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2 to 32-74: 임명받은 자들

임명받은 자들
1970.06.21 (일), 한국 전본부교회

32-42
임명받은 자들
[기 도]

아버지, 역사에 기억될 수 있는 사람보다 그냥 흘러가버린 사람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와 같이 흘러 오고 흘러 가는 오늘인 것을 생각해볼 때, 하늘의 소망 앞에 나는 어떤 결과를 맺는 존재가 될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개 누구나를 막론하고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줄을 아옵나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역경과 수많은 수고와 수많은 죽음의 길을 통과해야 된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누구나 수고로운 길과 외로운 길을 통해 가야 하는 것을 아옵니다.

더욱이 참을 추구하는 사람이 외롭고 수고로운 길을 통과하지 않고는 참된 삶을 찾지 못하고, 역사상에 그 무엇도 남겨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과연 그 길은 외롭고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역사와 함께 흘러가는 한 사람의 가치기준을 두고 볼 때, 그 누구라도 그러한 수난의 길을 원치 않는 기준에 서게 되면 그 당대에서는 좋을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그는 하늘의 뜻과 전혀 관계없는 입장이 된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아버지,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당신의 거룩한 뜻 앞에 세워 주심을 감사드리옵니다. 당신의 뜻 앞에 선 내 한 존재가 역사적인 한 시점에서 책임 다하여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한때에 왔다가 그냥 흘러가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적인 현시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하여 시대 시대를 새로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체적인 사명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그러한 사명을 지니고 시대를 초월하여 복귀하는 존재가 되라고 아버지께서 불러 세운 거룩한 아들딸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를 불러 세워 놓고 맡기고 싶어하시는 그 간곡한 심정적 사연을 느끼지 못하는 저희 모습들이거든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찾아오신 당신의 사정을 사랑하는 자녀들의 마음속 깊이 느끼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 그 누가 권고하지 않고, 그 누가 명령하지 않더라도 저희들의 마음이 당신의 마음과 일치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마음속에 당신의 심정을 느껴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마음이 스스로를 움직여서 그 결과의 자리까지 가게끔 몰아쳐 주시옵소서. 당신과의 내적인 인연이 저희들의 마음에 씨앗이 되어 생명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민족의 어려움과 세계의 어려움을 자기의 어려움같이, 자기의 몸 한 부분같이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그 나라의 사람들이 잘하고 못해서 흥하고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그 민족앞에 하나님이 얼만큼 같이 하시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적으로 아버지의 힘이 같이하게 되면 흥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를 사랑하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나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알 수 없는 마음이 그 민족을 지배하게 되고, 그 민족의 역사과정을 이끌어가게 되어 날로 그런 사람의 수가 많아지게 되면, 그 나라는 부흥하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의 흐름을 외적으로 보면 거기에는 아무런 동기도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 당신이 근본이 되시고 힘의 원천이 되시며, 또한 역사를 두드리고 개척하여 새로운 역사로 창조해 나간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민족은 불쌍한 민족이 아니옵니까? 금후에 이 민족이 갈 길은 단 한 길뿐인데도 그 길을 알지 못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이 민족은 진실로 불쌍한 민족이요, 이들의 장래는 암담하게 되옵니다. 이런 현실적인 정세를 파악하고 미래의 아시아와 세계의 정세를 바라보게 될 때, 저희들은 이 삼천만 민족과 대한민국이 가는 길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염려하는 것보다도 이 민족이 내적으로 아버지와 얼마만큼이나 인연을 맺고 있어서 아버지의 심정과 뜻에 통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이들은 정말 외로운 무리이옵니다. 이 민족은 기진맥진하여 힘이 없는 민족이옵니다.

아버지, 지금까지의 역사가 이 민족을 통하여 아시아와 세계 앞에 현현하실 탕감의 노정을 끝맺기 위하여 찬아 온 당신의 발걸음이거든, 이 민족의 마음에 살아 계시옵소서. 또한, 이 민족의 마음에 당신의 소원이 부활하시어서 당신의 뜻과 더불어 하나된 민족으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들의 마음에 함께하시사 누구보다 먼저 삼팔선을 뛰어넘겠다는 마음이 우러나게 하여 주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으로 하여금 나라를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마음을 가지게 하여 주시옵고, 또한 북한 땅도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이 솟구치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 삼천만 민족을 믿는 것이 아니옵니다. 이 삼천만 민족이 가는 길이 심상치 않기 때문에 당신만을 믿고, 당신만을 의지하며, 당신 앞에 아뢰는 저희들의 모든 사정을 아시옵소서.

이 아침에도 불쌍한 통일의 자녀들이 무릎을 꿇고 당신 앞에 요구하는 것이 저희 자체의 승리나 희망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나라의 승리와 이 나라의 희망을 요구할 수 있는 거룩한 통일의 자녀들이 돼야 되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역사에서 그냥 흘러가 버리고 말았지만 후손을 위하고, 후대의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의 승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 역사를 주관하는 중심으로 남아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은 역사시대에서 눈물의 노정, 피어린 투쟁의 노정을 피하려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주체적인 책임을 지고, 이 민족과 이 나라를 붙들고 아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무리가 저희 통일가의 무리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럴 수 있는 나 자신을 아버지 앞에 불러 세우고, 그럴 수 있는 나라는 것을 각성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참석한 저희들이라 할진대,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당신이 지금 찾으시는 아들은 어떤 아들인가를 생각해 볼 때에, 그는 최대의 결심을 다짐할 수 있는 아들이요, 최대의 의분에 불탈 수 있고 정의에 불탈 수 있는 그런 아들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있습니다.

불쌍한 이 민족은 과거에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희생의 길을 이 민족이 간 것은 이 민족을 아시아에 남기고자 했던 당신의 뜻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아버지의 소원에 저희들의 소원이 일치되게 하여 주시옵고, 통일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이민족을 대하여 소원하시던 그 뜻 앞에 충성할 수 있는 모습들을 통일의 무리 가운데서 찾으시옵소서. 아버지, 당신이 친히 바라고 찾아오신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안식하실 수 있는 이 자리가 돼야 될 것을 새로이 느낄 줄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나무들이 무성해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무성한 것은 가지나 잎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을에 하나의 열매를 맺기 위한 것임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봄이 있었습니까? 여름이 있었습니까? 가을이 있었습니까? 겨울이 있었습니까? 어느 시대권에 속해 있는 저희들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봄절기를 맞이했거든 남이야 무엇을 하든간에 자기는 봄의 기준을 중심삼고 하늘 앞에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고, 여름절기를 맞이하였다면 남이야 무엇을 하든 온갖 정열과 정성을 다하여 가을에 알찬 결실을 맺을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렇듯, 승리의 요소를 규합할 수 있는 공고한 터전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가을 절기를 맞이한 사람이 있다면, 가을은 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봄절기라면 여름절기를 맞을 수 있는 입장이고, 여름절기라면 가을절기를 맞을 수 있는 입장이지만, 가을절기는 가을로서 끝인 것을 알아야겠사옵니다. 그 후에는 모진 바람이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가 가는 생명길 앞에도 이러한 장막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설한풍이 휘몰아치는 겨울절기를 맞이했다면 공포를 느끼는 계절로서가 아니라, 생명의 고귀함을 자랑할 수 있는 계절로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찬 설한풍이 휘몰아치듯 주위의 여건이 자신을 몰아치더라도, 그 여건에 자신이 흡수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신의 생명력이 어떠한 시련과 어떠한 힘보다도 강하여 겨울절기에서 봄을 추구할 수 있는 하나의 힘의 원천이 그 생명 전체에서 느껴질 수 있고, 내적인 동기와 외적인 권능으로써 화할 수 있는 승리의 기반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빛 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생명체로서 영광의 봄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오늘 저희 자신들은 어떤 입장에 처해 있는가를 아버지 앞에 직고해야만 되겠습니다. 나는 어떠한 아들인가, 나는 어떠한 딸인가를 직고해야만 되겠습니다.

