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60 to 35-288: 감사의 생활

감사의 생활
1970.10.25 (일), 한국 전본부교회

35-260
감사의 생활
[기 도]

아버님, 오늘은 10월 25일, 이 달의 마지막 안식일이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고대하던 행사도 무사히 끝나고, 사랑하는 자녀들도 자기들 집으로 돌아갔사오니, 모든 것을 아버지 뜻 가운데 보호하여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염려하는 그 모든 사정을 아시고 승리의 한날을 저희들에게 맡기신 아버지께서 이 행사를 위해 수고하신 것을 진정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님, 이 아침, 전국에서 이곳을 향하여 정성들이고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혼신을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 뒤에 영원하신 당신의 자비와 사랑으로 언제나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세상의 어떠한 인연을 따라 모인 무리들이 아니옵고, 세상의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그리운 인연을 찾아 모인 무리들이 아니옵니다. 태초에 당신께서 찾으셨던 본연의 사랑과 본연의 인연을 따라 모인 무리들이옵니다.

저희들이 그 사랑을 중심삼고 생각하고 사모한다는 것을 아버지께서는 아실 것이옵니다. 저희들이 당신의 귀하신 심정을 체휼하며 당신의 경륜하신 뜻 앞에 없어서는 안 될 하늘의 형제의 인연으로 모인 무리들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언제나 저희들로부터 떠나지 마시옵고 모든 전체가 당신의 경륜하시는 뜻과 더불어 일체화될 수 있게끔 주동적인 역할을 해주셔야만 되겠사옵니다.

부족한 인간인 연고로 언제나 당신의 염려의 대상이 되어 온 저희들이었사오나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께서 남기신 뜻을 위하여 오늘도 책임을 다하겠다고 몸부림치고 있사옵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계시는 아버님, 저희의 장래를 지켜 주시옵고, 저희의 생활을 보호하여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외로운 자리에 계신 아버지의 사정을 알지 못할 때가 많았사옵니다. 외로움을 느끼신 아버지이시기에 저희들의 외로운 사정을 아시는 입장에서 저희들을 염려하고 보호하지 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음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그러한 아버지를 의지하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깊은 사랑으로 철부지한 저희들을 어서 양육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뜻 앞에, 당신의 존전에 내세워 자랑하고 칭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 소수의 자녀들이 또다시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이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개개인에게 당신을 위하여 살고, 당신의 뜻을 위하여 살겠다는 결심이 자신의 본심 깊은 데서부터 솟구쳐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와 더불어 살아가는 데서 참다운 인간의 가치를 느끼고 참다운 인생의 보람있는 자체를 체휼할 줄 아는 사람은 고귀한 인격자이며, 아버지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의 권위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확신하고 자각하여 당신이 남기신 사명 앞에 충실한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각자의 마음 깊은 가운데서 아버지를 부르게 하시옵소서.

저희를 위하여 아버지께서 계시옵고, 저희를 위하여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싸워 오셨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잊은 채 아버지를 부여 안고 몸부림칠 줄 아는 하늘의 인연들이 깊은 심정 가운데서 솟구쳐 나오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 자체를 주관하고도 남을 수 있는 초월적인 힘의 근원으로 이끌어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겸손한 어린이의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무릎 앞에 부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높고 귀하고 오묘하신 아버지의 심정세계 앞에서 저희들은 그리움에 사무치어, 당신이 아니면 저희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고, 당신이 아니면 저희의 목적의식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아버지의 소원 가운데서 당신의 품에 안겨 살기를 고대하는 어린 효자 효녀의 마음을 갖고 이 자리에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 못하거든 그런 마음에 사무쳐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아버지의 귀하심을 마음에 간직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외로운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당신의 뜻 가운데서 남겨야 할 사명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소수의 무리를 세워서 세계적인 대승리의 역사를 펼치시려는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맡겨 주신 높고 귀하신 그 사명 앞에 충성을 다하는 당신의 효자 효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나라를 지켜 주시옵기를 이 시간 간곡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가야 할 길 앞에는 아직까지 많은 싸움이 남아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생애를 바쳐 박차를 가하여 승리의 권을 확대시키지 않으면 안 될 책임과 사명이 저희들에게 남아 있는 것을 느낄 적마다 오늘도 그 책임을 위해서, 내일도 그 책임을 위해서, 금년에도 그 책임을 위해서, 남아진 생애도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하오니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위하여 살 수 있는 보람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새벽에 당신께서 새로운 분부를 내리시어 약속의 인연을 세우시어서 높고 귀하신 당신의 심정세계 앞에 이들을 얽어매시옵소서. 그리하여 최후까지 승리의 중심을 갖추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11월 12월, 이 남은 금년 동안에 저희들은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엄청난 과제를 중심삼고 70년도에 닦아야 할 기반을 닦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사명을 남기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사명을 생각하게 될 때, 시간이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날이 찾아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자신들이옵니다. 높고 귀하신 아버지의 심정에 인연맺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나타날 수 없는 저희 자신들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에는 오로지 아버지가 허락하신 뜻 가운데서 일체가 되게 하시옵고, 심정적 인연 위에 당신의 영원하신 말씀을 허락하시어서 최후에까지 그 생명에 도움이 되고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뜻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당신을 위하여 염려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애혼들의 한을 풀어 복귀완성하지 않으면 안 될 한스러운 노정을 지켜 주시옵소서. 어서 속히 하나의 나라와 하나의 세계를 세우시어서 제3의 해방을 촉구할 수 있는 그런 때를 맞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5-263
말 씀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누구나 현시점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희망하면서 더 좋을 수 있는 한날을 다짐하고, 더 가치있는 내용을 찾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찾지 못하고 그러한 내용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될 때에는 낙심과 절망을 하게 되는 실상을 우리는 현실의 생활 속에서 보아 오고 있는 것입니다.

