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14 to 35-347: 하나님의 섭리와 동기적 성현들

하나님의 섭리와 동기적 성현들
1970.11.01 (일), 한국 남산성지

35-314
하나님의 섭리와 동기적 성현들
[기 도]

아버님, 금년에 맞은 음력 10월은 역사적인 새로운 달이 되어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1970년도가 이 한 해의 국한되는 해가 아니라, 역사적인 전 생을 대표하는 하나의 고개로서 선과 악을 분립시켜야 할 중차대한 시점이라는 것을 알고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70년도의 모든 어려웠던 일들, 혹은 뜻과 더불어 중요한 모든 일들이 승리의 결과를 가져와 자녀의 날을 지냈습니다.

아버지, 음력으로 10월부터는 당신께서 소원하시던 뜻이 저희 개인에게 서도 이루어지고, 가정에서도 이루어지며, 저희 교회와 나라에서도 이루어지고, 이 세계에서도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께서 세계를 위해 수고해 나오신 복귀섭리 전체의 뜻이 당신의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이상과 일체화되는 최후의 승리의 한날을 맞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당신이 지금까지 숱한 수난과 역경 가운데서 지키시고, 외로운 자리에서 권고하시며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내심으로 키워 나오시던 당신의 자녀들이 광명한 새 아침을 맞이하고 새로운 날의 기쁨을 차지하여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당신을 모시고 존경하며 찬양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그런 날이 올 것을 알고 나왔사옵고, 그 때는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사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승리의 가치와 승리의 권한과 자유로운 해방권을 바라고 나왔던 지난 역사를 흘려 버리고 앞으로 다가오는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내적 외적으로 단장하여 하늘과 땅 앞에 주권자의 권한을 갖추고 부끄러움이 없는 참된 인간의 모습을 갖추어 새로운 나라의 상속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 여기에 당신의 뜻과 당신이 가시는 길을 따라가기 위하여 당신의 자녀들이 모였사옵니다. 저희들이 누구를 위하여 여기에 왔으며, 무엇을 위하여 이곳에 모였는 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 그것은 저희들이 새로운 개인을 찾기 위함이요, 새로운 가정을 찾기 위함이요, 새로운 종족을 찾기 위함이요, 새로운 민족을 찾기 위함이요, 새로운 나라를 찾기 위함이옵니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 새롭게 아버지를 모시기 위하여 모였사옵니다. 또, 새로운 효자 효녀의 모습이 되어 아버지의 기쁘신 성상을 모시고 싶은 일념으로 저희들은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아버지, 과거에는 저희들이 당신을 자유스럽게 모실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저희의 환경이 아버지의 아들딸의 권한을 드러낼 수 있는 자유스런 당신의 세계가 아니었고 당신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종족과 당신의 가정과 당신의 개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저희들은 그런 것을 무한히 소원했지만 전체를 다 잃어버린 슬픈 자들이었사옵니다. 이런 슬펐던 자신을 극복해야 할 싸움의 운명길이 탕감의 노정이요, 복귀의 노정인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은 개인을 희생시켜 새로운 가정을 찾고자 하셨사옵고, 그 가정을 희생시켜 새로운 종족을 찾고자 하셨사오며, 그 종족을 희생시켜 새로운 민족을, 그 민족을 희생시켜 새로운 국가를 찾고자 하셨사옵니다. 나아가 그 국가를 희생시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할 복귀의 한계점이 아직까지 저희 앞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오늘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어떠한 자리인가를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나라 없는 무리들, 민족권을 갖추지 못한 무리들, 가정을 갖지 못한 무리들, 자기 스스로를 망각한 무리들, 이와 같은 불쌍한 무리들이 아버지를 모시는 아들딸이라는 이 슬프고 원통한 사실을 저희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당신이 찾으시는 승리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이 몸을 극복하여 끌고 모든 것을 바치고 나갈 각오를 해야되겠습니다. 당신이 그렇게도 찾아 나오시던 승리의 한날을 저희들은 기필코 보고 죽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바라시던 승리의 나라를 저희들이 기필코 건국하고 가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그 나라를 세우는 승리의 민족임을 세계의 수많은 민족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민족이 되기를 바라고 나가야 되겠고, 저희들이 그런 민족을 창건할 수 있는 하나의 종족의 모습을 대신할 수 있는 거룩한 무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소수의 무리로써 전체의 가치를 대신하려는 아버지의 뜻 앞에 있어서는 수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사옵고, 연단과 시련과 수난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역사과정의 실상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이 길을 정당하게 걸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 아침에 저희들에게 분부하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의 마음은 초조해야 되겠고, 몸은 한 곳을 향하여 바삐 뛰어야 되겠습니다. 스스로 각오하고 가고 또 가야 할 모습임을 깨닫고 내일의 먼 길을 향하여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가야 할 길을 가는 것만이 저희들의 책임이 아니라 개척자의 행로를 더듬어 가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이 서글픈 사정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 앞에 기쁨과 영광과 환성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싸움과 비탄의 곡절과 개척해야 할 미개지가 전개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응시하면서 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참아 온 과거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참아야 할 자신을 자랑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면 이 길을 극복할 수 없고, 용사로서 내일의 승리를 다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개인적으로는 승리했는 지 모르겠습니다. 가정적으로는 어떠한 승리의 기준을 가졌는 지 모르겠습니다. 또, 교회적으로는 승리적인 기반을 닦았을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저희들의 목적이 아니옵니다. 저희들은 나라를 구하고 남북을 통일하기 위해서 제물이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고, 제단을 갖추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불쌍한 이 한민족을 지켜 주시옵고, 사랑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들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남한과 북한을 갈라 놓으신 당신의 경륜하심 가운데는 역사적인 슬픔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저희의 선조들과 저희의 선배들이 책임진 사명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수십년 고난의 역사가 연장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요나가 회개하던 것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민족 전체를 아버지의 품에 품어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당신의 권한을 펼 수 있는 승리의 나라를 찾을 때까지 가야만 되겠사옵니다. 이 아침, 저희들이 오로지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를 위하는 마음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가고 또 저희의 후손들이 가더라도 그 나라와 아버지의 사랑만은 남겨 놓고 가야 되겠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천번 만번 망하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이 소원하시는 창조이상의 나라를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바라셨던 예수님이기에 저희에게 권고하시기를 “너희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친 그 나라를 남겨야 할 사명에 대한 불타는 소원과 애달픈 사정을 통고하시던 그 사정을 대신할 수 있는 효자 효녀의 충절과 절개를 가질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그 나라를 주관하시고, 그 나라를 사랑하시고, 그 나라에서 권한을 펴시는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날을 바라며 나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지금 그런 환경은 갖지 못할지라도 앞으로 다가올 시련을 넘고 마음의 세계에서는 아버지를 모시고 그 나라를 숭상하여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생활무대에서 개척자의 사명을 더디하는 무리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이 시간 다시 한 번 각오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까지 저희들은 연약한 무리였사옵니다. 연약한 무리일지라도 손에 손을 잡고 몸과 몸을 합하여, 마음과 마음을 합하고, 심정과 심정을 가다듬어 당신이 운행하실 수 있는 하나의 공고한 터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희는 천리 만리까지 날릴 수 있는 하나의 유도탄 기지와 같은 모습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연약한 모습들을 동정의 마음으로 품어 키우시옵소서. 당신이 소원하시는 목적 앞에 가담할 수 있는 가치적인 내용을 저희에게 부여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는 세계 40개 국에 널려 있는 120개 성지의 중앙 성지이옵니다. 이 자리에 모여 당신 앞에 정성들이는 자녀들 위에 영계의 숱한 소원의 인연이 깃들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수많은 나라의 인연을 여기에 종합시키시어 그 나라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하나의 제단으로 갖추시옵고,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기도 하옵니다. 이 아침, 남한 각지에서 이곳을 흠모하면서 스승을 바라보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기도하는 무리들이 있거들랑, 아버지, 천배, 만배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더우기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번 10월 이곳에 와서 새로운 약속의 인연을 갖고 가정을 이루어 나갔사오니,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새로운 가정을 이룬 그들에게 새로운 종족을 편성하여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그 가정들이 개인적인 모든 욕망과 사심을 넘어서서 일편단심으로 당신의 뜻을 세우고 당신의 나라를 추구하게 하시어 거룩한 가정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들이 갈 길을 당신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부터 전국적으로 널려 있는 당신의 딸들이 모여서 수련을 받게 되겠사오니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이 같이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이 1972년까지 이 민족의 운명을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이런 책임을 지고 나서야 할 당신의 딸들이오니, 아버지, 그들이 가는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에덴동산에서 실수하였던 여성의 근본 뿌리를 뽑기 위해 국가의 한을 책임지고 나서는 연약한 이들의 갈 길을 지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기간 저희들 각자가 이 길을 수행하는 가운데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불붙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자기 남편을 잊어버리고, 오직 나라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만을 붙들고 사는 무리는 결코 망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이 길을 가야 되겠사옵니다.