나의 과거의 모습은 이러했고 현재의 모습은 이러니 내가 남겨야 할 결실이 무엇이며, 내가 이런 모습으로 가는 길에서 무엇을 찾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쓰레기와 같은 생을 남기고 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만민이 추앙할 수 있는 영광의 생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서 가야 할 기로에 서 있는 불쌍한 모습들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살 것이 아니라, 민족과 세계와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 생애기반을 통하여 아버지의 영원하신 뜻과 생명이 연결되게 하소서. 이것이 참된 인간이 추구해 가는 생의 노정인 것을 확실히 깨닫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현현하시어서 각자에게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게 될 때에 `나는 현재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내일을 위하여 이렇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일의 승리가 오늘의 승리라고 믿기에 모든 것을 당신 앞에 맡기옵니다.’라고 대답하는 모습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떠한 아들이냐고 물으실 때에, 스스로의 모습을 아버지 앞에 다짐하고 장담할 수 있는 각자가 되어야겠사오니, 각자가 뜻 앞에 보람된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생각하고 살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입장에 서 있는 자는 불쌍한 자입니다. 그는 가을이 오기 전에 떨어지고 말 불쌍한 모습이옵니다. 우리는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에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떨어지는 불쌍한 잎과 같은 처량한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통일이라는 이름이 불쌍하다는 것을 깨닫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여 망할지라도, 이 뜻만은 남겨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후대 후손 앞에, 혹은 동료와 친척 부모 앞에 이 일을 통고하고 권고하여 함께 가겠다고 몸부림치지 않으면 안 되게끔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 친구는 이래야 하고, 내 형제는 이래야 하며, 우리의 민족은 이래야 된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보여 주면서 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절규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울부짖으면서 생명을 다하여 이 민족을 붙들고 이렇게 가라고 권고하며 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을 위하여 가는 길은 다른 누구를 위하여 가는 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가는 길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귀한 자신임을 느끼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방위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 누가 자기에 대하여 반발적인 언행을 하였을 때, 그와 싸우고 싶은 마음이 폭발되면 반대받던 예수님을 생각해야겠습니다. 하오나, 예수님이 반대받던 것과 같은 자리에서도 분함을 느끼지 못하고 무관심하다면 그는 예수님의 친구도 못되는 자요, 동역자도 못 된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뜻이 가는 길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있는가를 느끼지 못하는 그런 아들딸이 있거든 치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마음이 회개하고 가인을 굴복시켜 아버지 제단 앞에 바쳐드리기 위해 몸부림이라도 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만을,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삼천만 민족 중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자를 찾게 될 때, 이 통일의 자녀들 가운데 그런 무리가 많고 많은 것을 보시고 당신의 영광이 임하시옵소서.

아버지, 기도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아들딸이 되었느냐고 묻게 될 때, 서럽고 서러운 아버님의 역사적인 한을 저희들이 해원해 드리고, 당신의 희망의 실체가 되겠다고 대답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버님은 과연 불쌍하고 외로운 분이시옵니다. 맞고 찾아오는 복귀노정의 슬픈 길을 걸어오신 아버지 앞에,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던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와 같은 모습이 될까 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직 익지 않은 열매라도 맺어서 따먹지는 못할지라도 소망이라도 가질 수 있는 자신들이 되어 있는가를 이 시간 다시 한번 반성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생물체의 세포는 매일같이 번식합니다. 모든 것이 신진대사를 일으킬 힘이 없게 되면 그 자체는 퇴화하게 되는 것이 세포를 가진 생물체의 현상인 것을 생각할 때, 아버님의 뜻을 대하는 저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포의 분열이 활발히 진행될 수 있는 그런 힘을 갖지 못한 생명체들은 반드시 정지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요, 멀지않아 쓰러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을 아버지 앞에 모두 직고해야 되겠습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나의 모든 모습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지면에 기록하여 놓고 아버지 앞에 어떠냐고 묻게 될 때, 아버지께서 `그것은 안 되겠구나’하는 것보다 `오냐, 그것은 버릴 것이 없구나’하고 칭찬할 내용이 더 많아서 아버지 품에 안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것뿐만이 아니라, 내 실체가 너희들이라고 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습니다. 사탄은 이 시간도 이러한 기준을 파괴하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기에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흘러가는 세월은 무심한 것이옵니다. 지난 세월 속에 저희들은 자신의 생명을 비참한 현실로 몰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비장한 용단을 내려야 되겠습니다. 전진하던 발걸음을 막아 버리고 사사로운 방향을 갖추고 돌아섰다가 돌아서야 할 때 돌아서지 못하게되면, 그 앞에는 필시 사망의 인연이 부딪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고요히 깃드실 수 있는 영원한 보금자리를 저희의 마음동산에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가 생활하는 환경이 아버지께서 거하실 수 있는 안식의 터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손길이 거치는 곳마다, 내 발길이 가는 곳마다, 내 오관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감각권내에 아버지의 안식의 권을 만들어 `그리운 아버지여, 동거하시옵고 동석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러한 거룩한 성을 개척할 수 있는 하늘의 참된 용사를 아버지께서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저희가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역사의 슬픔을 생각하며 탄식하는 저희들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저희들이 되게 허야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비참한 오천년 역사를 가진 부족한 민족이지만, 내일의 비참을 피하기 위하여 지난날을 자랑하는 다른 민족들보다 더 몸부림치는 민족이 되면, 소망의 한날은 우리 앞에 올 것을 믿습니다. 또한, 오늘의 슬픔을 역사의 탓으로 돌려 탄식하는 자들은 영원히 탄식권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여기에서 있는 힘을 다하여 당신을 부여안고 절규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의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저희가 이곳에 찾아온 목적이 무엇이옵니까? 그 누구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도 아니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도 아니옵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온 것은 더욱 아니옵니다. 인간끼리의 관계를 초월하여 단 한 분밖에 안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왔사옵니다. 지고지존하시고 거룩하신 당신이 만면에 희색을 띠고 `내 아들아, 내 딸아, 왔느냐’하시며 기뻐하실 수 있는 저희의 모습을 갖추어, 당신께서 내리시는 기쁨의 말씀이나 슬픔의 말씀, 절박한 분부의 말씀을 받기 위하여 이 자리에 온 저희들인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의 마음이 간절히 원해야 할 것이 무엇이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요구하는 아들딸도 아니며, 찾고 있는 가정도 아닙니다. 오늘날까지 우리가 찾고자 했던 사람이나 아들딸, 가정이 결코 우리들이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이 아님을 생각할 때, 이들을 끌고 가야 할 미래의 한 곳이 있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짐이 가해지고, 귀여운 아들딸로 인해서도 짐이 가해지기 때문에 또다시 십자가를 져야 될 입장인 것을 생각하면, 저희가 대하는 무리로 인하여 십자가의 짐이 더 가해질지언정 십자가의 짐이 감해질 수는 없는 복귀의 도상인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입장에서 뜻을 위해 나선 자유스런 개체시대를 지나 가정을 갖게 되면, 가정 위에 가하여지는 뜻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중의 십자가를 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으로서 뜻의 길을 갈 때에는 개인이 행복한 때도 있었지만, 가정을 이루어서 뜻의 길을 간다는 것은 심히 어렵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기에 그 길은 눈물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요, 제약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길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이들을 불쌍히 보시옵소서.

