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0 to 34-115: 부인전도대원의 책임

부인전도대원의 책임
1970.08.29 (토), 한국 전본부교회

34-80
부인전도대원의 책임
1972년까지 선생님이 바라는 기준을 넘고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다시 내몰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대로 가만히 앉아 가지고 뭉개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이것을 안고 추어야 되겠습니까? 만일 이것을 못하게 되면 여러분들의 자식들에게 피어린 수난의 길이 남을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 가정의 앞 길도 막힐 것입니다.

하나님이 뜻을 위해서 우리를 나라와 세계 앞으로 몰아내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안고 추지 못하여 때를 놓쳐 버린다면, 그때를 누가 맞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을 잘 안고 추면 나라와 세계 앞에 버젓하게 나설 수 있는 때가 옵니다. 그러니 여기에 가담해서 활동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되겠습니다.」

요전에 지구장 모임에서도 ‘여러분의 부인들도 최소한 3년 동안은 전도활동을 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애기들은 다 이쁘지요? 이쁜가, 안 이쁜가?

34-80
왜 지금껏 아벨들은 아무 말없이 핍박받고 고생했는가
이제 원리 이야기 좀 합시다. 여러분은 아벨이예요, 가인이예요? 「아벨입니다」 아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지금까지 아벨에 대해서는 원리에서 확실히 밝히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확실히 밝힐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왜 그렇게 지지리 고생을 해요?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무슨 탕감이니 복귀니 해 가지고 원수들을 대해 주먹질도 한번 못하고, 욕도 한번 못 하는데 그게 뭐예요? 그거 기분 나쁘지 않아요? 선생님도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오면서 화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성격이 얼마나 급합니까? 칼이 있으면 단숨에 목을 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예요. 그렇지만 죽은 듯이 사는 것입니다. 왜 그러고 사느냐? 여러분들은 왜 그러고 살아요? 왜 그래야 하는가 생각해 봅시다.

선생님은 어디를 가든지 누구한테 뒤지지 않는 기반을 닦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욕을 먹어도, 별의별 일을 다 당하고도 왜 가만히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생한 여러 분들에게 또 왜 고생하라고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 나올 것 아닙니까? 그거 이상하지 않아요? 여러분은 ‘이게 언제 끝날 것이냐? 통일교회, 아이구 통일교회…’ 이러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머리통이 나쁜 통일교회냐?

통일교회에서는 뭘 하자는 것이냐? 원리주의대로 살자는 교회가 통일교회입니다. 천리의 원칙을 따라 살자는 것이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리의 원칙을 따라 사는 것이 고생하는 것이냐? 지금까지 희생하고 지지리 고생하고 그만큼 천대받았으면 되었지, 지금 또 이게 뭐냐? 축복받으면 다 좋다고 해서 축복받아 가지고 이제 잘살 줄 알았더니, 사위기대 사위기대 해서 아기들을 낳아서 사위기대를 이루었는데, 사위기대를 지고 나가서 또 고생해야 된다니 축복은 무슨 축복이냐’고 할 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불만 없어요? 불평해 봤어요. 안 해봤어요? 「안 해봤습니다」 여러분들은 내용이 없기 때문에 불평할 줄도 모를 거예요.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이 잘났어요, 못났어요? 「잘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잘났지만, 세상 앞에서는 잘난 것이 없습니다. 세상 앞에서는 잘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양쪽에서 다 잘나려고 하다가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이 되기 쉽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는 잘났지만 세상 앞에는 못났다는 것입니다. 얼마 만큼 못났느냐 하면 죽을 만큼 못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못났는가 하면 빌라도 법정에 끌려 나갔을 때, 그들이 뭐 어떻고 어떻다고 해도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귀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해도 그 앞에서 아무말도 없었습니다. 죽더라도 시원하게 ‘이놈의 자식들’ 하며 큰소리 한번 쳐 봤어요? 못 친 것이 잘난 거예요? 못났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는 잘났고, 세상 앞에서는 못났습니다. 세상 앞에서도 잘났다면 아무것도 안 되었을 것입니다.

대관절 왜 예수가 못났느냐? 못난 일을 했기 때문에 못났느냐? 아닙니다. 나기는 잘났는데 너무 잘나서 그들과 상대가 안 되었기 때문에 못난 일을 한 것으로 된 것입니다. 못나서 못난 일을 한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상대가 되질 않으니 못난 일을 한 것으로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것은 원리를 찾아봐도 없습니다.

34-82
가인(원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하나님은 아담을 짓기 전에는 천사장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을 지으신 후에는 천사장을 더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왜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느냐 하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자에서 피흘리고 운명하는 순간에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했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관절 어떤 말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장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천사장을 사랑해 봤어요? 하나님이 천사장을 사랑하듯이 천사장을 사랑한 사람이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없었습니다」

부모에게 상속을 받으려면 부모와 심정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행동이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한 집안에서 부모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자식은 어떤 자식이냐 하면 부모의 마음에 드는 자식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사랑을 점령한 자식입니다. 그 다음엔 생활에서 부모의 행동에 보조를 맞추는 자식, 부모와 뜻을 같이하는 자식, 부모와 희망이 같은 자식입니다. 아무리 아들이 많더라도 그런 기준에 100퍼센트 가까운 자식이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인간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천사를 사랑해 봤느냐? 못 해봤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과 부자관계입니다. 그러니 부자일심,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천사를 사랑하면 아들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 자리에서 타락했느냐? 천사를 천사답게 사랑하지 못한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왜 악의 괴수인 천사장에게 6천년 동안 참소를 받아 왔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이 잘났어요? ‘이 못된 녀석’ 하고 툭 차 버리면 그만일 텐데 왜 사탄의 참소를 ‘그렇다. 네 말이 옳다’ 하면서 받아 나오셨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사를 사랑해야 할 원칙이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나와서 천사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는 하나님과 인간이 책임을 다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탄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인간도 사탄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이란 존재는 천사장의 대신자이고, 아벨이란 존재는 하나님의 대신자입니다.

그러면 천사장, 즉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그것은 왜 그러냐? 타락한 인간은 천사장을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즉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적으로 보면 천사장은 사탄이요 원수지만, 그 사탄을 근본대로 바로잡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듯이 하나님의 아들도 그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있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와 심정의 일치, 생활의 일치, 소원의 일치가 되지 않으면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같지 않고서는 상속을 못 받는 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사랑한 천사장을 아들도 사랑하지 않으면 상속받을 수 없기 때문에 천사장이 사탄이 되었을망정 그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연의 인간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으니 아담의 입장에 있는 아벨은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사랑해야 할 천사장은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아담 해와를 섬기는 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아담을 때려 죽이려 하는 천사장이어야 됩니다. 그것은 그런 사탄까지도 사랑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

예수님이 원수를 위해 기도한 것도 하나님의 천리 원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원칙에 입각하여 천사장을 사랑했듯이 아담과 해와도 그런 입장에 서서 천사장을 사랑해야 했는데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어느 한때에 천사장을 사랑했다는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길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라도 원수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고 넘어 가기 위해 예수님은 원수인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원수에 대해 기도한 내용이 이렇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34-84
아벨이 되려면
하나님의 완전한 아들이란 타락하지 않은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은 하나님을 사랑한 다음에는 누구를 사랑해야 되느냐? 천사장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야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복귀시대에 있는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아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벨의 길을 따라서 하나님의 세계로 돌아가는 복귀노정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벨이 설 자리입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을 주고받는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않고는, 하나님과 하나되지 않고는 하나님이 사랑하던 천사장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아담 해와는 미성년 시대에 타락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아벨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는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되고, 둘째는 천사장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사탄인 천사장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틀림없는 상속자입니다.’라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에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가인이오, 아담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벨입니까, 가인입니까? 「아벨입니다」 아벨이 되었어요? 아벨이 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까? 받는다고 보고 있어요? 자기의 손을 보며 ‘아, 이 손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손이다. 아이고 이쁘다’ 그래 봤어요? 내 사지백체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몸뚱이로구나’ 그렇게 느껴 봤어요? ‘내 피와 살에는 하나님의 피와 살이 있고, 내 사랑에는 하나님의 생령요소가 약동하고 있다’ 하는 것을 느껴 봤어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전부다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첫째는 뭘 해야 된다고요? 이걸 확실히 모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하고, 둘째는 천사장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해서 거짓 부모가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로 분립해서 복귀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즉, 아담 대신 아벨, 천사장 대신 가인을 세워 복귀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먼저 하나님과 심정일치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심정일치가 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심정이 일치되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때문에 ‘야, 너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하라’는 식으로 생활적인 것을 지시하게 됩니다. 그러면 지시한 대로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지시대로 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심정적 일치가 외적인 일치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원리를 확실히 알고 나가야 합니다.