35-263
사람이 본래 머물러야 할 곳
그러면 사람이 본래 가야 할 곳이 어디이며 머물러야 할 것이 어디이냐를 생각하게 될 때, 그곳은 오늘날 우리가 소망하는 어떠한 미래의 세계가 그곳일 것입니다. 내일의 희망을 중심삼고 그런 생활무대, 혹은 그런 심정의 터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현재 사람들의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타락하지 않은 인류의 조상이 처했던 자리는 불행이라든가 탄식이라든가 원한이라든가 원망과 같은 감정을 갖고 사는 자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부모의 품에 품기어 양육을 받는 자리이며 보호를 받는 자리였던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만일 불행의 요인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불행해지기 전에 그 불행을 책임져 주시는 것이요, 혹은 거기에 낙심될 요인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낙심될 내용을 미리 방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가 본연의 아들딸의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본래 아담도 불행하지 않은 입장이요, 해와도 불행하지 않은 입장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타락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환경이 불행하지 않았는 데, 왜 타락을 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인간을 볼 때 두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다르고, 열 사람이 있으면 그 열 사람의 사고방식이 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제에 있어서 분열이라든가, 상충이라든가, 고충 같은 것이 발발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혹은 열 사람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똑같은 입장에서 나가게 될 때에는 , 투쟁도 있을 수 없는 것이요, 분열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35-264
만일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이 크다는 것을 느꼈더라면
본래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계셔야 되고 또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위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완성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서기까지의 성장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성장과정을 거쳐 나가는 데 있어서 아담 해와는 현시점, 즉 현재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미래의 입장에 있었으나,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현재의 입장을 넘어서 미래의 입장까지 전체를 대하여 사랑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현실의 입장은 제한된 입장이요, 자기 자신을 위하는 입장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지향하고 바라는 목적이 무엇인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만을 중심삼고 현실적인 내용을 관찰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자체만을 중심삼고 생각하는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생애를 지난 후의 역사적인 미래를 마음에 두고 아담 해와를 사랑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 대하시는 그 사실만으로 흡족했을는 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보다도 더 높고 더 큰 미래의 것을 중심삼고 현실에서 사랑해 오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담 해와는 몰랐던 것입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느꼈더라면 그들은 타락할래야 타락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모르고, 현실의 환경에서 부딪쳐 오는 사연과 그들 자신이 처해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느끼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5-265
인간이 낙망하고 절망하게 된 기원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자기가 처해 있는 생활 환경 속에서 낙심하고 낙망하는 그러한 타락한 인간의 비참한 실정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오늘의 시련 고통이 오늘의 시련 고통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터전을 개척하여 마련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인 것을 알게 된다면 현실 생활에서 낙망은 하지 않을 것이요, 또한 절망이나 자포자기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자기의 소망이 공고화되고 내일의 생명의 가치를 다짐할 수 있는 현실의 가치가 그 생활권내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환경이 어렵다 하더라도 그의 모든 전체를 낙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지 않는 다는 사실을 미루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때와 마찬가지의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전체를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보호하시고, 보다 더 영원한 가치를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방대한 가치의 깊은 내용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세웠는 데도 불구하고 아담 해와는 그날 그날의 입장을 중심삼고 생각하고 느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보게 될 때 오늘날 타락한 조상의 후손들로서 태어난 우리 인간들이 낙망하고 절망하는 그 본성의 기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느냐 하면 자기를 위주로 하고 생각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이 자기가 바라는 것과는 반대의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환경을 헤쳐 나가기 위해 모든 책임을 지고 몸부림치고 투쟁해 나가지만 자기 스스로 이것을 지탱하지 못하게 될 때에는 여기에 낙망이 있고 절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35-266
현실을 부정하고 내일을 긍정해야
이러한 타락한 현실의 환경에 있어서는 행복의 여건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그 일생 과정을 분석해 보면 행복이라든가 가치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생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인생관을 가지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러한 사람은 극히 적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일에 대한 희망을 중심삼고 오늘의 그 생활에 대해 생명력을 자극시킬 수 있는 원동력을 보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대문에 오늘날 타락한 이 세계에 있는 인간들은 내일의 희망의 세계를 불가피하게 고대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인 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미래를 중심삼고 인간을 위하고 싶었던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인간이 위함받을 수 있는 그 자리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는 반드시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가야 할 운명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이러한 운명길을 찾아가려니 오늘날 우리는 현실 생활에서 고통과 투쟁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탄한 생활을 엮어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혁명을 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의 생활은 혁명입니다. 새로이 개발해야 하는 개척자의 노정을 거치지 않고는 인간이 이루어야 할 희망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원리 말씀으로 말한다면 탕감노정을 거쳐서 복귀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노정은 순수하게 어떠한 공식 법도를 따라가는 길이 아닙니다. 개척과 투쟁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개척은 개인의 생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개척입니다.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척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 투쟁도 개인적인 투쟁이 아니라 세계적인 투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간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의 삶 그 자체는 세계적인 전쟁의 과정에 서 있는 것이요, 세계적인 개척의 노정에 서 있는 것이요, 세계적인 새로운 혁명의 대열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 인간들은 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 시조가 자기를 중심삼고 내일의 희망을 망각하는 자리, 즉 자기를 긍정하고 내일을 부정하는 자리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의 자기를 부정하고 내일을 긍정하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미래를 긍정하고 오늘을 부정할 수 있는 혁명의 기수가 되지 않고는 가치가 없는 인생이 될것이며, 인생의 모든 면에서 비애의 탈을 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타락했다 할진대는 ,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부정하였던 인간 시조의 잘못을 되풀이해 가지고는 타락권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하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의 조상이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부정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할 수 있는 새로운 내용을 각자가 갖추지 않고는 인생의 바른 길을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현실을 얼마나 부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부정의 한계점이 어디냐? 그것이 오늘날 종교 혹은 타락세계권내에서 우리가 찾아가는 새로운 미래의 여건을 중심삼은 그 권내에서의 부정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권내에서의 부정 가지고는 새로운 미래의 세계를 찾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권외까지 부정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권내의 부정권을 승리의 결과로 가져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이상이 어떤 것이냐? 현실을 긍정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부정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현실을 부정함과 동시에 미래의 긍정을 공고화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이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부정하는 입장과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하는 입장, 이 두 입장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강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하는 입장이 무엇보다도 더 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미래의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권내에서의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 자체를 찾아 가지고는 아담 해와가 저지른 그 한스러운 타락으로 말미암은 고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지금까지 고난과 시련의 길을 쉬지 않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부정하였던 선조들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설적인 방법을 통해서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가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5-268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치관 확립의 필요성
오늘날 우리는 이 두 틈바구니에서 하루의 생활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뒤넘이침과 동시에 하루하루가 뒤넘이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뒤넘이침으로서 오늘과 내일이 판가리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 하루를 지내는 데 있어서 오늘의 시련을 내일로 연속시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일의 새로운 긍정을 추구하고 이것을 내일의 새로운 긍정으로 연결할 수 있는 터전을 오늘에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내일이 나에게 있어서 행복의 터전으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계선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며 나가는 길이 신앙자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붙들고 한 손으로는 세상을 붙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부정하고 하늘을 긍정해 나가는 것이 신앙길입니다. 그러면 미래를 긍정하고 현실을 부정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느냐 하면 지금까지는 없었습니다. 그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가치적인 방향을 추구하고 나왔지만, 그 추구하는 방향에 있어서 주체적 대상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스스로 내일의 약속을 다짐하기 위한 새로운 인연이 필요하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치관의 확립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확립된 가치의 내용은 현실의 어떤 것보다도 강하고 철저한 주체적인 내용이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미래의 세계를 중심삼고 현실적인 관념과 현실적인 생활무대를 부정하고 극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의 신앙노정을 보면 맨 처음에는 신앙생활을 아주 잘 합니다. 그러나 날이 가면 갈수록, 그 환경의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더한층 입체성을 갖추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강하게 출발했지만 끝에 가서는 약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래관의 확립이 덜 되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현재 생활하는 그 생활관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관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제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가 아니면 앞으로 이 세계 현실 앞에 새로운 목적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할 수가 없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관에 대한 확실한 이념을 심어 주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가치관을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러한 것을 가르치고있습니다.