저희들이 가야 할 목적지가 곧 당신이 머무르실 수 있는 안식의 동산이요, 희망의 세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당신이 머무르실 그 세계를 찾기 위하여 저희들을 불러 세운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길은 평탄한 대로가 아니라 험산 준령이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원수들의 복병이 언제든지 저희들을 협곡에 몰아넣고 공격할 수 있는 길인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거기에 대비하여 갑옷을 입고, 칼과 방패를 들고 나가야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어려움에 부딪혀 몸부림쳐야 할 입장뿐만이 아니라, 사방에서 원수들의 복병이 활을 들고 총부리를 들이대는 환경에 처하는 것과 같은 고빗길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때마다 눈물과 더불어 비장하게 생애의 경각을 거쳐가야 할 불쌍한 통일가의 자녀들인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당신이 불러 주신 인사 앞에 감사하옵니다. 당신이 거하실 수 있는 성전이 되어 가는 아들딸이 있거든, 당신의 승리와 더불어 그들도 기필코 승리의 자리를 가질 것을 알게 하시고, 당신의 소망이 그들의 민족을 중심삼고 또는 후손을 중심삼고 이루어질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뜻을 위하여 가는 도상에서 쓰러진 자기 있거들랑, 그들은 천추만대에 당신의 마음 가운데 길이길이 기억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당신이 맡겨주신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온 사람들이 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개척해 나가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거든, 아버지께서 다시 찾아 오실수 있는 터전이라도 만들고 가겠다고 할 수 있는 그 마음이 이 시간 당신의 어린 자녀들의 마음에 불붙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소원하신 마음 앞에 나의 마음은 아무것도 갖지 못한 벌거숭이가 되었을지라도, 당신이 품안에서 부끄러운 벌거숭이의 모습이 가리워질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희망의 자리요, 최고의 소원의 자리에 서게 되었음을 느낄 줄 아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비참한 모습을 보시고 당신이 입었던 옷을 벗겨 입히면서까지 어려움을 같이하며 눈물지으실 나의 아버지, 참으로 감사하옵니다. 이제 당신이 기뻐하시며 당신의 마음 가운데서 잊을 수 없는 아들딸이 돼야 하겠습니다.

하오나, 당신을 위로하고 염려하고 사랑하는 아들딸이 이 가운데에 얼마나 되겠는가를 생각해 볼 때, 심히도 귀하고 적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러한 것들을 저희들이 생각해 볼 때, 이 민족이 불쌍한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옵니다.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옵니다. 당신이 저희들과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실 때에도 한을 품고 운행하셔야 하는 당시의 입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불쌍하고 원통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를 대하여 목석같이 무감각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할 적마다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끼고, 아버님의 형상을 대할 적마다 비뚤어진 자신을 바르게 세우지 못하는 죄책감을 느끼면서 하늘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최후의 인연을 가진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이 민족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저희들은 오는 10월까지 기도 기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아버님의 뜻이 이 민족과 함께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갈 길이 막혀 암담한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책임을 진 저희들은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설령 이 민족은 가지 않더라도 책임을 진 자는 아니 갈 수가 없습니다.

밤낮을 가지리 않고 수난의 고빗길에서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활이 처량하고 불쌍하겠지만, 아버지여, 그런 자리를 깨치고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을 묶으시옵소서. 그런 사람과 그런 민족이 없을 때는 아버님께서 현현하시옵소서. 영계의 영인들을 동원하여 후대의 후손을 통해서라도 새로 오는 시대에 새로운 민족적인 운세를 출발시키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망해 가던 이스라엘권내에서도 바알 앞에 굴하지 않고 남아진 칠천여 명의 무리가 있었던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기필코 남아질 수 있는 무리를 준비하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고, 남아지는 무리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충성하고 얼마만큼 희생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저희의 모든 정성을 다하여 아버님 앞에 임하였사오니, 당신께서 아무개야 하고 부르실 때 서슴지 않고 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하오나, 사무치는 당신의 마음 앞에 모든 것을 맡기어 당신이 바라볼 수 있고 친히 기억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 있느냐 하면, 저희들은 그렇지 못하옵니다. 이러한 저희를 아버지,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인간 시조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파놓은 구렁텅이를 메워야 하고, 타라간 후손들을 당신 앞에 인도해야 할 사명과 책임을 맡길 수 있는 이가 누구냐 할 때, 그래도 통일의 무리들밖에는 없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기성교회 앞에 이 책임을 맡기려 하셨사오나 그들에게 맡기지 못한 채 저희들을 찾아오실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는 불쌍하신 분이옵니다.