금년 12월 1일부터 출발하고자 하는 모든 계획 위에 당신께서 함께하시옵소서. 이는 어떤 개인의 욕망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요, 저희가 땅 위에서 해야 할 책임이 남아 있기 때문이옵니다. 천번 만번 죽더라도 이 책임을 감당해 내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희들은 이 길이 어렵고 슬픈 고개일 지라도, 혹은 수많은 사람에게 조롱을 받더라도 가고 또 가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바라시는 승리의 그날을 위하여 보잘 것 없는 저희들을 이끌고 가누어 나가시는 당신의 서글픈 모습을 바라볼 적마다 저희들은 한없는 외로움과 한없는 분함과 한없는 억울함을 품고 그런 아버지를 해방시켜 드리고 자유스런 환경 가운데서 있는 정성과 효성의 도리를 다하고 난 뒤에 죽고 싶다는 간곡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마음이 이들로 하여금 생활을 극복하게 하여 주시고, 또한 그러한 마음이 이들의 어려운 십자가의 길을 가려 나가는 데 있어서 방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금년도 11월 초하루를 맞이하면서 60일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 해의 벽두에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엄청난 과제를 내세워 출발하였는 데, 이것이 세계로 연결되었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시발점을 가지게 된 것을 아버지께 감사드리옵니다. 이제 한국을 세워 일본과 중국을 연결시키고 인도를 비롯한 전 동남아시아를 연결시켜 아시아 전체를 중심삼은 새로운 진영을 이루어, 공산세계의 마수 앞에 하나의 방파제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엄숙한 사명을 저희들이 책임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이렇게 나가는 데는 나라를 믿고 가는 것이 아니요, 어떤 개인을 믿고 가는 것도 아니옵니다. 당신만을 믿고 외로운 발걸음을 옮기겠사옵니다. 오늘도 그와 같은 길을 가야되겠고, 이 해에도 그런 길을 가야 되겠고, 다음 해에도 그런 길을 가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여생을 다 바쳐서라도 이 책임을 감당하여 아시아에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고, 세계에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당신이 소원하시는 천국을 향하여 직행하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닻을 내리고 안식하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드리고 나서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날을 맞은 후에야 기뻐하시는 당신과 더불어 기뻐하고, 당신과 더불어 살고, 당신과 더불어 안식하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희들이 당신을 편안한 자리에 모시지 않고는 쉴 수 없는 자녀가 되어, 그 도리를 다하고 백성의 도리를 다하는 거룩한 무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책임을 다 하는 무리는 결코 망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 무리들은 망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가 오늘 이 자리까지 나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갔습니다. 아버지, 여기 있는 이들을 기억하시옵소서. 최후로 남아진이 길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지 못하고, 승리의 한 결과를 얻지 못한 모든 사람들도,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모든 이들로 하여금 이날을 찾고, 이 세계를 찾게 하시어서 최후의 영광길에서 아버지의 권한을 드러낼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장래에 올 수난의 길을 넘으려면 오늘의 수난을 감수해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그것이 미래에 있을 큰 수난의 길을 탕감시키는 제물의 과정임을 알고 달갑게 받고 나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해의 남은 두 달 기간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금년에 저희들이 해야 할 일들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사오니, 모든 일에 유종의 미를 거두고 영광의 한날을 준비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5-321
말 씀
오늘은 11월 1일입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에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기필코 선한 개인을 갖추어 선한 민족과 가정을 이루고, 선한 종족을 이루고, 선한 국가를 형성해야 할 천명을 받은 밀사들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35-321
참의 결과를 남기려면
참된 선을 남긴다는 것을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선을 추구해 나왔고 선의 나라를 추구해 나왔지만, 아직까지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들에게 역사적인 유업으로 남겨진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을 알고, 역사과정을 알고, 현시대에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가를 알고, 미래의 세계가 어떻게 종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이 선의 목적을 기필코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참은 우연히 생겨나지 않습니다. 참은 반드시 동기가 있고 과정을 거쳐야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참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 참의 동기는 누가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이든가, 사람이든가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외에는 참의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제3의 어떤 조건이 참의 동기가 되어 우리와 결부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참된 자리에서 지도하면서 이끌고 가든가, 우리 인간이 참된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시든가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가 바라는 참된 개인이나 참된 가정, 참된 민족, 참된 국가는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상에 왔다 간 수많은 위인들이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해 싸웠고 그것을 위해 생애를 바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참된 사람이 되고자 한 것은 참된 자기 개체만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참된 자기와 관계를 맺어 참된 민족, 참된 국가를 넘어서 세계 인류가 참된 백성이 되고 참된 세계가 되는 그날을 바라며 그와 같은 수난의 길과 개척자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참은 반드시 동기를 갖고 과정을 거쳐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참의 동기는 하나님이 되어 나오셨습니다. 동기를 이어받아 과정을 거쳐 결과를 맺기까지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동기는 될 수 있지만 과정을 거쳐 결과를 맺는 데 있어서는 직접 선두에 서서 이끌어 나가시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과정상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느냐? 사람이 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왔던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참을 추구하고 선을 위해 싸우고 간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 수난의 길이었습니다. 왜 그랬느냐? 그들이 참을 유지해서 그 시대와 생활 환경에 연결시키고 또 그 참을 남겨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생활 터전과 환경이 참을 흡수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상충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이 가는 길에 있어서 주위 환경이 참을 환영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지 않아서 순행하지 못하고 반드시 투쟁과정을 거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죄악된 세상입니다. 또 타락을 전제로 한 인류의 역사는 악이 주관하는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이 모든 권한의 틀거리를 잡고 있는 환경 속에서 선이 번식하려면 탕감의 노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선의 터전을 넓혀 나가야 되느냐? 개인에서부터 넓혀 나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개인적인 투쟁을 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기의 기원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선의 동기를 언제나 부여해 나오고 계십니다. ‘너희들은 새로운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된다. 새로운 시대의 선한 백성이 되어야 된다’고 하면서 언제나 동기가 되는 내용을 중심삼고 시대마다 위인이나 성현 혹은 도인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선의 동기를 우리에게 보급시키려고 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계속하시기를 역사가 끝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동기가 되는 인연을 붙들고 한 세기 이내를 살다가 가는 인간의 배후를 더듬어 섭리해 나오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인연을 갖추지 않고 연결되어 나오는 것 같지만, 그 배후의 동기는 하나님과 인연맺으면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선진권을 중심삼고 이스라엘권을 펴 놓은 것이 현재의 기독교 문화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동기적인 내용과 과정적인 우리 인간과 결과적인 목적이 일체화될 수 있는 때가 바로 우리가 바라는 소망의 때요, 인류역사의 종말시대인 것입니다. 그런 때는 반드시 와야 됩니다.

