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51 to 34-212: 우리의 갈 길

우리의 갈 길
1970.09.06 (일), 한국 전본부교회

34-151
우리의 갈 길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인간이 이 땅 위에 와서 제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아버지와 합동하여 그 결과를 갖지 못할 때에는, 일생의 수고도 헛된 것이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또한 인간이 제아무리 이 땅 위에서 그 무엇을 가진다 하더라도 당신의 뜻과 더불어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쌍한 것이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으로서의 가치도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있게 될 때에 드러나는 것을 아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에 진정 저희의 마음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뜻을 위하고 당신의 뜻과 더불어 싸우는 생애의 노정으로서만 남아지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아버지여, 당신께서 1970년대를 저희와 더불어 지키시옵소서. 1970년대를 장식할 수 있는 이 1970년도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 10년 기간, 당신이 이 나라 이 민족과 세계 전체를 주관하시어서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시려는 당신의 뜻과 부합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한국의 실정을 살피시옵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이 아무리 어려운 환경을 거쳐 나가더라도, 저희들은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와 하나되고,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이 나라 이 민족을 끌고 나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통일교단이 되어야 될 것을 확실히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여, 여기에 모인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격려하여 주시 옵소서 .

이들은 마음으로 온전히 이 나라 이 민족을 당신의 뜻과 더불어 이끌어 나가고, 당신의 뜻과 더불어 위하여 나갈 줄 아는 자신들이 되겠다고 스스로 결의한 무리들이오니, 이들의 생애를 지켜 주시옵고, 이들의 생활을 살펴 주시옵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을 통하여 최후의 목적인 세계복귀라는 엄청난 사명을 세계에 연결시켜 나가는 데 있어서, 악의 조건이 저희의 가는 길을 막고 있다면 이것을 제거시켜 버리고, 사탄이 가로막고 있다면 이것을 굴복시켜서, 아버지의 본연의 내용만이 남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니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새달을 맞이하여 첫번째 맞는 안식일의 이 아침에 당신이 친히 여기에 현현하시옵소서. 남한 각지에 널려서 이곳을 흠모하면서 마음을 다하고 머리를 조아려 아버지 앞에 축수를 드리는 수많은 자녀들이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 곳곳마다 당신의 은사를 가하시어서 권능의 부활권을 이루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원하옵니다.

더우기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불쌍히 보시옵소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외로운 길에서, 내적 슬픔과 외적 고통을 당하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지키기 위하여 결심한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 어려운 환경을 밀고 나갈 때마다, 아버지여, 당신께서 힘이 되어 주시옵고, 아버지여, 힘을 주시옵소서. 그들로 하여금 현재 자기들이 처하여 있는 그 나라를 복귀시키게 하여 주옵고, 그 자리를 지키게 하여서 아버지의 인식과 아버지의 기억에 남는 터전을 마련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바라던 9월이 왔습니다. 일본에서 와클(WACL)대회를 개최할 날이 멀지 않았사옵나이다. 아버님이여, 그 자리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같이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금후의 아시아의 모든 운명을 아버지를 중심삼고 조정해야 할 엄청난 사명을 놓고 저희들이 정성들여 나왔사오니, 일본에 있는 외로운 식구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많은 무리가 아닌 소수의 무리로되 그 무리를 통하여 일본에 아시아의 한 교두보를 남길 수 있게끔 당신이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그 민족을 통하여 새로운 승리의 깃발을 든 아버지의 아들딸을 내시옵소서. 그 전체 국민 앞에 역사적인 새로운 봉화를 들고 나선 지금까지의 그들의 움직임이 이 한때를 중심삼아 총결산을 짓고, 총수확을 거두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아버지여, 당신께서 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눈물 어린 투쟁의 노정 가운데서,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 외로운 자리에서 아버지만을 붙안고 싸워 나오던 그들을 동정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몰려들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 자리에 모여서 아버지의 뜻에 협조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일본 국민으로 하여금 새로운 각성을 하게 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나아 가게 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특별한 기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세계 곳곳에서 모여드는 당신의 자녀들을 지키시옵소서. 그곳에 모이는 당신의 아들딸로 말미암아 세계의 사람들이 감동 감화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충성을 다하는 이 한 기간이 되어서 당신이 금후에 세계적으로 계획하는 전체의 뜻을 위한 터전을 마련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대회를 아시아에서의 승공의 한 교두보로 삼으시옵소서. 아시아를 수호할 수 있는 하나의 터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공산권에 대결하여 그 사망의 물결 앞에 휩쓸리는 저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아버지여, 당신의 능력으로 이 모든 것을 가려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승리의 권한을 세워 놓고 당신이 분부하시는 뜻과 더불어 그 승리의 판도를 온 아시아에 연결시켜, 최후의 결판을 지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연약한 무리들이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 호소하던 날들을 거쳐 금년을 다 보낸 실정에 있사오니, 그들이 노력한 수고로 말미암아 70년대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하나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이번 와클대회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10월달에 저희들이 계획한 700쌍 축복의 자리를 당신이 마련하시옵소서. 그 자리에 당신의 영광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모임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타락의 인연을 따라서 움직이고, 타락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결과를 맺는 모임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여기에 말씀을 듣고, 여기에 관심을 두고, 여기에 소문을 들은 사람들, 혹은 세계인들이 아버지의 새로운 역사를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와 같이 움직이는 것은 이것으로 끝나지 말고 승리의 천국, 승리의 한 나라, 승리의 한 백성을 세우기 위한, 아버지의 나라를 중심삼고 나아 가는 데 있어서의 하나의 승리적인 터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도 당신이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번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무엇을 배워 갈 것이냐 할 때, 아버지를 중심삼은 심정적 인연을 공고화시켜 가지고 돌아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 일체를 당신의 장중에 맡기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4-154
말 씀
우리 통일교인들이 가는 길은 개인적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또한 복귀섭리도 하나님 한 분이 경륜하시지만 그 뜻은 역사적인 뜻인 것입니다.

역사과정에는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으며 미래가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는 길은 과거에 있어야 할 길, 현재에 있어야 할 길, 미래에 있어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길은 과거와 다른 것이 아니요, 현재와 다른 것이 아니요, 미래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과거도 그 길이요, 현재도 그 길이요, 미래도 그 길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거쳐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가는 길이 과연 과거, 현재,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길이냐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 한 생명으로 태어난 그 시간부터 살다가 저 영계까지 가는 노정이 역사를 대신하고, 시대를 대신하고,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노정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고 있습니다.

34-155
존재의 기원으로 본 인간의 사명
그러므로 역사과중에 있는 나 자신, 그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 개체가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하나의 개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우리 인간은 자의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또, 부모면 부모 자신들이 이러이러한 아들딸을 낳겠다는 계획 아래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부모의 요구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의 섭리를 중심삼고 우리가 존재하게 된 근원을 파고들어가 보면, 우리 인간은 그 섭리의 기원과 일치되고, 그 기원을 중심삼고 움직여 나가는 역사와 관계를 맺는 중대한 책임을 지기 위한 하나의 생명체로 이 땅위에 보내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과 하나님의 역사적인 경륜과 관계를 맺고 태어났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인간은 현실에 처해 있는 자체로 머물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20대 청년이면 20대 청년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단정할 수 있고, 이런 섭리를 대신할 수 있는 실체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느껴야만 됩니다.

그런 나, 다시 말하면, 역사를 자각하고 천륜을 자각한 나, 하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을 알고 역사를 아는 나, 일 뿐만 아니라 하늘을 책임 지고 역사를 책임질 수 있는 나를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바랐던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왔다 갔던 모든 사람이 바라고 찾아온 길은, 역사를 대신하고, 하늘의 경륜을 대신할 수 있는 나를 찾아 세워 가지고 그 역사 앞에 사명을 다 하고, 섭리 앞에 사명을 다 했다고 하는 승리적인 모습을 추구해 나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한 개체, 즉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박 아무개면 박 아무개를 중심삼고 볼 때, 그 개체는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 한 개체를 끌어내면 거기에는 그의 선조가 달려나올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혈통적 인연을 갖고 있는 이 지상의 수많은 종족이 달려나올 것입니다. 이렇게 전부 끌어내면 그 종족들의 조상이 달려나오고 더 촉구하게 되면 하나의 존재가 나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단군의 후손이라면 단군 할아버지를 따라 전부 달려 나올 것입니다. 좀더 올라가면 세계가 달려나올 수 있으며, 좀더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이 달려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 하나를 중심 삼고 종족이 연결되어 있고, 민족이 연결되어 있고, 세계 인류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류를 창조하신, 모든 존재의 기원이 되시는 하나님까지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 위에 현현해 계시고, 세계 인류가 현현해 있고, 과거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현현해 있고, 우리의 조상들이 현현해 있고, 우리 민족이 현현해 있는 그 가운데 어떤 특정한 종족 중에서 어떤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이러한 나는 어떠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느냐? 나는 역사 후에 태어났지만 역사 이전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타락한 인류는 이 역사와 시대를 넘어가야 할 운명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운명을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란 끝날에 가까운 사람이고, 그런 사람일수록 책임이 중하다는 것입니다.

34-156
최후의 승리를 거두어야 할 나의 위치
그러면 최후의 승리를 결정할 수 있는 그런 무리, 그런 개인은 어떤 사람이냐? 어떤 특정한 민족이 있어야겠지만, 특정한 민족이 있기 전에 특정한 종족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특정한 종족이 있기 전에 특정한 가정이 있어야 하고, 특정한 가정이 있기 전에 특정한 개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개인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에 달려 있는 ‘나’가 아니라 세계를 품고 갈 수 있는 ‘나’라는 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섭리를 통해서 보나 역사과정을 통해서 볼 때, 섭리역사의 최후의 목적을 귀결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도 아니요, 과거 사람도 아니요, 현재 우리들입니다. 끝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한 사람을 통해서 넘어갈 것입니다. 인간이 가야 할 하나의 문을 연다고 하게 될 때, 그 문은 여러 사람이 여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여는 것입니다. 어떤 종족이면 종족을 대표한 사람이 여는 것이요, 민족을 대표한 사람, 국가를 대표한 사람, 세계를 대표한 사람, 나아가서 하늘땅을 대표한 사람이 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늘땅을 대표하든가, 세계를 대표하든가, 국가를 대표하든가, 민족을 대표하든가, 종족을 대표하든가, 가정을 대표하든가, 개인을 대표하든가간에 둘로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의 기점상에 서서 세계를 대표하는 사람은 국가를 대표할 수 있고,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은 민족을 대표할 수 있고, 민족을 대표하는 사람은 종족을 대표할 수 있고, 종족을 대표하는 사람은 가정을 대표할 수 있고, 가정을 대표하는 사람은 개인을 대표할 수 있어야 됩니다. 거꾸로 개인을 대표하는 사람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대표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렇듯 내려가도 그 사람이요, 올라가도 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개인의 입장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자각된 입장에서, 내가 이 시대에 섰다 하는 그 자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인류를 대신하고, 모든 환경을 대신하고, 천주를 대신한 자리여서 지극히 평화롭고 행복하고 소망스러운 자리 같지만 오히려 지극히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현재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내 마음으로 그런 자유의 환경을 취할 수 있는 세상이 못 되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보면 아직 뜻이 이루어질수 있는 세상이 못 되었기 때문이요, 인류가 바랄 수 있는 소망의 터전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연적 환경 그대로 계승되어 이뤄질 수 있는 터전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서 있는 나 자신이 가정을 거느리고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거느리고 나가야 할 책임을 진 입장에 서게 될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나 자신이요, 시대를 대신할수 있는 나 자신이요, 미래의 기원을 마련하여야 할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생애를 거쳐 나가는 것은 비록 한 개인의 생애에 지나지 않지만, 그 사람의 감각이라든가, 그 사람이 느끼는 모든 감정, 또는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생활 환경의 모든 인연이라는 것은 개인에만 한한 것이 아니라, 전체의 것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4-158
섭리의 공식과 일체가 되어야
그러면 그 자리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공식이 되어야 합니다. 공식적인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식이라는 것은 갑과 을이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수학 문제를 풀 때, 공식을 통해서 풉니다. 과거도 그 공식을 통해서 풀었고, 천년이 지난 후에도 그 공식을 통해서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갔다’고 해서 그것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공식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식을 위주로 해서 결과된 입장에서만 이 그 자체의 가치는 드러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역사시대에 인류가 찾아 나오는 하나의 공식,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공식, 천륜을 찾아 나오는 심정이라든가 전체의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첫 기원이 될 수 있는, 출발의 요인이 될 수 있는 그 하나의 공식이 대관절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들은 뜻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뜻이라는 것은 상대적입니다. 내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뜻이 있는 것입니다. 뜻이라는 것은 목적을 추구하는 의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에 문제는 ‘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와 일체가 되고, 내가 그 공식에 화합하여 내가 그 공식을 대신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공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개개인이 그러한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공식적인 존재, 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공식적인 존재,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공식적인 존재, 그 존재는 3시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공식은 하나입니다. 그 하나는 누구냐?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런 입장에 설 때, ‘역사는 나와 더불어 일치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왜? 공식이니까. 그리고 ‘이 시대도 나와 더불어 일치하기 위한 것이다. 미래도 나를 떠나서는 출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왜? 공식이니까.

