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73 to 36-312: 참을 찾아서

참을 찾아서
1970.12.13 (일), 한국 전본부교회

36-273
참을 찾아서
[기 도]

이 달 위에 당신의 사랑의 가호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은 이 달 들어 두 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 당신의 소망과 안위가 여기에 모여 있는 당신의 자녀들과,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 위에 임하시옵소서.

높고 귀하신 당신의 성상을 흠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당신 앞에 모두 묶어 바치면서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비판하고 내일의 참된 모습을 그리워하오니, 당신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증거를 아버지께서 부여해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찾아 나오신 아들의 모습, 소원하시고 소망해 나오신 아들의 모습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저희가 만우주 전체의 가치를 대신하고 중심의 가치를 대신하는 존재가 됨으로써 당신이 그리워할 수 있고, 당신전체의 모든 감정과 감각, 당신의 입을 통하여 저희를 아들이라고 하고 딸이라 할 수 있는 참다운 자녀의 모습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보잘것없는 저희를 통하여 당신이 그런 아들딸들의 모습을 느끼기를 저희들은 바라고 있나이다.

은은히 저희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저희 생명의 터전을 개척하기 위하여 수고하시는 아버지, 참다운 아들과 딸을 만나기 위한 한 날의 소원으로 기나긴 세월을 참아 나오신 그 모습 앞에 저희들은 감사를 드리옵니다. 저희의 마음은 오로지 당신으로부터 근원되어 있기 때문에 당신의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서, 당신이 소망하시는 세계에 있어서 하나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참다운 아들의 모습, 딸의 모습이 이 시간에도 그리워하나이다.

저희들은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존엄하신 아버지 앞에 불리워지는 아들딸이 되기를 원하여서 여기에 나왔사옵니다. 아버님의 은은한 부탁의 말씀과 권고 앞에, 내일의 소망과 내일의 사명을 다짐하는 결의에 찬 당신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해도 덧없이 흘러가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당신의 뜻 앞에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엄청난 과제를 걸어 놓고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노라 하면서 이 자리까지 나왔사옵니다. 금년 한해를 지내는 가운데 저희의 심성에는 갖가지의 모양이 그려졌을 것이옵니다. 이 한해 동안 당신을 위할 수 있는 시간을 얼마나 가져 보았으며, 얼마나 당신을 찬양하는 날들로 지냈는가를 반문해 볼 때, 부끄러운 일년이었던 사실을 깨닫게 되옵니다. 하오니 이해를 중심삼고 아버지 앞에 가일보 전진하는 희망찬 새해를 그리워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난날을 후회하고 회개하는 마음이 저희를 사로잡게 하여 주시옵고, 소망의 71년도를 그리워하면서, 진전된 자신의 가치를 아버지 앞에 들여놓기 위하여 해산의 수고도 달갑게 받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는 것도 자기가 원해서가 아니오라 당신의 창조원칙에 따라, 아버지의 무한하신 능력의 손길이 가해진 인연을 따라서 태어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렇게 태어난 생명이기 때문에 그 생명은 당신이 소원하시는 곳에 귀결되어야 될 것이고, 그 소원의 가치와 일치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창조 본연의 가치는 아버지로 말미암아 완결되는 것이 아니오라, 아들과 딸들로 말미암아 완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자녀의 명분을 지닌 한 생명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엄청나고 놀라운 사실인가를 저희들이 알게 되옵니다.

자기 자신을 볼 때에, 아버지께서 같이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없고, 세상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같이 느끼게 되오나 본연의 인연을 회고해 볼 때, 이렇듯 놀랍고 무한한 가치의 내용을 지니고 출발된 자신인 것을 깨닫고 한 생명이 당신께서 찾아오고 더듬어 온 가치 있는 모습인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옵니다. 그러니 흠없고 순수하고, 순진한 어린양의 모습으로서 아버지 앞에 고이 바쳐질 수 있는 아들의 모습과 딸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 당신께서 소망하시며 찾아 나오시는 민족의 중심이 되고, 국가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가정의 기틀이 저희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아버님의 기쁨 속에서 태어나고 부활되기를 원하고 있사옵니다. 당신이 저희를 그리워하기 전에 저희들이 먼저 당신을 그리워해야 되겠사옵고, 당신이 저희를 사랑하시기 전에 저희들이 먼저 당신을 사랑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 앞에 모든 사정을 고하기 전에 당신께서는 이미 저희의 사정을 알고 계시다는 것을 아니 느낄래야 아니 느낄 수 없고, 아니 체휼할래야 아니 체휼할 수 없는 그런 아들딸이 되어야만 하겠사옵니다.

아버님, 불쌍한 저희를 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저희는 아버지의 아들의 자리가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아버지의 아들로서 지녀야 할 내용이 어떻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사옵니다. 과거의 자기 모습, 혹은 현재 기울어져 있는 자기의 모습, 쭈그러진 자기 모습을 보게 될 때, 저희들은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해 몸부림치는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의 불꽃같은 눈앞에 나 자신을 무엇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으며, 언제 존엄하신 당신 앞에 인연되는 환경에 처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의 거룩하심을 더럽힐까봐, 당신의 깨끗하고 존귀하심이 그늘질까봐 마음을 졸이게 되옵니다. ‘무한히 높으시옵소서, 무한히 귀하시옵소서, 무한히 가치있으시옵소서’라고 마음으로 기원하면서, ‘나는 천번 만번 망하더라도 당신의 거룩하심에 상처를 입혀서는 안되겠다’고 하며 당신이 찾아오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이 오늘날 저희에게 더더욱 필요한 것을 알게 되옵니다.

긍휼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당신이 운행하시고, 당신의 자비의 마음이 인연되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놀랍고 엄청난 당신의 성상 앞에 저희는 무한히 감사하고, 무한히 찬양하고, 그리운 마음에 사무쳐야 되겠사옵니다. 존경하는 마음에 사무쳐야 되겠사옵니다. 깊고 고요하고 순전한 그 자리에서 당신의 은은한 맥박을 통하여 생의 힘이 생동하는 창조의 묘미가 당신의 이름과 더불어 저희들 앞에 연결되어야 할 불쌍한 타락의 후예가 된 것을 탄식해야 되겠사옵니다.

배가 고파서 몸을 가눌 수 없는 극한 자리에서도 자기 의식이 한 초점에 집중되어 기울어지는 그 순간보다 더 강하게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에 사무쳐야 되겠사옵니다. 오늘날 타락한 후손에게는 모든 세포가 한 곳에 집중되고, 모든 감각이 아버지 앞에 집중되어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최고의 소리, 아버지라고 외치는 절규 가운데 아버지를 붙들고 혁명과 더불어 아버지의 실재를 느낄 수 있는 체휼이 타락한 후손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오늘날 저희의 모습이 얼마나 추하고,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이옵니까? 병중의 오만가지의 병이 올라서 쪼들어지고 꼬드러진 모습으로 아버지라 부르는 이러한 모습을 대하여 피의 인연과 생명의 인연을 가진 아버지께서는 부정할 수 없기에 저희와 같은 자식들을 사랑하여야 하는 불쌍하신 아버지를 저희들은 동정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어쩌다가 이런 모습이 되었으며, 아버지께서는 어쩌다가 이런 저희들을 아들이라고 딸이라고 부르게 되었사옵니까? 천년 한의 길을 넘나들면서 소원의 아들딸을 품고 살아가고 싶었던 아버지 앞에, 슬픔과 서러움의 눈물과 더불어 붙안고 통곡할 수밖에 없는 아들이요 딸이 된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억울하고 얼마나 처량한가를 스스로 느낄 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오늘날 이 통일의 무리를 이끌어 오신 아버지, 그 누구를 다 집어던지더라도 사랑하겠다고 약속하시던 아버지, 세상을 다 버리더라도 너는 버릴 수 없다고 토로하시던 아버지, 그렇게도 귀하시고 그렇게도 가치 있으신 아버지께서 이렇게도 천하고, 분뇨속의 미물보다 못하고 만물의 때보다 못한 인간의 모습을 찾아오시면서 수고하신 것이 얼마나 분하고 원통한 것인가를 저희들은 느껴야만 되겠사옵니다.