개인보다는 가정이 가치적이요, 가정보다는 종족이 가치적이요, 종족보다는 민족이 가치적이요, 민족보다는 국가가 가치적이요, 국가보다는 세계가 가치적이요, 세계보다는 천주가 가치적이요, 천주보다는 하나님이 가치적입니다. 하나님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 가치적이라는 겁니다.

35-270
인간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를 관할하고 통치해 가지고 한꺼번에 꿸 수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우리 개인이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개인은 백년 이내에 한 시대를 살고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영원히 계속됩니다. 역사를 연결시키기 위해서 개인적인 사회가 있는 것이요, 가정적인 사회, 종족적인 사회, 민족적인 사회, 국가적인 사회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는 풍토가 다르고, 전통이 다르고, 역사적 배경이 서로 다른 여러 유형의 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을 하나로 얽어매는 데는 무엇을 가지고 얽어맬 것이냐? 권세나 주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세상의 어떤 물질을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얽어맬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

어떤 사람이든 어디에 가서 살고 싶으냐고 물으면, 고향이라고 할 것입니다. 아무리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오래 산 노인이라도 자기의 고향산천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모가 죽은 지 수십년이 되어 부모를 잊어버릴 만한 기간이 지났더라도 부모의 무덤을 찾아가 옛추억을 더듬으면서 그때의 생활을 느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은 과연 어디에 깃들기를 원하느냐?

돈이 아닙니다. 자기 부모의 집이 있다고 해서 그 집에 가려고 고향에 가고 싶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있는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처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외적인 것보다도 내적인 실증적 차원의 것임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얽어맬 수 있고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시킬 수 있는 그 자체가 무엇일 것이냐?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본연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가?

최고의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며 최고의 분이시기 때문에, 그 사랑의 출발도 최고의 자리에서부터 해야 되고 그 사랑이 머물 수 있는 곳도 최고의 자리이어야 합니다. 그 사랑은 천주적인 사랑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가지고 종족과 민족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랑의 화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사랑에는 개인과 종족, 종족과 민족, 민족과 국가, 국가와 세계, 천주 혹은 하나님까지 연결될 수 있는 종족적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즉, 그 사랑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하나님까지 종적인 인연을 맺게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원이 되는 동시에 횡적으로 세계에까지 넓혀서 세계 인류를 형제의 인연으로 묶을 수 있고, 역사과정에 나타난 모든 부정적 여건을 영원히 부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사랑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 제시하는 사랑을 중심삼고 종적인 면에서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초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횡적인 면에 있어서도 사회와 문화의 풍토에 대한 모든 사조적인 변화를 초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 다 가능하다 할 때, 이 주의는 마지막 주의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종적으로나 횡적으로나 그것이 가능하고 만민 공통의 생명을 지니고 있는 현시점에서 진심으로 만민 앞에 승리할 수 있는 사랑을 가진 주의라 할진대, 또한 승리해 가지고 만민으로 하여금 같은 감정을 유발시킬 수 있는 주의라 할진대, 이 주의야말로 인간세계에 있어서 미래의 희망을 다짐하고 미래의 새로운 소망의 터전을 개척할 수 있는 하나의 모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무엇을 중심삼은 것이냐? 그 사랑은 개인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가정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며, 종족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며, 민족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또는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세계를 초월하여 천주를 중심삼은 것이며 천주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입니다. 또한 하나님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나가자 하는 것이 통일사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세계와 바꿀 수 있느냐 할 때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 자체와 바꿀 수 있느냐고 할 때 그것 또한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 자체도 희생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하나님 자체에 있는 그 사랑을 위해 희생해 나왔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나님 자체와도 바꿀 수 없는 근본적인 내용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만이 우리의 골수를 통할 수 있고 우리의 혈육을 관리할 수 있는 근본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의 정서적인 생활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심정의 역사, 심정의 세계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심정의 역사냐 하면 종적인 심정의 세계를 횡적인 심정의 세계로 전개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5-272
종적인 사랑을 횡적으로 전개하려면
그러면 종적인 사랑을 어떻게 횡적으로 전개하느냐? 종적인 사랑을 횡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체를 의식하지 않아야 됩니다. 이러한 자리가 참부모의 자리입니다.