당신이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와 의논하고, 누구와 더불어 힘을 합해 싸울 것인가를 생각할 때, 저희들이 그러한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서글픈 사정을 안다는 저희들이 그 사정을 위로해 드려야 되겠사옵고, 뜻을 위해 죽음의 길도 마다 하지 않고 몸부림쳐 가야 할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분이 누구냐 할 때, 그는 바로 아버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일 불쌍한 분도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외로운 사연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그 심정을 가지신 분이 있다 할진대, 그분이 아버지이심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효하는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불효하는 자식들을 보며 안타까와하시는 당신이심을 생각할 때,저희들은 당신과 같이 안타까와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기도하는 자식을 부여안고 너는 불효하는 자식이 되지 말라고 분부하시는 아버지이심을 생각할 때, 불효하고 있는 기성교회, 불효하고 있는 이 민족, 불효하였던 저희 자신들은 눈물지으며 회개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그런 저희를 붙들고 다시 가자고 권고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가지고 이 자리에 부복한 저희들이 되어야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여,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아버지 뜻 앞에 지난날의 그 무엇을 보더라도 자랑할 것이 없는 부끄러운 모습과, 내일의 투쟁으로써도 그 흔적을 다 감싸 버릴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저희들과 같이 부끄러운 무리들을 위하여 눈물지을 수 있는 동정의 마음으로 당신의 뜻 선두에 서서 가자고 권고해 줄 수 있는 무리가 저희들인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 아침 아버지 앞에 부복하오니 행차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일본에서 온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민족 감정을 초월해야 되겠습니다. 역사시대에 우리의 선조들이 아버님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으로 남겨진 수많은 피어린 투쟁의 고빗길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민족간의 감정이 생기고, 수많은 문화 유산 등이 파괴된 그 배경을 이제 저희들은 다 잊어버리고, 거룩하신 아버지 앞에 형제의 인연으로써 그들을 반겨 맞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수많은 민족 사이에 가로막힌 원수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고 절대적인 형제의 인연이 이곳에서 생활하는 당신의 자녀들과 세계의 자녀들 가운데 맺어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젊은 가슴들이 새로운 희망 위에 한 형제로서 새로운 인연을 맺어 아시아를 통괄하고, 나아가 세계에 빛을 발할 수 있는 소망의 민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천지간에 우리와 같은 무리가 없었기에 아버지께서 찾아오실 수 있는 발판이 우리밖에 없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지금 일본에서 싸우고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 싸우고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몸부림치며 가는 그 길에서 자기 자신마저도 잊어버리고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자가 있다면, 아버지, 그 자리에 임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천배 만배 베풀어 주시옵소서. 민족을 부여안고 눈물짓는 그 눈물은 거룩한 눈물이옵니다. (기도 뒷부분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32-54
말 씀
(말씀의 앞부분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여러분이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떤 일을 처리했을 때, 그 처리된 결과가 전체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이 되었느냐? 인간은 자기 자신이 행한 일이 좋은 결과로 나타나게 될 때, 그 결과를 자기 것으로만 남기기 보다는 만민의 것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우리가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를 지으신 절대자도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절대자는 어느 누구한테도 주관받지 않고 자기의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영원히 자기의 것으로 보관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만민의 것으로 주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것은 피조물인 우리 자체를 미루어 보아서도 알 수있는 것입니다.

32-54
인간의 본심
사람은 누구나 주관받기를 싫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이루어 놓은 것도 자기가 영원히 주관할 수 있는 결과로 남아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민의 것으로 남겨 주고 싶어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자세를 두고 볼 때도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된다 할 때,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문제를 놓고는 자기를 중심삼고 이것을 절대시하지만,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무얼 할 것이냐? 훌륭한 일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훌륭한 일을 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훌륭한 역사를 남겨야 됩니다. 훌륭한 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요인을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요인을 남길 수 있는 결과적인 입장이나, 혹은 결과적인 것을 언제까지나 자기가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두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민에게 남겨 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진정으로 좋은 것은 나만이 가져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좋은 것은 만민이 공동으로 가져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제일 좋은 것은 무엇이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생명일 것이요 사랑일 것입니다. 그 생명과 사랑은 만민이 전부다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만민이 꼭 가져야 될 것이요, 갖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이라는 것을 나에게만 결속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사랑도 나에게만 결속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 생명을 만민의 것으로 남겨주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요, 그 사랑도 만민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얼핏 보게 되면, 자기를 절대시하여 중심에 세우고 싶어하는 마음과, 생명과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서로 상충적인 입장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자기를 절대시하고 간섭받기를 싫어하는 것은 간섭받는 자리가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것을 자기가 책임지고 남기기 위해 간섭받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즉, 나를 절대시할 수 있는 상대적 여건을 취해 가려니 여기에 제삼자를 개입시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절대시하는 그 개체적인 소원이라든가, 혹은 관(觀)이라든가 하는 것이 있음을 우리는 여기서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스스로 남길 수 있는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을 공고히 해서 실천해야만 합니다. 나로 인해 남아진 근원적인 결과를 내 주관권내에서 영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만민의 것으로 고이 상속시키기 위해 보다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내가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절대시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상에 나타난 위인들을 보게 되면, 그들은 누구의 지배를 받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됩니다.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도 그래야 되고, 국가도 그래야 되고, 세계도 그래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참은 영원히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만민이 그럴 수 잇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만민의 것이 됩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은 만민의 생명이요, 거기에 영광이 있다면 그 영광은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만민의 영광인 것입니다. 만민에게 쌍수를 들어 동참하라고 권고하고 싶은 것입니다.우리 인간이 목적을 달성한 이후에 요구하는 보람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각자가 주장하는 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제삼자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32-56
천명에 의해 각기 다른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인간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로 연결돼 있는 사회에서 살 고 있습니다.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동서남북으로 뻗어 나가면 세계로 연결됩니다. 이것을 연결시키는 중심은 누가 되느냐 하면, 결코 세계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사방으로 뻗어 나갈 때는 엄청난 세계까지 확대되지만 그것을 축소시킨다면 그때 그 축소의 중심은 누가 되겠습니까? 아버지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닙니다. 그러니 여기서 자기를 절대시할 수 있는 요건을 중심삼고 생애를 투입해야 합니다.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충성의 도리와 책임의 도리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생애를 투입하여 다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결과적인 선의 형태로 역사와 천주 앞에 남겨질 수 있기를 요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가 그런 자리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두고 본다면 우리는 우주를 창조한 절대자로 부터 자기 생명을 부여받았고, 그 생애를 중심삼아서 이러이러한 책임을 완수하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사명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갑이라는 사람, 을이라는 사람, 병이라는 사람, 혹은 한국 사람, 일본 사람등 세계 사람이 전부다 다르기 때문에 사명도 서로 다릅니다. 서로 다르니만큼 절대시할 수 있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 책임이 아직 완수되지 않았기 때문에 민족이 세계를 향하여 설 수 있는 입장이 못됩니다. 그러나 그 민족이 책임을 완수한다면 세계를 향하여 설 수 있는 때가 기필코 올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바탕과 우리의 소성을 분석해 볼 때, 거기에서 나타나는 소성(素性)이 개인에게 있다면 가정에도 있을 것이고, 민족 국가 세계에 다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온 세계는 그런 가운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서로 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작은 것들에 좋은 것들을 합하고, 큰 것에 좋은 것을 보충해 나가는 것이 목적을 바라보고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을 했다 하면 범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대한민국에 백만장자가 있다면, 그는 대한민국 내에서 추대받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자기의 국가를 넘어서 세계로까지 뻗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온 세계가 자기 앞에 하나로 연결될 수있는 때가 되면 반드시 만민의 것으로 남겨질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만일에 그런 환경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만인에게 돌리지 않고 자기 것으로 거두려 하다가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역사는 변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변천해 나가는 역사 가운데에 있는 우리 각자 각자에게는 천명에 의한 생애의 본분에 따라 생명을 걸어야 하는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간섭받기를 싫어하므로, 자기의 사명은 절대적으로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인연맺어진 사명은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만큼, 그인연은 나만이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 인연은 나만이 해야 할 절대적인 사명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에도 간섭을 받지 않아야 되는것입니다.

