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20 to 35-151: 통일의 무리

통일의 무리
1970.10.11 (일), 한국 전본부교회

35-120
통일의 무리
[기 도]

오늘은 1970년 10월 11일, 이달 들어 두 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당신의 은혜와 사랑의 손길이 이 자리에 모인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또한 이달을 아버지 앞에 승리의 달로 돌려 드리지 않으면 안 될 세계적인 사명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기간은 각지에서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한곳에 모여서 21일에 있을 행사(777쌍 축복)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모든 일체가 아버지의 뜻 가운데에서 일취월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적인 모든 요소를 제거하시고 당신이 직접 주관할 수 있는 사랑의 은사권내에서 성취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행사를 축복하여 주시옵고, 이행사를 위하여 정성을 모아 기도하는 자녀들 위에도 당신의 사랑의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이곳을 향하여 마음 모아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고 아버지 앞에 지성을 드리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친히 그들을 찾아가시사 위로하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또한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자녀들도 이곳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무리가 많은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 배후의 일체를 아버지께서 직접 주관하시옵소서.

이 행사를 위하여 남아진 기간에 계획하는 모든 전체가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일취월장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과 땅이 연결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고, 아버님의 소원과 인류의 소원이 성취될 수 있는 거룩하고 특권적인 이 행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행사를 통하여 하늘이 기뻐하고 땅이 기뻐하는 동시에 만민이 화답할 수 있는 직접적인 영광의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고로 이런 역사적인 축복의 한날을 갖지 못하신 아버지의 서러움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이번 축복이야말로 역사적인 서러움을 탕감하고 아버지께 남아 있는 서러움을 제거할 수 있는 중요한 행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소수의 자녀들이 모였사오니, 저희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사는 사람,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사는 사람, 아버지의 뜻을 위해 싸우는 하늘의 아들딸임을 자각해서 영광돌릴 수 있는 이 아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것을 가지고 당신께 충성하지 못한 자신인 것을 탓하면서 남은 생애를 뜻을 위하여 전체를 바쳐도 부족한 자신임을 느끼고 당신의 고마움을 깨닫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당신께서 분부하고자 하시는 그 뜻과 사명 앞에 저희들은 언제나 옹졸한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활달한 자리에서 영광의 존전 앞에 불리운 존재로서 아버지의 아들딸의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하늘과 땅 앞에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망의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한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말못할 어려운 환경에서 실천궁행하여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가야 하는가를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도 그냥 분해되어 버리는 저희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말씀을 듣고 기뻐함과 동시에 뜻을 중심삼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이것을 후대 사람에게 참된 것으로서 옮겨 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나라의 식구들이 본부를 앙모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얼마나 얼마나 그들을 품고 싶으셨사옵고, 역사시대를 통하여 배후의 수많은 나라를 대해 나오시며 거기에서 그들을 찾기를 얼마나 고대하셨사옵니까? 그러한 당신의 아들딸이오니 이제 그들을 세우시어서 당신께서 분부하신 세계적인 사명을 다하고 아버지의 그 뜻앞에 승리를 다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777가정이 아버지 앞에 완성의 한 기준을 다짐하고,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을 향하여 개문할 수 있는 특별한 계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일체도 아버지 앞에 맡기었사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이번 행사를 위해 정성들이며 수고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일체 당신의 예정권내에서 보호하고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의 모든 것을 뜻과 더불어 기꺼이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5-122
말 씀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스스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임을 자처하고 있을 것입니다. 나 자신은 오늘이라는 역사과정에 있지만 역사노정에서 흘러가는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타락권내에서의 인간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고 있었지만 타락권의 역사적인 환경을 초월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35-122
악의 길을 버리고 선의 길을 추구해 나가야 할 인류
하나님의 뜻과 사탄의 뜻은 한 방향을 갖추어 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악이 동으로 가면 선은 서로 가야 되는 서로 상반된 입장에서 반드시 다른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은 한 방향을 갖추어 서로 평행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악의 길을 버리고 선의 길을 추구해 나가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추구하는 무리들은 악한 세상에 흡수되거나 보조를 맞추어 가는 것이 아니라 악한 세상을 배척하면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완전히 분립되는 것이 본래 우리 인간이 바라는 소원입니다. 따라서 선과 악이 투쟁해 가지고는 선의 완성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선과 악은 어차피 같은 운명의 자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역사 가운데의 내 개인이라는 것은 타락권내의 개인이므로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자신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이 지금까지 도의 길을 갔던 수많은 뜻 있는 사람들이 싸우며 찾아나온 내용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역사상에서 그러한 역사의 환경을 초월하고 역사적인 시대권을 극복하고 넘어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한 선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새로이 결의를 해야 한다고 성경에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고 했습니다. 그러면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그 한계선이 어디냐? 그것은 죽음을 각오할 수 있는 그 이상입니다. 죽고 나서 부활할 수 있는 입장이라 하더라도 그 부활된 몸이 또다시 뜻을 위하여 죽을 수 있을 만큼 정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르쳐 준 것이 바로 성경에 나와 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타락한 몸으로 태어난 인류는 타락한 세상에서 그냥 그대로 살고 있는 자체로서의 선과 접붙일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부정이라는 관문을 통해 가지고 재생을 함으로써 선한 입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만이 하나님과 더불어 새로운 선의 이상세계를 향해 선의 행로를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타락한 인간이 기필코 가야 할 소원의 길이요, 이것을 다짐하며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각자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5-123
통일의 역군들이 가야 할 길
그러면 통일은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그것은 통일의 무리를 통해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통일의 무리는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이 무리는 지금까지의 역사권내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역사를 부정하고 새로운 충효의 가치를 세워서 그것을 세계적인 가치로 삼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그 자리에 있는 한 개인을 주체로 하여 서로 상대적인 환경을 횡적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데서부터 통일의 무리가 자연히 형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무리가 소원하는 목적은 개인만을 구원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구원이 완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새로이 통합할 수 있는 통일권을 또다시 형성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기준에서 하나된 가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가정을 넘어 종족구원이 남아 있는 것이요, 종족을 넘어 민족구원이 남아 있는 것이요, 민족을 넘어 국가와 세계의 구원이 남아 있는 것이요, 나아가 세계를 넘어 천주구원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개인구원에서부터 천주구원까지 이루려면 숱한 단계의 투쟁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탕감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주구원의 단계에까지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개인적인 투쟁에서 승리하여 가정의 기반을 맞을 수 있는 입장에 섰다 하더라도 가정을 중심삼고 투쟁하여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고는 민족적인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민족의 형태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투쟁하여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민족적 투쟁노정을 거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탕감의 조건에 해당하는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선의 세계를 찾아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종교인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닦아 나온 길이요, 또한 종교를 믿는 가정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닦아 나온 길이요, 종교를 믿는 수많은 종족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그 고개를 넘기 위해서 투쟁해 나온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 그 어떤 가정을 통한 종족, 그 어떤 종족을 통한 민족, 나아가 그 어떤 민족을 통한 국가, 그러한 입장에 선 국가를 통한 세계, 세계를 통한 천주라는 이 엄청난 단계에 이르기까지에는 끝없는 투쟁의 과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과연 나 자신이 이 길을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은 수난을 덜기 위한 길이 아닙니다. 삼천리 반도뿐만이 아니라 지구성을 돌고 돌며 피땀의 인연을 엮어놓고도 부족함을 느껴야 하는 타락된 후손의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는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 길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개인을 구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며, 새로운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가정의 갈 길을 개척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또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야 할 길을 개척해 주고 그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해야 하는 것이 선의 책임이니 역사적인 전체 분야의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는 통일의 역군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35-125
하나님께서 찾는 통일의 무리가 되려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통일의 무리를 어디서 찾느냐? 하나님께서는 통일교회에 있는 무리들 가운데에서만 그런 무리를 찾으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개인적인 탕감의 고개도 넘지 못하고 싸워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가정적인 탕감노정을 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종족적 탕감노정, 민족적 탕감노정, 국가적 탕감노정, 세계적 탕감노정 등 횡적으로 8단계의 운명길을 거쳐 나가야 할 우리의 행로는 비참하다면 비참한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는 자기 생각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상충의 현상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그 여력으로 제2차의 출발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할 때 통일의 무리라는 그 명사는 얼핏 보기에는 바람직한 명사요, 가야 할 길은 누구든지 가야 할 길이요, 누구든지 그리워해야 할 길이요, 누구나 이루어야 할 그런 길입니다. 그렇지만 통일의 무리가 가야 할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통일의 무리를 어떤 자리에서 찾고자 하실 것이냐? 물론 개인과 가정을 통할 수 있는 통일의 무리를 찾고자 하시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악의 인연을 초월한 통일된 종족과 악의 인연을 벗어날 수 있는 해방권을 가진 통일된 민족, 나아가서는 통일된 세계, 더 나아가서는 통일된 천주를 통할 수 있는 자리에서 찾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의 무리가 그것을 이루면 천주권내에서 그들이 아무리 종횡무진이라 하더라도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재와 슬픔의 여건이 남아 있을 수 없는 환경의 터전이 이루어져야만 세계적인 통일의 무리가 머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기준까지 어떻게 나갈 것이냐? 개인 스스로가 취할 수 있는 신앙자로서의 자세를 가지고 그 길을 갈 수 있겠어요? 신앙자의 자세라는 것은 개인적이거나 혹은 통일교회적인 자세이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적인 자세를 갖추어야 됩니다. 개인으로서 그런 사명을 지고 가는 그 모습을 하나님이 바라보시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의 모든 죄를 벗기 위하여 허덕이는 무리가 아니라 그가 그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자체의 해방권을 통하여 민족과 세계가 해방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는 존재, 선을 대신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라 할진대 그는 통일의 역군이요, 그는 기필코 새로운 세계를 이루는 통일의 무리를 형성할 수 있는 핵심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단번에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죄를 지고서 싸워 가지고 승리권을 갖춘 후에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여러분 자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이 살고 있는 사회나 국가 세계, 그뿐만이 아니라 영계에까지도 악의 침범권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밟고 넘어 승리의 기치(旗幟)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는 통일의 무리가 되려면 얼마나 어려운 길을 가야 하는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길을 가려는 사람은 이 땅 위의 수많은 나라가 망하는 것을 직시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됩니다. 수많은 민족이 스스로 낙망하여 사라져 가는 것을 봐야 될 것입니다.