그러면 공식이 될 수 있는 자체가 무엇이냐? 문자로 표시될 수 있는 수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수리적인 그 내용을 초월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역사적인 공식적 존재, 시대적인 공식적 존재, 미래적인 공식적 존재는 누구일 것인가? 모든 것이 거기서부터 시작되고, 그것을 통하여 거쳐 나가고, 다 그것을 닮아 나가기 때문에 이것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34-159
사랑에 뿌리를 둔 공식적 중심존재
오늘날 어느 종교든지 반드시 메시아 사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주, 혹은 구세주라고 부르는 중심존재가 있어야 됩니다. 그 중심존재가 어떤 특정한 종교를 중심삼은 존재라면 그는 공식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세기면 세기, 시대면 시대에 한한 대표자라면 공식적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혹은 금후의 어떤 역사과정에 있어서, 아시아면 아시아의 역사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그런 대표자도 공식적인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이 공식은 태초로부터 영원무궁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만약에 이 공식이 변한다면 이 공식을 통하여서 이루어지는 세계도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그 누구가 변형시킬 수 있는, 인간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면 미래의 하나의 세계는 설정할 수 없습니다. 이 공식은 우리 개인이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도 이것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의 이 세계도 움직일 수 없으며, 미래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심을 통하여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는 이 중심존재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을 자기들의 생활, 자기들의 목적 중심으로 바라고 그것을 드러내어 가지고 주장하는 것이 오늘날의 종교입니다. 종교 중에서도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식적 중심 그 자체를 두고 나오는데 그 자체는 어디에 뿌리를 두었느냐? 사랑에다 뿌리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여러분이 말하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다 뿌리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너와 나와의 사랑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에 인연을 두었기 때문에 그 인연은 역사와 더불어 사랑의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바탕 위에 인연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은 나 혼자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대신한 것이요, 시대와 더불어 관계를 맺은 사랑인 것입니다. 미래에도 영원히 계속되는 그 출발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길은 어떤 길이냐? 공식적인 노정을 통하여 역사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 시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미래적인 사랑의 출발을 대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서서 역사시대를 대신하여 천륜 앞에 부끄럽지 않은 공식적인 자, 사랑을 중심삼고 볼때도 공식적인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공식은 중심이라고 했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은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 앞에 결과를 당당히 들고 나와서 시대를 논의할 수 있는 상대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이것은 절대자와 부자의 인연을 가진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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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찾아 나가는 최고의 목적
오늘 인간으로서 찾아 나가는 최고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지고 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목적입니다. 아무리 이 세계를 품었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 심정적 안식의 터전을 갖지 못한 사람은 불행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대한민국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이 세계를 독립시키는 날, 세계의 모든 어려움을 자기가 극복하고 자기의 능력으로 세계를 장중에 집어넣고, 천륜이 바라는 대로 승리하여 세계적인 독립을 이루는 그런 기쁜 날을 맞이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기쁜 날 그 시간에 자기가 이 땅 위에 둘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다면, 즉 세계를 찾아서 기쁠 수 있는 순간에 자기 개체가 요구하는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리는 그런 순간에 맞부딪쳤다고 할 때, 그는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그 자리를 생각해 볼 때에, ‘이 세계를 내 마음대로 주관하기를 바랐으니, 생애를 걸고 나온 그 목적의 순간이 왔으니 나에게 이 순간만이 필요하고 사랑하는 상대는 필요없다’고 하겠습니까? ‘이것만이 내게 필요하다’고 하겠습니까?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이 세계를 찾은 이날을 희생시켜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상대적인 세계가 문제가 아니라 내재적인 심정의 터전이 될 수 있는 사랑이 문제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자랑할 수 있는 금은보화를 가졌고, 피땀 흘려 많은 재산을 모았는데 그 부모가 돌아가게 되었다 할 때, 그가 부모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강조하고 또 그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그 부모가 살 길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는 자기가 귀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재산을 투입시킬 것입니다. 자기가 귀하다고 하는 외적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도 자식이 그런 운명에 처하게 된다면 그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외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생명까지 투입시켜서라도 살리고 싶을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를 중심한 공식적인 기원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인연이 부자의 인연이라 했는데, 이 부자의 인연의 자리는 둘도 없는 자리입니다. 여기에는 흥정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조건을 세워서 따질 수 있는 내용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나와 너라는 상대적 간격을 초월하고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랑의 자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자리에서 역사시대를 통해서 찾아오시던 하나님과 같이 가야 합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는 우리는 부자의 인연을 그 가는 길 가운데에서 발견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복귀섭리를 해 나온 가운데 반영된 그 심정적 세계를 내가 탐색해야 됩니다. 아담 가정으로부터 노아·아브라함·모세 ·예수 시대를 거쳐왔고 예수 이후 지금까지 2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거치면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희생되어 갔습니다. 그 과중을 더듬어 온 하나님의 피어린 심정의 세계를 내가 몰라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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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위대한 자각
그러면 이 자리에서 염려할 것이 무엇이냐? 이것을 지금까지 몰랐던 것입니다. 아담 가정은 아담 가정으로서 갈 길을 전부 알았느냐? 몰랐던 것입니다. 노아도 120년간 방주를 지으면서 수난의 역경을 타개해 나가는 생활의 일면은 남겼지만, 그 과정에서 어떠한 섭리적 반응을 일으키고 역사적 신념의 인연을 거쳐야 하는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러했고, 모세도 그러했습니다.

그렇지만 온 역사시대에 하나님의 심정적 그 배후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이 어느 한때에 밝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역사적 심정으로만 남아지게 할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감정으로 표현해 가지고 그 역사적 슬픔을 오늘의 현시점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지난날의 슬픔이 아니라 오늘의 슬픔으로써 하나님을 붙들고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그런 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아들이 땅 위에 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역사와 시대에 연결되고, 시대와 미래에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심정적 총합체가 와야 합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과거 현재 미래에 통할 수 있는 하나의 결합체가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합시켜야 할 사람은 여러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짊어졌던 사람이 누구였느냐?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암흑과 같은 이 세상, 무지한 이 천지 가운데서 방향을 잡지 못하는 수많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했던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천국이 왔다’가 아닙니다.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자기로 말미암아. 그러면 천국은 무엇과 더불어 오느냐? 자기와 더불어 온다는 것입니다. 자기와 더불어 오되 자기의 무엇과 더불어 오느냐 하면 심정과 더불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심정의 인연은 역사에 반영시켜야 하고, 시대에 반영시켜야 하고, 미래에 반영시켜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온 역사시대를 대신한 중심적 입장에서 심정적 반영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 자아의 가치를 갖고 나타났던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한 자기 자체를 존중시하고 자기 자체의 가치를 확실히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랑은 자기밖에 할 자가 없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자각을 하여 발표한 것이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는 말입니다. 독생자의 자격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독쟁자라는 말은 무엇을 중심삼고 한 말이냐 하면,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한 말입니다.

그러면 독생자뿐이겠는가! 독생녀는 누구냐? 없었습니다. 독생녀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의 서글픈 길이 남아진 것입니다. 독생자가 독생녀를 가려 가기 위해서는 독생녀로서의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역사시대의 수많은 종교는 하나의 남자를 세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여자들이 책임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 하나의 남자를 세울 수 있는 역사의 종말은 무얼 두고 하는 말이냐? 세상이 허무해지고 세상이 심판 받는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을 수 있는 하나의 아들이 태어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심정을 중심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절대적인 입장에서 역사의 부활을 대신할 수 있는 자각된 아들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자각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나만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까지 어느누구도 받지 못한 사랑이다. 나로 말미암아 비로소 시작된 사랑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생자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독생자의 심정적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 것인가? 자기의 외로움 보다도 하나님의 외로운 역사를 엮어 나왔던 하나님의 심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심정을 통해서 일생을 바쳤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를 남기기 위해서 그때까지 수고한 하나님의 심정이 거기에 반영되었던 것이고, 또 그 심정을 통해서 그때의 현실을 바라봤던 것입니다. 미래의 천국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현실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입니다.

34-164
예수는 역사의 부활체요 현실의 통일체요 미래의 기원
이렇듯 자각된 그 자체는 역사의 부활체요, 현실의 통일체요, 미래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자체입니다. 여기서 공식적인 자아를 이 우주상에 드러낼 수 있는 입장에 선 분이 메시아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가 동으로 가면 하나님도 따라가는 것이요, 역사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지난날 역사를 거쳐 저나라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은 물론 성인 군자들까지도 그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수많은 무리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고, 앞으로 올 수많은 무리도 그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따라가야 하느냐? 예수의 마음의 생활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마음의 생활은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되어 있는 내용,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관계되어 있는 그 내용이 세상과 미래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 앞에 공식적 자아를 결정지을 수 있었던 단 한 분이 아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가 바라보던 역사는 역사시대에 왔다 갔던 성인현철들이 고대하던 것이었으나, 그가 바라보던 시대는 그때에 로마 제국내의 피압박 민족들이 도탄 중에서 해방을 바라던 때였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타락한 인류의 사망의 교차로를 그때까지 세계 전체와 더불어 종결짓지 못한 현실에서 새로운 차원의 교차점을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동으로 가라’ 하면 동으로 가야 되고 ‘서로 가라’ 하면 서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입니다. 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세상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그렇고, 영계도 그렇고, 미래도 그렇습니다. 그가 동하면 같이 동해야 되고 그가 정하면 같이 정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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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통일은 공식적 국가를 통해서 가능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여러분들에게 통일교회가 뭘 하는 곳이냐 하고 물어 보면 ‘뭘 하긴 뭘 해, 합동결혼식 하는 곳이지’라고 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합동결혼식은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이냐? 뭐 하는 것입니까? ‘뭐 하긴 뭐 해. 남자 여자 만나는 것이지’ 그렇습니까? 합동결혼식은 무엇 때문에 하느냐? 예수가 남성을 대신한 하나의 공식적인 존재라면, 여성을 대신한 공식적인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남성의 공식적 존재 앞에 여성의 공식적 존재가 있었더라면 가정의 공식적 기원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 가정적 공식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가정이 떠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가정적 공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종족적 공식이 없습니다. 종족적 공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민족적 공식이 없는 것입니다. 민족적 공식이 없고, 국가적 공식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지상의 나라는 그런 국가를 찾아 우왕좌왕하는 입장입니다. 이 나라들이 어디로 갈 것이며 그 나라로 구성된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 미래의 세계는 암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는 역사를 대신해서 이래야 되고, 시대를 대신해서 이래야 되고, 미래를 대신해서 이래야 된다’고 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가 등장하는 날에는 , 세계는 그 국가로 말미암아, 그 공식적인 국가로 말미암아 통일되고 연합될 것입니다.

그 국가에는 무엇이 있느냐? 그 국가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와 더불어 수고해 나오신 하나님과 더불어 있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있는 수많은 영인들도 그 국가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현세의 사람도 그 국가의 백성이 되고, 미래의 사람도 그 국가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백성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나라의 전통을 이어받아야 됩니다. 그 전통은 전후 좌우 상하의 관계에 있어서 상충된 것이 아닙니다. 일치된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여기서 제일 문제 되는 것이 무엇이냐? 공식적 국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공식적 국가가 나오기 위해서는 공식적 민족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공식적 민족이 나오기 위해서는 공식적 종족이 없어서는 안 되고, 공식적 종족이 나오기 위해서는 공식적 가정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공식적 가정이 나오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개인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문제는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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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의 의의와 기준
남자와 여자라는 그 자신들이 공식적인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라고 하는 개체에게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공식이라는 것은 엄한 것이고 무자비한 것입니다. 여기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일체 허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공식이란 말은 무엇을 뜻하느냐? 공식이란 공적인 방법이며, 공이라는 것은 대중을 말하고, 방법이라는 것은 길을 말합니다. 방향을 말한 거예요. 아무리 작은 기준이라도 이것을 중심삼고 보면, 어느 사회에 가든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공식이란 그런 것입니다. 하나의 단위가 전체의 부서를 통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게 되면 그것이 공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식은 어디를 가도 상충이 없습니다. 어디를 가도 순리적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 공식을 통하여 이루어진 세계는 어디를 가도 그것이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반역하는 존재란 있을 수 없습니다. 공식에 어긋나는 존재는 공식대열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공식대 열에서 제거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식적인 개인이 있다 할진대, 그가 영계의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이 사는 세계의 그 어디를 가더라도 그를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있는 방 안에 들어가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 지상의 어디를 가도 막을 수 없습니다. 또한 미래의 어떤 곳을 가더라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보장받을 수 있는 방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세계는 통합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것이요, 이것으로 말미암지 않은 존재는 존속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 공식의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말미암지 않고는 존속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그 기준은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인간의 사랑, 즉 여러분이 말하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야말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식입니다. 절대적인 공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못 가는 데 없고, 상충되는 일이 없고, 그 공식으로 말미암아서는 잘못되는 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공식의 반응적인 실체로 태어났고 실체를 중심한 인연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그 사랑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형제의 사랑, 종족의 사랑, 민족의 사랑, 국가의 사랑, 세계의 사랑, 이렇게 그 범위가 넓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인연을 떠나서는 살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공식을 떠나서는 자기의 가치를 발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사랑을 좋아하느냐? 자기의 무한한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남자나 여자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일하는 데도 사랑으로 말미암아 일하고, 먹는 데도 사랑으로 말미암아 먹어야 합니다. 자는 데도 사랑으로 말미암아 자야 합니다. 만지고 느끼는 것, 즉 인간의 오관을 통하여 들어오는 모든 감각과 직감까지도 전부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그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것이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곳이 있다면 모두 그곳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보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애는 물론 이요, 국가애, 민족애, 종족애, 개인애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방식이 입체적이고 횡적으로 넓어질 뿐 하나의 기원을 통하여서는 여기에 가할 수도 감할 수도 없는 심정적 교류를 통한 사랑의 반응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이것이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희망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이 고깃덩어리(육신)를 가지고 이런 공식적 사랑을 해봤느냐, 여기 젊은 사람들, 굴러다니는 걸레 같은 사랑을 가지고 이런 사랑을 생각해 보았느냐는 겁니다.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걸레만 못한 사랑을 해서 되겠어요? 천이라면 걸레도 천이고, 누더기도 천입니다. 그러나 천 중에서도 어떤 천이냐 하는 것입니다. 천의 가치는 그 본질, 즉 출발의 기원을 중심삼아 가지고 달라집니다.

34-168
은혜를 받으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
지금까지 여러분이 이상상대가 어떻니 하고 말합니다. 이상상대라는 말은 참 좋지요. 아무리 상대되는 존재가 잘났더라도 여러분이 그 바탕을 지니지 못하면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잘나고 못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느냐? 자기 자신이 잘나지 않고는 그 자체를 모르는 것입니다.

