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61 to 36-202: 조국을 찾아서

조국을 찾아서
1970.11.29 (일), 한국 전본부교회

36-161
조국을 찾아서
[기 도]

수많은 날들을 눈물과 더불어 죽음길을 걸어 나오시면서 이제까지 참아오신 아버님께 저희들은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옵니다.

이제 자유의 천지를 향하여 행군하는 이 무리들을 아버지께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가야 할 목적지는 어디이겠습니까?

자비와 사랑으로 생명이 넘치는 자유스러운 세계를 준비하시고 그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달려오신 당신임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럴 때마다 저희들은 당신의 뜻과 더불어 화합될 수 있는 마음을 갖기를 원하였사옵고, 하나에서부터 천만사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참된 품에 흡수되기를 원하였사옵니다. 거기에 화합될 수 있기 위하여 온갖 지성을 들일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저희는 아버지의 본연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으며, 아버지께서 찾고자 하시는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직행해 가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의 마음은 환경에 얽매여서 처처에 있는 고난의 장벽을 처리하고 나가기에는 역부족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극복해 나가려면 새로운 용단과 결의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것을 생의 목표로 삼지 않을 수가 없사옵니다. 저희들은 수많은 싸움의 행로 위에 있을 때마다 부추겨 주고 지켜 주어야 할 아버지의 입장을 생각할 때 아버지가 불쌍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제 저희는 가련한 저희 모습을 그냥 버려두지 않기 위해 수고하시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기필코 승리의 한날을 맞이하실 수 있는 아버지시요, 아버지의 소원은 기필코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고, 저희들은 금후의 자기의 일생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자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들의 모습들이 되고 딸의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소수의 무리가 아버지의 존전에 무릎을 끓었사오니, 아버지, 이들 앞에 운행하시옵소서. 저희들의 마음에 충열(忠烈)의 마음을 빚으시고, 아버지의 성품을 닮게 하여 주시옵시고, 오직 아버지를 생각하는 일념을 접붙이시어서 악으로부터의 모든 침범을 극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마음을 저희들에게 상속하시어서 저희들로 하여금 본연의 인간의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전체를 아버지께 맡기고, 아버지로 말미암은 존재가 되기를 결심하였사오니, 아버지의 권내에서 아버지의 원대로 저희들을 움직이시어서 승리의 세계로 직행하는 모습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기뻐하시는 아들딸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진실로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한 해, 한 날을 보내고 다시 새로운 한 해, 한 날을 맞이할 적마다 당신 앞에 더 가까이 가기를 새로이 결심하였사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을 사랑의 아버지로 모시고 생명의 원천으로 모시며 꿋꿋이 자라도록 허락받은 모습들이었사오나 당신이 배후에서 많은 수고를 하신 후에야 그 사실을 느꼈사옵니다. 이와 같이 언제나 부족한 저희들을 이끄시는 아버지께서는 위로의 대상을 찾을 수 없는 슬프신 존재요, 또한 슬픔을 위로받을 수 없는 입장이었으므로 기쁨의 자리를 찾지 못한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사망의 자리에서 허덕이며 구원을 호소하는 인간들을 대하시며 이 세계를 바라보시는 아버지께서는 스스로 해방의 한 날을 맞이할 수가 없으신 줄 아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만사 모두를 홀로 책임지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감사의 눈물로써 위로해 드릴 줄 아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가 슬픔을 당할 때 같이 슬퍼할 수 있는 인연을 갖추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에는 기필코 승리의 터전이 찾아온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아버지를 대한 특정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세계 만민을 바라보시며 그들을 한 아들 한 딸같이 구하시겠다는 사랑을 가지고 일일이 대하셔야 할 아버지의 사정을 저희가 분명히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그러한 아버지의 염려를 덜어 드리기 위해 세계 인류 앞에 승리의 참부모가 되겠다고 몇 번이고 결의한 무리였사옵니다. 그렇게 결심하고 맹세하였으면서도 가야 할 길을 찾아가지 못할 적마다 아버지 앞에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직고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자신으로 말미암아 여기에 온 것이 아님을 알아야겠습니다. 위로는 수많은 선조들의 공적이 맺혀 있는 것이요, 좌우로는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선영인들의 생전의 인연을 터로 해서 이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저희들은 그들이 바라는 소원의 뜻 앞에 앞으로 다가올 희망의 세계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는 하나의 모체가 되고, 아버지가 기뻐할 수 있는 상징적 실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못해 후손 앞에 면목이 없는 모습들이 될까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오니, 긍휼의 아버지시여, 저희들을 모으셔서 통일교회와 일치시키시옵소서. 또한 사망의 흑암세계를 당신의 품에 품으시옵소서. 또한 저희들이 만민에게 아버지의 자녀된 인연을 맺어 주기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개체들이 되고, 힘을 다할 줄 아는 승리의 역군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외로운 자녀들을 이 시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1970년도 한 달 남짓 남았사옵니다. 이 한 해 동안 아버지께서 저희의 갈 길을 위해 수고하여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리옵니다. 이제는 세계로 찾아갈 수 있는 형제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금년에 통일교회가 이루어야 할 사명을 아버지께서 천신만고의 노고 끝에 저희들 앞에 세워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리옵니다.

한 가지 두 가지 저희가 대하는 일들을 바라볼 때 아버지의 은사가 저희 앞에 찾아 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오늘의 이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여 앞으로 1970년대에 올 아버님의 은사를 받아 감당할 수 있는 선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을 대신한 개혁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은 죽어가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스스로 죽겠다 하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오직 아버님의 전진과 더불어 저희들도 전진해야 되겠사오며, 아버님의 사랑과 더불어 개척해야 되겠사오니 일시라도 초조한 마음이 없어지지 말게 하옵소서. 아버님이 남기신 뜻을 염려하는 마음이 사무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는 당신이 원하시는 모든 뜻을 이루시옵소서. 당신의 아들딸을 세우시어 4천만 민족 앞에 찾아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내일 모레는 새로이 초하루를 맞이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딸들이 뜻을 위해 남한 각지 각처에 나가겠사오니 이들의 갈길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이들을 위해서 당신이 미리미리 준비하시고 분부하시던 결정적인 날이 다가오고 있사오니 이들의 갈 길을 당신이 맡아 주시옵기를 간절해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날을 중심삼고 새로운 하늘의 운세가 이 나라에 찾아오게 허락하여 주시어서, 외로운 통일의 무리들이 찾아갈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마련되게 하시옵소서. 이들이 활동을 하다가 몰리고 쫓겨 혼자 남게 되더라도 아버님 앞에 진정으로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려드릴 수 있게 하시어서 그 기간이 거룩한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들이 잠잘 때 가정을 뛰어넘어 적군을 향하여 나서는 그 걸음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이들이 외로운 자리에 처하는 것은 당신의 외로움을 대신하기 위함이요, 이들이 처량한 자리에서 싸우는 것은 당신의 싸움터를 상속받아 당신과 가까울 수 있는 안식의 한 곳을 찾고자 함이오니 이들이 외로울 때 친구 되시옵고, 이들이 서러울 때 동행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이들이 아버지의 뜻을 성사할 수 있게끔 매일 안팍으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은 평화의 나라를 상속받으려는 여성들로서 새로운 깃발을 드높이고 하늘 나라의 광복을 위하여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는 당신의 사랑스런 딸들이오니 당신이 붙들고 역사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이 거쳐가는 곳곳마다, 이들이 떨어뜨리는 피와 땀과 눈물의 자국이 남아지는 곳곳마다 생명이 부활할 수 있는 원천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은덕으로 승리의 터전을 획득하여 빼앗김을 당하던 무리들로 하여금 이렇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한 날이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자랑할 수 있는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불쌍하다면 불쌍한 자리에 섰사옵니다. 나라를 갖지 못한 불쌍한 저희들이옵고, 민족을 갖지 못한 불쌍한 저희들이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인들이 민족을 가려 나오기 위해 갔던 처참한 최후의 장벽을 결판짓고 이 땅 위에 천국을 창건해야 할 엄숙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땅 위의 것을 위해서도 목숨을 바치는 이 땅의 실상을 목격할 수 있는 이 때이오니, 생명을 바치고 자기 가정을 제물로 바치더라도 하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몸부림칠 수 있는 거룩한 아낙네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이 전국을 누비는 걸음걸음에 당신의 슬픔을 근절시키기 위한 마음이 스미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들이 바라는 표준은 승리의 깃발을 들고 하늘을 향하여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것이오니 아버지의 이름과 더불어 그럴 수 있는 사무친 마음을 가지고, 그런 마음에 묻혀질 수 있는 생활이 되고, 그렇게 하는 것을 신조로 삼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아버지를 사모하던 걸음걸이가 아버지의 나라를 위하여 한없이 울 수 있는 걸음걸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무릎과 옷자락을 붙들고 생애를 걸고 나아가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지난날에 엮어 온 잘못된 역사를 아버지 대신 한칼에 베어 복귀해 드릴 수 있는 승리의 날을 갖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나라에 대한 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이 저희 앞에 가까이 오는 것을 알게 되오니, 흰옷을 입고 무릎을 꿇고 세계를 아버지 앞에 인도하기 위해 성심성의를 다하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이때를 중심삼고 외로운 딸들을 임지에 내보내는 당신의 마음을 알아야겠사옵니다. 당신이 이들의 마음을 정화시키시어 그 환경의 터전 위에 머물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슬펐던 날이 기쁨의 날로, 외로왔던 날이 환희의 날로, 몰리고 상심했던 날이 해방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날로 바꾸어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수고한 공로로 말미암아 이제 하늘의 운세가 저희 목전에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사옵니다. 그 운세를 직시하면서 승리를 바라시는 아버님이 사랑과 보호와 긍휼 가운데 인도하시는 행로를 따라, 거룩한 해방의 몸이 되어 최후의 승리의 동산에 나설 수 있을 때까지 지쳐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죽어서도 안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당신께서 지켜 주시옵고, 승리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도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함께 하시옵고, 수많은 나라에 흩어져 있는 통일의 가족들 위에도 당신의 사랑을 내리시어 당신이 기뻐하시는 승리의 한 날을 이룰 수 있게 허락하시옵소서. 아버지여, 온 천하를 대신하여 만민을 구하기 위하여 제단을 묶어 아버지 앞에 속죄 제물을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고, 당신의 거룩한 손길로 주관 주장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도 거룩한 날이오니, 당신을 찬양하기 위해 외로운 무리들이 무릎을 연하여 정성들이는 곳곳마다 당신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도 당신이 온전히 주관하시어 전체가 하나로 묶어질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라며, 이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이름으로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6-166
말 씀
우리는 타락한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하나님이 전폭적으로 환영할 수 없는 세계요, 지지할 수도 없는 세계인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 세계는 하나님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과 반대적인 입장에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개인이 되었고, 그러한 가정이 되었으며, 그러한 나라가 되었으며, 그러한 세계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세계입니다.