제삼자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할 때에 그 일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온 정성을 다 들이고, 모든 노력과 충성을 다하는 사람은 세계와 역사와 통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천명에 의하여 생애를 걸어 놓고 그 누구도 갖지 않은 사명을 중심삼고 임명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명에 대해 얼마나 충성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하여 여러분의 생애를 걸어 놓고 개척해 나가면서 좋은 실적, 좋은 결과를 남기겠다고 다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활 가운데에서 자기가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얼마나 느끼며 생활하느냐?

32-58
자기 책임을 완수하려면
임명받은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맡은 바 책임의 양이 있습니다. 직장에 있어서 과정이면 과정, 부장이면 부장으로 임명받았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맡은 직책에 따라 그가 감당해야 할 책임량이 있는 것입니다. 또 그 책임량을 완수하는 데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영원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기간 동안 한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간과 그 양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일생을 70년, 80년, 혹은 100년으로 잡을 때, 이 1세기권내에 있어서 얼마만큼의 일을 할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다른 사람과 같이 충성을 한다고 할 때, 그와 같이 충성의 양을 채우기 위해서는 남이 열 시간 하면 나도 열 시간 하고, 남이 10년 하게 되면 나도 10년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같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보다 빨리 하려면 10시간 이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기에 가중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가령 시간은 열 시간 밖에 없는데, 남보다 빨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중된 노력과 정성을 투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촌각을 아끼며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촌각이 승패를 결정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사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하루는 빛나는 하루가 될 것이며, 그 하루는 영원한 가치의 세계와 통할 수 있는 것으로 영원한 세계의 인연 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임명을 받고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는 반드시 기간이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도 어떻게 지을 것인지, 또 언제까지 지을 것인지에 대한 전반적인 설계를 하여야 합니다.이렇게 어떤 설계 밑에서 착수해야 되는 것처럼, 우리도 일정한 설계 밑에서 임명을 받아 일을 착수해야 됩니다. 주어진 기간 내에 완수하게 될 때, 거기에는 반드시 표창하는 일이 벌어질것입니다.

주어진 기간 내에 설계보다도 더욱 완전하게 했다 할 때는, 그것은 정상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비정상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의 노력과 정성이 가해졌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설계대로 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설계 이상의 완벽을 기하면 서도 설계자가 계획한 시간을 단축시킨다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32-59
임명받은 자의 특권과 권위
그러면 오늘날 임명받은 자로서 가질 수 있는 특권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특권이라는 것은 고정된 양, 지정된 기간에 완수해야 하는 특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임명받은 자의 특권은 누가 간섭할 수 없는 것, 설계자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절대시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열 시간 동안 같이 일하고 같이 자고 했더라도 그 시간에 많은 생각을 했고, 또 그 일에 고생하고 정성들인 것이 다른 사람의 배가 될 때는,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결과를 이 우주는 최대로 표창할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갖춘 사람이 남아지는 한, 세계는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그 사람 이상의 가치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한 말입니다. 운동경기에 있어서 한번 세운 기록을 깨기 전에는 그 기록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그 기록을 두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방향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임명을 받은 자로서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지시 받은 양을 주어진 시간에 하게 되면 메달을 탈 수 있으며, 표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사명입니다. 직접적인 사명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못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할 수 없다고 해서 둘이 해서는 안 됩니다. 상을 받을 때 둘이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명령받은 사람은 책임을 자신을 중심삼고 수행하고 싶어합니다. 누가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엄숙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종교는 나이들었을 때 천당 가기 위해서 믿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지독한 사람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참 지혜롭고, 모든 것에 도통한 사람같이 보이고, 모든 것을 아는 사람같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런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결과라는 것은 양을 초월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시간을 초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승리의 결과라는 것은 시작하자마자 단시일 내에 결판나는 것이 아닙니다. 결과가 크면 클수록 근엄한 시간을 요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32-60
임명받은 자가 알아야 할 것과 해야 할 일
한 국가가 하나의 승리권을 다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 나라를 예로 든다면,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국가적인 양이니만큼, 짧은 시간에 막대한 양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정신적인 자세와 역량을 단시간 내에 압축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일상생활에 있어서 그저 뜻없이 습관적으로 하루 세끼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 되겠습니까? 미물인 곤충들도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연관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도 이웃과 연관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이웃 동네의 처녀 총각들끼리 결혼도 할 것입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동네에서 자기 나름대로 살고 있지만 그 동네만을 위주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네가 잘산다고 하게 되면 그 동네가 잘사는 것도 되지만, 나라를 위해서 잘사는 것이 됩니다. 또, 나라를 위해서 잘산다면 세계를 위해서 잘사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세계를 위해서 잘살면, 그것은 하늘땅을 위해서 잘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한 생애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주어진 사명의 양을 알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일생을 걸어 놓고 책임을 수행하는 입장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양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별수 없어. 그러니 노력할 필요도 없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이냐? 이 민족 앞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또 세계 앞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하늘땅 앞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이런 마음이 안 돼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은 임명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알기 위해 철학이나 종교니 하는 문제가 나온 것입니다. 또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하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현재의 위치와 입장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방 전후좌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임명을 받은 주체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 자체는 간섭받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간섭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가 나타나면 간섭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라, 영원히 사랑하라’하는 것은 말로만 끝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입장에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하라는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사랑을 해야 됩니다. 거기서 상대적으로 보답되면, 그것은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관받기를 싫어하는 것은 완전한 상대, 곧 절대적인 상대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자리에서 주장하는 것은 완전한 상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상대가 나타나게 될 때는 전부다 네 것이요 내 것으로 화하는 것이 인연의 세계입니다. 아무리 잘난 남자나 여자가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절대시할 수 있는 완전한 상대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생애를 두고 임명받아 나왔습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어찌하실 수 없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 누구도 절대 간섭할 수없습니다. 절대적인 기준 앞에 절대적인 상대적 기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개인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알아 가지고 임명받은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32-62
책임량과 사명 기간
임명받은 양이 크면 클수록,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거기에 대한 기간도 십년 백년 천년의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십년 백년 천년 들여야 할 정성, 또는 수십대를 거쳐서 이루어야 할 정성의 도수를 일대에 들여야 하는 일도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런 천년사의 정성을 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성을 들인 선조가 있다면 선조의 후손들은 천년을 지낼수 있는 인연과 연결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연결되어 후대의 후손들이 복을 받게 되면 개인적인 그 뜻을 그 민족이 이어받아 하나의 장벽을 뚫기 위해 투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그 민족을 중심으로 선민사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민사상이 태동하기 위해서는 온갖 정성을 다해 총진격할 수 있고 하나의 승리적 내용을 자랑할 수 있는 시대가 와야 합니다.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을 남긴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천사와 싸울 때, 생명을 걸고 자기의 모든 것을 넘어 하늘과 더불어 담판을 짓는 그 순간에 이겼기 때문에, 그 승리는 야곱만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민족의 승리였던것입니다.

