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7 to 35-40: 나는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나는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1970.09.27 (일), 한국 전본부교회

35-07
나는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기 도]

오늘은 1970년 9월 27일이옵니다. 이달의 마지막 안식일을 맞이하여 이 아침 이곳에 모인 자녀들과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당신의 존전에 부복하였사오니 그 모습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역사시대를 거쳐오신 아버지의 노고 앞에 저희들이 현실을 책임지기 위하여 아버지 앞에 하나의 승리의 제물이 되겠다고 스스로 맹세하고 다짐하는 이 아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저희 선조들은 아버지 앞에 십자가를 지워 드렸사옵고, 슬픔의 대상으로서 그 생애를 살다 갔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생각할 적에 이 시대의 저희들만은 아버지 앞에 빚을 갚고, 아버지 앞에 그 무엇을 남기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자신임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아버님, 이제 저희의 마음 바탕을 살피시옵소서. 진정 당신이 임재하실 수 있는 마음 바탕을 지닌 자신이 되어 있는가를 스스로 살피게 하옵소서. 당신이 저희들 가운데 임하는 데 있어서 누구에게 먼저 찾아오시겠사오며, 당신이 저희들은 바라보고 움직이는 데 있어서 누가 당신의 주목을 받겠사옵니까? 찾아오시는 당신의 마음에 일치되는 데 있어서는 인간은 누구도 그 동기가 되지 못하고 당신이 어느때나 그 동기가 되었사옵니다. 그와 같이 당신이 언제나 그 동기가 되어 저희들을 바라보고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는 과연 불쌍한 분임을 느끼게 되옵니다.

