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4 to 33-61: 선악의 분기점

선악의 분기점
1970.08.02 (일), 한국 전본부교회

33-24
선악의 분기점
[기 도]

오늘은 8월의 첫 주일이옵니다. 저희들은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아버지가 계신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일년 365일을 지내면서 어떠한 한 날도 당신 앞에 기쁨의 날이 되어 있지 못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게 되옵니다. 그와 같은 날들을 넘고 또 넘고, 보내고 또 보내며 살아가고 있는 저희들이 인생 노정에 있어서 언제 슬픔의 날을 가로막고 영광의 날, 기쁨의 날을 당신께 찾아 드릴 수 있는 자신이 되어 봤으며, 언제 그런 자신으로서 하루를 아버지 앞에 바쳐 드려 봤는가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족한 저희들임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이런 모습으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인류를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더우기 이 삼천만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해방 이후, 당신이 이 땅 위에 섭리의 뜻을 나타내시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 민족은 갈 곳을 알지 못하여 당신 앞에 얼마나 많은 슬픔을 남게 했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이 민족을 다시 한 번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틀림없이 풀린다고 당신이 말씀하셨사옵니다. 마찬가지로 이 민족을 대한 저희들의 염원이 있고 세계 인류를 대한 저희 들의 슬픔이 있다 할지라도, 당신이 참고 나가시며 다시 소망을 두고 있는 이 나라 이 민족이요, 이 세계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도 새로운 소망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지금까지의 부족함과 잘못에 대하여 대신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할 책임자가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슬픔의 모습을 억누르고 제사장의 피묻은 옷을 입고 지성소를 향해 아버지 앞에 엎드리지 않으면 안 될 저희들이라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느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 민족을 사랑하시는 당신의 깊으신 마음과 이 민족을 위하여 찾아오신 당신의 수고로우신 노정을 받들어서 오늘날 저희들이 얼마나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고 모실 수 있는 가를 생각하게 될 때, 언제나 부족함을 느껴야만 될 저희 자신들인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저희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나가는 데 있어서 이 민족과 이 세계를 잊어버렸사오나, 당신은 어느 한때 이 민족과 이 세계를 잊으신 때가 있었사오며 어느 한때 인류를 잊어버리고자 하신 때가 있었사옵니까?

외로움에 사무칠 적마다 앞으로는 인류로부터 부정을 당하지만 뒤로는 그 인류를 다시 붙잡으려는 아버지셨사옵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부자의 인연을 찾아 나오신 아버지의 입장인 것을 저희들은 말뿐으로가 아니라 직접 체휼하여야 되겠사오니, 이것을 저희 자신 자신들이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흘러가는 역사노정에 있어서 1970년도도 이미 반년이 지나갔사옵니다. 오늘은 음력 7월 초하루, 양력으로는 8월 초이틀이옵니다. 1970년도의 일년 가운데 반년을 지내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때가 되었사오매, 아버님, 저희들은 또 새로운 각오를 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언제나 당신 앞에서 저희 자신들을 책하고 남기신 뜻 앞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사오나, 그 자체가 당신이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 하실 수 있는 일이 못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이 얼마나 딱하고 불쌍하신 분인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당신 앞에 벌거숭이와 같은, 어린양과 같은 적자가 다시 되어야겠사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어서 어머니 아버지 앞에 모진 수난 전체를 맡기는 어린애와 마찬가지로 저희들도 당신 앞에 어린애가 되어서 모든 것을 맡겨야겠사옵니다. 당신이 흥하면 저희들도 흥하고, 당신이 슬퍼하면 저희들도 슬퍼하고, 당신이 기뻐하면 저희들도 기뻐하고…. 이렇게 당신과 일체의 심정을 가져야겠사옵니다. 그리고 점점 자람에 따라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아버지의 소원을 대신하여 설 수 있기를 바라는 아버지 앞에 저희들은 그와 같은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되겠사옵니다.

저희들에게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이 있었사옵니다. 누구든지 그 어린 시절을 동경하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무한한 은사와 무한한 복으로써 품어 주시던 기쁘기 한량없던 그때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자라면 자랄수록 그 어린 시절을 붙들고 살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바라는 앞날을 위하여 그 어린 시절을 잊어버리고 가야 될 줄로 아옵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 저희 자신들이 어떠한 자리에 서 있는가를 스스로 반성해야 되겠사옵니다.

나 자신이 유아기에 있는지, 소년기에 있는지, 청년기에 있는지, 혹은 장년기에 있는 지, 노년기에 있는지를 스스로 반성하게 될 때,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유아기를 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무리 나이가 어리더라도 유아기를 지나 성장한 자리에서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될 수 있는 엇갈리고 뒤바뀌어지는 자리에 처해 있는 각자의 심령인 줄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를 무한히 흠모하고 아버지의 심정 앞에 무한히 어려 가지고, 당신이 슬퍼할 때 저희들도 슬퍼해야 되겠고 당신이 의분심에 불탈 때 저희들도 의분심에 불타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아들딸들이 여기에 있사옵니까? 그런 자녀가 있다면 그는 아버지 앞에 있어서 불쌍한 모습이옵니다.

부모의 심정에 대해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자식의 인연을 가진 자가 어디에 있겠는 가를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이 슬퍼하면 저희들도 슬퍼해야 되겠고, 당신이 기뻐하면 저희들도 기뻐해야 되겠고, 당신이 싸우면 저희들도 싸워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원통해 할 때 저희들도 원통해 해야 되겠사오며, 당신이 애달파할 때 저희들도 그 애달픈 심정에 동조하는 자리에 서야 하겠사옵니다. 그래서 부모의 원수가 있거든 참지 못하고 그 원수를 갚기 위해 몸부림쳐야 되겠사옵니다.

부모가 어렵고 외로울 때 밤을 지새워 가면서 그 어려움을 같이 겪고 그 부모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 자기 일신을 망각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있다 할진대, 그 아들딸들은 부모의 소원을 몽땅 대신할 수 있을 것을 아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그를 뜻 앞에 세우고자 하실 것이고, 아버지의 마음은 그를 따르고 아버지의 심정은 그를 옹호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여기에 많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는 멀리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계시옵니다. 저희 각자는 자기 자신들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될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를 위하여 태어났기에 아버지를 위하여 살아야 하고 아버지를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당신의 귀한 생명을 받아 태어난 보람이 없다는 것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들을 밝은 태양빛에 낱낱이 비추어 보게 될 때, 얼마나 흠이 많고 얼마나 더럽혀졌으며 얼마나 아버지 앞에 내세우기에 부족한 자신인가를 스스로 제삼자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비판하여서 아버지 앞에 참소할 줄 아는 자신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거룩하듯이 저희들도 거룩하기를 바라던 아버지께서 이와 같은 저희 자신을 바라보시게 될 때, 얼마나 낙심천만하실 것인가를 저희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사옵고 그런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저희의 마음들을 불꽃 같은 눈으로 살피시옵소서.

죄악의 쓴 뿌리가 남아 있는 저희들은 아직까지 당신 앞에 나타나기에 추하고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드러내시옵소서. 그래도 버릴 수 없는 아버지의 사연과 역사적인 생명의 인연이 연결되어 있기에, 천륜의 원칙을 세우신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을 아옵니다. 이런 저희들을 붙들고 안타까와하시는 아버지의 불쌍한 모습을 저희들이 바라 보면서 한없는 눈물로써 위로해 드리고 아버지로부터 부활의 은사를 받을수 있는 긍휼의 마음, 동정의 마음이 저희들 일신 가운데, 저희들의 몸마음 가운데 다시 일어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는 저희들을 위하여 몇 번이고 불러 주셨사옵고 몇 번이고 충고해 주셨사옵니다. 저희를 몇 번이고 세우시며 바라고 나오신 아버지를 동정할 줄 모르던 저희 자신이었던 것을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동정은 고사 하고 아버지를 저주했사옵고, 저주뿐이 아니라 원수의 자리에 서서 역사 과정에서 아버지를 배척하며 나왔던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용납받을 수 없는 저희 자신들이옵고, 아버지 앞에 체면과 위신을 세우기에 부족한 자신들인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긍휼하신 사랑과 무한하신 자비와 은총의 봄동산을 맞이할 수 없는 불초의 몸이 된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난날을 생각할 때, 눈물어린 장면들이 많았었사옵니다. 그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사정도 많았사옵니다. 오늘 이 짧은 생애노정을 거치면서 당신의 뒤를 따라온 저희들에게도 그러한 길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역사초부터 역사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오셨고, 다시 역사 말까지 움직여 나가셔야 할 아버지의 피어린 노정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는 얼마나 불쌍한 분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아버지를 동정해 드려야 되겠사옵니다.

저희의 동정이 필요하신 아버지였사옵고 저희의 믿음이 필요하신 아버지였사오며 저희들의 사랑이 필요하신 아버지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가 어떤 자리에서 아버지를 사랑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내가 어떤 모습을 갖추고 당신 앞에 나타나 당신의 아들이라고 스스로 직고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모습들이요 용납 받기에 부족한 모습들이옵니다.

