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25 to 33-182: 심정과 공적 생활

심정과 공적 생활
1970.08.11 (화), 한국 부산 동명장여관

33-125
심정과 공적 생활
여러분들이 언제나 주의해야 할 것은 영계에서 가르쳐 주는 것을 잘 해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된다든가 아니면 뜻에 대해서 어떻게 하라 하는 것을 잘 해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가 필요한 거예요.

33-125
영적 체험의 해석과 원리
여러분들이 도의 길을 가면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사제지간에 있어서 위장전술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솔직해야 합니다. 지극히 정성들여 서로를 대해야 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선생님과 유효원 협회장 관계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유협회장이 한 가지 훌륭했던 점은 그 동안 통일교회에 김덕진 사건을 비롯하여 별의별 일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5퍼센트의 책임분담을 해결해 나가야 된다면서 나름대로 5퍼센트 책임을 해결하려고 한 점입니다.

사람은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사람이면 만 사람이 각기 주관이 다릅니다. 이렇게 볼 때 그 5퍼센트의 기준이 무엇이냐? 5퍼센트의 기준도 각기 다른 것입니다. 그 5퍼센트라는 것은 원리법도에 입각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5퍼센트 책임이 통일교회에서는 필요없는 것입니다. 원리가 해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5퍼센트를 책임해야 한다고 하면서 어머니의 역사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부가 선생님이 이중작전을 한다고 해 가지고 별의별 소리를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 5퍼센트라는 것은 이 땅 위에 주님이 와서 해야 할 책임이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개척해 나온 것은 선생님 자신의 5퍼센트 책임분담을 해 나온 것입니다.

자기가 해야 할 5퍼센트 책임분담을 하는 데는 기도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순전히 자기의 심성을 중심삼고 해결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방송국이라면 그 방송국을 중심삼고 내 마음이 상대적인 입장에 서서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그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전파를 받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이렇게 가야 된다고 하며 방향을 바르게 찾을수 있는 천성의 기준, 즉 본래의 성품의 기준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없으면 혼돈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것을 잘 모를 거예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복귀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새로운 시대를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고비를 넘어가야 했습니다. 그것을 넘어갈 때는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투쟁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그때의 영적 세계의 반응이라든가, 주위환경에서 미쳐지는 모든 관계는 나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쫓아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 했느냐? 그때에 필요한 것이 원리원칙입니다. 천도란 원리원칙을 떠나서는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33-126
영적 체험의 분별과 심정
그러므로 복귀의 원칙에 따라 관계를 맺어 나가려면 심정을 중심삼고 전부다 가려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심정적으로 제일 가까운 관계인 부자의 관계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모든 난문제를 해결하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하나된 그런 경지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악한 것과 선한 것을 자연히 구별할 줄 안다는 거예요. 이처럼 심정적 기준에서 선과 악을 가려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어렵다는 거예요. 어렵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데 6천년이나 걸린 것이고 수많은 도인들이 여기에서 죽음의 길을 간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원리는 전부다 투쟁한 결과로 인하여 찾아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수많은 시련 과정을 거쳐 가지고 찾아 나온 것입니다. 이제 한 두어 고개 남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국가적인 문제와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단체로서 가야 할 길은 이미 다 온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원리를 중심삼고 쭉 보게 되면 모든 것이 반드시 전후관계, 좌우관계, 상하관계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걸 모르는 보통 사람들은 전후관계를 모른다는 거예요. 자기가 앞에 있는 지 뒤에 있는 지를 분간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좌우 관계, 즉 자기가 좌측에 있는지 우측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한 상하관계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그런 전후, 좌우, 상하관계를 헤아릴 수 있는 기준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심정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나는 틀림 없이 그의 아들이다’ 하는 확고한 기준, 그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기준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내 모든 사지백체(四肢百體)를 움직이며 사는 데에 윤활작용(潤滑作用)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 체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악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원칙에 조금만 어긋나는 일을 하게 되면 벌써 마음이 거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아요? 친구 사이에서나 혹은 어른들 앞에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거북해서 얼굴이 붉어지지요? 마찬가지로 그런 기분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앞에 아들로서 하나되게 되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 하더라도 그 환경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마치 봄 같은 기분이 들고, 무엇인지 쑥뚫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연스럽다는 거예요. 손을 들어도 어색하고 가슴이 뜨끔해지며, 말을 해도 내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시켜서 말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연스럽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영적 체험을 중심삼고 분별하는 데 있어 제일의 기준은 부자관계에 있어서의 심정입니다. 심정적 관계를 맺고 있는 아버지와 자식은 그 아버지가 아무리 훌륭하고 자식이 아무리 못났다 하더라도 자식은 그 아버지 앞에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 심정적 기준을 갖지 않고는 선악을 가려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노정은 그것을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33-128
영통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자리에 섰느냐가 문제
지금까지 선생님에게는 수십, 수백 명의 영통인들이 찾아왔습니다. 굉장한 사람들도 왔다 갔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의 어머니 아버지의 이름을 다 알고 있었고 누이들의 이름도 다 알고 있었고 아무튼 선생님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영통했다고 해도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가 어떤 자리에 섰느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종적인 관계에 있어서 상하를 잘 가려 가고 있느냐? 횡적 관계에서 좌우관계를 올바로 가린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거꾸로 된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알 수는 있습니다. 종적인 관계에서 하위에 있더라도 상하관계를 알 수 있는 것이요, 횡적인 것은 종을 중심삼고 연결되기 때문에 좌우관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내용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세계가 어떻고, 뜻이 어떻고, 지금 때가 어떤 때라는 것은 조금만 영통하면 다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안다는 것만으로는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의 세계에서 하나의 자리를 결정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던 것입니다.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한 것입니다. 이 발언은 생각해 볼수록 우주적인 발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한마디가 영적 세계에서의 어려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관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 아버지이니까 아들을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고, 아들이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는 자유의 경지입니다. 자기의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새로운 자아를 조성할 수 있는 사랑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이 뭐냐? 여러분은 원리를 중심삼고 분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종교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종의 종 종교가 있고, 종의 종교, 그 다음에는 양자의 종교가 있고, 아들의 종교가 있습니다. 양자라 해도 양자 중에는 동서남북과 같은 입장이 있는 것이고 아들이라 해도 동서남북과 같은 입장이 있는 것입니다.

아들이 많다고 해서 그 많은 아들 전부가 상속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심정적인 기원을 차지한 아들이 상속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속을 받기 전에는 아들들 전부가 공통적으로 그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33-129
하나님의 심정과 뜻을 중심삼고 나가라
선생님은 지금까지 나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심정적인 일치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심정적으로 어긋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심정이 일치되면 자유가 있지만 그것이 어긋나면 대번에 어색해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나 자신이 부끄러울 때에는 부끄러워할 줄 압니다. 그런 것에는 예민합니다. 내가 협회장이라든가, 누구를 만나서 떡 보게 되면 그 사람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자기가 하는 말에 도취되어 할 말 못 할 말을 막 하는 걸 보게 됩니다. 선생님은 강단에 서서 말씀할 때 말을 빨리 하지만 잘못했으면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언젠가 협회장이 말하는 것을 보니 아담을 노아로 말하고 노아를 아담으로 말하면서도 그것을 잘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협회장이 단순한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일방적인 생활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생활을 거쳐왔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한 가지 문제가 있으면 거기에 대한 연상이 아주 빠릅니다. 그런 면에서는 선생님이 천재적인 소질을 갖고 있어요. 또 응용하는 데 있어서도 상당히 빠릅니다. 어떤 것 하나를 보면 그것을 동서남북 사방으로 딱 가려(분별해) 가지고 어떤 위치의 것이냐 하는 것을 판정합니다. 사고방식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 세계에 있어서 분별해 나오는 싸움의 역사(役事)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뭐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천도가 문제입니다. 하늘땅의 운세가 어떻게 되어 나가느냐, 복귀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의 터전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지 그런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는 내가 누구를 중심 삼고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나간다면 그 뜻은 누구의 뜻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 뜻이 하나님으로부터 선생님을 통해서 나왔으면 선생님이 수고한 역사적인 모든 것을 존중시하고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자아를 발견했다 해도 자기를 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자아를 발견했다면 자기를 세우려 하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환경적으로 전부다 세워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뭐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남을 평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도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사탄이 하는 놀음입니다.

사탄이 해와에게 ‘하나님이 네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더냐’고 했던 것처럼 조건을 걸고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불평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오래 못 갑니다.

나는 박재봉 목사라든가, 이호빈 목사라든가 하는 사람들의 배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배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내입으로 그 사람들의 결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과는 인연이 있어서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백만큼의 인연을 중심삼고 만나게 해주었는데 그것을 오십쯤의 인연으로 끌어내리면 끌어내린 사람이 책임져야 된다는 거예요. 일단 그 밭에 심어 놓은 것은 그 밭에서 거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밭에 심어 놓은 후에 주인이 거두지 않는다면 문제가 다르지만, 일단 그 밭에 심은 것은 그 밭에서 거두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33-131
기도와 심정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는 기도를 해서 풀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는 왜 하는 것이냐? 기도는 하나님의 심정적 기준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진정한 의미에서 나라를 염려하고 하나님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게 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전후를 가르쳐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역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선생님이 알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있는데, 이 아주머니는 지금 선생님을 만나려 해도 내가 안 만나 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10월쯤에는 어떻게든지 한번 만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10월에 만나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영급이 그만큼 낮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조직세계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영급이 맞지 않으면 만나고 싶다고 해서 아무때나 만날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산에서 기도를 하면서 혼자 정성들여 가지고 영계를 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에 대해서 기도를 하려고 하면 반드시 하나님을 먼저 불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기도가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까는 칠성님을 모시고 나왔는 데, 칠성님을 부르면서 기도하면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르면서 기도해야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신자의 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춤을 추게 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하다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계속 기도하게 허락하실는지 안 하실는지 잘 모르겠다는 거예요. 시대가 지나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지나친 기도는 시키지 않으실지도 모릅니다.

종이 아들을 대신하여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에 가려면 자기의 책임을 다 하고 선조들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안팎의 모든 내용을 갖추어야 그것이 공인받을 수 있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허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아주머니도 이런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을 위해 일생 동안 기도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도를 하게 되면 신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노래가 나오고. 더우기 놀라운 것은 그 아주머니가 국진 아기가 임신되는 날, 낳는 날을 미리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밀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아기가 태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누가 가야 된다는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참 신통합니다. 그렇게 세밀할 수가 없어요.

