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84 to 35-192: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길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길
1970.10.13 (화), 한국 중앙수련원

35-184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길
지금까지의 역사상에 있었던 모든 희생은 결국 나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인격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역사는 눈물없이는 볼 수가 없다. 통일교회 식구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 생활을 해야 한다.

35-184
눈물의 신앙생활
일주일 동안 아무도 자기를 상대해 주지 않더라도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으면 안 된다. 하나님과 마주 대할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을 느낀다. 이런 나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가? 우리는 쓰라린 역사를 담당해 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밤도 낮도 없으시다. 몇 천년이나 계속해서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시면서도 후퇴하지 아니하시고 섭리를 계속해 오신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하신가?

눈물이 메마른 자는 통일교회 식구가 아니다. 눈이 부어서 태양을 볼 수 없을 만큼 계속 울어본 적이 있는가? 참다운 효자 효녀라면 한마디의 말로 하나님을 울릴 수 있다. 또, 하나님의 한 마디의 말씀으로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억누를 수가 없어야 한다. 언제 자신의 감동적인 말 한마디로 하나님이 우신 적이 있는가? 하나님과 끌어안고 일체가 되어 감사해 본 일이 있는가?

세계의 누구 한사람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었던 내용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없으면 영계에 가더라도 비참하다. 심정이 문제이다. 자식으로서는 하고 또 해도 더하고 싶고, 그리고 또 찾아서라도 하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하고 싶고 또 하고 싶고 그것이 영원히 계속할 것 같은 심정인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서 맞이하는 사람이 통일교회 식구이다.

35-185
북한의 감옥
선생님은 북한 공산당의 감옥에 들어가서 2년 8개월 동안 중노동을 했다. 무슨 노동이었냐면, 비료공장의 일이었다. 유산암모니아 공장에서 가루가 콘베이어에 실려 공장 한가운데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을 저울에 달아 자루에 가득 넣어 화차에 싣는 일이다.

열처리를 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떨어지는 유산암모니아는 뜨겁다. 그것이 식으면 덩어리가 된다. 그것을 몇년 동안 놓아 두면 바위처럼 되어버린다. 참으로 힘든 중노동이었다. 하루 8시간의 노동시간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분담이 있다. 열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일을 한다. 한 조의 하루 책임량은 천 삼백 가마니로서 8시간 이내에 끝내지 않으면 식량이 반으로 줄어들게 되어 있었다. 하루에 주는 밥은 작은 공기로 1. 7공기 가량이다. 반찬은 아무것도 없고 국은 된장국이 아닌 소금물이다. 그것을 먹고 8시간 노동을 하는 것이다.

중노동을 시켜서 죽게 하는 것이 공산주의의 작전이다. 여기에 들어와서 3년이 지나면 모두 죽어 나간다. 반드시,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 3년 이내에.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중노동을 시키기 때문에 이 공장에 들어오는 사람은 우선 죽어 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세상 보통 사람의 기준으로는 하루에 세 끼 기름끼를 먹고 최고로 하여도 하루 칠백 가마니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공장은 그 배에 가까운 양을 하게 되는 것이다. 먹을 것은 적어서 큰 입으로 세 입이면 끝나 버린다. 그러고서 중노동을 하는 것이니까 조반 먹고 공장으로 향하는 그 길에서 벌써 다리가 몇 번이나 휘청거리는 것이다. 그러한 다리를 끌고 가서 아침부터 일을 한다. 그것은 정말 비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35-186
정신력의 승리
선생님은 공산당의 정책을 상당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했다. 선생님은 주는 밥의 반절만 먹고 살아가기로 결심을 했다. 인간은 빵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차피 이 밥으로는 죽어버린다. 그러니까, 이 밥의 반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기까지는 반 달이 걸렸다. 자기가 반절 먹고, 남은 반은 나누어 주었다. 얼마나 자기가 정신적으로 행복한가? 날마다 얼마나 감동의 양을 크게 하는 가가 문제였다. 정신적 위안은 실로 큰 것이다.

생활은 과학적이다. 노동하는 가운데서도 노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치 않는다. 노동 시간이 기도의 시간이었다. 언제나 세계적인 여러 가지 일을 상상하는 것이다. 아침 8시에 감옥을 출발하여 10시에 공장에 도착한다. 10분간 화장실에 갈 시간이 주어진다. 벌써 죽고 싶을 만큼 피로해진다. 위가 녹아 버릴 정도의 쓰라림을 느낀다. 그래도 그 일을 전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다만 휴식 시간만을 머리에 그리게 된다. 정미 40Kg을 넣어서 그것을 들어 올리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모두 싫어한다. 선생님은 모두가 싫어하는 이 어려운 일을 도맡아 했다. 이 어려운 일을 계속하면 죽는다. 그래서 가장 힘든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체력을 만드는 것 외에는 살아 낼 길이 없다. 여러분도 가장 어려운 일을 맡아 하라. 그렇게 전진적으로 생각하라.