미급한 자리에 서서 좋다 하는 것이 정말 좋은 것입니까? 유치원 아이들이 ‘우리 선생님 제일 좋다’ 할 때, 그것이 제일입니까? 국민학교 아이들도 ‘우리 선생님 제일이다’ 합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제일입니까? 제일이 될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러면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자기가 문제입니다. 자기가 좋으니 선생님이 제일 좋게 보이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보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체험이 없을 것입니다. 현재의 통일교회 패들은 안 됩니다. 은혜를 받기 전에는 세상이 아름다운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 나면 세상이 전부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은 아름다운데 지금 여러분들은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람들이 전부 사탄 같지 않고 걸어다녀도 구름 위를 부웅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은혜의 경지에 들어가면 그런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호흡을 해도 혼자 속으로 하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여러분, 숨을 쭉 들이쉬면 세상것을 전부다 집어넣고 싶지 않아요? 내가 숨을 쉰다 하게 되면 모든 것이 따라들어가려고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전부 빨려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도 그럴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숨을 들이쉰다면 천지가 없어지겠어요, 남아지겠어요?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숨을 들이쉬는 바람에 아들딸이 전부다 나가떨어져 급살맞는다면 갑자기 내쉬겠어요, 천천히 내쉬겠어요? 이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숨을 쉴 것 같아요, 안쉴 것 같아요? 쉽니다. 그러면 어떻게 쉴까 생각해 봤어요? 홍어나 가오리 같은 넓적한 고기는 어떻게 숨을 쉬겠어요? 이렇게 넓적한 몸뚱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쉴까요, 꼬리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쉴까요?

하나님이 숨을 쉴 때는 어떻게 할까? 제일 고충스럽지 않게 하나님이 숨쉬는 방법은 무엇이냐? 동그란 구멍에다 내쉬고 들이쉬고 할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숨을 쉬려면 구멍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별다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주는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작용이 전부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물질의 기원은 파동설입니다. 입자를 지닌 파동, 파동입니다. 파동이 뭐냐? 이렇게 일정한 사이를 두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 파동이예요? 이 파동은 이것이 아닙니다. (칠판에 그으심) 원형입니다. 여러분이 잴 수 없는 먼 거리를 향해서 돌아갑니다. 구형운동을 해야만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원형을 닮는 것입니다. 납작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납작한 것이 필요할 때가 많지요? 둥그런 것보다 사용할 때가 많잖아요. 이게 다 네모졌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전부다 둥글둥글 합니다. 이 코가 뾰족하다고 하지만 코끝을 보면 동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전부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면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그 세계는 어떨 것이냐? 그 세계에서의 감각은 초감각적이어야 됩니다. 감각 중의 최고의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감각이어야 됩니다. 그러면 최고의 파장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어떤 것이냐? 돈벌어 가지고 기뻐하고 춤추는 자리예요? 술 한잔 먹고 기분 좋다고 춤추는 자리입니까? 아닙니다. 그 감각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그 이상의 파장이 없습니다.

34-170
역사상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예수
그러면 천지가 생겨난 후, 타락한 역사지만 이 역사시대에 가장 충격적인 큰 파장을 일으키고 간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게 되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했는데, 이것을 몇째 계명이라 했습니까? 첫째 계명이라 했습니다. 다음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사랑의 정의를 두고 볼 때, 그 사랑의 출발과 끝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어떤 것이냐?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돌아와 머물 수 있는 그 끝이 어디입니까? 끝, 물론 아들이 끝이 되는 것입니다. 그 아들은 곧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 아들을 중심삼고는 가정이 끝입니다. 이 세계의 끝은 뭐냐 하면 사탄주의입니다, 사탄주의. 그러므로 사탄의 뒷면이 하나님의 사랑이 돌아갈 수 있는, 깊다면 제일 깊은 골짜기요, 높다면 제일 높은 꼭대기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을 중심삼고 위대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큰 파문을 던진 것입니다. 몇 사람에게 던진 것이 수천년 역사를 지내 오면서 이 파문권내에 오늘의 민주세계가 창건된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면 파문을 던졌는데 어떤 파문을 던진 것이냐? 신랑과 신부라는 파문밖에 못 던졌습니다. 신랑 신부 되겠다고 하는 파문은 남겨 놓았지만, 실제로 잔치하면서 춤추는 파문은 못 남겼습니다. 그것을 남겨 놓았습니까? 「못 남겼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고 했는데, 그 할 말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나쁜 얘기 아니면 좋은 얘기,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감당하지 못할 그런 놀음이 죽지 않으면 살게 되는 것이요, 나쁘지 않으면 좋은 일인데, 그것이 무엇이냐?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나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죽어도 급살 맞게 죽일 수 있고, 또 그 정도로 좋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시시하게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겠는가? 세상의 나라님도 다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백성들도 다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아들 딸도 다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아들딸이 있기 전에 먼저 상대가 있어야 되지요. 사랑의 출발이 아들딸부터 시작해요? 그것은 종적입니다. 횡적 기준이 먼저 나오지 않고는 종적 기준이 연결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얘기가 무슨 얘기입니까? 할 말이 많지만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예기입니까, 생각해 보았어요? ‘뭐 하나님에 대한 얘기이겠지’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여러분들은 무슨 얘기일 것 같아요? 그것은 사랑 얘기입니다. 그러면 사랑이 어떻다는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랑이 이러이러하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이 가로 막고 있고 사탄이 가로막고 있다’ 하는 얘기일 것입니다.

34-171
통일교회의 오늘이 있기까지의 수고를 알라
오늘 통일교회 여러분들을 데려다 이만한 자리에 앉혀 놓고, 때가 되면 밥을 먹이고 편안히 잠잘 수 있도록 한 것은 누가 만들어 주었습니까? 여러분이 만들었어요?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통일교회 역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뒤넘이친 것입니다.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저울대에 저울추가 있습니다. 그 추를 저울대에 올려 놓으면 쭉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이것이 조금만 기준을 넘어서면 쓰러집니다. 꼭대기인 90도까지는 가는데 89. 99도까지 가서 티끌만한 오차가 있어도 이쪽으로 자빠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앉아 가지고 이렇게 남아 있게 안되어 있습니다. 그 원리는 89.9999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는 둘도 아니요, 하나도 아닙니다.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그에 해당한 전부를 올려놓기 전에는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넘어가지 않고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집에서 여러분에게 어디에 가느냐고 물을 때, ‘통일교회 700쌍 축복받으러 갑니다.’ 하면 여러분의 엄마 아빠가 목을 매어 죽겠다고 그랬어요?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우리 딸을 내놔라! 통일교회 문 아무개가 남의 딸 도둑질해다가 뭐하는 놀음이야’ 하면서 난리친 적이 있지요? 「아니요」 그런 것 구경했어요? 「못 했습니다」 나는 그런 구경 많이 했습니다. (웃음)

‘우리 아버지 내놔라! 내 남편 내놔라! 내 아들 내놔라! 내 딸 내놔라!’ 하는데, 선생님은 그들을 내쫓고 문 잠그고 결혼식을 했습니다. 그 결혼식이 제일 멋진 결혼식이었습니다. 그런 소식 들어 보았어요? 「예」 그러면 지금 여러분들 때가 좋아요, 그때가 좋아요? 「그때가 좋습니다」 그러면 그때가 왜 좋아요? 두 세계의 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맛을 모릅니다. 그것은 누구 때문에? 두 세계 맛을 봤어요, 맛을 보지 않았어요? 짠맛, 단맛, 신맛, 쓴맛, 이런 맛을 모르는 혀는 죽은 혀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짠맛도 보고 ‘짠맛이 이렇구나’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90도 기준이 될 수 있는 짠맛을 보고 ‘이것이 표준이다. 조금더 들어가면 쓰다. 여기까지는 짠맛이다’라고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처녀 총각들한테 가서 어떻게 해 가지고 박수치게 되면 눈이 번쩍 떠져요, 안 떠져요? 왜 번쩍 떠집니까? 아마 여기 쌀밥에 고기까지 실컷 먹고 배가 부른데 누가 보리떡 준다고 하게 되면 눈을 안 뜰 것입니다. 나누어 주는 줄 알면서도 눈을 안 뜬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밥상이 들어가게 되면 눈을 안 뜰 수가 있어요? 나는 눈 안 뜰 자신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사람입니다.

34-172
마음과 몸을 묶는 끈
그래서 문제가 무엇이라구요? 사랑이 문제입니다. 성경 말씀을 다 추려 보면 그것입니다. 거기에는 몇백 명이 들어 있고 오만가지 내용이 들어 있지만, 짝지어 딱 들면 들립니까, 안 들립니까? 「들립니다」 그러면 이것을 매야지요, 두 가닥이지요? 요렇게 얽어매여 있고, 이 매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매는 것이 이렇게(칠판에 판서하시고 설명하심) 됩니다. 물론 이렇게 나오지만, 이 꼭대기와 이 꼭대기가 같은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매는 데 있어서 그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 있겠죠? 이 가운데는 매여집니까, 안 매여집니까? 안 매여지니 하나님이 거기에 들어가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몸하고 마음이 매어졌어요, 안 매어졌어요? 구름같이 붕붕 떠 있습니까? 어딘가에 접선이 되어 있겠지요? 「예」 그러면 어떻게 접선이 되어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이것이 어떻게든지 붙어 있을 것 아닙니까? 몸뚱이는 세상에 달려 있고 마음은 하늘에 달려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같이 붙여서 끄나풀을 세계화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모든 것이 다 달려 있습니다. 세계에는 모든 것이 다 달려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예」 어떻게 달리느냐? 이 식입니다. (판서하심) 공식이 있을 거 아니예요? 여기에는 만물세계가, 여기때는 영계가 연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무엇으로 매어 놓아야 되겠습니까? 붙잡아 매도 귀찮다고 하지 않고 좋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매어야 좋겠어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본질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동그라미 속에 있다는 거예요.

사랑은 뼛골 속에 들어가도 가만히 있지 않고 뺑뺑 돌아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정신이 아찔한 사랑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아찔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됩니까? 오래 두면 돌아버립니다. 최고로 도는 세계입니다. 그것을 그렇게 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습니다. 꿀 먹은 벙어리는 설명은 못 해도 꿀맛은 압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천년이 가도 그 벙어리가 먹은 꿀맛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꿀을 먹어 본 그 벙어리는 꿀맛을 압니다. 바로 그러한 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입장에 처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선생님은 그것에 대해서 옛날에 전부 다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미래에 온다는 세계는 어떤 세계입니까? 싸움하기 위한 세계입니까? 고생시키기 위한 세계입니까? 평화롭고 통일된 세계인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그 세계를 이루기 위한 작전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책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먼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이냐? 먼저 부모가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제일 위대한 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그 위대한 분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의 아들 되어 가지고 뭘 합니까? 그 위대한 분에게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분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내것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위대한 분의 존재권을 대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존재권을 대신하려면 모든 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그렇지 못하면 나가자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 아들딸들이 그 사랑으로 충만하여 가지고 천년 만년 꽉 차 있을 수 있는 자식, 그것이 제일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인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성경에 예수님은 절대적인 우주의 중심이 되는 존재와 어떤 관계를 맺으려 했습니까? 사랑의 관계입니다. 학문적인 관계도 시시합니다. 권세적인 관계도 시시합니다. 학문이나 권세도 사랑 앞에 지배를 받습니다.

34-174
보다 공식에 가까운 사람이 이상상대
박대통령 부인 육여사가 잘은 모르지만 고등학교까지밖에 안 나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수가 있고, 장관의 마누라가 있고, 박사들도 있지만, 그들은 대통령의 사랑을 받는 그 여자 앞에 머리를 숙입니까, 안 숙입니까? 「숙입니다」 숙이지 않으면 그 여자의 말에 남자의 목이 달아나고, 여자의 목이 달아납니다. 그러니 지식이 귀합니까, 사랑이 귀합니까? 「사랑요」 권세가 귀해요, 사랑이 귀해요? 「사랑요」 알긴 아는구만. 정말 그래요? 「예」 진짜 그래요? 「예」 절대적으로 그래요? 「예」 그러니 목을 내놓고라도 찾을래요? 「예」 모가지를 백 개 아니라 천 개라도 주고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 생각해 봤어요? 그게 사랑입니다.

지금까지 종교가 하나님의 사랑을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보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로 백번 천번 얘기해도 필요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길은 선전하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가 자식에게 ‘야, 아들아! 이리 와, 이리 와!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면서 사랑합니까? 사랑은 선전하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짝슬쩍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서 말을 한다면 천하를 취하고도 남을 수 있는 말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려는 그 이상의 명사로 꽉 차 있는 것이 사랑이 아니겠어요. 남자든 여자든 다 그 사랑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경 끼고 바라보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이 ‘내가 할 말이 많고 답답하고 뭐가 어떻고…’ 하신 것은 무슨 사연 때문이었느냐? 이것은 나라가 문제가 아니고 세계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중심삼고 공식적인, 하늘땅 어디 가든지 절대 필요한 사랑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상상대라 했는데 이상상대가 대관절 어떤 것이냐? 여러분 앞에 이상상대는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입니다. 그럴 것인 아닙니까? 보다 공식에 가까울 수 있는 입장에 선 사람이 이상상대입니다.

그 공식에 가까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역사시대의 소망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과거의 소망에 가까운 사람이요, 현실사회가 바라는 중심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또한 미래의 출발이 있을진대, 그 출발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조상이 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식입니다. 그 사람을 찾기 위한 공식이라는 것입니다. 그 민족성을 보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34-175
사랑의 본질
그러면 사랑이 무엇이냐, 사랑의 본질이 무엇이냐? 겁탈이요, 강압이요, 정복이 아닙니다. 그러면 먼저 무엇을 만들어야 되느냐? 수평선을 만들어야 됩니다. 사랑의 출발은 먼저 공식적인 수평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수평선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수평선에서 새로운 파장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생을 중심삼고 보면, 젊어서는 청소년 시대를 거치면서 이렇게 올라가지요. 이즘 되면 올라가요, 내려가요? 「올라갑니다」 (판서하심) 이렇게 올라가다가 휘청거리는데, 또 올라갈 수 있습니까? 포화상태가 되면 수평선이 되었다가 내려갑니까, 올라갑니까? 「내려갑니다」 내려가지요.