이러한 저희 자신들을 대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이라고 부르실까봐 아버지 앞에 나타내기를 꺼려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런 마음이 저희들의 전체의 환경을 얽어매게 할 줄 아는 자리, 혹은 자기 자신을 부정할 줄 아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렇게 하는 모습이 부모를 반대하고 나와 탕자의 입장에서 불효하던 아들딸의 모습인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쫓겨났던 아들이 아버지가 그리워 아버지가 계시는 집을 찾아와 가지고 담을 넘어다보면서 옛날에 가졌던 기쁨의 한때를 그리워하고, ‘아버님이여,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밤을 지새워 눈물 흘림으로써 그 처량한 모습을 아버지께서 보시고 다시 찾아줄 수 있는 그런 자리라도 구하여야 할 것이 저희 심정인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이제 8월을 맞이하였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지나간 모든 날들을 잊어버려야 되겠사옵니다. 한 고개 넘고 잊어버리고, 또 두 고개 넘고 잊어버려야 되겠사옵니다. 이제는 저희들이 갈 길이 멀지 않은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시점에 서서 언제나 이때가 중요한 때라고 주장하던 날들이 많이 흘러가 버린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저희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의 위치를 잃어버렸사옵고 자기의 중대한 가치를 잃어버린 때가 많았사옵니다.

가까와 온다고 하던 그때가 수천년 역사를 거친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는 때에 선 것만 해도 감사해 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일생을 바쳐서 때가 온다고 증거했지만, 그때를 맞지 못했어도 그것을 한하지 않고 변함없이 사랑할 줄 아는 아들딸은, 그때를 중심 삼고 그때와 더불어 산 아들딸이옵니다. 이것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언제나 눈 앞에 보이는 것만 좋아하고 있사옵니다. 자기의 몸에 플러스되는 것을 좋아하는 타락한 인간들처럼 살고 있는 저희들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그것만이 행복이 아닌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타락한 후손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기뻐할 때는 당신이 슬퍼하실 수 있고, 저희들이 슬퍼할 때에는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양면의 현실에 부딪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가는 길이 아무리 슬프더라도 여기에 비례되어 당신 앞에 기쁠 수 있는 일들이 있게될 때에는, 이것이 아버지 앞에는 영광이요 자랑이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가중된 십자가를 짊어지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아버지 앞에 몇천 배, 몇만 배의 기쁨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소망으로 삼고 가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이는 기필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그럴 수 있는 아들딸들이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가운데 많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지금 당신의 자녀들은 40일 전도 기간을 맞이하여 남한 각지에 널리어서 활동하고 있사옵니다. 이 기간 동안 아버지를 대하여 충성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으면 거기에 친히 찾아 가시어서 동고동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제가 외로울 때 당신이 위로하셨듯 그들에게도 이와 같이 위로하여 주시옵고, 제가 한없이 슬플 때 당신이 슬픈 마음을 억제하시고 위로해 주셨듯이 그들 위에 그렇게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도 찾아 주지 않는 자리에 당신께서 찾아 주는 기쁨을 맞는 그날, 그 시간은 그들의 일생에 있어서 영광의 한 시간이 되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들을 기억하시사 친히 찾아 주셔서 품어 주시옵고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와 인연되는 사람들은 영원히 인연되는 것이요, 그런 가운데서 인연된 환경은 그의 일생을 통하여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승리의 터전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한 인연을 많이 갖고 그러한 환경을 많이 거쳐가는 사람은 아버지 앞에 아니갈래야 아니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8월 한 달을 당신이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고, 남아진 1970년도를 당신께서 맡아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사옵니까? 달갑게 짊어질 수 있는 여유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 슬픔의 고생길이 있사옵니까? 힘차게 갈 수 있는 강한 체력을 주시옵소서. 당신이 극복하고 또 극복하시어 싸워 나가시는 그날까지 저희들도 참고 싸워 남아지는 자신이 되겠다는 굳은 결의가 용솟음치고 의욕에 불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해외에 널리어서 외로운 한 나라를 붙들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은 아들딸들이 있는 줄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백성을 중심삼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개척도상에 서있는 , 선조의 책임을 물려받은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잘못하게 될 때 그것이 그 나라의 잘못으로 남아질까 두렵사오나 그들이 잘하게 될 때는 그 나라가 구원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한 사람이 길을 잘못 가게 되면 다음 사람이 몇 배의 수고를 하여 이것을 보충해도 개척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아버님이시여, 그들의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부디 지치지 말게 직접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하루하루 생활 가운데 아버지께서 살아 계신 것을 입증시켜 어려운 환경을 극복케 하여 주시옵고 개척자의 사명을 짊어진 그들에게 소망을 주시옵고, 하루하루가 힘찬 생활로 연속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민족복귀에 있어서 하나의 거룩한 주춧돌을 놓는, 아버지께 지극히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천상세계에 간 아들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식구들을 하나로 규합하시옵소서. 땅과 하늘, 낙원과 지상의 중간에 다리를 놓아 그 거리를 단축시켜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그들에게 시대적인 혜택을 허락하시어서 땅 위에 있는 선한 후손들을 중심삼고 자유로이 이 땅 위에 와서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이 길이 하늘 가는 길임을 믿을 수 있게끔, 당신이 친히 수많은 영계를 동원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북을 갈라 놓은 원한의 삼팔선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그 한날이 와야만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밖에 믿을 것이 없사옵니다. 벌거숭이와 같은 저희들이 누구를 따라가겠으며 누구를 의지하겠사옵니까 ? 아버님이여, 보잘것없는 저희들의 마음을 모아 아버지 앞에 정성들이는 이 시간, 저희들의 사정과 저희들의 애원을 들어 주시옵소서. 북녘 땅의 원수들이 아무리 강하고 드세다 하더라도 하늘의 봄날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 하게 될 때, 이 강산의 모든 백성들이 마음 깊이 새로이 아버지를 추앙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라를 잃어버리기 전에 아버지를 잃어버릴까 두렵사옵니다. 여기서 아버지를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무엇보다 하늘의 인연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민족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이 짊어진 책임이 얼마나 막중하다는 것을 가일층 느끼면서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고 개척자의 사명을 하여야 할 내 모습이 이래서 되겠느냐고 스스로 반성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한끼의 밥을 먹고서도 스스로 다짐하고, 아침에 태양을 바라보면서도 스스로 다짐하고, 한밤에 별을 바라보면서도 스스로 다짐하며 거룩한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의 모든 것을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의 마음과 몸을 온전히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당신이 기뻐하시는 세계로 저희들을 이끌어 인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

33-32
말 씀
오늘은 ‘선악의 분기점’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33-32
하나님께서 고심하시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여러분이 보편적으로 알다시피 선한 세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선을 지향하고 선의 목적을 세워 나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활방식 자체가 선하지 못하다 할진대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 역시 선하지 못한 것이며, 그 사회가 선하지 못하다 할진대 그 국가 역시 선하지 못한 것입니다. 선하지 못한 국가가 많으면 세계 역시 선하지 못한 세계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온 역사과정을 생각하고 지금 현시대를 생각하고 미래에 남아질 수 있는 한때를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이 전체 분야를 앞에 놓고 선의 중심을 세워서 자기 자신이 선의 한 목적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심히도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수많은 성인현철들이 왔다 갔습니다. 그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오늘날 살고 있는 우리들 자신보다도 더 위대하고 더 의욕적이고 더 강한 사람들로서 그 시대의 모든 역경을 타개한 위인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하고도 훌륭한 인격자로서, 그들이 선을 추구하려고 몸부림치며 나갔던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죽음과 엇바꿔 가면서, 혹은 수난을 당하고 생애를 희생시켜 가면서 선의 한때를, 선의 한 곳을 추구해 나왔던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은 세계적으로 보면 세계적인 선도 있을 것이요, 국가적으로 보면 국가적인 선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민족적으로 보면 민족적인 선, 가정적으로 보면 가정적인 선. 개인적으로 보면 개인적인 선도 있을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은 선과 가정을 중심삼은 선과 종족을 중심삼은 선과 민족을 중심삼은 선과 국가를 중심삼은 선과 세계를 중심삼은 선은 일치되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일방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즉, 동쪽 입장으로, 서쪽 입장으로, 남쪽 입장으로, 북쪽 입장으로, 이렇게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고 볼 때도,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전부다 다릅니다. 각기 선조가 다르고 얼굴과 말과 모든 행동이 천태만상이듯이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선의 방향도 각기 다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과 이러한 형상들, 이러한 무리들을 놓고 경륜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개인적 선의 방향을 어떻게 하면 전체 목적을 위하여 갈 수 있는 선의 방향에 일치화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먼저 이렇게 각기 다른 선의 방향을 하나의 방향으로 규합하는 운동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것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규합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필요한 그 무엇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사회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초민족적으로, 초국가적으로 횡적인 인연을 갖추어서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생각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향을 제시해 주기 위한 것이 오늘날 우리의 역사과정에 나타난 수많은 종교였습니다.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선을 추구하되 자기들 나름의 양심의 방향에 따라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양심의 방향이 동쪽이면 동쪽, 서쪽 이면 서쪽을 중심삼고 선을 추구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개인이면 개인의 봄절기가 있을 것이요, 가정이면 가정의 봄절기가 있을 것이요, 국가면 국가의 봄절기가 있을 것이요, 세계면 세계의 봄절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운세를 중심삼아 가지고 봄절기의 방향을 맞추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봄절기가 국가적인 봄절기와 맞아 떨어져야 되고, 국가적인 봄절기가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의 봄절기와 맞아 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방향을 일치화시키지 않고는 전세계 앞에 보편성과 타당성을 갖추어서 선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으로부터 출발해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일치된 방향을 어떻게 제시 하느냐 하는 문제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크나큰 문제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종교가 있어야 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 종교는 어떠한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고 출발했더라도 그 민족에 제한될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가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가도록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세계로 하여금 공히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가게 하느냐, 즉 어떻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여 거기에 일치시키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면 될수록 그러한 종교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방향의 일치화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33-34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와 종교의 역할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보아서 아느냐? 인간의 마음을 보아서 압니다. 우리의 마음을 보면 마음 자체에서 작용하는 모든 것은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능동성을 가지고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 자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입니다. 상대적 입장이라는 것은 어떤 주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으로 하여금 선을 추구하게 하고, 보다 나은 가치를 추구하게 하고, 보다 나은 선의 환경을 추구하게 하는 어떤 힘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고 일생 동안 지지하고 있는데, 자기 자체가 동기가 되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 어떤 주체와 하나된 입장에서 몸을 수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플러스면 플러스를 중심삼고 볼 때, 플러스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마이너스가 생겨나야만 됩니다. 이때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서로 상대적 존재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몸과 마음도 서로 상대적인 존재입니다.