수많은 종족과 수많은 가정들이 슬픔 가운데에서 자기 스스로를 수습하지 못하고 내일의 소망을 갖지 못한 채 탄식하고 절망하는 무리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통일의 무리가 가야 할 주변의 현상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그것을 그냥 그대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사명을 짊어진 메시아적인 사명을 통일의 무리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35-127
예수님의 구원의 한계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민의 구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도리를 보면 만민의 구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도리로써는 개인적 구주의 자격밖에 부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기독교를 통해 가정적 구주의 사명을 완결했다고 하나님께 칭송하고 감사하게끔 가정을 구원시켰느냐? 구원을 못 시켰습니다. 언제 하나님 앞에 하늘의 종족을 구원했다고 찬양할 수 있는 무리를 해방시켰느냐? 아직까지 못시켰습니다. 또한 예수가 언제 민족이나 나라를 세워 가지고 이 나라나 이민족은 틀림없이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요, 국가라고 찬양할 수 있는 국가나 민족을 가졌느냐? 못 가졌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승리이기 때문에 그 민족에게는 수심이 있을 수 없는 것이요, 그 민족에게는 멸망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민족은 진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민족은 역사를 지배할 민족이요, 그런 국가는 역사를 주관할 국가임에 틀림없을 것인데 그러한 민족과 국가가 이 땅에 현현됐느냐? 안 됐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한계는 개인 하나의 구원의 도리를 성취시킬 수 있는 사명은 완결하였지만, 가정이나 종족, 민족, 나아가 국가나 세계의 구원이라는 승리권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것이 오늘날 기독교를 통한 구원의 도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개인의 탄식권내에서 해방되지 못한 기독교 신자를 우리가 시인하는 입장에서 보게 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 즉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하는 구원이라는 것은 일면적인 것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중심삼고 본다면 이것은 불쌍한 것이요, 비참한 것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구세주요, 메시아로 믿고 있지만 그분이 영적인 메시아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적인 메시아라고 해도 개인을 중심삼은 영적인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런 기독교로서는 국가권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체적인 권한을 가진 주권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통일된 무리를 갖지 못한 민족권을 남기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세계 기독교권입니다. 이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예수가 있으면 예수와 일치될 수 있는 사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도와 일치될 수 있는 12지파가 있어야 되고, 또 12지파와 일치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주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 주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로 연결지을 수 있는 핵심적인 이스라엘권을 만들고 그 국가와 상대적인 관계에 있는 수많은 국가를 통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국가의 주권은 그 국가를 통솔하는 이념은 일시적인 이념이 아니요, 일시적인 주권이 아닙니다. 그 주권은 선의 자체가 길이길이 발전하여 남아질 수 있는 자리에서 영원을 다짐할 수 있는 주권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런 주권이 이 지상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지금까지 종교를 중심삼고 추구해 나온 구원은 개인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 역사시대권내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인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35-128
통일의 무리가 해야 할 일
그러면 앞으로 종교는 어떠한 사명을 가져야 되느냐? 일방적인 개인구원뿐만 아니라, 개인을 중심삼고 환경을 갖추고 있는 가정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종교적인 구원의 도리는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편성하는 데 그 종족이 해방권을 갖게 구원의 도리를 제시할 수 있는 종교는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 우리가 승리를 표방하고 나설 때, 거기에는 개인적인 승리도 있을 것이요, 가정적인 승리도 있을 것이요, 민족적인 승리도 있을 것이요, 나아가서 국가적인 승리, 세계적인 승리도 있을 것입니다. 비근한 예로 올림픽 대회에서 벌어지는 마라톤 경기를 볼 때, 개인이 승리하는 것은 곧 국가가 승리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개인의 승리는 국가의 승리는 물론이거니와 세계를 제패한 승리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누구든지 자기 배후의 모든 환경과 문화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그 승리 앞에는 머리숙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인이 머리 숙일 수 있는 그 순간은 홀로 들고 나오는 승리권이라도 이것은 세계를 대표하고도 남을 수 있는 승리인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그 누구도 머리를 들고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부정의 요건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마라톤 대회면 마라톤 대회의 역사에 기록으로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기록을 깨뜨리지 못할 때에는 온 만민은 거기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문제에 관해서만은 치리받아야 되고 지도받아야 하고 그 법도에 순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철칙 아닙니까?