그러면 일생에 있어서의 수평선이 되는 때가 언제냐? 모든 만물과 통하고 친구가 되고 관계맺고 싶은 그런 수평선 시대가 언제냐? 사춘기 시대입니다. 사춘기의 젊은이들이 마라톤 대회를 하는 것을 보면 그 마라톤 대회에서 누가 1등입니까? 내가 뛰지는 않지만 1등이 자기지요? (웃음)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직접 뛰지는 않지만 그 대회를 구경하면서 앉아서 달리는 것입니다. 전부다 마라톤 선수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말을 잘 타는 기수를 보면 자기가 기수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아주 훤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수평선에도 이상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입체적인 세계의 수평선이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도 20세의 아가씨가 되면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 하고 감상에 젖어들어 갑니다. 이것이 뭐냐?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전체를 연결시키는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사춘기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 공간세계에 수평선을 그리는 것입니다. 수평선을 그리는데, 내려가는 거기에 무엇인가 있을 것 아닙니까? 어떤 관문이 있겠지요? 수평선에서 내려가면 좋아요, 안 좋아요? 「안 좋습니다」 좋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있으면 벼락을 맞아!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벼락을 맞겠으면 맞고, 죽겠으면 죽고, 망하겠으면 망하라구. 그래 내려가고 싶어요? 「안 내려가고 싶습니다」 그럼 조금 내려가도 괜찮을까요? 「안 됩니다」 안 되지요. 얼마만큼 안 되나요, 10이면 9만큼만 내려가면 되지요? 「절대 안 됩니다」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유지하느냐 하는 것을 하나님도 생각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남자가 필요하고 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사랑하는 그대여!’ 할 때, 젊은 사람들은 그 할머니 모습을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한데, 그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그대여 히히…’ 이렇게 합니다. 합니까, 안 합니까? 「합니다」 너 살아 봤어 ? 살아 보지 않았지만 그런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은 그때의 흥미를 가지라구요.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남자는 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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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아내가 필요했던 예수
사춘기 때 제일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절대적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자들이나 여자들 할 것 없이 여러분 자신을 대해 봐도 이성적인 것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또한 잘 논다는 것입니다. (웃음) 나는 모르지만 그럴 것 같아요. 여러분들 그래요, 안 그래요? 얌전한 아가씨 눈은 사탄눈이 되려고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솔직히 대답해 봐요. (웃음) 되려고 하지요? 남자들을 보면 여자들과는 조금 달라요.

그러면 남자들은 사춘기 때 사탄 되려고 합니까, 안 합니까? 「합니다」 남자가 저래서 꼴값하지요. 사실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야! 내가 극장에 한번 갔는데, 군인이 오더니 아가씨가 둘이 앉아 있으니까 옆에 가서 앉더니 무릎을 툭툭 치면서 ‘어디에서 왔어요’ 하고 물어요. 그거 왜 그래요? (웃음) 남자들이 그런 데는 남자 소질이 있어요.

자, 그러면 여러분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붙들러 나왔지? 어떤 사람 붙들 것입니까? 붙들러 나왔어요, 붙들리러 나왔어요? 「……」 대답이 없으니 기분 나빠서 이제 얘기 못 하겠구만. 어때요? 붙들려고 왔어요, 붙들리려고 왔어요? 붙들려고 왔지요? 붙드는 데는 어느 정도 붙들 것이냐? 이것은 천태만상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큰일난다. 기회는 한번 밖에 없다’ 하면 여자들은 어떻게 붙들리려고 하겠어요? 어떻게 붙들리면 좋겠어요? 좌우지간 어떻게든지 붙들어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면 심각한 사람 가운데 제일 심각한 사람이 누구냐? 미친 사람 중에서도 사랑 때문에 미친 사람은 얼마나 심각하겠어요.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선생님은 길 가다가도 쓱 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고 생각 합니다. 사랑 때문에 미친 사람은 행동이 다릅니다.

세상에서 사람에게 무엇이 제일 심각하겠습니까? 그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돈이지요?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심각하겠습니까? 「사랑입니다」 40살 먹은 늙은 총각이 있는 데 백만장자입니다. 그러면 ‘아이구, 내 돈아! 내 님이 너다’ 라고 할 수 있겠어요? 「없습니다」 이런 보따리를 다 치우고 심각해지고 결국 뭐가 필요합니까? 자기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 앞에 상대가 있다 하게 될 때는 함부로 그 사람을 대할 수가 있어요?

여기서 꼭 필요한 말이 무엇입니까? 입증할 만한 말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길거리의 사랑이 있고, 돌보아주는 사랑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사랑은 무슨 사랑이겠습니까?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오늘날 남자 여자의 사랑에서 그런 절대적 사랑이 나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내정을 알았으면서도 그것을 이 땅 위에 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우주적인 수평선 위에서 자기 상대를 정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요셉 가정을 중심삼은 그 동네에서 상대를 구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인 아들이기 때문에 역사를 대표한, 하나님의 심정과 동반된 자리에 선 역사적인 아내를 요구했습니다. 자기가 역사적인 남자이니까 역사적인 아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남자는 어디서 오느냐? 타락하기 전 에덴 동산에서 옵니다. 역사적인 여자는 어디서 오느냐? 타락한 지옥 가운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남성이 역사적인 여성을 찾기 위해서 지옥에 들어간 그 여성에게 ‘올라와. 올라와’ 그럴 수 있겠습니까? 올라오게 하려면 올라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에 올라오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사탄세계에 꽁꽁 얽어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얽어매여 있느냐 하면 그 민족과 나라가 울타리가 되어 둘러 싸여져 있고, 다음에는 백성이 울타리로 쳐져 있고, 종족과 가정까지도 울타리가 되어 막고 있습니다. 모두가 울타리로 쫄딱 매어 놓았습니다. 그러니 하나의 나라요, 국민이요, 종족이요, 가정이요, 그 가정 가운데 내가 꽁꽁 매여 있습니다. 이렇게 매여 있습니다. 타락을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 인간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이렇게 꽁꽁 매여 있습니다. (칠판에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남자는 어떠냐?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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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그러면 이렇게 꽁꽁 매여 있는 인간을 하나님이 풀어 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세계 가운데, 나라 가운데 꽁꽁 매여 있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있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누구부터 구해 줄 것이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원칙과 원리에 따라서 구해주자’ 이것이 남자를 구하기 위한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한 남자를 구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나라와 같은 울타리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반대하는 울타리가 아니고, 환영할 수 있는 나라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다음에는 민족의 울타리, 종족의 울타리, 가정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주여! 오시옵소서’ 하며 메시아를 위해서 세워진 나라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메시아를 위한 것이요, 유대교도 메시아를 위한 것이요, 요셉 가정도 메시아를 위한 것이요, 사가랴 가정도 메시아를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울타리를 만들어야 역사를 할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포위된 것을 구해 주려면 해방이 벌어져야 합니다. 예수를 중심 삼고 내 개인이 해방되고 가정이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종족이 해방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종족은 유대교인을 말합니다. 다음에 민족이 해방되고, 민족이 해방되게 되면 나라를 해방시켜야 합니다. 나라를 해방시켜 가지고 여기에 가서 이것을 구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이것을 구해 주려면 나라끼리 부딪쳐야 됩니다. 이것은 민족끼리 부딪쳐야 됩니다. 이것은 종족끼리 부딪치고, 이것은 가정끼리 부딪쳐야 합니다. 이런 싸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칠판 판서후 설명하심) 이것이 지금까지 지상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찾아 가지고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서 복귀섭리를 하려고 했는데,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서 실천한 것은 영적인 남자가 되어서 남자 구실은 못 하지만 영적인 해와인 성신을 보내 가지고 복귀역사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를 하면서 넓혀 나온 것입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신부권을 만들어 나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알겠어요? 「예」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영적으로만 이루면 되느냐? 영육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육을 이루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러러면 원리적인 인연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영육을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면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영육을 중심삼은 나라가 필요한 것입니다. 영육을 중심삼은 우리들을 환영할 수 있는 나라가 필요합니다. 또한 영육을 중심삼은 국민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종족이 필요하고, 그 다음은 가정이 필요하고, 그 다음은 개인이 필요합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전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민족복귀라는 문제를 걸고 싸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것을 못 하면 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못 해 놓으면 완전히 자리를 못 잡는 것입니다. 가정이라도 자리를 못 잡아요.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는데 제일 문제가 뭐냐 하면, 이런 입장을 거쳐서 해방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입장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해방된 자리에 있습니까?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여러분 부모를 중심삼고 볼 때 해방이 되었죠? 그렇지요? 옛날에는 죽이고 살리고 야단 났었지만, 이제는 해방이 되었습니다.

옛날에 통일교회 합동결혼식 한다면 부모들이 용서해 줬나요? 그러나 36쌍, 72쌍…. 이렇게 점점 대사회로 전개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디까지 왔습니까? 지금은 많이 올라왔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영적입니다. 영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만 했지 세상과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완전복귀를 하려면, 세상과 상관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있어야 됩니다」 상관이라는 것은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전을 해서 그 나라의 주권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전체가 환영하는 날에, 이 가정제도 사상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의 국민을 몽땅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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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해방운동을 전개하는 통일교회
그러면 우리의 합동결혼 작전, 즉 700쌍 합동결혼 작전이 좋은 작전입니까, 나쁜 작전입니까? 「좋은 작전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한 7,000쌍 합동결혼 작전을 할 것입니다. 7,000쌍 쯤 될 때에는 전국의 지구장들이나 혹은 책임자들을 전부 동원할 것입니다. 한 나라에 700쌍씩 하게 하면 10개국이면 몇 쌍입니까? 7,000쌍이죠? 100개국이면 7만쌍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7만쌍 만들기 위해서는 백 나라에 들어가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100개 국이 한 나라에 700쌍씩만 하게 되면 7만 쌍이 됩니다. 세계에서 7만 쌍을 모아 가지고 대한민국에서 합동결혼 했다 하게 되면, 이 세계가 우리 권내에 들어오겠어요, 안 들어오겠어요? 「들어옵니다」 거기에는 알록달록한 오색인종이 다 하는 것입니다. 흰둥이 검둥이 노랑둥이 등 알록달록한 오색인종을 마구 섞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올려다 봐도 좋고, 내려다 봐도 좋고, 건너다 봐도 좋고, 뒤로 돌아다 봐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계는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흑백 하게 되면, 흑은 나쁘고 백은 좋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백도 좋고 흑도 좋다. 상도 좋고 하도 좋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산당들은 노동자 농민의 해방운동을 말하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양심해방운동을 말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양심적인 인사는 동원하라’ 해 가지고 ‘어이차! 어이차!’ 하며 사람을 모으는데, 여기에 ‘어이차! 어이차!’ 하지 않는 사람은 양심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운동을 대한민국의 한 모퉁이에서 시작해 가지고 어떠한 주의보다 좋다는 인식만 받게 되면 문제는 큽니다. 양심적인 자가 동원하게 되면 전부 다 동원된다는 것입니다. 동원 안 했다가는 양심적인 인사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축에 못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양심적인 사람은 계급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노동자 가운데도 양심적인 사람이 있지요? 「예」 양심적인 인사는 동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양심적인 인사가 주권을 쥘 수 있는 세계가 마지막 세계입니다. 알겠어요? 「예」 노동자 농민을 위한 주권의 세계는 마지막 세계가 아닙니다. 양심적인 인사가 주권을 쥘 수 있는 시대가 마지막 시대입니다.

그러면 양심적인 인사는 어디 있느냐? 비종교인보다는 종교인이 좀더 양심적입니다. 종교인 가운데도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사람은 더 양심적 입니다. 하나님의 사위가 되고 아들딸이 되는 사람들은 더 양심적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 하러 여기에 왔어요? 여기에 온 결론이 무엇입니까? 양심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양심적인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종교인 가운데 있다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더욱 양심적인 사람은 통일교인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더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한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는 양심적이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양심적입니다」 양심적이라도 그냥 양심으로는 안 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 있는 양심적인 사람이라야 절대적인 애국자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서 있는 사람은 보다 양심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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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을 차지하는 자리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어서 사랑을 차지하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의 사위와 며느리, 그리고 아들딸이라는 자리밖에 없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대답해 봐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중에 하나님의 사위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여러분은 그것만 다 되라는 것입니다. 그럼 또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위 될래요, 아들 될래요? 「아들이 되겠습니다」 사위 되겠다고 손들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어요? (웃음) 여자들은 하나님의 며느리가 될래요, 딸이 될래요? 「딸이 되겠습니다」 며느리는 쫓겨나면 갈 데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해와는 딸로서 쫓겨났는데 갈 데가 없었습니다. 갈 데가 없는 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 데가 없어도 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신다는 겁니다. 만일 며느리가 쫓겨났다면 찾아가겠어요, 안 찾아가겠어요? 「안 찾아갑니다」 또 사위가 타락해서 쫓겨났다면 찾아가겠습니까, 안 찾아가겠습니까? 「안 찾아갑니다」 사위 찾아오는 법이 있다면 사탄들이 하나님께서 사위에게 찾아갈 때 ‘나에게도 오십시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딸에게는 찾아가도 사탄들이 주장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게 될 때 복귀역사를 할 수 있는 최고의 한계점도 아들딸 기준을 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이하에 두었다 하면 지옥에 간 사탄들이 ‘나도 복귀해 주소’ 하고 항의하면 꼼짝 못하고 걸려든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역적이 되어 죽게 된 사람이 있다 할 때, 그의 어머니는 국법을 어겨서라도 자기의 아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겠습니다」 그러면 그 어머니는 나라의 반역자이겠지요? 「아닙니다」 그렇게라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 살려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해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살려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면 그 가능한 권이 어디냐? 그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곳은 세상의 법이 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부자의 관계의 사랑의 법도입니다. 부자의 관계의 사랑, 본래 사랑을 하는 그 내연의 사연은 국법이라든가 세상법 가지고는 통치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뭐가 되겠다고 했지요? 하나님의 며느리가 되겠어요, 딸이 되겠어요? 「딸이 되겠습니다」 남자들은 사위 되겠어요, 아들 되겠어요? 「아들이 되겠습니다」 사탄을 쳐부수고 아들이 되겠습니까? 「예」 한번 해봐요. 될 수 있다는 용기가 있으면 됩니다.

