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92 to 35-312: 자녀의 날을 맞는 우리의 각오

자녀의 날을 맞는 우리의 각오
1970.10.30 (금), 한국 전본부교회

35-292
자녀의 날을 맞는 우리의 각오
오늘은 양력으로 10월 30일이고 음력으로 10월 1일, 제11회 자녀의 날입니다. 이 자녀의 날은 지금으로부터 만 10년 전에 책정한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회수로는 11회가 되겠습니다.

35-292
참다운 아담 한 사람을 찾아온 인류역사
본래 하나님의 날이니, 부모의 날이니, 자녀의 날이니, 만물의 날이니 하는 날들은 우리가 일년을 경과하면서 지킬 것이 아니라 한 날에 지켜야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류가 타락이라는 한스러운 조건에 걸렸기 때문에 한 날에 지키지 못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이런 날들을 찾기 위하여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인간의 완성과 더불어 부모의 날이 책정되는 것이요, 자녀의 날이 책정되는 것이요, 만물의 날이 책정되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소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즉 창조이상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완성된 만물과 완성된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체가 되면, 하나님과 인간이 뗄래야 뗄 수 없고 인간과 만물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삼각의 관계가 형성되어 일체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떠나가게 되었고, 참다운 부모와 참다운 자녀와 참다운 만물을 기념할 수 있는 날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날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서글픈 복귀의 노정, 서러운 재창조의 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재창조되는 데는 만물을 중심삼고 인간이 재창조되어야 하고, 인간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창조이상과 하나님의 사랑이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복귀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만물을 찾기 위한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살펴보면, 만물은 이미 사탄에게 침범당한 입장이었기에 사탄을 분립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물이라는 조건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탄을 분립하는 역사를 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그렇게 했습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인간을 찾고자 하였는 데, 우리 인간도 타락된 혈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분립 역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분립된 승리의 터전 위에서 새로운 부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사탄의 사랑의 대결 과정을 거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남아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늘이 뜻하신 소원의 한날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과정이 얼마나 지루했는 가를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날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이 재생될 수 있는 승리의 기반을 닦기 위하여 이때까지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러 나온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만물도 탄식하였거니와, 그러한 인간으로 복귀되기 위해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피와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 나왔습니다. 이러한 희생의 대가를 모으고 또 모아서 선한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참다운 아담 한 사람을 찾아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담형의 인물을 세워 가지고 역사하고, 시대를 거쳐 그 위업을 계승하면서 완성된 아담의 모습을 찾기 위해 수고해 온 역사가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입니다. 그 아담을 찾은 후에는 해와를 찾아야 합니다. 해와까지 찾아야 비로소 완전한 뜻을 이루어 하나님의 창조 이상을 완결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 이상을 완결지을 수 있는 개인들이 참다운 부부의 인연을 갖추어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됨으로 말미암아 선의 주관권을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담을 재창조하는 과정을 거쳐야 되고, 그 다음에는 아담을 모방해 가지고 해와를 재창조하는 과정을 거쳐서 ‘지극히 선한지라’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시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한지라’하는 기준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개입되지 않고는 완결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원리의 견해인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역사를 구분해서 살펴보면 구약시대는 만물을 분별시키는 때요, 신약시대는 사람을 분별시키는 때요, 성약시대는 승리한 아담 해와를 중심삼아 아담 해와가 잃어버렸던 사랑의 가정을 분별시키는 때입니다. 이 시대는 완성시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의 부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류의 부모를 중심삼고 분별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부모가 이 땅에 와서 분별의 과정을 가는 데는 수난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원리적인 견해입니다.

35-294
여러분이 자녀의 날을 맞아 반성해야 할 것
하나님은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2천년 동안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 아들딸의 책임은 무엇이냐 하면 오시는 부모님에게 효자 효녀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도리를 다했더라면 부모가 수모의 길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부모가 그 자녀의 책임까지 맡은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자녀의 도리와 부모의 도리를 같이 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수십년의 역사과정을 지내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1970년 음력 10월 1일, 11회째 자녀의 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 자녀의 날을 맞기까지의 역사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 양자의 자리에서 직계의 자리를 걸어 놓고 부모 앞에 효성을 다하는 것이 유대교의 사명이었습니다. 양자의 자리에서 직계 자녀의 책임까지 맡아 효자 효녀의 책임을 다하여 예수를 부모로 완전히 모셔서, 그의 뜻이라면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중하게 여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녀의 명분을 갖출 수 있는 유대교의 기반이 형성되었더라면 예수님에게 죽음길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예수님이 수난을 받기 전에 자녀가 수난을 막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에게는 부모의 죽음길을 막고 효성의 도리를 다하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유대교가 자녀의 책임을 다했더라면 예수님은 죽음길을 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교는 자녀의 책임을 못 하고 부모이신 예수님을 배반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길로까지 몰아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적 구원섭리의 한 기준을 세워 영적으로 자녀를 다시 수습하여 세계적인 발전의 기반을 갖추어 나오셨습니다. 그 세계적인 기반이 기독교입니다.

