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1 to 32-118: 눈물과 부활

눈물과 부활
1970.06.28 (일), 한국 전본부교회

32-81
눈물과 부활
[기 도]

역사과정 중의 ‘나’라는 존재를 생각할 때, 나는 나를 염려하고 내 종족을 염려하고, 내 민족을 염려하고, 내 나라를 염려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종족이나 민족, 국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길고 긴 역사과정에서 인간들은 그 역사의 배후에 사무친 역사적인 내용과 인연을 맺어 역사를 엮어왔사오나 그 역사 속에서 그와 같은 인연을 엮어 놓지 못한 저희 인간들이었사옵니다.

저희들이 오늘 일을 열심히 하였을 때, 오늘 일은 내일을 위한 연습이 될 수 없는 것을 아옵니다. 내일의 참을 바라보고 있는 저희들에게 오늘도 참된 모습을 그려 가는 자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에게 있어서 이 시간은 귀한 시간이요, 생사의 문제를 좌우하는 시간이며, 이 시간을 위해 기나긴 역사가 흘러왔다는 것을 스스로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 시간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최후에 진리의 기반이 연결되어 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역사의 목적을 수행해 나가는 운명길에 서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가운데에 존재하고 있는 저희 통일교회는 이러한 역사적인 운명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인간들은 이와 같은 인연을 연결시켜서 처해진 운명을 넘어 그 운명의 길을 개척하겠다고 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하고 있사옵니다.

이런 세상을 보게 될 때, 그들이 찾아가는 하나의 귀결점은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만이 남아지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 인연의 귀결점은 전체 목적의 중심이신 당신만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모든 여건이 당신과 하나로 화합할 수 있는 것이 되어 있는가, 언행심사 일체가 당신과 더불어 그 귀결점에 접할 수 있는 내용과 인연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

이제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이 있다 할진대. 그 아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아버지께서 바라시고 원하시는 아들이 되어 있느냐? 그런 자리에 서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아들이 되어 있느냐?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타락한 인간의 후손된 저희들은 복귀해야 할 한의 고개를 넘고 양자의 인연을 지나서 아버지로부터 새로운 아들로 보내어진 분에게 접붙임을 받아 아버지의 품에 품기기 원하옵니다.

그러나 그런 저희들과 아버지와는 그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사옵니다. 저희들의 생애노정이나 신앙노정에서 외로울 때에는 아버님이 없는 것으로 느낄 때도 있고. 방황하게 될 때에는 아버지께서 저희들 때문에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하실까를 생각하게 될 때도 있사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며 저희 자신들에게 과연 지금 내가 아버님과 영원을 두고 약속한 생의 인연을 가지고 살고 있느냐고 반문하게 될 때. 자신있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몇이나 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기를 원치 않사옵니다. 슬펐던 역사를 가로막고 이것을 새롭게 개척하여 기쁠 수 있는 역사의 한 면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일생일대를 통하여 이것을 제시하고 싶고, 이와 같은 실천의 장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인간들이 원하는 길이요. 걸어가야 하는 길이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가치의 내용을 깨달을 수 없는 슬픔의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그것을 다짐하지만 흘러가 버리고 있다는 사실에 분하고 원통함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사옵니까? 이런 걸 생각하게 될 때,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이 땅이야말로 불쌍한 세상이요, 슬픈 세상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느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님께서는 이 땅 위에 계시기를 바라시고, 이 땅 위에살고 있는 사람과 더불어 하나의 목적을 성사하기를 바라시며 기필코 그 목적을 성사 시킬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 자신이 오늘날 이 시대나 혹은 이 세계에 필요한 사람인가를 반문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오관을 통해서 느끼는 모든 감각과 감정 일체가 당신께서 원하시고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모습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개인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 온 천주를 대신한 입장에 선 자신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얼마나 얼마나 아버지와 먼 거리에 있고, 얼마나 얼마나 자기 중심삼은 입장에서 아버지를 비판하였고, 얼마나 얼마나 자기로 말미암은 결과를 요구하였던가를 느끼게 되옵니다.

이런 걸 생각할 때, 저희 자신이 서 있는 자리는 스스로 서 있는 자리가 아니라 넘어질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런 자리에서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자랑하고 싶었던 지희들이었던 것을 생각할 때, 이러한 자신들의 모습을 제거시켜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아버지께 의지하고 아버지로 말미암아 설 수 있는 사람을 다시 한번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오늘날 이 시점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자각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는 아버지 앞에 어떠한 모습 가지고 나타났느냐고 묻게 될 때에, 나는 이러한 슬픔을 지니고 나왔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요, 혹은 이런 소망을 위해서 이렇게 거쳐왔다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주장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뜻과 더불어 당신의 역사적인 사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싸워 나왔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옵니까? 나는 지금까지 그 사연의 일면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면을 위해서 싸워 나왔고 견디어 나왔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당신을 아버지라고 하면서 바로 보게 될 때 아버지께서 스스로 기뻐할 수 있고. 당신의 모든 소원을 넘겨 줄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이 되고 그 이상의 아들이 되어 당신의 사랑을 모두 넘겨 주면서도 아까움을 느끼지 않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저희들이 맞을 수 있는 한 시간을 허락해 주실 수 있거든 허락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고요한 마음 중에 당신을 흠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하게 우러났었으며, 당신과 일치되어 생명의 권한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그 자리에서 어떠한 악의 세력이라도 끌고 다닐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으며, 혹은 참을 위하여 하늘의 뜻을 중심삼고 원수를 무찌르기 위하여 강하고 담대한 용사의 모습을 가진 입장에 있었으며, 흑암의 사망권을 밟기 위하여 승리의 권한을 가져 가지고 이 생활권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의 존재가 되어 있었사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이러한 모든 것을 갖추지 못한 자신임을 느끼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부족한 자신인 것을 다시 한 번 자백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흘러가는 역사의 슬픔을 안고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슬픔 가운데서 살다가 슬픔으로 말미암아 쓰러져 가는 것이 아니라, 슬픈 역사를 걷어차고 새로운 아버지의 기쁜 역사를 창건할 수 있는 새시대의 대신자, 새시대의 연결자가 되고, 새시대의 개척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그럴 수 있는 하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기 위해서 모인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너는 누구의 아들이냐, 너는 누구의 딸이냐’ 하고 물을 때 머뭇머뭇 하여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는 당신의 아들이옵니다. 무엇을 봐도 당신을 닮았습니다. 제가 생활하는 것도 당신께 배운 것이며, 제가 말하는 것도 당신께서 가르쳐 준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행하는 것은 당신께서 필시 상속을 약속하는 일이라고 권고하여 주셨기에 이렇게 살고 있으며, 일체의 내용은 당신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제가 동하고 정하는 모든 것, 제가 가고 있는 행로 전체도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있는 자신의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갖추어 가지고 아버지의 뜻 앞에 스스로 다짐하는 생활을 하는 존재로서 살기를 그리워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은 영원하시고, 아버님은 무한하시고. 아버님은 저희들과 일체될 수 있는 기원이시기 때문에 저희들과 영원한 환경과 영원한 뜻 가운데에 분립될래야 분립될 수 없는 일체적 인연을 가지고 당신과 화합하고 동행할 수 있는 절대적 인연을 갖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아버지라 부르는 저희들을 다시 한 번 지켜 주시옵소서. 당신이 불꽃 같은 눈으로 살피게 될 때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용납받지 못할 모습들이옵니다. 아직까지 죄악의 잔뿌리가 저희들을 정복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아버님께 서러움을 남겨 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한 저희들의 모습을 보시고 슬퍼 돌아설 수밖에 없는 아버지를 붙들고 저희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고 수백 번 애걸하는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슬프신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외로움과 고통과 슬픔과 절망을 느낄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저희들에게 그런 자리가 얼마나 무서운 자리인가를 알게 허락하여 주셔서 그런 자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이 당신 앞에 부복하였사옵니다. 당신이 찾고 싶으신 것이 무엇이옵니까? 마음의 열매이옵니까? 생활의 결실이옵니까? 생애 노정에서 당신이 그 무엇보다도 원하시는 최고의 목적 앞에 없어서는 안될 참된 제물의 모습이옵니까? 제물을 드리는 당신의 참된 아들딸이옵니까? 당신 나름대로 원하시는 소원을 저희와 더불어 진지한 자리에서 나눌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마음 깊은 곳에서 충이 우러나고, 그것이 다시 능력으로 나타나 다시 한 번 아버지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재기의 모습을 갖추어 영광의 새아침을 맞을 수 있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부끄러운 과거를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부족함을 느끼게 되옵니다. 하오니 오늘도 열심히 아버지를 향하여 새로운 신념이 솟아오르는 마음을 갖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무력한 가운데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이 있거든, 아버지, 힘을 주시옵고, 생명의 손길을 가하여 주시옵시며,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어서 내일의 소망을 다짐하고 남아질 수 있는 아들딸로 삼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이 나라 이 민족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나라를 지켜 주고 싶으신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가를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 나라 이 민족을 반만년 역사과정을 통하여 지금까지 망하지 않게 하시고 민족의 모든 전통적인 문화를 잊어버리지 않게 하여 남겨 주신 것은 당신께서 보호하고 지켜 주신 사랑의 결과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세우시고 그로 하여금 사람들을 불러 모으게 하여 그들을 중심삼고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계셨기 때문임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지키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버지의 입장인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싶으신 아버지의 그 마음을 가로막고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불쌍한 불효 자식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불충의 자식 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역사를 거듭하면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찾아오신 아버지이시요, 사랑의 마음으로 이 민족과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어 가지고 찾아 나오신 아버 지이오니, 저희들도 민족을 사랑하는 데에는 아버지께서 사랑하고 싶어하시는 만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과거에 이 민족이 불쌍하였던 한을 풀어 주어 이 민족에게 해방의 한날을 맞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세기말적인 이 시대에 새로운 참된 축복의 인연을 저희에게 허락하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이것을 고이 받아 지키어 자손만대에 영원히 귀한 예물로서 물려주고, 그 무엇보다도 귀한 보물로서 고이고이 남기어 당신이 영원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영원히 품지 않을 수 없는 이 나라 이 민족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 열녀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싸우는 무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에게 이러한 것을 책임지겠느냐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책임질 수 없으면 한 분야만이라도 정성을 다하여서 ‘이 분야는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며 각자의 부서에서 책임을 질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나라를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 다.

