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4 to 36-87: 대립된 선악의 세계

대립된 선악의 세계
1970.11.15 (일), 한국 전본부교회

36-44
대립된 선악의 세계
[기 도]

사악한 이 땅 위에 당신의 뜻을 펴시고 경륜하시면서 당신의 생활권을 찾아 나오시는 아버지의 수고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를 앞에서 이끄시고, 뒤에서, 좌우에서 저희를 위해 수고해 나오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하루의 생활 가운데에서 얼마나 체득하고 있사오며, 생애노정에서 그 고마우신 은사 앞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때, 저희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시간은 많았지만 아버지께서 이렇듯 수고하고 계신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하고 지냈사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참으시며 부활권으로 저희들을 이끄시기 위하여 수고해 나오는 아버지의 은사 앞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님, 오늘 이 아침을 당신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1970년도도 이제 40여일을 남기고 있사옵니다. 오늘은 이달 들어 세번째 맞는 안식일이오니, 이 아침에 당신의 거룩하신 은사를 저희 개개인의 마음과 환경에 내리시어서 역사적인 수고의 보람을 한 개체 개체로부터 거두시옵소서. 당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개인, 그러한 환경, 그러한 교회, 그러한 나라를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고대해 나오셨사옵니까? 아버지와 인간이 자유롭게 합해질 수 있는 인연이 되어 있지 못한 것을 아버지께서 얼마나 원통해하셨는가를,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느낄 줄 아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와 같이 고마우신 아버지가 계신 것을 만우주를 대신하여 감사하옵니다. 진정으로 뼛골에 사무치는 감사의 심정을 가지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 있는가를 생각할 때,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하여 환경을 개척해 주시려고 갖은 치욕을 당하며 수고해 오신 것을 알지 못하고, 또한 그 수고에 대하여 진정으로 감사드리며 고맙게 생각하지 못한 저희 자신들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와 같이 빚을 지고 있는 수치스러운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하늘을 바로 볼 수 없사오며, 땅을 바라보게 될 때도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죄인된 모습을 스스로 자각해야 되겠사옵니다. 이것이 타락한 후손으로서 지금까지 아버지를 수고시켜 나오는 저희들의 처량한 사정인 것을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의 마음 깊은 데에서는 이 시간에도 생명의 호소가 당신과 더불어, 끊임없는 역사의 인연과 더불어 움직여 나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러기에 양심은 언제나 하늘편에서 선을 위하여 가라고 이 시간에도 재촉하고 있사오며, 대립되는 악이 나타날 적마다 하늘이 거기에 대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 앞에 직고해 주고 있사옵니다. 그 양심의 소리와 양심의 움직이는 방향 앞에 두려운 줄 모르고 행동하였던 과거지사를 진정으로 아버지 앞에 뉘우치고 회개할 줄 아는 자신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간절히 간구하는 저희들의 마음속 깊은 가운데 임재하시옵소서. 당신이 분부하시는 것과 당신이 소원하시는 세계를 향하여 모든 것을 저버리고 따라갈 수 있는 강한 마음을 주시옵고, 자기 자체를 발견함과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향해 당신의 걸음을 본받아 따라갈 줄 아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께서는 당신이 마음으로 찾으시고 그리워하는 아들의 모습은 이러해야 되고 딸의 모습은 이러해야 된다는 표준을 지금까지 한번도 잊어 본 적 없이 수많은 인류의 뒤를 따라오셨사옵니다. 또한 당신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을 인도하여 그 소원의 기준을 향하여 이끌고 가시는 아버님이심을 생각할 때, 당신이 가시는 그 길은 저희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이요, 수욕의 길이요, 한스러운 복귀의 길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저희들이 자기 자신을 중심삼은 생각은 많이 하면서도 아버님을 중시삼고 생각하기를 주저했던 사실들을 발견할 적마다 이제 저희들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개인들이 합한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구하여야 할 아버지의 처량한 사정을 동정해 드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옵니다.

이 세계를 두고 당신이 그리워하는 것은 당신이 소원하는 나라요, 당신이 소원하는 민족이요, 당신이 소원하는 가정이요, 당신이 소원하는 수많은 인류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 인류를 몽땅 품고 한 나라의 백성처럼 사랑하고픈 당신의 마음이 있는 것을 느끼옵니다. 저희들은 개인으로 있으되 개인을 넘어서 아버지께서 찾고자 하시는 가정을 그리워해야 되겠고, 가정을 넘어 종족, 종족을 넘어 민족, 민족을 넘어 국가, 국가를 넘어 세계까지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언제나 그리움의 표준을 바라보고 그 개인으로부터 그 나라까지 추구하시는 당신의 거룩하신 모습과 그 마음을 본받을 줄 아는 자신들이 될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다짐해야 되겠사옵니다.

생명이 없는 목석과 같이 되어서 이와 같은 자신들의 불쌍함을 한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의 마음에 감정이 있고 느낌이 있다면 아버지께서 이렇듯 놀라운 내용을 가지고 찾아오신 것을 직시하여 체휼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도 그 가운데 나만이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같이 외로와하시는 것을 깨닫고, 슬픔을 당할 때도 나 혼자만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같이 슬퍼하심을 느끼며, 억울하고 분한 자리에 홀로 떨어질지라도 나만이 그런 자리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도 그런 자리에 계시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효의 길을 가는 자들이 느끼는 마음이요, 효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아들로서 가질 수 있는 마음인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휼신앙을 강조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매일 매일 감정적 과정을 통하여 체득하는 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희들이 이 시간 다시 한번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옵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을 아버지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아야 하겠습니다. 내 마음의 사람은 이러하고, 내 몸의 사람은 이러하고, 내가 바라는 사람은 이러하다 할 때, 그 내 마음의 사람, 내 몸의 사람, 내가 바라는 사람이 삼위일체가 되어 아버지의 형상을 닮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실체를 대신할 수 있는 대역자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형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는 자신임을 발견하게 될 때, 그 간격이 크면 클수록 그러한 자신에 대한 자탄의 마음이 커야 되겠고, 자신을 책하는 마음이 커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이러한 자신을 가지고 하늘에 반대되고, 선에 반대되는 생활을 얼마나 많이 했사옵니까? 뿐만 아니라 오늘 이후에도 그럴 수 있는 자신임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앞에 배반자요, 아버지 앞에 슬픔을 더해드리는 무리인 것을 느끼옵니다. 아버지, 그러한 원수의 걸음을 따라가지 않기 위해 새로이 각오하고 결의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고요히 저희의 뭇심성을 두드리시옵고 마음의 문을 여시옵소서. 은은한 가운데서 권고하시고, 은은한 가운데서 공의와 공사를 의논하고자 하시는 아버지 앞에 엎드려, 아버지의 분부하심을 바라는 겸손한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 자신의 부족함을 넘어서서 찾아오실 거룩한 시간을 바라야 되겠습니다. 죄악된 세상을 찾아오신 아버지이시기에 죄의 짐을 지지 않을 수 없고, 죄인된 개인을 인도하시는 아버지이시기에 죄에 대한 탕감을 홀로 치르지 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입장인 것을 알고, 불쌍한 아버지이심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런 아버지 앞에 효도는 하지 못할지언정 십자가를 가중시켜 드리는 저희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그러한 입장에 놓여 계심을 알고, 이 모든 어려움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자기 자신을 잊고 몸부림치며 나설 수 있는 아들딸이 이 땅위에 얼마나 있느냐 생각할 때, 처량한 땅이요, 불쌍한 땅임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세상이기에 당신은 내정적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의 모습을 그려 나오셨사옵고, 나아가 그 아들과 딸이 하나되어 이루어야 할 새로운 가정을 추구해 나오셨사옵고, 그 가정을 중심삼고 새로운 나라를 창건하기 위하여 당신이 저희들을 찾아오신 사실을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이 통일교회는 교단을 세우셨음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이여! 이제 아버님이 전체의 중심이 되셔야만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바라는 소원의 중심도, 저희들의 생활 환경의 중심도, 내 개인의 생활과 인격의 중심도 당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렇듯 수고하시는 아버지를 앞에 모시고 그 뒤를 따라갈 줄 아는 겸손한 어린양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떠한 수고의 길을 가라고 하실지라도 오히려 은은한 가운데 보호하시는 당신의 은사를 더더욱 감사하며, 막힌 환경을 넘어가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갈 수 있는 아들과 딸의 무리를 고대하고 계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러한 아들과 딸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그것이 얼마나 복통스럽고 얼마나 통탄스러운 일인가를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벌거숭이로서 아버지의 품에 다시 품길 수 있는 그 한날을 그리며, 당신의 후대하신 사랑의 마음으로부터 당신의 생명의 인연을 보급받으면서, 모든 것을 잊고 당신을 그리워하고 당신 앞에 감사할 수 있는 어린애와 같은 자신들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 시간 여기에 당신이 현현하시어서 저희들을 당신이 고대하던 사랑하는 아들딸로서 품어 주시옵소서. 당신이 자비로운 얼굴과 후덕하신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지는 그 순간, 당신이 저희를 위하여 역사를 두고 한탄하고, 현재를 두고 소원하며, 미래를 두고 너는 이렇게 자라라고 복을 빌어주셨던 그 사랑 가운데 품길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렇듯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어서 아버지께서 저희를 두고는 떠날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그렇게 자라고, 그러한 마음을 엮어 인연을 맺고 살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저희들이 흘러가는 세월을 따라 움직이는 속된 세상 사람들과 같이 움직여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이 아침에 여기에 나온 자신들이 그리워하고 바라고 찾는 것이 무엇이옵니까? 세상에 나타나는 그 어떤 부도 아니요, 그 어떤 가치도 아니옵니다. 아버지의 사랑권내에 안기겠다는 그 마음만이 저희들 전체의 소망이오니, 아버지께서 찾아오시어서 저희들의 마음과 몸을 꼭 안아 주시옵고 이끌어 주시옵소서. 당신의 높고 귀하신 그 사랑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거룩한 시간이 되게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나님이라는 말이 저희와 먼 거리에 있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님이라는 말이 저희와 인연맺지 못하고 흘러가는 말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뼛골에 사무치고, 내 소원의 일념과 일치된 자리에서 모실 수 있고,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 가운데 있어서 살아 있는 주인으로 모실 수 있고, 생활하는 가운데 잊을 수 없는 흠모의 대상으로 모실 수 있는 아버지를 가진 자가 복된 자임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길을 추구하는 자는 땅은 망하더라도 망하지 않고 남아질 것이며, 아버지는 이런 사람을 붙들고 당신의 사연을 말씀하실 것을 아오니, 그러한 아들과 딸이 이 땅위에 많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세상이 되면 될수록, 하늘의 사정적인 모든 내용이 점점 식어가고 당신의 뜻이 점점 멀어져 가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저희는 모든 것을 잊고 당신의 뜻을 위한 하나의 마음에 사로잡힌 포로가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험악한 이 땅위에 아버지의 위신과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끼는 아들딸이 많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아침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자신의 몸을 다 바치고도 부족함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고하시는 아버지의 상한 모습 앞에 십자가를 가중시켜 드리는 아들딸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어떠한 일을 걸어 놓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그런 아들딸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아들딸이라고 하시며 격한 마음으로 달려와서 모든 사연을 잊어버리고 전체를 주고 싶고 화하고 싶어하실 수 있는 모습, 또한 그러한 부모의 마음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찾아오시는 아버지를 향하여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뛰어나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흠모의 마음에 불타는 아들딸의 모습, 그리움에 사무친 표정을 갖춘 아들딸의 모습이 되어야 복귀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날까지 통일교단을 이끌어오시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저희들 스스로가 자랑할 무엇을 가지는 것보다도 깊은 자리에서 당신의 옷깃을 부여잡고 당신의 더 크고 놀라우신 사정을 들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부디 겸손히 당신의 분부의 명령을 바랄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시옵소서. 찾아오신 아버지를 슬프게 돌려 보내는 불효막심한 자녀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그와 같은 선조의 뒤를 잇는 후손이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오늘 통일의 새로운 길을 찾아온 저희 자신들을,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아버지여! 저희들이 있는 정성을 다하여 이 자리에 엎드리게 될 때에 엎드린 이 자리가 내 생애에 잊을 수 없는 귀한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앞에 간구하는 이 자리가 내 생애를 다해서 한번밖에 없는 귀한 자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당신의 거룩한 명령을 고대하는 겸손한 아들딸, 아무것도 아버지 앞에 내세울 수 없는 오로지 당신만을 의지하는 아들딸의 모습으로서 당신 편으로 몽땅 돌아갈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이 시간 되어야 되겠사오니, 아버지, 찾아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날 저희 자신들이 스스로의 모습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여기에 새로운 채찍을 가해서라도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을 이루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을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으로 얽어매어 주시옵소서. 서로서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고귀한 가치를 추구함과 동시에 흠모의 심정으로서 이들을 인연맺게 하시어서 만나지 않으면 안되고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만이 여기에 화하고 아버님만이 중심이 되시어서 봄 동산에 아버지를 모셔 놓고 환희에 넘칠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을 갖추어, 사막과 같은 이 땅 위에 아버님의 위로의 대상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통일의 무리들을 그러한 무리로 만들기 위하여 찾아오신 아버지의 수고의 뜻이 있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 교단을 책임진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고 그 가야 할 길을 지켜 주시옵기를 재삼부탁드리옵니다.