인류가 역사노정의 수많은 서글픔을 당하기도 전에 당신이 먼저 당하신 것은 저희들이 다 갚아드릴 수 없는 빚인데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그와 같은 아버지가 계신 것을 알고 있는 때가 얼마나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되고, 또 그렇지 못한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와 같은 불초한 자식들을 찾아오시는 아버지의 그 역사적 섭리의 노고가 언제나 이렇게도 일방적인 것을 생각하면, 아버지께서는 저희 시대뿐만 아니라 대대로 그러하였고, 저희 후손들에게까지도 그러하지 않을 수 없는 아버지는 과연 불쌍하신 아버지요, 외로우신 아버지요, 또한 슬픔과 어려움을 당하시는 아버지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 그런 아버지이심을 저희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자신에게 어려움이 있게 될 때에, 자신을 스스로 한하면서 아버지께서 어려워하실 것을 염려할 수 있는 마음 바탕을 지닌 아들과 딸이 있다고 할진대, 아버지께서는 하늘의 승리와 더불어 그 모습을 바라보시며 자랑하고자 하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사지에서 자기의 생명이 최후의 경각에 놓여 있을지라도, 당신이 먼저 이러한 자리를 거쳤고, 이러한 일을 당하고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아들과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을 염려하기에 앞서 아버지를 위로하며 최후의 생명길을 가는 아들과 딸이 있다 할진대, 당신은 그러한 아들딸을 대하여 그 누구에게도 사정할 수 없는 간곡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이 시간을 통하여 저희들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복귀도상에 왔다 갔던 많은 선조들을 생각해 볼 때에, 아담 가정의 아벨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또한 모세, 세례 요한 시대를 거쳐 예수시대 이후의 수많은 선지자들에 이르기까지, 피를 흘리던 그때 그때마다 당신의 슬픔이 얼마나 얼마나 쌓여졌고, 당신의 탄식이 얼마나 얼마나 남겨졌사옵니까? 이 모든 슬픔과 탄식이 당신에게만 남겨졌으면 모르겠으나 그럴 수 없는 아버지의 슬픔의 사정이 도리어 저희의 생애 앞에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버지의 슬픔을 슬픔으로서 인간 앞에 남겨 주시지 않으려는 당신의 딱한 사정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혹자는 60세로서, 혹자는 40세로서, 혹자는 젊은 청년으로서, 혹자는 소년으로서 새로운 생애를 엮어 가기 위해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겠노라고 몸부림치고 있사오니, 그러한 자녀들을 긍휼히 보아주시옵소서. 어떠한 십자가의 환경 가운데서 저희들을 지켜주시기보다도 그 십자가를 이겨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어떠한 외로움 가운데서 그 외로움을 막아주시기보다도 저희들이 그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될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희의 목전에 드러난 대한민국의 현 실상을 바라볼 때, 이 대한민국을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그 누구도 책임져 줄 것 같지 않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저희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누구에게 의지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을 축복해 주기를 바랄 수 없는, 그러한 현재의 환경이옵니다. 아버지여, 그렇지만 아버지만은 이 나라 이 민족을 버릴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의 그 안타까운 사정 앞에 그래도 이 나라 이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며 당신을 위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는 아들과 딸이 있다 할진대는 천만 번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아들과 딸에게 사정하고 싶은 아버지이신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을 위하고 세상에서 높임받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가 잘났다고 주장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의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외로운 자리에서 수고의 길을 겪어 나오는 아버지가 그럴 수 있는 분인 것을 진정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기쁨이 있으면 그것을 이 민족의 자랑으로 삼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보다도, 그 기쁨을 아버지의 것으로 돌려 드리기 위하여 당신을 생각하며 묵묵히 수고하는 아들과 딸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고로우신 아버지, 외로우신 아버지, 슬픔에 극한 사정을 참으시기 위하여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고, 혀를 깨물면서 참아 나오신 아버지의 사정을 진정으로 아는 아들딸이라 할진대, 천년의 한을 품으신 아버지께서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만족을 구하는 인간을 통하여서는 위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아버지 앞에 온유겸손한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참된 생활은 물론이요, 생애를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눈물을 금할 수 없는 감격의 생활, 황공의 생활, 개심의 생활을 하여야 할, 역사시대를 거쳐 나가는 인류의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아버지를 수고롭게 하고, 아버지께 더 무거운 십자가의 짐을 안겨 드리며, 아버지를 외로운 길로 몰아넣은 저희들이었음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악한 혈통을 이어받은 후손으로서 하늘편의 사람을 치는 선봉의 자리에 섰던 우리의 입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온 천지간의 그 무엇으로서도 당신 앞에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자신임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탄식과 서러움 가운데 아버지의 뜻 앞에 한 맺히게 한 자기 생명을 아버지 앞에 바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진정 아버지를 찾을 수 있고 아버지를 대할 수 있는 저희 자신인 것을 이 시간 깨닫게 하여 주시옵고, 이것이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큰 중대사인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저희 통일교회는 외로운 자리에 있습니다. 통일의 인연을 따라 나온 수많은 선조의 핏줄이 오늘 이 제단을 통하여 연결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될 때에, 선조들의 핏줄이 연한 이 자리는 황공한 자리요, 심각한 자리요, 엄숙한 자리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오늘의 저희 자신들이 당신 앞에 너무나 경솔하고 너무나 무게 없는 모습이었던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때, 그러한 저희 자신들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땅에 엎드려 아버지 앞에 눈물과 피땀을 흘리며 회개를 하여도 스스로 죄인된 모습을 감출 수 없는 모습들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망각해 버리고 스스로를 자랑하고, 스스로의 행복만을 갈망했던 자신들이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부복한 당신의 아들딸들은 자기의 자신들의 존재를 망각하고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의논할 수 있는 거룩한 마음을 갖는 모습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불쌍한 무리들을 동무삼고, 외로운 무리들을 친구삼아 나오시는 아버지의 생애노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역사과정을 통하여 자식들을 깨우쳐 나오시는 아버지의 서글픈 형상을 생각해 보면서 당신의 아들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보다도, 이미 당신의 아들이 되었고, 딸이 되었다는 신념을 가지고 아버지의 형상을 바라보면서 나 스스로 참을 수 없는 발걸음을 옮겨 놓아야 할 저희의 입장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슬픔이 극에 달하여 눈물이 앞을 가리는 외로운 자리에서 방향을 잃어버리고 비틀거리는 스승을 붙안고 이 길로 가시자고, 이렇게 가야 된다고 권고할 수 있는 아들은 없습니까? 그런 딸은 없습니까? 그러기에 아버지는 불쌍한 분이심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나온 과거를 후회하면서 저희의 죄악된 모습을 아버지 앞에 맡기고, 외로와하시는 아버지의 손길을 내가 이끌고 험한 산정을 넘어 책임을 지고 모시고 가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는 아들딸이 여기에 몇 명이나 되옵니까? 아버지, 자기 스스로 다시 한 번 과거를 회상하고, 현실을 비판하고, 내일을 직시하면서 스스로 아버지를 부를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외로우신 아버지를 그 무엇으로도 위로할 길이 없고, 슬픔과 근심에 싸인 아버지를 그 무엇 가지고도 위로할 길이 없는 것을 깨달을 적마다 통곡의 눈물을 흘릴 줄 알고, 참혹함과 외로움이 내 자체를 망각하게 하더라도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당신께서 기억할 수 있는 아들의 모습, 딸의 모습으로 남아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그것으로서 아버지는 나를 찾아 주실 것이고, 아버지와 인연맺어진다는 사실을 생애 가운데 어떤 것보다도 귀하게 느끼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한 많았던 1960년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1970년대를 맞이한 저희들은 진정한 의미의 효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말뿐인 효자가 되어서는 자기의 모습을 내세울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의 과거를 생각하여 볼 때에, 후회가 앞을 가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자신임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아버지의 앞에 서서 가야할 저희들이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야 하는 저희가 된 것을 원통하게 생각하고 아버지가 걸으신 그 길을 대신해서 가겠다고 몸부림치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런 아들딸이 되었다 할진대 이들은 광명한 앞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며, 이들의 장래는 당신의 소원과 더불어 발전하게 될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이 경거망동하여 아버지 앞에 스스로를 자랑하고, 스스로 아버지 대신자라고 주장하는 아들딸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부디 당신만을 모시고, 당신만을 따라갈 수 있는 그런 마음 자세를 갖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깊고, 넓고, 높고, 거룩하고, 존엄하신 아버지의 형상을 저희들은 마음으로 흠모하옵나이다. 초라하고, 슬프고, 외로우신 아버지보다도 영광 가운데 계시는 존엄하신 아버지의 형상을 저희들은 추구하고 있사오니 그럴 수 있는 우리 아버지가 되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만으로는 이것을 해결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지의 아들딸들이 그럴 수 있는 바탕과 발판을 만들기 위한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오늘도 아버지의 길을 곧게 하고, 아버지의 생활 환경을 중시하며, 아버지의 승리의 노정 앞에 화려한 영광을 돌려 드리기 위하여 더욱 노력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이되고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면서 자기 자신도 망하고, 자기 자신이 소모되는 것은 망각해 버리고, 아버지가 커지고, 아버지가 기뻐하고 아버지가 찬양받는 것을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참된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자리에 찾아오시옵소서. 이 자리에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임재하시옵소서. 저희에게 새로운 소망의 빛을 가지고 찾아와 주시옵소서. 당신의 소망이 매일같이 저희의 마음 가운데 있게 하시어서 아버지앞에 가까이 끌려갈 수 있는 자신의 마음이 되고, 아버지가 거기에 업히울 수있는 흠모의 심정이 되게 하시어서 저희들이 아버지의 아들딸인 것을 자각하고, 아버지의 대신자인 것을 자각하는 이 시간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 못하거든 아버지의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사 저희들을 죄악의 손길에서 벗어나게 하시어서 아버지와 더불어 하나로 화합할 수 있는 본성의 인연과 바탕만이 흡수되고 통합될 수 있도록, 아버지, 역사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삼천만 민족의 금후의 갈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남북한이 갈라져 가지고 서러운 피의 역사를 엮어 나온 이 민족의 처참상을 당신은 아시오니, 이들이 삼팔선으로 갈라진 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삼팔선보다 높고 깊어야만 되겠습니다. 북한 땅을 자기의 손발같이 생각하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 나라를 책임질 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통일교회 무리요, 이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한 많은 이 민족의 한을 붙들고 헤쳐 나가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금후에 삼천만 민족이 남아질 운명을 염려하면서 저희들이 정성의 기간을 정해 놓고 정성을 들이고 있사오니 이 민족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은 누구를 믿을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믿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가까이 서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저희가 그럴 수 있는 통일의 무리가 되겠다고 몸부림쳐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여, 불쌍한 이 민족을 지켜 주시옵소서. 소망을 찾아가시는 아버지 앞에 한의 역사를 남겼던 이 백성을 긍휼히 보아주시옵소서. 잘못하는 것이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언제나 미끼처럼 되어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이민족의 잘못함을 용서하여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제 당신이 찾아오는 그 길을 예비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남들 앞에 업신여김을 받더라도 눈물로써 과거를 회개하고 현세에 있어서 새로이 당신 앞에 하나될 수 있는 마음으로 당신을 다시 찾는 이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직까지 그러한 민족이 되지 못했사옵기에 이민족을 그러한 민족으로 만들어야 할 통일교회의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은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이 교단을 중심삼고 저희들은 최후의 죽음길을 넘어가는 그순간, 아버지 앞에 남기고 갈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아들딸을 모아놓고, 혹은 자기를 따르고 있는 제자를 모아 놓고, 혹은 동역자와 민족을 대해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말하게 될 때에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남긴 아들이라고, 딸이라고 할 수 있는 저희 통일교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은 이 시대의 환경을 무작정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이끌고 새로운 역사를 창건해야 할 무리들이오니, 저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걸어 나온 저희들의 발자취와 지금까지 싸워 왔던 저희들의 모습이 너무나 빈약하였음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지치고 고달픈 저희들의 몸과 마음을 다시 수습하여 당신 앞에 돌구비치는 모습으로 가야 할 저희들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한 몸의 기력도 갖추지 못하는 입장에 있거든, 아버지여, 당신이 책임져 주시어서 다시 기력을 갖출 수 있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70년대를 의미 있게 지내 가지고 아버지 앞에 승리적 통일전선을 이루어 드려야 할 저희들의 사명이 있기에 저희들은 개인을 통하여, 민족을 통하여, 세계를 통하여 통일의 깃발을 들고 지금까지 따라왔습니다. 일본을 중심삼고 움직인 와클(WACL)대회를 통하여 남겨져야 할 저희의 사명이 그 민족에 달려 있음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시아의 장벽을 넘고, 세계의 장벽을 넘어서 그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간 뒤에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참되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이 서로 그리워할 수 있는 인연을 맺게 하시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원수들이 항복하는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한 곳으로 묶어 바칠 수 있는 행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들의 마음이 승리의 터전으로써 그들이 민족 앞에 남아질 수 있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어린 자식들을 때려 몬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들이 무한히 불쌍하게도 느껴지지만, 이들보다도 이들을 또다시 때려 몰아내고 또다시 가라고 명령해야 할 아버지가 더 불쌍하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민족간의 외로운 간격보다도 하늘과 세계 사이에 벌어져 있는 그 간격이 얼마나 더 외로운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옵니다. 다시 달려가라고 재촉하지 않을 수 없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위로와 아버지의 긍휼의 마음이 이들의 생애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동안 저희들은 많은 비판을 당하면서도 정성을 쌓으며 발걸음을 옮겨 나왔습니다. 혹자는 거리에서 비판을 당하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당신앞에 호소한 적도 있사옵니다. 이러한 모든 사정들을 아버지께서 염려하시어서 저희 앞에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게 하신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 승리가 이 민족을 통하여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이 사활의 조건을 넘어 아버지 앞에 저주를 받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저희들이 바라는 소원이기 때문에, 금후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얼마나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일의 아시아를 책임져야 할 한국과 일본과 중국은 아시아의 제국가와 힘을 합하여 공산당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방향을 제시할뿐만 아니라 공존 공의의 사회를 이룰 수 있는 힘을 길러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어떤 일을 당하였을 때,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탄식이 있게되는 것을 절절이 느끼게 되옵니다. 노력하지 아니한 민족은 침범을 받아 자유권을 잃게 되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도 마음의 기준이 그러하다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 노력해야만 되겠습니다. 밤낮없이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남들이 잠잘 때도 저희들은 잠자는 시간을 아껴 가면서 준비하여야만 되겠습니다. 남들은 자기 스스로의 길을 걸어 스스로의 생애를 남길지라도, 저희들은 아끼고 또 아껴서 민족과 세계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가 이러한 사명을 다하도록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 이 아침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제 며칠만 지나면 10월이 옵니다. 10월에는 777쌍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없었던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 남겨져 있사오니, 이것을 위하여, 이 문제를 위하여, 밤을 새워 가며 정성들이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있거든, 그들을 천배 만배 거듭 보살펴 주시옵소서. 사랑의 마음으로 위로하여 주시옵고, 은사의 손길로써 그들을 인도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이미 아버지 앞에 맡기었사오니 당신이 경륜한 대로 거두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은 당신이 허락하신 약속을 따라 이리 지구를 들려 오겠사오니 아버지께서 여기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본부를 그리워하는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고, 스승을 만나고 싶어하는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세상의 어떤 사람을 만나는 기분으로 만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의 만남이 당신의 사정을 느낄 수 있고 70년대에 있어 새로운 승리를 남길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한국을 신앙의 조국이라고 흠모하는 외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청파동 본부가 얼마나 책임이 막중한가 하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아버지 앞에 눈물로써 정성들이며 호소하며 살아 가는 그들 앞에 저희들은 부끄러운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하고 있는 데 당신들은 뭐하고 있느냐고 그들로부터 권고받는 본부의 식구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이 시간 시간을 아껴 가면서 당신을 중심삼고 뜻 앞에 남아질 수 있는 생애를 남기기 위하여 몸부림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생애를 대신하여 가겠다고 몸부림치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금년 한 해를 당신이 보호하시는 가운데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가오는 1971년도는 저희들이 손수 맡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축복의 날이 지난 후에는 전국적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저희들이옵니다. 더우기 당신의 아들딸들을 앞세워 갈 길을 재촉하지 않으면 안 될 기간이 남아 있사오니, 아버지여, 당신이 직접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만사가 형통하게 하시옵고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이 아침을 통하여 권고하여 주시옵길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5-16
말 씀
여러분도 알다시피 오늘은 이달에 들어 마지막으로 맞는 주일입니다. 이 9월달은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우리 한국에 있어서, 혹은 일본에 있어서도 잊을 수 없는 와클(WACL)대회를 놓고 정성들인 기간입니다.