36-167
섭리와 종교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지금까지 개인과 참다운 가정과 참다운 나라와 참다운 세계를 찾아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악한 권내에 살고 있는 개인을 통하고, 민족을 통하고, 나라를 통하여, 혹은 세계를 움직여 가지고 새로운 개인으로부터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기 위해 하나님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에게 배반되는 역사노정을 엮어 나온 인류의 배후에서 선한 개인을 수습하고 선한 가정과 선한 나라를 세우시어 그 나라를 이끌어 나가시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 있어서 선을 중심삼은 개척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바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선을 중심삼은 개척의 사명을 짊어질 수 있는 터전이 오늘날까지 역사과정을 움직여 나온 한 국가의 주권이겠습니까, 아니면 그 주권의 치리를 받고 있는 한 개인이나 어떠한 단체이겠습니까? 그 터전은 이 역사시대에 남아져 온 한 나라의 주권도 아니요, 어떠한 단체도 아니요, 어떠한 개인도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새로운 개인과 새로운 단체와 새로운 국가의 형성을 주장하는 운동이 이미 벌어졌어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와 시대를 거쳐 나오면서 하나님이 찾고자 하는 세계를 이루기 위한 운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가진 개인과 가정이 뜻을 밝혀 나오면서 하나의 종족과 민족을 편성하는 운동을 벌여 나왔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기독교에서는 선민사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선별된 민족, 새롭게 가른 구별된 민족이 있기 전에 먼저 구별된 개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구별된 가정이 있게 되는 것이고, 그 가정을 통하여 종족, 그 종족을 통하여 민족, 그 민족을 통하여 하나의 국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런 운동이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 운동이 세계 역사과정에 휩쓸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세계를 지도해 나가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나가는 주동적인 역할을 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섭리적으로 볼 때 사상적인 면에서 주도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는 운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지금까지의 종교가 이런 역사적 운동의 터전으로서 그 사명을 해 나오고 있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하여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문화라든가 혹은 문명이 형성되는 데는 반드시 정신적인 결합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결합을 통해서 개인이 규합되고, 가정이 규합되고, 씨족·종족·민족이 규합되어 가지고 하나의 환경을 형성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배후에는 반드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종교, 그 사회의 사람들이 환영하지 않는 종교가 밑받침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종교는 그 나라의 역사와 그 민족이 요구해서 심어진 것도 아니요, 역사과정을 거쳐온 수많은 사람들이 원해 생긴 것도 아닙니다. 또한 종교가 역사과정을 거쳐 오는 동안 그 나라의 주권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원치 않는 역사의 환경을 뚫고 나왔으며, 흘러가는 역사를 가로막고 그 역사과정에 문제를 제시하게 된 것은 결코 그 민족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큰 힘이 역사와 더불어 뒤넘이치면서 역사의 방향을 새롭게 이끌어 나왔기에 어떠한 세력도 여기에 도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에는 반드시 선을 위주로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기 위한 어떠한 힘이 역사를 넘어서서 규칙적으로 움직여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큰 힘의 주체를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을 통해서 볼 때 종교는 핍박을 받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참된 종교는 핍박받는 가운데에서도 점점 발전해 나왔던 것입니다. 종교가 핍박을 받는 것은 어떠한 개인에게 진정으로 지지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어떠한 민족에게도 전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혹은 어떤 국가나 세계에서도 전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반대받는 입장에서도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멸망하여 후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투쟁하며, 환경을 극복하며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은 자기들 스스로의 힘으로 말미암아 종교의 판도가 세계적으로 넓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배후에는 세계의 운세와 보조를 맞춰서 밀어 주시는 하나님이 계셔서 세계적인 문명권을 형성하는 정신적인 바탕이 되어 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환경을 넘고 지역을 넘어 동서고금에 사상을 연결시킬 수 있는 교량 역할은 어떠한 정치권력을 중심한 국가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반드시 하나의 통일된 사상과 선한 나라를 추구하는 이념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6-169
기독교를 세운 하나님의 뜻
이제까지의 역사과정을 두고 볼 때, 동양은 정신문명을 중심삼은 길을 찾아 나왔고, 서양은 물질문명을 중심삼은 길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이렇게 상극된 양면의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서구 문명을 아시아의 동양 문명에 접선하여 새로운 종교 이념에 연결될 수 있는 한때를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아시아를 볼 때, 아시아에서 주도적인 책임을 해야 할 나라는 어떤 나라이겠습니까? 그 나라는 아시아에 있어서 정신문명을 중심삼고 아시아에 공헌한 나라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유교가 형성되었고, 인도를 중심삼고는 불교가 형성되었으며, 이스라엘을 중심삼고는 히브리 사상, 즉 기독교 사상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렇게 아시아 지역에서 나온 종교들이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이러한 종교들이 아시아인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있다는 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이 종교들은 아시아의 제약된 한 지역과 특정한 민족만을 위한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시아의 전체 민족을 규합하여 하나의 새로운 아시아를 창건할 수 있고, 새로운 세계의 표상을 제시할 수 있는 사상적인 밑받침을 가지는 종교의 형태를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교면 유교, 불교면 불교, 기독교면 기독교, 그리고 회회교면 회회교 같은 종교들 중 어떠한 종교가 초민족적이요, 초국가적인 입장에서 세계 만민을 중심삼고 하나의 형제의 인연을 주장하고 나왔느냐? 어떤 종교가 하나의 동기와 하나의 나라와 하나의 국민, 하나의 조국을 그리워 하는 강한 이념을 가지고 나왔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여기에 가장 가까운 것은 기독교 사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사상은 만민을 중심삼고 자기들 스스로를 고취시키면서 지금까지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악한 사탄세계에서 기독교 역사가 엮어 나온 역사과정을 보게 될 때, 기독교는 선열들이 피뿌린 순교의 인연을 거치면서 터전을 다져 온 것입니다. 사회 앞에 비판을 받고 사회 앞에 지탄을 받으면서도 반항없이 죽음의 대가를 치르면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도 있겠지만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 가운데 그러한 종교는 기독교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몰리고 핍박받고 멸시받던 기독교가 오늘날에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로서 민주세계를 움직이는 사상적인 뒷받침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이것은 기독교 자체의 힘만으로는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고개를 밟고 넘어갈 수 있었던 그 힘의 모체는 기독교 자체의 힘보다도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의 힘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힘에 의해서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발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독교가 금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독교를 세웠다면 그 목적은 새로운 나라를 찾기 위한 것이요,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이 땅 위에 없었던 선을 대변할 수 있고, 선의 입장을 옹호할 수 있고, 선의 환경을 지켜 줄 수 있고, 선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선의 조국이 이루어지기를 원했으며 승리의 한때가 이루어지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사상은 반드시 종말시대가 온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 기독교 전성시대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악의 세력을 중심하고 기독교를 반대했던 나라는 망한다고 단적으로 결론짓고 있습니다.