그러면 오늘날 이 세계에 있어서 그러한 승리권을 갖춘 국가가 있었느냐? 그 기록을 깨뜨려 나갈 수 있는 국가를 형성하지 않고는 선을 대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국가는 영원히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지상에는 수많은 국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통일된 국가권은 아닙니다. 결렬과 분열과 파탄의 요소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환경을 가진 국가권인 것입니다. 이러한 국가가 지향해 나가는 미래의 형상은 어떨 것이냐? 이것은 비참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우리가 직시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그 요소를 제거해 가지고 내일의 승리의 세계권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권내에 있어서 주님은 절대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모든 사정과 계명을 생활의 표준으로 삼고, 그 이상의 표준을 세워 나가는 종교에 있어서는 그 표준을 향하여 모든 환경의 제약을 넘어 가지고 직행할 수 있는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인의 자세가 될 것이 아니냐. 거기에는 자기의 변명이 필요없습니다. 절대시하고 순응하는 무리가 없어가지고는 하나님이 바라시고 선이 바라는 통일된 국가 형성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무리가 통일의 무리라면 그들은 어디에서 만나고 싶어하실 것이냐? 이 대한민국의 서울 청파동에 있는 이 교회 안의 한 사람으로서 만나고 싶어하실 것이냐? 물론 그 사람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출발의 한 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만나고 싶어하시는 통일의 무리가 존재할 수 있는 가정의 기점은 어디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모시고 있는 부모 혹은 형제와 처자를 중심삼은 가정 환경이 통일의 무리를 이루어, 내일의 종족과 내일의 세계를 상속받기에 부끄럽지 않는 가정적 기준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가정이 세계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통일적인 권한을 갖추고 선과 악을 분별하고 선을 세우고 악을 제거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가진 가정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땅 위에 그러한 개인은 수없이 많이 왔다 갔지만 그런 가정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선의 나라를 추구하고 선의 세계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해야 할 일이 뭐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는 첫째 계명과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는 이 두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 통일적 가정 형성을 표방하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맨처음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35-130
통일교회가 모색하는 방향
우리는 개인구원을 목표로 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 구원의 기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사회 형성의 기초가 되는 것이요, 국가 형성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참은 참끼리 합하지 말라고 해도 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과 기름은 아무리 합하려고 해도 분리되는 것입니다. 합하려고 하면 할수록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본질적으로 화합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가정, 통일의 요건을 갖춘 가정이 되었다 할진대 그 모델적인 가정으로 말미암아 종족 형성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지금까지 우리가 습관적으로 생활을 해오던 가정과는 내용이 다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현실적인 사회제도나 세계정세에 관점을 두고 거기에 일치시킴으로써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 나가는 그런 가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모델적인 가정이 일치화시키려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런 사회가 아니요, 이런 환경이 아닙니다. 이것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인간이 꿈도 꾸지 못했던 천양지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가정에서 울고 있는 부모보다는 웃고 있는 부모를 모시고 살고 싶어 합니다. 웃고 사는 형제와 더불어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웃는 부모를 모시고 살 수 있으며 웃는 형제와 살 수 있느냐? 세상적인 부부와 그 부모를 중심삼은 가정이 아니라 온 인류와 온 세계의 부모를 중심삼은 가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어디에 머무를 것이냐? 세계를 대표하고 만국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의 기틀은 어디에 머무를 것이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 누구나 평화스런 가정을 찾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신이 있다면 그분 역시 절대적인 평화의 가정적 기준을 찾아 나올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가정을 표방하였던 것이 기독교에서 신랑 신부의 인연을 중심하고 추구했던 가정적 기틀이라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신랑 신부의 사랑의 법도를 통하여 태어난 아들딸들이 살 수 있는 가정적 환경, 사회적 환경, 국가적 환경은 어떠한 것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망상적인 미래의 세계에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안식할 수 있는 행복의 여건을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런 부정적인 일면을 다짐하면서 나가야 하는데 이것이 종교 생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부정적인 일면을 다짐했던 것을 긍정적인 해결기반으로 삼고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방향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일반 종교들처럼 현실을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나 자체가 부정할 수 있는 실권을 가지고 이것을 처리하고 공히 판단할 수 있는 주체성을 지닌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는 개인을 중심삼은 무리가 아닙니다.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권내에 있는 무리입니다.

35-132
통일의 무리가 머물 수 있는 곳
절대적인 신이 계시다면 개인완성은 물론, 가정완성, 종족완성, 민족완성, 국가완성, 세계완성과 천주까지 완성할 수 있는 그러한 절대적인 권을 바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개인이 구원을 얻는 것보다도 가정이 구원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구원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완성된 자가 안식의 터전을 맞기 위해서는 가정적 구원의 환경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식할 곳이 없는 것입니다. 또 가정의 구원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그 가정이 종족권내에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면 영원한 가정의 안식처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종족이 그러하고, 민족도 그러하고, 국가가 그러하고, 세계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국가가 국가적인 안식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세계가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국가가 아무리 독자적으로 안식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가졌다 하더라도 외적인 세계가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면 또다시 투쟁의 노정이 벌어질 것이니 거기에는 안식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안식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환영의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세계를 중심삼고 선교하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어디에 머무는 통일교인입니까? 내 개인의 구원에만 급급해 있는 무리입니까? 그런 무리는 개인을 표창하게 될 때는 필요할는지 모르지만 가정에 상을 주어야 할 시대가 올 때는 물러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에서 개인적인 승리를 다짐하는 것은 미래에 올 가정적인 승리를 거두기 위한 준비운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나 스스로 가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서 세계에 자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승리권을 가졌으면 종족적 승리권을 갖기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가정적인 승리를 자랑하기 위해서는 친척이 있어야 됩니다. 그럼 씨족을 자랑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민족이 있어야 합니다. 김씨 박씨 문씨 조씨 혹은 임씨 등 씨족들이 자기의 씨족을 자랑하기 위해서는 민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민족을 이루는 수많은 씨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지 않고는 씨족을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한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도 한민족 자체만으로는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자랑하겠어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기쁨의 요건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상대될 수 있는 이론도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될 수 있는 이론이 없기 때문에 생활에 규칙성을 가져올 수 없고 생활에 이로움을 가져다 주는 사랑의 안식처도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통일의 무리가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오늘날 통일교회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번화가도 아니요, 흑암가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포괄하여 끌고 세계의 중심지요, 온만민을 통합할 수 있는 최고의 문화권의 정상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내용을 결합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공인을 받고도 남을 수 있는 자리에서 모습을 갖추어야만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바라나오시는 통일교회 무리의 표준이 결정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 구원을 완성했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요, 가정구원을 이루었다고 해서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또한 종족구원과 민족구원을 완성했다고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구원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의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통일교회를 이끌고 대한민국적 통일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가 아닙니다. 세계적 통일권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요, 나아가 천주적 통일권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주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영계와 육계 전체를 말합니다. 그러면 통일은 왜 하느냐? 완전한 해방을 위해 합니다. 통(統)자는 ‘거느릴 통’ 자입니다. 거느리는 데는 여기에 어떤 결단이 있어서 비약적인 단계를 거쳐온 내용을 지니고서 거느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비약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정상적인 발전의 행로를 거쳐서 영원무궁토록 진전의 속도를 가할 수 있는 자리에서의 통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뿐만 아니라 영계까지도 해방하는 통일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도 통일사상은 위대한 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35-134
통일은 완전한 해방
해방하는 데는 지구성이 해방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수천억에 가까운 우리의 선조들이 영계에 가 있습니다. 인간이 영원하다는 것이 틀림없다면 그들은 어디에 있을 것이냐? 통솔받으며 어느 한 권내에 모여 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행복한 권내에 모여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땅 위에 살 때 지녔던 모든 악의 조건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땅 위의 모든 불순한 내용을 지닌 채로 영계에 머물러 있기에 이것을 청산지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처를 갖지 못한 영계의 영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인들은 지상의 인간들을 다시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풍습을 볼 때에 악령들의 활동이라든가 여러 가지 영적인 현상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미신적인 현상이 인간생활에 나타나게 되느냐? 여기에는 영계에 간 영인들이 지상의 인간들에게 다시 찾아와야 한다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해방권이라는 것은 지구성의 해방뿐만이 아닙니다. 영계에 있는 수천억의 영인들까지 해방해야 하는 것입니다. 해방하는 데는 무질서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도와 질서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결단지을 수 있는 영원한 주체권을 갖추지 않고서는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결정이 곧 천법이니 여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응의 도리를 다하여 그것을 절대적인 하나의 규범으로 형성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갖춘 통일의 무리가 되지 않고서는 영적인 세계를 해방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계가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계가 인류역사의 발전, 시대적인 내용, 사회 형성의 배후에 어떻게 작용했고,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내용이 인간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을 중심삼고 동일한 해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해결이요 천주적인 해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바리시던 것이요, 역사상의 우리 선조들이 바라던 것이요, 또한 오늘날의 인류와 미래의 후손들이 바라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상의 재현이요, 역사의 재현이요, 현실 사회의 재현이요, 미래 사회의 출발의 기원입니다. 이런 우주사적인 승리의 표본의 형태가 갖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개인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가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국가가 동으로 가게 되면 세계의 국가는 동으로 가야 되고, 그 국가가 서로 가게 되면 세계의 국가는 서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내용을 가진 국가의 형성권을 넘어서 주체적인 내용을 종횡으로 틀림없이 완비했다고 할 수 있는 그런 환경권이 이 지구성에 현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망상입니까? 망상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인류를 대하시는 하나님도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 혼자서는 통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인류의 부모라고 하는데, 자식들이 지금까지 죽음의 기로에서 방황하고 신음하고 있는 데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인류의 부모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심하시면서 역사적인 탈을 벗지 못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해방시켜 드리느냐? 그 해방은 외적인 해방이 아닙니다. 만민을 그분 앞에 굴복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굴복시켜서 그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책임이요, 인류 구원역사의 책임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불쌍하신 그분이 누구냐? 바로 그분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절대적인 핏줄로 맺어진 인류의 주인이요, 어버이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심정적 인연이 폭발되어 가지고 오늘날 이 세계의 어떤 환경이나 사정을 넘어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차적인 심정권을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선이 악의 권내에서 악에게 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이 제창하고 악이 발악하는 권내에서의 사랑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심정적 터전이 이 지구성에 나타나지 않고서는 선을 중심삼은 세계권이 형성되지 못합니다.

