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7 to 35-117: 사랑을 이한 한(恨)

사랑을 이한 한(恨)
1970.10.04 (일), 한국 전본부교회

35-77
사랑을 이한 한(恨)
[기 도]

오늘은 1970년 10월 4일이옵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해방의 한날을 맞이하여 기뻐했던 그 추억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아침이옵니다. 이 영광의 날을 맞아 한 많았던 역사적인 아버지의 사정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하시옵고, 승리와 해방이 섭리의 뜻과 더불어 길이길이 만민에게 성취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더우기 오늘은 새달을 맞이하여 첫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오니, 저희들의 마음과 몸에 당신께서 찾아오시어 깊고 넓고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영광의 한날 위에 저희들을 내세워 주시옵소서. 당신을 향한 사모의 심정이 저희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오르게 하시고, 그 흠모의 정열 위에 무한하신 당신의 사랑이 동행하여 그리움이 넘치는 이 아침이 되게 하시옵소서.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신 아버님이신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아버지께서 걸어오신 역사적인 노정은 눈물과 핏자국의 노정일 뿐만 아니라, 사망의 교차로를 수없이 지나온 비통하고도 원통한 노정이었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와 같은 노정에서 허구한 날을 내일에의 소망을 가지고 싸워 나오신 아버지의 노정은 천번 만번 쓰러지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 마땅할 시간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으시려는 본연의 심정을 지니고 지금까지 찾아오신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하셨으며, 얼마나 외로우셨으며, 얼마나 고통스러우셨는가 하는 것은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사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당신의 복귀의 손길에는 핏자국뿐만이 아니라 사망 세계를 거쳐온 흔적까지도 남아 있는 것을 아옵니다. 그것을 걸머지고 생명으로 부활시키는 재창조의 역사를 계속하시는 서글픈 아버지의 모습을 저희들은 바라볼 수도 없는 죄악된 후손의 몸들이옵니다. 그러한 저희들을 어찌 용납해 줄 수 있는 사죄의 여건이 있겠사옵니까마는 당신의 손길을 붙들고 자비와 후대하신 심정에 간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당신의 넓고 높으신 손길을 붙들고 사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당신의 피묻은 옷깃을 붙들고 눈물로써 당신의 처량함과 괴로움을 체득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아들딸이 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라는 말에는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는 것을 아옵니다. 남의 아버지가 있고, 의붓 아버지가 있고, 종의 아버지도 있으며, 참아버지도 있사온데, 그 중에서도 저희들이 배워 알고 있는 그 아버지는 오로지 참아버지뿐이옵니다. 하오나 저희들은 아직까지 양자의 신세를 모면할 수 없어 아버지를 의붓 아버지로 모셔야 되는 이 원통한 사실을 뼈살에 사무치게 체득하는 자신들이 되어야만 되겠사옵니다.

사탄의 피살을 받고 태어난 한스러운 저희 자체를 다시 한 번 저주하면서 본연의 심정으로 가기를 그리워하는 핏줄을 따라 천성의 도리를 밟아 가겠다고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이 자녀들이 마음속으로 결의한 그 심정을 가지고 변함없이 결실의 자리를 거쳐야만 필연적인 결과인 아들의 자리를 찾아 나갈 수 있는 한스러운 복귀의 노정을, 아버지,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우왕좌왕하시며 슬픔으로 엮어오신 길이었기 때문에, 광야의 사망권내에 살고 있는 저희들도 환경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우왕좌왕하며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저희들의 서글픈 사정이옵니다. 당신이 지나온 역사적인 걸음걸이가 오늘날 짧은 인생행로를 가고 있는 저희들의 걸음걸이와 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시고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아버지의 후대하신 사랑이 저희들도 모르는 가운데 저희들의 생활권내에 동참하면서 보호하여 주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그 은사를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사옵니까? 그 영광을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이 아침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16년 전 이날은 몰리고 쫓기던 한 많은 통일의 무리들이 기뻐하던 날이었사옵니다. 수많은 교단이 통일의 무리가 사라지기를 원하는 비참한 운명 아래서 당신이 손을 잡고 이끌어 주시어 해방의 한날을 맞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될 때에, 이 모든 전체의 결과는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저희들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였으며, 저희들이 얼마나 당신께서 그리워하는 아들이 되었는가를 스스로 반성해 보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날 이 아침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반성하고, 새로운 모습이 되겠다고 다짐할 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고요한 이 심회(心懷)에 찾아와 본연의 자리에 당신이 군림하시어서 새로운 창조의 인연을 본래의 저희 자신과 더불어 의논하시옵고 저희 자체의 본성을 수습하시어서 흩어져 있던 저희 자체가 본연의 원리 원칙을 따라갈 수 있는 모습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좋고, 아버지께서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는 아들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러한 모습을 갖추는 저희 자신들이 되지 않으면, 아버지 앞에 불효의 모습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이 누구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누구를 위하여 살고있는 가를 다시 반성하여, 높고 귀하시고 천주의 주인되시는 당신의 고귀한 인격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태어났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새로이 발견하게 하여, 내일의 소망의 세계를 향하여 내 자체의 소망보다 아버지의 소망을 위하여 힘차게 나아가는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당신이 부르시는 그 음성에 저희들이 얼마나 보답하였으며, 한스러운 이 고빗길에서 아우성치며 신음하고 절규하시는 그 소리에 저희가 귀를 기울여 듣고 그곳을 향하여 우리들의 아버지라고 하며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려간 때가 있었던가를 자신에게 묻게 될 때, 그러한 때가 없었던 자신을 책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서 이날 이 시간을 기념하며 눈물짓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거든 그들과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외로운 개척자의 사명을 띠고 슬픈 환경 가운데 책임을 다하고자 몸부림치는 선각자들이 세계에 널려 있사오니 그들에게도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당신의 혈족이요 권속이오니 부디 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이들의 눈물은 당신의 눈물을 대신하고, 이들의 한은 당신의 한을 대신하며, 이들의 고독과 외로움은 당신의 외로움과 고독을 대신하게 하여 천상의 인연을 인간의 인연으로 바꾸어 받을 수 있는 거룩한 무리가 되고 이땅의 인간을 대신하여 칭찬받을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천상에 기억되어 부름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전국에 널려 있는 젊은 성화 대학생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이들은 누구를 위하여 가야 하며, 누구를 위하여 이 젊음의 피와 살을 녹여야 하겠습니까? 이는 나라를 위해서도 아니요, 어느 특정한 개인을 위해서도 아닌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사옵니다. 그 나라는 세계적인 나라요, 그 나라는 역사적인 나라요, 그나라는 해방과 자유와 평등의 노래가 넘쳐 흐르는 나라인 줄 아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먼저 그 나라를 이룩하기 위한 의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의인이 되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닌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희생과 극복의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서는 의의 생활과 의의 결과를 가져 올 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인들은 의의 길을 찾고 의의 나라를 찾기 위하여 희생의 길을 가야 할 비참한 운명길에 놓여 있는 것을 아옵니다. 하오니 아버지께서 이를 동정하시어서 여기에 있는 자녀들이 역사의 나라가 부인하는 의인, 시대의 나라가 부르는 의인, 미래의 나라가 모시고 싶어하는 의인이 될 수 있도록 특권적인 은사를 가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이 자리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과 천상에서 한을 품고 있는 수많은 애혼들과 앞으로 올 수많은 선의 후손들이 모두 하나되어 당신의 심정을 닮아 자유와 평화와 해방과 기쁨이 넘쳐 흐를 수있는 천국의 백성들로 남아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전체가 당신이 뜻하신 대로 귀결되고, 저희들은 승리의 그날을 위해서 꾸준히 달려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35-81
말 씀
오늘은 전국에서 모인 원리연구회 대학생들을 중심삼고 어제 말씀드린 내용에 이어서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제는 타락이 불륜한 사랑을 중심삼은 색다른 혈통의 계승으로 말미암아 벌어졌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35-81
참된 종교의 길
인간의 타락은 피살과 핏줄을 통해서 연결되어 왔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려면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경계선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돌감람나무가 된 자신을 참감람나무에 접붙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을 부정하는 한때를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도달하지 않으면 접붙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부정하는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부정의 극한점은 어떤 자리냐? 생사지경을 넘어설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거치지 않고서는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참된 종교는 부정하는 자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종교의 길은 현실사회와는 반대되는 노정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사랑을 이(□)한 한(恨)이란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랑이라는 것이 없어 가지고는 행복도 없습니다. 또한 자유도 사랑이 있는 행복한 자리에서 찾은 자유라야만 만민이 공히 필요로 하는 자유이지 사랑의 기틀을 떠난 자리에서 찾은 자유는 참된 본연의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흔히 자유를 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니, 자유사상이니 하는 말을 하지만 그 근본적인 터전이 어떠한 국가적인 외적 사상이나 관념, 혹은 어떠한 물질적인 욕구를 중심삼은 것이거나 어떠한 체제를 중심삼고 부르짖는 것이라면 그런 자유는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조건을 우리의 심정을 통한 행복의 요건이라고 제시할 수는 없는 것이요, 설사 행복의 요건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입체적인 행복의 요건으로는 절대 제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팎을 갖춘 입체적인 행복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랑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첫째 지식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 계명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더 나아가 행복을 체득할 수 있는 자리를 가졌느냐 할 때, ‘사랑하라’고 제시한 그 조건을 통과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즉 ‘사랑했다’ 하는 결과에 못 나갔기 때문에 인간은 아직까지 행복을 찾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35-82
자유와 행복의 요건
‘행복하다’ 할 수 있는 자리는 제일의 계명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자리에서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인 되시는 하나님, 부모 되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전에 종이나 자식이 먼저 기뻐하는 것은 비원리적입니다. 주인이 기뻐하는 기쁨을 따라 기뻐해야 하는 것이 종의 도리요, 부모가 기뻐하는 기쁨을 따라 기뻐해야 하는 것이 자녀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역사는 악이 먼저 출발했기 때문에 주인이 기뻐하고 부모가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의 출발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러한 결과적인 입장에서 개인이 스스로 개척하여 아무리 기쁨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 기쁨은 어디까지나 주인을 이탈한 자리에서의 기쁨이요, 부모를 이탈한 자리에서의 기쁨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참된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이탈된 자유의 환경에서 벗어나 주인의 사랑을 중심삼고 주인이 기뻐하는 터전 위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은 것이 종의 소원이요,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모가 기뻐하는 터전 위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하는 것이 자녀의 소원인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요, 역사가 찾아 나오고 있는 목적점임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기뻐하고 땅이 기뻐하며 온 만민과 피조세계가 기뻐할 수 있는 행복의 터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기틀 위에서 이루어진 자유의 실체가 이 지구상에 현현했느냐 하면 아직까지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신(주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함이 있다’는 말씀이 있듯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는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입장에서는 아무리 자유를 부르짖는 다 하더라도 자유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선보다 악이 먼저 타락한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자유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처음 태어난 입장을 밟고 넘어가야 할 운명권에 놓여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는 무엇을 기반으로 해결해야 될 것이냐? 사랑입니다. 행복은 사랑을 빼놓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고아에게 있어서 잃어버린 부모를 만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이상의 기쁨의 자리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벌거숭이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망각하고 부모 만나는 것을 기뻐할 것입니다. 잃어버린 부모, 찾지 못했던 부모를 찾았다면 고아는 어떠한 시련이나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여 하나의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남편이 죽음의 경각에 놓였다가 다시 살아난다면 그 아내는 살아난 남편을 전보다도 천만 배 더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가 죽었는데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면 그 부모는 자녀를 살리기 위하여 자기의 죽음도 불사할 것입니다. 그 부모에게는 죽었던 자식이 다시 살아나서 만나는 기쁨과 자기 일신이 희생되는 비통함을 견주어 보게 될 때, 자기 자신이 희생되는 것보다 자식이 살아와서 만나는 기쁨이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힘은 오로지 사랑이 내포된 자리에서만 성립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상생활을 통하여 이러한 것을 흔히 보고 느꼈을 것입니다.