아버지, 이 통일의 무리들은 이 나라 이 민족을 대신하여 당신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보여 줘야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아버지께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불러 모으신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나라는 한 존재를 찾아 세우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신 아버지이신가를 분명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세상에 있어서도 외로운 한때에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서나 유언으로 후손을 통하여서라도 그 은사를 보답하는 것이 인생의 도리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축복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그 인연을 저희들로 말미암아 이으소서. 민족을 사랑하는 이상의 사랑으로 저희들을 찾아 준 것을 저희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러한 시대에 저희들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때는 이 나라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삼천만 민중을 주고도 바꿀수 없으며, 온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때인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그것은 아버님으로서 단 한번 허락하신 선물인 것을 알고, 그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그 가치를 무한한 가치로 높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저희 자신들이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옵소서. 저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벌거숭이가 되어 아버지를 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반길 수 있는 순진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주시고 싶어하는 내심의 그 무엇을 저희들은 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소망하면서 아버지의 훌륭하신 그 모습 앞에 본이 될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너무나 해이해질 때가 많습니다, 어린애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른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희들은 어린애와 같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아버지, 이 시간 저희들 당신의 품에 품길 수 있는 귀여운 어린애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에서 상처를 입었다든가, 슬픈 자리에 처했든가, 외로운 자리에 있다든가, 혹은 원수의 처소에 놓였다든가 할 때에는 당신의 사랑이 가중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자기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의 자리에 설 때는 당신께서 다시 한 번 저희들에게 부탁하고 고대할 수 있는 입장이로되, 그렇지 못한 자리에 서거든, 아버지,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아버지외 품을 그리워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이 자리에 홀로 앉아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천군천사 천천만 성도가 옹위하는 가운데 거룩한 승리의 환영이 벌어지는 자리에 있어 야겠으며, 그 자리에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이 시간 당신께서 친히 저희들을 품으시어 ‘내가 찾고 있던 아들과 딸이다’ 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맞으시옵소서. 당신이 숨겨 왔던 은사의 축복을 이 시간 각자 각자가 그 마음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당신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그 누구를 위하여 이 자리에 불려 온 자들이 아니라 민족을 위하기 전에 당신을 위하여 불려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위하여 민족으로부터 배반당한 무리도 있사옵니다.

민족이 수난길을 가기 전에 저희들이 먼저 당신의 뜻을 따라 수난길을 거치기 일쑤였사옵니다. 그러한 슬픔을 거쳐오면서 그 슬픔이 습관이 되어 얼굴에 주름살이 생긴 당신의 아들딸들이 많사옵니다. 그들 얼굴에 나타난 주름살은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주름살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거든 그 주름살을 보며 당신의 아픈 마음을 느끼면서 ‘어디를 가나 힘있고 강하고 담대하라. 때가 가까와오니 끝까지 싸워 남아지는 무리들이 되라’고 서로 위로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 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민족의 핍박 가운데서 벗어나려면 비참해져서는 안 된다고 절규하던 무리였사옵니다. 그 비탈길에서 참으며 실력를 길러 복귀노정을 걸어 나오던 길이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저희들에게 내리시는 긍휼의 밧줄을 잡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당신이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상의 그 무엇을 믿을 것이 아니라, 당신만을 믿어야 하기 때문에 당신의 생명의 인연을 갈구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어야만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느끼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곳을 생명의 본향이라고 하며,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모아 정성들이는 무리들이 있거든 천배 만배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아버지, 여기 본부에 있는 사람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있사오니 그들 앞에도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생명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이런 자리에 선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을 느끼게 될 때, 아버지 이것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는 그 정성이 도리어 저희들의 갈 길을 막고 저희를 심판할까봐 두려워 하는 마음을 느끼면서 본부에 있는 저희들이 다시 한 번 각성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나라 이 민족과 세계 인류를 위하여 밤을 새워가며 몸부림치면서 아버지 앞에 간곡히 기도하는 무리가 있거든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임하시옵소서.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뜻길을 나아가며 뜻과 이 세계 인류를 위하여 정성을 들이거든 생명이 깃들 수 있는 하나의 제단으로 인정하시옵소서.

지금까지 당신께서 역사시대의 외로운 자들을 권고하시던 수많은 인연을 품고 오시어서 그들을 권고하고 지켜주시옵고 그들에게 갈 길을 인도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그들의 마음으로 하나의 뜻을 생각하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외로운 자녀들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에게 한국을 위주로 하여 일본과 아시아에 있는 수많은 나라들을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 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세계의 정세가 슬픔의 와중으로 휘몰아쳐 들어가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있어서 당신께서 중심이 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현실적인 환경을 잘 느끼는 저희들은 당신만을 믿는 마음이 간절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과 떨어 질까봐 밧줄로써 스스로를 얽어 매고, 내일 고난이 닥친다 해도 그 어려운 자리를 참고 가겠다고 할 수 있는 확고한 생활체제를 갖추고 스스로 나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통일의 교회가 가야 할 길, 통일의 나라가 가야 할 길, 통일의 세계가 가야 할 길에 십자가의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 십자가의 길을 돌아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 십자가의 길을 피해 가려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그것을 피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많사오나. 그것을 책임지고 가겠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사옵니다. 이런 것을 느끼게 될 매에 하나님은 슬픈 분인 것을 다시 느끼게 되옵니다, 이 많고 많은 인생의 고빗길. 역사의 고빗길, 국가의 고빗길을 당신이 믿고 가야 하니 당신께서는 불쌍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당신을 위하여 저희들은 충성의 도리를 다하고 효성의 도리를 다하여, 충신이 되고 효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당신과의 인연을 존중시하고 나선 통일의 무리들이 십자가의 권을 상속받을 수 있는 후계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를 상속받아 후계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죽어간 그런 무리 들의 후예는 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짊어졌던 십자가가 나라의 십자가일 때, 그들이 찾고 있는 나라보다도 더 간절하게 아버님을 찾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저희들은 그런 무리를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라는 그 이름이 슬픈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지니고 있는 사연은 사랑하는 아들딸 앞에 털어 놓고 말할 수 없는 슬픈 사연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연을 갖추시고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엮어 오신 외로우신 아버지, 슬프신 아버지였던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이러이러했다는 그 사정을 어느 누구가 말한다면 천년 만년 통곡하고 천년 만년 감사할 수 있는 한때를 찾겠다고 하는 당신인 것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의 뜻 가운데 있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관계가 없고 아버지께 속하지 않았더라면 불쌍한 무리들이었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저희들은 10년, 혹은 생애를 바쳐가면서 지금까지 뜻을 따라 나오던 무리였사오니, 저희들이 행한 모든 것이 아버지의 영광으로 끝나야 되겠고 아버지의 기쁨으로 끝나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친히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6월도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여, 이달을 의의있게 보내지 못한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벌써 이해의 절반이 지나가고 다시 후반기가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사온데, 이해의 후반기를 향하여 달려가야 할 사명을 남기고 있는 이 아침에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권고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새로운 인연을 따라서 아버지께서 남길 수 있는 축복의 나라로 달려가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2-91
말 씀
우리가 타락한 환경을 벗어나려면 평탄하고 순리적인 노정을 택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인간이 자의에 의해서 이런 환경에 떨어졌 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인데,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떨어졌기 때문에 자의로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환경은 반드시 타의에 의해서 벗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피동적인 입장에서 이런 자리에 떨어졌기 때문에 피동적인 입장에서는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을 거쳐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이 환경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반드시 상충과 모순된 내용을 밟고 넘어가지 않으면 이 환경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우리의 입장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32-92
인류를 유린해 나온 사탄
오늘날 우리들은 하늘을 잃어버렸고 땅을 잃어버렸습니다. 바꿔 말하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이 자기 자신이 지금 까지 존재하기 위해서 엮어 온 역사적인 모든 내용을 잃어버렸고, 현재 살고 있는 이 시대적인 모든 내용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잃어 버린 과거와 현재로 말미암아 미래도 잃어버리게 만들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이 과거와 현재의 환경을 거슬러 올라가 이것을 박차고 넘어서기 위해서는 과거의 힘보다도, 현재의 힘보다도 더 강한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 여기서 어떻게 이런 힘을 가진 나를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늘의 뜻을 책임지고 나온 수많은 선지자들의 역사를 두고 볼 때, 그들은 비참한 운명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생명의 목표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고빗길을 생명을 걸어 놓고 지도해 나온 역사적인 우리 선열들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이 간 길은 패자의 서러움으로 복귀섭리노정을 지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런 역사적인 운명을 우리가 다시 한 번 상속받아 가지고 역사적인 승리를 표방하고 나선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혁명 중의 혁명이요, 역사상의 어떠한 사건보다도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모든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냐? 그런 실패의 자리에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힘이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도록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환경의 모든 인연이 우리를 끌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몰고 끄는 힘이 자기의 결의보다 크고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보다도 강했기 때문에 우리의 선조들은 번번이 실패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엮어진 실패의 동기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 동기의 기원은 무엇이냐?그것은 우리가 제거해야 할 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악의 주체는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탄은 지금까지 인류를 유린해 나오고 있고, 역사를 유린해 나오고 있고 오늘날 현세의 이 30억 인류를 유린하고 있습니다.