여기에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영적인 자녀의 기반은 닦아졌지만, 영적 기준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이 기준과 일치될 수 있는 외적 기준을 갖추고자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영육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주관권을 만들어놓은 것이 민주주의세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민주주의세계의 사상적 중심이요, 섭리적인 중심인 기독교가 오시는 부모 앞에 참다운 효자와 충신의 도리를 다하여야 합니다. 하늘의 부모로서, 혹은 하늘의 주인으로서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올 때 자기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바쳐 충성과 효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가 그런 터전을 마련했더라면 오시는 부모 앞에 수난의 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부모의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 이상을 실현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찾아온 이 한국을 중심삼고 되어진 사실을 보면 그렇지 못했습니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주권을 건설하고, 역사적인 뜻을 계승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유당 정권이 기독교와 야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자녀의 입장에서 책임을 다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다시 수난의 길을 거듭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놓인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수난의 역사입니다.

이 한국에서의 통일교회의 수난의 역사가 통일교회의 수난의 역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노정은 역사적인 수난의 노정으로서 그 노정에는 하나님의 6천년의 수난의 노정을 연장시켰다는 슬픈 내용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민족의 수난의 길을 피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수난의 길에 머물러 있는 것도 뜻을 따르지 못한 연고요 그에 대한 탕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지금까지 사오십여 년 동안 수난의 길을 걸어온 것은, 뜻을 대할 수 있는 섭리의 터전에 서 있던 기독교가 뜻을 받는 사명을 내적 외적으로 완전히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70년대를 맞이하였습니다. 이제 이 70년대를 하나의 분기점으로 삼아서,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런 뜻을 가진 자녀의 날입니다. 이 자녀의 날을 맞이할 적마다 반성하고 또 다짐해야 할 것은, 과거에 자녀로서 책임을 하지 못한 한을 풀어 드리는 한 날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날을 중심하여 우리가 새롭게 결심하여 자녀의 책임을 못 한 유대교와 기독교의 입장을 탕감복귀하고, 역사적인 모든 승리를 다짐하는 입장에서 하늘 부모 앞에 부족함이 없는 효자 효녀로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고 자각하는 입장에 서야만, 이날을 맞이하는 크나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5-296
자녀의 날이 찾아지기까지의 수난의 역사
지금은 외적으로 세계적인 무대까지 갖추어졌지만, 이 자녀의 날이 찾아지기까지 내적인 심정을 가려 나오기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수난의 길을 거쳐왔는 가를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외적으로는 섭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선민권을 확대시켜 나왔습니다. 유대교적 선민권, 기독교적 선민권을 확대시켜 세계를 포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내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언제나 심정적으로 일치된 하나의 종족을 편성하기 위해 준비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형제인 가인과 아벨이 싸웠습니다. 가인은 사탄편에, 아벨은 하늘편에 분립하여 세워 가지고 아벨을 중심하여 가인을 굴복시키는 싸움을 전개시킨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싸움은 가인과 아벨이 장성한 입장에서 싸운 싸움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인 복귀를 위해서 생명의 기원까지 거꾸로 올라가 재생시켜 나온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이 실패한 것을 에서와 야곱의 쌍태를 중심삼고 분별의 역사를 한 것입니다.

야곱은 천신만고의 수난과정을 거친 후에서를 굴복시켜 승리의 터전을 갖추었습니다. 여기에서 외적인 이스라엘권은 마련됐지만 내적인 이스라엘권은 출발할 수 없었습니다. 이 내적 내용을 갖추기 위해서 야곱의 아들 유다와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3대 형태의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다말과 유다의 핏줄을 통한 베레스와 세라의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 아벨을 복귀할 수 있는 승리적 기준이 갖추어진 것입니다. 복중에서부터 승리의 자리를 차지하여 형으로 태어날 수 없었던 그 한스러운 역사를 탕감시킨 것입니다.