이러한 종횡적인 사랑을 귀결시키는 데 있어서 하나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기점이 이 지구상에 나타났다 할진대, 이것은 우리 인류의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서 인류가 종적인 완성을 볼 수 있는 것이요, 횡적인 완성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의 기준 앞에서 관계되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당당히 발을 내디딜 수 있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실 세계에서 여러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념이 있으면 그 이념이 얼마나 높을 것이냐? 그것은 여러분의 일생과 더불어 끝나는 것입니다. 그 이념은 여러분이 어차피 부정해야 할 권내에서 가진 이념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일생과 더불어 끝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자기 후손에게 상속해 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일대(一代)에 청산짓고 가야 할 이념적 요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청산짓기 위해 나 스스로 오늘의 생활관념을 뒤넘어쳐야 되는 것입니다.

기운 달은 다시 차오르며,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놓고 낮음이 교차되는 시점이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의 세상은 결코 행복하기만 한 세계가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세상을 부정한다는 것은 행복한 세상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관념적으로만 느낄 것이 아니라 이 사랑을 현실의 생활무대에 적용해 가지고 유발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무한하신 가치와 현실적인 하나의 개체가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세계를 찾아 나가는 것이 복귀의 길이지만 개성진리체를 초월하여서는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큰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작은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말에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미래의 세계와 관계를 맺어야 되고, 내가 보고 느끼는 것도 미래의 세계와 관계를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깊은 경지의 도의 길을 가게 될 때 혼자 정성을 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대상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펴 나가게 될 때에는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도의 세계에서 모든 것을 통달해 가지고 그 권한이 천상세계에 알려진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그가 하나님과는 종적으로 관계맺었을지 모르지만, 횡적으로 관계될 수 있는 상대 기반을 갖지 않으면 종족인 기준에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에 비춰 볼 때, 하나님이 주체적이고 종적인 중심의 자리에 계시기는 하지만,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을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모든 존재물은 자기 자체만으로는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현실 속에서만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미래와 연결될 수 있는 현실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보다 가치적인 미래세계에 포괄되고 흡수될 수 있는 현재에서 오늘의 생활의 가치를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미래의 세계관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런 자리가 우리 생활의 분기점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35-274
위대한 명사 참부모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 있는 우리 인간은 중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타락한 자리에 있는 인간 혼자서는 하나님을 직접 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직접 대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이 땅에 보내겠다는 것이 재림사상, 메시아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이 땅에 와 가지고 그 사명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사방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방을 갖추어 가지고 평등한 입장에서 주고 받을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평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 힘이 기울어지게 되면 평행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적게 주는 것은 올라가고 많이 주는 것은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평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이 영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균등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평행이 원점이 되는 주체가 필요합니다. 또한 이 중심과 평행을 이룰 수 있는 대등한 가치를 지닌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주체와 대상을 같은 자리에 연결시킬 수 있는 선이 그어져야만 수평선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상대적 요인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남자 앞에 여자가 필요하도록 하셨고 여자 앞에 남자가 필요하도록 하셨는 가?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사람을 세워서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가 이니라 둘을 세워서 그들이 완전히 하나의 소망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지니고 미래의 세계를 향하여 함께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둘이 주고 받는 그 생활은 지극히 소망적인 생활입니다. 여기에 미래의 생활을 끌어들여 가지고 현실의 생활에서 서로 감지하고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데 그럴 수 있는 존재가 무엇이냐 하면 부부라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행복을 노래하며 미래를 약속하고, 미래의 세계를 다짐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의 세계를 긍정해 나가는 이런 부부가 있다면, 어떠한 생활환경이라도 이들을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현실의 생활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것이 미래의 세계 앞에 지장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것은 미래의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가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는 어떠한 현실의 어려움이라도 이들을 구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모두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서 미래를 사랑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미래를 위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여기에 스스로 미래의 가치를 동반시켜 가지고 존중시할 수 있는 부부의 인연을 갖추었다 할진대는 여기에서부터 행복의 터전이 이룩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는 해와, 해와에게는 아담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들을 이상 상대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상대 되는 존재는 현실적으로 주체와 인연맺지 않고서는 미래와 연결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을 주체와 대상의 입장으로 세워 놓은 것도 이 천주의 사연을 통하기 위한 내적 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부정해야 할 현실 사회를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동지가 있어야 합니다. 스승이 있어야 합니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스승이 있어야 하고 동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 있어서 절대적인 새로운 것이 역사와 민족 앞에 투입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지로서 결합을 해 가지고 미래의 소망의 세계를 향하여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어 나간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듯이 하늘의 법도도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서만 세워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은 가정만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앞에는 가정을 중심삼은 종족 편성이라는 엄청난 목표가 놓여있습니다. 가정이 완전히 하나되어야만 종족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되지 못하면 종족을 기피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우리 인간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남이면 남, 동이면 동에서 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고 지금까지 몸부림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이 안팎의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뜻을 같이하는 자리에 서야만 하나님이 동반하시는 것이요, 또 이럴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만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렇게 되느냐 하면 후손들이 가정적 기반을 중심삼고 남자 여자로 나오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와 대표적인 기준이 심정을 중심삼고 가정 앞에 결속되는 가치적인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결속되어 만민이 공통적으로 흠모할 수 있는 대상이 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라는 명사는 위대한 명사입니다. 물론 진리의 내용도 깊이가 있지만 참부모라는 말은 위대한 명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미래에의 출발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과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현실무대에 있어서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 하나의 원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 말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35-276
부모를 중심한 사랑의 가정을 이루라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참부모를 끌어다가 하나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참부모 앞에 끌려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끌려가는 데는 자기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부모면 부모, 남편이면 남편, 아내면 아내까지 끌고가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식구들도 끌고가야 되며, 가정에 있는 물질까지도 끌고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역사시대를 보게 될 때 구약시대에는 물질을 중심삼고 나왔고, 신약시대에는 사랑을 중심삼고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사랑을 말했지만 인간들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탕감을 위해 제물을 드렸습니다. 제물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었습니다. 이렇듯 제물을 드리는 노정을 거쳐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물이 뭐냐 하면 희생물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인간 대신 속죄의 제물로서 만물을 제물로 드리고 물질과 함께 동물을 제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가 구약시대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한 단계 높여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모세가 사랑의 하나님은 소개하지 못하고 권능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만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을 소개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소개했고 사랑의 예수님을 소개했지만 당시의 인간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부모를 중심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부모가 없어 가지고는 나타날 수 없습니다. 부모로부터 사람이 태어나야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대기준을 갖추지 못하면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만물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역사 전체가 무엇으로 귀결되느냐 하면, 물질과 자녀와 부모, 다시 말하면 가정의 기준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입니다. 부모가 없어 가지고는 자녀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부모로부터 태어난 자녀가 부모를 중심삼고 만물을 주관해야 됩니다. 아담 해와도 만물을 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 다 한꺼번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고 할 때, 여러분 혼자서는 못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전부 규합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규합한 것을 꼭 눌러 놓으면 한 점이 됩니다. 그렇잖아요? 꼭 압축시켜 놓으면 한 점이 된다는 거예요. 이 한 점이 둘로 나누어지면 여기에서 상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됩니다. 입체적으로 볼 때, 역사는 여러분에게 있어서 무엇에 해당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가정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역사적인 중심 터전입니다.

