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09 to 36-270: 시기와 사명

시기와 사명
1970.12.06 (일), 한국 전본부교회

36-209
시기와 사명
[기 도]

오늘은 12월 들어 처음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에 당신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의 마음이 여기에 모인 자녀들 위에 함께 하시옵고, 전국에 널려서 이 시간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는 자녀들 위에도 일률적으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당신의 뜻을 살펴보게 될 때, 여기에 머리를 숙인 자녀들 중에 어느 누가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는가를 염려하는 마음으로써 저희를 찾고 계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녀 중에서도 당신의 슬픈 심정의 인연을 가려서 역사적인 사연을 통감할 줄 아는 자녀를 찾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시점에서 분부하고자 하시는 간절히 마음을 가지고 당신의 모든 사정을 털어놓으실 수 있는 당신만을 위한 자녀가 있기를 고대하시며 다시 찾아오신 아버지가 계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이 당신을 위하여 태어났다면 당신을 위하여 가는 효성스러운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무한히 높고 무한히 귀한 가치를 지닌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당신께서는 과거의 모든 섭리의 사연들을 털어놓고, 현시대에 남겨 주어야 할 당신의 간곡한 인연을 몽땅 남겨 주면서 기뻐할 수 있는 효성스러운 자녀들이 있기를 얼마나 고대하셨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이 바라시는 절대적 기준과 저희들이 찾고 있는 기준이 너무도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느끼옵니다. 안팎의 간격이 너무나 공허하고 크다는 것을 느낄 적마다 당신은 높고 귀하신 분이오나 인간은 낮고 천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당신과 인간과의 사이에 있는 구렁텅이를 메우기 위해서 당신은 이 시간도 수고하지 않을 수 없는, 전체의 책임을 짊어진 중심된 주인으로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이 얼마나 외로우시며 얼마나 슬프신가를 저희들은 측량도 할 수 없사옵니다. 당신의 뜻이 저희의 마음에 옮겨지고 당신이 이 시점에서 간곡히 바라는 애절한 그 사정이 저희들의 마음에 옮겨지게 하시옵소서. 인류세계가 당신을 바라고 느끼는 감각들은 당신으로 말미암은 것들이오니 그 모든 것들을 당신 앞에 바쳐드리면서 오히려 감사할 줄 알아야겠사옵니다.

아버지, 복이 있고 은사가 있다 할진대 이것은 저희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당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복이 거쳐 나가고 은사가 거쳐 나가는 곳곳마다 저희들은 이것을 가로막고 도둑질하는 자리에 서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하나라도 보태어 드리지 않으면 안 될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사오니, 이 시간 저희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저희가 이렇게 걸어 나오고,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10년, 20년, 50년의 세월을 덧없이 흘려보내 버렸습니다. 저희가 당신을 잃어버릴 적마다 당신이 얼마나 서러워하셨겠는가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고, 자신이 거쳐온 생의 노정을 뒤돌아 볼 적마다 아버지 앞에 빚을 졌다는 것을 저희들은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아직 젊은 몸을 지닌 저희들은 자신의 생의 울타리를 중심삼고 당신 앞에 빚을 져서는 안 되겠다는 온갖 정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정성을 다하는 데는 어떠한 시점내에서만이 아니라 자기의 전 생애는 물론이고 후손에게까지 계승될 수 있는 정성의 터전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이를 위해 남모르는 가운데 마음을 죄어 가면서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아들딸이 있거든, 이 시간 그들을 당신의 깊으신 사랑의 심정으로 품으시옵소서. 고요한 마음, 심정의 그 길을 따라 아버지의 온전하심이 거기에 같이하시옵고, 사랑의 인연이 거기에 싹트게 하시어서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은사의 자리를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당신의 애절한 마음과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당신의 간곡한 심정을 저희에게 상속시켜 주시옵소서. 민족을 바라볼 때 이 민족은 남이 아니라 자기의 형제인 혈육이라는 감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만 되겠사옵니다. 세계 만민을 대할 때 나 자신이 고립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만민이 같이 있다는 것을 느껴서 당신을 대하신 사랑의 실체로서 만민을 품에 품어 사랑해 줄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기를 당신은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당신께서는 소원 가운데 인간을 지으셨사오나 사랑의 실체가 되지 못한 저희 자신들인 것을 생각할 때, 아버님은 언제나 슬픔과 낙망과 고독을 피치 못한 자리에서 인간을 대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고독하신 당신을 위해서, 외로우신 당신을 위해서 친자가 되지 못하겠거든 종이라도 되겠다고 몸부림치며 가야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들이 가야할 복귀의 길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종의 종의 인연도 맺지 못하고 한가운데 흐르고 흘러가 버려야 할 인간이었사오나, 당신의 깊으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종의 종의 인연이라도 맺을 수 있었사옵니다. 이런 자리를 허락하여 주신 것을 정말 감사드리옵니다. 그리하여 다시 주인을 만나 주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종의 자리에 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신 은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또한 당신이 노고의 실적과 탕감의 조건을 제시하여 쌓은 공적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을 양자의 인연에까지 올라서게 하신 역사시대에서의 아버지의 한스러웠던 고생길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외롭고 한스러웠던 당신의 사정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핏줄이 다른 원수의 종족들을 붙안고 양자로 대해 주어야 했던 부모의 심정의 얼마나 고독하였고, 얼마나 슬펐고, 얼마나 처량했겠는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다 알 수 없사옵니다. 그런 마음을 품으시고 역사시대를 거쳐오신 아버지를 저희들이 후대하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양자의 인연의 길을 저희에게 남겨 주시기 위하여 당신만이 희생을 당하셨사옵고, 당신만이 외로움을 당하셨사옵고, 당신 홀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 나오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적마다, 또 그 양자의 자리에서 직계의 아들로 후사를 잇는 아들과 딸로 세우시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죽음의 갈림길을 몇 번이나 뒤넘이쳤다는 사실을 생각할 적마다, 저희 자신들 가운데 아버지의 한의 마음이 깃들어 있을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고, 아버지의 간곡한 사연이 저희들의 뼛골에 사무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저희의 모든 감정이나 촉감에도 저희를 위하여 부활의 한날을 바라시는 아버지의 소망의 일념이 엉크러져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말하고 느끼는 생활권내에는 당신의 핏자국이 어려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가는 길과 내가 처해 있는 환경에는 당신의 슬픔의 눈물이 젖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오늘 저희들은 당신과 인연된 그 자리를 다시 갖지 못한 타락의 후손인 것을 느낄 적마다, 눈물이 아니고서는 당신을 대할 수 없고, 당신의 슬픈 사정을 알지 못하고는 당신을 모실래야 모실 수 없는 자신들인 것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천만 번 죽어 마땅한 저희들이요, 홀로 외롭게 죽어간다 해도 한할 수 없는 저희 자신들이옵니다. 이것을 깨달을 적마다 높고 귀하신 당신의 은사의 손길이 늘 저희에게 같이 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옵니다.

고독한 길을 가는 사람이 불쌍한 자의 사연을 잘 아는 것은 그런 자리에서 생활을 하면서 느껴 보았기 때문이옵니다. 슬픔의 자리를 박차고 민족의 슬픔을 가로막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인류의 슬픔을 가로막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개척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우리의 아버지께서 그런 길을 가셨기에, 저희들이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아버지의 후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저희들이 여기에 나온 것은 자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이옵니까? 가야 할 운명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이옵니까? 아니면 자기의 가정을 위해서, 자기의 종족을 위해서, 자기의 민족을 위해서, 자기의 나라를 위해서, 이 세계를 위해서 나왔습니까?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어떠한 목표를 향하여 이 자리에 나온 자신인가를 다시 한 번 응시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산만했던 모습과 허위와 가증으로 꾸며진 자신을 자탄할 줄 모르던 과거를 다시 한 번 비판하여 과거에 있어서 자기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아버지 앞에 드러내어 아버지로부터 비판과 판정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자신이 그런 불쌍한 자리에 처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찾아오시어서 저희들에게 권고하시고 싶으신 사연이 있거든 그 모든 것을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에 그려지고 마음에 느껴지는 모든 것을 당신의 심정과 일치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 앞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갖추어서 뜻 앞에 직행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고, 당신이 신임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아들딸이 되어 주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찾아진 저희들이 아니면 갈 수 없는 복귀의 행로와 복귀의 노정에 있어서 책임을 짊어지고 가 주기를 고대하시는 불쌍하신 아버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되시는 아버지께서 그러한 비참한 자리에 서 계신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원통한 사실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옷깃을 여미고 수고하시는 아버지라고 불러 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한한 세계의 가치의 본체 되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저희는 그려 봐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무한한 사랑의 내용은 생명을 품고도 남음이 있는 영원한 것임을 저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길일지라도 아버지 앞에 결실되어 질 승리만을 바라보며 이 길을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금년 한 해도 기울어져 가는 이 시점에 있어서 금년을 아버지 앞에 자랑의 해로 돌려 드리지 못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12월 6일, 아버지, 이 아침을 찾아오시옵소서.

