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15 to 34-256: 좋은 사람들  

좋은 사람들
1970.09.13 (일), 한국 전본부교회

34-215
좋은 사람들
[기 도]

아버님, 저희 자신들이 남겨야 할 단 하나의 귀한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뜻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임을 아옵니다.

아버지, 금년도 벌써 9월 중순을 맞이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표어 아래 저희들이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의 모습을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지 못한 것을 생각할 때에, 면목없는 저희들인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1970년 한 해를 중심삼고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통하여 천륜을 경륜해 나가시는 아버지의 괴로움과 노고가 얼마나 큰 지를 땅에 있는 인간들은 알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인간들은 알든지 모르든지, 그 어려움을 홀로 책임지고 매일 매일 개척자의 사명을 하고 계시는 당신의 사정을 저희들이 좀더 깊고, 넓고, 높이 알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오직 원리 원칙을 세우기 위해 참아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저희들도 이 땅에서 그 원리 원칙을 중심삼고 생을 살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생활을 개척해 나갈 줄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을 잊지 못하는 심정의 인연을 가지시고 개인 개인과의 관계를 맺기 위하여 쉬지 않고 수고해 나오시는 아버지의 뜻을 생각해 볼 때, 아버지께서 얼마나 고달프고 얼마나 어려우셨던가를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또한 만인간을 품에 품어야 할 당신의 심정과, 이 땅의 인류를 뜻에 일치시켜 당신이 주체가 되어야 할 입장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저희들이 깨달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저희 자신들의 부족함을 아버지 앞에 직고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킬 수 있는 입장에서 당신께 바쳐 드릴 수 있는 귀한 가치를 지닌 모습이 저희 자신이 돼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당신께서 찾고 바라고 고대하던 참다운 아들딸이 되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여기에 아버님의 그리움이 저희들의 마음과 몸을 스쳐 갔다는 사실, 아버님의 애달픈 소원이 저희들과 하나되기를 바라셨사오나 저희들이 배반했다는 사실, 저희들을 뜻 앞에 내세워 자랑하고 싶어하시는 아버님의 소원에 저희들이 배치(背馳)되었던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부족한 모습들이었사옵니다.

천번 만번 저희를 사랑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수고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참아 오신 아버지이심을 생각하게 될 때, 언제 저희들이 아버지를 위해서 참아 본 적이 있었사옵니까? 언제 아버지를 동정해 본 적이 있었사오며, 언제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싸워 본 적이 있었사옵니까? 마음으로는 생각하고 말로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실지 노정에서는 그렇지 못한 부끄러운 자신들임을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되옵니다. 그러한 저희들을 이 시간에도 아버님께서 책임져 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실수하면 그 실수가 내 자체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에 자극을 가해 준다는 사실과, 저희들이 미급하면 그 미급함이 내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완전함에 미급하여 아버지에게 불행을 느끼게 함으로써 고통을 가해 준다는 사실을 깨달을 적마다 아버님께서는 항상 저희를 위한 아버님인 것을 느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가 계심으로써 저희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를 앎으로 말미암아 저희의 내정을 살필 줄 아는 자신들이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높고 귀하신 당신이 소망의 대상으로 바라시고 사랑하시고 싶었던 본연의 아들딸의 모습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가치있는 모습이었던가를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저희들은 아버지의 그런 마음, 그런 심정의 기준도 생각할 수 없는 부족한 자신인 것을 아버지께서 일깨워 주시옵소서.

이러한 입장에서 이끌고 가야 할 당신의 사명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절대 복종하고 절대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좌로 가면 좌로 응하고, 우로 가면 우로 응하고,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는 입장에서 아버지의 소원에 일치시켜 나가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 아침은 9월 들어 두 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외로운 제단 앞에서 당신을 위하여 축수(祝手) 하고, 당신의 남아진 사명을 위하여 일하고, 민족과 세계를 위하여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있사오면 그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소원이 그들 위에 싹트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희망과 더불어 그들이 약동하며 당신의 책임과 더불어 그들이 강하고 담대한 신념을 가지고 적진을 향하여 돌진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한시도 그들을 잊지 마시옵고 권고하시어서 승리의 가정, 승리의 나라, 승리의 세계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의 심정을 사모해야 되겠사옵고, 지금까지 싸워 온 당신의 투지력을 본받아야 되겠사오며, 당신의 강하고 담대함을 본받아야 되겠사옵니다. 지칠래야 지칠 수 없는 아버지의 사정과 같이 저희들도 지치지 않는 아들의 사정, 딸의 사정을 지녀야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자의 일체의 인연을 바라보고 나가는 저희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절대적인 관계요, 절대적인 사연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가 저희를 사랑하듯 언제 저희의 몸과 마음이 아버지를 사랑해 보았으며,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언제 저희가 아버지를 불러 보았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님은 과연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우리 인간과 사연이 통하여야 할 분인데도 불구하고 등을 돌리고 모실 줄 모르는 불초한 이 자식들을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소수의 무리가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옵니다. 저희들이 누구를 바라보고 이 자리에 왔사옵고, 저희들이 누구를 위하여 이 자리에 왔사옵니까? 저희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아버님께 염려를 끼쳐 드려서는 안 되겠사오며, 그런 믿음으로 뜻길을 가서도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께서 맡겨 주신 책임을 완수하여 당신의 외로움을 위로해 드릴 줄아는 아들딸이 되고, 당신이 슬플 때 저희가 힘을 가해 드리면서 최후의 결의를 다짐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야 할 인생인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은 복을 받기 위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미 너무나 많은 복을 저희들에게 주셨사옵니다. 하오니 아버지께서 내려 주신 복을 잃어버리는 불쌍한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갚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복을 주신 아버지의 은덕에 감사하며 아버지 앞에 머리를 숙일 적마다 그 고마우신 은사에 눈물을 흘리게 되옵니다. 저희를 위하여 수고하신 당신의 품에 안겨 그 수고를 치하드릴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거룩한 인연을 자랑할 수 있고 당신의 수고의 결정이 저희 자신인 것을 칭송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삼천만 민족을 기억하여 주셔야겠사옵니다. 이 민족의 갈길을 당신께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은 그 어떠한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옵니다. 또한 이 나라의 주권자나 세계의 어떤 지도자를 믿는 것도 아니옵니다. 오직 당신의 깊은 심정 가운데 소망하는 아들딸, 그 아들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옵니다. 그와 같은 아들딸을 사랑하시는 당신의 권위와 당신의 가치와 당신의 능력과 당신의 절대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나가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당신과 하나되는 자리에서는 능치 못함이 없는 것이요, 당신과 같이한 자리에서는 전진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요,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저희를 창조하신 아버지의 심정을 드높이 드러내어 아버지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울부짖으며 나아가는 아들딸이 있게 될 때, 그 아들딸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내고 새로운 환경을 개척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그런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아버님만을 믿고 따르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를 바라보고 웃지 않는 저희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 나라 이 민족을 당신께서 주관하셨사오나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의 비애를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여기에, 민족의 참상 위에 엮어진 모든 노정을 밟고 넘어서서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보잘것없는 통일의 역군들이 해야 할 책임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 민족이 남북으로 분립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몸과 마음으로 이것을 메워 가지고 악이 굴복할 때까지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할 책임이 저희 앞에 남아져 있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은 아버지를 사랑해야 되겠사옵니다. 이 나라가 소망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오늘도 내일도 쉬지 않고 저희들에게 남아진 책임을 다해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싸움을 결의해야 될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품어 주시어서 그와 같은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사람은 한번 왔다가 기필코 가는 운명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어느누구도 막을 수 없는 운명이기에 갈 때에 공수(空手)로 돌아가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의 눈물을 안고 가야 되겠사옵고, 당신의 슬픈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을 갖추고 가야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저희들의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게으름의 자리를 피하여 아버지께 있는 정성을 다하고 온갖 충성을 다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흐르는 세월을 탄하지 말고 다가오는 그날을 위해 염려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시옵소서. 희망찬 내일을 맞아 아버지와 더불어 동참할 수 있는 기쁨의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오는 그날이 두렵고 오는 그날이 한이 될 수 있는 자리에 서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들이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더우기 일본을 중심삼고 세계반공대회를 앞두고 있는 지금, 세계 50여개 국에서 뭇 사람들이 일본으로 몰려들고 있사옵니다. 이 모임은 통일교회의 모임 가운데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첫 모임인 것으로 알고 있사오니, 이 자리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각자의 마음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그들이 저희 자녀들의 모습에서 잊을 수 없는 새로운 소망이 샘솟는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이들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자극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의 생애노정 가운데 한번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새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당신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당신이 같이하는 곳에는 만민이 끌려올 것을 믿고 있사오니, 모든 사람들에게 참다운 인연이 맺어지는 이번 대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부디 일본 백성을 통하여서 아버지를 중심삼고 아시아 일각의 책임을 맡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보잘것없는 소수의 무리들이 마음과 마음을 모으고 손에 손을 합하여 당신이 소원하시는 곳을 향하여 달음질치고자 하오니, 아버지, 가냘픈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정하여 한푼두푼 모은 돈을 투입하여 치르는 이번 대회이오니 헛된 대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민족을 위해 선을 뿌리는 이 정성은 기필코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뜻이 높이 들리고 당신의 사연이 흘러 나가서 새로이 문호가 개방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시간, 마음과 마음을 아버지께서 묶으시옵소서. 그리하여 최후의 승리의 천국을 향하여 정상적으로 걸어갈 수 있고, 아시아의 새로운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해 낼 수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일본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20일을 표준하고 나아가는 이 겨레 위에, 아버지,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는 한국 식구뿐만 아니라 서구 식구들도 참석할 것이 옵니다. 세계의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모이는 첫번째 대회라서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최후의 승리를 거두시옵소서. 그리하여 일본이 천국복귀노정에서 해와 국가로서의 사명을 다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9월이 그러하고 10월이 그러한 입장이오니 모든 것을 당신께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그 누구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 오라 오직 당신만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의 움직임이 인간을 표준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오니, 모든 것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시작되고 아버지로 말미암아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모든 것이 합당하고 유익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소망의 천국을 향하여 가야 할 발걸음이 얼마나 바쁜 것인가를 저희들이 알아야겠사옵니다. 하루 하루의 생활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찾고 그러한 모습이 되기를 다짐하면서 시간 시간을 의롭게 당신께 바쳐 드리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누구를 향하여 전진하기를 원하옵니까? 저희가 어떠한 상태에서 당신을 대하기를 원하옵니까? 존엄하고 거룩하신 아버지, 은혜를 베푸는 가운데 사정과 사정을 살피시는 아버지, 저희의 마음 깊은 곳에 죄악의 쓴 뿌리가 도사리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힘과 부활의 능력의 손길을 다시 한 번 펴시옵소서. 스승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이들이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승리의 용자가 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거룩하심이 이들과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을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오늘은 수원을 잠깐 다녀오고자 하오니 당신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에게 새로운 인연과 은사를 내려 주시옵길 부탁하옵니다.