선생님을 위해서나 선생님의 가정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천상세계에서 직접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텔레비젼 보듯이 빤히 보고 다 안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지금 뭘 하고 있고, 여기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가 하는 것까지 다 안다는 것입니다. 온갖 정성을 한 곳에 들이게 되면 그렇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왜 그런 사람들이 선생님을 따르고자 하느냐? 그것은 심정적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심정세계에서는 아는 것 가지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심정과는 차원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거예요.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 원리 하면 세상에서 보통 말하는 원리가 있고 창조원리가 있는데 창조원리 가운데 입체적 원리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 입체적 원리가 사랑이라는 말을 했다고 문제시하지 말아요. 사랑은 인간이 성숙되어야 느껴지는 것입니다. 심정적 내용이 달라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영통해 가지고 아는 사람들은 라디오를 듣거나 신문을 보아서 아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듣고 보아서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듣고 보아서 알기 전에 이 문제를 제시하여 발표하는 그때까지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정적 유대관계를 맺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서 국가의 모든 문제를 논의할 때 대통령을 중심삼고 각료들이 심정적 유대관계를 갖지 않고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훌륭하다고 해도 그것을 문제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전부다 심정적 문제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이 선생님을 대해서 더 높이고 위하고 정성들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정적인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심정의 세계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진리의 세계를 들고 나온 것이 아니라 심정의 세계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33-133
심정적 유대를 맺는 것이 영통보다 중요
앞으로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유혹이 많을 것입니다. 영계에 가 보게 되면 어린아이들도 여러분들보다 낫다는 거예요. 어린아이들도 전부다 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린애를 통해서 뭔가 한 사람도 있잖아요? 그러므로 영계를 통하면 그것을 전부다 아는 데 그 아는 것이 전부다 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다고 해서 훌륭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계는 천태만상입니다. 그것보다 귀한 것은 자유의 본원지입니다. 즉, 심정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 심정의 기준에 연결시키지 못하면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친구 사이에도 그렇습니다. 그냥 얼굴만 알고 서로 인사만 하고 지내는 친구의 집에 가면 자유스러워요? 자유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친구 사이 에도 반드시 서로의 심정적 유대가 있어서 내가 친구의 생활을 마음대로 침범할 수도 있고, 또 친구가 내 생활을 마음대로 침범할 수도 있어야 자유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적으로 가까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외적인 문제는 전부다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문제되는 것이 심정적인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사명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문제시한 것들은 문제도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 선생님이 있으니 이만하지 없으면 전부다 혼란이 벌어질 것 아니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는 지금부터 훈련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어떤 난문제를 중심삼고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삼각지대에 들어가 고민하게 될 때,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게 되면 그 문제가 싹 풀려 마치 봄과 같은 기분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번에 알게 되는 거예요. 만일 그렇지 않을 때는 그저 마음이 맹맹하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멀어…….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갖고 있지 않거나 영계에서 가르쳐 주지 않고는 이 길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심정적인 인연을 통하여서 그 지향성이나 방향성이 하나님과 일치되는 그런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기준을 중심삼고 좌우가 일치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길은 그렇게 위험스럽고 어려운 세계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영적으로 굉장한 역사를 하던 박운내라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부인이 ‘나는 여호와의 부인이다’라고 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그 부인을 찾아가서 손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정성들여 그 자리 까지 올라간 길 즉, 여자의 길과 남자의 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다고 거기에서 ‘내가 남자고 당신은 여자니 당신은 나에게 굴복하시오’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방법, 어떻게 그 여자를 완전히 굴복시키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에게는 문제였습니다. 내가 그 여자를 굴복시키려면 그 여자가 닦아온 길과 체휼한 것을 그 사람이 실지로 체휼한 것보다 더 심정적이고 가치있는 것으로 소개시켜 주어야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하자면 그 여자가 지금까지 역사를 가려 나오면서 체험한 것이 많았지만, 그것들은 전부가 산발적으로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그것들을 전부다 지나간 날의 한 영적 현상이라고 해서 다 흘려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그것이 어떤 체계적이요 계통적인 일면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나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을 ‘이것은 전후 관계가 이렇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점진적인 발전과정을 거쳐 가지고 이러한 목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나왔다’고 그 종합적인 가치를 그 여자에게 가르쳐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그 여자가 그런 입장에 나오기까지의 심정적인 기준을 알아야 합니다. 즉, 마음의 친구, 심정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이러이러하니 당신에게는 이런 사명이 있소’ 하고 가르쳐 주면 그 사람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계에서 그때까지 그 사람을 통해 역사를 해주었던 관계로 그 노파는 선생님의 입장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입장은 어떤 입장이요’ 하면서 나에 대해서 알려고 해야 주고받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벌써 방향이 달라지고 입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본래 남자와 여자는 입장이 다르고, 그 범위도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와 관계 없는 것같이 느껴져 거기에서부터 부정하게 되니까 서로가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는 하나 되었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중심삼고는 하나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여자는 내가 어떻게 해서 나왔는가 하는 것을 알려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가 주고받는 것이 이치이기 때문에 그 여자가 알려고 해야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가르쳐 주는 것이 자기 자신이 지금까지 체험한 것과 다르더라도 반발해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순응하여 최고의 기준까지 찾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계에서는 어떻게 역사하느냐?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발전적인 역사를 해주는 것입니다. 발전적인 역사를 하는 데는 지금까지처럼 토막토막 잘라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인정하게끔 해명 해주는데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자기가 앞에 서고, 내가 자기를 따라 가면서 그런 가치의 내용을 보다 빛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기를 바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벌써 틀렸다는 거예요.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자기의 말을 다 들어주었고, 자기의 일을 도와주었으면, 그때부터는 내 말을 듣고 내 일을 도와주는 것이 인간 세계에서의 예법인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만일 그런 입장에서 내 말을 듣고 내 심정의 상대적인 입장에 섰다면 내가 자기보다도 더 고생을 했고, 자기보다도 더 엄청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머리를 숙이지 말라고 해도 숙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말을 듣다 보니 자기의 입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싫다는 거예요. 거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여자가 지금까지 아무리 많은 정성을 들였다 해도 소용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 여자가 정성들인 것을 나에게로 다 옮겨 가지고 묶어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도의 세계에서의 빼앗기 싸움입니다.

33-136
은혜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떠한 도인을 대하더라도 절대 큰소리치지 않고 그들의 말을 전부다 들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지금 어느 정도의 기준까지 올라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까지 해주시지 못한 한스러운 사연이 무엇인가를 알아 주고, 그가 자기의 사정을 터놓기 위해 찾아갔던 수많은 도인들 중의 어느누구보다도 그 사정을 알아주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좋고 나쁜 것을 전부다 털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것들을 청산지어 주면 나를 따라오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새로운 분야에 합동공세를 펴 나가게 되는 날에는 보다 큰 발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선생님을 통해서 보다 높아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지금까지 가지고 나왔던 것이 제일 좋고, 제일 가깝고, 제일 편안하다고 하면서 그곳으로 나를 끌고 가려고 한다면 나는 끌려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되어 나왔습니다. 엊그제도 그런 사람을 한 사람 만났습니다. 도의 세계의 수많은 도인들을 심판하는 방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들이 있다 할 때에 그 아들이 에서와 같은 아들이냐, 야곱과 같은 아들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에서는 사냥을 가서 양을 잡아 가지고 예물을 드리는 것을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집안에 있으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심정문제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서 선생님은 도인들이 걸어 나온 과정을 통해서 상대적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그 이상의 것을 그들에게 주려고 하는데도 그들이 받지 않으니까 그것을 내가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자기가 걸어온 과정을 나에게 몽땅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십년 공부한 것이 나무 아미타불 되는 격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작전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어떤 도인이 여러분들을 대해 사정을 얘기하면 그것을 전부다 들어주고 나서 ‘뭐가 어쩌고 어쩌니 당신은 이런 입장이 아니냐’고 하게 되면 그 심정 기준을 중심삼고 그 도인이 공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도인이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더 높게 지도할 수 있는 책임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나가는 데는 자기가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중심삼는 것은 효의 도리가 아니요, 충의 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절대시해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중심이 틀어지게 되면 거기서부터 그는 정지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시작했느냐 땅으로부터 시작했느냐, 즉 하나님 중심이냐 자기 중심이냐 하는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좋은 설명을 하더라도 자기를 중심삼고 설명을 한다면 끊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닦아나온 경험에 의해서 설명을 하는 것을 보다 가치있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가 앞으로 가는 길이 자기를 중심삼은 길이냐 하나님의 천정을 중심삼은 길이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길이라면 빼앗기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그 사람의 것을 빼앗아 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세계의 싸움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지금까지 선생님을 직접 찾아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선생님은 그 사람들이 하늘을 위해서 수고한 것을 전부다 인정해 주고 그 사람들을 귀빈으로 대접했습니다. 역사과정에서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귀히 알고 있는 사람으로 서야 되겠기에 그들을 마음을 다해서 대우를 해줬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해주었으면 그들은 이 문선생이 누구인지 알아야 될 것이 아닙니까? 그 사람의 그릇만큼 찰 때까지는 선생님이 그들을 위해 주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그들이 선생님을 위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만일 위하는 입장에 서지 못하면 몽땅 빼앗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벌여 놓았던 은혜를 선생님이 전부다 거두어 나오는 것입니다.

33-138
천륜과 인륜을 맬 수 있는 끈
선생님은 수많은 교파의 신령한 사람들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역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길선주 목사나 이용도 목사의 역사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떤 시대의 어떤 사명자로 왔느냐 하는 것을 말입니다. 그 사람들의 사명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이것을 인계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인계하는 데는 남자가 남자에게 인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자를 통해서 인계해야 합니다. 또 여자도 여자에게 인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남자를 통해서 인계해야 합니다. 그렇게 교체되면서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다 나은 심정의 인연을 가지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자면 여자 혼자서 남자를 주관하고, 남자면 남자 혼자서 여자를 주관할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공통적으로 보다 심정적인 일치점을 찾아야 완전한 효자와 완전한 효녀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난번에 종교협의회 사람들에게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투쟁하면서 발전해 나온 골자를 말해 주었습니다. 천륜과 인륜이 있는데 이 천륜과 인륜이 무엇을 중심삼고 맺어질 것이냐? 천륜은 인륜을 찾아가고, 인륜은 천륜을 찾아가는데 이것을 서로 맺을 수 있는 끈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도 아니오, 어떠한 능력도 아닙니다. 이것을 묶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고,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와 가지고 서로 하나될 수 있는 자리인데 그런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자리요, 하나님이 사람을 아들딸이라 할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 이상의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에 대해 최고의 심정적인 핵인 천륜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횡적 기준으로서 신랑 신부를 말했고 그 다음에는 형제관계를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서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에게 초대될 수 있는 것은 아들딸의 기준이요, 거기에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의 삼대상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통일교회가 사위기대를 중심삼은 삼대상 사랑을 내세웠다는 것은 위대한 것이요, 도의 세계에 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삼은 기독교가 종말시대까지 남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남을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자리에 연결될 수 있는 사랑의 끈이 무엇이냐? 다시 말해서 천륜과 인륜을 맬 수 있는 쇠고리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하나님이 인간을 아들딸이라 할 수 있는 심정적인 내용을 가진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 종교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33-139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자리
인간은 종교를 통해서 정서적인 행복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 자리에 서게 될 때 행복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될 것이냐? 다시 말해서 인간으로서 제일 기쁘게 춤출 수 있고, 제일 기쁘게 노래할 수 있고, 제일 즐거워할 수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돈이 많은 자리도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자리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천년 만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자리, 사랑하는 부부가 원수로 인하여 만날 수 없었던 장벽을 격파해 버리고 서로 만날 수 있게 되는 자리, 가정이 원수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완전히 해방되어 만나게 되는 자리입니다. 그 이상의 기쁨의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귀된 심정의 세계는 어떤 세계일 것이냐? 아들이 6천년 동안 잃어버렸던 아버지를 다시 만나 환호하는 그 세계, 아버지가 그 아들을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그 이상 기쁜 세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인류의 이상적인 터전이 되고 누룩과 같은 기반이 되는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고자 하실 것이냐? 임금과 백성 사이와 같은 자리는 원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일 가까운 자리. 아버지와 아들딸의 자리에서 사랑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는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누가 천하를 준다고 하더라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는 말을 한다면 그 말을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말은 얼마든지 꾸며서 할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영감(靈感)이 있는 사람이라면 꾸며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삼각작전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자기가 생각하는 데로 자연히 반응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관상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관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아무리 설명이 훌륭하더라도 그의 심정적 기준이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과 상대적 관계에 서 있느냐, 종적으로 어느 정도 일치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기준을 중심삼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개인복귀 완성, 그 다음에 부부 완성, 그리고 선의 자녀 번식을 통한 사위기대 완성을 목적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종적 기준을 중심삼고 아들로서의 하나님의 사랑, 딸로서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인연으로써 완전한 종적 기준이 세워지는 것이요, 또 그것을 중심삼고 완전한 횡적 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90도를 중심삼고 360도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적 관계를 중심삼은 상하관계, 전후관계, 좌우관계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33-141
사랑의 길
따라서, 여러분들은 부부생활에서 상대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랑은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통해서 흘러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천년 만년 길이길이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을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사랑으로 생각하여 자기 욕심을 충당하기 위한 요건으로 소화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돌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도인들은 어느 기준에만 이르게 되면 전부다 자기 자랑을 하면서 자기가 뭐든지 다할 줄 아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미쳐 무엇이든 다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랑의 길은 무슨 능력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길은 최고로 궂은 일부터 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산중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전부다 이제 때가 되었다 하고 있습니다. 때가 되기는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주인을 찾겠다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요전에 내가 만난 사람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로서의 때가 되었기 때문에 나를 만났다면서 자기가 누구보다도 정성들인 것을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알아주긴 뭘 알아주겠습니까? 알아주고 싶으면 알아주고 말고 싶으면 말고 그런 것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공갈협박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지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연결되어지는 것입니다. 공포의 마음이 개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길에서는 죽어도 좋은 것입니다. 사망의 사랑권을 격파하고 새로운 사랑권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망의 피를 받고 태어난 타락한 자기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랑의 충격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기에 모인 지구장들은 자신이 이런 방향성을 갖추기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야 되겠습니다. 기도생활을 통해서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 사람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적인 사람이냐, 의지적인 사람이냐, 혹은 정적인 사람이냐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가지 타입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적인 사람이라면 지적인 것을 주장하지 말고 정적인 사람을 찾아가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 삼위기대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 삼위기대는 성격이 같은 사람끼리 묶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전부다 각자의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 만들 수 있는 수련과정을 거쳐가기 위한 것이 삼위기대 조직입니다.