35-17
이 나라를 책임져야 할 통일교인들
우리가 바라보며 정성들인 그날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와클대회를 성공리에 마치게 된 데 대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려야만 되겠습니다. 금후에 있어서 우리들 자신이 새로운 각도에서 뜻을 생각하고 더 정성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더우기 아시아 정세가 급변하여 긴박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에게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정성들여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이 70년대에 어떻게 남북한의 통일을 바라볼 수 있겠느냐, 이 민족이 소원하는 해원의 한 날을 언제 성취하느냐 하는 문제가 민족적으로 거쳐나가야 할 큰 십자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의 통일 문제는 한국 민족에 한한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에 걸려 있는 문제요,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에까지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의 주도적인 책임은 어떤 세계가 지는 것도 아니요, 아시아가 지는 것도 아니요, 우리 이 한민족이 져야 되는 것입니다. 한민족이 책임을 지는 데는 북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남한의 우리 국민들이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남한에 있는 우리 국민이 책임을 져야 할 입장에 있다면 구체적으로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이냐? 일반 사회의 사람들은 책임을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사회에 정신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종교 단체가 그 책임을 져야 될 것입니다. 혹은 지금까지 역사와 더불어 인연을 같이해 나온 어떤 종교가 이 현실을 책임져야 될 것입니다. 어떠한 정신적인 자세를 갖추고 있는 무리들이 이 민족의 갈 길을 책임져야 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단체가 책임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현재 일반 사람들도 통일교회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자세나 우리의 생활 태도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라에 대하여 충성하는 그런 충성이 아니면 안 된다. 만 가지의 일들이 실현될 수 있는 내용의 동기가 우리를 중심삼고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볼 때, 과연 그럴 수 있는 우리 자신들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인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 단체가 짊어진 책임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 시작이나 결과도 결국은 우리 통일교인 개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나 하나가 문제라는 겁니다. 여러분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비록 작은 내 한 자신이지만 결국은 나 자신에게 내일의 민족의 정기를 새로이 발전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35-18
민족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새롭게 자각하고 다짐해야 할 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생애를 두고 볼 때, 혹자는 60세에 가까운 사람도 있을 것이요, 혹은 40세가 넘은 사람도 있을 것이며, 혹은 아주 젊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여러분 자신은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입니까? 여러분은 이 민족의 갈 길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고, 자신들이 해야 할 사명을 스스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회고해 볼 때 자신은 과거의 생애에서는 아무런 결실이 없었음을 알게 될 것이고, 이제 아무리 노력하고 몸부림을 친다 하더라도 자기가 생각하는 그 한계점까지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알면 알수록, 느끼면 느낄수록 거기에서 낙망할 것이 아니라, 자기의 남은 짧은 생애에 가일층 자기의 모든 정력을 투입하여 최후의 결판을 지어야겠다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남아진 생애를 전부 다 집약시켜 가지고, 이 민족과 역사 앞에 어떻게 투입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새로이 다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젊은이도 마찬가지입니다. 20대 청소년의 입장에서 희망에 부푼 가슴을 부여안고 이 민족의 장래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새로운 희망을 가진 그런 젊은이가 있다 할 때, 그 희망은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희망이 이루어지느냐? 내 주위의 환경을 헤쳐 가면서 어떻게 하면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고 자기의 소원을 달성할 수 있는 내가 될 것이냐? 그 환경을 이끌어 나가면서 그 환경에 영향을 미쳐 주고, 외로운 사람을 만나면 위로해 주고, 무력한 사람을 만나면 힘을 주입시켜 주고, 그들에게 내일의 희망을 심어주고, 자기의 남아진 생애를 어떻게 지내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은 여러분이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문제입니다. 간단히 생각해서 지내는 그런 생활, 생애노정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기에는 사방에 미쳐져 있는 가중된 인연을 짊어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슬픈 사람, 외로운 사람, 어려운 사람, 고통스런 사람 등 우리가 동정해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많은 사람들을 동정해 주며 내 일생에 있어서의 보람된 여생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의 젊은 입장을 자랑하고 내일을 꿈꾸는 희망에 벅찬 청소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꿈은 자기 일신만을 위해서는 달성할는지 모르지만, 민족이나 이시대 앞에 자기의 사명을 책임진 입장에는 서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바라보게 될 때,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우리 통일교회가 천명을 받았으니 그 책임을 해야겠다고 자각하여 소명받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스스로가 다짐해 나가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의 생애를 어떻게 보내야 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신들은 역사의 부활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으로서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왔다 갔던 우리 선조들을 두고 볼 때,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아시아에 있어서 약소 국가가 아닌 부강한 나라가 되어지기를 바라지 않은 선조는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한 때에 그 소망을 이루어 오늘에야 그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고 하는 선조들이 이 땅 위에 나타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 자신들은 그 선조들이 염려해 나온 역사적인 소원을 성사시킬 수 있는 희망적인 실체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현재의 삼천만 민족에게 앞으로 한국이 이러이러해야 되고, 혹은 경제 부흥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아시아 태평양 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적 사명을 해야 된다는 것을 절감하게 하고, 이 나라 민중 앞에 내일의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고 새로이 그 마음을 다짐할 수 있도록 자극시켜 주는 주체성을 지닌 우리 자신이 되어 있느냐 할 때 ‘그렇다. 그 문제에서는 내가 아니면 안 될 것이다. 내가 처한 분야에서는 내가 아니면 안 될 것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무대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틀림없이 우리의 중심기반과 협력하지 않고는 안 될 것이다’고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이 민족 앞에 있어서 현실의 주체성을 대신할 수 있는 자각된 여러분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35-20
평탄한 길을 갈 수 없는 우리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나 현시대적으로 이러한 입장에 있었다 하더라도, 민족 앞에 미래에 있어서 소망을 줄 수 있는 단체가 어디 있고 개인 앞에 소망을 줄 수 있는 개인이 어디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이민족으로부터 ‘이들이 아니면 안 되겠다. 반드시 이 사람들이어야 되겠다’라고 하는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서 여러분이 삼팔선을 바라볼 때, 그 삼팔선은 대한민국의 삼팔선이 아니라 그 삼팔선은 우리 통일교회의 삼팔선입니다.