당신의 뜻과 당신의 소원과 당신의 섭리가 저희의 생활과 더불어, 저희의 하루 하루의 시간과 더불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4-222
말 씀
지금까지의 역사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선을 추구해 나오고 참을 추구해 나오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선과 참을 추구해 나오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금후의 역사를 거치면해도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34-222
좋은 세계를 이루는 것은 인간만으로는 안 돼
우리들이 찾아 나오는 좋은 한 곳, 좋은 사회, 좋은 나라, 좋은 세계를 생각해 볼 때, 그것은 무엇인지 모르게 불안함을 느끼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더 높고 좋은 자리에서 우리가 찾는 더 좋은 것, 우리가 소망하는 더 넓은 사랑, 더 귀한 가치를 생각하게 될때, 인간만으로는 그러한 세계와 사회와 가정과 개인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보다 이상적이고 보다 절대적인 그 무엇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현재의 입장에서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높아져 가는 곳에서 좋은 것이 맺어지고 좋은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입장을 극복하고 현재의 환경을 수습하고 현재의 우리의 모든 소원이나 사정을 고차적으로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방향을 갖추지 않고서는 보다 좋은 세계와 보다 좋은 사회, 보다 좋은 가정, 보다 좋은 개인을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은 나 이하의 것이 아니라, 나 이상의 것을 찾아 나가는 길에서만이 추구될 수 있고 찾아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의 정상적인 생활환경을 통해서는 선을 빚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들 자신이 좋다 하는 것을 가정에 적응시킬 수 있고, 사회에 적응시킬 수 있고, 혹은 세계에 적응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한계권내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이 좋다 하는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자기를 중심삼은 것에 귀결될 뿐입니다. 이것이 전체가 좋다 하는 것으로서, 중심적인 선한 것으로서 나타나기 위해서는 여기에 부대끼는 여건을 그 이상의 높은 차원으로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과연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 혹은 좋은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는 관점에서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볼 때에, 자기 스스로는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단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굳은 결심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순간적으로 시작하여 순간적으로 끝나 버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년의 벽두에 결심한 내용을 365일을 지내 오면서 성취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아무리 굳게 결심했다 하더라도, 그 결심은 쉽게 흐트러지고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추구하는 목적에 박차를 가해서 나갈 수 없는 자신들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인간만으로는 우리가 소망하고 있는 참된 세계를 이룰 수 없고, 참된 사람으로서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되어 절대적인 가치의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34-223
절대자가 필요한 인간
그러면 여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절대자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큰 분을 본받아야 되고, 나보다 더 높은 분을 따라가야 되고, 나보다 더 강한 분을 의지하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가 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 추구욕이 강하면 강할수록 거기에 반하여 간접적인 대상과 같은 하나의 절대적인 그 무엇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소망의 주체가 되고 모든 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절대자의 가치가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신이라는 존재,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개입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기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고, 또 미완성에서 시작하여 미완성으로 종결될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를 믿고 바라며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신앙심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길을 떠나게 될 때 그 길이 평탄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감하면서도 자기 스스로 그 어려움을 해결하겠다는 마음보다도 다른 무엇에 의해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길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이 마음이 비단 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한 순간에 벌어지는 일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인생행로를 대표하는 한 토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 자신의 인격을 대신한 연약한 모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때, 신앙심의 발로가 되고 신앙심의 내용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생활을 부활시키고, 우리의 생애를 부활시켜서 선을 추구하게 할 수 있는 주체적인 대상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신앙심을 갖추어 나가는 나 자신이 되었다 할진대, 나 자신이 대상의 입장에서 그 주체와 하나되어서 주체의 목적과 대상의 목적이 일치될 수 있는 한점을 취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일지라도 그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 주체 되시는 절대자의 소원과 목적이 이렇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확실히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 깨달음이 내 생애노정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새로운 힘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통해서 느끼는 바일 것입니다.