36-171
새로운 힘의 모체를 필요로 하는 현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선을 대변한 것이 기독교라면, 기독교를 반대한 사회와 세계는 악의 구렁텅이일 것이므로 종말시대에는 반드시 이것을 해결짓기 위해 한 나라는 가고 한 나라는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야 할 나라는 악의 나라요, 와야 할 나라는 선의 나라일진대 선과 악이 투쟁하여 판가름을 짓지 않으면 안 될 종교적인 문제가 세계적으로 남아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정치세력을 중심삼고 국가나 사회를 조정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강화함으로써 외침을 대비 방어할 수 있는 면모를 갖추어 나왔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정치적 세력이나 군사적 세력이 강화되어 있지만 그것이 개인의 인생을 지탱시켜 줄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가져다 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월남전쟁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국력으로 보나, 정치적으로 보나, 경제력으로 보나 모든 면에 있어서 세계의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선진국가의 자리에 서 있지만 월남 전쟁에 있어서는 후퇴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정치적으로나, 경제·문화·군사적으로 아무리 배경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지배하고자 하는 나라의 민족, 또는 그 국민에게 주장할 수 있는 사상적 뒷받침이 못 된다는 것을 여실히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에 정치를 중심삼고서는 세계를 지배할 수 없고, 경제를 가지고도 세계를 지배할 수 없으며, 현재의 민주주의 제도로도 세계를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하나의 주체성을 가지고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판도와 그러한 환경과 터전을 닦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요즘에 와서는 학생들을 중심한 대학가의 문제가 세계적으로 생겨나고 있는데 과연 그 학생들이 새로운 방향을 형성해 갈 수 있는 모체가 될 수 있을 것이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몇 년의 교육기간을 거쳐서 사회에 나오게 되면 사회가 좋아하는 방향을 따라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회에 나오면 변천해 버릴 수밖에 없는 스튜던트 파워로는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기반이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터전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 사회에 대결하는 역사성을 지닌 공고한 터전을 가지고 있는 종교 단체만이 앞으로 이 사회를 새롭게 형성하는 데 뒷받침이 될 수 있으리라 예상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인구 비례를 보게 되면 3분의 2가 넘는 인구가 종교인들입니다. 이들의 대부분이 민주세계에서 유심사관을 중심삼고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종교의 명분을 갖춘 인구가 18억에서 20억에 가깝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이 가야 할 그 세계와 이루어야 할 그 본연의 터전을 자기들의 종교를 중심삼고 이루려고 합니다. 자기 종교를 중심삼고 세계화, 즉 세계 재패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화는 군사력과 정치력과 경제력을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공익과 공분의 심정으로 악의 세력과 대결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힘의 모체를 형성해야 하는 고빗길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종교계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종교들이나 그 종교인들이 새로운 나라와 세계관을 모색하여 거기에 규합돼 가지고 하나의 민족을 넘어 아시아면 아시아에 있어서 새로운 형태를 이루게 되면, 이것이 세계적인 분화구가 되어 세계가 일시에 여기에 규합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권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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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종교가 해야 할 일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어떠한 길을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통일교회를 위주로 한 주장을 만국에 적용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할 때에는 통일교회가 지니고 있는 내용이 다른 종교보다 참다운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보물을 좋아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보물을 가지게 되면 마음이 기뻐지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흥분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중심삼고 행동의 집중화를 이루게 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수많은 종교인들이 찾고자하는 보화와 같은 내용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종교가 찾아 나가는 최고의 보화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자기들이 지니고 있는 새로운 종교를 보화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종교 자체가 보화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가장 가치적인 중심적 보물은 종교도 아니고 개인도 아닌 가정입니다.

정성을 들여서 형성된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사회에 있어서나 수많은 종교에 있어서나 어느누구든지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보화와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이 있다고 해서 그 종교가 세계적인 짐을 질 수 있는 모체가 될 수 있을 것이냐?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 가정은 천적인 가정이 되겠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본다면 그 가정 하나에 머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집단인 종족을 편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종교를 중심삼고 가정을 규합하여 혈족을 넘는 인연을 맺으면 그 인연은 어떠한 종족의 인연보다도 강한 것이 됩니다. 이렇듯 종교운동을 중심삼고 종족을 새롭게 편성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들이 찾아 나온 어떠한 개인이나 가정보다도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종족을 편성하면 자기 씨족만을 중심삼아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김씨면 김씨 씨족만을 위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씨족을 넘어서서 민족편성을 하여 그 기반을 공고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수많은 종교인들이 바라는 것이 모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 결정되게 되면 역사시대를 거쳐온 수많은 종교계나 종교인들은 새로이 편성되는 그 민족을 참다운 가치로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민족이 그들 앞에 빛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민족편성을 해야 하는 것이 종교가 가야할 길이라면, 이것을 찾아 세운 종교는 현시대에 있어서나 미래에 있어서 면목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민족을 편성한 후에는 그 민족의 종교를 중심삼고 반드시 하나의 국가를 세워야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국가를 찾고자 하는 것이 지금까지 종교가 찾아 나온 목적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렇듯 종교를 중심삼고 찾아 나오는 국가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강한 내용을 지니고 있어서 다른 나라들이 본받지 않으면 안 될 그런 국가관을 갖고 있을 때 그 국가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모체가 될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볼 때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종교가 나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겠습니까? 수많은 종교들은 사회와 분리된 역사과정을 거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회와 동일한 입장에서 새로운 시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사회와 격리된 입장에서 부르짖는 종교의 세계관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 테두리를 헤쳐 버리고 눈 앞에 현재 벌어져 있는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금후의 종교인들이 추구해야 할 사명인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관과 새로운 국가관을 제시할 수 있고, 새로운 민족과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가정과 새로운 인격을 형성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할 수 있어야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간의 문제도 서로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관으로 편성된 가정과 종족과 국가라야 현재의 가정, 종족, 국가보다 더 가치적인 내용을 지닐 수 있는 것이요, 그래야 구시대의 때가 자동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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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종교가 나와야 할 필요성
그러면 종교가 탕감하면서 찾아 나온 그 조국, 즉 각 종단을 중심삼은 그런 조국은 건설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건설되어 있다면 그 조국은 하나일 것입니다. 왜냐?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을 추구해 나온다 할진대는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목적도 하나요, 사람 앞에 주어진 목적도 하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족이나 종족, 혹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나의 목적에 의해서 태어났고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인생길을 가야할 존재라 할진대는,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고 오색인종을 초월하여 추구하는 하나의 목적에 귀일시킬 수있는 사상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의 목적으로 귀일시킬 수 있는 사상은 무엇이냐? 그것은 자기를 위주로 한 세계관이 아닙니다. 그 사상은 세계를 위주로 하는 세계관이요, 만국을 위주로 하는 세계관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시킬 수 있는 사상입니다. 이것은 세계와 분리된 입장에서 자기의 종족을 자랑하는 사상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본연의 인간을 존중시할 수 있는 환경조건은 물질문명 권내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오늘날 물질문명 세계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바라는 유일신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환경은 오늘날과 같은 자유주의를 통하여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유가 팽창하게 되면 가정도 망해 버리는 것이요, 사회나 민족자체도 망해 버리는 것이요, 국가도 망해 버리게 됩니다. 전체를 밟고 올라서서 자기를 주장하는 자유주의를 중심삼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자유주의 사상은 남아질 수 있으되 전체를 부정하고 자기 위치만을 지키려 하는 자유주의 이념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민주주의 이념은 진정한 자유주의를 떠나고 있습니다. 그 자유주의는 세계를 일원화하는 자유주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를 망각하는 개인 위주의 자유주의는 멸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 자체의 인격적 가치를 부정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게 되면 자기가 처해 있는 기반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유야무야한 존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청소년 문제가 이러한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종교는 개인구원을 주장하고 나왔습니다. 세계를 구원하는 것을 목표로 해 나왔지만 개인구원을 표방하며 나왔습니다. 역사가 발전해 나가는 목적은 세계구원인데 역사 가운데 세계를 지도해 나오고 있는 민주주의는 개인을 위주로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종교가 취해 나온 입장과 일치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 세계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미국 같은 나라가 개인주의 사상 속에서 방탕하고 있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개인구원을 강조해 나온 기독교 사상의 영향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인주의적인 환경을 타파시키는 신앙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내가 구원받을 것이 아니라 가정을 구원해야 되겠고, 가정을 구원받게 하는 것보다는 민족을 구원받게 해야 되겠습니다. 또 민족을 구원받게 하는 것보다 민족을 희생시켜서라도 국가를 구원해야 되겠고, 국가를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원해야 되겠다는 신앙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 아닌가? 이러한 사조는 많은 무리가 번민하고 있는 이 시대에 필히 나타나야 할 새로운 사조요, 만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새로운 사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내 개인을 하나의 씨로 하여 가정을 결실되게 해야 되겠고, 또 그 가정을 씨로 하여 종족을 거두어야 되겠으며, 종족을 씨로 하여 민족을, 민족을 씨로 하여 국가를, 국가를 씨로 하여 세계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동을 중심삼은 새로운 종교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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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지향해야 할 참된 길
그러면 그 종교가 가지고 있는 보화가 무엇일 것인가? 그것은 교리가 아닙니다. 어떠한 예식도 아닙니다. 그 교리와 예식을 따라 다듬어진 인격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인격이 그 종교를 대표해서 나타나게 될 때 세계인이 추앙할 수 있는 인격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온다면 그 사람은 자기 개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격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인연을 지어 놓고 가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터전이 가정입니다. 개인보다도 더 원해야 할 것은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구원 완성의 표준이 될 수 있는 종교 이념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의 종교는 자기 개인구원을 위주로 하여 나왔습니다. 개인구원을 위해서는 나라도 부정하고 사회환경까지도 부정해 나왔습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종교이념을 세계화시키고 세계적인 조국을 바라보고 나가야 할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개인구원만을 위주한 종교관념에서 벗어나야 되겠습니다. 자기를 희생시켜서 가정을 구원하는 것이 바로 자기까지 구원할 수 있는 보람된 가치를 추구하는 것임을 알고 희생할 수 있는 종교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가정을 위주한 것으로서 끝을 볼 것이 아니라, 가정을 희생시켜서 새로운 종족을 탄생시킬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운동을 유발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가진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는 발전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종족을 희생시켜 민족을 탄생시키고, 민족을 희생시켜서 국가를 탄생시키고, 국가를 희생시켜 가지고 세계를 탄생시킬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환경을 이 땅에 연결할 수 있는 사상적 밑받침을 가진 종교가 앞으로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것이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 없다면, 개인구원을 목적하는 종교보다는 가정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 다음엔 자기 종족을 구원하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종교가 나와야 되고, 또 국가를 대신하여 세계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꺼번에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를 구원할 수 있는 사상 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 종교는 최고의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하나 분립된 종교의 형태를 가지게 된다면 그 종교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점에 있어서 개인구원을 해야 하는 사명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벗어나서 가정을 구한다든가, 종족을 구한다든가, 민족을 구한다든가, 국가를 구하고 세계를 구한다고 하는 사명이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사명을 하지 못하게 되면 금후의 종교의 갈 길은 막히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사상에서 제시하는 개인구원 완성은 가정을 표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요, 가정구원 완성은 종족을 표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요, 또 종족구원 완성은 민족을 표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요, 민족구원 완성은 국가를 표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요, 국가구원 완성은 세계를 표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듯 세계, 국가, 민족, 종족, 가정을 표방하는 사상은 어떤 사상이냐? 그것은 새로운 사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민족관, 새로운 종족관, 새로운 가정관, 새로운 개인관을 가진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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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구원할 사상은 과연 어떤 사상인가
오늘날 통일교회의 사상은 구원의 목표를 개인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의 나라와 하나의 세계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구원이 되어 태평왕국이 되면 그 나라의 백성은 태평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계가 평화의 세계가 되면 그 세계권내에 속해 있는 수많은 민족 국가들도 평화로운 국가권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상충권이 있어 가지고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조국의 광복을 세계화시키고 그 세계화된 권내에서 보편적인 생활문화를 창건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갖는 것이 현재 난국에 봉착한 세계정세를 새로운 국면에서 타개할 수 있는 방편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통일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개인을 희생시켜서 새로운 가정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지금까지의 어느 종교보다도 가치 있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개인을 희생시켜 가정을 형성했다면 그 가정을 투입시켜서 새로운 종족을 편성해야 됩니다. 본래 가정이 남아지기 위해서는 종족을 위한 길을 가야 되기 때문에 그것을 예상하고 출발해야 합니다. 또한 종족도 민족이 있어야 남아지는 것이므로 미래의 그 터전을 예상하고 준비해야 됩니다. 그리고 민족도 미래의 주권국가를 위해 남아져야 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예상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영원히 남아지기 위해서는 영원한 세계의 터전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이 제시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일치된 입장에서 이러한 노정을 가도록 부르짖는 교회가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종교인들은 역사과정에서 탄압을 받아 왔습니다. 탄압뿐만 아니라 피의 제사를 드려 왔습니다. 희생의 피를 뿌려 왔습니다. 그 피에 대한 보수와 희생의 대가를 어디서 찾을 것이냐? 자기들이 믿고 있는 종교에서 찾을 것이 아닙니다.