또, 다말처럼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망각하고, 자기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늘 아버지의 뜻만을 일념으로 따르고, 세계적인 섭리 역사의 뜻을 위해 자기의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의 역사적인 교단이 형성되게 한 여성이 마리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메시아를 잉태할 것을 예언했을 때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오나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에 있어서는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요, 자기의 위신과 처지가 모두 몰락될 수 있는 문제였지만,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축복이 땅 위에 새로이 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받아들인 것입니다. 즉, 자기의 체면과 위신을 망각하고 자기의 생명까지 희생하면서 하늘의 심정을 흠모하는 자리에서 예수를 잉태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혈통적으로 승리의 분별점이 갖추어졌고 그 기반 위에 예수님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랑의 기원을 마련할 수 있었으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분별된 아들로 태어나는 그 시간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유발할 수 있고 위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열 달 동안 복중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은 태어나는 그날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복중에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하고, 태어나서는 유아 시대부터 청년, 장년, 노년시대까지 일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대표적인 아들이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복중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의 심정을 유발시켰고, 그가 태어나는 그 시간 천군천사가 환영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동방에 있던 세 박사가 황금, 유황, 몰약을 가지고 와서 세계 인류를 대표해서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실체를 갖춘 영적 세계의 천사장을 대신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남모르는 가운데서 복귀섭리의 뜻을 갖추어 가지고 이 땅 위에 메시아를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이는 4천년 역사의 희생의 결과였습니다. 역사적인 승리를 마련할 수 있는 방패였습니다. 이 예수님을 보호하고 받들어야 할 것이 4천년 동안 준비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는 예수님을 환영하기는 커녕 반기를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두 번째로 타락의 한을 안겨 드리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그대로 인간시조로 타락했지만, 복중에서부터 하나님의 새로운 복귀의 희망이었고, 새로운 소생의 소망이었던 그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유대교를 중심삼고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벌인 소동(마 2:1-)이 하나님을 얼마나 슬프게 자극시켰는 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예수님을 지키기 위하여 애급 땅까지 인도할 때의 그 숨은 곡절과 하나님의 서글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리하여 애급에서 3년을 지내고 갈릴리 해변가로 돌아와 자라는 예수의 생활은 남이 모르는 외로운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있으되 어머니로서 사랑할 수 없는 어머니요, 아버지가 있으되 의붓 아버지요, 형제가 있으되 의붓 형제요, 친족이 있으되 예수님과는 상관이 없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자라던 예수님의 유아 시대가 얼마나 처량했겠습니까?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예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하여 형제를 사랑하고 싶었고, 친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사랑하고 싶었는 데 완전히 두절되어 말았으니, 예수님 한 분만을 중심으로 소원했던 하나님의 서글픔이 얼마나 컸었는 가를 우리는 다시 한 번 회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소망의 날을 기대하시던 30년 기간이 하나님께는 얼마나 외로운 기간이었던가. 예수님이 모든 어려운 환경을 개척하여 할 수만 있다면 죽음의 자리는 나가지 않기를 하나님은 내적으로 간절히 바라셨고 또 그러한 환경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반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저버리고 반역한 죄를 짊어진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이기 때문에, 유대교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탕감의 노정을 가지 않을 수 없었고, 역사적인 화를 받는 민족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천년 동안 나라 없이 유리고객하는 민족으로 세계의 수많은 민족 앞에, 혹은 그들의 총칼 앞에, 수많은 원수들의 발굽 아래 희생되어 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역력해 아는 바입니다.