35-136
하나님의 안식처
그러면 절대적인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권 이상에 선 사랑의 내용을 갖출 수 있는 안식처는 어디냐? 하나님께서는 친히 개인을 통하여 가정을 찾아가시지 않습니다. 가정을 통해 종족을 찾아 복귀해 나가시지 않으십니다. 세계를 기반으로 하여 국가와 민족과 종족과 가정을 중심삼은 승리의 결정권을 가진 사람을 찾아 나가십니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 사람은 동서의 관계를 초월해 가지고 나타나야 되는데 여자와 남자 가운데 누가 먼저 나와야 되느냐? 여자가 먼저 나와야 되느냐, 남자가 먼저 나와야 되느냐? 남자가 먼저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는 어떠한 사람 가운데에서 나와야 되느냐? 잘 사는 사람 가운데에서 나와야 되느냐, 못사는 사람 가운데에서 나와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잘사는 사람은 악과 친밀한 사람이요, 못사는 사람은 악과 먼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잘사는 사람들 중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못사는 사람 가운데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또한 재물과 하나님은 결부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두고 볼 때, 악이 좋아하고 악이 흡수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가진 선진국가에서는 그런 사람이 나올 수 없습니다. 반드시 후진국가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후진국가 가운데에서도 어떤 국가에서 나오느냐? 사람으로 치면 몸과 마음이 갈라져 통일이 되지 못한 것과 같은 나라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의 가정과 사회가 갈라지고 사회와 국가가 갈라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언제나 공세적이 아니라 수세적인 입장에서 보수적이어야 합니다. 선은 지금까지 보수적이었습니다. 이런 역사 배경을 가지 자랑스런 민족이 어느 민족이냐? 역사 가운데에서 세 번 이상 다른 민족을 침략했던 민족은 절대 여기에 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침략하지 않은 민족을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한국은 거리가 가깝다는 겁니다.

한국을 놓고 보면 양면형입니다. 한스러운 나라라서 한국이요, 하나밖에 없는 나라라서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과 분립, 패배와 승리가 교차될 수 있는 내용을 결할 수 있고 안팎의 우월성을 갖고 나가는 국가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악한 세계와 선한 세계를 다리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도 때가 되었기에 갈라진 것입니다. 세계에 때가 오면 통일이 되느냐? 통일되기 전에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갈라지는 운세가 개인에서부터 가정·사회·국가·세계 전체로 옮겨지는 때가 오면 본연의 세계적인 통일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몸과 마음으로 갈라진 인간의 피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세계적인 형을 갖추게 될 때에는 갈라진 인간을 심은 것이 세계적으로 거두어지는 끝날이 되어 오기 때문에 갈라지는 운세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거두어야 하느냐? 악의 세계의 주인이 거두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선의 주인이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이것을 바라고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 이념입니다. 악의 주인이 거두면 영영 회생할 길이 없지만 선의 주인이 거두면 회생할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회생할 것이냐? 접붙임을 통해서 회생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부활이니 재생이니 하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통일의 무리들은 재생의 운명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에서부터 재생할 것이냐? 그 재생의 터전은 개인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개인의 재생을 완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종교는 개인의 구원을 목표로 삼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관하시고자 하는 이상권은 개인구원완성을 표방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구원완성을 표방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종교가 나타나면 세계는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참의 길을 가는 입장에서 신앙관을 모색하고 인생관을 모색하고 우주관을 모색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35-138
세상 죄를 지고 가야 할 통일의 무리
통일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올라올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머리에 임하며 하나님께서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막4:11)” 하셨고, 세례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고 증거하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홀로 서 있다 할지라도 세계적인 끝을 가야 합니다. 그러한 길을 가려면 세계적인 탕감의 제물의 과정을 거쳐야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만민을 대신하여 개인적인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개인적 십자가뿐만 아니라 가정적 십자가까지도 지신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죄권에는 가정의 죄권이 있는 것이요, 종족의 죄권이 있는 것이요, 민족의 죄권이 있는 것이요, 국가의 죄권이 있는 것이요, 세계의 죄권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죄권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지, 개인의 죄만을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십자가도 지고 갔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제한된 환경의 죄의 집을 짊어지고 간 것이 아닙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간다는 말에는 세계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의 십자가를 책임질 수 있는 국가는 어떤 국가냐? 예수님이 이것을 못 이루었습니다. 그러니 그 사명을 담당할 수 있는 국가는 어떤 국가냐? 하나님은 이걸 찾아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가 세계의 십자가를 대신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승리하지 않고는 새로운 국가를 형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인은 예수님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이단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서슴지 않고 담대하게 하늘 보좌 앞에 나가 논고를 펼 자격이 있습니까? 하늘의 공정한 법도에 따라 하늘의 공판정에 나서서 재판장으로 계신 하나님 앞에서 사탄을 검사로 세워 놓고 당당히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승리적인 죄수가 되어야 합니다. 법정에서의 변호인은 자기 의지대로 판단하여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이 변호인보다 낫기만 하면 변호인은 변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변호인은 죄인이 볼 수 있는 이상의 법조적인 조건을 찾지 못하면 죄인을 해방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죄수가 변호인보다 나아야만 법정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경에 나타나 있지만 해결하지 못한 문제, 혹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서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한 비밀의 내용, 이러한 것들을 전부 파헤쳐 가지고 ‘그대는 이러이러한 조건에 의해 가지고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니라. 이러이러한 조건을 해방했더라면 개인적 십자가는 물론, 세계적 십자가도 짊어지지 않았을 것이 아니겠느냐’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도리를 필요로하는 사람들로서는 통일원리권내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2천년 동안 수고해 가지고 신부를 찾아온 것입니다. 신부가 뭡니까? 신부가 무슨 신부입니까? 이건 여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확실히 알겁니다. 이것은 엄청난 비밀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서슴지 않고 또다시 공격할 수 있고, 또다시 담대하게 논고를 세울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세계적인 승리의 왕자를 찾아 나오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예수님이 지고 가던 십자가 이상의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각오를 하고 가지 않으면 세계적인 구원섭리의 한계선을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주적인 이 통일권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느냐? 자나깨나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태어난 것도 이것을 위해 태어난 것이요, 사는 것도 이것을 위해서 사는 것이요, 죽는 것도 이것을 위해 죽는 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을 찾아가는 것도 이 목적에 협조하게 하기 위한 것이요, 내 개인이 가는 것도 이 목적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가는 것입니다. 횡적인 무대를 넓히고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방편으로서 필요로 하기 때문에 무리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볼 수 있고, 가정 가운데 혹은 민족 가운데 드러날 수 있는 이념을 실천하는 종교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35-140
실력으로 대결하여 승리하자
가을이 되면 열매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드러나지 않으면 나뭇잎이 떨어져서라도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름에는 그것이 떨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푸른 잎 가운데서 푸른 빛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얼른 보기에는 종교인 같지 않게 보이지만 그 내용과 본질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내가 통일교회의 선생님이라고 단 위에서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지만 밖에 나가서까지 시시하게 한 기독교 목사의 탈을 갖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생각하게 될 때 통일의 무리가 생성할 수 있는 터전과 안식할 수 있는 곳은 통일교회밖에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만났다 하더라도 선생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의논하고 개인적인 평화의 왕궁을 계획해 가지고는 행복을 추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전에 가정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고, 종족적인 십자가와 민족적인 십자가와 국가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대한민국만을 위한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대한민국이 우러러볼 수 있는 권위를 가졌다 하더라도 여기에서 정지하고 안식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 전체를 동원해서 세계를 개척하고 세계를 위하여 참된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계적인 십자가를 책임질 수 있는 , 책임을 다한 대한민국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금후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이요, 해결지어야 할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러니 역사시대의 권내에 있던 통일의 무리가 아니라 역사상에 없던 새로운 차원에 있어서의 주체성을 가진 통일의 무리가 되어서 그 권한이 개인에게만 미칠 것이 아니라 천주에까지 미칠 수 있도록 강해야 됩니다. 그러한 승리적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하나의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진 가정이 될 때, 그 가정은 세계적인 가정이요 천주적인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정을 세계를 주고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을 통해서 역사적인 찬양의 조건을 원하셨지만 이루시지 못했기 때문에, 미래의 찬양의 조건도 이들로 말미암아 이루셔야할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필요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가정의 기준을 표방하고 나서는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랑 신부의 기준을 통해서 가정의 기틀을 마련하려고 행하는 것이 어린양 잔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뭐 주님이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오신다구요? 이렇게 허파빠진 수작들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눈은 올바로 박혀 있으면서 그런 얼빠진 수작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 그런 주먹구구식의 얘기는 통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한테는 통일교회가 이단으로 보이는 겁니다. 뭐 이단?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고 보자 이겁니다. 실력으로 대결하자는 거예요. 우리가 작전을 몰라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선전과 외교를 하지 않는 것도 그들의 힘을 영원히 제압할 수 있는 내적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봄이 되면 나무는 싹이 트고 뿌리가 뻗어 나갑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뽑히지 않고 강하게 크듯이 우리도 그렇게 발전한 것입니다. 쫓기면서 발전했고, 밟히면서도 발전했고, 욕을 먹으면서 발전해 나왔다는 거예요. 통일교회식이 이렇습니다.