32-93
인간의 구원과 하나님
그러면 인류를 유린하고 있는 이 괴수를 우리들이 어떻게 물리치느냐? 우리의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지식으로 우리가 어떠한 방법이나 지혜로운 묘안을 모색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물리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힘 외에 다른 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타락의 결과에 부딪히게 된 것은 내가 동기가 아닙니다. 우리들이 피동적인 입장에서 된 것입니다. 그러면 피동적인 입장에 서게 한 그 주체는 누구냐?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인 사탄입니다. 그 사탄은 우리 인간들에게 행복의 여건을 갖다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서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면적으로 반대하고 전체적으로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 반대하는 모든 내용은 오늘날 우리의 생활 무대에서 취급하고 있는 어떠한 재료나 환경의 여건뿐만이 아닙니다. 그 환경을 넘어 세계를 넘고도 남을 수 있고, 역사를 넘고도 남을 수 있는 그런 내용을 가지고 우리를 얽어 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런 환경을 박차고 나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사적으로 인연되어 있는 모든 인연보다도 강한 새로운 신념을 가져야 되고 새로운 실력과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지식을 가져야 됩니다. 그 새로운 지식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이며, 새로운 각오라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 그것은 우리들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 보다도 더 강한 한 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악한 주체가 있으면 그 악한 주체보다도 더 강할 수 있는 한 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그 한 분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그런 한 주체와 상봉할 수 있는 한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분이 새로운 방안을 갖춰 가지고 세운 새로운 대책을 가지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이 가야 할 길입니다. 이 한 길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참된 길을 찾아 나왔던 사람들은 역사를 엮어 온 우리 조상들로서 나라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그런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이여, 저희들을 구해 주소서. 하나님이여, 저를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32-94
하나님이 인간에게 바라시는 것
하나님이 그 섭리의 뜻과 인간을 구하기 위한 수고의 도상에서 우리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나를 붙들어라. 나와 완전히 하나될수 있는 길을 모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그길을 인간이 모색하지 않고는 오늘의 이 엄청난 사망권을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으로서 제일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어떠한 욕망이 있으면 그것이 자기로 말미암아 되고 자기를 위한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과 접붙여 가지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욕망으로서 새로이 출발될 수 있는 욕망의 도상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떠한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되 그것을 자기의 입장에서 추구할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분과 관계를 맺은 입장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됩니다.

오늘날 타락한 우리 인간들은 그런 입장을 거치지 않고는 타락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인연을 벗어나지 않고는 우리가 제아무리 행복의 요건을 지니고 싶다 하더라도 그 행복의 요건이 우리와 관계없는 것입니다. 이 환경보다도 강하고. 이 환경을 만들어 놓은 그 동기된 자보다도 강한 그분과 더불어 강한 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인류가 이런 불쌍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역사시대를 책임지고 구원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구원섭리의 발판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종교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절대시해야 됩니다. 믿더라도 절대적으로 믿어야 되고, 행하더라도 절대적으로 행해야 되고, 싸우더라도 절대적으로 싸워야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는 것입니 다. 이것이 타락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의 방안을 모색하는 필요요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총체적으로 결론지어 말한다면 ‘하나님을 믿으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되 어떠한 중간적 입장에서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동서고금의 역사를 넘어서 절대적 자리에서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한 사람을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 다. 그 믿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적으로 믿고 실천하여 절대적인 행동을 제시할 수 있는 한 중심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그런 절대적인 자리에 서 있어야 하고, 그러한 자리에서 행해야 합니다. 또, 그러한 자리에서 사는 데에도 그 삶이 자기를 중심삼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 대신 산다 할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살다가 죽더라도 자기로 말미암아 살다가 자기의 뜻을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다가 하나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절대적인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오늘날 이 타락권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나를 위해 살다가 나로 말미암아 죽었다면 사망권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를 위주해서 살았다면 그 삶이 타락권내의 삶이므로 그 권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타락권내에서의 믿음이라면 그 타락권내를 넘어 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타락권내의 믿음권을 초탈하지 못하고 사탄과 그냥 그대로 인연맺어 가지고는 하나님의 권내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우리가 거쳐가고 있는 이 역사시대의 환경이 얼마나 추하고 얼마나 악하며 얼마나 거짓된 세계인지 모릅니다.

이것은 끊어내도 끊어내도 한이 없이 연결되어 있고 헤치고 헤쳐도 한이 없이 엉클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끊고 헤치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권내에 있는 우리는 절대적인 하나님을 대하여 절대적인 신뢰, 절대적인 소원,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는것입니다.

32-96
신앙자가 가야할 길
이 세계는 나 자신이 그러한 소원, 그러한 신뢰, 그러한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절대적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주위 환경과 싸워야 됩니다. 이것이 신앙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하나님과 우리는 말할 수 없이 먼 거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필코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맺느냐? 어떤 수단 가지고는 맺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모색한 방안 가지고는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힘으로 붙잡고 무슨 재간을 부린다고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가까이 맺을 수 있는 하나의 방안, 하나의 방법이 있을 것인데 그것이 무엇이냐? 세계의 어떤 원수도 나에게 오라고 늠름하고 자신만만하게 나서도 안 됩니다.