그 동기와 과정과 결과가 압축되어 그 동기가 결과로서 나타나며, 그 과정이 동기와 연결되고 또 결과와 연결되어 하나됨으로써 내 개체가 스스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가 소원하는 개체의 인격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소원하는 참된 개인의 인격을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을 향하여 줄달음쳐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5-323
선의 동기와 과정과 결과가 일치된 참사람이 나타나야
참을 중심삼고 동기와 과정과 결과가 여러분 개체에 열매맺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말세가 있기 전에 먼저 개인적인 말세가 있어야 됩니다. 즉, 악을 물리치고 선의 동기와 과정이 하나의 인간과 결부되어 하나의 선의 목적을 이 우주 앞에 들고 나설 수 있는 참된 개인이 결정될 수 있는 한때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때를 바라보며 참된 중심, 즉 참다운 한 인간을 찾아나오셨습니다. 이것이 메시아 사상입니다.

외곽적으로 선의 동기와 과정과 결과가 일치된 참된 한 사람이 오늘날 이 천지에 나타나야 하는 데, 그는 역사적인 인연을 완전히 상속받은 사람이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동기가 된 모든 내용을 상속받고, 역사과정에서 참을 추구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내용을 지닌 사람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체를 총합할 수 있는 하나의 과정적 결합체요, 종합적인 실체의 인간으로서 결과까지 연결시킬 책임을 짊어지고 인류를 대표해서 남자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이 메시아를 중심삼고 기반을 닦아 가지고 거기에 하나의 여성을 찾아 세워 가지고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은 하늘과 땅이 공인할 수 있는 참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은 일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의 숱한 수고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류도 하늘의 섭리에 협조하는 과정에서 많은 수난의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찾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찾아진 가정이 지닌 가치적 내용은 과거의 역사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요, 지금까지 탕감의 인연을 거치면서 복귀시키기 위해서 소모시켜 나온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 일 수 없습니다. 또한 이 타락한 세계에서 탕감의 슬픔을 세계적으로 가려 가야 할 경계선에서 찾아진 결과 자체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가치적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동기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언제나 찬양의 대상과 기쁨의 대상으로서 떠오를 수 있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역사과정에서 하나의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전체의 중심으로서 찬양받을 수 있는 가치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 가지의 가치를 종합하여 대신하고도 남을 수 있는 가치적인 내용을 갖춘 중심 존재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종적인 입장을 대신하여 새로운 횡적인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횡적 세계의 중심이 되어서 새로운 횡적 세계에는 투쟁이 없는 과정을 거쳐 모순과 상충이 없는 하나의 새로운 결과를 가져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원과 인류 전체의 소원과 역사적인 전체의 소원이 결합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5-324
하나님의 사랑은 동기와 과정과 결과의 중심
그러면 이러한 자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될 것이냐? 물론 하나의 개인으로부터 시작될 것이요, 하나의 장소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작하는 그 내용은 무엇을 중심삼을 것이냐? 참된 동기의 기원을 움직일 수 있는 그 중심이 무엇이고, 역사적 과정에 있어서 남겨진 참된 인연을 상속시킬 수 있는 요인이 무엇이며, 참된 역사적 결과를 다짐할 수 있는 중심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고는 참된 동기도 설정할 수 없는 것이요, 참된 과정도 계승받을 수 없는 것이며, 참된 결과도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결국 남아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날 인간들이 말하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전체를 포괄하고도 남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전체 생명의 동기가 되고, 우리 인생에 있어 행복의 요인도 되고, 그 목적 성사의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중심삼고 서 있는 참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찾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일시에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동기를 올바르게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흠모하는 동기를 가져야 되고, 그 생활과정이 하나님의 사랑에 흡수될 수 있는 것이어야 됩니다. 그 생활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흠모하는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도 자기 개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가 바라볼 수 있고, 전체의 생명의 요인이 되며, 전체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사랑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모든 동기의 중심이요, 과정의 중심이요, 결과의 중심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동기가 되고, 과정이 되고, 결과가 되어야만 참이 되는 것입니다.

애국자도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선조로부터 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부모로부터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을 뼛골 깊이 사무치게 받은 인연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서 생애의 지침을 가려 가지고 목적을 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애국자라도 자기 스스로가 동기가 되어서 애국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자기의 선조로부터 교육을 받든가 혹은 양심의 깊은 곳에서 어떠한 충격적인 감동을 받은 것이 동기가 되어서, 생애노정 전체가 그 동기로 말미암은 결과를 찾아 나가게 될 때 애국자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내심적인 요인을 살펴보게 될 때 모든 것에는 반드시 동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동기가 수천년 전부터 내려온 민족 정기와 연결되는 것이면 역사적인 동기를 상속받은 실체가 될 수 있는 것이요, 그 시대에 남아 있는 민족 정기와 일치되는 것이면 그 민족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과거의 민족 정기와 현시대의 민족 정기를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선 사람이 있으면 미래에는 틀림없이 그를 중심삼고 국가가 새로이 수습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들은 역사를 미루어 보아 알 수 있습니다.