좋은 세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좋은 국가 좋은 사회가 필요하고, 좋은 국가 좋은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좋은 개인들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선생님이 말씀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자기 스스로 그 좋은 개인이 될 수 있느냐? 이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하루는 이러한 좋은 일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가지고 아침에 희망을 품고 출발하지만 저녁이 되어 그 희망을 성사시켜 기쁜 마음으로 오늘 하루가 내 생애에 빛날 수 있는 한날이 되었다고 자랑하며 돌아올 수 있는 날들이 일년 동안에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볼 때, 그렇지 못한 날들이 더 많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좋은 것을 추구해 나가는 우리는 나 자신이 주체적인 입장에서 좋은 것을 성립시킬 수 없는 타락된 모습임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느끼면 느낄수록 우리의 부족함을 보충하고 우리의 미완성된 것을 보충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를 결정짓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정짓기 위해서 신앙이 필요하고 종교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34-225
하나님의 고통을 해소해 드리려면
그러면 종교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종교는 좋은 사람을 추구해 나오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을 추구해 가지고는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이냐면 좋은 사회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갑이라는 사회와 을이라는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사회, 즉 과거·현재·미래를 통해서 형성되어 있는 모든 사회가 좋아지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형성되어 있는 사회가 좋아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수고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고통을 받아야 되느냐? 좋지 않은 사회를 분립시켜 가지고 아무런 관계 없는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이 고통을 받을 까닭이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이 좋지 않은 사회를 대하지 않을 수 없는 본래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계시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모든 좋지 못한 사회를 대해 나오시는 하나님이기에 고통을 받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소망의 나라를 추구해 나가야 될 입장에서 수많은 국가들이 더 좋은 국가가 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러기에는 미급할 수밖에 없는 국가권을 대하시기에 하나님이 더 슬퍼하실 수밖에 없고 더 고통받으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통받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메워 드릴 것이냐? 그것은 어떠한 개인이 열심히 기도를 하여 위로해 드린다고 해서 메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적인 입장에서 소망의 천국을 이끌고 갈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나라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슬픈 마음을 메워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계를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소망하는 세계의 기준 앞에 현재의 세계가 미급하여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하나님께서는 더 큰 고통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느때에 그 고통을 해소하실 수 있을 것이냐? 그것은 한 개인이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해서 하나님의 고통이 해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쁘실 수 있는 세계를 형성해야만 그 고통이 해소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선을 추구해 나가고, 혹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내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선한 사람의 기준과 차이가 있으면 그 차이로 말미암은 슬픔을 해결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이 사람들을 통하여서 하나의 새로운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뜻에 일치되지 못하는 현재의 이 사회, 그 뜻이 지향하는 선한 세계에 일치되지 못하고 차이가 큰 우리 개인과 가정으로서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메워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수의 무리라도 그러한 세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의 상징적인 형상을 세울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않고서는 제2의 소원, 간접적인 소원도 이룰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모두 자기를 중심삼고 선을 추구해 나왔습니다. 주변의 환경을 전부다 망각해 버리고 오직 나 자체만을 중심삼고, 동기도 나요, 결과도 나라고 하며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 내가 선한 사람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써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그 세계에 필요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보다도 고심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도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개체로 보면 조금도 흠잡을 데가 없고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당당히 나설 수 있었지만 소망의 국가를 찾아 나오신 하나님 앞에서는, 다시 찾으시려는 소망의 나라인 이스라엘과 현재의 이스라엘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서러움과 서글픔을 느낀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서글픔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슬픔을 누가 풀어 드릴 것이냐? 예수님 개인만으로는 그 슬픔을 풀어 드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그 터전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국가의 형태라도 갖춘 기준이 나오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으로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은 미래에 대한 사명을 절감하면 절감할수록 가중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좋은 일을 해야 되겠다, 좋은 행동을 해야 되겠다, 혹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은 어디에 목적을 두고 하는 것이냐? 그 목적하는 바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내가 아닙니다. 나 자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개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좋은 가정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개인이 되었더라도 좋은 가정의 기반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만으로는 가정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가정을 형성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려면 횡적인 관계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 좋은 가정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좋은 사회를 형성할 수 없습니다. 좋은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수다한 좋은 가정을 연결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회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가정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사회를 두고 볼 때 국가를 형성하는 데도 마찬가지이고, 한 국가를 두고 볼 때 세계를 형성하는 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선을 추구해 가는 신앙자의 길에 있어서는 자기를 중심삼고 사는 생활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내가 주체적인 입장에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을 수습하기 위한 주체이지 목적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움직이는 주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절대 순응하고, 절대 복종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또한, 절대 희생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자 앞에서의 나 자체는 무의 입장에서 따라가야 되고, 절대자를 주체시하여 대상의 입장에서 그 절대자와 화합할 수 있는 모습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노정인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개인 개인을 횡적으로 연결시켜 가지고 더 높은 차원의 가치를 가려 나가야 할 것이 복귀도상에 처한 우리 인간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입장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을 위해서 살라고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34-228
좋은 사람만으로는 안 되고 좋은 나라가 이루어져야
그 나라는 어떠한 나라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나라요, 전체를 위하는 나라입니다. 전체의 가치 가운데에서 내 개체가 빛나는 것입니다. 개체의 가치 가운데에서 전체가 빛날 수 없는 것입니다. 전체의 가치 가운데에서 개체가 빛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말씀 가운데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린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른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 인간이 주체를 그리워하고 있는 만큼 그 주체를 위해서는 횡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인간이 주체를 사랑하는 것은 반드시 횡적으로 연결되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와 대상은 종횡관계이기 때문에 종횡이 원형이 되기 위해서는 종과 횡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작용을 해야 원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종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는 중요시하지만 횡적인 사람과의 관계는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원리 가운데 강의해야 될 내용을 두고 볼 때 이것은 귀한 복음이요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대한 종적인 내용이 횡적인 가인 아벨관계에서 일치되지 않고는 복귀가 안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표상한 모든 내용이 여기에 담겨져 있고 십자가가 표상하는 뜻도 여기에 담겨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다 좋을 때에나 슬플 때에나 항상 하나님을 생각해야 됩니다. 종적인 기준 앞에는 좋은 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어려운 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그것은 전체가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슬플 때 횡적인 환경에서 식구들과 같이 슬퍼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기쁠 때도 식구들과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위하는 만큼 사람을 위해야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직접 해드리지 않았지만 ‘너희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개인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었다 하더라도 좋은 사람만 되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사람 그 자체만으로는 좋은 가정을 연결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좋은 가정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사회를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좋은 가정이면 좋은 가정끼리 연결될 수 있고 좋은 사회면 좋은 사회끼리, 좋은 나라면 좋은 나라끼리 연결될 수 있지만, 좋은 개인이 좋은 나라와 바로 연결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서로 대등한 입장, 좋은 사람들끼리나 좋은 가정들끼리는 서로 횡적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또, 좋은 나라끼리도 횡적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평등, 즉 평화가 있습니다. ‘평화'(平和)의 ‘평’은 수평을 뜻합니다. 이 ‘평’이 없어 가지고는 ‘화’했다 하더라도 그 화함은 곧 없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나라를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희생하는 데는 어떤 자리에서 회생해야 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삼천만 민족의 소망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찾는 것은 뭐냐? 새로운 천국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을 찾기 위해서는 민족이 슬퍼하고 민족이 고통받고 민족이 서러워하는 자리에서 희생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선한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은 그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세계를 위해서 초민족적인 감정을 지녀야 된다는 것입니다.

34-230
선한 사람의 요건
하나님의 사랑을 두고 볼 때, 지금 대한민국과 일본이 과거 30여년 전의 원수의 입장에 있던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두 국가간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형제의 인연이 맺어져 있는 것입니다.

국가를 초월한 심정적인 인연으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아들딸로서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맺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비례하는 횡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천국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 절대자의 그 기준이 지상에 현현하느냐 못 하느냐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횡적 기반을 어떻게 세계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 자신이 흡수당하는 것이 아니라 흡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흡수력이 강한 민족은 세계를 흡수할 수 있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좋은 것에 흡수되는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쁜 것에 있어서도 자기의 본질을 뒤집더라도 전혀 드러내지 않고 거기에 흡수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흡수당하지만 흡수시킨 그 자체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회에 흡수당했다 하더라도 그 사회 사람으로 머무르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참아라, 인내하라, 극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선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참다운 심정을 지닌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면 ‘내 사랑을 받아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슬픈 사람을 대할 때는 그 사람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고 기쁜 사람을 대할 때는 그 기쁨을 동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타락하게 된 죄로 말미암아 슬퍼하게 될 때 그 죄에 사로잡혀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흡수되지만 그에 비례해 가지고 반대로 흡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의 껍질을 벗겨 주고 재기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역할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악은 물이 흘러 내려가는 것과 같고 선은 물이 흘러 올라오는 것과 같습니다. 조수(潮水)가 밀려 들어오고 밀려 나갈 때의 현상은 달의 인력에 의해 방향이 바꿔짐으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방향이 바꿔지려면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어디에 가든지 필요합니다. 또한 악한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악한 사람은 왜 필요하냐? 선한 사람에게 흡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는 그 어려움의 주인이 되어 모든 어려움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자기의 마음에 전부다 받아들이지만 결국 그것에 의해 주관당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 가지고 더 흡수할래야 흡수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하게 될 때, 반대로 바꿔치는 것입니다. 흡수당하면서도 이러한 기준을 가진 사람이라야 선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한 사람은 양면적인 내용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선하시고 좋으신 분입니다. 좋다는 것은 일방적인 면에서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종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횡적인 면에서도 무한히 통해야 됩니다. 과거의 우리 조상들도 절대적인 하나님을 추구하고 찾으며 나왔기 때문에 우리 후손들도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그래야 됩니다. 종적인 관계에서만 필요한 하나님이 아니라 횡적으로도 무한한 세계를 넘어서 하나님을 추구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도 선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흡수하려 해도 선한 사람에게는 악한 사람에게 흡수될 수 있는 요소보다도 더 많은 선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악한 사람도 선의 요소를 흡수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에게 악한 요소가 제거되고 선한 요소가 남아지기 때문에 선한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선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선의 부활의 은사가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선을 무한히 공급해 줄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34-232
좋은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사람
두 사람이 있으면 그 두 사람 가운데 어떠한 사람이 선한 사람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선을 무한히 보급시켜 줄 수 있는 존재, 혹은 본성의 한계선을 그릇에 비유한다면 그 그릇을 가득 채우고도 넘치도록 줄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가 선한 사람입니다. 흡수하는 과정에서 불만을 하거나 넘치지 못한 자리에서 싸우는 것은 악이고, 반드시 넘쳐야만 선입니다. 넘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흡수를 당하게 했던 사람을 주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작전은 주고 빼앗아 오는 작전입니다. 주고 빼앗아 오는 데는 희생시켜서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라, 부활시켜서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흡수할 수 있는 두 물건이 있다면,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보다 강한 것은 흡수되는 것을 영양으로 보급시켜 주는 것입니다.