수가 많지 않은 통일의 무리를 통하여 1천 3백만 명 이상이 살고 있는 북한 땅을 탈환해야 됩니다. 우리들은 그곳은 탈환하기 위한 하나의 길을 모색해야 할 책임과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한 사람도 남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 총동원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삼팔선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작전을 해야 할 것이냐? 정상적인 작전을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이러한 사상과 이러이러한 배경을 갖추어 가지고 선전포고를 해서 우리 힘을 중심삼고 무엇으로든지 대들 테면 대들어라 하면서 당당히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슨 작전을 어떻게 할 것이냐?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 단 한가지 전법이 있다면, 그것은 곧 기습작전입니다. 기습작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때 기습작전을 시도할 것이냐? 대낮에 할 것이냐? 대낮에 기습작전을 시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밤중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밤중도 고요한 밤이 아니라 거센 태풍이 몰아치고, 폭풍우가 퍼붓는 밤이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싫어하는 그런 밤에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가는 길은 하이웨이일 것이냐? 아닙니다. 그 길은 험산 유곡의 길입니다. 어느누구도 가지 못하여 발자국을 남지기 못했던 깊은 산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깊은 산길 중에서도 제일 어려운 가시밭길이 있다면 그 길은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그 길을 누가 갈 것이냐? 일선에 나가 싸우다 죽는 것이 아닙니다. 가는 도중에 많은 희생자를 내는 환경에도 당연히 맞서서 넘어갈 수 있는 특공대가 아니면 그 길을 돌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앞에 있어서 통일교회가가 그 사명을 짊어졌다 할 때는 그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여기에서 어떠한 마음 자세를 가지고, 어떻게 출발해야 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행군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죽고 난 후에 새로이 부활하겠다는 소망을 갖지 않고는 이 전략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통일교회 교인들이, 통일교단이 그런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수난의 길을 가야 됩니다.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이미 죽었다고 할 수 있는 입장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내일의 희망의 길을 닦아 나가는 개척자가 되지 않고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한 생애노정이 1년, 혹은 10년을 거쳐 가고, 가다가 혹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할 것입니다. 이 책임을 내가 다하지 못하면, 내 후손을 통하여서라도 이 길을 가라고 다짐하고,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지 않고는 망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이 다하여 스스로 이 환경을 피할 수 없는 절박한 입장에 처해있다면 희망찬 내일을 위하여 내 최후를 지켜보는 동지면 동지, 혹은 아들딸이면 아들딸의 손을 붙들고 유언이라도 하고, 권고라도 남겨야 합니다. 지금까지 달려온 자기의 모습을 회고하면서 그 이상 달릴 수 있는 후계자를 세우지 않고는 이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그러한 사명을 짊어졌다고 할진대 통일교회는 일반 사람들이 지금까지 걸어 나왔던 그런 평탄한 길을 걸어가서는 안 됩니다. 일반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평범한 교회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그런 결의를 가지고 가서는 안 됩니다. 그 환경을 뛰어 넘어서 생각도 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교회라고, 우리의 일을 기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인정할 수 있는 길을 가야만 내일의 승리의 가망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 우리들은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자기를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될 현재의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35-22
용기 있게 살다 가신 예수
그러면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책임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를 따르고 있는 여러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많은 사람이 한 초점에 귀결되어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것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태어났고, 사는 것도 그것을 완성하고 성취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며, 죽는 것도 그것을 위해서 죽어야 합니다. 이 목적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 들여야 되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투입해야 됩니다. 싸움에 필요한 모든 장비는 이것을 위해 정비해야 된다고 하는 문제가 여기에 귀착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통일교회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통일교회는 망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목적을 향하여 여러분을 내몰 때에는 최후의 극한 지경에까지 내몰아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많은 희생이 따를 것입니다. 거기서 모두다 쓰러지고 한 사람이 남는다면 그럴 때는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마지막 남은 그 한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사람은 그야말로 우리가 소망하던 실체다 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몰리면서도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다하기 위해 천명을 받들어 자기의 생명을 걸고 싸워 나가야 할 그런 자리에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싸우다가 후퇴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역사는 언제나 변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변하는 역사이기 때문에 개인이 그런 역사과정에서 희생되었다면 그 역사적 소망과 더불어 반드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한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의 마음속에 그 소망에 대한 신념을 철투철미하게 가지고 자기의 온갖 정성을 다 투입하여야 합니다. 원수와 더불어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죽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생애를 살고 갔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전체를 책임지고 몰고 가려고 했으나 전부 다 틀어져 버린 것입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길을 자기의 제자들과 더불어 가기를 바랐지만, 끝내 그 제자들은 전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라를 위해 죽어간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주한, 자기가 소망하는 길을 갔던 것입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길을 목숨을 내어 놓고 가야 할 사람은 예수님 혼자뿐이었습니다.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십자가의 길을 누구와 더불어 갔느냐?

인간과 더불어 갈 수 없었던 예수님의 정성은 하나님을 따라 나왔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수고한 어떤 사람보다도 더 수고해야 하는 책임을 느끼고 있었으며, 목적관을 중심삼고도 어떤 사람보다도 강한 목적관을 가지고 있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혼자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갔던 것입니다.

그 길만이 역사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전통의 인연을 사망의 세계에, 원수의 세계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예수님의 최후의 운명이 결정되는 과정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라고 했던 여기에는 모든 내용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아버지 앞에 갑니다. 가는 데는 비굴하게 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과 더불어 가게 하시옵소서. 지금까지 갔던 수많은 인류는 당신이 소원하시는 모습으로 가지 못했지만 저는 당신의 소원하시는 모습으로 깨끗이 가게 해 주십시오. 가는 데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당신이 바라시는 아들로서 이렇게 가야 된다는 그 기준 앞에 일치될 수 있는 기점을 남기고 가게 해주십시오. ‘라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외로운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언제나 늠름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은 패자의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지만, 세계를 제패할 때가 기필코 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승리의 그때가 오더라도 이 세계를 원수와 같이 취급하지 않고 원수를 용납할 수 있는 세계관을 심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희망을 가진 자기 자체는 죽어서 물러가지만, 미래의 승리권을 자신하는 예수님의 입장에서 미래에 패자의 서러움을 당하게 될 로마 악당의 무리를 대해서, 반대한 무리들을 대해서 여유있게 축복을 해줌으로써 그들을 안팎으로 점령하게 된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35-24
생애에 무엇을 남기려면
이러한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 앞에서나, 역사적인 모든 전통을 두고 보나, 용서의 역사를 두고 보더라도 머리숙여 존경할 만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안팎으로 보더라도 걸리지 않는 생애를 살고 간 분이 예수님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애는 그 일대 30여년의 생애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생애로 지금까지 남아진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역사는 예수님이 남기고 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발전해 나왔습니다. 하나님도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셨기 때문에, 그 방향이 목적점에 일치되기 위해서는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어떠한 핍박 도상을 거쳐 갔더라도 그것이 망하는 운명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망할 운명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오히려 승리의 터전이 되고, 전통의 요인이 되어서 세계적인 새로운 터전으로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태어난 것은 하나님과 세계를 위해서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를 위하여, 세계의 생사권을 해결짓기 위하여 내가 태어났다고 하는 신념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삼팔선을 넘어야 합니다. 그보다 더 큰 삼팔선이 있더라도 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생각해야 될것은 한민족의 삼팔선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타파하여 통일 민족을 형성했을 때는 어떻게 되겠느냐?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공과 소련과의 삼팔선이 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민족 앞에 남북을 갈라 놓은 삼팔선이 가로 놓여 있는 것은 그리 큰 시련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을 중심삼은 살팔선이지만, 다음에는 소련과 중공과의 더 강하고 더 극한 삼팔선을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민족이 해결지어야 할 평화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더 큰 삼팔선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승리적 터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나라의 삼팔선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 한민족이 우리의 삼팔선을 해결하고 소련과 중공과의 국경에 접해 있는 세계적인 삼팔선을 극복할 수 있는 민족이 되었다 할진대는, 이 민족은 세계에 새로운 주체성을 심어 주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는 민족이 아니 될래야 아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그럴 수 있는 신념을 가졌습니까?

