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14 to 33-270: 해방과 우리의 책임

해방과 우리의 책임
1970.08.16 (일), 한국 전본부교회

33-214
해방과 우리의 책임
[기 도]

아버님, 8월을 맞이하여 해방의 그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지금부터 25년 전, 이 민족이 해방을 맞이하여 삼천만 민족이 기뻐할 때, 아버지께 찬양을 드리고 민족의 자결을 책임질 것을 다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 민족과 더불어 같이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사옵니까? 아버지께서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 나라를 찾아오셔서 이 민족 이상으로 이 나라를 염려하셨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무어라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

해방 이후 25년이라는 기간을 어제를 마지막으로 보내고 새로이 26년 되는 해를 출발하는 아침이옵니다. 아버님이여, 이 나라의 만복을 부디부디 거두지 마시옵소서. 당신께는 허락하고자 하는 깊은 심정을 수많은 아들딸들에게 털어놓고 의논하고 싶은 한 줄기의 소망이 있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부디부디 외로운 무리와 더불어 의논하시옵소서.

어려운 역사노정에서 참아 오셨던 한 많은 그 가슴을 털어놓고 그 사연 들을 나눌 수 있는 아들딸이 있게 될 때, 아버지께서 얼마나 위안받으시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많아서 위안받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뼛골에 사무칠 수 있는 아들이 있고 딸이 있어, 그 아들딸을 품고 당신의 모든 소신을 털어놓으며 미래에 대한 약속과 더불어 새로운 길을 향하여 가겠다고 맹세를 하는 부자의 인연을 가졌을 때에 슬프신 아버지께서 위안받으실 줄 알고 있사옵니다. 또 외로우신 아버지께서 소망을 갖고 보람 있는 한순간을 가질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이여, 당신의 품에 안겨 사랑받을 수 있는 진정한 아들 딸이 수많은 교단 가운데에 없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사옵니다. 오늘날의 통일의 무리 가운데에는 얼마나 되옵니까? 당신이 저를 지금까지 남기고 지켜 오신 것은 크나큰 뜻이 있기 때문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당신의 뜻이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떤 목포를 향하여 어떠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보잘것없는 저희들은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진정으로 마음에 느끼고 체휼로써 아는 것이 아니라 배워서 아는 입장이기에 아버지 앞에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사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이 땅 위에는 없기에 배워서라도 당신을 알아 당신이 슬퍼하면 같이 슬퍼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진 상대적인 모습이 있게 될 때, 당신은 그들을 통하여 간접적이나마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입장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단이 지금까지 20년의 역사를 거쳐 오고 있사오나,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사정과 당신의 소원을 알고, 마음속으로 언제나 당신을 그리워하고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당신의 심정에 접하여 생활해 나온 아들딸이 얼마나 있사옵니까?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에, 이 자리에 지금까지 그와 같은 아들딸이 없었다 할진대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면목 없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당신이 찾아오신 수고의 행로 위에 얼마나 많은 곡절이 비탄과 더불어 남아 있는 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이와 같은 소망의 한 기점에 찾아오셔서 바라보시는 아버지께서, ‘내가 찾아와서 맞는 아들딸이 이러냐’ 하시며 탄식할 수 있는 입장에 있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기나긴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저희들을 보호하고 권고하시기 위해 얼마나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수난을 개의치 아니 하시고 참아 오시면서 저희들을 붙들어 주신 은사 앞에 감사드리옵니다.

수십년 역사의 보람을 아버지 앞에 거두어 드려야 할 때가 오늘 이 자리 이 시점인 것을 알고,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이제 옷깃을 여미고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스스로가 아버지께서 6천년의 수고와 대가, 혹은 피와 대가로 찾아 준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를 찾을 수도 없거니와 내적인 사연, 외적인 사연도 갖지 못한 저희들이기에 다시 한 번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많은 시일이 문제가 아니고 간절한 심정이 문제가 아님을 아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이 슬퍼하실 때 같이 눈물 흘릴 수 있고, 당신이 외로울 때 그보다 더 외로운 심정을 느끼며 당신을 외롭게 만든 원수들에 대하여 분함을 느끼는 마음 자세라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부를 수 있는 아들딸이 어떠한 무리일지라도 모두 불러야 할 입장에 계시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지께서는 참으로 불쌍하신 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님이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아옵니다. 아버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버님께 남겨진 수난이 저희에게도 남아 있는 것을 느끼옵니다. 오늘까지 참아 오신 아버지는 수고의 아버지셨지만, 이제부터 또다시 가야 할 아버지는 염려의 아버지인 것을 몰라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지금보다도 더 고독하고, 지금보다도 더한 수난의 노정을 걸어가야 할 아버지께 낙망하고 초조한 모습을 가하는 불쌍한 자식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지금까지 지쳤던 아버지께 힘을 가하고 생명력이 가중된 소망을 가해 줄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 할진대 당신은 실패의 아버지도 아니요, 낙망의 아버지도 아니며, 소망과 희망의 아버지로 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은 천지의 그 무엇으로가 아니라 오늘 보잘것없는 저희 자신들로 말미암아 되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이 비참한 길을 걸어 오신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을 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하고 영광스런, 가치적인 존재로 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오니, 온갖 정성을 다하여 아버지께 충효의 도리를 다할 것을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20여 년간 이 나라의 운명을 지켜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북괴가 침략해 내려와 이 땅을 황무지로 만들었던 6. 25사변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의 수많은 백성들이 희생을 치렀고, 이 나라를 염려하던 우방국의 많은 청년들까지도 이 나라에서 피를 뿌렸습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환경과 정치적인 변화로 인한 싸움이 아니라, 당신이 경륜하시는 뜻이 이 땅위에 닻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일어난 판가리 싸움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이런 것을 아는 저희들, 이제 내심의 결의와 각오를 다시 해야 할 때가 찾아온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대한민국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주권을 소유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수난의 역로를 거듭하는 것은 배후에 아버지의 뜻과 소원의 한 기점을 세우기 위한 당신의 경륜이 있어서임을 저희들이 잘 알고 있사오니, 대한민국의 갈 길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앞으로 이 나라의 삼천만 민족이 아버지를 바라보고 아버지를 위하여 아시아 앞에 나설 수 있는 민족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저희들이 너무나 먼 거리에 있음을 알고 있사옵기에 이 거리를 단축시켜야겠습니다. 이 책임이 바로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부족한 모습들을 바라보시며 소원하시는 아버지께 민망하고 송구한 마음뿐이옵니다.

이 아침에 저희의 마음 가운데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던 새로운 명령을 받자와 저희 스스로가 이 시간에 결의하고 다짐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 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8월 16일이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가는 노정에 있사오니, 저희들의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는 아버지시여, 부디부디 저희들을 지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싸움터를 향하여 용솟음치는 다음을 가지고 출정하는 하늘의 정병다운 자세를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저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이 70년도에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표어를 중심삼고 나가고 있습니다. 저희들에게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아시아를 연결시켜야 될 책임이 있사오니, 금후의 이 나라 이 민족을 아버지께서 염려하여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 민족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비운의 역사 가운데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 민족은 아시아와 열국들과 손에 손을 잡고 화합해야 되겠사오니, 몸에 몸을 이으시옵고 마음에 마음을 이으시어서 하나로 단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 올 수많은 수난의 길을 극복해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부디 아버지께서 경륜하시고 바라시는 뜻대로 모든 것이 성취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들은 8월의 후반기로 접어들어 9월에 일본에서 열릴 와클(WACL)대회와 10월로 계획하고 있는 700쌍 합동결혼식, 그리고 그 후에 해야 할 여러 가지 행사를 남기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의 세계를 이루는 기간을 단축 시키고, 당신께서 가시는 행로를 같이 가기 위한 것이오니, 이 모든 일들이 부디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뜻과 소원대로 성취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정성들이는 당신의 아들딸 위에 무한한 축복의 손길을 가하여 주시옵고, 내일의 천국 앞에 그 이름이 크게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한국의 운명을 가려 주어 미래의 한 귀결을 지어 가야 할 나라가 일본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일본에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승공의 깃발을 높이 들고 싸울 때 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연약한 무리를 세우시어 강하고 교만한 무리를 부끄럽게 한다는 말씀처럼, 당신에게는 연약한 이들을 세우시어 끝날에 새로운 기치를 아시아에 드높이게 하시고, 영원히 만국의 만민 앞에 새로운 역사의 창조의 인연을 드높이 고취시키고자 하시는 뜻이 있음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이 자리가 부디 당신의 소원의 뜻을 펼 수 있는 기점을 마련하는 중요한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소수의 무리가 여기에 모였사오니 나와 너와의 인연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시옵소서. 또한 저희는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복을 받기 위해 일할 것이 아니라 있는 복을 다 모아 가지고 삼천만 민족과 세계 만민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8월을 당신이 허락하시는 승리의 달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숱한 비운의 역사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소망의 세계를 향하여 70년도의 후반기를 출발하는 이 시간, 이 자리가 당신의 승리를 다짐하고 영광되고 자랑스런 시간이 되고 터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당신의 아들딸이라고 명명하여 주실 수 있는 자녀가 있사오면, 그들이 마음속 깊이 당신을 흠모하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모든 사정을 자기의 사정으로 마음에 새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의 심정이 당신의 심징과 일치가 되게 하시어서 사모의 은혜가 빗발치게 하여 주시옵고, 온전히 당신의 힘으로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일을 위하여 준비하지 않고 오늘의 무사안일만을 좇는 무리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자리에 모인 저희들은 내일의 세계를 위하여, 후대를 위한 승리의 터전을 닦기 위하여 모였사오니, 오늘의 어려움을 내일의 소망으로 바꾸고 오늘의 슬픔을 내일의 희망으로 극복할수 있는 모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소원대로 뜻 앞에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아버지께 드릴 때까지 참고 또 참고, 싸우고 또 싸워서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아침에 서울을 향하여 마음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아버지 앞에 축수하고 있을 줄 아오니,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일신의 행복만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무리가 되지 말고, 이 민족과 이 나라와 이 세계의 인류를 위하여 몸부림치는 거룩한 무리가 되도록 부디부디 당신이 품으시어서 사랑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역군들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그들이 이곳을 바라보면서 소원하고 스승을 만날 그날을 고대하면서 눈물짓고 기도하는 자리마다 당신이 사랑의 은혜로써 지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살아 계신 아버님의 아들딸이요, 아버님이 보장하는 아들딸이라고 저나라의 영인들도 인정하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시여, 거기에 핍박이 나타나거든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통하여 저희들이 가는 길을 가려 주셨듯이 그들의 길도 아버지께서 친히 가려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민족을 대신하고 수많은 국가를 책임진 입장인 저희들이 그 남은 싸움 터에서 후퇴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백 배 천 배 힘을 가하여 당신의 세계로 달려갈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저희들에게 무슨 말씀을 해주시겠사옵니까? 저희들을 권고 하고 싶으신 것이 당신의 소신이라면 그 무엇으로라도 그리하시옵소서. 그리운 당신께 모든 일체를 맡겼사오니, 저희를 찾기 위해 수고하시는 아버지의 옷깃을 부여잡고 사연을 통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날까지 새로운 소망과 새로운 희망 가운데서 가야 할 길을 다 달려갈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3-220
말 씀
오늘은 ‘해방과 우리의 책임’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33-220
해방의 한날을 추구해 나아가고 있는 인간
타락한 우리 인간은 스스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구속된 환경에서 지금까지 살아왔고 현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생활은 개인을 통해서만 해 나온 것이 아니라, 역사시대를 통해서 지금까지 계속되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개인의 해방을 추구해 나왔지만, 스스로 해방되었다고 한 사람은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떤 민족이 하나의 나라를 형성하기 위해서 수많은 수난의 길을 거쳐서 국가의 권위를 갖춘다 하더라도 영원히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현재의 입장에서 더 발전하여 세계를 책임지고 세계를 해방시켜 세계의 주인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국가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사연들이 무엇 때문에 있게 되었느냐 하면, 타락으로 말미 암아 있게 됐습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자유의 천국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방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자유의 환경을 잃어버린 것이 바로 타락이 가져다 준 보응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유의 천국을 잃어버리고 사방이 막힌 구속의 생활권내에 떨어진 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타락의 세계는 시일이 가면 갈수록 통합되거나 어떠한 해방을 갖추어 전체와 연결될 수 있는 역사적 귀결을 맺지 못합니다.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해방되지 못하는 사람, 해방되지 못하는 종족, 해방되지 못하는 민족, 해방되지 못하는 국가 등 영원한 해방의 기점을 갖지 못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에 해방을 가져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편안한 가운데에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해 나간다는 것은 말로만 남아질 뿐이지 불가능한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우리 자신이 자연스런 환경이나 사방이 연결되어 무한히 통할 수 있는 내적 인연을 갖춘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땅에 그런 개인과 그런 가정과 그런 종족과 그런 민족들이 샅고 있기 때문에 말로는 평화를 주장하고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바라고 찾아야 할 그 세계는 실로 암담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세계는 그 무엇인지 모르게 하나의 형태를 추구하고 있지만, 우리 내심에 있어서는 그와 반대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더 첨가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문화가 발전함으로 말미암아 그 발전된 문화를 중심삼고 생활적인 면과 서로 통할 수 있는 내용은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 같지만, 각 개인의 내심을 중심삼은 생활 면을 두고 보면 가중된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인뿐만이 아니라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전체의 분야에 가중된 문제를 오늘 우리 자신들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경각에 도달해 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것을 가누어 갈 수 있는 어떠한 신념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으로는 세계 무대가 펼쳐지게 됐지만, 내적으로는 세계의 모든 수난의 사사건건이 우리의 마음 앞에 부딪쳐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외적인 모든 환경과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수난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개인의 고통이 세계의 고통으로 연결되고, 개인의 소망이 세계의 소망으로 연결되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국가나 어떤 주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갈수록 절망적인 입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33-222
하나님의 뜻과 미국의 갈 길
이러한 역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이와 같은 섭리를 하시는 것이냐? 그것은 지금 인간들이 가고 있는 행로를 그냥 그대로 연장시켜서 그들이 바라보는 소망의 세계로 끌고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종말시대에 이르러 한꺼번에 인류를 돌아서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과 같은 환경이 벌어지는 것도 우리 인류를 비극의 세계로 몰아넣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소망 하는 모든 외적인 요건을 끊어 버리고 하나님을 중심한 내적인 세계로 돌아설 수 있는 한때를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진국이라는 미국을 보면,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히피족이니 뭐니 하여 방종한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친척은 물론이요, 부모도 없습니다. 더우기나 그들에게서는 국가관이라든가 세계관, 혹은 인류애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얘기해 봐야 그것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으로 남아질 뿐, 현실적으로 자기의 내심이 추구하는 소망의 여운을 해결할 수 있는 그 무엇도 거기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다가오는 외적인 문화의 세계에 보조를 맞추다 보니 결국은 자기를 잃어버리고 전체를 잃어버린 결과를 거두게 된것입니다.