과거의 문화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강한 문화는 덜 강한 문화를 흡수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에 있어서도 보다 강한 선한 사람은 덜 선한 사람을 흡수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강하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더 줄수 있고 더 보급시킬 수 있는 내용을 지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통일교회가 망하느냐 망하지 않느냐, 역사시대의 심판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의 기준을 넘어서 더 줄 수 있는 내용을 가졌다 하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혼란의 와중에 있는 이 세계정세 속에서 통일교회가 받아 먹고 산다면 통일교회는 망합니다. 그러나 주고도 남을 수 있는 통일교회라면 틀림없이 세계를 지배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한 통일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 개인은 어떻게 해야 되는 가? 더우기나 세계에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여기에는 혼자서는 안 됩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거쳐서 주어야 되기 때문에 국가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요, 민족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요, 종족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요, 가정이 형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와 나와 관계가 맺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어떤 사람이냐? 어떤 환경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좋아하는데 누가 먼저 좋아하느냐? 하나님이 먼저 좋아하고 그 환경에서 좋아 해야 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두고 볼 때, 아담 해와의 가정에서 아벨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원수와 같은 감정을 갖고 참을 수 없어서 대결하는 입장이라 하였을 때 어떠한 사람이 남아지느냐? 여기에서는 복수를 하는 것이 철칙이 아닙니다. 그 복수의 이면에 하나의 조건, 즉 용서할 수 있는 아량이 있다면 복수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보다 나은 것 앞에는 보다 덜한 것이 흡수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느 것이 주체고 어느 것이 대상이냐? 보다 나은 것이 주체요 보다 덜한 것이 대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기준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 절대적 기준에는 세계도 포함되고 국가와 민족 그리고 사회의 모든 제도와 이념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절대적인 환경을 갖추어야 됩니다. 어떠한 사회, 어떠한 제도권내에서도 나 자신이 줄 수 있는 아량을 가진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선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시대 뿐만이 아니라 미래에까지 영원히 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사람이 거룩한 성인이라는 일컬음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줄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무엇을 줄 것이냐?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진리보다 더 좋은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상 최후에 남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 시대의 민족을 위하여 주고 싶어서 통곡을 하고, 자기 일신의 신세를 망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한을 품지 않고 주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주고 싶은데도 민족이 받지 못하면 세계를 위하여 주어야 됩니다. 자기의 어떠한 이익을 바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의 부활을 바라면서 주는 것입니다. 생명의 부활을 위해서는 자기의 육신을 희생시키면서 생명이 부활된 미래세계를 맞이하는 소망으로 살아야 하며,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애착을 느끼고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무한한 가치를 느껴야 합니다.

34-234
사랑의 본질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죽어 갔기 때문에 십자가의 의의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죽어서도 하나님께로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니 인류를 위해 주어야 합니다. 주는 데는 하나님을 통해서 인류에게 주고자 하는 조건을 세우고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종적인 기준이 설정된 이상 여기에는 어느 한때에 수평선이 그어져야 됩니다.

천지는 그와 같은 입장에서 도는 궤도를 갖추었기 때문에 종적인 수직선에 90도의 횡선을 그을 수 있는 평면적인 한때가 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이루어진 횡적인 종교인 기독교가, 역사시대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여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조해 가지고 현 말세에까지, 평면선이 그어질 때까지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변명을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변명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왜 귀합니까? 이는 종적인 사랑이지만 종적인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사랑이 깃들게 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귀하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가 그릇될까봐 생활을 통해서 자녀의 길잡이가 되려는 내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종적인 사랑은 반드시 횡적인 사랑을 창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도 이런 원칙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종횡으로 집약되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듯 종횡의 요소를 책임진 것이 부모의 사랑이기 때문이 자기의 귀한 것을 그냥 그대로 자식에게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받게 해 가지고 횡적으로 넓히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그런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이 왜 그러하냐? 상대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는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간에는 서로 주고 받음으로써 원형을 그리는 것입니다. 주체는 종적이요 대상은 횡적인 고로 이것이 90도 각도가 되어 원형을 그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본질은 반드시 종횡의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종횡 가운데 무엇이 먼저 출발하느냐? 종이 먼저 출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사랑이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의 내심을 분석해 보면 종횡의 사랑의 본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종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종적인 사랑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내용을 갖출 수 있는 사랑이기 때문에 횡적인 아들딸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이 종적인 기준으로 넓힐 뿐만 아니라 횡적으로도 넓혀 나감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만유의 존재가 종적인 환경을 중심삼고 횡적인 환경으로 넓어지게 되고, 세계와 천주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의 마음이 동기가 되어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겠다, 혹은 무엇을 갖겠다, 무엇을 하면 좋겠다고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종횡의 사랑의 인연이 자신의 본질적인 마음의 바탕에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본질적인 욕구에 의해 여러분의 욕망이 충족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34-235
좋은 사람은 다 주고 나서도 더 주고 싶어하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반드시 인간에 의해 횡적으로 뻗어 나가야 됩니다. 이것은 그림자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림자는 실체의 형태를 대신해 가지고 반응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기로 말하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주고 받으면 반드시 반응이 생기는 것과 같이 주체와 대상이 주고 받으면 반응하는 극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다른 데에서 또 벌어지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다 할 때 선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착하다는 뜻입니다. 그 선하다는 뜻 가운데에는 미의 감정도 들어가 있고, 사랑의 감정도 들어가 있고, 소망의 감정도 들어가 있습니다. 사랑 앞에 대상이 되는 것은 미이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결정되면 반드시 소망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작용을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소망은 거리를 두고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소망은 반드시 관계를 가지게 될 때 나타나기 때문에 여기에는 거리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착하다고 하는 데에는 반드시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착해지지 않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아들딸을 귀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착하다 할 때는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착한 것은 미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착한 애기는 예쁘지요. 거기에는 반드시 사랑을 유발시키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상적인 가치를 결정지음과 동시에 소망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체와 대상은 목적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목적관을 중심삼고 변증법이 나오게 되었고, 여기에서 공산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을 보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해서는 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나를 사랑하시옵소서’ 하고 자기를 들고 나가서는 안 됩니다. 자기 속에서 세계가 빛나기를 바라고 하나님이 자기 속에 들어와 살기를 바란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시겠는가 생각해 보세요.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바늘구멍 같은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 사신다면 얼마나 답답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욕심은 ‘하나님, 내 마음에 들어오셔서 내 뜻대로 하시옵소서’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를 하더라도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자기의 뜻이 없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을 왜 복귀해야 되느냐? 횡적인 주체와 대상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가인 아벨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러려면 주체와 대상이 서로 주고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원칙이라는 겁니다. 주고 받지 못하면 횡적인 면이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가인 아벨 복귀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타락하지 않았더라도 지상에는 반드시 두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가 잘못하여 부모 대에 소망을 잃어버리면 자식 대에 소망을 바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그 자식 대에도 소망을 못 이루면 3대인 증손자 대에, 3대에도 못 이루면 4대에, 4대에도 못 이루면 10대, 백 대를 거쳐 서라도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서로가 상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지배할 수 있고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선의 주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충의 요인을 들고 나와 가지고 강압적인 완력으로 그 기준을 발전시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그 기준에 흡수되고 화합될 수 있는 주체적 권한을 가진 하나의 국가관, 또는 세계관을 지닌 사상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보면 자기를 언제나 사랑합니다. 그저 자기만 사랑한다는 거예요. 타락한 자리에서 내가 살고 있는 한 찾아다녀야하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면 그만큼 대접을 하라는 것입니다. (녹음이 약간 끊겼음)

자신이 선하더라도 선을 바랄 수 없는 자리에서 받으면 그것은 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받으나 마나입니다. 그러니 소화할 수 있는 자리에서 받아야 됩니다. 나 자신이 악한 입장에서 받은 모든 것은 죄악입니다. 다 주고 나서도 더 주고 싶다 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4-237
만민이 바라는 정착지는 사랑이 있는 곳
여러분은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기주의적인 목적을 달성하고 얻은 자유라고 하는 것은 받기 위한 자유 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수천 수만의 장벽이 가로놓여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어떠한 국가관이라든가 세계관도 없습니다. 이런 사상은 지극히 위험한 사상이고 멸망될 사상입니다. 오늘날의 자유주의 사상의 경향이 멸망될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 안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고 종족이 있을 수 없고 국가가 있을 수 없으며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종횡의 관계에서 세계를 합칠 수 있는 입장이어야만 국가가 들어가고 사회가 들어가고 가정이 들어가고 개인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떨어져 너와 나뿐인 떠돌이 신세가 된다면 어디에서 머무르겠습니까? 만민이 공동으로 바랄 수 있는 정착지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그곳은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순간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사방성을 갖추어 나간다면 그것은 일대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은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천지를 창조한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와 하나되어 가지고 그 절대자의 사랑이 포함된 세계의 형태로 나타나야 됩니다.