몸과 마음이 이렇게 서로 상대적인 존재인데 어떻게 해서 이 몸이 하나 못 되었느냐? 문제는 간단합니다, 플러스인 마음이 하나되면 마이너스, 즉 상대의 입장에 있는 이 몸은 자동적으로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생각하며 나오시는가? 세계의 인류가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한 기점을 중심삼고, 너나할것없이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마음의 근원을 중심삼고, 원래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면서도 현재 상반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몸과 마음이 이 상반적인 여건을 타개해 버리고 서로 필요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서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어떻게 결속시킬 것인가를 생각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무엇을 추구하느냐? 마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은 무엇이냐? 마음 자체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나면 플러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하나의 플러스가 생겨나면 완전한 하나의 마이너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지의 이치입니다.

오늘날 우리 마음 자체가 완전한 마이너스가 된다면 완전한 플러스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마음 자체가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게 된다면 완전한 플러스를 장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것도 그러한 경지를 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참선을 통해 완전한 무의 세계에 도달해서 수평선과 같은 정적(靜的)인 경지에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것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동적인 기원, 더럽혀 지지 않은 순수한 본래의 마음 바탕에 접해 들어가 하나의 맥박으로부터 출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나의 그 맥박이 새로운 출발의 기원이 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33-36
하나님은 양심작용의 주체
운동이란 것도 혼자서는 하지 못합니다.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적 존재가 있어야 됩니다. 상대적 존재가 없이 운동하는 법이 없습니다. 작용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양심작용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힘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힘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힘이 있기 전에는 관계맺을 수 있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과학세계는 우주는 힘, 에너지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에너지가 우주의 근본이냐? 아닙니다. 그 에너지가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볼 때, 당연한 결론입니다. 우주가 존재하려면 작용이 있어야 되고, 그 작용이 있기 전에는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이 있기 전에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주체와 대상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것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이것을 이성성상이라고 합니다. 이 주체와 대상은 인간 자체에서 만들어진 주체와 대상이 아닙니다.

힘 자체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용을 하려면 그 힘을 작용 시킬 수 있는 회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주고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어 가지고는 힘은 작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장도 동맥 정맥과 같은 순환기관이 있기 때문에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작용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적인 상응관계를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힘이 존재하기 이전에 무엇이 있어야 되는가?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주체와 대상이 있기 위해서는 그 바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럼 무엇이 먼저인가? 이 세상은 선후관계를 가리지 못하기 때문에 혼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주체이고 어떤 것이 대상인가 하는 ….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세계의 모든 존재물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습니다.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는 것처럼 동식물도 모두 자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주체인가? 지금 이것이 혼돈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뒤집어져야 됩니다. 손을 놓고 볼 때, 오른손과 왼손은 이렇게 보면 마찬 가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른손과 왼손은 그 방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는 오른쪽이요, 하나는 왼쪽이라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도 모양은 비슷하지만 방향이 다릅니다. 보통 사람은 이것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그 바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바탕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이성성상입니다. 이성성상 가운데는 본성상과 본형상이 있어야 됩니다.

양심작용도 작용이 틀림없기 때문에 여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의 내용을 분석해 보게 될 때, 거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있습니다. 화학실험을 할 때 일어나는 화학작용도 전부 그렇게 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상대관계만 성립되면 당장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런 상대적 관계와 상충적 관계가 우주의 근본입니다.

그러면 상충이란 무엇인가? 플러스와 플러스는 상충관계입니다. 이런 상극이라든가 상충작용을 중심삼고 공산주의자들은 변증법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럼 상극이 나쁜 것인가? 상극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상극이 있지 않으면 원형운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전부가 서로 잡아당기기만 하면 직선만 되지 원형은 안 되는 것입니다. 자장을 보더라도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서로 잡아당깁니다. 이렇게 잡아당기기만 하면 직선이 되어야할 텐데 왜 원형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플러스와 플러스, 마이너스와 마이너스가 서로 상극작용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런 작용을 하기 때문에 원형운동과 구형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직접적 작용의 반작용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에게 양심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 양심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우리가 ‘저 사람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양심이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다 양심이 있습니다. 그 양심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든간에 사람에 게는 전부다 양심이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 어떻게 생겼느냐? 어떻게 생기긴 어떻게 생겼습니까. 잘 생겼지요. 여러분의 얼굴같이 생겼습니다. 양심과 얼굴은 안팎이라는 것입니다. 안팎은 같습니다.

그 양심이라는 것은 힘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주체가 그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내 양심이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면 완전한 플러스는 휘익 나타나는 것입니다. 도의 세계가 그런 세계입니다.

누구든지 맨 처음부터 하나님이 계신 줄 알고 정성들였어요? 여러분들은 정성들일 때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알고 정성들였어요? 그렇지만 마음의 세계를 자꾸자꾸 파고들어가게 되면 점점 그 범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직선이던 것이 점점 횡적으로 연결되어서 반응이 오고, 안테나를 통해 소리가 나는 라디오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힘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불이 온다고 그러지요?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입니다. 힘이 오는 것입니다.

그 힘이 어떻게 오느냐? 그것은 라디오 자체가 얼마나 순수하냐에 따라서 먼 거리에서 오는 전파를 깨끗하게 변환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우리가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어야 완전한 플러스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없다면 하나님도 고독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수고하시며 나오고 계시지만 수고하는 그 가운데 인간들이 몸부림치면서 잘못했다고 회개도 하고 하니까 낙심하셨다가도 다시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앞날에 인간을 중심삼은 최고의 선의 세계를 이를 수 있다는 하나의 크나큰 소망을 중심삼고 나오십니다. 과정에서는 개척이요, 혁신이요, 발전이요, 개혁입니다. 이것을 행하면서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세계적인 봄날을 향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33-39
몸과 마음의 상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상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심이 맑은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좋은 때가 될지 나쁜 때가 될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처음 만났는데도 괜히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괜히 좋다는 것은 뭐냐? 그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완전한 플러스, 즉 높은 플러스가 아니면 높은 마이너스 입니다. 내가 플러스 성품이라도 그가 더 높은 마이너스 성품이면 내가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마이너스이고 그가 더 높은 플러스일 때도 내가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플러스이고 그 사람이 나보다 더 강한 플러스일 때는 서로 맞닿으면 반발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세계에 있어서도 전기작용과 같은 작용, 인력작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심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분간하지 못할 뿐이지 그것은 여러분들의 일상생활의 움직임은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다 과학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방향과 소질에 따라 그것이 얼마만큼, 몇 퍼센트가 융합하느냐에 따라 전체의 좋고 나쁨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작용은 독자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이와 같이 되어 있는데 인간의 몸과 마음은 달라서 언제나 싸우는 것입니다. 몸이 마이너스, 마음이 플러스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뒤집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상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이너스끼리 반발하면 거기에 플러스를 집어 넣고, 플러스끼리 반발하면 마이너스를 집어 넣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상충을 벌이고 있는 인간에게 어떻게 가져다 넣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서로 상충된 입장에 있는 몸과 마음에 마이너스면 마이너스, 플러스면 플러스를 어떻게 집어 넣느냐 하는 문제를 모색해야 됩니다. 그 문제의 해결방법을 마음과 몸의 투쟁역사를 거쳐 온 인류 앞에 제시하려는 것, 다시 말해서 상반된 입장에 있는 인류 앞에 플러스나 마이너스의 어느 하나를 집어 넣자는 것이 새로운 주의 사상입니다.

이 새로운 주의 사상이 종교사상인데 이것은 신에 대한 사상입니다. 사람에 대한 사상이 아니라 신에 대한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유물론이 아니라 유심론입니다.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집어 넣어 주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에게 무슨 문제가 남아 있느냐? 신과 어떻게 100퍼센트 접촉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과 100퍼센트 접촉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신의 심정을 100퍼센트 느껴야 되고, 신을 위해 100퍼센트 살아야 되고, 신이 원하는 곳으로 100퍼센트 가야 되는 것입니다.