그들이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은 자기 자신들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외적인 사회, 외적인 정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잘 갖추어진 외적인 환경을 기쁨으로 맞지 않고 오히려 반발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정을 강하게 하는 요인이 바로 외적인 문화형태이기 때문에 거기에 반발하여 히피족과 같은 무리가 나타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실정을 볼 때. 선진국가인 미국이 금후에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현재와 같이 민주주의라는 체제 아래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갈 길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갈 수 있는 길은 다시 돌아서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않고 15세기 이후부터 시작된 신을 부정하는 인본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현시대까지 이끌어 나온 역사를 가진 현 문화 세계권내에서는, 이처럼 신을 부정하는 문화 배경을 중심삼은 세계에서는 인간들이 도저히 가로막힌 내적인 장벽을 헐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잃어버렸던 신(神)을 다시 발견할 수 있는 길로 돌아서는 길만이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갈 수 있는 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33-223
인류가 바라는 해방
이러한 것을 두고 볼 때, 오늘날 대한민국이 일제의 압정하에서 근 40년 동안 수난을 당하는 피압박 민족으로서 신음하다가 역사적인 구속 가운데서 해방된 것도 해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한민국 에게 있어서의 해방일 뿐이지 세계의 해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어제 8. 15해방 25주년을 맞는 경축의 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이 일제의 탄압에서 해방된 것으로 우리 민족이 자결할 수 있는 새로운 소망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해방이었을 뿐이지, 흘러가는 세계의 역사노정이나 구속권내에서는 공헌함이 크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인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바라고 인류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가 어제 축하하고 기념했던 민족의 해방보다는 세계 인류가 공히 추앙하는 전세계적인 해방의 한날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날이 언제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물질적 조건이 아닌 내심적, 정신적 조건을 중심삼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보다 강한 힘, 제 3의 권을 어떻게 유도해 들여오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러한 일을 할 것이냐? 어떠한 사상이나 종교가 해야할 텐데 종교나 사상이 이것을 능히 해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느냐 할때에, 이미 다 실험해 보고 지나간 형태로써 남아진 실상을 두고 보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세계 만민이 바라는 희소식, 복된 소식 중에 제일 큰 소식은 제2해방, 제3해방이 되는 ‘해방’이라는 말밖에 없는 것입니다.

33-224
신은 인간 해방의 주체
미국의 서부에는 히피족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이 1965년도에 샌프란시스코의 어떤 거리를 지나가다가 하늘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 젊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한 너댓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그 길로 돌아왔는데 그때까지 그 사람이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냐’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그는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나 길을 왕래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좀더 뜻 깊은 사람이라면 금후의 미국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고, 더 넓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세계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한 좀더 심각한 사람이라면 신(神)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등의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는 거기서 그렇게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자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모습이 못 되어 있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인간은 무한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데 어디에서 그 무한한 가치를 탐구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러한 생각과 싸우기에 그가 얼마나 고심하겠습니까?

생각은 했지만 해결이 안 나기 때문에, 또 생각은 나는데 생각나는 그것에 현실이 맞지 않기 때문에 싸우는 입장이 얼마나 불쌍하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정지된 모습 앞에 새로운 소망과 하나의 새로운 방향을 갖추어 미국 앞에, 나아가 세계 앞에 ‘그 누구를 막론하고 가야 할 길이 이길이다’라고 자랑하고 나설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선생님은 그때 그 사람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어차피 오늘날의 인류에게는 제 2해방이라 든가 제 3해방과 같은 하나의 해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서북방을 바라볼 때, 거기에는 공산주의 체제인 소련과 중공이 있습니다. 거기에 10억 가까운 인간들이 구속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거기에서 자유스럽고 행복스럽게 살고 있느냐? 말뿐이지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유세계라고 하는 민주세계에 살면서도 그렇다고 하지 못하는 데, 하물며 독재국가인 공산세계에서 그렇겠습니까? 더욱더 그렇지 못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민주세계가 제 3해방을 요구한다면 공산세계에 서는 제 2해방을 요구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제2해방, 제 3해방의 기수가 되고, 그 원천을 삼을 수 있는 새로운 주의와 사상은 어디서부터 올 것이냐? 그것은 인간세계에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이 해방을 맞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노력해 봤지만 그러한 환경도, 내용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만을 중심삼고는 해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중심삼아야 될 것이냐? 인간이 아닌 누구를 중심삼아야 되느냐? 신(神)을 중심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신이 없다면 절망입니다.

어떤 정치가, 혹은 위대한 성현, 또는 위인이 인류를 수습하기 위한 새로운 사상과 주의를 제창하려 한다면, 인간의 힘만 가지고는 안 될 절망의 자리에 있는 인간을 위해 가상적인 절대적인 힘의 주체라도 끌어들여야 할 시점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이 없더라도 인류를 더 이상 절망의 환경, 구속의 환경에 두어서는 안 되겠기에 인류를 그러한 환경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 어떠한 절대자의 개입이 필요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신이 없더라도 가상적인 신을 세워서 그 신을 바라보는 사람이나 나라는 천국으로 나갈 것이요, 보다 나은 새로운 본연의 곳에 접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없더라도 가상적인 신이라도 주장하여야 할 시점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때에 신이 있는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그러면 그것을 책임지고 세계 앞에 있는 힘을 다하여 외쳐야 할 것이 아니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33-226
신과의 관계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
통일교회는 이 절망의 한계점에서 신음하고 있는 세계의 군상을 앞에 놓고 무엇을 할 것이냐? 통일교회가 세계 인류 앞에 제시해야 할 것은 신이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진짜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문제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자신의 힘으로 뜻길을 가지 못해서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보다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냐? 내가 하나님을 진정 아느냐, 내가 신이 있는 것을 결정적으로 깨달았느냐, 내가 생활 전체를 장악하고 생사지권과 모든 전체를 좌우하시는 그런 분을 진짜 알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로부터 우리가 살아오는 생활은 물론 현재의 우리 자체도 알고 있고, 미래의 우리 운명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무지하기 때문에 자기가 가야 할 최고의 운명길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타고난 팔자가 있는데 그 팔자의 길을 가지 못하고, 누릴 수 있는 복이 있는데 그 복을 다 누리지 못하고 절망의 환경에 싸여 스스로를 망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非-非再)한 것을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전후좌우의 운명을 다 알아 가지고 우리의 운명길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분, 즉 절대자가 있다면 그분을 알고 그분과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33-227
제2, 제3의 해방이 필요한 우리
오늘날의 우리는 타락한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혈통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적으로나 인습적으로 그런 관념에 젖어 스스로 모든 소망을 구속해 버릴 때가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내심으로는 ‘내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절규하며 환경을 극복하고 타개하여 새롭게 움직여 나가기를 재삼 재촉하지만, 그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습관 또한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습관성을 타개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생활 환경이 우리를 얽어 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생활 환경 가운데에는 개인뿐만 아니라 인종 문제가 결부되어 있고, 부자의 관계, 부부의 관계 등 여러 관계가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생활 환경과 역사적으로 계승되어 온 습관이 라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내심을 움직여 나오며 새로운 자아를 자극시키는 제 2의 소망의 중심존재가 될 그 자체를 가로막고 그것을 부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과 습관과 역사적 전통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습관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역사적인 위인이라든가 성인들은 그 시대에 구속되고 포위되어 있는 환경을 벗어나서 미래의 세계관과 생활관을 중심삼고 나갈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생명을 걸고 투쟁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인이요 열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생명을 바쳐 가면서 역사를 대신하여, 역사의 해방을 위하여, 역사적인 모든 악의 습성과 환경을 타개하기 위하여, 이것을 소멸시키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바쳐 가면서 싸우다 간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위인들을 바라볼 때, 오늘날 우리들은 자기의 생활환 경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들에게는 제2, 제3의 해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입장을 타개하는, 금을 내어 둘로 분립시킬 수 있는 내심의 결단을 내려야 되겠습니다.

그 결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렵습니다. 한 나라의 역사를 두고 볼 때도 그 나라에는 수많은 애국자와 위인이 있었지만 그들이 걸어간 발자취와 그들이 수고한 공로로 만들어진 것은 오늘날의 현실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 이상의 힘, 그들 이상의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현실을 타개할 수 없는 것이요, 우리의 힘만으로는 그것을 결의하고 결단을 내리고 나서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의 반성과 내심의 결의만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런 사회, 이런 지상을 정화시키고, 새로이 혁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가 자기의 마음을 자극시키는 결의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천만번 죽더라도, 자기 스스로의 환경을 완전히 포기하고라도 환경과 습관으로 부터 벗어나겠다는 강한 결의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배 천배로 자기를 자극시킬 수 있는 힘의 원천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힘은 역사 가운데 왔다 간 위인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힘 이상의 힘을 나에게 보급시켜 그 힘을 통하여 나를 자극시킬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또 그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역사는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나와 이 시대, 나와 이 세계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 나와 하나님과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이 시대와 세계를 똑똑히 알아 가지고, ‘이 세계는 망한다’ 하는 전제 조건을 세워서 그것을 결론짓기 전에 이 세계에서 내가 당하지 않는다고 결의할 수 있는 하나의 자각이 필요합니다.