그 세계를 분석해 보면 가정을 대신한 개인이 있습니다. 그 본질에 있어서는 개인과 가정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런 틀림없는 개인과 가정이 전체화되어 가지고 하나의 대표 형상과 같이 된 국가 형태가 이상적인 국가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념적으로 볼 때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개인주의 사상은 종말을 맞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좋은 개인만으로는 좋은 세계와 연결될 수 없습니다. 좋은 세계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세계적 역량을 지닌 우수한 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어떤 구상을 가지고 창조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재창조 역사를 해야 할 우리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심정의 도리를 통해 가지고 세계적인 구상을 중심삼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통일이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사상을 추구해 나왔지만 이 사상이 인류에게 기여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 사상을 포기해야 할 시대를 맞이하였으니 지금이 마지막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 사상을 좋다고 취한 만민이 전부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살 줄 알았지만 이제는 포기해 버리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섰으니 무엇을 취해야 되느냐면 인본주의 사상이 아니라 새로운 신본주의 사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앞으로 신본주의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세계가 영화를 누리고 새로운 문화세계의 절정을 이룰 수 있는 그러한 사상이 있습니까? 금후에 있어서의 초인류적인, 초세계적인 기준의 새로운 문화를 창건할 수 있는 종교가 있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개인이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종말시대에 있어서 통일사상이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인류 앞에 새로운 목적관과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고 여기에 대한 방향은 물론 환경까지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될 사상이 바로 이 통일사상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제시하는 데에는 어떻게 제시해야 되느냐? 지금까지 수많은 위정자면 위정자, 주권자면 주권자들이 해 나오던 것처럼 착취하고 박탈해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제물삼아 가지고 무한히 주고 싶어 애쓰며 제시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국경을 넘어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횡적인 사랑을 확대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를 넘고 아시아를 넘고 세계를 넘을 수 있는 횡적인 기반이 조성되게 되면 여기에서 절대적인 대상의 기준이 결정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위해 출발한다 할 때는 반드시 출발선이 있든가 출발점이 있어야 됩니다. 그 선은 무엇이고 그 점은 무엇이냐? 선은 점의 총합입니다. 그러기에 점이 있어야 됩니다. 올바른 점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뭐냐? 절대적인 주체입니다. 주체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주체가 되면 그 주체는 전체의 표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 주체의 중심이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주체의 중심이 곧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34-239
사랑하지 않고는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왜 좋으냐? 자기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전체에게 다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고도 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다시 주체에게 돌아옵니다. 바로 이런 사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도 그 사랑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에 접한 사람이 주체의 사랑에 완전히 화합하게 될 때에는 상대적인 인간을 통해 그 사랑을 다시 돌려 보내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돌려줄 수 있는 내용을 가졌기 때문에 영원한 것입니다.

입력과 출력, 들어오는 힘과 나가는 힘을 비교해 보면 나가는 힘이 더 작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세상에 상대적인 사랑, 즉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게 했느냐?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사랑을 주십니다. 그 사랑은 여러분의 개체 머무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을 거쳐 오는 동안 감소됩니다. 들어가는 것이 입력이라면 다시 나오는 것은 출력인데 출력은 언제나 작아집니다. 사랑이 소모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보강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여기에 또 다른 횡적인 주체와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 다른 주체와 대상이 서로 주고 받음으로써 새로운 것이 보강되고 이것이 횡적으로 맺어짐으로 말미암아 새로이 돌아갈 수 있는 힘으로 바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힘의 작용이 원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람끼리 왜 사랑해야 하느냐?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이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점도 돌아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종적인 사랑 앞에는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인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종적인 사랑의 힘이 상대적인 관계에까지 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힘이 보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종적인 사랑은 자극적인 힘을 보강하고 플러스적인 자극을 또다시 저축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그 본래의 자체까지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횡의 주체와 대상을 위해 종적인 주체와 횡적인 주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선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는 말씀과 같이 그렇게 사랑하는 독생자는 사랑을 받으면 다 된 거예요? 아닙니다. 자기가 사랑을 받았으면 사랑을 해야 됩니다. 힘을 보급해 주어야 합니다. 충족하게 줘야 됩니다. 나라에 충족하게 줘야 되고, 세계에 충족하게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충족하게 주어야 합니다. 뜻을 위해 주라는 겁니다. 자기로 말미암아 나라와 세계를 충족시켜 주어야 됩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좋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좋은 사람들이 없어 가지고는 하늘 나라, 하늘 세계를 도저히 이룰 수 없습니다.

좋은 사람은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은 주체를 좋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합해져야 합니다. 둘이 합하면 힘이 납니다. 어떤 힘이 나오느냐? 생명의 힘보다 강한 힘이 나옵니다. 그 힘을 둘이서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하늘의 힘에 플러스시켜야 됩니다. 여러분 몸의 세포를 보더라도 세포끼리 서로 주고 받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따로따로 떨어져 나가서 어떻게 열매를 맺느냐? 그것은 ‘나’라는 새로운 생명체에 흡수될 수 있는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연결이 잘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기정교회에서는 ‘오, 하나님이시여! 우리 교회를 어떻게 어떻게 보살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나라를 잊어버리고, 세계를 잊어버리고, 하늘땅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는 교회시대가 지나가게 되면 망하게 됩니다. 민족시대에 들어가 있는데 교회에 대해 기도하면 하나님은 오히려 후퇴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겠어요? 집안에서 무슨 좋은 잔치를 벌일 때도 그 집안의 법도를 세우기 위해서는 어른을 중심삼고 잔치를 벌입니다. 이렇듯 한 가정의 가법은 어른을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어른은 누구냐? 어른 가운데서도 할아버지가 있으면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가 있으면 증조 할아버지입니다. 그 증조 할아버지가 노망을 했더라도 법도의 중심은 증조 할아버지입니다. 비록 말을 못 하고 명령을 못 하더라도 먹을 것이 생기고 좋은 일이 생기면 먼저 그분께 통고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종적인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할아버지가 종적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자연의 좋고 나쁜 것은 종적 관계를 거치고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상을 몰라보면 망한다는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횡적인 것만 가지고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떠돌이와 같습니다. 이것은 어디를 가나 공식으로 통합니다. 지금까지의 공식을 보더라도 종횡의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떠나서 이루어진 공식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표준해 가지고 공직이 이루어집니다.

34-242
세계를 지향해 나가는 통일교회
공식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전체에 적용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내용을 가진 것이 있으면 그것이 공식이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요건을 전체 요건으로 대신해서 귀결시킬 수 있게 될때에 그것이 공식으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공식이란 중심을 말합니다. 중심은 곧 종적인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종적 기준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한 집안을 보더라도 그 집안의 중심이 누구냐? 연세가 많으신 분, 즉 증조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그 증조 할아버지가 중심입니다. 운명할 때가 되었다고 해서 가족들이 그 할아버지를 무시하게 되면 종적인 세계를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노망했다 하더라도 그 가정의 중심은 증조 할아버지입니다. 먹을 것이 있더라도 그분께 먼저 갖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그 나라의 대통령이라 해도 할아버지께 먼저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들은 횡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가 바라는 것은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통일교회 간판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가가 하지 못한 사회활동을 왜 우리가 하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통일교회가 통일교회 자체만을 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자체만을 위하지만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을 넘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위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냐? 통일사상입니다. 세계의 사상을 놓고 볼 때 그 흐름이 종적인 직선을 그어야 하는데, 오늘날의 사상을 보면 횡적인 선을 긋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적인 관계는 틀렸지만이 횡적인 선을 거쳐서 종적인 선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까지 이 사상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종적인 선은 어떤 선이냐? 하나밖에 없는 선입니다. 완전하게 그어진 선은 하나입니다.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종적 세계는 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세계적인 주의요, 세계적인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분립된 사상이 아니라 통일된 사상으로 세계적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역사가 이 세계 가운데서 벌어져 나왔습니다. 역사는 과거, 현재, 미래를 중심삼고 보다 나을 수 있는 사상을 좇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상이 어디서 나타날 것이냐? 이 사상이 어디에 나타나더라도 중심의 자리에까지 가야 됩니다. 그 자리는 세계의 중심입니다. 그러기에 개인이 중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 안의 개인입니다. 또한 가정이 중심이 될 수도 있고 종족이 중심이 될 수도 있고 민족이 중심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민족이 되려면 중심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를 위해 뛰어야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사랑하고 세계를 위해서 사랑 받을 수 있는 곳이 어디냐? 그곳은 천국입니다. 그곳은 모든 개개인의 마음의 중심이요, 모든 가정의 중심이요, 종족의 중심이요, 민족의 중심이요, 국가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이 나타나게 될 때에는 세계는 자동적으로 통일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지향해 나가는 그 기준이 통일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즉, 제3이스라엘의 창건입니다. 제3이스라엘의 창건은 어떤 것이냐 하면, 제3이스라엘을 위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제3이스라엘을 창건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34-243
세계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주라
세계를 위해 모든 것을 주어야 합니다. 출발에서부터 주는 동시에 영원히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할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승리자나 혹은 어떤 기록을 낸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 사람에게 세계를 위해서 권위를 주는 것입니다. 그의 명령을 따라야 되고 또한 그는 절대적인 중심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상대적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이상의 가치를 지니기 전에는 그 자리를 양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크고 높고 귀한 것이기 때문에 진리로 말하면 더 진보적인 진리요, 가치로 말하면 더 가치적인 것입니다. 이 자리는 하나입니다. 그것이 중심된 자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느냐? 세계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세계로 말미암아 태어났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태어났습니다. 여러분이 세계를 위해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주체이기 때문에 세계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서 받느냐? 세계의 중심에서 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라는 승리권내에서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이스라엘의 창건을 바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의 창건은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창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한국을 위한 세계가 아니라 세계를 위한 한국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입장에 서지 않고는 안 됩니다. 세계를 위한 한국이라면 먼저 줘야 됩니다. 주고 나서 받게 될 때에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고 받는 이치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나라를 위해 주고 나라가 받게 될 때는 어떻게 된다고요? 돌아가게 됩니다. 어디로 돌아가느냐?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게 됩니다. 즉, 가인 아벨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앞으로 세계 최고의 국가를 대해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은혜를 받았을때 그 은혜를 더 큰 분야에서 소모시키지 않고는 그 은혜가 남아지지 않습니다. 열만한 가치의 은혜를 받았는데 열하나 만큼 소모시키게 되면, 열만큼의 은혜는 언제나 남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만 더 보태 가지고 주면 열은 언제나 남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열만큼 요구하는데도 아홉만큼밖에 못 줬을 때는, 하나만큼이라도 모자라면 언제나 모자라는 것입니다. 100점이면 완전하지만 99점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불완전한 것은 후퇴했다가 다시 출발해야 됩니다.