33-40
선과 악을 어떻게 가려 가느냐가 문제
인류로 하여금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를 향해서 하나와 방향을 갖추어 나가게 해야 하는데, 민족간에 거리가 멀면 안 되겠기에 민족들을 연결시켜 나왔고, 동서남북을 중심삼고 사방성을 갖춰서 그 중간에 있는 수많은 종교인들까지도 수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4대 종교 문화권을 중심삼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가 다 지나면 끝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끝날은 되어 오는 것 같은데, 목적지에는 다 온 것 같은데 그 목적지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책임이 크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는 무엇이냐? 선악의 분기점인 우리가 선과 악을 어떻게 가려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려 가는 데 있어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왔으니 여기에서부터 가려 가야 됩니다. 여기에서 가릴 수 없는 사람이 미국에 간다고 해서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가려 가느냐? 다 같은 통일교인이지만 선악을 가려갈 수 있는 길은 다 다릅니다. 천태만상입니다. 백이면 백 사람 다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동쪽에 선 형, 서쪽에 선 형, 남쪽에 선 형, 북쪽에 선 형 등 그 타입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 거기에는 춘하추동의 형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지 앉습니까?

하루를 중심삼고 볼 때 아침은 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낮은 여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저녁은 가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밤은 겨울절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소년기가 있고, 청년기가 있고, 장년기가 있고, 노년기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봄절기는 사춘기입니다. 여름절기는 30대이고, 가을 절기는 40대 정도입니다. 그 이후로는 겨울절기로 들어가게 되고, 동지가 넘어갈 때에 해당되면 죽는 것입니다. 모든 이치가 그렇습니다. 춘하추동이 그렇고 하루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은 천지의 법도에 따라 태어난 것입니다. 주역(周易)이 이치에 맞는 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음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상하 음양이냐, 좌우 음양이냐 하는 것을 가지고 사상(四象)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은 전부다 다릅니다. 예수님도 세 제자를 세워 예수님을 중심삼고 동서남북 사방성을 갖추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말한 사위기대는 천리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동쪽 형의 사람, 서쪽 형의 사람, 남쪽 형의 사람, 북쪽 형의 사람이 다 있습니다. 혹은 봄절기, 여름절기, 가을절기, 겨울절기의 사람이 다 있습니다. 얼음처럼 냉정하게 꽁꽁 얼어붙은 형이 있는가 하면, 그저 보기만 해도 좋은 형이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늠름하고 언제든지 뻗어 나갈 수 있는 형은 여름절기의 형입니다. 후딱 올라갔다가 후딱 내려오는 형은 가을절기 형입니다.

이런 점에서, 여러분 자신이 처해 있는 현재의 입장에서 틀림없이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그 방향에 일치시켜 나가야 하는데, 여러분이 그 방향을 어떻게 가려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형인가를 먼저 알아야 됩니다. 특히 처녀 총각들이 결혼할 때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봄절기와 여름절기를 보게 된다면 봄절기는 여름절기를 찾아가지만 여름절기는 봄절기를 추방한다는 것입니다. 한 쪽에서는 밀어젖히지만 다른 쪽에서는 끌어당기는 역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루가 지나가게 되면 점점 여름은 가까와지지만 봄은 멀어지는 것입니다. 한 쪽에서는 잡아당기고 다른 한 쪽에서는 밀어 제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형을 이루기 때문에 소생할 수 있는 길이 있지 원형을 이루지 못하면 영영 이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원형의 법도로 운행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춘하추동이 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평면상에 그려 놓으면 사인(sine)곡선을 이루게 됩니다.

33-42
선과 악을 분별하는 데는 상충이 벌어진다
여러분은 제일 먼저 선이냐 악이냐를 가려내야 합니다. 선악이 어디에 있느냐? 선악은 세계에 꽉 차있지만 선악을 가려야 할 그 분기점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계가 악하다고 할 때, 그 악한 세계와 상충이 없이 사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나는 이 세계와 상충이 없이 산다고 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타락권내에 있으면서도 그물에 걸려 있는 고기와 마찬가지로 반기를 들지 않고 그냥 살고 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악의 세계와 상충을 벌여야할 때,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악한 세계라는 것을 안다면 반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럼 왜 그렇게 되었느냐?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하여 떨어졌기 때문에 해방을 맞기 위해서는 다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고,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몸부림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는 인류가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수 없고, 새로운 역사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역사적인 선의 흔적을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들고 나온 사람들은 투쟁해야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역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변증법적 유물론, 정반합(正反合) 논리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투쟁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선과 악의 투쟁인 것입니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은 그것이 선과 악을 분별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여러분 자신은 어디서부터 선과 악을 가려내야 하느냐? 내 마음과 몸에서부터 가려내야 합니다. 내 마음과 몸 중에서 어떤 것이 선한가? 둘 다 선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이 둘 가운데 보다 선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누구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 살난 아이조차도 보다 선한 것이 몸이냐 마음이냐고 물어 봤을 때, 마음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마음편에 서 가지고 여기에 일치되지 않는 것에 대해 투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선의 기원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 마음이 보다 발전해 가지고 최고의 자리, 최종의 자리에 있는 마음이 바로 절대적인 마음입니다. 그 절대적인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33-43
인간의 마음이 개발된 최고의 경지
우리 마음 자체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완전한 마음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세계를 무한히 계발해야 됩니다 마음세계는 우주적입니다. 이것은 역사과정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계발된 마음의 기준에서 갖는 세계관은 어떨 것이냐?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계발된 마음세계의 주인이 되어서 바라보는 세계는 어떠할 것이냐? 같은 세계라도 계발되지 못했을 때의 눈으로 보는 세계에 비해 계발된 입장에서, 자각된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얼마나 다르게 보일 것이냐? 같을 것이냐, 다를 것이냐? 이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천양지판(天壤之判)이라는 것입니다. 들리는 모든 새 소리로부터 보이는 모든 만상에 천하가 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거 아니예요? 그렇게 개방된, 자유스런 마음세계에서 보는 세계적인 하나의 주권은 어떠한 주권도 그렇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다면 그렇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물에 대해 그 가치의 내용을 보다 확실히 파악하면 파악할수록 그 범위가 넓어지고, 그 높이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내적인 마음이 점점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최고로 강해질 수 있는 경지는 어떤 것인가? 석가모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우리 인간이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어 완전한 플러스인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플러스와 완전한 마이너스가 하나되면 그것은 둘일 수 없기 때문에 유아독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적이라는 것입니다. 종교가 비과학적이라고 하는 시대는 지나 갔습니다. 그 얼마나 과학적입니까?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인데 과학적이어야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바꿔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께 가고 하나님의 마음이 인간에게 오는 것입니다. 플러스 마이너스가 바꿔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게 바꿔지기만 하면 상반되었던 몸뚱이가 달라붙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겠습니까, 안 그렇겠습니까? 우리 마음에 상반되어 있던 몸이지만, 이와 같이 바꿔지기만 하면 달라붙겠습니까, 달라붙지 않겠습니까? 달라붙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적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된다는 것은 과학적이라는 것입니다.

33-44
인류는 천륜을 중심삼고 한마음이 되어야
천륜이라는 말이 있는 데 여러분은 천륜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습니까? 천륜이라는 말은 종교적인 술어입니다. 인륜 도덕이라는 말은 들어 보았지만 천륜 도덕이라는 말은 못 들어 보았지요? 그러면 그 인륜 도덕의 기원이 어디입니까? 대한민국의 헌법입니까? 그 기원을 파고 들어가면 양심에 근거합니다.

오늘날의 법은 로마법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고, 로마법이 현재의 세계의 문화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인륜 도덕은 어디까지나 양심을 근거로 합니다. 법보다는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양심의 기초는 무엇인가? 선입니다. 선을 표준하는 것입니다. 선을 벗어나서 잘못될 때는 양심이 그 잘못된 것을 시정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수한 양심에 일치될 수 있는 보편적인 사회체제를 형성하려니 법령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인륜은 어디에 근거를 두느냐? 천륜에 근거를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뺀 천륜은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인간중의 인간이다. 하나님이고 뭐고 없다. 나를 따라와라’ 하고 주장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유물론을 중심삼고 마르크스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데, 이것은 시대말적인 현상입니다. 물질을 중심삼은 주의, 그것은 물질주의이지 인간주의가 아닙니다. 인격도 없는데 무슨 인간주의입니까? 그것은 인륜에도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인 중에 이제까지 하늘을 빼 놓은 성인은 없었습니다. 성인들은 반드시 하늘의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공자도 하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늘이 복을 주고 선을 행하지 않는 자는 하늘이 화를 내린다’, 즉 ‘위선자(爲業者)는 천보지이복(天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보지이화(天報之以禍)니라’ 하고 가르쳤습니다. 여기서의 천(天)이 뭡니까? 이것은 막연하지만 하나님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성인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석가모니도 하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든 존재는 불심(佛心)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그 불심이 뭐냐? 그것은 순수한 본연의 마음을 말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늘을 빼 놓고 가르친 성인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이 천륜의 도를 중심삼고 역사를 전개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남아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천륜의 도를 따라 하늘이 제시하는 길을 걸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을 향해갈 수 있도록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까지 마음의 방향이 일직선상에 나타나게 해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중심과 통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역사의 마음과 일치되어야 하고, 개인의 마음이 가정의 마음과 일치해야 되고, 종족의 마음과 일치해야 되고, 민족의 마음과 일치해야 되고, 국가의 마음과 일치해야 되고, 세계의 마음과 일치해야 됩니다. 이것만 일치가 되면….