`천사장이 아무리 나를 굴복시키려 해도 나는 굴복 안 한다. 하나님의 뜻을 믿기 때문에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이 뜻만은 남겨야 되겠다’는 마음에서 싸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뒤넘이칠 수 있는 한계점에서 천사가 멀리 떠났기 때문에, 천사의 모든 권한까지도 상속할 수 있는 승리의 조건을 세운 것입니다. 즉, 천사세계의 축복의 내용에 대한 승리의 상속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인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뜻길이 어떻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삼천만 민족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태어나 뜻을 알게 된 것은 여러분들에게는 한 번밖에 없는 좋은 기회입니다. 세계 인류 앞에,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단 한 번밖에 없는 기회요, 일어설 수 있는 한 때라는 것입니다.

이 한 번밖에 없는 기회에 흘러가는 역사를 움켜쥐어 가지고 터뜨려야 합니다. 흘러가는 모든 것들을 전부다 한 점에 규합시켜야 합니다. 그것을 모아 놓으면 전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의 한 점이라는 것은 절대적입니다. 중심이 되기 때문에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중심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영원한 절대적인 주체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 주체 앞에 간섭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주체 앞에 상대가 결정되면 절대적인 가치가 동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선생님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역사상에 둘도 없는 부부로서 누구에게라도 자랑할 수 있는 그 가정은 곧 만민 앞에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절대적인 주체가 절대적인 상대를 찾아 가지고 하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들도 그런 한계점에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한계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양과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때에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냥 제삼자와 같은 입장을 취해야 하겠습니까? 통일교회 교인들은 간섭받기를 싫어합니다. 간섭받기를 싫어하는 절대적인 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욕심이 아닙니다. 자기가 책임진 문제에 대해서만은 자기가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자기 문제에 대해서 어느 누가 정성들이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원리적인 상대기준을 결정해 가지고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32-63
모든 정성을 다하라
여러분의 일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시대를 거쳐 나가려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를 넘어 하나님까지 여덟개의 단계를 넘어야 됩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넘을 것이냐? 지금까지 육천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아직까지 정상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개인과 가정을 넘어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그리고 하나님 앞에까지 가는 길은 험난한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적 소망이 있었기에 `나는 너희의 아버지이고, 너희는내 아들딸이다’ 하며 부모의 심정으로 계속 인간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길을 가다 만나더라도 당신은 우리 아버지가 틀림없소 했을 때, 틀림없다고 증거할 수 있는 내용을 지녔다면 틀림없이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자기 아버지를 대해 가지고 `당신이 내 아버지입니까, 아닙니까’ 하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대답을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답을 안했다가는 아버지도 거기에 걸려들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가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아니라고 하면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행사하더라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까? 진짜 아들딸입니까? 가짜 아들딸입니까? 진짜는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도 간섭하시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을 보면 진짜와 가짜가 섞여 얼룩덜룩합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얼룩덜룩하니까 하나님까지도 얼룩덜룩한 하나님인 줄 압니까?

성경에 보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봤어요? 마음을 다하여 사랑했으면 왜 얼룩덜룩하게 되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일주일 금식을 하고 40일 금식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그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만 다하면 무엇합니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마음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뜻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품은 다를 수가 없습니다. 성품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행할 때는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의 이익이나 자기 편의 이익을 위해서 실행합니다. 뜻도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라는 말은 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절대적인 중심으로 삼고 그 중심 앞에 절대적인 중보자로서의 아들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역사상에 하나님 앞에 제일의 충효를 남긴 사람이 누구냐?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얼마만큼의 충효를 했느냐고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문제가 벌어집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자리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로 미루어 볼 때, 그런 효자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 뜻이지, 내 뜻이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적 기준 앞에서 상대적 관계를 이렇게 만들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32-65
입교가 빠르다고 자랑 말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사람은 내가 통일교인이요, 혹은 입교한 지 몇해 되었소 하고 자랑하는데, 그건 시간낭비입니다. 입교한 지가 아무리 오래 되었으면 뭘 합니까? 10년이 아니라 천년이 지났더라도 나이 값도 못하는 사람들이 뭘 하겠습니까? 또는 협회에서 일한 지 몇 년 되었다고 자랑하는데, 우리 뜻 앞에 양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남들이 20년 걸린 양을 1년 동안에 다 하게 될 때는 정성을 들이는데 있어서 내가 더 나은 것입니다. 임명받은 그 책임을 수행하려면 남보다 더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것입니다.

이 조직사회에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중심이 어디냐? 또,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중심이 누구냐?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 중심은 문선생입니다. 그러면 문선생이란 사람은 누구냐? 여기에서 말하는 문선생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 문선생이라고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님이라고 해서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똑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질(質)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양이 같더라도 질이 나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질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를 이용해서 자기 뱃속이나 채우려는 꿍꿍이 속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해 보지 않아도 며칠만 지내보면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질과 양을 갖추어서 주어진 기간 내에 복귀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여기에서 손해를 가져왔다면, 그것은 앞으로 통일교회 뜻 앞에 있어서 심판을 받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임자는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해 내야 됩니다. 10년이고 20년이고 관계없이 임명받은 그 사명이 끝날 때까지 책임져야 됩니다. 이것은 자기의 어떠한 짐보다도 더 크고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제곱해서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죄를 지은 기간 이상으로 하나님을 믿고, 짊어진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행로를 거치지 않고는 참된 개인이 될 수 있는 선의 발판이 닦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내적인 면으로 보나 외적인 면으로 보나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위하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했다 하더라도 부족한 것입니다. 다하고 나서도 부족한 느낌을 받기에 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스스로 느끼고, 책임 다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오늘의 복귀의 사명을 책임진 통일교단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떤 분야에서 책임을 맡고 있느냐? 또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느냐? 어떤 사람은 지역장 혹은 지구장으로서 책임을 맡고 있는데, 그 책임을 통해서 참된 자신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참은 거짓에게 절대 주관받는 법이 없습니다. 서로 상대될 수 있는 요인이 남아 있으면 서로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완전한 플러스 마이너스끼리 만나게 되면 합해지는 것입니다. 상대라는 것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플러스와 플러스끼리 만나면 반드시 서로 반발하게 됩니다.

누가 책임한다고 할 때, 그 사람에게 선한 요소가 있어서 상대적 요인이 되어 움직이게 될 때는 하나님이 대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선조의 공적이 있거나, 자기의 충성의 실적이 남아 있어서 하나님이 필요로 할 때는 그를 대해 주시지만, 자기를 들고 나서게 되면 대하실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아직도 자기를 위해서 살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늘을 위해 할래야 할 수도 없고, 갈래야 갈 수도 없는 요인이 남아 있다는 겁니다.

