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7 to 36-38: 우리의 때

우리의 때
1970.11.08 (일), 한국 전본부교회

36-07
우리의 때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1월 8일, 이달을 맞이하여 두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에 여기에 모인 자녀들 위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긍휼과 자비의 은총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전국에 널려서 이곳을 사모하며 당신을 흠모하고 하늘을 향하여 축수하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당신의 가호의 손길이 더더욱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중앙에서 뜻을 위하여 정성의 간절함이 지방에 있는 수많은 자녀들 앞에 미쳐서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동기와 계기를 언제나 갖고 지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번 달도 아버지의 경륜 가운데서 저희들의 일체를 맡아 주시옵소서. 당신과 더불어 영원한 목적을 공동적으로 책임성사시켜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 민족은 저희들이 가는 뜻에 협조하지 않지만 이 민족을 위한 저희들의 책임만은 언제나 남아 있는 것을 알고, 누가 도와주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당신이 남기신 뜻을 위하여 갈뿐이라고 감사하면서 굳건히 싸우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때를 맞이하여 전국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10일부터 아버지의 뜻 앞에 새로운 부흥회 기간으로 설정하였사오니, 이 기간이 당신 앞에 기쁨을 돌려드리는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기간이 저희들에게는 1970년도를 유종의 미로 거두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겠습니다.

수난의 길을 엮어오던 저희들의 행로가 슬픔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오라, 당신의 보호와 사랑 가운데 새로운 희망과 목적을 중심삼고 벅찬 때를 맞이한 것을 아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저희들의 슬펐던 사연을 풀어 놓고 하늘과 가까운 자리에서 공고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중요한 이번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에게는 서울에 있는 수많은 자녀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깃발을 들고 행군하지 않으면 안 될 전체의 책임이 있사오니,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주위에 널려 있는 기독교단들이 당신을 위하고 당신의 뜻 앞에 충성을 하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길을 가는 저희들의 앞길을 백방으로 막으려고 하고 있사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은 이 길을 가려 가며 승리의 절정을 향하여 나아가야 할 아버지의 뜻이 남아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당신 앞에 온갖 감사와 충성으로 보답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아무리 하늘의 길을 막는다 해도 하늘은 기필코 승리의 터전을 마련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 통일교회의 소수의 무리들이 다른 수많은 교단과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의 뜻을 따라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비교하게 될 때, 정성에 있어서나, 심성에 있어서나, 심정에 있어서나, 간절함에 있어서나, 사모하고 흠모하는 열의에 있어서나, 그들보다는 높고 충만해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언제나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저희 한 자신이 언제나 하나의 자신으로서만 남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 한 자신은 전체를 대신하는 자로서 높고 귀하신 아버지의 아들로서 칭찬받을 수 있고, 아버지의 딸로서 칭찬받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70년도의 마지막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 해야 할 일들이 많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이번 기간에 저희들이 움직이고 행하는 것 모두가 아버지의 뜻 앞에 보탬이 되고, 뜻을 통하여 당신의 세계적인 발판을 닦는 것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이번 기간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고 상하가 일치되어서 당신이 남기신 뜻만을 성사시킬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사옵니다. 남다른 이 길을 가겠다고 몸부림쳐 나오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현재 자아의 중심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으며 내일의 소망과 일치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비판하고, 새로운 방향을 스스로 모색하고 자각하여 내일의 소망을 인계받을 수 있는 당신이 바라고 당신이 찾아 나오던 아들딸들이 기필코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부디부디 이들의 마음에 당신의 마음이 어리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들의 생활이 당신이 살피는 생활에서 벗어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들의 생애 노정이 당신의 소망의 뜻을 인계받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아버지께서 늘 가는 방향을 갖추어 주시어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도록 안팎으로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그리워 당신이 남기신 뜻만을 위하여 충성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고, 효성을 다하고도 그것을 스스로 잊어버릴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 당신 앞에 칭찬받고 당신 앞에 기억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들이 이달에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고 있사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경륜하는 모든 전체가 아버지의 뜻 앞에 일치되고 영광의 터전이 되어 아버지께서 70년도의 기쁨의 한때로서 자랑할 수 있는 이달이 되고 이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복을 빌어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에게도 당신의 뜻 가운데서 칭찬하여 주시옵소서. 지켜 주시옵소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최후의 승리의 절정에 도달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떨어지지 않고 달려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될 수 있도록 품어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당신의 이름을 중심삼고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의 거룩함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자비의 손길을 부디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뜻 앞에 있어서 저희들이 최종적으로 세움을 받고 자랑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6-10
말 씀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태어나는 때와 결혼하는 때, 그리고 죽는 때는 중요한 때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6-10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3시기
한 개인이 태어나 가지고 성장하여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적인 인연을 맺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반드시 최후의 길을 가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나라도 반드시 창건기가 있고, 그 다음에는 번성기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이 번성기를 통해 가지고 저녁 때와 같은 기간을 반드시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 저녁 때와 같은 기간에는 어떤 문화면 문화, 혹은 나라면 나라 자체가 모든 전체를 수습하고 새로운 출발을 모색할 수 있는 중요한 기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기간에는 새로운 미래의 생명의 터전, 씨로 말하면 새로운 씨로서 미래의 새로운 생명의 요인이 될 수 있는 제반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러한 씨를 추수할 수 있는 가을절기와 같은 때가 저녁 때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생이 가는 길에도 그와 같은 날이 있고, 그와 같은 한시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 동안에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아침은 어떤 일을 준비하는 때이고, 낮은 일을 하는 때입니다. 또한 저녁은 그 일을 마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수습하여 청산지어 놓고 내일의 일을 준비하는 터전이 되게끔 가려 놓지 않으면 안 되는 때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도 그렇고,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의 생활도 그런 과정을 거쳐 나가는 것을 보게 될 때, 우리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가 자체에도 소생적인 출발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 출발기에는 생명의 여력을 지니고 그 환경의 모든 여건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없어 가지고는 그 환경 앞에 생명체로서 남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생명체로 남아졌으면 새로운 생명의 결실을 이어받아서 자체내에서 그 생명의 결실과 더불어 관계된 내용을 언제나 갖추어서 준비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리 결실의 때가 온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서는 결실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어나서 그 환경을 극복해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미래에 결실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이어받고, 그 결실의 모든 내용에 동기가 될 수 있는 자체력을 지닐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만 결실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새로운 역사과정이라든가 인류 사회에 있어서 필요로 할 수 있는 하나의 결실체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36-11
결실체로 남아지려면
이걸 생각하게 될 때에, 사람은 태어나서 반드시 그 자체로서 환경을 극복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새로운 생명을 이어받아 가지고 결실의 내용을 지닐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됩니다. 이 과정을 거친 후에는 올바른 자리에 서서 실효를 나타낼 수 있는 한 자리를 차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곡식이 씨가 뿌려져 가지고 싹이 터서 자라 열매를 맺어 주인의 손길에 의해 거두어져서 창고에 저장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어떠한 목적 앞에 필요해서 거두어질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통일교회를 두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가 새로운 사명을 가지고 섭리사 앞에 새로이 출발하게 될 때, 그 섭리사가 지니는 내용도 있겠지만 그 섭리사가 가야 할 방향에는 환영하는 여건보다도 반대하는 여건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안팎의 모든 것이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하나의 실체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자비한 투쟁의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됩니다. 이 투쟁을 통하여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까지 남아져야 됩니다.