공산주의 세력이 세계적인 발판을 갖추어 가지고 우리를 향해 습격해 온다 하더라도, 그들 앞에 당당히 나서서 몰리지 않고 그들과 대결하여 승리 할 수 있는 자신을 가진 그런 단체와 개인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럴 수 있는 단체와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찾아 나오셨습니다.

공산당은 지금까지 위장전술로써 정책을 수행해 나왔습니다. 이것은 언젠가는 지탄받게 되는 것입니다. 악이 지금까지 발전해 나오는 데는 정상적인 활동 체제를 갖추어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은폐와 위장전술을 터로 해 가지고 침략을 가해 나왔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이것은 사탄이 악을 중심삼고 하는 놀음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 해결의 관건은 우리 통일교단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통일교단을 통하여 나 자신은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우리가 추구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소망은 여러분 개인이 주도해서 개인의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보다도 방대하고 엄청난 역사적인 사명, 천주사적인 내용을 포함해서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적인 사명뿐만 아니라, 시대적인 사명까지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이 과연 약자가 되지 않고 그 환경을 처리하고, 그 환경을 책임질 수 있는 통일교인 개개인이 되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어떤 생활을 하여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남기기 위해서는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남길 수 없습니다. 그저 밥먹고 그럭저럭 살다가 가는 그런 생애는 누구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북에 있는 사람이나 이남에 있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주도하는 것이 없습니다.

35-26
반드시 이긴다는 신념과 여건을 갖추는 것이 문제
어떤 생애를 남길 것이냐? 그러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남길 수 있는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적인 것으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 방식, 통일교회식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 식이지만 세계적인 것이면 남아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20세기인 현대에 있어서, 30억 인류, 그 누구든지 바라보고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 있는 방식이면 되는 겁니다. 30억 인류가 무관심하고 30억 인류와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아무런 힘이 없는 그런 방식은 전부 흘러가 버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주최한 9월의 와클(WACL)대회를 중심삼고 어떻게 하면 통일교회의 역사에 남을 수 있는 활동을 할 것인가? 지금까지 어느 민족, 어느 종교가 하지 못한 내용을 내 보이고, 그 활동 모습을 드러내야 되겠습니다.

이번에 와클(WACL)대회가 일본에서 열렸는데, 일본에서 하면 아주 잘 됩니다. 일본의 역사 이래에 없었던 거국적인 행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거기에 집중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거국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공산당들도 우리 통일교회의 움직임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배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걱정의 도가 자기들의 갖추어진 환경보다도 더 강하게 될 때에는 이들은 제2전선을 준비하고 제3전선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승리만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질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는 군인이 많을 때는, 그러한 약한 전투력을 가진 군대는 승리보다 패배하기가 쉽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기에서 지는 날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지는 데 대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기는 것이 철칙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군사력에 있어서 이겨야 됩니다. 또한 장비에 있어서도 강해야 되며, 정신적인 자세에 있어서도 더 강해야 됩니다. 그리고 생활력에 있어서도 강해야 됩니다. 하나에서 백까지 모든 면에서 이길 수 있는 자신을 갖고, 실제적으로 그런 여건을 갖추었을 때는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갖추지 못했을 때가 문제인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전선이라는 목표를 놓고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다고 하는 이런 망상적인 관념을 내포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긴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 져도 이기는 것입니다. 져도 이긴다는 그런 의미의 통일전선이 어디 있느냐? 그것은 역설적인 말이 아니냐? 말은 역설적인 것 같지만 내용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작전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작전은 맞고 빼앗아 오는 작전인 것입니다. 지는 것 같지만 결국은 이긴다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서 성인이나 선한 사람들은 지탄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공짜배기 역사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지탄받지 않은 성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화롭고 행복이 깃든 그러한 국가와 민족 앞에 역사적인 인물이 탄생한 예가 없습니다. 반드시 국운이 기울어 가고, 사회의 질서가 파탄적인 상황에 빠져드는 경계선에서 역사적인 새로운 인물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길은 거친 바위산이지만, 그 땅 위에 비가 내리고, 환경이 요란하면 요란할수록 그 바위는 점점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환경의 여건이 나쁜 것이 도리어 바위산을 드러나게 하고 반석의 터전이 생겨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람이 부는 요란스러운 환경이 도리어 새 시대를 창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여러분들은 나는 과연 그 시대의 역사와 더불어 살았는가를 돌이켜 봐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살았다면, 내가 지금은 이 길을 가면서 죽지만, 부활의 가능성을 백퍼센트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망해 가는 모든 국민 가운데 한사람이라도 살아 남는 사람이 있으면 틀림없이 이 전통은 계승될 것입니다. 나는 죽더라도 모든 것을 이겨내고 그 전통을 따라 충성을 하겠다는 그런 신념을 가지고 다짐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죽더라도 부활합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전통을 세우셨습니다.

35-28
공산당과 대결할 것에 대비하라
여러분이 피를 흘리게 될 때는 깨깨 흘리라는 겁니다. 땀을 흘릴 때도 깨깨 흘려라, 죽어가도 깨깨 흘리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망에 어떠한 미련을 남기지 말고 깨끗이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청산했을 때는 돌아오는 법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어디로 갈 것이냐? 대한민국을 거쳐 어디로 갈 것이냐? 자기 앞에 수난이 없고, 고통이 없는 그러한 평화의 나라를 찾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민족의 반역자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의 마을 마을에서 들려오는 소문을 들어보면, 재벌들은 전부 다 보따리를 쌀 준비를 해 놓고 돈이 있으면 스위스라든가 외국의 은행에 예금해 놓는 등 대한민국에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 가라! 갔다가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이 갔다가 들어올 때는 민족의 갈림길이 어디며, 경계선이 어디냐 하는 문제가 벌어질 것이다’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나라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겨레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장차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자기의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입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역사와 더불어 시대와 더불어 있는 정성을 다해 투쟁하며 그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 혹은 무리들이 있다면, 그 사람을 통해서, 그 무리를 통해서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고 살아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도 전부 이런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외국에 유학을 가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외국에 유학 가야겠다는 사람은 많아도 삼팔선을 향해서 가야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가 삼팔선을 향해서 가야 할 때가 기필코 올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문선생은 아직까지 때를 맞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몰림길에서 응당히 사라져야 할 사나이였겠지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어찌된 영문이냐? 그것을 연구해야 되는 거예요. 모두가 망하기를 바라고 길을 막는 데도 불구하고 망하지 않고 점점 그 폭이 넓어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던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도 문 선생님을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을 볼 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 삼켜져 버리고 역사적 환경에 휩싸이더라도 자신의 자세를 잃지 않고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말은 하지 않고 나가더라도 그 생각하는 폭과 신념에 있어서는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갈 길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틀림없이 그들과 대결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 길을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날에는 , 지난날 감옥 생활하던 처량한 사나이가 코웃음치며 날 저버렸던 사람들까지도 사랑할 것입니다. 그날을 맞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별의별 일들이 다 벌어질 것입니다. 내 생애에서 구경하지 못한 역사적인 인물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복귀섭리노정을 거쳐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 하늘편을 배반하고 원수편이 되겠다고 별의별 짓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별의별 원수들이 많았겠지만 영원을 향해서 진군하는 하나님의 행로를 정지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을 정지시키기 위해서 원수들이 작전은 하였을망정 정지시키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발전과정을 거쳐온 것을 선생님이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런 전법과 그런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35-30
통일교회 신도들이 갈 길
그러면 나는 어떤 길을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하는데 있어서, 혹자는 외적인 환경을 그리워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외적인 세계로 흘러갈 것입니다. 자기의 이익을 추구해 나오던 사람들은 통일교회에서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나라와 민족과 인류를 위하여 미래세계의 한 개척자로서의 사명을 완결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참다운 인연을 연결시키겠다고 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거기에는 누가 보아주는 데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깊은 내정적인 심정의 골수에서 하나님과 인연이 맺어지는 것을 생각할 때, 누가 보든 안 보든, 하나님과 인연을 맺기 위하여 자기 홀로 피땀 흘리며 책임지고 수고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천적인 섭리의 인연이 맺어지는 것이요, 역사적인 승리의 터전이 닦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서야만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데도 남모르게 해야 합니다. 정성을 들일 때도 남모르게 들여야 됩니다. 끝날이 되면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바람이 불고 요동이 벌어져서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쓰러진다 해도 나 자신이 뚜렷이 남아지는 그런 역사적 인연이라도 남겨 놓고 죽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통일교인들이 살아야 할 생애요, 남겨야 할 생애노정입니다.