하루에 천 삼백 가마니 이상 넣고 운반하는 것이니까 이미 쉴 틈이 없다. 천 삼백 가마니라고 하면 이 강당(수택리)보다도 더 큰 산이 된다. 생각해 봐라. 천 삼백 가마니다. 이것을 8시간에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비료를 자루에 넣고 달아 가지고 가마니를 옮기는 데 5분에서 10분 걸린다. 평균적으로 5분간에 해치운다. 다른 사람은 15분 걸린다. 이렇게 시간이 걸려 가지고는 책임분담을 다할 수 없다. 산을 헐어가는 것이니까 저울을 이동해가는 데, 4-5미터 이상 저울을 움직였다가는 늦어진다. 그래서 과히 움직이지 않고 넣는 방법을 연구했다.

모두들 이 방법에 따르지 않으니까 할 수 없이 혼자서 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모두 역시 양심이 있으니까 선생님은 천 삼백 자루 가운데 반이상을 혼자서 하니까 따라오게 된다. 선생님은 모범 노동자였다. 공산당으로부터 매년 모범 노동상을 받았다. 그때의 체중은 19관 3백(72Kg)이었다. 지금은 21관(81Kg) 가깝게 나간다. 선생님은 겉으로 보기는 얼마 아니 될 것같지만 뼈 무게가 있다. 다른 수인들은 모두 여위어 가는 데, 선생님은 야위질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모두의 연구 대상이었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선생님이 교육하였다. 몸은 유산에 해를 입는다. 머리가 빠지고 피부를 짜보면 물이 나온다. 6개월이 지나면 반드시 각혈을 한다. 대개 폐병이라고 생각하고 낙담하기 때문에 죽어버린다. 기껏 1년 반이나 2년밖에 견디지 못한다.

35-187
어느 정도 배가 고픈가
어느만큼 배가 고픈가, 밥을 얼마만큼 먹고 싶었는가 하는 것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자기 가족이라든가 누가 면회올 적에는 무엇인가 가지고 오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라도, 그리웠던 어머니라 할지라도 온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기보다 먼저 가지고 온 물건에 눈이 간다. 면회 때에는 가지고 온 것을 먹을 수 있다. 그렇게 보고 싶던 아내나 어머니라도 그런 것보다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쁜 것이다. 공장에서는 좀처럼 먹을 것을 주지 않으니까 면회 때에도 먹을 것이 주어지지 않으면 사회문제가 되어 시끄러우니까 이것은 허락되어 있었다.

면회와서 미싯가루를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만큼 슬픈 적이 없다. 어버이가 죽는 것보다 더 슬프다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어느만큼 배가 고프냐 하면, 배가 고프면 위액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냥 위가 운동하게 되니까 열이 난다. 그래서 침이 껌과 같이 죽 늘어난다. 그것은 아마 상상도 안 될 것이다. 가장 그리운 것은 실컷 먹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밥이 그립다.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어떤 사람이 면회를 와서 미싯가루를 가져오면 그것을 반죽해서 떡을 만든다. 그러나 돌로서 반죽하면 돌에 가루가 묻으므로 돌을 별로 쓰지 않는다. 돌에 가루가 묻으면 벌써 경쟁적으로 그것을 뜯어 먹는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다 연구하지 못할 경지이다.

밥이 어느 정도 그리우냐. 그것은 죽는 경지를 넘을 정도로 밥이 그리운 것이다. 공장에 나가지 못하는 때는 반드시 밥이 반으로 줄어든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는 것이 공산주의의 철칙인 것이다. 병이 나더라도 다른 사람과 같이 한 그릇의 밥이 그리워서 죽을 힘을 다해 나간다. 그리고 최후의 힘을 다하여 일하고 돌아와서 저녁밥을 먹으면서 죽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주변에 있는 자들이 죽은 사람의 것을 전투적으로 빼앗아 간다.