우리 식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이제부터는 가정생활을 위주로 하는 시대는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김원필이면 김원필 개인의 생활환경을 중심삼고 살아가는 시대는 지나가고 삼위기대의 생활환경을 개척하는 책임을 전개시켜 나가야 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협회장이 영계에 잘 갔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김영휘 협회장은 길자(史吉子) 가정이 불쌍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나라에 가서도 그 가정들이 하나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그 후손까지 삼대가 하나되지 않으면 저나라에 입적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삼대를 거쳐야 사위기대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사위기대 원칙을 통해서 가는 곳이 이상세계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유효원 협회장의 아들딸을 자기의 아들딸과 분립시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고 문제는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고 다 폐하더라도 오직 남는 것은 사랑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땅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그것은 다 흘러가 버리는 것이니 그것을 믿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심정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느냐? 자기 민족을 바라볼 때, 민족이 불쌍해서 자기 자신의 이성을 망각하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느냐, 이것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진리로써 어떻게 설득하여 내 사람을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데 그 참사랑이 뭐고, 참부모가 뭐냐? 그 말을 선생님과 어머니만을 두고 생각지 마십시오. 보다 높은 차원에서 세계를 품고 민족 감정이나 국가 감정을 넘어서 만민을 진실하게 하나같이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경지의 참부모 기준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33-143
심정의 인연으로 사는 세계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욕심을 가지고 대해서는 안 됩니다. 도의 세계에서는 강한 사람보다 지극히 약해 보이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그것은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주위에서 깎아 내리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나 저기압권내에 서야 합니다. 선생님도 공석에 서서 여러분들 대해 말할 때는 강력하게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어린아이와 같은 입장에 섭니다. 아버지를 대해 어린애와 같은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부모의 품을 그리는 심정을 갖고 하려고 합니다.

어른된 통일교회 문선생으로서 뭘 이렇게 이렇게 책임지고 나가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불안하고 조심스럽다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 대신 책임지기 때문에 잘못하게 되면 대번에 사탄의 참소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린아이와 같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류는 고기압권내에서 저기압권내로 흐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심정의 저기압권내에 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와 같이 부모의 품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에게 기도를 시켜야 되겠어요. 누구나 기도를 하면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지구장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 즉 심정적으로 제일 선두에 선 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볼 때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같지만 그가 심정적으로 일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언제나 도의 세계에서는 심정이 문제인 것입니다.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가 산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인연으로 세계가 사는 것이 아니라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가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성가 중에 그런 성가가 있지요?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 심정의 인연으로 살아야 비로소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이라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는 본성의 인연이 맺어져서 영원히 주고받게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영원히 주고받는 그 다음 가사가 뭐지요? 「우리의 본향」 우리의 본향이지요. 본성의 세계인 본향을 찾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뭔가요? ‘행복의 터전 위에 길이 살리라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정을 모아 용진하리라’ 그렇게 하는 것이 통일의 용사입니다. 그 가사가 어려운 것 같지만 그 내용은 전부 다 원리적인 내용입니다. 잘 생각하면서 불러 보라구요.

세계는 심정의 인연으로 사는 것입니다. 심정의 인연 없이 진리로만 살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적인 사람을 좋아해요, 정적인 사람을 좋아해요? 「정적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지식은 분산시키는 작용을 하고 자기 자신을 망각시키는 것입니다. 반면에 정은 통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지식은 보자기를 펼쳐 놓는 것과 같고, 정은 보자기로 싸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자기를 펼쳐 가지고는 한꺼번에 들 수 없지만 싸 가지고는 한꺼번에 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펼치면 무수히 많지만 합하면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로 된 거기에는 분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소크라테스의 제자도 아니고 누구의 제자도 아니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합니다. 자기의 본성과 동떨어진 사람이 되고 만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굴곡이 많은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고립된 사람은 영계에서도 큰 문제라는 겁니다.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항상 삥삥 돌아다닌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적인 사람보다 정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정적인 사람, 상대방이 손을 척 잡으면 몸과 마음이 격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이런 하나님입니다.

33-145
신앙인은 물질에 초연해야
이제 1970년도 후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양력으로는 8월이고, 음력으로는 7월로 들어선 이 시점에서 우리들은 자체 반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뜻에 대한 의욕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일에 대한 소망에 벅차서 산도 뚫고 나갈 수 있는 신념에 불타는 자신감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체 반성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느냐,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이 틀렸느냐, 아니면 선생님의 지도방법이 틀려서냐? 선생님 지도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면 왜 이렇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가 무엇이냐? 내가 공적으로 살았느냐, 사적으로 살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 문제를 중심삼고 자신을 다시 한 번 분석 비판해 봐야 합니다.

공적인 것을 추구했던 자신이냐, 사적인 것을 추구했던 자신이냐, 공적인 것을 추구해 나가다가 사적으로 돌아간 내가 아니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공적으로 나가다가 사적으로 나가면 반드시 꺾이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아무리 힘을 가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물질 문제를 다루게 되면 끝장이 나기 쉽습니다. 정신적인 분야를 다루던 사람이 물질적인 분야에 모든 관념을 투입시켜 가지고 바라보고 나가게 되면 대개 끝장이 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질과 정신 중에서 보다 공적인 것은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 있어서 총 판매 사업을 하는 것이 외적인 면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내적인 면에는 큰 피해를 가져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작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월급 지급하던 것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업대원들 사이에도 트러블이 있고 지구장들 사이에도 트러블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지구장들은 앞으로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 지방을 아무리 발전시키려 해도 발전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보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여기에 있거든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중요시해야지 돈을 중요시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지금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 사업이 일시에 망하더라도 나는 눈물 한 방울 안 흘립니다. 내가 10년 동안 정성들여 가지고 해나온 사업이지만, 그것이 일시에 무너진다고 해서 눈물 한 방울 흘릴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업하는 것이 한꺼번에 불이 붙어서 없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 이상의 경지까지 들어간다고 해도 나는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지금 공장에 있는 기계 한 대에 5백만원 이상인 것도 있고 7백만원짜리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 기계를 새로 구입해 들여 왔다고 해서 자랑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문제는 뭐냐? 그 기계들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가야 할 본 코스가 아닙니다. 남한산성이라도 올라가려면 곧장 직선으로만 가지 못하고 오르락내리락 해야하는 것처럼 물질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판서하고서 설명하심)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물질은 나에게 플러스시켜 주는 거다 이거예요. 그런데 이것만 위하다 보면 그냥 내려와 버리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물질도 하나님을 위해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단에 놓아 둔 제물을 가지고 싸우는 교단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하면 교회당을 지어 놓고 싸움을 하면 그 자리에는 벌써 하나님께서 떠나시는 거예요. 정신을 중심삼고 나오던 것을 물질을 중심삼고 나가려면 상당히 많은 것들을 극복해야 됩니다. 비약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약을 하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정신적으로 극복해 나갈 것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어느 한 사람 굶어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디 굶어 죽었어요 ?

33-146
하나님의 법도를 먼저 생각하라
여러분은 여러분보다 교회를 더 위해야 합니다.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은 교회를 더 훌륭하게 짓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집이 더 잘살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집보다 교회의 발판이 더 나아야 될 것 아니예요? 한 가지라도 더 귀한 것을 교회에 첨부시키기 위해서 나에게 돈이 필요하지, 내 살림살이에 보태서 내가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법도를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과 부자의 관계로 인연맺어져 있고, 지금까지 선생님을 통해 가지고 돈을 관리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도와주는 것이 효의 도리가 아니겠어요?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있다면 공적인 입장에 있는 선생님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데도 공금을 썼다면 그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이미 떠난 거예요. 물론 사정이야 다 있겠지만…….

살인강도라 해도 사정은 다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해산을 했는데 미역국도 못 먹어서 어쩔 수 없이 남의 가슴에 칼을 들이대고 돈을 빼앗아 온 강도가 있다고 합시다. 그 강도가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나쁘지 않다고 할지 모르지만 공적인 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나쁜 것입니다. 죄를 범한 동기가 사적이냐 공적이냐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침범의 대소에 따라 죄의 크고 작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여러분들을 두고 생각해 보면, 여러분들은 선생님 앞에 체면이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서울에서만도 10년 이상 이렇게 해 나왔지만 여러분들이 언제 선생님에게 집 한 채 사줘 봤어요? 선생님이 귀하게 여길 수 있는 물건을 한 가지라도 사주고 나서 자기의 살림살이를 준비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방을 얻더라도 하나님의 방을 먼저 얻어 놓고 그보다 작은 방을 얻어야 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을 해 봤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축복가정들에게 집이라도 지어 주고, 교회도 지어 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선생님이 할 일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다 했다면 제단은 그냥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다 했다면 교회는 다 세워져 있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를 짓는 것이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책임을 못하니까, 자식들이 불구자가 되었으니까 할수없이 부모가 손해를 보면서라도 해주어야겠다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좋은 입장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것을 한푼이라도 더 받겠다고 서로 아웅다웅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국 식구들은 자기들이 헌금하는 것이 선생님을 위해서 사용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선생님이 쓰고 난 다음에 여러분을 통해 사용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기를 바라면서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천법입니다. 하늘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선생님은 안 쓰고 자식들에게 전부다 쓴다 해도 그것은 선생님 마음대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원칙은 아닙니다. 그것은 가설적인 어떤 조건을 세워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언제나 그런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가려 가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구장 회의면 지구장 회의, 사업부장회의면 사업부장회의를 통해서, ‘우리가 이번 달에는 한푼이라도 마련해 가지고 선생님에게 선물을 마련해 드리자. 8개 지구면 8개 지구, 10개 지구면 10개 지구에서 수금운동이라도 해 가지고, 지금까지는 우리가 선생님께 무엇 하나 제대로 해드리지 못했지만, 이제는 무엇 하나라도 해드리자’ 그런 생각 한번이라도 해봤어요? 그런 생각은 하나도 없이 자기가 편하려고 어떻게든 회사에서 한푼이라도 더 이익 배당을 받을 생각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적인 생각입니다.