아버지, 정초에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엄청난 과제를 주시면서 세계의 통일전선을 찾기 전에 여기에 있는 저희의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통일의 인연을 찾으라고 권고하신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일년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사옵니다. 덧없이 흘러간 세월을 놓고 한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다시 맞이하게 될 새해에는 맡은 바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의 심신에 고요히 아버지의 은은한 명령의 음성이 들리게 해주시옵고, 부활의 새로운 생명의 맥박이 저희의 마음 가운데 용솟음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인연을 스스로 체휼할 줄 아는 승리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당신의 아들딸들이 모인 곳곳마다 당신의 긍휼의 사랑으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외로운 자리에 있는 무리들을 지켜 주시고 지금까지 이들을 버리지 않고 참아 오시는 아버지 앞에 감사드리옵니다. 지금까지 참아 오신 아버지여, 이들의 생애에 있어서 석양을 맞이할 때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고독이 깃드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들 앞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고요하고 깊고 넓으신 그 품으로 품어 주시사, 한밤이 지나면 새 아침을 맞이하듯이 내일의 세계 앞에 천하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긍지를 느끼면서 천의를 중심삼은 분부를 받아 책임을 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오늘 하루 전체도 당신의 은사로써 친히 보호하여 주시옵시고, 대하는 사람 사람마다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인 것을 느껴서 나만이 제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과 인연되어진 모든 환경의 터전과 상대적인 가치의 밑받침이 없어 가지고는 저희들의 가치를 찾을 수 없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것은 모든 민족에 필요한 것이요, 모든 국가에 필요한 것이요, 세계에 필요한 것이므로 그 가운데에서 자기의 가치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끼면서, 현시점에서 자기가 대하는 개인이나 자기가 대하는 백성들이나 자기가 대하는 세계 인류를 바라보며 책임을 느낄 줄 아는 자녀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방으로 파송되어 외롭게 활동하고 있는 당신의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남편을 뒤에 두고, 자식을 뒤에 두고 뜻길을 따라 나섰사옵니다. 이들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던 마음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야곱이 고향 산천을 떠나던 그 마음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요셉이 애급땅을 향해 가던 그 마음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바로의 궁중을 떠나던 그 마음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마리아가 느꼈던 그 마음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흘러간 역사의 고비고비마다에 얽혀진 그 원한을 생활의 터전을 통하여 풀고 가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운명이오니 이 길을 다짐하고 나선 딸들을 강하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민족의 운명을 헤쳐 가면서, 내일의 승리를 다짐하는 흰옷을 입은 거룩한 딸들로서 승리를 위해 그 흰옷에 피를 뿌리며 가는 당신이 기억할 수 있는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통일의 딸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축복의 은사를 받은 딸로서의 위신을 세울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비판을 받으며 나왔던 과거 지사를 청산짓고 새로운 사망과 희망의 축복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시옵고, 이들로 말미암아 이들의 가정이 새로운 소망과 영광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거룩한 이번 기간이 되게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이 저물어 가는 이 시점이오나 다가올 1971년과 1972년에도 이 가정, 이 민족, 이 나라를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원수의 도성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아버님이 지켜보는 자리에서는 무너져 굴복할 것이요, 원수의 능력, 원수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아버님과 부딪치는 날에는 초개와 같이 쓰러질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여기 연약한 무리들의, 아버지를 향하는 그 믿음이 어떠한 힘보다도 강하고 어떠한 환경의 인연보다도 두텁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믿음을 갖고 나가게 될 때에 저희들 앞에는 승리만이 남을 것이요, 새로운 영광의 터전에 있어서 해방의 한날이 온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여, 이들이 그런 크나큰 은사와 영광을 상속받을 수 있게끔 이들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분단된 남한과 북한을 규합하여 통일된 한반도에 승리의 깃발을 올리고 이것을 이 민족의 전통으로 세워 모든 터전을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승리의 그 한날을 맞이할 때까지 싸워 나갈 것을 저희들이 맹세하고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사명을 다하기 위해 개척자로서 나가 싸우고 있는 당신의 딸들에게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로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들로 하여금 이 한국에 새로운 하늘의 풍토를 만들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민족이 가야할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도 알다시피 이북에서는 여자들도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총을 멘 군인처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대해, 통일의 딸들은 그보다도 진취적이고 자원적인 입장에서 하늘 정병을 대신할 수 있어야 되겠사오니, 이번에 나선 당신의 딸들이 걸어가는 그 길에 있어서 믿을 수 있는 딸로서 기억하여 주시어서, 이 민족 앞에 승리의 터전을 세우고 승리의 조건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어려운 나날을 생활 가운데서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당신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게 해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딸들이 되게 하시옵고, 지금까지 인연된 수많은 사람들 위에 당신의 무한하신 지혜와 무한하신 은총으로 부활의 은사를 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아침도 당신의 친히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6-216
말 씀
우리 인간들은 시간을 초월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루의 생활이 있고 한 생애가 있습니다. 하루 하루의 날들을 지나 한 해를 거치게 되고 한 해를 거쳐서 10년, 20년, 그리하여 일생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36-217
섭리사에 있어서의 전성시기는 어느때일 것이냐
우리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개인에게는 청년시대가 있고, 장년시대가 있고, 노년시대가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으로 태어난 자기 자신을 두고 볼 때, 어느때가 자기의 일생에 있어서 제일 귀한 때일 것이냐? 그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젊은 청춘시기가 자기 일생에 있어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때가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장년시기가 자기 일생에 있어서 전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때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혹은 노년시기가 그런 때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런 전성의 시기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또, 청춘시기면 청춘시기에 있어 그런 중심적인 전성시기가 있을 것이요, 장년시기면 장년의 시기, 혹은 노년시기면 노년시기에 있어서도 그런 전성시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 전성시기가 무엇인가를 알고 시기를 간추려 보게 될 때, 그 시기가 한 시점에 놓여지게 되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높은 산이 있으면 그 산에는 제일 높은 꼭대기가 있을 것입니다. 전체의 산맥이 이어져서 모두 한 점에 이르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최고의 정상인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또, 산의 분수령을 두고 볼 때에도 이 분수령이 하나의 선처럼 되어 가지고 안팎으로 경계를 이루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생에 있어서도 그러한 한 점과 같은, 한 선과 같은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인간의 일생에 있어서 그런 때는 과연 언제일 것이냐? 우리 인간은 그것을 모릅니다. 우리 개인이 그러하듯이 한 국가의 운명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5천년 역사를 거쳐왔지만 역사를 거쳐오는 그 행로 가운데에는 내려가는 때가 있으면 최고로 내려가는 그 고비의 때가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올라가는 때가 있으면 최고로 올라가는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금후에도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진행해 나가는 것이 그 나라에 있어서의 역사의 운명길이라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나라의 운명이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흘러가는 가운데에서 어느때가 그 나라에 있어서 정상의 때일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그 나라 자체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국가를 넘어서 세계를 두고 보면, 세계도 천운을 중심삼고 운세의 길을 엮어오는 것이 틀림없습니다.그 운세가 어떠한 지역으로부터 시작되어서 어떠한 운세권의 행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발전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틀림없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운세권은 수많은 국가권을 거쳐갈 것입니다. 운세가 거쳐가는 데도 올라가는 때가 있으면 반드시 내려가는 때가 있을 것이요, 내려가는 때가 있으면 올라가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역사는 점점 그 높이를 더해 가고 그 깊이를 더해가고, 또한 그 폭을 넓혀 가면서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전진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세계의 역사과정에 있어서도 하나의 전성시기가 있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 세계적인 운세를 두고 볼 때, 이 지상의 수많은 나라들은 그러한 세계적인 전성시기에 가담할 수 있는 그 한때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한때와 연결짓기 위한 과정적인 국가의 사명을 지니고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나라가 과거에 어떠한 전성시기를 가졌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전성시기에 반대되는 자리에 섰다면 그 나라의 운명은 비참한 것으로 끝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두고 볼 때, 우리 인류의 역사에도 반드시 그러한 운명의 길이 찾아온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일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역사과정을 지내 나오는 때가 있다면 그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섭리사를 중심삼고 그런 때를 살펴볼 때, 어느때가 정성시대일 것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섭리를 중심삼은 통일교회는 종의 종의 시대에서부터 종의 시대, 양자의 시대, 친자의 시대, 부모의 시대를 거쳐 하나님의 시대까지 나아가야 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볼 때, 종의 종 시대에 있어서의 전성시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전성시대 중에서도 한 점과 같은 최고 정상의 자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선과 같은 경계선이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면 그 때가 어느때일 것이냐? 이것은 그 종의 종의 시대권내에 살고 있는 인류 중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36-219
한 시대에서 정상에 올라야 새시대를 맞이할 수 있어
그러면 그때를 가름하고 그때를 결정지을 수 있는 책임자가 있을 것인데, 그 책임자는 누구일 것이냐? 그 시대의 운명권을 스쳐 지나가는 인간이 아닙니다. 그 시대의 운명권을 쥐고 그것을 전체적으로 요리하는 하나의 절대자가 있어서 그 절대자가 이런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간들에 대하여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흠모하는 인연이 생겨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흠모하는 그 마음이 어디에 가서 귀의하고 어디에 가서 귀착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시대가 종의 종 시대면 종의 종 시대에 있어서 최고의 정상 지점에 가서 귀착해야 될 것입니다. 한 선을 중심삼고 최고의 정상에 올라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있어서 아무리 한때를 고대하며 정성을 들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정상의 자리에서 결정을 짓지 못하면 비참한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종의 시대를 거치는 때는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때에 있어서도 정상이 있을 것이며, 경계선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도 역시 그 정상을 향해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 경계선을 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정상을 차지할 수 있는 한 때, 그 경계선을 넘을 수 있는 한때를 반드시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종의 시대를 넘기 위해서는 그 정상을 정복하고 분수령과 같은 그 선을 넘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새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때를 상속받고 나서야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양자의 시대를 상속받을 수 있으며, 양자의 시대에 있어서의 지상에 군림할 것입니다.

그러면 양자시대에 있어서의 전성시대는 어느때이겠습니까? 거기에서 한 점에 귀결되어서 하나의 경계선을 중심삼고 좌우로 판가름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길이 그 시대권내에서 섭리를 대하는 인류에게 있어서는 불가피하게 당도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는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을 것이냐? 자기가 어떻게 태어났는가도 알지 못하고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도 알지 못하고 사는 이 세계의 인류들이 이와같은 정상의 때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간은 누구나 그러한 정상의 자리에 올라서고 싶고 그러한 경계선을 넘어가고 싶은 마음은 가지고 있지만, 그 길을 알지 못하고 또 어떻게 찾아갈 것이냐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양자의 때를 지내고 나면 자녀의 때가 올 것입니다. 그 자녀의 때에도 역시 정상의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를 지난 후에는 부모의 때가 올 것입니다. 참부모를 잃어버린 인류가 그 참부모를 찾아 새로이 모시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 부모의 때도 역시 일시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부모의 때에 있어서도 역시 정상을 오르는 데는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아무도 모르는 그런 자리, 한 점, 한 줄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거기에서 하나의 인연이 맺어지는 것이고, 큰 산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산맥을 중심삼고 정상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상의 때가 오는 것을 그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알 것이냐?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 인연권내인 국가권내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알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36-220
어떻게 자신이 전성시기의 중심에 설 것이냐가 문제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왔다 가신 예수님은 4천년 역사의 열매로서 그시대의 메시아로 오신 세계적인 중심 인물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있어서 하나의 초점이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때 그를 알아본 사람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와 제일 가까운 입장에 있던 마리아가 진정으로 그의 가치를 정상으로 알고, 그 정상 위치에 서야할 자신의 사명을 다했느냐? 못했습니다. 그의 부친인 요셉이 했느냐? 못 했습니다. 그러면 요셉 가정을 중심삼은 그 종족이 했느냐?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 정상에 서야 하는 것이 요셉과 마리아를 중심한 그 가정과 요셉 종족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정상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때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의 가치를 알고 정상에 올라서게 되었다면 그 자리는 세계적인 정상이 되었을 것이요, 그 민족은 세계적인 민족이 되었을 것이고, 그 나라는 세계적인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상을 차지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 백성은 유리고객하는 방랑의 운명을 지닌 처량한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민족이 가야 할 미래의 행로에 가로놓여 있는 피의 죽음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었고, 수많은 원수의 발굽 아래 밟히지 않으면 안 될 그런 행로를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 2천년의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스라엘 민족이 왜 그런 길을 가야 했느냐? 그들은 세계적인 한 정상을 위하여 준비된 민족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정상을 차지하지 못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정상을 차지하지 못한 모든 책임을 누가 져야 되느냐? 준비된 그 민족이 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민족은 그것은 탕감하기 위해 지금까지 비참한 길을 걸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두고 볼 때, 세계에 하나의 성인이 찾아오고, 섭리의 운세가 이 지상에 찾아오면 정상의 한때를 마련하여 그 한 점을 중심삼고 귀일될 수 있는 그 인간을 맞아야 합니다. 그 한 인간의 가치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가치와 상대적인 입장에 세우기 위해서도 찾아오는 역사적인 운명길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그러면 누가 과연 이런 시기를 사명을 다해 가지고 상속받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떠한 역사의 전성시기가 왔다고 자랑하는 것보다는 그 역사의 전성시기를 움직일 수 있는 중심에 나 자체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는 아무리 자신이 그 전성시대권내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성시기와 자신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진국을 자처하고 있는 미국을 두고 볼 때, 미국은 경제적인 분야에 있어서 세계적인 정성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 정성시기에 있어서 틀림없이 하나의 초점이 있을 것이고, 하나의 경계선이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단체를 중심삼고 볼 때도 거기에 반드시 초점이 있을 것입니다. 나라를 두고 볼 때에도 반드시 중심이 되는 초점이 있을 것입니다.

36-222
정상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과 관계맺는 자리
그러면 이 초점은 무엇이 될 것이냐? 사람일 것이냐 물질일 것이냐 할 때, 물질은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물질을 위해 있느냐 물질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냐 할 때, 어느누구도 사람이 물질을 위해서 있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질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물질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의 초점은 당연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 1억 8천만 명에 가까운 국민이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몇 년뒤에 전세계 인류를 대신할 수 있으려면 그 사람들 가운데 최고의 초점이 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1억 8천만 명에 가까운 미국 국민을 대표하여 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나라를 지도하는 대통령이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되면 그 나라는 복을 받겠지만, 그 대통령이 그러지 못한 자리에 서게 되면 그 나라의 국운은 뒤넘이치게 되는 것입니다.

제일 충성하는 사람이 정상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 정상의 때를 맞기 위해서는 낮아져야 합니다. 높아지고자 하면 낮아지게 되고, 낮아지고자 하면 높아지게 되기 때문에 낮은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한 시기를 찾지 못할 때에는 정상의 때를 맞지 못한다는 사실을 역사를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나라를 대표해서 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그때는 언제냐? 그것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 시대권에 서 있는 사람들도 알기 어렵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틀림없이 하나의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 초점이 되는 사람은 앞으로 미국이면 전 미국 국민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고,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 미국이 갖추어서 세계적인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국가관을 지니고 있다는 것 또한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복받은 사람이냐? 그와 더불어 인연을 맺고, 그와 더불어 관계를 맺는 사람이 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가 어디일 것이냐 할 때, 만민이 흠모할 수 있는 정성기, 꽃을 피우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한 정성기를 맞게 하는 그 정성기의 터전이 되고 밑받침이 될 수 있는 골짜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골짜기에서부터 연결된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가운데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가운데 그런 가치의 내용을 중심삼고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는 그 기준이 보다 높고 보다 넓을수록 그 사람은 누구보다도 큰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에 그 중심 되는 초점이 쓰러지게 된다면 그 사람이 대신하여 초점을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국가의 운명이 그러한데, 격동해 들어오는 세계의 운세는 어떨 것이냐? 우리 눈앞에 다가오는 격동하는 이 세계의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위치와 방향이 다르게 되더라도 그 초점을 내세우기 위하여 경계선을 가름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냥 그 자리에서는 그런 때를 맞을 수 없기 때문에 천운은 반드시 이것을 가려 놓아야 할 시대권내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권이 격동의 시기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격변하는 세계의 모든 정세는 역사의 종말시대가 오기 전에 이 시대 앞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나라의 운명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그 나라의 주권자도 알지 못하는 것이요, 그 나라의 백성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그러한 세계의 운명권을 누가 알 것이냐? 그 누구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 운명을 모르면서도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이 최후의 때를 맞이하려면 반드시 결판을 지어야 됩니다. 결정을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결정을 짓는 데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양자 택일, 혹은 열이 있다면 그 열 가운데서 하나를 택해야 하는 놀음이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기필코 올 것입니다.

그 자리는 택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택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미 결정되어진 자리가 아니라 결정해야 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해야 되느냐? 내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때를 결정해 놓고서 오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어느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그 사실을 사실로써 공인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복귀의 노정을 되돌아보면 아담 가정에 있어서 아벨이면 아벨에게도 전성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정성시대를 놓치지 않고 꽃을 피웠으면 영광이 천지에 드높여질 것이었지만 꽃을 피울 수 있는 그런 시대를 놓침으로써 그냥 쓰러져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전성시대가 도리어 회한으로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역사적으로 추궁하게 될 때에는 그 역사적인 추궁이 인류세계 앞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역사시대에는 수많은 문화권이 변천하면서 발전해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6-224
전환기에 들어선 1970년대
그러면 1970년대는 어떠한 때이냐? 역사사대에서 전환기로 들어가는 시대입니다. 이미 전환시점에 들어와 있습니다. 하나의 민족이 그러한 운명에 봉착하는 것이요, 아시아면 아시아, 세계면 세계가 그러한 운명권에 봉착한 것입니다.