선생님은 그런 가운데서 인간의 깊은 곳까지 연구했던 것이다. 이 먹을 것을 그리워하는 만큼 내가 하나님을 그리워하는가. 선생님은 매일 비교 대조하면서 지내온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밥 한 덩어리를 먹기 위해서 들어온 것은 아니다. 만인의 탕감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들어온 것이다’ 자기 일에 대해서 불신하는 것 같은 태도는 절대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은 유명하였다.

그리고 절대 말을 하지 않았다. 공산당의 조직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더라도 영계에서 협조해 준다. 사람은 뜻을 위하여 사는 이상 걱정할 것은 없다. 하나님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도와 주신다. 선생님은 항상 가장 낡은 옷을 입고 있었다. 좋은 것은 남에게 주고 떨어지면 대나무로 바늘을 만들어 꿰메어 입었다.

35-188
수인 번호 596번
일요일은 쉬었다. 모두는 시체인 양 쓰러져 버린다. 선생님은 절대로 자지 않았다. 규칙적인 생활을 계속했다. 선생님도 어떤 때는 너무나 무리해서 병이 난 일이 있었다. 말라리아를 1개월 동안이나 계속 앓았다. 그러나 자기의 책임분담에는 용서가 없었다. 언제나처럼 같이 일했다.

선생님은 감옥에서의 수인 번호가 596번이었다. 영계의 조상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선생님과 인연맺게 하려고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무슨 차입물이 있게 되면 영계의 조상이 나타나서 반을 596번에게 갖다 드리라고 하는 옛날 이야기 같은 일이 있곤 하였다. 통일교회는 이러한 생활권에서부터 시작됐다. 영계는 천사장권이니까, 천사장으로서 그 사명을 하지 못하면 아담의 영광권과 관계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수십명이 전도되었다. 어떠한 비참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선생님은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였다.

1950년 8월 1일 백 대 이상의 B-29기가 총공격하여 흥남공장을 크게 폭격하였다. 선생님은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을 뿐아니라 선생님으로부터 직경 12미터 이내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겠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모두 선생님 주위에 있도록 일렀었다.

선생님은 그런 중에서 가만히 명상을 하고 있었다. 폭격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금후의 이상 세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사상이나 이상을 가진 사람이 가치있는 것이다. 이처럼 복귀의 사명을 하는 이러한 사람을 영계에 데리고 가면 하나님에겐 천주적인 손해다. 하나님은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방비해 주고 싶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매일 감상문을 쓰라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쓰지 않았다. 그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에 있어서는 할 만큼 하고 있었으니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산주의가 좋다고도 쓰지 않았고, 나쁘다고도 쓰지 않았다. 언제나 백지를 냈다. 선생님은 그런 전법을 취해 왔던 것이다. 선생님은 5년 형으로 입감하였다.

연합군이 공격하여 왔을 때 공산당은 수인들을 처분하고 갔다. 바로 선생님 앞 사람까지 전부 죽였다. 어느날 삼베 끈을 모으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직감적으로 최후의 때가 점점 가까왔다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은 정말 심각한 기도를 했다.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그것이 최후의 길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우물 속에 거꾸로 처박아 죽였다. 다음 차례가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총공격이 있어서 새벽 2시경부터 도망쳤다. 그때 몇 사람의 제자를 데리고 평양으로 해서 남한으로 내려와 통일교회를 재출발했던 것이다.

감옥에서의 생활은 아무리 괴롭다고 하더라도 남에게서 은혜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절정에 설 수 있는 방책이다. 남들로부터 혜택을 받는 것은 탕감의 길에서는 허락되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운 자리에 설지라도 자기가 할 것은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신으로도 물질적으로도 해냈다고 하는 입장을 넘지 않고서는 완전탕감했다는 입장에 설 수 없다. 천 삼백 가마니를 매일 들어 올렸다. 그러고도 끄덕도 없었다. 무엇에 의해서 극복할 수 있었던가? 그것은 정신력이었다. 이런 체험이 선생님 생애에 있어서 마이너스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있다면 여러분에게 다 얘기해 주고 싶고, 이것을 기록으로 남겨 주고 싶지만, 정말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한 일이었던 것이다.

35-190
출옥
출옥한 후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나그네였다. 평양에서 남한까지의 약 3개월 간은 걸식을 하였다. 묵묵히…. 어떤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먹고싶은 때도 있었다. 그러한 방랑의 생활을 하였다. 영계는 선생님을 사랑하는 모양이야.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오늘 먹을 것이 없으니 뭐라도 주십사’하는 기도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도리어 하나님을 위로하고 잠을 자곤 했다.