35-84
예수님이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라고 선포하신 뜻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강할 것이냐? 사랑을 중심삼고 잃어버린 아버지를 다시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부끄러움이 그 길을 가로막지 못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교차로가 문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참하고 어려운 길이라도 그것을 지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남을 수 있는 길이 이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이 길만이 오늘날 타락권내에서 고질이 되어 있고 맺혀져 있는 생명의 인연을 끊고 부활권으로 이끌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이것 외에는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이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의 제1조가 ‘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지금부터 약 2천년 전, 봉건시대와 같은 그런 때에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단신의 고독한 신세로 만민에게 선포하신 내용은 ‘너희가 너의 어머니 아버지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 그러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이런 혁명적인 말씀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선포한 것도 단 하나, 사랑의 길이 아니면 안 되겠기 때문에 그런 선포를 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 단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으로 말미암아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랑이 자기에게 귀결되어야 한다는 절규의 선포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씀이 정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선포한 내용이 무엇이냐? 총칼을 들고 투쟁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결연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라’하는 말은 ‘너를 그 이상 사랑하겠다’는 말인 것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위주한 것만이 아니요, 타인을 위주한 것만도 아닙니다.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라’는 것은 ‘사랑하겠다’는 말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인간의 행복이 시작되는 것이요, 천상의 천륜의 뜻도 성립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사랑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사랑의 길이 아니고서는 희생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35-85
예수님이 재림하셔야 하는 이유
그러면 하나님은 4천년의 수고로운 역사노정을 거쳐 이 땅에 보낸 예수님을 무한히 사랑하고 싶었을 텐데, 왜 사랑하지 못했겠습니까?

예수님이 진정한 독생자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갔습니까? 예수님은 사탄세계에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하늘의 비밀을 체득하고 배후의 역사시대에 저끄러졌던 내면적인 사실을 풀어 나오는 도상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을는지 모릅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깊은 진리의 내용을 알아서 그것을 체득하는 자리에서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입장이라고 선포할 수 있으되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갔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고 하신 말씀과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이 불이 붙을 때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 12:49-50)’고 하신 탄식의 말씀을 추리해 볼 때, 예수님은 역사시대에 감추어졌던 진리 탐구의 길을 개척하는 개척자로서는 만민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을는지 모르지만 생활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이 땅에 왔지만,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몰림으로 시작하여 몰림으로 33세의 젊은 나이에 비운의 생애를 마쳐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예수님은 생활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가셨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상적인 독생자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활적인 면모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의 반대를 받고,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민족 반역의 선동분자라고 규탄을 받아 추방된 고아의 모습만을 보여 주었을 뿐 이스라엘 민족의 가슴 가슴에 심어져 추대받는 주인, 천상의 역사적인 대표인물로서 추대받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활이 쫓기고 몰림받는 생활이었기 때문에 생활적인 면에서 메시아적 가치와 인격을 보여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생활무대를 떠나 가지고는 이상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이 자연적인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떤 인격관과 세계관을 중심으로 ‘나는 행복했다. 나와 같이 되라’하는 입장에 서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민 앞에, 혹은 천상 앞에 갖추어진 사랑의 행동자라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사실입니다.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하는 말씀은, 예수님은 미래의 세계에 있어서 감당할 수 있는 때와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을 추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예수님은 생활과 생애노정에 있어서 이상적인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출장을 가서 책임 수행을 다 했을 경우에 이미 갔다 온 출장을 다시 간다면 그 사람은 바보일 것입니다. 출장 갔던 일이 성사되지 못했을 때는 자신이 못 가면 다른 사람이라도 추천해서 보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다시 오셔야 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생활적인 면과 이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 받아 만민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생활의 기틀을 세워 놓지 못하고 갔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불쌍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불쌍한 생활권내를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쌍한 생활권내에서 허덕이며 이상적인 역사의 종점을 향하여 바람 부는 대로 따라가는 부평초와 같은 집시의 행로를 피치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바로 기독교의 역사요, 그런 무리가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35-87
잃어버린 하나님의 사랑을 누가 찾을 것인가
어제 밤 늦게까지 목을 버티고 있어서 목이 아픈 모양이구만. 여러분들은 통일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군요? 통일교인이라면 10월 4일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날입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지금부터 16년 전에 한민족이 통일교회를 없애기 위해 핍박의 깃발을 들고 나서서 몰고 또 몰고 찌르면서 죽음길로 몰아넣었던 자리에서 해방되던 날입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인사가 그래서 되겠어요? 나는 그런 인사를 받기 위해서 여러분 앞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말씀 그만 할까? 「아닙니다」 옆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보고 가만 있지 말고 손가락으로 찌르라고. 선생님은 시시껄렁한 무리들이나 지도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우리가 왜 이 야단하느냐? 아침부터 여기 와서 좀 졸았으면 어떻다는 말이냐? 목이 아파서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고개를 젖히고 입을 벌려서라도 약을 먹여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오늘 대학가의 퇴폐적인 젊은이들은 모가지를 잘라 버려야 됩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추워 벌벌 떨고 있으면 기분이 나쁩니다. 그렇지만 뜨뜻한 방에서 자고 일어나면 몸이 근질근질할 때가 기분 좋은 것입니다. 기분 나쁘다고 졸지 말라는 겁니다. 그 얘긴 그만 하고 말씀 계속하자구요.