이제 분부하시는 새로운 말씀을 받아 새로운 날, 새로운 자아를 갖추어서 새천지를 향한 새로운 사명을 책임지고 활발하게 나서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6-51
말 씀
우리들은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선의 세계가 못 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보더라도 개인이 평화의 모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활 가운데에서 잘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즉, 마음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몸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다른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한 개체가 통일된 모습이 되지 못하고, 서로 분쟁하고 분립되어 대립된 선악의 터전이내 자신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체가 생활해 나가는 환경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스스로 어떠한 안식의 자리라든가 행복의 요인을 추구할 수 있는 자체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내 개인이 그러함으로 인하여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그러하고, 나라가 그러하고, 세계가 그러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결과적인 이 세계는 선한 사람이 있는 동시에 반드시 그 반대되는 악한 사람이 있는 세계가 된 것을 우리가 잘 아는 바입니다.

36-51
선악으로 분립되어 대립하고 있는 세계
사람은 본래 악을 피하고 선을 추구해 나가고자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선한 세계를 세우고 악한 세계를 제거하기 위하여 언제나 달려가고 있지만, 그 반면 내 자신 속에서 악한 마음이 선한 마음을 향하여 강하게 작용하는 것을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통해서 잘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선한 마음을 강하게 들고 나오면 나올수록 거기에 비례해 가지고 악한 마음이 언제나 대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선한 마음은 어떠한 목적을 향하여 나가더라도 그 목적하는 바를 확실히 알수 없고, 목적하는 그 세계를 향하여 가는 데 있어서도 선의 마음을 자극시킬 수 있는 과정이라든가 인연을 발견하기 어려운 반면에, 악한 것은 그 과정에 꽉 차 있고, 그 과정을 거쳐 끝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바라볼 때, 참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고독한 생활, 슬픈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몰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을 들고 나가는 사람의 길은 평탕한 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남다른 선의 인격을 추구하는 개인이 환경을 가려가고자 할 때, 그 개인을 환영하는 사람은 이 땅에 많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선한 개인이 선의 가정을 그려 나가는 데 있어서도 환경이 환영해 주지 않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될 때, 선의 가정이 선의 종족을 그리면서 가는 길 앞에 있어서는 더더욱 어려운 악의 여건이 그 환경에 에워싸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선의 종족이 선의 국가를 그리며 간다 할진대는 더욱 엄청난 악의 세력이 반기를 들고, 그 종족이 가는 길을 막으려 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선의 나라가 있어서 선의 세계를 추구해 나간다 할진대는 이 세계가 선한 세계가 못 되기 때문에 악한 나라들이 그 선의 나라가 가는 길을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백방으로 반대하고 나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왔다간 성인 현철들, 즉 선을 위하여 어떠한 주의 주장을 가지고 왔던 수많은 선지자들을 그 누구를 막론하고 그 시대와 환경 앞에 환영을 받았던 사람이 없습니다. 어떠한 개인이 그런 주장을 할 때에는 그 개인을 매장하기 위해서 수많은 개인들이 대립했던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선을 추구하는 가정이 나왔을 때는 수많은 가정들이 여기에 대결해서 싸웠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떤 선한 종족이 가려고 하는 길 앞에는 수많은 악한 종족들이 반기를 들고 나와 싸웠고, 필연적으로 선한 국가를 요구하는 인류 앞에 선의 나라가 있다 할진대 그 나라는 모든 나라로부터 환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반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선의 나라와 악의 나라가 대결하여 선이 남아지느냐, 악이 남아지느냐 하는 판가리 싸움을 거치지 않고는 선의 나라로 남아질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싸움의 역사과정을 거쳐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36-53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려면
이러한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나라를 초월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의 세계를 이 땅 위에 성사시켜야 할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기필코 그 하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수많은 민족들이 되어야 하고, 그 민족들을 구성할 수 있는 수많은 가정들이 되어야 하고, 그 가정을 구성할 수 있는 개인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라는 하나의 세계를 완전히 상속받을 수 있는 개인이 있다 할진대, 그 개인이 가야 할 운명의 길이 얼마나 처량할 것이냐? 혹은, 그러한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이 가야 할 시련의 노정이 얼마나 클 것이냐? 그런 종족이 있다면, 그 종족이 가야 할 투쟁의 노정이 얼마나 클 것이냐? 그러한 나라가 가야 할 그 노정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나라는 그 나라만의 개별적인 입장에서 모든 시련을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상속받기 위해 세계적인 악과 대결해서 책임을 할 수 있는 국민성을 지닌 나라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 볼 때, 하늘나라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 종교의 길이요, 하나님의 뜻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 종교인들의 생활 표준이라 할진대, 과연 악과 대결하여 그런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인격을 갖추기 위해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그러한 내적 내용을 가지고 준비하는 종교인들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개인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개인이 없는 이 땅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들의 양심이 추구하는 모든 소원, 매일같이 자신의 몸과 투쟁하여 양심의 흔적을 남겨 나오는 그 소원 앞에 있어서 이 세계는 얼마나 적막강산이냐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습니다. 개인의 어떠한 능력이나 수단 가지고는 가려갈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 필요한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선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절대자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절대자를 후대의 한 나라를 주관하는 절대자로서 모시는 것보다 현실에 있어서 나 개인을 중심삼은 절대자로 모셔서 절대적 인연을 맺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사악된 환경과 사악된 세계를 밀고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개인으로서 관계를 맺어야 할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제3의 인연을 거치지 않고,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는 강력하고 절대적인 인연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을 갖추지 않고는 아무리 공상적인 세계를 추구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소원하는 그 세계를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믿어라, 절대적으로 믿어라!’ 하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연이나 조건을 제시하고 전후를 가려 가지고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연을 통해서 가려 가지고 믿는다면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그 나라의 뜻을 받드는 개체가 될 수 없습니다.환경에 좌우되어서 자기 스스로 믿고 자기 스스로 알았다고 하는 그런 내용은 절대적인 하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내용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어디에도 미칠 수 없는 미급한 내용이기 때문에 오늘날 신앙계에서는 우리 인간 앞에 절대적인 신앙을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절대적인 신앙이라는 입장에서 보게 되면 상대적인 요인은 허락될 수 없습니다. 상대라는 말은 절대기준이 확정된 후에 성립되는 말인 것입니다. 절대가 결정되지 않고는 상대라는 명사는 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 자체가 완전히 일치될 수 있고, 세계가 한꺼번에 휘몰아쳐 오더라도 밀고 나갈 수 있는 심혈의 기준을 갖지 않고서는 대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이기에 우리 인간들에게 절대적인 신앙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앙이 확고하게 자리잡히게 되면 하나님은 무엇을 명령할 것이냐? 절대적인 행동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는 말도 이러한 행동을 기원으로 해서 나온 것입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나 자신만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된 행동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행동해야만 거기에서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타락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새로운 창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옛날에 창조하신 것이지만 사탄의 침해를 받고 더럽힘을 받아 부활을 요구하는 물건이요, 환경입니다. 그러기에 재창조될 수 있는 내용과 그럴 수 있는 기원을 갖지 않고는 새로운 내 개체의 부활이나 가정의 부활을 이룰 수 없고, 천국에서 필요로 하는 종족 민족 국가의 부활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절대적인 신앙과 절대적인 행동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겠다며 확실한 결과를 추구해 나갈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사탄권내에 그냥 그대로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선이 여기에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6-55
선과 악을 가려가야 할 인간