32-67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
지금까지 내가 이런 일을 행해 나오면서 보게 될 때에, 저 사람은 안되겠다고 한 사람은 남아지지 않았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움직이다 보니 결국에 가서는 그 움직인 모든 사실이 자기 자신을 꼼짝 못하게 얽어맨 결과가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탈된 자리에서 후회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은 언제나 참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참은 악을 치고도 견딜 수 있지만, 악은 참을 치면 견딜 수 없습니다. 참된 자리에 임명을 받고도 그 부여받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방편적으로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다 흘러가고 맙니다. 임명받은 자리에 자기의 생명을 투입시켜 일생의 천직으로 알고 정성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성을 다했는데 자기를 몰라준다고, 통일교회 교인들이 자기를 몰라준다고, 선생님도 자기를 몰라준다고 섭섭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 사람들을 알아주면, 그 사람들은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뜻적인 입장에서는 알아주지만 거기에서 만족하게 되면, 그 이상은 못 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더 큰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판도를 넓혀 그 넓은 환경을 가지고 거기서 자기의 절대적 권한을 이루고, 거기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나옴으로써 하늘 전체의 뜻으로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통일교회를 모른 체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선생님을 사랑하는 줄 알아요? 선생님은 도움 받을 생각을 안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생님을 죽음의 자리로 들이몰아 넣은 적이 번번이 있었습니다.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죽음의 자리로 몰아 넣고는 상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부에서 협조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협조를 바라기 전에 내 힘으로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도움을 바라지도 않았고 협조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늘에 도움을 주면 협조해 달라고 하지 않아도 주십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인하여 이 세계의 모든 것이 거꾸로 뒤집어졌습니다. 타락한 것이 뭐냐면, 복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도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거꾸로 된 세상을 뒤집어서 나가려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뒤집어 가지고 모든 것을 청산하고 다시 돌이켜 놓으려니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하려면 자기의 일생 가운데 한때를 버리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섭리의 참뜻을 찾아가는 길, 그 길은 쉬어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자기가 쉬는 시간이 결코 쉬는 시간이 아닌 생애를 가야만 뜻을 위해 가는 길에 있어서 참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여러분은 통일교회에서 어떤 자리에 임명받았습니까? 여러분에게 임명된 직책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대관절 어떤 책임자냐? 무엇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고, 뭘 해야 하는 사람이냐? 세상에서 직책이 없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실로 그 이상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부모든지 아들딸을 낳으면 기뻐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책임을 하지 못하게 되면, 자식들로부터 나를 왜 낳았느냐는 항의를 받게 됩니다. 부모에게는 자식을 길러 주어야 할 책임이 있고,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고 활동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갖추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까도 말했지만, 사람은 누구한테 간섭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나를 중심삼은 나만이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뜻을 중심삼고 얼마나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까? 우리는 타락권내에서 태어났기에 보통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타락권을 벗어나지 못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뜻의 길을 따라 오면서 한때에 소망의 한계선을 넘으려 했는데, 뜻을 아는 자로서 주체적인 입장에서 상대하고 간섭받기 싫어하며 자기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는 생애노정을 거쳐왔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년 가고, 2년 가고 세월만 보낸 것입니다. 뜻의 길이 그렇습니까? 뜻의 길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역사에는 뚜렷이 남아 있는 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 있어서 1945년은 해방이 된 해이고, 1950년은 육이오 사변이 일어난 해입니다. 1945년도는 기쁨의 때이고, 1950년도는 슬픔의 때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통일교회에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32-69
절대의 길은 간섭받는 길이 아니다
천추만대의 후손들이 역사시대의 선조를 찬양할 때면, 이 날을 들어 찬양하라고 할 수 있는 한날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 찬양할 수 있는 내용은 세계적이어야 합니다. 찬양할 수 있는 내용이 세계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세계 어느 나라나 다 기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1945년은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해방을 맞은 기쁜 해이지만, 일본에 있어서는 전쟁에 진슬픈 해입니다. 우리에게는 기쁜 날이지만, 일본에게는 기쁜 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같이 기뻐할 수 있는 날, 이런 때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 성혼한 1960년도 4월 11일, 그날은 무슨 날입니까? 외적으로 보면 밥먹고 잠자고 하는 평범한 날이지 별다른 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무엇이 다르냐? 그때 한 일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날 성혼식을 한 것이 다른 날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혼식으로 인하여 이제는 한 사람에 의하여 좌우되게 되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의 양과 시간이 민족적이고 세계적인 인연을 갖춘 것이냐? 또, 그 기간이 역사적인 인연을 거치고, 시대적인 인연을 거치고, 미래의 인연을 거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느냐? 나타난 것은 간단 해 보이지만 그것이 전체를 집약시킨 대표적인 핵이 될 때 역사는 그날을 연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절대적인 하나님도 이것만은 무시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사람이 있습니까? 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조건, 나를 하나님의 딸이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믿을 만한 내용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걸어 놓고 눈물과 피땀을 흘리며, 나라를 사랑하고 만민을 사랑할수 있어야 합니다. 자식에게 아버지만 사랑하는 효자가 되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나를 사랑하라는 것같이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부모라야 효자를 기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위하고 나를 편안히 해주는 것이 효라고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 효는 효가 아닙니다. 그것은 망발입니다. 그따위 효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하여 충성하고 효도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배고플 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어려우면 도이나 갖다 주는 그런 효심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못 하더라도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 충효의 길을 가라고 가르치는 선생님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건 틀림없습니다. 자기는 실행하지 않으면서 명령하면 여기에 순종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통일교회를 사랑했습니까? 「예」 통일교회를 사랑했다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통일교회가 없어진다고 하면 울 겁니까, 안 울 겁니까? 자기 자식이 죽는 것보다 더 안타까와 할 수 있어요? 자기 부모 형제 부인 남편이 죽는 것보다 더 원통해 할 수 있습니까? 뜻을 위한다는 사람이 모인 것이 아니라, 가짜들만 모였구만요? 사랑하기는 뭘 사랑합니까? 자기 잘못으로 소박을 맞아 쫓겨나는 그런 부인네들 중에는 자기가 잘못한 것을 생각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자세로 서서 `나는 이만큼 사랑했는데 당신은 나만큼 사랑하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의 습성을 지닌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 여러분들은 통일교회를 사랑해요? 「예」 지지리 고생시켜 남들 보기도 부끄러운 입장인 데도 사랑해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봐요. 생명을 다해서 사랑하고 있습니까? 「예」 여자들, 임지활동을 갔다오라면 갔다 오겠어요? 「예」 남자들도 갔다 오겠어요? 「예」 갔다 와서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했을 때, 이만큼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 공적인 마음을 가지고 절대시할 수 있는 결과를 들고 나와야 합니다. `이렇게 사랑합니다’ 하게 되면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32-71
영계에 가서 자랑할 것이 있는가
법정에서도, 아무리 살인강도라 하더라도 증거물이 없을 때는 판사도 어쩔 수 없습니다. 강도가 `내가 살인한 것을 언제 봤소’하고 들고 나서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증거를 들이대면 꼼짝 못합니다. 증거가 없으면 증거를 찾아야 됩니다. 찬송가에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받은 증거 있습니까? 증거를 받았다고 으시대며 전도 나가는데, 그런 것이 증거인 줄 알아요? 그런 증거를 해서 뭘 합니까? 남아지는 사람도 없는데, 아무 관계도 없다는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천국 갈 때에 예물로 싸가지고 갈 것이 있습니까? 영계에 가면 순교당한 공신들이 앞에 쭉 늘어서 있는데, 그들 앞에 여러분들이 싸가지고 간 보따리를 펼쳐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거지발싸개 같은 것을 펼쳐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통일교회가 무슨 고생을 했으며, 여러분이 무슨 고생을 했어요?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한다고 하면서, 그만한 고생도 안 해 가지고 어떻게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한다고 하겠어요? `고생을 하긴 했지만 나는 고생했다고 생각안 합니다’ 그래야 당연한 것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남아있습니다. 영계에 가서 보따리를 풀어 놓고 `이것은 일생 동안 제가 장만한 선물이오니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시집 갈 때는 한보따리씩 해 가면서, 천국 갈 때는 달랑달랑 몸만 갈 수 있어요?