겨우 1948년도에 유엔의 공인을 받아 하나의 자주적인 국가로서 독립은 되었지만 주위에 있는 원수들을 다시 한 번 정복하지 않고는 민족이 승리의 터전을 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그 민족이 책임을 못 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뜻을 이루고 승리한 민족의 자세를 갖추기 전에는 재차 싸움의 노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기에 현재 아랍권에 포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절망적인 이스라엘의 입장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5-299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이 책임해야 할 때
이렇게 탕감의 역사는 용서가 없으니, 민족이 잘못했으면 민족을 통하여서 해결해야 되고, 민족이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 민족과 더불어 있던 세계가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탕감의 현상을 놓고 볼 때 통일교회가 걸어온 역사과정에 서글프고 슬펐던 사실이 많았지만 뜻을 중심삼은 선생님 자신이 죽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만일 죽었다면 어떠한 문제가 벌어졌을 것이냐? 비참한 민족이 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이란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해방의 날을 바라고 준비하여 왔습니다. 새로운 섭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고대하던 한때를 이 한국을 중심하여 이 민족과 이 강토에서 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때에 기독교와 이 민족이 환영하였더라면 오늘날 한국 민족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민족이 되었을는 지도 모릅니다. 또한 우리의 뜻도 세계적인 터전을 이루고 그 영광을 찬양하지 않는 나라가 없을 만큼 판도를 넓혔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나이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럴 수 있는 시대가 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10여 년의 세월을 지나 가지고 여러분을 찾은 이 입장은 승리를 찬양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워 체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에는 아직 국가적인 탕감의 노정이 남아 있고 세계적인 탕감의 노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이것을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정신적인 면에서 유대교가 이스라엘 민족을 지도했듯이,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 민주주의를 지도하듯이, 앞으로 통일교회가 한국의 모든 사상과 정신적인 문제를 지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뿌리를 못 냈고, 우리의 계획이 전반적으로 국가의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자리까지 못 나갔기 때문에, 다시 시련 과정을 밟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싸움의 역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 우리의 후손이 책임질 것이냐, 아니면 이 시대의 삼천만 민족이 책임질 것이냐? 이 문제를 두고 볼 때 책임질 만한 무리는 , 오늘날 이 뜻을 개척하기 위해 활동하다 피곤하여 지쳐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져야 할 민족적 책임이요, 국가적 책임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축복가정은 어떠한 입장이냐?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유대교를 중심삼고 메시아를 희망하던 입장이 아니라, 메시아를 맞아 가지고 새로운 종족편성을 하여 한 단계 전진한 입장에 선 것이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개인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축복가정들이 총합해 가지고 새로운 역사를 꾸며야 하는 때가 온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밀한 내용은 시간이 없어서 전부 다 말할 수 없지만 오늘날 축복받은 이 가정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은 개인을 위한 가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족을 대표한 가정이요, 세계를 대표한 가정이요, 하늘땅을 대표한 가정입니다. 이러한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가정적인 시련과 탕감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를 주관하는 데는 예수님 자신이 주관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정이 국가를 지배하는 것이 본연의 이치가 아니겠어요?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의 가정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결될 수 있는 이스라엘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그 나라의 모든 지성소를 지킬 수 있는 제사장이 되고, 그 나라 전체를 지도할 수 있는 새로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 예수시대를 중심삼은 소원의 기반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 개인도 개인적인 남자나 여자가 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권을 대표하고 그 주권을 상속받을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 제사장의 책임을 가정적인 책임으로 완결짓고 완성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6천년 동안 찾아 나온 승리의 이스라엘권이 아니겠어요? 예수님 때에 잃어버린 것을 다시 재현시키기 위한 것이 재림의 역사일진대, 6천년의 섭리역사가 하나님의 내적인 투쟁의 노정이요, 사망의 순환길이었음을 우리는 자각해야 됩니다. 축복가정이 제사장을 대표할 수 있고 지방 장관이 대표할 수 있어야 하며, 영적 이스라엘과 유대교의 책임을 감당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천지를 지배하되 예수님 혼자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혼자서 지배하다가 예수님이 죽으면 그 유업을 누가 인계 받을 것이냐? 하나님을 중심한 예수의 직계의 아들딸이 인계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천륜을 연속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매우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축복받은 가정이라고 해서 기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소원하던 것을 변함없이 천추만대 계승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남겨야 할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이제부터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960년대까지는 개인이 승리를 다짐하는 때였지만,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가정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1960년부터 1967년까지는 , 즉 하나님의 날을 책정할 때까지는 선생님 자신이 가정의 십자가를 지는 때였습니다. 가정의 제반 요인을 탕감하여 넘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3년이 지나 70년을 맞이하면서는 , 즉 제2차 7년 노정의 3년을 넘기는 마당에 있어서는 가정적 승리의 터전을 이루어야 할 텐데 이것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다시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월 초하루부터 777쌍 축복받은 가정들에게 동원하라고 통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체 가정을 동원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자기 남편을 생각하고 자기 일신의 안락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축복가정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할 시대가 왔다고 해서 누구에게 원망할 것이 아니요, 통일교회 때문에 수난의 길을 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축복가정으로서 응당히 가야 할 노정으로 알고 가야 하며, 여러분은 여기에서 자신을 중심삼은 부모의 날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횡적인 면에 있어서 이 날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35-302
다가오는 통일교회의 시대
세계적인 부모의 날이 결정되었으면 여러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종족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개인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조상이 아닌 종족적 조상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족을 중심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하나님의 날을 책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의 한 가정 한 가정이 이 나라를 우리의 나라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종족과 민족을 우리의 종족과 우리의 민족으로 찾아야 합니다. 박씨면 박씨, 김씨면 김씨의 종족 전체를 모아 가지고 우리의 종족이요, 민족이라고 찬양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한 형제의 나라도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의 터전을 공고히 하여야 할 때가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60년대와는 다른 가정적 차원으로 향하여 갈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탕감복귀역사라는 것은 종족을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족을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도 가정으로서 승리를 결정짓는 것이요, 종족도 가정적 승리의 터전 위에서 승리의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민족과 국가도 가정의 승리의 기반을 통하여 승리를 결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이 핵심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그것은 가정의 승리는 새로운 조상의 출발을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축복가정 여러분은 횡적인 면에서 자기 나름의 종씨를 중심삼은 새로운 조상이 되어, 조상으로서 전통을 세울 수 있는 모든 날들을 갖추어야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으니 이제 여러분은 가정적인 수난의 길을 거쳐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 수난의 한계점은 민족복귀입니다. 가정은 민족을 찾기 위한 것이요, 민족은 나라를 찾기 위한 것이요, 나라는 세계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선이 발전해 나간다는 것은 원리를 통하여 잘아는 사실입니다.