선악이 대립되는 세계에서 개체라고 하는 것은 김씨면 김씨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고, 딸로 태어난 그런 개체가 아닙니다. 선과 악이 갈라져 있는 여기에 우리 인간이 떨어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음과 몸을 갈라 놓고 선과 악이 서로 끌어당기는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악은 악대로 끌어당기고 선은 선대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환경을 두고 보면, 우리가 악한 여건과 감정권내에 살고 있지 선한 여건과 감정권내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대립된 환경 가운데 우리 인간이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하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여기에서 중심된 자리를 정해 놓고 경계선을 이렇게 넘으면 악한 것이 되는 것이요, 이렇게 넘으면 선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입장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계선이 여러분의 몸과 마음 가운데 그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 경계선이 개인에서부터 점점 넓어질수록 어떻게 되느냐? 그 경계선은 언제나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가지고 가려 갑니다. 그러므로 나를 중심삼은 개인은 물론이지만 나를 중심삼은 가정도 이 싸움에 걸려 있습니다. 나를 중심삼은 종족도 이 싸움에 걸려 있고, 나를 중심삼은 민족도 이 싸움에 걸려 있으며, 나를 중심삼은 국가, 즉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도 이 싸움권내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세계 인류를 중심삼고 볼 때에 세계 인류도 이 싸움권내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세계는 끝날이 되면 될수록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둘로 갈라지게 된다는 말이 성립됩니다. 따라서 한 시대의 사회 현상은 그 시대의 이념이나 철학을 중심삼아 가지고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영적 육적, 혹은 내적 외적인 이면에 있어서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영적 육적, 혹은 내적 외적인 이면에 있어서 반드시 그 기원을 달리하고 있는 상반된 내용 가운데 엮어진 개인이요, 사회요, 세계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권내에서 선악의 환경을 가려가야 할 자신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자기 자신이 가야 할 운명길은 이 세계적인 두 갈래 길을 거쳐 그중 하나를 청산짓고 돌아서서 자신있게 세계를 정비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개인, 하나의 가정, 하나의 종족,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계 형태가 나타나지 않고는 이 세상에 새로운 복지의 천국이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날 유물과 유심의 두 철학사조가 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생활이 위협을 받고 있는 것도 그러한 철학사조와 이념 때문입니다. 세계도 마찬가지로 이 철학사조로 말미암아 위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기원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36-56
악을 청산해야 절대자와 하나될 수 있어
‘나’라는 한 사람은 선만을 붙들고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해결되어 가지고 선이 차지하든가, 악이 차지하든가 하게 됩니다. 선이 차지할 때는 살지만, 악이 차지할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세계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흥망의 길을 달음질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은 역사적 소산물입니다. 가정도 역사적 소산물이요, 국가, 세계도 역사적 소산물입니다. 그런데 그 역사의 소산물 가운데 선의 소산물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 개체를 두고 비중을 따져 볼 때 선의 소산물이 얼마나 되느냐? 여러분이 살고 있는 생활환경 가운데 선의 소산물이 몇 퍼센트나 되며, 여러분 개체의 인격 가운데 몇 퍼센트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악에 접할 수 있는 요인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 선에 접할 수 있는 요인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전체가 악에 접할 수 있는 요인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악이 가는 길에 있어서는 교육이 필요없습니다. 교육을 받지 않고도 누구든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악으로부터 시작된 역사이기 때문에 교육을 받지 않고도 누구든지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의 길을 가게끔 교육할 필요성이 있어요? 스스로 그렇게 됐기 때문에 오늘날 인륜도덕을 중심삼고 양심의 표준 앞에 가려 가라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한 교육이냐? 선을 중심삼고, 양심을 중심삼고 교육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교육의 표준에 입각한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악한 것은 배우지 않고도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다 만점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환경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양심은 언제나 선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선한 사람이 되라고 쉬지 않고 나를 자극시키고, 나에게 권고하는데도 불구하고 선한 내가 되었느냐?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볼 때에 오늘도 탄식이요, 내일도 탄식이요, 이해도 탄식이요, 청춘시대도 탄식이요, 중년시대도 탄식이요, 노년시대도 탄식이니, 탄식으로 일생을 마치는 것이 아니냐? 다시 말하면 악한 것으로 끝장을 보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악에서 났기 때문에 악에서 꿈틀거리다가 악으로 가는 것이 지금까지 이 세상에 왔다 간 수많은 인간들의 생애요,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의 행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악하게 되라고 가르쳐 주는 곳이냐? 그렇다면 통일교회는 필요가 없습니다. 악은 가르쳐 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악의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세계가 악한 세계이기 때문에 이 악한 세계 전체를 거부하고 선하라고 하는 것이요, 직행할 수 있는 선의 길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 선의 길을 가르쳐 주는 선의 주체자가 누구냐? 누가 가야 할 길이냐? 선의 절대자가 가야할 길이요, 선의 절대자가 주체 될 수 있는 길입니다. 이러한 선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절대적인 길을 그려 가기 위한 생활노정과 생애노정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떠한 생활이 되어야 하고, 어떠한 생애가 되어야 하느냐? 그 생활이 역사과정을 통해서 심판받을 수 있는 생활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성인 현철들은 그들이 소원하던 그 세계와 인격관을 이루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러한 과거의 도주면 도주, 종교 지도자면 지도자들 앞에 지도받아야 할 사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 그들이 세운 종파를 통해서 그런 세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보게 될 때 그렇습니다. 그 이상의 내용을 제시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고는 미래의 세계에 바랄 수 있는 소원의 뜻을 상속받는 종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개인에게서 악을 완전히 청산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청산짓고 나서도 악에 접붙일 수 있는 요인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악의 요인을 완전히 구별하여 정리한 입장에서 선의 요인, 즉 본래의 모습과 일체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내가 되어야 선의 절대자와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옥과 같은 흉악한 사망의 세계에 살고 있더라도 그 양심이 절대적인 선의 주체와 하나되고, 그 선의 요인을 통하여 환경을 포괄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가진 선한 사람이라 할진대, 그 개인으로부터 세상은 구별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긍정하고 나오는 종교는 이 악한 세상에 절대적인 종교가 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도 물론 잘 들어야 되겠지만, 그 환경 자체가 어떤 결정적인 판결을 내려서 절대적 기원에서 가르쳐 줄 수 있는 가정이 아니요, 학교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자체도 악한 세상에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경계선을 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삼팔선 이북에 있는 입장이지, 삼팔선 이남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가까와지고 그 뜻을 이루어 나간다 해도 삼팔선 이북을 넘었느냐, 넘지 못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36-59
솔직하고 양심적으로
여러분은 흔히 나는 양심의 가책을 안 받는다고 말합니다. 양심적으로 살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 양심의 한계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심적으로 살아야 할 개인권이 있고, 가정권이 있고, 종족권이 있고, 더 나아가서는 민족권, 국가권, 세계권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계를 그리워하고, 하늘땅을 하나 만들기 위해 그리워하는 양심권을 중심삼고 살았다고 할 때는 당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도의적인 면에서 치우치지 않고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가운데 빠지지 않는 양심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해도 그런 양심 가지고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산다 할 때, 그 신념이 세계를 넘어 유일의 세계를 보장할 수 있는 신념이냐, 절대자가 공인할 수 있는 신념이냐, 그런 생활관, 그런 국가관, 그런 세계관을 보장할 수 있는 신념이냐 묻게 될 때, 그렇다고 할수 있다면 괜찮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그 양심 가지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부정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부정해라! 네 자신을 부정해라, 네 가정을 부정해라, 네가 살고 있는 사회를 부정하고 국가를 부정해라, 더 나아가서는 세계까지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을 틀림없이 부정했다고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념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 이념을 위해서는 천번 만번 죽더라도 응당히 갈 수 있는 사상적인 배경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때는 어떤 때냐, 개인을 복귀하는 때입니다. 사람은 직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잠을 잘 때 꿈 가운데서라도 말을 하는 것입니다. 순전한 양심의 반응은 말로써 드러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을 할 때도 그렇잖아요? 무엇을 느꼈는데 그 느낀 것이 옳다 할 때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양심의 밑바닥에 가서 부딪히게 될 때는 직고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익이니 좌익이니 하는 말을 쓰는데, 그런 말을 누가 붙였어요? 그것은 직고한 말입니다. 왼편이니 하는 것은 그릇되었다는 말입니다. 양심은 인륜을 통할 수 있는 바탕과 천륜을 통할 수 있는 바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바탕은 진지한 자리에 가게 되면 자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의 법도, 즉 하나의 완성된 천륜이 나오게 되면 그 천륜 앞에 모든 것은 나는 이러한 것이라며 자신을 100퍼센트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것이면 선한 것으로 100퍼센트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좌익이니 하는 것을 보십시오. 전부다 기만이요, 위장전술을 쓰고 있습니다. 그들의 전략전술에서 주요한 표제가 무엇이냐 하면 위장전술입니다. 사실을 그렇지 않은데 그런 것처럼 위장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바탕을 분석해 보면 악은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사실처럼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람은 솔직해야 합니다. 솔직한 사람은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솔직하다는 말은 동기적인 말이요, 양심적이라는 것은 결과를 보고 판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솔직하다는 것은 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를 은폐하고 이중인격을 구사하는 사람입니까? 자기 자신을 감추고 대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본심으로 좋아할 수 있어요?