그것은 일면으로 보게 되면 인류 앞에는 말할 수 없이 비정상적인, 혹은 비참한 운명의 길로 내려가는 것으로 보이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운명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은 바꿔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높았던 것이 낮아지고 낮았던 것이 높아지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건 왜 그러냐? 정상적인 정상이 나오지 않았고 정상적인 경계선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의 자리에 서서 정상의 권위를 갖고 있으므로 이것을 그냥 둘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정상으로써 정상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 모든 요건들을 갖고 있는 국가들의 정상은 반드시 뒤넘이쳐야 되는 것입니다.비정상이 아닌 정상이 정상의 자리를 찾아나설 수 있는 역사적인 판가름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비정상과 정상이 교차되는 일이 반드시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옛날에 여러분이 존경하던 그 존경의 표준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부정했던 것이 반대로 존경의 표준으로 나타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공산주의를 보면 그들은 반세기라는 짧은 기간에 전세계의 삼분의 일을 점령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에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산주의가 지금 세계 적화를 꿈꾸고 그 한계선까지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바라볼 때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기준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될 수 없다면 그 반대로 급변하는 새시대의 정세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새로운 단체가 나와야 됩니다. 즉, 세계적인 격변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내일의 새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밤시간을 통하여 그런 역사는 뒤넘이쳐야 될 것입니다.

그 과정의 일면을 보면 암흑의 시대와 같아 보이고, 혼란의 시대와 같아 보이고, 굶주리고 파탄된 극한 상태같이 보입니다. 부정적인 인연을 거쳐가는 것 같지만 그 가운데에서 새로운 아침의 햇살이 은은히 비추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누가 아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이것을 전후에서 감지할 수 있고, 감촉할 수 있고, 적발할 수 있고, 그 중심을 설파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누구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역사시대권내에서 태어나고 역사시대권내에서 살다가 죽으면서도 역사시대권내에 찾아오는 천운을 바로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천운을 감지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이것을 아는 것이 최고의 소망이고, 이것을 표준으로 삼아 인간들을 구원해 가지고 그와 더불어 인연을 맺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의 희망인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는 이것을 상대로 노력하고 정성들이기 위해 하나의 조직이 나타나야 됩니다. 그것은 과학이 아닙니다. 교육도 아닙니다. 어떠한 충신이나 열녀, 혹은 유명한 위인도 아닙니다. 역사권을 초월할 수 있는 하나의 이념을 가지고 최고의 정상, 하나의 초점을 향하여 총진군하는 그러한 조직이 오늘날의 역사과정에 없다 할진대는 그 시점과 인연을 맺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그 시점을 인간과 관계를 맺어주기 위하여 준비한 조직이 있을 것입니다. 그 준비된 하나의 조직이 역사를 배경으로 해서 이 사회에 기필코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면 종교 가운데에서도 어떤 종교가 중심이 될 것이냐, 종교 가운데에서 최고의 정상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종교는 어떤 종교냐? 이것이 문제인 거예요.

36-226
종교의 맥은 재림사상
어떠한 정상이 있으면 그 정상에는 줄기가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그 정상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줄기는 긴 것입니다. 이러한 줄기를 면면히 연결시켜 가지고 하나의 뿌리를 가져야만 높고 큰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종교사에 있어서도 과거의 역사시대로부터 이어온 맥박을 현시대와 미래에까지 연면히 뻗칠 수 있는 그런 종교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종교의 맥이 어디에서 풀리고 어디에서 맺어질 것이냐? 역사의 모든 중심이 인간이라면 그 인간에 있어서 이 최고의 정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식도 아니요, 돈도 아니며, 어떠한 외적인 조건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정상이 될 것이냐? 그 정상은 심정을 중심삼은 새로운 인연의 발판이 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종교 중의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천의를 대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역사적 인연을 중요시해 나온 종교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분명히 있어야 할 그 종교의 사랑의 기원, 사랑의 발판은 어디일 것이냐? 그것은 한 개인을 중심삼은 동시에 한 가정의 초점을 중심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 내용과 구비 조건에 일치된 종교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기독교가 미래를 바라보며 환경을 극복해 나온 싸움의 행로가 얼마나 처절했더냐.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선한 역사의 중심을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에서 생사의 결판을 지을 수 있는 핏줄기가 없으면 역사의 중심으로 남아질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연유로 연결된 사실을 갖지 않고서는 그러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순교의 종교로서 종교 가운데서도 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만이 가야할 특권적인 하나의 정상이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볼 때에 그 주위에는 여러 개의 산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현 기독교가 바라는 소원은 무엇이냐? 그것은 지금까지 타락한 세계권내에서 지내온 세계를 복귀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현 20세기는 물론 앞으로 다가올 21세기, 22세기는 현재의 시대가 그대로 전승된 역사적인 터전 위에서 그 표준과 그 정상을 바라보고 나갈 것입니다. 구시대의 종말을 결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한계선이 있어야 되는 동시에 경계선의 중심에 초점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경계선의 초점이 무엇이냐? 바로 재림사상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한계선은 어디냐? 한계선에서 중심 되는 점은 과연 어디냐? 재림의 때라는 것입니다. 이때를 위하여 기독교인들이 수천년 동안을 수원하며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재림의 때는 언제일 것이냐? 이 재림의 때는 먼저 어떠한 제한된 민족을 중심삼고 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민족을 중심삼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 인류를 대표해야 하고, 천운과 역사시대를 대표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한 시대를 기점으로 찾아 올 수밖에 없는 것이요, 어느 한 민족을 중심삼고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운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가지고 상대될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마련될 것이 아니냐? 이러한 때가 역사시대에 한번만이라도 나타났었더라면 거기에 하나님이 함께하시어 역사시대의 수많은 인간들이 바라는 최고의 인격자가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가 나타나서 역사적인 열매가 되고, 시대적인 열매가 되고, 미래의 기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36-228
인류의 전성기는 재림의 때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류의 사랑이 하나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본성의 가치를 들고나올 수 있는 한 점이 있어야 되는데 그 점이 어느때가 될 것이냐? 바로 재림의 때가 그때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과거의 사람도 소원했던 것이요, 현재의 사람도 소원하는 것이요, 미래의 사람도 소원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3시대를 주관하고도 남을 수 있는 정상의 때입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빛이 발하고 새로운 인연이 벌어진다 할때는 그 인연은 역사적인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재림의 때에는 역사시대의 어떠한 문화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대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소화시키고도 남을 수 있는 기준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이 바라는 전체 가치의 중심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재림의 때는 반드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재림의 때가 언제 올지는 모르나 언젠가는 온다고 믿고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지금까지 바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제와 오늘이 확연히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녘에 솟아오르는 태양도 언제나 마찬가지의 모양입니다. 계절을 살펴봐도 봄이 지나가도 그 이듬해에는 반드시 봄이 다시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가는 가운데 젊은 청춘시대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년시대를 거쳐 노년의 시대를 거쳐갑니다. 언제 왔다가 언제 가는지 모르게 스치는 바람처럼 일생이 지나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일생 가운데에서 인연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인연은 부모로부터 타고난 인연이 아니라 찾아오는 세계와의 인연입니다. 이 인연을 어떻게 결정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어떻게 출세를 한다느니, 역사적인 인물이 된다느니 하며 동경하는 이상도 전부다 이러한 환경을 중심삼고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러한 정상의 한때를 위해 어떻게 해 나왔고, 앞으로 우리 통일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때는 혼자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산맥이 연이어 나가면서 점진적으로 높아지듯이 현상태에서 점점 높은 정상을 향해서 연결되는 인연을 거치지 않으면 바라는 그때는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시대를 복귀섭리의 시대권을 중심삼고 볼 때, ‘종의 종’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종의 종’의 시대란 어떤 때이냐? 주인이 없는 시대입니다. 종의 새끼들이 종의 종을 대하여 주인의 행세를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진짜 주인이 주인의 행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짜 주인이 주인의 행세를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의 종의 시대가 복귀섭리 시대에 들어오면서 종의 시대로 들어가고, 종의 시대에서 다시 양자의 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양자의 시대로부터 직계 자녀의 시대로 들어가며, 직계 자녀의 시대로부터 부모의 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복귀의 세계로 가야 할 역사의 진전과정입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있어서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을 직접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부모를 만나야 됩니다. 그 참부모가 청춘의 시대에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의 청춘시대는 개인의 청춘시대가 아닙니다. 그가 서 있는 청춘시대의 자리는 양자의 시대를 거치고 자녀의 시대를 거친 역사적인 운명을 지닌 자리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가치를 개인적으로 볼 때는 너와 나의 일대일의 입장이지만 그로 말미암아 전체와 개체가 인연을 맺을 수 있고, 절대자와 상대될 수 있는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참부모님을 모시게 되면 종의 종으로 왔던 사람이나 종으로 왔던 사람이나 양자로 왔던 사람이나 다 직계 자녀로 그 가치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참부모와 연결될 수 없으며 인연을 맺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그루의 나무가 춘하추동을 거치면서 아무리 잘 자라고, 봄을 맞이하여 꽃을 아무리 아름답게 피우고, 열매를 아무리 많이 맺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가을에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완숙된 결실로서 주인에게 거두어지지 못한다면 그 나무의 풍성한 잎이며, 꽃이며, 맺힌 열매 등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36-230
참부모를 모셔야 역사의 정상에 설 수 있다
역사의 모든 가치를 종합한 한 중심을 중심삼고 새로운 문화의 출발을 보기 위하여 지금까지 거쳐온 역사의 발자취를 생각하게 될 때, 인류는 그야말로 엄청난 한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전환기에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때를 슬기롭게 맞이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이런 운명을 거쳐온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6천년의 역사를 남기면서 이렇게 걸어온 것은 그 한때를 맞이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그러한 시점을 바라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참부모의 가치를 찬양하고 따라가더라도 그 때를 맞이해 놓고 찬양을 해야 됩니다. 부정을 하는 가운데에서의 찬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 아무리 위대한 성인이 왔다 하더라도 그 가치를 찾지 않는 자리에서는 그의 가치를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 가치가 높다 하더라도 그 가치를 기준삼아 가지고 그 자리를 결정하지 않으면 그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잘했더라도 자기의 가치를 결정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보게 될 때 표면적으로는 형제입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의 동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다른 점이 무엇이냐? 세례 요한은 사회적으로 당당한 제사장 사가랴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모든 친척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사생아로 태어난 예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요셉 가정에서나 부락에서 의붓자식 취급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친척 중에서도 어느누구 하나 동정하는 사람이 없는 고독한 환경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에 비하여 세례 요한은 당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세례 요한이 아무리 당당하다 하더라도 정상의 자리에서 당당하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자리에서 당당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 자신이 정상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정상의 자리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심판이란 무엇이냐? 참과 거짓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참과 거짓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잼대가 있어야 됩니다. 그 잼대는 웬만큼 갖추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점수로 따져 보면 몇 점을 중심삼고 결정해야 되느냐 하면 백 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품은 사람, 혹은 한 나라의 애국자, 혹은 성현들의 발자취를 보면 그들은 자기를 위하여 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나라를 위하여 살고, 세계를 위하여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살려고 했기 때문에 충신의 반열에 동참할 수 있었고, 세계 성현의 반열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볼 때, 이러한 한 무리나마 최고의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정성을 들이는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시대에 있어서 종의 종의 시대를 정상에 연결시키고, 양자의 시대를 정상에 연결시키는 초점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그러한 역사적인 성현의 도리를 표준으로 삼아 가지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운명권에 있다는 것입니다.

수천년 전에 왔다 간 성현들은 지금의 우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남긴 사상과 교훈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것은 정상의 자리로 점핑해 들어온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로 타고 넘을 수 있는 것이요, 양자의 자리에서 직계 자녀의 자리로 타고 넘을 수 있는 것이며, 자녀의 자리에서 부모의 자리로 타고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남긴 정신적인 사상을 올바로 인계받고자 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 목적의 중심에 도달하고자 하는 통일교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정상을 향하여 점핑해 가지고 최고의 정상의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이것을 바라고 뚫고 들어가는 그 순간은 어렵지만 이것만 통과하면 어디든지 다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내 한 개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 정상의 자리에 도달하기만 하면 우주적인고 천주사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잘나고 못나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36-232
정상의 이념이 되는 통일사상
그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정상은 역사시대에 기필코 올 것입니다. 그것은 광명한 새 아침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밤 12시가 되어 땡 하고 울리는 시계의 음이 없어지기 전부터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밖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가 나타날 때까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두려운 것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출이 되면서 둘이 대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인연을 찾아오던 사람들은 비로소 거기에서 자연히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어떤 내용을 가졌느냐?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통일교회가 역사에 길이 남기고자 하는 내용을 가지지 못하였다면 그런 자리에 못 갈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역사의 인연을 통해서 그런 내용을 감아 쥐고서 역사를 발전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 부모를 섬기는 타락한 인간들은 참부모의 길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개인적인 참부모가 아니라 세계적인 참부모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를 모신 자식으로서 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일 것이냐? 개인적으로만 참부모를 모시는 것이 효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세계의 정상을 중심삼고 효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다운 효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다운 충의 도리는 무엇이냐?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서 충을 다하는 것이 참다운 충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소망의 주의는 어떠한 주의라야 되느냐? 과거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이런 요건을 지닌 주의를 가진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딛고 미래의 문화세계를 소망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섭리의 기준을 가지고 그 세계를 향하여 당당히 나설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시대의 암울한 분수령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문제삼지 않고 최고의 정상의 자리를 향하여 갈 수 있는 내용을 지닌 자만이 앞으로의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 기수가 될 것이요, 책임자가 될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그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토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세계적인 기준을 남겨야 하는 그 마음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통일사상을 배워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이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정상에 올라가는 것을 소망하고 가다 보면, 발전하는 데 있어서 어떤 때는 내려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최고의 정상을 드러낼 수 없는 것입니다. 참사람은 이러한 정상의 길을 통과했기 때문에 부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 가치를 높여 가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이러한 흐름을 타고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높은 것을 바람과 동시에 낮은 것도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인연지으려면 낮은 곳을 가면서도 높은 곳까지 드러낼 수 있는 마음이 솟구쳐야 됩니다. 이런 사상을 지니고 세상을 중심삼아 가지고서 새로운 세계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가 있어야 되는데 그 때가 어느때일 것이냐? 우리 통일교회가 그러한 때를 바라고 나왔다면, 통일교회 자체가 그러한 역사를 갖고 있느냐? 협회 차원에서 볼 때, 그때가 바로 정상의 때일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때가 최고의 정성시대일 것이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배웠다고 해서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느냐. 즉, 어느때가 제일 정성시대인가를 아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정성의 시대와 인연을 맺어야만 타락의 인연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 이 정성시대의 인연을 망각하거나 상실해 버리게 되면 아무리 중요한 사명을 가졌고, 아무리 중요한 가치의 내용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 자신은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과거와 같은 역사를 만들 뿐이며, 그가 생활해 나가는 생애노정도 변함없는 내용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그러한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더욱더 높은 길 낮은 길을 가려 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36-234
정상에 오르려면
여러분 자신들은 지금 얼마나 심각해야 되느냐?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정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얼마나 심각했겠느냐? 노아가 12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방주를 만들라고 하는 명령을 받고 그 수난길을 나오면서 얼마나 심각했겠느냐? 또한 야곱이 21년 동안 하란 땅에서 고생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얼마나 심각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얍복강에서 수많은 재물과 자녀와 종들을 먼저 건너게 하고, 자기 혼자 남아 밤을 새워 가며 천사와 싸울 때에 자신의 환도뼈가 부러져 나가도 천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쓰러져 죽더라도 놓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야곱이 얼마나 심각했겠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그 자리가 얼마나 심각했겠느냐? ‘아바 아버지여, 만일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오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한 기도가 얼마나 심각한 기도였겠느냐?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오늘날의 역사가 있기까지 조심스러운 정성의 길을 달려오면서 얼마나 심각했겠느냐? 쓰러져 가는 이 세상 가운데에서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부딪쳐 가지고 이것을 좌우로 살피면서 최후의 심각한 결의를 가져 가지고 달려 나온 운명의 갈림길이 얼마나 많았겠는가를 여러분은 생각해야 됩니다.