여러분, 남겨지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유물로 남겨 주는 데 있어서 다 쓰다 남은, 버릴 수밖에 없는 걸레 조각을 남겨 주는 부모는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성들여 가지고 가꾸던 물건, 엄마 아빠만이 알고 있는 보물, 그런 보물을 남겨 주는 것입니다. 다 골라서 팔아먹고 남은 쓸모 없는 그런 것이 아니라, 다 팔더라도 그것만은 최후까지 남겨 가지고 이제까지 판 것 전체보다도 더 가치있게 여기는 그런 보물을 남겨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보물로 남긴 그것이 무엇이냐? 보물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보물에 깃들어 있는 보모의 사랑, 철석같이 정성들인 그 부모의 마음과 하나되어서, 그 마음이 자기 어머니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세계와 하늘땅을 감동시키고, 역사적인 인물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정성어린 마음이 깃들어 있을 때, 이것이 역사상에 없는 위대한 보물인 것입니다.

그러한 보물을 자기 집안에서 지니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보물을 취하기 위해서는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거듭되는 수난의 길을 극복해야 됩니다. 어려운 생사의 교차로를 몇 번이고 지나 가지고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물이 됩니다. 이런 것을 아들딸에게 물려주면 그 보물은 세계적인 보물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그러한 길을 가야 됩니다. 선생님이 손을 대는 것은 중간에 실패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입니다. 내가 손을 대어 가지고도 안 되는 날에는 열심히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 되거든 생명을 걸고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정성이 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커서 어떠한 분야를 책임질 수 있을 정도가 될 때에는 하나님은 그 사람을 이 땅 위에 실질적인 대상의 존재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현현시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반드시 드러나게 하십니다. 드러나게 되면 평화의 왕궁이 되지 않겠느냐? 최후를 결하여 최후의 고지 선상에서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그 나라의 영웅이 되어 국가의 운명을 승리로 결정하였던 그 장소는 왕궁이 아닙니다. 도회지의 중심가가 아닙니다. 그곳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 때문에, 삼각지대 아니면 험한 산골짜기, 아니면 험한 산정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거기에서 자신의 보람찬 생의 가치를 드러낸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그 나라의 정신적인 자세를 갖추게 한 위대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 통일교회는 그러한 자리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들기 위해 여러분을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고생을 시키자는 것입니다. 그 고생 앞에 쓰러지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커 갈 수 있는 강한 포탄과 같고 총탄과 같은 사람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하나뿐인 삼팔선이 아닌 겹겹이 나오는 입체적인 삼팔선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도 나오다가 쑥 들어갑니다. 자신의 마음이 변하여 마음을 놓게 되면 자신의 온 몸이 오그라드는 그런 입장에서 ‘너 이녀석’ 하면서 박차고 나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갈 길은 멀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통일교회 신도들의 갈 길입니다.

35-31
세계와 하늘땅을 위해 살아야 영원히 남는다
흘러갈 테면 다 흘러가라! 몇 사람이나 남을 것이냐? 생명이 끝나는 자리에서 ‘주여, 나만 남았나이다’하고 엘리야가 말했던 것처럼 그런 자리는 한 번뿐이라는 겁니다. 개인으로서 믿고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다 물러갈 때, 나는 한 개인으로 남아질 것이냐? 통일교회면 통일교회의 가정들을 중심삼고 내가 축복해 주고 믿었던 수많은 가정들이 물러간다면 나는 가정적인 패자의 입장에서 실패했다고 할 것이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단을 두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단을 중심삼고 나가다 다 쓰러지고 아무도 남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로 돌아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내가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거기에 만일 한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 사람은 바로 통일교회를 대표한 사람이요, 천만인을 대신하는 희망의 존재인 것입니다. 그와 내가 하나되면, 다시 말하면 창조원리에서 말하는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면 실제적인 창조의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의 가는 길 앞에 실패란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나에게 도움이 되면 되었지, 마이너스가 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사람을 요구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런 결심을 못 가졌다고 하면 그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행사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아무리 초췌하고 미미하더라도 그런 결심을 가졌다고 하면, 그 사람을 통하여 하늘의 새로운 기틀이 마련되고, 새로운 역사의 창건이 시작될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이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내가 가는 길 앞에 감옥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가야 됩니다. 가는 데는 온갖 정성을 들이며 가야 됩니다. 핍박을 당하더라도 죽음을 무릅쓰고 충성의 도리를 다하며 가야 됩니다. 그렇게 가는 사람은 가다가 아무리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가야 됩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걸어온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러한 자리에 같이 하셨습니다. 나를 사지에 몰아넣는 원수가 있다면 그 원수 두고 보자 이겁니다. 그 원수의 아들딸이 나를 구해 줄 것입니다. 그것이 원수를 굴복시킬 수 있는 최고의 작전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기성교회 목사, 장로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했지만, 앞으로 그 목사 장로의 아들딸들은 선생님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통일교회를 반대했던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 무덤까지 파 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하게 될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데는 그 이상 좋은 작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강제적으로 그런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 앞에 반역한 사람을 숙청하는데 그 아들딸들이 총칼을 겨누어 자기 부모를 숙청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총칼을 겨누어서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눈물로써 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볼 때, 방법은 같은 것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그 내용이 다릅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여러분들이 역사시대뿐만 아니라, 사탄세계에도 남길 수 있고, 하늘 세계에도 남길 수 있는 유물을 남겨야 합니다. 그 유물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두고 볼 때 그것은 자신만을 위한 생애가 아닌 것입니다. 그 생애는 세계를 위한 생애요, 하늘땅을 위한 생애이어야만 역사에 길이 남아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오늘과 내일, 하루 하루의 생활을 거치지 않고는 여러분의 생애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생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루의 생활을 남길 수 있는 생활로서, 그때 그때의 시간을 남길 수 있는 시간으로서 보내기 위해 우리 앞에 어떠한 고빗길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딛고 넘어서야 되는 것입니다.

내 일대에 어떤 고빗길이 있다 해도 어떤 탄력을 이용해서 그 고빗길을 넘어 제2의 고지를 일시에 탈환하고 넘어가기 위한 작전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일년에, 혹은 자기 일대에서만 끝난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길은 무궁한 것입니다. 그 고빗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고빗길을 넘으면서 당하는 시련이 문제가 아닙니다. 시련 후에 찾아올 그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궁금하다는 겁니다. 시련을 겪는 그 자체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련 후에는 반드시 무엇이 온다는 것입니다.

현재에 당하고 있는 시련보다도 그 시련을 극복하고 난 결과에 대해서 흥미를 갖게 될 때, 감동과 감격이 지금 당하고 있는 시련보다 더 클 때 우리는 언제나 승리의 자리를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35-34
십자가의 자리에서도 하늘과 더불어 승리의 길을 가라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신들은 국가의 운명을 책임지기 위해서 어떤 기도를 해야 되느냐? 그런 기도해 봤어요?