흘러가는 물결과 더불어 머무를 수 없는 가치의 그 길을 더듬어 오신 아버지의 노고의 행로를 생각할 때, 저희들이 천년 만년 옷깃을 여미고 무릎을 꿇고 몸을 숙여 아무리 아버지 앞에 감사의 생활을 바치더라도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아버지의 그 은덕을 다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당신을 사랑하기 전에 자기를 사랑하기에 미친 인간이옵고, 당신의 가치를 찬양하기 전에 자기의 가치를 찬양하는 인간들이옵고, 당신의 수고를 자랑하기 전에 자기의 수고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인간이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들은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돌아가야 되겠사옵니다. 오직 당신의 생명의 품을 그리워해야 되겠사옵니다.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이것에만 사무쳐 가지고 어린 아기가 엄마의 젖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순수한 당신의 피살을 다시 공급받아야 되겠사옵니다. 순수한 당신의 사랑의 심정을 저희들이 상속받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저희들을 버려두지 마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통일교단을 당신께서 맡아 주시옵소서. 당신의 아들딸들이 지금까지 천대받고 조롱 받아온 것은 당신의 이름을 부른 연고요,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길을 가고자 했기 때문이었사오니, 아버지여, 그것만이라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때로는 자식을 버려야 할 때도 있었사옵고, 때로는 사랑하는 남편을 버려야 할 때도 있었사오며, 때로는 사랑하는 부모를 뒤에 두고 모르는 자와 같이 냉정해 돌아서야 할 때도 있었사옵니다. 친구는 물론이요, 자기 환경도 물론이요 자기 나라에 대해서도 그러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당신과 바꾸기 위하여 가졌던 것을 사탄에게 빼앗겨 버린 저희들이 당신을 잡지 못하고 당신과 인연을 맺지 못한다면 빼앗겨 버렸던 것을 다시 찾아가야 할 것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 앞에 얼마나 조롱받을 것이며, 또 아버지의 한은 얼마나 가중되겠는가를 생각하고 전진해야 할 운명의 행로를 놓고 주저하고 몸부림치는 불쌍한 무리가 있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당신은 슬프신 분, 당신은 괴롭고 외로우신 분, 당신은 땅 위의 그 누구에게도 사정할 수 없는 고독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니 당신을 위하고, 당신으로 말미암아 살고자 하는 통일의 무리들이 많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삼천만 민중을 대하여 소망하시는 그 내용보다도 소수의 통일의 무리를 대하여 사정하고 싶고, 통하고 싶은 내용이 크다 할진대는 이 통일의 무리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망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과의 인연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당신이 저희들과 더불어 수고하신 그 가치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저희 자신을 위하기보다도 당신을 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원하는 이들의 행로를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초목도 봄이 오면 생명의 결실을 바라보고 준비하는 것을 보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인생 행로에 있어서 봄절기를 맞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봄을 맞은 후에는 여름 절기를 맞이할 수 있어야 하겠사옵니다. 한때밖에 없는 무성한 여름 절기를 맞이하여 생명의 가치의 근원과 더불어, 뻗어날 수 있는 내용과 더불어 활짝 꽃을 피우고 일년 동안에 모든 영양을 집약시킨 하나의 결심을 맺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의 가치로서 거두어야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그 무엇에 침범받지 않는 생명력을 지니게 될 것이옵니다.

이렇듯 아무리 험하고 얼어붙는 자리에서도 생명의 권위를 자랑하고 그 무엇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생명력이 남아져야만 후대에 다시 봄을 맞이하여 생명의 싹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 저희 자신들도 봄을 맞이하여 생명의 싹을 피울 수 있는 순수한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여름을 맞이하여 꽃이 피고 향기가 진동하는 가운데 천군천사가 찾아와 생명을 노래하고 생명의 가치를 찬양하며,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무엇과 부딪쳐도 깨지지 않는 자기 자체가 되어 뚜렷한 주체적인 생명의 내용을 지니지 않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무리 차디찬 바람이 몰아친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냉랭한 고드름이 얼어 붙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넘고 녹여서 다시는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는 그런 권위를 지니고 있어야만 재봉춘할 수 있는 소망의 천국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 시간 당신이 저희를 부르셨기 때문에 저희는 여기에 왔사옵니다. 하오니 당신과 인연맺어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군상들 가운데에서 남이 생각하지 않는 길, 남이 보기에는 무미건조한 길을 더듬어 나오는 저희들의 걸음 위에 당신의 후대하시고 두터운 사랑으로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끊임없는 소망의 마음이 이들의 생명의 인연 가운데 깃드시옵소서. 내일을 위하여 현재의 노정을 가겠다고 다짐하면서, 결실의 가치를 당신 앞에 봉헌하면서,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저희의 마음속에 당신의 깊고 높으신 성품과 역사의 수난 가운데에서도 지치지 않는 당신의 풍부하신 사랑과 내일의 소망을 위한 현재의 투쟁의 행로에 있어서 비장한 당신의 성상을 새기며 당신을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기 위하여 참석하였사오니, 자비의 아버지시여, 저희들을 그냥 남겨두지 마시옵고 높고 귀하신 당신의 영광이 저희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럼으로 말미암아 천상세계의 천천만 천군천사들은 물론 앞서 간, 선조들, 이 땅 위에서 생명의 인연을 갈구하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 또한 앞으로 올 후손들까지도 그리움과 사모함으로 당신과 맺어진 자녀의 인연을 통하여 결속시켜 주시옵고, 새로운 출발과 새로운 인연이 여기에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국에 널려 있는 뭇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당신의 사랑하는 딸들이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제일선에 나가 싸우고 있사오니, 그들이 외로울 때에도 인간적인 생각을 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없는 가운데에서 창조하신 아버지의 능력을 믿고, 아버지의 외로우신 복귀의 생애를 회상하면서, 저희 자신이 그럴 수 있는 한날과 그럴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음을 무한한 영광으로 찬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될 때 사랑의 창조의 인연을 연결될 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을 대신하여 민족을 그리워하고 사랑해야 되겠사옵니다. 한 사망권내에서 영원히 원수의 쇠사슬에 얽매인 그 모습들을 직시하면서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간절한 마음에 자기의 위신마져 망각하는 자리에 서야만 아버지께서 엮어 오신 개척의 행로가 여지없이 벌어진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사옵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자리에서는 아버지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기를 잊고 아버지를 몸 전체로서 느끼고 몸 전체로서 믿고 생활할 때, 재창조의 봄날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을 배반하던 민족을 다시 사랑해야 할 아벨의 입장이 불쌍하옵고, 저희들을 죽음길로 내몰던 기성교인들을 다시 찾아 만나서 목을 안고 통곡하여야 할 아벨의 책임을 짊어진 이 무리들이 불쌍한 것을 알게되옵니다.

그런 자리에 설 때마다 사람들은 몰라주더라도 영계의 천사세계와 천천만 성도들은 몇백 배 몇천 배의 간곡한 사무친 마음을 가지고 저희들을 대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가 비록 세상에서는 나라를 갖지 못하였더라도 영계의 나라가 저희의 나라가 된 것을 저희들은 감사를 드려야 되겠사옵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 조롱을 당하더라도 하늘에 있는 선지선열들과 우리의 조상들 앞에 환영받는다는 것에 대해 감사드려야 되겠사옵니다.

역사상에 한 때밖에 없는 이 엄청난 분야를 책임진 그 가치를 마음으로 흠모하면서, 내가 이렇게 처량한 자리에서 처량한 행로를 가면서 뭇사람의 주목의 대상이 되면서도, 하루의 생활을 엮어가면서도 허락하신 이 기간 동안 마음으로 다짐하고 정성들이는 자녀들 위에 당신의 후덕이 넘쳐 흐르게 하시옵소서.

제가 찾아오던 노정 위에 당신이 권고하셨듯이, 당신의 풍부한 사랑으로 안위하셨듯이 그들 앞에도 그런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저들이 부끄러움이 있는 해와의 정욕을 망각해 버리고 소망과 희망 가운데에서 내일을 다짐할 수 있는 해방된 딸의 모습을 갖추어 민족 앞에 굳세고 강하고 담대하게 하시어서 맡겨진 책임 수행에 전심전력하게 하여주시옵소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사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있사옵기에 아버지와 먼저 인연맺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분부한 말씀의 내용을 알고, 자기의 일신을 망각하면서 민족을 미칠듯이 사랑하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한정된 한날을 아버지 앞에 무한한 가치의 영광으로 수놓아 바쳐드릴 수 있는 거룩한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훗날에 할 말을 하고, 보람있는 삶을 갖추기 위해 가야 할 운명길이기에, 그 누구에게도 이것을 넘겨 줄 수 없는 오늘의 통일교단의 사명인 것을 절감하옵기에, 이들이 지키고 있는 이 자리를 아버지께서 직시하시사, 고요히 인연맺은 그 인연을 영원히 이들과 더불어 남기시옵고, 영원히 이들과 더불어 같이하시옵소서. 승리의 결과를 이 불쌍한 무리들과 더불어 맞이할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에도 외로운 자기의 사정을 살펴가면서 이 본부를 향하여 기도하고 있는 무리가 많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그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 앞에 제사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제단을 지키고, 거룩한 지성소를 옹위하며 하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간곡히 고대하는 정성어린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해외에 널려 있는 뭇자녀들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의 소망의 천국 앞에 부끄러움이 없게 하여 주시옵고 민족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온갖 정력을 다 기울이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 시간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70년도가 기울어져 가는 오늘 이 거룩한 날을 지키기 위하여 참석한 자들 위에 만복이 깃들게 하여 주시옵고, 이날을 자랑할 수 있는 날로서 그들과 더불어 인연맺어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36-281
말 씀
사람들은 흔히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자기는 선하고 참되다고 인정하는 자리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느끼게 됩니다.