이 자각은 역사시대의 어떤 지식을 통하여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면에서 얻게 되는 자각입니다. 그 자각은 역사를 거쳐온 인간을 통하여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 3의 힘에 의해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하나의 길을 모색하는 방안밖에 없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만이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심각한 자리에 있어서 역사를 주고 세계를 주고서라도 찾아야 할 하나님, 어떤 수고를 하더라도, 어떤 몸부림을 치더라도, 어떤 고통을 당하더라도, 어떤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반드시 찾아야 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회의 어떤 것을 가지고도 바꿀 수 없으며 세계의 어떠한 사상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는 장담코 그환경과 세계의 풍조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주체성을 가진 자각된 입장에서 출발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힘과 결의를 가지고 나설 수 있는 자각된 자아의 새로운 출현을 어떻게 시키느냐, 어떻게 발견하느냐? 이것이 현재의 시점에서 세계가 필요로 하는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33-229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문제의 해결 방안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를 따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문제의 해결 방안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문제를 갖고 왈가왈부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신다 ! 틀림없이 계신다 !’라고 확신할 때, 여기에서부터 해결 방안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실제로 계시니 그로 말미암아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해야만 바로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내 개인은 물론, 내가 그러니 당신도 그래야 된다고 할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우리 사회 환경의 고충은 우리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고충이 아닙니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우리 나라도 그렇고 저나라도 그렇고, 세계 만민이 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을 어떻게 하든지 격파해서 이것을 초월하고 싶고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각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환경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세워져서 ‘이렇다’ 하고 제시하게 되면 세계는 일시에 한곳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인류를 비극과 절망 가운데로 몰아넣는 것은 인류를 영영 암흑의 세계에서 희생시키기 위한 작전이 아닙니다. 이칠흑 같은 암흑의 세계에 광명한 등대와 같은 빛을 주어 인류 앞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게 될 때, 흑암권내에서 아우성치던 사람들이 환희의 함성을 지르며 하나님 앞으로 밀어닥칠 수 있는 세기말적인 새로운 풍조를 형성하기 위한 섭리의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렇다’고 할 수 있는 , 자각된 개인 가정 종족 민족입니다. 이렇게 연결되어 ‘하나님은 이렇다’ 할 수 있는 민족이 세계에 등장하면 세계 인류는 그 민족을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주장하고 나서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다, 안 계시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실 것이다’ 하는 것도 아닙니다. 계실 것이다라고 추측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계시다 안 계시다 하며 싸움하던 시대, 즉 사상적으로 유물사관과 유심사관이 대결하던 역사적인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 문제의 해결기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대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장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설명에 앞서서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시다는 거예요.

33-230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 세계를 품고 세계를 부활시키기 위해 수고하고 계십니다. 수고를 하시는 데는 세계만을 위해 수고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각하는 것이 세계의 그 무엇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바라 시는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보다 강한 개인이요, 이런 무리가 있다면 이는 보다 강한 무리가 아닐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하나님이 계시느냐? 만약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이 세계가 아무리 해방되기를 고대하더라도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역사와 산물인 현실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역사과정에서 공(功)에 공(功)을 가해 가지고 이룬 것이 현세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문제만 해결돼 가지고는 이 이상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종교란 무엇이냐? 참된 종교는 가공적인 이상을 소개하는 것보다도, 가공적인 인류애를 설명하는 것보다도, 본연의 문제에 들어가 가지고 인간들이 절대로 부정할 수 없도록 신에 대한 인식을 그 무엇보다도 강하게 심어줄 수 있는 종교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종교입니다. 그 이상 참된 종교는 없습니다.

그 가치는 오늘날 이 세계에서 가장 귀하다고 하는 것을 천개 만개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어떤 위인이나 성현들을 통합해 가지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의 실존에 대한 자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으로부터 역사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각된 경지에서의 개인적인 인식관. 국가관, 세계관, 우주관 등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보다 고차적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도 모르는 세계에서는 이말이 미친 사람들이나 하는 말로 들린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계신지 안계신지도 모르는데 하나님의 심정을 어떻게 알겠어요? 이 말 자체가 하나님이 계시고 안 계시고를 따지는 차원을 넘어선 것입니다.

심정문제라는 것은 생활권내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부모의 사랑이니, 부부의 사랑이니, 형제의 사랑이니 하는 것은 전부 생활권 내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생활권내에 전개되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을 말한다면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실제로 하나님을 알고 있느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알아요, 몰라요? 안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틀림없이 안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손을 안 드는 것을 보니 전부 다 모르는군요. 그럼 모른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것도 없구만.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러면 다들 뭐예요? 그러니 문제는 신에 대한 인식입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십니다.

천국은 무엇이냐? 통일교회에서는 믿음의 천국을 말하지 않습니다. 시의(侍義)를 말합니다. 모심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모르고서 모실 수 있어요? 통일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아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르치면 누구나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통일교인들 가운데에도 신이 계신지 안 계신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도 잘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하루에 몇 번이나 자각합니까? 24시간 가운데 몇 번이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낍니까? 모심으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24시간 가운데 한두 시간 정도 모셔 가지고 되겠습니까? 공기보다도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입니다. 물보다도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입니다. 밥보다 더 귀한 것이 하나님이예요. 그런데 여러분에게 그렇게 느껴져요?

33-232
해방의 기점
여러분은 기독교가 왜 망해 가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 보십시오. 어디에 갈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오고 갔습니다. 전후좌우의 모든 행동 일체를 자기의 입장에서 뜻의 길을 찾아간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결부시 켜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초대 기독교가 어찌하여 뿌린 공로에 의하여 열매맺을 수 있는 중세시대에 들어가서 망하고 말았느냐? 그들에게 신은 머리에 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믿던 신은 생각의 신으로만 남아졌던 것입니다. 사실적 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생각의 신은 세계를 위한 신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한 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해방을 받아야만 하는 조건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해방을 받아야 할 사람들 가운데에 있어서도 맨 먼저 해방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장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신을 찾았다고 하면서 신의 확실한 신념을 모르고, 신의 사업에 가담하고 신을 대행하고 신의 영광된 자리에 섰으면서 그런 스스로를 중심삼고 신을 팔았던 사람들이 먼저 심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외식(外飾)이라는 것은 신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필요없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라는 것도 신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필요없는 거예요. 신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러면 ‘해방과 우리의 책임’이라고 했는데 그 해방의 기점이 무엇이냐? 신(神)이라는 것입니다. 신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계신다면 어떻게 계시느냐? 부모로 계시다면 어디에 계시느냐? 그 신과 나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이러한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지금 뒤틀리고 저끄러지고 엉클어져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어 있느냐? 동기가 서로 다른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시정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은 인류 역사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초월한 곳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시대에서 종교가 신을 소개해준 그 자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비약하여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통일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거대한 세계의 정세를 두고 볼 때, 어차피 세계는 암담한 최후의 절벽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그 절벽에 부딪쳐서 내 머리가 깨어지느냐, 아니면 절벽이 깨어지느냐 하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시점, 그 누구의 힘을 가지고도 세계를 구해 낼 수 없는 이러한 때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33-233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
우리의 8. 15해방을 다시 한번 회상해 봅시다. 어떤 면에서는 그 해방의 날이 없었으면 더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일제하에서 압박받는 생활이 그냥 그대로 연장되어 나왔더라면, 우리에게는 해방의 한날을 위해 모진 투쟁을 할 수 있는, 하나로 결속된 민족의 패기라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민주주의니 무슨 주의니 해서 전부다 흩어지고. 민족 정기마저 잃어버렸으니, 우리에게 그때의 해방이란 있으나마나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해방은 이 남한, 현재의 대한민국을 중심삼은 해방을 바란 것이 아닙니다. 남북이 하나되는 해방을 바랐던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실정을 두고 볼 때, 일제시대보다 나으냐? 못하다는 것입니다. 왜? 삼팔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 삼팔선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으니, 세계적인 무대를 해결하지 않고는 남북이 하나될 방안이 없는 것입니다. 일제의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은 일개국의 천황이 항복하면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는 한 나라의 주의 주장으로는 해방될 수 없기 때문에 현재의 대한민국은 일제하에서 탄압받던 때보다도 더 불쌍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봐요. 중공이 물러가고 소련이 물러갈 것 같아요? 소련과 중공이 남아 있는 한 북괴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전부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공산주의는 유물주의이고 민주주의는 유심주의 입니다. 이 유물주의와 유심주의로 분열되어 투쟁하고 있는 세계의 정세이기 때문에 이 속에서 유심주의와 유물주의의 철학적인 근거를 해결해 가지고 나오기 전에는 이 두 주의의 투쟁을 종식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이것은 어떤 이론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등장 하여야 됩니다. 그리하여 ‘만민의 하나님은 이렇다’고 가르쳐 주는 날에는 유물주의도 굴복할 것이요, 유심주의도 굴복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런 한날이 기필코 와야 합니다. 신을 부정하는 유물주의 사상 앞에 신의 뜻이 확실히 나타나게 된다면 공산주의는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민주세계의 혼란된 환경도 신의 뜻이 이렇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때에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중요한 문제, 역사적인 문제들의 해결 방안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수많은 정치가들이 무릎을 모으고 앉아써 밤을 새워 가며 밀담하는 자리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이 세계 앞에 공개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는 기점을 발견하는 자리에서 해결됩니다. 길은 그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과학은 점점 발달하여 신을 과학을 통해서 물적 증거를 하는 실증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심령과학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현상 같은 것을 사진으로 찍고. 실제로 그것을 전부 영화를 보듯이 볼 수 있도록 표면화시키는 시대권내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에게 물어 보겠습니다. 신이 있어요, 없어요? 어디 박공서, 말해 봐? 「있습니다」 어디에 있어? 「정신세계에 있습니다」 정신세계가 뭐야? 밥을 먹지 못해 배가 고플 때, 위가 텅 비어 있을 때는 어때요? 거기에도 신이 있어요? 뜨끔하지요? 그럴 때 밥이 먼저입니까, 신이 먼저입니까? 어떤 것이 먼저입니까?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핑계는 많지요.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하는데,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 잠자지 말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그것을 다 느낄 것입니다. 그런데 남들은 바쁘게 움직이는데 잠자고 있다가 영계에서 가르쳐 주면 ‘아, 그렇습니까? 아이고 아버지…’ 하고 기도하며 울고불고 해 가지고 아침에 보면 얼굴이 콧물자국, 눈물 자국으로 엉망입니다. 그래 놓고 또 다음날은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문제는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신의 나라가 어떤 나라고, 신이 바라는 세계는 어떤 세계며, 신이 계획하여 창건하고자 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그 나라에서 살 수 있는 백성은 어떠한 백성이고, 그 나라에서 살 수 있는 나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 지를 확실히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33-235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안다면
옛날에 미국의 동부 사람들이 서부를 개척할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이었느냐? 그때의 정치가들의 정책적인 선전입니다. 서부에는 황금산이 있다 뭐가 있다 하며 천지에 깔린 것이 전부다 노다지이고 금덩어리인데, 그것은 먼저 가서 캐내는 사람의 것이라고 선전을 했어요. 그러니까 죽을지 살지 모르고, 인디언이고 무엇이고 생명을 내놓고 동료가 죽어 넘어지는 것을 보고도 조금 더 가 보자, 또 조금 더 가보자, 해 가지고 서부를 개척한 것입니다. 그들은 소문이 사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들 죽더라도 자기가 남아지는 날에는 일확천금하여 천하 제일의 부자가 될것이라는 소망에 불탔기 때문에 서부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광부가 광맥을 찾기 위해 나섰다가 기진맥진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러 곡괭이질을 한 번만 더 하면 나자빠질 순간이라도, 열 번만 더 파면 틀림없이 노다지가 나온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곡괭이질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죽을 지경이라 해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안다면 보따리를 싸야 됩니다. 시집을 가든가, 장가를 가든가, 이사를 가야 된다면 거기에 대한 준비를 해야 되는 것처럼 준비를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사짐을 싸 가지고 갈 준비를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순간이 올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그냥 그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망해 가는 세상의 더러운 먼지를 전부다 털어 버리고, 침을 뱉고 ‘나는 가겠다’ 하는 마음으로 보따리를 싸 가지고 새로운 세계로 갈 준비를 하는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말입니다.