35-326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교회로 등장해야
이것을 볼 때, 우리가 추구하는 참은 단시일에 찾아 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 교회가 문선생 하나 개체로부터 출발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적 인연이 길고 길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타락 이전 하나님께서 창조이상을 꿈꾸던 그 시대에서부터 출발하여 지금까지 흘러나온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인연이 이처럼 수천년, 수만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오랜 역사과정을 통해서 찾아나온 것은 무엇이냐? 하나의 참된 승리적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승리적 교회를 찾아 나왔습니다. 이렇게 바라 나온 우리 교회의 역사적 기원은 멀고 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급해 올라가면 하나님의 내심적 심정의 중심권까지 파급되어 올라가게 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 중심으로부터 흘러나온 동기를 중심삼고 수많은 성지선열들이 도의 길을 유지하기 위해서 죽음길을 마다 않고 싸워 나오면서 치열한 투쟁의 과정에도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지녀 나온 역사적인 서글픔과, 역사적인 흠의 그 모든 사연이 교회의 역사에는 서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가 오늘날 시대적 환경에 등장하게 되었을 때, 그 자체가 역사적 동기에서 떨어져 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 시대의 모든 내용과 처참상 앞에 밀려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커가면 커갈수록, 출발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동기가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반비례적으로 명확해져야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 교회는 소수의 무리로써 출발했고, 한민족이라는 제한된 한계권내에서 출발했지만, 여기에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적인 새로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역사적인 교회로 등장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나타난 어떠한 교회들에게도 밀려나서는 안 됩니다. 또, 어떤 시대의 주의나 사상 앞에 밀려나서도 안 됩니다. 이것을 전부 포괄하여 새로운 기원을 마련하고 새로운 인연을 발발시킬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만 사악한 이 땅 위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선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가운데 나타난 수많은 역사적 공신들이 남긴 업적을 부활시켜 우리 자체내에서 수습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보아도 수많은 애국자들이 있습니다. 이 나라를 남기기 위해서 배후에서 희생한 무리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남기고자 했던 선의 동기나 민족을 형성하고자 했던 선의 욕망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전체를 수습하고도 남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선조들을 대하기에 부끄럽지 않고 전체를 대신하여 장담하고 나설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우리들 자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문제는 그런 실력을 어떻게 발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의 기원으로부터 전체를 총합한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자체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를 언제나 생각해야 됩니다.

35-327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수많은 스승들의 훌륭한 교훈을 전부 다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유치원에서부터 국민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나와 학박사가 되어서라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자들의 모든 지식을 전부 다 자기의 것으로 흡수하여 그 종합적인 가치를 스스로의 생명의 요소로 삼아 여기에 색다른 하나의 새로운 선의 실체로서 등장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 있는 것이요, 세계적인 사상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선의 결실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는 작용을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선을 위하고 선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 일생을 허덕이다가 찾지 못하고 자기 생애를 바쳤다면, 그것으로 선이 충당될 것이냐 할 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선을 위해서 노력한 것이 진실되었다면 비록 그의 생애노정에서 목적한 결과를 보지 못했을지라도 그의 노정은 과정에 과정이 연장되어 선이 목적하는 결과의 시대에 연결시키는 하나의 교량 역할이라도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선의 실체를 이루지 못하면 선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교량 역할이라도 할 수 있는 실력이라도 갖추고 그것을 위해 자기 생애를 바치겠다는 사상과 신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까지 기독교가 수천년의 역사과정에서 희생과 부정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승리의 한날을 찾기 위해 참고 또 참으면서 교량 역할로써 희생해 나온 수많은 선지자들의 공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전부 총합 계승되어 하나의 선의 목적세계로 연결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수천 역사과정에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희생하여 온 것을 오늘날 내 일신에서 총합해 가지고 그 총체적인 가치를 어떻게 표현시키느냐 하는 것이 오늘날 섭리역사를 책임진 우리들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5-328
선민의 사명
여기에서 문제는 역사과정에 나타났던 개인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개인, 가정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개인, 혹은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은 개인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어서 수많은 가정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가정이 되고, 수많은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 앞에 부끄럽지 않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종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종족이 수많은 종족 앞에 부끄럽지 않은 종족이 되고 수많은 민족, 국가, 세계 앞에 부끄럽지 않은 종족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종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바라보게 될 때 그 민족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던 민족이라고 찬양할 수 있는 민족, 수많은 나라들이 이런 민족을 바라 나왔다고 하며 찬양할 수 있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선민사상은 이런 이유에서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택한 것은 어떤 특정한 개인의 승리를 표방하기 위해서 택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승리는 물론이요,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적인 승리를 거두어서 그 승리를 중심삼고 역사과정의 수많은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보게 될 때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승리적인 개인, 승리적인 가정, 승리적인 종족, 승리적인 민족, 승리적인 국가를 표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선민권을 가진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이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느때에 이 선민의 가치를 드러내느냐 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역사적 동기의 중심이 되고, 과정의 중심이 되고, 결과의 중심이 되는 메시아 한 분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체가 되느냐, 못 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그 나라를 형성한 목적을 달성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민족이 이것을 못 해 가지고 역사노정에서 거듭되는 숱한 탕감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이스라엘이 제2이스라엘로, 제2이스라엘이 제3이스라엘로 그 사상을 달리하면서 하나의 목적 기점을 향하여 발전해 나온 것이 복귀사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3이스라엘임을 표방하고 나가는 우리에게는 역사상 어떠한 국가보다도 세계의 어떠한 무리보다도 새로운 선민사상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향하는 참된 길은 유일한 길이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35-330
힘의 균형을 이루는 중심이 되라
그러면 우리 개체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는 역사과정의 수많은 개인들이 믿을 수 있는 소망의 실체로 서있느냐? 혹은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역사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가정들이 믿고 소망할 수 있는 실체적 가정이 되어 있느냐? 종족이면 종족으로서 수많은 종족들 앞에 소원의 종족이 되어 있으며, 민족과 국가도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바라보는 소원의 민족과 국가가 될 수 있겠느냐? 이것은 간단하지 않은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어야 하나의 초점이 될 수 있는 것이요, 역사적인 모든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중심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중심은 전체와 힘의 대결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는 중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끌려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철저한 개인, 철저한 가정, 철저한 종족, 철저한 민족, 철저한 국가를 이루어 세계 전체를 움직이고도 남을 수 있는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중심이야말로 하나님이 동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같이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 가지고는 중심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중심은 3시대를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동기와 과정과 결과의 3단계를 한 곳에 집약시킬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여기에 결부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펴 놓으면 세계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펴 놓으면 개인의 승리와 가정의 승리, 종족의 승리, 민족의 승리, 국가의 승리, 세계의 승리를 표방할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모든 것을 종적으로 집약시켜 놓게 되면 하나님의 뜻과 사랑이라는 이 기점 위에 종합되는 것입니다.