앞으로도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때로는 최고로 비참한 고비도 있을 것이고, 이 고비를 기반으로 해서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정상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최고의 위치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정상에 올라갔다 하더라도 발전의 터전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정상에 있기 전에는 계곡, 즉 골짜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골짜기를 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 골짜기에서 승리가 다져지지 않고서는 정상을 바라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다짐하고 결의하지 않는 사람은 정상에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정상에 갈 수 있는 환경 시대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아무리 그 과정이 좋고, 자기 스스로 자랑할 수 있는 가치를 지녔다 하더라도 그 정상의 가치와 인연을 맺지 못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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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의 길은 조심하면서도 심각하게 걸어가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조심하면서도 심각하게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개척자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핍박을 받고 몰림을 당하고, 자기의 운명이 죽음길로 내몰리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절대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심각한 길을 조심조심 하나님과 더불어 헤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동맥이면 동맥, 정맥이면 정맥을 통하여 그 맥박이 같은 맥박의 고통으로 울려내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감정이 그런 자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피가 동맥으로 내보내지면 반대로 정맥으로 다시 들여보내짐으로써 같은 맥박에 같은 고동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같은 맥박에 같은 고동으로 움직일 수 있는 내용을 가져 가지고 같은 맥박의 인연을 가져올 수 있어야만 상대적으로 하나의 인연이 결정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를 중심삼고 볼 때 오늘날 우리는 과연 위대한 사명을 가졌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 이러한 자리를 결정지어 놓았다고 해서 위대한 사명을 다했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를 결정짓지 못하고는 어떤 위대한 사명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사명은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전성시대로서 찾아올 수 있는 우주사적인 현시대에 있어서 그러한 자리를 결정할 수 있는 시각 우리 앞에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 자신이 그 시기를 중심삼고 정상에 올라설 수 있는 경계선을 넘기 위하여 어떤 내용과 인연을 가졌느냐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이나 오늘날 사람이나 정상에 선 사람은 복귀의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정상의 가치를 중심삼고 충성을 하게 되면 그는 억천만대에 이르러도 변하지 않고 남아지는 것입니다.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정상에서 상속을 못 받는 날에는 또다시 골짜기에서 투쟁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시련과 투쟁의 역사가 가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또 다시 투쟁의 역사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에서 인연이 되고, 정상에서 관계를 맺고, 정상에서 그 인연을 상속받아야 할 뜻을 알았다면 우리는 생애노정을 어떻게 넘을 것이냐? 이것이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첫째 희망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전수받아 가지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꼭대기를 거치게 될 때도 있을 것이고, 골짜기를 거치게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입장에 있든 자기의 입장에서 정상의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골짜기면 골짜기, 정상이면 정상을 드러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을 중심삼은 종족적 천국 이념이 벌어질 것이요, 종족적 정상의 기원이 벌어질 것이며 세계문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로를 스스로 다짐해 가고, 이러한 뜻을 중심삼고 생애노정을 갈 때에 정상과 경계선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뚜렷한 산맥과 같은 그런 고비를 넘기지 않으면 그 일생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연결시켜 상속시키는 데 있어서 사명과 보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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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장서서 복귀의 길을 가야 할 축복가정 부인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가정들은 생각해 보세요. 어느때는 축복을 해주더니 지금은 서로 떼어 놓는다고, 어떤 가정들은 축복이고 뭐고 다 부정하는 자리에 있다는 겁니다. 선생님은 1970년도를 중심삼고 잘살라고 축복을 해주시더니 이제 와서는 전부 떼어 가지고 지방으로 활동을 내 보낸다고 불평을 한다는 거예요. 이렇듯 어떤 면에 있어서 통일교회는 비참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 비참을 비참으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영광으로 돌리느냐? 영광으로 돌린다면 그 동기가 어떤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비참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비참한 배경을 갖고 그것을 영광으로 돌릴 수 있는 영광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지금까지 그러한 길로 걸어 나오게 한 것은, 여러분이 복귀시대에 있어서 정상을 향해 넘어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가정들이기 때문입니다. 축복가정들이 최고의 정상의 자리를 걸어가야 됩니다. 골짜기를 거쳐가지고 정상의 자리를 넘어야만 비로소 메시아의 사상을 이어받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 골짜기를 가는 데는 누가 앞장서야 되느냐? 여자가 앞장서야 됩니다. 여자가 앞장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왜 하필 여자가 온 인류 앞에 앞장을 서야 되느냐? 지금까지 정상의 길을 닦아 나온 것은 남자였습니다. 지금까지 6천년 동안 복귀의 길을 남자가 닦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길에는 여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자가 이 길을 닦아 정상에 올라왔으니 내려갈 때에는 누가 내려가야 되느냐? 여자가 내려가야 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남자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남자들은 정상의 인연을 가지고 그것과 연결지어야 됩니다. 이걸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가정들에게 있어서 비참상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자리에서도 내일의 소망을 위해서 급진적인 진격을 해야 됩니다. 그리하면 최후에는 희망의 한때가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자들이 혼자 내려간다고 하지만 내려갈 때에는 혼자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같이 따라 내려가느냐? 마음으로 남편이 따라가고, 아들딸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통일의 딸이 내려가는 데는 누구를 중심삼고, 누구를 바라보고 내려가느냐? 정상에 계신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려가면 아무리 내려가더라도 그녀는 다시 올라올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 길을 내려가는 것은 하늘의 갈 길을 닦기 위한 것이요, 남편의 갈 길을 닦기 위한 것이요, 아들딸의 갈 길을 닦기 위한 것입니다. 여자들은 이러한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여자는 하늘을 망하게 했고, 나라를 망하게 했고, 가정을 망하게 했고, 또 남편을 망하게 했고, 아들딸을 망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의 기원이 여자이기 때문에, 가정의 인연과 사랑의 인연을 가지고 망하게 했던 것들을 다시 복귀해야 할 운명이 여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어떻게 타락했느냐? 해와는 혼자서 타락했습니다. 아담은 타락하지 않았는데 아담 몰래 먼저 타락을 했던 것입니다. 그 타락은 아담과 아무런 관계도 없이 했으며, 하나님과도 관계가 없이 했고, 그 나라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이 혼자서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해와는 혼자서 저질렀던 그 타락의 한을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혼자서 사랑의 인연을 다시 재현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과의 인연을 복귀하고, 남편의 사랑을 복귀하고, 부부의 사랑까지 복귀해야 됩니다. 이것을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것을 터전으로 해서 복귀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36-238
역사적인 한 시점을 이루어야 할 때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이제는 올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때가 슬픈 때냐 기쁜 때냐 할 때, 남자에게는 말할 수 없이 슬픈 때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가정을 중심삼은 남자에게는 말할 수 없이 슬픈 때이지만, 여자에게는 말할 수 없는 희망의 때라는 것입니다. 이때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남녀평등권을 주장할 수 있는 역사적인 한 시점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이때가 여자에게 있어서 역사적인 최고의 전성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전성시대라고 해서 간판을 붙이고, 정상이라고 해서 나발부는 이런 때가 아닙니다.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게, 그 내용을 중심삼고 천지를 뒤넘이치면서 절대적인 운명으로 알고 받들고 가야 하는 때인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아내를 가진 남성들이 아내를 희생시킬 때가 옵니다. 그 남편들에게는 영광의 한때가 올 것입니다. 세계 인류 가운데 남성으로서 자랑할 수 있는 남성의 권위를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남성의 염원이 무엇이냐?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가 세계적이요, 천주사적인 참된 인연을 가진 여성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이럴 때 부인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떤 부인은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명령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고생을 하는구나. 아이구, 죽겠다’라고 하면서 선생님을 원망합니다. 그 자리를 피해 도망가 버려도 난 상관없습니다. 여자가 잘못해서 아담 후손들이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는데 뭐 어쩌고 어째요?

예수님도 죽을 자리에 들어가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했었습니다. 이래야 됩니다. 여러분이 결혼해 가지고 떨어져서 활동을 하는 것은 역사에 한번밖에 없는 역사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는 축복해 주더니 이제는 남편과 떨어져서 지방으로 전부다 내몰고… 이게 어디 남편인가? 남편도 아니고 무슨 편도 아니고. 이게 뭐냐 이거야’ 한다는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남편들은 무엇이냐 하면, 천사장의 후손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의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의 자식이 주인이 와서 사랑을 해주는데, 왜 그러느냐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아내를 데려다가 다른 데로 팔아먹지 않는 한 어떠한 일을 시키든지간에 왜 그러느냐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부름을 시키든지 무엇을 시키든지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따라서 천사를 전부 다 파탄시켜 버리고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종의 입장이기 때문에 싫더라도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무섭게 하자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종의 입장을 교체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실적을 남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종의 입장으로서 하늘의 특권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아무런 내용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리를 보아서도 그런가 안 그런가 생각해 보세요. 여기 남편되는 사람들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청산짓기 위해서는 쉴 사이가 없는 것입니다.