또한 우리는 앞으로 미국과 싸울 것입니다. 우리가 제시한 승공활동을 중심삼고 내가 미국에 가서 분명히 할 것입니다. 누가 앞설 것이냐? 닉슨 대통령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FBI나 CIA를 투시해 보니 별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힘 가지고는 어느 한계선까지밖에 못갑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필요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떠들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고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봄이 오면 봄 노래를 부르고 가을이 오면 가을 노래를 부르듯 때가 되면 때에 맞는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그 때는 악당들이 선당에 대해서 악당이라고 하는 때부터입니다. 그러면서도 말없이 나가게 되면 하나님의 동정을 받게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루판에서 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주를 위해서 객사하면 어떠냐? 우리는 이러한 각오를 갖고 가야 되겠습니다. 만민의 십자가를 지고, 만세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을 다 거치고 세계적으로 승리한 통일의 무리들이 찬양받게 될 때 역사는 우리의 것이 될 것이요, 시대는 우리를 우러러볼 것이요, 만민은 길이길이 기억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국가와 통일세계는 여러분 것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35-142
자주적인 통일의 역군이 되라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절대적인 기반 위에서 길이길이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을 찬양하고 내일을 찬양하며 행복만이 깃들 수 있는 그 세계를 향하여 가야 합니다. 이 길을 가는 데 십자가를 피해서 돌아가려 하는 졸장부들이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영어의 몸이 되더라도 묵묵히 가자는 거예요. 눈에 흑이 들어가기 전에 싸우지 않고도 그들이 굴복하고 망하는 것을 보고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망할 수 있는 자리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남아지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과정을 거쳐 세계적인 정상의 자리에 남아지는 통일의 무리를 그리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날이 오게 되면 세계 만민은 자동적으로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적인 순응의 법도에 의해 승리권내에서 하나님을 중심한 해방의 한날을 맞이하여 국권을 온 세계 앞에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이 와야만 하나님이 선을 선주관권내에서 주관할 수 있는 통일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1대(代)에 안 되면 3대(代) 이상까지 간다는 각오를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역사노정에 있어서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한다는 내용을 배웠고 이것이 참일진대 우리는 내 일신을 통해서 3시대권 부활체를 대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갈 길이 바쁩니다. 오늘 잠을 못 자서 피곤하더라도 오늘 못 쉬면 내일 쉴 수 있는 날을 추구하는 자리에서, 오늘 못 쉬었더라도 이것이 뜻을 위한 일이라면 어떠한 일도 무릅쓰고 가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한 걸음에 내일의 분야가 가담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이것을 감당하여 책임지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주적인 통일의 역군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통일의 역군들이라면 기필코 세계적인 통일권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길을 갈 때에 남과 같이 잘먹고 잘살면서 가겠다, 남이 차를 타니 나도 차를 타야 되고, 남이 잘먹으니 나도 잘먹겠다, 이러면서 어떻게 가겠습니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세상과 반대의 과정을 거쳐 가야 됩니다. 역사노정에 남아진 그보다 앞선 자리에서 잘먹고 잘살기를 바라야지, 뒤진 자리에서 잘먹고 잘살기를 바라면 되겠어요? 우리는 그들보다 앞선 자리에서 가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잘살아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통일교회 믿다가 떨어져 나가게 되면 가슴을 치며 탄식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살아야 되겠어요, 못 살아야 되겠어요? 「잘살아야 됩니다」 그러려면 악착같이 참고 극복해 가지고 앞선 자리에서 잘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때문에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탄권내에서 돈을 가지고 있으면 그 돈은 사탄것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때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은 통일적인 국가기준부터 준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국가를 준비하기 전에 통일 개인부터 준비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십일조를 바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제일 정성을 들이는 역사적인 날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거기에 보태고 보태서 그 권을 만들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제 통일교회도 본부를 다시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세계 본부입니다. 통일교회가 교회를 지을 자본이 없어서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사랑하기 전에 나라를 사랑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는 타락권에 있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수 있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탄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죽이려고 물어뜯는 것을 그러지 못하게 해 가지고 지금까지 내가 선두에 서서 나왔던 것입니다. 어쩌면 원리가 그렇게도 잘 들어맞는지…. 언제든지 가인 아벨을 통하지 않고는 나갈 길이 없고 승리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재미가 있어요, 이래 가지고 우리가 이때까지 나온 것입니다.