상하관계를 두고 볼 때에, 올라가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산도 올라가는 것은 어렵지요? 그러나 내려가는 것은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점 맞는 것은 쉽습니다. 누구나 영점은 맞을 수 있습니다. 영점 맞기로 한다면 전부 다 1등을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점을 기준으로 하면 전부 1등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악한 사람은 전부 지옥 밑창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할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도 그렇습니다. 기도를 할 때 어느 경지에서 기도하느냐?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상은 여기입니다. (판서하심) 그러면 어디에서 기도하느냐? (칠판을 가르키시며) 여기쯤에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여기쯤 들어와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이곳을 지나 가지고 몸과 마음을 갖추어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는 시간권을 초월한 곳이요, 여기는 시간권에 막혀 있는 곳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시간권을 초월한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나자 하나님이요 하나님이자 나라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앞뒷집과 같은 것입니다. 거리가 멀지 않은 위아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위아래의 경계선을 넘어 내적으로 잡으면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35-61
끝날은 판가리의 때
하나님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어디냐? 그곳은 세상의 어떤 공중의 누각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어디에 머물 것이냐? 그 머무는 경계선이 사람의 몸뚱이는 될 수 없습니다. 바로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 깊은 가운데 고리가 되어 가지고 상하 관계와 전후 좌우 관계가 인연 맺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맺어지기 위해서 상반된 대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까? 그런 사람은 결국 이래도 죽고 저래도 좋기 마련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한국동란 때에도, 빨갱이면 어떻고 자유주의면 어떠냐 하면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던 사람들은 오다 가다 다 죽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남아질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도 미워하고, 하나님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사람이 잘못할 때에는 사탄이 그 가운데 들어가서 악하게 만드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자체가 선의 바탕은 없어지고 악의 집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좌우로 갈라진 사람은 어느 한때 판가름을 짓기 전에는 악의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좌편으로 경계선을 넘어야만 악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왔다갔다하는 회색분자는 언제나 악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그 생활 전체가 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둘중의 하나를 판가리해야 됩니다. 심판이 뭐냐? 악하냐 선하냐를 판가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싸우고 있습니다. 자기의 일생을 중심삼고 포를 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대하기 전에 여러분 자신의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평화롭게 하느냐? 이 싸움에서 몸이 이기느냐, 마음이 이기느냐? 여러분은 몸이 이겨요, 마음이 이겨요? ‘나는 틀림없이 마음이 이깁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이기는 사람은 선한 편이요, 몸이 이기는 사람은 악한 편입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는 전장에서 마음이 몸을 쓰러뜨리고 이길 수 있는 비법이 무엇이냐? 또는 몸이 마음을 때려잡는 비결이 무엇이냐? 그 전법이 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 무기와 모든 장비가 어떠한 방향을 거쳐서 동원되느냐 하는 문제가 선하게 되느냐, 악하게 되느냐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그럼 이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요인이 무엇이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악한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 앞에 선이 성립될 수 있는 필요 요건이 무엇이냐, 악이 성립될 수 있는 필요 요건이 무엇이냐? 이것을 알아 가지고 취하거나 제거하자는 것입니다. 이 필요 요건은 알고 보면 간단합니다.

36-62
세계를 정복하기 전에 나를 정복해야
타락한 인간으로 태어난 나라는 개체는 악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 자신은 한 개인으로 태어났지만 세계의 대표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세계적인 여성 대표자가 되고자 합니다.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 여자들, 그래요, 안 그래요? 틀림없이 그렇지요? 남자들은 십대만 되어도 세계 제일의 대표자가 되려고 합니다. 겉모습은 초라해도 내용으로는 세계의 대표자가 되려고 합니다. 여러분, 그렇지요? 세계적인 대표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계는 어디에서 나오느냐? 세계에서 내가 나온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세계가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로 말미암아 개인들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개인들로 말미암아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세계로 말미암아 내가 태어난 거예요, 나로 말미암아 세계가 되어진 거예요? 어떤 것입니까? 나로부터 세계가 태어났지요? 나는 인간 조상 아담, 즉 종지조상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에서부터, 한 사람으로부터 세계가 형성되었지, 많은 사람이 줄어들어 가지고 나 자체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로부터 세계가 시작된 것이지, 세계로부터 내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이상세계도 결국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세상도 누구로부터?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이미 형성되어 있는 세계입니다. 그렇지만 그 동기를 따져 보면 결국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의 종지조상이 누구냐?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가 곧 아담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은 어떠한 사람이냐?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처럼 몸과 마음이 싸울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싸우게 되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싸울 수밖에 없게 된 그의 계대를 받아 수천대에 이른 모습이 오늘의 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횡적인 형제의 형태로 연결되다 보니 세계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를 이기기 전에 누구를 이겨야 되느냐? 다시 말하면, 세계를 정복하기 전에 누구를 정복해야 되느냐? 나를 정복해야 됩니다. 나를 정복하는 데는 어떻게 정복하느냐? 선과 악이 대립된 나를 어떻게 정복하느냐? 이것은 간단합니다. 나 자신이 선한 편으로 가면 됩니다. 나 자신이 선한 권내에 있으면 정복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세계 앞에 정복되어 있는 것입니다.(판서하심) 여러분, 그렇지요? 이 세계권내에 휘몰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36-63
종교의 역할과 사명
그러면 이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상반된 입장에 서야 됩니다. 대립적인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탈출해야 됩니다. 이 탈출시키는 놀음을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려면 탈출로가 있어야 됩니다. 그 탈출로가 바로 종교인 것입니다. 역사에 그런 사명을 담당한 종교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세계가 악한 세계라면 반드시 그런 놀음을 해서 이겨야 됩니다. 세계적인 기반을 갖고 역사성을 띠고 내 개인의 생명을 초월하고 내가 태어난 그 부모의 기원을 초월할 수 있는 탈출행로가 있어야 됩니다. 알고 보니 그것이 역사적인 종교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기원이 아닙니다. 기원도 나를 초월한 것이어야 되고 목적도 나를 초월한 것이어야 됩니다. 그러지 못하고서 이 세계와 대립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어요? 나의 생명은 부모나 사회나 민족, 국가를 통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하나의 기원, 즉 절대자인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야 합니다.동기를 절대적인 입장에 있는 초월적인 동기와 결부시켜야 합니다. 시대적인 인연이라든가, 환경적인 인연, 혹은 사회적인 여건에 결부시켜서는 안 됩니다. 초월적인 원인에 결부시키고, 초월적인 목적에 결부시켜야만이 비약하고 초월하고 탈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초월적인 동기에 결부시켜야 합니다. 내 생명의 출발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출발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초월적인 동기에 결부시키게 되면 죽더라도 초월적인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죽게 되는 것입니다. 환경에 좌우되는 뜻이 아닙니다. 인연으로 말미암은 세계를 위한 뜻도 아닙니다. 초월적인 동기와 초월적인 인연을 통해서 초월적인 결론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초월적인 동기는 하나님이요, 초월적인 과정은 뜻이요, 초월적인 목적은 세계를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동기를 가지고 모든 것을 초월해야 됩니다. 그러한 동기의 내용으로써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그 과정의 인연을 새로이 엮어야 합니다. 참된 동기를 가지고 가정을 통해서, 종족을 통해서, 민족을 통해서 역사적인 기반을 닦고 그 과정을 엮어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추구해 나가는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움직임이 이 타락한 세상에 없다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수많은 국가가 멸망하였고, 정권이 교체되어 나왔지만, 종교는 수천년 역사의 전통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신의 경륜을 따라서 지금까지 발전해 나왔습니다. 요즈음 보면 스튜던트 파워(student power)라든지, 릴리져스 파워(religious power)라고 하는 것들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정치가라도 이것을 요리하지 못하면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초월적인 동기를 추구할 수 있는 종교는 어떠한 종교이며, 그러한 초월적인 신은 어떠한 신이냐? 나와 분립된 막연한 신이 아니라 내 생활을 주도하는 신이어야 됩니다. 또한 그 동기는 목적 성사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요, 그 과정에도 필요한 자극적인 요인이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떠나 가지고는 목적을 성사할 수 없는 것이 자연적인 이치가 아닙니까? 신과 생명의 기원에 결탁된 그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과정의 어디에 갖다 맞추더라도 적용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그것이 이상 천국입니다. 여기에 상충이 많으면 많을수록 악한 세계입니다. 그러나 과정에 있어서는 상충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는 악한 세상에서 피를 흘려 나오는 것입니다. 피를 흘린다고 해서 도망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끊어지더라도 가는 것입니다. 초월적인 생명은 초월적인 동기요, 초월적인 동기는 초월적인 과정을 통해서 초월적인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생명을 가져야 합니다. 절대적인 생명은 절대적인 세계와 연결되어야 하는데, 절대적인 생명이 절대적인 세계와 연결되는 과정에는 절대적으로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되는 요인 앞에 절대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목이 잘리더라도 굴복하지 않아야 합니다. 종교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36-65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종교운동이 일어나야
여러분! 탈출운동을 해야 됩니다. 무슨 뭐 칸트 철학이니, 헤겔 철학을 따르면 되지, 할지 모르지만 그런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와 관계 없습니다. 중간 입장에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아직까지 실제적인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유심사관이냐, 유물사관이냐, 이것을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해결지어야 됩니다. 공산세계도 밀어내고, 민주세계도 밀어내야 됩니다. 전부 다 여기에 굴복해서 돌아 들어와 가지고 자리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심)

그렇기 때문에 참된 성인은 세계적인 분이어야 됩니다. 최후에 남은 싸움이 뭐냐? 참을 추구하는 종교가 궁극적으로 그 세계적인 싸움을 담당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교통일을 이루어야 되기 때문에 여기에 통일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종교를 통일해야 합니다. 종교는 민족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합동결혼식을 하는 것입니다. ‘한군데 모여 결혼식을 하자’ 하면 ‘예 옳습니다’하고, 같이 살자고 할 때는 전부다 자기 보따리 싸 가지고 와서 사는 것입니다. 자기의 고질된 환경에 지배를 받는 피동적인 종교가 되어 가지고는 앞으로 세계를 요리할 수 없습니다. 고질된 환경을 초월할 수 있는 주체적인 능동성을 지닌 종교 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국경을 넘어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종교로 말미암아 악한 사람들이 선한 사람이 되고, 선한 사람들이 출현하면 그들로 말미암아 선한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점은 세계가 아닙니다. 세계는 결과입니다. 동기가 나쁘면 결과를 가지고 아무리 노력해 봐야 안 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보면 병이 나는 동기가 간단합니다. 한 세포에서부터 부작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결과적으로 4백조개의 세포가 한꺼번에 쓰러져서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한 세포에서 동기가 된 것이 전체를 잡아 먹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사람들이 이 세포와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실수로 말미암아 전부가 망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동기를 바로잡아야 됩니다. 이것을 수습하자는 것이 초월적인 신의 경륜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흥하는 패, 망하는 패, 선한 패, 악한 패가 어떻게 결정되느냐? 그것이 실감이 안 나고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악은 대개 어디에 소속하느냐? 사적인 것에 소속합니다. 여러분, 사적인 것 알지요? 악의 근거지는 사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의 근거지는 어디냐?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나온 사람들,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들은 사적인 인격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종교를 찾아 나가는 사람들은 사적인 목적을 위해 나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면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어떻게 다르냐? 사적인 것은 뭐고, 공적인 것은 무엇이냐? 사적이라는 것은 나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계가 나를 위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작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세계가 있다면 나 이상 발전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여러분이 절대적인 주체라면 절대적인 세계를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절대적인 사람이야? 되먹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소위 안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어? 세계가 어디 있어? 나라가 어디 있어?’합니다.