33-148
나는 공적이었는가 사적이었는가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안 됩니다. 서로서로가 정성을 모아 하나님 앞에 보답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받았으면 돌려드리는 것이 있어야지, 여러 분들은 두꺼비가 파리 잡아먹듯이 받아 먹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받았으면 돌려줘야 합니다.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니라 전체를 합한 정성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돌려주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모든 등등의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밤낮없이 매일 공장에 드나든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몇 년 동안을 하루도 빠짐없이 공장에 드나들었습니다. 내가 그러고 다닌 것은 돈 몇 푼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잘살 수 있고, 이 민족에게 물질적 축복을 내리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제1차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도 선생님의 기도의 바람이 작용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천운이 찾아오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고생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고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은 법에 틀려졌기 때문에 고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처럼 이렇게 나가면 여러분의 아들딸 중에 병신이 많이 나올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소아마비에 걸리거나 반신불수 병신들이 많이 생겨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런 등등의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비판해야 됩니다. 내가 공과 사를 중심삼고 보다 공적이었느냐 사적이었느냐를 비판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모든 것을 그렇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천도(天道)를 가려 가는 방법이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가 나하고 원수라고 합시다. 그렇더라도 그를 대할 때 과거의 원수의 인연을 가지고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수라도 공적인 세계 앞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가 공헌하고자 하는 공적 기준과 내가 공헌하고자 하는 공적 기준 중 어느 쪽이 더 크냐 하는 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내가 더 크다면 내가 그를 막아 돌려 잡더라도 법에 안 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욕심을 중심삼고 ‘네가 과거에 나에게 이렇게 했으니까 오늘은 나에게 한번 당해 봐라’ 한다면 그것은 세상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사리를 판단해 가지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본 경제가 부흥할 것입니다.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의 돈이 어디에 쓰여질 것이냐? 통일교회로 다 들어와서 선생님을 통해 쓰여질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시아에 대한 정책을 모두 이야기한 대로 일본이 앞으로 발전해 가지고 틀림없이 우리 앞에 말려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일본은 한국 사람의 피살을 빨아갔기 때문입니다.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그랬기 때문에 그것을 4백년까지 연장시켜서 책임지울 수 있는 것입니다. 4백년까지는 안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권을 중심 삼고 40년은 우려먹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본의 통일교인 수가 한국보다 많아질 것입니다. 인구 비례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식구 수가 한국의 식구 수의 두 배만 되어도 한국 통일교회 식구들을 그냥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일이 벌어지면 한국과 일본이 하나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예를 들어 일본의 통일교인 두 가정이 한국 통일교인 한 가정을 먹여 살리는데도 한국과 일본이 원수 되겠어요? 과거에 원수졌던 그런 것은 자연히 다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시대권내로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에게 지금 가진 것이 없다고 해도 걱정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말하기를 앞으로 일본 교회는 일본을 위주로 해서 경제적 자원을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국가적 상대 시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반드시 선생님에게 결재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금년에 인사이동도 한 것입니다. 작년부터 경제적인 모든 보고도 내가 다 받고 인사권도 내가 쥐고 발령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을 위하는 것보다도 전체를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것이 보다 아시아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하는 것보다도 일본을 위하는 것보다도 아시아를 위해서 가는 것이 보다 공적이기 때문에 아시아를 위해서 경제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는 투자된 경제 조건으로 말미암아 말려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면 말려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자신을 비판할 때에는 언제나 공사 문제를 중심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33-150
여러분의 공적 기준은 발전했는가 후퇴했는가
여러분들이 뜻을 중심삼고 60년대와 70년대, 즉 축복받기 전과 축복받고 난 후에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축복받기 전과 축복받고 난 후를 비교할 때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입장에서 뜻을 위해 가정을 버리고 자식을 버렸습니다. 거기에는 이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자식을 버릴 수 없고, 아내를 버릴 수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뜻을 위해서라면 가족들이 아무리 떨어져 살더라도 절대로 굶어 죽지 않습니다. 굶어 죽지 않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같이 붙들고 살아 보라는 거예요. 해결될 것도 점점 안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당신 마음 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완전히 하나님 앞에 맡겨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공적인 것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 들이라는 것입니다. 물질을 중심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에도 전도될 그 사람이 돈이 있나 없나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정의 사람을 찾아 나서라는 것입니다. 자기와 인연된 거지 같은 사람이 어느 부잣집의 맏아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 온다고 해서 좋아 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시시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견지에서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공적기준과 여러분들이 바라보는 기준과의 차이가 벌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발전을 못 하면 결국은 고립되어 나중에는 자기 하나도 거동하지 못하고,그 누구도 동정해 주지 않는 외로운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고, 지금까지 꽃다운 청춘시대를 버리고 나온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공과 사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비판하고 반성하라는 것입니다.

60년대에 축복받기 전에 공적인 기준을 흠모했던 그 열의와 오늘날 축복을 받아서 가정을 가진 입장에서의 열의를 볼 때, 발전했느냐 아니면 후퇴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때요? 만일 후퇴했다면 공직에 있어서나 주위의 모든 환경에 있어서 침식작용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경제적인 조건을 바라보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 집안은 결국 어디에도 서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집안은 끝에 가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33-152
보다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할 수 있어야
도의 세계에서는 물질을 버려야 된다고 말을 합니다. 물질과 하나님을 겸해서 섬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자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가정적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가정적으로도 그렇게 못 한다면 자기의 가정복귀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므로 가정에서 경제적인 문제를 극복시킬 수 있는 사람이 못 되면, 그 사람은 자기의 가정을 하나님을 중심삼고 경제적 이상의 세계를 향해 이끌고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단체를 두고 볼 때에도 ‘우리 통일교회가 갖고 있는 돈은 나라를 위해서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이 돈은 나라의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못하고 이것은 우리 통일교회의 것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통일교회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통일교회로서의 경제적인 문제를 타고 넘을 수 있는 천적인 기반을 못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것이 아닙니까?

또한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도, 대한민국의 경제적인 기반이 세계에 절대 필요한 것이어서 대한민국에 대해 ‘대한민국의 모든 예산을 모두 세계를 위해 써라. 자선사업을 하라’ 할 때에 ‘못하겠습니다’ 하면 대한민국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을 위해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이야기했지만, 대한민국을 팔아서 세계를 사는 데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통일사상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사상이 삼천만의 사상적인 뒷받침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이 나라를 팔아 가지고 세계를 산 후에 다시 이 나라를 다시 사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계를 한바퀴 돌아오는 날에는 이 나라의 천배 만 배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장사도 고 이상의 장사가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은 그렇게 나왔습니다. 나는 처음에 이 길을 닦아 나오면서 새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전부다 헌 옷을 사 입었습니다. 나 자신은 내 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호화찬란한 옷을 입을 수 있는 자격자도 되고 또 멋도 부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고통을 당하고, 밥도 못 먹고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현실을 바라볼 때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새옷을 입게 되면 미안해서 밖에도 못 나갔습니다. 천성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새옷을 입고 으시대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서 저럴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나에게 속한 모든 물질 전체를 희사하여 단 하나의 공적인 정신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주력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개체적으로는 정신적인 분야에 있어서 승리적 기반을 닦았지만 가정을 중심삼고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자기 처를 중심삼고 경제문제를 초월한 입장에서 나라를 위하여 고생시킬 수 있느냐 할 때 ‘할 수 있다’ 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장 어려울 때에 하나님의 명령이 내릴 것입니다. 이때가 탕감의 시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어려울 때 탕감시키기 위해서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자리에서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사실은 내가 이 길을 출발할 때에 어떠한 작정을 하고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성진이가 있지만 성진이 어머니가 스물 한 살인가 스물두 살때 일입니다. 일가 친척도 없고, 쌀은 다 떨어지고 돈도 한푼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새벽같이 배낭을 짊어지고 황해도 백천으로 쌀을 사러 가던 중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가정을 위한 길을 갈 것이냐, 공적인 하나님을 위한 길을 갈 것이냐? 거기에서 딱 잘라 ‘하늘을 위한 길을 가는 거다’ 해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북으로 갔던 것인니다. 그런 고비가 있는 거예요. 이북에 가서도 집으로 편지 한 장 안 보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편지를 하면 좋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깨끗이 청산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통일교인들도 가정을 버리고 재산을 다 바치면서 나갈 수 있어야 됩니다.

33-154
통일교인들은 언제든 고생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요즈음 통일교회에 돈이 많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 재산을 전부다 팔아서 무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종교단체를 위해서 무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로 돌아갈 수 있느냐’ 할 때에 ‘나는 돌아갈 수 있다’고 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정신세계 단체에 승리의 기반을 닦고 올라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고생하는 것을 달갑게 보는 것입니다. 고생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나라를 찾기 위해 ‘나와라’ 할 때는 나와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길이라면 모든 재산을 가지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아프리카면 아프리카, 세계면 세계를 위해서 자선사업을 하고, 벌거숭이 몸으로 그들에게 복을 빌어 주며 만군의 왕이신 여호와의 뜻이 그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야곱이 에서를 찾아가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야곱이 쓸데없는 종들, 찌그렁이들 같은 재물을 바쳤다면 절대 에서의 마음이 안 돌아섰을 것입니다. 영적 세계가 안 돌아 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염려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의 경제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앞으로 1, 2년 안에 한국에서는 힘들겠지만, 외국에서는 한국에 경제적인 지원을 해올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내가 외국의 힘을 빌어 가지고 이 나라를 도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왜? 전부다 하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 천국창건을 위해서는 선생님이 특명을 내려 각 나라의 물질세계까지 전부다 움직여다가 써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국가적 시대의 물질 축복은 종족적 시대에 물질적 재물을 바친 사람이라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축복을 대할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세계적 시대에 물질 축복이 올 때도 국가적 시대에 물질적으로 희생하지 않은 사람은 그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의 세계의 원칙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33-155
모든 어려움을 하나님을 중심삼고 소화하라
그런데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면 선생님이 집 산 것에 대해서 말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본부교회 2층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아이들하고 더 있을 수 있다면 2층에 그냥 자리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있을 데가 없으니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 내가 편하기 위해 집을 샀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내 마음은 될 수 있으면 협회장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잡아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좋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그런 복을 받게 되면 그것은 자기가 이 시대에 과분한 복을 받은 것이니 거기에 배가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눈물과 더불어 감격의 심정으로 충성을 다짐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 앞에 효도하지 못한 과거를 돌이켜 보며 더 효도할 것을 다짐해야 됩니다. 과거에 물질적인 고통을 받던 그 기준을 배가시켜서 뜻 앞에 더 정성들일 수 있는 자신의 여건으로 돌려 잡아야 됩니다. 그런데 ‘기회는 이때다’ 해서 ‘우리는 텔레비젼도 없고 라디오도 없습니다. 남들은 커텐을 어떻게 했는데, 선생님, 우리집 커텐도 좋은 것으로 해 주시오’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이 탈입니다. 선생님이 도와주겠다고 하니 ‘조금만 더 주시오. 조금만 더 주시오’ 한다면 세상과 다를 것이 뭐 있겠어요?