‘사랑을 이(□)한 (恨)’이라 했는데, 사랑이란 무엇이냐?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고로 나도 잃어버렸고, 부모 형제 사돈의 팔촌까지 잃어버렸고, 대한민국도, 세계 인류 할 것 없이 모두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이것을 다시 찾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마치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보물을 누가 모래알 만하게 압축시켜 태평양 한가운데에 던져 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한번 다이빙해서 건져 올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할 때, 없다고 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있다고 하는 사람은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오히려 찾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을 미친 녀석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을 도대체 어디에 가서 찾겠습니까? 그것은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을 내가 하겠다. 틀림없이 나는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바위틈에 끼어 있든지 어디에 박혀 있든지 반드시 있기는 있을 것이다’ 하고는 실제 다이빙해 들어가서 ‘요것이다’ 하고 한번에 집어 내올 수 있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요?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힘든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통일천하를 이룩하는 것과 다이빙 선수가 바다 속으로 다이빙해 가지고 보물을 한번에 찾아 나오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쉽겠습니까? 이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택하라 한다면 어린아이가 통일천하를 이룩하는 쪽이 쉽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보물을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까? 지금까지 수천만 명이 이것을 찾기 위하여 죽고 또 죽고, 한번 들어갔다가 죽고 또 들어갔다 죽는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보물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35-88
사랑의 한을 해원하려면
이 같은 놀음을 해야 하는 것이 슬픈 일입니다. 그러면 이 슬픔이 사람만의 슬픔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슬퍼하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 사람이 더 슬퍼했겠습니까, 하나님이 더 슬퍼했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누가 더 슬퍼했겠어요? 그것을 잃어버리고 찾을 수 없게 경계선이 설정되었을 때 인간보다도 하나님이 더 슬퍼하셨다는 것입니다.

타락하는 순간에 있어서 타락한 당사자인 아담 해와의 슬픔보다 그들의 타락을 바라보면서도 간섭하지 못하신 하나님의 슬픔이 더 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슬픔은 하나님께서 풀어 주실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슬픔은 누가 풀어 드리겠습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부모를 잃었던 자식이 부모를 찾으면 그 부모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찾으면 찾을 수 있지만, 인간의 부모이신 하나님이 인간으로부터 받던 사랑은 누가 찾아 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자신이 찾으면 되지’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인간으로부터 잃어버린 사랑을 하나님 자신만으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신접살이를 하는 부부가 ‘너와 나는 천생배필이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다’ 하며 재미있게 살다가 남편이 죽었다면, 아내 혼자 그 남편의 사랑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여자 자신이 혼자서 남편의 사랑을 찾을 수 있겠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죽었던 남편이 되살아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데에 있어서는 하나님 혼자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죽었던 인간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길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이니 중생이니 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 길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랑을 찾는 방법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것도 상대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불쌍해요, 불쌍하지 않아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불쌍하시냐고 하겠지만 아무리 전지전능하시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어버린 충격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의 역사노정을 거치시면서 고생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한(恨)은 반드시 상대를 통해서만이 해원성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한을 풀 수 있는 길은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있다고요?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자신이 있어요? 또, 그럴 수 있는 자격이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바라보며 ‘나는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사랑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아들이다’ 혹은 ‘나는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딸이다’ 그래 본 적이 있습니까?

35-90
혈통은 사랑의 줄
여자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하는 데 쓸데없는 화장을 많이 합니다. 누구 좋으라고 화장합니까? 상대 때문입니까, 자기 때문입니까? 원래 화장은 화장터에서 해야 진짜 화장이에요. (웃음) 그 화장이란 말부터가 기분이 나쁩니다. 이런 마음이 들면 심각한 입장에서 화장할 것입니다. 그것이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서울행 기차를 타고 오면서 보면 서울역에 도착하기 30분 전부터 화장실이 분주해지기 시작하는 데 거의가 치마 입은 여자들입니다. 남자들은 점잖은데 말이에요. 그래서 끝날에는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바쁘다는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들은 자기 모습이 잘생기지는 못했지만 우리 엄마 아빠는 나 없이는 못 산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나 없이 못 산다고 하는 것은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무엇을 통해서 벌어지느냐? 상대를 통해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상대의 무엇을 통하여야 되느냐 하면 핏줄을 통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핏줄을 통한 사랑이 실질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핏줄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사랑이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을 보고 배달 민족, 혹은 한민족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외국에 나갔을 때,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천대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피가 끓어 오르다 보면 어떻게 됩니까? 주먹이 나가요, 안 나가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나가게 됩니다. 주먹이 너무 세면 죽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차후 문제고, 상대의 덩치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를 밀어붙이고 받아치면서 싸울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하려면 핏줄을 따르는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의 줄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요? 어디에서 출발했다고요? 악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악의 괴수가 무엇이냐? 사탄 마귀입니다. 무슨 인연을 가진 마귀냐 하면 간부라는 것입니다. 간부라니? 원리연구회 간부예요? 그런 간부(幹部)가 아니라 간부(姦夫)입니다. 그 간부의 피살을 이어받아 가지고 인간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고자 하는 사랑이 간부의 사랑이란 말입니까? 간부의 핏줄을 통해서 이어온 부정한 핏줄의 사랑을 받고자 했습니까?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35-91
마음과 몸의 상충을 해결하여 가야 할 인간
마음은 영원을 동반하는 것이요, 몸은 일생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생애를 조절하여 나오는 것이요, 몸은 생활을 조절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생활과 생애는 다른 것입니다. 생애는 일생을 두고 말하는 것이고, 생활은 하루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마음이 생애를 주관하고, 몸이 생활을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먹지 않으면 몸은 죽게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먹긴 먹되 생애에 어긋나는 자리에서 먹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어느 것이 더 커요? 「마음입니다」 마음이 바라는 관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은 일생을 두고 있고 마음은 영원을 두고 있는데, 이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죽겠습니까? 둘이 동시에 죽을 수 있어요? 명이 길다는 것은 오래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더라도 죽게 된다면 어느 것이 먼저 죽겠습니까? 몸이 먼저 죽습니다. 마음은 몸과 더불어 죽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과 몸이 서로 좋아할 수 있는 같은 핏줄을 통해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지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몸은 사탄의 피살을 중심삼은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성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의 마음에 뿌리를 박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은 천국의 초소요, 몸은 지옥의 초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율상반적인 입장에서 인생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런 기로에서 운명길을 가려 나가야 하는 것이 인생길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그런 길을 가야 되느냐? 그것은 사랑을 이(□)한 한(恨)을 풀기 위해서입니다.

35-92
최후의 종교가 책임져야 할 것
이제 여러분들은 능력의 하나님께서 사랑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왜 상대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 하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란 어떤 상대냐? 참된 사람, 참된 하나의 남성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참된 하나의 남성을 구하는 데 있어서 주먹구구식으로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의 창조원칙에 의하여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장난 제품은 공장에서 완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따라 수리하지 않고는 완전한 물건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남자가 나올 수 있도록 창조 본래의 프로그램에 따라서 시정할 것은 시정하고, 제거할 것은 제거하고, 보태야 할 것은 보태 가지고 찾아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창조원칙을 따르지 않고서는 완전한 남자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오랜 기간을 통하여 저끄러져 고장난 아들, 악에 흘러갔던 남자를 수리해 나온 과정이 지금까지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남자가 완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결혼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사는 지금까지 결혼을 보류하여 결혼하지 말라고 하면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혼은 한 사람의 남자가 나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완전한 남자가 된 자리에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타락한 아담 해와의 자리보다 나은 자리이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떨어져 내려갔기 때문에(칠판 판서하심) 그 떨어져 내려간 아담 해와보다 더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구원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느냐?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그 선상에 올라서야만 구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선 이하에서는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조금 높고 낮을 뿐이지 구원이 벌어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사망선을 어떻게 탈피하느냐 하는 문제가 인류의 숙원인 것입니다.