그래, 신(神)이 여기에서 살려고 하겠습니까? 신이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그냥 살려고 하겠냐 이말이예요. 그러니 보따리를 싸라는 것입니다. 세상과는 인연을 끊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따리를 싸 가지고 어디로 갈 것이냐? 그것이 막연하기 때문에 걱정이지, 그곳을 확실히 알기만 하면 죽어도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정성과 생명을 다하여 이 길을 가는 것은 이 길이 틀림없는 길이기 때문이요, 이 길을 다 가고 나면 내가 닦아 놓은 수고의 터전을 그냥 그대로 인류역사에 상속해 주고 갈 수 있다는 데에는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 박봉식이는 하나님이 있는 줄 알아? 「예」 어떻게? 꿈에 가끔 나타나기라도 했나? 진짜 알아?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아는데, 확신이 없습니다」 그게 걱정이야. 왜 확신이 없어 ? 그래 박봉식의 식대로 해서 하나님이 해설이 되겠나? 안 되지 ? 상식적으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믿더라도 확실히 알고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있다는 믿음이 확실치 못하면 천국에 데려다 놓아도 생활을 못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착실한 느낌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감촉할 수 있는 세포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 뭐 하나님이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이지’ 하는 식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옛날에 군주를 중심삼은 국가라든가 제국주의 체제에서는 ‘왕’ 하면 느낌이 척 들어오지만,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 하면 들어오는 느낌이 별로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지 뭐’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33-237
공적 생활과 사적 생활
공적인 활동과 사적인 활동을 중심삼고 볼 때, 공적인 활동은 하나님과의 인연을 하나 맺고, 둘 맺고, 셋 맺고, 자꾸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느껴요? 느껴요, 안 느껴요?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좋은 일을 하게 되면 그만큼 하나님과 가까와진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기어가 물려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기어가 절반만 들어가면 기계가 돌기 시작하지요? 그러면 그 모양은 볼수록 좋아지지요. 마찬가지로 공적인 생활을 하면, 하나님과의 인연이 하나 맺어지고, 둘 맺어지고, 셋 맺어지고 해서 엉클어지고 또 엉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바퀴가 돌기 시작하는 날에는 천지가 야단난다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신나겠어요?

사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올라 갔던 심정이 내려간다면 그 일을 할 수 있겠어요? 문제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다들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먼저 들어왔다는 패들이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 나는 선배로서 후배와 다르니 선배로 대해 달라’고 하는 모양인데 그따위 생각은 집어치우라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얼마만큼 하나님을 아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영계에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석온씨가 정성껏 기도를 하는데, 오늘 아침이라고 했나, 어제 아침이라고 했나? 「어제 아침입니다」 파주 간 날이군. 그런데 유협회장이 턱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그랬다고 그랬지요? 「예」 석온씨가 예배를 드리는데 참 좋아하는 표정을 짓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유! 내가 세상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살 때 조금도 잘못한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영계에 와 보니까 잘못한 것이 참 많구만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가 지상에 있을 때에는 몰랐지만 영계에 가보니 조건에 걸려 있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해 주지 않았으면 그는 갈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협회장이 선생님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제일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하면 풀어 줄 수 있느냐? 전에도 얘기했지만 풀어 주려면 두 가지의 내용을 갖추어야 됩니다. 첫째는 그가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있는 공적이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그를 용서함은 물론이고 민족이 잘못한 것까지 용서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만 용서해 주고 다른 사람은 용서하지 못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를 용서해 주고 민족이 잘못한 것도 탕감시켜 가지고 재차 용서하여 주겠다는 기도를 하고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나 들락날락하면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40일 전도를 하라고 했는데 안 했으면 걸리는 거예요. 참여하지 못하면 걸리는 것입니다. 이 길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걸리는 것입니다. 가정을 하나님 앞에 바치면서 가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딸까지도 다 하나님 앞에 바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복귀섭리를 하시는데 6천년이란 긴 세월이 걸린 것입니다. 이 심정의 세계에 맺혀진 심정의 사연이라는 것은 그 이상의 사연을 갖지 않고는 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러한 아들딸을 찾아 나오시기에 6천년이란 세월이 걸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 이상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 인륜의 참다운 성자가 될 수 있는 지도자를 찾아 나오기에 6천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33-239
인간의 책임분담과 선생님이 필요한 이유
어떤 사람은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보고 ‘선생님이 또 저런 말씀을 하는군’ 할 것입니다. 그러나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얼마든지 해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패들은 선생님을 보고 선생님에게도 책임분담 5퍼센트가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선생님한테 책임분담 5퍼센트가 있어요? 선생님은 100퍼센트를 해야 됩니다.

그건 유협회장도 모르는 겁니다. 유협회장 생전에 얼마나 사건이 많았어요. 뭐 별의별 시시한 것들이 다 원리를 받아 가지고 뭐라고 해도, 유협회장도 5퍼센트의 책임분담에 걸리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 사람 만 사람한테 있는 책임분담 5퍼센트가 전부 다 같아요? 다르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수습해야 돼요? 거기에는 공식이 있어요. 그런데 모든 사람의 책임분담 5퍼센트가 다 같느냐 말이예요. 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에게 선생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선생님을 절대시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선생님만이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혼자서 5퍼센트의 책임분담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쭉정이들 같으니라고. 그래 여러분들이 5퍼센트의 책임분담을 해결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이 스스로 5퍼센트 책임분담을 해결할 수 있다면 선생님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공식을 모르면 5퍼센트의 책임분담을 풀 수 없는 것입니다. 그 5퍼센트의 공식이 뭐냐 하고 물으면, ‘내가 알 게 뭐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녀석들은 망하는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지금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하는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습니다. 뭐 선생님이 이중작전을 한다고요? 수작들 그만두라는 겁니다. 자기가 발단되어서 이중작전을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벼락을 맞을 겁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들한테 5퍼센트의 책임분담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은 그들이 완성권내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요? 여러분은 완성권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책임분담 5퍼센트가 필요한 것은 여러분이 아직까지 완성권내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완성권내를 향하여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완성이라는 것은 7수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공식을 현실적으로 적용하여 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복귀가 가능할 것 같아요? 원리를 배웠으면 원리적으로 생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친 노릇하고 있는 귀신 떨거지들이 많습니다.

그래, 5퍼센트가 어디서 필요한 것입니까? (도표로 설명하심) 여기서 떨어졌기 때문에 떨어진 곳에서 다시 찾아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려 가기 위해 5퍼센트의 책임분담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탄편과 하나님편의 길을 가려서 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은 오시는 주님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절대적으로 믿고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믿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잘못하여 역적의 팻말을 꽂게 되면 여러분은 물론, 여러분의 선조까지 전부 다 걸려드는 것입니다. 유협회장이 훌륭하다는 것이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명령만 하면 그대로 따르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에는 별의별 수작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의 말을 의심이나 하고, 5퍼센트의 책임분담이 있다 하면 불신합니다. 하나님을 대하는데 그런 불신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생각 자체가 잘못됐어요. 그런 생각 가지고는 절대 못 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요? 무슨 판국이 되겠어요? 여러분에게 그럴 만한 무엇이 있어요? 깜깜 철부지들이 되어 가지고 말예요. 밋밋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담벼락을 넘어가는 것이 차라리 낫지요.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 등이 미완성권내에서 이루어 질 수 있습니까? (도표로 설명하심) 이것을 뛰어 올라가 이곳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은 이 자리(완성권내)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7년노정을 세워야 됩니다. 이 7년노정은 선생님 홀로 가야 할 노정입니다. 이것이 5퍼센트예요? 누구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 홀로 말없이 가야 할 노정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따라만 오면 되는 것입니다.

33-241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려면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이 무엇이냐? 그들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물어봤다면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물어 보는 것이 책임분담 5퍼센트예요? 물어 보는 것은 자유입니다. ‘천사장이 이러고 저러고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물어봐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하나님이 답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어 보지 않고 횡적 관계를 맺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물어 보지 않고 행동했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책임분닫 5퍼센트를 감당할 자신이 있어요? 아무것도 없으면서 날뛰는 별의별 귀신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정신 가지고 언제 통일시키겠습니까?

원리라는 말은 공식이라는 말입니다. 원리가 뭐냐? 원칙적인 이치지요. 그러면 원칙적인 이치는 뭐냐? 공식입니다. 그렇지요? 이 길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길을 가야 하고, 이길을 가려면 믿음의 아들딸을 세워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 가정의 여덟 식구를 전부 잃어 버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과 해와, 즉 부모를 중심삼고 세 아들딸을 잃어버렸으니 이 세 아들딸을 찾아 가지고 돌아가야 됩니다. 여기서(도표로 설명하심) 떨어졌기 때문에 다시 이 자리까지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곳이 바로 장성기 완성급입니다.

그러면 장성기 완성급에서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실체기대를 복귀해야 됩니다.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권내에 들어가야 됩니다.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권내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메시아를 맞이해야 원죄를 청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원죄 청산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선생님이 어떤 조건을 중심삼고 축복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복식 때에 성주(聖酒)를 마시는 것이 원죄를 청산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몰랐을 거예요. 이러한 절대적인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과 땅에서 사탄세계를 분립시켜 가려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대를 중심삼고 실체기대를 통과해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무엇이냐?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내가 메시아를 위해 세우는 기대이지, 메시아가 나를 위해 세우는 기대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밤에는 좋아하고 낮에는 싫어하고, 이것은 좋고 저것은 싫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 데나 들여보내도 감사히 갈 줄 알아아 됩니다. 그런데 꺼떡거리면서 선생님이 지금 어떻고 어떻다고 하며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사람은 귀신이요, 도깨비지 뭐예요? 그것이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도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해서 타락을 했는데,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면 복귀될 것 같아요? 그런 놀음에 춤추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그런데 별의별 것들이 다 와서 신경 쓰이게 합니다. 두고 봐요.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그러니 하나님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신의 섭리, 즉 하나님의 섭리는 역사성을 띠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원리를 가르쳐 주면 뭘합니까? 원리의 내용이 무슨 레코드 판인 줄 알아요? 그것을 그냥 그대로 재판(再版)하여 가지고 그것으로 전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두고 볼 때,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을 아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 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왜 자기를 위해 일하느냐는 것입니다. 어디에 복종하느냐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했으면 자신이야 망하든 흥하든 개의치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을 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슨 조건이 그렇게 많으냐는 것입니다. 말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결국은 자기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교회에서 날 몰라 주고 뭐 어떻고, 선생님이 날 몰라 주니 무엇이 어떻고 어떻고……’ 그것이 누구를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까? 선생 님은 누구를 위해서 살고,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서 일하라는 겁니까? 결국 자기를 위하여 일해 달라는 것 아닙니까? 안 그래요?

33-243
대한민국은 남북이 하나되어 제물로 바쳐져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천만 가지도 더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은 그 일을 해도해도 입을 벌려 ‘나 쉬면서 하겠다’ 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입을 벌려 ‘나를 좀 알아 주소’ 하는 사람은 깍정이입니다. 그럴 수 있어요? 하나님을 위한다고 해 놓고 그럴 수 있느냐 이말입니다. 하나님은 개인복귀보다도 큰 세계복귀를 책임지고 계시는데, 그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 사정을 중심삼고 그에게 가서 종살이를 해야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개인 하나를 복귀하려고 해도 밤낮 머리가 아픈데, 세계? 30억 인류를 전부다 복귀해야 할 책임을 진 하나님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기도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내 뜻대로 해줘야 하나님이지’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종이예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면 할 일이 많습니다. 잠을 자면서도 걱정하고 일을 하고 나서도 부족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서도 그것을 칭찬하면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랑하려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이것을 이렇게 했습니다’ 하고 자랑하면 한때는 들어 줍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끝까지 가지 못합니다.