여러분의 마음세계는 발전합니까? 마음이 선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여자와 남자가 성격은 다르지만 그 마음이 가는 방향은 같다는 것입니다. ‘양심적이다’ 혹은 ‘비양심적이다’라는 말은 여자나 남자에게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양심적이다. 그 남자는 비양심적이다’라고 누구에게나 할 수 있습니다. ‘양심적이다’ 라고 하는 것에는 보편적이요 공통적인 내용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는 일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서부터 그 방향이 일치시켜야 되느냐? 살아 나가면서 하려고 하지 말고 처음부터 출발을 그렇게 해야 됩니다.

‘나는 누구와 사느냐? 나 혼자 산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세계와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더욱 그래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세계와 관계맺으며 살지 않았으나 이제부터는 관계맺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도 내가 대한민국에서 살지 어디에서 사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세계와 더불어 살아야 됩니다.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세계는 점점 하나의 생활권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33-46
우리의 몸 마음을 하나되게 만드는 것
오늘날 인류에게는 전인류가 묶어질 수 있는 하나의 마음적인 주체성, 만인이 공인할 수 있는 주체성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주체성을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 주체성을 중심삼은 개인의 인격관, 개인의 가치, 가정의 가치, 종족의 가치, 민족의 가치, 국가의 가치, 세계의 가치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가치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개인과 바꿀 수 없습니다. 그 세계의 가치는 개인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이 세계에 30억 인류가 살지만 그 30억 인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합해서 된것입니다.

그러한 주체적인 인격기준을 세워야 하는데 그러한 인격기준을 세우는 데는 오늘날 우리 인간 자체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한 분이 다시 보내심을 받아야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여러 종교에 남아진 재림사상, 혹은 메시아사상입니다.

그 메시아란 분은 와서 어떻게 하느냐? 자기 혼자만 잘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잘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자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다 잘 살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체적인, 양심을 중심삼은,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인격으로 강제적인 생활환경이 아닌 자연적인 생활환경을 우리 몸 앞에 제시할 때, 우리 몸이 여기에 완전히 순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몸 마음을 하나 만드느냐?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무엇이 하나로 만드느냐? ‘하나되게 하긴 무엇이 하나되게 해. 그냥 그대로 하나되지’라고 할지 모르나 남자와 여자를 하나되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합하게 하는 힘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사랑이란 남자와 여자를 하나되게 하는 힘입니다. 서로가 완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바울이 영적인 체험을 한 후에 자신이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몰랐다고 한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주체와 대상을 무엇으로 묶을 것이냐? 밧줄로 묶을 것이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그저 아무렇게나 만나 사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방향이 맞는 것이고 체질과 바탕이 맞는 것입니다. 하나는 플러스요 하나는 마이너스로서 완전한 상대적 관계가 되어 가지고, 나는 네가 죽도록 필요하고 너는 내가 죽도록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렇게 완전히 묶어져 하나가 될 때에는, 두 인격이 합해져 하나의 인격을 갖추기 때문에 두 사람 이상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오늘의 인간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에는 히피족들이 나와서 꺼떡거리고 있습니다. 보다 나은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주체성을 연결하기 위한 상대이념에 대해서는 꿈도 못 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는 망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은 그러한 주체성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인륜과 천정을 무엇으로 맺을 것이냐? 몸과 마음을 무엇으로 맺을 것이냐? 사람만으로는 절대로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천정이 가담해 들어오면 착 달라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누구보다도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되는 계명이다’ 라고 했습니다. 잘 가르쳐 줬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첫째 되는 계명의 내용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3-48
마음을 중심으로 선악을 가려 가라
선악을 가려 나가는 데에 있어서의 그 출발점은 나입니다.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를 기원으로 해서 출발해야 되느냐? 마음 입니다. 마음을 기원으로 해 가지고 가려 나가야 됩니다. 타락한 세상에 그냥 그대로 있으면 악한 것입니다. 악한 세상에 태어나서 그냥 그대로 사는 사람은 지옥행입니다. 선에 제일 가까운 양심표를 사 가지고 천국으로 가야 됩니다. 구원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가야 됩니다. 개인이 이래야 되고, 가정 ·종족·민족·세계가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옳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어야 합니다. 공인된 그 기준은 어느 누구도 변경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어야 합니다. 그 기준을 중심삼고 세계의 평화가 싹틀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선의 개인과 선의 가정, 선의 종족, 선의 민족, 선의 국가, 선의 세계가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아무리 선하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기준과 방향을 못 맞추게 될 때, 그 국가는 깨져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주의와 사상입니다. 우주관과 세계관, 그리고 인생관과 생활관, 새로운 세계의 인격관 등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모입니다. 물고기로 말하면 송사리는 송사리끼리, 미꾸라지는 미꾸라지끼리, 뱀장어는 뱀장어끼리, 메기는 메기끼리, 그 형상이 비슷하고 생활 환경이 같은 종류들 끼리끼리 모이는 것과 같이 사람들은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그리고 통일교인들도 통일교인들끼리 모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을 중심삼은 그것을 전체에 적용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파탄주의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아 합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디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느냐?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움직이고 있고, 하나님의 보호권내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우리가 선을 중심삼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악을 타개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투쟁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투쟁을 하는 데에 있어서 여기에 공격해 들어오는 것이 사탄입니다.

사탄이 어떤 틈을 통해서 공격하느냐?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사탄은 여러분의 몸을 통해서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 앞에는 몸이 사탄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마찬가지로 남자 앞에는 여자가 사탄이고 여자 앞에는 남자가 사탄입니다. 그렇게 상대적 입장에 있는 것이 언제나 사탄이 되기가 제일 쉽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몸뚱이는 뭐예요? 한집안 식구예요, 아니예요? 한집안 식구라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은 한집안 식구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말을 놓고 볼 때, 남편에게는 아내가 원수요, 아내에게는 남편이 원수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마음 앞에는 몸뚱이가 원수요, 몸뚱이 앞에는 마음이 원수인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 원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곳에 하나님이 들어와서 점령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들어와서 점령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몸을 무엇으로 마음과 하나되게 만드느냐? 무엇으로 하나되게 할 수 있겠어요?