이러한 결실이 한 민족에게 하나의 결실로써 남아지기 위해서는 민족의 반대와 생명력에 대항해 들어오는 모든 시련들을 극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또한 이것이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라 할진대는 그 세계의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자체력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도 그 자체내에 미래의 소망에 대한 결실의 내용을 보유하지 않고는 미래의 소망을 상속받을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의 시련보다도 미래에 다가올 그 소망의 내용을 인계받아 올 수 있는 그 자체의 내적인 구비 조건이 더욱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환경과 싸움을 해서 승리를 했더라도 기뻐할 것이 아니라, 이 싸움을 통해서 미래에 상속받을 수 있는 내용을 보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강하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기뻐하기보다 그 과정에서 승리의 인연을 다짐했으면 다짐된 그것이 내일의 소망을 상속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자극이 되고, 거기에 보다 보탬이 되는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지 못한다면 미래의 소망의 자리에서 인류역사 앞에 거두어질 수 있는 결실체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36-12
새로운 시대를 상속받을 수 있는 요인을 갖추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연 1970년대는 어떠한 때냐? 이때부터는 우리에게서 시련의 과정이 지나가는 때입니다. 지금까지의 시련의 과정을 우리는 모두 극복해 나왔습니다. 이런 자신을 두고 볼 때, 시련을 극복했다는 사실을 두고 기뻐하는 것보다도 당장에 갖추어야 할 결실의 내용을 충당하기 위해 그 내용을 보강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사실을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 되는것입니다.

이 내용의 미래의 소망을 상속받을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에 이 요인을 스스로 갖추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가 70년대를 수확의 때, 결실의 때로 맞이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이 기간은 각자가 해결하여야 할 중요한 기점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러한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요인을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 70년대가 아무리 우리 뜻에 도움이 되고 우리 교회가 발전할 수 있는 때라고 할지라도 그 때를 여러분의 때로서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70년대를 두고 볼 때 지금까지 많은 제반 행사를 거쳐왔습니다. 누차에 걸쳐 실시한 국제적인 행사를 통하여 우리는 사회에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고 모색하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11월에도여러가지 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체과정을 통해서 아무리 많은 행사를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미래의 내용과 결부되고, 미래의 발전에 동기와 요인이 될 수 있는 기회로 포착하여 거기에 전력을 투입시킬 수 있는 자신이 되지 않고는 70년대가 우리의 결실의 때, 수확의 때로 다가온다고 해도 무의미한 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우리는 언제나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때는 앞으로 찾아올 새로운 시대를 우리가 상속받을 수 있고 결실할 수 있는 좋은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체내에 결실할 수 있는 내용을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나타난 것보다도 자기의 자체내에 있어서 끊임없는 기쁨과, 끊임없는 희열과, 끊임없는 생활력이 스스로 충천하는 생활환경을 갖지 못하는 자는 지금이 새로운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내적인 요인만 가지고 되느냐? 안 됩니다. 내적인 요인을 중심삼고 외적인 요인과 결부시켜야 됩니다. 반드시 외적인 입장과 결부시켜야 됩니다. 우리의 이 뜻이 통일교회만의 뜻이 아니라 한국의 뜻이요, 세계의 뜻이라면 반드시 내적인 요인을 유지해 가지고 외적인 환경과 연결시켜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과거에 반대받으며 환경을 개척해 나오던 극복시대와는 다릅니다. 이제는 자기의 갖추어진 내용을 제시해 가지고 그 가치를 평가받아야 할 시대인 것입니다. 이것이 수확의 때, 결실의 때를 맞이한 시대에 있는 우리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기에서 반드시 평가를 받아야 됩니다. 비교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훌륭하고, 어느 것이 보다 가치 있느냐 하는 것을 평가받아야 된다는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70년대에 제반 행사를 해야 되겠습니다. 국가적 분야에 적응할 수 있는 행사도 물론이지만, 아시아에 있어서도 우리를 평가해 줄 수 있는 행사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행사도 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우리 단체와 다른 단체를 비교하게 될 때 다른 단체는 비교도 안 되는 내용이 반드시 우리에게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가치적인 면에서 볼 때, 그 누구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가치적인 것으로 평가될 때 여기에서 세계적인 뜻은 하나의 중심을 통해 가지고 자동적으로 연결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36-14
여러분은 어떤 결실체가 될 것이냐
그러므로 여기에서 여러분은 여러분 자체내에 그런 희망과 소망을 인계받을 수 있는 내적 요인을 공고화시켜 가지고 그 공고화된 내적 요인을 중심삼고 외적 환경에 다시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수세의 입장이 아니라 반드시 공세적인 입장에서 드러내야 됩니다.

감나무를 보게 되면 봄에 꽃이 핍니다. 감꽃은 다른 꽃처럼 유난스럽게 울긋불긋하지 않습니다. 또, 감꽃은 잎사귀의 빛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꽃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또, 열매 맺어져서도 잎사귀에 싸여 있을 때에는 열매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그 이파리가 너무나 청청하기 때문에 열매가 있는지 없는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빛깔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완숙하게 될 때는 안팎이 전부다 붉어집니다. 그래 가지고 잎은 다 떨어지더라도 그 열매만이 유난히 빛날 수 있게끔 남는 사실을 여러분이 볼 것입니다.

여기서 완숙된 그 열매 자체가 그 환경에 있어서 모든 전체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어느 누구든지 그 열매를 보고 반가와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 70년대가 그야말로 결실의 시대라고 한다면 잎과 같은 모든 요인은 전부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앙상한 가지에 하나의 결실의 가치를 지닌 열매가 전체의 가치로서 드러나는 그러한 감나무의 열매와 같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열매는 선전이 필요없습니다. 그 자체를 보고 안팎으로 갖추어진 그 가치를 어느 누구든지 백 퍼센트 평가할 수 있는 가치적인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 감나무면 감나무 자체가 일년 동안 얼마나 꾸준하게 싸움을 했겠습니까? 그 열매로서 완성할 때까지 얼마나 수고의 과정을 거쳤겠습니까?