시험을 봐서 99점을 맞았다면 백점을 맞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다시 시험을 봐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위하는 대한민국이 되면 세계는 대한민국을 위하는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를 위하는 기독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세계를 위한다고 하기는 했는데 채 못했습니다. 채 못했으니 다시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 교인들은 보따리 싸 짊어지고 가만히 있으면 문둥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선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으면 3점을 추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 3점은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잘되기 위해서는 3점을 세워 놓아야 된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전도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도 3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3점을 세우기 위해 전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원형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왜 원형이 그려져야 되느냐? 원형이 완전히 그려지면 중심은 자동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기도를 하더라도 방법을 달리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세계를 위해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전에 내가 하나님의 오른팔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팔로 무엇을 줘야 됩니까? 하나님은 세계를 다 주고 싶어하십니다. 이것 저것 모든 것을 주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러면 현재의 사람들에게만 줄 것이냐? 과거에 왔다 간 영계의 모든 영인들에게도 줘야 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은 무형으로 있지만 그들도 과거에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한번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보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바쁘시겠습니까? 천년 만년을 주어도 다 못 줄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충신은 못 되더라도 하나님의 머리 가운데에 있는 하나의 세포라도 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34-245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은 선(善)
세포는 생명체를 위해서, 인체면 인체의 목적을 위해서 협조하는 요소를 남겨야만 세포로서의 작용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이 없으면 당하는 것입니다. 세포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세포들이 구성되어 제3세포를 형성할 수 있게 무엇을 남겨 줘야만 생성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날아가 버립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은사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이 은사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은사와 행함은 종횡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을 떼어 가지고는 성사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받은 것만큼의 가치를 돌려주어야 됩니다. 발전의 요인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돌려주지 못하면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나무 가지가 뻗는 것은 양분을 주어서 뻗는 것입니까, 아니면 강제로 잡아 당겨서 뻗는 것입니까? 양분을 줌으로써 뻗는 것입니다. 발전의 요인은 주는 데에 있습니다.

선한 것은 무엇입니까?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야 됩니다. 주는 데는 무엇을 줘야 되느냐? 제일 나쁜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옷 짜박지를 주는 것이 아니며, 먹다 남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주어야 합니다. 생명뿐만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사랑까지 줘야 됩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며 사랑을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세계의 중심의 자리에서 사랑을 받고 또 사랑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아담 해와의 자리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귀의 인연을 따라 나온 것도 본연의 아담 해와의 자리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주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세계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쩨쩨하게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위해 살 수 있는 직선을 그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직선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어느 정도 직선이 그어지면 종선이 그어집니다. 이 종선만 그어지면 하나님의 사랑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완전한 대상만 이루어지면 완전한 주체는 자동적으로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생겨나서 플러스가 되는 것입니다.

전기에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나면 플러스가 생겨납니까, 안 생겨납니까? 「생겨납니다」 완전한 플러스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한 플러스가 되어 주체적인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대표적인 근본이 있어야 됩니다. 이 근본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주고 받음으로써 완전한 플러스가 되었을 때는 거기에 마이너스를 창조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마이너스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이 힘만 거머쥐게 되면 한 점에 모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점에 모여질 때 방향을 갖추어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횡으로 주고 받는 사람은 반드시 제3점을 요구해야 합니다. 제3점이 없다면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벌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제3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정상적입니다. 주체와 대상은 반드시 제3점을 통과해야 됩니다.

이 제3점은 주체의 목적, 대상의 목적을 위해서도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보다 큰 핵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발전하기 때문에 개인의 몸과 마음이 주체가 되어 그 주체를 중심삼고 하나의 핵을 이루면 상대를 대할 수 있는 주체가 생기게 됩니다. 그 다음에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이것을 완전히 주고 받으면 그것이 하나의 주체가 되고 핵이 되어 종족을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가정이 종족과 완전히 하나되면 그 종족을 중심삼고 주체가 되어서 민족을 위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민족이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되면 세계를 위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가 문제입니다.

34-247
선한 사람의 기준
어떤 사람이 말을 하기를 세계의 대통령이 되기는 쉬워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뜻적인 입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적인 선한 사람의 기준은 무엇이냐? 종족적으로 선한 사람은 민족적인 시대에는 사라집니다. 또, 민족적으로 선한 사람은 국가적인 시대에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충신인 이순신 장군이 세계의 공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이순신 장군은 원수입니다. 우리나라를 사랑했던 이순신 장군이 일본에서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며 서로 승패를 겨룬 입장에서는 원수라는 말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여 주고 받을 수 있는 자리를 닦아 놓지 않으면 원수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 원수를 없애자고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 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세계를 위해 주고자 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피를 흘리며 순교를 당해 나오면서도 박해하는 로마 제국을 위해 준 입장에 섰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복수를 했다든지 보따리를 싸 가지고 도망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기독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반대받는 그 자리에서 뿌리를 박고 나온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 무엇을 위해 살아요? 여러분은 선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합하였을 때 선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선 중에서 최고의 선이 무엇이냐? 혹은 좋은 것 중에 최고로 좋은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아닙니다. 싸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민이 전부다 전쟁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만 선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사람을 사랑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사랑하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선생님을 사랑해야 되고 선생님을 사랑하듯이 여러분끼리도 서로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못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내가 중심이지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다 이해할 수 있는 입장에서 그 환경이 전부다 받들어 중심으로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강제로가 아니라 자동적으로 가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움직이게 하면 자동적으로 무거운 것은 깔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거운 사람은 가운데로 몰리는 것입니다. 돌고 도는 데서 무거운 것은 움직이지 않지만 가벼운 것은 자꾸 움직이기 때문에 주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무거운 것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가운데로 움직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그 사람을 중심적인 인물로 모실 수 있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모든 것을 줘야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동기 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세계를 위해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세계를 위해서 태어났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세계를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천리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한 발자국은 천리길의 출발이예요, 아니예요? 출발입니다. 두 발자국은 그 만큼 나간 것입니다. 천리길이 짧아지는 것입니다. 한 발자국이나 두 발자국이나 모양은 마찬가지 입니다.