여러분들은 금년 1970년도를 맞으면서 새로이 대이동을 하고 6개월 동안 잘 협조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의 가정이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가정 생활이 비참하리라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같이 살고 있던 부인들을 고향에다 보내 놓고 생활할 때, 여러 가지로 눈물 흘릴 사연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보고 싶으면 마음대로 달려갈 수 있지만 선생님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자식과 헤어진 채 삼팔선 이북에서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나보다 더 낫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스승이 간 전통적인 그 길은 나라를 찾기 위한 길이었고 여러분들의 살길을 찾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딴 뜻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그 어려움을 하나님을 중심삼고 소화시킬 때에는 선생님이 지금까지 걸어온 생애노정에서의 심정적인 내용이 여러분의 가정에 접근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행복의 터전이 하나님으로부터 연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그 좋은 기회를 상실하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축복받기 전과 축복받은 후를 놓고 볼 때. 달라진 것이 뭐냐? 뜻적인 면에서 마이너스 됐느냐, 플러스 됐느냐? 축복을 받은 후에 사적이 됐느냐, 아니면 더 공적이 됐느냐? 만일 여러분들이 더 사적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그런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교회 발전을 기대한다면 선생님이 바보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7년노정에 있어서 7년간 활동한 사람은 복받는 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 기준을 이번에 다 청산지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번 7백쌍 합동 결혼식을 한다고 말했기에 내가 말한 것을 이루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대신에 여러분은 그 가치를 배가시켜야 됩니다. 만일 배가시키지 못하면 망하고 맙니다. 그래서 가정을 소환해서 때려 모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나가지 않고 망해도 좋다는 거예요? 그러면 겨우 후손들을 뉘우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재료로 남아질 것입니다. 이러이러 하다가 축복가정이 망했다 하는 것을 보여 주는 , 앞으로의 세대를 위한 공식적인 교재로 남아질 것입니다. 결혼식은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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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사회는 인격자가 존경받는 사회
앞으로 미국은 미국만을 위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미국이 미국만을 위한다면 망하고 맙니다.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미국만을 위한 축복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한 축복입니다. 그러니 미국은 일년 국가 예산 중에서 삼분의 일을 다른 나라를 위해서 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나라도 잃어버리고 주권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거의 명목상, 형식상으로만 갖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라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개인주의 사상이 극단에 와 있기 때문에 이젠 갈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서 돌아서 가지고 동양을 따라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개인이 아무리 혼자 한다 하여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요즈음은 팀워크(teamwork)운동이 사회적인 운동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여기에 장(長)을 세워 그 장의 부부를 자기의 부모 이상 존중하는 운동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복귀의 운세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돌아올 수 있는 제 3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대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메이 퀴인(May queen)이라는 여왕 추대식도 다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미국 같은 나라는 앞으로 조금만 더 나가게 되면 아무나 회사의 사장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돈을 투자한 사람하고 경영자하고 관리자가 서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경영은 인격적으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주주가 경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관리하게 되면 폐단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다 공적인 입장에서 안팎의 내용을 갖춘, 즉 사방성을 갖춘 인격자라야 전체 앞에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 형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그런 시대가 목전에 다다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진국일수록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인격자들을 추대해 나가는 방향을 취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앞으로 존속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 막혀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있어서 내가 지금 청평에 땅을 사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돈을 한푼이라도 아껴 가지고 보다 공적인 것에 사용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앞으로 거기에다 국제수련소를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외국 사람들을 데려다가 수련을 시킬 것입니다.

지금 최봉춘(崔奉春)이나 김영운(金氷雲)이가 그들에게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내가 그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기반을 닦을 때까지, 미국이면 미국의 어느 도시의 절반 이상에 강사들을 배치하여 전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가지고 내가 바라고 있는 기준과 일치될 때까지는 그들을 데려다가 내가 교육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강의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회사문제만 아니면 영어뿐만 아니라 몇 개 국어는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사문제 때문에 공부가 늦어졌습니다. 선생님은 공부하는 것도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33-158
지금이 결혼 전보다 못하다면 반성해야
문제가 있다면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비판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결혼 전과 결혼 후를 비교해 볼 때, 여러분들이 뜻 앞에 충의 도리와 효의 도리를 할 수 있는 자리에 더 가까이 섰느냐, 아니면 더 멀리 섰느냐, 이것을 분석해 보자는 거예요. 어때요. 그 자리에 가까와졌나요, 멀어졌나요?

여러분들에게 가정이 없을 때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생님을 생각했고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또한 선생님의 아들딸을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이라 하면 마음이 끌려 왔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선생님의 가정과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과 달라졌다는 거예요. 심정적 차원이 보다 더 높아져야 할 텐테 한단계 떨어져 내려왔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 옛날의 심정을 어떻게 유지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가지게 되면 십자가가 더 무겁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어머니가 해준 밥을 함부로 먹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늘이 무엇을 바라시고 어머니를 내게 보내셨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을 수 있을 만큼 남자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 했느냐 이겁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가정은 좋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가정은 제2의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갖는 다는 것은 또 하나의 보다 더 큰 십자가를 짊어지는 일입니다. 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하늘길을 가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나를 믿었던 그 신뢰도를 어떻게 보다 고차원으로 끌어올려서 제2의 소망으로 자극시킬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아내를 통해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대상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나 하나의 정성이 둘로 갈라져 서로 반씩 가지더라도 둘이 합하면 자기 혼자 충성했던 것보다는 나은 충성의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둘이 합해 가지고도 그 기준 이하로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과거에 백만큼 충성했다면 그것이 둘로 반분되더라도 본래보다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남편은 육십, 아내는 오십이 되더라도 둘이 합해지면 백십 정도의 기준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보다 나을 수 있는 소망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같이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가정을 어떻게 만드느냐? 자기 아내라고 해서 자기 마음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모셔야 할 부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잘못하면 나를 치고,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력을 가지고 있는 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느껴 보았어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축복받아 가지고 부인을 맞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마음이 감소되었느냐, 아니면 증가되었느냐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소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정성들여 나가는 데 아내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염려를 덜 끼쳐야지, 그렇지 않고 충성하는 마음이 감소한다면 절대 발전 못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그러니 문제는 여러분 자신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두고 볼 때에,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나온 길 가운데 나 자신이 현재 침체상태에 놓여 있다면 그것은 크나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느냐? 가정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경제문제에 2중 3중으로 끌려들어 갔으니 하나님 뵙기에 면목이 없는 것입니다. 버젓하지 못하다는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 앞에 버젓하지 못한 사람이 어디에 가서 주체적인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주체적 역할을 못한다는 겁니다.

주체는 반드시 수평상에 서야 합니다. 수평에서 주체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모든 여건이 정상적으로 되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찌그러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적이라는 것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는 사방의 수평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기간이 자신을 비판하여 새로와지는 기간이 되도록 해야 되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33-160
경제 운용 계획
선생님은 이제 될 수 있으면 회사에 돈을 투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원필(元弼)이에게도 말을 했지만 앞으로는 나에게 돈 얘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이 은행에 예금되어 있더라도 선생님은 찾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 있던 박종구(朴鐘九) 갔어요? 선생님이 그에게도 이야기했지만, 박종구가 맡고 있는 성화학원이 상당히 긴박한 상태에 있는 것을 내가 다 알고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사방으로 협조해 주었겠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후관계를 가려서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돈을 국가적이고, 세계적이고, 천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써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청평에 땅을 사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땅을 사는 것은 세계를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세계를 위해서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기 위해서 땅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민족시대를 지나 점진적인 세계시대 앞에 섰기 때문에 이 시대를 위한 국제적인 교육 기관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이러니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아무리 돈을 써도 양심의 가책을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교회를 위해서 돈을 써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현재 국가적으로도 위신을 세워야 할 때에 있습니다. 승공활동이라든가, 외적인 모든 문제를 중심삼고는 국가의 상위권에 있는 사람들 앞에 두각을 나타내고 대한민국이 바라볼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내적인 입장에 있는 교회가 형편없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체면을 세워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체면 세울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만일 우리가 체면을 못 세우게 되면 승공연합의 이사장은 높아지지만,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낮아지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내적인 교회의 체면을 세워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적인 교회의 체면만 세워지면 선생님이 움직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어떠한 신흥종교도 따라올 수 없는 부흥을 이루어 놓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물질적인 것을 중심삼고 가정을 수습하고 내적으로 세계적인 가정을 수습하여 이것을 국가적인 경제 기준과 연결시키기 위해 싸워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교회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공장을 대해서 정성들인 것이 무슨 수택리 공장 하나를 위해서 정성들인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대한민국의 운명과 세계적 운세를 연결시켜서 기도해 나온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이 하나의 중요한 산업품목으로 등장하여 국가와 계약을 하여 생산과정에 들어가게 되면 선생님의 책임은 끝나게 됩니다. 이러한 군사산업을 중심삼고 한국의 어떠한 산업기관보다도 중요한 산업기관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선생님이 지금까지 바라나오는 소원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자리만 잡으면 급진적으로 발전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것이 제일 빠른 길이라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별의별 소문을 다 들으면서도 그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뭐, 종교 단체에서 총을 만들어 파느니 어쩌니 하면서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외에서까지 얼마나 말이 많고 말썽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나를 몰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교회도 선생님이 관리할 것입니다. 공장에서 돈을 빼다가 교회를 위해서 쓰려고 합니다. 지금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그러므로 원필이도 돈을 쓸 때에는 피눈물나게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푼이라도 쪼개서 써야 합니다. 선생님은 나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쓰는 데는 깍쟁이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뭐 사주고 하는 데는 돈을 푹푹 쓰지만 나를 위해서는 껌 하나도 안 삽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후식하라고 무엇을 갖다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후식 같은 건 필요없습니다. 그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습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바지도 어머니가 해줘서 입은 것입니다. 여름이 다 된 6월까지 겨울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겨울 양복 입고 있다고 해서 누가 통일교회 문선생이 겨울 양복을 입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하나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33-162
뜻을 완성시키기 위해 만난 부부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경제기반을 닦을 수 있도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주려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것이 오히려 여러분들이 하늘길 가는 것을 막게 된다면, 결국은 선생님이 여러분들이 하늘의 길을 가는 것을 막아 버리는 동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여러분들은 다시 한 번 자아를 비판해 가지고 여러분의 가정문제가 뜻 앞에 플러스가 되느냐, 마이너스가 되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만약 마이너스가 되는 동기가 되었다면 이것은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말할 수 없는 화근인 것입니다. 이런 가정을 도와주는 것은 독약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금년 들어서면서부터는 고생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고생을 못 하겠으면 보따리싸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업부장을 중심삼고 시시부지해 가지고 3개월만에 3백만원을 잘라 썼다고? 그래 가지고는 앞으로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대한민국의 부패상을 혁명해야 됩니다. 부패상을 우리의 손으로 혁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가정이 부패하게 되면 결국은 전부 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너희들도 부패되지 않았느냐는 그런 말 듣고 살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구장이라 하면 몇 개의 군을 책임진 사람이 아니냐 이 말이예요. 이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을 중심삼아 가정적으로 새로운 체제를 갖추어 제물적 입장에서 보다 차원 높은 출발을 해야 되겠다고 하는 이런 차제에 있어서 여러 분이 옛날에 혼자 있을 때보다도 가정을 가진 지금 뜻 앞에 보탬이 되고 있느냐, 안 되고 있느냐 하는 것을 반성해 보라는 것입니다. 만일 아내가 ‘뜻이고 뭣이고 다 집어치우고 나만 사랑하면서 살아요’ 한다면 그 입을 찢어 버려야 합니다. 그런 아내는 원리적으로 엄격하게 교육시켜야 됩니다. 우리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이것을 하기 위해서 만났다고 하면서 원리적인 입장에서 눈에서 피눈물이 쏟아지도록 아내를 교육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들이 위신을 잃어버리고 끌려다니면서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아내를 교육시켜서 보다 나을 수 있는 입장을 모색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모색하기 위해서 이번에 가정적인 활동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 여러분 개인을 중심삼고 다시 한 번 비판해 봐야 합니다. 공과 사를 중심삼고 결혼 전과 결혼 후에 있어서의 차이가 뜻적인 입장에서 전진할 수 있는 내용만 있으면 좋겠지만, 여기에는 틀림없이 후퇴할 수 있는 내용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 자체와 내 가정이 보다 차원이 높은 공적인 기준만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차원이 낮은 사적인 기준에 끌려들어가는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가정은 빨리 혁명을 해야 합니다. 그런 가정은 생이별을 해야 됩니다. 지구장들부터 모범을 보여야 됩니다.