이것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중심삼아야 되느냐? 수단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핏줄이 같은 입장으로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것을 재확인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현재의 나 라는 존재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본래의 아담의 자리에서 얼마만큼 떨어져 있느냐? 시간적 거리로 6천 년이 아니라 6백만 년, 아니 6억만 년만큼은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엄청난 기간을 지나는 동안 별의별 노정을 다 거치면서 그 모양이 비뚤어지고 쪼그라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을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가르쳐 주시고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라고 설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최후의 종교가 책임져야 할 도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버지 가운데 어떠한 아버지일 것이냐? 기도할 때에 필요한 아버지가 아닙니다. 역사과정을 통하여 인간을 한 아들을 통해서 부활시켜 나오고 계시는 아버지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역사상의 성현들이 보다 높은 자리까지 가고자 노력했던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35-93
완전한 사랑을 주고 받지 못한 하나님과 인간
그러면 이 거리를 비약해 넘어갈 수 있는 규칙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거리를 초월할 수 있는 규칙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생명의 힘으로 그 거리를 초월할 수 있습니까? 몇천 년 전 사람을 내가 뛰어 넘을 수 있어요? 그것은 생명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으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부모는 십년 전에 죽은 자식이라도 그 자식을 생각하면 옛날 자식이 죽던 때의 아픈 마음이 재현되는 것입니다. 생애와 역사적 거리, 시공을 초월하여 차이없이 같은 반열에 접하게 할 수 있는 힘은 사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재현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인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자꾸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6천년 전에 잃어버렸던 아버지가 6천년이 지난 지금 나타나셔서 ‘내가 네 아버지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믿을 수 있겠어요? 그 말을 믿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너의 눈은 이래서 날 닮았고, 머리는 요래서 날 닮았다’라고 설명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어느때는 이런 일이 있었고 지금까지 이렇게 자라왔지. 네 선조들이 너를 이렇게 키워 온 것이다’라고 설명을 해도 믿지 않으니까 ‘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것이다’라고 설명을 하고, 그래도 믿지 않으니까 ‘너는 요렇게 하면 요렇게 될 것이다’라고 가르치면서 지금까지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도방법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이 ‘야! 우리 아버지는 이렇다’라고 하며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통곡할 수 있는 한날을 맞이하고 싶어하십니다. 그것이 타락한 사랑을 체득한 아들로 인하여 슬픔에 처한 하나님의 최대의 소원입니다. 알겠어요?

목을 끌어안고 ‘아버지!’하고 쌍곡선을 긋는 자리, 서글픔의 눈물, 기쁨의 눈물, 한스러움의 눈물, 처량함의 눈물이 뒤범벅이 되는 자리에서 만이 사랑을 체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눈물을 흘려 보지 않고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눈물 콧물을 흘려 봤어요? 아직 그런 심각한 자리에 못 들어가 보았을 거예요. 눈이 튀어나오고, 코가 흘러 입에 들어가고, 혀가 꼬부라져 들어가는 울음을 울어 보았어요? 머리가 아프도록 통곡해 봤어요? 여러분들은 눈물의 철학이 뭔지 모를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을 찾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 스스로는 사랑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즉,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이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사람을 완전히 사랑해 보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해 보려고는 하셨지만 사랑하지는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예수님도 하나님에게 생활적인 사랑을 못 받았고, 이상적인 사랑을 못 받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을 못 해봤다는 것입니다. 소생급, 장성급만큼의 사랑밖에 못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완성기의 사랑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마을 명문가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곱게 자란 처녀가 시집갈 나이가 되어 신랑감을 구하는 도중에 죽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부모는 ‘아이고, 이것아! 시집도 못 가 보고 처녀귀신이 되었구나’ 하면서 울 것입니다. 죽은 것도 서럽지만 그것보다도 시집 못 가고 죽은 것을 더 서러워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야, 이놈 타락한 아담 해와야! 너희들이 죽은 것도 한이지만 내 가슴에 깊이 깃들어 있는 사랑을 제대로 주지 못한 것이 더 한이다’ 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부모인 하나님이 자식에게 제대로 해보지 못한 사랑의 한을 언제 풀 것이냐? 이 한을 풀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하는 자식을 찾겠다는 끝없는 부모의 마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가슴속 깊이 사랑하고 싶은 정열을 다 퍼부어 가지고 자식을 사랑할 수 있는 날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인간들을 사랑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주체이신 아버지의 입장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해되지요? 「예」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타락한 아담 해와가 불쌍하다는 거예요.

35-95
하나님의 서글픈 사정
그러면, 아담과 해와의 타락은 아담 해와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아담 해와를 타락시킨 천사장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천사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파탄되고 하나님의 한이 남았으므로 이 원흉의 목을 쳐서 없애야 할 것입니다. 그럴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면 왜 천사장이 그들을 타락시키게 되었느냐? 사랑의 감소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천사장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사랑을 받아 보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가는 것입니다.

천사장에게 ‘네가 타락의 원흉이지만 이 모든 천지를 품고 사랑의 희열이 넘칠 수 있는 완성권내에서 오늘의 기쁨을 네 기쁨으로, 오늘의 영광을 네 영광으로 삼겠다’ 할 수 있는 내정적 심정을 다 주어 사랑하지 못한 한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한을 풀어 주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역설적인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천지의 중심 되시는 하나님께서도 자신이 해야 할 책임을 다 한 다음에 책임을 추궁해야 하는 것이 도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법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갖다 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경우가 있어요? 함부로 약탈, 겁탈하는 세상인데 그런 법 가지고 살아 남아질 것 같아요? 그렇지만 천리의 법도에 따라 사랑의 결과를 갖지 못하게 되면 사랑의 이상을 실현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는 자신을 세워 놓지 않고서는 원수를 사랑했다는 결과의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사랑하는 아들딸의 목을 자르는 것을 수천만번 자행해 온 천사장을 추궁하지 못하는 것은 천사장을 완전히 사랑해 주시지 못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누가 잘못하면 ‘하나님! 저 아무개가 이렇게 하려고 합니다’라고 하면서 의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서글픈 역사의 배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왔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지 아무도 몰랐던 내용입니다.

35-96
세상을 복귀할 수 있는 공통적인 철칙
하나님은 원수인 천사장까지도 사랑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되는 인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으려면 하나님과 같은 일을 해야 됩니다. 한 집의 가법을 상속받으려면 그 집 부모의 생활방도와 사랑의 인연을 사방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완전히 사랑하고, 아담 해와가 하나님이 사탄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사탄을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와야만 이 타락한 세상이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정상의 고비를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무엇을 해 나오셨느냐? 당신의 입장에서 사탄을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하나의 남성과 여성이 이 땅에 나오기를 고대해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로마 병정들을 대해서도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용서를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돌아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원수 사탄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완전히 사랑했다는 사랑의 기준을 조건적으로나마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인간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기독교의 교리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따라서 천국 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원수를 사랑하고, 그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할 때, 오른편의 의인들이 ‘주여! 우리가 어느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라고 하니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내게 행한 것이니라(마 25:35-40)’고 한 예수님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복귀할 수 있는 공통적인 철칙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문제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종관계인 하나님과 천사장, 단 둘만의 관계였다면 벌써 복귀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인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천사장의 중간에 매개체가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풀기 위해서 6천년이란 역사가 흘러온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원수의 화살에 죽음을 당하더라도 그들에게 복을 빌어 주라’하는 사랑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장이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받았느냐? 아담이 받는 만큼의 사랑을 못 받았습니다.