34-249
일생 동안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천리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은 다리를 절며 걸어가기도 합니다. 그것이 걷는 것입니까, 다리를 저는 것입니까? 그것만 놓고 보면 그것이 걷는 거예요? 다리를 저는 거지요. 그렇지만 그것도 걷는 것입니다. 낮잠을 자면서 걷더라도 걷는 것입니다. 낮잠을 자면서 걷는 것은 더 빨리 가기 위해서입니다. 잠을 자는 데도 걷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목표를 위해서입니다. 먹고 자고 하는 것도 가기 위해서입니다. 목표를 위한다는 면에서 생각하게 될 때는 잠을 자더라도 가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생 동안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이란 조그만 동방의 나라에서 아무것도 갖추지 못하고 좁은 곳에서 산다 하더라도, 이것은 더욱 큰 것을 만들기 위한 과정임을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그것은 왜 그러느냐? 큰 길을 가기 위해서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이러고 있지만 어느 정도 지내 보라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가야 합니다. 복잡한 환경을 타파하고 다른 사람이 반대하더라도 선생님이 제시한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세계를 위해서 가는 데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남을 겁탈하거나 이용하며 가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주면서 가야 됩니다.

전도를 할 때, 돈이 많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들어오면 좋겠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들어오면 뭘 합니까? 그것이 통일교회를 위하는 것입니까, 그 사람을 위하는 것입니까? 전도한 사람이 돈이 좀 있다고 해서 연보하게 해 가지고 내 살림살이를 해결해야 되겠다고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생명을 구하는 데에 물질적인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모두 가려 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사람을 보고서 좋다 나쁘다 해서는 안 됩니다.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낮은 사람을 잘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높다고 해서 낮은 사람을 밟고 올라가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밟힌 사람들이 전부다 타고 올라가게 되고 밟은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하며 가야 됩니다. 가정을 위하고 직장을 위해서 가야 합니다. 직장이 잘못되었을 때, 회사의 사장보다 회사를 더 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그 회사의 사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늘 가는 길에 있어서 세계를 위해서 어느식구도 못할 것을 자신에게 명령해 달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세계적인 터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십년 동안, 대한민국의 시련과 고통을 다 퍼부어도 내가 죽기 전까지 모든 십자가를 짊어지겠다고 해야 합니다.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난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 앞에는 닥쳐오는 어떠한 평면적인 십자가도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평면적인 십자가를 대해 여기에 종적인 십자가를 합해 가지고 하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당하는 고통 이상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패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 불효를 남기는 것보다 이것을 극복함으로써 하나님이 나로 말미암아 더 큰 희망의 기원을 마련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라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느끼며 십자가를 대하게 될 때는, 그 자리가 곧 복된 자리입니다. 이렇게 가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감옥에 끌려 들어가더라도 그것이 자기에게 있어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보금자리라고 할 것입니다. 이 순간은 하늘나라의 경계선을 뚫고 하나의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는 순간입니다. 있는 정성을 다하고 밤이나 낮이나 세계를 위하는 데 있어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온 마음을 투입하여 최고의 정성을 드리는 자리가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슬픔의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원수의 채찍이 날아들더라도 힘을 내어 원수를 갚자는 겁니다. 열 대를 먼저 맞고 세 대를 치는 것은 사탄편에서 복수할 수 없습니다. 잘못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열대를 먼저 맞았다면 열 대, 스무 대, 몇백 대를 치더라도 사탄편에서는 항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를 위해서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되고, 세계의 모든 악을 제거시킬 수 있는 좋은 참고가 되는 것입니다.

34-251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 되라
여러분은 맞아도 보고 죽는 자리에서 고생도 하고 어려움도 당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원수가 아닙니다. 이 자리가 천 배, 만 배 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상의 선열들이 나라를 찾기 위해서 신음하던 외로운 입장에서도 충신의 절개를 지키며 이끌고 나왔던 그 이상으로 극복해야 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정상에서 신음하며 기도한 그 이상의 자리까지 나가야 됩니다. 그런 자리가 아니고서는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자리가 아직까지 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길을 가는 데는 죽음이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때인가 쓰러지더라도 원수를 굴복시키겠다고 하며 가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세계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 되느냐? 자기의 아들딸을 위하여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인류가 지향하는 선의 세계에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조금만 힘이 들어도 뭐가 어떻다고 변명하는 패들이 있는데 암만 해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들고 나을 때는 암만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에 통해야만 합니다. 이 원칙은 틀림없습니다.

선생님은 사람을 보게 되면 벌써 그 사람이 누구를 위해서 사는 사람인지 압니다. 출발점이 어디냐? 나라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냐, 세계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냐? 몇 마디만 이야기해 보면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꾸며대도 선생님은 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미천한 사람이지만 가면 갈수록 자기 자신을 가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껴 나타내지 않고 숨기려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더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이치와 마찬가지 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왜 이 나라에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느냐? 왜 지금까지 공식 석상에 나타내지 않느냐? 한다 하는 사람, 국장 과장 어떻다 하는 사람이 만나자고 해도 선생님은 안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만나게 해 주시는 그 권한을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자기를 따르고 있는 사람을 내세우고 가는 복귀노정이기에 따르는 사람들을 그 이상의 자리에 세워 놓고, 그것을 보고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어떤 녀석은 자꾸만 자기 자신을 내세웁니다. ‘나 살려주소’ 하는 녀석은 안 됩니다. 때려 죽일 녀석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러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많은 사람 앞에 나타나서 얘기할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자랑할 수 있는 나 자신 인데도 불구하고 얘기를 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위해서 남에게 신세진다고요? 이놈의 자식들.

선생님이 이 나라 이 민족을 대해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에 아직까지 큰소리치지 않는 것입니다. 원리 원칙에 있어서는 큰소리를 칠수 있지만, 나 자신을 내세워 큰소리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갈 길이 바쁜 것입니다. 24시간 내내 갈 길이 바쁩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잠을 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낮잠이라도 자게 되면 회개합니다. 자고 나서는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 여자들이 남자들 앞에 몸을 드러낼 때의 마음과 같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선생님을 두고 암만 찧고 까불고 해보라는 겁니다. 결국 누가 망하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들어 주시고 싶으시지만,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고 싶어도 못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기필코 주고 받는 인연을 가졌기 때문에 이 권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모두 자리들을 잡았습니다. 요즈음 축복대상자들을 보게 되면 누가 어떻고 누가 좋고 하며 전부다 자기를 중심삼고 있습니다. 자기가 축복받는 데에 선생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그 죄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저나라에 가면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이상상대를 만났다 하더라도 저나라에 가면 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34-253
좋은 것 중의 좋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람이 아무리 좋은 자리에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선생님이 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여러가지 문제가 입체적으로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잘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공평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배급을 덜 받은 사람이 있으면 어느 한때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더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나쁘다고 한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먼저 상대를 사랑해 주라는 것입니다. 불평을 하더라도 상대가 받을 수 있는 백이면 백, 천이면 천 이상 사랑하고 나서 불평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해주지도 않고 불평을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주고 나서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후손들이 복을 받는 것은 공평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부족하고 덜 받은 사람이 있으면 몇백 배 이자를 붙여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는 좋은 후손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구덩이가 생겼으면 메워야지요? 또한 저기압권이 형성되었으면 고기압권에서 나누어 주어야지요? 이것이 천리 원칙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공평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나쁘지만 그것이 옥토가 되어 뿌리를 내려 좋은 열매를 맺게 하듯이 하나님은 나라와 세계를 위해 필요한 사람을 후손으로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기를 대한민국을 위해 태어났습니까, 통일교회를 위해 태어났습니까? 세계를 위한 충신이 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공식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는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의 친구가 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나 자신이 세계를 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의 자녀들을 공부시키는 것도 세계에 줄 수 있는 길을 넓히기 위해서 공부시켜야 합니다. 내가 뜻을 알았으나 그 길을 못 가게 되면 자기의 아들딸, 혹은 믿음의 아들딸을 통해서라도 그 길을 닦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갖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일생에 있어서 그 한계점까지는 못 갔다 하더라도 세계에 있어서 영광스런 중심존재로 등장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랑의 법도를 통한 인연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국경을 넘는 것입니다. 아들이 미국에 갔다고 해서 한국에 있는 어머니의 그 사랑이 제약을 받습니까?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몸은 대한민국에 있지만 마음은 미국에 있는 아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땀을 흘리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그 아들을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힘 가지고 될 수 있습니까, 소리쳐 가지고 될 수 있습니까?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랑이 필요하냐? 좋은 것 중의 중심이요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필요한 겁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중심삼은 부자관계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자녀를 위한 부모의 사랑의 인연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중심삼은 심정의 세계가 통일사상의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나 개인만 선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선한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개인만 선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들이 없다면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과 피와 땀으로써 모든 것을 씻고 닦고 치우고 살아야 합니다. 선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선한 국가가 있지 않고는 세계에서 필요한 선한 세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국가와 개인과의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 무엇을 가지고 이것을 하나로 만드느냐? 다른 것으로는 하나 만들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으로 연결시켜서 세계를 위해서 개인끼리 좋아할 수 있고 가정끼리 좋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중심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전체의 내용이 되는 것이고, 이것을 펼쳐 놓으면 전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축소하면 내 개체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상대가 없는 자리에 있을 때는 나 하나지만, 내가 세계를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종족을 위하고 가정을 위해 서 있다면 나는 세계의 중심이요, 국가의 중심이요, 종족의 중심이요, 가정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 하나의 중심은 종적인 기준에서 횡적인 기준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제1횡적 기준, 제2횡적 기준, 제3횡적 기준으로 폭이 커지는 것입니다. 복귀역사는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34-255
스스로 굴복할 수 있는 선한 터전을 닦으라
수많은 우리 선조들, 노아라든가 혹은 아브라함이 왜 책임을 다하지 못했느냐? 모두 자기만을 중심삼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자기들을 중심삼고 세계를 요리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 반대였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면 자기 나라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보다 더 수고해야 할 고비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통일교회를 믿을 때는 좋을 줄만 알았겠지만 한 고비를 더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넘어서면 골짜기, 그 골짜기를 거쳐서 다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법도입니다. 탕감을 거쳐서 우리가 머무를 최후의 정상을 향해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정상이 어디냐? 국가입니다. 국가의 기준까지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나라를 위해서는 내적인 정상을 향해 넘었지만 골짜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넘어야 됩니다. 그래서 국가를 넘어야 됩니다. 이것을 넘기 전에는 갈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골짜기에서 쓰러지거나이 길이 싫다고 불평하면 전부다 망하는 것입니다.