사탄세계는 계속 발전해 나왔습니다. 세계의 종말까지 우리가 악을 끌고 나가면 나갈수록 사탄세계의 타락한 환경은 우리를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인간과 관계를 맺으려 하시고 ‘사탄과 격리해라. 악한 세계와 격리해라. 뒤로 돌아서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돌아설 수 없는 인연을 갖추고 뒤로 돌아보니 그가 찾고 있는 나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현재의 입장에서 피하려고 하는 나라가 있는 것이요, 그런 부모가 있는 것이요, 형제가 있는 것이요, 아내가 있는 것이요, 자녀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모든 것을 가지고 돌아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모든 것을 가지고 한꺼번에 돌아서고 싶겠지만, 한꺼번에 못 돌아섭니다. 하나하나씩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탕감복귀의 원칙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될 때에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됩니다. 기쁘게 돌아설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추방당할 때, 아담은 해와를 보고 눈물지을 수 있었느냐? 해와는 아담을 보고 눈물지을 수 있었느냐? 또 아담 해와는 천사장을 보고 눈물지을 수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회개하는 눈물을 지을 때 누구를 중심삼고 눈물지었겠느냐? 해와를 중심삼고 눈물지었겠느냐. 천사장을 중심삼고 눈물지었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슬프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눈물지었겠느냐? 아닙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눈물지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아담은 해와에게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해와는 자기가 아담을 타락시켰지만 ‘아담, 당신이 내 말을 듣지 않았으면 나도 타락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라고 했습니 다. 이렇게 서로를 원망하며 눈물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눈물 지어서는 안 됩니다.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눈물지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리에서부터 회개의 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도 그런 자리에 계시는 것입니다. 자식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그 마음은 얼마나 외롭고 슬프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슬픈 당신 입장보다도 원수의 쇠사슬에 얽매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의 자리에서 신음하고 있는 아들딸을 더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신음하고 있는 아들딸을 바라보게 될 때에 당신의 수난과 어려움을 모두 잊어버리고 도리어 타락한 아들딸을 위하여 눈물짓는 것이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2-97
우리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아담 해와가 타락했던 그런 슬픔의 자리를 벗어 나서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역적이 되어 용납받을 수 없는 자리에 있는 것을 슬퍼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도 불쌍하지만 내 주위에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과 불쌍한 세계 만민을 위하여 눈물지을 수 있어야 됩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눈물지을 수 있는 마음을 중심삼고, 그들을 동정하고 그들을 구해야 되겠다는 간곡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계와 나라와 민족과 종족을 위해서 내가 천번 눈물짓더라도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요, 만번 외로움을 당하더라도 내가 당해야 할 일이다’ 하고 과거의 눈물을 대신하여 ‘이것을 우리가 해줍시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과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회개하는 우리 자신들을 보면 자기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 회개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했는데, 먼저 무엇을 위해서 회개해야 하느냐? 나라를 위해서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왔다고 하더라도 천국에서 맞이해 줄 사람은 나라를 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천국으로 구원을 못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신앙생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은 나라를 못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은 세계적인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나라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타락은 개인의 눈물로부터 시작되어 저끄러진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회개의 눈물로써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부활의 특권적인 은사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눈물을 흘리되 자기를 위하여 흘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세상에서 죄를 많이 지어 쇠고랑을 차고 있다 하더라도 그 민족을 위하여 눈물 흘리고 그 나라를 위하여 눈물 흘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망하는 자리에 있지만 이 나라여 ! 이 민족이여 ! 나와 같이 되지 마소서 ! 하고 눈물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민족이 가는 길 앞에 자기와 같이 쓰리고 원통스러운 일이 없기를 바라며 눈물 흘리는 사람은 소생할 수 있습니다. 민족의 거룩한 소망을 붙들고 죽음길을 부단히 가는 사람은 설사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그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죽음길을 가게 될 때에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냐? 거룩한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가 하고 있는 생활, 그가 갖고 있는 인생의 가치는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관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권내에서 몰림받는 상황에 있었지만, 그는 환영할 수 있는 미래의 세계를 그리며 세계와 더불어 눈물을 흘리고 몸부림쳤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땅에 살면서 자기의 생활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나는 이렇지만 당신은 이래서 안 된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심되는 사람이 자기의 뜻대로 해야 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를 위하는 이상 자기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이상 부모를 위하려고 하면 측복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회개의 눈물로 부활의 권을 맞이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사망권을 회개의 눈물로써 탈피해야 한다는 것입니 다. 생명은 단 하나인데 사망권을 탈피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신앙을 가졌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가지고 있지 못한 눈물을 흘려 가지고 벗어나야 됩니다.

서로가 반목 질시하며 ‘내 죄의 동기는 너 때문이다. 나는 안 그랬을 텐데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하며 자기의 서러움을 제삼자에게 전가시키려들고, ‘나는 긍정적이고 정상적이다’ 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나를 부정하고 환경을 긍정해야 됩니다. 내가 구원받기보다도 나라가 구원받기를 바라고 나라를 위해서 눈물지어야 합니다. 또 가정이 구원받기를 바라고 가정을 위해 눈물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32-99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오늘날 기독교면 기독교, 혹은 수많은 종교들이 왜 끝날에 와서 차츰차츰 망해 가느냐? 그것은 나라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는 것은 전부다 자기가 복받기 위한 것입니다. 전부다 자기 하나님을 만들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 나라의 하나님이 되고 세계의 하나님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시는 내용을 분석해 보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복귀하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해 주기 위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자신만을 위해 눈물짓지 않고 나라와 그 환경을 위해 눈물 흘릴 때, 거기서부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때에 자기도 모르게 서러움에 북받쳐 까닭없는 눈물이 폭포처럼 흐르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서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그 서러움은 자기의 서러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알고 보면 역사적 서러움입니다. 그 서러움은 누가 가져 오느냐? 하나님이 가져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서러움은 누구 때문이냐?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 때문입니다. 결국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서러움입니다. 그것은 나 하나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나라가 없으면 우리 자신들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원하는 것이로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회개를 하더라도 나라를 붙들고 회개하고 세계를 붙들고 회개해야 합니다. 저 민족은 뜻 앞에 섰지만 이 민족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 부락은 뜻 앞에 섰지만 이 부락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밤을 새워 가지고 그 부락이 정성들이던 이상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그 부락에서 받아 주지 않더라도 다른 부락을 말없이 점령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길이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을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예수님의 생활관은 어떠했느냐? 예수님은 밥을 먹을 때에도 그 밥상을 대하는 순간 그 밥상을 통하여 나라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세계의 뜻을 이루기 위한 말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효자 효녀가 되고 싶어하고, 충신 열녀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효자가 되고 싶다 해도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옷이 형제들의 옷보다 못하다고 눈물을 흘린다면 그것은 효자가 아닙니다. 내가 형제들보다 못하다고 부모에게 항의하는 효자가 있겠습니까? 충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그 나라의 비참한 운명보다도 더 비참한 자리에 간다고 해서 군왕을 배반하고 나라를 배반하는 그런 충신이 있습니까?

참다운 효자가 되려면 형제들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자기를 위해서 흘리는 것 보다 형제를 위하는 마음으로 흘려야 됩니다. 부모 대신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부모에게 염려끼쳐 드리는 형제들을 붙들고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 선다면 부모는 그를 효자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고 자기가 먼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민족의 한계를 넘고 세계 인류의 소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의 소원의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소원의 한계점까지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바라는 소원의 한계 점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나와 같은 개인이 생겨났고, 나와 같은 가정, 나와 같은 사회. 나와 같은 나라, 나와 같은 세계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을 몽땅 부여안고 이세계 가운데 엉클어져 있는 모든 환경의 쇠사슬을 끊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에 대한 쇠사슬, 나라에 대한 쇠사슬, 환경에 대한 쇠사슬, 사회에 대한 쇠사슬, 가정에 대한 쇠사슬, 나에 대한 쇠사슬을 끊어 놓아야 됩니다. 세계보다도 더 긴박한 것은 가정입니다. 세계가 구원받으려면 먼저 가정이 구원받아야 됩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 구원받으려면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뜻을 알고, 하나님을 안 다음에 ‘저는 구원 안 해주셔도 좋습니다. 세계를 구원해 주시옵고, 저희 나라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것도 자기 민족을 위하여. 자기 나라를 위하여, 세계 만민을 위하여 흘려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민족과 이 나라와 세계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인류를 대신 하여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있는 정성을 다 들이고 통곡하면서 생애를 바치는 사람이 하나님편이겠어요. 남이야 어떻든간에 나라야 어떻든간에 내가 살아야겠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편이겠어요? 전자가 참된 하나님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절대 부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2-102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눈물흘리고 회개해야
그러면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런 사망권의 자리를 박차고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이 원한의 근거지. 원수가 농락하는 이 환경을 박차고 넘어가야 됩니다. 이 가운데서 원수들과 싸워서 이기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눈물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눈물이 없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세례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했고.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라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 나라를 얼마나 고대하고 흠모하면서 4천년 동안 눈물의 역사를 엮어 왔습니까. 그 소원의 나라가 오기를 그렇게 바랐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소원을 맞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나타난다고 말한 것이며, 그 소원의 새로운 한날이 목전에 다가오기에 그것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세례 요한이 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한 것입니다. 그 말은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인간들을 바라보며 이스라엘 민족을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며,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말한 것은 예수 자신이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죽되 이스라엘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죽는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살았고, 이스라엘을 위해서 죽은 것입니다.