35-98
아벨의 책임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려면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되느냐? 천사장을 사랑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인간은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고, 둘째는 천사장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래야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 타락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게 된 상태에서 있게 된 것이므로 원래의 자리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야 합니다. 아담이 장성급에서 받던 사랑의 자리보다도 더 차원이 높은 사랑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종이자 아담 해와의 종인 천사장을 사랑해야 됩니다. 아버지가 종을 사랑하듯이 아들도 종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아버지가 사랑하는 종을 아들이 배척한다면 그 아들은 부모 앞에 불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동양의 격언 중에 부자일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버지와 아들은 일신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종을 사랑하면 아들도 그만큼 종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본연의 입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천사장을 사랑하고, 그다음에는 아담 해와가 천사장을 사랑했다고 하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창조본연의 아들의 입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조건을 세우기 위해 천사장 대신 세운 존재가 가인이요, 아담 대신 세운 존재가 아벨인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아들인 아담을 대신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벨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인보다 더 받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벨이 책임을 다 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아벨 자신이 구원을 받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더 큰 목적은 가인을 사랑하여 그 가인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원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벨이 되려면 누구보다도 가까운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고,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가인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가인이 누구냐 하면 원수입니다. 이러한 가인 아벨의 관계를 중심삼고 보면 신구약 성경의 모든 문제점이 다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지금까지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하나님편인 아벨, 사탄편인 가인으로 나누어져서 발전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오른편이요, 사탄편은 왼쪽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생명의 기원을 전부 다 설파한 예수님은 원수의 창에 찔렸지만 거기에서부터 이 땅 위에 속죄의 인연이 뿌리 내려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창에 찔리는 자리에서도 원수를 사랑한 것은 하나님께서 원수인 사탄을 사랑한 것이 되는 것이요, 아담이 사탄인 천사장을 사랑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아담 해와, 그리고 천사장이 일체를 이루어 타락하기 전의 본연의 사랑권내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권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랑권의 내용을 중심삼지 않으면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개인에서부터 세계에 이르기까지 둘로 갈라지는 때가 말세입니다. 타락의 동기는 전부 다 개인을 위주로 했기 때문입니다. 천사장도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사랑의 감소감 때문에 타락했고, 아담도 자기 개인의 욕망을 중심삼았기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이렇게 타락의 씨가 뿌려진 것이기 때문에 그런 때가 끝날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타락하여 몸과 마음이 갈라졌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부패되어 있고, 그러한 개인들로 이루어진 가정도 부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정은 하나님편, 아벨편, 사탄편, 가인편 등 네 편으로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야 돌아가실 때에도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편인 오른편 강도와 사탄편인 왼편 강도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끝날에도 그와 같이 하나님편과 아벨편, 사탄편과 가인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 왼편 강도와 같은 것이 오늘날 우익과 좌익입니다. 그렇게 심었으니 그렇게 거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는 네 편으로 갈라져 서로 싸울 때가 올 것입니다. 민주세계도 갈라지게 되고, 공산세계도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종교권은 민주권과 아랍권으로 분류됩니다. 민주권은 예수권이고 아랍권은 바라바권입니다. 공산권도 사탄권과 가인권의 두 가지형태로 벌어질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죽을 때 중앙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중심삼고 네 패로 갈라 가지고 이것을 다시 수습해야만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민족의 해방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오실 메시아는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사상을 가지고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 이 부분부터는 녹음테이프가 보관되어 있지 않아 박석진씨가 문화부에 근무하면서 딕테이션(dictation)해 놓은 것으로만 정리했음.

35-100
가장 가까운 자를 희생시켜 복귀해 나오신 하나님
주님이 세계를 통일하려면 본래 뿌렸던 대로 다시 가려 내야 하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냐? 가인 아벨의 자리입니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한이 맺혔기 때문에 사랑으로 이 한을 메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이(□)한 한(恨)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원수를 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탄에게 먼저 맞은 다음에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로부터 맞아 피를 흘렸으면 흘린 만큼 하늘편으로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중심삼고 보면 세상에는 억울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선한 사람들은 못살고 있는데 악한 사람들은 잘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한 사람들은 못산다고 억울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전은 먼저 맞은 후에 빼앗아 나오는 것이므로 선한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로부터 수천 사람을 빼앗아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를 풀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통일교회내에서도 개인적인 가인 아벨이 있고, 가정적인 가인 아벨이 있습니다. 가인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냐? 하나님의 직계의 사랑을 받을 때 반대하는 가정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을 시기하여 사탄이 생겨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을 시기하는 가정이 가인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 들어가면 사탄은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제일 밑창인 감옥의 자리로 몰아넣으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에 있어서 성인이나 위인은 항상 간신들의 중상모략으로 인하여 희생되어 갔던 것입니다. 또 나라의 주권을 쥐었던 사람들 중에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지 않고 주권을 쥐었던 사람들은 극히 적습니다. 그들은 쫓김을 당하면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나라의 권세를 잡아 새로운 길을 제시해 나왔습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지금까지 핍박을 받아 나왔지만 그 핍박을 잘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핍박받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핍박을 받도록 내모는 것입니다. 개밥을 먹어 가면서도 민족을 위하여 살고, 세계를 위하여 살라고 때려 모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지금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길에 내보내는 섭리를 해나오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기 위하여 하나님편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써 사랑의 씨를 심어 나온 것이 하나님의 전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충신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충신을 원수를 위하여 죽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충신의 무리들을 거두어 나오셨습니다. 또한 양자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양자를 원수를 위하여 죽게 함으로써 그를 씨앗삼아 천배 만배로 거두어 들였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역사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인 예수님을 희생시킨 것은 그로 말미암아 천배 만배 거두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길은 천륜을 복귀할 수 있는 길이었기에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해방을 맞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어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는 지극히 이론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와 과학이 서로 하나되지 못한다는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과학이 구체적이고 체계적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과학보다는 종교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입니다. 과학은 가설법과 가정법의 논리 위에 실험을 통해 형성시킨 것입니다. 여러분이 과학에서 말하는 원자를 보았습니까?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하여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의 원리는 가설이 아니라 진설(眞設)입니다. 과학적이라면 아주 과학적인 원리입니다.

35-102
기독교가 순교의 종교가 된 이유
하나님은 지금까지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종부터 희생시켜 나오셨습니다. 그 종으로부터 그의 가정, 그의 종족을 희생시켜 나오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하나님은 가짜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종의 민족을 희생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종의 민족이 어느 민족이었느냐?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그 이스라엘 민족은 종의 종의 자리를 거쳐서 종의 자리를 거쳐야 하고, 그 다음에는 양자의 자리를 거치고 아들의 자리를 거쳐서 부모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맺을 수 없는 무원리권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인간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사탄은 인간을 아들딸의 대우는 물론이요, 종의 대우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냐? 만일에 사탄이 인간에게 부모의 사랑을 가르쳐 주게 되면 인간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무리 가을이 좋고 겨울이 좋다고 하더라도 봄이 오게 되면 가을과 겨울의 모든 것을 차버리고 나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한 인간이 부모의 사랑을 알고 나면 그 사랑을 찾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 사탄은 타락한 인간의 부모가 되었지만 자식을 사랑할 수 없는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인간으로 하여금 사랑을 알지 못하도록 악으로 이끌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인간이 사랑을 알게 되는 날에는 오리 새끼가 닭의 품에서 자라다가 어느 날 닭이 자신의 어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한 마리 두 마리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탄의 품을 떠나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타락한 인간이 본연의 부모를 찾아가지 못하도록 브레이크를 걸어 사랑이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끔 억류해 나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는 이렇게 흘러온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공산주의 국가들이요, 그 중에서도 특히 김일성을 중심삼은 북한 사회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가졌지만 원수의 입장에서 인간을 악으로 유인해 나오는 것이 사탄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사랑 운운하게 되면 큰일나겠기 때문에 사탄의 앞잡이가 되어 있는 공산당들은 국민들의 언론의 자유를 없앤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입만 뻥긋했다가는 비판대에 서거나 죽음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렇게 볼 때 성경이 사탄 잡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뿐만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탄을 힘으로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검(劍) 앞에는 자연히 굴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원수를 갚기 위하여 삼대(三代)에 걸쳐서라도 희생하겠다는 사람 앞에서는 사탄도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조상들이 쓰던 초부득삼(初不得三)이라는 말도 다 일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그렇게 희생시켜 나오셨습니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이스라엘 민족 1세를 애급에서 고생시키시고, 2세를 광야에 끌고 나와 고생을 시켰고, 3세만 가나안에 들어가게 한 후에 예수님을 보내셨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이 무슨 죄가 있어 나라 없는 민족이 되었고, 6백만이 대학살을 당하는 고통스러운 죽음길을 갔겠습니까? 그것은 민족을 희생 시키고 나라를 희생시켜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희생시킨 것은 누구를 사랑했다는 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겠습니까? 그것은 사탄을 완전히 사랑했다고 하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으로 사탄을 완전히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지 못하였으므로 이를 완전히 사랑했다고 하는 기준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오늘날의 세계적인 종교가 되기까지 세계를 위하여 죽음길을 밟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순교의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순교의 종교가 되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냐? 창조본연의 아담 해와 시대에 천사장을 사랑하지 못한 한의 기준을 개인적·가정적·종족적·민족적·국가적으로 넘어 가지고 세계적인 기준에서 천사장을 완전히 사랑했다는 입장을 복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의 철칙을 세워야 할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피를 흘리면서 순교의 길을 걸어 나왔던 것입니다. 이렇듯 순교의 길을 걸어온 종교라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들은 기독교에 감사해야 합니다.