36-282
좋은 것과 관계맺으려 하는 인간
좋은 일이 있으면 자기가 앞장서려 하고, 기쁜 일이 있어도 그러합니다. 혹은 어떤 무한한 가치의 내용이 있다 할 때도 자기와 먼저 인연을 맺고자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성품입니다. 여기에서 과연 그 좋아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 있느냐 반문하여 볼 때, 그 어느 누구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 있다 하더라도 그 좋은 환경을 찬양하기 전에 먼저 그 환경이 자기와 얼마나 관계맺어져 있느냐를 생각하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환경이 자기와 더불어 인연되고, 그 환경이 자기와 더불어 결과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환경이 좋으면 좋을수록, 그 환경이 영원하면 영원할수록 자기와 인연맺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인간은 자기 개체를 중심삼고 엮어 나가는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자신이 어찌하여 스스로 이와 같은 자리에 서게 되었느냐? 생각도 하지 않고 무료함도 느끼지 않고 비판도 하기 전에 스스로 그렇게 당당하게 나서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이것은 본래 인간이 그런 자리에 있어야 된다는 것을 그 마음이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것이 있다면 자기가 그것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싶어합니다. 만명이면 만명 모두가 그것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고, 30억 인류가 있으면 30억 인류가 그 하나밖에 없는 귀한 것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30억 인류가 그 하나를 그리워하고, 그 하나의 가치 앞에 집약되고자 하는 이런 마음 바탕을 가졌다 할진대는 오늘날 30억 인류가 그것을 가지려면 그 하나를 놓고 투쟁의 행로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생활권을 냉정히 직시해 볼 때, 이 무한한 가치의 것을 지니려면 수천 수만의 군상과, 혹은 인류 전체와 투쟁하여 승리해야만 된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오늘날 우리가 최고의 가치 있는 그 하나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 마음의 바탕, 본성 그 자체는 모순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36-283
어떻게 가치있는 것을 만민이 공유하게 할 것인가가 문제
만민이 그런 가치 있는 것을 공히 가질 수 있게 되어 있다면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이것을 연결시킬 수 있느냐? 그것과 관계를 맺어 무한한 나의 소유물로서, 무한한 나의 인연을 찬양하는 것으로서 남길 수 있느냐? 뿐만 아니라 그것을 내 것만으로서가 아니고 만민의 것으로 돌릴수 있는 보다 가치 있는 내용을 자극시킬 수 있는 환경권을 어떻게 갖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나를 중심삼은 욕망의 기준과 절대적인 가치의 선한 것을 중심삼고 만민이 기뻐하면서 갖기를 바라는 기준과는 그 방향이 다르고 입장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중의 어느 하나를 규명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누구든지 무한한 가치를 지닌 것을 갖고 싶어하는데, 그 마음은 나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서 갖는 마음이 아니고 만민이 본성적으로 갖고 나온 마음임에 틀림없을진대는 그 마음으로 찾아나가는 가치의 그 길, 가치 있는 내용을 대하는데 있어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환경과 대할 수 있는 그때의 환경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좋은 것도 나를 중심삼고 시작하여 끝을 맺고 기쁜 것도 나를 중심삼고 시작하고 끝을 맺고자 한다면 이 우주에 귀하고 참되고 가치 있는 내용이 있다할진대 여기에 나 외에는 같이 참여하기를 부정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 각자의 마음이 요구하는, 나를 중심삼고 전체의 가치를 추구하고 인연맺고자 하는 그 자체가 모순이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보편화시키고 일반적인 가치의 내용으로 드높이 찬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어떠한 입장에서건 이 내용을 결정짓지 않고는 해결방안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타락한 인간이 자기 생리와 생태를 중심삼은 모습을 가지고 그 가치를 추구했다 할진대 그 사람은 역사상에 없는 최고의 모순된 환경에 돌입될 것입니다.

그러면 만민이 공히 그와 같이 무한한 가치의 것을 내 것으로 지니고 그 가치의 기준으로서 상속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냐? 현재의 우리 자신을 중심삼고 있는 이런 인연을 통하여 최고의 절대적인 가치의 것은 하나밖에 없을 것이니 이 하나밖에 없는 가치의 것 앞에 내가 연결될 때, 상충이 없는 전체의 가치인 동시에 개체의 가치로서 찬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길이 있어야 될 것이어늘 그 길이 도대체 무엇이냐? 이것이 문제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여러분은 자신을 망각하기 쉬운 입장에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나라는 개체는 독자적으로 태어날 수 없는 것이요, 계승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라는 존재는 부모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나 살고 있고,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은 그 누가 1세기 이상 살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더라도 1세기 이내에 생의 종말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는 1세기로서 끝을 맺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이 역사를 연장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반드시 계대 문제가 벌어집니다. 즉, 상속 문제, 계승자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나 대신 나보자 더 빛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내용으로 계승할 수 있는 상속자가 있어야만,그 인격을 중심삼고 내일의 소망의 세계, 내일의 절대적인 가치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내가 미래에 가치적인 내용을 계승해 주지 못하고, 나 자신의 가치를 감퇴시키고 희생시키는 입장에 선다면 현실이 그를 거부하고 그의 갈 길을 막는 것입니다.

36-284
미래의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사람
그러면 미래의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전체의 이익을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현시대권내에서 소모시키는 입장에 선 사람을 미래의 세계가 환영하겠느냐? 이런 사람은 절대 환영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가치적인 것을 오늘에 고착시키는 것보다도 미래의 것으로 남겨주고자 하는 데서만이 미래의 가치적인 것과 우리가 더 가까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늘보다도 내일 앞에 가치적인 내용을 플러스시켜야 됩니다. 그 길만이 절대적인 소망의 세계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에 처해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들은 자기도 모르게 선하기를 바라고, 자기도 모르게 좋은 것을 흠모하고, 가치 있는 것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가치 있고 좋은 것이 나와 그냥 그대로 관계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거기에 대비되는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만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나쁜 것은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연결되지만 좋은 것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냥 흘러가 버리거나 어떤 사람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그런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필요한 대가를 치러야만 연결되고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대가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둘도 없는 생명력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생명을 지닌 인간이 추구하는 고귀한 가치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상대가 되는 존재입니다. 그 상대되는 존재와 인연 맺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할 때 이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고귀한 생명과 고귀한 사랑의 내용을 심고 투입하는 자만이 만민이 공히 취할 수 있는 내일의 절대적인 행복의 가치권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외의 길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36-285
생명의 귀착점
오늘날 선한 사람, 선의 길을 가는 사람, 영원하고도 무한한 그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생명과 인연된 세계, 절대적인 사랑과 인연된 세계를 흠모하며 다짐하는 사람은 현재 생활권내에서 자기 생명력을 미래를 위하여 투입할 수 있고, 그 생명과 더불어 자기의 사랑 전체를 미래를 위하여 투입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보다 가치 있는 상속권이 넓혀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품고 새로운 이념을 추구해 나온 사람들을 보면, 자기의 생명력을 소모시키고자 자기가 지녀야 할 사랑의 모든 요소를 소모시키면서 그런 일을 해 나왔습니다. 이러한 사람들만이 역사를 계승하여 상속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태어난 그때가 봄날이고 자라는 그때가 여름날인 것입니다. 내리는 비는 생명을 촉구하게 되고, 내리쬐는 태양은 생명의 요소를 흡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불어오는 바람은 청신한 내일을 약속해 주는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선한 환경에 존재하여 있고 거기에 관계되어 있는 일체의 내용은 인간에게 상충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을 촉진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이와 같이 비참한 자리에서 우리 자체의 소모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소모되는 우리 자체의 소모로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체에 보탬이 되는 것이요, 자체의 발전과 성장에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절대적인 선과 관계를 맺으려면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권내에 접하여 있고 타락의 운명권내에 얽매어 있는 연고로 불가피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생애 노정에서 좋은 것과 관계맺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과 관계맺으려면, 현재 자기의 모습 그대로를 찬양하고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는 마음이 원해서 관계맺고자 하는 것과 몸이 원해서 관계 맺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실 때 절대적인 목적을 갖고 지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우리 인간들도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이것을 보게 될 때, 오늘 우리 인간 자체 내에 각기 다른 두 개의 목적을 추구하는 몸과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모순된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로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기 때문에 그 분이 지은 피조물도 하나의 목적을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의 목적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라면 하나의 목적에 인연을 맺고 일체가 그 목적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내 개체에 있어서 제일 가까운 몸과 마음의 상충이 웬말이냐? 이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이 찾아가는 목적의 귀착점, 생명과 더불어 영원히 같이하여야 할 하나밖에 없는 사랑의 귀착점은 반드시 하나의 목적권내에서야만 이루어지는 것이지 두 목적권내에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절대적이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자체 내에 상대적인 권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는 절대적인 가치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절대적 가치를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출발의 기점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참을 찾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내가 참을 뚜렷이 의식하고 그것을 부정할 수 없으며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인식이라든가 자극을 통해 그것이 나의 생활에 끊임없이 인연되기를 바란다면 현재 내가 처해 있는 자리를 정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부모의 혈육을 받아 태어나 살고 있는 국가나 혹은 세계에 있어서 그냥 그대로는 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참을 찾기 위해서는 어느 한계점을 세워 가지고 반드시 부정이라든가 긍정이라든가 판가름을 해야 합니다. 이자택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건 불가피한 일입니다.