36-67
사적인 역사는 사탄의 역사요 망하는 역사
미국에 히피족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회, 국가, 세계가 어디 있으며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자기가 필요로 해서 절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선물은 그것밖에 있을 수 없습니다. 개인이 절대적 한계선을 영원히 주관할 수 있고, 그 자리를 확보할 수 있느냐? 그들은 휴머니즘의 절대적인 극치를 모두 포기해 버립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선물입니다. 개인주의 사상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세계를 향해서 ‘나를 위해라’ 한다고 해서 위해요? ‘나를 위주한 세계가 되어라’한다고 해서 돼요? 그렇게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고립됩니다. 동네 개도 안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개인주의자들에 대한 선물이 그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나를 위해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자유지…’ 세상에 그럴 수 있어요? 자유의 한계가 어디냐? 진정한 자유가 무엇이냐? 진정한 자유는 뿌리를 안고 나무 전체를 안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잎사귀가 그것을 다 집어치우고 나 하나만 제일이다고 하는 것이 자유입니까? 그것은 방종 중에도 파탄적인 방종입니다. 그런 녀석들은 다 ‘부모가 어디 있고, 나라가 어디 있어? 나라가 있으면 뭘해, 나하고 무슨 관계야! 그 나라가 나에게 무슨 필요가 있느냐’ 이런다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한 가정이 있을 수 있겠어요? 자기만을 위한 상대가 있을 수 있겠어요? 결국은 그런 사람은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별수없다는 것입니다. 사적인 삶의 결과가 가져다 주는 최고의 선물은 그렇게 귀결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남의 등이라도 쳐 가지고 내 멋대로 살자 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합니까? 어떤 사람이 친구에게 여기 가서도 이용당하고, 저기 가서도 이용당하고, 세 번만 이용당하면 그 친구를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이용당하려고 합니까? 친구에게도 이용당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세계가 나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요? 어림도 없습니다. 이렇게 나를 중심삼고 세계를 내 맘대로 하려는 것이 사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세계로부터 고립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재자는 나중에 가서는 고립될 뿐만 아니라 망하게 됩니다. 다 찢어먹고 독식하는 것이 독재자입니다. 독재자는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하며 다른 사람들은 생애의 가치라든가 소망의 가치가 없다고 여깁니다.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래 갑니까?

사적인 존재한테는 세계를 맡기더라도 그 세계를 지탱시키지 못합니다. 개인도 지탱하지 못하거니와 가정도 지탱하지 못하고, 사회도 지탱하지 못하고, 국가도 지탱하지 못하고, 세계도 지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엄마, 아빠 앞에서, ‘엄마와 아빠는 나를 위해 있지’ 하고 한 마디 해보라는 거야. 그럴 수 있어요? 형제간에도 ‘형님은 나를 위해 태어났으니 내가 하자는 대로 해요, 동생도 나를 위해 태어나지 않았어? 내가 하자는 대로 해’ 그래 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지탱해 나가나… 자기만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움직이면 자멸입니다. 망하지 말라고 해 도망합니다.

우리 아가씨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들 중에 개인주의 사상이 농후한 사람을 친구로 삼겠다는 사람 있어요? 자기만을 위하려는 사람이 좋은 친구예요, 나쁜 친구예요? 젊은 사람들, 대답해 보라구요. 「나쁜 친구입니다」 왜 나쁩니까? 갈라 놓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종족으로부터 모두 갈라 놓습니다. 칸막이로 막듯이 막아 놓는다는 것입니다. 왜 나쁜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악은 무엇이냐? 악은 사적인 것과 통합니다. 본래부터 악을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씨알맹이도 없습니다. 여러분도 선한 친구를 원하지요? 나쁜 친구는 싫지요? 그러면 선한 친구는 어떤 친구예요? ‘밥도 먹지 말고 학교도 가지 말고 나와!’ 그런 친구가 좋은 친구예요? 친구가 밥을 먹을 시간에 밥을 먹지 않았으면 밥을 먹이고,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면 학교에 가게 하는 이런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다. 나쁜 친구는 이와 반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선악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생활감정에다 접붙여 가지고 표시를 하자면, 사적인 것은 악에 속하는 것이요, 공적인 것은 선에 속합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적인 역사는 사탄의 역사요, 망하는 역사입니다. 공적인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요, 선의 역사입니다. 여러분이 교육을 할 때도 그런 관념으로 교육을 해야 합니다. 눈으로 볼 때도 사적으로 보느냐, 공적으로 보느냐? 코로 냄새를 맡게 될 때에도 사적으로 맡느냐, 공적으로 맡느냐? 귀로 듣게 될 때에도 사적으로 듣느냐, 공적으로 듣느냐? 일할 때에도 사적으로 하느냐, 공적으로 하느냐? 걸을 때에도 사적으로 걷느냐, 공적으로 걷느냐? 이 기준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친구가 ‘오늘 어디 가자!’ 할 때, 진탕 먹고 놀기 위해서 간다면 이것이 사적입니까, 공적입니까? 그렇게 되면 파탄이 벌어지고 싸움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36-69
최고의 공적인 것
그러면 보다 공적인 것은 어떤 것이냐? 공적인 것은 자기보다 큰 것입니다. 나보다도 가정을 위해 움직이는 더 보다 공적이요, 가정보다도 종족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더 공적입니다. 공적인 노정에 대해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종족보다도 민족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더 공적이요, 민족보다도 국가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 더 공적이요, 국가보다도 세계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 더 공적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하나가 더 있습니다. 세계보다도 천주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 더 공적이라는 것입니다.

천주라는 것은 영육을 합한 세계입니다. 우리들은 영계의 영인들을 해방하는 운동과 육적인 세계를 해방하는 운동, 즉 두 세계를 해방하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세계가 더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이념을 중심삼고 볼 때, 어디가 더 공적이냐? 한 차원더 높은 것이 공적입니다.

그 다음에 최고의 공적인 것은 뭐냐? 절대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도 모든 것을 다 떼어놓고라도 제일 공적인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 했습니다. 계명이 뭐냐? 경계하라는 명령이라는 말입니다. 경계하는 명령대로 안 하면 어떻게 되느냐? 벌을 받는다는 겁니다. 죽는다, 망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경계하는 명령대로 하면 어떻게 되느냐? 흥하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흥하느냐? 세계를 점령하고 하나님을 점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가는 계명이라 했는데, 하나님이 욕심이 많아서 자기를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욕심장이여서 자기만 사랑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랬느냐? 그 사랑의 인연을 갖지 않고는 세계를 상속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와의 사랑의 인연을 갖지 않고는 부모의 소유를 상속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 자신까지도 상속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상격이나 부모의 성품을 본받아 가지고 태어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한 말은 하늘땅 전체를 상속해 주기 위한 비결로서 준말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만을 위해 살라 하는 것이 공적입니까? 어때요?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만을 위해라 하게 되면 공적입니까? 사적입니까? 그것은 사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이 지니고 있는 그 가치에 천지의 전부가 달려 있기 때문에, 그 전체를 만민 앞에 주고 싶어서 하는 말인 것입니다. 주고 싶어서 사랑하라는 것이 사적입니까, 공적입니까? 주고 싶어서 사랑하라는 것은 공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나 받고 싶어서 사랑하라는 것은 사적인 것입니다.

36-71
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여기 앞에 앉은 학생 몇학년인가? 중학생인가, 고등학생인가?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그럼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에는 무엇 때문에 들어갔어요? 사내로 태어났으니 공부 잘해서 좋은 색시 얻어 가지고 잘살기 위해 들어갔어요? 그렇게 자신을 위해 들어갔다면 망하는 거야. 안 망하려고 해도 깨깨 망하는 것입니다. 망할 수 있는 길이 훤합니다. 그렇게 자기만을 위해 공부하는 녀석은 그 나라가 망할 때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안 망하더라도 그 종족이 망할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망할 길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세계를 위해서 공부한다면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나라가 망한다고 해서 세계가 망합니까? 또한 그 나라가 망하려면 개인이 망해서 가정이 망하고, 가정이 망해서 종족이 망해야 됩니다. 그래야 나라가 망하지요? 그러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어디에서 볼 수 있느냐? 개인들이 사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살며, 가정들이 나라는 생각지 않고 자기 가정만을 위해 살며, 그 종족들이 모두 자기 종족만을 위해 사는 것이 완전히 포화상태가 되면 그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 나라의 재산을 탈취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부패하면 그것이 망할 징조입니까, 흥할 징조입니까? 어디 여자들,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들에게 물어봅시다. 그것이 망할 징조예요, 흥할 징조예요? 그렇게 되면 망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이 공법에 의해서 하나의 세계는 가고, 하나의 세계는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럼 망하지 않는 비법이 무엇이냐? 공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시집을 가게 될 때에 아무개의 여편네로서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여성을 대표하여 그 나라의 어머니로서 시집을 가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그 나라의 아버지로서 장가를 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하는 부부가 되면 그 나라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나라의 대통령, 혹은 주권자를 대신할 수 있는 입장이 된 모든 남자 여자들이 그들의 대표로 선출한 사람이 그 나라의 주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가정이 못살더라도 내 나라를 잘살게 하겠다고 하는 그런 국민성을 가진 나라는 흥하여 남아지는 것이요, 그 국민 또한 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서 보다 오래 남아지고, 보다 흥하는 길을 가고자 하는 단체가 있다면 그들은 세계를 위하여 희생하고, 세계를 위하여 제물될 수 있는 운동을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계까지 전부다 망하더라도 그 후에 새로운 세계를 차지할 수 있는 주인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사적인 욕망에서 출발된 이 세상이 망하기를 소원합니다. 공적인 세계를 추구하며 하나로 통일된 평화의 세계를 고대해 나오면서, 그런 주의 주장을 수천년 전부터 부르짖어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오늘 이때에 와서 부르짖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면 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자기 부부가 재미있게 사는 것보다 더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것은 이 역사적 거리를 단축시켜 세계와 연결시키고 천주와 연결시켜서 사는 것입니다. 개인으로 살지만 세계를 넘어서서 사적인 기원을 통하여 이루어진 세계에서는 고를 수 없는 그런 가정이 해방된 가정인 것입니다. 또한 그 가정은 절대적인 가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명동거리를 지나다 보면 젊은 남자 여자들이 깨가 쏟아집니다. 그거 누구를 위해서 그러는 겁니까? 누구긴 누구야, 젊은 청춘시대인데 한번밖에 없는 이 시대를 즐기기 위해서 그러지. 좋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즐기는데 있어서 주인이 누구냐, 이게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때부터 즐길 수 있어요? 20대부터라면, 어느 때까지 즐길 수 있어요? 나이가 60, 70, 80이 지나가게 되면 별 수 있나?