누구 때문에 그런 피를 흘렸습니까? 그 피는 세계 때문에 흘린 것이고 새로운 나 때문에 흘린 것입니다. 새로운 인연 때문에 피를 흘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흘린 그 피의 대가는 목적 성사의 한 날을 통하여 청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그 한 날을 생각하며 말세를 기다린 것입니다.

현 사회와 현 시대권에서 생을 유지하고 있는 인간들이 탄압받는 환경을 극복하면서 바랐던 것은 미래의 세계에 대한 소원이었습니다. 그러한 소원의 한 날이 와서 자기들이 소원하는 주권자와 통치자가 오라고 그러한 사람이 다스리는 하나의 세계가 나타나 달라고 고대해 나온 것이 종교가 추구하여 나온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현시대에는 새로운 축복의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총아, 새로운 해방동이가 태어나야 됩니다. 종교의 세계에 해방동이가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일을 위한 심정적 인연이 천국을 향하여 새로운 행렬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대열이 현재의 종교 체제내에 싹이 트고, 체계화하여 정통의 내용을 갖출 수 있는 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끝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새시대는 구시대가 끝난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구시대 내에서부터 새시대가 형성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생명의 밑받침이 될 모든 요소를 흡수해 가지고 아기가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는 알맞는 인격을 형성해 나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변해 가는 사회 환경 가운데에서 새로운 세계를 향한 준비체제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 역사권내에서 종말시대를 살아 본 사람이 이 세상이 절박하든 안 하든 문제를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날 한국의 교회들 가운데에서 통일교회가 새로운 시대를 위하여 내적으로나마 각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자명한 것입니다. 내일의 세계를 상속받을 수 있는 총아로서 어떻게 등장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금후에 우리가 가야 할 노정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개인을 희생시켜 가지고 이상적인 가정을 편성하고, 그 가정을 희생시켜서 종족을 구하고, 그 종족을 희생시켜서 민족을 구하고, 민족을 희생시켜서 국가를 구하고, 국가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구하자는 사상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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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뿌리가 되어 있는 나 자신
이런 사상을 두고 볼 때 어떤 것이 선한 사상이겠습니까? 선과 악이란 어떤 것입니까? 선한 사상은 하나님께서 같이하시는 사상이요, 악한 사상은 이 세상과 같이하는 사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사상을 강조하시기 때문에 선한 사상은 단계적인 발전을 가져온다는 것을 훤히 짐작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상은 악이 전진하더라도 퇴보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설사 진전하는 과정에 있어서 발전의 흔적이 있을 지라도 결과적으로는 퇴보의 말로를 고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의 조류는 선악을 중심삼고 발전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종교권과 사회권으로 분립된 현세계에서 찾아보기 전에 개인에서 먼저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나라에서 찾아보기 전에 한 가정에서 먼저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악이 무엇입니까? 사회악은 부패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부패한 것입니까? 또 이렇게 부패하게 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나라를 잊어버리고, 사회의 모든 공적인 터전을 망각하고, 가정의 모든 기대를 망각해 버리고 자기 위주의 망상에 들어가면 거기에서부터 악의 뿌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악의 뿌리는 사회에 있는 것도 아니요, 가정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너와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나라는 남자 여자가 부패의 모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만 살려고 하는 것이 부패의 모체라는 것입니다.

부패되었다는 것은 어떤 입장을 말하느냐? 바로 자기 개인을 위주로 한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주로 나라를 끌어들이려 하는 것은 나라를 부패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주로 가정을 흡수하려는 것은 가정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패는 곧 망하게 하는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대한민국이 부패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잘한 것이 있습니까? 대한민국 행정부가 부패했다는 것은 그 행정부에 있는 사람들이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괜찮고 상대방만 부패했다구요? 천만에요. 부패의 터는 국가도 아니고 사회도 아닌 것입니다. 부패의 모체가 되는 것은 바로 자기를 위주로 하는 것입니다. 자기 위주로 가정과 사회와 나라와 세계를 이용하려는 것이 바로 악입니다. 악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때 어떤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합니까? 자기만을 위주하고 걱정하고 생각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회에서는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요, 가정에서는 나쁜 자식이 되는 것이요, 친구 사이에서는 나쁜 놈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사람은 자기 주장하면서 살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다 가치 있는 것이란 자기를 위주로 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친구가 백 명 천 명이 있다고 해도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친구가 많이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자기 주장만 했다가는 다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떨어지지 말라고 아무리 제사를 드려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자식아, 너 이거 해’ 이런 꼴을 세 번만 당하게 되면 다 도망갈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자멸하게 되는 동기입니다. 소위 안다고 하는 패들이 전부다 자기 위주로 살기 때문에 모두가 그들 편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돼먹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혼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세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가 반대했지만 개인보다 나라와 세계를 형성한다는 사상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재패를 위해서는 개인을 희생하라는 법칙이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도 인류도 없습니다. 오직 공산당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결국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망하기 전에 먼저 망할 것입니다. 내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형제든 친척이든 다 희생시키는 것이 자기를 위한 것입니까, 형제를 위한 것입니까?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살면 남아지는 것은 부패밖에 없습니다.