미래의 세계 앞에 소망을 제시하기 위한 모든 혁명의 목표는 국가가 아닙니다.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과정에 있어서 국가의 혁명관을 제시했고, 세계의 혁명관을 제시한 사람은 있었지만 가정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 가정의 혁명관을 제시한 주체세력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가정의 혁명이 있기 전에 종족의 혁명이 있을 수 없고, 종족의 혁명이 있기 전에 민족의 혁명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의 혁명이 있기 전에 국가의 혁명이 있을 수 없고, 국가의 혁명이 있기 전에 세계의 혁명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체의 완성과 더불어 가정적인 혁명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혁명은 기존의 것을 버리고 파탄시키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과거의 것을 제기하지 않고서는 새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정해야 되고, 자기 가정을 부정해야 되고, 자기의 물질을 부정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35-278
가정은 우주의 근본
예수님은 자기 자식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자기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되는 계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생명의 뿌리가 없기 때문에 뿌리에 접붙여져야 됩니다. 부평초와 같이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밀려가서야 되겠습니까? 뿌리가 없다는 거예요. 이 말씀이 폭언 같지만 이러한 환경의 여건을 절대 필요로 하는 타락한 세계에서는 말할 수 없는 복음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낙원의 궁중에다 세워 놓을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돌아다니게 할 것이냐? 천국 중심으로가 아니라 생활 중심으로 바꿔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몸부림쳐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 세상에 생활 중심으로 바꿔칠 수 있는 그 길이 없었으니 그런 길이 있어야 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참된 사랑의 주체가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나라의 군왕을 아버지로 본다면 백성은 아들의 입장이요, 땅은 만물의 입장입니다. 마찬가지로 세계를 중심삼고 보면 만민은 아들의 입장이요, 이 지구 전체는 만물의 입장이요, 세계의 중심으로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의 입장인 것입니다. 온 천주를 중심삼고 볼 때는 천주의 중심인 하나님은 아버지의 입장이요,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역사적인 인간은 아들이요, 모든 피조세계는 만물인 것입니다.

이것을 축소시킨 기본 단위가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것, 아들의 것을 전부 다 하나님의 것으로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의 아들, 누구의 것 할 것 없이 전부를 하나님의 것으로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은 빼놓고 아들딸만 바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는 자기는 빼놓고 아들과 물질만 바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는 전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주권이 있어야 되고, 백성이 있어야 되고 국토가 있어야 됩니다. 하늘 나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권을 대신한 것이 부모이며, 백성을 대신한 것이 아들딸이고, 국토를 대신한 것이 나라인 것입니다. 이 중의 한 가지도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나라를 대신하여 나아가야 할 터전은 어디냐? 나라의 제단이 어디냐?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사랑하는 부부를 중심삼고 자녀와 만물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나라의 것이라면 세계의 것도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나 자녀나 만물은 내 것이 아니라 나라의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요구할 때에는 언제든지 넘겨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나라 앞에 충의 도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나라로부터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주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부패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나라로부터 빼앗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그 나라를 위해서 잘 주고, 그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면 국가가 잘못한 것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왜 세계를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해야 되느냐? 통일사상은 자기 나라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구하자는 사상입니다. 이것은 결국 희생이 아니라 세계와 바꿔치기하는 것입니다. 큰 것을 얻기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하는 것은 정상적입니다.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바꿔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것이 세계로 가기 위한 정당한 길입니다. 인간은 보다 큰것을 동경하는 것이지 작은 것을 동경하지는 않습니다. 보다 큰 것을 소망하는 것이지 작은 것을 소망하지는 않는 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을 부정하라는 것은 부정하는 것으로 끝나라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것과 바꿔치기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현실 생활권내에서 그럴 수 있는 실제적인 내용을 갖추어야 하는 데 이런 내용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들은 타락한 세상의 오염된 환경 가운데서 그 생애를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실상을 우리는 잘 보고 있는 것입니다.