그때의 아벨은 하나님과 심정일치가 되어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야, 아벨아. 너 이것 해라’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아벨은 하나님의 ‘해라’ 하는 그런 기준 앞에 제물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제물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는 정성들여 준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우주적인 상속을 해주시기 위해 찾아오셨으니 그 하나님 앞에 심정적으로 정성들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음의 일치를 중심삼고 행동이 일치되면 그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심정적 일치가 되고 행동적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즉, 마음과 몸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하나된 생활의 기반 위에서 마음의 표시, 몸의 표시, 행동의 표시로 하나의 결실을 맺어 탕감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제물입니다. 알겠어요? 이 제물은 마음의 제물이요, 몸의 제물입니다. 여기에는 최고의 정성,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성이 들어가 있고 심정이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34-86
가인에 대해 아벨이 취해야 할 바른 태도
가인도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가인이 아벨을 때려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괜히 때려 죽였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봅시다. 동생과는 상관 없이 하나님 앞에 정성들여 제물을 드렸는데 아벨의 제물만 받았으면 그만이지 뭐가 그렇게도 분하고 원통했겠습니까? 가인이 분해하고 원통해 했다는 것은 가인도 그만큼 정성을 들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아벨에 못지 않는 정성을 들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기독교인들은 통일교인에 대해서 가인의 입장입니다. 그렇지요? 그들도 정성을 들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이 하나님을 몰랐느냐? 하나님이 귀한 분이라는 걸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이 일년 동안 정성들여서 가꾼 곡식을 제물로 드린 것이나 아벨이 정성들여서 양을 잡아 제물로 드린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만 받았을 때 아벨은 자신의 제물을 받은 것을 고맙게 생각하여 형에게 ‘형님, 죄송합니다’ 했으면 형이 때려 죽였겠습니까? 아벨은 틀림없이 야곱 같은 패였을 것입니다. 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벨은 우쭐해 가지고 형님보다 내가 낫지’ 하고 자랑했을 것입니다. ‘형은 뭐야? 하나님이 형 제물은 안 받고 내 제물만 받았어’ 이러니 가인이 왈칵 분한 마음이 났겠어요, 안 났겠어요? 거기에서 ‘이놈의 자식이 뭐라고 하는 거야?’ 이렇게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만일 아벨이 온유겸손하고 순종굴복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더라면 그때 복귀가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벨이 책임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사랑하는 마음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가인을 동정하고 위로해 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자기의 제물만 받으셨다고 좋아했을 것입니다. 만일 아벨이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안 받은 것을 긍휼히 여기고 눈물을 흘리며 동정하고 ‘내가 상속받은 것은 다 형을 위해서 받은 것이니 대신 받으십시오’ 하였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자기의 귀한 사랑을, 하나밖에 없는 귀한 선물을 가인에게 다 줬더라면 그것은 천사장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다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못한 것이 한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순종하고 온유겸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아벨이 가인 앞에서 자랑했을 것 같아요, 안했을 것 같아요? 아벨이 안 그랬는데 가인이 괜히 얼굴을 붉히고 때려 죽였겠습니까?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인의 입장에 있는 기성교회로부터 반대를 받는 데에는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아 기성교회 목사들, 내가 아는 원리도 모르고 뭐야? ‘ 이러면서 큰소리쳤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그랬습니다」 그랬으니 반대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어떻게 나오나 보자 하며 찾아가서는 ‘당신 타락론을 아시오? 선악과가 뭡니까’ 하면서 건방지게 까딱까딱하니 그들이 반대 안 하겠어요? (웃음) 입장을 바꿔 놓고 볼 때 여러분 같으면 반대 안 하겠어요? 아벨이랍시고 쳐들어와서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이라도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옛날에는 목사님, 목사님 하면서 따라 다니던 녀석이 통일교회 말씀을 며칠 동안 듣고 와서는 ‘당신이 뭘 압니까’ 하는데 반대 안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래서 많은 사람 잡은 거예요. 사람 잡는 백정이라는 것입니다.

34-88
여러분은 가인 아벨의 원칙에 일치되었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원칙에 어긋났기 때문에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칙에 어떻게 어긋났느냐? 아벨은 가인을 사랑해야 했는데,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고 도리어 가인의 분노를 폭발시킨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러니 화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함부로 떠들다가는 맞는 것입니다.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에도 누가 그렇게 떠들었느냐 하면 제자들이 떠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하려고 했는 데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하라는 짓은 안 하고 하지 말라는 짓만 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하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은 눈에 보이거든,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은 말해도 모르니까 보이는 것만 들고 다니며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뭐 유대교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떠들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충동질해 가지고 다 망쳐 놓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사렛으로 피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됐었습니까? 아닙니다. 제자들이 다 망쳐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로마는 유대나라를 점령하고 있는 원수 나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원수 나라의 총독인 빌라도 앞에 서서 화난 얼굴이 아니고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너희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해라. 나는 탕감조건에 걸리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하늘 뜻에 절대 순종하고, 너희를 사랑하고, 너희들을 위해 죽을 수 있다. 천리의 원칙 기반이 여기에서 벌어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묵묵히 그 환경을 다 받아 넘겼던 것입니다.

‘원한의 역사시대에 가인이 아벨을 치던 그 모든 시련을 내가 해원하겠다. 역사시대에 가인들이 제시했던 그 모든 것을 재판(再版)해라. 그렇더라도 나는 그 모든 것을 수습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 갈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묵묵히 그 환경을 넘어 십자가의 자리까지 나갔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나갔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들인 나는 천사장을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아버지와 하나지,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는 유대교를 옹호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요, 이스라엘 민족을 옹호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편에 있는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니 아버지와 일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체가 됐어요, 안 됐어요? 어디까지나 아버지와 한몸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니 십자가상에서 죽는 순간까지도 원수를 사랑한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어가면서까지 원수를 위해 기도했다는 사실은 역사상에 없는 위대한 승리의 팻말을 꽂은 것입니다. 아담이 하지 못한 것을 예수님이 하나님편에 서서 뜻을 중심삼고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기독교 역사가 새롭게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와 같은 원칙을 따라 나가는 데 있어서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 됩니다. 선생님 앞에는 가인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아벨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천사장, 즉 가인을 사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인과 싸우는 입장에 있어 가지고는 아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입장에 서야 된다구요? 가인을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래야 아벨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벨의 위치가 어떤 위치라는 것을 원리적으로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나는 아벨이다. 나는 36가정이니까 72가정은 내말을 들어야 돼. 124가정도 430가정도 내 말 들어야 돼’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해 온 놀음이 뜻적인 놀음이예요, 세상적인 놀음이예요? 지지리도 보기 싫은 세상적인 놀음입니다. 그래, 36가정이 아벨 가정입니까? 하나님과 일치 되었어요? 아벨 가정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에 일치되었어요?