11회 자녀의 날을 맞는 금년 10월에 세계의 10개국을 중심삼고 결혼식을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심정적인 터전을 중심삼고 한 중심 앞에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평면적인 대상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때를 맞이했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시대는 우리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믿고 나가기만 하면 여러분의 수난은 극복될 것입니다. 어느때든지 반드시 우리에게 굴복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의 결정을 갖추어 가지고 나타날 수 있는 시대가 목전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사랑하고 염려하시기 때문에 복귀노정을 가는 자녀들에게 수난길을 넘겨 주려는 것이 아니라, 수난이 없는 입장, 수난을 당했다는 입장에 세워 주시려는 것입니다. 작은 탕감조건을 통해서 그 길을 모면하게 해주려는 것이니,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을 이끌고 이스라엘 땅을 찾아가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책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자기가 분배받은 땅을 찾아가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이제 가정을 이끌고 종족적이 터전의 상속자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 기간이 70년도부터 72년도까지인데, 이때는 세계적으로 한 분수령을 넘어가는 때입니다.

외적인 정세를 두고 보더라도 사람들은 72년도를 고비로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가 안팎이 일치되어서 하나의 해결을 지어야 할 복귀역사시대이기 때문에, 어차피 섭리적인 관과 일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70년도로부터 72년도를 중심해서 아시아의 분수령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72년도까지의 3년기간이 중요하다는 말을 선생님이 한 것입니다.

이 날을 중심삼고 보면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을 책정한 지 만 12년을 맞이하는 때가 아니겠어요? 따라서 13수를 넘어가는 때가 73년도이기 때문에 기필코 이 기간에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출발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통일교회의 앞날에 수난의 길이 남아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하좌우를 바라보더라도 하늘로 솟구치든지 땅을 파고 들어가든지 결판을 지어야 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녀의 날이 회수로는 11회지만 만으로는 1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데, 이날을 놓고 통일교회가 금후에 가야 할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의 뒤에는 세계가 달려 있습니다. 남북 해방의 깃발도 우리가 들지 않으면 안 되고, 최후의 사상적인 무장도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알고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행동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적 고충은 물론이요, 외적 고충도 해결해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 우리 식구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활동할 수는 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도 아담 해와의 가정을 내세워 가지고 해야 됩니다. 이런 엄숙한 시점이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5-305
자기 아들딸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그러면 천국에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보다 자기 아들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가는 것이요, 자기 아내나 자기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잃어버린 자리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담판 기도를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자기를 천번 만번 잃어버려도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요, 하나님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4천년 동안 준비해 온 이스라엘 역사를 끊어 버려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로마 병정의 총칼 앞에 이스라엘 나라를 그냥 그대로 저주해 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붙들고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혹은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로마 병정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던 것은 그들과 짝된 유대 교의 해방을 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시 자신은 죽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요, 하나님을 잃어서도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면 예수님은 죽을지라도 그 나라는 망하지 않고 남아질 것이기 때문에 그 나라와 더불어 예수님의 이름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그 사랑은 남아지기 때문에, 그 날을 찾아가는 하나님의 사랑은 남아지기 때문에 그 길을 따르는 기독교는 지금까지 죽음길을 걸어왔지만 거기에서 남아져서 세계적인 기독교권을 형성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남기기 위함이요, 하나님을 남기기 위한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자기의 아들딸도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의 아들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들딸은 하늘나라의 후손입니다.