수많은 가지에서 피어난 꽃들 가운데 보다 나은 완숙한 열매로 되기까지 그 열매 자체는 어떠한 꽃의 열매보다 더 투쟁을 했고 더 노력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여름을 거치면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그런 험난한 환경과 영양이 부족하여 미숙한 자리에서 열매가 떨어질 수 있는 여러가지의 환경을 다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그 나무가 열매를 많이 지니지 못하여 하나의 열매만 남겼다면 그 열매는 그 나무의 전체 진액을 대표하여 그 나무의 종합된 내용과 외적인 투쟁력을 가진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런 열매만이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무에 단 하나의 열매가 남았다면 그 하나의 열매가 그 나무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나무라면 그 한 알의 감으로 말미암아 가을을 맞을 때 스스로의 보람과 위신과 권위를 세울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무에 꽃도 많이 피었고 열매도 맺혔었지만, 그러한 것들이 전부다 떨어져 버리고 가을이 되었는데도 하나의 결실도 맺지 못하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라면 얼마나 처량하고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렇지만 많은 열매는 맺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떤 나무의 열매와도 비교할 수 없는 완숙한 하나의 열매를 가졌다면, 그 한 알의 열매를 가지고 수천 수만의 열매 앞에 당당히 자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사회에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기독교면 기독교를 중심삼고도 수많은 종파가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결실의 시대를 맞이한 통일교회 자체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결실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것과 같이 한 나무에 많은 열매가 맺혀야 되지만 그렇지 못하고 하나의 열매만을 남겼다 할 때, 그 열매가 그 나무로서는 그 이상 낼 수 없는 완전한 열매라면 그 나무는 그 열매로 말미암아 가을을 맞이한 가치와 권위와 위신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를 하나의 나무로 비유한다면 반드시 결실이 있어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출발해 가지고 지금까지 모진 풍파와 시련과정을 거치며 하나의 결실을 향해서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 결실 자체가 어떤 결실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이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36-16
영광의 결실체가 되려면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 스스로가 과연 나는 정상적인 봄을 맞이했느냐, 정상적인 여름을 맞이했느냐, 그리고 정상적인 가을을 맞이해서 완숙한 열매가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비판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 열매 한 자체를 두고 보면 거기에는 나뭇가지도 있는 것이요, 나뭇잎도 있는 것이요, 뿌리도 있는 것이요, 또 씨도 있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땄다고 하는 것은 그 나무 전체를 가졌다 하는 것과 같은 입장입니다. 도리어 그 열매에는 씨가 많기 때문에 그 열매를 중심삼고 수십 혹은 수백 그루의 나무를 가질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한 나무의 열매는 그 나무를 대표해 가지고, 그 나무가 십년이 지났든지 이십년이 지났든지 역사적인 그 연륜의 모든 요인 가운데서 생명력을 가지고 인계해 주고 싶었던 전체적인 요인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완전한 열매로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가 자라는 과정에 그 요인을 한번이라도 절단해서는 안 됩니다. 끊임없이 자라도록 놓아 두어야 합니다. 생명이 시작된 그날부터 열매로서 거두어져 주인의 손을 거쳐 창고에 들어가 저장될 때까지 그 요인이 어느 한때라도 끊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 때나 혹은 그보다 더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때나 어떠한 시련의 과정이 있더라도 이 요인이 끊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요인은 시종일관 연면하여 그 자체에 보유되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 자신들은 신앙의 길에 들어와 가지고 자신의 새로운 생명이 발생하는 것을 느끼고, 희열을 느끼고, 새로운 희망을 느낄 것입니다. ‘나는 이런 나무가 되고, 이러한 인격자가 되고, 세계 앞에 이러한 존재가 되겠다’ 하는 결심을 하고 나선 그날부터는 그 희망과 가을의 수확기를 위해서 준비하는 모든 내적인 요인이 끊어짐이 없어야 됩니다. 시일이 가면 갈수록 다짐하고 거기에 플러스시킬 수 있는 내용을 적재시키는 과정이 없어 가지고는 완숙된 결실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70년대는 우리의 때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때라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의 때라고 해서 싸움을 해야 할 때냐, 아니면 결실을 거두어야 할 때냐? 사람은 누구나 싸움의 때보다는 결실의 때를 바랍니다. 싸움을 하는 것은 싸움의 때보다도 승리하여 영광받기를 바라기 때문에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즉, 싸워서 이기고자 하는 것은 영광을 바라기 때문이지 싸워서 이기고도 영광이 없으면 싸울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 영광은 싸움에서 승리의 결과를 거둘 때 가능합니다. 모든 일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70년대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의 통일교회의 때라는 것은 어떤 때냐? 결실을 거두어야 하는 때입니다. 결실을 거두는 데는 우리 통일교회에 소속한 교인들을 중심한 이 자체를 중심삼고 거둘 것이냐, 우리가 좋아하는 열매만 거둘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좋아하는 열매로 거둘 것이냐, 세계가 좋아하는 열매로 거둘 것이냐? 입장은 모두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며 사랑할수록 우리 교회내의 가치로서 열매가 거두어지는 것을 바라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 나라가 우러러보는 데서 거두어지고, 세계가 우러러보는 데서 거두어지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러한 결실의 열매로 거두어질 수 있는 요인을 자기 스스로 시종일관 끊임없이 지니고 나왔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36-18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고 최상의 결실을 어디에서 거둘 것인가
결실의 요인을 시종일관 지니고 왔다 할진대는 이것을 어떤 곳에 결실시켜야 될 것이냐? 교회에 파묻혀서 결실시킬 것이냐? 그 결실의 환경과 결실의 터전을 어떠한 곳에 맺어 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우리의 소원이겠습니까? 이 물음에는 너나할것없이 교회내의 결실로 거두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니 하나님도 그럴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가치가 있으면 있을수록 최고의 정상에 있는 존귀한 분이 차지할 세계 앞에 거두어지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보면 그범위와 입장은 넓고 크고 높고 귀한 범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의 대주재가 되시는 하나님이 통솔하시고 통찰하시고 주관하시는 세계 앞에 보다 귀한 것으로 거두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의 소망이요, 바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그 결실을 통일교회의 결실만으로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것을 통일교회에서 중요시하는 이상으로 나라에서 중요시할 수 있고, 나라에서 중요시하는 것보다도 세계가 더 중요시할 수 있고, 그 세계가 중요시하는 것보다도 천지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더 중요시할 수 있는 결실이 되기를 반드시 바랄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보다 더 귀하게 여길 수 있고, 나라보다 더 귀하게 여길 수 있고, 우리 교회보다도 더 귀하게 여길 수 있는 그러한 최상 최고의 자리가 어떤 자리이겠습니까? 그런 최고의 자리에 서게 될 때에 그것은 역사적인 결실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그런 결실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에 그러한 결실이 나오게 되면 오늘에 거두어진 그 결실 하나로 말미암아 과거가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 결실체가 거두어짐으로 말미암아 미래의 소망을 다시 연장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금년에 그런 결실을 가져왔기 때문에 후세에도 그런 결실을 가져올 것이 아니냐? 거두어질 결실체의 가치를 중심삼고 미래에 대한 소망도 그 가치 앞에 기대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현재는 우리의 때라고 할 수 있는 수확의 때입니다. 수확의 때는 완숙된 결실의 가치를 두고 말하는 것인데, 그 가치가 통일교회내의 가치로만 거두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이 결실의 가치를 어디에 심고, 어디에서 거두어야 될 것이냐? 나라에서 거두어야 되고, 세계에서 거두어야 됩니다. 우리가 그 결실체를 보다 가치있는 것으로 드러내고, 보다 가치있는 것으로 공인시키고 평가되게 하려면 나라를 중심삼고 빛낼 수 있는 환경을 개척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나라보다도 세계 앞에 이것을 빛내야 되기 때문에 세계와 인연을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의 행사, 우리 교회의 움직임은 통일교회의 예식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만민이 국가의 예식이나 세계의 그 어떠한 예식보다도 더 추앙할 수 있는 결실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 앞에 복귀섭리의 책임을 담당한 교회가 우리 교회라면 우리 교회가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느냐 하는 것이 금후에 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갑자기 시작하고 갑자기 출발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동기의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행사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살이 되어 가지고 그것이 다시 제2의 환경 앞에 하나의 요인이 되어 점점 넓게 퍼져 나가야 됩니다. 우리 개인의 요인이 된 것을 교회의 요인으로서 연결시키고, 교회의 요인이 된 것을 나라의 요인으로서 연결시키고, 나라의 요인이 된 것을 세계의 요인으로서 연결시켜 가지고 이것이 완전히 결실을 향하게 될 때에 거기에 새로운 문화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이제 그러한 가치적인 결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들어 교회에서 평가받을 수 있는 하나의 결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자신을 세워서 평가받을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자주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평소에는 아무것도 안 하다가 수확기에 들어와 가지고 내가 너희들에게 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갑자기 해서는 안 됩니다. 완숙한 결실은 꽃피는 전부터 단련되어서 그 내용이 완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완숙되는 과정에서 시련에 부딪치면서 익은 것입니다. 피해 다니는 입장에서 남아졌다면 또다시 그런 시련의 자리에 부딪치면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정면적인 입장에 서서 시련에 부딪치고 거기에서 끈기 있게 남아져야 됩니다. 그러면서도 내적인 힘을 길러야 하고, 필요로 하는 결실의 요인과 더불어 흡수력이 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흡수력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외적인 대항력으로서 자신을 방위할 수 있는 자체가 되지않고는 결실을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36-20
모든 면에서 우수해야 주인이 쓸 수 있는 씨가 된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현시점에서 여러분들은 어떠한 입장에 있느냐? 여러분을 통일교회의 개인으로 볼 때에 ‘아, 나는 따라가는 사람이다’ 했을 때 그러한 사람은 훌륭한 주인에게 거두어지지 않습니다. 제일 좋은 씨를 구하는 그런 주인에게 있어서는 절대 거두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제거될 것입니다. 단 한 분의 주인이 있어 가지고 단 한곳에 필요한 단 하나의 참된 가치를 지닌 하나의 열매를 찾고 있는 그런 주인 앞에 서려면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다 우수해야 됩니다. 모든 면을 고루 갖추어야 합니다. 안팎으로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보면 교회생활을 잘하는데 사회생활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사회생활은 잘 하는데 교회생활을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사회생활은 잘하지만 교회생활을 못하는 사람은 앞에서 말한 열매를 갖출 수 있는 요인과 그 내용이 없습니다. 교회생활은 잘하지만 사회생활을 못하는 사람과 사회생활은 잘하지만 교회생활을 못하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더 나으냐 할 때,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보다 교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 낫습니다. 결실의 요인을 갖춘 사람은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움직여 나갈 수 있지만 결실의 요인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결실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결실되기 위해서는 시종일관된 환경적인 요인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것은 돌발적으로 거두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충성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입장에서 두고 볼 때, 외적인 생활보다 내적인 생활의 공고화를 중요시하는 사람은 외적인 생활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보다 더 나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결실의 요인을 안팎으로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적인 요인을 중심삼고 외적인 모든 환경을 흡수 흡착해 가지고 안팎이 하나가 되어 뗄래야 뗄 수 없는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생활적인 터전을 가진 사람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 안에 들어와도 친구가 있고, 교회 밖으로 나가도 친구가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외로움을 느끼기 쉽습니다. 그것은 내적 생활에 결핍을 느끼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또, 외적 생활에 결핍을 느껴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 두 분야를 완전히 보강하지 않고는 미래에 대한 새로운 소망을 아무리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젊은 사람들은 ‘아, 나 공부해야지. 통일교회의 뜻이 좋아. 내가 이 뜻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실력을 길려야 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실력을 길러 가지고 뭘 할 것이냐? 외적 생활을 대비하려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실력을 길렀다 하더라도, 그 실력을 끌고 가고 촉구시켜서 외적인 인연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가졌다 하더라도 내적인 내용을 갖지 못하면 그 실력은 실현을 보지 못합니다. 아무리 실력을 가졌더라도 안팎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적인 인연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내용이 강하면 강할수록 실현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범위가 넓고 클수록 불어날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제 우리의 때가 점점 다가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요전에는 우리 교회를 중심삼고 사회에 큰 물의가 빚어졌습니다. 더구나 기성교회에서는 큰 문제가 벌어졌습니다. 기성교회에서는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가 발전해 온 발전상을 보고 위협과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성교회 최고 간부들이 이마를 맞대고서 어떤 대책을 강구해야 되겠다고 지금 야단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환경을 바라보고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이 환경을 자기의 영양소로 흡수할 수 있는 자체력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내적인 요인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괜히 공중에 둥둥 떠다녀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36-22
과거와 현재가 확실해야 미래도 확실하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이 통일교회를 알아보려고 ‘통일교회가 뭐요’ 하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 거예요? 청파동에 통일교회라고 간판 붙이고 있는 그 교회가 통일교회라고 하겠습니까? 통일교회가 뭐냐고 묻는 그 말 가운데는 통일교회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까지도 알고 싶다는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따라서 통일교회에 대해서 설명할 때는 연혁부터 설명해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언제 누구에 의하여 시작되어서 이러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나왔고, 현재는 이러이러하고, 앞으로는 이러할 것이다’ 하는 식으로 답변을 해줘야 합니다. 이러한 답변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뭐요?’하고 묻는 것은 통일교인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물음 자체에는 반드시 역사성을 띠고 물어보는 것입니다.즉, 과거 현재 미래를 내포한 물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앞으로 소망이 있는 민족이냐 없는 민족이냐 하는 것을 보려면 어떻게 보아야 됩니까? 현재에 잘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이 어떠한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역사적 과정을 거쳐온 현재가 이렇기 때문에 미래는 이럴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즉, 과거와 현재가 확실해야 미래에 대한 예견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자체는 어떠냐? 통일교회 자체에도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 역사는 어떤 역사와 교차되어 가지고 서로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노끈을 서로 걸고 잡아채면 한쪽이 끊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럼 여기서 어느 것이 끊어지느냐? 소홀히 된 것이 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약한 것이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는 역사적인 고삐요, 또 하나는 현대적인 고삐입니다. 이것이 둘다 강하면 아무리 잡아당겨도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출발과 과정과 끝이 그렇고, 동기와 내용과 결과가 언제든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역사를 두고 통일교회의 현재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떤 역사를 걸고 잡아채더라도 끊어지지 않고 남아질 수 있느냐? 여러분이 역사를 강력히 주장할 수 있고, 현시대를 강력히 주장할 수 있는 자체의 자신력을 갖고 있느냐? 현대의 어떠한 사상과 어떠한 전통을 통해 가지고 있는 그런 주의와 사상보다도 더 강한 신념의 소유자가 되어 있느냐? 이것이 되어 있다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는 데 있어서 ‘내가 통일교회에 나가는 것은 그저 내가 교회에 다녀야 되니까 할 수 없이 나가는 것이다’ 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를 빛내고 시대를 단장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간다’하는 신념이 필요합니다. ‘내가 교회 나가는 것은 역사를 빛낼 수 있는 역사의 결실로서 나가는 것이다. 오늘의 시대를 단장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하는 자주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가는 데 있어서 그 누가 반대를 하더라도 ‘내가 옳은가 네가 옳은가 두고 보자. 내가 너보다 나은 결과를 반드시 가져오게 할 것이다’ 이런 신념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기 남편한테 반대받고, 자기 아들딸한테도 수난을 받으며 나오는 아주머니들을 보게 될 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어느때까지는 더 반대받고 수난받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뜻을 따라 나오면서 가정을 소홀히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정을 대해 소홀히 한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때가 되면 가정에 있어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소임을 다할 수 있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선후관계에 있어서 이자택일해야 할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가정을 버리고 뜻을 세우기 위하여 뜻을 따라 나온 것입니다. 뜻은 내용이 되고 가정은 외적인 환경이 되기 때문에 내적인 내용을 먼저 세워야 됩니다. 이론적으로 그렇다 하는 원칙을 세워 놓고 결과적인 생활을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즉, 내용을 확립한 후에 결과를 수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용이 확립되게 될 때는 가정에 들어가서도 그 환경을 전부다 수습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36-24
완숙한 열매가 되기 위한 조건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해 볼 때, 참이라는 것은 언제나 과거의 열매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인정한 것이 결실된 열매입니다. 이것은 모든 문제의 비판적인 기준이 되는 것이요, 현재의 중심이 되는 것이요, 미래의 출발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미래는 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이 먼저 앞서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앞서지 않습니다. 미래의 출발은 참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나무의 열매 자체는 그 나무가 일년 동안 지내온 역사적인 결실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열매인 동시에 현실의 열매로서 보다 가치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열매의 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것을 미래의 출발로서 남기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자를 구하려 할 때, 제일 나쁜 것을 취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상지상(上之上), 귀한 것 중에서도 제일 귀한 것을 취하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참을 가리켜 유일성을 갖춘 미래의 출발 기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결실이라는 것은 과거의 결실인 것입니다. 그것은 현재의 중심이 되고 미래의 출발 기준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이라는 것은 그 자체에는 과거가 떠난 것이 아니라 살아 있으며, 현재가 떠난 것이 아니라 집착되어 있고, 미래가 흡수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참이라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가치를 종합한 주체적인 하나의 유산이 되는 것입니다.

