통일교회의 전통사상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과 이스라엘의 한을 해원성사하지 않고는 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복귀원리와 식구라는 말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보다 낫지 못해 가지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눈에서 눈물이 말라서는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언제 뜻을 위해 손가락 한번이라도 까딱해 봤으며, 내가 언제 뜻을 위해 발가락 한번, 머리카락 한번이라도 까딱해 봤느냐? 내가 뜻을 위해 뭘 했는가를 생각하면서 부끄러운 심정을 가지고 기도해 보세요.

죽어 나자빠지고 스러져도 가당한 모습을 하나님께서 찾아 주시어 이런 복된 자리를 주시고, 천년 만년 동안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하나밖에 없는 귀한 이 복음을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사 앞에, 이 몸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자기 정체를 드러내기에 부끄러워 하염없는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오냐, 너 같은 사람을 찾아 나왔으니 그러지 말라’ 하는 하나님의 권고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고야 비로소 부끄러운 얼굴이라도 들고 갈 수 있는 것이 통일교회의 젊은 청년 남녀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렇게 해서 청춘시대에 순정을 잃어버렸던 아담 해와의 한을 밟고 탕감할 수 있는 귀한 때인 사춘기에 순정을 더럽혀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순정을 깨끗하고 귀하게 보존해 가지고 `천세 만세 혼자 가더라도 사랑이 유린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지조와 결의를 가져야 합니다.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지 않고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가질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사랑하는 사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전통적인 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난 후에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알겠어요?

37-108
천국은 내 가정에 있다
그러면 축복은 누구를 위해서 받는 것이냐? 하나님과 세계를 위하여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것은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냐?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 세계를 대표한 제일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아버지를 대신하고 남편을 대신하고 오빠를 대신하고 동생을 대신한 입장으로 사랑해야 하고, 또 남자는 여자를, 어머니를 대신하고 아내를 대신하고 누나를 대신하고 동생을 대신한 입장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이 4대 입장을 대신하여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서로서로가 그 자극을 느끼게끔 묶어 준 인연이 부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계를 사랑하는 대신 입장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제일 기본 단위적인 기반이 부부입니다. 그 기반을 예수님이 못 세웠기 때문에 그것을 세우기 위해 세계를 대표한 인간으로 사랑할 수 있는 두 남녀가 신랑 신부의 이름으로 만나는 자리가 어린양잔치를 하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하면 아내를 어머니 대신으로, 누나 대신으로, 동생 대신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남편을 아버지 대신으로, 오빠 대신으로, 동생 대신으로, 그 이상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이상상대를 중심삼은 가정적 부부의 사랑입니다. 공식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결혼은 왜 하는 것이냐? 세계를 사랑하는 훈련을 받기 위해서 입니다. 또, 만민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알겠어요? 지금까지 이것이 가정에서 끝났고, 너와 나 사이에서 끝났기 때문에 갈래갈래 나뉘어져 모래알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세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너와 나만의 관계를 맺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더불어 하늘땅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터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새로운 혈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맨 나중에는 현재의 입장이 통일교회의 가정에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의 가정은 가정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천국을 이루게 되면 틀림없이 지상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왜 그러냐? 미래의 천국에 대한 실감을 현재의 입장에서 자극시키려니 불가피하게 상대가 필요한데, 가정에서 상대로 말미암아 그 자극을 받음으로써 미래의 천국이념을 오늘의 생활 감정에서 체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체득하기 위해서 부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자극으로 말미암아 부부가 영생할 수 있습니다. 발전은 자극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은 이상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의 기쁨을 현재권내로 끌어다가 자극을 주어 가지고 추진력을 보급시켜 그 자리까지 가게 하는 것이 부부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 가운데는 나라의 사랑도 들어가 있고, 세계의 사랑도 들어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도 들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사랑은 어디든지 무사통과입니다.

결국 천국은 서로 사랑하는 부부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그런 사상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는 부부는 언제나 천국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네 마음 속에 있다’고 했지요? 「예」

그렇지만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네 가정에 천국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천국을 이룰 수 없다 할 때는 통일교회의 뜻이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할 수 있다 할 때는 그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원리를 중심삼고 정도의 길을 가려 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37-110
기 도
아버지, 여기 모인 어린 소년 소녀들의 마음 가운데에 무엇을 심어 주셨습니까?

이들은 현재의 통일교회의 입장이 저울의 어느 눈금을 가리키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수평을 이루고 있는 저울은 눈금 하나로 좌우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옵니다. 눈금의 촌푼 하나가 전체를 좌우하여 결정할 수 있는 것이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외적인 세계와 수평이 이루어지는 때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 모인 젊은이들은 저울의 눈을 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중요한 기점에 있사옵니다. 이 젊은이들이 하나로 합하여서 오른쪽으로 가게 되면 하나님 세계로 기울어져 가는 것이요, 한 눈금이라도 왼쪽으로 옮겨가게 되면 사탄세게로 기울어져 갈 수밖에 없는 이러한 중차대한 시점과 차원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이들 스스로가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서 저희들에게 아버님이 거쳐 오신 노고의 길과 오늘날 이 땅에서 우리들이 해야 할, 통일역군들이 현재 취해야 할 심정의 자세를 깨닫게 하여 주시어서, 나 자신을 중심삼고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염려하고 스승을 염려하고, 나라를 염려하고, 세계를 염려하는 자리에 서야만 아버님께서 언제나 같이하신다는 것을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자기 자신이 원수라는 것을 알고, 자기의 것을 전부다 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가는 그들 앞에는 무한한 발전이 있을 것이요, 그 배후에 있는 아버님께서는 희열이 공고히 다져진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여기에 모인 젊은이들이 마음의 방향을 새로이 정하여 이 민족이 가야 할 운명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뜻이 지향하는 결정적 방향이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사오니, 그것을 안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고 실천궁행함으로써 아버지께서 믿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번 이 기간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새롭게 자각된 자리에서 스스로를 각오함과 동시에 아버님 앞에 맹세하여 실체로서 봉헌할 수 있는 귀한 시기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금후에 갈 방향 전체를 아버지께서 장중에 장악하시어서 일일이 간섭해 주시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결과의 가치를 다짐할 수 있게끔 이들을 몰아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통일의 무리들이 가는 길 앞에 수고의 길이 많을 것이지만, 그 길을 저희들이 가고 난 후에는 민족이 바라보며 환호하고, 세계 인류가 바라보고 부르짖으며 환호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저희들이 내일의 창건자로서 힘차게 나갈 수 있고, 새롭게 다짐하여 현실을 극복하고 타개해 나가는 승리의 용자들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아버지, 강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권고하시옵소서. 양육하시옵소서. 당신의 기쁘신 뜻 앞에 자랑하고,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로서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장시간을 아버지께서 같이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이 시간 이후의 모든 일체를 당신이 부관하시어 기쁘신 뜻과 기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끔,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전체를 맡기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