여러분이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나서는 데 있어서 자신이 받은 밥상이 최후의 밥상이라면 그 밥을 어떻게 먹겠습니까? 나는 어떻게 할것이냐? 생명의 길을 가는 것은 자신의 생애를 걸어 놓고 정성 들이는 마지막 길이라면 그 길을 어떻게 갈 것이냐?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 과거에 들인 정성이 아무리 컸더라도 마지막 길을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충성해야 할 것이 뜻을 품은 사나이와 아낙네들이 갈 길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자신을 몰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짊어진 십자가는 태산을 넘어오는 빛입니다. 그 십자가와 더불어 흘러갈 것이냐? 이 십자가를 품고 뒤넘이칠 수 있는 생애일지라도 민족과 더불어, 세계와 더불어, 하늘과 더불어 승리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그 무엇으로 쳐 버리면 모든 것이 깨져 나가도 그 사람의 충성, 그 자체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이제 세계를 향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망상적인 것 같지만 망상적이랄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강하게 나갈 수 있는 요인이 무엇이냐? 세계 인류를 교육하는 그 이상의 정성을 투입하라 이겁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주체가 대상보다 클 때에는 대상은 더욱 정성을 투입해야 됩니다. 자나깨나 정성을 투입해야 됩니다.

그것이 자기의 생활의 목표요, 자기 생애의 목표인 것을 알고 나가다 힘이 들 때에는 ‘아버님, 제가 이 책임을 다해야 당신이 해방될 것이요, 당신의 아들딸들이 해방될 것이오니, 이 해방을 위해서 나 한 사람을 거름삼아 후대의 해방의 기틀이 되게 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며 혈혈단신 외로운 환경 가운데서 눈물짓는 그 자리는 세계에 평화의 깃발을 높이 올리고 찬양하는 그 자리보다 더 엄숙한 자리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십자가를 앞에 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3차 기도는 어떠한 기도보다도 심각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모으고 기도하는 그 자리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천상의 인연을 따르는 수많은 인류의 소망을 호소하는 그 자리는 직접적인 자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뜻을 품고 그런 자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 소망을 찾기 위해서는 그와 더불어 죽음의 자리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소망을 찾으려 하는 것이 살아 있는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선생님이 무슨 일을 하자고 하면 옆사람만 바라봅니다. 망할 녀석들. 그런 녀석이 남아지나 두고 보라구요. 무엇이든 나를 빼놓고는 할 수 없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세계적인 최후의 결판을 짓는 데도 나를 빼놓고는 할 수 없다 하는 그런 목적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변하지 않아요. 이익이 생기는 일에는 살짝 나타나고 손해 나는 일에는 살짝 빠져 나가면 되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좋아해요? 여자들, 좋아해요, 안 좋아해요? 「안 좋아합니다」 여자들도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좋아해요? 「안 좋아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삼팔선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칼을 뽑아 들고 진군해야 할 때는 진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여러분은 어떠한 모습으로 남아질 것이냐? 통일교단이 70년도에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활동해 나오고 있는 데 그것이 어떤 결과로 귀결될 것이냐? 여러분은 어떻게 하고 있는 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35-36
통일교회와 더불어 끝까지 남아질 사람이 누구냐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망하게 해도 안 망합니다. 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망하지 않는 다고 해서 망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천륜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원칙을 따라서 여러분이 살아야 됩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희생해야 합니다. 희생을 하는 데는 십년 동안 희생한다고 하는 것보다도 천륜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순교해 가는 사람들에게는 당할 자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일을 결정하고 나서는 행동해야 됩니다. 결정하고 나서 우물쭈물하면 안 됩니다. 또 행동하는 중간에는 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일을 끝내 놓고 쉬어야 됩니다. 끝낼 때에는 하나님 앞에 축하잔치를 하고 나서 끝내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이 많은 남자들은 앞으로 삼팔선을 지켜야 할 때가 오면 소대장도 하고 대대장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때가 점점 접근해 오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민족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민족의 운명을 자기 생활권내에서 감지하고 분석 비판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내일의 창건자가 되고 역사의 구도자가 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에도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남겨야 되겠다 이겁니다.

남기려면 보여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바라볼 때에도 남길 만한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냄새를 맡을 때에도 남길 만한 것을 냄새 맡아야 되고, 무엇을 맛볼 때에도 남길 만한 것을 맛보아야 합니다. 듣는 것도 남길 만한 것을 듣고, 남기는 것도 남길 만한 것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내 몸 전체가 대하는 모든 것은 남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계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세계적이라는 것은 인간 중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하나님 것으로 남겨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발판으로 효자의 도리와 충신의 도리를 세워 나가며, 그 누구를 대하더라도 즉각적으로 그를 감지하여 그에게 동화될 수 있는 주체적인 내용을 가진 자리에서 심정의 인연을 남기고 가는 사람은 망하지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때가 가까워오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나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집을 짓는 데는 모래도 필요하고 깨진 조각돌까지도 필요합니다. 굴러다니는 블록 조각까지도 모두 필요해서 다 긁어 모으게 되나 집이 완성되면 남아 있는 모래알이나 깨진 조각들은 치워야 됩니다. 그때는 깨진 블록 조각들은 방해가 되는 거예요.

이와 같이, 때가 되면 될수록 내가 그들을 믿어 온 것처럼 나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생각해 볼 때 행동의 방향이 자꾸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대하는 데도 그렇습니다. 밀실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세계적인 일을 놓고 일대일의 자리에서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 앞에 훈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을 통해서 훈령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은 통일교회를 대표하여 하나님과 일대일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과의 일대일의 깊은 자리에 어떻게 탐구해 들어가느냐, 어떻게 개척해 나가야 거기에 남아지는 기수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평범한 생활 기준으로써는 안 됩니다. 모든 껍질이 떨어지고 썩어 버리면 생명의 내용을 지닌 것만이 남아지게 될 것이 아니겠어요? 그것은 죽더라도 맨 나중에 죽고, 망하더라도 맨 나중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더라도 맨 나중에 망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누구냐? 통일교회와 더불어 맨 나중까지 남아질 그 사람이 누구냐? 나 자신이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았으니 각자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여러분 스스로가 민족과 세계와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할 것을 다짐하고 가야 되겠습니다.

35-38
역사에 남아질 수 있는 인물이 되려면
선생님은 공부하는 것도 그러한 마음으로 합니다. 공부를 할 때에 왜 피곤을 느끼느냐? 자기를 위해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피곤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천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여기 이 한 페이지에 달려 있고 한 문구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 단어를 가함으로 말미암아 삼천만이 살고 한 단어를 감함으로 말미암아 삼천만이 망한다는 마음으로 더욱 정성 들여 그 한 단어를 가하자 하는 심각한 마음으로 공부해 보라는 겁니다. 머리가 나쁘긴 왜 나빠요? 여러분, 심각한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잊을 수 있어요? 생명을 걸고 하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쿵쿵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느낄 때가 있지요? 심각하면 그렇습니다. 그런 심각한 자리에서 여러분이 결심한 것을 잊을 수 있어요? 머리 나쁘다는 것도 다 정도 문제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산만하기 때문에 기억이 안 되지, 사지에서 자기가 죽게 될 순간이 다가오는 데 살 수 있는 묘안이 떠오른다 할 때 그 묘안을 기억하겠어요, 못하겠어요? 여러분이 공부를 할 때에 책 한 페이지를 한 페이지를 붙들고 생명을 걸고 거기에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성경을 볼 때 ‘이것이 무엇일까’ 하고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년, 2년, 3년이라도 정성들입니다. ‘아, 그것은 이렇게 된 것이구나’ 할 때까지 뿌리를 뽑는 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한 길을 갈 때는 언제나 낙망만이 남습니다.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가는 길에는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 민족과 세계는 부활되어 나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활동하며 생애를 살아간다면 현재 자기에게 남아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역사적인 인물로서 남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가 당한 모든 고통이 역사적인 고통이 되어 수많은 인류의 가슴속에 남아지고, 그의 생애에 당한 모든 사연들이 수많은 인류사회에 옮겨지기를 원하는 것이 참의 인연을 따라 나오는 인류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비참한 생애를 살다 갔습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10여 명의 제자를 데리고 오다가 다 잃어버리고, 그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로마 병정, 원수들 앞에 피 흘리며 죽은 처량한 사나이의 행로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느냐?