내 형제를 위해서 굶주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형제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굴복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방법대로 한다면 뭉치자고 할 때 억지로 뭉치기는 하겠지만 자기를 위해서 핏대를 올린다면 나중에는 분립되고 말 것입니다.망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생사문제의 흥망의 관건이 여기에 있든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무서운 사상이 무엇이겠습니까? 사탄이 지금까지 수고해서 만들어낸 사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자유주의 사상입니다. ‘나라도 없고, 가정도 없고, 부모도 없다. 우리마음대로다’ 하는 이 몹쓸 놈의 사상이 지금 세상을 휩쓸고 있는 것입니다. 목적 체제를 갖추지 못한 자유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방종인 것입니다. 아니 방종도 못 되는 망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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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기준
사람이 태어날 때는 태어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물건도 그물건이 만들어진 목적이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목적을 알지 못하고 그 목적과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 중에는 어디에 코를 대고 사는 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통일교회 내에도 이러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루 동안 무엇을 하고 지냅니까? 서울에 있는 통일교회 패들은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 무얼 하고 지냅니까? 흥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공적으로 살아야 하지만,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사적으로 살아도 됩니다. 여러분은 공적으로 살겠습니까, 사적으로 살겠습니까? 망하고 싶으면 사적으로 사십시오. 자기 마음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그것은 상대를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대로 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생각하니 남을 흉보게 되고, 좋은 것이 있으면 빼앗아 쓰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 따위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런 면에 있어서 잘 하고 있어요? 이렇게 볼 때 사람은 다른 누구에게 기대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문 아무개 때문에 욕을 먹었다면 통일교회는 망했을 것입니다. 문 아무개는 욕을 먹어도 좋지만 문 아무개가 가는 길이 공적인 길이라 한다면 욕하는 사람은 망하는 겁니다. 그 길을 나라가 막으면 나라가 망할 것입니다. 또, 세계가 그런다면 세계가 꼬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상대가 자기 마음에 맞는다고 한다면 그 상대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해주는 것이겠어요? 사람은 내 마음에 맞고 안 맞고 하는 그 기준을 세계적으로 설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조그만 밭뙈기 가지고도 아웅다웅하지요? 마음은 세계적이어야 합니다. ‘세계가 마음에 맞는데’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마음에 맞아야 평화로운 생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친구가 좋다고 해서 그 친구의 지갑에 있는 돈을 내 맘대로 쓸 수 없는 것입니다. 내것이 내것이고 네것도 내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공산당과 같은 사람입니다. 좋아하는 친구라면 어떤 조건이 있으면 그것을 빼앗으려 하는 그런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까? 좋다 나쁘다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공적이냐 사적이냐에 따라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친구란 어떤 친구냐? 그저 뭔가를 해주고 싶고 희생하면서 위해 주고자 하는 친구입니다. 그러면 누구나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부다 자기 기준에 따라 좋고 나쁜 것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희생하고자 하는 터전 위에 선의 중심이 있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쉬지말고 남을 위해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망하려면 자꾸 떨어져 나가는 것이요, 흥하려면 자꾸 붙게 되는 것입니다. 자꾸 붙으면 흥하는 것이요, 자꾸 떼어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잘 붙는 사람, 붙임성이 좋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덮어 주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탕감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디 가든지 위해 주려고 하고 남의 치닥거리 해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선은 희생과 봉사에서부터 판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오늘날 이렇게 발전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일생 동안 그 종교를 믿으면서 남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동네면 동네의 이익을 위해서 10년, 20년을 자기를 희생하며 사니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나쁘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는 이런 기독교인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로마는 망한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서도 돈푼깨나 있다고 못되고 사나운 영감이 배를 내밀면서 그 동네에 사는 착한 사람들을 멸시 천대한다면 합심해서 순리대로 때려잡자고 하지요? 선한 사람을 못 살게 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공적으로 그렇게 처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지도이념이 뭐냐? 망하는 쪽이냐, 흥하는 쪽이냐? 어느 자리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통일교회가 가지고 있는 사상은 어떤 사상이냐? 망할 사상이냐, 흥할 사상이냐? 그것을 아는 것은 간단한 것입니다. 그 사상이 통일교회만을 위주로 한 사상이라면 망할 것입니다. 종교만을 위주로 한 세계관을 주장한다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새로운 세계를 위한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와 내용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는 백 번 망하더라도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통일교회는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 통일교회가 바라는 그 나라는 망하더라도 통일교회가 찾아 세워야 할 세계가 망하지 않는 한 통일교회는 영원히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가 건설되게 되면 통일교회 간판을 떼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통일교회가 바라는 세계가 형성되면 통일교회가 세워 놓은 나라는 없애야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한민족을 중심한 문화와 인격만을 위하여 종교는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를 위한 종교라야 금후에 남아지는 종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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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조국의 의미
이제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조국을 찾아야 됩니다. 조국을 찾으려면 조국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조국을 위하여 살지 못하는 사람은 조국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조국을 위해서 사는 것이냐? 세계를 자기의 조국으로 삼고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조국을 창건할 수 있습니다. 먹고 자고 걸어가는 모든 생활과 행동이 조국창건을 위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산당에게 백주에 칼침 맞을 각오를 하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하지 못할 때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이 민족이 가지 못하기에 우리가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조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통일교회 용어로 조국이라 함은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세계적인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이라는 말은 타락한 세계권에서 쓰여지는 말이므로 기분 나쁩니다. 이러한 조국을 찾아 나아가는 주의를 통일교회에서는 천주주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은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겠습니까? 나 때문이 아닙니다. 밥을 먹는 것도 나 때문에 먹는 것이 아니라 천주 때문에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장가가는 것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뜻을 위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목표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험을 하는 것도 세계를 중심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멋이 없는 사람 같지만 멋이 있는 사람입니다. 70년 내지 80년의 눈깜짝하는 일생을 넘어서면 영원히 사는 길이 있는데 인간은 그것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세계의 시간권내에 들어가서 그 세계와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을 안다면 그 영원은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밥을 먹어도 조국을 위해서 먹고, 시집 장가를 가도 조국을 위해서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조국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 조국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조국은 대한민국이 아니요, 미국도 아니요, 공산국가도 아닙니다. 그 조국은 하나님이 원하는 조국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새로운 그 조국의 문화를 이루어야 하고, 그 조국의 역사를 이루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이상적인 조국을 세우기 위하여 기준을 새롭게 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을 바꿔야 합니다. 그 세계는 지금 이 세계와 전부 다르다는 것입니다. 말도 다른 것입니다. 원리주관권이니 상대기준이니 상대기대니 복귀기대섭리니 하는 중요한 말을 세상 사람들이 압니까? 그러니까 다르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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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건설의 용사답게 커 나가야
여러분은 조국을 찾아나서야 할 용사(勇士)입니까, 아니면 망하게 하는 망사(亡士)입니까? 용사란 나라를 대표해서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을 용사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병사(兵士)입니다. 동료들이 하지 못하고 후퇴할 때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용사입니다. 용(勇)자가 날랠 용 자거든. 누구보다도 빨리 뛰고, 총알까지도 피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을 용사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럴 수 있는 통일의 용사입니까? 저기 영감도 통일의 용사입니까?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용사인 것입니다. 세계에서 빗자루질 하는 사람들의 대왕님이 되는 것입니다. 용사가 되려면 무엇을 줄 때도 제일 열심히 주고 싸울 때도 제일 열심히 싸워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제일로 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는 제일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제일이 되고자 하는 교회입니다. 지독한 교회입니다. 지독하지 않으면 일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지독한 것입니다. 어렸을 때 마을에서 말썽피우기로 일등 하는 놈도 지독한 놈입니다. 지독하기 때문에 일등을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지독하지 않고는 일등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독의 반대는 무엇이겠습니까? 멍청이라고 할까요?

그렇다면 통일교회는 지독해야 되겠어요, 멍청해야 되겠어요? 지독해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지독한 사람입니다. 내 눈을 좀 보라구요, 순해 보이지요? 사실은 겁이 없는 사람입니다. 잘 아는 사람이 나가 자빠져도 눈하나 까딱 안 합니다. 그런데 겁이 제일 많은 사람이 또 나입니다.(웃음) 한번 까딱 잘못했다가는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에게 걸려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종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희생되어 나왔습니까? 수많은 주권자들로부터 얼마나 배척받고 몰림을 받았으며, 또한 기독교 조류를 타고 있는 사회 환경으로부터도 얼마나 비참한 몰림을 당했습니까? 통일교회가 몰렸어요, 안 몰렸어요?