그러나 통일교회식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도 무엇 때문에 먹어요? 살기 위해서 먹습니까? 통일교회 패들, 무엇 때문에 먹는 겁니까? 세계를 위해서 먹는 것입니다. 악한 세계를 없애기 위해 먹는 것입니다. 보는 것도 악한 세계를 소탕하기 위해서 보는 것입니다. 악의 편이 되기 위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악을 소탕하기 위해서 보는 것입니다. 듣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걷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전부다 세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36-73
밥을 먹으면서도 공사를 생각하라
대립된 선악의 세계를 어떻게 통일시키느냐? 통일사상을 가지고 통일시킵니다. 악은 나를 위하라 하며 자기를 들고 나오는 것이요, 선은 남을 위하고 너희들 잘되어라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대해서 선해요, 악해요? 「선합니다」 왜 선하냐? ‘우리는 못되더라도 너희들은 잘 되어라, 너희들을 위해 나는 희생한다’ 이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이게 공식에 맞다는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자식에게만은 그 공식이 적용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공식을 사회에 적용하고 세계에 적용하게 된다면, 세계가 잘될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식들에게 ‘내가 살인강도였으니까 너희들도 살인강도가 되어라’ 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자기는 악하더라도 자식에게 교육을 시킬 때는 절대 나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자식 대해 ‘너는 나쁜 사람이 되지 말아라’ 하는 것은 부모된 자신은 나빴다는 말입니다. ‘너는 잘 되어라’ 하는 것은 나는 못 되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자기를 잊고 완전히 투입시키는 것이 선이요, 그래야만 남아진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육의 만고의 원칙입니다. 이것을 사회화시키고 세계화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부모 나쁘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얼마 전에 어떤 부모가 자기의 아들을 고아원에 보내 놓고 세계 유람에 나섰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 자식들이 나빠지는 것이지 어디 가든지 부모가 자식과 함께 다니는데 자식이 나쁘게 되는 것 보았어요?

남들이 자신을 위해 주기를 바라면서 사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예요, 남을 위해 주면서 사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예요? 결론을 지읍시다.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이예요?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말없이 위해 주는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우리 통일교회를 괜히 미워합니다. 통일교회가 밥을 달라고 합니까, 떡을 달라고 합니까? 나라를 위하고, 인류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살자고 하는데 괜히 미워하거든요. 무엇 때문에 미워합니까? 우리가 도적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도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들어가면 자기들의 바탕을 모두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상속자가 누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동네에서도 그렇잖아요. 동네에서 무슨 문제가 벌어져서 누가 좋고, 누가 나쁘냐를 이야기할 때, 누가 마을을 위하고 마을 사람을 위했느냐, 즉 공적이었느냐, 사적이었느냐를 중심삼아 가지고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을 때도 이 먹는 것이 공적이냐 사적이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을 위하여 밥을 먹고, 세계의 인류를 위해 밥을 먹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위한 세계를 만들겠다고 하면 대한민국은 망합니다. 미국을 위한 세계를 만들겠다고 하면 미국은 망합니다. 세계를 위한 미국이 되어야 흥하는 것입니다. 닉슨 대통령의 시대에 들어와서 아시아를 위한 미국이 되었을 때는 소망이 있었지만, 아시아로부터 후퇴할 때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 갈 길이 어디인가를 두고 보라는 겁니다. 무엇이든 전부 다 참패를 당해 망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것을 벌써부터 이야기했습니다. 미국이 원조정책을 감소시키면 그 대통령 때부터 후퇴하게 되는 것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거기서부터 비운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 또한 제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더라도 망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죽어 가지고도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무리들이 어떤 무리냐? 공적인 사람들입니다. 공적인 생활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요? 공자. 석가. 예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느냐? 그들은 국가주의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계를 위해서, 미래의 세계를 위해서 살다가 간 사람들입니다. 이상적인 세계를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더라도 현실의 모순된 모든 것에 적극적으로 부딪히며 그 세계를 존중시해서 살아갔기 때문에 성현의 반열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현의 도리라고 하는 것은 하늘을 빼고서는 안 됩니다. 예수도 공자도 석가도 마호메트도 하늘을 업고 나갔습니다. 혼자서 자기가 제일이라는 째째한 녀석들이 있는데 그런 녀석들을 전부 소탕하자는 것이 통일주의입니다. 소탕을 하는 데 있어서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위해 주는 것입니다. 방법이 세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잘한 것도 자꾸만 잘했다고 하면 싫어하고, 못한 것을 못했다 하면 더 싫어합니다. 못했지만 잘했다고 하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수습방법이 다릅니다. 못한 것도 잘했다고 추켜 세우면서 달래야 합니다. 철이 없는 어린애들은 추켜세워 줘야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보게 되면 전부 자기 중심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가 가지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36-75
대립된 이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방안
이 세계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대립된 입장에 서 있습니다. 사적인 것을 추구해 나가는 이 세계에 공적인 흐름이 없으면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종교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공적인 것을 추구해 나오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서 공부한다는 사상을 가지면 망합니다. 그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세계가 없어지고, 나라가 없어지고, 가정 종족이 없어져서 그 혼자 고립되고 마는 것입니다.

민주세계에서 자유가 좋다고 하는데, 그 자유는 전체를 품을 수 있고, 전체를 소유할 수 있는 가치적인 자유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분립된 입장에서 논한다면 그 자유는 방종이며, 파탄의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이라든가 민주세계가 이러한 사상을 해결하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청소년 문제가 사회 윤리 문제로 등장하면 된 원인도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세계를 생각하지 않는 그런 무리들이 세계를 파탄시킵니다. 이것을 전부 청산지어 가자는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자, 그러면 공적인 입장, 즉 하나님의 입장에 한번 들어가 봅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고 말하는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데 있어서 이제 다 되었다 할 수 있습니까? 사랑이 끝이 있어요? 다 되었다고 하는 끝을 느낄 수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받게 될 때 상대적인 사랑을 받아요,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요?

여기 아주머니들도 옛날에 사랑하는 남편에게 ‘당신은 나를 사랑하오? 그래 얼마만큼 사랑하오?’ 하고 물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이 얼마만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얼마만큼만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만큼 기쁜 것입니다. 사랑에는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사랑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없는 사랑이 어디에 있느냐? 사랑은 끝이 없어야 하는데 자기만을 위하는 입장에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사랑이 끝이 있겠느냐, 없겠느냐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만 위하여 사는 사람들의 사랑은 하루도 못 가서 끝납니다. 한 달도 못 가는 것입니다. 부부가 왜 부부싸움을 하느냐? 서로가 사랑을 받겠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사랑을 받겠다고 하는 패들은 오래 갑니까, 못 갑니까?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오래 가면 그것은 원리가 아닙니다. 서로가 사랑을 받겠다고 하는 가정은 깨집니까, 안 깨집니까? 깨집니다. 그럼 서로가 사랑하겠다고 하는 가정은 어떻습니까? 서로가 상대를 더 사랑하겠다고 야단하는 가정은 깨지라고 제사를 지내도 안 깨집니다. 서로가 위해 주려고 하는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서로가 위하는 친구는 2년이 가고 3년이 가도 안 깨집니다. 영원히 갑니다. 서로가 위하려고 하는 형제간의 우애는 영원히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가 자기만을 위하라고 하는 우애는 며칠 가지 못합니다. 만나면 싸우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이 생기면 서로 갖겠다고 잡아당기며 싸웁니다. 그렇게 세 번만 대결하게 되면 영원히 이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의 방안이 어디에 있느냐? 위해 주는 데 있습니다. 그럼 남북이 통일하는 데 김일성이 하자는 대로 할 것이냐? 김일성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깃든 것은 무엇이든지 받고 싶은 좋은 것이기 때문에 그 좋을 수 있는 입장에서 영원히 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이북도 통일되는 것입니다. 현재 이북 백성들이 사는 이상의 입장에서 영원히 줄 수 있는 기반만 잡게 되면 공산당의 선전 따위는 먹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는 만큼도 못살면서 주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들이 받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남한에서 김일성이를 무서워하고, 김일성이를 걱정하고 있는 입장에서 주겠다고 하면 그들이 받겠습니까? 필요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는 데는 더 좋은 입장에서 주어야 됩니다.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길은 간단합니다. 대한민국이 경제 분야, 생활 분야, 지식수준 등의 모든 분야에서 월등해 가지고 영원히 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면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되지 말라고 해도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까지 가려면 우리가 그 사람들보다 더 노력해야 됩니다. 그 사람들이 밤을 새워 가며 일하면, 우리는 그들 이상 밤을 새워 일해 가지고 주려고 하고, 그 사람들이 백점이라면 우리는 백점 이상을 갖춘 자리에서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입장의 세계는 자꾸 발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36-77
무한히 주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이신데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게 될 때 얼마만큼 주고 싶으실 것이냐? 이만큼이면 됐다 하는 한계를 두고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무한정으로 주고자 하시는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몽땅 주고도 너로 말미암아 네 가운데 살고 싶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질 수 있는 그 본질이 무엇이냐?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 들어가서는 종살이를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의 밥상 위에 기어 올라가 똥을 싸도 그것을 바라보고 기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법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 세상을 대하여 사랑을 주었다고 해서 인간에게 ‘나는 완전히 다 주었는데 너는 왜 안 주느냐?’ 이럴 수 있겠습니까? 절대적인 사랑을 가진 하나님이라면 아직까지도 주고 싶은 사랑을 다 못주어 안타까와하시는 것입니다. 자아를 주장할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주고자 했던 것이 인간을 대한 창조의 원칙이라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완전한 사랑을 주지 못했으니 사탄세계에 대하여 사랑을 주고 나서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입장이 아닐 것이냐?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기에 생각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나는 다 줬으니 이제는 네가 가져 와라’ 하는 하나님이라면 내쫓아 버려야 합니다.