‘김봉철! 결혼하고 나니까 어떻든가? 결혼하고 나서 뜻길을 가는 데 지장이 있었나?’ 「지장이 없었습니다」 ‘지장이 없었어?’ 「예」 ‘그럼 보탬이 되었나?’ 「예」 ‘그래 결혼하기 전보다 나아? 부담은 안 느껴?’ 「예」

부부가 한마음이 되면 번식이 벌어지게 됩니다. 뜻을 중심삼고 부부가 하나되면 반드시 번식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어디 순회를 할 때에 아내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목욕재계하고 흰옷을 입고 기도하고 정성들여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에는 살풍이 불 수 없습니다. 그 가정은 항상 봄철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은 순회를 나갔는데 아내가 집에서 낮잠이나 자고 일어나서 입맛이나 쩍쩍 다시면서 쓸데없이 맛있는 것 없나 하고 방 바닥에 엎드려 공상이나 한다면, 그따위 여편네는 데리고 살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여편네는 재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여편네가 낳은 자식들이 뭘 하겠어요?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33-164
자기를 중심삼고 전체를 이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뜻길을 갈 때 물질적 조건이 원수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적으로 뜻길을 가는 데도 물질적 조건이 원수로서 등장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선생님의 아이들이 무엇을 사달라고 해도 잘 사주지 않습니다. 공적으로 떼어 놓은 돈인데 그것으로 무엇을 사달라고 하면 잘 안 사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르지 않으면 그 아들딸이 좋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개 신령한 부흥사 가정의 아들딸들이 빨리 망나니가 되는데 그것은 그들이 사탄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흥사들이 자기 아들딸들을 위하는 입장에서 교인들을 대해 나가면 그 아들딸들의 끝이 빨리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전체를 이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늘 생각하고 절대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교회에 찾아올 때나 혹은 여러분들이 전도를 할 때에 ‘이 사람이 헌금을 많이 할 것이냐’ 하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권력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잘났든 못났든 그 어머니가 낳고서 같은 미역국밥을 먹고, 같은 사랑을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자기 개인의 고귀한 생명체를 부모 앞에 맡겨서 자라 나온 것은 다 같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에는 사람을 차별대우하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고관들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거리의 행인과 거지들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입니다. 빈민굴이 선생님의 활동의 첫무대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눈물이 많습니다. 하지만 높은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눈물이 적습니다. 빈민굴 사람들 중에는 선생님이 한마디만 해도 눈물을 흘리며 대성통곡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높은 권위에 있는 사람들은 열 마디 백 마디를 하여도 대성통곡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은 대성통곡을 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이 더 가까우냐 하면 빈민굴에 있는 사람들이 더 가깝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통일교회에 들어올 때에 전부다 빈민이지 않았어요? 이진태도 기다리기를 참 잘했지. 그것을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귀시대에 있어서 사탄 앞에 진 빚이 얼마나 되겠나를 생각해 봐요. 그까짓 돈 몇백만 원 빚진 것을 가지고 사탄이 조건을 걸고 하나님을 찾아 가는 길을 막아서는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 진 빚을 청산해야 할 그 길을 가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사탄 앞에 진 빚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철면피와 같은 뻔뻔한 마음으로 손 씻으면 된다는 거예요. 내가 네 가슴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자신이 있다 하는 마음만 가지면 아무것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 빚진 것은 그렇게 해서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빚은 갚아 나가야 됩니다.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갚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귀도상을 책임지고 나오던 예수님은 얼마나 딱했겠어요? 민족이 진 빚을 대신 탕감해야 하고, 세계가 진 빚을 대신 탕감해야 할 예수님의 입장, 그 앞에 가야 할 길은 없고 십자가의 소용돌이에 휘몰려 들어가게 될 때에, 땅을 파고 들어갈 수도 없고, 하늘로 올라갈 수도 없는 그런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던 그 심각한 심정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나는 진태가 지금 그런 입장에 처해진 것이 진짜 심정세계에 가까이 갈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 안해 봤어요? 죽자니 청춘이요 교회가 있고, 살자니 큰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그런 기도에 감화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소서’ 하면서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들고 체면과 위신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공의의 뜻을 위해서 모든 것을 극복해 가겠다는 결의를 표명하고 나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기독교의 정신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입장을 어떻게 소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동기로 나쁜 것을 전부다 좋은 재료로 만들어 내가 내적인 면이나 외적인 면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모습이 된다면 몇백만 원의 빚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일대에 못 갚으면 삼대쯤 가서라도 갚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원리가 그렇지요? 아담 시대에 못 갚았으니, 예수님 시대에 와서 갚으려고 했고, 그때도 못 갚았으니, 그 다음 재림주님 시대에 와서 갚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안 갚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삼대쯤 가서 갚겠으니 좀 기다리시오’할 수 있는 그런 배짱을 가지고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을 향한 심정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장사 중에 서도 이윤이 많은 장사예요.

33-166
축복을 약속하시고는 감옥으로 보내셨던 하나님
내 한 가지 이야기를 해주지요. 하나님께서 선생님에게 얼마나 많은 약속을 했겠습니까? 하늘의 총리대신 자리든 하늘의 전권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준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 말을 들을 때는 천하가 다 내 눈 아래서 콩알 만하게 느껴져 마음대로 굴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기분만으로는 그 길을 찾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뒤넘이쳐서 한 바퀴 돌아와 가지고 본래 그 자리에 달라붙어야 상속받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가장 높이 올라간 그 자리에서 내려와 가지고 다시 그 자리까지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약속을 해주신 후에 어디로 보내느냐 하면 감옥소로 보낸다는 것입니다. 거꿀잡이로 밑창에 처넣는 것입니다. 거기에 있어 보라는 겁니다.

황금은 어디에 있어도 누런 빛을 발휘하는 겁니다. 선생님은 형무소에 들어가서도 소장들까지 감동시켰어요. 나를 취조하는 형사들은 선생님을 미워했지만, 형무소에서는 소장까지도 감동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거기엔 많은 말이 필요없었습니다. 스스로 변하지 않는 입장에 서면 하나님이 동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붙안고 동정해 주시면 세상의 그 무엇도 겁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는 마치 봄절기와 같은 것입니다.

이를테면 형무소에 있는 사람들이 선생님의 꿈을 꾸고 일어나서는 퍼뜩 몇 호 감방의 아무개라고 나를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침이면 나에게 찾아와서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 하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형무관들도 찾아와서는 인사를 하고 더울 때면 아이스 케이크(ice cake)도 사다 주는 겁니다.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느냐? 하늘이 같이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아무도 점령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대한민국을 이끌고 출발하여야 했는데 감옥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약속의 시대에도 그랬는데 사실의 시대인 지금은 안 그러겠느냐 하면서 태연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언제 나가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 10년을 살든, 아니면 거기에서 죽든 뜻을 위한 길이다고 생각하며 태연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그 자리에서 도를 닦았습니다. 무슨 도를 닦느냐?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시정해 가지고 앞으로 보람있는 길을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태산이 첩첩이 가로 막았으면 굴을 뚫고 고속도로를 내서라도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떨어지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력이 남아 있을 때까지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없습니다. 그때까지는 나를 위해서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내 기력이 다했는데도 뜻 앞에 내가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협조하지 말라고 해도 협조하시는 것입니다.

33-167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자가 되지 말라
미국의 동부와 서부는 약 이천 팔백 마일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 동부와 서부에서 수십년 동안 개척을 해서 동부 사람과 서부 사람들이 상봉한 그 순간은 미국 전체가 꽃피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는 미국 개척사에 있어서 둘도 없는 횃불을 들던 때였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일본을 중심삼고 정성들이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 수상이 보는 일본의 미래와 선생님이 보는 일본의 미래는 다릅니다. 앞으로 일본은 나에게 지배받을 것입니다. 정신적인 면에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그렇다는 거예요. 박대통령이 선생님을 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하늘이 증오할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는 두고 보라는 겁니다. 대한민국에 박정권이 출발한 지 금년이 10년째이지요? 12년을 잘 넘겨야 됩니다.

그러니 1972년이 고비라는 것입니다. 이 정부는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반대했지만 이제는 통일교회를 후원하는 입장에 서야 하고, 그 다음에 승공연합을 중심삼고 정부가 후원하여 하늘의 운세를 간접권내에서라도 받아 들일 수 있는 인연이 맺어져야 됩니다. 이것이 금년부터 본격적으로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3년 기간에 국가 안팎의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공화당이 천년 만년 계속 정권을 잡고 있을 것 같아요? 안 됩니다. 내가 이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여러분들은 상식적으로 알아두라는 거예요.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반성해야 합니다. 선생님 자신도 늘 나 자신을 반성합니다. 선생님도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나라고 피곤함이 없고 어려움이 없겠어요? 선생님도 그런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을 중심삼고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이것을 어떻게 위로받고 소화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극복의 재료를 무엇으로 삼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공적인 일을 함으로써 그것들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어저께 여러분들에게 보조비를 만 이천 원씩 줄 때에도 거기에다 한푼이라도 더 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공적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지내고 있는 것이 전체 식구를 결속시킬 수 있는 중요한 때라고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예산을 총무부장이 26만원을 계산한 것을 내가 35만원을 가져 가라고 했어요. 35만원 가져왔나? 「예」 거기다 또 내가 20만원을 더 가져왔어요. 예산 외의 돈을 가져왔다는 거예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바라는 최대의 것은 못 해주지만 최소의 것이라도 해주고 싶어서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물건을 사다가 거기에 꽃까지 달아서 자식에게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시는 하나님도 그렇다는 거예요. 대한민국에 축복을 준다면 그 축복을 그냥 그대로 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꽃을 달고 무늬를 놓아서, 병풍으로 말하자면 수를 놓은 병풍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이번 기간에 음력으로 7월 7일과 양력으로 8월 8일, 그리고 입추와 말복이 일치되는 날이 있는데 이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원리적으로 본다면 다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을 비판할 때에는 공사문제를 중심삼고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교회, 국가, 세계도 이 내용을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지금까지 그 내용을 말한 것입니다. 또한 경제문제가 언제든지 원수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금을 횡령하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 교회가 체제를 혁신시키고, 가정적인 출발을 도모해야 할 현시점에 있어서 문제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가정을 중심삼고 옛날 개인보다도 더 나을 수 있는 공적 관념을 철저화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제일 방해거리가 되는 것이 경제문제입니다. 경제문제를 잘못 다루 다가는 망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이 현재 여러분의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은 길어야 3년밖에 안 갈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잘못하여 꼬리 잡힌 사람은 3년이 아니라 30년이 걸려도 보충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제 귀한 가정이라는 내용을 중심삼아 앞으로 나올 원리책에 쓰여질 것입니다. 그런데 1970년대에 있어서 공직을 중심삼고 책임해 나가야 할 사람들이 외적인 물질의 조건에 걸려서 공적인 책임을 못 했다면 그 책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부끄러움을 무엇으로 씻을 것입니까?

선생님이 살아 있을 때는 선생님의 역사를 안 쓰지만 선생님이 죽은 다음에는 선생님의 역사를 쓸 게 아닙니까? 그러므로 원리에 공인될 수 없는 일을 했다면 큰일 날 것입니다. 왜 이렇게 살았느냐 하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원리적 내용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이것이 만약 그릇된다면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을 몽땅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자는 어렵다는 겁니다.