34-90
가인을 어느 정도까지 사랑해야 되는가
아벨 앞에 있어서 가인은 원수가 아니면 원수의 아들입니다. 지금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은 하나님이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우리의 원수는 사탄이 아니면 사탄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의 아들딸이라고 해서 ‘저 녀석 아버지가 우리를 반대했으니 이용해 먹고 모가지 잘라 버리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들을 사랑해 가지고, 그 아들을 자기 앞에 가인적 입장에 서게 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 장본인을 가인적 입장에 서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아들딸을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을 빼앗아 오는데 목을 조이고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보다 더 사랑해 가지고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빼앗아 올 수 없습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알겠어요?

사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탄,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됩니다. 눈물과 피땀을 흘려 가지고 자기 아들딸보다도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 사랑해야 되느냐? 자기 아들딸보다도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기준인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 서야만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돌아갈수 있는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사탄의 아들딸을 얼마나 사랑해야 되느냐? 예수보다 더 사랑해야 되느냐, 덜 사랑해야 되느냐?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제물로 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돌아가시게 하면서까지 원수의 자녀들을 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 가지고 사탄의 자녀들을 하늘편으로 데려가 더라도 사탄이 참소를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사탄과 갈라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기선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전도하러 가서 보아서도 알겠지만 반대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부모들입니다. 아들을 극성맞게 사랑하던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한다는 거예요. ‘아이구 우리 아들 통일교회에 나가니 참 좋구나. 이런 교회가 어디 있느냐’ 하는 사람 있습니까? 여러분이 전도 나갔을 때 그런 부모 있었어요? 악착같이 반대하고 원수 되는 사람은 온갖 정성을 들여 사랑하던 그 어머니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는 틀림없이 반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원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탕감복귀를 위해서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것이 연장되면 3대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탕감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원칙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 자신들이 지금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하더라도 여러분 앞에 가인이 없다면, 여러분은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34-91
가인 아벨이 결정되는 자리
그러면 가인과 아벨은 어떠한 자리에서 결정되느냐? 이것이 문제됩니다. 가인과 아벨은 편안하고 좋은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이 필요한 것은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까? 생각해 보세요. 그것은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탕감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제물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다음에 하나님과 하나되고, 다음에 제물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사탄을 입회시켜 가지고 판가리를 지어야 됩니다. 결판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안 되면 어떻게 하느냐?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결정해야 됩니다.

먼저는 제물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냐, 자기가 복 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냐 하는 것으로 결정합니다. 오늘날에는 자기가 복받을 생각으로 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 복은 사탄세계로 다 흘러가고 말 것입니다. 또, 나라가 복 받게 하기 위해서 드리는 제물도 나라가 망하게 되면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눈물흘리며 제물을 들여야만 그것이 아벨적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제물을 드리려면 우선 사탄을 분립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반드시 사탄이 참소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탄을 분립하는 데에는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제물을 누가 드려야 합니까? 누가 먼저 바쳐야 합니까? 아벨이 먼저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가인을 따라오게 해야 합니다. 가인도 복받게끔 가인도 제물을 드리게 하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물을 드린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의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자고 하는 자리에서 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나라를 위하고 민족을 위하고, 나라면 나라를 걸고 기도하고, 마을이면 마을을 걸고 기도하고, 상대면 상대를 위해 기도하여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 제물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물을 갖지 않고 제물드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제물이 되어야 하느냐? 오로지 자신의 몸뚱이가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깨끗해야 됩니다. 즉, 세상에서 성별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정을 떠나 가지고 깨끗한 몸과 마음을 만드는 것입니다. 깨끗한 몸이 되지 못하면 제물이 못 되는 것입니다.

깨끗한 몸이 못 되면 일선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탄세계의 일선에 보내서 이러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가인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세계에 나간 하나님의 아들이 백 사람으로부터 반대받으면 하나님도 상대적으로 그만큼의 사랑을 그 아들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천 사람이 반대하면 천 사람이 반대한 만큼 하나님도 여러분을 사랑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성을 다해 쌓은 제단이 반대받아 허물어졌을 때는, 반드시 반대한 사람의 아들이 깨져 나갑니다. 친 자의 아들딸이 반드시 제물로 바쳐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을 사탄이 침범하면 그 대가로 하나님은 사탄의 아들딸을 빼앗아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정성들이는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믿음의 아들딸이 가인이예요, 아벨이예요? 그들이 제물을 드렸어요? 아벨을 중심삼고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34-93
아벨의 책임과 가인의 책임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나오셨으니, 이제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가져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의 심정을 가지고 뭘 할 것이냐? 종의 자식들을 끌어 올리는 역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대신 그런 역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창조 역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눈물과 피와 땀을 흘려야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여러분을 위해 수난의 역사를 거쳐오셨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하나님 대신 그 역사의 슬픔을 중심삼고 종의 자식 앞에 온정성을 퍼부어야 됩니다. 종의 아들딸을 자기 아들딸보다 더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타락하기 전의 아담을 사랑하시던 기준보다도, 아벨이 가인을 사랑하는 기준이 더 높아야 됩니다. 있는 정성을 다해서 사랑해야 됩니다. 이때는 형제로서의 가인과 아벨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 가인을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종적으로 올라가는 종적 관계입니다. 이때는 아직 횡적 관계가 아닙니다. 가인이 그 기대 위에서 아벨과 같이 되기 위해서는 생활이 같아야 되고 심정이 같아야 됩니다. 그리고 소망도 일치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아벨은 가인을 그 기준까지 키워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과는 심정일치, 생활일치, 소원일치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아벨은 그렇게 일치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인을 키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가인이 아벨과 그렇게 안 되어 있다 할 때는 언제 달아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은 ‘나를 닮아라. 나를 닮아라’해 가지고 같은 혈육의 정이 통할 수 있게끔 가인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너와 나는 죽더라도 하늘편이다. 죽음길이 가로막혀 있더라도 가지 않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야 됩니다. ‘당신이 가는 데는 나도 가고, 당신이 죽을 자리에 있으면 내가 대신 죽겠다’고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이 죽을 자리에 있을 때 아벨이 대신 죽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하고, 아벨이 죽을 자리에 있으면 가인이 대신 죽겠다고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당신의 목적과 당신의 소원과 당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내 것입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전부다 물려받는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상속받은 그 모든 심정도 내 것이요,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도 내 것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기준까지 올라간 아들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거기에서 아벨과 가인이 하나되어 비로소 부모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인과 아벨의 복귀역사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횡적 기반이 닦여지느냐?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횡적 기반이 닦여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참부모를 통해서 가야 합니다. 이렇듯 완전히 하나된 그 자리를 중심삼고 주님인 참부모가 올 때까지 끌고 나온 역사가 기독교 역사입니다. 영적인 기독교 역사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육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형제의 인연을 결속시켜야 합니다. 심정을 통일시키고 행동을 통일시키고 소원을 통일시킨, 같은 형제의 기반 위에서 ‘죽더라도 내가 먼저 죽지 아벨을 죽여서는 안 되겠다’고 할수 있는 자리,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이 가인을 기르는 기간이 얼마인가? 7년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무엇이었느냐 하면 세계적인 아벨적 아들을 찾아 나오는 역사였습니다. 즉, 메시아를 찾아 나오는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벨적인 아들을 찾아 나오는 노정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라는 것입니다.

34-95
재림주는 완성한 세계적 아벨
그럼 재림주님은 어떠한 분이시냐? 세계적인 아들입니다. 세계적 아들인데 영적인 아들이 아니라 영육 아우른 세계적인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2천년 전의 예수님은 국가적인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적인 아들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세계적인 때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이 세계의 중심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과 같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뜻을 품고 그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은 세계적 아들로 오시는데 세계적인 중심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오시고, 또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목적도 없고 희망도 없던 사망세계의 인간들 앞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 가지고 같이 행동하여 하나의 목적세계로 같이 들어가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로 오셔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들로서 이 세계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사탄세계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개인을 사랑했다는 전통을 세우지 않고는 세계적 복귀노정이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가는 길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만민을 사랑했고, 가정적으로 만가정을 사랑했고, 온 종족과 민족을 사랑했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혼자 세계 인류 전부를 모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를 두고 보면 이 세계는 하나의 남성과 하나의 여성으로 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요? 30억 인류는 하나의 남성과 하나의 여성 안에 다 들어갑니다. 더구나 뜻적인 기준에서, 조건적인 입장에서 인류를 보면 하나의 남자요. 하나의 여자입니다.