고개를 넘을 때에는 지팡이가 필요해서 들고 가지만, 일단 고개를 넘고 나면 지팡이를 던지지 말라고 해도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면, 하나님을 진짜로 알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확실히 알아 가지고 나는 그분을 위해서 태어났고 그분을 위해서 산다면 불평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세계복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계가 문제인 것입니다. 나 하나 죽고 살고, 통일교인 몇 명이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하나 망하 더라도 세계를 구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대한민국을 제물삼아서 세계를 구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세계가 우선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서 빨리 대한민국이 단결해서 남북이 하나되어 하늘 앞에 제물로 바쳐질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으로 말미 암아 세계가 속죄받고 구원받으면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속죄받은 세계가 흥함과 더불어 대한민국도 흥하는 것입니다. 속죄받은 사람들의 나라와 그것을 위해 수고한 사람들의 나라가 한 나라가 되면, 수고한 사람들의 나라가 하나의 중심적인 나라로 등장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한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선생님이라고 모시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까짓것 인사 안 해도 됩니다. 어디를 가면 인사를 하겠다고 ‘선생님, 여기에 앉으세요. 인사드리겠습니다’ 합니다. 바쁜데도 불구하고 떡 버티고 서서 ‘아, 인사를 받으셔야지요’ 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선생님의 눈치를 보고 인사하려는 겁니다. 그것 받자니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보다도 더 바쁜 일이 있는데 꼭 인사받고 가야 돼요? 선생님에게는 할 일이 많은데 꼭 인사를 하려는 것은 누가 좋아서 그러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좋아서 그러는 거예요?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에게 인사 안 해도 됩니다.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이 자꾸만 인사를 하려고 하는 것은 인사를 안 하면 양심이 편치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인사를 받고 나서는 칭찬을 해줘야 하고 알아줘야 하고 그렇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서는 칭찬해 주기를 바라고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이 오늘날까지 알아주기를 바라고 칭찬을 받겠다고 이 일을 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삼천만 민족에게 별의별 규탄을 다 받고 별의별 욕을 다 먹었어도 끄떡없는 사람입니다. 세계 인류 전체가 나서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쫓아내겠다고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끄떡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런 것은 각오한 것입니다. 지금 그런 때가 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보다 더한 때가 와야 합니다. 빨리 이러한 때가 지나가고 그 이상의 것이 있는 때가 와야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직은 초반전입니다.

33-245
하나님의 때가 되기 전에는 침묵하라
내가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랐다면 왜정 때부터 감옥살이를 하고 이북에서는 물론, 남한에 내려와서까지 감옥살이를 하면서 별의별 놀음을 다했을 것 같아요? 취미삼아 감옥에 들락날락하는 놀음을 할 것 같아요?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기 좋은 일,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이런 놀음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바보나 천치는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똑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시는 길이 얼마나 험한지를 알았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괜히 이러구 저러구 입을 벌린 적이 없습니다. 밥 먹는 입으로 불평하고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통일교회의 방침이 아닙니다. 그러는 사람은 가면 갈수록 망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까지 외부 사람을 안 만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 이유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때가 되기 전에 나가서 설쳐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도 앞을 막아 버리고 사탄도 막아 버립니다. 그렇지요? 여러분도 귀한 것이 있으면 자랑하지 않지요? 보물을 가졌다고 해서 ‘나는 다이아몬드 몇 캐럿 짜리를 가졌다. 한국에서 제일 좋은 다이아몬드가 요것이다’ 하면서 자랑하고 다니면 며칠 안가서 칼침을 맞는 것입니다. 귀한 것일수록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을 짓고 안팎으로 준비가 다 되어 환경이 무르익었을 때 귀한 그것을 갖다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입니다. 요전에도 어떤 사람이 만나자고 했지만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앞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보다도 하나님이 먼저 자리를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왜 안 짓느냐?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교회 지을 돈은 있습니다. 당장에라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가 문제가 아닙니다. 가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자리를 잡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원칙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에게서 자리를 잡아야 되고 가정에서도 자리 잡아야 됩니다. 가정에서 자리를 못 잡아 가지고는 제사장이 못 됩니다. 진짜 제사장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처끼리 싸움하고 교회에 나와 가지고 예배드리면 거기에 하나님이 같이하실 것 같아요? 교회에 하나님을 모시기 전에 먼저 가정에 하나님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전후 관계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내 나이가 50이 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같은 젊은 사람한테 질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뜻을 이루기 전에 지칠 수 없습니다. 왜 ? 하나님이 어떤 입장에 계신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여러분은 다를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부 이 뜻길에서 떨어진다 해도 나는 떨어질 수 없습니다. 나만은 절대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세상으로 흘러가고 싶으면 이 길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 자유가 나보다 많겠지만, 나는 그 길을 홀로 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중에 누구는 뭐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전부다 남의 집 사람들입니다. 자기 집에 어려움이 있는데도 자기 집을 헐고 뜯고 해서 자기만 편안히 잘 먹고 살려고 하는 놈들이라는 겁니다. 교회 팔아먹는 사람들은 도둑놈들입니다. 또 입을 벌려 가지고 누구는 어떻고 어떻다고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내가 많이 봤어요. 앞으로는 그런 말을 들으면 그런 말을 한 사람을 기필코 찾아서 모든 것을 전부다 그 사람에게 덮어씌우겠습니다.

그런 말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내가 알면 그 사람의 입에 대못을 박든가, 큰 나무통에 대못을 박아서 거기에 꽂아 세워 놓든가 할 것입니다. 하늘 길을 가고 하늘 뜻에 협조하지는 못할 망정 그 길을 막고 다른 사람 가슴에 못을 박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 것은 다 탕감짓고 넘어갈 것입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하는 말의 뿌리를 캘 것입니다. 그 뿌리를 뽑을 것입니다. 청산짓고 넘어간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요즈음 뭐 어떤 이가 외국에 선교사로 가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해 가지고 ‘교회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하면서 협회본부에서 하지 않은 말들을 해서 문제를 만들었다고요? 왜 혼자 고생하는 사람에게 딴 마음을 품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별의별 일을 다하고 있어요. 전부다 내가 들은 말입니다. 이제는 그런 것을 깨끗이 청산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데데한 사람이 아닙니다. 철두철미한 사람입니다. 손을 대는 날에는 깨끗이 뿌리를 뽑든가 청산짓든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도록 단단히 훈련된 사람입니다. 기도도 여러분 이상 하고 생각도 여러분 이상으로 많이 합니다.

33-247
항상 부족하다는 마음을 가지라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진짜 안다면 힘들다, 뭐가 어떻다, 내가 없으면 딴 사람이 하겠지 하는 그런 구경꾼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들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자손들이 좋은가.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것은 자기를 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그런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아느냐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이 계시는지를 아느냐는 거예요. 어디,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생각 하는 사람, 하나님이 계시다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손들은 잘 들지요. 그래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살고 있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살기를 바라고 있겠어요? 지금 때가 어느때인지, 뜻이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 보란 말입니다.

밤낮 움직이고도, 벌벌 기어 다니면서도 ‘아직도 저는 부족합니다’고 해야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왔지만 내일은 또 어떻게 갈 것인가를 염려하고, 오늘이 문제가 아니라 내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염려하면서 내일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무슨 불평이 있을 수 있겠어요? 어떻게 조금 쉬었으면 하고, 뭐 이젠 됐다고요? 그게 무엇입니까? ‘됐다’가 뭐예요?

여러분은 이제껏 말씀한 내용을 쭉 들어서 시대적인 모든 내용이 어떠한 힘을 가지고 세계를 이끌고 갈 것인가를 알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계실 것이라고 하는 막연한 상태 가지고도 안 됩니다. ‘계신다’고 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는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하나님이 계시기는 계시는데 그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나는 알고 있는데 설명을 못 한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 꿀 먹은 벙어리란 말을 알지요? 벙어리가 꿀을 먹고 좋아하는데, 꿀 맛이 어떻다고 그 벙어리가 아무리 손짓 발짓으로 표현한다고 해도 여러분이 그 맛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벙어리는 꿀 맛을 압니다. 지혜롭고 똑똑하여 천하를 다 아는 지혜의 왕자라도 꿀을 못 먹어 봤다면 꿀에 대해서는 꿀을 먹어 본 벙어리가 선생입니다.

그렇지만 그 벙어리가 아무리 맛있다고 설명을 해도 여러분이 그 맛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천년 동안을 들어 봐도 모르는 것입니다. 벙어리가 그 맛을 알려주려고 먹은 것을 토해 주면 그것을 먹어 보아야 되겠어요, 안 먹어 보아야 되겠어요? 토하는 데 안 나오면 주먹이나 손가락을 넣어 가지고 토해서 아까운 것이라고 하며 먹어 보라고 할 때 그 맛을 알려면 먹어봐야 되겠어요, 안 먹어 봐야 되겠어요? 여러분, 그것을 먹을수 있어요? 그런 비위가 있냐 말예요. 꿀 맛을 알려면 그것이라도 냉큼 받아서 먹어 봐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영영 꿀 맛을 모른다는 거예요.

지금 은혜받는 할머니들을 보면 전부다 꿀 먹은 벙어리의 모습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벙어리가 꿀 먹은 모습을 해 가지고 콧물 질질 흘리는 모습이 요귀나 마귀 사촌이 다 됐습니다. 보기만 해도 나자빠질 모습을 하고 다닙니다. 깨끗이 하고 다니면 모르는데 왁자지껄해 가지고, 귀신이 다 되어 눈만 반짝반짝해 가지고 하나님을 믿자 하고 다닌다는 거예요. 그러니 거 믿겠어요? 그래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믿겠어요? 하나님이 계신다 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남들보다 무엇이든 더 나아야 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을 상속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3-249
내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선생님이 이 길을 가는데 있어서, 요즘에 와서는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지만 옛날에는 무수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또한 지금까지도 이 길을 가지 말라고 반대하고 핍박하는, 별의별 일을 해 가지고 소문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갈 길에는 반드시 이런 일이 있어야 됩니다.

내가 이렇게 나가면서 원수의 소문을 책임지고 깨끗이 청산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후손들 앞에 가르쳐 줄 수 있는 재료를 모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좋아할 게 뭐예요. 종새끼 중에 그런 종새끼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철부지한 것들이라서 푼수나 있어요? 또, 할머니들이 기도하여 능력을 받는다고 해도 푼수가 있어요? 세상을 모르니 푼수가 없어요, 푼수가. 그러니 거기서부터 가려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교차점을 아시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삼고 골라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짜 하나님을 알고 싶으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구역질을 해서 여러분들에게 먹으라고 해도 먹으라는 것입니다. 먹고 나서 죽나 보라는 것입니다. 그 맛이 어떤가 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을 때려 잡나, 살려 주나 해보라는 거예요. 여러분을 소망의 사람으로 만드는가, 절망의 사람으로 만드는가 해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60년대에 임지에 나가서 전도하고 올 때 나빴어요, 좋았어요? 전도하고 올 때 투닥거렸어도 좋았어요, 나빴어요? 밥을 굶었어도 그때가 그립지요? 왜 그립습니까? 나빠서 그리운 거예요? 그것은 생명의 힘줄을 얽어매 가지고 잡아당기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또한, 거기는 하나님과 가까운 접경지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야, 아무개야’ 하고 부르시면, 모습은 망둥이 같지만 ‘예’ 하고 대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말이라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스승을 만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모릅니다. 한국에 있는 신령한 사람을 다 만나 보았고 일본까지 가서도 찾아다녔습니다. 박재봉 목사 등 누구누구 신령하다는 사람은 다 만나 봤어요. 그래 가지고 누구는 몇 점짜리고 누구는 몇 점짜리라고 점수를 매겼습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모르면 말하는 것을 못 믿을 것이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믿지 못할 일을 너희들 전부다 믿어라’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는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전부다 믿으라고 하는 세상이 어디냐? 믿으라고 하는 세상에서는 믿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다 믿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야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의 기도제목 중에 중요한 하나는 ‘내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나에게 불신의 조건만 가져다 줄 뿐이고 하늘을 가장해 가지고 ‘나를 믿으면 하늘이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끝까지 믿고 나가면, 끝까지 내가 그렇다 하면 너도 하나님을 소개해야 할 것이다’ 하는 신앙을 갖고 나왔습니다.