35-104
지금은 천주주의가 출발되는 시기
기독교가 국가를 거느려 가지고 민주세계를 창건하였기 때문에 원수 앞에 죽음을 당하고 몰리던 자리를 넘어서서 비로소 ‘내가 너를 완전히 사랑했다’하는 조건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제 너는 나를 완전히 사랑해라’할 수 있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편인 민주세계와 사탄편인 공산세계가 대립하고 있는 입장에서도 하나님편인 민주세계가 승리할 수 있는 시점이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그 승리는 곧 아담 해와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인류의 참부모인 동시에 참형님과 참누나입니다. 또한 남자 중의 최고의 남자요, 여자 중의 최고의 여자입니다.

이러한 아담을 대신하여 제3차로 본연의 아담의 자격을 갖추고 이 땅위에 오시는 분이 바로 재림주님이며, 그 재림주님이 최고의 여자를 맞이하게 되는 날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어린양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재림주님이 그 최고의 여자를 신부로 맞이함으로 말미암아 남자 완성과 여자 완성을 이루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사랑했다고 하는 사랑의 상속권을 받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가 바로 이 땅 위에 재림주님이 오셔서 새로운 천국건설을 출발하는 때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에서는 천주주의의 출발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하늘나라의 법도를 계승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입장에 놓이게 되느냐? 성경에 ‘끝날에는 네 집안 식구가 원수리라’하는 말이 있듯이 집안 식구와 원수가 될 것입니다. 부모와 원수가 되고, 형제와 원수가 되며, 남편과 아내가 원수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집안 식구와 원수가 되는 인연을 갖고 나오는 종교가 있거든 머리를 싸매고 그 종교를 따라가야 됩니다.

따라서 인류는 세계적으로 종교권을 이루고 있는 현시대에 있어서 그러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이 있나 없나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사나이라면 한번 따라가 볼 만한 일이 아니겠어요? 한번 따라가 볼 만한 것입니다.

35-105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수많은 핍박을 받고 욕을 먹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욕먹은 것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잘 먹었다고 생각합니까? 만약에 욕을 먹었다고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망할 것입니다. 나는 이 길이 욕을 할 테면 욕을 하고, 핍박을 할 테면 핍박하고, 좋아할 테면 좋아하라고 하면서 모든 것을 등한시하고 가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역사노정을 가는 것은 미래에 통일교회를 믿고 복귀노정을 가야 할 사람들을 위한 서글픈 지도자의 길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사랑하는 아들과 충성을 다하는 종들을 죽음길로 몰아넣어 사탄을 사랑하지 못했던 한의 고개를 대신 넘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의 종적인 역사의 싸움은 완전한 한 남성과 한 여성을 찾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여 한 남성과 한 여성을 찾게 되면 그들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횡적 무대를 중심삼고 일국과 세계 인류 앞에 한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주체적인 내용을 결정지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천지의 출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을 중심삼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나오게 되면 부모나 형제가 극구 반대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부모나 형제의 인연을 완전히 끊자고 강력하게 나옵니다. 여러분도 그런 말을 들어 봤지요? ‘야, 이 녀석아. 아무려면 내가 너를 사랑하지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너를 더 사랑하겠냐’ 하면서 야단들입니다. 나는 그런 별의별 꼴을 다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난 그들을 저주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들을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수가 어머니의 가슴을 총으로 쏘려고 하는 찰나에도 저주의 마음보다는 사랑의 마음으로 그를 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사탄에게 걸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지금까지 이런 놀음을 하시면서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디까지 밀려 나가야 하느냐? 사람 취급을 못 받게 되는 자리까지 밀려 나가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 문선생은 지금까지 어떤 취급을 받으면서 나왔느냐 하면 여학생이나 꼬이는 괴수요, 벌거벗고 춤추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사람 대우도 못 받았습니다. 내가 진짜로 벌거벗고 춤이나 한번 추어 보고 그런 말을 듣는 다면 원통하지나 않지, 참으로 야속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자들에게 한번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변명할 시간이 있으면 갈 길 바쁜 이 길을 가겠다고 내 길 가기에 더욱 주력할 뿐이었지 그런 말은 나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뒤로 미루게 하고 뜻일선으로 몰아냈던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려고 하는 판국에 대학 진학의 길을 막고 전쟁터로 보냈다고 해서 죄가 되겠어요? 그것은 오히려 사랑이지요. 나라가 없는데 대학교에 다닐 수 있어요? 그러니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먼저 나라를 찾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욕을 많이 먹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어떠셨겠습니까? 사랑하시겠습니까, 사랑하시지 않겠습니까? 어디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한의 곡절을 알아내어 하나님의 일을 했으니 얼마나 미더워하며 좋아하셨겠습니까?

역사적인 최고의 고빗길에서 그 누구도 모르는 하늘의 법도를 중심삼고 세계를 요리하겠다며 칼을 갈고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문선생편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또 하나님께서 선생님편을 든다면 몽땅 들겠어요, 아니면 절반만 들겠어요? 몽땅 선생님편을 들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성교회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멋에 살지, 그렇지 않다면 남에게 욕이나 먹으며 살 사나이가 아닙니다.

35-107
주류를 따라 사는 사람이 역사에 남는다
오늘, 10월 4일은 선생님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출감한지 16년째 되는 날입니다. 뜻을 알고 있는 사람들, 특히 그 중에서도 뜻을 안 젊은 사람들은 땅에 엎드려 통곡을 하며 기념해야 할 의미 깊은 날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내용을 모르고 있으니까 그냥 이렇게 앉아 있지, 내용을 안다면 그냥 있지 못할 것입니다.

요즈음 언론기관에서 통일교회를 뒤집어엎으려고 난리들을 피우고 있지만 그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을 모르고 하는 처사들입니다. 선생님이 지금은 비록 허리 부러진 호랑이 모양으로 청파동 언덕에 앉아 있지만 이 호랑이의 허리가 낫게 되는 날에는 천지가 뒤흔들리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통일교회가 사방에서 공산당과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 통일교회 무리가 잘되면 세상이 잘되겠어요, 잘 안 되겠어요? 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괜히 통일교회가 보기 싫어 죽겠다고 야단들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지금 한국이 휴전선을 중심삼고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요? 원리적 견지에서 본다면 그렇게 갈라지지 않으면 한국이 제3이스라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네 집안식구가 원수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개인도 가인과 아벨로 나누어져야 하고, 가정도 가인 가정과 아벨 가정으로, 종족도 가인 종족과 아벨 종족으로, 민족도 가인 민족과 아벨 민족으로, 국가도 가인 국가와 아벨 국가로, 세계도 가인 세계와 아벨 세계로 나누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가인 세계가 공산세계요, 아벨 세계가 민주세계입니다.

그러면, 민주세계는 전부 다 좋은 사람들이고 공산세계는 전부 다 나쁜 사람들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민주세계 사람들이나 공산세계 사람들이나 전부 다 얼룩덜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는 것이요, 공산세계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는 어느 사회나 단체는 물론이요, 가정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체 내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체 내에 있는 주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고, 비주류는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류를 따라 사는 사람은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이끌며 살아야 합니다.