무한히 주고 싶어하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날 악한 세계에 있는 인류를 바라보시며 사랑을 줄래야 줄 수 없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이냐?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고 나서도 부족함을 느끼는 하나님인데 아무리 주고 싶어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못 가진 하나님은 얼마나 원통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홀애비나 독신자가 행복해요? 나라를 다 가지고 세계를 다 가졌다 하더라도 혼자 사는 독신이라면 행복한 사람입니까?, 불행한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예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러한 사랑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죽어도 그 사랑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려 준다면 최고의 눈물을 흘려 줄 수 있고, 정의 인연을 완전히 맺을 수 있는 그런 분은 하나님이 아니면 없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님의 품에서 죽는다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여기 여자들도 그렇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 죽으면 한이 없다고 하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볼 때, 앞으로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이냐? 내 개인을 다 희생하고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왕왕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망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전부 다 자기를 위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때문에 망했어! 꽃다운 청춘 다 바쳐 가지고 축복도 못 받고 이 모양 이 꼴이 됐어! 50이 됐어. 뭐 사위기대 빨리 내놔’ (웃음) 그런 패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앞에 ‘내가 이렇게 되었는데 왜 내 사정을 몰라줘요? 왜 축복 안 해줘요?’ 그러는 사람들은 누구를 위해서 산 것입니까? 나라를 위해 산 거예요, 아니면 세계를 위해 산 거예요? 결국 자기를 위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의 공식적인 법도를 중심삼은 책임자가 그런 말을 듣고 ‘네 그렇습니까? 당신의 사정을 절대 봐 드려야 되겠습니다.’ 해야 되겠어요, 아니면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야 되겠어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여러분, 대답해 보십시오. 거저 붙어 가지고 ‘그래 그래’ 해야 되겠나, 안 된다고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야 되겠나? 「도망가야 됩니다」 알기는 아는구먼.

36-79
개인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알라
여러분이 앞으로 공사를 가리는 데 있어서 이 원칙을 모르고서는 안 됩니다. 이 원칙을 모르고 대중을 지도하게 되면 내가 꺾여 나가고, 통일교회가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매정한 사람입니다. 그 어떠한 사람이라도 이 원칙에 걸릴 때에는 ‘언제 알았더냐? 너를 언제 알았더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그냥 거기에 말려들어가면 전체가 망하게 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만 고생했습니까?선생님은 일생 동안 이 놀음을 했습니다. 감옥으로, 어디로 별의별 놀음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 지금 내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이 모양 이 꼴이 되어서 되겠소?’ 한다면 망해야 됩니다. 망해야 된다구요. 그러나 나는 이 원칙을 알았기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망하고 통일교회를 따르던 사람들은 망하더라도 나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일 망하더라도 그것을 알고 망했다면 그 무덤가에 꽃을 심어 놓고 만민이 추모할 날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민을 위해서, 앞으로 다가올 하늘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죽었기 때문에 이 땅 위에 그 자체의 흔적이 없더라도 온 세계는 그를 받들고 모셔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나라와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개인은 가정의 길을 따라가야 하고, 가정은 종족의 길을 따라가야 하고, 종족은 민족과 국가를 바라보며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갈 길이 없기 때문에 현재의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통일교회보다도 대한민국을 더 사랑하라. 이것이 통일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요즈음 통일교회 때문에 말썽이 많습니다. 통일교인이라 하면 무서워하는 패들이 많습니다. 저렇게 나가다가 무슨 대통령이라도 하려는 것 아니냐며 별의별 말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통일교회를 위한 대한민국을 원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한 통일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만민이 좋아하고, 우리 선조가 좋아하고, 우리의 후손이 좋아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바라면서 그러한 나라를 위한 통일교회가 되어 나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주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정부가 옳지 않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시정해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은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나가야 합니다. 그 다음엔 가정이 그 길을 모색해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축복가정부터 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가정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을 가야 합니다. 남편만 나라를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아내도 아이들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위기대가 갖추어야 할 조건입니다. 언제 가정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해 보았느냐? 못해보았기 때문에 사위기대적 사랑의 한 기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통일교회는 할 수 없이 통일 운세의 시대가 목전에 다가오는 이때에, 축복가정 전체를 동원하는 놀음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만일에 갑이라는 사람이 ‘선생님이 무엇인데, 남편도 가고 자식도 갔는데도 또 가기를 바라느냐? 아이고 우리 집안 망했구나’ 하게 되면거 망하는 것입니다. (웃음) 진짜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집안은 망해도 좋습니다’ 하면서 복을 빌고 축수하는 그 가정은 망하라고 제사를 지내 보십시오, 망하나. 지금까지 기성교회 목사들이 나 망하라고 얼마나 많이 기도를 하고 별의별 짓을 다 했습니까? 그렇지만, 나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이 원칙을 따라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에 위배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생각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 3대를 통해서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는 기반을 갖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3대가 함께 모여서, 손자가 아버님을 부르면 ‘오냐’ 할아버지를 부르면, ‘오냐’ 해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우리 다 함께 비밀회의를 합시다’ 하면 ‘응, 응, 그렇게 하자’ 그럴 수 있는 조상들을 가졌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잘 생각해야 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아들딸에게 그런 교육을 시켜야 됩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님, 이 나라를 일으켜야 되고 세계를 일으켜야 되니 아버님과 제가 생명을 바쳐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했을 때, 그 아버지가 아들에게, ‘얘야, 죽으면 되느냐? 살아야지’ 그러면 그 영감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러면서 부자가 서로 목을 껴안고 하늘을 위해 죽음의 길도 첨벙 들어갈 수 있는 가정이 되면 그 가정에서 역사를 상속받고,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후손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36-81
통일교회의 길은 세계를 위하는 길
그러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선생님과 여러분의 입장을 생각해 볼 때에, 뭐 참부모니 뭐니 하며 수작들을 잘하지만, 언제 그렇게 살아 보았느냐는 거예요? 그 집안이 잘되려면 아버지를 교육해야 합니다. ‘아버지,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이렇게 해야 되겠습니다’ 할 때 ‘오냐 그렇게 하자’ 하며 그 아버지가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자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의 되면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이놈의 자식이, 나를 망하게 하려고 그래?’ 한다면 그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앞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나가는데 여러분이 꽁무니 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무리들은 다 흘러갑니다. 흘러가지 않겠다고 아무리 버티고 서서 ‘나는 통일교회 협회원서 냈는데…’ 해도 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가는 길은 세계를 위하여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은 그 세계가 되고 난 후에 상속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에 마음속으로부터 받아 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의 나라를 위하고 하나의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전체의 대열을 갖추어 가지고 총진군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루 속히 그런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안팎으로 준비하고 명령을 기다리는 가정은 하늘의 상속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투덜거리는 사람은 두고 보십시오. 그 가정은 갈라지는 것입니다. 종족도 왜 우리 종족만 수고시키느냐 하게 되면 앞으로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세계를 찾기 위해서 민족을 동원하라 할 때, 왜 하필 수많은 민족 가운데 대한민국의 한 민족을 동원하느냐 하며 거부한다면 이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움직여야 할 때에 그것을 거부하고 돌아서면 그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를 믿는 것도 세계를 위해서 믿어야 됩니다. 가는 것도 세계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가야 됩니다. 보다 큰 목적을 위해서 현실의 모든 생활을 소화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진전되고 발전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후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직장에 출근할 때나 그밖에 어디에 가게 될 때에는 ‘아버지, 내가 가는 길에는 지금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그 길에 있어서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어 당신이 그리워하는 그 나라의 필요한 요건을 갖출 수 있을 때까지 가겠습니다. 나로서 안 되면 내 자손만대를 통해서라도 가게 하겠습니다. 하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천리 만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그 세계를 위한 사람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36-82
몸에 끌려가면 악한 세계 마음에 끌려가면 선한 세계
여기 수위실을 두고 보면 이 수위실은 세계적인 수위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볼 때에도,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세계를 대표해서 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역사상의 성인도 이러한 생활을 못 했고 역사상의 그 어떠한 선조도 이러한 생활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렇게 산다면 역사를 부활시키고, 뭇 생명들을 부활시킬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조상들이 추앙하고, 조상으로부터 위함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자가 시집가서 못 살고 소박맞아 쫓겨 나오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간단한 것입니다. 시어머니보다도 맛있는 것 먹겠다고 하고, 시아버지보다도 맛있는 것 먹겠다고 하는 며느리는 대번에 쫓겨나는 것입니다. 시누이들이 있는데도 까짓것 모르는 체하면서 내가 맛있는 것 먹겠다고 하고, 좋은 옷이 있으면 입고 거울에 비추면서 ‘이 옷 좋구먼, 내가 입어야지, 시누이들이야 무슨 상관 있어?’ 하면서 그 옷을 입고는 좋아하면 쫓겨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보다도 못먹고, 못입으면서 말없이 그들을 위해 주는 며느리는 3년 이내에 그 집안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주인이 되느냐?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시누이들이 자기 어머니, 아버지 앞에는 이야기 못할 비밀 보따리를 올케 언니한테 풀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게 되어 있죠? 그렇게 되면 며느리가 소박을 맞을 것은 감추어 주고 칭찬해 주고 자랑해 주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대립된 선악의 세계를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차피 대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를 두고 하나님도 잡아당기고, 사탄도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디로 끌려갈 것이냐? 마음에 몸뚱이가 달려가는 것이 종교생활입니다.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몸뚱이를 앞세우고 마음이 뒤따라 가면 악입니까, 선입니까? 「악입니다」 악이라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 보면, 이 몸뚱이를 따라가면서 희희낙락하고, 뭐 트위스트가 어떻고 하는데, 그것이 악을 위해 가는 거예요, 선을 위해 가는 거에요? 「악을 위해 가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게 해보라구요. 뭐 대학교 다닌다고 모자를 쓰고 꺼덕거리고 다니고 하는 것을 부모니까 보아주지, 가정생활하면서 그렇게 하면 좋아할 아내가 있어요? 그것 좋아할 아들딸이 있느냐 이겁니다. 그 가정은 파탄이 벌어지고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몸뚱이에 끌려 다니는 사람은 망하는 것이요, 몸뚱이보다 마음이 앞장서 가는 사람은 어떻게 된다구요? 흥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적인 사람은 여기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마음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죽는 자리에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핍박받고, 죽으면서 발전한 것입니다. 그것이 참입니다. 통일교회도 지금까지 욕을 먹으면서 발전해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합니다.