대한민국이 얼마나 우리를 미워했습니까? 자유당 때부터 민주당, 혁명정부가 우리를 정말 좋아했습니까? 어느 정부도 우리를 좋아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할 수 없어서 우리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요, 그들도 우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니면 안 되겠기에 우리를 좋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즘에도 기독교인들이 우리를 미워하지요? 예수 찌끄러기 같은 사람들이 말이예요. 옛날에는 개인들이 믿었는데 이제는 제일 꼭대기에서 밀어주고 있으니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작은 나무가 쭉쭉 커 올라올 때는 다른 작은 나무들이 시샘을 하지만 큰 나무를 비집고 솟아오르면 욕하던 사람들이 보따리 싸고 도망가듯이 그 시샘이 없어집니다. 전에는 우리가 욕을 먹고 천대를 받았지만 이제는 기성교회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만만히 사라질 것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 자로 재보고, 돌려보고, 심사숙고해 보고서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욕을 왜 먹겠어요? 욕을 먹으면 수가 나기 때문입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좋아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욕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수 있고, 잘 될 수 있는 수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선은 욕을 먹으면 더 잘 되어가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선한 사람 중에 욕을 안 먹은 사람 있어요? 다 욕먹고 죽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욕했던 자들의 후손들이 그 무덤 앞에서 회개해야 됩니다. 선은 욕을 먹어도 남아지는 것이지만 악은 욕을 먹자마자 자취를 감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는 욕을 먹으며 커왔으니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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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이루는 데 있어서의 사상의 중요성
자, 그러면 조국을 찾아야 하겠는데, 지금 그 나라가 있습니까? 우리 통일교회가 바라는 그 나라가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하나님이 찾으시는 나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조국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아들딸로서, 그 아버지가 찾으시는 조국이 없는데 그 아들딸들이 조국을 가질 수 있겠어요? 조국이 없으니 국적도 없는 것입니다. 국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천대를 받아 온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국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국적이 없으니 개죽음을 당하지 별 수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선민이라는 독특한 민족을 세워서 당신만이 주관하실 수 있는 개인, 당신만이 주관하실 수 있는 가정, 당신만이 주관하실 수 있는 종족, 민족, 나라를 만들고 후손을 만들고자 하신 것입니다. 악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세계가 덮치고 덮치더라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남을 수 있는 국가를 바라고 나오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역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민을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민 개인으로부터 선민 가정, 선민 종족, 선민 민족, 선민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세웠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승리했다는 뜻입니다. 선민으로 택해서 이기게 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이겼다는 뜻이냐? 선을 이긴 것이 아니라 악을 이겼다는 겁니다. 선에는 이기고 지고 할 것이 없습니다. 싸움이 있어야 이기든지 지든지 하지요. 선끼리도 싸웁니까? 그러므로 악에 대해서 이겼다는 것입니다.

악을 대하여 이긴 나라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일들을 더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러한 일을 다하지 못하고 왔다갔다하다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수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본연의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기 위해 보낸 메시아를 추방했습니다. 그 메시아는 만민의 아버지요, 나라 중의 나라의 왕이요, 부모 중의 부모로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분을 죽였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2천년 동안 유리방황하는 민족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일치된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기에 지금 인구 3백만으로 30배에 가까운 1억이 넘는 아랍권 세력에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그 버티고 있는 힘은 국민의 수가 아니라 사상입니다. ‘우리가 수천년 동안 탄압받아 왔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니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자’ 하는 신념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사상은 이스라엘 민족 사상보다 강해야 되겠어요, 약해야 되겠어요? 「강해야 되겠습니다」 강하게 되어 있어요, 약하게 되어 있어요? 「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총칼 밑에서 한번 싸워 보자구. 김일성이 모가지를 자르자구요. 때가 되면 통일교회를 없애려는 악한 녀석들의 목을 자르자구요.

우리에게는 아직 조국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 서 있는 나를 여러분들은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따라나오고 있지만, 선생님은 아직 그리던 조국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조국을 위하는 신뢰감, 조국을 위하는 애국정신을 가르치는 도(道)가 이 사탄세계에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것을 방지하고 침식시키고 제재시킨 악의 무리들은 사라져 갔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총칼을 들고 싸워서 이기자는 것이 아닙니다. 선의 판도는 희생과 봉사로 넓혀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욕을 먹으면서 세계적 기반을 닦았고, 쫓기면서 국가적인 기틀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이제는 아무도 통일교회를 치지 못합니다. 내가 있는 한 치지 못합니다. 지지리 힘든 통일교회의 고빗길을 내가 중심이 되어 넘어왔습니다. 이것을 부정하고 설 자는 없습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계승할 자는 있을지 모르지만 부정하고 설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전통이 서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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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큰 가치를 위해 희생해 나온 통일교회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종단을 희생시켜 나라를 구하자는 입장에 서서 소모의 활동을 해 나왔습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자랑입니다. 병석에 누워 최후의 길을 가는 그날까지 애국하는 충신의 인연을 남기게 될 때는 만민이 머리 숙여 찬양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위해 가는 사람은 이 나라를 위해서 가야 하겠습니다. 남한 땅의 동포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삼팔선 이북의 동포도 함께 구하기 위해서 가야겠습니다. 또한 한국만을 위해서 갈 것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을 중심하고 공산권을 타파하여 새로운 아시아를 창건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중심삼고 세계 인류를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사상권내에서 어떠한 독재자의 권위를 내세우고 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선하고 영원하신 하나님, 만대의 양심으로 추구할 수 있고 영원한 이상세계의 중심으로 모실 수 있는 성군 되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자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독재자가 아닌 아버지의 가치를 지니신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정치철학에서는 압박자와 피압박자,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최고의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부자의 인연을 중심삼은 사랑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압박하고 고통의 자리로 몰아넣는 것은 보다 귀하고 절대적인 이상을 상속해 주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바로 세계의 난문제를 타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문제의 기원을 알고 출발했습니다. 그러기에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이 가라고 하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가라고 할 때는 가야 합니다. 대학교도 집어치우고 가자 하면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학박사 되는 것도 포기하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자신만을 위하는 어머니 아버지라면 뿌리치고 가야 하는 것이요, 색시도 짤라 버리고 가자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의 길은 개인을 희생시키고 가정을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했을 때 그 가정이 선을 중심삼고 서게 되면 희생된 개인을 부활시켜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위해 희생한 개인을 진실로 모시는 것이 가정을 위해 희생한 것에 대한 대가입니다. 또 가정이 종족을 위해 희생하게 되면, 그 종족이 남아 있는 한 희생된 가정을 모시게 되는 것입니다.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종족이 희생되었다면 그 종족의 모든 정신을 민족이 이어받아 전통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희생되어 죽었더라도 부활된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민족이 나라를 위하여 희생했다면 그 민족의 사상은 그 나라에 영원한 사상으로 남아지는 것이며, 한 나라가 세계를 위하여 희생했다면 그 나라의 사상은 수많은 세계 국가 앞에 영원한 사상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은 죽어도 살아 남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것이 무슨 말이겠어요? 선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은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가정을 위해 죽으면 가정이 사는 것이고, 그 가정이 종족을 위해 죽으면 종족이 사는 것입니다. 종족이 민족을 위해 죽으면 민족이 사는 것이요, 민족이 국가를 위해 죽으면 국가가 사는 것이요, 국가가 세계를 위해 죽으면 세계가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그러나 악은 반대입니다. 국가고 무엇이고 다 집어치우고 우리끼리 잘살자고 하는 것입니다. 나만 잘살자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조국을 찾으려고 아무리 노력해야 소용이 없습니다. 통일교회를 희생시키지 않고는 조국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를 희생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교회를 중심삼고 재미있게 살며 서로 격려해 주고 자기 집처럼 서로 왔다갔다하게 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인들이 사는 것은 북쪽 사람이 남쪽으로 가고 남쪽 사람이 북쪽으로 퍼져 나가서 삼천리 반도를 활동무대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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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남아지는 종교
일반 기독교인들은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왔다갔다하겠지만, 우리 통일교인들은 적어도 삼천리 반도를 무대로 뛰어야 하는 것입니다. 삼천리 반도를 하나님의 나라로 찾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천만을 믿어 줘야 하겠습니다. 믿지 못할 일도 믿어 주자는 것입니다. 속기도 하고, 떼이기도 하고, 욕을 먹으면 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또 믿어 주자구요. 한 번 속이면 한 번 속아 주고, 두 번 속이면 두 번 속아 주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꾸 속아 주면 속이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속일 때는 미안한 생각이 없었어도 자꾸 속이다 보면 미안한 감이 드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을 보면 속이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자꾸 속이면 들통이 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만 속아 주면 세 번째에는 이실직고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만사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보기만 해도 꼬챙이로 꼭꼭 찌르는 것같이 괴로워 도망갑니다. 모른 척하고 있으면 나중에는 자기가 걸려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은 상당히 질긴 사람들입니다. 나도 무척 질긴 사람입니다. 일생 동안 이 길을 버티어 나오면서도 아직까지 지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온 사람 중에 씨름으로 나를 둘러메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전부 넘어뜨릴 자신이 있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많아서 물론 해봐야 알겠지만. (웃음) 지금도 누구에게 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고생을 했어도 여러분들보다 많이 했습니다. 왜정시대에 왜놈들과 싸우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싸워 나오는 것을 보면 참으로 질긴 사람입니다. 왜정 때는 지하운동도 했습니다. 또, 뜻을 위해서 지금까지 지하운동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어디에 제대로 광고를 붙이고 선전 한번 해봤어요? 반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떠들어대는지 가만히 있어도 대신 떠들어 준다 이겁니다. 아마 북쪽에서 총칼을 들고 쳐들어 온다 해도 그렇게 떠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대신 우리는 ‘언젠가는 봄날이 올 것이다’ 하며 속으로 뿌리를 내려 온 것입니다. 미욱하게 여름이 되었는데 뿌리를 내놓으면 말라죽고 맙니다. 뿌리가 튼튼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대 맞으면 다른 데 가서 또 위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까 욕을 먹으면서 세계적인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이제 통일교 문선생은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비록 이렇게 살고 있지만 내가 명령만 내리면 높은 빌딩도 지을 수 있고, 벤츠 같은 고급 승용차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세계 수십개 국을 돌아다녀 보니 황제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별의별 큰 궁전을 다 지어 놓았더라구요. 그런 곳에 돈을 왕창 썼으니 전부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토굴집 같은 여기서 세계를 향해 호령하고 있다는 겁니다. 눈깔이 뒤집어진 녀석들은 와 가지고 통일교회 본부가 이러냐고 하지만 그것은 모르는 소리입니다. 사기꾼들은 간판을 근사하게 달지만, 진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알려질까봐 가려 놓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택리 수련소를 지을 때 한 달 정도 작정해 가지고 지었습니다. 돈을 쓸 데다 써야지요. 우리는 통일교회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고 나라를 위해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라도 통일교회를 알게 됐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라가 알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도 세계를 위하지 않고는, 즉 세계적 종교가 되지 않으면 망해야 됩니다. 천운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기독교도 망해야 되고, 회회교도 망해야 되고, 유교도 망해야 되고, 불교도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세계를 위해서 있는 것이니, 세계를 살리는 책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 이번 12월 초하룻날부터는 축복받은 아주머니들이 보따리를 싸들고 팔도강산으로 유람차(?) 떠나야지요.(웃음) 나는 그것을 기분좋게 생각합니다. 비록 돈은 안 가졌지만 씩씩하게 나설 수 있어야겠습니다. ‘삼천만이여! 이 여장군이 행차하신다. 아무개 사또는 내 뒤를 돌봐 줄지어다. 영계에 가 있다면 나를 치하할 지어다’ 하며 당당하게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암행어사 뒤통수를 따라다니면 이 나라의 부패상을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알려고만 하면 교회 다니는 사람을 통해서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방에 나가서 그런 사정도 알아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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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명과 책임
아무리 통일교회 문선생이 못났다고 여자들을 내세워 가지고 일을 하게 하겠습니까? 남자들을 세워서 해야 하는데 여자들을 내세워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거냐고 뒤에서 그러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가 없으면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가서 삼천만 민족을 해산하기 위한 힘을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해산의 함성을 지르게 되면 새로운 대한의 총아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을 해산할 수 있는 길로 내가 인도하겠어요. 알겠어요?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잘못 만난 것 같구만.