여러분, 한 나라를 두고 볼 때 주권은 무엇입니까? 나라를 이루려면 주권이 있어야 하고, 국민이 있어야 하고, 국토가 있어야 합니다. 주권은 부모를 뜻하는 것이요, 국민은 자녀를 뜻하는 것이요, 국토는 만물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섭리적으로 볼 때 만물은 구약시대에 해당하는 것이요, 자녀는 신약시대에 해당하는 것이요, 부모는 성약시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형태가 가정에도 적용되어야 하고, 국가에도 적용되어야 하고 세계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지구는 만물에 해당하는 것이요, 만민은 국민에 해당하는 것이요, 주권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주권 국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주권 형성에 있어서는 별의별 추태가 있었고 별의별 흉한 일이 많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남겨져야 할 주권만은 거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추태의 모든 요건을 청산짓고 새로운 주권을 형성해야 합니다. 그것이 천국이요, 하나님의 소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하늘나라의 주권을 대신한 입장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는 주권을 대신하는 것이요, 자녀는 국민을 대신하는 것이요, 물질은 그 나라의 땅을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효하는 것이 나라에 충하는 것이요, 부모에게 효하는 것이 성인의 도리를 다하는 길과 통하는 것입니다. 지금 가정이 별의별 추태스러운 것의 기원이 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정이 거룩한 터전이 되기를 바라보고 나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타락권내에 있는 부패된 가정을 수습하여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가정들이 파탄되고 있지만 그 가정들을 부정할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축복가정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상속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과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을 축복가정은 갖고 있는 것입니다. 금후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을 수 있는 특권적 권한을 허락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들고 나왔기 때문에, 심정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요, 심정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들딸을 나라보다도 하나님보다도 더 사랑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을 자기 아들딸보다 더 사랑하고, 이세계를 자기 아들딸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천국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5-307
어려워서 못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돼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만물을 주관하라고 하셨는 데 무엇을 가지고 주관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주관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세계를 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자기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행복이 더해 감에 따라 그 행복의 요인을 타 가지고 기뻐할 수 있는 가정, 세계가 천국화되어 세계가 기뻐할 수 있는 요인을 타 가지고 기뻐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36가정부터 72가정, 124가정, 전체를 총망라하여 12월부터는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변명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냐? 나라를 위한 것이요, 세계를 위한 것이요,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목적은 여기에 있습니다. 나라를 위한 것이요, 세계를 위한 것이요,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뜻을 위한 것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가정 생활에 있어서도 축복가정은 일체를 문의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천국은 예배가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 문의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부모를 중심삼고, 부모의 사랑을 흠모하면서 문의해야 합니다. 그것이 효자, 효녀, 충신, 열녀가 되는 생활인 것입니다. 부모와 상의하는 생활권내에서 서로 동감하면서 사는 것이 천국이요, 보고 생활을 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보고를 하는 데에 있어서도 하늘의 뜻을 나에게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 앞에 내가 보고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뜻을 따라가는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축복가정들을 보면 어려워서 못 하겠다고 하는 말들을 하는 데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는 길이 어렵다는 마음을 가져서는 따르지 못하는 길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행복이 깃들 수 있는 가정이 못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이 길은 수난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죽음의 길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당연히 당하여야 할 수난의 길로 알고 감사하며 가야 할 길입니다. 이 길은 올바른 선조의 피를 받지 못한 타락한 후손이 가야 할 길이요, 응당히 받아야 할 보응의 길이라고 생각하며 가야 합니다. 이러한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5-308
전축복가정은 총동원하라
이제 우리는 3년 동안 총동원해야 되겠습니다. 이 본부에 있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녀의 날의 의의를 안다면 여기에 엎드려 통곡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뜻, 여러분이 대하여 나온 뜻과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새로운 결의와 각오를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피난민이라는 것입니다. 이북에 있던 사람들이 삼팔선을 넘어 살 길을 찾았던 것처럼 집시의 무리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 위의 모래와 같이 번창할 것을 약속하신 아브라함 가정처럼 집시와 같은 무리입니다. 또, 어떤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촌락을 이루어 가지고 사는 무리가 아닙니다.