책임자는 아무리 피곤해도 먼저 눕는 게 아닙니다. 다 뉘어 놓고 누워야 됩니다. 기도를 할 때도 맨 나중까지 해야 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못먹고, 못입고, 못살면서 정성을 들어야 하는 것이 책임자의 입장입니다. 그렇게 하면 망하라고 해도 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33-170
공적인 사고방식은 생활터전에서부터 훈련받아야
선생님이 염려하는 것은 우리 공장의 주주를 전부 36가정, 72가정, 124가정 여러분들을 세워서 증자해 나오는데 만약 그 후손들이 이것 때문에 싸울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산업은 망하는 겁니다. 지금 세상은 돈 때문에 부자끼리도 서로 싸우는데 그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렇게 되면 천륜이고 뭐고 다 팔아먹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돈이 아까와 가지고 여러분을 불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을 100퍼센트 믿어 주었는데, 여러분들의 아들딸 대에 가서 그 믿어준 대로 되지 않고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면 여러분들은 영계에 가서 어떻게 할 것입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체면이고 위신이고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금부터 잘 처리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증자를 할 때에 자기 아버지가 죽으면 재산을 전부 교회에 기부한다는 각서를 받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내가 주식을 많이 갖고 싶다든가 하는 그런 생각은 안 합니다. 선생님이 주식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앞으로 외국에 왔다갔다하는 데 필요한 복수여권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회사의 대표이사나 회장의 자격이 되지 않고는 만들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사업가가 아니면 여권을 내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정보부의 사람과 의논을 했더니, 명목상 회사라는 경제조직의 실업 요원으로서 국가가 보증할 수 있는 자격을 가져야만 복수여권을 가지고 마음대로 외국에 왔다갔다할 수 있다 하기에, 선생님이 지금 그런 원칙에 있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주식을 누구에게 주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은 안 합니다. 거기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될 수 있으면 선생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을 원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것이 기분이 나쁠 때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내 이름으로 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기들이 선생님 앞으로 해놓아야 안전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기야 다른 사람보다는 선생님의 이름을 붙여 놓아야 안심이 되겠지요.

선생님은 주(株)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나 대신에 선생님과 같은 사상을 가지고 공적인 재단을 만들어 가지고 언제나 공적인 일을 해 나가는 사업단체를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회사보다 대한민국을 돕고, 세계를 위해서 공적인 목적을 가지고 나가는 회사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통일산업의 김전무가 알아야 할 것은 앞으로는 우리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사상을 새롭게 무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공장을 위해서 일하는 것보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일한다는 관념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것을 위해 수련회를 개최하는 것입니다.

공장을 위해서 일한다는 사람은 공장이 절망적으로 기울어지게 되면 거기에서 교회도 신앙도 다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공장에 왔던 사람 가운데 지금 남아진 사람이 있어요? 남아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길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절망한 사람은 공장으로라도 올 수 있지만 공장에서 절망한 사람은 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못 나오는 거예요. 대개가 그렇게 해서 도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에서 일을 하되 통일산업만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뜻을 위해서, 세계와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극복해야 됩니다. 이런 신념과 자세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설령 공장이 무너지더라도 교회에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점진적으로 무한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사고방식을 생활 터전에서부터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앞으로 나라에 필요하고 세계에 필요한 사람으로 남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공적인 활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아내들도 공적인 활동을 해야 합니다. 아들딸은 외할머니나 친할머니에게 맡기게 하고 아내들을 끌어내 활동시켜야겠으니 여기 모인 지구장들의 아내들을 끌어내더라도 선생님에게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불평 안 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됐어요. 그럼 공적인 활동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여러분들은 선생님보다 낫다는 겁니다. 성진이의 어머니는 뜻 앞에 역적이 되었는데 여러분의 아내들은 공적인 생활을 통하여 탕감 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두 자기 환경을 버리게 하고 내보내야 되겠어요. 그것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여러분들의 부인들을 주시하고 있는 겁니다. 알겠어요?

33-172
축복가정 부인 동원 계획
지난 겨울과 이번, 그리고 내년 여름까지 세 차례 동원하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축복가정의 부인들이 선생님의 말씀에 순응했다는 조건을 세우게 되면, 그 다음에는 외국의 축복가정들에게도 한국에 와서 활동하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와야지 별수 있어요. 부부끼리 한국에 와서 협조해라 하면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게 싫다 한다면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이 아니라는 겁니다. 미국 일본 등 각 나라식구들을 축복해 준 후에 필요하면 한국에 불러들여 한국을 개척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필요한 돈은 각자 자기 나라에서 가져다 쓰면서 한국의 산골짜기 마을까지 개척해라 하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지금 외국인 가정이 약 260가정 정도 되는데 이들은 우리가 월급을 주지 않아도 개척 활동을 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하면 부흥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이렇게 축복가정들을 동원하여 이것을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의 전통으로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전통을 세계에 있는 모든 축복 가정들은 저렇게 살아야 된다는 기준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평면적으로 자리가 잡힐 때까지 십년이든 이십년이든 기다렸다가 축복해 주려고 합니다. 한 7년 이상 걸릴 거라고 보고 있어요. 가정들을 내몰아야 겠어요.

다음부터는 여자들은 27세, 남자들은 33세 정도의 연령이 되어야 축복해 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7살 아래는 전부다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축복받던 18세 전후로 해서 7년권내에 들어가는 23, 4세까지는 축복을 받는게 아니예요. 지금까지는 해주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앞으로는 여자들도 나이가 많아야 축복해 줄 것입니다. 대학교 졸업하고 한 3, 4년 일을 시킨 다음에 시집 보내야겠어요. 고등학교 나오자마자 시집을 가 버리면 언제 일을 해서 뜻을 이루겠어요? 하지만 7년노정의 혜택을 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700쌍을 중심삼고 축복해 주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들은 가정의 영적 기준을 위하여 경제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정이 못 되면 그 가정은 망하게 됩니다. 이게 전체의 가정들이 제일 염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것을 언제든지 염려하라는 거예요. 선생님도 지금까지 그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정에서 내 아들딸을 대해 내 본의의 입장에 선 기준을 어떻게 취해 나가느냐 하는 것을 놓고 지금까지 노력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만 잘하게 되면 하나님이 망하지 않게 하시며 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돌보아 주지 않아도 그 가정은 스스로 자리잡아 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기원을 만들자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그런 관념이 없었지요? 이것을 확실히 몰랐다는 거예요. 그러니 가정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완전히 포기하고 나서라는 것입니다. 완전한 무의 자리에 들어가서 절대적인 정신 기준만으로 100퍼센트의 한계 선까지 채워 놓고 새로운 경지를 향해 하나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념이 여러분에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기원을 만들어 가지고 여러분들의 가정이 물질을 완전히 넘어서서 경제문제를 극복했다는 기준을 향하여 천정을 중심삼고 새로이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경제복귀는 자동적으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여러분들은 이번 모임을 통해서 새로운 기원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앞으로는 공사 문제를 철저히 해야 되겠습니다. 공금은 사탄이 풀어 놓은 독약입니다. 그런 공금을 잘못 사용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 공금으로 인해서 일은 벌어지는 것입니다. 간신도 거기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것 때문에 나라가 망하기도 하고, 나라를 팔아먹기도 하는 것입니다.

33-174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 삼위기대
선생님은 새로운 기원을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 집단체제를 갖춘 전도 기간을 수립하려고 합니다. 이제부터 이것을 시작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기간을 통하여 개인이 활동하는 것보다도 단체가 활동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새로이 인식시켜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이것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것보다도 단체적으로 활동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이 새로운 활동체제를 중심삼고 공인하게끔 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만큼 정성을 들이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기대가 완전히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삼위기대가 경제문제를 놓고 서로서로 도와야 합니다. 자기 개인과 가정 문제만을 염려하지 말고 그것을 극복하여 삼위기대 가정 가정이 서로 같은 입장에서 돕고 위로하면서 하나되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삼위기대 가정들이 경제문제를 초월하여 정신적으로 하나로 결합하여 같이 먹고 같이 살수 있는 기준이 됐다 할진대는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원수가 그들을 침범하려 하더라도 세 가정이 완전히 하나로 단결되어 투쟁하게 되면 격퇴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기대를 중심삼은 체제를 강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가정으로서의 기준을 세우고 이 시대의 새로운 기원을 마련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삼위기대 가정들은 12기대, 즉 12가정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12가정이 하나님 앞에 공적인 자리에 서 가지고 공을 세우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삼위기대 가정들이 중심이 되어 동쪽이면 동쪽, 서쪽이면 서쪽, 남쪽이면 남쪽, 북쪽이면 북쪽, 그리고 일년 사시절과 12삭(朔)을 대표한 절대적이고 공식적인 형태를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에까지 내가 동기가 되어 어떻게 끌어올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하여 세 가정이 서로 동기가 되어 끌어올리게 되면 이 세 가정을 중심삼고 36가정까지 퍼져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발전 원리입니다. 우리는 가정을 중심삼고 이런 체제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단체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주체와 대상의 관념이 투철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있어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언제든지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대상의 입장이냐, 주체의 입장이냐 하는 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상은 대상으로서 절대적인 대상이 되고, 주체는 주체로서 절대적인 주체가 되라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성립되지 않으면 모든 단체 운동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33-175
누가 주체이고 누가 대상인가
김영휘 협회장을 중심삼고 볼 때, 그는 주체고 여러분들은 대상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여러분이 대상이면 절대적인 대상의 자리에서 주체를 보강시켜 주어야 합니다. 주체에게 어떤 결함이 있으면 대상은 그것을 보강시켜서 절대적인 대상인 자기와 자연적으로 일체될 수 있도록 주체를 다시 창조하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한 대상 앞에는 그 주체가 불완전하더라도 반드시 완전한 주체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체가 절대적일 때에는 주체가 그 절대적인 자리만 지켜 나가면 대상도 절대적인 자리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관입니다. 교회와 대 사회문제에 있어서는 공사문제를 늘 생각해야 하지만 우리 자체내에서는 언제든지 주체와 대상의 관념을 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12가정에 있어서도 반드시 종횡의 삼위기대가 있지요? 거기에서도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세 가정이 삼위기대가 되었으면 거기에서 한 가정은 반드시 주체의 입장에 서고, 다른 가정은 대상의 입장에 서서 주체의 입장에 선 가정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 하늘 가정을 규합시키는 놀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맺어지면 수수작용이 벌어져야 합니다. 수수작용이 백 퍼센트 벌어져야만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임하시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선생님과 여러분들이 주체와 대상의 입장에서 수수작용이 잘 되고 있어요, 잘 안 되고 있어요? 잘 안 되고 있다면 창조과정에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면 주체, 대상이면 대상, 어느 한 쪽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원리적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과 여러분들이 서로 하나되었느냐? 하나되었다면 어느 정도 하나되었느냐? 하나되는 데 있어서 금전적인 조건이 문제되느냐, 가정에서의 아내와 자식이 문제되느냐, 아니면 어떤 특정한 권위가 문제되느냐, 세계에 어떤 상대적인 조건이 문제되느냐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하나됐느냐? 그 하나된 기준이 세계적이라면 그 기준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이 선생님과 하나되고, 또 그런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이 선생님의 가정과 완전히 하나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체내에서 주체와 대상의 관념을 가져야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종적인 관계입니다. 그리고 공사의 관계는 횡적인 관계입니다.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 다시 말하면 가인과 아벨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주체가 되느냐? 심정적으로 뜨거운 사람이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삼위기대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죽을 지경에 처했을 때, 제일 어려울 때 그를 심정적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는 사람이 주체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의지적인 사람보다 정적인 사람, 이론적인 사람보다 영적으로 신령한 사람이 주체가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들이 주체를 정할 때 삼위기대 가운데서 뜻을 위해 보다 더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많이 노력했고, 눈물을 많이 흘렸고, 피땀을 많이 흘렸느냐 하는 것에 따라 주체를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투표해 가지고 똑똑하고, 지식이 많고, 수단이 좋은 사람을 택하지만 하늘의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심정적으로 그 폭이 넓고 양이 많고 뜨거운 사람이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여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 공과 사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개입시키느냐, 사탄을 개입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들은 재차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33-177
가정의 목표는 사위기대 완성
여러분은 가정을 가졌을 때와 가정을 안 가졌을 때의 차이가 어떻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정이 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더 감사할 수 있어야 됩니다. 아내를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식을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사하는 것이 세 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가정에 이런 복을 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유광렬(柳光烈) 어디 있어 ? 옛날에 혼자 있을 때 독살스럽던 눈빛이 결혼한 후에는 없어졌다는 겁니다. 옛날에 혼자 살 때에는 누가 뭐라고 하면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협회장이든 누구에게든 덤벼들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웃음)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그렇긴 그렇지만 조금 나아졌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옛날에 혼자 있었을 때와 가정을 가지고 있는 지금을 비교해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커졌느냐, 심정적인 소화량이 얼마만큼 많아졌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쳐 가지고 ‘뜻이고 뭣이고 사는 게 뭔지…’ 하고 생각될 때에는 결혼하기 전 단계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재차 아내를 맞아들일 준비를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지금까지 당신을 대한 나의 사랑은 가짜 사랑이었으니 나는 가짜 남편이오. 죽을 죄를 용서해 주시오’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는 마음 자세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찾아 묶어 주신 본의의 아내를 맞이한 데 대해 감사의 심정을 갖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자식을 위해 생명을 걸고 싸워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를 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아들딸은 하나님께서 수천년의 역사를 소모시키면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희생 시켜 가지고 찾아진 하나의 가정을 통하여 소원의 등불과 같이 태어나게한 귀한 아들딸인 것입니다. 사위기대의 완성이라는 거룩한 목표의 귀일점을 각 가정의 아들딸이 가져온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아들딸에 대해서도 날이 가면 갈수록 진정으로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그 아들딸들은 절대 굶어 죽지 않는 것입니다.