여러분, 통일교회 부인네들이 왜 지금까지 붙어 있는 줄 알아야?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해 희생을 하라고 했다면 모두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일하다 보니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손해날 곳에 절대로 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게 사람의 심리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을 보면 지지리 고생을 해서 그런지 눈치가 참 빠릅니다.(웃음) 비록 어수룩하게는 생겼지만 쪼들려 말라빠져 남아진 패들이니 얼마나 눈치가 빠르겠어요? ‘짝’ 하면 ‘윽’ 할 정도로 눈치가 빠릅니다.(웃음) 그런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가자 하면 벌써 보따리를 준비하고 못 나가게 할까봐 남편 눈치를 보고 아저씨 눈치도 봅니다.

자, 이래 가지고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여러분만 천국가면 뭐합니까? 여러분 아버지 어머니가 지옥에 가 있는데 천국에 가서 살 수 있을것 같아요? 또, 대한민국 사람들이 너만 좋다고 천국갔느냐고 큰소리 치는데 혼자 천국에 가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이겁니다. 그 놀음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본부는 초라해도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천년 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4천년 동안 바라나오던 소원을 이루시려 했으나 일시에 파탄되었습니다. 이것을 제3 이스라엘로서 새로운 전통을 이어받아 하나님을 배반하는 민족이 되지 말고 충신의 도리를 세우고 충신의 절개를 남기자는 것이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라가 위급한 때일수록 우리의 생활을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몫을 기꺼이 해 낼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 총총걸음으로 달려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을 가진 통일교인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 통일 족속이 족속으로만 남아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민족을 형성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제2의 해방을 삼천리 반도에 촉진시킬 사람은 누구냐? 이 나라의 위정자들이 아닙니다. 또한 어떠한 종교 책임자도 아니며 공산주의자들도 아닙니다. 남북한 민족을 자기의 형제보다도 귀하게 여길 수 있으며, 이 나라 이 민족을 세계의 어떤 나라, 어떤 민족보다도 더 귀하게 느낄 줄 아는 사상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고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그런 면으로 방향을 갖추기 위해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 나온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하루 하루를 지내면서 염려하는 것은 통일교회의 발전이 아니라 이 나라의 발전과 이 나라의 운명의 종단이 천운과 상치되는 것이었습니다. 천운과 상치되어 천운의 공판정에 피를 부르는 일이 있게 되면 뒷전에 머물다 사라지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내일을 향하여 슬픔과 외로움을 가슴에 안고서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조국 광복이라는 엄청난 뜻을 중심삼고 강인한 신념만이 승리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고 전진해 나아가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활동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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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상의 확립과 하나의 세계
선생님은 감옥에서 여러가지 고문을 당하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수많은 형사들에게 지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나는 ‘오냐! 지금은 너희들이 놀아나는 붓대에 의해 곤욕스러운 입장에 처해 있지만, 너희들의 칼에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너희들이 나에게 천만 사연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사죄하는 승리의 한날이 올 때까지 너희들이 자극시킨 모든 슬픔은 내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면서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내 가슴속에 그것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왜정 때에 제국주의자와 담판짓던 환경에서 내일에 희망의 세계를 남기기 위해서 싸우던 그 열정과 그 결의, 그때 몸서리쳤던 그 환경이 아직까지 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공산당과 싸우던 투쟁의 행로에서 비참히 투옥되어 영어의 몸이 되었을 때 마음에 결의했던 내용도 잊을 수 없고, 대한민국 팔도강산을 위해 통일이라는 새로운 깃발을 들고 나선 때를 세 정권이 몰아내던 때의 내적 심정도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맺혀 있습니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가 끝을 보이게 될 때는 나라의 운명도 끝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날을 알고 있기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여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이 방향대로 이제부터 움직이면 통일교회는 승리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해야할 일은 스승의 전통사상을 올바로 본받아 이 나라가 직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만민이 항소하고 항의하는 길이 아니라 만민이 찬양할 수 있는 길을 올바로 남겨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과정에서 세계적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선생님의 과거지사를 얘기할 때에 여러분은 뼛골에서 피눈물이 우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무력의 압력을 받아서 느끼는 것도 아니요, 개인이 어떤 영화로운 대접을 받아서 느껴지는 것도 아닙니다. 흐르는 물이 되어 비참한 환경을 거쳐 나왔기 때문입니다. 물은 흐르면 흐를수록 대양에 가까와지는 것이요, 대양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흐린 물은 맑아지면서 환희의 얼굴로 대양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러한 사연을 알게 될 때에 거기에 머리 숙여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삶이 그런 엄숙한 전통을 따라 살아서 여러분의 조상들과 후손들, 또한 역사 시대의 조상들이 숭배할 수 있는 전통과 인연을 남기게 된다면 여러분의 사상은 천추만대 후손 앞에 길이길이 남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남아진 전통이 국가를 초월하여 세계 만민이 소원하는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세계를 접붙이게 되면 몇천 년, 몇만 년후에도 눈물로 감사하며 이에 순응하는 하나의 움직임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기필코 그러한 세계를 창조해야 되겠습니다. 조국이념을 품고 세계인을 사랑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면 환희를 찾는 그들로 인해 하나님을 중심삼은 주권국가가 이 지구성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계가 내 일생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여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당대에 이룰 수 없더라도 하나의 씨로서 후대에 계승할 수 있는 생명의 여력을 지니고 있어야겠습니다. 그래야 다시 찾아오는 봄날을 지나 여름날의 폭염 속에서도 썩지 않고 오히려 그 폭염을 생명의 요인으로 흡수할 수 있는 요소를 남겨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지금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여야 하겠습니다. 그 일을 위해 죽는 사람은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내 나이가 50이 넘었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20대의 청춘시대에 이 길을 나섰는데 이제는 50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뜻을 대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뜻을 중심삼고 세계 만민을 구하기 위한 마음이 간절한 입장에서 보면 역사 앞에 죄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나온 20여 년 동안 선한 세계를 찾아가야 할 하늘 나라의 백성이 얼마나 많은 악한 지옥권내로 떨어졌는가 하는 것이 원통할 뿐이지 나 자신이 비참하게 살아온 것을 원통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계 인류를 35억으로 보고 일년의 사망률을 백분의 일로 보더라도 일년이면 3백 5십만이요, 10년이면 3천 5백만이요, 20년이면 7천만이라는 인류가 지옥행을 했다고 생각할 때, 역사기대에 책임 맡은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낄 뿐 자신이 지내 온 생의 노정에 대해서는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목적은 전도를 위해 종횡무진하여 삼천리반도의 모든 백성은 물론이거니와 그 산하에 자라고 있는 모든 초목들까지도 이 뜻 앞에 머리를 숙이게 함으로써 전체가 하늘과 더불어 화합할 수 있는 한 날을 하루빨리 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만국 해방의 빛을 꺼내어 가지고 만국이 소원하는 만민 해방의 출발을 보게 된다면 이 민족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라가 없는 것을 탄하지 말고, 국권이 없는 것을 탄하지 말고, 민족이 없는 것을 탄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금후에 공산세계와 민주세계를 넘어 25세기, 30세기에 필요로 할 수 있는 민족적인 가치를 지닌 개체로 남아져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상과 이념체제를 갖춘 주의를 제시할 수 있다면, 그 종족은 새로운 한국을 세계에 심어 놓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36-198
조국 광복을 위해 희생의 길을 가야 할 우리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지금부터 내일의 조국 광복을 위해서 끊임없는 투쟁을 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밥을 먹는 것도 조국 광복을 위해서 먹고, 잠을 자는 것도 조국 광복을 위해서 자고, 불행한 환경에 몰리더라도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참아야 하겠습니다. 눈물도 그것을 위해 흘리고, 정열도 그것을 위해 투입해야 하겠습니다. 자기 생애를 조국 광복을 위해 바쳐야 하겠습니다.