아브라함 가정은 그 어떠한 것도 의지할 수 없는 , 홀로 있는 입장이었지만 그 가정 가운데 하나님은 찾아와 분부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가정은 친구 가정도 없었습니다. 나라도 의지할 수 없고, 친척도 의지할 수 없는 그런 외로운 자리에서 하나님만을 중심삼고 살았습니다. 이러한 곳에서부터 하늘 가정이 되고, 하늘 종족이 되고, 하늘 나라를 편성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제2의 국가, 제2의 민족을 개입시키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았습니다. 외롭고 고독한 입장이었습니다. 부처끼리만, 그대와 나만이 천륜의 뜻을 이루어야 된다는 사실…. 그러나 울어도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울어야 하고, 웃어도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웃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제삼자의 위로가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가정이 아닙니다. 축복받은 가정이 1, 600가정이 넘게 세계에 널려 있습니다. 축복가정들은 새로운 축복의 땅을 향하여 나선 집시의 무리요, 하나의 정착지를 찾아서 세계를 향해 나가야 할 무리입니다. 한 민족이 배척하면 나라 없는 무리처럼 국경을 넘고 수난의 길을 넘어 하나의 정착지를 찾아가야 할 무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세계 정세를 바라보게 될 때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그래도 한국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닦은 기반이 넓고, 종횡의 관계를 두고 보더라도 보다 편한 자리가 아니겠어요? 삼팔선 이북에서 북괴가 남한을 노리고 있지만 우리들에게는 단결해 가지고 북한 땅까지 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평양을 떠날 때 나는 이 고향땅에 돌아와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수난의 길을 가야 되겠다는 각오를 하고 떠났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고향을 찾아가서 제물을 차려 놓고 이 나라가 해방이 되었다고 축하회를 가질 수 있는 그날까지 여러분은 총진군 해야 되겠습니다. 원수들에게 밟힌 이북 땅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대원수 공산당을 근본적으로 추방해 버려야 합니다. 이 세계적인 공산당을 몰아내기 전에는 북한 땅에 자유와 평화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에, 이 뜻을 외적으로 빨리빨리 전개시켜 세계의 공산당을 몰아내기 위해 한국에 집중공세를 펴려는 것이 우리의 작전입니다.

공산당이 안팎으로 사람들을 가혹한 조직과 공포 속에 몰아넣어 생명에 위협을 주면서 하나의 국가 창건을 위하여 희생의 길로 몰아낸다 할진대, 우리는 생명의 위험을 초월할 수 있는 자유로운 하늘의 용장이 되지 않고는 원수가 있는 적진을 복귀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이번 행사를 끝내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도 행사를 마친 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행사를 끝내고 난 뒤에 이들이 가야 할 길을 놓고, 민족의 갈 길을 결판지을 수 있는 요원이 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기쁜 일면이 있는 가 하면 슬픈 일면도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5-310
자녀로서 책임 다했는가를 반성해야
오늘 이 자녀의 날을 맞이하여 여러분이 자녀로서 책임을 다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금년부터 교회도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0년대에 이루어야 할 일의 모든 기반을 금년에 닦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정초에 이야기했습니다. 협회본부의 문제라든가, 앞으로 통일교회가 움직여야 할 대 사회 활동이라든가 교육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닦아야 할 터전을 어떠한 무리를 통해서라도 닦아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환경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적이 많습니다. 결정은 나 홀로 하나님과 의논해서 하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이 일을 결정하는 책임을 질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 일을 결정하는 책임을 질 사람은 나뿐입니다. 그러니 내가 책임을 지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 가지 문제를 제시했는 데, 이민족이 그 책임을 하지 못하면 이국 민족을 통해서라도 강행해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만일 이것을 지금 해놓지 못하면 언제 하겠습니까? 60년도에 선생님이 단행했더라면 63년도까지 지역본부와 지구본부를 다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10년 세월이 지나 가지고도 마치지 못했으니 미친 여인의 치마폭처럼 터지고 헝클어지고 더럽혀진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온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70년도부터 73년도까지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지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기틀을 닦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못 하게 되면 여러분의 아들딸도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 실천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 시기에 지치는 통일교인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일본 통일교회에 지시한 것이,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벌인 세계반공대회(WACL)가 끝났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다시 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업적인 분야라든가 교회적인 분야를 중심삼고 달려 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첫째는 경제복귀가 필요하기 때문에 경제복귀의 선두에 서라고 했고, 꽃 파는 운동을 강행해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인원보충을 해주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승리했으면 다른 면에서도 더 강력하게 달려 나가야 하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에 새로운 대안을 세워서 나가야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나는 죽더라도 아버지의 뜻은 남기고 가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하겠습니다. 내가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가야할 곳이 여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수난의 길을 거쳐서 해방의 한 터전을 마련하고 이룩한 축복가정인데 누구와 더불어 남아져야 할 것이냐?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남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뜻과 하나님이 이 땅 위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부패해 간다고 망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정들이 어렵다고 해서 불쌍하다고 생각지 말라는 겁니다. 둘 다 좋을 수는 없습니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다는 것입니다. 높은 산을 오르려면 먼저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야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또, 높이 뛰려면 다리를 높이 들어야 됩니다. 그런데 다리를 높이 들수록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지구장회의 때 지시했지만, 어린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 양육하여서라도 새로운 면을 개척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여러분을 연결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가정적인 전통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60년대의 수난길에서 쓰러지지 않고 망하지 않아 개인적인 전통을 세웠다 하더라도, 이제는 가정으로서 쓰러지지 않고 망하지 않는 전통을 세계적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통일 가족들이 가야 할 전통이 금후에 이 지구상에 자리를 잡는 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외적인 분야를 중심삼고 우리 앞에 막혀져 있는 나라의 한스러운 담벽을 헐기 위하여 수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선생님은 이 나라와 이 민족에게 해원이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도 달갑게 받아 왔습니다. 소모전쟁을 해 나왔습니다. 피를 뽑아서 팔고 헐벗고 굶주리면서 싸워서 맞서 나왔습니다. 그들과 실력 대결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아 나왔습니다. 이 삼천리 반도를 누가 피땀 흘려 지켰으며, 하나님의 심정을 부둥켜안고 누가 충성을 했느냐 할 때,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만이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만이 찾아오는 천운을 맞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은 통일의 운세 시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시대와 더불어 온 것이 아니라, 역사시대를 넘어 몇천년 만에 찾아온 이 때를 가정은 고이 맞아야 합니다.