36-287
선의 주체
여기에서 마음이 선한지 몸이 선한지 알 수 없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몸을 중심삼고 마음을 부정할 수는 있지만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내가 잘 했느냐 못 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양심의 가책을 받느냐 안 받느냐,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느냐 없느냐 하고 스스로 묻게 될 때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내 양심의 가책을 안 받는다고 할 때는 당당합니다. 천하가 뭐라 하더라도 굽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어떤 최고의 위협적인 존재가 내게 직접 부딪친다 하더라도 거기에 굴하지 않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없을 때에는 무한히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 무한한 한계점은 어느 권까지 갈 수 있느냐? 대한민국의 어떤 중심 존재가 부정하라고 해서 ‘예’ 라고 할 수 있느냐? 아닙니다. 세계의 어떤 중심존재라가 부정하라고 해도 ‘예’ 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천지의 중심존재가 부정하라고 하더라도 ‘예’ 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러더라도 ‘아니오’라고 하게 됩니다. 하나님보다도 더 높은 분이 있다고 하면 그분 앞에 가서도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그 권은 절대적입니다.

마음이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아버지든 선생님이든 어느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토벌해 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거기에 반하고 나서면 이놈들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도 이놈이요, 스승도 이놈이 되는 것입니다. 모두 이기려고 합니다.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순수한 자리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거기에는 절대적인 권한이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내재되어 있는 권한이 찾고 있는 가치는 어떠한 가치일 것이냐?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그러한 사연을 가질 수 있는 바탕이 내 몸이냐, 마음이냐 묻게 될 때 몸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중심이냐? 그것은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친구라고 하는 것은 양심적이기 때문에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친구가 미인이기 때문에, 미남이기 때문에 좋다고 하는 사람 있어요? 양심적이기 때문에, 순수하기 때문에, 희생적이기 때문에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다고 할 수 있는 바탕, 혹은 그 내용이 무엇이냐? 순수하고, 솔직하고, 거짓이 없고, 희생적이기 때문에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만하고, 자기만을 위하고, 강압적이고, 개인주의적이기 때문에 좋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친구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달게 받기 때문에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사실은 사람에게 교육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대학교의 교양이니 뭐니 하는 것들 다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양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할 때는 ‘야, 너 왜 나쁜 일을 하니’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됩니다. 그 이상의 교육이 있습니까? 본래는 교육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세계의 끝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부터 해결됩니다. 여러분의 생활권내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백 퍼센트 구비되어 있고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36-289
좋은 것을 남기려 하고 상속받으려 하는 인간
그러면 좋은 것은 어떻게 하고 싶느냐? 좋은 것은 집어 던지고 나쁜 것을 남겨 두고 싶어하는 사람 있습니까? 이런 녀석은 때려잡아도 됩니다. 몹쓸 녀석입니다. 여기에 아무리 못났다 하더라도 ‘좋은 것은 집어 던지고 나쁜 것은 남겨야지’ 하는 사람 있어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이 자연적으로 나옵니다.

영원한 것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남기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이것을 남겼다가 누구한테 주고 싶어하느냐? 자기 사랑하는 아들에게 남겨 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은 또 누구한테 주고 싶으냐? 역시 사랑하는 아들한테 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 그것은 세계적인 보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인간은 제일 좋은 것을 남기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이 뭐냐 할 때, ‘금덩이요’ 한다면 그것을 남기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금덩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사랑을 중심삼은 생명체입니다. 그러면 나에게 있어서 사랑을 중심삼은 생명체가 뭐냐 할 때, 이 관계가 제일 귀하다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볼 때, ‘나’는 어디에서 왔느냐? 그냥 날아온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가 있기 때문에 자식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과거를 상징하는 것이요, 나는 현재를 상징하는 것이요, 자식은 미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선에서 상봉하는 그 초점, 그것을 규합시키고 연결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누구냐? 그것이 오늘의 ‘나’라는 것입니다. 나는 과거 없이 생겨날 수 없는 것이요, 미래 없이 존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누구나 역사적인 가치를 상속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좋은 골동품이 있으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국보 제1호인 남대문은 누구의 것이냐? 대한민국의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것은 곧 누구의 것이냐 하면, 내 것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내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나 혼자 살고 있다고 할 때는 내 것이라는 실감이 날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국보 제1호인 남대문은 누구로부터 시작되느냐? 나 하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곧 ‘나’라고 할진대 그 국보는 대한민국의 것인 동시에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관리하는 데에 있어서도 나 혼자만 관리하면 좋을 텐데 삼천만이 관리하니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관리를 못 합니다. 국보 전체를 자기 혼자서 관리할 수 있어요? 전체가 협력해서 관리해야 됩니다. 좋은 것은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36-290
부모의 사랑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
좋은 것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선전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선전하고 싶다는 것은 뭐냐? 관계를 맺어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선전이나 자랑은 왜 하느냐 하면 너도 이와 같은 관계를 맺어라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좋은 것은 무엇이냐? 부모가 제일 좋고, 그 다음은 나이며, 그 다음에는 자식입니다. 이렇게 해서 역사는 계승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집약된 것이 무엇이냐? 즉, 우리의 생명을 연결시키고 생명에 연결된 그 환경을 중심삼고 사랑의 이념이 꽃필 수 있는 그런 환경의 터전이 무엇이냐? 이것이 가정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자식은 ‘어머니는 영원히 내 것이다’ 합니다. 그 어머니는 자식에게 자기의 피살을 나누어 주면서 좋아합니다. 이것을 볼 때 좋은 것은 뭐냐?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친구가 좋다 하는 것도 곧 희생하기 때문입니다. 남한테 주면서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남을 위해 희생하면서 자기에게 제일 귀한 것을 주고도 더 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주고 나서 그것을 다시 받겠다고 하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주면서도 너무 적어 부끄러움을 느끼며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자식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사랑은 다릅니다. 부모는 주면서도 더 좋은 것을 못 주어서 한이고, 자식은 ‘나는 효자다’ 하면서 만족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과 자녀의 사랑이 다르다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했는데 엄마 아빠는 뭐했어요?’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라는 한계선을 못 넘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모의 사랑은 자기라는 한계선을 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무슨 사랑인가? 이 사랑이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내용이 인간 앞에 나타난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부모를 중심삼고 생각해 볼 때, 부모보다 나아야 됩니다. 우리 부모는 자식만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은 세계 인류를 전부다 부모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사랑하신다는 거에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 아버지는 나만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은 만민을 나와 같이 사랑하시는 어머니 아버지 이상의 자리에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할 때, 천년 만년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을 끊임없이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지, 주고 나서 ‘야, 요거 몇냥 몇전이다’라고 하시는 장사꾼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습니다.