35-280
부모만 찾으면 아들과 만물을 찾는 것은 쉬워
모든 것은 부모와 자식과 만물의 입장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부모 뒤에 아들이 따라오고 아들 뒤에 만물이 따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더 큰 것을 중심삼고 아들과 만물이 부모를 옹위해 나가는 것입니다. 영원의 세계에까지 그렇게 나가야 됩니다. 이 타락한 현실에서 죽음의 세계에까지 그렇게 끌고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들딸을 이끌고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는 아들딸을 구하기 위해서 끌고가야 되는 것입니다. 끌고가 가지고 그 다음에는 만물을 이끌고 가야 됩니다. 만물은 그러기 위해서 준비된 것이 아니겠어요? 자식으로 태어나면 이미 부모가 되도록 준비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주위에는 아들딸이 둘러 서 있어야 합니다. 부모 주위에 아들딸이 영원히 둘러 앉아 있고 싶어하는 그 마음의 터전이 이 지상에 나타나게 되면, 평화의 왕국은 건설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선생님을 중심삼고 영원히 둘러 서 있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이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곁에 있고 싶어하고, 현재의 자기들의 위치를 바꾸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모든 소유물 또한 하나되는 그것으로 끝나 버리면 안 됩니다. 자연적인 환경에서 하늘 것으로서 움직일 수 있고, 하늘 것으로서 화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민의 제물은 어디 갔느냐? 아들의 제물은 어디 갔으며 부모의 제물은 어디 갔느냐? 지금까지 이 제물들이 한데 합하여 가지고 부모의 품에 품길 수 있는 그런 때가 지상에 있었느냐? 인류를 대하여 ‘사랑하는 아들딸이여! 너희의 아들딸은 내 손자이고, 그 손자의 것은 내 것이다’ 하고 말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 있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가정이 있기 전에 종족이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종족이 있기 전에 민족이 있을 수 없는 것이요, 민족이 있기 전에 국가가 있을 수 없는 것이요, 국가가 있기 전에 세계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천주주의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천주주의는 무엇이냐? 가정을 두고 말하면, 내가 살고 있는 가정에 금은 보화가 천하를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취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잊어버리고 언제든지 하나님의 사랑에 취해 살 수 있는 그런 가정입니다. 아들의 것은 부모의 것이요, 부모의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고스란히 연결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가는 원리의 길은 하나님 앞에 물질을 먼저 내세워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피조세계를 창조하실 때 만물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이 먼저 나타났고 그 다음에 아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로 나가려던 맨 앞에 만물을 세워 놓고, 그 다음에 아들을 세워놓고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 아버지가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 목적은 만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물을 부정했던 것입니다. 아들만 찾게 되면 만물은 거기에 자연적으로 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부모만 찾게 되면 아들은 태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부모를 찾아 나오는 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35-282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수 있는 사람
그러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드릴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자기 혼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가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그래 가지고는 완성의 자리에 못 가는 것입니다. 보람된 자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아무리 자유세계와 천지가 기억할 수 있는 은사의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들딸과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질과도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주의는 천주주의인고로 가정을 중심삼고 상속시키고 가정을 중심삼고 입적시켜야 됩니다. 그런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입적할 나라가 없기 때문에 입적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입적할 나라가 아닙니다. 이런 운명에 처한 우리는 집시의 무리요, 부랑의 무리요, 유랑의 무리와 마찬가지 신세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하나의 토대를 잡아 가지고 하나의 주권을 세워야 합니다. 수많은 민족 고난의 권내에서 하나의 보람있는 가치를 중심삼고 그 민족들을 복귀시킬 수 있는 주체성을 갖는 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앞으로 입적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축복받으러 나가는 것은 입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입적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입적할 수 있는 나라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어떤 나라냐? 주권은 부모를 대신하고, 백성은 아들을 대신하고, 국토는 물질을 대신하여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주권이 있어야 되고, 백성이 있어야 되고, 국토가 있어야 됩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내 것이냐, 아버지의 것이냐 하는 이 관계를 어떻게 전개해 나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생활하면서 경계선에 부딪치는 가장 큰 문제입니다. 알겠어요? 내 것이냐, 아버지의 것이냐? 공적인 것이냐, 사적인 것이냐? 이에 대한 재교육을 이제부터 전개하려니 사탄이 먼저 역사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전체를 위하여 무슨 문제를 제시했다가 이것이 잘못되면 이 나라는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한 가정은 한 나라를 이루는 데 있어 세포와 마찬가지입니다. 갑이라는 사람이 개인으로서 지녀야 할 모든 요건을 다 지니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한 가정은 한 국가를 이룰 수 있는 요건을 다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통일교회는 가정을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35-283
어떻게 감사하는 생활을 할 것인가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은 여러분이 감사하는 생활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감사하느냐? 지식이 많은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이 고생이 많다고 하겠지만 그 일면에는 자식이 없는 사람이 느껴 보지 못하는 그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식을 길러 본 사람은 그것을 알 것입니다. 자식을 길러 본 사람과 자식을 길러 보지 못한 사람을 두고 볼 때, 자식을 길러 본 사람은 자기 자식들이 아무리 복잡하게 들썩거리더라도 삶의 보람을 느끼지만 자식이 없는 사람은 그런 것을 못 느낀다는 것입니다.