어떤 때는 ‘내일은 틀림없이 어떤 어여쁜 부인이 길가에서 무엇인가 줄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음날에는 틀림없이 생각했던 그대로 새하얀 옷을 입은 부인이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실로 어젯밤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라고 하는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드십시오’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많이 있었다. 이러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산 실적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도움을 준 부락에는 때가 오면 은혜를 갚으려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분들이 그때의 선생님 심정을 느끼게 된다면 여러분은 눈물을 금치 못할 것이다. 하나님도 그러시다. 선생님과 하나님이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던 슬픔은 지상의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그 깊고 깊은 하나님에게 향한 심정은 측량할 수 없다. 그것을 생각하면 온통 세포가 저려오는 것만 같다. 그런 심정으로 효행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겠어요?

식구들이 영통하게 되면 선생님이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된다. 친구들도 성진이의 어머니도, 누구도 몰랐다. 오직 혼자 해 왔다. 참고 견디면서 해 온 기간이었다. 그런 것을 꺼내어 찬양하면서 선생님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청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참을 다하라고 영계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두어들이게 된다. 몇십 배 몇백 배가 되어서 거두어 들여진다.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심은 것은 아주 근소한 것인데, 몇 배, 몇 천만 배로 하여 수확케 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안 것만 가지고도 선생님은 하나님께 어떻게 보답 할 것인가 생각한다.

35-191
감사하는 마음
뜻 성취가 가까와짐에 따라서 더욱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더해 오는 것이다. 선생님에게 반대한 사람을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하는 생각은 꿈에도 없다. 만약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이 때리면 이 지상에 한 사람도 남아 나지 않는다. 벌써 수천년 전에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심정에 상처 입혔다고 해서 그것을 보복하려는 생각 따위, 그러한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는 다. 그것은 우리 통일교회가 가르침의 길을 다 개척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렇게 가르치지 못한 것은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생님에게는 적이 없다. 옛날에 반대하던 사람들을 선생님은 가끔 길에서 만난다. 그러나 그들은 선생님을 만나면 달아나 버린다.

이러한 배후의 역사를 갖고 통일교회는 탄생된 것이다. 그러한 뿌리를 지상과 영계에 폈기 때문에 지금 싹이 튼 것이 통일교회이고, 그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지금 여러분들의 입장이다. 그 뿌리에 필적한 힘을 가지고 새싹으로서, 어린 가지로서 성장해 가면 된다.

배후의 관계는 여러분들은 몰라도 괜찮다. 그러나 선생님은 뿌리의 사명이 있기 때문에 할 수가 없다. 이것을 세계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가지를 잘라서 접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 선생님이 통과한 것의 몇분의 일이라도 통과하지 않으면 접붙여지지 않는다.

35-192
어머님에게 미안할 뿐이다.
선생님은 어머니에 대해서 내외적으로 이런 사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많이 있다. 여자로서의 마음을 알고 있다. 한창나이에 여자로서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할 수 없었으니까…. 오히려 누구도 할 수 없는 애정의 대가로 부상(浮上)되는 것이다. 피곤하여 잘 때,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큰 절을 한다. 그런 심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방은 행복한 방이다. 꽃이 만발하여 향기가 나는 …. 그런 꽃 향기 가운데 하나님은 사시는 것이다.

남편이 돌아와서 저녁도 들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코를 골고 자버린다면 그 코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 코고는 소리 이상으로 우는 소리가 자기의 가슴으로부터 끌어오르는 여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가정을 보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소원이다. 만약 그런 것을 보지 못한다면 선생님의 고생은 헛된 것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육천년의 희생은 헛된 희생이 되고 말 것이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가슴이 막힐 정도의 아픔을 느낄 때 누구도 그것을 풀 수가 없다. 하나님 자신도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자기의 심정을 이해하는 횡적 상대가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일일 것인가. 그리고 상대가 결점이 있으면 하나님에게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무거운 짐을 덜어 드리는 조건이 된다. 상대가 하나에서 열까지 자기보다 모자랄 때에는 도리어 하나님 앞에 자기를 내보일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

개척 전도를 하게 되면 살아 계신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들 주위에 함께 지켜 주고 계심을 체험할 수 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반대 방향으로 가버릴 경우에는 그 앞길이 길지 않다. 반드시 그 자식이 벌을 받게 된다. 우리를 박해한 사람의 자식이 너무 비참하게 되니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곳은 통일교회라고 다 알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반대한 부락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사죄를 한다. 반대한 사람들은 모두 벌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가는 일은 어렵다. 3대가 걸려 있다. 죽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가정 안에 심정의 최후의 기반이 남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