참된 인간이 되려면 뜻을 가져야 합니다. 뜻이 없는 사람은 참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또 뜻이 있다고 해도 동기와 과정과 결과가 달라서는 안 됩니다. 하나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종여일이니, 지성이면 감천이니, 고진감래니 하는 격언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나온 것은 참을 추구하는 과정이 결코 평탄하지 않다는 증거요, 시종여일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악한 이 세상 가운데 참이라는 중심을 세우기는 실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35-331
지성이면 감천이다
절대적인 참은 반드시 절대적인 과정을 거쳐야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찾으려면 고(苦)가 진(盡)해야 됩니다. 개인적인 고(苦), 가정적인 고(苦), 종족적인 고(苦), 민족적인 고(苦), 국가적인 고(苦), 세계적인 고(苦)가 진(盡)해야 세계적인 평화가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지성이면 감천이다’고 하는 데 지성(至誠)이라는 것이 쉬운 것이냐? 그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지성은 죽음을 각오하고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 지성의 한계가 어느 정도이냐? 지성 중의 최고의 지성이 무엇이냐? 자기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지성을 들인다면 자기 개인의 뜻은 이룰는지 모르지만, 그 지성으로 인해서 세계의 뜻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 정성들이는 것이 지성의 한계냐? 그것은 나라를 위한 지성은 될 수 있을는 지 모르지만 그 이상은 될 수 없습니다. 지성의 한계점이 되는 것은 세계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지성을 들여야 됩니다. 그러면 세계를 위해서 지성을 들이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는 어떤 목적이 있느냐? 개인 구원의 뜻도 있겠지만, 세계를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세계를 위해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에 성현들은 반드시 하나님을 숭상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숭상치 않았던 성현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현의 반열에 동참한 사람은 종교의 도주들인데, 그들은 반드시 하늘의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즉, 천도를 중심삼고 천정(天情)을 인륜화(人倫化)해서 인도(人道)와 인정(人情)의 도리를 세계적으로 목표로 삼고 인류에게 가르쳤던 분들이 성현입니다. 그러니 성현들은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세계주의자들인 것입니다.

지성(至誠) 중의 최고의 지성은 무엇이냐? 지금까지 자기의 아들딸을 위해 생애를 바쳐 정성들인 부모들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나라와 세계를 위해 정성들인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 정성을 들이고 희생하는 무리가 있어야 되는 데, 그러한 무리가 어떤 무리냐? 바로 종교를 숭상하는 무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나긴 역사 과정에 있어서 민족은 망하는 일이 있었지만 종교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의 목적은 기필코 성사되어질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무리가 이 땅 위에 있어야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런 무리들의 편이 되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하나님을 통하여 기필코 세계적인 주권을 가지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환경을 이루어 놓아야 합니다. 그런 날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는 중심된 종교가 있다면, 끝날에는 그 종교를 중심삼고 세계가 그 권내에 포괄되어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현세의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은 민주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은 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이제까지 말한 것을 하나로 집약하자면 하나님의 사랑과 뜻에 대한 것이 됩니다. 그 사랑과 그 뜻을 중심삼고 정성들이며 사는 사람은 개인을 위해 살고 있지만, 세계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요, 그 뜻과 그 사랑을 중심삼고 사는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은 그 가정을 위해서 살지만 세계를 위해서 사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러한 종족, 민족, 국가가 있다면 그들 또한 세계를 위해 사는 종족, 민족, 국가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천만 민족이면 삼천만 민족 전부가 사상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그 뜻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면 이 민족은 틀림없이 그 뜻과 더불어 사는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몽땅 들게 되면 여러분이 떨어지지 않고 생명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일체화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있느냐? 뜻을 사랑하고 뜻과 더불어 생명의 동기를 맺고 있고, 과정적 생활을 하고 있고, 결과적 생애까지 마무리지을 수 있는 여러분의 입장이 되어 있느냐 할 때, 그렇다고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뜻이 참이요 하나님의 사랑이 참일진대 여러분은 참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 한때를 중심삼고 반드시 우리를 시험할 것입니다. 나 개인이 뜻을 얼마나 사랑하고, 나 자신이 뜻을 얼마나 위하는 데 있어 인류를 위하여 얼마나 십자가를 질 것이냐,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내 몸을 얼마나 희생할 수 있겠느냐 하는 시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러면 됐다는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35-333
고진감래(苦盡甘來)
이러한 공인을 받기 위해서는 고(苦)와 대결해야 합니다. 고(苦)가 진(盡)해 가는 과정에서 그 고(苦)를 극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고가 진한 뒤에 감(甘)을 인계받을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가정이 그러려면 가정적으로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이요, 종족이 그러려면 종족이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이요, 민족이 그러려면 민족이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이요, 국가가 그러려면 국가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수난의 민족사를 짊어지고 있고 격동하는 세계의 풍파를 홀로 지는 주체적인 입장에 있지만, 나는 이것을 서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극복하여야 할 수난의 과정이라면 그러한 천지 운세가 우리 앞에 다가오거든 그 환경은 우리가 갈 길 앞에, 민족과 국가가 갈길 앞에 정성을 다할 수 있는 기회요, 하나의 정상을 향하여 달리는 길에 있어서 가까운 거리가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민족이 잘살지 못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도리어 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참을 추구하는 마음이 강한 사람은 반드시 부정적인 과정을 거쳐 그 경계선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스럽지 못한 환경에 처해 있고 모든 것이 남보다 못한 불쌍한 입장에 처해 있다고 해서 외로와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희망을 가지고 그 부정적인 환경을 밟고 넘어서게 될 때는 새로운 천지를 향하여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길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국가적인 시련기를 맞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민족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삼천만 민족이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시련 도상에 서서 이 민족을 대신하여 책임지고 선도하면서 이 민족의 갈 길을 개척하는 개척자의 사명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 민족은 그 길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것입니다. 1970년부터 1972년까지의 세계 사조를 바라보면서 우리에게는 그것을 해야 할 중차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은 하루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역사적인 과정을 거치고, 시대적인 모든 것을 총합해 가지고 끝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산을 보더라도 높은 사는 그 산맥이 길게 뻗어 있습니다. 어디서 시작되었는 지도 모를 정도로 아주 먼 곳에서부터 그 산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그것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제주도를 가 보세요. 마치 제주도 섬 전체가 한라산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평지까지도 전부 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에 속해 있는 모든 것은 그 하나의 산을 표준으로 하여 닮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각도는 어디 가든지 맞아떨어지게 되며 그것은 그 산에 속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정상이라고 하는 하나의 표준을 향해 나가는 데있어서 각자가 서로 먼 거리에 있다 하더라도 정상과 각도가 들어맞을 수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이라는 것은 일시에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오면서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별의별 수모를 다 당하고 별의별 환경에 몰려서 반대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변명할 새가 없다 이겁니다. 그것보다도 우리의 갈 길이 더 바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과정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정상을 향하여 지금 언덕길을 달려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1972년도까지가 세계적 사조를 중심삼고 민족적인 한의 고비를 넘어가야 할 역사적인 기간입니다. 축복가정이 출발한지 만 12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민족적인 한을 지고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1972년도까지 가정적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책임노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야 합니다.