자식들로 말미암아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처하고 있는 환경이 복잡하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내일의 소망이 접붙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남이 갖지 못한 아들딸이 많으면 많을 수록 각 분야에서 사방성을 갖추어서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어려운 환경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감사하는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물질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물질을 가지고 자기 아들딸을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을 가지고 나라를 먹여 살리겠다, 세계를 먹여 살리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대했을 때 그물질이 작더라도 세계를 위해 주고자 하며 정성들이는 사람과 그 물질을 붙들고 자기 아들딸을 위해서 남겨 주고자 벌벌 떠는 사람을 하나님이 보실 때,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선은 반드시 공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물질이라도 하나님을 위해 정성들인 것이라면 그것으로 세계를 걸고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가진 것이 백 원밖에 없는 사람이 그 백원에 하나님의 사랑을 걸고 들어가게 될 때는 그 백원은 전체를 대신하고 그 사람의 인격을 대신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치의 땅 짜박지라도 이것을 일컬어 내 재산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전부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니 다시 돌려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니 하나님께로 가치있게 돌려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역사는 영글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받았으니 그렇게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세계가 되지 않으면 이 땅은 천국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루 24시간의 생활권내에서 내가 보고 듣고 했던 모든 일들은 무엇을 위해 보고 들은 것이냐?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보고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느끼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느껴야 합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천상세계의 생활과 연결시켜 생활해야 합니다. 천상세계의 생활을 못한 사람은 천상세계를 터득할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효자는 부모의 사랑에 연결시켜 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에 효자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며, 충신이란 자신의 생활 전부를 나라와 일체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에 충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의 물건을 주고받을 때는 세계의 것으로서 주고받아야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 생활 가운데서 얼마나 느끼고 체득하며 살고 있느냐? 여러분 중의 어떤 사람이 ‘아! 나는 통일교회를 몇십 년 믿었는 데 교회를 믿다가 이렇게 불쌍한 신세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데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 주느냐? 또 누구를 위해 받느냐? 하나님을 위해 주어야 되고, 하나님을 위해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받았으니 하나님을 위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주었으니 자기를 위해 받겠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 가운데서도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그런 입장에서 자기를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받고 싶다고 했을 거예요. 타락한 인간은 이것이 다르다는 겁니다.

35-285
주고도 부끄러워하고 받으면 황공해 하라
여러분은 누구를 중심삼고 주고받아야 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고받아야 되겠습니다. 사적인 것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을 주고받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누구에게 한 가지 물건을 주었다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그것만을 주고 싶으실 것이냐, 아니면 그보다 더 큰 것을 주고 싶어서 마음 아파하는 경지에서, 주면서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실 것이냐? 이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주면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면서도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주면서도 남과 같이 입히지 못하고 더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고 한스럽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우는 것을 보면 저절로 눈물짓는 부모의 심정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적인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가진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들은 훌륭한 아들이 될 것입니다. 그 아들은 공적으로 태어났으니 세계를 위해 주고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주고도 부끄러워하는 마음 자세, 받으면 부끄럽고 황공하여 어쩔줄 모르는 이런 마음 자세를 늘 갖추고 사는 사람이 감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는 전개되는 것이며, 이러한 내용들을 통하여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국경을 넘는 국제결혼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 나라의 어느 누구도, 그 민족 역사의 어떤 동기도 지배 할 수 없는 권한을 가지고 원수 세계를 통일시킬 수 있는 하나의 세계적인 권한을 갖고 나서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을 고귀한 사람으로서 존경하고 칭찬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수난의 길을 가면서도 감사하다고 할 수 있고, 그러고 나서도 자기의 부족함을 탄할 수 있는 무리가 있다면 이들은 세계를 재패할 것이요, 사상을 지배할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에서 눈물지으며 감사해야 합니다. 부족하고도 부족한 자신에게 바라지도 않았던 것을 갖추어 주신 하나님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받았기 때문에 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갖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나 두고 보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감사하는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5-286
반갑게 주고 고맙게 받는 생활
만일에 아담 해와가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이 말씀을 감사히 받고 그렇게 높고 귀하신 분이 ‘부끄러운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하면서 황공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고 자신들이 조심스럽게 행동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했다면 타락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을 주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을 주고 나서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사는 가정은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공적, 사적인 문제에 있어서 사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공적인 터전에 연결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은 틀림없이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때가 문제이고, 그 기간이 문제일 뿐이지, 그런 사람은 자신의 생활권내에서 하나님의 일을 상속받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여러분 자신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뜻길을 가는 사람은 묵묵히 그냥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그 음성 가운데는 숱한 수난의 고빗길의 한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피어린 투쟁의 노정을 거치면서 피 묻은 옷을 입고 나오신 아버지를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께서는 고생하면서도 주고 싶고, 주고도 또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역사적 수난의 고빗길을 넘어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주고도 부족한 것을 느끼고 받을 때는 고맙게 받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모양이야 어떻든간에 반갑게 받고 고맙게 받는 그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우리들은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통일교회 교인이 잘났다고 자랑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언제나 반갑게 받고 언제나 고맙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요, 또 고맙게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이러한 전통을 세워 나가는 통일교회라면 통일교회는 세계 역사와 더불어 끊기지 않고 영원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활을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길은 모든 것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길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생사문제를 중심삼고 타락한 것이 기원이 되어 이렇게 곡절의 길을 엮어 왔기 때문에 이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긍정해야 합니다. 현실에 있어서 미래를 긍정하는 마음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걸 알고 실천해 가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5-288
기 도
아버님, 당신께서 저희에게 너희는 어디로 가느냐, 너희는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가느냐 하고 묻게 될 때, 당신 앞에 부끄러움을 나타내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가지고 어디로 가느냐 할 때, 아버지의 뜻을 갖고 아버지의 사랑을 찾으러 간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늘을 소유한 자요, 땅을 소유한 자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들의 생활은 윤이 날 것이며, 이들의 생활 터전은 빛이 날 것이옵니다. 그 사람은 가고 난 후에도 만민의 추모의 대상으로 남아질 것이옵니다. 하오나 자기를 중심삼고 당신 앞에 부끄러운 내용을 남기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생애를 마침과 더불어 망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겠다고 밤낮없이 날뛰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될 때 그 돈은 누구를 위하여 버는 것이냐? 그들은 자기 자식을 위하여 번다고 할 것이옵니다. 그러면 그 자식은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그 자식들은 자신의 생존만을 위하는 길을 갈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는 길을, 더 나아가 세계를 위하는 길을 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종족은 반드시 망하게 되고, 다른 종족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지배받지 않고 나오신 분이었지만 그 아버지의 마음은 주면서도 부끄러워하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본연의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온통 사랑을 주고 싶었던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단계적으로 섭리해 나오시는 아버지의 마음에는 수천년 동안의 서글픔이 어려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복귀섭리과정에서 소생시대, 장성시대, 완성시대라는 험준한 고빗길을 단계적으로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아버지의 입장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오늘날까지 당신께 감사할 줄 몰랐고, 보답할 줄 몰랐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도 그럴수록 언젠가는 다 주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슬픈 역사를 이끌어 오신 아버지의 내심을 저희들은 살피게 되옵니다.