35-144
구라파에 일고 있는 무니즘(Moonism)
내가 느낀 것이 뭐냐 하면 오늘도 수택리에서는 선생님이 온다고 새벽부터 코가 늘어지도록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460여 명이나 되는 10개 국의 젊은 녀석들이 들떠 가지고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겁니다. 앞으로 엿새 동안에 이들에게 짝을 맺어 주어야 하는데 이걸 선생님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아들딸을 시집 장가 보내기 위해서 몇년 동안 준비하는데 나는 수백 쌍을 엿새 동안에 맺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벼락같이 해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그냥 후닥닥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벼락같이 하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기초작업을 하고 왔습니다. 선생님의 말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되 맹목적으로 믿지 말고, 눈을 똑바로 뜨고 깜빡깜빡하면서 똑바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속더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속인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걸 볼 때 어쩌다가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나? 이들이 대개 일본 사람들이고 이제 짝을 맺어 주어야 되는데, 내가 왜정때 일본 천황의 부하들이 고문을 하고 주먹질을 하던 그런 괴수들의 후손들이니 모조리 잡아다가 거꾸로 매달아도 시원치 않을 텐데 축복을 해줘요? 그러나 그런 그들 후손들을 축복해 주어서 사랑을 해주면 더 쓸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데는 원수의 자식을 길러서 원수를 갚게 하는 방법이 최고의 방법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아버지의 무덤도 파 버린다는 겁니다. 그 이상 원수를 어떻게 갚겠어요? 선생님이 명령만 내리면 일본 천황도 추방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 놀음을 지금 내가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 사람은 얼굴 색깔이 다른 것도 아닙니다. 미국 사람, 독일 사람, 영국 사람, 불란서 사람들과 얘기를 해보면 키는 장대같이 크고 눈은 시퍼렇고 기분 나쁘더라 이겁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눈에는 눈물이 어려 가지고 희극이 벌어지고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비극이요, 동양 사람들에게는 희극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꺼덕거리던 서양 사람들을 이제는 동양사람이 한번 평정해 보겠다 이겁니다.

널을 뛸 때 한번 올라가면 한번은 내려와야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한번 올라간 것이 그대로 직선이 되어서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국물도 없고 뼈다귀도 남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천지는 그렇게 발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전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스스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입니다. 동서문명이 교류될 수 있는 시대권을 맞아 아시아의 문명을 중심삼고 서구문명을 소화할 수 있는 문화를 이룩함으로써 서구문명과 아시아문명이 교류가 되도록 해야 된다는 겁니다.

동서양의 문명이 하나가 남자라면 다른 하나는 여자라는 거예요. 또한 하나는 정신문화권이요, 하나는 물질문화권입니다. 두 문화가 합해져야 세계적인 새로운 통일문화권 시대가 오기 때문에, 거기에 박자를 맞추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안팎의 민족끼리 합해야 합니다. 물질문명을 대표하는 서구문명과 정신문명을 대표하는 아시아문명이 서로 합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 합하라는 명령은 내가 합니다.

이것을 망상적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나왔지만 결코 망상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세계권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 구라파에 무니즘(Moonism)이라는 주의가 나왔습니다. 이 무니즘이 뭡니까? 문주의(文主義) 라는 것입니다. 이런 새로운 술어가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놀음을 하려고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50여년 동안 싸워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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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무리가 가져야 할 사상
이러한 세계를 두고 한번 생각해 볼 때, 여자로 태어났다가 이번 777쌍 축복의 대열에 참석 한번 못 해보면 천추에 한이 될 것입니다. 내가 이번에 뉴욕의 방송국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방송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얻어먹으며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재미로 산다는 거예요. 그런데 욕하는 사람이 발전한 경우가 있어요? 욕하는 사람 중에 잘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런 사람 봤어요?

뭐 한국의 격언 중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 말이 있지요? 그러면 통일교회가 잘되면 배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아플 겁니다. 배가 아파도 죽을 지경인데 머리까지 아프니 나가자빠진다는 겁니다.

선생님은 미국 백악관 앞에서 기도하고 로마 교황청 앞에서 기도했던 내용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내가 로마에 가서 베드로 성당 옥상에 올라가려고 할 때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교황청이 총동원되어 가지고 바오로 6세가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는데 (1969. 4. 8 부활절 퍼레이드) 기분이 나빴습니다. 족보를 따져 보면 나보다도 더 낮지 않느냐 말입니다. 유치원에서 운동회 하는데 국민학교가 기분 나쁠 게 뭐 있느냐고 생각하며 웃고 말았습니다. (웃음) 그렇게 사는 겁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님이 지금까지는 졸장부 같은 사나이로 보였겠지만 이제는 내가 대한민국에서 부러운 게 없습니다. 부러울 게 없다는 거예요. 대한민국에 벤츠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벤츠 차 타고 싶으니 가져오라고 하면 가져오게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빌딩도 지으려면 얼마든지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본부에 와 보고 본부가 이렇게 초라하냐고 비판했다가는 모가지 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헐벗으면서도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위해서 일해 나왔습니다. 뜯기고 뺏기고 쫓기며 피의 대가를 치러 나가는 중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새끼를 치면 날라갈 집입니다. 마치 새가 둥지에서 알을 까고 나오면 처음에는 그 둥지에다 똥을 싸고 오줌을 싸고 하다가 자라서 때가 되면 ‘둥지야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언제 다시 만날 거나’하며 하늘을 향하여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오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원해요, 원하지 않아요? 「원합니다」 김희옥 권사 원해요?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벌거벗고 춤춘다는 욕을 먹어 가면서도 지금까지 따라 나온 것입니다. 문선생이 유명한 사람 많이 만들었습니다. 유명한 사람 많이 만들어 놓고 유명한 단체를 많이 만들 것입니다. 앞으로는 내가 유명한 나라의 대통령도 만들 것입니다. 다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통일의 무리는 이 청파동 내에서의 통일의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기만을 위하는 통일의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고 나서 자기가 기뻐할 수 있는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안식하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안식하시는 것을 더 찬양할 수 있어야 되고, 내가 헐벗은 자리에서도 천년 만년 안식을 누리시라고 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나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통일 사상입니다. 알겠어요? 그래 가지고 세계적 십자가를 책임지고, 어려운 것은 내가 전부 다 책임을 지겠다고 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는 아시아 민족들을 책임지겠다고 해요, 회피하겠다고 해요? 책임을 지겠다고 나섰던 자들이 실패하게 되면 나서지 않았던 것보다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미국을 믿지 말라고 해 왔습니다. 현 정부도 10억 불이니 뭐니 하며 돈 돈 돈하는 데 그까짓 게 뭡니까? 그것쯤은 내 조직 안에도 있습니다. 푼돈 좀 받게 됐다고 조야가 거기에 목을 걸고 허리를 굽히지 말라는 겁니다. 맨 손 쥐고 벌거벗은 입장에 있더라도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민족만 되면 통일은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미국은 가더라도 하나님은 가셔서는 안 됩니다’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맨손이고 발가벗은 입장에 있더라도 하나님만 계시면 새로운 국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대한민국에 플러스되는 일을 하고 있다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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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선한 무리가 희생해야
지금 수택리에 한 350평 되는 수련소를 짓고 있습니다. 이걸 한달 동안에 지으려는 겁니다. 집짓기 참 쉽다는 겁니다. 통일교회는 도깨비식입니다. 구보끼가 지방에 갔다 오니까 지어져 있으니 ‘이거 언제 지었습니까’하고 물어요. ‘언제 짓기는 언제 지어 어제밤에 지었지’ 하는 거예요. 밤이고 낮이고 때려 모는 겁니다. 끌고 나갈 수 있으면 끝날까지 끌고 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안 되면 일본 사람이라도 데려다 세운다는 겁니다.