보세요. 몸이 늙어 죽게 되었더라도 마음은 몸에게 나가서 일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라고 합니까. 아니면 몸의 사정을 봐 주면서 집에서 편안히 쉬면서 먹고 살라고 합니까? 집에서 편안히 쉬라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마음은 몸이 늙었어도 나가서 일하라고 재촉하는 것입니다. 그거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이건 서로 친구가 아니라 원수입니다. 세상에 부모를 그렇게 대하는 자식이 있다면 불효자겠어요, 효자겠어요? 늙은 부모를 대해서 자식이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불효입니다. 또한 임금을 대해서 신하가 그랬다면 간신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벌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중심삼고 보면 마음이 원수입니다. 몸뚱이는 악의 무대요, 마음은 선의 무대입니다. 이 악의 무대 가운데서 선의 무대를 닦으려면 하늘의 도리, 즉 천륜의 도리를 들고 나와야 됩니다. 그렇지요? 개인의 마음의 세계에서 심정을 계발해 가지고 천륜의 인연 앞에 그 범위를 넓혀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적인 생활관에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생활관으로 넓혀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33-50
세계를 위하는 통일교회가 되라
성인은 세계를 위하는 도리를 가르쳐 줍니다. 성인치고 자기 나라만을 위해서 충성하라는 도리를 가르치는 성인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성인이 아니라 위인입니다. 대한민국의 충신 이순신 장군이 미국에서도 충신입니까? 일본에서도 충신이예요? 일본에서는 원수입니다. 대한민국에 서만 충신이고 위인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은 대한민국에서도 충신 이상으로 모시고, 일본과 미국에서도 충신 이상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국가를 초월해서 충신 이상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왜 그러느냐? 그것은 그들이 하늘의 도리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며, 하늘을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자기 민족 위주가 아니라 세계적인 것입니다. 국가 초월의 사상을 근원으로 하는 도리를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곧, 하늘의 내용을 품고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갈보리 산상에서 그 민족에 의해 형편없이 죽었습니다. 그가 사랑했던 제자들까지도 그를 배반했습니다. 죽겠으면 죽고 말겠으면 말고 너 할대로 하라는 식으로 예수님을 버리고 갔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어떻게 오늘날 이 민주세계를 움직이는 기독교 사상권을 만들어 놨느냐? 예수님은 그때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서 하나님과 세계 인류를 위해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인류는 시시하게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세계 인류가 아닙니다. 미래의 인류, 인간이 찾아갈 수 있는 소망의 인류인 것입니다. 맞아요, 틀려요? 성인은 자기 나라를 위주로 하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것은 유대 사람으로서였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4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 만들어 가지고 한 나라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 나라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라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없어지더라도 세계를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통일교회도 통일교회를 위주한 통일교회이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위주한 통일교회이어야 합니다. 대한민국도 대한민국만을 위주로 하면 언젠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세계를 위한 대한민국이라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전체를 위하여서는 무한한 가치로서 나타납니다. 그러기에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에게 벽돌집이나 양옥집도 지어 주고, 차도 한 대씩 사주고, 자기가 해주고 싶은대로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예요. 그런 마음 있어요, 없어요? 그런 마음 바꿀 수 있어요. 양심 있는 사람은 돈이 생기는 대로 먼저 그런 일을 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양심은 환갑 잔치날을 맞았으니 이제부터는 집에서 잘 먹고 잘 차리고 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마음은 폭군 중에 최고의 폭군 같습니다. 그러나 무한한 인격을 갖추고 영원한 천륜의 심정의 세계, 선주권의 그 세계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그래야 되겠기 때문에 마음은 언제나 우리에게 폭군과 같이 대하는 겁니다. 이것이 나쁜 거예요, 고마운 거예요? 고마운 것이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도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슨 주의냐? 천주주의입니다. 천주주의는 민주주의 할 때의 주인 주(主)자가 아닙니다. 집 주(宙)자입니다. 하나님이 이 나라에 살 수 있습니까? 살 수 없습니다. 이 나라는 천주(天宙), 즉 하나님의 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못 되어서 야단이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집을 떠나서 야단이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떠난 집은 상가와 마찬가지입니다. 또, 과부나 홀아비의 입장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집이 아무리 으리으리하다 해도 그것은 미완성이요, 반쪽입니다. 그 집이 아무리 좋다 해도 그것은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집에는 주인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주인이 있느냐 할 때, 마음의 주인이 있는 것 같지요? 마음의 주인이 없으면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동으로 갈 지 서로 갈 지 알아요? 그렇지만 본심은 알거든요. 그러니 주인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여기에서 사는 것은 천년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제한된 이 하루권내에서 사니까 잘 모르지만, 여러분은 천년 만년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천년 만년을 위해서 살면, 그 천년 만년이 그를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그러한 가치가 있느냐 할 때, 천만에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왜냐? 여러분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33-52
참 종교와 거짓 종교를 분별하는 기준
마음과 몸은 서로 제일 가까운 것입니다. 또, 선악의 분기점이 어디에 있다고 했습니까? 마음과 몸 사이에 있다고 했습니다. 거기가 경계선, 분기선이라는 겁니다. 분기선이 어디에 있다고요? 나 자신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은 선한 편이요, 한편은 악한 편입니다. 그런데 선한 편을 보면 깜깜합니다. 양심은 선한 편이지요? 양심을 들여다 보면 환해요, 깜깜해요? 이건 마치 안개에 휩싸여 있는 거와 같이 깜깜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몸뚱이를 바라보면 어때요? 훤해요, 깜깜해요? 훤합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훤한 것보다도 깜깜한 것을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깜깜한 것이 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훤한 것을 부정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 종교는 가짜입니다. 종교의 도리를 보세요. 자기 혼자 잘먹고 잘살고 마음대로 등쳐 먹으라고 가르치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 반대인 것입니다. 전부다 내려가라, 세상을 완전히 부정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종교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참된 종교란 어떤 것인지 잘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은 종교 축에도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참된 종교가 되려면 무엇이든 부정해야 됩니다. 어디까지 부정해야 되느냐?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식의 사랑까지 부정해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최후에는 인륜 도덕까지도 부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누구보다도, 아들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부정하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최후까지 남아질 수 있는 종교인가 아닌가를 분별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는 종교라면 가능한 종교를 찾아가야 합니다. 내 마음에 신뢰가 가고, 이상과 사랑과 심정을 느낄 수 있고, 무한한 가치를 지닐 수 있고, 나 자신이 내적인 인격을 구성할 수 있는 은혜의 자리가 아니라면 보따리를 싸 가지고 또다시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 됩니다. 부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지금 통일교회에 대해서 세상에 소문이 많이 나 있습니다. 통일교회에 들어가면 축복이란 것을 해야 된다더라…. 그래요. 다시 해야 된다구요.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하긴 뭐 어떻게 해. 우리 식대로 하지’ 그런 말에 대해서 나는 대꾸 안 합니다, 내가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줄 알아요? 잘 알고 있지만 시시해서 안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것을 내가 전부 가르쳐 줄 때가 올 것입니다. 이 얼룩덜룩한 세상에는 기분 나쁜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일국의 대통령도, 역사적인 성인인 공자나 석가모니, 예수님도 나한테 와서 그것을 배워야 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보다 차원 높은 심정의 세계를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 마음의 세계에 깜깜하게 막힌 것을 치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사랑, 즉 세상적인 사랑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이상의 사랑이 아니고는 막힌 것이 터져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길이 있느냐, 없느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통일교회를 아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통일교회를 진짜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선생님이 보기에는 몇 사람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가 나오는 데에 있어서 별의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통일교회 원리를 이용하여 출세하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사람 들이 출세했나 보세요. 다 걸려 들어가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33-54
선악을 분별하는 주체가 되라
선악의 분기점인 나 자신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 자신이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의 세계를 거느려 가지고 선의 세계를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선과 악을 가리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한 몸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선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밤이나 낮이나 선의 주체성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부활의 역사를 일으켜서 선권을 발전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자리는 어떤 자리냐? 또한 세상의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뭇사람으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은, 집에 들어가서도 형제와 화목하고 부모 앞에서는 효도하고 친척들을 위하고 동네 사람들에게는 친절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그럴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럴 수 있는 경지에까지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원칙에 맞느냐, 안 맞느냐? 혹은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좋아하시느냐, 안 좋아하시느냐? 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또, 영계의 영인들을 중심삼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모든 것과 거리가 멀어질 때는 망합니다.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키워 나왔는데, 전혀 생각을 안해줍니다. 여러분은 내가 천년 만년 생각을 안 해줘도 괜찮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생각을 안 해주는 그것이 그에게 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나 대신 축복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이 이런 마음을 갖고 1년 2년 3년 변함없이 나가게 되면 반드시 주체가 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변함없는 것은 영원히 남아지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선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것은 세상에서 사람을 좋아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형제끼리 속닥거려 가지고 파당을 만드는 패는 사탄입니다.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하면서 파당을 만들려는 패는 사탄입니다. 여러분이 뜻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는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날 것입니다 여기에는 도둑놈들도 많습니다. 또, 사기를 치려고 하는 녀석들도 많습니다. 그야말로 별의별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형님이 동생에게 무엇을 사다 주고는 ‘내가 너에게 이걸 사다 주니 좋지? 내가 너하고 같아야 돼, 내가 너보다 위여야 돼? ‘하고 윽박지르는 사람은 그 집안에 있어서 불효자식입니다. 자기가 한 것을 나타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이다’ 하고 떠들고 다닙니다.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원칙에 어긋나 가지고는 다 꺾여 나갑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사람들을 따라가고 싶으면 다 따라가 버리라 이겁니다. 다 따라가도 선생님은 망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움직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일교회도 무엇을 중심삼고 움직이고 있느냐? 하나님의 심정적 인격을 갖추어 나가고 있느냐? 다시 말하면, 내가 뭐라고 주장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내심에서 깊이 우러나서 노력해 나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수단 방법을 가지고 뭐가 어떻고 뭐가 어떻다고 하며 시키면 남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모든 문제를 대하여 원칙을 중심삼고 분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감별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하고 형제간에 우애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됩니다. 형은 동생 자체를 중심삼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내가 너보다 더 나으니 나를 따라오라’고 강요하는 것은 사탄이 하는 방법입니다. 그런 패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여기 있는 이 아주머니도 그런 패들 따라 가려다가 다시 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많은 사람이 불쌍해졌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만히 두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젠가 반드시 깨져 나갑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33-56
나 자신이 선악의 분기점
선과 악을 분별하기란 지극히 힘듭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영계를 통하면 망하기 쉽습니다. 방향도 모르고 자기 위치도 모르는, 전체를 모르는 입장에서 영계만을 들여다보다가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자리에 서서 영계에 관한 얘기는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실행해 보고 모든 이치에 부합될 때에는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차적으로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이 증거해 옵니다.

선생님이 나서서 ‘통일교회가 뭐 어떻고 문선생이 어떻고…’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기성교회 목사나 장로들한테 지금까지 미움받고 반대받아 왔지만 그들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때를 맞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자기를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 어떤 사람들이 그러는데 하나님도 미완성이라나요? (웃음) 하나님도 발전한다나요? 그 따위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발전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공산당 만드는 것입니다. 절대적이란 것은 완전한 것입니다. 완전한 것이 없는데, 완전을 추구한다는 것은 망상입니다. 시시한 것을 배워 가지고…. 그런데에 뛰어 들어가서 꼬리를 저으려거든 다 죽어 버리라구요. 그게 좋으면 보따리 싸 가지고 다 가 버리라구요! 시시한 것들 같으니라고…. 감언이설로 사람을 속여서 빼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천명을 받고 나온 사람, 하나님의 위임을 받고 나온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다릅니다. 그렇다고 자기의 위치를 자랑하면 안 됩니다. 자랑을 하게 되면 도둑맞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모릅니다. 내가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천년을 찾아 봐도 알 수 없는 것을 선생님은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노릇을 해먹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끝장인 줄 아는데 끝장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차려야 됩니다.