예수가 죽어가며 흘린 피눈물이 귀할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의 뜻 앞에서 세계를 위하여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눈물을 흘려 줄 수 있는 한 분이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부활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느냐? 가정의 부활권을 갖춘 다음에 개인이 부활해야 구원받고 안식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가정적 구원의 환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이 구원받아 부활하면 가정적인 시련을 또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방법은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물의 복귀역사인 것입니다. 죄 때문에 사망의 쇠사슬에 얽매여 있는 인류는 형제와 동료간에 서로서로 위하는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항상 다른 사람이 나보다도 불쌍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무리가 되었으며, 이런 실체를 가지게 되었는가? 인간 시조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역사를 지탱시켜 나오고 섭리의 뜻을 추진시켜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눈물어린 심정으로 아버지와 상봉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아버지를 천년 만년 모시지는 못하 더라도 그 아버지 앞에 천년 만년 소원하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나라를 위해 찾아오시는 아버지를 위해 승리의 왕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후손들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찾아오시는 아버지는 모시지 못하더라도 세계를 위하여 찾아오시는 아버지는 반드시 모셔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아버지를 모시는 것과 세계를 위하는 아버지를 모시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위대한 것입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천년을 더 기다려야 하느냐, 십년을 더 기다려야 하느냐, 영원을 더 기다려야 하느냐. 영원이라는 것은 십년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년 역사 이후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을 소망하는 우리들은 천년의 한스러운 역사적인 세계의 한계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아무리 부정당하더라도 내일의 세계를 위하여 정성들이고 눈물지어야겠습니다. 그것에 대한 보답이 당대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않으며, 역사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천년을 회개할 수 있는 회개의 눈물을 지으며, 천년을 대비할 수 있는 하나의 제단을 꾸며 하나님의 중심적 기원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역사, 그러한 인연이 지어지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지 막히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 길은 언제든지 하나님이 개척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죽어 갔기 때문에 민족이 그를 따르던 무리를 학살하는 환경에 몰아 넣어도 하나님은 그런 환경에서 그 원수를 물리치고 원수의 나라를 개척하여 오늘날의 기독교를 세운 것입니다. 이렇게 세워진 기독교가 오늘날 민주세계의 문화를 창건하는데 정신적인 기반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

예수님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한계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세계를 위해 보내진 메시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입장에서 눈물을 지으며 생명을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과 같은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는태 원동력이 된 기독교를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가 지금처럼 발전해 나오는 과정에는 수많은 칼과 수많은 원수와 환경이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허물고 그 길을 개척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와 역대 발전사입니다.

32-104
부활의 완성
오늘날 우리는 부활해야 할 운명에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부활을 해야 하는가? 개인이 부활했다 하더라도 가정이 부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가정이 부활을 했다 하더라도 종족 부활을 해야 하고, 종족이 부활을 했다 하더라도 국가 부활을 해야 하며, 국가가 부활을 했다 하더라도 세계가 부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세계가 부활을 했더라도 하나님을 부활시키지 않고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라를 대신한 자리에서 충의 인연과 개인을 대신한 자리에서 효의 인연을 가지고 세계 부활이라는 크나큰 목적을 세워 놓고 그 목적을 향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눈물지으며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년 내에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죄는 일년 동안 눈물 흘린 것 가지고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고 하나님이고 뭐고 난 모르겠다’ 하며 후퇴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10년이고 20년이고 흘러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지금까지 2천년 동안 눈물을 흘리는 놀음이 벌어져 왔던 것입니다. 눈물 흘린 수많은 사람 가운데에는 개인을 위해서 회개하고 개인의 천국이념을 찾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고, 민족을 위하는 각별한 선지자들을 보내어 개인을 위하여 희생하고 구원하겠다는 사람들의 모체가 되고 핵심이 될 수 있는 대표자들로 만들어 역사를 연결시켜 나오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바라보게 될 때, 이제 우리 앞에는 세계적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오늘날의 세계는 어떠한 민족이나 어떠한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지도받을 수 있는 그런 시대권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온 세계가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표방하여 나서고 있습니다. 이제 온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아 구원의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입니 다. 이렇게 세계의 구원을 주도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복받은 사람입니다.

지금은 개인 구원의 완성을 표방할 시대가 아니라 국가를 넘어서 세계 구원을 완성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권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모든 생활은 세계의 담을 넘어야 됩니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우리의 1일생활권내에서 벌어지고 모든 사건들이 하나의 무대를 갖고 있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우리는 모두 세계적인 환경권에 속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늘 우리가 회개하고 가야 할 것이 있다 할진대, 그 회개는 세계를 붙들고 해야 됩니다. 나를 붙들고 회개할 것이 아니라 세계를 붙들고 회개해야 됩니다.

세계에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요리할 것이냐?’아버지여, 당신이 가야 할 길이 이런 길이 아닙니까, 그 어려운 길을 타개하기 위하여 이렇게 나온 것이 아닙니까’ 하며 우리는 자신이 눈물 짓기 전에 하나님을 먼저 눈물짓게 해야 합니다. 나보다 더 서러움이 많으신 하나님이요, 나보다 더 괴로움이 많으신 하나님이요, 나보다 분함과 원통함이 더 크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먼저 눈물짓게 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따라 눈물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눈물지어 나오셨습니다. 세계를 위해 제일 비참한 제물을 대하듯 섬짓섬짓한 역사적인 고비를 넘을 적마다 가슴에 맺힌 한의 내연을 품고 나오신 사연을 알고 ‘당신은 이러한 아버지이신 것을 제가 알았사옵니다. 이런 아버지께서 어찌하여 이시대에 이런 사연을 알게 하셨습니까? 수천년 전에 이런 아버지의 사연을 알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저희 선조가 없었던 것이 한이 되어 지금까지 걸어오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저희를 통하여 역사시대의 모든 선조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는 아들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아들을 붙들고 ‘오냐 너는 그런 자격을 갖춘 효자요 내가 찾아 나오던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단 하나의 아들임이 틀림없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로 말미암아 ‘오늘을 네가 나보다 더 사랑하니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하며 역사적인 모든 선조들과 시대적 한계선에 머물러 있는 원수 사탄까지도 녹여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고 하나님의 위신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그럴 수 있는 하늘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32-106
이제는 세계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때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 통일교회는 나라를 위해 부름받은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제야말로 세계를 위하여 기도할 때입니다. 미국을 위하여 기도하는 때도 지나갔고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때도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여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기를 바라고, 하나님 자신도 이 민족을 구원하는 것보다도 세계 인류의 구원을 더 바라고 계십니다. 그런 아버지의 요구 앞에 세계를 내 나라 보다도 더 사랑하고 인류를 자기 형제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눈물을 흘리며 ‘하늘이여, 천국의 대운을 위하여 십자가를 제가 짊어지겠으니 저에게 맡기십시오’라고 호소하며 몸부림 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이제 앞으로 아시아를 비롯하여 세계 전체에서 통일교회의 제단을 통하여 대부활의 운동이 벌어짙 것입니다.여기에 있어서 그 부활권이라는 것은 개인의 부활권이 아니라, 민족 국가를 넘은 세계의 부활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왼손으로는 나라를 붙들고, 오른손으로는 세계를 붙들고, 세계를 찾기 위해서는 이 나라가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나라를 위하여 눈물 짓고 세계를 위하여 눈물지으시는 하나님을 따르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자기 하나 구원되는 것을 잊어버리고, 또 자기 일족의 구원도 망각해 버리고 민족과 국가를 넘어 세계 인류의 구원과 해방을 위한 제물이 되고자 눈물지으며 싸워 나가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는 여기에서 새로운 역사적인 세계운동이 벌어질 것이며, 새롭게 세계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것을 바라보는 수많은 민족과 그 운동에 동참하지 못한 인류는 그들이 흘려야 할 눈물을 대신 흘려 주었으니 고맙다고 하며 그 앞에 눈물로 굴복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천국 이념은 발전되어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류를 위하여 걸어간 그 지고한 예수님의 사랑, 인류를 사랑하기 위하여 자기의 일신도 망각해 버리고 이스라엘을 잃어버리고도 아버지가 원하시는 그 길을 가신 예수님의 그 마음을 대할 때, 그 거룩함 앞에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어야 하며, 제자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시련이라도 응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민족과 국가를 중심삼고 구원하겠다는 뜻을 품은 민족보다 세계를 구하겠다는 섭리의 뜻을 품은 민족을 원하십니다. 그런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의 역사가 아무리 악하였더라도 세계를 구할 수 있습니다. 영국이 옛날에는 해적패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민족을 넘어 세계를 위하여 기독교 선교사업을 해왔기에 세계 문명을 지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문화의 흥망과 더불어 이 시대의 선진 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역사가 선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찾아오는 세계적인 과정을 위해서 눈물짓고 그런 비참한 길을 가면서 세계를 위하는 개척노정의 선봉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축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근세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통일교회의 우리들도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 눈물은 나를 위해서 흘리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세계 인류를 위해서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눈물지으면 세계 인류는 부활하는 것이요, 그 나라도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애를 바치고 그 인연의 길을 가면서 눈물 흘리며 회개의 제단, 속죄의 제단을 꾸밀 수 있는 아들딸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죽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대가 소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 가정을 원하느냐? 하고 묻게 될 때에 ‘아니옵니다. 저는 가정을 원하는 것이 아니오라 당신이 찾아 나오시는 그 나라를 원하는 것이옵니다’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눈물지으며 손을 붙들고 ‘사랑하는 아무개야, 내가 너와 같은 아들을 찾아 나왔는데 이제야 만났다’ 하시며 당신의 사연을 털어 놓고 통곡하실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과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즉,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 인연맺어진다는 것입니다.