35-335
미래를 위해 사는 삶과 나라와 세계를 위하는 삶
이 기간에 우리는 세계의 모든 외적인 정세와 일치화해서 뒤넘이치는 역사적 과정을 마련해야 됩니다. 이것이 원리적인 관점에서 보여진 결과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새로이 결심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개인을 존중시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다가는 민족의 역적이 되어 쓰러지기 쉽고, 세계의 배반자가 되어 쓰러지기 쉬운 것입니다. 또, 자신의 가정을 중심삼고 안락을 꿈꿔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민족과 세계 앞에, 혹은 천륜 앞에 배반되게 될 때는 하나님의 원수요, 세계의 원수요, 민족의 원수가 될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그러지 말자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선의 행로를 개척해야 할 개척자입니다. 이러한 개척자로서 내디딘 발걸음이 거룩하기 때문에 그 과정도 거룩해야 되겠고 그 결과도 거룩해야 되겠습니다. 최후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의 씨가 되어 거기에서 하나의 새싹이 돋아날 때는 산등성이 바위틈에 선 나무가 아니라 옥토에서 자라난 나무가 되어 가지고, 자기가 소망하였던 결실을 자기 일대에서 거두지 못하면 후손을 통하여서라도 거두겠다는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미래의 승리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자 하는 무리는 무서운 무리입니다. 만약 그러한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이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그 민족은 미래의 21세기, 혹은 30세기, 50세기에는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낙심할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 필요한 사상을 지니고 수많은 민족 앞에 추앙받을 수 있는 역사적 전통을 지닌 사람이 몇 대(代)의 사람만 있다면 그 사람들을 통하여 민족은 다시 건설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엄숙한 소망을 품고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의 승리보다 미래의 승리를 소망하고 나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사람들이 참을 상속받을 수 있는 생활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운명길에 서게 되었을 때, 미래의 천국과 미래의 행복된 세계를 상상하면서 그것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죽음길을 가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볼 때는 어리석은 사람이었고, 그 시대의 환경으로 볼 때는 민족의 반역자였으며, 기적을 바랐던 시대의 광란자로서 놀림을 받으며 서글프게 사라져 간 불쌍한 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품었던 뜻은 세상의 그 누구도 품지 못한 뜻이었기 때문에 그 뜻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움직여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자신을 위한 생활을 한다면 끝이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과 나라와 세계를 위한 생활을 한다면 끝이 멀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의 생활 표준도 그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러한 신념으로 생애를 바쳐 오늘 이 지점까지 나오게 된 것도 하나님이 협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나서 이렇게 되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협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이 협조해 주셨습니다. 어려운 고빗길에서나 외로운 길목에서 언제나 권고해 주신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오늘날 이 길에 남아져서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을 중심삼고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을 알고 그러한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길을 가는 과정을 연결시켜 목적지까지 나가는 데 있어서 여러분의 모습이 어떨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동기는 엄청난 것이요 심각한 것입니다. 동기는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마치 여러분이 잠을 잘 때도 여러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쉴 새 없이 운동하는 심장과 같이 동기는 쉴 새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밤과 낮이 없으십니다. 밤과 낮을 분별하여 당신의 일을 가려서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언제나 쉴래야 쉴 수 없는 동기적 입장이요, 주체적 입장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 시작된 것을 인계받아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에 있어서 후손들 앞에 비판받는 선조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 환경적으로 후손들 앞에 참소받는 비굴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길을 몰랐으면 모르지만 가야 할 대로(大路)를 알고 또 그 길을 어떻게 닦아 나가야 한다는 방향을 알았으면 거기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부딪쳐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이 길을 닦는 사람의 책임이 아니겠어요? 또 그 길이 이미 닦아져 있다면 그 길을 바로 가야 됩니다. 그 길은 벌써 닦아져 있습니다. 닦여진 그 길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도 이 길을 못 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35-337
참의 완성
이제 우리는 이런 가운데서 11월 초하루를 맞이하여 새로운 각오를 하고이 민족과 세계를 위해 정성들이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등에 지고 고(苦)가 진(盡)하여 뼛골이 녹아나는 자리까지 책임완수를 위하여 극복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나무를 접붙였을 때 접목은 자기의 생명 요소가 진(盡)하는 경계선을 거쳐서 새로운 진액을 인계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국가면 국가도 새로운 이상을 중심삼고 접붙여야 할 운명에 있고, 여러분 개인들도 그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경계선을 넘어야 합니다. 즉, 자기 부정의 과정을 거치는 데에서부터 새로운 출발이 기원이 모색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엮어온 전통적인 실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엄청난 과제를 제시해 놓고 그것을 중심삼고 1970년도를 싸워 나왔습니다. 그 동안 아시아 승공대회라든가, 일본에서 열렸던 와클대회(WACL:세계반공대회)라든가, 777쌍 국제합동결혼식이라든가, 여러가지 국제적 행사를 많이 했습니다. 또 이번 11월에도 행사가 있고, 가중된 행사를 치러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 1970년대의 모든 계획에 대한 기반을 이 1970년도에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해에 해야 할 책임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여의도에 세계 선교본부를 건립하는 데 필요한 기금을 마련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마치 달려가는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내년 2월 말까지 4억 원 이상의 기금을 맨손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이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창조할 수 있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렇게 해 나온 것은 돈이 많아서 한 것이 아닙니다. 없는 가운데서도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협조하시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상대적 입장에 있는 여러분 자신들이 책임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체가 되어 나가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도 남는 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된 사람이 되어서 참된 나라를 이룩하고 참된 세계를 만들어 거기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참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역사가 깁니다. 간단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백년 동안을 참아서 참을 계승한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수천년의 역사를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참을 상속받기 위해 수천년 수난의 길을 참고 나가는 무리가 있다면 수만년 역사를 상속받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를 통해서 이 민족 앞에 인연지어 가지고, 우리가 선두에 서기를 바라는 뜻 앞에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뒤로 돌아갈 것이냐, 앞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옆으로 갈것이냐? 길은 많습니다. 여기에서 뒤로 돌아서면 반드시 함정에 빠질 것이요, 옆으로 가면 반드시 도적에게 침범받을 것입니다. 다른 곳으로 갈래야 갈 길이 없습니다. 갈 길이 있었다면 내가 벌써 갔을 것입니다. 다른 길이 있으면 누가 욕을 먹으면서 이 고생을 하겠습니까? 이 길이 아니면 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가다가도 막히는 거예요. 어차피 타고난 팔자예요. 통일의 팔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면 전부 다 팔자가 세게 생겼어요. 힘들어 못 가겠다고 하면 그 시시한 팔자를 누구한테 넘겨 주겠어요. 깨끗이 다 벗겨 버려야 합니다. 팔자의 껍데기를 다 벗겨 가지고 앙상한 뼈다귀만 남으면 다시 살을 빚어 만들어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것이 다 벗겨질 때까지는 남아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변치 않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35-339
예수님이 말한 그 나라와 그 의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여러분들은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개인을 중심삼고 가실 때는 개인이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야 되고, 가정을 중심삼고 가시게 되면 가정이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야 됩니다. 또 하나님이 종족을 붙들고 가시게 되면 종족적 사명을 해야 되는 우리 교회 여러분들이 모두 달려가야 됩니다. 이렇게 하여 민족이 하나님 앞에 들려진다면 이것은 세계적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수천 수만의 무리가 여러분의 목에 달려들어 목을 잡아 튼다면 여러분의 목이 부러질 것이냐, 아니면 위에서 당기는 힘이 세어서 달려 올라갈 것이냐? 달려 올라가면 당기는 힘도 세야 되고 목도 튼튼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빚진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절대 빚을 안 집니다. 그것만은 틀림없어요. 내가 여러분들을 위하면 위했지 빚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빚지는 지도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의 운명은 비참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빚지는 것을 절대 싫어합니다. 알면 알수록 빚을 갚아야 될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뜻을 알면 그 빚을 갚아야 됩니다. 다 같이 뜻을 위한다 할지라도 뿌리보다는 줄기가, 줄기보다는 가지가, 가지보다는 잎이 위하는 정도가 더 적은 것입니다.