34-96
이제까지 가인 아벨의 자리에 설 수 없었던 여자들
그러면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가 가인 아벨이 될 수 있습니까? 여자가 가인과 아벨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지 생각해 봤어요? 그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남자만이 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시대에 와서 여자들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을 정하였는데 이것은 천륜적인 기반이 닦여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여자는 국물도 없었습니다. 남자를 세워 놓으면 여자는 그저 따라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가 가인 아벨될 수 있어요? 그것은 상징적인 면이나 형상적인 면의 조건은 되지만 복귀의 조건은 안 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복귀역사를 하는 데 있어서 만민을 사랑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누구를 사랑해야 된다는 말이냐?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자를 사랑하고 나서 천사장을…. 그런데 천사장이 여자예요, 남자예요? 「남자입니다」 그리고 가인 자리에 여자가 설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지금까지 여자의 한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의 자리, 그 중에 가인의 자리에도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가인 자리에도 참석 못 했습니다. 가인 아벨은 남자 형제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 앞에는 누가 있어야 되느냐? 세계적인 남성을 대표한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기독교를 중심삼은 그런 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해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닦아 나오면서 어떠한 입장이 되어야 하느냐 하면 개인적으로 완성한 아벨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완성한 아벨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과 심정적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천사장을 사랑해야 됩니다. 사탄까지도 축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실적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억천만 사탄들이 영적으로 들이 때리더라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영적인 시련과 고통을 극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34-97
하나님의 완전한 아들이 되려면
세계의 억만 사탄들이 반대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원수로 대해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제시하는 시련을 극복하고 넣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수난을 받으며 올라가는 것입니다. 잡영계로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영계의 반대를 받으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다 올라가면 최고의 파가 있을 것입니다. 온갖 사탄과 싸워 가지고 그들을 굴복시켜 올라가게 되면 그 다음에는 중간 영계의 시험을 받는 것입니다. 중간 영계도 수천 수만 개가 있는데 그 모든 장(長)들로부터 시험을 받는 것입니다. 시험을 받아 가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사탄 괴수의 시험은 물론이고 수많은 도인들이나 중간 영계에 있는 모든 그룹의 장들이 시험을 하게 됩니다. 사탄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네 까짓 것이 뭐야’ 하면서 시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거쳐야 합니다. 맨 나중에는 예수님도 그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까지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조건을 다 넘어가야 합니다.

개인이 아벨로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행동적 기준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상천하 어디에서든지 참소조건에 안걸리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그 또한 참소조건에 걸려서는 안 됩니다. 사탄세계에서도 참소할 수 없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아들도 사탄세계에서 어떠한 참소조건을 제시하더라도 거기에 걸리는 내용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이 참소를 하더라도 거기에 걸리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아들도 역시 그 참소에 걸리지 않는다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잡영계에서부터 예수님까지 참소하게 되는 데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세계를 복귀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사장을 사랑했다는 입장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영적으로도 승리하고 육적으로도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쉽지만 실체적으로도 승리해야 됩니다. 영적으로만 승리의 조건을 세워 가지고 아들이 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실체세계에서 실체의 사탄을 대해 승리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육을 중심삼은 승리적 아들, 즉 영육을 중심삼고 참소의 조건을 남기지 않는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시대에 참소의 조건이 되었던 모든 조건을 들고 나와도 걸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참소조건에 걸리지 않게끔 방편적인 내용을 세워 나온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영적인 승리의 기반을 중심삼고 육적으로도 참소의 조건에 걸리지 말아야 됩니다. 참소의 조건에 걸리지 않게 하려니까 세상에서 반대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가 그 영적인 기준 앞에 있어서 실체적인 육적 가인이 되어 하나될 수 있는 심정을 가졌더라면, 거기서부터 영육 아우른 세계적인 가인 아벨 복귀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깨짐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번 전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실체를 중심삼고 반대의 화살을 받으면서도 사탄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실체를 중심삼은 투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1960년대까지 계속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를 원수로 갚아서는 안 됩니다. 원수를 사랑했다는 기준을 중심삼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그런 기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대표적인 하늘편 가인을 세워 가인 아벨의 탕감의 조건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비로소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영육 아울러 아벨적 기준이 세워졌기 때문에,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킨 기준이 세워졌기 때문에 비로소 돌아갈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로 돌아가느냐?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늘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거예요. 그때 비로소 형제의 자리를 넘어서 부모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들의 사명과 부모의 사명을 다 해야 했습니다. 그건 무엇이냐? 아벨에게는 자기의 사명과 아담을 복귀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벨을 통하여 아담이 복귀되지요? 그러므로 아들의 사명과 아버지의 사명, 즉 이 두가지 사명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노정입니다. 이젠 확실히 알겠어요?

34-99
감옥에서 출발한 통일교회
영적인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의 참소에 걸리지 않아야 하고, 그들을 사랑해야 하며, 실체 세계의 모든 나라가 동원되어 반대하더라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했다는 기준을 세워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벨로서의 개인적인 승리의 기준은 물론, 국가적인 승리의 기준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로 출발할 수 있는 아벨적 존재로 결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60년대까지는 나라 전체로부터 욕먹고 반대받는 자리에 섰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서부터 출발했느냐? 감옥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감옥에서부터 달려온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생명을 다 바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가인이 아벨 앞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가인을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다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벨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요, 가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아벨이 가인을 구하려면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가인을 구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또, 가인이 아벨을 따라가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따라갈 수 있어요? 없습니다. 둘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즉, 지옥의 밑창에서 뜻을 위해 죽으면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과는 반대입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죽으면 지옥 맨 끝으로 떨어지고, 이 세상의 밑창에서 죽으면 그 자리에서부터 올라가게 됩니다. 천국은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지옥을 뚫고 넘어가야 합니다. 지옥의 환경을 극복하고 가야 합니다. 죽음을 밟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죽는 데는 어디서 죽어야 해요? 지옥에서 죽어야 합니다.

지옥에 가면 전부 서로서로 미워하고, 서로서로 욕합니다. 전부다 ‘저녀석 갔구만. 저놈 왔구만’ 이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박사가 들어와도 ‘이 녀석아, 너 무엇을 해먹던 녀석이냐’ 하고 대번에 친다는 겁니다. 이것 참 이상하다는 겁니다. 그러나 남을 위하다가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봐주려고 야단입니다. 거기에서 해방이 벌어집니다.

선생님도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지도한 것입니다. 남한 땅에 내려올 때도 감옥에서 만난 한 사람을 세워 가지고 나왔습니다. 지금은 떨어져 나갔다가 겨우 다시 들어오긴 했지만….