대립된 선악의 세계라는 입장에서 볼 때, 몸뚱이에 끌려가면 악한 세계가 되는 것이요, 마음에 끌려가면 선한 세계가 되는 것인데 여기에서는 마음이 몸뚱이를 완전히 지배할 수 없습니다. (판서하심) 언제나 완충지대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종교권을 중심삼아 하나님의 뜻을 절대시하고 세계관을 중심삼은 권내에서 하나님의 뜻을 절대시하게 되면 사탄세계와 분립된 자리에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립된 선악의 세계이기 때문에 분별된 자리에서 선을 위주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 개인의 생활을 거친 사람은 영계에 가서 선주권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지 말라고 해도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나라는 어떠한 세계냐? 여러분, 영계가 어떠한 세계인지 모르지요? 하나님의 사랑은 공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영계에 가면 여러분들이 뭐 이러구 저러구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히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주고도 더 주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도 거기에 호흡을 맞추고 빙빙 돌아가면서 박자를 맞추어야 됩니다. 박자가 틀리면 그 힘을 전부 잃게 됩니다. 영계에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반대적인 요인을 가지고 영계에 간 사람들은 상충되기 때문에 하늘과 멀리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인연을 맺지 못하고 하늘과 멀리 떨어지게 되는 것이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36-84
참된 도인들이 가는 길
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 길이 참된 도인들이 가는 길입니다. 알겠어요? 진정으로 참된 것을 주고 나서도 눈물을 흘리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 자리는 영원한 평화의 경지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옷을 잘해 입혔다고 해서 부모의 책임을 다했다고 하는 부모가 있으면, 그 부모의 사랑은 거기서 끝나는 것입니다. 옷을 잘해 입히고 나서 스스로 장함을 느끼는 부모는 끝나는 것이요, 더 잘해 주고 싶은데 못 해주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부모라면, 그 부모는 영원한 유업을 상속받을 수 는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세계가 천국입니다. 알겠어요? 주면서도 머리를 숙이고, ‘받아주니 고맙습니다’ 하는 이러한 세계가 천국인 것입니다. 지옥은 어떤 곳이냐? ‘가져 오라, 바쳐라!’ 하는 세계입니다. 이걸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했습니다. 죽어가면서도 하나님께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더 크기에 더 큰 희생도 응당 바치겠나이다’ 이런 자세였습니다. 이 자리는 영원히 깊이 들어가는 자리이기 때문에 영원히 하나님과 더 가까운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앞에는 하나님도 꼼짝 못하십니다. 그런 사람을 치는 사람은 즉시 망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제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그랬습니다. 그랬지요?

어느날 누구에게 몇 천만 원을 주었으니 그에 대한 이자를 얼마 가져와야 할 텐데 하면서, 준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천국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준 것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 몇 냥 몇전을 투자했으니 그 이자를 받겠다고 하는 그런 부모 있어요? 주고도 다 잊어 버리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준 것을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 안타까와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영원히 계속되기 때문에 부모 없는 사람을 고아(孤兒)라고 하고 고아가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인들은 옛날에 자기가 전도 나갔던 곳으로 다시 전도를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 가게 되면, 그 사람 통일교회 반대하더니 어디 망했나, 흥했나? 하는 이런 감정 가지고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옛날에는 주고 싶었던 것을 다 주지 못하고 떠났지만 이제 진정한 입장에서 줄 수 있는 때가 왔구나. 모든 사람을 위해 주고 싶고, 부락 전체를 위해서 다 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때는 반대했던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도 살아 남았으니 이제는 내가 다 줄 수 있도록 기쁜 마음으로 대해 주었으면…’ 이런 마음을 가지고 가면 다시 반대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 마음을 알아야 됩니다. 주고 나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 나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하늘의 법도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제 줄 만큼 줬으니 내가 잘먹고 잘살겠다고 하면 통일교회는 여기서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을 위해서 내가 수고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해 봐도 그렇다고 인정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수고한 것으로 됐다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을 고생시킨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준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을 주려니 지금 잘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수고하게 하고, 세계를 위해서 수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민이 찬양할 수 있고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워 하늘과 땅,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전부 상속시킬 수 있는 승리의 한날을 위해서 최고의 것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36-86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하며 공식노정을 따라가라
현재의 입장에서 여러분을 고생시키는 그 몇 배 이상으로 잘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나 자신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움직임은 발전할 것입니다. 이것이 천적인 공식을 통해서 보는 관입니다. 여기에 어긋나게 될 때에는 후퇴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 교인들이 원리는 배웠지만 원리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지금의 때가 어떠한 때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가정을 대표해서 국가를 위해 주고 세계를 위해 주어야 할 때가 왔으니 거기에 가담하지 못하게 되면 원통한 중에도 원통한 것이요, 분한 중에도 분한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내가 동원하라고 하니까 ‘또 왔구만, 뭐 60년대에는 내 개인이 뼛골을 훑어 먹더니, 이제 70년대에 와서는 내 자식과 여편네까지 훑어 먹으려고 해!’ 이렇게 불평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래 가지고 그 집안이 망하는 놀음이 벌어지게 되면 이것이 대한민국에 있어서 새로운 풍조가 될 것입니다.

이제 1972년도까지 몰아대려고 합니다. 과연 몇 가정이 남느냐? 몇 가정이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뜻 앞에 남아 지느냐? 이런 문제를 지금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악의 분별기준을 거치지 않고서는, 두 세계를 분립시켜 가지고 하나의 선한 결과의 세계를 가져 올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기 바랍니다.

선은 공적인 입장에서 가는 것이요, 자기 자체를 드러내지 않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내가 이렇다’하는 광고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지금 알 수 있어요? 어느 시대에도 하나님은 내가 이렇다고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절대적인 권능을 가지셨지만 그 권능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있는지, 없는지… 그러나 있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렇게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사탄까지도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그때, 아담 해와를 통해서 천사장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그때를 바라보며 참고, 극복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일진대 그 하나님이 제일 불쌍한 분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그 도리와 법도를 따라서 앞으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공적 노정과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쳐 나온 그 입장을 생각하며 나갈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선한 세계의 주인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36-87
기 도
(앞 부분 녹음 안 됨) 아들딸에 대한 십자가가 있으면 그것은 아내의 것이 아니면 남편의 것이기 때문에, 그 십자가를 누구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남편들이 책임지고 아이들을 맡고, 이제 뜻을 위하여 공적인 입장에서 제물로 바쳐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통고하였사오니, 이번 기간이 흘러가는 기간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기간을 통하여 통일교회에 재편성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모르고 있사오니, 아버지께서 이러한 엄중한 때와 시기에 분별점을 통하여 우리들을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제야말로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뜻을 사랑하는 가정적인 횡적 터전을 이룰 수 있는 결정적인 찬스가 목전에 다가오는 것을 아는 축복받은 남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가정의 주인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자기를 의지하고 아버지를 부정한다면 천사장의 후손이 되는 것이요, 천륜을 가로막는 배반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당신의 거룩한 섭리의 손길 앞에 눈물로써 보답하고, 제물로써 보답해야겠습니다. 그분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그 나라의 소원을 자기의 소원으로 스스로 상속받을 수 있고 인계받을 수 있는 아담의 입장에 선 주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자주적인 주관권을 복귀하여 새로운 하늘의 국가가 넓어질 수 있는 거룩한 때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777가정을 중심삼고 10개 국을 연결시킨 것은 세계적인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요, 가정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인연의 때를 연결시킨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들을 통하여 한국이 세계 앞에 주체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되겠기에 그들에게 명령을 하였사오니, 가정적인 입장에서 그 명령을 받고 나서는 철부지한 딸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가정을 중심삼고 정착하는 것보다도, 가정을 뒤에 두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실감이 나지 않거든 밤을 세워 가며 몸부림을 치면서라도 남편보다도, 자식보다도 그 나라를 사랑하고, 그 뜻을 사랑할 수 있는 가정주부로서의 마음의 기틀을 마련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승리의 가정적 제단을 쌓아 남편과 자녀들을 모아 놓고 제물을 드릴 수 있는 하나의 승리적 터전을 마련하지 않고는 타락의 조상이 되었던 해와의 한을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아는 이번 기간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것을 당신은 이미 알고 이때를 바라보고 나오셨사오니, 이때에 배반자들이 되지 않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어린 딸들이 70년대의 운세와 더불어 나가는 전체의 행로 위에 당신의 사랑과 가호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자진해서 일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어야겠습니다. 북괴가 남침의 때를 노리고 있는 현시점에 있어서 그들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내세우지 않고는 한국이나 세계에 도사리고 있는 공산세력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가정과 자식을 제물삼아서라도 나라를 구하고 세계를 구하여야 하라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진하여 참다운 승리의 제물로써 탕감의 내용을 갖출 수 있는 입장에 선 남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악한 세계에 처하게 되면 망하는 것이요, 선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 길 위에 당신의 축복의 손길을 영원히 같이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선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망하는 것 같지만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고, 이 원리 원칙에 입각하여서 힘차게 내일을 다짐하고, 내일을 보장시킬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남한 각지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날을 추구하며, 앞으로 다가올 많은 일들을 앞에 놓고 준비하고 있사오니, 그 어린 자녀들의 갸륵한 마음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허망한 세계로부터 한 생명이라도 더 지키시고 고이 단장하시어서, 수많은 백성 앞에 참사랑을 주고도 부끄러움을 느끼며 죄된 자신을 책망할 줄 아는 그런 마음, 그런 자리를 지킬 줄 아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만만사의 섭리의 뜻이 저희들이 가는 길을 언제나 염려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저희들 앞에 남겨진 모든 일들과 처리해 나가야 할 행사를 중심삼고 자의보다 천의를 따라, 모든 것을 맡기고 있는 힘을 다하여 따라가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찾아오는 소망의 나라와 세계의 부르짖음을 저희들이 직시하면서, 주체적인 사명을 가지고 아버지 대신 주고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행하고도 스스로를 감추고, 스스로 행한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자리에 선 아들딸이, 이 통일교회에 많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로 말미암아 세계가 굴복되어 들어오는 것이요, 하늘땅이 굴복되어 들어온다는 것을 아오니, 그런 아들딸들이 많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런 아들딸이 될 수 있는 훈련의 과정으로서 이번 기간을 세워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소원과 뜻이 어떠한 수난의 길을 가더라도 저희들을 통하여 승리하고 성사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길 재삼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