6천년의 복귀섭리역사를 두고 볼 때, 그 6천년 역사는 복귀섭리의 완성기를 찾아나온 것입니다. 그 완성기 안에 전부 들어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아브라함도 사는 것이요, 모세도 사는 것이요, 예수님도 사는 것이요, 역사적인 모든 미완성의 요인(요인)이 여기에서 전부 부활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소원하던 전체의 가치를 완숙하게 완결시키는 자체가 완숙된 결실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그 결실자체가 완전하기 때문에 현재에 있어서 전체의 생명의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를 비판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미래는 출발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게 되어 있지 나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는 최후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참된 것은 최후에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최후까지 남아질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새로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일시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에 이르기까지 3과정의 종합적인 요인이 되어야 됩니다. 과거가 거기에 끊임없이 연결되어 그것이 과거의 환경을 극복하는 요인으로 남아져야 되고, 시대적인 모든 요인으로서 남아져야 되고, 미래의 요인으로서 영속적으로 남아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이 하나의 완숙한 결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 서게 될 때에 하나님은 세계를 버리고라도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나무를 베어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 열매 하나를 간직하실 것입니다. 나무가 불타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씨를 품고 보관하려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 16:26)”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나무를 가졌다 하더라도 완숙한 열매가 없는 나무라면 그 나무가 무엇에 필요하겠습니까? 나무를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결실된 생명, 열매를 지니는 것이 보다 가치있는 일입니다. 나무는 후대에 생명을 연속시킬 수 없지만 결실은 후대에 생명으로 연속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가치있는 것은 결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입장에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지나간 역사를 나를 위한 것이었고, 현재의 이 시대는 나를 세우기 위한 것이고, 앞으로 올 역사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관점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이 가는 길에는 곡절이 많을 것입니다. 중심에 서 있으면 곡절이 많은 것입니다.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봉우리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다 맞습니다. 그것은 그 지형을 종합한 하나의 중심 물체로 나타났기 때문에 사방의 모든 시련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그 부딪치는 시련을 모두 극복해야 됩니다. 그 모양이 아무리 싫다 하더라도 그 시련을 극복하고 남아진 그 자체는 역사가 길면 길수록 비례적으로 그 가치가 커지는 것입니다. 그 환경이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그 외로움에 비례되는 가치가 여기에 대두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소망은 자동적으로 깃들게 됩니다. 여러분이 높은 산정에 오르기를 바라는 것도 그런 의미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6-26
진정한 승리자
우리 통일교회는 결실을 통일교회의 것으로만 남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주장하고 통일교회가 가르치는 내용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가정을 위하는 것보다도 종족을 위하라는 것입니다. 가정의 결실을 요구하느냐, 종족의 결실을 요구하느냐 할 때 가정을 통하여 종족의 결실을 세워야 합니다. 종족보다는 민족을 위하고, 민족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결실보다는 나라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결실을 요구하고, 나라의 결실보다는 세계의 결실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을 하나의 완숙한 결실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보다 나은 가치의 내용을 요구하는 입장에서 보아도 이것은 응당하고 올바른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공적인 입장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공적인 입장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보다도 가정을 위하고, 가정보다는 종족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더 큰 분야가 공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살라고 하느냐? 그것은 보다 가치적인 결실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1970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12월 1일부터 축복가정 부인들을 총동원하라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이번에는 부인들만 동원하니 나와는 상관없다’ 하고 생각한다면 부인하고는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개의 부인을 동원하고 아무개의 어머니를 동원한다는 것은 어떤 입장에서 동원하는 것이냐? 그 가정을 대표해서 동원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대표할 뿐만아니라 교회를 대표해서 동원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이 책임을 못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동원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대표해서 동원하는 것입니다. 세계뿐만 아니라 영계의 영인을 대표하고, 수많은 조상을 대표해서 동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번 동원에 보람을 느껴야 됩니다. 틀림없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 앞에는 수많은 가정들이 나를 본받으려고 합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출발하지 못한 주부가 있다면, 그 주부는 이 기간이 끝날 때까지 자기의 내심의 고충을 아무리 모면하려고 해도 모면하지 못합니다. 설령 그것을 모면해 가지고 국가적인 입장에서 승리했다 하더라도 자기보다도 가정적이요, 종족적이요, 민족적인 입장에서 승리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자기가 먼저 나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통일교회에 이제 들어온 젊은 사람들이 ‘아이구, 10년 전에만 들어왔어도 좋았을 텐데’ 한다는 것입니다. 대학을 나오고 학박사의 학위를 가진 사람이라도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탄식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10년 전에만 들어왔어도 좋았을 텐데’한다는 것입니다. 10년 전에 들어온 아가씨나 국민학교밖에 안 나온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가 국가적 기준에서 승리를 가져왔다 하더라도, 민족적 승리를 거쳐 국가적 승리를 한 사람은 당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민족적 승리와 국가적인 승리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종족시대의 승리까지 겸한 사람에게는 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종족시대의 승리를 했더라도 가정적인 시대의 승리를 겸한 사람에게는 당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과는 같지만, 보다 믿을 수 있고 보다 가치적인 내용은 역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내용이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역사가 길수록 같은 입장에서 승리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 가치의 비중을 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학을 졸업해 가지고 교회를 위해 일시에 천배 만배 충성하겠다고 하는 사람과 국민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교회 창설 때부터 꾸준히 이 길을 개척한 사람과 비교해 보면 어떤 사람이 귀하냐?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대학을 나온 사람이 아니라 국민학교밖에 못 나온 사람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교회를 위하여 움직인다 하는 사상을 초월해야 합니다. 물론 이 뜻이 교회의 뜻이지만 이것을 만민의 뜻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이 교회의 뜻을 민족의 뜻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민족이 복귀될 것이 아닙니까? 민족의 뜻은 세계의 뜻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가 복귀될 것이고, 세계의 뜻은 천주의 뜻으로 세워야 천주가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뜻을 하나님의 사랑의 뜻으로 받들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때가 목적을 완성하는 때인 것입니다.