34-184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자리
선생님도 그런 생각 했습니다. 내가 무엇이 될 것이냐? 다 생각해 본 것입니다. 뜻길을 출발할 때 개인적으로 많은 경험도 해보고 공상도 해보았습니다. 봄이 오면 봄바람에 춤도 추어 보고, 봄날이 왔을 때 꽃이 좋아 동네방네 뛰어다녀 보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꽃향기를 만들려고 한면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가 봄이면 저기는 겨울이 될 수 있고 가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들이 되겠습니까, 사위가 되겠습니까? 「아들이 되겠습니다」 아들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가겠습니까? 「예」 한번 죽음을 각오했다가 나자빠지면 어떡하지요? 또 가야지요? 「예」 또 나자빠지면? 「또 가야 합니다」 그러면 백번 천번 나자빠지면 어떡하느냐? 「그래도 가겠습니다」 됐습니다. (웃음) 6천년을 통과하더라도 갈 자신 있어요? 「예」 한번 구상해 봤어요? 「아니요.」 (웃음) 해본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러면 지금 하고 있다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여러분, 내가 생각하는 입장에서 하고 있다는 말과 여러분이 하고 있다는 것과는 달라요. 여러분들 하려고 하는 입장이라면 물어볼 것도 없이 다 손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할 수 없다 하게 될 때는 선생님이 화를 낼 것이니까요. 하려고 마음 먹으면 하겠지요? 「예」 한번 해봐요. (웃음)

그러면 사위 될 수 있는 자리를 취하면, 아들 될 수 있는 자리가 대관절 어떤 자리냐 하는 것을 알고 싶지요? 「예」 아들이 되어 상속받을 수 있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는 것을 가르쳐 줘요? 「예」 예수님이 다 가르쳐 줬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세상에 그런 엉터리 같은 말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죽는 데는 왜 죽느냐? 죽는 목적이 뭐야? 살기 위해서입니까? 사는 데도 무슨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 목적을 중심삼고 살면 됩니까? 「아니요」 살아가는 인간의 목적이 전부 다 다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목을 내 놓으라는 그 말입니까? 그 목이 몇 개입니까? 「하나입니다」 이게 하나밖에 없는데 내 놓긴 뭘 내놔요. 이건 내놓기 싫죠? 하나님이 아들이라면 세계적으로 모가지 내 놓는 전람회가 있으면 일등해야 되겠어요, 꼴찌해야 되겠어요? 「일등해야 됩니다」 세계에서 모가지 내 놓는 전람회가 있으면 그 전람회에서 일등 레테르가 붙어야 됩니다. 그런 레테르가 붙을 수 있는데 지금 저 밑창에 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죽어야 되느냐? 최고의 자리에서 죽어야 됩니다.

34-185
하나님을 위해 죽더라도 최고의 자리에서 죽어야
그렇기 때문에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죽어야 됩니다. 하늘나라가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크지요? 천상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하늘나라에서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죽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죽는 데도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죽자! 죽읍시다! 죽는 데는 어디서 죽느냐? 세계를 위하는 하나의 여자를 위해서 죽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웃음) 왜 웃어요? 좋아서 웃습니까, 싫어서 웃습니까? 죽는 데도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건 뭐 시시하게 한국적인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한국적인 것 가지고는 암만 죽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자리, 천상천하를 통과한 하나님의 심정의 나라를 중심삼은 최고의 자리에서 죽어야 합니다. 하늘나라 복판에서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늘나라가 제일입니다. 그러면 세계가 전부 반대할 때 어떻게 하겠어요? 도망가면 되겠어요? 아닙니다. 턱 버티어 가지고 천하가 다 깃발을 들고 환영하는 자리에서 죽어야 합니다.

충신이 죽을 때, 한 예로 유관순이 죽을 무렵 최후로 법정에 나갔을 때 일본사람이 ‘이년 철없는 네가 무엇을 안다고 이러느냐. 다음에 내가 무엇이든지 다 해주고 좋은 신랑 얻어 시집보내 줄테니,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고 했으면 ‘예’ 그랬겠어요? 「아닙니다」 ‘이놈의 자식들’ 하면서 그러면 그럴수록 반대했을 것입니다. 그래야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권세와 국민사상을 중심삼고 그 빛을 가리지 않고 천추만대에 발할 수 있는 정신적인 자세를 갖추지 않고는 충신이 못 됩니다. 그러려면 먼저 세계적이어야 됩니다. 이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인인 여러분은 챔피언 되려면 대한민국 챔피언 될래요, 세계 챔피언 될래요? 「세계 챔피언입니다.」 대한민국 챔피언은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한국 레슬링 챔피언이면 금벨트를 주고 세계 챔피언은 세계에서 벨트를 주지 않고 종이짝 한 장을 준다고 할 때, 여러분은 종이짝 한 장을 가지겠습니까, 금벨트를 가지겠습니까? 「종이짝입니다」 왜? 「가치 때문입니다」 그 가치는 세계적인 가치입니다. 그 종이짝 가져 가라는 소문이 나게 되면 세계 사람이 와서 달라붙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것이다’ 하면 세계의 사람은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세계 챔피언 종이짝하고 한국 챔피언 금벨트를 놓고 ‘준비! 땅!’ 해서 가져가라 하면 전부다 어느 쪽으로 가겠습니까? 「세계 챔피언 쪽입니다」 그러나 손에 종이짝을 취하는 사람은 몇 사람입니까? 「한 사람입니다」 손에 넣는 사람은 한 사람인데 36억 인류가 다 그리로 간다는 것입니다. 이걸 누가 갖고 갈 것 같아요? 이미 결정 다 났는데 갖긴 뭘 가져요.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일등 부자로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하고 지갑에 세계 챔피언 종이짝 한 장을 넣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합시다. 그 종이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돈도 없어요. 배고픈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그 세계 챔피언 종이짝 한 장을 가질래요, 고급빌딩에 문화주택에 고급벤츠차를 타고 ‘에헤 나 좀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가질래요? 어떤 것을 가질래요? 세계적인 종이 짜박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에서 밥이 나와요, 뭐가 나와요? 밥이 당장은 안 나오지만 그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만 가지면 해당하는 그 전문분야에 쓱 들이대면 밥도 나오고 다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남아 있는 한 무엇이든지 다 나옵니다. 자, 남자들 어떤 것 가질래요? 「종이짝을 가집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가 가지려는 것입니다.

34-187
사탄을 굴복시켜야 진짜 챔피언
통일교회는 간편하게 세계 챔피언 종이짝만 가지고 다니려는 것입니다. 기정교회라든가 다른 단체들은 자기 종파의 벨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정교회 챔피언하고 통일교회 챔피언 중에 어느 챔피언이 되겠습니까? 「통일교회 챔피언입니다」 그러면 옷이 다 찢어져 궁둥이가 나오고 이것만 딱 남았습니다. 보기에도 흉합니다. 그러면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겠지요? ‘저거 저거 미친 녀석, 아이구 나라 망신이야. 저거 대한미국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니고 있는 이 종이짝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궁둥이야 나오든 말든 때가 되어 가지고 쓱 깃발 들고 나타나는 날에는 벌거벗었다고 해서 박수 안 치겠어요? (웃음) 거지 바가지 뒤집어썼다고 해서 환영 안 하겠어요? 환영 안 하면 모가지 자를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반대해라, 반대해! 반대하면 나는 자꾸 산꼭대기로 몰려갈 것이다. 산꼭대기로 몰려가 가지고 저 백두산 아주 험한 산에 굴을 파고 철갑대를 몇백 개 세워 놓고 거기에 들어가 살 것입니다. 나 아니면 못 들어오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이것이 있는 것을 알게 되는 날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거기가 수도(首都)가 될 것입니다. 물 나오는 수도가 아닙니다. (웃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곳이 무엇이 된다구요? 수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 참피언이 될 수 있는 경기는 참 많습니다. 자전거 경주에서부터 시작하여 별의별 경기가 다 있는데, 그 중에서 무슨 경기가 최고 경기겠느냐? 여러분들이 그것을 생각해 보았어요? 하나님의 아들 되기 위한 경기가 최고의 경기입니다. 이상적인 최고의 경기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것을 알았어요. 그것 근사해요? 「예」 그 경기 하려면 따라오는 사람이 많겠어요? 적겠어요? 「많겠습니다」 도적놈 같은 사람도 따라올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따라와서 되겠어요? 「안 됩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전부다 동원될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떼어 놓아야 되겠어요, 안 떼어 놓아야 되겠어요? 그들을 떼어 놓으려면 그들이 따라올 수 있는 정도의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따라올 수 없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들이 올라가겠다고 할 때 나는 내려가야 됩니다. 그들이 좋다 하는 것은 놔두고 싫다 하는 것만 해야 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 「예」

그래서 통일교회는 남이 좋다 하는 것은 안 한다 이겁니다. 그러면 뭘하는 거냐? 「남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남이 싫다는 것이면 얼마만큼 싫다는 것이냐? ‘아, 죽겠다. 난 못 한다’ 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어야 됩니다. 나가 자빠질 것만 한다는 것입니다. 뜻이 있어서 한다면 못 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고생하라. 지독하게 고생하라’ 하는 것입니다. 등골이 튀어 나오고 곱추가 되고 등골에서 고름이 나오더라도 때려 몰아내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몇 발자국 더 가서 죽어라’ 이겁니다. 그렇게 가다가 죽은 것을 하나님이 와서 보실 때에 누가 일등이냐?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고 한 치라도 더 나가 죽은 사람이 일등입니다. 통일교인이 죽을 때는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가서 죽어야지 물러서서 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챔피언이 됐다’ 하는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마중 나오는 것입니다. 챔피언 깃발을 들고 쓱 나가게 될 때 뒤에서 따라오던 무리들은 어떻게 하겠어요. 권투할 것입니까? 챔피언이 하나님의 아들일진대 그 아들 뒤에 따라오는 자는 누구겠습니까? 사탄입니다. 거기서 그가 돌아서서 사탄을 굴복시켜 놓아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진짜 챔피언이 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위도 못 됩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하나님의 사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것은 복귀시대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사위와 며느리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딸은 못 되는 것입니다. 사위와 며느리는 될 수 있지만 아들딸은 못 된다니까 기분 좋아요, 나빠요? 「나쁩니다」 여기에 있어서 아들딸이 책임 못하면 사위와 며느리도 아들딸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보다 더 열심히 하면 양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위가 양자 될 수 있지요? 그렇게 되려면 아들딸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식으로 말하면 선생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때 선생님보다 더 고생하면 사위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를 따 놓는 것입니다. 양자는 양자지만 아들보다 더 책임한다면 누가 더 나은 아들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공식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34-189
복귀섭리의 외적인 터를 닦아야 할 양자
그러면 뜻적으로 불 때, 아들 만들기 위한 작전을 해야 된다는 말인데, 어떻게 아들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아들이 가정을 이루게 될 때에 울타리를 누가 만드느냐? 양자입니다. 기독교가 바로 양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가인입니다. 요것은 아담이지요? 양자는 천사장입니다. 그렇지요? 천사장은 아담을 위하여 존재해야 합니다. 먹고 자고 하는 것도 누구를 위해서? 아담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책임할 때까지는 그 모든 전권을 천사장이 가집니다.