36-240
일선에서 활동하는 부인들을 후원해야 할 남편들
그러면 남편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아내가 세계적으로 공인받는 한때가 있는 것을 알고 아내가 동원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여자로 말미암아 축복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으므로 여자가 공인받지 못하게 될 때는 남자도 공인을 못 받는 것입니다. 아내가 공인을 못 받게 될 때에는 남편이 있어도 그 남편을 대할 수 없으며, 자식이 있어도 그 자식을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가 임지에 나가 있으면 남편도 아내를 사랑하면서 밤낮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괴로움이 곧 나의 괴로움이요, 당신의 외로움은 곧 나의 외로움이라고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남편들은 임지에 나가 활동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최소한 한달에 2천원씩 돈을 보내 주라는 것입니다. 만약 ‘아이구, 나는 그것 반대해요’ 하고 못 하겠다는 사람은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뜻이 다 이루어진 다음에 가서 손발을 빌면서 ‘아이구 잘못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자 노릇을 못 했다고 탄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숨이 넘어가 자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내를 위해 돈을 보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하겠습니다. 오늘 여기 온 사람들은 틀림없이 보내 주겠지만 말입니다. 만약 안 보내 주면 어떻게 되는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내가 다 밝혀 줄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이 ‘아버지, 그때 엄마가 이런 일을 할 때 엄마에게 돈을 보내 주었습니까? 참말로요’ 또 엄마에게도 ‘엄마는 나가 활동했어요? 참말 했어요’ 하면서 참소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천지가 진동하는 말로 들릴 것입니다. 여기에는 무슨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엊그제 지구장회의 때 지구장들이 본부에서 절반을 보내 주고 남편들이 절반을 보내 주면 좋겠다고 하는데 도둑놈 자식들이라는 거예요. 본부에서 그렇게 해주면 여러분은 그 마지막 고비를 어떻게 넘어가겠습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기 부인들이 동원되는 남편들 손들어 보세요? 아내에게 생활비를 전부 다 보내 주어야 되겠어요, 안 보내 주어야 되겠어요? 보내 주겠다는 사람은 손을 들고 있고, 안 보내 주겠다는 사람은 내려요. 다시 안 보내 주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때라는 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온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모든 일을 전부 다 혼자 선두에 서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시키는 일들을 내가 다 실천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10년 전부터 해 나온 것입니다. 그때에는 왜 선생님이 그렇게 하나 하고 의문시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 지내고 보니 안 그렇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언제 그것을 알았느냐? 10년 전에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 놀음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지지리 시간을 끌다가 이제야 눈을 뜨고서 ‘아이구, 그래서 선생님이 그랬구나’ 합니다.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한때가 왔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남자로서 그러한 일을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차 7년노정에 가담한 사람들은 복받은 사람입니다. 이번 777가정까지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1차 7년노정에 가담시켜 주기 위한 작전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 가담한 사람들은 공의로운 사람입니다. 이제는 내 책임을 다했습니다. 나는 내가 말한 책임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기 위해서 790쌍을 결혼시켰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이건 뭐 장가가자마자 벼락이라며 아내를 임지로 내보낸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산으로 해가 진 줄 알았더니 아침이 지나 뙤약볕이라는 것입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부부 사이에 서로 죽자살자 사랑만 하려고 하면 그 순간부터 굶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하면 탕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 없는 이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6-242
여러분의 고생은 역사에 남아진다
우리 통일교회가 하는 이 일은 후대의 어떤 사람도 못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배가 고프다고 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어요? 당장 자기 배가 고픈데 이런 일을 시키면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싫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여러분은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불평하게끔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여러분을 전부 수련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수련을 받는 데에는 여기 본부에 있는 사람들까지 7백쌍이 다 와가지고 수련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수련을 받고 나면 그때는 가지말라고 해도 가겠다고 할 것입니다. 만약에 아내가 안 나가겠다고 하면 남편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아내가 안 나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나가게끔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김점례씨 왔어요? 「안 왔습니다」 그 사람 얘기하려고 했는데 잘됐구만. (웃음) 뭐 자기가 몸이 약해서 그러니 임지로 나가기 전에 조금 쉬었다가 나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쉬었다가 나가면 도움이 될 게 뭐가 있습니까? 임지로 떠나기 3일 전에 목욕을 하다가 쓰러졌다나요? 한번 쓰러지면 며칠 동안 쉬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남편한테 전화를 해서 ‘아이구 아빠, 나 이렇게 되었으니 전도 못 나가겠어요’라고 하니 남편까지 ‘아이구, 이거 큰일났다’고 하면서 여기에 동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이나 아내나 둘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선생님에게 와서 큰일났다고 하면 선생님이 동정해서 들어줄 것 같아요? 그러면 얼마나 기분 나쁜지 몰라요. 그런 사람은 사탄이 기가 막히게 좋아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또 부인이 뭐, 거리에 나가서 전도도 잘 못 하고, 차를 못 타기 때문에 차를 타면 힘이 들어서 십리도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길래 선생님이 바래다 준다고 했더니 부끄러워서 그런지 당장에 갔습니다. 갈 때 멀미를 하지 않고 잘 갔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핑계만 대는 것은 동정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전도를 못 나가기는 왜 못 나갑니까? 전라남도 장흥 골짜기까지 갔는데 잘 갔다는 겁니다. 거기까지 남편이 데려다 주었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 여자에게는 남자가 충신이라는 것입니다. (웃음)

복귀섭리에 있어서 남자들이 꼭대기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여자들이 골짜기에서 협조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역사인 것입니다. 1970년도를 중심으로 3년이라는 기간을 통하여 이 일을 하라고 한 것도 이러한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골짜기의 길을 걸어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아들딸이 있듯이 하나님에게도 아들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딸을 찾기 위하여 섭리를 해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해와를 찾기 위한 섭리를 해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나님은 6천년 동안이나 해 나오셨는데 그래, 여러분은 3년도 못 하겠습니까?이일은 반드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일을 하게 되면 여기서부터 전통적인 종교의 원칙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아내가 임지에 나가고 없으니 아이들만 데리고 아침에 밥을 먹을 때면 자신이 처량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런 때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세계에서 제일 훌륭한 일을 하는 거란다. 나라를 위하고 하늘을 위해서 추운 겨울에도 밖에 나가서 고생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인들이 그 길을 안 가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남편은 아내에게 예수님이 지금까지 실체대상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하고, 그것을 다시 맞을 수 있는 해방의 한 가정을 위해서 나가라고 해야 됩니다. 남편은 아내를 안심시켜 주어서 가게끔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상의 아내가 되어 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은 책임을 다 했나 반성해야 됩니다. 남편은 남자로서 경제적인 책임을 지고 아내는 여자로서 남편과 자식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삼고 여기서 새로운 세계를 위하여 내적인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내적인 기반을 닦아 놓지 않고서는 사탄의 참소권을 벗어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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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협조의 기준을 찾아 나온 복귀역사
여기서부터 새로운 가정의 출발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들이 우리 아빠 엄마는 참으로 훌륭하다고 할 것입니다. 다른 집에서는 엄마가 하루만 다른 데서 자고 와도 그 집 아빠가 때리고 욕하며 야단이 벌어지는데, 우리 아빠는 엄마가 3년 동안이나 집을 나갔다가 왔는데도 아무 일도 없으니 얼마나 훌륭하신 분이냐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가 오늘날 이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세상에서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무 뜻도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대하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 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나 그들도 그런 때를 당하게 되면 그때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그들은 후회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그만큼의 차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서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가정들은 이러한 역사의 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영광 중의 영광인 것을 알고 천의의 심정으로 하나님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이 안팎으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초석을 함부로 흐트러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뭉개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팀으로 구성되어 가지고, 즉 남편과 부인은 세상에 둘도 없는 하나가 되어서 사위기대의 기준을 이루기 위해 맨 밑창에서부터 시작하여 최고의 정상까지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여러분은 하늘의 뜻을 중심삼고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서 새로운 가정을 붙들고 정성들여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때가 되어 얼굴을 들게 되면 가정적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종족적인 메시아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게 알고 여러분은 세계를 위해서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예수님이 신부를 찾기 위하여 정성들이던 마음과 하나님이 아들딸을 찾아 나오시던 그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과정을 통틀어서 회고해 볼 때,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는 어떤 역사이냐? 모자 협조의 기준을 찾아 나온 역사입니다.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는 모자협조의 길을 터 나온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이 역사는 아벨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해와가 아벨에 대하여 어떻게 모자의 협조를 해야 하는지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해와는 타락하였지만 어머니로서의 자격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들을 대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런 보이지 않는 내적인 마음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노아 때에 와 가지고 모자협조의 기준이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체적인 모자협조의 기준은 어디에서부터 벌어졌느냐 하면 야곱 때부터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은 야곱이 조상 복귀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천년 역사를 보면, 모자협조의 기반이 없어 가지고는 뜻을 못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야곱 때부터 모세 때, 예수님 때까지도 모자협조를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때에도 해야지요?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이 있고, 해와가 있고,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타락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천사장이 해와를 꼬여 가지고 되었고, 그 다음에는 타락한 해와가 아담을 꼬여 가지고 하나님을 저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의 경로입니다. 이렇게 해서 천사장이 사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복귀의 원칙은 반대의 길을 가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도 이와 같은 무리들과는 관계를 끊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36-245
모자협조의 목적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한 것은 아담과 해와와 약혼단계에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혼한 관계에 있는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하나님이 마리아를 빼앗아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리아를 빼앗아야 하는 것은 잃어버린 해와를 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요셉은 누구의 입장입니까? 「천사장 입장입니다」 요셉은 원래 아담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요셉이 천사장 입장입니까? 타락한 후손이므로 씨가 달라서입니다. 즉 뿌리가 다르다는 거예요. 요셉은 타락의 씨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이것을 뒤집어엎으려면 부정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그 씨는 어디에서 나와야 됩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는 아들의 씨가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러니 아들이 필요합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들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타락한 천사장은 사탄이고 요셉은 타락하지 않은 천사장형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려면 아들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왜 아들이 없으면 구원이 안 되느냐? 창조원칙을 보면 누가 먼저 나왔습니까? 「아담입니다」 그러니 복귀하는 데에도 아들이 먼저 나와야 됩니다.

그런데 요셉이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오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있어야 됩니다. 어머니가 없으면 아들이 못 나옵니다. 그러니까 아들을 낳을 수 있는 터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자 협조의 기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들을 낳더라도 그냥 그대로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복귀의 공식을 통해서 낳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말을 알지요? 다말이 누구의 품에 들어가서 애기를 낳았어요? 「시아버지입니다」 시아버지도 아버지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해와, 하나님과 마리아는 무슨 관계입니까? 부녀관계지요? 유다와 다말과는 무슨 관계입니까? 부녀관계입니다. 그래 부녀지간인데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 시아버지와 관계를 가져서 애기를 낳는 법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그랬을까요? 이것은 어디에 가서도 안 풀립니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일생 동안 역사책을 연구해도 안 풀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왕에게는 우리아라는 신하가 있었지요? 그 우리아의 아내는 누구였나요? 밧세바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아가 전쟁에 나간 사이에 다윗왕은 밧세바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왕은 밧세바를 빼앗기 위해서 우리아를 어떻게 했어요? 죽였지요? 죽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안 죽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배은망덕입니다. 사랑의 원수를 죽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의 후손이 6백년 동안 벌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그 원수는 무슨 원수냐? 사랑의 원수입니다. 알겠어요? 원수 중의 원수가 무슨 원수예요? 사랑의 원수입니다. 그러니 그 원수를 죽이면 되겠어요? 안 되는 겁니다. 만약 죽이면 천지가 모두 원수가 되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천년 전 로마 제국을 보게 되면 그때는 전부 다 원수의 이념을 가진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 원수는 사랑의 원수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 아들딸이 태어날 수 있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장래에는 그 원수를 통해 내 아들딸이 태어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이런 원칙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 사상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역설적인 논법이 세워진 것입니다. 그것은 원리를 알면 다 풀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원리를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어낸 것입니까? 내가 지어낸 것이냐는 말입니다. 선생님이 원리를 지어낼 수 있겠어요?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취했기 때문에 솔로몬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보게 되면 음란입니다.

36-247
혈통전환과 가인 아벨
아들을 낳으려면 어머니가 있어야 됩니다. 어머니가 필요하기 때문에 모자 협조가 있어야 됩니다. 모녀 협조는 아닙니다. 모자 협조는 무엇을 하자는 겁니까? 아들을 낳자는 것입니다. 창조원칙에 따라 아들을 먼저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귀역사는 무슨 역사라고요? 재창조역사지요? 「예」 재창조 역사이기 때문에 누구를 먼저 창조해야 된다고 했습니까? 먼저 아들을 창조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누가 필요해요?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엄마입니다. (웃음) 한국말을 보면 엄마라는 말이 더 실감납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없으면 어머니가 먼저 복귀되어야 합니다. 원리가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아들딸 가진 여자들은 어머니 노릇을 잘해야 합니다. 못 하면 큰일납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면 자연적으로 사탄의 혈통을 받습니다.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으면 누구의 아들입니까? 사탄의 혈통을 통해서 나왔기 때문에 사탄이 내 자식이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혈통을 전환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혈통적으로 사탄과 관계가 없다 할 수 있도록 전환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벌어져야 합니다.

사람은 어머니 뱃속을 통하여 세상에 태어납니다. 태어날 때는 혼자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쌍동이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쌍동이로 태어난 사람이나 혼자 태어난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전부 혈통을 갈라놓았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그러려면 개인들끼리도 싸워 가지고 갈라놓는 일이 벌어지고 쌍동이끼리도 갈라놓는 일이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을 보면 아담 가정에는 가인과 아벨이 있습니다. 이들은 형제입니다. 그들 중에 누가 형이냐 하면 가인이 형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중심삼고 보면 사랑은 한 원리이지 두 원리가 아닙니다. 사랑에 두 원리가 있어요? 원리강론에는 무엇이라고 되어 있어요? 비원리적인 사랑이라고 되어 있지요? 타락은 비원리적인 사랑의 입장에 선 것입니다. 그렇지요?이렇게 하다가는 원리강의를 해야 되겠구만.(웃음) 사랑을 중심삼아서 하나가 되어야지 어떻게 둘이 될 수 있어요? 아무개씨 아들이 백명이라고 한다면 그 아들들이 한 형제이지 두 형제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비원리적인 사랑을 가지게 되면 그 아들들은 누구의 차지입니까? 사탄의 차지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각각 누구 편에 세웠다고 했습니까? 가인은 사탄편에 세웠고 아벨은 하나님편에 세웠다고 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래 가지고 되겠어요? 이 위치가 맞아요? 안 맞으니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래 사랑의 열매를 하나님이 먼저 가져야 되겠어요, 천사장이 먼저 가져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먼저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도 하나님이 먼저 했다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을 복귀해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 사랑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세운 사람이 아벨입니다. 복귀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관계를 맺어 기고 부름 받은 사람들은 장자가 아니고 차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맏아들을 죽였던 것입니다. 나도 맏아들들을 앞으로 7년 동안 고생을 시킬 것입니다. 여기에 맏아들은 손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은 준비하고 있으라고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그렇게 하더라도 고맙다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애급에서도 맏아들을 죽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차자는 하늘편이고 장자는 사탄편입니다. 그럼 이 사탄편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의 피를 없애야 됩니다. 사탄의 혈통을 끊어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인이라고 해서 전부 다 죽이면 되겠어요? 안 되겠지요?「예」 그러니까 하나님은 접붙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접을 붙여 하나님의 모든 생각과 생활관을 완성한 입장에 서게 하기 위하여, 즉 하나님의 사상을 그냥 그대로 접붙여 주기 위해 사람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 사상입니다.