참은 세계적인 것입니다.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것입니다. 또한 참은 역사적인 것입니다. 과거에도 필요했고 현재에도 필요하고 미래에도 필요한 것입니다. 참은 세계적이기 때문에 그 가치는 영원해야 됩니다.

그러면 무슨 뜻이 세계적이겠느냐? 생각해 보세요. 사람의 뜻이 세계적일 수 있습니까? 만일 그것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나의 뜻이라고 한다면, 나보다 잘났다는 사람이 있다면 ‘네 뜻이 그러냐? 내 뜻은 이렇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그 뜻은 어느 성인의 뜻도 아닙니다. 성인의 뜻도 서양 성인의 뜻과 동양 성인의 뜻이 다릅니다. 민족적 배경이나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전통적 인연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주장도 세계적인 뜻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종파적인 뜻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적인 뜻으로 받들 수 있는 뜻의 중심이 땅에 있겠어요? 땅에는 없습니다. 땅의 일은 의식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땅 위에 있는 사람의 뜻은 따르기를 싫어합니다. 사람은 보다 높은 절대자의 뜻을 따라가기를 바랍니다. 그런 세계적인 뜻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훌륭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마 6:31)”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그 나라는 무슨 나라입니까? 이스라엘 나라입니까? 그 나라는 예수님 자신이 원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입니다. 참의 중심되는 절대자가 원하는 나라입니다. 그럼 그 뜻은 무슨 뜻입니까?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한 뜻입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 뜻은 절대적인 뜻이요, 참된 뜻인데, 그것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하시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데 그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어떠한 자리에서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싶어하시겠어요? 친구의 자리에서 관계맺고 싶어하시겠어요?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관계맺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장 가까운 자리는 어떤 자리냐?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가 되는 자리입니다. 그 이상 가까운 자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멋져요? 사랑하라면 아버지와 아들딸의 자리에서 사랑해야지 그런 사랑을 하지 못하고서 어떻게 사랑을 했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 자리가 아니면 전부 다 가짜 사랑입니다.

사랑 중에서 제일 필요하고 제일 가치있는 사랑은 이런 입장에서 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부자(父子)이상의 관계는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과 부자의 사랑으로 맺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또 인간도 하나님으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양자의 자리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어요? 친구의 자리에서 사랑을 받고 싶어요? 아들의 자리, 아내의 자리에서 사랑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골수입니다. 신랑 되시는 예수님이니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니 하는 것이 그 관계를 밝혀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절대적인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면 그 아버지의 뜻이 곧 내 뜻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계적인 뜻입니다. 그 뜻은 대한민국만을 구하기 위한 뜻이 아닙니다. 천하를 구하기 위한 뜻이기에 그 뜻을 중심삼고 천하를 위해 충성하는 사람은 성인의 반열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35-341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되려면
세계를 사랑하는 뜻, 세계를 위하는 뜻,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세계를 사랑하고 위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인 것을 알고 여러분은 그 마음을 가지고 생활해 나가야 됩니다. 생활 전체를 그렇게 생각하고 생활하는 사람의 주의는 무슨 주의냐? 세계주의요, 천주주의입니다. 그런 사람은 말을 하더라도 그 말밖에 할 줄 모르고, 일을 하더라도 그 일밖에 할 줄 모릅니다. 그런 사람은 참된 사람입니다. 또, 그렇게 사는 가정은 참된 가정이요, 그렇게 사는 가정이 모여 이루어진 종족은 참된 종족입니다. 또 그것을 중심삼고 세계를 위해 사는 나라는 참된 나라이며,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세계는 참된 세계, 즉 천국인 것입니다.

참은 세계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또한 절대적인 것이며, 역사적인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종합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은 역사적인 열매요, 이 시대의 중심이요, 미래를 향한 출발이 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부모도 참부모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찾아진 인류의 부모입니다. 참된 가정이란 그 참부모의 뜻을 상속받은 가정입니다. 참된 종족 역시 참부모를 중심삼고 이루어진 종족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고 참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참된 사람은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죽더라도 세계는 남아져야 합니다.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뜻은 남아져야 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남아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죽더라도 그것들을 남겨 줘야 됩니다. 그것을 남기기 위해서 자기 생애를 희생하는 사람은 효자가 되는 것이요, 충신이 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루 효자, 하루 충신은 필요없습니다. 하루 효자는 아무리 악한 강도라도 될 수 있는 것이요, 하루 충신 역시 누구든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장 회개하면 될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태어날 때부터 효자, 충신으로 태어나서 효자와 충신으로 살다가 효자와 충신으로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효자를 바라겠어요? 여기에 이제 새로 들어온 사람은 뭘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과 선생님을 비교하게 되면 선생님이 여러분보다 하나님 앞에 더 효자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 이런 일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효자의 도리를 다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면 갈수록 부족함을 느낍니다. 효자의 도리, 충신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기에서 효자나 충신으로 끝입니다. 내가 효자인데, 내가 충신인데 왜 몰라주느냐고 항거하는 사람은 그 고개에서 후퇴하는 사람입니다. 가면 갈수록 효의 도리가 남아 있고, 가면 갈수록 충의 도리가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효를 다하는 것을 자기의 생활 철학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라야 하늘의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몇 해 동안이나 뜻을 위해 충성했나요? 뜻을 위해 가기는 다 갈 거야? 다 가겠어요? 어디 뜻을 위해 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손이야 잘 들지. 내려요. 여러분들은 몇 해 동안이나 뜻 앞에 충성하면서 갈 거예요? ‘몇 해 동안 가긴 뭐 몇 해 동안 가. 7년 동안만 가면 됐지!’ 그럽니까? 그러면서 ‘하나님, 나에게 복 주소’ 한다면 효자 될 수 있겠어요?