36-28
지금 이때가 어떤 때냐
이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의 때라는 것은 중간 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결실의 때를 찾아 나왔습니다. 그 결실의 때가 언제일 것이냐? 결실은 과거에 되는 것도 아니요, 미래에 되는 것도 아니요, 오직 현재에서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현실이 바로 결실을 찾을 수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때는 역사시대에 결실의 때를 찾아 나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던 때입니다. 이때는 선지선열들이 바라던 때이며,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년 간의 섭리역사를 해 나오시면서 바라시던 때입니다. 또한 오늘이 이시대가 바라고 있는 그 중심의 때입니다.

이때가 누구의 때냐? 우리의 때입니다. 우리의 때인 동시에 우리의 때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때, 세계의 때, 천주의 때인 것입니다. 이때에 거두어질 수 있는 결실은 내 자체에만 제한된 그런 결실이 아니라 천주사적인 가치의 내용을 지닌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의 인연을 가지고 있는 자체 앞에 아무리 어려운 환경의 요인이 부딪쳐 온다 하더라도 그 자체는 부정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세계적인 환경 앞에 새로운 씨의 모체를 지녀 가지고 생명의 발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아프리카의 어떤 오지에 갖다 놓아도 이것을 적용시킬수 있어야 됩니다. 홀로 어떤 산 속에 들어가 감독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그 속의 동물과 새와 친구하더라도 그들 앞에 이것을 적용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보고 안 보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열매의 본질적인 색깔이면 색깔, 권위면 권위를 모른다고 해도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열매가 눈치를 보아 가면서 밤에는 새까맣게 되고 낮에는 새파랗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밤에는 빛이 없어서 새까맣게 보이지만 빛을 비추어 보면 언제나 새파란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때라고 하는 이 때는 역사시대의 종합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그 열매가 못 되었으면 그 열매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되어야 합니다. 내가 열매는 못 되더라도 그 열매를 보호하고 그 열매를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열매가 못 되었으면 열매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이냐? 주인의 명령에 의해 열매를 지켜보고 보호하고 그것을 감시감독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열매가 되지 못하면 그러한 사람이라도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열매를 지켜본 그 내용을 중심삼고라도 열매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는 간접적인 자격이라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못 하겠다는 사람은 열매가 어디에 있는지라도 알아 가지고 구경이라도 해야 됩니다. 그러면 구경 안 한 사람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열매가 되겠습니까, 지켜보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구경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기성교회에서는 옛날부터 우리 통일교회를 문제시했지만 옛날에는 이까짓것 뭐냐 하는 의미에서 우리를 멸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위압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자기 생활 전체를 동원하고 자기의 최대 형편을 동원해 가지고 대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요전에 서남동 교수가 통일교회에는 혁명적인 내용이 없고 정치적인 내용이 없다고 하는 평을 했습니다. 이걸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주먹을 가지고 싸우는 것보다는 새것을 내놓자는 것입니다. 과거에 있던 것이 아니라 새것을 제시하자는 것입니다.