36-249
예수님의 혈통의 내역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은 그 사상을 지닌 왕자로 오셨던 분입니다. 예수님은 오셔 가지고 사탄세계의 나라가 된 이스라엘을 하늘 세계의 국가로 만들어야 되고, 그 나라의 백성을 선민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원리에 있듯이 가인을 찾지 못하면 아벨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반드시 가인이 있어야 아벨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인 가정이 있어야 아벨 가정이 나올 수 있고, 가인 국가가 있어야 아벨 국가가 나올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에 사탄은 수많은 사탄편 국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아벨적인 개인은 아벨적인 국가를 만들어야 됩니다. 국가가 한계선입니다. 그렇지요? 아벨을 중심삼고 아벨 국가권을 만들려니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를 얻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승리했다는 뜻인데 누구에게 승리했다는 것이냐면 사탄한테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핏줄을 중심삼고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국가는 그렇게 되었어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유다가 누구입니까? 야곱의 네째 아들입니다. 야곱이 몇 대만에 승리했느냐면 3대만에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조상인 예수님이 왜 유다 지파여야 합니까? 유다는 야곱의 네째 아들입니다. 그를 평면적으로 보면 야곱의 마지막 아들입니다. 춘하추동 사계절을 완결지을 수 있는 입장에 네째 번입니다. 사위기대의 원칙에 있어서 평면적으로 완결지을 수 있는 입장이 네째 번이라는 겁니다.

유다의 혈통이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의 혈통으로 이어져 나왔느냐 하면, 혈통의 문제를 복귀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새롭게 전환점을 만들어 나왔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혈통으로 이어져 나왔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 때부터 형제를 중심삼고 바꾸려고 했습니다. 동생이 형이 되고, 형이 동생이 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누구의 사랑이 먼저 결실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결실되어야 하는데 순서가 거꾸로 되었으니 순서를 바로 잡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생이 형의 자리로 올라가야 되고 형이 동생의 자리로 내려가야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할 수 없었으니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싸움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참것이 나오기 전에 거짓것이 먼저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사상적인 세계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사탄이 먼저 공산당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또, 사탄편인 이북에서는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합니다. 그것은 참아버지가 나오기 전에 거짓 아버지가 먼저 나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라진 나라에서는 반드시 세계적인 역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 판문점이 세계에서 한 곳입니까, 두 곳입니까? 「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편과 사탄편이 서로 대치하면서, ‘이것은 내편이고 그것은 네편이다’ 이런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은 세계적인 국가가 됩니다. 전후(戰後) 21년 동안 경제부흥을 해서 자립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것은 배후에 이런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공화당과 정부가 잘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공화당은 부패했습니다.

앞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일대를 총괄하는 기수가 나와야 됩니다. 그 기수가 누가 될는지 모르지만 기수가 나오려니, 진짜가 나오기도 전에 가짜가 먼저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36-251
혈통복귀의 터전 위에 태어난 예수님
이런 것을 전부다 얘기하자면 한정이 없습니다. 지금 세계가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 다 원리원칙에 따라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의 원리만 알면 만물박사가 됩니다. 대학교의 무슨 학박사들은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것을 알아요? 모른다는 겁니다. 근본된 내용을 알아야지 형편없는 결과만 알고 있으니까 나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서가 거꾸로 되었기 때문에 바로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순서를 바로 잡아야 되겠으니 이런 일을 한다는 겁니다. 순서를 바로잡는 일은 야곱 때에도 벌어졌습니다.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을 때 야곱이 제물을 모두 에서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에서는 결국 야곱한테 굴복했습니다. 만약 그러지 않고 야곱이에서한테 굴복했으면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는 가인은 아벨이 자기에게 굴복하지 않는다고 때려죽였습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노아 시대에도 형제가 하나 안 되었던 것이 아브라함 시대에 와서야 에서가 야곱에게 굴복함으로써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싸움을 했습니다. 야곱과에서는 쌍동인데 동생 야곱이 형에서에게 팥죽으로 장자의 자리를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형에서가 동생인 야곱한테 굴복했습니다.굴복함으로 말미암아 장자의 자리가 바뀐 것입니다. 나이 40이 되어 가지고 굴복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본래 바꿔치기 놀음은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복중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핏줄이 복중에서부터 시작됐으니 복중에서 바꿔치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다말의 아들 베레스와 세라를 중심삼고 복중복귀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세라는 형이고 베레스는 동생입니다. 복중에서 형의 손이 먼저 나오는데 동생이 그 형을 밀치고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베레스란 말은 ‘밀치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형 세라의 손이 먼저 나올 때 그 손에 홍사를 맨 것은 앞으로 빨갱이의 공산당이 나올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웃음) 이렇게 먼저 나오는 형을 동생이 밀치고 나왔습니다. 서로 먼저 나오려고 복중에서 형제끼리 싸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에게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창 25:23)”고 하신 것입니다. 두 나라로 나뉜다는 겁니다. 한 나라는 하늘 나라이고, 또 한 나라는 사탄 나라인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싸워 가지고 혈통복귀를 하자니 3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복중에서 싸워 뒤집어 가지고 복중에서부터 혈통을 계승했다는 기준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3대만에 외적으로 승리했지만, 내적인 승리의 기반은 다말의 복중에서 태어난 베레스로부터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원칙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세워서 누구를 먼저 찾아야 되느냐 하면 아들입니다. 사랑받아야 할 아들을 먼저 찾아야 하기 때문에 거꾸로 복중에서부터 찾는 놀음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천륜의 도리입니다. 베레스와 세라는 이러한 승리의 실적을 역사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그리고 복중에서 동생이 승리함으로써 혈통이 복귀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전에는 사탄의 혈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복중에서부터 싸움을 해 가지고 승리한 기준,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전통을 받아 가지고 태어난 아기에 대해서는 사탄이 참소할 조건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이와 같은 입장에 선 분이 예수님입니다.

36-252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한 마리아
요셉은 천사장의 입장이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입장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복중에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는 어떤 입장이냐 하면 다말과 같은 입장입니다. 그때의 다말의 행동을 보게 되면, 그게 말이나 될 일입니까? 창녀의 모습을 해 가지고 시아버지를 꼬인 것입니다. 창녀의 모습을 해 가지고 길가에 있다가 시아버지를 유혹해서, 관계를 가져 가지고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것은 왜 그랬느냐?

다말이라는 여인은 유다의 아들에게 시집을 갔는데, 그 가정은 유다 지파로서 하나님이 혈통적으로 축복해 준 가정입니다. 그러기에 다말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혈통을 남긴다는 보다 중대한 입장에 서야만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탄의 후손으로서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혈통을 남기겠다는 뜻에서 볼 때, 자기 생명이 희생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체면과 위신과 생사 문제까지도 전부 다 초월할 정도로 하나님의 혈통을 존중시했습니다. 이것이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혈통을 계승할 수 있는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있을 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눅 1:31)”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눅1:34)”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고 하니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계집종이란 말은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한다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반드시 메시아가 올 것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그런 주님이 어떤 여성을 통해서 태어나겠나?’ 생각하면서 소망에 가득찬 인연을 추구하던 여성입니다. 그러한 마리아는 ‘하나님이 나와 같은 이런 보잘것없는 여성을 찾아와 가지고 말씀하셨는데 내 어찌 모시지 않겠는가’ 하고 생명을 내걸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처녀가 잉태하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렇지요?「예」 처녀가 간음하면 돌로 쳐서 죽이는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자기 가문의 체통, 자기 체면, 자기의 생명을 다 초월하여 처녀의 몸으로서 임신한다는 것이 될 일입니까? 변명도 할 수 없이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는 마음, 메시아가 올 것을 추구했던 마음이 누구보다도 간절했습니다. 다말과 마찬가지로 숙명적으로 시련이 일치됐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순수한 마리아의 몸을 통해 역사적인 내용을 인계받은 예수님이 잉태되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다말의 복중에서 형제가 싸워 가지고 장자를 복귀한 승리적 기반 위에서 전통적 인연을 계승한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여 낳았기 때문에 거기에는 사탄의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입장인,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입장에서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예수님은 이런 분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이것이 이치에 맞지요?「예」

그러면 모든 사람이 왜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안 되느냐? 혈통이 그릇된 인간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그 혈통을 바꾸지 못합니다. 혈통을 바꾸지 못하면 천국에도 못 들어갑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사탄의 인연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났다고 꺼드럭거리는 세계적인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혈통이 바뀌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종교의 도주라 하더라도 예수님을 안 믿으면 천국에 못 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중에서부터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고 태어났지만 여러분은 복중에서부터 사탄의 참소를 받고 태어났기에 사탄의 참소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사탄권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권내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약시대에는 장자를 잡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는 은사의 시대이므로 장자를 죽이는 것 대신 예수님에게 접붙이는 것입니다.

36-254
예수님에게 접붙이려면
그러면 접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잘라야 됩니다. 감나무를 접붙이려면 감나무 밑둥을 잘라야지요? 그럼 사람을 접붙이려면 어디를 잘라야 되나요? 목을 잘라야 됩니다. 알겠어요? 목을 자르면 눈도 죽고 코도 죽고 다 죽습니다. 이 말은 다 부정하라는 말입니다. 부정을 거치지 않고는 긍정의 축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종교는 부정하라고 가르칩니다. 현실을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더 합니다. 통일교회에서는 무엇까지 부정하라고 하느냐 하면 아버지 어머니까지 부정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다니는 아들딸의 부모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은 자기만 알라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내가 언제 나만 알라고 그랬어요? 가만히 있어도 여러분 마음이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마 영계의 영인들이 여러분을 들이쳐서 기합을 줄 것입니다. 그렇지요? 세상에서 이렇게 하는 곳은 지금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통일교회식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다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접붙이려면 목을 잘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보는 것도 예수님같이 보고 생각하는 것도 예수님같이 생각하고 사는 것도 예수님같이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사상이 무엇이냐? 예수님은 부모이니까 세계를 위해서 살고, 세계의 아들딸을 전부다 자기 아들딸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래야 됩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자’라는 표제가 통일교회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인류를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아무나 할 수 있어요?

어머니가 없으면 아들이 태어나지 못하기에 하나님은 이러한 어머니를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알겠지요? 그러한 가운데에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은 하늘 왕자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종의 몸뚱이를 빌려 가지고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아버지가 종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아들을 태어나게 했다면 종의 몸뚱이에서 태어난 그 아들은 누구의 아들입니까? 종의 아들입니까, 아버지의 아들입니까?「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마찬가지로 마리아는 종의 입장입니다. 그러니 주인은 시집가지 않은 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첩을 얻는 것이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주인의 마음대로 종들을 시집보내고 안 보내고 했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 앞에 종과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의 몸을 빌려서 태어난 아들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태어난 아들의 상대가 누구냐? 아내가 될 여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꼭 있어야 되는데 어디에서 찾느냐는 거예요. 요셉 가정과 사가랴 가정은 상대적인 가정으로서, 아벨 가정과 가인 가정의 입장입니다. 만일에 사가랴 가정의 세례 요한에게 여동생이 있어서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처남으로 삼았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십시오. 가정적인 입장에서 이런 일을 누구보다도 먼저 했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세례 요한은 외적인 아담형입니다. 천사장의 입장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 요한만 예수님과 하나되었으면 예수님이 죽긴 왜 죽어요? 배신을 당했으면 당했지 죽긴 왜 죽어요? 죽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죽으러 왔다고 믿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기독교인들이 천국에 갈 수 있겠어요? 천국에 못 간다는 겁니다. 이념적으로 딱 걸리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가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이런 내용을 너무 자세하게 가르쳐 주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기분 나쁠 때가 많습니다. 다이아몬드와 같이 귀한 내용인데도 가만히 보면 그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데도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이유만 많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던 기독교인들에게 내가 말을 하면 그 내용을 대번에 이해하는데 말입니다. 통일교인들 중에 기독교를 믿던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 기독교를 믿지 않던 이방 사람들을 끌어모아 가지고 암만 얘기해 주니 ‘그게 그런가?’하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귀가 꽉 막혀 가지고 눈만 껌벅껌벅하니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내용을 다 가르쳐 주려니 뼛골이 녹아납니다. 여러분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을 얼마나 속을 썩히고 얼마나 고생시켰는지….

36-256
예수님의 신부를 준비해야 했던 마리아
창조원칙을 보면 아담을 먼저 지으시고, 그 아담을 중심삼고 해와를 지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아들과 협조해 가지고 아들의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물론이요, 마리아도 협조해 가지고 신부를 찾아야 된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마리아가 책임을 못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날 마리아는 갈릴리 가나의 잔칫집에서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고 하자 예수님은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 말은 남이 장가가는 데 무슨 상관이냐는 거예요. 즉, 예수님이 장가갈 때가 되었는데도 왜 마리아는 모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마리아가 책임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장가를 갔으면 예수님의 아들딸은 하나님의 손자이자 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존속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거룩한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미친 놈들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사교 중의 사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세인으로 와 가지고 장가간다는데 뭐가 어째요? 그것에 대해 ‘오, 우리 거룩한 하나님이 장가를 가다니’ 하며 실망한다는 거예요. 왜? 장가를 가면 거룩하지 않아요? 남자나 여자나 제일 거룩한 것이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장가를 가서 아들딸을 낳았다면 교황은 누가 되겠어요?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되겠어요?(웃음) 예수님의 직계 아들딸들이 로마의 교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의 왕은 자연히 되었을 겁니다.