때를 잘 맞이하지 못한 요셉 가정의 한이 천추만대 이스라엘의 한으로 남고 세계의 한으로 남은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 가정에 찾아든 이 한때를 놓치지 말고 고이 간직하여, 하늘 앞에 하나의 터전이 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승리의 제물로 바쳐 드리면 그 가정은 천년 만년 남아질 것입니다. 양친 부모 모셔 놓고 천년 만년 살고 싶다는 우리 나라의 민요처럼 살게 되면 가치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되, 그렇지 못하면 여러분 가정들은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의 뜻은 망하지 않습니다.

35-312
새로이 다짐하고 결의하여 출발하라
여러분은 각자가 가야 할 길 앞에 십자가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어느 가정이 충신의 가정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래서 여러분의 아들딸 앞에 새로운 전통을 남겨야 할 시대가 오는 것을 알고, 오늘 새로운 결의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책임 수행(遂行)이 새롭게 출발될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하늘의 위신과 교회의 대외적인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 안팎의 모든 것을 갖출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있는 집을 보더라도 ‘저것이 선생님의 집이로구만’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교회를 먼저 짓기 전에 나의 집을 살 수 없습니다. 뜻을 위한 성전을 마련하고 이제는 대외적인 위신도 세워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거지의 신세요, 방랑자의 신세요, 고아의 신세였지만 이제는 환경을 정비해서 체면을 갖추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별관도 별관이지만 선생님의 집도 마련해야 합니다.

이런 저런 내용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전체가 동원해서라도 이것을 마련하지 못하면 여러분의 후손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조건이라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결혼식의 예물 중에 그런 것을 집어넣었던 것입니다. 내적인 기반이 자리를 잡아야 외적인 기반도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암만해도 안 됩니다. 이것이 하늘의 원칙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앞으로 축복가정들은 새로운 분야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찾아오는 주일의 경배식을 놓고 감사의 마음으로 그 시간을 맞이하기 위하여, 몸을 깨끗이 단장하고 기다리는 가정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오는 것을 귀찮아한다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어떻게 되는 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아들 같고 딸 같은 여러분 부부가 되어 새로운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옛날 개인이 효하던 때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효할 때는 개인이 정성들여도 되었지만 이제는 입체적인 십자가를 져야 할 시대이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효를 해야 합니다. 개인 때는 평면적인 십자가이지만 가정을 갖추고 나갈 때에는 입체적인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것을 달갑게 받아 발전시켜 넓혀 나갈 때 종족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요, 국가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요, 세계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이 수난의 길을 극복하여 세계적으로 넓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축복받은 민족으로서, 가정으로서 해야 할 책임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 자녀의 날을 맞이하여 여러분은 자기 개인뿐만이 아니라, 자녀를 둔 가정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새로이 다짐하고 새로이 결의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