어제도 통일산업 생산부장을 다그쳤습니다. 그 사람은 언제나 칭찬 못받고 갈 적마다 기합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풀이 죽어 있어요. 그 사람이 불쌍해요. 그런데 가만 보니 그게 아닙니다. 투덜투덜하고 있습니다. 나혼자만 그런다고.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허구한날 계속 다그치니 어떻게 살아 먹소’ 하고 꽁무니 빼는 녀석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녀석들은 잡아오라는 겁니다. 꽁무니 빼지 않게 할 자신 있습니다.

지금 지방교회가 어려운 줄 압니다. 어느 교회 인도자는 굶고 있다는 것도 내가 잘 압니다. 굶어라 이겁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선한 무리가 지옥 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악당 같은 무리들을 회개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선생님 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돈이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일본에서 가져올 수도 있고 세계의 각국에서 가져올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이 맞긴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한국이 빚을 지는 입장이 됩니다. 이제부터는 돈이 없어도 돈 없다는 얘기 그만 하라는 것입니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고 합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빚을 지고서라도 남을 도와주는데 누가 빚졌다고 생각하겠어요? 돈은 없지만 하고 싶은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여기에 찬동해요, 안 해요? 「합니다」 여자들은? 「합니다」 한다면 어느 정도 하겠어요? 대한민국만 좋아할래요, 세계를 좋아할래요? 「세계요」 세계를 위한 길을 가려면 밑천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밑천도 없이 자수성가하겠습니까? 그럴 때는 여러분이 앞장서서 가야 합니다. 내가 여러분을 팔겠다면 팔려 갈 거예요, 안 팔려 갈 거예요? 팔려 갈 자신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팔아먹겠다고 한다면 팔려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공적인 길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교회도 못 짓고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도 교회를 좀 지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뭘 해야 되겠다 하면 하는 사람입니다.

선생님 성격을 알지요? 「예」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시작도 안 하든가 둘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자신을 가지고 해서 안 된 일이 없어요. 나자신이 시운에 박자를 맞추는 천운은 틀림없이 우리 앞에 왔습니다.

그러면 그 천운을 붙들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방법은 선생님의 말만 들으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눈알을 떼어 파는 말세도 옵니다. 여러분들은 왼쪽 눈 하나씩 빼라면 빼겠어요? 뭐 죽기를 각오했는데 왼쪽 눈 하나가 뭐가 문제입니까? 바른 눈이 아니라 인사 차려서 왼 눈입니다.

통일교회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도 돈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교회를 하나 지어야 되겠습니다. 통일의 무리가 살 세계 본부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102층이라지만 난 그보다 더 크게 짓고 죽을 겁니다. 내가 죽은 때에 ‘금후에 몰려드는 통일의 무리들은 이 120층 세계선교본부를 짓지 않고는 쉴 수 없다’고 유언하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종교사상은 위대한 것입니다. 통일사상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금후의 어떤 사상을 가지고도 따라올 수 없는 새로운 문화재를 남기고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사사까와를 보러 갔을 때도, 유협회장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열의에 차 가지고 인간적으로 자기와 닮은 사람을 만났다고 하더라는 겁니다. 그의 집이 12층 빌딩인데 굉장히 으리으리하고 큰 집이라는 겁니다. 그가 사업을 하는데 1년에 4천억에 가까운 돈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감이 하는 말이 ‘나는 문선생한테 반했습니다. 내가 한국을 찾아온 것은 대한민국의 귀빈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문선생님을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하더라는 거예요. 선생님한테 반했다는 거예요. 선생님하고 틀린 게 뭐 있어요. 같은 남자끼리 벗으면 똑 같은데 말이에요. (웃음)

그러면서 그가 하는 말이 자기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 보았기 때문에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배신할 사람인지 아닌지 대번에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의 문선생님만은 절대 자기를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웃음) 아무리 관상을 보아도 자기를 마이너스되게 하거나 죽일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밤에도 그 생각하게 되고, 가까운 친구없는 것도 서러운데 친구를 해도 되고, 또 속이려 하지 않으니 외로운 입장에서 사업을 하는데 사업의 동지도 되고, 그런 모든 면에서 생각해 보면 문선생님은 좋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녹음 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하였음)

35-150
내적인 실력을 갖추라
여러분은 이 나라가 통일교회의 세계본부라는 것을 알고 앞으로 세계의 통일교회 무리들을 대표하여 사상을 세울 수 있는 위신을 갖출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돈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외적인 실력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내적인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의 내적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실력은 무엇으로 높일 것이냐? 그 실력이 우연히 얻어지느냐? 외적인 세계 앞에 우리가 선두에 서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가는 데에서만이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인생의 영원한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고생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강하고 위대한 것입니다. 고생하지 않으면 신념이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따라오려면 고생을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통일교회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 아직도 선생님이 십자가를 지고 피와 땀을 흘리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후퇴하는 사람은 기회주의자입니다. 후퇴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이러한 여건을 생각하며 우리는 오늘도 가야 되겠고 내일도 가야 되겠습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선생님이 계획했던 3대 계획은 전부 다 목표를 초과달성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이리하여 세계적인 통일전선이라는 말 그대로 내적인 면을 중심삼고 아시아에서의 기반으로 닦아져 나가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안될 것 같고 어려움도 많지만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사회적인 현상을 목격하게 될 때 우리는 더더욱 뜻 앞에 감사하며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금후에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5-151
기 도
아버님, 사방으로 돌아다니던 외로운 무리들이, 아버지가 계시는 것도 몰랐던 그 자체들이, 이제 아버지가 계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들에게는 아버지가 존재하는 자세가 어떻고, 그 심성을 통한 뜻이 어떻다는 것을 헤아릴 수 있는 자리에 세워준 것을 생각할 때에 천만번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부모의 은덕을 입은 자식이라면 그 은공을 갚는 것이 도리요, 나라의 은덕을 받은 자라면 군왕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것이 신하로서의 도리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당신께서 저희의 생명 전체를 이 땅 위에 남겨 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받은 은사에 저희들이 보답하기 위해서는 효의 도리, 충의 도리를 다하고 통일된 심정을 갖추어 당신께서 소원하시는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제사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무리들이 가야 할 길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책임진 자들의 생활은 남이 잘 때 자지 못하고 남이 놀 때도 놀지 못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자체의 책임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며 뜻을 위하여 달려가야 할 그 도상에서 빨리 가지 못하는 자신의 발걸음을 한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할 것이 통일의 무리들이 갈 길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님이 그러하셨기 때문에 아버님의 뜻을 받드는 아들딸인 저희들도 그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이것을 남기려면 자신이 제물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가고 나서도 거기서 슬픔을 느끼고 다시 내일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해야 될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개인을 찾았을 때의 기쁨보다도 가정을 찾을 때의 기쁨이 큰 것을 알았을진대 당신께서도 개인보다는 가정을 찾으셨을 때의 기쁨이 더 크실 것을 아옵니다. 또한 가정을 찾으셨을 때의 기쁨보다도 종족을 찾으셨을 때가, 종족보다도 민족, 민족보다도 국가, 국가보다도 세계를 찾으실 때의 그 기쁨이 크실 것을 아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당신께서는 그러한 세계를 찾으셨을 때의 기쁨을 천주만상 앞에 나타내는 표시로 노래와 춤으로 만우주를 품고 축복하실 수 있는 그날을 맞는 것이 당신의 내심 가운데 얼마나 그리던 소원이었던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은 그 누구도 그리워하지 못하였고 상상도 못하였사오나, 이것을 마음뿐만이 아니라 실제 생활과정을 진군하는 통일의 교단을 통하여 저희들에게 체휼할 수 있는 현재 입장을 갖게 해주셨사옵니다. 이 모두는 당신의 사랑이요, 당신의 긍휼이요, 당신의 자비요, 당신의 넘치는 은덕인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감사드려야 되겠사옵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고비를 넘어 축복을 가져다 준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자기의 처한 입장을 잘못 알고 그대로 넘기려고 하는 불쌍하고 초라한 패자의 서러움을 상속받기에 알맞은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너무나 큰 은덕을 천년 만년 자신의 후손만대를 통하여 고이 빛내고 상속시켜 주기 위해서는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여 자랑스럽게 물려주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자기 스스로 아버지 앞에 위신조차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다시 한 번 회상하고 현재를 다시 한 번 비판하면서 아버지의 은사와 후덕 앞에 눈물 흘리고 아버지의 높고 귀하심을 찬양할 줄 아는 아들들이 되고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통일교단은 불쌍한 교단이옵니다. 세상적으로는 불쌍하다 할지라도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귀한 것임을 당신은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께서는 대한민국을 잃더라도, 세계를 잃더라도 그것과 바꿀 수 없는 귀한 교단인 것을 아셨기 때문에, 여기에 몰려드는 대한민국의 비참한 운명을 넘어 가지고 오늘의 이 교단을 남게 해주신 것이 당신의 은사인 것을 압니다. 그러한 은사를 생각할 때 저희들은 흘러가는 세계정세권내에서 뚜렷한 자세를 갖추어 세계적인 경륜을 일으킬 수 있고 새로운 기수의 사명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의 후덕하신 사랑의 은사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50여년의 생애를 돌이켜 보게 될 때, 기쁜 날을 그리워하기보다도 슬픈 날에 아버지의 입장에 동참하여 거기에 생의 일부를 접하기 위하여 몸부림친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당신께서 보호해 주신 것밖에는 남아진 것이 없고, 당신께서 분부하시던 그 인연밖에 기억에 남아진 것이 없사옵니다.