이렇게 땅 위에 기반을 갖추려고 했던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이스라엘권을 잃어버린 기독교는 영적 이스라엘권만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에게는 기반을 갖출 수 있는 땅덩이가 없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이 차지할 수 있는 왕국입니까? 그러니 쫓김을 당하고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비밀을 밝혀 가지고 나오니까 종과 같은 기독교인들이 무서워서 지금 우리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반대하겠으면 해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마치 공산당이 조직을 만들어 부르조아를 타도하자고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밀려나나 내가 밀려나나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누가 밀려나게 될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 밀려나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밀려나겠어요? 그 사람들이 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단 한 사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통해 가지고 해와를 지었습니다. 그렇지요? 「예」 구원섭리 역사는 재창조역사이기 때문에 원리대로 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신부를 맞이해 주기 위해서 준비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할 수 없이 집을 떠난 것입니다. 집을 떠나서 거지떼 같은 사람들을 모은 것이 열두 제자입니다. 집안에서 예수님의 신부를 찾아 주었더라면 그 일가 사람들이 열두 제자가 되게 됩니다. 그렇지요? 예수님은 가만히 앉아 가지고 ‘이것은 네가 하고 저것은 네가 해라’ 이렇게 다 맡겨 주면 되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나돌아다니면서 그렇게 힘들게 제자를 구하는 일은 안 한다는 거예요. 당신의 유대인들은 대제사장 사가랴 가문의 세례 요한의 말이라면 전부 다 따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 끌려 온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었으면 예수님은 유대교인과 교법사 제사장들과 하나되어 그들에게 사탄편 국가인 로마 제국에 대해 반기를 들라고 했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아벨 국가인 소(小)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대(大) 사탄 국가인 로마를 굴복시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로마는 사통팔달한 세계 문화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로마만 굴복시킨다면 기독교와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그때에 이미 뜻은 다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예수님이 4백년만에 로마를 정복했는데, 만약 예수님이 살아 있었다면 40년 동안에 로마를 정복하지 못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도 예수님이 80살 되기 전에 로마를 다 요리했을 거예요. 요리만 해요? 구워 가지고 간장 찍고 소금 찍어서 나누어 먹었을 것입니다. (웃음)

36-258
요셉의 입장에 있는 통일교회
가인이 아벨을 지배한 것을 복귀원칙에 의해 반대로 복귀해야 하는 데, 큰나라에 있어서는 작은 동생 나라와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야곱 가정을 놓고 볼 때는 요셉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요셉은 열 한째 아들입니다.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이 아니라 애급에 팔려갔던 야곱의 열한째 아들인 요셉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요셉이 야곱의 열 한째 아들인데, 이 11수는 10수를 중심한 재출발수입니다. 알겠어요? 재출발수이기 때문에 요셉이 애급에 가서 총리대신이 된 것입니다. 요셉은 나라 없는 외로운 이방인의 자식과 같은 자리에서 이스라엘의 축복을 거두어들인 중심존재가 됐습니다.

지금 통일교회가 요셉과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그때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온갖 계락을 다 짜냈던 것처럼 통일교회도 시련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방과 같은 한국에 와 가지고 자꾸 커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전도를 할 때 문 아무개 하면 자연히 다 알게 됩니다. 통일교회 그 양반 하게 되면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판도가 대단히 커졌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이렇게 해가지고 그 판도가 대한민국보다 커지게 된다면 대한민국도 따라오지 별수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를 믿든가, 그러지 않으면 죽든가 도망가든가 해야 합니다.(웃음) 웃을 일이 아닙니다. 이런 배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천하가 다 반대해도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동네 친구에게 한 대 맞았다고 해서 대들었다가는 둘 다 망한다는 겁니다.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을 붙들고 싸움을 하지 않는 거예요. 이것은 잘나서 그런 거예요, 못나서 그런 거예요? 「잘나서 그렇습니다」 아니예요. 어이가 없어서 그러는 거에요, 어이가 없어서.(웃음) 상대가 되어야 싸움을 한번 하지요. 싸우더라도 싸울 만해야 싸울 것 아니예요? 어디 한번 반대해 보라는 거예요. 10년이고, 20년이고 어디 반대할 테면 반대해 보라는 겁니다. 나를 이기겠나 해보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교인들은 전부 다 도망가고 자식들은 다 거지가 되어 깡통 차고 앉을 테니까. (웃음)

통일교회 문선생은 도망다니면서도 이렇게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나오고 있습니다. 주객이 전도되면 보따리도 바뀌어진다는 말이 있지요? 그렇다 그것이 자랑할 일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을 전부 다 때려 잡아 벌받기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요셉이 자기 열 한 형제를 살려 준 것과 같이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우리를 반대하던 그들이 앞으로 굶어 죽게 될 지경이면 우리에게 얻어 먹으러 올 것입니다. 옛날에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목사들이 와서 통일교회의 원리는 안 들었지만 조금 도와주시오 하며 나타날 것입니다. 그때에 그들은 누구를 데리고 오느냐 하면, 요셉의 형제들이 자기 부모를 모시고 요셉에게 온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하나님을 모시고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애급에 흉년이 들어 7년 대환난에 굶어 죽게 되어 가족이 요셉에게 찾아온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먹을 것을 찾아서 통일교회에 올 것입니다.

그때 요셉이 얼마나 분했겠어요? 자기를 죽이려 했던 열 한 형제들이 자기에게 먹을 것을 얻으러 왔으니…. 그러나 요셉은 그들을 전부 다 용서해 주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그렇게 한 것은 누구를 위해 그랬느냐? 부모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이 없을 때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며 나온 형님들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자기 혼자만 생각했더라면 용서할 수 없었겟지만 부모의 심정으로 사랑해 주어야 되겠기 때문에 형님들을 용서해 줬든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36-260
세례 요한과 친척들이 예수님을 믿었더라면
그러면 기성교회는 통일교회의 원수입니까, 원수가 아닙니까? 내가 원수라고 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잘 알 것입니다. 그렇지요? 원수는 원수인데 형님입니다. 그러니 열 한째 동행인 요셉의 입장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끝에 가서 누가 중심이 되었어요? 지금까지 이단으로 몰리고 배척받는 통일교회가 초교파 운동으로 교회 일치운동을 펴 나옴으로써 그래도 기독교 이념을 계승해 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기성교회 망하라고 기도합니까? 그러나 그들은 통일교회 문선생 죽으라고 기도합니다. 빨리 죽으라고 기도하지만 그런다고 내가 죽느냐는 거예요? 오히려 자기들이 걸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상대를 결정했더라도 죽었겠어요? 이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울타리 안의 종족은 사촌간입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예수님의 제자는 누가 되었겠어요? 세례 요한은 열두 제자 중에서 수제자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형제들이 전부 다 열두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70문도는 친척이 되는 것이고 120문도는 요셉 일가와 그 종족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종족이 4천년을 걸쳐 준비되고 선택된 혈족이 아닙니까? 그러니 예수님이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었다면 그렇게 되었을 겁니다.

그렇게만 되었더라면 다른 곳에 가서 제자들을 구하려고 했겠어요? 그렇잖아요? 거기에서 대번에 그렇게 되었더라면 요셉은 유대 나라, 유대교단의 선지자들을 묶어 나올 수 있었을 것이고, 세례 요한도 세례받으러 온 수많은 유태인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는 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이랬으면 오죽이나 유대교가 잘 돌아갔겠어요? 유대교가 이렇게 돌아가게 되면 교법사나 제사장이 예수님 앞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그때에 빌라도를 쫓아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로마가 부패해 들어가는 때였습니다. 고개를 넘어서 골짜기로 들어가는 때이기 때문에 쫓아버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대 나라를 통일해 가지고 로마로 가서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로마를 찾으려 했으면 문제없이 찾았을 것입니다. 이런 형태가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한국을 보게 될 때, 한국은 지금까지 민주세계의 나라 가운데 제일 불쌍한 나라였습니다. 한국 동란 때에는 세계의 많은 나라가 원조해 주었습니다. 만일 미국이 한국을 원조 안 해주면 미국은 망합니다. 한국에 원조하기를 싫어하면 망한다는 거예요.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왜 죽었는지 알아요?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를 삭감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때 한국을 원조 안 하게 되면 미국은 망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닉슨 대통령도 아시아에 대한 정책을 내 말대로 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어찌 되었나 생각해 보십시오. 민주당이 어떻게 됐어요? 한국이 아시아에서 제일 강력한 국가로서 일본까지도 우러러볼 수 있는 중심국가가 될 때까지 대책을 세워 주어야 되는데, 그러지 않고 여기에서 후퇴하는 날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안다는 거예요. 공식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님이 이런 일을 하면서 지금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36-262
흥하게 하는 지도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면 통일교회가 망해야 되겠어요, 망하지 말아야 되겠어요?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문선생이 망하게 지도방법을 쓸 것 같아요, 흥하는 지도방법을 쓸 것 같아요? 어떤 방법으로 지도할 것 같아요? 흥하는 방법으로 지도합니다.

그러면 흥하게 하는 지도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국가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과 싸우는 것도 아닙니다. 민족과 싸우는 것인데, 민족의 나쁜 것과 싸우는 것입니다. 나쁜것과 싸우려니까 나쁜 얘기 나쁜 소문을 듣고, 나쁜 일을 당하며, 험난한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신 십자가를 지고 괴로운 길, 외로운 길을 가더라도 그것을 기쁨으로 소화시키고 소망으로 감싸 가지고 자기 허물을 가리고 나라의 허물, 세계의 허물을 덮어줄 줄 아는 아량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런 일을 하자는 거예요.

이것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자기 일족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일족은 뜻길 때문에 망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형제가 다 망했습니다. 내 일족을 망하게 해 가지고 반대받는 여러분들을 사랑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통일가의 여러분이 부정했다가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자기 일족을 망하게 함으로써 난데없는 원수의 가족들을 사랑하고, 또 그들에게서 자기 일족을 희생시킨 대가를 찾고자 하는 것이 통일사상이요, 하나님 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딸, 자기와 제일 가까운 민족을 망하게 해 가지고, 원수의 나라와 원수의 민족을 사랑하기 위해서 바꿔치기 놀음을 해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바꿔치기를 함으로 말미암아 동생인 아벨이 형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형님이 나중에 가서 강제 굴복이 아닌 자연 굴복을 하여 머리 숙이며 ‘천년 한을 저로 말미암아 푸시옵소서, 억울했던 한을 제가 탕감할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해야만 거기에서부터 자리를 잡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전법을 쓰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망하지 않는 전법과 전술이 이것입니다. 그런데도 통일교회가 망하겠어요?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맞으면서 발전합니다. 이상하지요?

이름난 선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어느 동네에 사기를 쳐서 돈을 버는 불한당 같은 부자가 이사와 가지고 선한 사람을 때리고 밟게 되면, 동네 사람들이 데모해서 이사와 가지고 선한 사람을 때리고 밟게 되면, 동네 사람들이 데모해서 그를 때려 죽인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것을 조금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반대하다가는 나라가 망하기 때문에 이제는 나라가 기성교회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요즈음에 통일교회가 많이 올라갔지요? 이제는 경찰서 서장들을 비롯하여 여기저기에 통일교회편이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기성교회의 장로 목사들의 비밀을 나한테 말해 주는 서장이나 형사들도 많습니다. 벌써 이런 자리까지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성교회들 함부로 큰소리치지 말라는 거예요.

이제는 내가 팔다리를 펴고 코를 골면서 낮잠을 잘 때가 더러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낮잠을 자 본 적이 없지만, 이제는 좀 쉬어야 되겠어요. 그렇지요? 선생님 대신 여러분이 다 맡아서 하면 이제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하고 싶으면 한번 해 보십시오. 만약 여러분들이 못 하겠다면 일본 식구들을 데려다가 할 것입니다. 일본 사람이 못하면 미국 사람을 데려다가 할 것입니다. 그럴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부르면 언제든지 오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그러한 목적으로 이만큼 끌고 왔는데 넘어야 할 고개 앞에서 세 발걸음을 남기고 후퇴하겠어요? 전도기간 3년이 세 발걸음입니다. 세 걸음을 앞에 놓고 후퇴할래요? 어떻게 하겠어요? 대답해 보십시오. 후퇴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안 하겠습니다」 그래 가겠어요, 안가겠어요? 「가겠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해야 합니다. 3년 기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때를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기성교단이 부럽지 않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모자협조를 해 나온 것은 아들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마리아는 어떤 존재라고 했습니까? 「종입니다」 아들을 낳긴 했지만 종의 몸으로 낳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신부가 있어야 됩니다. 창조원칙에 따라 여자를 창조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아담 입장이므로 잃어버린 해와를 찾아야 됩니다. 그래야 결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6-264
어린양잔치를 해야 할 재림주님
그런데 예수님이 해와를 찾았어요? 못 찾았습니다. 찾다가 죽었으니 예수님은 다시 와야 됩니다. 다시 와서는 장가를 가야 됩니다. 그렇지요? 장가가려다 죽었으니 장가가려고 다시 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장가간다는 사상이 기독교의 사상입니다.(웃음)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님이 오실 때에는 무슨 잔치를 한다고 했어요? 「혼인잔치요」 혼인잔치가 뭡니까? 혼인잔치는 시집 장가간다는 뜻입니다. 혼인잔치는 결혼 잔치입니다. 그렇지요? 「예」 이런 말을 한다고 이단이라고 야단입니다. 괜히 배가 아파서. (웃음)