위장전술이라는 것은 사실 앞에는 패배하는 것입니다. 끝에 가서는 판가름이 납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거짓된 것을 통해 가지고 가는 길이 참 앞에 가까이 갈수 있는 빠른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적과 접전이 벌어졌을 때 아군의 사령관이 있는 장소는 그의 부하들 보다도 적이 먼저 압니다. 사령관을 직접 모시는 참모 외에는 부하들보다도 원수가 먼저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하면서도 선생님의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 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안하는 겁니까? 왜 안해요? 두고 보라구요. 저나라에 가서 하늘의 법도에 걸리나 안 걸리나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믿겠으면 목을 칼로 찔러 죽어서 당장 알아 보세요. 내가 거짓말을 했나 참말을 했나.

유협회장도 영계에 가 보니까 그것이 실감나던 모양이지요? 지상에서 같이 살다 보니 습관이 되어서 친구 같았겠지요. 말로는 선생님 같이, 부모 같이 대했지만 그것은 말뿐이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처음 만난 그때 보다 더한 마음을 가지고 모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본이 되어 가지고 전통을 세우기를 바란다면 군말이 없다는 거예요.

33-251
공적기준을 중심삼고 생활하라
여러분은 자기 부모와 자식들과 같이 살던 그 생활기준을 중심삼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맡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운을 가려 가야 하고 또한 하늘 가정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주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아들딸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걸려 있고 세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공적인 입장에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공적이냐 사적이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공적인 일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것이요, 부모로부터 모든 것을 상속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인격 기준으로 볼 때 그들도 감동할 수 있는 절대적인 요인으로 남아지는 것이 공적인 생활이요, 부모가 공인할 수 있는 모든 요인을 감퇴시키는 것이 사적인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길을 가는 데는 공적 기준을 중심삼고 가야 합니다.

내가 이번에 축복 대상자들을 모아 가지고 한마디 물어 보았습니다. 전도도 괜찮게 하는 사람에게 딱 한마디 ‘야, 이렇게 이렇게 되었을 땐 어떻게 해야 되지 ? ‘ 하고 물어 봤던 것입니다. 그때 그가 대답하는 한마디에 그를 판단할 수 있는 열쇠가 달려 있습니다.

그 대답이 진지한 얘기인지, 그냥 말로만 하는 얘기인지는 내가 알 수 있습니다. 말을 하기 전에 감정이 그의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표정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말은 제2차적인 것입니다. 표정과 눈을보면 척 알수 있습니다. 공적으로 사는 사람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것은 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눈이 또렷또렷하고 말을 떳떳 하게 한다 해도 자기를 중심삼고 말하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입니다. 이번 교육 때에도 1차건, 2차건, 3차건, 4차건간에 두고 보세요. 얼굴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함부로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90퍼센트 이상 알 것입니다. 많은 증거를 받았으니 말예요. 어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요? 「예」 자기 자신은 진짜인지 잘 모르잖아요? 대개 외부의 증거를 통해서 알지요. 그렇지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 다 그래요.

지식은 누가 가르쳐 주어서 아는 것입니다. 수학도 배워 가지고 아는 것이예요. 그렇지요? 어떤 사람이 ‘그것이 하나라고 하는데 왜 하나요? 그것을 누가 가르쳐 주었어요? 나는 그것을 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게 되면 어떡하겠어요? 그것을 믿어야 되겠어요? ‘하나에 둘을 합하면 왜 셋이냐? 다섯이 될 수 있지 않느냐? 그러면 어떡하겠어요?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부다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 정해진 것을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들어맞아서 공식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다 보고 믿어요?

여러분, 원자라는 것이 있지요? 여러분도 원자라는 것이 있다고 믿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원자를 봤어요? 원자가 있다고 믿는 것은 어떤 감응작용을 통해서 반응이 나왔기 때문에 그 반응을 보고 그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봤어요? 하나님이 있다고 가정해 가지고 찾아 보니, 그 반응적인 현상이 실존하는 것을 방불케 하기 때문에 계시다고 믿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보고 믿겠다고 하는 사람은 공부고 뭐고 다 그만두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모든 것을 다 체험하고 실험해 가지고 언제 다 알 수 있어요? 벌써 척 대해 보고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세 사람만 증거하게 되면 그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33-252
자신을 가져라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진짜 사랑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민족과 더불어 관계를 갖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마음이 어려 있고 그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한 마음이기 때문에 민족과 같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을 통해 자기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 나갈 것인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지금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그 마음은 통일교회 문선생의 마음이 여러분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기도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선생님의 갈길을 가르쳐 주신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민심은 곧 천심이라는 말이 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위정자가 있으면, 하나님은 그 나라의 백성들을 통하여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왕은 백성을 잘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군왕의 운명을 판단해 주고 군왕의 갈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내용은, 상좌나 관원, 각료 같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백성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을 가는 데에는 참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료를 수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어디를 갈 때, 내 주위에 천운이 같이하고 어떤 운세가 같이한다면 나는 그 운세를 몰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운세를 맞기 위해 정성들인 사람은 대번에 나와 상대관계를 맺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는 최고의 희망의 기준을 중심삼고 정성들여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앞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순간 하나님은 기쁨이 서로 일체가 안 될까봐 6천년 역사를 거쳐오는 과정에 정성들인 모든 것을 그 사람과 부딪치는 순간에 제일 귀한 것으로 결정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나의 갈 길을 제시해 주는 제2, 제3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가만히 있어도 때가 된 것을 다 압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말을 쭉 통합해 보면 어떤 때가 됐는지 알 수 있어요.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일반 영통인들은 선생님을 많이 압니다. 요전에 한번은 영통인들이 선생님을 만나려고 교회에 와 가지고 ‘여기가 청파동 통일교회입니까? ‘ 하면서 식구들은 제쳐 놓고 선생님을 만나자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의 보고를 들어 보면 선생님이 지금부터 어떻게 해 나갈 것이다 하는 것을 나발 불어 놓는 거예요.

자신을 갖게 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갖고 싸우라는 것입니다. 때가 이렇기 때문에 그런 작전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뿐만 아니라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33-254
아벨이 가인을 복귀시키는 길
같은 목표 아래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자리에 서는 사랑하는 스승이면 스승, 제자면 제자 등 주위 환경의 사람들을 통하여 중심존재의 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복귀섭리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종은 양자의 위치를 가르쳐 주는 것이요, 양자는 아들의 위치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또한 아들은 아버지의 위치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평면적으로 볼 때에, 종에서부터 양자, 양자에서부터 아들, 아들에서부터 부모의 위치를 찾아 나오기 때문에, 부모는 아들이 충성하는 것을 보고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들은 또 양자가 충성하는 것을 보고 부모 앞에 충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로서는 아들이 어떻게 할 때 제일 좋고 기뻤는가를 생각하여 그것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생각하면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또 아들은 양자가 자기를 대해 어떻게 할 때 좋았는가를 생각하고 그대로, 또 자기가 양자를 대해 어떻게 해주길 바란다면 100퍼센트 그런 마음을 가지고 부모 앞에 효하여 효자의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아들은 양자한테 배워서, 공인을 받지 않더라도 효자의 길을 찾느라고 수고하여 배우겠다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양자도 복귀될 수 있고 아들도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아벨이 가인을 복귀시키는 길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런 길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내용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환경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안팎으로 다 맞아야 됩니다.

그러면 문제는 어디에서 귀결되느냐? 하나님을 확실히 아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아느냐는 것입니다. 만약에 아들이 집을 나가서 틀림없이 죽게 된다는 자리에 들어갔다고 하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처참하겠어요? 여러분이 그 이상의 슬픈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알기만 한다면 굳이 교회에 오라 마라 할 필요도 없습니다.

33-255
하나님과 같이 생활하는 맛
하나님을 안다고 해도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과 같이 생활하는 맛을 보았느냐? 그런 맛을 본 사람은 돈이 아니라, 매일 고기 실컷 먹고 살도록 해준다 해도 거기에 안 갑니다. 그것은 전부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믿는 아주머니들, 아들딸들을 가진 아주머니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이 정말 그렇습니다. 자기 아들딸이 효자 효녀여서 좋다고 야단이지만, 두고 보십시오.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 벌어지고 가정이 파탄된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딱 한마디를 하게 되면 ‘흑’하고 울음이 터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내 말 한마디를 안 들으면 내가 가만 있어도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큰 소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감이 어떻게 되고 자기 집이 묻힌다 해도 끄덕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렇게 나온 아주머니들, 세상사 잊어버리고 나왔으니 끝까지 버텨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재산이요, 그것으로 깨끗한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탕감해야 됩니다. 고생으로 시작한 사람은 고생으로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욕을 먹고 핍박을 받더라도 가정적인 터전이 있는 사람들은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처음 출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피땀 흘리며 살자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나라를 굴복시킬 때까지 가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은 억천만금이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을 편안한 자리에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들이몰 것입니다. 피땀으로 뿌렸으면 피땀으로 거두어야 되는 겁니다. 시작했으면 시작한 것으로 열매를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33-256
가정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축복가정
1960년대는 개인을 중심삼은 탕감시대였고. 1970년대는 가정을 중심삼은 탕감시대입니다. 그래서 70년대에는 가정을 고생시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계획입니다. 통일교인을 훈련시키는 데 있어서 이것은 절대적인 방안입니다. 가정을 고생시키는 데에는 아들딸까지도 고생을 시킬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모자협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성을 중심한 가정적 사위기대를 세워 하나님의 뜻을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것이 섭리이기 때문에 개인을 중심삼은 모자 협조, 모녀 협조와 같은 입장에서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따라가서 고생하는 것을 영광으로 알 수 있는 모습으로 어떻게 이루어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1970년도부터는 가정이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이런 가정이 나와야만이 삼천만 민족의 모든 가정들을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 종족의 가정 전체가 이 민족을 대표해서 고생을 해야 됩니다. 민족의 역군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1970년대에 제2차 7년노정을 통해서 가정을 중심삼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정적인 탕감을 짓기 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개인의 탕감노정이지만 선생님에게는 가정적인 탕감노정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이 종족적인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여러분은 가정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보다 한단계 앞서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부인들을 전부 다 동원하라고 했는데 임지에 내보냈어요, 안 내보냈어요? 여기에 축복가정들 손들어 봐요. 전도하라고 내보낸 사람은 손을 내리고, 안 내보낸 사람만 손들고 있어요. 왜 안 보냈어요? 너는 왜 안 보냈나?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뭘 하고 있어? 「조그만 일을…」 다른 사람도 같이 일하는데 어떻게 보냈겠나? 거 잠깐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일하면 될 거 아냐? 「며칠 있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어떻게 할 거야? 「나가야지요」그럴 것을 왜 안 내보냈느냐는 거예요?

앞으로는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해 가지고 믿음의 아들딸까지 고생시켜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은 가정들이지만 앞으로는 믿음의 아들딸로 축복받은 사람들을 전부다 고생시켜야 됩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인 십자가, 가정적인 십자가, 자녀에 대한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됩니다. 이 3대 십자가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은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33-257
하나님을 바로 알자
내 대에서부터 고생시키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믿음의 아들딸들이지요? 「예」 그러니 나가서 고생하라는 것입니다. 3시대를 고생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노정에는 개인복귀, 가정복귀, 그 다음에 자녀복귀 노정이 있습니다. 이것이 선의 번식 노정입니다.

그러면 복귀하는 데는 그냥 복귀할 수 있느냐? 싸우지 않아도 그냥 복귀 돼요? 사탄을 찾아 사탄을 쳐서 이기고 넘어야 복귀가 되는 것이지, 그냥 가만히 있어 가지고 개인이 복귀가 되겠느냐 말예요. 가정이 가만히 있으면 가정이 그냥 복귀가 돼요? 아들딸이 서로 같이 살면서 가만히 있는데 복귀가 되느냐 말입니다. 선의 번식이 되느냐 하는 말이예요? 안된다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개인적인 십자가, 가정적인 십자가, 자녀에 대한 십자가가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십자가를 넘어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책임을 못하게 되면 종족과 민족을 위해서 그것까지 선생님이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가정적인 십자가를 져야 하고 앞으로는 자식들에 대한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여러분 가정의 아들딸들이 갈 수 있는 길을 전부다 대신 수습해 가지고 탕감시켜야 할 가정적인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에게 이러쿵 저러쿵 말해 가지고 해가 되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도움은 못 주나마 쪽박을 깨뜨리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겁니다.