복귀역사 가운데 외적인 터를 닦는 역사는 누가 하느냐? 양자가 치러야 됩니다. 그 준비는 가정보다 종족이 더 힘이 듭니다. 그것을 양자에게 시키는 것은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요, 더 큰 책임을 맡겨 완수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공석에 나타나지 않았느냐? 여러분은 왜 안 나타났는지 생각해 보았어요? 여러분을 내세우려는 것입니다. 선생님보다도 여러분들이 공적인 입장에서 더 칭찬받고, 선생님이 거쳐 가지 않은 자리에 선생님이 거쳐진 입장을 대신하게 된다면 그 자리를 상속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양자의 자리를 상속해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양자의 자리를 상속해 주는 것은 가인 아벨 복귀기준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 복귀기준을 결정하면 양자의 자리를 넘겨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같은 입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움을 하는 데는 절대 아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선두에 서서 지도하는 것은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인적인 것입니다. 천사장이 하는 것입니다. 국가를 찾을 때까지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국가를 찾으면 그때는 아들이 당당히 나타나 세계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통일교회는 이런 작전을 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따라오지 못하는 일을 해 가지고 통일교인들은 어디로 갈 것이냐? 지금 월남과 베트콩이 싸우고 있는데 통일교인들은 그 사람들 보다 더 강해야 합니다. 그래서 못 갈 데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트콩보다 김일성이가 더 강합니다. 좀더 시간이 지난 뒤에 내가 정부와 의논을 해 가지고 통일교인을 전부다 북한의 124군 부대 이상 훈련을 시켜 북한을 쳐들어 가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가겠습니다」 가서 죽어요, 죽어! 죽고자 하는 자는 살지 않았습니까? 캄캄한 세상에 가서 부활해야 빛이 나는 것입니다. 밝은 세상에 가서 부활하면 그 빛이 나요? 그렇기 때문에 부활은 죽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복된 천국행로가 북한행 형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북한에 갔다 온 것입니다. 그러니 죽을 각오하고 가는 것입니다. 갔다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못 가고, 못 해내겠다는 사람은 통일교회 패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찾아오는 것이 뜻이라면 대한민국의 말단 백성까지도 사랑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그 길을 누가 닦아야 하느냐? 아들딸이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들딸 다음에 양자가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닦으라는 것입니다. 고생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통일교회 패들은 공산당보다 더 지독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 기분 나쁘다’ 할지 모르지만 나는 기분 나쁘게 생각 안 합니다. 사실 내가 공산당보다 지독합니다. 공산당들에게 고문당할 때도 ‘쳐라 이놈의 자식들’ 그랬습니다. 내가 7배를 가해서 그들의 목을 자르더라도 안 걸린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조건을 다 닦았습니다. 공산당이 우리 손아귀에 들어오면 전부다 모가지를 잘라 버려도 하늘 법에 안 걸린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껏 맞아 나온 것입니다. 왜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쳐라 이 자식들아. 너희들 시대에 내가 당하지만 내 시대에 너희를 잡아 넣겠다’ 하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조서도 많이 받아 봤습니다. 어느때는 무슨 죄목이 나오겠다는 것을 다 압니다. 다 알고 있으니 며칠만 지나면 도리어 자기들이 곤란해 집니다. 그런 싸움을 지금까지 해 나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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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자리에서 자기의 본성이 나타난다
복귀섭리에서 승패는 감옥에서부터, 하늘 가는 길은 감옥에서부터입니다. 여러분들은 감옥생활을 안 해봤지요? 앞으로 내가 시킬 것입니다. 한번 해볼래요? 「예」 감옥생활, 이것이 훈련입니다. 감옥에 먹을 것이 뭐 있어요? 마음대로 먹지 못하지요. 배고파 보라는 것입니다. 옷도 없으니 추위에 떨어 보라는 것입니다. 집이 없이 그렇게 살아 보라는 것입니다. 불원간 실제로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 제일의 형무소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면 누구를 수용 하느냐? 통일교회의 교인들을 데려다가 수용하려고 합니다. 그래 가지고 ‘굶어 봐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 년 팔개월 정도, 전부다 그저 죽지 않을 만큼 공식적으로 한번씩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감옥에서는 인간적인 감정이 제일 잘 나타납니다. 틀림없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진짜 자기가 밥을 위해 살았느냐, 뜻을 위해 살았느냐가 나타나지요. 그래도 감옥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됐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게 되면, 무엇이 어떻고 어떻고 하는 것 때문에 내가 아주 못난 놀음을 할 때가 있습니다. 못난 놀음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왜 저럴까? 그렇지만 그들이 잘못했지 나는 그들의 작전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 수 없다는 거예요. 또, 어떤 녀석은 와 가지고 공갈 협박하는 거예요. 처음 만났는데…. 선생님에게는 이런 면이 있어요. 여러분을 대해서 선생님이 진짜배기 통일교회 패들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라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 나 죽소!’ 하는 자리에서는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안 죽겠다 하는 녀석이 있으면 죽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들도 한번 해보면 좋겠어요? 「예」 그러면 준비를 하라구요. 내가 지금 이 일을 안 하면 영계에 들어가서도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나라를 위해서 가야 하고 세계를 위해서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세계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세계적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갈 수 있어야 됩니다. 다음에는 부부를 이루어야 합니다. 부부를 중심삼고 그 가정이 세계를 대신할 수 있어야 됩니다. 아브라함이 제사 지낸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네가 세계를 사랑하느냐, 아들딸을 사랑하느냐?’ 할 때 어떤 것을 사랑하겠습니까? 만약에 아브라함이 세계를 그만두고 아들딸을 사랑한다고 했으면 하나님이 복귀역사를 했겠어요? 변치않는 이 역사를 생각해 봐요.

34-192
언제라도 세계를 위해 희생할 각오를 하라
지금까지 하나님의 복귀역사는 하나님 앞에 제일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켜 가지고 나오는 역사입니다. 틀림없지요? 종의 종에서부터 종의 가정, 종의 종족, 종의 민족, 종의 나라를 세워 가지고 역사 앞에 희생시켜 나왔습니다. 아들이 있으면 아들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나라를 세우고 세계를 하나 만들 때까지 아들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정을 세계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앞으로 여러분이 결혼했을 때 여러분의 아내를 공출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공출한다 할 때는 ‘오케이(OK)!’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됩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해야 됩니다. 여기에 반대했다가는 벼락을 맞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세계를 위해서 공출하는 데에는 ‘사지에 가 죽을 수 있는 사람에게도 잘 가서 죽으시오’ 라고 축복을 해줄 수 있어야 됩니다. 자신 있어요? 「예」 그 공출시키는 사람은 자기 욕심을 위해서 하면 안 됩니다. 그럼 누구의 욕심을 위해서? 세계의 욕심을 위해서, 하나님 중심삼은 세계의 영광을 위해서 공출할 수 있다면 당당한 것입니다.

그러면 공출되어서 일할 바에는 어디에 가 할 것이냐? 일선에서 할 것입니까, 후방에서 할 것입니까? 「일선입니다」 후방에서 하지 왜 일선에서 합니까? 젊은 아내를 공출해 가지고 일선에서 죽도록, 모가지가 먼저 떨어지게끔 일해 주기를 바라는 남편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손들은 사람들 틀림없죠? 또, 여기 여자들은 ‘우리 신랑 공출하여 가지고 제일로 모가지 떨어지는 데 대장을 만들어 주시오’ 할 수 있어요? 「예」 틀림없어요? 「예」 대답소리가 이상한데요. (웃음) 통일교회 선생님이 지금까지 그 놀음을 했습니다. 먹으나 굶으나 자나깨나 나를 위해 살려는 생각 안 했습니다.

사실 내가 오늘 아침에도 피곤했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지칠 수가 없습니다.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사실은 여러분을 봐 가지고는 선생님이 여기에 와서 얘기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되겠기에 나온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나는 지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세계적인 멋진 인연을 중심삼고 만나야 합니다. 이것은 고무줄과 같습니다. 이 고무줄을 잡아당겨 내가 끌려갈 때는 반대편에 가서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점점 팽팽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심정과 기분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습니까? 그리고 영계에는 내가 지금 ‘가정도 미련없다. 내 할 책임 다했다’ 하게 되면 가는 것입니다. 죽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에게 죽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한 가지 서러워하는 것은…. 이 뜻을 내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살아 생전에 이 한도까지는 갔다 놓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죽을래야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네가 사지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이 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밥을 먹으나 자나 깨나 세계를 위해서…. 기도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시아 정세나 한국 민족을 중심삼고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인 분야에서 어떻게 책임을 다할 것이냐 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은 세계를 위해서 살고 죽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세계적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리에서 죽어야 되느냐? 세계적인 입장에 서서 사랑하는 아내를 안고, 가정을 안고, 자기 종족을 안고, 민족을 몽땅 안고 죽어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지금 종족을 편성하고 민족을 편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 선생님은 죽되 어떤 자리에서 죽을 것이냐? 민족과 대한민국까지 몽땅 안고 세계를 위하여 죽을 것입니다. 한민족이 하나되어 가지고 세계를 위해서 죽고자 할 때는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이 있겠기 때문에 그 길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눈물을 흘리고 찾아진 아내요, 눈물을 흘리고 찾아진 자식이요, 눈물을 흘리고 찾아진 종족이요, 민족이요, 나라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눈물뿐만 아니라 피땀까지 흘려야 됩니다. 내 뼛골이 녹아지고 내 모든 정성이 들여져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났고 이것을 위해서 살았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누가 부정할 수 없는 그 내용을 가지고 그 나라와 더불어 세계 앞에 제물 되겠다고 나서야 합니다. 그런 민족이 있다면 3년이면 됩니다. 길다면 7년입니다. 그래서 3차 7년노정까지 이 길을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이 천명을 받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지금이 2차 7년노정인데 과정이지요? 「예」 그럼 3차 7년노정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여러분은 못 가더라도 나는 그 길을 갈 것입니다. 지금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세계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하나의 민족이 제물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그리고 세계를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34-194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그러면 여기에서 무엇이 필요할 것이냐? 예수님이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기 때문에 뜻을 다하는 모습, 정성을 다하는 모습, 마음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거기에는 일체의 모든 것을 투입해야 합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세계를 위하는 자리에서 세계를 사랑하다 죽었다 할 때 세계가 울어야 되겠어요, 안 울어야 되겠어요? 「울어야 합니다」 또 그러한 종교가 나타난다면, 그 종교는 세계적이고 천주적인 종교가 될 것입니다. 또 그러한 민족이 있다면, 다른 민족들은 하늘땅을 사랑하다가 죽어간 그 민족을 하늘같이 섬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민족을 중심한 국가가 제사장 국가입니다. 제사장은 양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지요? 제사장은 양을 잡아 양의 모가지를 자르고 대신 자기 모가지를 바치는 놀음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를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 살았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살았습니까? 솔직히 이야기해 봅시다. 누구를 위해 살았어요? 「나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나를 위해 살면 어떻게 됩니까? 세계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민족도 종족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또한 나를 위해 사는 사람이 가정을 가질 수 있어요? 공적인 가정도 못 가지는 것입니다. 가정만 못 가지느냐? 나중에는 자기 자신도 망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망한다는 것입니다. 나라도 없고 종족도 없으니 깨깨 망하는 것입니다. 깨깨 망한 무리들이 찾아가는 곳이 어디라구요? 지옥입니다, 지옥.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서도 지옥갈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지금은 개인을 위해 살면 안 됩니다. 전체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죽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부활의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즉, 인간이 한번 죽어야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활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활권을 찾아 나가는 우리들은 나라를 넘어 세계를 사랑하는 사상으로 나라가 부활할 수 있는 사랑의 길을 닦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사랑하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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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도리 중의 성인의 도리
여러분, 성인과 위인을 생각해 보세요. 성인은 적습니다. 그러나 위인은 많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위인입니까, 위인이 아닙니까? 「위인입니다」 그는 우리 대한민국 사람이 볼 때는 위인이지만 일본 사람이 볼 때는 위인이 아닙니다. 일본 사람한테는 반대라는 것입니다. 역적입니다. 수자적으로 볼 때 성인은 위인의 3분의 1밖에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나라를 위하고 갔던 위인은 나라마다 많습니다. 나라를 위하다 간 사람은 위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국가를 초월한 사람입니다. 세계적인 사람이라야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즉 세계적인 사상을 갖추어야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여러분도 그래야 됩니다.

성인은 무엇을 가르치느냐? 반드시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가르치는 종교의 도주입니다. 하나님을 가르쳐 주지 않는 종교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가르쳐 주지 않고는 세계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인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도 성인이라 하고 공자도 성인이라 합니다. 전부다 하나님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공자도 ‘위선자(爲善者)는 천(天)이 보지이복(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天)이 보지이화(報之以禍)니라’는 말을 가르쳤지요. 도주들은 다 국가이념이나 모든 것을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인의 도리 중의 성인의 도리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심정적인 문제를 중심삼은 도리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도리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나는 그분의 독생자’라고 했고,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신랑, 신부, 형제라고 하여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의 도리를 가르쳐 준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왜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거기에 가깝게라도 사랑의 내용을 설파했기 때문에 기독교는 세계적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끝날까지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까지 왔다 간 성인보다 못 해야 되겠어요, 더 나아야 되겠어요? 「나아야 됩니다」 성인의 아버지가 되고 성인의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여러분이 성인의 아버지가 되었어요, 여러분이 성인의 아버지예요? 지금까지 성인들이 바랐던 것이 무엇입니까? 이상적인 가정을 바라며 그런 가정을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도 신부를 찾아 나왔지요? 그러니 여러분도 세계를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34-197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주의
민주세계나 공산세계를 두고 볼 때, 민주세계의 중심국가인 미국을 위주하는 세계적인 기반이 있는데, 그 미국이 세계를 위하지 않고 미국을 위하는 세계가 되기를 바란다면 미국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세계의 중심 국가인 소련도 세계를 위하는 소련이 아니라 소련을 위하는 세계가 되기를 바란다면 망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민주세계나 공산세계를 능가하여 세계를 소화시킬 수 있는 주의가 무엇이냐? 자기 민족을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하고자 하는 이념이나 사상입니다. 그런 사상이 민주세계나 공산세계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이 사상은 초민족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민족을 초월해서 심정적인 유대를 맺어야 됩니다. 이 심정적인 유대를 맺을 수 있는 것이 결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초민족적인 결혼으로써 세계의 모든 민족을 섞어버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섞느냐? 대한민국이 3천만이면, 일본 사람과 한번 결혼시키면 몇 천만입니까? 「6천만입니다」 두 번 하면? 두 번 하면 몽땅 섞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중국의 인구가 10억이나 된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과 결혼을 세 번만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일본의 인구가 약 1억 5천만 되는데 전부 한번씩만 결혼하면 3억이 됩니다. 3억이 다시 한 번 하면 6억이 됩니다. 6억이 다시 한 번만 하면 10억이라는 중국도 몽땅 넘어오게 됩니다. 10억이 다시 한 번 결혼하면 20억이 되니까 두 번 반 정도만 하면 세계도 모두 넘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세계를 통일하려면 몇 번을 해야 되느냐? 여섯 번이면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몇 년이나 걸릴 것이냐? 40년 이내에 될 것이라 봅니다. 그런 사상적인 책임완수를 딱 한 번만 잘해 놓으면 세계는 벼락같이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적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개척자가 누구냐? 통일교회 문선생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원리를 알고 나면 이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까, 안 하게 되어 있습니까? 「하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 사람이 여기에 한번 왔다 가려면 백만원 정도 소요됩니다. 백만원이 있어야 한 사람이 왔다 갈 수 있으니까 두 사람이면 얼마나 들어요? 2백만원을 공중에다 세로 바치고 축복 받으러 날아오는 것입니다. 그래도 오겠어요, 안 오겠어요? 지금 일본에 와 활동하고 있어요. 일본이 우리 나라의 원수였지요? 그렇지만 일본을 살리려고 지금 뛰고 있어요. 그런데 사는 데는 같이 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같이 사는 데 대장이 있어야 하겠기에 어제 김영휘를 내 보냈습니다. ‘너 대장이야’ 해 가지고 세계 앞에 들이몰아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역사는 세상의 역사와 다릅니다. 하는 일이 다르고, 하는 생각이 다르고, 하는 행동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반대로 가지요? 「예」 반대로 가면서 이런 일을 만들어서 그것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따라오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오기 시작하면 우리가 최고예요.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 그렇잖아요? 우리가 어린이 무용단을 처음 만들었을 때도 얼마나 말이 많았어요? 이제 애들까지도 벌거벗기고 춤추게 한다고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습니다. 또 승공연합을 보더라도 최고 기준에까지 올라왔습니다. 대한민국에 통일교회의 승공연합을 빼놓고는 반공할 사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모든 종교 중에서 통일교회밖에 없다고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종교활동을 위해 내가 대한민국에서 돈을 제일 많이 씁니다. 굶으면서라도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여러분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선생님이 굶으면서도 그런 일을 하는 것이 기분 좋아요? 선생님이 굶다가 죽어도 좋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협조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는 것은 전부다 세계적입니다. 선생님은 어머니가 죽어가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번에 성진이가 일본에 갈 때도 ‘그 나라에 가서 다른 것은 하지 마라. 이것 이것을 하라. 너는 일본 국민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네가 잘해서 아버지 위신을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 가장 중요한 첫째 문제는 대교회 문제이고, 둘째는 대국가 문제이며, 세째는 선생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문제이며, 네째는 남녀문제인데, 이 문제를 중심삼고 자기 영광을 위해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교육은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34-199
여자들은 먼저 사랑받으려 하지 말고 먼저 사랑하라
여자들은 시기심이 많습니다. 한국의 여자들은 시집을 간 그 이튿날부터 남편이 자기 치다꺼리 해주기를 바랍니다.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 중에도 그런 돼먹지 않은 여자들이 있어요. 눈을 깜빡깜빡하면서 ‘화장품 사주소. 원 피이스, 투 피이스 사 주소. 핸드백 사 주소’ 하고, 또 뾰족구두가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남편에게 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아내들이 그런 수작하면 절대 사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옷을 사다 주었을 때도 입기 싫으면 벗어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놓고 볼 때 누가 더 불쌍하냐 하면, 여자보다도 남자가 더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입고 싶은 옷이 있거든 벌어서 사 입으라는 거예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기가 벌어서 사 먹으라는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고 싶거든 먼저 사랑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사랑을 받고 나서 해주겠어요, 받기 전에 먼저 사랑을 해주겠어요? 못난 사람은 받으면서 좋아하고, 잘난 사람은 주면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좋아요, 나빠요? 여러분, 사랑을 할래요, 받을래요?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겠어요? 남자가 사랑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을 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남자한테서 사랑받겠다고 하지 말고 ‘당신 사랑은 안 받겠소. 당신 사랑은 안 받겠으니 내 사랑 맛 좀 보시오. 당신 지금까지 혼자 사느라 얼마나 불쌍했어요? 이땅을 개척해야 할 외로운 개척자의 사명을 하느라 얼마나 서글프고 비참했어요? 어머니가 반대하고 누나가 반대하고, 형님이 반대하고, 동생이 반대하고, 동네방네 다 반대하는 가운데 이런 일을 해 왔으니, 이제 내가 어머니 대신, 누나 대신, 누이동생 대신 사랑을 주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됩니다. 형님이 와서 무슨 사정을 한다고 해서 아내한테 떼를 쓰거나 하면 안 되거든요. (웃음)