새것을 제시하기 때문에 노랗지 않다는 것입니다. 노란색이 아니고 빨간색입니다. 그 자체는 두고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금 말없이 혁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6-30
3년간의 동원전도가 갖는 의의
우리는 이 한계점에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우리는 서로 손을 잡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결실될 수 있는 열매가 나무의 동쪽가지에 열려 있다고 할 때에 이 열매가 완숙하는 데 있어서 ‘나는 동쪽 나무가지의 진액만 필요하다’고 해서는 그 나무를 대표할 수 있는 열매가 못 되는 것입니다. 이 동쪽가지의 열매가 나무를 대표하기 위해서는 서쪽 남쪽 북쪽가지는 물론이고 꼭대기에서부터 뿌리의 진액까지 전부다 빨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여러분이 하나의 연결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전부 결실의 생명력을 보강하는 하나의 원소요, 하나의 요소라는 것입니다.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시할 수 있는 인연을 존중시한다고 공인받는 입장에 서지 못하고는 완숙한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식구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자기 생명 이상의 가치를 그들로부터 협조를 받아 가지고 완숙한 결실이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횡적인 면에서 전체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결합체가 되어 가지고 자신이 조금 두드러진 입장에 서서 그것을 중심삼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내일 모레부터는 부흥회를 할 것입니다. 협회장, 이번에 강의를 누가 하기로 했나?’「제가 하기로 했습니다」 강의도 해야 되겠지만 강의하는 환경도 만들어야지.

가을절기에는 외적으로 열매에 필요없는 것은 전부다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잎들이 첫번째 떨어지는 잎하고 함께 한꺼번에 쫙 떨어진다면 그 나무의 열매는 익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잎이 하나 둘씩 떨어져야만 그 떨어진 잎으로 가던 진액이 열매로 모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잎이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하면서 열매가 익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자체도 그렇습니다. 통일교회를 보면 지금까지 가을절기를 당해 나왔습니다. 이제는 재차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봄을 맞이하려면 1972년도까지의 고비를 넘겨야 됩니다. 열매가 생명있는 씨가 됐느냐 안 됐느냐 하는 것은 극악한 겨울절기를 지나야 알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이 그 악한 겨울과 부딪쳐 가지고 ‘내가 강하냐 네가 강하냐’ 하는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밀려나면 죽는 것입니다. 지금 이와 같은 입장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어제는 내가 수택리에 갔더니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아이들을 전부다 집에 두고 동원을 하라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아나?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임자들이 알지’ 하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안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내가 갈길이 아닙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이미 다 지나갔습니다. 내가 가는 길에도 환란시대가 있었고, 풍파가 있었지만 모두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씨가 되어 봄절기를 맞이하여 심어져야 됩니다. 열매가 되기 위해서는 그 환경을 전부 다 정리해야 될 것 아니예요? 앙상한 나무에 붙어 있는 하나의 열매는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시시한 것이 붙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붙어 있기 싫다면 열매가 되지 말아야 됩니다. 순수한 것을 심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면 가정에서 제일 귀한 것을 뽑아다 심어야 됩니다. 가정에서 제일 귀한 것은 아버지도 아니고 아들딸도 아닙니다. 가정에서 제일 귀한 것은 어머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들을 동원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와 가지고 ‘아이구 우리 남편이 어떻고, 우리 아들딸이 어떻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반드시 꺼꾸러질 것입니다.

60년대는 개인적 결실을 중심삼고 해 나왔지만, 70년대는 가정적 결실을 해야 되겠습니다. 복귀섭리에 있어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예수 시대에 개인적 결실은 볼 수 있었지만 가정적 결실은 못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사적인 비운의 환경을 극복하고도 남을 수 있고 가정의 어려운 십자가도 넘을 수 있는 가정적 결실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정의 여자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에만 머물 수 있는 여자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나라를 위하여 가정에 머물 수 있는 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할 수 있고 하늘땅을 대표할 수 있는 여자, 이런 여자가 하나님의 딸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사실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횡적인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가정을 중심삼고 나갈 때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번 기간에 선생님이 축복해 준 가정으로서 하늘 앞으로 입적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입적할 때는 남편만 입적해서도 안 되고 아내만 입적해서도 안 됩니다. 남편과 아내가 같이 입적해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아직까지 호적이 없습니다. 호적은 주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호적을 갖게 하기 위해서 그 길을 향해서 무자비하게 때려 모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당한 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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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적인 결실을 맺어야 할 3년 기간
여러분 대(代)에 이것을 하지 않으면 수십 수천 대의 후손을 걸고 넘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긴 역사시대를 희생할 것이냐 아니면 짧은 시대를 희생할 것이냐? 짧은 시대를 희생시키는 것이 정당한 지도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제물은 현재를 희생시켜 나온 것입니다. 미래의 모든 장기적인 희생을 방비하기 위해 현재에 조건적인 제물을 세워 희생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타당한 도리로서 세워 놓은 것입니다.

우리의 때라는 것은 통일교회가 만든 때가 아닙니다. 역사가 찾아 나온 때, 하나님의 섭리가 세워질 수 있는 때,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비운의 역사를 거치면서 참아 나오던 모든 역사를 수습할 수 있는 때, 절망적인 인류역사 가운데 새로운 소망의 기치를 들고 나설 수 있는 때, 과거의 모든 것의 열매가 될 수 있는 때, 시대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때, 미래의 출발의 기치를 들 수 있는 때, 이런 때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은 어느 자리에서 결정되어질 것이냐 할 때, 세계를 터전으로 어떤 나라를 중심삼고, 어떤 종족을 중심삼고, 가정 위에 기반을 닦은 데서 결정되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빼놓은 복귀섭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개인을 빼놓은 복귀섭리는 있을 수 있지만 가정을 빼놓은 복귀섭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을 빼놓은 복귀섭리가 어디 있겠느냐?’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노아 가정에서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동안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실수하지 않고 나오다가 중간에서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그때는 노아 가정을 중심삼고 수습하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대를 이어 후계자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는 가정을 위주로 하는 것입니다. 가정 기반을 가져야만 후계자가 나올 수 있는 것이지 혼자는 안 됩니다. 혼자서는 계대를 못 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대를 이었습니까? 못 이었습니다.

복귀섭리의 뜻은 가정을 위주로 한 섭리의 터전으로서 가정 기반을 어느 시대나 닦아 나오는 것입니다. 개인이 중심이 아니라 가정이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은 가정을 찾아 종적인 탕감의 과정을 거쳐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을 중심삼고 종적인 출발을 해야 됩니다. 이 종적인 출발을 파괴시킨 것이 여자인 해와였기 때문에 여자를 내세우는 것은 원리적으로 타당한 견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들딸이 어머니를 찾아가고, 남편이 아내를 찾아가야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 아내가 나라를 위해서 고생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편도 나라를 사랑하고 아들딸과 나라를 사랑하는 사상을 탕감적인 과정에 세워야만 복귀된 가정으로서 새로이 수습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대는 가정이 자리잡는 때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의 주류적인 사상이 무엇이냐?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가정을 횡적인 기반에서 상속받아 가지고 대행하여 성사시켜 완결시킬 수 있는 결실의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체요, 성신의 부활체가 되어 실체로서 상봉할 수 있는 천적 가정의 기반의 터를 닦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에 있어서 새로운 원리법도의 과정을 거쳐야 되는 그런 절대적인 과정이 70년도부터 72년도까지의 3년 기간입니다. 지금은 가정적 결실의 때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때는 개인적 결실의 때가 아니라 가정적 결실의 때입니다. 가정이 과거 현재 미래의 중심입니다.

그러면 가정에서 사탄세계 앞에 분별할 수 있는 자체력, 자주력을 누가 세워야 되느냐? 여러분의 아내, 즉 부인들이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들을 때려 모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은 무자비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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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봄을 향하여 힘있게 내딛자
아기를 낳을 어머니에게 ‘힘이 들면 조금 참아라’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어머니와 아기를 다 죽이는 것입니다. 힘이 들어 괴로운 데도 ‘더 힘을 줘라. 더 힘을 줘야 된다’고 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질러야 합니다. 해산 때는 눈을 부릅뜨고 무자비하게 힘을 주라고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는 사람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야 하는데 그런다면 죽일 놈이지. 그렇기 때문에 지금 때는 선생님이 여러분에 대하여 최대로 무자비한 입장을 취할 때라는 것입니다.