한 나라를 세워 나가는 데 있어서도 지켜야 할 비밀이 많은 것입니다. 하늘땅을 세워 나가는 데에는 여러분한테 말 못 할 사연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들은 하늘의 비밀을 파헤쳐 가지고 아버지를 깊이 알려고 얼마나 노력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가만히 있더라도 선생님이 여러분들의 집을 찾아가서 ‘야 ! 너는 이렇게 가야 한다’고 권고할 수 있는 아들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아들딸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데 선생님은 어떠한가요? ‘ 하며 여러분 자신을 선생님과 비교해 보십시오.

33-258
하나님의 심정은 생활속에서 느껴야 한다
대한민국의 해방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비참한 입장에서 벗어난 일시적인 해방입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해방이란 현세계 정세를 해결지을 수 있는 새로운 체제가 나오지 않으면 있을 수 없습니다. 공산세계나 민주세계가 자연히 굴복할 수 있는 새로운 주의가 나와야만 남북의 자유로운 통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러니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전후좌우가 교차되는 세계 정세 앞에 오늘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이 크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을 중심삼고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할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인류와 더불어, 하나님과 더불어 출발한 교회입니다. 내가 먼저 그것을 실제로 자각하고 새롭게 인식하여 느낌으로써 전체가 그것을 느낄 수 있게끔 만들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아는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생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심정이라는 말을 할 수 있어요? 그러므로 이것은 생활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과 같이 살고 있어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가고 오고, 오늘은 좋겠다 나쁘겠다 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감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감별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모심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언제나 마음놓지 못하고 모시는 생활을 해야 돼요. 어디를 갔다 와도 보고해야 되고, 안 가더라도 집에 있다고 보고해야 됩니다. 잠을 깼으면 깨었다고 보고해야 하고, 어디를 가겠으면 다녀오겠다고 보고해야 됩니다.

밥을 먹을 때도 밥을 먹겠다고 보고해야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대하게 될 때에도 ‘야! 맛있다’ 하고 개처럼 정신없이 먹을 것이 아니라 ‘아버지, 제가 이런 음식을 아버지께 준비해 드리고 먹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니 어쩌면 좋습니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먹으라고 하는 명령이나 그런 느낌이 전해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느끼면서 살아야 됩니다.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33-259
하나님의 심정은 생활속에서 느껴야 한다
대한민국의 해방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비참한 입장에서 벗어난 일시적인 해방입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해방이란 현세계 정세를 해결지을 수 있는 새로운 체제가 나오지 않으면 있을 수 없습니다. 공산세계나 민주세계가 자연히 굴복할 수 있는 새로운 주의가 나와야만 남북의 자유로운 통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러니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전후좌우가 교차되는 세계 정세 앞에 오늘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이 크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을 중심삼고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할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인류와 더불어, 하나님과 더불어 출발한 교회입니다. 내가 먼저 그것을 실제로 자각하고 새롭게 인식하여 느낌으로써 전체가 그것을 느낄 수 있게끔 만들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아는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생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심정이라는 말을 할 수 있어요? 그러므로 이것은 생활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과 같이 살고 있어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가고 오고, 오늘은 좋겠다 나쁘겠다 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감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감별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모심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언제나 마음놓지 못하고 모시는 생활을 해야 돼요. 어디를 갔다 와도 보고해야 되고, 안 가더라도 집에 있다고 보고해야 됩니다. 잠을 깼으면 깨었다고 보고해야 하고, 어디를 가겠으면 다녀오겠다고 보고해야 됩니다.

밥을 먹을 때도 밥을 먹겠다고 보고해야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대하게 될 때에도 ‘야! 맛있다’ 하고 개처럼 정신없이 먹을 것이 아니라 ‘아버지, 제가 이런 음식을 아버지께 준비해 드리고 먹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니 어쩌면 좋습니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먹으라고 하는 명령이나 그런 느낌이 전해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느끼면서 살아야 됩니다.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33-261
믿고 실천해야 발전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우닥딱딱 싸움질이나 하고 그래요?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싸움을 하더라도 뜻을 위해서 해야 됩니다. ‘당신이 망하는 건 좋지만 나까지 망할 수는 없다. 나는 오직 뜻을 위해 이 길을 가고 하나님을 위하여 일을 해서 실적을 쌓겠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럴 때는 남자의 권위를 갖고 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서운 성질을 가지고 아내를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하늘이 보내준 사람으로 생각하여 남편을 하나님 이상으로 사랑하게만 되면 틀림없이 가정에 평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아내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남편은 교회의 책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절대로 교회의 책임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우리 선생님은 이런 남자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선생님은 그건 이렇기 때문에 이래야 되는 거라고 합니다. 체면을 잃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연이 전부다 엉클어져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중심인 주체라면 아내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주체인 남편이 매를 맞는 다면 그 아내는 아내의 자리를 밟고 넘어서서 남편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희생시키더라도 남편을 귀중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기 전에 아내가 먼저 희생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천도입니다.

그렇다고 아내를 함부로 희생시킬 남편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남편은 아내를 대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 생명을 바쳐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런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가정에서는 할 일이 많습니다. 생활 속의 모든 사소한 일, 혹은 몽시 하나라도 둘이 의논하고 분석 비판해야 됩니다. 우리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이런 것을 의논하여 어떤 결론이 확실하다면 둘이 손을 붙잡고 ‘아버지여 ! 저희 가정에 이런 사연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축복을 받은 가정으로서 훗날 민족을 대신한 깨끗한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저희의 나이 몇 살때까지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라고 기도해야 된다는 겁니다.

요셉 가정에 있어서 요셉이 훌륭했다는 것은 천사가 현몽하여 요셉에게 가로되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 1:20)”한 것을 믿고 그대로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점점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암시가 오기 전에 몽시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도하게 되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뜻을 분석해 가지고 기쁨을 얻기까지는 생명을 기울여 가지고 정성을 들여 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느낌이 온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려고 할 때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벌써 기분이 안 좋습니다. 육감이 나를 헤아려 준다는 것입니다.

33-262
암시와 체휼신앙
선생님이 길을 가려고 차를 척 타고 나서면 벌써 안 좋은 느낌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코스를 달리 잡습니다. 그런 영감(靈感)이나 체감이 옵니다. 체감이라는 것은 체휼적인 신앙생활에서 생깁니다. 여러분이 길을 가다가 전봇대고 무엇이고 간에 그것을 붙들고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때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때를 몇번만 놓치게 되면 그런 기회는 나에게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놓쳐 버리면 그것은 절대로 나에게 플러스(+)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힘이 되어서 나를 밀어젖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체휼신앙을 하는 데 있어서 암시란 무엇이냐? 여러분, 암시라는 것을 알지요? 어느 곳을 지나가는데 복숭아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가 푸드득 날아갑니다. 그러면 그 모습을 보고 갑자기 옛날에 있었던 어떤 사건이 연상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제3의 조건을 통하여 새로운 무엇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절대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때 느껴진 첫 감정은 언제나 키워 나가야 됩니다.

어디를 가다가 어떤 사람을 척 볼 때, 섬뜩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 살인을 하러 가거나 살인을 하고 오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오는 느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예감, 그러한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키워 나가면 암시적인 내용을 빨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식구들과 집에서 살 때 들을 수 있는 평범한 말소리가 있지요? 그 중에는 좋아하는 말, 슬퍼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에는 다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그 말하는 음성에 따라 기준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것입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우리 애들이 싸움질을 하려고 할 때, 혼자서 가만히 그것을 지켜봅니다. 그러다가 ‘으앙’ 하고 울 때에는 부모를 붙들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서 우는 것입니다. 가보면 사실이 그렇습니다. 이런 감정이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제3의 조건을 통해 실상을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이 예민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이 오는지 선한 천사가 오는지, 그 사람이 악한 사람인지 선한 사람인지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럴 수 있게 해주는 암시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영적 생활을 하게 되면 그것을 틀림없이 알 수 있습니다. 안테나가 높아진다는 말입니다. 또한 몽시를 통해서 다음날 되어질 일을 전부다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잠자는 시간에 엄청난 입체적인 내용이 벌어 집니다. 그러니 몽시를 받으면 진지하게 해석해 보아야 됩니다. 성경의 요한 계시록은 요한이 받은 몽시입니다. 그러한 몽시와 계시를 통하여 영계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계시를 우리가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활속에서 되어지는 상황을 관찰해 보면 자기 마음에 느낌이 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33-263
자기를 알자
협회장은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지도를 많이 받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내가 협회장에게 미리 이야기합니다. 오늘 누가 올 테니까 맞을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협회장이 가서 만나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기준을 중심삼은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영계와 우리는 주체와 대상의 입장입니다. 그런 것이 없어 가지고는 큰일을 못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몽시 가운데 되어진 일을 연구해야 됩니다. 연구하고 분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볼 수 있는 몽시의 타입이 다릅니다. 무슨 몽시를 받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긴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사람마다 전부 다릅니다. 그렇지만 보편적인 것은 같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 교회에 쓱 들어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을 보면 생각지도 않은 말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옵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 자신이 그러지 않는데도 ‘이놈의 자식, 나쁜 자식 같으니라구’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것은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입니다. 그들을 가만히 지켜 보면 수개월을 못 넘어갑니다. 얼마 안 가서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것부터 하나 둘 셋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지금까지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것은 전부다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무엇을 하자고 하는 것이 땅에 안 떨어지기에 이것에 대해 순응하는 가정들은 세계에 있어서 존대함을 받지만 순응하지 않는 가정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부터는 자기를 잘 알아야 됩니다. 자기를 알지 못하면 혼란이 벌어집니다. 나는 어떠한 자리에 있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심부름할 사람인지, 공적으로 쓰일 사람인지, 주위의 어떠한 자리에 서야 될것인지를 잘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이 벌어집니다. 그것도 모르고 함부로 날뛰다가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맨 밑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모든 영광을 갖다 주더라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당신이 나보다 더 갖고 싶어하시니, 당신이 받으소서. 나는 당신이 그것을 받으시고 나 이상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서 기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 해야 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33-265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대한민국을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면 ‘당신이 대한민국에 바라시는 뜻이 이루어져서 당신이 기뻐하신 후에야 내가 기뻐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기뻐할 수 있는 날을 갖기를 바라시고, 또 우리가 그런 날을 이루어 주기를 바라시며 고대하고 나오십니다. 따라서 그런 일을 자기가 다 했더라도 먼저 나서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고 땅의 것은 땅에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저 선생님으로부터 돈이나 좀 나왔으면 하고 바란다는 것입니다. 요전에 선생님이 지구와 지역을 순회하면서 ‘내가 너희들에게 돈을 좀 대주면 어떻겠느냐? ‘고 했더니, 서로들 많이 받아 가려고 날뛰는 거예요. 내가 그것을 보고 ‘이놈의 자식들아!그 돈을 많이 타 가면 타 갈수록 빚을 많이 지는 것이다. 그 돈을 교회의 입장에서 써야 할 가치를 느껴 가지고 쓰게 되면 괜찮지만 너희들에게 그럴 자신이 있느냐’ 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특사를 했을 때 여러분이 그 한계점을 넘어서 욕심을 부렸다가는 그것이 조건에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그것이 몇 천배로 가중되어 여러분의 일생 앞에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걸 몰라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축복을 얼마나 많이 줬어요? 있는 축복은 다 주셨습니다. 하늘 꼭대기에 있는 것까지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만히 입만 벌리고 있으면 받을 수 있어요?