예수님은 옆 강도들과 같은 모습으로 죽었지만 그가 생각한 내용은 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가슴 가슴에 남아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필요한 내용을 남겼던 것입니다. 그 자리는 부활의 터전이 되어 가지고 역사를 수습해 나온 자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남기기 위해서는 편안한 현실 속에서보다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것도 남아지지 않는 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남기려는 것은 남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족의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는 것입니다. 최후에 남아질 것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싸워 나가는 그 길만이 반드시 역사에 남아진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이 그런 관점에서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삼팔선을 넘어 세계 평화의 기수가 되기 위해서는 돌아갈 것이 아니라 직행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그렇습니다. 우리 승공연합을 창설하게 될 때, 정보부면 정보부 관계 당국자들은 ‘통일교회도 이제는 그렇게 뛰어들지 말고 사회 명망 있는 인사들을 내세워 가지고 슬쩍슬쩍 해 가면 될 것이 아니냐. 하필이면 통일교 패들이 해서 오해를 받고 미움을 받을 게 뭐냐. 그것 잘못한 것 아니냐’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출발을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끝내야 됩니다. 도피하지 말고 십자가로 시작했으니, 십자가로 거두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방침입니다.

수난과 고생으로 엮어 온 생애에 있어서 우리들이 염려해야 될 것은 환난 과정을 통해서 승리의 결과를 어떻게 남길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고생길을 가야 됩니다. 여러분 일대에서 있는 힘을 다해 가지고도 못살게되면 영계에 가서라도 나에게 참소받지 아니하고 틀림없이 잘살게 될 것입니다. 이 길을 가면 틀림없이 세계적 승리의 터전이 마련될 것이니 이 길을 가는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가야 됩니다.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나만 남았나이다’하고 말했을 때, 하나님은 ‘바알에 굴하지 않은 7천여 무리가 있다(왕상 19:18)’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도 ‘나만 남았나이다’ 할 수 있었던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만 남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편은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고 있을 뿐이지 우리 편은 많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의 수가 여기 몇몇 있는 이들만이 아닙니다. 많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역사에 남아질 수 있는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수난길보다도 가중된 수난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역사에 남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더불어 세계인류와 더불어 있는 정성을 다하게 되면, 여러분의 생애는 기필코 남아질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그런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35-40
기 도
사랑의 아버님, 높은 태산이 앞에 놓여 있을 때에, 그 산정을 오르려는 사람의 수고도 클 것이겠지만, 그 높고 장엄한 하나의 봉우리로 남아지기까지 역사적인 수난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 자체가 남아지기까지의 수난과 역사의 고충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봉우리를 사랑으로 오를 수 있고 사랑으로 넘을 수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여! 또한 남아진 그 큰 봉우리가 평지가 되기 위해서는 억천 만시대의 수난길을 거쳐 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가치는 높고 귀하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되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앞에 놓여 있는 세계적인 산정과 같이 남아지기 위해서는 자기의 환경에서부터 역사적인 인연의 범위를 넓혀 나가서 복잡다단한 그 내용을 하나의 형태로 묶어버릴 수 있는 스스로의 역량과 도량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고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아담 해와의 타락 전에서부터 타락한 이후, 미래에 선한 세계로 복귀될 때까지를 잘 관찰하여 그 내용에 있어서 뼈대가 되어야 할 자신들인 것을 스스로 느껴야 되겠으며,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높은 인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미래에 자기의 모습을 지탱시킬 수 있는 하나의 중심형으로서 남아지는 입장에서게 될 때는 높은 산정과 같이 남아질 수 있다 할지라도 그 내용들을 자기와 관계없이 무너뜨리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평지 형태의 인간밖에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역사적으로 남겨진 모든 유물들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하고, 역사적으로 외로운 가운데에 승리를 다짐했던 모든 전부를 우리들의 것으로 수습할 수 있는 엄청난 인격자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세계적인 정상을 바라보게 될 때에, 어려운 자리를 피해 갈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책임지고 나가는 , 세계적인 하나의 개인이 되고, 하나의 가정이 되고, 하나의 민족이 되어서 그런 하나의 주권 국가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진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억조창생이 망하더라도 역사적 종말시대에 승리의 깃발을 꽂고도 남음이 있는 무리가 되겠다는 저희들이라 할 진대, 기필코 당신은 저희들을 통하여 승리의 역사로서 수습해 나간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지금까지 아버지의 섭리역사요, 그렇게 남겨야 할 것이 당신이 남기고자 하시는 사실들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도 저희들이 그런 다짐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면한 시련 고통을 피하지 않고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간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이 통일사상에 입각한 그런 사람이 되었다 할진대는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미치고,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기에 자기의 모든 정력을 투입하고, 인류를 사랑하기에 자신을 망각하는 그런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당연히 인류역사의 시련과정을 책임질 수 있고, 어려운 문제들을 자기 스스로 몸부림치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결할 수 있다는 것을 두고 볼 때, 이런 사람을 통해서 세계의 인륜이 수습되고 역사가 수습되며,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서 기필코 하나의 중심 기틀이 마련된다는 사실을 이 시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들은 이제 어떠한 생애를 남겨야 할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저희의 생애가 나 홀로 남아지는 생애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과거의 선조들과 더불어, 현시대의 위인들과 더불어, 미래의 선한 후손들과 더불어,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공히 남아질 수 있는 생애를 살아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갖추는 데는 평안한 자리에서 그러한 내용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비애의 곡절이 서린 처참한 행각승과 같은 자리를 넘나들면서 그런 내용을 갖추어야겠습니다. 승리할 때에도 그와 같은 자리에, 어려울 때에도 그와 같은 자리에 동참하고 함께 행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버지의 최고의 기쁨을 자기의 기쁨으로 물려받을 수 없고, 아버지의 영광을 자기의 영광으로 상속받을 수 있는 상속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에, 오늘 저희들은 자기를 중심삼은 사소한 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역사적인 인물로서 책임을 지고 나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그렇게 나가는 자리는 흥하는 자리가 아니옵니다. 경솔히 했던 자기의 생활을 반성하면서, 그와 같은 감정을 중심삼고 그와 같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당신과 더불어 의논하고 앞으로 다가올 세계와 더불어 의논하며 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도 그러한 관점에서 생애를 바치고 갔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역사로부터 지배받는 생애가 되지 않고, 역사를 지배하는 생애로 남아졌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통일의 사상권내에 선 당신의 아들딸들 중에서도 그와 같은 생애를 남길 수 있는 아들딸들이 많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제 이 민족의 운명을 저희들이 결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이 삼팔선 이북에 있는 원수 악당들을 모두 몰아내고, 이북에 있는 모든 백성들을 해방시켜, 자유와 평화가 깃든 안식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온갖 정성과 온갖 수고를 개의치 않고 나가는 모습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정성들여 나온 저희들을 지켜 주신 아버지의 은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희들은 어떤 나라를 믿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를 의지하고 아버지를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복의 근원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요, 만인의 가르침의 근본이 아버지를 아는 것이라고 하였사오니, 아버지를 아는 것만으로써 전체를 누룩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사지에서도 아들딸이요, 평화의 제단에서도 아들딸이요, 모든 입장에서 아들딸이라고 공인받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어떠한 자리에서도 깊이 인정하고 서로서로 타오르는 마음을 가지고 승리하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복귀노정을 떠맡은 전체를 당신과 더불어 의논하고 맞추며 살아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남겨지는 생애가 자기의 현실보다 수하에 있는 것으로서 남겨질 것이 아니라 더 큰무대를 통하여 자기 스스로 거기에 흡수되는 자리에서,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가는 자리에서 값진 생애가 남아진다는 것을 알고, 오늘날 이들이 뜻있는 천국창건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런 관점에서 저희들이 과거의 생애를 다시 한 번 비판 분석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현재의 입장을 비판 분석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내일의 소망을 중심삼고 영광 가운데 남아질 수 있는 보람찬 생애의 기준이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사오니, 그런 기준을 가지고 이제부터 남아지기 위한 생애를 다짐해 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 이 하루의 전체를 아버지께서 친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