어저께 우리 효진이가 형님이 일본으로 간다고 작별 인사할 때 악수를 청하니까 싫다면서 악수도 안 하고 키스도 안 하더군요. 형님이 악수를 청하는데 싫다고 안 하는 것을 보면서 동생이 형보다 낫구나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남자끼리 껴안고 키스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웃음) 나도 아침에 수염을 안 깎고 애들한테 뽀뽀를 해주면 ‘아!’ 합니다. ‘기분 좋아 나빠?’ 하면 애들은 ‘기분이 좋긴 좋은데 침같은 것이 있어서 아파’ 합니다. 그래서 저희들끼리도 보면 형님보다도 누나들이 키스해 주면 아주 좋아해요. (웃음)

이런 것을 두고도 상대적인 입장에서 보면 남자들은 불쌍해요. 생각해 보세요. 통일교회 남자들이 얼마나 불쌍한가. 지갑을 뒤져봐도 돈 한푼은 커녕 종이 짜박지도 없다는 거예요. 손수건도 없어서 옷 떨어진 것을 잘라서 손수건 대신 가지고 다니는데 그것도 펴보면 구멍이 다 뚫어졌다는 거예요. 그렇게 처량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엔 중대한 뜻이니 뭣이니 하면서 사냥을 한다고 다니는데 꿩 한 마리 못 잡아온다 이거예요.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1년 2년 3년…. 그러니 그 위신이 어떻겠어요?

여러분 중에서도 믿음의 자녀 있는 사람 손들라고 하면 손은 드는데 실지로 믿음의 자녀를 찾아보면 없다는 거예요. 이제는 내가 속지를 않아요. 옛날에 내가 멀리 사냥을 갔다가 꿩 한 마리도 못 잡고 돌아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패잔병의 서러움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그 누가 볼까봐 몰래 들어왔어요. (웃음) 여러분도 할 수 없이 전도를 나가서 어디 앉아 가지고 ‘믿음의 자녀, 믿음의 자녀’ 하며 부르고 있다고 해서 됩니까?

사격을 하기는 하는데 하나도 안 맞는다는 거예요. 쏘긴 만 발을 쏘았는데, 한 발도 안 맞는 거예요. 그건 왜 그러냐? 정상적인 교육을 못받았거든요. 그것을 선생님도 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낮이고 밤이고 꽝꽝 소리를 내며 쏘아대라는 거예요. 그래도 남들이 지나다 보면 ‘총 쏜다’고 하지 ‘헛총 쏜다’는 말 안 합니다. (웃음) 지금까지는 여러분이 고생하면서 헛포를 많이 쏘았습니다. 헛포 많이 쏘았지요? 「예」 그러면 언제 진포를 쏠 것입니까? 지금까지는 헛포를 쏘았는데 헛포를 쏜 목적이 무엇입니까? 진포를 쏘기 위해서지요.

그러면 진포 중에서도 최고의 진포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상대입니다. 그러니 그런 일을 하다가 한 여자를 떡 만나게 해주셨으니 그 여자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겠다고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뜻 가운데서 아무런 실적은 없지만 뜻길을 간다고 가다 보니 한남자를 만났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우리가 불쌍한 사람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들어와 가지고 지금까지 7년노정이니 뭐니 하다 보니 언제 어머니나 할머니한테 사랑받아 봤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은 그 여자를 통해서 이제껏 어머니한테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받아보고자 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지금까지 종교는 남자들이 이끌고 나왔습니다. 수천년 동안 남자들이 지시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를 조금 헤쳐 보면 자기 누이동생이고 누나라는 것입니다. 좀더 깊이 헤쳐보면 자기 어머니 대신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자는 어머니를 대신하고 누나를 대신하고, 누이동생을 대신하고, 그 다음엔 ? 아내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왜 남자를 먼저 동정해야 되느냐를 생각해 봐요. 에덴 동산에서 해와가 타락할 때 남자를 동정했어요, 안 했어요? 동정을 한 것이 아니라 살짝 속였지요? 그러니까 여자들이 남자들을 먼저 사랑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 여기 있는 남자들이 누구입니까? 남편이 아니고 아들과 같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아내가 아니고 뭐라고요? (웃음) 어머니입니다.

34-201
인류의 참부모로 오시는 재림주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슨 사랑을 잃어버렸느냐? 부모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자녀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부부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형제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전부다 복귀해야 됩니다. 그러면 맨 먼저 무엇을 복귀해야 됩니까? 부모의 사랑을 복귀해야 됩니다. 자, 보라구요. 에덴 동산에 아담이 있었고, 해와가 있었고 천사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 동산에는 타락하지 않은 선한 남자와 선한 여자와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도 그와 같은 입장에서 해야 합니다. 탕감조건을 세워도 그 모양이 같은 것입니다.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세계를 둘로 딱 갈라 놓으면 세계적인 남성이 있고, 세계적인 여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세계적인 천사장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천사세계에 해당하는 영적인 현상이 누구와 관계를 맺고 나오느냐 하면 여자와 관계를 맺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누가 많이 숭상했습니까? 여자들이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는 세계적인 탕감복귀시대가 됩니다. 영적인 현상도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계에 나타나는 모든 일도 저절로 혼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영계와 접해 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걸 잘 알지요? 중간 영계를 통해서 그런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타락한 세상입니다. 타락한 세상이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전부다 타락한 남자요, 타락한 여자요, 타락한 천사세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대하실 수 있는 남자가 있어요, 없어요? 없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를 구해 줄 남자가 와야 됩니다. 그가 메시아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님입니다. 이분은 세계를 대표한 남자입니다. 또한 세계의 남성을 대표한 분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타락한 세계의 남편은 누구냐? 천사장의 후손이기 때문에 천사장의 실체입니다. 그러므로 본래의 남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지금까지 독신생활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하지 않은 본래의 남자가 와야 합니다. 그 남자가 누구냐? 재림주님입니다. 그 재림주는 누구냐 하면 인류의 참된 부모인 것입니다. 타락이란 거짓부모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거짓부모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인류는 거짓부모의 아들딸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의 아들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남자를 먼저 지었기 때문에 이 땅 위에 남자를 먼저보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 위에 온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나서 이 땅에서 해와를 찾아 신부로 맞이해야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담을 짓고 나서 그 아담을 본떠 가지고 해와를 지었기 때문에 아담으로 말미암아 해와라는 한 여성이 찾아져야 되는데, 여기에 천사장이 끼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인연이 세계적으로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살고 있는 데 난데없이 다른 한남자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나 혹은 다른 종교를 믿는 아내를 좋아하는 남편은 별로 없습니다. 자기 아내가 예수를 열심히 믿으면 거기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사랑해야지 왜 예수를 자기보다 더 사랑하느냐는 거예요. 그렇게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길을 개척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남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잃어버린 본래의 남편을 찾기 위해 나오는 여자들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교를 믿고 나오는 이 세계의 여자들은 누구 편입니까? 오시는 주님편입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누구예요? 「천사장입니다」 그 천사장 입장이기 때문에 자기의 주장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동을 똑똑히 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이 세계는 뭐냐? 영계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영육을 중심삼은 천사세계의 남자들입니다. 기분 나쁘지요? 에덴 동산에 천사가 있어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천사는 아담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면 안 됩니다. 해와를 반대해서도 안 됩니다. 타락이 뭐냐면, 천사가 해와와 아담을 반대로 사랑한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시킨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와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천사장의 입장에서 해와를 위해 주고 아담을 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를 믿는 아내를 자기보다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아내가 종교를 중심삼고 오시는 주님을 위해 정성을 들이면 거기에 같이 협조해야 되고 같이 가야 됩니다. 이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오시는 주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면, 아버지입니다. 그렇지요? 참아버지격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참아버지는 참어머니를 찾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어머니는 참아버지를 중심삼아 해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래는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4-204
참아버지 참어머니가 되려면
에덴 동산에서 해와가 아담을 유인함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낳았습니다.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여자가 생명된 아담을 해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해산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키워야 됩니다. 그러니 원래의 원칙 대로 보면 이 천지간에는 여자를 맞을 수 있는 남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는 남자를 누가 낳아 주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누가 낳아야 됩니까?

그래서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를 낳았던 것입니다. 낳는 데는 그냥 그대로 낳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얽어매 가지고 전부 탕감복귀해서, 영적인 세계의 모든 질서를 잡은 뒤에 낳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선생님이 발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아들을 낳았으면 어머니가 되었는데 어머니로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머니의 도리를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어머니는 여자의 대표로써 신부의 도리도 그에게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앞으로 이런 신부를 맞아서 이렇게 교육하고 이렇게 지도해야 된다’고 가르쳐 줘야 됩니다. 신부를 기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될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리고 신부를 키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부를 교육하고 키워서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있는 그분 앞에 인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 부부, 자녀, 형제의 도리를 전부다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로서의 도리, 딸로서의 도리, 아내로서의 도리, 형제로서의 도리에 대하여 그 역사적인 모든 기원을 가르쳐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나는 이렇게 사랑해야 하고, 동생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 하는 형제의 사랑에 대한 것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한 여자가 타락함으로 인하여 한 남자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그 여자를 대하게 될 때에 어머니 대신, 누나 대신, 누이동생 대신으로 대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아내로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자도 마찬가지로 남자를 대하게 될 때에 아버지 대신, 오빠 대신, 동생 대신으로 대하고 나서야 남편으로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다 받았다는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참아버지 참어머니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누구의 사랑부터 시작해야 되느냐? 남자부터예요, 여자부터예요? 남자의 사랑부터 시작됩니다. 오시는 주님의 사랑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시는 그 주님의 종적인 사랑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종적인 사랑을 받아서 그와 똑같은 사랑이 부부간의 횡적사랑으로 뻗어 나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종적인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옛날에 그런 종적인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에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이 많았습니다. 여러분도 선생님이 좋아요? 「예」 영계를 보는 사람들은 영계에서는 선생님이 오빠처럼 신랑처럼 아버지처럼 협조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를 볼 때에는 세상의 어느 남자보다도 선생님을 중심삼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영계를 통해 보면 실감이 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기도나 몽시 가운데 선생님을 만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통일교회 다니는 여자들로서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통일교인으로서 아직 멀었습니다.