충신과 효자의 길에도 급수가 있고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길게 넓게 깊게 높게 생각하면서 가야 됩니다. 긴 가운데 나 하나를 늘여 놓으면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는 것이요, 넓은 가운데 나를 펼쳐 놓으면 나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 높은 곳까지 나를 세워 놓으면 나는 없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종국에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사는 곳에는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자식이 왜 부모의 품을 그리워 하느냐?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살아 주기 때문이요, 거기에는 평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35-343
천하가 요동해도 우리는 쉴 수 없다
대한민국이 흥할 수 있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주권자가 위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위정자들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의 길인 것을 알고 여러분은 이런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망하면 나에게 와서 항의하십시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오는 동안 세상 사람들은 다 나더러 망해 없어질 거라고 했지만 나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한국의 한 사나이로 태어났지만, 여기에서 명령만 내리면 외국에서도 춤추라면 춤도 추고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세계의 그 누구도 나를 못 따라옵니다. 왜 그러냐? 내가 사기성이 있고 수단이 좋아서, 사람들을 앞에서 조종하고 뒤에서 조종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말없이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자연히 끌린다는 것입니다. 하라고 했는 데 안 하면 자기들 마음이 괴롭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겁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전체 동원하라 할 때, 동원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사실은 나도 동원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양장으로 쭉 빼입고 얼굴에 분 바르고 매끈하게 차려 입기 좋아하는 이쁘장한 아가씨들이 지방에 나가 활동하게 되면 검게 그을리는데 그것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좋아하지 않는 얼굴을 보는 나도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동원하지 않게 되면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는 길로 가야되겠어요, 흥하는 길로 가야 되겠어요? 흥하는 길로 가려니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울며 겨자 먹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여러분이 망하는 길로 가서는 안 되겠어요.

시종여일(始終如一)이라는 말이 좋은 말입니까, 나쁜 말입니까? 「좋은 말입니다」 좋은 말인데 그러기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어렵습니다」 그러면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은 좋은 말입니까, 나쁜 말입니까? 「좋은 말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기가 쉬운 일입니까? 어려운 일입니까? 「어렵습니다」 얼마나 어려우냐? 죽기보다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하고 그걸 넘어선 사람은 그 죽음을 이긴 단맛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그걸 알고 출발했으니 시종여일해야 되겠습니다. 감옥에 가더라도, 대한민국 전체가 반대하고 세상 천하가 요동하더라도 우리는 쉴 수 없습니다. 반대한다고 꺽일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 무리는 세상 사람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뭐 누가 우리에게 뇌물을 쓰려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려면 담배를 사준다든가 점심을 사준다든가 해야 일을 제대로 해준다는 것입니다. 우리 공장에서도 보면 사회 사람들이 와서 우리들도 그런 줄 알고 와 가지고 일을 부탁하고 거래하면서 점심이나 하라고 돈을 주면 우리 교회 사람들은 ‘이거 뭐요?’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같지 않고 인사를 모른다는 거예요. 뇌물이 우리 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는 삶아 놓은 밤같이 어리숙해서 마음대로 집어먹을 수 있을 것 같이 보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잘못 먹었다가 설사가 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겁니다. (웃음) 이게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요즈음도 보면 우리 교회에 대해서 뭐가 어떻고 어떻고 소문이 분분하더구만. 그렇다고 여기에 동요될 것 없습니다. 소문이 나려면 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 길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니까 신문기자들이 통일교회는 언론계를 다룰 줄 모른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것을 몰라도 좋다는 겁니다. 그걸 상관하는 것보다 갈 길이 더 바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는 관여하지 말고 우리의 목적 달성을 위해 노력하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어요? 「예」

이제 또 우리가 걷어붙이고 달려가 보자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열 대 여섯살 된 소녀들도 혼자 전도 나가서 일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주머니들을 중심으로 전도를 내보낼 것입니다. 한 팀에 한 열 명씩 편성해서 온 동네를 설치며 전도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도 발전입니다. 앞으로는 그 열 명의 전도대원이 백 명으로 늘어나서 그들이 한 부락에 가서 전도하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 안 믿으려면 죽든가 다른 데로 이사가든가 해야 할 겁니다. (웃음)

만일 한국 사람들이 전도해서 안 믿으면 서양 사람들이 와서 할 것이고, 일본 사람들이 와서 할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그 꼴이 보기 싫거든 통일교회를 믿든가 도망을 가든가 죽든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이 그렇게 벌어지게 되는 거예요.

지금의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단합하게 되면 반석도 뚫을 수 있습니다. 다이너마이트 심지에 불을 붙여 놓으면 그것이 부지직부지직 하면서 타 들어갈 때는 별것 아닌 것 같고 헛불같이 보이지만 뇌관에 불이 붙어 폭발될 때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강하냐, 네가 강하냐, 그때는 태산도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각오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35-345
참은 영원한 것, 이 뜻은 만민이 추구해야 할 뜻
오늘 11월 초하루! 기분 좋은 날이구만. 이제 70년도도 한 60일 남았는데, 70년도에는 우리가 70년대에 필요한 전 기반을 닦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의도에 만 평 정도의 땅을 사려고 합니다. 한 사람이 한 평씩만 사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사는 땅이 여의도에서 제일 클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우리가 돈도 악착같이 벌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통일교회 사람들 전부 빌딩을 지어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노력하면 될 게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이 1세기 동안 노력할 것을 우리들은 1세기 동안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게 되면 그들보다 두 배는 잘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공장은 밤에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피곤하겠지만 한번 해보자 이겁니다. 우리가 잘살게 되면 나라도 살리고 세계 인류도 살리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참은 영원한 것이며, 참의 뜻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이 뜻은 만민이 추구해야 할 뜻입니다. 이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살아야만 참이 성립된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이것을 생활 철학으로 삼고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래도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망했어요? 나는 맨손으로 시작했습니다. 수억 원이 들어가는 일을 한다 해도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할 수 없으면 세계를 움직여서라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쫓기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세계적 기반을 닦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단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원칙을 바로 알고 실행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 원칙대로 하면 틀림없이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이 원칙대로 움직여 주기를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이제 축복가정 아주머니들은 수택리 수련소에서 수련을 받고 12월 초하루부터 나가야 됩니다. 알고 있지요? 한 1, 200명을 내보내 가지고 선생님이 그 활동을 살펴볼 거예요. 활동을 안 하게 되면 선생님이 기합을 주더라도 항의할 사람이 없을 거예요. 선생님은 이미 그 이상의 일을 하고서 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하는 사람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고 이 나라 이 민족을 향하여 힘차게 나가야 되겠습니다. 전진해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그렇게 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35-347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높고 귀하신 당신의 뜻 앞에 저희들은 역사적인 빚을 짊어진 후손이기 때문에 이 빚을 갚고 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시대적인 죄악을 탕감해야 할 제사장의 책임을 지고 흰옷에 핏자국을 남기면서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아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으로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내일의 소망 앞에 변함없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참된 사람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참된 가정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참된 교회, 참된 나라가 되어야겠사옵니다. 참된 세계를 이루어야겠사옵니다. 이것을 이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는 모든 것이 참에 대치되는 사악한 환경으로 둘러싸여 있사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참의 정열을 가지고 깨끗하고 힘 있는 그 모습을 변함없이 드러낼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지켜 주시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부터 계획하는 모든 뜻은 당신이 높이심을 받고 당신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위하여 저희들이 싸우고 희생할 각오로 당신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하고, 충성의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런 자녀들 위에 당신의 가호가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남한 각지와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도 당신의 넓고 깊으신 사랑으로 품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