나도 가정이 있고, 애기들이 있는데 이번에 부인들을 동원하면 우리 애기들은 집에 있고, 축복가정 애기들을 고아원에 보낼 패들도 있을 것이고, 엄마를 잃어버리고 찾는 애기도 있을 것이고, 별의별 요지경 판이다 벌어질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양심의 가책을 안 받겠나? 내가 그런 생각 안 했을 것 같아요?

원리적 견해로 본 선생님의 입장은 어떠냐? 나도 그런 일을 다 당해 봤습니다. 선생님은 명령을 받아 가지고 하기보다는 자진해서 하려고 했습니다. 아기를 임신할 때부터 미리 청산할 준비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한 고비를 넘어 평지에 와 가지고 다시 올라가는 사람은 미친 녀석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갔으니 여러분도 그렇게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은 자리를 잡고 여러분은 고생을 시키는 이런 역설적인 방법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오해하는 사람 있어요? 그것을 오해하는 사람이 못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해야 여러분들이 고개를 넘고 넘어 가지고 선생님의 뒤를 따라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고생시키지만, 몇 해 이내에 고생한 사람들에게 자리를 잡아 주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가야 할 책임감을 느낍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만일에 내가 이런 책임을 하지 않고 여러분에게 이런 것을 하라고 한다면 하늘 앞에 내가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비양심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양심적인 사나이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대외적인 입장에 나서지 않는 것은 가정이 자리잡지 못한 입장에서는 통일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선생님의 위신이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공석에 안 나타나는 것입니다.

수많은 군중을 대하여 말도 할 수 있고, 통일교회에 대해서 선전도 할 수 있는 좋은 찬스입니다. 이번 결혼식 때만 하더라도 내가 한 시간 반만 얘기를 한다면, 거기에 온 사람들을 얼마든지 납득을 시키고 통일교회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는 그런 무엇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눈물 콧물을 흘리며 사정을 하고 다니는데, 선생님은 몰려든 수많은 군중을 왜 그냥 흘러보냈느냐? 그들에게 할 말이 없느냐? 물론 있지만 내가 할 일을 스스로 다 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말할 수 없습니다. 자기 아들딸들의 터전을 이루어 놓지 못하고 큰소리를 하면 하늘 앞에 부끄러움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선생님은 교회를 지어 여러분의 자리를 잡아 주고 나서 공석에 나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때, 우리의 때라는 이때는 70년도에 그냥 흘러온 때가 아닙니다. 공식적인 과정으로 엮어 온 때입니다. 이것이 절벽과 같이 딱 끝날 때가 돌아가는 때라는 것입니다. 연장되는 때가 아니고 돌아가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때는 세계의 정세도 끝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이별을 고하고 돌아가는 역사적인 처량한 고비, 즉 겨울 절기의 동지 안으로 이날을 맞아 영원히 이별하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여 환희의 출발을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경계선에 가 가지고 한발짝한발짝 힘있게 내디딜 수 있는 이런 의의 있는 아낙네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질질 끌려가 가지고 콧물 눈물을 흘리는 비굴한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는 그런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때를 의의 있게 맞아야 됩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어떠한 자세로 이것을 해결짓느냐 하는 문제가 선생님이 축복해 준 가정에 대한 흥미거리입니다. 가만히 두고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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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밖에 없는 우리의 때
그렇게 알고 이제부터 3년만 허리띠 졸라매고 달려가 보자구요.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이냐? 흥하든 망하든 통일교회가 드러나게 되고 수평선에서 들려 올라가든가 내려가든가 하게 되어 있지 그냥은 안 끝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역사적인 전환시대에 여러분이 가질 수 있는 한때, 그 길은 딴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남아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렇지않아요?

저울추가 저울대를 따라 올라가든지 내려가든지 해야지, 그것을 벗어 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른 데 가야 갈 길이 없습니다. 이번 기간에 가지 못하면 여러분의 생애를 두고 탄식하며 가야 되는 것입니다. 축에 못 들어간 것처럼 불쌍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야목 수련회 때의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저수지에 개연이 있었는데, 가시가 있어서 무섭게 생겼습니다. 그 시퍼런 가시에 독이 있어서 살짝만 찔려도 전부다 곪는 것입니다. 이런 곳에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전부다 들어가서 고기잡이를 하는데 선생님이 앞장서서 전부 끌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아이쿠, 저기에 어떻게 들어가나. 감기 걸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너 좋을대로 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은 지금도 기억됩니다. 이름은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그 사람에게 야목에서의 일이 생각나느냐고 물으면, 다시 그런 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지나갔습니다. 다시 열번이 아니라 백 번을 해서 탕감을 한다 해도 진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진짜는 하나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아무리 기세가 등등하던 사람도 야목 수련회 말만하면 양심은 있어서 부끄러워합니다. 양심은 참 좋고도 훌륭한 것입니다. 부끄러운 것을 알기는 알거든요. 그것이 부끄러운 구원입니다.

부모가 고생을 할 때에 살살 빠져나가던 사람이 효자의 가명을 받아 효자들을 표창하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그 이상 지옥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를 보는 사람마다 욕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영계가 이렇데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계는 누가 가라 마라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가정들 가운데도 천태만상의 형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누가 오라 마라 하지 않습니다. 더우기 아주머니들 중에는 ‘남들을 고생 좀 시켰으면 좋겠는데… 복귀섭리가 왜 여자를 중심삼고 못 살게 굴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자를 중심삼고 탕감해야 됩니다.