32-108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 눈물 흘려야 할 우리들
내 뜻은 개인을 중심삼은 죄악의 한계선을 넘어서지 못하는 뜻이지만, 아버지의 뜻은 역사를 넘고 그 시대를 넘어 미래를 넘어설 수 있고 오늘의 민족 감정과 세계 감정을 넘어선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미래에 찾아올 새로운 국가, 세계적인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면서 죽음길을 갈 때에 흘린 피와 땀은 자기를 위해 흘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라고 말할 때의 그 용서는 이 우주가 구원되는 날까지 통하는 것입니다. 그런 용서의 법칙하에 전시대에 왔다갔던 선지선열들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의 아량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뜻을 알아 가지고 가는 이 길은 내가 구원받고 내가 축복받기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뜻이 아닙니다. 뜻을 따라가면서 내가 가정을 필요로 한 것은 세계 인류 앞에 공헌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기 위한 것이요, 종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민족과 국가와 세계 앞에 공헌할 수 있는 종족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 서서 이 사상과 일치되어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는 세계가 망하더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이 세계에서 눈물이 끊이더라도 그 단체에서는 눈물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눈물은 끊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복귀를 바라보며 그것을 추구해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눈물이 끊일 수 없고, 그렇게 생활할 것을 다짐하면서 세계의 부활을 이루기 위해서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라도 가겠다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내 개인으로 부족하거든 내 가정을 동원하고. 내 가정으로 부족하거든 자기 증족, 자기 종족으로 부족하거든 자기 민족, 자기 민족으로 부족하거든 자기 국가를 동원하여 희생시켜서라도 가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 조상이 그렇게 갔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갔고, 또 그분의 구원이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입장에서 국가적 제물이 되는 것도 감사하고. 종족적 제물이 되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제물이 된다고 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눈물은 변하여 환희의 부할권으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변하여 승리의 부활권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종족의 입장에서 제물되어 죽었다고 해서 종족적인 부활이 당장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100퍼센트 부활하여 내일을 위해 싸울 수 있는 부활 민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향하여 자유 분망스럽게 전파할 수 있는 국가적인 부활까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부활된 자리까지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눈물 짓는 것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자기를 위해 눈물지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몽땅 털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내 모든 것을 미련없이 100퍼센트 천륜 앞에 드려야 합니다. 젊고 꽃다운 청춘시대의 기백으로 온 천하를 거머쥐어 그것을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절규하는 간곡한 심정으로 바칠 수 있고, 아버지를 붙들고 아버지 앞에 승리의 결과를 바쳐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럴 수 있는 한 사람이 죽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심정에 멍으로 남습니다. 그런 사연은 그 후손을 통하여 어느 한때 기필코 희생을 치러야 하는데, 그 후손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사명을 받는 날은 선조와 후손이 한데 묶여지는 날입니다. 거기서 조상과 후손,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아담과 가인이 하나되지 못하였던 것을 역사시대를 넘어 하나되게 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렇듯 민족과 세계의 입장에서 이러한 기준을 결정하지 못했거나 그럴 수 있는 나 자신도 되지 못하거나 그럴 수 있는 후손까지 남기지 못하면 운명하는 자리에서 자기의 모든 과거를 미루어 볼 때에 그는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이라도 자신이 더 지어 내지 못한 눈물이 있거든 그 눈물로 아들딸의 복을 빌어 주기보다는 세계 인류의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는 자신이 되어야 하며, 눈물로 회개의 생활을 거쳐 다시 용서를 바라고 동시에 축복을 해주고 갈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으로서 최후에 가야 할 자리인 것입니다.

32-111
하늘과 인연을 맺기 위해선 몸을 바쳐 희생해야
오늘날 여러분들은 시궁창에 머리를 박고 몸뚱이는 구정물 가운데서 허덕이는 오리와 같은 모습입니다. 김아무개면 김아무개, 썩어질 김아무개 라는 것입니다. 환경과 더불어 썩어질 김아무개라는 것입니다.그런 모습이 되어야 통일교회의 영원히 빛날 주인이요, 미래에 새로운 왕국을 탄생 시킬 수 있는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미래의 천국을 꿈꾸는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하며,그 길에 남아 있는 수많은 선조들이 못 간 십자 가의 길을 우리 후손 앞에서 책임을 지고 갈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영원한 처소에서 하늘의 복을 만천하에 줄 수 있어야 하며. 내가 미처 지지 못한 짐이 있다면 그 짐을 후손에게 남겨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 다. 세계는 망하더라도 그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올 때, 토마스(Thomas)목사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 자리에서 기도할 때 ‘아버지여. 제가 여기에 왔다가 죽습니 다. 저는 구원받기 위해 전도 나왔으니 저는 천국가고 이 민족은 지옥가야 합니다’ 하는 기도를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 저는 죽더라도 제가 흘린 이 피 대신으로 이 민족을 부활시켜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삼천만 민족이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추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이용하여 자기가 빛나겠다고 하는 사람은 나라와 관계없는 사람 입니다. 우리는 눈물을 흘려도 세계를 위하여 흘려야 됩니다. 여기에서 국가적인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아직 세계적인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눈물을 그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미래를 향하여 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역사의 뜻 앞에 인연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중심삼고 출발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 해야 합니다. 자신을 중심삼고 출발하면 하나님에게 아픔이 남아진다는 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과 같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줄 물라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슬프면 자기도 모르게 슬픈 마음이 되며, 오늘같이 날이 이렇게 청명하여 환경에 기쁠 수 있는 내용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기뻐하는 입장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할 때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어 안절부절하며 몸부림치는 입장에 있을 때는 옷깃을 여미고 ‘당신이 이 시간에 슬퍼하는 것이 무엇입니 까? 저희들을 통곡케 할 당신의 사연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 다’ 하며 그 집의 아들이 되고 그 집의 종이 되어 그 가정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몸을 바쳐 희생해아 되겠습니다.

그러한 체험을 통하여 이 민족을 생각하게 될 때 한없이 흘러 넘치는 눈물을 막을 수 없습니다. 침범받았던 이 민족을 사랑함에 있어서 밤낮없이 하늘 앞에 인연지을 수 있도록 아버지가 대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본이 원수의 나라라고 망하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위하여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귀중한 마음을 통해서 시대적인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대한민국에 있어서 원수의 나라는 어느 나라일 것이며, 통일교단의 원수는 어느 교단이고, 또한 통일교회 문아무개에게 있어서 원수는 누구일 것인가? 또 나는 그들을 만나 가지고 무슨 얘기를 할 것인가? 그들이 나를 원수로 대한다고 나도 원수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세상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세계와 싸우고 원수를 잊어버리고 넘어가는 것입니다.그러면 그 잊어버리는 방법이 무엇이냐?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32-112
원수의 아들딸을 복귀해야 한다
같은 원수라도 그 아들딸은 다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는 갚더라도 그 아들딸은 구해 주어아 합니다. 내 원수는 내가 쓰러뜨려도 그 원수의 아들딸은 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뜻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그렇게 해서 원수를 갚되, 그 원수의 아버지와 아들딸까지 3대의 원수를 갚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곧 복귀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담과 가인 아벨을 잘라 버리고 복귀섭리가 이루어집니까? 그의 아버지는 원수지만 그들의 아들딸을 복귀해서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 최고로 정성들일 수 있는 자리에 세워야 합니다. 거기에서부터 복귀역사가 출발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 교인들이 그런 패들에 제일 가까운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 패들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공산당이면 공산당의 책임자가 있는데, 그 주권자가 우리의 원수지 그나라 국민들은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선생님도 공산당이 밉습니다. 공산당들을 전부 독수리 밥이 되게 해 버리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전부가 원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수는 특수 계급의 몇몇 사람들입니다. 그 나라의 국민이 원수가 아닌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이 염려하는 것은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것입니 다. 통일교회 입장에서는 기성교회가 제일의 원수죠? 나를 반대하는 것이 원수라면 둘도 없는 원수입니다. 기성교회가 반대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이렇게 투쟁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고생해 나왔으며 선생님의 일생 중에서 꽃다운 젊은 시절을 희생한 것입니다. 다시 볼 수 없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대 연대 사건으로 인해 통일교회의 문이 완전히 철폐되다시피했었습니다. 그 기반을 다시 세우기 위해 21년 동안 고생한 후 다시 자리를 잡았던 것입니다.