자, 어디서 죽어야 한다구요? 「지옥에서요」 사람들은 ‘아이고 나 혼자 죽기 싫다. 같이 죽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부인하고 같이 죽을 수 있어요? 「없습니다」 이왕 죽을 바에는 나를 위해 죽을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죽어야 됩니다. 사탄세계에서는 무엇을 위해 죽어요? 자기를 위해,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살다가 죽습니다. 나는 돈을 벌어야 되고, 또 뭘 해야 된다고 하며 자기만을 위하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가는 길은 남을 위해 죽는 길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여기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34-100
훈련기간이 필요한 가인
선생님은 1960년대에 여러분을 고생하라고 때려 내몰았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보리밥을 먹어 가며 피땀 흘리고 모진 매를 맞아 가며 쫓겨 다녔습니다. 그거 잘한 거예요, 못한 거예요? 「잘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뭘 하라는 것이었습니까?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아들 되어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때 여러분은 선생님 말 잘 들었지요? 전도나가서 선생님 보고 싶어서 우는 일도 참 많았지요? 선생님이 어디 가면 열심히들 선생님을 찾아 다녔습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온갖 정성을 들였습니다. 왜 그래야 되었느냐? 가인 아벨 복귀를 위해서였습니다. 선생님이 세계를 위해서 수난의 길을 걸었고, 인간들 전체 앞에 아벨적 입장에 섰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될 수 있으면 아벨이 가인을 자연굴복시켜 가지고 절대복종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같이 나누기를 바라십니다. 이러한 뜻을 중심삼고 선생님도 고생하고 나왔기 때문에 여러분이 선생님이 고생한 것을 자기의 고생으로 여기고 눈물 흘리며 뜻을 위해 정성을 들이면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권내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고생한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내가 당한 것같이 느껴지고, 가슴이 아프고, 슬프고, 눈물이 나고, 억울해 하고, 분해 하고, 이렇게 동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을 선생님에게 동감시키게 하기 위한 재료가 선생님의 고생입니다.

선생님이 역사시대에 고생을 했지만 그것은 오늘 현실적으로 같이 느낄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선생님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느끼게 될 때에는 선생님 앞에 가인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과 여러분이 사랑하고 하나되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까지 계속되어야 하느냐? 영원히 계속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복귀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기르는 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34-101
1차 7년노정의 의의
선생님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은 개인적인 아벨로서 영육간에 참소의 조건에 걸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책임자보다도 그 나라의 백성을 더 사랑하고 그들의 부모보다도 그들을 더 사랑한다는 입장에서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런 입장에서 자유당 시대, 민주당 시대, 혁명정부 시대를 거치 나왔습니다.

자유당 정부는 아담형이요, 민주당 정부는 해와형이요, 혁명정부는 천사장형입니다. 이것이 원래는 한꺼번에 돼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꺼번에 되지 않고 3시대를 거쳐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자유당 시대에도 선생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고, 민주당 시대에도 선생님을 잡아죽이려고 했고, 혁명정부 시대에도 선생님을 잡아죽이려고 했습니다. 통일교회를 없애려고 그런 것입니다.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그게 다 원수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입장에서도 걸리지 않고 넘어왔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선생님은 이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고생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에 있어서 원수 중의 원수가 누구냐? 나를 비판하던 사람들도 아니요, 나를 반대하던 기성교회 사람들도 아닙니다. 뜻을 알고서 생사를 걸어 놓고 맹세하고 따르다가 배반한 사람 이상의 원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리고 제일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이 뭐냐 하면, 같은 핏줄을 가지고 태어난, 형제지연을 가진 그들로부터 핍박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버려야 할 이 원수까지도 사랑하기 위해 가는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어려운 싸움을 해 가지고 개인적인 아벨이 되었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 아벨이 되었으면 가정적 아벨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개인적 아벨은 되었지만, 가정적 아벨의 자리에는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차 7년노정은 무엇이냐? 선생님 개인을 중심한 개인적 아벨을 찾아 세우고 가정적 아벨이 되기 위한 준비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개인적 아벨로 승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가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인 아벨 복귀의 기준을 중심삼고 비로소 하늘 앞에 상대적 기준으로 결정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단계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사탄이 참소 못 합니다. 선생님의 가정은 사탄세계의 가정과 같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정 자체가 아벨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 자체가 아벨이 되려면 가인적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가정을 위해 우리 가정이 가인적 가정이 되어 제물이 되겠다고 한 가정이 지금까지 있었어요? 여러분들 여기 36가정 72가정들 생각해 보세요. 그런 마음 갖고 산 가정이 있었어요? ‘하늘 가정의 모든 어려움을 이 가정이 대신 짊어지게 해주십시오’ 하는 가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 가정을 길러 나온 것입니다. 가정적 가인을 수습하는 기간이 아까 말한 7년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가정적 가인을 길러 나온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선생님의 가정이 아벨적 중심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1차 7년노정은 선생님이 여러분 가정을 돌보지 않고 선생님 가정을 아벨적 가정으로 만들기 위한 기간이었습니다.

34-103
반성해야 할 축복가정들
그런데 36가정도 책임 못 하고 72가정도 책임을 못 했습니다. 다 못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선생님 가정에서 혜진이와 희진이가 희생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들딸을 희생시켜 가면서 하늘을 위하고 가인 가정을 위한 것입니다. 36가정, 72가정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어요? 선생님은 하늘가정은 이래야 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참소 조건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만약 이것이 남아졌을 때에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 되느냐? 또 7년노정을 걸어야 됩니다. 그러나 1차 7년노정을 걸음으로써 가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참소 조건을 해소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어떤 날이냐 하면, 하나님의 직접적 주관권내에 들어간 것을 의미하는 날입니다. 또, 부모의 날은 타락한 부모에서 타락전의 입장으로 올라간 것을 의미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뿐만 아니라 자녀의 날, 만물의 날도 찾아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타락한 죄악의 아들딸입니다. 여러분은 이 기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만물의 날, 자녀의 날, 부모의 날, 하나님의 날을 거쳐야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7년노정을 거쳐서 1968년에 하나님의 날을 찾아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고, 그 다음에 가인 가정을 복귀할 수 있는 하나의 대표적 아벨 가정을 세웠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넘어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렇게 아벨적 가정의 기반을 세우기 위한 것이 1차 7년노정인데, 이 7년노정은 선생님이 가정적으로 가야 하는 노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 종적인 소생 장성 완성의 단계를 횡적으로 벌여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을 중심삼고 이 기준을 넘어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아벨적 가정을 중심삼고 전 축복가정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될 수 있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는 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탕감복귀의 기반을 닦아야 되기 때문에 36가정과 72가정과 120가정을 세운 것입니다. 그 가운데 36가정은 종적인 선조 36대의 축소형입니다. 그 다음에 일대(一代)가 떨어진 가인 아벨형이 72가정입니다. 그리고 120가정은 세계의 120개 국가를 대표하는 가정입니다. 유엔 가입국 120개 국가와 딱 들어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그렇게 들어맞았습니다.

세계적인 대표형을 세워 사방으로 넓혀 나가야 합니다.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이 조건 세운 것을 실체로써 세계화시키기 위해서 120개 국가에 선교부를 창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벌어집니다. 우리는 이렇게 조건적 기준을 세우면서 복귀역사를 닦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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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가정 부인들을 동원한 이유
선생님과 여러분이 하나되면 외적인 평면적 기반이 조건적으로 세워지기 때문에 실체적인 아벨 가정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12지파, 70문도를 세워 세계를 찾으려 하셨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적으로 찾아 오셔서 이것을 복귀하기 위한 대표들을 찾아 세우고 재출발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영육을 중심한 실체적 가정을 찾아 세우고서야 비로소 국가로부터 세계로 출발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한 조건을 갖추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날을 설정하였다는 것은 완전한 아벨 가정을 결정지었다는 것입니다. 이 가정에서부터 비로소 새로운 역사시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68년, 69년, 70년의 3년 즉, 2차 7년 노정의 3년째에 와 가지고 여러분 가정들을 다시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여러분 가정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선생님 가정과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 하지요? 선생님의 가정과 36가정이 완전히 하나됐어요?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36가정을 중심삼고 72가정이 하나되지 못했고, 72가정을 중심삼고 120가정이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전체적으로 하나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기에 선생님의 가정과 하나되기 위한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 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 남편은 안 됩니다. 본래는 선생님이 축복을 해주었으면 신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 사위기대를 이루어서 선생님 대신 일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그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남자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여자도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합니다. 둘 다 설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여자를 세우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는 사위기대 복귀지요? 그러려면 모자협조를 해야지요? 횡적 기준 앞에서는 모자협조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서는 모자협조는 물론 모녀협조까지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여자들을 전부 내보내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의 남편 대신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명령을 듣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자협조의 기반을 잡아야 됩니다. 그 기반을 잡지 못하는 모성은 죽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루어 모자협조를 할 수 있는 기반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여자들을 동원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은 천사장의 복귀형이기 때문에 동원하라는 명령을 안 한 것입니다. 이것이 여자들만 동원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러면 제2차 7년노정은 무엇이냐? 여러분 자신들의 가정이 아벨 가정이 되어야 하는 기간입니다. 이것을 결정하기 위한 노정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이 아벨 가정으로서 책임을 하기 위해서는 가인 가정을 복귀해야 됩니다. 이렇게 아벨 가정이 가인 가정을 복귀하면 무엇이 되느냐? 종족이 됩니다. 여러분은 종족적 메시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430가정이 이 종족적 메시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성을 띤것입니다. 이렇게 조건에 전부 들어맞아야 됩니다.