33-178
하나님을 위하는 일에 열성을 다하라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전도 나가 있는 여러분들보다 잘먹어서는 안되는 거예요. 만일 여러분의 부모가 여러분보다 잘먹으면 큰일난다는 겁니다. 어머니는 보따리 장사를 해서라도 여러분을 후원해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가 반대하고 형님 누나가 반대하더라도 어머니는 여러분을 위해서 몰래 떡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밤잠을 못 이루고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이 길을 개척해 나올 때도 많은 사람들이 그랬지만, 선생님의 어머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생님의 배후에서 외적으로, 심정적으로 눈물을 흘리며 정성들여 주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한참 돈을 많이 써야 할 때, 즉 1960년대에 사건이 나서 돈을 써야 하는 데 돈이 한푼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비굴하게 돈이 없다는 말은 절대 안 했습니다. 헌금하라는 말도 안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정성을 들였습니다. 민족에게 한이 맺힐 것을 염려하여 ‘아버지, 이 민족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내가 앞으로 당해야 할 시련과 고통은 이보다 몇십 배가 더 남아 있을 것이지만 내가 당하는 그 시련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 이 민족이 이런 경제 문제 때문에 세계에 손을 벌리고 동냥하는 거지 신세가 되어서는 안 될 게 아닙니까? ‘ 하면서 나를 동정하기에 앞서 민족을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민족 가운데 소망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 불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그들에게 직접 특명을 내리는 것입니다. 시집올 때 받은 패물 단지라든가 어디에 넣어 둔 금, 다이아몬드 반지 등을 지적하며 그것을 어디에 있는 누구한테 언제 가서 팔면 몇십만 원을 받을 것이라며 팔아야 할 상점과 살 사람까지 전부다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생님을 후원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래 가지고 선생님을 후원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돈 한푼 없어도 일합니다. 내가 필요하다 생각되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것입니다. 빚을 몇백 만 원, 몇천 만 원, 몇억 원을 지더라도 한다는 거예요. 몇십 배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자신만 있으면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빚을 안 갚는 것이 아니라 갚는다 이겁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돈이 없어도 하려고 하면 무엇이든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일을 하려고 하면 누구든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우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명이 내렸는데 남편이나 부인이 문제되겠어요? 지금까지 선생님은 그렇게 해서 일해 나왔습니다. 그런 돈이기에 선생님이 여러분들의 개인 살림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일이 아니면 안 쓰려고 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하나님께 돈을 벌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돈은 내가 벌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내 있는 힘을 다하고 부인들을 동원해서라도 벌면 될 게 아니예요?

공장장도 생산부장도 선생님 마음 같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여덟 시간만 일했으면 한다는 겁니다. 선생님은 자다가도 열두 시든 세 시든 나가서 일을 합니다. 선생님과 여러분은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정한 시간의 한계권내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인간적인 판단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새벽 두 시도 좋고, 세 시도 좋은 마음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불평하는 사람들은 전부 보따리 싸 가지고 떠나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해나가는 것은 나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고 민족과 세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가는 길은 남아질 것입니다.

공장에서 불평이 많은 사람은 공장장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내보낼 겁니다. 정 못 하겠으면 보따리 싸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면박을 해도 좋습니다. 나를 세상의 어떠한 선배나 형님과 같은 그런 관계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난 그런 사람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내가 원칙에 의해서 일을 시켰는 데 거기에서 전체에 본이 못 될 때는 잘라버린다는 것입니다. 화가 나면 일시에 모든 것을 뒤바꿔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제는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요? 한번 한다고 하면 빚이 천만 원이 되든 이천만 원이 되든 한다는 겁니다. 그까짓 것엔 눈도 한번 깜박거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공사 문제라든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라든가 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33-180
공적인 사람은 전체를 위하는 사람
가정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남편을 중심삼은 아내라든가, 아내를 중심삼은 남편이라든가, 또는 부모를 중심삼은 자녀라든가 하는 것이 전부 주체와 대상의 관계입니다.

그 다음 문제는 공사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생활 가운데에서 공적인 생활을 했느냐 사적인 생활을 했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사적인 생활은 전부다 제재해야 하고 공적인 생활을 할 때에는 시간을 초월해서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점심 때가 되었다고 점심이나 먹자고 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공적인 사람의 사고방식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는 사람은 사탄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사적인 것은 악에 가까운 것입니다. 악이 선을 쳐서 남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공사 문제에 있어서 생활 법도를 세워 나가야 됩니다.

지금 성진이가 원필이의 집에 살고 있어도 내가 지금까지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어요. 공장에 가는 시간의 몇 분의 일만 할애를 해도 갈 수 있지만 안 찾아갔습니다. 협회장이나 총무부장의 집에도 안 찾아갑니다. 그러면 왜 안 찾아가느냐?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유협회장이나 옛날 총무부장 김영휘네 집에도 찾아가서 그 아이들의 손목이라도 한번 잡아 주고 그래야 되지만 안 가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 아이들을 만나면 안아 주기도 하고 그러지만, 이들에게는 이들이 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진이에게도 그가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진이가 최선생의 집에 가 있을 때, 최선생이 아무리 와 주기를 바라도 가지 않았습니다. 성진이가 그 집에 가 있는 일년 반 동안 선생님을 초대해 놓고 기다려도 한번도 안 갔습니다.

선생님이 자기네 집에 들른다고 해서 기뻐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그것을 좋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어떻게 큰일을 하겠어요? 큰일을 하는데 처자를 데리고 다니며 할 수 있어요? 공적인 길을 가는 사람은 보다 전체적인 것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 처자는 뜻을 다 이루고 돌아오는 길에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이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공적으로 사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겁니다. 레위 지파에게는 분깃이 없었습니다. 그런 게 있었어요? 제사장들에게는 분깃이 있었어오? 땅을 믿고 살라고 그랬습니까? 유대 나라의 땅이 반 사막지대인데 분깃까지 없으니 얼마나 처량했겠어요. 그 나라의 민요를 들어 보면 전부가 그저 몸부림치다가 할수없으니 하나님을 부르는 내용입니다. 비탄에 잠겨 빛을 잃은 음조로 되어 있어요. 제대로 된 땅이라도 있으면 소망을 갖겠는데 땅이라고는 전부가 반 사막지대여서 양 한 다리도 키우지 못하는 황무지라는 것입니다. 그런 데서 분깃도 없이 살자니 얼마나 처량했겠어요?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살았다는 겁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며 지금 지구장들이 달랑달랑하게 살아가는 것이나 선생님이 달랑달랑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낙심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같이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흘리는 눈물은 민족의 눈물을 대신한 것이요. 나의 외로움은 민족의 외로움을 대신한 것입니다. 내가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에 ‘아버지여, 내 대신 이 민족을 용서하여 주시 옵소서’라고 민족을 대신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장의 책임입니다. 내가 그런 자리에 있다 할 때는 그 백성의 미래에 있을 비운을 느껴서 그것을 내가 대신 짊어지고 민족을 위해 속죄의 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민족이 비운의 자리를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민족을 대표해서 그런 자리에 서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공직에 있는 사람의 책임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내게 ‘아빠, 우리 벤츠차 사자’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게 아무리 돈이 많아도 벤츠 못 사겠다고 합니다. ‘벤츠 한 대 살 돈 가지면 크라운이나 코로나 같은 차를 열두 대, 열세 대는 살 텐데 어떻게 그걸 사겠느냐? 나는 죽어도 그렇게 못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들 마음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렇게 선생님은 생활의 전부를 비교 비판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영광을 다 못 누리고 가면 저나라에 가서 더 많은 복을 받는 겁니다. 그 후손의 천대 만대까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가 받아야 할 복이 백만큼인데 하나도 못 받고 갔으면 그 백만큼의 복은 자기 후손들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이땅 위에 사는 동안에 공적인 길을 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제일 무섭고, 제일 크고, 제일 강한 사람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33-182
공사(公私)의 관계를 분명히 하라
통일교회 문선생을 가만히 보면 어떤 때는 어수룩하고 아무것도 안 가진 사람 같지만, 무서운 사람입니다. 나 스스로 강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 누가 점령할 수 없는 강한 사람입니다. 또 나 이상 지혜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법을 전부다 요용(要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법에 안 걸리고 결국 나라의 운세를 밟고 넘어가서 천운에까지 연결사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원칙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주체와 대상 관계와 공사 문제를 뚜렷이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특별히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알겠어요? 「예」 다 그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 그 다음에는 무엇입니까? 「공사 관계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자식에게 뭘 사주더라도 그 자식을 자기의 아들로서만 사랑하며 사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자식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귀하게 쓸 수 있는 아들딸들이라고 생각하면서 같은 값이면 더 귀한 것을 사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통한다는 거예요. 이것이 얼마나 멋져요?

선생님은 효진이를 비롯한 우리 아이들을 전부 그렇게 생각합니다. 6천년 동안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시며 찾아 나오신 소망의 아들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좋은 것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사주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아들딸들에게만 좋은 것을 사준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자식들에게 물건을 사줄 때 그런 사적인 생각은 절대 안 합니다. 하늘을 대신한 자리에서, 많은 부모가 해주지 못한 것을 대신 해줌으로써 탕감하여 해원성사의 조건을 세워 준다는 것을 생각하는 겁니다. 또 그래야 편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내 생리로 볼 때 맞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가정을 이루었으면 자기와 아내 사이에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뚜렷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마이너스되는 요소가 있을 때에는 절제하고 거기에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여 브레이크를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 공사 문제에 있어서는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나가야지 사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나가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독약을 먹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적인 기준으로 나가는 것은 마치 끊을 수 없는 줄에 자기의 목이 걸려 있는 데도 모르고 좋다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 원수가 따라온다면 대번에 걸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인 것은 망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런 실감을 스스로 느껴 봐야 합니다. 대한민국 사람은 대한민국만 위해서 살지 말고, 일본 사람은 일본만 위해서 살지 말라는 말을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기준을 갖추어 이제부터 가정을 중심삼고 새로운 풍조를 어떻게 세워 나가야 하느냐 하는 것이 1970년대를 맞아 새로운 체제를 갖추어 활동해야 할 현시점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두고 여러분이 새로와 질 수 있는 기원으로 삼아 지금까지의 신앙을 중심삼고 새로운 방향에서 적응해 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그렇게 했는데도 발전하지 않는다면 내 말이 거짓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원칙을 세워 가지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모든 문제가 해결 안 된다면 내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지 안 그런지 두고 보라는 거예요. 사람에 따라 탕감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는 기간이 길고 짧은 차이는 있을망정 이 원칙에 의한 것은 반드시 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건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이 알고 심중에 명심해 주길 바래요. 이것은 여러분의 가정 문제와 여러분의 자세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입니다. 알겠어요? 「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