혼인잔치, 즉 어린양잔치를 하려면 예수님을 중심삼은 신부가 있어야 됩니다. 신부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신부가 누구냐 하면 해와입니다. 타락하기 전 아담 앞에 있었던 그 해와입니다. 재림주님은 3차아담입니다. 예수님은 2차 아담이고,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3차아담입니다. 그래서 3차 아담이 타락하기 전 아담처럼 와 가지고 타락하기전 해와를 찾아야 됩니다. 타락하지 않은 해와를 찾아서 어린양잔치를 해야 됩니다. 결혼함으로써 인류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부모가 되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악한 부모가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타락하기 전의 선한 부모를 가지게 되면 복귀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선한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어린양잔치를 하는 것은 선한 부모로 등극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독교사상은 간단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사상의 골자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구름을 타고 와요? 여기에도 그렇게 믿고 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요. 정신을 어디에 두고 그런 황당무계한 말을 믿었어요? 또 어떤 녀석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왜 기도할 때에 ‘아바 아버지’라고 기도했겠습니까? 이렇게 이론적으로 맞지 않는 것을 가지고 그래도 꺼드럭거리면서 이런 말하고 저런 말 하고 다닙니다.그런 사람은 앞으로 모조리 추방당할 겁니다. 내가 명령만 하게 되면 추방당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들을 이만큼 만들어 놓았습니다.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통일교회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입니다. 지금 모든 것이 이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북에서는 김일성에게 아버지라고 하지요? 그들이 말하는 아버지는 가짜 아버지입니다. 통일교회에서도 아버지라고 합니다. 딱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공산당도 세계를 자기들 식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민주세계도 세계를 자기들 식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도 통일교회 식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세계의 주인은 무엇으로 결정되느냐? 누가 세계를 더 사랑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누가 세계를 더 사랑하고 누가 더 세계를 아끼느냐에 따라 주인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세계를 사랑해야 되겠어요, 사랑 안 해야 되겠어요?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또 세계를 아껴야 되겠어요, 안 아껴야 되겠어요? 「아껴야 되겠습니다」 그럼 대한민국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대한민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인들이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을 아끼고 사랑하게 되면 주인이 되지 않으려 해도 이 민족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해야 평화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강제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거나, 돈을 써 가면서 얼렁뚱땅하려고 한다면 애착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에 소망을 두고 가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지금까지의 역사는 모자협조의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부모의 협조가 끊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 사실를 왜 직접 전하지 않고 천사를 시켰겠습니까? 그것은 천사가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천사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상대 관계에 있으면서 마리아는 예수를 낳아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 예수님은 후아담의 입장입니다. 그럼 마리아와 요셉이 같이 살아야 되겠어요, 안 살아야 되겠어요? 「안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상대를 결정하면 결혼하게 되면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겁니다. 부모가 다는 거예요. 요셉과 마리아는 종과 마찬가지의 입장이기 때문에 예수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가 종을 부릴 수 있어요, 없어요? 그런 후에 아버지 어머니로서 그들을 축복해 주면 그때에는 그들이 같이 살아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전에는 같이 살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성모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런 원칙을 놓고 본다면 마리아가 책임을 다했어요, 못 했어요? 책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천국에 갔겠어요, 못 갔겠어요? 천주교 믿던 사람들 있으면 손들어 봐요. 천주교 믿던 사람들, 어때요? 이 원칙으로 볼 때에 마리아가 천국에 갈 수 있겠어요?

36-266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이제는 통일교회가 전부다 심판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원리, 진리가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꾸민 얘기가 아닙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베드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무엇을 잘못했고 마리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거예요. 모르고서는 크게 걸리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탄탄합니다.

서남동 교수는 통일교회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신앙단체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 우리는 하늘땅이 낳은 세계적인 교회입니다.(웃음) 또 선생님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인물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기분 나쁘다는 거에요. 한국사람이면 지금까지 한국에서 욕을 먹었을까요? 한국말을 하고 있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지금도 한국의 교회가 선생님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나라가 있어요, 친척이 있어요? 전부 다 선생님을 원수시했고 쫓아버리려고 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통일교회를 도와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도와주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안 도와주면 자기들이 망하겠으니까 할 수 없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얼마나 멋진 때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천년 동안 모자 협조의 길을 찾아 나온 것은 예수님 한 분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오늘날의 통일교회는 무엇을 협조하자는 것이냐? 여기에서 통일교회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모자 협조를 할 때 어머니는 종의 입장이었습니다. 종의 자리를 못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런 어머니의 협조를 받아서 되겠어요? 안 됩니다. 여기에 있어서 부모 협조를 이루려면 종의 기준을 넘어서 부모의 기준을 만들어야 되고 부부의 기준을 만들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가정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인데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부모협조의 기준이 깨져 나갔어요, 안 깨져 나갔어요? 또한 부부협조의 기준이 깨져 나갔어요, 안 깨져 나갔어요? 그러면 부자협조의 기준은 깨져 나갔어요, 안 깨져 나갔어요? 다 깨져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6천년 동안에 고작해서 모자협조 기준밖에 닦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해와가 사랑의 인연을 잘못 맺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부모·부부·자녀, 즉 직계의 협조 기준이 깨어져 버린 것을 몽땅 한꺼번에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복귀의 책임을 누가 다해야 되느냐? 남자가 해야 됩니다. 남자는 요셉과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나와야 됩니다. 알겠어요? 여자가 마리아와 같은 입장에서 여러분을 복귀해 주어야 됩니다. 마리아와 같은 입장에서 여자로서의 책임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여자들은 마리아의 입장이요, 마리아는 해와의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마리아 대신 되는 여자들이 해와를 대신해야 됩니다. 여기에서 남자들은 아담의 입장을 복귀해야 합니다. 이것이 장성기 완성급을 넘어서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완성기까지는 못 올라간 입장입니다.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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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연의 기준으로 돌아가려면 본연의 가정의 기틀을 마련해야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본연의 기준으로 돌아가려면 본연의 가정의 기틀을 마련해야 됩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인 부모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 평면적으로 하나로 연결된 터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것을 위해 해와를 중심삼고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모자협조를 단계적으로 해 나왔습니다. 알겠어요? 이것들을 일시에 하나로 연결시키려니 여러분들이 축복받았던 입장에서 부모의 협조 과정을 다시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자협조를 거쳐서 그 다음에 부부협조를 하라는 뜻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6천년에 걸쳐 나온 오늘날의 이 평면적 도상에서 부모협조, 부녀협조, 부자협조의 인연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리하여 모자협조, 부부협조의 인연을 일시에 탕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혼자서 그런 자리를 잃어버린 동기가 되었으니 혼자의 자리에서 그런 인연을 다시 찾아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과 여러분의 아내들과는 부녀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적이기 때문에 인간과 종적 기준은 세웠지만 횡적 기준은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서부터 종적인 자녀의 기준만을 중심삼고 나왔지 횡적인 자녀의 기준을 갖추고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알겠어요?

그러기에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니 횡적 부모의 기준과 횡적 부부의 기준과 횡적 자녀의 기준을 결정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새로운 조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것을 결정하기 위한 때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갓 축복받은 부인들을 동원시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을 가담시키지 않습니다. 가담하겠다면 한 40일 후에나 가담시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2월 초하룻날을 중심삼고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의 동원을 중심삼고 선생님도 갔어요, 안 갔어요? 동조했어요, 안 했어요? 「했습니다」 그러면 부모협조의 기준이 복귀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됩니다」 또 부부협조의 기준이 됩니까, 안 됩니까? 「됩니다」 여기에 여러분도 관심을 갖습니까, 안 갖습니까? 「갖습니다」 그 다음엔 모자 협조의 기준이 됩니까, 안 됩니까? 「됩니다」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평면적으로 소(小) 가정적인 기준을 결정하여야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원리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6천년에 걸친 모자협조의 종적인 행로를 통해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를 두고 볼 때에, 횡적인 기대, 즉 부모·부부·자녀의 인연을 몇년 동안에 일시에 복귀할 수 있는 시대적인 운세를 가진 우리 가정은 얼마나 복이 있는 가정입니까? 이것은 그 누가 정성을 들여서 되는 것도 아니요, 그 어떤 사람이 돈을 주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시대적 혜택권내에서 여러분의 가정이 천운이 함께하는 거룩한 세계사적인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런 긍지를 지니고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는 데 있어서 주체적인 조상이 될 수 있는 여러분은 이 거룩한 은사 앞에 무엇으로 보답할 것입니까?

그러니 여러분은 기도를 하더라도 가정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했던 것처럼 ‘아바 아버지여, 우리 가정의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 가정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하여 가정적인 십자가를 넘어서야만 타락한 가정으로 말미암아 벌어졌던 한의 고개를 넘어서서 해방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래야만 여기에서 영원한 천국의 문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결론입니다. 알겠어요? 「예」 단단히 알아야 합니다.

너, 색시 나갔어? 「예, 나갔습니다」 안 나갔다면 건달패들이야. 틀림없이 12월 초하룻날 나갔어? 「예, 나갔습니다」 잘 나갔어, 못 나갔어? 「잘 나갔습니다」 만일에 그 날짜에 안 나갔다면 앞으로 곤란할 것입니다. 임신하여 7개월 넘은 사람은 조금 늦게 나가도 되지만 그 외 사람은 그 기간에 안 나가면 벌받을 것입니다. 앞으로 기막힌 일이 벌어질 거예요.

이런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우리 통일교회에 족보가 생겨나게 됩니다. 알겠어요? 「예」 족보를 편성하는 거예요. 족보를 편성하려면 나라가 있어야 됩니다. 이 소망의 나라가 우리 눈앞에 다가오고 있으니 우주적인 족보를 편성해야 됩니다. 이 3년 기간을 넘기고 나면 무슨 일이든 벌어지겠지요. 김일성이 망하든가, 우리 북녘의 김일성을 쫓아내든가 무슨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지요? 해와로 말미암아 저끄러졌던 심정적 인연을 복귀해야 하는 일이 평면적인 도상에 벌어지기 때문에 여러분이 부모를 협조함으로써 춤을 출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금 서로 떨어져서 산다고 외롭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이 민족과 더불어 기쁜 날을 맞기 위해서 가는 것이요, 이 민족을 품고, 민족을 앞에 세워서 전체가 춤을 출 수 있는 그날을 위해 간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리하여 이 거룩한 한 때를 맞아 억천만세 역사과정에 있었던 그 누구보다도 놀라운 혜택을 받는 3년 기간으로서 의의있게 지내 주기를 선생님은 당부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하늘이 분부한 사명과 책임을 다한 승리의 자리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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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통일가의 가야 할 운명길을 당신 앞에 맡기옵니다. 오늘까지 이와 같은 인연을 맺기 위해서 수난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의 노고와 당신의 피어린 투쟁이 있었기 때문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당신 앞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저희들을 사랑하기에 얼마나 급급하셨고, 저희들이 망할까봐 얼마나 마음 졸이셨는가를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외로울 때마다 중보자를 세우시어서 격려해 주셨고, 쓰러질까봐 염려하시면서 길을 닦아 나오신 아버지인 것을 아옵니다. 저희들은 이러한 아버지를 모시고 있다는 긍지를 가지고 천세 만세 자랑해야 되겠사옵니다. 해방의 나팔소리가 삼천리 반도에 드높이 울릴 수 있도록 기수의 사명을 다하여야 할 통일의 무리 앞에 당신의 긍휼의 손길과 자비의 손길이 영원히 떠나지 마시옵소서. 저희들은 가야 할 행로를 정통적으로 따라가야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그 행로를 따라 순응하기를 다짐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자리까지 참고 나오시면서 저희들로 하여금 남이 알지 못하는 길을 가려 나오게 하심으로써 터전을 닦게 해주신 아버지의 은사 앞에 감사드리옵니다.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것을 저희들은 실천하고 있사옵니다. 그 누구도 가지 못한 길을 저희들이 가고 있사옵니다. 이리하여 역사의 한때를 중심삼고 힘차게 찬양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여기에서부터 세계적인 정상이 판가름나는 것이요, 이러한 세계적인 분수령에서 선과 악이 영원히 분립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오늘날 말씀에 비추어 볼 때에 긍정할 수 있사오나, 세계 사람들은 깊은 잠 속에 빠져 스스로 깨어나지 못하는 자리에 있사옵니다. 그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할 책임이 통일교회에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종을 울리는 종지기가 되어야 할 사람은 저희 통일교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미명의 어둠을 헤쳐 가면서 불을 밝히는 길잡이가 되어야 할 것이 저희의 사명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들은 자더라도 저희들은 잘 수 없고, 남들은 쉬더라도 저희들은 쉴 수 없사옵기에 당신의 사랑하는 딸들이 최일선에 섰사옵니다. 이제 일선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이들이 남북을 통일하는데 있어서 기수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이들로 하여금 사탄세계의 남자들을 무색하게 하고, 사탄세계의 나라를 무색하게 할 수 있게 하여 아버지께서 자랑하시는 딸들이 되어서 돌아올 수 있게끔, 아버지, 그들의 내심을 불러일으켜 다짐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들을 보낸 남편과 자식들이 그야말로 하늘 가정으로서 보람있는 가치를 세워 가지고, 내일의 소망을 그리워할 수 있는 아버지의 가정으로 바쳐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가정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바라시던 사위기대의 터전을 이룸으로써 복의 기원인 안식의 터전을 마련하여 영원무궁토록 하늘 부모를 모시고 안식할 수 있는 선의 조상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같이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안식일이오매 당신의 이름으로 외로이 모여 당신 앞에 머리 숙이는 자녀들 위에, 아버지,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임지에서 자기 가정을 생각하고, 자식을 생각하고, 남편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이 전통을 확실히 알고, 그 전통을 지키고 돌아올 수 있는 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첫 주일을 맞는 이들의 마음을 당신께서 위로하여 주시옵고, 이들이 새로운 각성과 새로운 자각과 새로운 각오를 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해외에 널려 있는 외로운 무리들도 자기의 나라를 위해 대신 책임지고 있사오니 그들 위에도 당신께서 안위의 손길을 가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이 내일의 소망을 갖고 가는 길 앞에 당신께서 은사의 손길을 가하여 주시고, 저희가 발전할 수 있게끔 협조해 주신 것을, 아버지, 감사드리옵니다. 영광은 당신께서 받으셔야 하는 것이요, 외로운 수난의 노정은 저희들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기에 그 길을 가겠다고 뜻을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사오니,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 앞에 맡기오며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