통일교회 여자들을 보게 되면 옷을 잘 입기를 했나, 다 그을려 가지고 지쳐 있으면서 할 수 없이 따라오는 패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몇 사람이나 남겠습니까? 한 사람도 안 남게 되면 선생님은 어머니를 내세워서라도 재차 할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때가 왔기 때문에 여러분 자체가 뜻을 중심삼고 안팎의 모든 내적인 요인을 수습해야 합니다. 강한 신념을 가지고 외적인 환경을 밀고 나갈 수 있고, 국가와 세계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체력을 가지고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결의를 해 가지고 이 때를 맞이하여 결실된 입장에 서게 되면 하늘 앞에 있어서 자랑할 수 있는 입장인 것을 알고 각자가 결의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자들이 그렇게 하는데 남자들은 구경만 하느냐? 남자들도 여자들에게 지치지 않게끔 노력해야 합니다. 여자들이 나가서 밤을 새워가면서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낮잠만 자는 남자가 있으면 벼락을 맞습니다. 남자라면 남자로서 여자보다 나라를 더 사랑해야 되고, 뜻을 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와 떨어져 있지만 하늘의 위신을 세워야 합니다. 주체는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모든 터전을 전도시켜서 훈계하고 치리해야 할 책임을 지고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남자들의 입장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70년대를 보람있는 때를 여러분의 빛날 수 있는 수확의 시기와 결실의 시기를 맞아 주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36-38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렇게 저렇게 몰리는 한스러운 나그네의 신세인 저희들을 아버지께서 오늘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신 은사를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이 단에 서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앞에 ‘우리의 때’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엄청나고 얼마나 어려웠다는 사실을 알고 저희들은 진정으로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당신은 아셨사옵고, 저희가 수고하지 않는 자리에서 당신은 수고하셨사옵고, 저희가 슬프고 외롭고 고통을 받지 않을 때에 당신은 슬픔과 외로움과 고통을 당하셨사옵니다. 그러면서도 저희들의 죽음길을 지켜보시면서 부활의 한날을 약속해 나오신 아버지가 계시다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불효자식들이 또다시 아버지 앞에 나왔사옵니다. 이리 보나 저리 생각하나 모든 것을 살피면 살필수록 여전히 죄인의 모습인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고, 부족한 저희 자신들이 당신 앞에 면모를 갖출 수가 없음을 느끼는 것을 발견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 70년대에 저희들이 이루어야 할 사명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해주시옵소서. 우리의 때라는 것은 오늘날 자기 일생을 통해서 찾아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연면히 흘러나온 역사의 고빗길을 지켜보면서 친히 싸우셨고, 수많은 선조들이 아버지를 배반할 적마다 그들이 소원하던 것을 친히 인계받아 가지고 대역의 행사를 몇천만 번이라도 해 나오신 아버지의 노고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찾아진 저희들임을 아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은덕에 저희들은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빛날 수 있는 한때를 연결시키시어 당신의 뜻이 저희 가정에 연결될 수 있는 역사적인 놀라운 기원이 저희들 앞에 찾아온 것을 아옵니다. 그러나 나라와 사회가 혼란한 환경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러한 자리에서 믿을 것은 나라도 아니요, 세계도 아닌 것을 알고 오직 아버님만을 믿고 아버지만을 알라고 저희들에게 이런 때를 맞이하게 해주신 것을 절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나라를 사랑하기 전에 당신을 사랑해야 되겠사옵고, 세계에 대하여 욕망을 갖기 전에 아버지의 뜻에 대한 욕망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아들딸이 되게 하기 위해서 모든 환경에 신의의 조건으로 파탄시켜 놓은 것은 아버지의 뜻이요, 아버지의 사랑인 것을 저희들이 알면 알수록 당신의 깊으신 뜻과 심정 앞에 사로잡힐 수 있는 포로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사랑 앞에 포로가 되면 그 포로는 절대 망하지 않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숱한 시련과 숱한 수난의 역경을 거치고 난 후에는 당신의 사랑을 전부 퍼붓기 위한 아버지의 뜻이 있는 것을 알고,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 포로가 된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통일교회를 믿고 나오는 저희 자신들도 그렇습니다. 자기의 모든 소신을 전부다 제거시켜 버리고 아버지의 일념을 따라서 살고,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살아가는 저희들은 뜻 앞에 사로잡힌 포로와 같사옵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모든 환경을 잃어버리고 아버지께서도 모든 환경을 잃어버리더라도 그 가운데에서 맺어진 사랑의 인연이 훗날 자신의 영광의 기대가 되는 것이요, 삶의 보람의 터전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어려운 곡절이 부딪쳐 오고 어려운 환경이 다가오는 것은 영원히 저나라에 당신의 사랑의 인연을 두터이 드러내기 위한 것이요, 자랑의 조건을 세우기 위한 당신의 입체적인 보응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신 단 한번밖에 없는 은사인 것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가중된 십자가의 도상에 있어서나, 핍박받는 환경에 있어서나, 죽음길을 더듬어 가는 자리에 있어서나 당신의 사랑의 인연이 그런 자리에 스며들 때는 당신이 나와 더불어 그랬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드러내기 위한, 내적인 소유를 저희에게 부여하기 위한 당신의 사랑의 유업을 상속하는 방법이 이와 같은 십자가의 길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은 보람과 가치를 느끼고 당신의 은사에 스스로 감사드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않고는 이와 같은 시련의 과정을 극복해 낼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눈 앞에 눈물이 어릴 적마다 그 눈물이 자신을 위하는 눈물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자기 생활이 궁핍하고 시련과 고통이 몰아치더라도 그것이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 시련을 당한다고 절대 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요, 이렇게 사는 것은 아버지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를 위주로 해서 살고, 아버지를 중심삼고 따라가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는 알았습니다.

오늘까지 엮어 온 통일교회의 비운의 역사는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보람있는 역사를 창건할 수 있는 동기가 되고 모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느끼고 저희들의 슬펐던 과거가 영광의 한때로서 생애를 통하여 자랑의 조건으로 지닐 수 있는 가치인 것을 느낄 적마다 당신이 저에게 가져다 주신 무한한 은사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슬픈 역사가 없었다면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고 해도 세계에 있어서 어떤 새로운 섭리적인 인연을 맺고 넘어갈 수 있는 시련과정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렇게 세계 무대에 있어서 저희가 시련을 받는 것보다도 저희 민족 앞에, 혹은 가정에서 사랑하는 아내 앞에, 자식들 앞에, 남편들 앞에 이와 같은 시련을 당하는 이상의 시련이 없다는 것을 아버지는 아셨기 때문에, 저희들에게 집안의 원수가 나라와 세계의 원수보다도 더 무서운 원수라는 것을 다짐시켰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가정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거룩한 입장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이런 시련의 노정을 극복하게 하여 주신 은사를 감사드리면서 자기의 영원한 소유권을 아버지 앞에 바쳐드릴 수 있는 아들이 있고 딸이 있다 할진대는, 그는 하늘의 무한한 복을 받을 자인 것을 저희들이 알면서 나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이 나라를 앞에 두고, 이 세계를 앞에 두고 행군해야 되겠습니다. 힘차게 행군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딸의 산 모습을 증거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사오니, 부디 하늘의 권위와 위신을 상실하는 아들딸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1970년도에는 1970년대의 전통적 사상, 전통적 기반을 닦아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1970년도도 이제 기울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2개월을 남기고 있사오니, 아버님, 이 기간에 저희들을 격려하여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당신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짐하면서 1970년대에 세속적인 운세를 상속받을 수 있는 개체가 되겠다고 가는 곳곳마다 아버지 앞에 맹세하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나라를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민족을 잃어버리고 자기 가정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의 뜻과 당신의 상속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만을 위해서 태어났고, 이것을 위하여 사는 보람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딸들이 되고, 아들들이 되고, 그런 가정들이 되어야 할 때가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사오니, 부디 부디 그럴 수 있는 때를 맞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스승이 가는 길 앞에 있어서 여자로서 책임을 하지 못한 한이 남아 있는 것을 이번 기간에 탕감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조건을 탕감함으로 말미암아 민족이 한의 조건에서 벗어나 승리의 터전을 이루게끔, 아버지, 복을 베풀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렇게 모든 일을 청산할 수밖에 없는 복귀의 한스러운 길을 알았습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이 시련 도상에 있어서 안 될 것이었으나, 기성교회가 반대하고 나라가 반대하는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그 시련 고통을 거쳐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원리가 추구하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그 과정을 대하는 이때에 아들딸과 그 남편을 제물로 바칠 수 있는 하나의 제물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새로운 제물을 서로서로가 바치는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사위기대가 제단이 되고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 복귀섭리의 터전을 닦아온 통일교회의 역사인 것을 알고, 이제 스스로 하늘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엄숙한 책임을 수행하는 이번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기간에 있어서 이와 같은 사명을, 이와 같은 뜻을 분부받지 못하는 가정이 있다면 이것이 얼마나 한스러운 일인가를 느낄 줄 아는 참다운 축복받은 가정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부터 이들이 나가기 위하여 준비하는 그 마음 앞에 여러 가지의 곡절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눈물어린 장면에 부딪치게 될 때마다 죽음의 자리에 내모시는 아버지의 사정도 알고, 잃어버린 아들이 당신의 가정을 파탄시킨 외로움을 체험하면서 스스로 아버지의 친구가 되고, 아버지의 아들딸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좋은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위기대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다시 찾기 위하여 참고 수고해 나오시는 아버지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날의 기쁨과 희열을 중심삼고, 나라를 중심삼고 만날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노력하는 가치있는 때를 맞이한 것을 저희들은 천상을 대하여 감사하고 지상을 대하여 감사하면서, 오늘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주부들이 되고, 남편들이 되고,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은 11월 8일, 이달 들어 두 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남한각지에서 이날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수많은 아들딸들 위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의 손길이 떠나지 마시옵소서. 이제 이들이 준비하는 모든 환경을 지키시어서 이번 기간에 당신의 위로가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내연의 사정을 나눌 수 있는 거룩한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부터 엮어지는 모든 전체를 당신 앞에 맡기오니,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나가는 이들의 외로운 걸음을 지키시옵고, 이들의 처량한 생활을 아버지 관리하시어서 당신과 더불어 살고, 당신과 더불어 원하고, 당신과 더불어 활동할 수 있는 것만을 남기고 돌아올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이 맡으시옵소서. 1971년, 1972년도까지 모든 것을 맡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국가를 세우시어서 당신의 뜻 앞에 승리의 깃발을 들고 이 민족이 하늘땅을 대신하여 만방에 자랑할 수 있는 민족의 권한을 갖출 때까지 저희들은 거름이 되어 십자가를 대신 지고 끌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절감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 때와 그 시대를 위하여 저희들이 바쳐질 것을 다짐하오니 모든 전체를 아버지 뜻 가운데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