나 자신이 선악의 분기점입니다. 남을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곁에는 항상 사탄이 있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언제든지 사탄과 접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사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축복받은 아내라고 해서 언제나 하늘편인 줄 압니까? 천만에요.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이기 때문에, 언제나 위험이 개재되는 것입니다. 이 타락한 세상을 전부 복귀해 가지고 하나님이 이 세계를 치리할 수 있을 때까지 사탄은 언제나 제일 가까운 곳에서 여러분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는 이 길을 걸어나오는 데에 있어서 지금까지 나를 반대했던 사람에 대해서 복수하려는 마음을 갖거나 죽으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대신 피해를 입고 대가를 치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집안이나 우리 협회가 그 대가를 치러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때가 있어도 그때를 넘어가는 때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시한 녀석들은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사고방식이 그런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까딱 잘못하면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누구한테 교육을 받았습니까? 그들이 통일교리를 배워 가지고 어떻다 어떻다 하는데, 그런 것 다 누구한테 배운것입니까? 선생님한테 배워 간 것이 아니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느누구한테도 배우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선생님이 없습니다. 배워 갔으면 배워 간것에 대한 책임을 해야지 남의 물건을 갖다가 자기 물건 취급하니 그들이 무엇입니까? 도둑이라는 것입니다. 도둑이 다른 게 아닙니다. 남의 것을 가져다가 자기 것 취급하는 사람이 도둑입니다. 사탄이 무엇입니까? 하늘 것을 하늘 것으로 돌리지 못하고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 사탄입니다. 자기 것 같이 여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걸 확실히 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들, 두고 보라고요. 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도 갔다 오고 몰리고 몰리면서 나왔지만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은 이 원칙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 아버지 앞에 효자가 아닐 수 없거든요? 몰라서 그렇지 아는 사람은 선생님이 지나가면 인사를 합니다.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예요. 결국은 하나님이 언제나 긍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나섰다가는 들이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공석에 잘 안 나섭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었어요.

33-58
이 시대에 대한 통일교회의 책임
앞으로 통일교회는 3대 종교로부터 반대를 받게 됩니다. 반드시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나를 반대하는 패들도 나올 것입니다. 분명히 나온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대해 가지고 뭐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해 보라는 겁니다. 다 해보라는 것입니다. 갈 때까지 가 보라는 거예요. 어디까지 가는지….

여러분은 나라의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는 충신을 중요시해 왔습니다. 그러면 충신은 어떤 사람이냐? 나라의 비상시에 사지에 나가 모든 어려움을 자기 것으로 삼아 가지고 나라를 대신하여 생명을 바쳐 죽음길을 가는 사람이 충신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을 중심삼고 전도하는 사람이 하늘 앞에 충신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전도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도하느냐에 따라 나누어집니다. 이것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자체가 인류를 위해 살아야 됩니다. 인류를 위해서 살자는 것입니다. 나도 축복가정이니 교회를 이용해도 되겠지 하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용당하지 않는 거예요. 하늘도 절대 이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갈라지는 것입니다. 끝에 가서는 반드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자체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의 갈 길은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정통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 민족은 세계를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정통적인 길이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을 이렇게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빚을 지려고 그러느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여러분에게 빚을 지지 않습니다. 이를 악물고 빚은 안 지려 합니다. 빚지기를 좋아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인심은 천심과 통하기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개인에서부터 선악의 분기점을 알아 가지고 선악을 분리시키고, 나아가 가정에서도 선악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자체는 이 시대에 있어서 선악을 분리시키는 분기점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 사회와 이 나라를 넘어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개인이면 개인으로서의 싸움이 있고, 가정이면 가정으로서의 싸움이 있고, 종족이면 종족으로서의 싸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이면 종족을 중심삼고 선악의 판가리를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삼고 사회를 향해, 국가를 향해 나가려면 반드시 교회를 중심삼고 선악을 판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악의 분기점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 분기점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단체는 남아질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에게는 통일교회의 갈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선악을 판결할 수 있는 방향을 가르쳐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는 말은 임의로 하는 말이 아니고, 우연히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이 세계정세와 상대적 관계를 갖게 될 때는 세계를 위한 통일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시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말을 해도 여러분은 모릅니다. 지나가고 나서야 ‘그렇구나’ 하게 됩니다. 70년대부터는 통일교회가 웃을 때가 옵니다. 반드시 그럴 때가 옵니다. 왜 그러냐? 70년대에는 선생님 자신이 최고의 분기점에 서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야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나만이라도 가야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좌우를 가려 가는 데 있어서는 두 사람만 따라오면 됩니다. 여러분이 좌우를 가릴 수 있기만 하면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기에 천운을 맞이하여 정성을 들여 안팎의 환경을 결합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분기점이 언제냐? 분기점을 지나가는 데는 사람에 따라 3년, 7년, 혹은 20년, 30년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 기간이 길고 짧은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분기점을 지나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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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권을 확대시켜야 할 축복가정들
여러분은 때를 가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민족과 이 사회 앞에 통일교회가 영향을 줄 수 있는 때가 70년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저자세를 취해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이런 때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국가와 교회 앞에 축복가정들이 선두에 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번에 가정을 동원하게 된 것입니다.

1972년도까지 3년만 더 이렇게 나가 보라는 겁니다. 어떻게 되는가…. 안 되거든 내가 들이쳐서라도 만들 것입니다. 나는 사정이 어떻고 환경이 어떠하니 전도 못 나가겠다고 하면 점점 핍박해 들어갑니다. 우리의 갈 길이 어디입니까? 우리는 사상적으로 이런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삼천만 민족 전체를 움직여야 합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의 갈 길을 끊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도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박대통령 정부가 나서고 있습니다. 여기에 통일교회만 들어서게 되면 틀림없이 해결됩니다. 이것은 이렇게 하고 저것은 저렇게 한다고 방법을 제시해 주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국가의 실정을 두고 볼 때 우리가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이 맡겨 준 이 천부의 사명을 존중하고, 또한 긍지를 지니고 그 사명 앞에 순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책임을 감당하면 여러분은 개인을 초월하고 가정, 종족, 민족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일생을 중심삼고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의 4단계를 초월할 수 있고, 국가적인 사명 앞에 무한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 시대입니다. 이 은사시대를 상실해 버리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은사권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의 신념을 갖는다면 세계로 가는 데에 있어서 선생님을 직접 따라가지 않더라도 세계로 나아갈 길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계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십자가를 지고 세계적인 기준을 넘지 않고서는 여러분은 해방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선악의 분기점은 나 개인에서부터 출발하여 가정, 민족, 국가, 세계로 진전되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복귀의 사명을 짊어진 여러분 개인만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축복받은 가정만으로도 절대 안 됩니다. 전체를 위주로 공동보조를 맞춰서 한 방향으로 가야 됩니다. 물결이 높을 때는 높아지고 낮을 때는 낮아져서 물결의 상하고저에 맞추어서, 같은 운명체가 되어 나가지 않고는 여러분의 갈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개인적 방향, 가정적 방향, 민족적 방향이 일치된 입장에서 나 개인의 승리를 세계의 승리로 연결시킬 수 있는 특권적인 운세권내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개인에 국한된 나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전체와 일치된 나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도 대한민국의 가운데에 선 주권자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체가 좋아 해야 자기도 좋을 수 있고, 전체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자기가 희생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나가면, 여러분은 언제나 선악을 분별하는 데 있어서 주체가 되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가야 할 방향을 잃지 말고 선악의 분기점을 환경적으로 넓혀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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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아버지, 당신 앞에 진정으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온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심장의 고동 소리, 맥박 소리가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 심각한 자리에서, 생애에 처음으로 있는 정성과 있는 힘을 다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쁨의 한 시간을 갖지 못한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당신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어 그 한 자리를 찾아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아버님, 이 통일교단을 당신께 맡기옵니다. 이 교단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니옵니다. 아버지가 인도하는 이 교단이기에 그 누구도 헐 수없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이 교단을 지금까지 제가 맡아서 따라 나왔사옵니다. 이것이 생애의 걸음걸이였던 것을 당신은 알고 계시옵니다.

아버지, 당신 앞에 가까이 갈수록, 때가 저희 목전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저희가 봄날을 맞이하여 나무에 꽃을 피워야 할 가지임에도 불구하고 꽃을 피울 수 있는 꽃망울을 갖지 못한 가지처럼, 당신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없는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가를 느끼는 저희들의 마음을 당신께서 아시옵니다.

세상은 알거나 모르거나 당신의 내정적인 심정을 따라 때가 되거들랑 활짝 피어 만민 앞에 자랑하실 수 있기를 바라시는 당신 앞에, 활짝 핀 꽃과 같이 기쁨에 충만하여 당신께 충효의 도리를 갖추어 가지고 당신의 거룩하심과 더불어 만 우주 앞에 빛날 수 있는 그날을 당신 없이는 고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는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날을 맞기 위해서 저희는 오늘도 내일도 이 길을 가야만 되겠사옵니다.