만민은 왜 하나님을 좋아하면서 따라가야 하느냐? 하나님을 왜 좋아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은 만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주시고 또 주시면서도 부끄러워하시며 ‘지금은 이것밖에 안 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야, 몇백 배 몇천 배 더 좋은 것을 줄 터이니…’ 하시면서 오늘 현재에 주신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면서도 미래에 더 좋은 것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시며 주실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과 더불어 있으면 비록 못먹고 못살더라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못먹는 자리에 들어간다면 미래의 소망된 자극이 현실권 내에서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도리어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면서도 부끄러워하는 자리, 그런 부모를 가진 자식이 ‘엄마’하고 끌어안게 되면 몸만 끌어안겠습니까?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그 자리는 미래를 위해 서로 위로의 눈물을 같이 흘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절망이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을 현재의 자극으로 여기고 서로 결의하고, 서로가 맞부딪쳐 가지고 격려할 수 있는 폭발적인 자리가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자극을 끌어들여 가지고 현실권내에서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자리는 그러한 사랑권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권내에 사는 사람은 불행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36-292
추수할 수 있는 사람
그러면 예수님이 만민 앞에 메시아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오셨는데 그러한 분은 어떤 분이냐? 깍쟁이 메시아는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도 메시아가 못 되는데 그 어머니 아버지보다 못한 그런 메시아는 필요없다는 거예요. 부모보다 높아야 합니다.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뭐냐? 자기 생명을 희생해 가면서 천년 만년 복을 빌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만민의 메시아가 못 됩니다. 그런 내용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기 직전에 원수를 위하여 눈물로써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부모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불한당 같은 자식, 최고의 형을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하는 자식이라도 부모의 마음은 천번 만번 용서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는 용서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불한당 같은 자식이 절망 가운데서 회개와 더불어 회생할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법이 있어서 그렇지, 부모와 자식간에는 용서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통이 되었다면, 그러한 사랑권내에서 그런 사랑을 알고 자란 자식이 불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 불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인연을 가진 부모의 품에서 자라난 자식이 부모 앞에 복종할 수 없는 것이요, 형제간에도 화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참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아까 말한 것처럼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현재의 자기가 소모되는 것을 보고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소모되는 자신은 소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수확의 동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뿌리는 것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추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자기 일신을 던져야 됩니다. 일신을 뿌리라는 것입니다. 순수하게 뿌리라는 것입니다. 뿌리는 그 자체가 희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 자체는 씨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자기 부정입니다. 원만하게 자기를 부정해 나간다면 긍정의 새로운 생명력이 발생해 가지고 내일의 수확을 다짐하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사람은 자기를 위주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자기 위주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은 전체를 위주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 전체의 한계점이 어디냐? 대한민국이냐? 대한민국을 훨씬 넘는 것입니다. 그럼 세계적이냐? 세계도 훨씬 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세계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36-293
좋은 사람은 희생하는 사람
사상가라든가 위인이라든가 성인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만약에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오 만민이여! 우리 나라의 주장을 들으라’하고 주장하는 사람은 국수적인 나라는 창건했을는지 모르지만 세계 앞에는 공언을 못합니다. 성인의 반열에 동참했다는 사람들은 적어도 세계적인 내용을 가지고 주장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성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인 중의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그는 세계적인 것보다도 더 큰 것입니다. 이 땅만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을 개재시킨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지도자나 종교의 도주들이 성인의 왕좌에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도 그렇고, 석가도 그렇고, 공자도 그렇고, 마호메트도 그렇습니다.

최고의 가치를 지닌 성인은 어떠해냐 되느냐? 막연하게 하나님만 소개해서는 안 됩니다. 하늘이 어떻다는 것을 소개해야 됩니다. 하늘 사람이 어떠하고, 하늘의 물질이 어떻고, 하늘의 조직이 어떻다는 것을 세밀히 소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생활권, 하늘의 생애권, 하늘의 국가권, 하늘의 세계권이 어떻다는 것을 소개야 되는 것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세계는 자기를 위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좋아할 수 있는 내용을 위주한 세계입니다. 그런 세계는 자기 위주한 세계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사람은 본래 자기를 위하여 태어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좋은 것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나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좋아하는 내용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개인이 위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강압적인 탈취 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은 자기와는 관계없이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희생은 생리적인 요구와는 반대로 전부 부정하는 데에서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뭘 말하는 것이냐? 좋은 것은 나를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하느냐? 남을 중심삼는데, 백년 동안 살고 마는 그런 것을 위주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아질 수 잇는 것을 위주하는 것입니다.

그 영원이 뭐냐? 나라는 망하더라도 세계는 남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주의가 국가주의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보다 큰 것이 보다 오래 남아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은 하되 대한민국 사람끼리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만민을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세계 만민이 같이 살자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종교인들이 한 가지 발견 못 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천당가자’하는 그 목적은 큰 것인데 그 내용은 개인주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천당가자 할 때, 예수님이 개인을 위주하여 찾아옵니까? 예수님의 목적은 세계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세계권내에 나라가 있고 나라권내에 종족이 있고 개인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했지 그 사람과 그 생활을 구하라 했습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은 모두가 목적은 크고 먼데에 두었는데 내용은 전부 다 개인적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천국 가기 전에 세계 만민을 천국에 보내고 가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종교가 망하겠습니까? 내가 잘되기 전에 자식을 잘되게 만들고 나중에 내가 잘 되어야 되겠다 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내가 천국 가기 전에 세계 만민을 천국에 보내겠다고 해야 됩니다.

내가 잘되기 전에 나라를 잘되게 만들고 죽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애국자이지요? 내가 고생하더라도 부모를 편안한 길로 가시게 해야 겠다고 하는 것이 효자의 길입니다. 나는 희생하더라도 남편을 위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은 열녀의 길입니다. 그러면 열녀의 길은 뭐냐? 열남이라는 말은 없지요? 이것을 보면 한국말이 계시적입니다. 여자가 잘못하여 여자가 먼저 책임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자가 책임을 다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남자가 해야 할 책임이 남는 것입니다. 이 열남 주의는 통일교회 시대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야 여편네야, 너는 나를 위해서 태어났지’ 하는 사내 녀석들은 다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36-295
세계를 통일하려면
자기를 절대시하는 데에 선이 존속할 수 있느냐? 존속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절대시하면 전부 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더 큰 것을 절대시하는 데에 선이 달려드는 것입니다. 사적인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선이 도망가면 악밖에 남지 않으니 심판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적인 것을 주장하면 흥합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적인 것을 주장하면 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적인 나는 공적인 것 앞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흡수되라는 것입니다. 개인보다도 가정이 더 공적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라, 부모를 사랑하라 하는 것입니다. 네 몸 바쳐서 사랑하라 하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자기 집안을 위해서 돈을 벌고 자기 집안을 위해서 출세도 합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 형제를 위해서 출세하는 것보다도 종족을 위해서 출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앞으로 대한민국을 움직일 수 있는 종족은 어떠한 종족이냐? 그 문중에서 아무개 머리가 좋다 하게 되면 문중회의를 열어서 자기 아들보다도 그 아이를 공부시키자 하는 결단된 종족이 나오면 그 종족은 대한민국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이론은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운동이 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그래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통일교인만 위하고 통일교회만 제일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제일인 동시에 기성종교도 제일이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형제는 같은 사랑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김씨면 김씨만 위주하면 되겠습니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가운데에서 자기 아들보다 더 훌륭한 아들이 있으면 데려다가 자기 아들딸보다 더 사랑해 주고 공부시킬 때, 그 종족은 대한민국의 내적인 종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종교로 말하면, 통일교회가 앞으로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오색의 인류를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데는 개인을 희생시켜서 종족을 사랑하고, 종족을 희생시켜서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희생시켜서 국가를 사랑하고, 국가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사랑하고, 세계를 희생시켜서 하늘땅을 사랑할 수 있느냐? 철두철미하게 그럴 수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으면 이런 운동은 세계적으로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천주주의라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새로운 말을 많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천주주의라는 것은 세계를 하나의 집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집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머니입니다. 그 다음에 형제가 있어야 됩니다. 부모는 천지(天地)이고, 형제는 인(人)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의 가는 방향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36-297
생활철학의 근본
선생님도 나 자신을 위해서 움직이면 망하게 됩니다. 밥을 먹는 데 있어서도 나를 위해서 먹으면 망하게 되고, 보는 데 있어서도 나를 위해서 보면 망하게 됩니다. 냄새를 맡는 것도 나를 위해서 맡으면 망하게 되고, 듣는 것도 나를 위해서 들으면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위하여, 보다 공적인 것을 위해서 보고 듣고 냄새맡아야 하는 것입니다. 보는 데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즉, 사적으로 보느냐 공적으로 보느냐? 냄새를 맡는 데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공적인 냄새를 맡느냐 사적인 냄새를 맡느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몸과 마음이 두 목적을 지향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하나를 부정해야 됩니다. 절대적인 하나의 긍정의 가치를 추구해 나가려면 반드시 하나를 없애야 합니다.

그러면 이 몸과 마음 둘 중에 어느 것이 사적입니까? 「몸입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마음은 나누어 먹으라고 하는데, 몸은 눈감고 먹는 거야 하면서 깨물어 버리고는 깨물었으니 할 수 없고 하는 조건을 걸어 가지고 그냥 먹어버리는 것입니다.(웃음) 이것이 생활철학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마음은 이렇게 좋은 것을 원하는데, 몸은 왜 그렇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다하고, 그 생명과 관계된 사랑을 하게 되면 되어 있습니다.

참은 세계의 끄트머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참을 찾기는 뭘 찾아요? 다 있는 것입니다. 개발하면 되는 것입니다. 참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대학 교수가 다 필요없습니다. 사실 통일교회도 필요없는 거예요. 여러분이 나를 따르면서 선생님 선생님하고 부르지만, 나보다도 여러분이 더 잘 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런 것은 마음이 다 아는 것입니다.