이 중심의 자리에서 반대의 자리로 일시에 획 떨어진다면, (판서하심) 아침에는 말짱했는데 낮에 갑자기 획 천지가 뒤넘이친다면 그 이튿날에 어떻게 되겠어요? 세상 사람들 같으면 하나님이 다 뭐냐고 하면서 별의별 말을 다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이미 알고 있어요. 그때는 빨리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빨리 돌아가라는 거예요. 돌아가는 시간이 빠를수록 축복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큰 기어, 혹은 바퀴가 있으면 그것의 위와 아래가 차이가 없이 되려면 일년이 걸려서 돌아야 되겠어요, 똑딱하는 순간에 몇 바퀴를 돌아야 되겠어요? 똑딱하는 순간에 몇 바퀴를 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것이 높은 것으로 남아지고 낮은 것이 낮은 것으로 남아 져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높은 것과 낮은 것이 엇바뀌면서 전부다 높은 것으로 화할 수 있으면 세계는 통일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이해가 됩니까? 「예」 그렇게 되면 낮아도 하늘이요, 높아도 하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33-266
서대문 형무소에서 겪은 일
이런 선생님을 난데없이 모르는 사람들이 와 가지고 데려가더니 감옥살이를 시킵니다. ‘뭐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고 어때? ‘ 하면서 살인 강도들 있는 데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종살이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종살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살인 강도들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굴복해야 합니다. 100퍼센트를 먼저 굴복하는 것이 하늘입니다. 그렇게 1000퍼센트 굴복을 하면 900퍼센트는 살인 강도가 나한테 굴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말을 하지 않고도 살인 강도의 스승이 되고,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비밀을 나에게는 숨기지 않고 전부다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감옥에서 나올 때에는 그 감옥에서 제일 악한 사람도 선생님이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나왔던 것입니다. 이런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이 걸어 나온 길입니다.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갈 때, 그곳의 구치과장이 처음 온 사람들을 인솔해 가서 도장을 찍게 했습니다. 그때의 그 과장을 두고 두고 잊지 못 할 겁니다. 지금은 그 사람 이름을 잊어버렸지만, 그때 그 녀석이 나를 보고 ‘통일교회가 뭐 어떻고 어떻다 하더니 결국 이렇게 됐구만’ 하고 비웃 었습니다. 그때 내 기분이 상당히 나빠서 시끄럽다고, 집어치우라고 해놓고 내가 여기서 나갈 때는 반드시 형사와 간수들, 소장까지도 굴복시키고 나갈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거기에서 전도하고 그러겠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며칠이 지나니 아침에 나에게 와서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하는 거예요. 누가 인사하라고 해서 하겠어요?

어떤 때는 가만히 있으면 그들이 아침에 와서 그냥 슬쩍 지나갑니다. ‘네가 그냥 지나가지만 가다가 다시 와야지’ 하고 생각하면 아니나 다를 까 돌아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왔다가 다시 갑니다. 그러면 내가 또’네가 다시 와서 인사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또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언젠가는 나를 찾아와서 얘기를 하는데, 어느날 아침에 떡을 해먹었는데 떡이 목에 걸려서 넘어가질 않더라는 거예요. 떡이 왜 안 넘어갈까 요? 조상이 걸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선조들이 선생님을 푸대접 하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을 알거든,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밀리에 떡을 해먹다가 혼이 났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것을 이미 알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면 나보고 ‘스승님’ 합니다. 내가 그들의 약점을 알거든요. 그런 뒤로는 선생님의 심부름을 잘해요.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나올 무렵에는 서장까지 찾아와 가지고 여름이라고 참외를 사 주고 수박을 사 주고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형제간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한다는 거예요. 선생님을 증거하는 몇 달 동안에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 내가 증거받겠다고 그를 전도하겠어요? 선생님이 전도하지 않아도 전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감옥에 갔을 때 입을 다물고 있어도 영계에서 직접 전도해 주었다는 이야기 했지요? 박정화라는 사람도 그렇게 전도되었던 사람입니다.

33-268
제2해방과 제3해방의 의의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은 누가 망하라고 해도 망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감옥 이상 악한 데가 어디 있습니까? 거기는 망할 곳입니다. 그런 곳에 넣어 망하라고 해도 망하지 않고 흥하니, 여기에서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나오게 될 때에는, 악의 점령권내에서도 하나님이 간섭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남한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욕을 먹고 핍박을 많이 받았지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한바탕 떠들다가 갔으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혼자 가서 활동했지만 이제는 부부가 가고 아들딸까지 데리고 가서 집을 사 놓고, 별장을 지어 놓고 살면서 그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당장에 좋다고 해서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장에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좋고 나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만으로 계속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나쁜 것이 나쁜 것만으로 계속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좋을 때는 탕감역사가 없는 때라는 거예요. 그러나 탕감역사를 해야 할 때에는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난 후에는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물이 되려면 죽음의 골짜기에 가서 피를 뿌려야 되는 겁니다. 그 피를 밟고 넘어서야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올라갈 수 있는 겁니다. 떨어진 이 세상을 박차고 올라가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해방이 되어 지금까지 지내 온 이 민족에게는 이제 1970년대를 중심삼고 제2해방, 제3해방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 이 나라 이 민족에 대한 해방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남한을 해방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남한을 중심삼고 북한을 해방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1의 8. 15해방도 있었지만 민족복귀를 위해서는 제2의 해방인 남한의 해방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나서 제3해방을 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공산세계와 민주세계를 해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33-269
우리의 책임
해방하는 데는 총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으로 해야 됩니다. 그러니만큼 제2해방은 제1해방보다 더 어렵습니다 제3해방은 더욱 어렵습니다. 이러한 제2해방, 제3해방이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해방의 원천과 동기는 인간을 중심삼고는 절대로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아야만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천이 되어 있고 동기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아시아의 정세라든가 우리 나라의 현실을 바라볼 때에, 절박한 시점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 있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라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고, 나라보다도 하나님을 더 잘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라와의 관계보다도 강하게 맺어질 때에는, 천운을 중심삼고 맺어진 관계가 더 강하게 될 때에는 인간이 죽음까지도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바로 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선생님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대한민국을 믿지 않습니다. 현정부의 주권을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삼천만 민족도 믿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믿습니다. 이 나라의 주권을 보호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이 나라를 대한 하나님의 뜻이 어떻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뜻을 위해 어떻게 가야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내가 하나님의 뜻에 보조를 맞추어 이 길을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책임이요, 통일교회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생활환경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전도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다 위대하고, 보다 많이 어떤 주체보다도 더 강하게 관계맺어 거기에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체가 제2해방, 제3해방의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책임을 여러분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7년간 제2, 제3해방을 완수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해방과 우리의 책임’이란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을 알아야만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33-270
기 도
아버지, 달려가고 있는 이 세계의 흐름을 그 누구도 정지 시킬 수 없음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는 세계의 종말이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공산세계도 이미 종말을 고했고, 민주세계도 이미 종말을 고했습니다. 이 종말 가운데에 아버님이 좌정하실 수 있는 직접적이고도 새로운 움직임이 이 천지간에 나타나야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온 천지는 암담한 암흑세계에서 영원히 해방되지 못하고 신음과 질고와 환난 가운데 싸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잃어버렸던 아버님을 다시 찾아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가던 발걸음을 다시 돌이켜 인본주의와 물질주의 등의 모든 사상들의 체제와 현실적인 모든 여건을 끌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되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의 주체이신 아버지를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무한한 가치의 중심인 아버지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당신과 당신의 자녀들이 한 내용을 중심삼고 시간 시간의 생활권내에서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사느냐가 문제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제2해방. 제3해방을 필요로 하는 이 역사적인 환경권내에서, 이것을 극복하고 또 극복할 수 있는 힘과 가치를 스스로 보람차게 파헤쳐 가지고 그 마음에 어떻게 통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이 시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통일교인들은 당신이 계시다는 것을 어렴풋이만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이제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생활감정을 통해서 알아야 되겠사옵고 각자 몸의 세포의 작용을 통해서 감지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저희 모두가 고귀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고,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를 위해 피땀을 흘릴 수 있는 거룩한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아버지,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땀과 눈물이 떨어지는 그곳에는 아버지와의 끊을 수 없는 사연이 엉클어지고 복귀의 터전 위에 찾아 나오던 당신의 수고의 열매가 맺혀진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흘리는 눈물은 아버지께서 흘리시던 눈물을 대신하여 땅의 눈물로써 맺혀질 것이요, 저희들이 흘리는 피는 아버지가 흘리시던 피를 대신하여 땅의 피로써 맺혀질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의 수난의 길에 들어선 그날부터 이것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수난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시작한 그 자리에서 결실을 거두어야 하는 아버지의 뜻이 있기에 4천년 역사과정에서 피어린 투쟁의 과정을 면치 못했던 제1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았사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뜻이 제2이스라엘을 통하여 제3이스라엘로 나오는 과정에서 기독교는 제2이스라엘권으로써 피어린 순교의 제단을 모면할 수가 없었던 것을 아옵니다.

그리하여 영육을 중심삼은 제3이스라엘권인 한반도를 선택하여 새롭게 출발하신 당신의 거룩한 뜻 앞에 부름받은 자신들이 어떤 자리에 섰는가를 다시 한 번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지금 자신이 10대, 혹은 20대, 혹은 30대, 혹은 40대의 연령층에 있지만 자신의 그 모습은 과거 역사과정에 있었던 그 모습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를 통하여 복귀섭리를 주관하시는 아버지의 전체의 모든 예감을 통한 모습임을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자신의 모습이 지극히 작고 미천하더라도 그 미천한 자리에서부터 지극히 큰 것이 출발하게 되고 이렇게 극소한 자리에서 전체의 핵심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는 아버님으로부터 왔고 아버님에 의해 남아졌고 이제는 아버님과 더불어 가야 할 운명임을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자각된 모습으로 천상천하에 둘도 없는 당신의 아들이, 당신의 딸이 여기에 왔다고 하면서 아버지와 의논하고 약속할 수 있는 결판장이 저희의 마음과 몸 가운데에, 혹은 환경의 어느 한 곳에, 혹은 어느 한 때, 어느 한 시기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지금까지 아버지를 천번 만번 불러왔사옵니다. 그 아버지를 판에 박은 듯, 혹은 습관적으로 불러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하고 부를 때에는 아버님을 향하여 끓는 피가 골수에서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세포가 하나로 단결되어 아버지의 마음과 일치된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자리에서만 부를 수 있는 자각된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슬퍼하시던 그 심정을 저희들이 느끼게 될 때에는 , 그것이 스스로의 오관을 통하여 느끼는 감정으로서는 막아낼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와 접하여 기쁜 마음이 넘쳐 흐를 때는 이 땅 위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된 모습으로 스스로를 높여 아버지의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아들의 권위를 드러낼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보기에 추한 저희들을 흰옷보다 더 희고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 하늘의 왕자 왕녀로서의 권위를 갖추어 주시고자 하시는 당신의 놀라우신 뜻이 있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황공하고 망극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고 눈물없이는 당신을 부를 수 없사옵니다. 여기 있는 아들딸들이 이러한 것을 절실히 느끼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40일 하계 개척전도기간에 지방에 나가 고생하고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고생하며 흘리는 땀과 눈물의 양과 도가 아직까지 차지 않았다면, 또다시 그들을 내몰아서 채우게 해야 할 책임이 통일교회에 있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통일교회의 미래는 내가 책임져야 하고 우리가 책임져야 할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시작하신 분이 당신이기에 그 결과를 거두셔야 할 분도 당신인 줄 알고 있사오니, 그 과정이 10년, 혹은 20년을 넘어 일생을 넘더라도, 아니 그 3배, 10배, 30배를 거치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이 가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임을 알고 거기에 순응하여 천의(天意)에 따라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해방과 우리의 책임’을 생각할 때에, 해방의 원동력이 되는 것도 당신이요, 해방의 모체가 되는 것도 당신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당신의 심장으로부터 흘러나온 피로 인해 동맥의 맥박이 뛸 적마다 저희의 맥박도 뛰게 하여 주시옵고, 정맥에 흡수되는 힘이 부딪칠 적마다 저희들이 아버지께로 끌려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동(動)하면 저희들도 동해야 되겠사옵고, 당신이 정(靜)하면 저희들도 정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기뻐하시면 저희들도 기뻐해야 되겠 사옵고, 당신이 슬퍼하시면 저희들도 같이 슬퍼하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평화의 나라를 향하여, 평화의 천국을 향하여 가야 할 소망의 아들딸이 늠름하고 활기찬 자세를 갖추어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고, 악의 세력 앞에 패배의 자극을 받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상의 권한으로 천만년 이것을 징벌하고도 남을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고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중심삼고 광야에서 쓰러졌던 피폐한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하여 소망의 천국인 제2가나안을 향하여 가게 하시고,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분부하신 말씀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하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