34-205
여자의 책임
지상천지에 여러분의 남편이 있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편이 될 수 있습니까? 없기 때문에 할수없이 천사장을 세운 것입니다. 천사장을 세워서 아담을 협조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님에게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래 가지고 비로소 거기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으로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아내의 사랑이 남편 사랑을 대신하고, 누나의 사랑이 오빠의 사랑을 대신하고, 누이동생의 사랑이 사내동생의 사랑을 대신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그 사랑이 남자에게 이어져서 비로소 남자를 중심삼은 아버지의 사랑, 오빠의 사랑, 동생의 사랑, 남편의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통일교회에 나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선생님과 여러분의 관계는 아담과 천사장 같은 관계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거꿀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타락할 때 천사장이 해와에게 주었지요. 다음 해와가 아담에게 주었습니다. 본래는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의 권한으로써 해와를 주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해와는 부모와 같은 입장에서 남자를 해산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칙적인 본래의 심정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뭐라구요? 어머니입니다. 원리적으로 보면 남편이 부인을 3년 동안 어머니같이 모셔야 됩니다. 3년 동안 어머니같이 모셨다는 기준에 서지 않으면 사랑도 못 합니다. 이것은 엄격한 원리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아니하고 여러분들이 그저 마음대로 야단법석을 치며 별의별 놀음 다하려고 하니 도적놈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도깨비 중의 날도깨비입니다. 원리가 딱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해 보지 못했습니다. 아들 중에서도 큰 아들 작은 아들을 사랑해 보지 못했고, 그 다음으로는 신랑된 아들을 사랑해 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아들의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자녀의 사랑,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것을 복귀하는 데는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의 순으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거꾸로 사랑함으로써 복귀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를 어머니 입장에서 위해 줘야 됩니다. 그러니 여자들은 사랑을 받아야 되겠어요, 사랑을 해주어야 되겠어요?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사랑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자들은 시집가자마자 ‘당신 날 사랑해요? 사랑한다면 얼마만큼 사랑해요? 하면서 사랑을 받으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것이 여자의 본능이라는 거예요. 옛날에 우리 할머니들, 결혼했을 때 그렇게 물어 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은 남자를 사랑해야 됩니다. 누구같이 사랑해야 되느냐 하면, 아버지같이, 오빠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는 아버지의 대신 입장이요, 오빠 대신 입장이요, 또 영적으로는 신랑과 같은 입장입니다. 그런 심정적 기준을 선생님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아버지 입장, 오빠 입장, 신랑 입장인 것입니다. 천사장이 영적으로 타락한 것을 이 몸뚱이 중심삼고 복귀해야 됩니다. 여기에 있어서 여러분은 선생님 말씀을 안 들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그러겠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시집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 시집 갈래요, 안 갈래요? 전부다 시집을 가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럼 얼마만큼 믿어야 되느냐? 해와가 믿지 못해서 타락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을 위해 통일교회의 여자들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김일성의 모가지를 떼 내려면 여자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일 빠른 방법입니다. 여자들이 위장해 가지고 가면 김일성의 안방에까지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요? 「예」 남자들이 들어갈 수 있어요? 「못 들어갑니다」 여자들, 내가 명령하면 가겠어요? 「예」 그렇다고 선생님이 여러분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여러분에게 이용을 당합니다. 내가 요즈음에도 교육하는 것은 여러분한테 이용을 당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자기 딸한테 이용당해요, 안 당해요? 오빠가 누이동생한테 이용당해요, 안 당해요? 남편이 부인한테 이용당해요, 안 당해요? 지금까지는 이용당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 절대 순종하는 것은 이용당하겠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용당하겠다는 말이예요. 여자들이 남편을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남편에게 이용당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은 시집가서 사랑받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여자들은 절대 여자의 체면을 세우지 못합니다. 점잖아야 됩니다. 그래야 남자가 마누라 방에 도둑놈처럼 함부로 못 들어오는 것입니다. 승낙 받고 들어와야 된다는 거예요. 멋대로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때가 되면 세밀하게 가르쳐 줄 것입니다. 이만하면 대충은 알겠지요? 「네」

그러니 둘이 만나면 반드시 남자가 먼저 기도하라는 겁니다. ‘아버지, 오늘은 천지가 동하여 저의 마음이 동하니 여성의 마음도 동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해 가지고 아들딸 낳고 살아보라구요. 그 집안이 나쁘지 않습니다. 남자가 그 정도는 해야 한다는 겁니다.

34-208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이 가야 할 길
여러분들이 아내를 어머니와 같이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아이가 돼야지요? 아이가 되라는 거예요. 아이가 되어서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남자가 아이와 같이 응석부리면 좋아하는 거예요.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해보라구요. 아이같이 밥도 먹여 달라고 떼 써보라는 것입니다. 어린애같이 해보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하나님이 철딱서니 없는 녀석이라고 안 합니다. 복귀도상에서는 그렇게 해야 되니까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아내에게 ‘엄마, 밥줘!’ 하게 되면 여자는 기분이 좋아서 ‘아이쿠 우리 큰애기가 나타났구만!’ 하면서 키운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타락으로 잃어버린 여자의 사랑을 여러분의 일생 동안에 복귀하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본연의 가정 기준을 복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하나님은 한 사람을 대해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세 사랑을 다 못 해본 것이 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랑을 한 사람을 대하여 다 유발시키는 자리에 서야만 심정적인 천국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문제밖에 없습니다. 그렇지요? 결과적으로 사랑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에서 하는 일이 세계적이예요, 개인적이예요? (세계적입니다) 역사에 없는 일입니다. 그저 주먹구구로 하는 일이 아니예요. 그래서 원리를 알면 알수록 그 책임이 가중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천주주의입니다. 천주주의의 주(宙) 자가 무슨 주냐? 집 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주주의에서의 주자는 방대하다는 겁니다. 통일교회는 뭘 하자는 곳이냐? 하늘 나라 가정을 이루려는 곳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천국은 혼자 들어가는 천국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들어가는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볼 때 남자와 여자가 갈라져 들어가는 곳이 천국이냐? 아닙니다. 둘이서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아버지가 들어가면 어머니도 들어가고, 부모가 들어가면 자식도 같이 가는 곳이 천국이라는 거예요. 천국에 엄마 아빠가 같이 가야지 아빠는 천국가는 데 엄마는 지옥가면 천국이 되겠습니까? 이런 입장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역사적인 종교입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가정이 되지 않고는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세계를 사랑해야 할 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가정이 갈 길이예요. 이런 길을 가는 가정이 예수가 소원했던 가정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소원하던 가정입니다. 그러면 이 가정은 예수님보다 나아요, 안 나아요? 여러분은 예수님보다 낫습니까? 여러분이 예수님보다 나아요? 여러분이 예수님의 신부 될 수 있는 그 신부보다 나아요? 말로만 낫지요? 낫다면 무엇이 나아요? 여러분이 참부모를 만나 그 참부모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더 낫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축복은 가인 아벨의 기준을 복귀한 자리에 서지 않고는 못 받는 것입니다. 부모 앞으로 돌아가려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부모에게 못 돌아가는 것입니다. 복귀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 가지고 복귀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가인 아벨을 복귀한 자리를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가인 아벨을 복귀한 자리를 넘어섰어요?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은 못 하더라도 재차 수습하여 가지고 그런 자리에 서기 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 일을 맡아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가야 할 길이 그 길입니다. 그런데 축복을 미리 해 준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의 특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축복을 받는 것은 여러분이 받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특권을 통해서 받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선생님 것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약적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내적 기준을 마무리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안팎의 가정으로 그 입장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즉, 아벨 가정인 선생님의 가정 앞에 여러분의 가정이 가인 가정의 입장으로 서는 길 밖에 없어요?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은 그 기준이 안 되었지만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는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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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에 있는가
그러면 여러분 가정을 중심삼고 선생님의 가정 대신 아들의 가정의 입장에서 가인 가정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 가정을 세우기 위해 여러분이 종족복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족적인 메시아가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요셉 가정의 형제들이 하나되는 입장의 자리요, 사가랴 가정에 있어서 형제들이 하나되는 입장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복귀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가인적 가정의 조상이 되는 것이고, 또한 장손적인 가정이 되는 것이며, 선생님 가정은 아벨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적 삼위기대를 복귀해서 선생님 가정이 중심이 되어 사위기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중심이 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원칙에 부합되지 못할 때는 천국에 못 갑니다. 인간 타락 이후 아담 가정에서 가인 아벨 셋이 전부 따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지금까지 가정을 이루지 못한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세상에서는 형제들이 한 가정으로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복귀는 가정을 이루어서 부모의 가정까지 겸해서 넘어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가는 단계는 뭐냐? 믿음의 세 아들딸을 세워서 자기 가정과 완전히 하나되어 부모의 가정을 모시고 가야 합니다. 그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딱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들, 지금 천국에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못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못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노력은 하겠지만 아내를 안고 사랑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그 기준을 넘어왔습니다. 기성교회의 3대 종파, 기성교회의 대표적인 종단들이 전부다 반대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개인적인 기반을 닦기 위해 가정을 버리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어디에 가서 찾아왔느냐? 이북의 원수들에게 가서 찾아왔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북에 가서 사위기대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한 아들과 여자 셋을 찾아 가지고 내려왔어요. 이것이 바로 그런 형태입니다.

투쟁하여 얻은 그 모든 기반을 중심삼고, 그 아들딸을 중심삼고 복귀의 터전을 넓혀 나왔습니다. 원리적 견지로 보면,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출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기반이 닦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30여년 동안 직접 기반 닦는 기간을 지냈던 것입니다.

선생님도 40년간 그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만 40세가 되던 1960년을 맞아 안팎으로 탕감해야 할 것이 전부다 갖추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역사적인 새로운 출발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도 1960년에 세계적인 전환점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3년 기간이 뭐냐 하면 축복받은 사람들을 쫓아내는 기간입니다. 선생님이 성진 엄마를 버리고 나가서 그 길을 닦아오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런 길을 가야 됩니다. 거기에는 자기 사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거기엔 선생님이 후원을 해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거쳐가야 될 길임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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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가 머리 숙일 규범을 세우는 가정이 되라
결혼한 사람들이 뜻을 떠나서 생활을 하다가 다시 들어오면 받아주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여기에 들어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축복받으려면 7년 동안 수절해야 됩니다. 7년이 뭐예요? 원래는 21년 동안해야 되는 것입니다. 21년이 아니라 일생 동안을 해야 돼요. 박정화! 「예」 이제 큰일났구만.

지금까지 이 구렁텅이를 메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했고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이것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이 나와 가지고 안팎의 모든 것을 파헤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공식적 사랑을 중심삼은 공식적인 개인과 공식적인 가정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개인이 가는 데는 가정도 가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세계 어디를 가도 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의 가정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환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통일천하가 되면 그렇게 되겠지요?

선생님이 그 집 안방에 들어가서 그 가정의 부모가 되고 사랑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 집에 들어가 살더라도 전부다 자기들의 영광으로 알아야지 십자가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여러분을 축복해 주고 나서 선생님이 여러분의 집에 가서 살아도 되겠어요? 「예」 여러분은 축복받고 3년 동안 모심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이 땅 위에서 3년 동안 모심의 생활을 못 하고 저나라에 가면 천추에 한이 남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시는 생활법도를 다 모르지요? 이건 아직 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때가 되면 전부다 가르쳐 줄 것입니다. 모실 때는 세상의 어떠한 효자보다도, 역사상의 어떠한 충신보다도 정성을 다해서 모셔야 됩니다. 천하가 이런 가정의 규범에 머리 숙일 수 있는 심정적 기원을 만들기 위해서 가는 길이 통일교회의 가는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알겠지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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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아버지, 우리의 갈 길이 우리 자신의 공식이 되어야 한다는 이 뜻에 대하여 맹세하는 모습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또한 이 공식은 모든 것을 요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요, 근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아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세계와 대결하면 세계가 무너질 것이요, 나라와 대결하면 나라가 무너질 것이요, 원수들과 대결하면 모든 원수의 아성이 무너질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저희들은 오늘날까지 아버지의 사랑을 본받아 따라 나왔습니다.

저희들은 아버님께서 지금까지 이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당신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수고해 나오신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이옵니다. 하오나 이 민족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리는 자리에로 이들을 몰아내야 할 아버님의 대신 사명이 있는 것을 아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전통적인 당신의 사상을 상속받는 자리는 어떤 안일한 안방이 아니라, 일선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일선은 국가뿐만 아니라 세계를 대표하는 자리요, 아버지와 사탄이 상봉하는 그런 경계선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야말로 역사적이요, 천주사적인 자리이옵니다. 하오니 그 일선엔 그런 내용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또 그 자리에서만 아버님의 거룩한 아들딸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날 저희가 안일한 자리에서의 모든 문제를 전부다 박차 버리고 시련과 고통이 극한 자리에 설 때 아버님만이 저희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아버님만이 저희의 사정의 동역자가 되어 주신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리하여 저희가 아버님과 더불어 그 나라와 그 세계에 대한 모의공작을 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었다 할진대, 저희는 이 땅의 그 누구보다 행복할 것이옵니다.

그런 아들딸이 있으면 마음의 세계에 생존하는 수많은 양심가들은 그들의 마음을 따라 그 아들딸이 지향하는 뜻을 위하도록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영적으로 세우시고, 또 이렇게 하여 전체가 한때의 승리적인 세계형을 갖추도록 하기 위하여, 외적으로 준비해 나오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은 나 홀로 있지만 외적인 세계는 이미 우리 뜻을 위해 전진적이고 승리적인 판국을 넓히면서 우리를 모시기 위해 찾아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얼마나 되옵니까?

하오니 아버지여, 이제부터라도 자기 스스로의 자세를 가다듬어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목적과 사명 앞에 강하고 담대했던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어떠한 가나안 7족이 창칼을 겨누고 기다린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사랑의 폭탄을 품고 가면 그 누구도 당하지 못한다는 심정을 가지고 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뭇 자녀들이 이곳을 그리워하는 곳곳마다 당신의 거룩한 승리의 영광이 같이 임하시옵소서. 최후의 위로와 최후의 권고로 스스로를 다짐하게 하여 이 땅 위에 맡겨진 책임과 이때에 남아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끔 안팎으로 격려해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남은 4개월을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시옵고, 금년도가 70년대를 대신할 수 있는 완전한 기틀을 마련하여 아버지 앞에 봉헌해 드릴 수 있는 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앞으로 다가올 저희들의 행사 위에도 당신의 놀라우신 가호를 베푸시어서 승리의 한 터전이 저희들 환경 가운데 으스러짐이 없이 세워져 나가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이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원하오며,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