내가 옳은가, 그른가 하는 것은 3분도 안 걸려서 다 알게 됩니다. 벌써 판결이 다 끝났는데 공판이 무슨 필요가 있어요? 내가 아는 것을 다 이야기해 주고 일면을 다 보여주고 누가 옳느냐 할 때 나 자신이 안다는 것입니다. 압니까, 모릅니까? 좋은 녀석인지 나쁜 녀석인지 알아요, 몰라요? 「압니다」 안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알면서 사기치지 말라 이겁니다. 이놈의 사기꾼들. 사기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까딱하면 사기꾼, 도둑놈이 뛰쳐 나오고 까딱하면 성인, 성자가 뛰쳐 나옵니다. 왈카닥 왈카닥, 여러분이 이 놀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6-298
위하는 인생은 망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참을 찾아서 출발해야 되겠습니다. 참을 찾아 가야 되겠지요? 남들 다 잘 자는 새벽에 모여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잘 되려고 이 놀음하는 거예요, 못 되려고 이 놀음하는 거예요? 잘 되려고 이러는 것입니다. 이것은 희생이요 소모입니다. 소모 중에도 이런 소모는 없는 것이라구요. 남들은 단꿈을 꾸면서 자고 있을 시간에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나옵니까? 청파동 여기까지 올라오기도 힘이 들 텐데 무엇 때문에 모여드느냐? 왜그러느냐? 이것이 모두 소모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소모하느냐 하면 나라를 위해서 소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서 소모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정성들이는 데에 있어서도 내일의 나라를 위해서, 내일의 세계를 위해서, 내일의 천국을 위해서 정성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선생님인 내가 50평생을 그렇게 했는데, ‘아이구 분해라, 아이구 분해라, 아이구 원통해라’ 그러겠어요? 나는 지금 몸뚱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아이구 분해라, 통일교 믿고 병신만 되었구만’ 하는 사람은 병신이 되게끔 외롭게 지내 왔기 때문에 병신이 된 것입니다. 주고 나서도 더 못 주어서 눈물을 흘리고, 앞으로 보고 뒷동산을 바라보면서 ‘저것이 내 살과 같고 피와 같으면 삼천만 민족에게 실컷 줄 텐데, 그럴 수 있는 피와 살을 갖지 못한 것이 한스럽구나’ 하면서 주고 나서도 탄식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망하려고 해도 망하지 않고, 죽을 병에 걸려도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을 보면 ‘꽃다운 청춘시절 다 넘기고 이게 뭐야? 스물 다섯, 스물 여섯, 스물 일곱만 넘으면 올드 미스로 들어가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3년 이상 지나지 않으면 축복을 못 받는다 해서 스물 네 살 때 들어 왔으니 아이구 스물 일곱 살! 이렇게 자기만 생각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서른 살이면 어떻고 마흔 살이면 어떠냐? 내 꽃다운 청춘을 이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면 죽어도 한이 없다. 더 못 주는 것이 한이다’ 해야 합니다. 이러는 사람의 후손은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통일교회 선생을 대한민국 사람이 전부다 욕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무엇 때문에 선생님을 따라가려고 합니까? 그런 점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뚜렷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통일주의는 무엇이냐? 삼천만 민족에게 이 통일사상을 심어주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망하더라도 세계를 위해 심자고 하는 것이 통일주의입니다. 이것이 망할 주의인지 흥할 주의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망할 주의입니까, 흥할 주의입니까? 흥할 주의입니다. 앞으로 이상국가를 창건할 수 있는 국민으로 만들려면 어떠한 사상을 지니게 해야 하느냐? 통일주의입니다. 그래야 세계의 것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해서….

둘 중에서 더 좋은 것 하나를 갖기 위해서는 나쁜 것 하나는 집어던지게 되지요? 같은 것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바꿔 가집니다. ‘가정을 가질래, 나라를 가질래?’ 하면 미욱한 사람들은 ‘어이쿠, 가정을 가지지. 내 가정을 가지지’ 그럽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라에도 그 안에 가정이 몇만 개 들어가 있습니다. 또 ‘세계를 가질래, 나라를 가질래’ 할 때 ‘우리 나라가 제일이니 나라를 갖지’하면 ‘이 미욱한 자식아! 생각 부족한 자식아! 세계 가운데에는 대한민국이 몇백 개도 들어갈 수 있다’하고 꾸짖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장삿속이라는 것입니다. 장사 중에도 그런 장삿속이 없다는 것입니다. (웃음) 장사꾼들은 이익을 남기면 좋아합니다. 여기 오면 매일 천 원씩 준다면 행렬을 지어서 올 것입니다. 아마 ‘통일교회 가자’ 하면서 청량리 끝에서부터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다 장삿속입니다. 이런 말을 해서 안 됐지만 별것 아닌 거예요.

종교를 갖는 것도 장삿속인데, 그 장사라는 것이 혼자 잘살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사해서 돈 벌면 같이 잘살자는 것입니다. 황인, 백인, 흑인 할 것 없이 모두 합하여 합동 주식회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서로가 ‘황인도 좋다. 흑인도 좋다. 백인도 좋다’할 수 있는 주식회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주식회사가 다 같을 수 있습니까? 사람의 얼굴이 다 같습니까? 얼굴은 다르지만 내용은 하나의 결정체입니다. 이 정도 설명했으면 이제 다 알 것입니다.

36-300
내 속에 있는 삼팔선을 무너뜨려야
그러면 참을 찾아서 가야 하는데, 참이 어디에 있느냐? 참이 대관절 어디 있느냐? 어디 있긴 어디 있어요. 내 속에 있지요.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데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나는 부패하지 않았는데 사회가 악하고 대한민국이 부패했다고 규탄한다고 데모를 하는데 자기네들은 부패 안 했습니까? 이놈의 자식들. 전부다 반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데모부터 먼저 해야 됩니다, 자기 데모. 지금처럼 데모한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잘되고 세계가 잘될 것 같아요? 끄덕끄덕하다가는 공산당의 코에 걸려서 그들의 선전에 놀아나 자기도 모르게 함정에 빠져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이 어디에 있느냐 할 때 상대적 세계는 문제 되지 않습니다. 내 속에 있는 참과 거짓의 삼팔선이 문제입니다. 내 속의 삼팔선을 무너뜨리고 해방되어 노래를 부를 때, 대한민국의 삼팔선이 트여 나가는 이상의 기쁨을 노래할 수 있는 주인이 못 되어 가지고는 삼팔선을 쳐부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 속에서 솟구쳐 나오는 해방의 소리가 어떠한 원수의 장벽도 무너뜨리고 남을 수 있는 의기충천한 해방의 권위를 가지고 나타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해방을 찬양할 수 있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삼팔선 해방은 맞이할 수 없으며, 더 큰 삼팔선만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은 자기를 위주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생활철학입니다. 좋은 것이 나타나면 그것은 원수입니다. 그것은 나를 걸기 위한 미끼라는 것입니다. 누가 좋은 것을 가지고 나타날 때’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을 통일교회의 것으로, 대한민국의 것으로, 세계의 것으로 남길 수가 없다’하게 될 때는 예외가 없이 망하는 것입니다. 세계든 나라든 뭐든지 다 내것이라고 하면 망합니다. 망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가만 두어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세계의 것으로 할 때는 가만 두어도 흥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병패가 무엇이냐? 여러분의 사상적인 기원이 자기를 위주로 하는 통일교회관을 꿈꾸는 사람은 통일교회의 원수입니다. 본질적으로 틀렸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고 나서 ‘왜 나를 몰라주느냐? 갑은 저렇게 해 놓고 난 이렇게 해 놓았는데, 나에겐 왜 이렇게밖에 해 주지 않느냐?’ 하고 따지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큰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큰 사람은 일하고 나서도 칭찬해 줄까봐 두려워서 그 자리를 피해 가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도망가는 사람이 있으면 잡으라는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도둑질을 하고 도망가는 것이나 좋은 일을 하고 칭찬받을까 두려워서 도망가는 것이나 도망가는 것은 둘 다 같습니다. 그런 사람 잡으라는 명령도 같습니다. 그러나 내용이 같습니까? 서로 극과 극입니다. 하나는 망하는 것이요, 하나는 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이런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예수를 사랑하고 어떻게 하는데 그런 많은 것이 필요없습니다. 여러분의 생활환경에서 이 경계선이 문제입니다. 이 경계선에는 하늘이 왔다갔다합니다. 경계선 이쪽으로 가면 성인의 길이요, 그 반대쪽으로 가면 망인의 길입니다. 악당이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그런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곤두박질치는 것입니다. 여지없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옳은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하는 기도의 내용이 뭐냐? 밥을 먹더라도 어제 먹은 밥보다도 오늘 아침에 먹는 밥이 더 가치 있기를 바랍니다. 밥에게 그렇게 물으면 그렇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먹는 사람이 히죽 웃으면 밥도 기분이 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좋아하면 밥도 좋거든요. 만물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시계를 두고 보더라도 이왕 채워지려면 대통령이나 성인의 손에 채워지고 싶지, 살인 강도의 손에 채워지고 싶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같으면 어떨 것 같아요? 살인 강도의 손에 채워지면 아침 저녁으로 얼마나 소름이 돋겠습니까? 시계가 살아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섬뜩하겠어요? 찬 물건에 뜨거운 열이 닿으면 폭발되는 것입니다. 찬 것이 따뜻한 것에 들어가면 파고 들어가 뜨거워집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은사에 잠겨 있으면 세상에 원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만물이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36-302
참을 추구하는 목적
자, 그러면 결론을 지읍시다.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참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모든 사람이 좋은 것을 바라는 것은 틀림없는데, 세계 최고의 가치, 절대적인 가치의 것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오직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예요.