당신 앞에 사랑받기를 바라는 아들딸이 있다면 당신 앞에 사랑받기 전에 이 나라 이 민족을 먼저 찾아와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저의 마음인 것을 아버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딸을 사랑하시는 것은 그 아들딸 하나만을 위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사랑하기 위함이요, 세계를 사랑하기 위함인 것을 아옵니다. 사막과 같은 이 땅 위에, 칠흑과 같은 이 천지에 선명한 등대가 한 빛으로서 사명을 다하더라도 그 등대는 방향을 가리켜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빛의 모체, 즉 빛의 자체로서 영원히 비추는 생명의 근원을 가지듯이, 하나의 등대의 모습이 된 것을 자랑하기보다는 등대로서의 사명을 얼마나 잘할 것이냐 하는 것을 문제삼을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기쁜 일이 있거든 아버지께 돌려 드리고, 슬픈 일이 있거든 자기 일로 알고 수습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당신의 자녀들이 때가 가까와 오는 이 시대에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을 때, 없다고 한다면 아버지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겠는가를 생각하면서, 책임진 저희들로서 슬프신 아버지를 얼마나 위로해 드렸으며, 과연 소망의 날을 잊어버리지 않는 입장에 섰는가를 반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사적인 입장에 서기를 고대하지 않고 걸어 나왔습니다. 아버님을 중심으로 하여 마이너스면 완전한 마이너스의 형태를 갖추고자 하였고, 아버님 앞에 흠모의 대상이 되고자 하였사옵니다. 아버님이 그리워서 자신을 잊어버리고, 아버님의 사정을 염려하여 자신의 환경을 망각하면서까지 어떻게 당신이 남겨 주신 내일의 소망을 최후의 흐름 가운데 남길 것이냐 하는 문제를 염려하며 나왔사옵니다. 지금까지 이 생명들을 이 자리까지 나오게 해주심도 당신이 사랑하신 연고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사랑 가운데 천명에 의해 책임진 수많은 사람들이 증거한 모든 사실은 자기의 갈 길을 염려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충효를 다하라는 분부인 것을 생각할 적마다, 아직까지 저는 충효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염려하시고 이 통일교회를 염려하시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세워 수고하고 계실진대, 저희가 아직까지 아버지의 아들딸이 못 된 서글픔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아직까지 저희에게 설명이 필요하고 저희 가는 길 앞에 자극과 충격이 필요하다는 것은 저희가 미급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고, 아버지의 아들이라 할 수 없는 자신인데도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지 말라고 분부하시더라도, 또 수많은 영계가 동원하여 부정하더라도 ‘나는 가고도 남음이 있다’는 신념을 갖고 나서야 할 자신들이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여, 오늘도 내일의 소망을 놓고 암중모색하면서 아직도 자신을 위하는 자리에 있고 물질을 위하여는 불쌍한 자리에 있사옵니다. 이러한 틈을 타서 사탄이 저희 자신을 침입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가야 할 길을 향하여 직행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 여인이 지조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길도 가야 하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충신은 군왕 앞에서 맹세한 조건을 중심삼고 생사의 고빗길도 자유롭게 넘을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각자가 갖추어야 할 충신의 도리, 절개를 지키는 데에는 남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저희의 갈 길을 직접 인도하시옵소서. 저희가 당신의 뜻에서 멀어지거든 직접 채찍질하시옵고 가로막아 주시옵소서. 승리의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개척하는 책임과 사명을 하는 데 있어서 당신의 사랑으로써 뜻을 성취하시옵고, 당신의 간곡한 위로로써 환경을 분별시켜 주시옵소서. 당신의 아들딸로서 당신께서 맡겨 주신 책임을 하는 데 있어서 당신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하여 온갖 성심을 다하고 아버지 것으로 바쳐질 때까지 상처받지 않고 고이고이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8월 첫주일 아침이옵니다. 재출발의 달인 이 8월을 맞이하여 저희들은 재출발해야 되겠사옵니다. 1970년대는 6천년 역사를 대신한 7천년 역사에 해당한다고 하였사오니, 7월로서 모든 슬픔을 사라지게 하시옵고 새로이 8월을 맞는 이날부터 당신의 영광이 저희들 앞에 비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분수에 넘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옵니다. 열을 행하였거든 여섯은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고 넷을 갖겠다고 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영광을 바라는 마음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것이 많으면 아버지와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를 떼어놓고 자신이 나서서는 안 된다는 천륜의 교훈을 잊지 않고 가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이웃을 사랑하였으면 그것을 아버지 앞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기 쉽사옵니다. 도리어 아버지 앞에 자랑하기에 부족함을 느끼면서 눈물 흘리는 그 자리가 아버지께서 고대하는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자랑스런 일을 하였더라도 스스로 더욱 부족함을 느낄 줄 알고, 하늘의 전통적인 심정의 도리를 따를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을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인도하여 위로하여 주시는 것이 당신의 사랑이지만, 그런 자리에 설수록 험하고 가중된 십자가를 달게 짊어지겠다는 마음까지도 가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 단계를 넘고 나면 또다시 크나큰 축복을 해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은 그 넘고 난 승리의 자리에 저희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책망과 혹은 여기에 불행의 여건으로써 저희를 찾아주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마음은 아니지만, 그런 입장을 취하실 수밖에 없었던 때가 역사노정에는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될 때, 기쁨은 아버지께 돌리고 슬픔은 자기의 것으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일생을 이렇게 가더라도 한이 없겠다는 마음, 이 몸은 이미 바쳐진 몸이니 언제 죽고 언제 어떻게 되더라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죽어 땅 속에 묻힌다면 그곳이 적막강산이라 하더라도 그 무덤은 적막하지 앉을 것이요,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충효로써 끝을 맺고갈 수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많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한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교인들을 불러일으켜 주시옵소서. 기독교를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려 했던 한때는 지나갔사오나 이제 다시 저의 여력을 다하여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 자신이 이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때가 있을 줄 아오니, 저희들이 가는 길을 당신이 맡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복귀도상은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벨은 가인에게 고개 숙이고 가야 된다는 이 천리원칙, 일면으로 보면 원통한 길이옵니다. 그러나 서로가 선한 입장이 아니기에 선악의 투쟁이 있어야 되고 거기서 악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선의 발판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아옵니다. 하늘은 승리의 선권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악을 굴복시키는 데 있어서 총칼을 들고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피눈물로 굴복시키며 나왔다는 것을 아옵니다. 오늘날 이만큼의 형태를 갖추어 세계권까지 발전시키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저는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러한 당신 앞에 천세 만세토록 살아서 효성의 도리를 다해도 아버지의 기쁨의 아들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따르고 있는 저희들이 미련없이 몽땅 바칠 것을 다짐하였다는 것을 당신은 아실 것이옵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사상이 당신의 아들딸의 뼛속에 사무치고, 골수에 사무치게 하시어서, 가슴을 불태워서라도 아버님의 천추의 한을 내가 풀어 드리겠다고 하며 복귀도상의 선두에 설 수 있는 자녀들이 되도록 이시간 다짐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하는 이 민족을 위해서, 가야 할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인류를 위해서 저희들은 가야만 되겠사옵니다. 발버둥치면서라도 가야만 되겠사옵니다. 옷이 찢기더라도, 주위 사람이 조롱하더라도 저희들은 가야만 되겠사옵니다. 태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고 험난한 사막을 지나서라도 가야 되겠사옵니다. 새벽별과 같이 당신의 그 빛이 비취는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가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의 마음과 저희 마음을 심정과 사랑으로 얽으시옵고, 끊을 수 없는 줄로써 당신과의 인연을 공고히 맺을 수 있는 각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책임진 제단에서 죽은 제물이 아니라, 부활되어 산 제물로서 민족의 제단. 세계의 제단까지 가야 할 것이 저희들의 운명길이오니 긍휼히 보시옵소서.

역사적인 부활체가 되어 섭리사적인 승리의 권한을 가져 가지고 아버지께서 자랑하실 수 있는 나, 아버지께서 자랑하실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겠사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일대에서 종결을 봐야 할 천적인 한의 역사인 것을 제가 알았사오니, 가야 할 운명길을 가는 데 있어서 당신의 섭리 앞에 제물 되겠다고 다짐하는 신의의 마음을 보다 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기간이오니 저희의 마음을 보다 강하게 하여 주시옵고, 이만큼 닦아진 길이 당신 앞에 염려의 터전이 되지 말게 하시옵소서. 이것을 분발의 터전으로써 당신 앞에 바치오니 소망의 기원을 이룰 수 있는 권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 70년대를, 역사적인 소생의 시대, 부활의 시대라고 자랑할 수 있는 기지로 세워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음력으로는 7월 1일, 양력으로는 8월 2일로 8월의 첫주일이옵니다. 이러한 인연 가운데 당신께서 저희와 같이하시어서 이 제단과 연결시켜 주시옵소서.

선악의 분기점에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심정과 저희들의 간절한 심정이 하나되어 맞부딪치는 힘으로 말미암아 비쳐지는 빛 때문이옵니다. 이 빛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이 알지 못하는 미래의 미지의 행로를 개척하여 내일을 보람있게 갈 수 있게끔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아버지,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오는 9월에 있을 WACL대회를 위하여 일본에 있는 어린 자녀들이 피어린 투쟁을 하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그들은 불쌍한 이들이옵니다. 많은 일본 사람들 앞에서 벌거숭이가 되어 사지에서 가시밭길을 달려가는 소수의 무리를 당신께서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사오니 부디 지켜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7월에 계획한 700쌍 축복을 하려는 것도 당신의 뜻과 당신의 나라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통일교회를 위하여 통일교인을 세우기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아버지, 거기에는 당신의 뜻을 만방에 펼칠 수 있는 섭리의 뜻도 있사오니, 마음과 마음을 잇고 몸과 몸을 연결시킬수 있는 사랑의 생명줄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한날이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거룩한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이 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 당신의 소망과 희망의 때가 멀어지지 말고 가까와지게 하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