제2차 7년노정 중에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면 아벨 가정을 대신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인 가정을 축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인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냐? 선생님이 여러분 가정을 축복해주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이 축복해 줄 수 있는 가정입니다. 그 가정을 만들어 놓아야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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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십자가를 한 가정에서 탕감해야
그럼 지금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에 가인 가정이 있느냐? 기성교회가 반대하지 않고 종족적 기반 위에 서면 종족권내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는 가인 종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가까와 오기 때문에 선생님은 초교파운동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나가 전도해 가지고 기독교인을 끌고 들어오면 가인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탕감조건을 횡적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시대가 옴으로써 시대적 혜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아벨의 기반을 닦아야 할 때가 있고, 가정적 아벨의 기반을 닦아야 할 때가 있고, 종족적인 아벨의 기반을 닦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놓고 볼 때에도 개인 아벨시대가 있습니다. 이때에는 선생님 개인을 중심삼는 시대입니다. 그 다음엔 가정 아벨시대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부부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완전히 하나되는 데 있어서는 사탄세계의 부부들이 절대적으로 믿고 절대적으로 따라올 수 있는 기준까지 세워야 됩니다. 그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가인이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자녀입니다. 자녀를 중심삼고 부모로서 아벨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 십자가, 가정적 십자가, 그 다음엔 자식에 대한 십자가, 이 세 십자가를 한 가정에서 탕감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범위가 좁아서 그렇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세계적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기준을 탕감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측복가정들이 잘못한 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세계의 가정들이 잘못한 것, 전부 누더기판이 된 것을, 여자가 잘못하고 남자가 잘못한 것을 다 쓸어내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녜요? 여자가 지옥 가게 되고 남자가 지옥 가게 된 것을, 전부다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그 누더기판을 다 꿰매 가지고, 지옥 가지 않고 천국 갈 수 있는 조건을 세워 놔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역사적인 전통과 시대적인 내용을 갖춘 가정이 되지 않고는 아벨 가정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십자가에요? 또 자식에 대한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표적인 십자가를 선생님이 지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남편과 아들딸뿐이지만 선생님은 복잡합니다. 가정적으로 보더라도 성진 어머니가 뜻을 못 세워 나왔기 때문에 삼대로 연장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진이는 아담형이고, 희진이는 예수형이고, 효진이는 재림주형입니다. 즉, 소생 장성 완성입니다.

둘째는 예수형인데 예수가 밖에서 낳아 가지고 밖에서 죽어갔기 때문에 희진이도 외지에서 나서 외지에서 죽어간 것입니다. 어차피 섭리는 그렇게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탕감역사는 불가피합니다. 금년에 협회장도 피를 흘려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수술을 받다가 아예 죽었지만 둘째 가정으로서 그는 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죽었다 해도 우리 교회는 절대 손해 안 본다는 것입니다. 탕감법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아들들을 중심삼고 볼 때에, 그들은 삼시대를 대표하는 아들이니 하나 되기 쉬워요? 어머니에 대해 보더라도 삼시대의 어머니가 모였으니 그게 쉽겠어요? 이것을 다 수습해야 됩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또, 아들들을 중심삼고 보면 전부다 칼침 맞게 되어 있습니다. 뻥 깨져 나갈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의 소굴 중의 소굴이 될 수 있는 그 자리를 천국화시켜 가지고 하나님이 걱정하지 않고 안식하실 수 있고, 천년 만년 살고 지고 할 수 있는 선한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세계를 요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것은 모르고 선생님 가정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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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지에 나가 해야 할 일
여러분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쉽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다 해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은 한 방향으로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을 중심삼고 서쪽이면 서쪽, 동쪽이면 동쪽의 중심과 일치시켜 가지고, 사위기대 중의 한 기대, 열두 지파 중의 일파의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쉽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 아벨에서 가정 아벨, 그 다음에는 종족 아벨시대까지 가야 됩니다. 지금 현재의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는 종족이 안 만들어졌습니다. 축복가정들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축복가정만 하나되면 기성교회도 하나되고 다 하나가 됩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예수는 종족을 중심삼고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에 유대교를 잃어버렸고 이스라엘 나라도 잃어버렸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규합 못 했기 때문에 예수는 나라를 잃어버리고 세계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려면 통일교회에서도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표준하고 선생님과 여러분이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서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과거에 선생님과 여러분은 형제의 입장에서 복귀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렇지만 부자의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에게는 가인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처음에는 가인에게 아벨이 굴복하고, 그 다음 아벨에게 부모가 굴복합니다. 그렇지요?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렇습니다. 복귀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아벨에게 굴복해 가지고 주지요? 그러면 아벨은 가인에게 주지요? 그러면 완전히 주었으면 받아야지요? 돌려 받아야 됩니다. 수수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을 중심삼고 보면 이것은 평면적으로 소생 장성 완성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중심삼고 3단계 복귀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종족적 기반을 닦으려면 여러분 가정을 중심삼고 가인 가정과 아벨 가정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전도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가정으로서 본이 돼야 합니다. 우선 식구들로부터 참소를 받지 않아야 되고, 영계의 참소를 받지 않아야 되며,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주먹질이나 하고 별의별 노릇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정이 하늘 가정이예요?

이런 관점에서 축복가정의 부인들을 다시 동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책임 못한 것을 다시 책임을 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승천하자 여성신인 성신을 땅에 보내 가지고 부활의 역사를 시켜 왔지요? 그 역사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간에는 여러분들의 부부생활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야 할 길을 가려 가야 하고 하늘이 세운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되기 위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 식구들이 완전히 단결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단결된 가정을 중심삼고, 옛날에 여러분이 전도했던 사람들을 찾아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왜 옛날에 전도해 놓은 사람들을 찾아 가야 하느냐? 그것은 여러분이 믿음의 아들딸을 찾아 기르다가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의 아들딸들을 중심삼고 그 어머니 아버지가 완전히 하나되어 그 가정이 따라오게 되면, 그것이 가인 가정을 되찾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국가적인 기준 앞에 가인권 가정 형태를 남기기 위해서 여러분은 다시 보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걸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아들의 가정, 그의 어머니 아버지 까지도 사랑해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런 조건들을 세워서 가게 되면, 그 가정과 여러분이 영원히 갈라질 수 없는 기반이 닦여지게 되면 그 가정이 하나님 앞에 가인적 가정으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를 중심삼고 반드시 하나되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가인적 가정은 소생이요, 여러분의 부모는 장성이요, 여러분의 가정은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외적인 가인 가정을 복귀해야 되고 자기 가정을 복귀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수습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전도지에 나가 성공하면 고향에 가는 것입니다. 고향에 가서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복귀시키는 겁니다. 그것이 안 되거든. 삼촌이나 친척들을 복귀시켜야 합니다. 친척 중에서도 될 수 있으면 형님 이나 시집간 누나 등, 형제지간을 찾아가 복귀시키는 겁니다. 이런 원리원칙에 따라 복귀시키려니 불가피하게 인연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가정은 인연을 따라 이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찾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전도 나갔던 곳에 다시 파송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뭘 하기 위한 것이냐? 종족적 아벨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알겠어요?