여러분 마음은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좋은 것은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 나쁜 것이냐?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금 전에 말한 것과 다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부정 선상을 거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여러분들의 세계니 무슨 나라니 하는 것이 없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그 가정이 세계적인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가정이 나라의 출발점이요, 종족의 출발점이요, 개인완성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권내로 이것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무슨 후진국이니 선진국이니 수작들을 하는 것입니다. 선진국이면 다 선진국이 되어야지 후진국이 있을 게 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타락하지 않았으면 이미 통일된 세계입니다. 이미 이와 같은 세상에 꽉 잠겨 있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교육과 전통이 이렇게 되어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선을 지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이 생활의 바탕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본래의 바탕을 잃어버리고 타락의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고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정과 긍정의 교차로에 서 있는 존재는 처량한 존재입니다. 이런 세계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침에는 부정이요 저녁에는 긍정, 이렇게 돌아가다가는 바꿔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그렇지 않아요? 이랬다 저랬다한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그거 왜 그래요? 이게 한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탈피해야 되기 때문에 참을 추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절대적이고 유일한 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길을 찾아 나간다는 것입니다.

36-303
부모의 사랑을 가져야 세계를 통일할 수 있다
그 본성의 마음은 절대적인 가치의 것은 전부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내 것 만들어 가지고 발길로 차 버리고 천대하자는 것이냐? 내것 만들어 가지고 미워하고 시기하자는 것이냐? 아닙니다. 내 것 만들어서나 혼자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으니 모든 사람이 붙들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전부가 붙들고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도 큰일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놓은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 사랑 단지를 가져다가 풀어 놓았다는 거예요. 그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사랑이 아니고는 화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끈을 만들어 가지고 전부다 여기에 취하면 맞붙게 되는 것입니다. 좋아한다는 거예요. 이것이 없으면 전부다 타관을 좋아하게 되지요? 그렇지만 사랑줄을 만나면 끈을 달아 가지고 좋아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만민은 이것으로 인해서 통일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타관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자식들은 그 부모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까, 만들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통일된 사랑의 경지, 그 사랑이 무엇이냐?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경지는 어떠하냐? 주고도 또 주고 싶고, 주고도 그것이 적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랑입니다. 여기에 화할 수 있는 세계적인 가정이 생기면 천국이 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제를 나라와 바꿀 수 있느냐? 고독단신, 8대독자라 할 때 병신 여동생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안 좋겠어요? 병신 중에서도 눈도 없고 코까지 전부다 병신이라고 할 때 그렇다고 해서 그 8대독자가 나는 ‘병신 동생 필요없다. 차라리 고독단신이 낫다’고 그러겠습니까? 없는 것보다는 병신 동생이라도 있는 게 나아요, 안 나아요? 낫다는 것입니다.병신 동생이라도 있어야 나도 동생을 가졌다는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형제를 가진 사람 축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축에 들어가지 못하면 괴롭지요? 형제가 있어야 형제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는 데에 있어서 얼마만큼 사랑할 것이냐? 거기에 비례적인 사랑을 하느냐, 반비례적인 사랑을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병신 동생일수록 반비례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요? 병신 동생을 사랑하는 그 형은 누구보다도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평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하, 불행도 올 수 있는 거구나’하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곧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에 불과합니다. 통일성과 보편성을 중심삼고 원활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모든 것이 완성으로 끝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섭섭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 남편은 김 아무개인데 내 남편은 사랑이다 할 때는 김 아무개가 곧 사랑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김 아무개의 사랑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36-305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길
여러분의 현재 처해 있는 입장을 보면 참과 거짓의 경계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현재의 위치가 어떤 위치냐? 이런 입장이 못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가야 할 목적지는 어디냐? 이 인격의 최고의 완성은 어떠한 것이냐 할 때, 만민을 대해서 부모의 사랑을 체득할 수 있는 그런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세 영원한 역사시대의 추앙받을 수 있는 성인, 즉 왕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인 가운데에서도 왕성인(王聖人)이 되는 것입니다. (칠판에 쓰심) 이런 말은 잊어버리지 말라고 써주는 것입니다. 무슨 성인이 된다구요? 「왕성인」 왕성인입니다. 하나님은 왕성인이십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현과 군자들은 세계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만민을 위한 희생의 도리를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통일의 세계, 하나의 세계를 중심삼은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을 해결짓기 위해서 불가피한 요구였던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서 만이 가능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다’고 했습니다. 누가 지켜야 할 계명이라구요? 우리 인간이 지켜야 할 계명인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하나님의 첫째 되는 계명은 무엇이냐? 하나님 자신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의 아들딸을 사랑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첫째 되는 계명이니라’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될 수 있는 첩경이 뭐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겠습니까? 그러니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이상으로 보이는 세계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만민을 위하여 미치고, 세계 만민을 위해 희생하고, 세계 만민을 위해 자기의 사지백체를 나누어 주고 죽은 사람은 천국 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일등하게 되면 천국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르쳐 주는 도리는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싶은 것을 사랑하려니 선생님으로부터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누룩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사람을 위해서 그들을 사랑하기에 미쳐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로 가는 길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런 놀음하면서 살아도 망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이 통일교회를 이단 괴수라고 하고 기성교회에서는 죽이겠다고 야단하지요? 오늘 통일교회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아이구 선생님이 가르치는 원리 말씀은 좋지만 위험이 너무 많습니다. 고생하라고 하면 나는 싫습니다’ 하고 꼬리를 빼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는 겁니다. 그들이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가는 길을 못 따라가겠다고 보따리 싸서 도망간다고 해도 나는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망합니다.

그들이 왔다가 보따리 싸서 가는 날에는 밑천을 털어 놓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몽땅 빼앗기고 가는 것입니다. 왔다가 갈 때는 그냥은 못 갑니다. 자기 선조로부터 쌓아 놓은 선의 공적은 통일교회의 창고에 들여 놓고 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고 나가서 돌아다니다가도 복받을 길이 이 길밖에 없으니까 할수없이 눈이 부예 가지고 또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내가 여러분보다 몰라서 이런 일을 하겠어요? 일생을 여기에 걸고 욕을 먹으면서도 가는 것입니다. 이 목은 가만히 있지만 사지는 움직입니다. 지금까지 기성교회가 망하게 하려고 하고 대한민국이 망하게 하려고 잡으려 해도, 나는 잡히지 않고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망하게 하려고 하면 그들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살림살이를 생각해야 되겠지요? 하나님이 살림살이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욕을 먹는 무리들에게 살림살이를 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무리들만 있으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이런 무리들을 망하게 하면 하나님도 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해서 안됐지만, 하나님도 장삿속이지요? 하나님이 망하지 않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36-307
자유의 참된 의의
내가 여자들을 축복해 주었더니 ‘아이구, 선생님이 잘살라고 축복해 주셨는데 우리 재미있게 살자’ 하면서 꼬물꼬물 단지도 사다 놓고 살림을 차리고 사는데 그런 것 모두 누구를 위해서 사 놓았습니까? 자기를 위해 사다 놓은 것은 깨뜨려 부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거예요, 못하는 거예요? 「잘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대한민국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이라면 선생님도 찬동합니다. 또한 교회를 위해서 사는 것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뒷받침한 것이라면 남아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망하기 때문에 털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뭐 울고불고 하면서 부작용이 있네 어쩌네 그럽니다. 내가 그것을 모르겠어요?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은 인간의 정서적인 사리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럴 것입니다. 그렇게 말해도 좋다 이겁니다. 내가 모르긴 왜 몰라요? 너무 알아서 걱정이지.(웃음) 내가 자식에 대한 정을 모릅니까, 아내에 대한 정을 모릅니까, 부모 형제에 대한 정을 모릅니까? 남편에 대한 애정도 다 알고도 남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다 비교하고 계산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부작용이 벌어져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잘먹고 난 다음에는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트림이 나오고, 또 시간이 좀 지난 후에는 뒤로 가스가 나옵니다. 그것이 싫다고 해서 입 다물고 있으면 죽지, 별수 있습니까? 해가 나고 구름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해가 나지 않으면 그림자가 안 생깁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세상이라면 부작용이 없는 것입니다. 태양 빛이 쬐는 세계는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암만 떠들어도 나는 갑니다. 우리는 한다는 거예요.