35-108
세계 통일 방안
주류 앞에 통일될 수 있는 내용만이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방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끊어 놓은 자리에서부터 세계가 갈라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다시 연결하는 자리에서만이 세계 통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인연을 다시 연결하기 위해서는 앞에 완전한 하나님 개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연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의 존재를 하나님께서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그 개인을 중심한 세계를 잃어버린 결과가 되었기 때문에 세계를 통일하기 전에 먼저 사랑을 중심삼고 몸 마음이 완전히 통일된 하나의 개인이 찾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을 타락한 이 세상 가운데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구세주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통일의 방안은 메시아, 즉 구세주에 귀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세계 통일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서만이 가능한데 그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메시아뿐이므로 그 메시아가 세계 통일의 요인이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메시아는 타락한 이 세계를 어떻게 통일하느냐? 종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횡적으로 연결시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수많은 개인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들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고, 그런 가정들이 모여 종족을 이루고, 종족이 모여 민족을 이루고, 민족이 모여 국가를 이루고, 국가가 모여 세계를 이루게 되면 이 세계는 자동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 개개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얼마나 나라를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마음은 몸을 사랑해야 합니다. 즉, 아벨 되는 마음이 가인 되는 몸을 완전히 사랑했다고 하는 팻말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시골에 가서 일을 하다가 배가 고프고 힘이 없어서 팔을 들지 못할 정도로 힘이 없으면 그 팔을 잡고 통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몸과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거기에서 빛이 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몸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순종하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몸은 마음이 외로운 길로 이끌고 가더라도 도리어 마음을 위로하면서 눈물 흘리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자리까지 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웃고 춤추는 편한 자리에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 자리를 찾아가는 길은 못먹고 쫓기고 핍박받는 , 죽음의 교차로를 넘어설 수 있는 최고의 경지까지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종교의 길은 고생길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은 고행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행길이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길을 가지 말라고 해도 가는 것입니다. 좋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해도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를 다니던 사람이 통일교회를 떠났다 하더라도 다른 교회에는 다닐 수가 없습니다. 나갔다가도 종교를 갖게 되면 통일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따라가기에는 힘이 들어도 보람이 있지만 다른 종교는 시시해서 믿을 맛이 안 나기 때문에 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곳으로라도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선생님이 먼저 갔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50여 평생을 욕을 얻어먹으면서 나왔습니다. 지금도 통일교회 문선생이 어디 나타났다 하게 되면 그저 싫어합니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가 다 야단입니다. 선생님이 일본에 가려고 해도 ‘이 사람은 요주의 인물이니 입국시키지 말라’고 반대하지, 미국에 가려고 해도 미국 국무성이 반대하지, 어디를 가나 쫓김을 받고 핍박을 받으면서 살아온 사나이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일본에 가고 싶으면 일본에 가고, 미국에 가고 싶으면 미국에 갑니다. 그 나라의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그들이 아무리 반대를 하더라도 그 나라의 맨 꼭대기를 눌러 가지고 들어갑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이런 재미로 삽니다.

35-110
이제 할 일은 가인 아벨을 복귀시키는 일
오늘은 날씨가 참 좋군요. 선생님이 아침에 여러분들을 만날 때부터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늘은 광명의 새아침이요, 해방의 새아침이었던 10월 4일이니까 오늘 날씨가 좋은 것 같군요.

금년, 1970년대는 7천년 역사를 탕감하는 연대입니다. 그런데 10월초 나흗날인 오늘 기분이 나쁘게 되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아서 한번 해본 소리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한국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여기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내에 주류와 비주류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여기에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완전복귀가 안 되었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가 존재하는 한 주류와 비주류는 어디에나 존재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주류란 무엇이냐? 종교적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지향하는 뜻의 방향과는 달리 바른길을 가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통하여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두고 보면 어느 시대나 미련한 사람들이 그 시대에 충신이 되었고, 개척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서 제일 미욱한 사람의 대왕이 재림주가 될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봐요. 좋은 하늘나라 왕궁을 버리고 사탄세계에 와서 하늘나라 말만 하니 포로가 되어 죽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 예수님이 얼마나 미욱합니까?

하늘나라에서 사탄의 왕국에 들어와 사탄의 왕위를 빼앗으려고 했던 사람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옛날 고구려 시대에 호동왕자가 낙랑공주를 빼앗으러 들어갔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사탄세계의 공주를 빼앗으러 왔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패하였으므로 앞으로 오실 재림주님도 사탄세계의 공주를 빼앗으러 와야 하는 것입니다. 공주를 빼앗고 왕후를 빼앗으러 와야 합니다. 그것은 사탄이 하나님의 공주를 빼앗아 갔고, 하나님의 왕후를 빼앗아 갔으므로 탕감복귀원칙에 의해서 사탄의 공주와 왕후를 빼앗아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그 일을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은 사건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야는 다윗의 충신인데 그 충신의 아내를 빼앗아 동침함으로써 그 혈통을 통하여 솔로몬 왕을 낳았습니다. 그러한 일은 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빼앗긴 해와를 찾아 세우기 위한 탕감복귀역사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일이 당시에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66권을 통하여 보면 어쩔 수 없이 긍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일들은 원칙에 입각해서 되어진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원리를 중심삼고 풀어 나가야만 이해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했다가는 모두 벼락을 맞게 되어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가인 아벨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이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가인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나라에는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보면 남한과 북한이 있습니다. 이 중에 어느편이 주류냐 하면 남한이 주류입니다. 또 남한과 북한은 한 나라 안에 있는 아벨과 가인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주권도 하나님편인 남한이 먼저 세웠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당신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거의다 이승만 박사를 중심한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35-112
통일교회의 이상주의
아벨인 남한과 가인인 북한의 입장을 두고 볼 때, 항상 가인이 먼저 아벨을 치기 때문에 북한이 먼저 남한을 쳤던 것입니다. 악은 언제나 공세적인 입장이요, 선은 언제나 수세적인 입장을 취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하늘편인 선한 사람이 못사는 타락된 세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타락한 세계를 해방시켜야 합니다. 오늘날 공산당들의 표어는 세계에 널려 있는 노동자 농민을 해방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가 금후의 이상세계를 찾아 나가는데 있어서 내걸고 있는 세계적인 표어는 ‘세계에 널려 있는 양심적인 인사는 총동원할지어다!’입니다. ‘양심적인 세계 만민이여, 총동원하라!’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들고 나가는 세계적인 표어입니다.

양심적이라는 말은 자기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양심적이라는 말은 자기를 떠나 어떠한 주체를 의식하고 하는 말입니다. 나라는 개체속에 양심이라는 주체를 중심삼은 기준에서 이루어지는 말입니다. 주체앞에 상대적인 입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양심적인 인사라는 말 가운데는 계급을 초월하여 노동자, 농민, 학자, 교수, 정치가, 경제가들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 세상에는 비양심적인 노동자, 농민, 학자, 교수, 정치가, 경제가 등 각양각색의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우기 비양심적인 종교인까지도 있습니다. 이것을 원리적으로 말하게 되면, 비양심적인 사람은 가인이요, 양심적인 사람은 아벨입니다.

그런데 공산당은 양심적인 사람도 비양심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그들이 내건 표어는 노동자나 농민들을 착취하기 위한 하나의 수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양심적인 인사들을 동원하려고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중심한 양심적인 사람들을 동원하여 아벨 세계권을 넓혀서 비양심적인 사람들, 즉 가인권 세계를 없애고 이 땅 위에서 선한 사람이 잘살 수 있는 지상천국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무기로 그들을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가인을 사랑하는 사랑의 무기로 이상세계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탄을 중심한 공산당들은 불순분자니 반동분자니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숙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잘못한 것을 깨닫게 하여 회개시키고 그들을 사랑하여 다시 양심적인 사람으로 세뇌공작을 해서 누구보다도 가까운 형제의 인연을 맺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이상주의입니다.