종족적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면 통일교회는 교단적으로 아벨이 되고, 기성교회는 교단적으로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는 기성교회를 복귀시키기 위해서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1차 7년노정이 끝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개인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종족·민족·국가를 사랑해 나왔습니다. 개인·가정·종족을 중심삼고 종족적 기반을 닦기 위해서 기성교회를 사랑하는 운동과 나라를 사랑하고 살리기 위한 운동을 펴 나온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가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가정에도 연결되기 때문에 그 한계선을 넘기 위해서 제1차 7년노정을 그렇게 걸어 나온 것입니다. 기독교가 가인적 가정과 종족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그런 자리에 서면, 하늘 뜻 앞에 굴복하게 됩니다. 지금 전도도 그것을 하기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듯 종교를 중심삼고 해야 되기 때문에 초교파운동과 종교연합 운동을 중심삼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게 될 때는 나라를 중심삼고 해야 됩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방어선을 쳐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승공연합을 중심삼고 나라와 연결하려는 것입니다. 처음엔 나라와 연결되는 길과 그 다음엔 초종교적으로 수많은 종교와 연결되는 길, 그 다음엔 기독교와 연결되는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거꾸로 보면 이것이 소생 장정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게 되면 소생기준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장성기준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완성기준인 통일교회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사실은 통일교회가 더 커 가지고 영향을 미쳐야 안고 출 수 있는데, 그것이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보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보강책으로 가정들이 수난의 길을, 가정적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이 원리 원칙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몰아 세우는 것입니다.

34-111
탕감복귀의 길은 가정도 버리고 나설 수 있어야
선생님은 성진 어머니와 성진이를 놔 두고 이북으로 떠났습니다. 갈라지는 놀음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갈라진 기준을 중심삼고 다시 찾을 때까지 탕감조건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재림 역사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북은 영계의 낙원과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때를 맞기 위해 기도하면서 새로운 터전인 이남에 내려올 것을 꿈꾸었습니다. 이남에 와서 다시 새로운 기반을 닦으려 했는데 그때 선생님 가정은 하나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복잡한 문제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 선생님도 가정을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직까지 가정을 찾을 수 있는 완전한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가정을 버리고 나설 수 있는 입장에서 남편을 대해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망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들고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 가정을 뜻을 위해 수난의 길로 내세운다고 해서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가정을 중심삼고 그런 일을 했으니, 여러분도 가정을 중심삼고 그런 일을 해야 됩니다.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선생님은 삼팔선 이북의 공산세계와 사탄세계를 대해 갔지만, 여러분들은 이 남한에서 선생님을 중심삼고 안팎을 대하기 때문에 그래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여러분이 가정을 버리고 나설 수 없다면 탕감복귀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나는 성진 어머니와 7년만에 만났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7년동안 고생시키더라고 끝까지 감사하면서 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남편을 대해 감사하지 않으면 그 가정은 복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못 할 때에는 탕감역사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책임을 못 하면 여러분의 아들딸까지 걸려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아들딸이 그 책임을 해야만 됩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탕감복귀역사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러니 온갖 추궁을 당하더라도 탕감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여러분이 해야 할 사명이며 가야 할 노정이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이것을 위해서는 모든 것 다 바쳐 총진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예」

성진이 어머니가 성진이를 데리고 무슨 고생을 했는지 알아요? 성진이를 데리고 혼자 가야 했습니다. 혼자 싸워 가지고 하늘을 찾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삼팔선을 넘어가서 뜻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그런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이 민족과 세계가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종족적 복귀를 위한 최후의 십자가의 수난길이 우리 앞에 다가 오는 것도 알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2차 7년노정인데,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2차 7년노정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부모의 자리, 하나님의 자리에 있다면 여러분은 아들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는 이 민족을 중심삼고 종족복귀의 터전을 이루어야 할 중요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이것은 예수가 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예수는 요셉 가정과 사가랴 가정을 복귀해야 했었습니다. 가인 아벨의 가정적인 복귀를 해 가지고 종족적 기틀을 마련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가인 아벨이 되고 가정적으로는 요셉 가정과 사가랴 가정이 가인 아벨이 되기 때문에 한꺼번에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랬다면 종족적 아벨 기준이 결정되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유대교가 하늘 앞에 서게 되는 것이며 유대교가 하늘 앞에 서게 되면 나라도 하늘 앞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복귀가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가정적으로 요셉 가정과 사가리아 가정이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 자체는 메시아적 입장입니다. 메시아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을 대해서는 처녀의 입장입니다. 즉, 재림해야 될 입장에 놓여진 예수와 성신의 입장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의 날, 다시 상봉할 수 있는 기간을 거쳐 가야 하는데 이것이 2차 7년노정입니다. 여러분의 복귀노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3차 7년노정을 무난히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복귀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중에 이북에 있는 공산당은 뭐 남침이니 뭐니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1974년까지 5년, 2차 7년노정이 끝날 때까지는 위기의 기간입니다. 앞으로 남한이 뜻 앞에 서는 날에는 북한의 김일성이는 자동적으로 하늘이 데려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인 아벨이 복귀되어야 하늘나라의 부모가 좌정하실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 기준까지 나가야 됩니다.

34-113
자기 자식과 남편보다 이 나라를 더 사랑하는가 자문해 보라
지금 나라도, 교회도, 가정도, 개인도 부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걸 전부 복귀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가인 아벨을 복귀하고, 가정적인 가인 아벨을 복귀하고, 종족적인 가인 아벨을 복귀하고, 민족적 가인 아벨을 복귀하고, 국가적 가인 아벨을 복귀해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하나의 아벨 국가라도 나와야 해와 국가가 나오는 것입니다.

해와 국가는 일본입니다. 그때를 맞추어서 지금까지 일본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아벨적 국가 기준이 서지 않고는 해와 국가가 나올 수 없습니다. 본연의 기준을 복귀하여 사탄세계의 사탄을 완전히 제거시킨 국가적 기반이 나와야 아담 국가와 해와 국가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장 국가는 어디입니까? 중국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과 한국이 각각 천사장 국가, 해와 국가, 아담 국가가 됩니다.

중국을 보게 되면, 중국을 지배하는 이들은 장개석의 아들들입니다. 장경국이는 정치 분야를, 장위국이는 군사 분야를 책임졌습니다. 이렇게 형제가 중국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 두 형제가 문제입니다. 일본도 사또 수상과 기시 수상이 형제간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왜 그러냐?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한국도 가인 아벨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적 중심과 외적 중심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현정부와 통일교회가 하나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직까지 3단계에 있어서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인 세계, 가인 국가, 가인 가정이 전부 들어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벨 가정, 아벨 국가, 아벨 세계 전부 들어가 복귀되는 것이며, 아시아 또한 자연적으로 하늘 뜻 앞에 서게 됩니다. 아시아가 그렇게 되어 가지고 아벨적 기준을 세웠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느냐? 그 다음은 구라파를 중심삼고 그렇게 해야 됩니다.