유대교를 찾아오신 예수님이 처음에는 유대교를 중심삼고 뜻을 이루려 했으나 유대교가 반대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찾아 세워야 했습니다. 마찬 가지로 대한민국의 기성교회를 중심삼고 이루려던 섭리의 뜻이 대한민국의 기성교회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를 찾아 세운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 그 모든 반대를 뚫고 나가야 할 운명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데는 여러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문선생을 위한 교회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이 선생님을 위하고 통일교회를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하기에 앞서 선생님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은 세계를 사랑하고, 그 다음에…. 그래야만 하나님의 참된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 욕심을 가지고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세계를 대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세계의 십자가를 홀로 지고 가면서 세계를 위해서라면 나는 망해도 좋다하는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보라는 것입니다. 역사에 남겨진 것을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했을 때, 여러분 같으면 보따리 싸 가지고 다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좋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했던 것입니 다. 유대 지파면 유대 지파 앞에 이럴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없으면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기도해야 하나님이 응답하는 것입니다.

32-114
세계의 부활을 책임져야 할 통일교회
천사가 마리아에게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했을 때, 마리아가 천사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 데 어찌 그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니 마리아는 ‘말씀대로 이루시옵소서’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와 같은 신념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에게 그러한 신념이 있습니까? 내가 통일교회 다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신념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자신만만합니다. ‘내가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며, 부끄럼 없는 통일교인의 한 사람이다’ 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에서는, 공적인 입장에서는 자신만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편하다는 것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들이지만 부모의 품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축복 대상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축복 대상자 중에 좋은 여자가 있다고 합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근사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앞으로 뜻앞에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여자가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축복 대상자 중에 어떤 여자가 선생님 앞에 와서 ‘나는 대학을 나왔으니 상대는 대학원 이상은 나와야 될 것이 아닙니까? 라고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 여자에게 ‘그래, 너 잘났다. 너는 뭐 머리도 좋고 대학도 나왔다고 그랬으니 네 상대는 네 맘대로 마음에 맛는 남자를 골라 결혼해라’ 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가 뜻을 위해 충성하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어느 누구하고라도 하겠다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

반면 이번에 축복 대상자 중에 국민학교밖에 안 나온 여자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불러 가지고 저는 얼굴도 그만하면 됐는데 고등학교만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했더니 눈물을 홀리면서 ‘제가 국민학교밖에 안나 왔으니 어느누구라도 뜻을 위해서 말없이 고심분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좋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고등학교 출신 중에서 제일 똑똑한 지역장과 맺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하는 방법이 틀렸습니까? 천운이 가는 길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무슨 대회가 필요하게 되면 될 수 있는 한 선생님이 맡아서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대회는 하늘편의 대회인 것입니다.

부모는 자기 후손을 위해 정성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후손들을 다 축복해 주고 잘살게 해주고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가정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단체가 있다면 그 단체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단체를 책임지고 지도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내일의 더 큰 뜻을 위해 하나님과의 새로운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자기가 혼자 책임지겠다고 날뛰다가 실패하게 되면 하나님께 기도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게 되겠습니까? 무슨 면목으로 기도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이렇다 할 기도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떡을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신다’ 하는 말이 있지요? 떡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시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그렇게 능글맞은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주겠다고 해도 안 먹겠다고 하면서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 아들딸 갖다 주겠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 아들딸 에게 줄 하루쯤 묵은 떡이라도 그집의 아들딸을 줘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보다 몇 배로 돌려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계가 우리 눈 앞에 다가오는 이때에 하나님은 틀림없이 앞으로 세계를 지도할 수 있고 세계와 더불어 하나될 수 있는 단체를 찾아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를 위하여 희생하고, 세계 인류를 위해 봉사하며, 세계를 위해 축복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계는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먼저 알았으니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으려면 여러분이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부활권을 갖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인륜과 대결해야 됩니다. 일년, 혹은 십년…. 그렇게 하면 뜻이 안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만일 뜻이 안 이루어지게 되면 도리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열 사람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여러분, 생각해 봐요. 어떤 부모에게 사랑하는 아들딸이 있는데 그 아들딸이 다 성장해서 장가도 시집도 못 가고 죽었다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편하겠습니까, 안 편하겠습니까? 그 부모는 ‘아이구 ! 그놈의 자식, 장가도 못 가고 죽었구나’ 하면서 탄식할 것입니다. 그 부모는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몇천 배의 심정을 가해서라도 해주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32-116
하나님을 영원히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는 것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 선생님 개인적인 성공을 바라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원하는 것은 개인적인 성공 이상의 성공을 거두어서 대한민국 앞에 드러날 수 있고 세계 앞에 드러날 수 있는 성공을 거두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죽음의 자리에서 꽃이 피는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사랑의 꽃이 필 때 만민은 관심을 갖게 되고 영광의 자리에서 꽃필수 있는 환경을 맞으려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여러분들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천리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계의 부활을 위해 뜻을 세계에 심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역사시대로부터 인연된 뜻을 중심삼고 천년 만년 기뻐할 승리의 터전을 맞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해방시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날이 틀림없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세계의 부활을 위해서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여기에 김씨 왔나요? 요전에 선생님한테 와 가지고 뭐 이번에 미국에 가기로 했다나요? 선생님이 나중에 자기 사정을 몰라준다고 하면서 자기를 외국으로 쫓아내는 결과가 되었다고 하면서 눈물 흘리며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데, 뭐 미국이라고 다른 곳입니까? 세계 안에 있는 미국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 거예요.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들도 열심히 기도하는데 선생님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기도해 왔지만 하나님은 까딱도 않았습니다. 가르쳐 주려고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것처럼 그저 묵묵부답이라는 것입니다. 수십년간 정성을 들이고 그래도 그 정성이 부족하다면 일생을 바쳐서라도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것도 부족 하다면 자기의 후손 몇 대를 거쳐서라도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나님은 천추만대 정성들인 후손만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손에게만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그것은 세계의 어느 민족, 어느 종족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민족이 되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 만년을 걸어 놓고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냐?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영원히 해방시켜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영원히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그것은 세계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영원한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영원히 봉헌할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고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그 영원한 사랑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 그 누구도 갈 수 없다는 길, 그 길을 여러분이 걸어 넘어가야 되며 그것을 위해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자기를 위해서 정성을 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프면 눈물이 나옵니다. 눈물이 나와요, 안 나와요? 「나옵니다」 그러나 아프다고 해서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됩니다. 칠 테면 쳐 보라는 것입니 다. 매를 맞고 들어와서 절대 울어서는 안 됩니다. 절대 울지 말라는 거예요. 자신을 위해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들의 눈물 입니다.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슬픈 자리에 처했을 때도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 고생한 사람입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세계를 위하여 흘려야 됩니다. 그러면 그 눈물은 반드시 세계를 해방시키는 부활권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예」

32-118
기 도
아버님, 이 대한민국을 구원하기 위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해 보옵니다. 대한민국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움직여야 되겠사옵니다. 일본이나 그 외의 사람들을 통한 간접적인 전법으로써 이 나라를 움직이고자 하시는 당신의 뜻을 생각해 볼 때, 세계적인 인연을 거쳐야 할 대한민국이기에 한두 사람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 이런 때에 저희들은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사방에 엉클어져 있는 수많은 국가들을 해방하여 하늘의 제단을 쌓고자 하는 무리들이옵니다. 대한민국이 건설도상에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통일교회 식구가 몇 천만이 되면 대한민국의 경제 부흥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이 여기에 있는 아들의 마음인 것을 당신이 아옵니다.