오늘 아버지의 슬펐던 마음을 털어 놓고, 세계를 대신하여, 역사를 대신하여, 천주를 대신하여 주고 싶으셨던 심정을 토로하는 이 시간, 당신앞에 전체를 받아서 전체를 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지 못할까 두려움을 느끼는 당신의 아들딸이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아버지, 만물을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친 사람이 그것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주면서도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는 아버님의 사람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 민족에게 많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준 것이 통일교회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편으로써 주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만일 통일교회 교인들이 통일교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주었다면 발전을 하더라도 교회라는 한계선을 넘지 못하는 발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민족을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하늘땅을 위하여 주고 싶어하는 마음에 젖었다 할진대, 그 마음 앞에는 민족이 굴복당할 것이요, 세계가 굴복당할 것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를 움직일 수 있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교회가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만을 위해 주었다면 교회의 한계점에서 끝나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1960년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1970년도의 막바지를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많이 받았으면서도 주기를 회피했던 과거를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또다시 3년노정을 개척해야 할 운명길 앞에 선 저희 축복가정들은 남편과 아내가 마음을 합하여 서로 주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주고 나서도 서로가 부족한 마음을 느끼며, 더 주고 싶은 마음에 손에 손을 붙들고 눈물지을 수 있는 그러한 가정이 되어야 할 것이옵니다. 그러나 그런 가정을 이루지 못한 저희들임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 아버지의 서럽고 외로운 사연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통일교인인 나 자신이 그와 같은 자리에 서지 못한 것을 느낄 적마다 아버지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옵니다. 하오나 저희들은 그 길을 가고 또 가야 되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생애를 다 바쳐서 가야 되겠습니다.

다 주고도 더 못 주는 것을 한하면서 더 주고 싶어서 몸 마음을 바쳐 불타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없어지는 자체까지 부정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이 소유할 것이며, 하늘 전체가 그에게 연결되어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중심의 자리에서 아버지와 연결될 수 있는 아들딸이 이 시간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부끄러운 자리에서 받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주는 것이 통일사상의 본질적인 노정이라는 것을 스스로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가정 전체를 복귀해야 되겠기 때문에 물질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형제들이 모일 수 있는 날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옵니다. 저희가 자식을 기르는 것은 부모된 자신을 위해서 기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기르는 것입니다. 부모도, 그 가정 자체도 세계를 위해 가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러한 가정을 세워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세계를 위하여 가는 저희들은 행복한 입장이라는 사실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놀라운 자리에 저희들이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되겠사옵고, 그 생활은 아버지와 더불어 사는 생활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부가 일체가 됨으로 말미암아 미래의 효를 현실적 생활 요소로써 흡수할 수 있고, 미래의 승리에 대한 감사의 심정이 현실적 생활무대에 나타날 수 있는 놀라운 터전이 벌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이런 승리의 기점을 잃어버리지 않고 확고하고 공고하게 세워, 생애 전체를 아버지께 귀결시킬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들이 이제야말로 감사하는 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이 아침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9월에 있었던 와클(WACL)대회도 당신께 감사드리옵고, 이번에 있었던 행사도 무사히 마치게 하여 주신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옵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이 민족 앞에 줄 수 있고 세계에 설 수 있기 위하여 저희들 스스로가 묵묵히 순서를 갖추어 정성을 다하여, 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통일교회 무리가 되어야만 이 민족을 굴복시키고, 세계를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길을 가는 것이 천주주의를 세우는 기준이라는 것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도 당신의 뜻을 중심삼고 모이는 곳곳마다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거룩한 성일을 찬양하고 새 생활을 추구하며 묵묵히 나가는 그들에게 당신의 영원하신 가호의 손길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이 당신의 구원섭리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또한 올바로 받을 수 있고 올바로 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고, 가정이 되고, 종족이 되고, 민족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