어느 누가 자기 생애를 희생하면서 가고 싶어하겠는가? 내일의 자아발전을 꾀할 수 있고, 미래의 행복의 터전을 만민과 연결시키기 위해 현재 입장에서 희생하겠다는 심오한 마음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렇게 나아가야 하는 것이 통일사상을 지닌 우리의 입장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지방에 나가 전도를 해도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 쉽게 낙심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심거들랑 참되게 심고, 뿌리거들랑 참되게 뿌려야 합니다. 눈물로 정성을 들여도 끝장이 날 때는 ‘아버지, 내 힘을 다하여 힘이 없기에 눈물로 당신의 힘을 바랍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거룩하게 할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사정할 수 없는 외로운 자리에 몰릴지라도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 반문하여 볼 때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이 있다든지 민족의 지탄받을 무엇이 있다면 부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상적인 기준이 역사시대에, 후대의 만민 앞에 지탄받을 내용이라면 이것을 검토하고 비판해 봐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버님의 뜻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책임, 내가 할 수 있는 온갖 노력,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 들였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망하더라도 당신 것은 당신께 돌려 드리오니 이것을 받아 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쓰러지더라도 선한 것을 하나님 앞에 위탁하고 죽어야 할 것이 내 사명이라는 것을 알 때 하나님은 나와 같이하시는 것이요, 거기서부터 새로운 내일을 다짐할 수 있는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절망이 사망권을 이루는 것이 아니요, 낙망이 내 환경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일의 해방의 터전이 될 수 있고 부활의 터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내일을 향하여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정성을 다하지 못한 가슴을 붙안고 통곡해야 하겠고, 민족을 사랑하는 붉은 피를 갖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해야 하겠습니다. 호흡과 맥박을 통하여 나타나는 모든 감정이 민족과 더불어 머물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해야 되겠습니다. 민족을 찬양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지 피눈물을 흘린 정성의 기준을 갖추고 있다면 비록 갖추지 못하고 외로운 자리에 몰려 있다 하더라도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길을 가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 같지만 외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역사의 낙오자 같지만 낙오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적인 새로운 것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알고 여러분들은 여러분을 슬픈 길로 내몰아야 하는 스승의 입장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은 망하더라도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은 기쁘다고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래로 천지를 울리고 있지만 어느 한 때 주인이 오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들은 생명의 근원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2의 부모를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 것이 추풍낙엽같이 사라지는 환경에 있더라도, 동삼삭 시베리아의 설한풍에 꽁꽁 얼어붙은 자리에 있더라도 생명력을 집약시켜 그 환경을 제압할 수 있는 생명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힘이 있다면 다시 오는 봄날에는 희망의 새싹이 튼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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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정성을 다 투입하며 조국 찾는 길로 나아가자
오늘날 여러분들이 동원되는 것은 가정에 있어서의 비참사입니다. 남편에게 있어서의 비참사요, 생활적인 비참사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민족을 살리고 남편을 살리고 후손을 살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제물된 입장에서 거룩한 모습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적인 기반을 닦기 위해 여러분은 보내는 것이기에 나 자신은 아버지 앞에 먼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된 행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길에는 선생님이 있고,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절망과 낙심으로 사라지는 자가 되지 말고 절망의 고개를 넘어야 하겠습니다. ‘만일 나 자신이 이 길에서 죽게 되면 영계의 수많은 선지 선열들과 우리의 선한 선조들이 무릎을 꿇고 찬양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는 마음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은 죽어도 사는 것이요, 살아서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영원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에게는 나라가 없습니다.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는 외로운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통일교회는 친구도 없었습니다. 통일교회를 증거하는 종교도 없습니다. 통일교회를 환영하는 민족도 없었습니다. 내가 그런 길을 걸었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런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이 외로운 자리에서도 죽지 않고 남아져서 이 스승을 중심삼고 환희할 수 있는 세계적인 그때가 오면, 그 영광을 여러분의 영광으로 남겨 주고 싶은 것이 이 스승의 소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서어서 나라를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제2의 조국광복을 위해 삼팔선을 타파하고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아시아의 새로운 결실로서 나타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한민족의 역사적 처참사를 딛고 새로운 문화를 창건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든 것을 알고 약한 손을 서로서로 맞잡고 약한 몸을 움직여 하늘을 향하여 쌍수를 들어 맹세해야 되겠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자중하는 마음으로 내일을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국가를 사랑해야 되겠고, 세계를 사랑해야 되겠기 때문에 환경을 개척해야 되겠습니다. 아들딸과 남편을 찾아가고 싶은 불쌍한 입장에 서게 되더라도 ‘하나님이시여! 내 아들딸보다도 이 나라를 사랑하시옵소서. 내 남편보다도 이 나라를 더 사랑하시옵소서’라고 이를 악물고 기도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사랑하는 아들딸을 뒤에 남기고 가야 하는 것이 바로 애국자들이 가는 걸음일진대 그렇게 가는 여러분 앞에 절망이 찾아오더라도 그 절망이 여러분을 구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고독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숨과 절망이 있는 고아의 입장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데에는 눈물의 대신자가 나타날 것이요, 나라를 위할 수있는 선봉의 용사들이 모일 것입니다. 천년한을 풀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아들딸을 보내시고 선민을 희생시키신 아버지의 억울함을 해원성사하기 위해 가냘픈 아내의 손을 붙들고 걸어가는 남편이 있다면 그집에는 천세 만세 만민이 추앙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후손이 남아질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참고 또 참아 보람있게 한계선을 넘어서야 하겠습니다.

통일교회가 이처럼 피를 흘리고 밟히면서 나오는 길이 최후의 제물된 노정이라는 것을 알고 가정 전체가 합하여 심정을 모아 하늘 재단을 지킴으로써 해방의 주인이 되는 기록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이번에 1970년도의 마지막을 기하여 총진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무리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이들이 가는 길이 열려지게 해야 하고, 자기의 생애를 염려하는 것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무리로 말미암아 이 민족이 구원받을 것이요, 남과 북이 통일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여 그렇게 믿게 해주실 것입니다.

이 길만이 우리의 갈 길이요, 이 길만이 세계를 구원해야 할 하늘의 용사들의 전쟁터라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길에서 슬픈 환경에 당면하거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말고 선생님을 원망하고, 외롭거든 남편을 원망하지 말고 선생님을 원망하기 바랍니다. 생활하면서 화를 당하고 저주를 받더라도 선생님을 잘못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길을 달려가기 바랍니다.(울음)

1971년도에는 하나님께 약속한 그 기준을 넘지 않으면 민족 해방의 기틀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온갖 정성을 다 투입하여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 같은 생명을 상속받는 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만약 우리 한국 통일교회가 책임 못하면 일본에 있는 통일교회를 내세워야 하고, 일본의 통일교회가 책임하지 못하면 미국에 있는 통일교회를 내세워서라도 대신하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섭섭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이 민족이 결합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가야 하겠습니다.

인연되었던 역사와 더불어, 인연되었던 사정과 더불어 느끼기 어려운 눈물어린 심정을 느낄 적마다 하나님의 심정을 붙안고 몸부림쳐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조국의 광복과 세계 해방의 터전을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정성으로 결정짓기 위해 싸움터를 향해 힘차게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희망의 조국을 찾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이 사명을 여러분들이 상속받아 12월을 힘차게 출발해 주기를 진심으로 부탁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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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지금까지 보호하여 주신 당신의 은사에 감사드리옵니다. 당신을 붙안고 나오던 한 아들이 진심으로 이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여기 따르고 있는 이들도 외로운 무리들이옵니다. 황량했던 과거의 핍박의 환경을 다시 찾아가야 할 당신의 아들딸들이 이제 며칠 후면 남한 각지에 널려지겠사오니 이들의 갈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들의 입장을 당신의 입장과 같이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외로울 때 아버지께서 위로하여 주셨듯이 저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내가 가야 할 앞길이 막혔을 때 아버지께서 염려해 주시고 인도하여 주셨듯이 이들도 도와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후는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