외로운 자리에서도 당신께서 더 외롭다는 것을 염려할 때 당신이 저와 함께 하셨고, 몰림의 자리, 슬픔의 자리에서도 당신의 서러움을 동정하며 나설 때 당신은 저의 목을 안고 통곡하던 심정을 제가 잊을 수 없사옵니다. 그러한 것을 알았기에 오늘날 피어린 싸움의 노정에서 졸장부가 되더라도 패자의 모습을 갖지 아니하고 오늘 당당한 자세를 갖추어 기쁨을 나누게 하여 주신 것도 천륜의 은사인 것을 느끼오며 다시 한 번 감사드리옵니다.

오늘 모인 저희에게 가냘픈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를 해방시켜 드린 후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얼굴을 바라보고 죽는 것이옵니다. 그 소원과 더불어 ‘만민아! 이 날을 찬양할지어다’ 하면서 마음 놓고 아들딸을 자랑하고 천하를 바라보면서 기뻐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싶은 것이 저희들의 소원이옵니다. 그날을 위하여 백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천번 부활을 거쳐 가지고 가고 싶은 당신의 마음뿐이기에, 그러한 사명을 가지고 그러한 길을 나가는 통일교회를 보호해 주신 것을 아옵니다. 오늘의 이 영광은 저 자신의 영광이 아니옵니다. 넘기 힘든 고비를 넘어 영광을 드러내야 할 당신의 그 소신의 은덕 앞에 감사를 드리옵니다.

지금까지 그늘에서 살아오신 당신의 위신이 이제 새로이 만국에 펼쳐 나갈 수 있는 한날이 올 것을 생각하면서 과거의 슬펐던 마음을 넘어서 미래의 소망을 다짐하며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난날의 모든 한의 요건들이 앞으로 다가올 시련노정을 넘을 수 있는 충격적인 요인이 되고 천적인 원수를 능가할진대는 , 짊어진 십자가는 슬픔이 아니라 안식의 터전에서 아버지를 친히 모실 수 있는 독생자의 권한과 독생녀의 권한을 갖추게 하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인 것을 알 때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 거룩한 통일의 무리들이 숱한 싸움의 노정을 거쳐 오면서 당신께서 이렇게도 서글픈 사정 가운데서 몸부림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민족은 반대하는 것을 자기의 생명같이 했지만 세계적인 노정을 가야 하는 아버지의 뜻은 뻗치고 뻗쳐서 이제는 한국이 다시 자신을 정비하여 자리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오게 된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세계 형성을 하기 전에 나라의 형성을 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의 노고가 얼마나 크시옵니까?

그 동안 통일의 기치 아래에서 외로운 아들딸들이 눈물 흘리며 피어린 투쟁의 과정을 날마다 거쳐 왔사옵니다. 이것이 미래의 영광이 되고 자랑의 터전이 되어 제모습을 갖출 수 있는 인연이며 당신께서 자랑할 수 있는 자랑의 터전이 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그리워하시고 만나고 싶어하던 통일의 무리, 이 무리가 나라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여 자신 있게 나서야 되겠사오며, 사탄 앞에 무릎을 꿇는 불쌍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승리의 그날을 위하여 옷깃을 여미고 쌍수 합장하고 무릎을 꿇어야 되겠사옵고, 소리 소리 외칠 수 있는 승리의 날이 오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오니, 그 희생을 자기가 치르겠다고 아버지 앞에 다짐하는 심정적인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고로운 자리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남아진 당신의 무리들이 각국에서 조국이라고 찾아왔고, 본향땅이라고 찾아온 그 무리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없사옵니다. 매를 맞고 채찍을 맞은 피어린 그 남루한 모습과 외적으로는 과거의 역사적인 슬픔의 길밖에 남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할때, 그들이 이 길에서 다시 한 번 충격을 받고 새로운 역사적인 부활의 동기로 삼아 가지고 내일의 세계에 당신의 소원의 천국으로 이루어 드리는 사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될 수 있게끔, 아버지, 친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스승을 바라보며 간곡히 소원하는 모습들에게 저 자신을 통해서는 당신께서 아무것도 주지 마시옵고, 당신께서 중심이 되시옵소서. 그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영원한 소망의 향리를 스스로 건설할 때까지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끔, 아버지, 그 마음의 주인으로 거두어 주시옵길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저 자신은 거기에 협조자가 되고 중보자의 사명을 하기에 부족한 것을 느끼고 있사오니, 그 책임을 다하는 그날까지 가고 또갈 것을 아버지 앞에 다짐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 아침 여기에 모인 무리들도 당신께 솔직이 다짐하게 하시어서 이 자리에 출입하는 수많은 외국 식구들이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불쌍한 한국을 책임지겠다고 몸부림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지 않고는 하늘의 복을 빼앗기고 만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자각할 때는 왔사옵니다. 스스로 미래의 승세를 추구할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들의 모습이 되기를 바라면서 지워진 십자가를 감수하며 지고 나갈 줄 아는 전국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앞에 부탁드리옵니다.

이제부터 며칠 동안은 바쁘게 나가게 되옵니다.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천주적인 기반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중대한 당신의 자녀들이오니 그들에게 깃들여 있는 운명을 가려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소원하는 바를 따라 스스로 거쳐 나가고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선의 부부를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몸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새로운 일본산 한국 통일종족을 출생시킬 수 있는 영원한 승리의 터전을 그 민족 가운데에서 새로운 중심적인 핵으로서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0개국에서 모여든 당신의 자녀들을 품고 사랑해 주시옵소서. 이번 계기로 말미암아 내일의 천국을 모색할 수 있는 방안을 갖출 수 있는 은사의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복을 빌어 주시옵소서. 또한 그들을 지켜주시옵고,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것을 당신께 맡겼사오니, 허락하신 뜻을 따라서 승리의 일정만이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당신께서 바라시는 소원이었기에 저는 있는 힘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여 승리할 것을 다짐하오니, 아버지, 기꺼이 받아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