선한 나라를 어떻게 만드느냐? 지금까지 선생님은 이 작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 대해서도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구보끼를 내세워 가지고 간부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복귀를 위한 작전을 하게 한 사람이 바로 선생님입니다. 왜 그러냐면 일본은 해와 국가이어서 대한민국을 복귀했다는 조건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코치해야 되느냐? 본연의 아담, 하나님이 코치하여 이겼다는 기준을 세워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다 원리적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알고 세계를 위해서 선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여러 벌의 옷을 가지고 있으면 그 옷을 세계를 위해 나눠 주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또한 땅을 살 때에도 아들딸에게 상속해 주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안 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통일교회를 위해서 돈을 쓰지 않고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돈을 쓰게 되면 빛이 나는 것입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늙은 부모가 자식이 애써 만든 옷을 자식을 위해서 입었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에는 천년 만년 잊지 못할 효성이 폭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말하지 않고도 스스로 굴복할 수 있는 가치적인 선한 터전을 닦아 나갈 때, 하나님의 뜻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한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완전한 기틀이 마련되어 가지고 정상적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34-256
기 도
아버님, 동녘에 솟아오르는 해가 변함없이 광명한 빛을 발하듯 저희들은 언제 그 해와 같이 어둠의 세계를 제거하고 영광을 나타내는 자신들이 되어 빛날 수 있겠사옵니까?

아버님, 저희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다는 마음밖에 없사옵니다. 하오나 저희들이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때 이 몸 전체가 아버지 앞에 바쳐진 모습으로써 인정받을 수 있는 내용을 지닌 아들딸이 되지 못하였음을 아옵니다. 아버님께서 저희들이 그러한 아들딸로서 이 민족과 이 세계 앞에 나타나기를 6천년의 긴 세월 동안 기다리셨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 아벨을 통하여 이루시려던 당신의 뜻이 복귀의 한계점에 이르러 시작과 더불어 끝을 맺고자 했으나, 그렇게도 슬픈 내용을 지니고 수천년 역사의 고빗길을 거쳐 아직까지 그것을 해결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땅 위의 그 누가 참다운 선의 주체가 되어 세계를 위한 아벨이 되겠는가가 문제 되옵니다. 그러한 아벨이 나오기 전에는 아벨을 중심삼은 가정이 나올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가정이 없으면 종족이 나올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종족이 없으면 민족과 국가가 나올 수 없고, 또한 그러한 세계가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게되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인을 희생시키면서 세계적 메시아의 한계점까지 몰고 나오신 아버지의 노고가 얼마나 컸던가를 생각하게 될 때, 최후의 종말을 고하는 최종점에 설 수 있는 한 분이 오신다면 그 한 분은 역사의 부활이요, 역사의 출발이요, 미래에 있어서 시작이 되어야 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사실을 당신은 알고 계시오나 저희 인간들은 알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이 그러하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처참한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슬픔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인류를 위해 찾아오시는 메시아의 걸음이 이렇듯 비통하고 서글픈 역사의 그늘에 삼켜졌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나이다.

오늘의 통일교회 운명도 그와 같이 그늘에서 나서 그늘에서 살며 거기에서 싸워 나왔지만, 이러한 지난날의 모든 역사가 결코 슬픔의 역사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아무리 골짜기 그늘 아래 있는 자리라 해도, 원수의 저주와 원망 가운데서 살아온 자리라 해도, 혹은 생사의 기로에선 극한 자리라 해도 승리를 다짐하는 당신의 성원의 마음은 저희들을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날의 역사과정에서 통일의 기치 아래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그냥 흘러가 버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거기에는 아버지의 슬픔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기에 생사의 갈림길에 있어서, 혹은 교차로에 있어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죽음을 자초했던 많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당신께서 얼마나 슬퍼하셨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통일교회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소문과 새로운 파문을 던지는 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오라, 오히려 그 소문과 파문으로 말미암아 당신께서 짊어지신 십자가가 얼마나 가중되었던가를 생각하게 될 때, 당신 앞에 면목 없는 저희들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수많은 아들딸들이 이 몸을 따라 모였사옵고, 역사적인 선의 실적이 있기 때문에 하늘의 때를 맞이하였사오나, 아버님의 영광의 손길을 힘입어 승리를 다짐하고 민족적 해방의 기틀을 마련하여 하늘의 주권을 탈환하여야 할 저희들의 입장을 잊어버리고 민족의 외적 주권 조차 찾지 못한 서글픈 현실정을 바라볼 때마다 오늘 저희들이 체험하지 못한 것을 다시 느낌과 동시에 아버님의 슬픔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진정으로 깨달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저희들의 마음에 통곡과 절규와 분한 심정이 떠나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또한 아버지의 슬픈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효도와 충절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참된 인류로서의 효를 갖추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을 향하여 팔을 벌리며 손을 잡아 달라고 간구하는 저희들의 연약한 손길이 있사오니, 당신을 위하여 달려갈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당신께는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를 찾아 나오신 것이요, 내가 아니면 당신은 이 악한 세계에 발붙일 수 없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불쌍하신 아버지를 붙안고 통곡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못하여 당신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지난날을 가졌던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오늘의 통일교단을 당신께서 맡아 주시옵소서. 당신이 뜻하신 바를 저희들이 하지 못하면 당신은 기필코 내적으로라도 이뤄진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뜻은 기필코 이루어진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저희는 자랑할 것이 없사옵니다. 수고하신 당신 앞에 효의 도리를 다했다고 자처할 수 없는 자신임을 느낄 적마다. 눈물 없이는 아버지를 부를 수 없는 저희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뻔뻔한 아들, 뻔뻔한 딸의 모습인 가증스런 무리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 저희들이 당신과 함께 호흡해 보았으며, 언제 저희들이 이 삼천만 민족과 세계 인류를 붙안고 통곡해 보았습니까? 종교적인 선의 인연을 갖추어야 할 아버지의 사랑이 저희에게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한 때마다, 그렇지 못한 자신으로서 당신을 그리워하고 바라보았던 경거망동한 불쌍한 자신이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을 위하고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갖추어 당신 앞에 온전히 바쳐질 수 있는, 가치적인 인격을 갖춘 정의의 존재, 당신이 필요로 하는 그러한 아들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선한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였사옵니다. 좋으면 얼마나 좋아야 되겠습니까? 아버님같이 좋아야 되겠사옵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세계를 품고 세계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아버님을 모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 시간 저희들이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속에 확실히 다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는 민족을 연결시킬 수 있는 민족애,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세계애가 연결되어 있사오니, 종족 씨족은 물론 형제의 인연에도 사랑의 심정이 깃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3이스라엘의 판도를 넓혀야 할 시대적 사명 앞에 저희들은 충성을 다해야 되겠사옵고 제물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좀더 희생해야 되겠사옵니다. 좀더 고통을 받아야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길에 있어서 저희들이 자세를 갖추어 아버지께서 부르신 아들딸로서의 위신과 체면을 상실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 일본에 와 있는 세계의 당신의 아들딸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친히 지켜 주시옵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을, 앞으로 올 당신의 수많은 자녀들을 하나의 통일된 심정으로 모으시어서, 당신의 영광과 당신의 승리와 당신의 높임을 받을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