35-113
사랑을 이한 한은 개인에서부터 풀어야
여러분, 선생님이 누구를 위하여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 같아요? 아닙니다. 여러분들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을 위해 기분 좋게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누구 때문에 기분 좋게 가겠다는 것입니까?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여러분 자신들을 위해서입니까? 둘 다 아닙니다. 나라에 소망을 두고 기분 좋게 가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이(□)한 한(恨)은 개인에서부터 풀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가정에 들어가면 동생들을 사랑하여 뜻을 알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동생 입장에 있는 해와를 오빠의 입장에서 백퍼센트 사랑해 주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받지 못했던 해와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이동생을 사랑할 수 있는 오빠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아내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서는 아내를 완전히 사랑하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은 아내로서 남편의 사랑을 받기 위한 것인데, 여러분은 남편으로서 아내를 백 퍼센트 사랑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 한을 풀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부모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해드리지 못했던 효성의 도리를 다하여 효자가 되어 보자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한을 풀어 가지고 남자는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고, 오빠를 대신할 수 있고, 동생을 대신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소생, 장성, 완성의 형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신랑의 입장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사위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여자는 어머니를 대신할 수 있고, 누나를 대신할 수 있고, 누이동생을 대신할 수 있고, 아내를 대신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본연의 세계에서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본연의 자리, 즉 사위기대가 이루어진 자리에서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늘나라에 직속으로 입적할 수 있는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의 질서를 세우지 않으면 횡적인 무대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요, 그 횡적인 무대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천국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횡적인 무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기독교의 신랑 신부의 이념을 중심삼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동일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자리인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이 천정(天情)을 중심삼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인류가 소망하고 있는 목적점이요, 역사의 비운을 해방시킬 수 있는 모체가 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만이 참부모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요, 참부부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며, 참형제가 생겨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합한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사랑을 중심삼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왕자 왕녀의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당당코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표준삼고 가는 길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요, 그러한 기준에 서기 위해서 염려하고 눈물 흘리면서 고난길을 마다 하지 않고 한스러운 길을 제거시키려고 가는 것이 통일교인들의 희생적인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기준에 서야만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것이요, 또한 자신의 행복의 기틀도 여기서부터 세워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35-115
통일의 이상권의 터전이 되라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이 한의 구렁텅이에서 수고하신 것은 인간이 원수 사탄에게 유린당했던 모든 것을 복귀시켜서 한의 구렁텅이를 평지로 메꾸어 그 터전 위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이념의 논리적 근거를 갖출 수 있다는 사실은 세계적인 혁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러한 이념을 중심삼고 모여진 대열에 참여하여 손에 손을 잡고, 민족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한 형제의 인연으로 뭉쳐야 합니다. 동양인이 서양인을 그리워하고 서양인이 동양인을 그리워할 수 있는 인연이 지구상을 넘나들 수 있고, 또한 역사시대의 선조들과 오늘날의 후손들이 천상의 인연을 넘어 가지고 현실에서 서로서로 화동할 수 있는 하나의 통일 이상권은 이 터전이 아니면 이루어 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터전으로 말미암아 모든 원한이 해원성사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여러분은 그러한 터전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진실로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어디 손들어 보세요.

선생님이 여러분은 피라미 새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 나라의 궁전을 상속받을 수 있는 왕자와 왕녀로 만들어야 하는 엄숙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대하여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을 죽음길로 내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륜이요,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몰지 않을 수 없는 스승의 괴로운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선생님도 원수를 완전히 사랑했다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천사장을 사랑하지 못한 이 세계를 사랑해야 되고, 나라를 사랑해야 되고, 민족을 사랑해야 되고, 종족을 사랑해야 되고, 가정을 사랑해야 되고, 개인을 사랑해야 됩니다.

내가 지금까지 몸이 다칠세라 아껴온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다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의 무대가 전개되기도 전에 내가 먼저 피해를 입게 될까봐 그랬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나지 않고 은신하면서 그때를 바라보며 나올 수밖에 없는 서글픈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이 뜻길에서 쓰러지게 되는 날에는 누가 나보다 더 이 세상을 사랑하고 뜻을 사랑하겠느냐 하는 자부심으로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이와 같은 입장에서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와 세계를 사랑했다는 깃발을 이 땅 위에 꽂고 가야 할 천적인 사명이 있기에 그날까지 남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아질 수 있는 비법은 맞서 싸워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직 참는 길만이 비법이라고 생각하고 무골충과 같은 모습으로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뜻은 엄숙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함부로 나타낼 수도 없었습니다. 천륜의 법도에서 한번이라도 실수하여 벗어나게 되면 그것은 억천만 년이 흘러가도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오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스승의 전통적인 사상을 상속받아서 선생님이 죽더라도 이 전통을 후손에게 남겨야 합니다. 선생님이 염려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통일교회의 이름을 후세에 남길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선생님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을 후세에 남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통을 중요시하라는 교육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어가려고 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잠자는 시간을 줄여 가면서라도 삼팔선을 넘나들기 위한 준비를 하는 통일교회 식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식구가 몇 명이나 될까 하는 것이 의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민족을 초월하여 국경을 넘어가서 그 나라 그 민족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 일생을 희생시키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것도 의문입니다. 그러한 식구의 수가 동서남북으로 쭉쭉 뻗어 나가게 될 때 통일교회는 자연적으로 세계적인 승리의 기반을 갖추게 될 것이며 이 지구상에 평화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대열에 참여한 것에 대한 귀한 가치를 느끼며, 무한한 긍지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기에 미쳐서 자기의 피살을 다 주고도 더 주고 싶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무덤이 생겨날 때, 하나님께서는 천상세계의 모든 왕위로부터 지으신 피조세계까지 전부를 그 무덤 앞에라도 상속해 주려고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알고 가면 패하더라도 흥하게 되는 것이요, 죽더라도 살아 있는 이상의 가치가 부여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성경 말씀도 이런 의미에서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이러한 길을 가야만 사랑을 이(□)한 한(恨)의 구렁텅이를 메워 통일세계, 즉 행복의 자유천국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5-117
기 도
아버지, 이제 이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할 최고의 기준까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버님과 같이 사랑하지 못하는 것 이상 더 무서운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이들의 뼛골에 사무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6천년의 한은 아버님께서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 없었고, 딸이 없었다는 것이었음을 알았사옵니다. 그 사랑의 기준이 나오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는 수천년 동안 사탄에게 참소받았으며, 아들딸에게도 사탄의 침범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백번 죽어 한번 부활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길을 가야 할 천명 앞에 선 자신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러한 자신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제는 알았사옵니다. 이제는 가야 되겠사옵니다. 그 누구의 권고에 의하여 가는 것이 아니요, 그 누구의 가르침을 받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이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가인을 사랑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가정적으로도 그렇고, 종족적으로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그렇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모든 것을 결판지어야 할 사명이 우리 통일교회의 앞길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참아버지와 거짓 아버지의 대결이 벌어지는 이 시점에 있어서 저희들은 참을 세워 거짓을 굴복시킬 수 있는 한날을 거쳐 통일의 한 나라를 세워 가지고 세계 앞에 설 수 있는 아벨 국가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런 길을 가야 할 저희들은 남의 비난을 받는 길도 걸어가야 되겠사옵니다. 힘의 비중과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에 밤낮을 개의치 않고 우리의 판도를 넓혀 나가야 할 책임이 있는 저희들은 1970년대에는 그것을 결판지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런 사명이 있는 저희들이 다가오는 하늘의 운세 앞에 밀려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도리어 정면에 서서 쌍수를 들어 환영하며 이 한날을 바라며 찾아 나왔다고 고함칠 수 있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나의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전국에서 올라온 성화 대학생들 가슴속에 무엇을 심어 주겠사옵니까? 인류를 사랑할 수 있는 정열이 이들의 가슴 가슴에 폭발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가인 아벨의 탕감복귀의 노정을 거쳐 사랑의 결실을 맺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대적인 내용을 이들이 알았사오니, 이들로 하여금 그 길을 거쳐 아버지 앞에 사랑받고 세계 앞에 존경받을 수 있는 하늘의 왕자 왕녀들이 되게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만일 그렇지 못하거든 채찍을 들어서라도 부디 그 길로 갈 수 있게끔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몸이 찢겨 병신이 되더라도 감사하며 아버지 앞에 생애를 바칠 수 있는 아들딸이 여기에 모인 성화 대학생들 가운데서 많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제가 평생 이 길을 걸어 나오는 데 있어서 당신께서는 제게 잔인하게 보였사옵니다. 하오나 당신께서는 저보다 더 불쌍하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 죽어가는 십자가의 장벽에 부딪칠 때도 저를 붙들고 염려하지 말라는 하소연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량한 곡절을 저는 체득하였사옵니다.

이런 과정에서 아버지와 아들된 저희들이 목을 안고 하나될 수 있는 그날을 찾아 아버지 앞에 선물로 돌려드려야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각자는 그런 선물을 준비해야 되겠사옵니다.

그것은 환희와 영광이 넘쳐흐르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사의 교차로에서 이루어진다는 억울한 사실을 원리로써 알았을 때 불가피한 노정인 것을 알았사오니, 이들 젊은 가슴에 인류를 사랑하고 아버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고, 원리 법도를 준수하는 청년들로써 준법정신의 모범이 되는 아들딸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과 이해가 복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