이 남편들 여편네를 잊어버리고서 눈만 껌뻑거리고 있으면 처량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반대한다고 데모하는 녀석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축복가정 외에는 동원시키지 않으니 누가 반대하겠어요? 내가 축복해 주지 않은 사람은 동원시키지 않았습니다. 축복가정이라면 해야 됩니다. 혹을 떼려고 왔다가 혹을 붙인 격입니다. 부인이 반대하는 남편을 찾아보았어요? 내가 들이댈 것입니다. 보았어요? 찾아봐요? 여기 있다고 하며 나타나는 녀석은 여러분들한테 모진 매를 맞아 죽을 것입니다.

이제 결론을 지읍시다. 선이 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공적인 것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이제 알겠습니까?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말을 들으면 ‘아이구, 자유사상이 제일이지. 자유를 막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자유라고 해서 어머니 아버지 눈알을 빼고 싶다고 빼겠어요? 그것이 자유입니까? 자유라고 해서 남이 자기의 눈알을 빼겠다고 하는데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것이 자유입니까? 입이 있는데도 말하지 말라고 꿰매는 것이 자유입니까? 자유는 원칙 아래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알아야 됩니다.

공사에 대한 원칙, 선악을 가려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을 남겨야 할 인생길에 있어서 선은 공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너와 내가 같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둘 다 망하지 않는 길은 무엇이냐? 그것은 서로 양보하고, 서로 위해 주는 것입니다. 틀림없지요? 그러면 둘 다 망하는 길은 무엇이냐? 서로 물어뜯고 서로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화합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닌 것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선한 것이기 때문에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악한 것은 망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도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마 5:9)”고 한 것입니다. 자기를 위주해 가지고 화평케 할 수 있습니까? 사이가 좋지 않는 두 사람을 화해시키는 사람은 두 사람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갑이라는 사람과 을이라는 사람이 싸움을 해 가지고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역대 원수라고 할 때, 이들을 화해시키려면 제삼자인 병이라는 사람은 두 사람의 입장을 다 알아야 합니다. 다 알고 나서 화해를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두 사람의 고충을 다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화해를 못 시킵니다.

악한 세계를 선한 세계로 만들려면 악한 세계에 있어서 악에 대한 고충 이상의 고충을 느껴야 합니다. 또한 선을 이루기 위한 고충 이상의 고충을 느끼지 않고는 선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선이 가는 길이 어떤 것인가를 다 안다는 것입니다. 가르쳐 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학생이 교칙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면 그 학교는 망합니다. 학교를 위하려면 학교의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위하려면 대한민국의 법을 따라야 하고, 하늘땅을 위하려면 천륜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을 거슬러 간다면 위할 수 있어요? 하나님도 이 천륜을 따라야 됩니다. 모든 만물이 이 법도에 따라 순응하고 있는데 이것을 파탄시키면 우주가 추방합니다. 자동적으로 망한다는 것입니다.

36-309
상충이 없는 참의 세계를 찾아가자
그렇기 때문에 개인보다도 가정, 가정보다도 종족을 위해야 합니다. 종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은 종족의 족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희생을 다 했다고 공인받으면 족장이 안 되려고 도망가도 그를 데려다가 족장으로 모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그런 종족이 있으면 그 종족 앞에 민족을 맡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족을 민족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민족을 중심삼고 주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찾아지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면 이상세계권 내에서의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전통적 사상이 되고 길이길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것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를 자가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거부할 자가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것을 거부하겠어요?

현재 학생들이 구시대 사람이 어떻고 하는데 자기들은 얼마나 신시대 사람이예요? 신시대라는 것이 망할 시대입니다. 그들은 망하는 것입니다. 요즘 히피족들을 보세요. 이런 세상인데 갈 데가 있습니까? 물질을 위주한 세계관을 추구하면 갈 데가 없는 것입니다. 몸은 고깃덩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깃덩이는 갈 데가 없다는 거예요. 막혀 버린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마음세계를 중심삼은 것은 무한히 퍼져 나갑니다. 마음 그 자체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유한권내에 있고 싶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제한받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물질세계에 들이박아 놓으니 그 사람에게 희망은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래 못 가는 것입니다. 마음은 무한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무리 모신다고 해도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참이라는 것은 세계의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체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좋은 것을 그려 가는 입장에서 좋은 바탕을 이루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활환경에서 상충되는 일면을 거쳐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에 대한 보응이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상충이 없는 그 세계를 향하여 가는 길이 곧 인생이 찾아가야 할 참된 길인 것입니다.

이 참된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길이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를 위하여 소수를 희생시키고, 공적인 것을 위하여 사적인 것을 희생시키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이것은 의당 그래야 합니다. ‘내가 의당 그래야지’ 하면서 갈 수 있는 사상적인 바탕을갖고 있는 사람들은 참된 세계의 참된 자리에서 사는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관계맺고 사는 사람은 그 결과가 자기와 관계맺는 것이요, 그 내용은 영원한 세계의 소유권을 결정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36-310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아침,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에 그려 가던 그 길은 순수한 길이 아니었사옵니다. 거기에는 슬픔과 곡절과 몰림의 환경이 남아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가야 할 순수한 길은 나 혼자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당신이 협조해야 갈 수 있는 길인 것을 아옵니다. 그런 부모를 아는 자식이 있다 할진대 그런 자식이 눈물짓는 자리에는 부모의 가중된 눈물이 가해진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사옵니다. 그러한 자리일수록 결심할 수 있는 자리요, 그런 자리에서부터 자기의 생명을 내놓고 결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아는 사람은 망하는 세상에서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아옵니다.

이런 사람의 생활 밑바탕에는 당신의 후대하신 사랑이 흐르고 있는 것이요, 아무것도 아니고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결과지만 만사의 인연을 결부시킨 아버지의 놀라우신 승리적 터전과 닦여져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 길은 자기만이 사는 것이 아니라 후대 만민에게 해방의 기틀이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생애 노정에서 이와 같은 은사의 자리에 선 것을 자기 스스로 환호하며 감사드려야 할 통일의 무리들인 것을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이 아침에 저희들은 참을 찾아가는 길이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여기에는 자신이 비장한 마음으로 해결을 지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 부분은 비수를 가해야 되고, 한부분은 끌고 가야 할 처량한 행로가 있는 것을 알게 될 때, 여기에 눈물과 고통과 서러움이 가중된다 하더라도 하나는 파괴되고 다른 하나는 여기에 건설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내일의 힘찬 자아를 발견하고 미래의 행복의 터전에 영원히 인연맺기 위한 스스로의 터전이 오늘의 이 현실적 기반인 것을 알고 그것을 무한히 가치있게 찬양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태어나 자기도 모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가는 그 길이 절망과 원한의 길이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야만 자기가 태어난 것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요, 산 것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 그런 세계적인 환경을 어서 빨리 만들어야 되겠사옵니다.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첨단에 서서 이것을 수확하기 위해서 싸우는 무리가 세계의 어떠한 무리 가운데에도 없었사오나, 오늘날 그것을 하기 위해 새로운 무리로 등장한 것이 통일의 무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절규하고 울부짖으며 바라보는 세계는 오늘날 이 땅 위의 세계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중심삼고 만민이 공히 하나될 수 있고, 스스로의 가치를 자랑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오늘 저희들은 그러한 세계를 향하여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단 한 분밖에 안 계신 아버지를 부모로 모시는 이 자리는 전체 가치의 내용을 좌우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연결될 수 있는 부자의 인연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리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자리를 흠모하면서 손상된 모습으로 참가하지 않겠다고 하며 미리 더러운 것을 청산짓고, 그 날을 깨끗이 맞이하기 위하여 어떠한 어려움과 수고의 행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극복하며 감사히 가겠다고 몸부림치는 아들딸이 있거든, 아버지여, 그들에게 굳건함과 강함과 담대함을 허락하시옵소서.

그들이 생활을 부정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길을 넘을 수 있는 자신을 갖게 하여 주시옵고, 생활을 부정하는 일이 있더라도 용맹으로써 타개할 수 있는 힘을 가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 이와 같은 시간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드리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미래의 계승자라서, 미래의 상속자로서 과거와 현재의 새로운 지축을 대신할 수 있게 주체적인 형제들로서 긍지와 가치의 내용을 가지고 흑암된 세상에서, 암흑의 환경에서 보람된 삶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앞으로 올 소망의 자녀들을 축복권내에서 양육하시어서 이들이 통일의 족속과 통일의 민족과 통일의 국가와 통일의 세계를 형성할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직접 영광된 자리에 서시어서 주도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6-312
축 도
무한하신 자비의 아버지여, 이 아침, 어리고 철부지한 당신의 자녀들 위에 영원히 계시옵고, 새로운 생명의 인연을 흠모하는 자녀들 위에 후대하신 생명의 은사로 저희들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악하고 험한 세상에서 성별된 자체로서, 선에만 속할 수 있는 아들딸로 양육하시옵고 주관하시어서 승리의 한날을 맞이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높고 위대하신 당신의 영원한 사랑이 이들과 길이길이 같이할 것을 바라오며,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