대한민국의 해방은 대한민국 자체로서는 있을 수 없는 비참한 운명길에 물리어 있다는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일본이나 중국을 중심삼고 아시아의 연결점을 거쳐 대한민국의 해방의 기치를 높여야 될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그와 같은 작전을 세운 것은 제가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옵니다. 자연굴복시켜야 할 아버지의 뜻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옵니다.

그리하여 그 굴복시킨 것을 세계적으로 인연지어서 영원한 승리의 가치적 내용을 그들에게 옮겨 주고 그들에게 상속시킴으로 말미암아 그 참된 가치가 세계의 어떤 가치의 기준보다 올라서야 되겠사옵니다.

이것은 슬픈 사실입니다. 이 나라를 중간 입장에 세워 놓고 하늘과 끝이 하나되어서 중간을 소화시키려는 작전인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통일 교회가 그런 작전을 해야 할 운명이옵나이다.

저희들이 불쌍한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눈물 흘리던 과거를 회상해야 되겠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밤을 새워 눈물짓던 그 옛날을 회상하며 어떤 애국자의 눈물보다도 더 간곡한 심정을 지니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일들이, 아버지만이 아는 사연 사연들이옵니다. 그 고생들이 원수의 마수에 이끌리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비참하였던 60년대를 지나 70년대에 들어섰사옵니다. 이제 이 나라 대한민국은 몰리는 고아의 자리에서 쓰러져 무덤 속에 들어가게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사장의 입장에 서서 제단을 지키기 위해 밤을 새워 정성들이면서 아버지의 염려의 마음을 상속받아 세계의 축복을 위하여 눈물지을 수 있는 자녀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은 통일의 자녀들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의 심정이 이 민족을 찾아오던 그 내적 인연을 저희들이 갖추어서 당신이 이 민족과 더불어 내일을 향하여 갈 수 있는 터전을 개척해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거기에 저희가 발판이 되어 가지고 당신 앞에 민족의 제단을 바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제사장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아직까지 그러한 제사장이 없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오늘날 기성교단은 당신이 믿을 수 없는 입장에 선 것을 알게 되옵니다.

수많은 신령한 집단들이 나타났던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 누가 새롭게 가고 있습니까? 그들은 저희가 오기 전에 여름절기를 맞았사옵고 가을절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여름을 맞이하고 가을을 맞이할 때 저희는 추운 겨울절기에 처해 있었사옵니다. 남위면 남위 23도의 위치는 태양이 그 상대편 권내에 있더라도 겨울절기에 처하지 아니하고 언제나 열대권내에 처하고 온대권내에 처하여 그 한계선에 부딪치며 살아왔사옵나이다. 그러나 이런 시점에서 어느 한날 여름날을 맞이 하게 될 때에는 극과 극이 화할 수 있는 통일적인 운세가 천지에 충만하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교단들은 여름절기에서, 혹은 가을절기에서 그쳐 갔습니다. 그러나 저희 통일교단은 겨울절기를 거쳐가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문명권을 두고 볼 때, 그것은 봄절기의 문명권에서부터 여름절기의 문명권을 거치고 가을절기의 문명권을 거쳐 겨울절기의 문명권을 맞이한 것이 아닙니다. 여름절기의 열대 문명권을 중심삼고 봄절기의 온대 문명권내에 있는 것이 현재의 민주세계요, 그것이 현대 문화세계를 자랑하는 20세기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세계 앞에 공산당들이 부르짖고 있는 문명, 시베리아 벌판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거짓된 그 문명이 침해하는 이런 때가 외적으로 벌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도 겨울 절기를 맞이하여 내적으로 신음하고 있는 입장에 섰사옵니다. 공산당이 득세하는 때에 겨울절기를 맞은 통일교회는 비참한 길을 걸어왔사옵니다. 공산당은 이 땅에서 쳐나 왔지만 통일교회는 맞아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이미 저희들에게 그 겨울절기는 지나가고 새로운 봄절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통고하셨사옵니다.

거룩한 봄절기를 맞이할 수 있는 이 70년대에 한국은 외적인 봄절기와 여름절기를 맞기 위해 종교의 부흥을 추구하고 있사오니, 거기에 내적인 봄절기와 여름절기가 일치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직 그런 입장아 서지 못한 것을 제가 염려하고 있사옵니다. 이 민족의 갈 길을, 아버지, 지켜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삼천만 민족이 양단된 삼천리 반도를 부여안고 서로 원수처럼 싸우고 있는 이 인연을 아버지 앞에 하나의 형제의 인연으로 묶어 드려야 할 책임을 지고 있사옵고, 그 책임을 감당한다는 사실이 지극히 험난한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앞으로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계 만민 앞이 남아져야 할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세계적으로 사랑의 터전을 넓힘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사망세계에 연결지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통일교회는 이 나라가 알지 못하는 때부터 나라의 지탄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발전을 해왔사옵니다. 세계적인 기반을 닦기 위해 지금까지 찾아온 길이 얼마나 처량하고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때로는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을 통하여 그곳의 모든 소식을 듣게 될 때 그 누구도 모르는 아버지의 서러움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여기에 앉아 있는 아들딸들은 모두들 알고 있사옵니다.

사망의 물결이 넘치는 황무지, 오아시스가 없는 사막 가운데서 헤매는 외로운 생명에게 눈물어린 정성으로 은사의 양식을 찾아 주어야 할 책임을 누가 감당해야 되겠사옵니까? 그것을 제가 하지 않으면 아버님께서 해주셨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터전이 당신의 수고와 연결되어진 것임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나라를 눈물어린 마음으로 사랑해야 할 책임이 통일교회 본부에 있는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들은 외로울 때 스승의 마음을 동경하고 슬플 때는 당신을 부르며 나왔사옵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하며 나왔사옵니까? 자기가 아닌 그 누구를 위하겠다는 마음으로 나왔사옵고, 자기 나라를 위하기에 앞서 세계를 위하며 나왔사옵나이다. 그런 마음을 느끼는 자리에는 망하는 운세가 깃들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로운 자들을 외지에 보내 놓고 지금까지 그들과 더불어 하늘의 인연을 남기기 위하여 싸워 오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은 그들과 더불어 인연을 맺어야 하옵기에 참고 나오시는 것을 생각하면 모두다 불쌍한 무리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어찌하여 아버지께서는 그런 입장이 되어야 하옵니까? 어찌하여 그러한 아들딸을 중심삼고 사는 입장에 서야 하옵니까? 그러나 그러한 섭리를 계획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버지이심을 생각해 보고 불쌍한 분도 아버님이요, 외로운 분도 아버님이요, 원통한 분도 아버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안타깝고 비참한 사연을 뼈에 사무치도록, 모든 동맥이 터질 것 같이 느끼면서 이 사실을 통고할 곳 없어 몸부림치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제 50성상을 넘기고 아버지의 뜻을 바라보니 미래는 희망의 빛을 발하고 있사옵니다. 그런 힘찬 내일을 다짐하는 저희들이 될 수 없을까봐 두렵사옵니다. 하오나 외적인 모습이 이렇다 하더라도 내적인 심정은 더욱 아버지께로 다가가오니 그 마음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통일의 교단이 가는 길은 당신이 남기신 핏자국의 제단을 높이고, 흘리는 피를 멈추게 하기 위하여 저희들의 몸으로 덮고 메워야 할 가시밭길이 옵니다. 그 가시밭길을 그 몸으로 덮는 하나의 모습들이 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슬픔의 상처를 닦아 드리겠다고 하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 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그리움에 사무쳐 눈이 멀도록 아버지를 그리워해야 되겠습니 다. 해방시켜 드려야 할 아버지라고 천번 만번 다짐하며 그 깊은 마음 가운데 아버지의 사연을 느끼고 불쌍하신 아버지를 붙들고 ‘제가 찾아왔사옵니다’ 하며 모시고 위로해 드릴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을 각자의 아버지로 모실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친히 인연맺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제 6월도 다 지나갔습니다. 저희들이 ‘승리적 통일전선’을 다짐하던 6개월 전의 그날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아시아로,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할 통일의 무리들이오니 거취를 지켜 보아 주시옵소서.

이 이념과 뜻을 품고 가는 저희들의 모습이 남루한 옷을 입은 불쌍한 모습일지라도 당신을 위로할 수 있고, 당신의 천년사를 대신하여 그 심정에 어릴 수 있는, 당신의 마음에 진리의 아들로, 동역자로 당신의 품에서 떠날 수 없고 당신의 사연에 얽히지 않을 수 없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하는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