아시아가 아담격이면 상대는 누구냐? 해와격입니다. 바로 미국이 해와 격입니다. 그러면 천사장격은 독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복귀되기만 하면 세계는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하늘의 뜻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 독일 일본 이 세 나라는 한 코에 걸려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주인이 나와 가지고 세계적인 무대 앞에 등장하는 날에는 다 끌려갈 수 있는 환경적인 여건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공산당도 세계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고 민주 진영도 세계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 떨어져 내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도를 중심삼은 사상을 갖추어야 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내적인 기반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외적인 사탄세계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요즘 보면 세상의 가정은 다 무너졌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를 볼 때, 가정이 있어요? 어머니가 자식을 몰라보고 자식이 어머니를 몰라보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간에도 밥을 먹으면 돈을 내고 간다구요. 남남과 마찬 가지라는 거예요. 가정도, 국가도 개인주의를 중심삼아 가지고 다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제는 갈래야 갈 곳이 없습니다. 가정을 따라갈 것이냐, 나라를 따라갈 것이냐? 갈 길이 없으니 멍청하게 서 있는 거예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지고 그저 그렇게 가는 것이…. 갈 길이 그것밖에 없는 줄 아니 혼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때 사탄이 치면 다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실이 무르익는 현시점에서 이것을 청산지어 가지고 새로운 역사적 전통을 세워야 할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개인적인 역사적 전통을 세우고 가정적인 역사적 전통을 세우고, 민족·국가·세계적인 전통을 세워야 할 것이 우리 축복가정들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놓고 넘어가야 할 이 순간인 것을 알고, 여러분의 가정들이 하나되고 완전히 일치하여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또, 1970년부터 1972년까지 이 3년노정을 극복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가정적인 3년노정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은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아기에게 젖을 먹일 적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이 아기보다 더 사랑하느냐? ‘ 반문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남편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이 민족을 사랑해 보았느냐?’고 자문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 남편들도 자기 아내와 자식보다도 이 나라와 이 민족을 더 사랑하느냐고 자문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못 갑니다. 그런 전통적인 사상과 그런 조건을 세우려니 가정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찾아 나가야 하고, 세계를 위해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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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아버님, 엄청난 복귀노정을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이 따라 나온 저희들이었사옵니다. 하오나 이제부터는 가려야 할 시대가 왔사옵니다.

지금까지 세상의 가정과 같은 입장에서 엄벙덤벙 살아 나온 저희들을 생각해 볼 때, 수치스럽고 면목이 없사옵니다. 이런 자신인 것을 다시 한 번 회개하고 70년대를 맞이하여 이제 가야 할 엄숙한 노정을 저희들이 책임을 지고, 내가 아니면 이 나라 이 민족이 망하고, 우리 가정이 아니면 이 나라 이 민족이 망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이 길을 가야 되겠사옵니다.

종족적 아벨의 가정권을 만드는 사명을 다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 가정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의 가정을 규합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종족을 구하는 메시아가 되라고 권고하였사오니, 이러한 시대적 사명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하여 주시옵고, 가인 아벨 가정의 기준을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지 않고는 하늘 앞에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준을 중심삼고 요셉 가정과 사가랴 가정에 생긴 원한의 터전을 메울 수 있는 시점에 놓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온갖 충성을 다하여 하늘 가정을 회복하기 위한 본연의 자세를 갖출 수 있는 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또한 그런 가정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은 스승과 완전히 하나되지 못한 것을 각성하고 스승과 완전히 하나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스승은 이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스승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서야 남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서야 자기 아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스승의 가정과 자기의 가정이 그런 관계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은 사랑하는 부부끼리 만날 적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했느냐 하는 것을 반문해야 되겠고,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세계를 더 사랑했느냐 하는 것을 반문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내도 그와 같은 입장에서 반문해야 되겠습니다. 부부는 세계를 위해 태어났으니, 세계를 위하는 가정이 되어야겠사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위하는 가정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이러한 가정의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들딸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기 위해 안타까와하던 부모의 전통을 이어받아야 되겠사옵니다. 또한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 안타까와하면서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몸부림치던 그 아픈 사정을 그 아들딸 앞에 산 증거로서 보여 주지 않으면, 하늘 가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

지금까지 사탄세계의 가정과 다름없이 개돼지와 같이 살아온 것은 원통한 사실이옵니다. 축복가정으로서 저지른 지난날의 과오를 다시 한 번 회개하고, 아버지의 무릎 앞에 다시 부복할 수 있게 새로운 특권적인 혜택과 시대적인 은사를 허락하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저희들에게 맡겨진 책임과 사명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세계 앞에 강하고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고, 아버지 앞에 굳건히 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저의 가정이 중심 부모의 가정이라 하면 이들 앞에는 가인 가정이 어떤 가정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됨을 아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오고 자기의 혈족을 찾아오던 예수님과 같이 자기 문중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하늘 가정 즉, 아벨 가정의 입장에 선 저희 가정들의 책임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인 가정을 구하기 위해서 부부가 온갖 정성을 다바쳐 일하고 희생할 수 있는 전통적인 사상을 세운다 할 때는 기필코 복귀의 터전이 이룩될 것을 아옵니다.

요셉 가정과 하나되고 사가리아 가정과 하나되면 내용적인 인연이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이제 가인 가정을 찾아 들어가서 이런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믿음의 아들딸 가정을 중심삼고 이런 일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세상 가정을 중심삼고, 믿음의 아들딸 가정을 중심삼고,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소생, 장성, 완성의 조건을 세우고 기반을 닦기 위해 충성을 다하고 온갖 정성을 바칠 수 있어야 하늘 부모를 대신하여 역사적인 3시대의 탕감의 인연을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고, 이 엄청난 가정적인 십자가의 길을 넘어설 수 있는 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불쌍한 당신의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남과 같이 살지 못하고 청춘시대를 아버지 앞에 바쳐 나온 여자로서의 한이 큰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해와의 타락의 인연을 저희들이 책임지고, 사망의 권한이 해와의 치마 끝을 통하여 밀려들어온 것을 끊고 돌아서야 할, 부활된 성신의 역사를 책임할 수 있는 딸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들딸을 해산하는 데 있어서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자기의 생명을 다바쳐 승리의 아벨적 가정을 갖추기 위해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싸워 나가는 강하고 담대한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저희들에게는 이 길을 가야 할 사명만이 남아 있사옵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가 개인적으로 이 민족 앞에 보여 준 그 무엇이 있었지만, 이제는 가정적으로 이 민족 앞에 보여 줘야 할 것이 남아 있사옵니다. 뜻을 위해서는 남편과 자식을 떠나서라도 일편단심, 변함없이 스스로 자랑할 수 있는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아버지가 기억하실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런 가정이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가정으로 나타나게 될 때, 그 가정은 아버지께서 사랑하실 수 있는 가정이요, 아벨의 가정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가정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으며, 남겨진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총진군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서 주저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이 자기 선조들로부터 후손들까지 참소할 수 있는 조건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과거는 개인적으로 참소할 수 있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하늘나라가 참소할 수 있는 시대권이니만큼, 더더욱 이 가정의 인연을 갖추어 가는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해 낼 수 있도록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후 70년 71년 72년까지, 아버지, 이들이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고, 지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로부터 책임을 받았사오니, 그 누가 반대하더라도 나 스스로 갈 수 있다는 결의를 가지고 충효의 도리를 다하는 딸들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딸들로 말미암아 그 아들들이 사랑받을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귀여운 가정으로서 축복하실 때의 아버지의 그 소원 성취의 대상이 되고 소망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귀한 가정들이 되어야만 되겠사옵니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찾아와서 세워 주신 보람 있고 가치적인 내용인 것을 확실히 깨닫고,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모든 것을 바쳐 투쟁해 나갈 수 있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들이 등에 업고 가는 아들딸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을 사랑하듯이 이 민족을 사랑해야 되겠사옵고, 그들이 외로운 처지에 있게 될 때 미래에 이 민족이 외로울 것을 염려하게 하여 주시옵고, 그들이 어려운 자리에 설 때 미래에 이 민족이 어려울 것을 염려하게 해 주시고, 아버지에게 제물로서 바치는 심정적 인연을 아버지와 더욱 가까이 맺게될 때에 거기서부터 새로운 부활의 권한이 온 가정에 면면히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교단이 나라를 위하고 외적인 제삼자를 위하던 그런 때가 지나고 비로소 우리의 실속을 볼 수 있는 우리의 시대가 온 것을 알고, 가정적 터전을 공고히 하여 그 가정을 중심삼고 민족 기반을 완결지을 수 있는 축복의 자리에 설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뜻 가운데서, 아버지,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