여러분은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정병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시집 장가를 가게 되면 그 집안의 가문을 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림살이를 하게 됩니다. 독립성을 길러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거룩한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과 매일 생활하지 못하고 떨어져 있더라도, 또 하나님이 늘 여러분에게 직접 명령하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관리권내에서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32-72
임명받은 자의 영광
여러분은 자신을 절대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절대적인 가치의 결과로 이루어진 성과를 만민의 것으로, 후대 후손의 것으로, 천상세계의 보물로 영원히 보장받겠다는 결의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임명받은 자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거지보다 더 불쌍해집니다. 거지들은 때가 되면 얻어서라도 밥을 먹지만, 책임을 못하는 사람은 시간 맞춰 밥도 못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책임을 완수하는 데 하나님께서 10년 동안에 하라고 했다면, 그 10년 동안에 충성과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역사를 빛낼 수 있는 자녀의 길을 가치 있는 길로 복귀시켜 나오는 그 기간을 어떻게 단축시키느냐? 하나님이 계획한 10년이라는 기간을 7년으로 단축시키기 위해서는 내 땀이 필요하고, 내 피가 필요하고, 내 노력이 필요하고, 내 수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소모의 대가를 통하여 양과 질을 거기에 보충하지 않고는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판도를 흡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런 책임을 지고 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를 중심삼고 그런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미 기초를 닦고 외부공사는 다 끝나서, 이제는 단장을 하는 시대입니다. 내부 장식은 주인의 손끝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람벽 같은 것은 직접 관계가 안 되지만, 직접 관계될 수 있는 내용을 증심삼고 필요한 모든 여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단계적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시대, 실천시대, 성사시대가 있는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생애를 중심삼고 시기를 맞춰 계획해 나가야 됩니다. 준비시대에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준비하고, 실천시대에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실천하고, 성사시대에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성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부 장식이 잘 되는 것입니다. 그 장식을 누가 보더라도그 정교함에 있어서 정성들인 도수가 뛰어나다 하는 말을 들어야 됩니다. 문화는 거기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가치도 거기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뜻생활에 있어서 준비시대가 올 때, 준비하라는 임명을 받고도 준비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실천시대가 옵니다. 그때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천을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성사시대가 오는데, 그 성사시대는 소망이 깃드는 시기입니다. 지금까지 원리를 중심삼고 든든하게 닦은 기반이 있기 때문에 뜻과 더불어 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애의 노정을 교훈 삼아 세계사적인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책임진 것을 책임하지 못하는 자리에 선 것처럼 불쌍한 것이 없습니다. 뜻길 앞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불쌍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 더 가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낄 수 있는 자리에서 싸운 사람은 불행해 보이지만, 그에게는 끝이 훤하게 보입니다. 그렇게 3년만 살아 보면 끝이 훤히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몇 십 년을 살게 되면 자기로 말미암아 영원한 역사를 돌이킬 수 있게 됩니다. 거꾸로 돌아가는 역사를 반대로 돌이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 자기로 말미암아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상의 세계에, 혹은 영원한 역사와 함께 남아지게 됩니다.

우리는 남긴 그것을 만민의 것으로 상속해 주고, 만민을 풀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의 절대 임무라는 것을 알고 책임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회사에서 책임을 다했다면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회사를 위한 것으로 돌리고, 나라를 위해서 책임을 다했으면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을 위해서 한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또, 세계인을 위하여 국부적인 책임을 부여받아 가지고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한 일로 인하여 세계가 온통 좋아하게 되면 그것이 영광인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일상생활에서 숱한 장벽을 깨고 나가야 됩니다. (녹음 불량으로 약간의 기도 앞부분까지 정리하지 못함)

32-74
기 도
아버지, 당신의 심정을 모르고 사는 이 땅에 있어서 현재의 생활권내에서 같이 이마를 맞대고서 말씀을 나누고, 같이 웃고, 같이 슬퍼하는 자리가 신앙의 자리인 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준비시대에 있어서 나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명은 부모가 가야되는 수난의 길, 희생의 길인 것을 아옵니다. 생사의 기점에서 뜻을 아는 아들딸이 되어 생사가 걸린 수난의 길을 인계 받아야 할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그 인계받을 수 있는 내용을 알고 가는 사람은 반드시 그 인계받을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절대적인 기준에서, 누구나 머무를 수 있는 자리에서 정성을 드리게 될 때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리를 따라오지 못한 자들은 우리 앞에서 슬퍼할 것을 아옵니다. 절대적인 당신이기에 절대적인 생명의 기준에서 우리를 대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가까웁던 아버지가 멀어져 갈 때마다 저희들의 때가 된 것을 알고 저희들에게 탕감의 기점이 찾아오는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 1970년대를 향하는 저희 통일교인들 중에는 새로이 각성하는 무리도 있고, 새로이 잎이 돋아나는 무리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떡잎과 같은 입장에서 아버지가 멀어지는 것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이 그러면 그럴수록 책임을 했느냐 못 했느냐 하는 것은 아버지와 자기와의 관계를 중심삼고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머리를 숙이는 자녀가 되어 예전 아버님을 위해 충성하던 중심삼고 끊임없이 아버님을 위해 가려하고, 뜻길을 가기에 그 무엇보다도 바빴던 발걸음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어떻게 다른 것이옵니까? 하나의 경계선을 넘는 기점에서 5월과 6월을 중심삼고 저희들은 뜻에 대한 시대권과 아버지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시점에 다다른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저희들은 책임과 사명을 다짐할 수 있는 다시없는 시대라는 것을 알고, 온갖 정성을 다 들일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러지 못할 때는 내 몸 마음을 드릴 수 없는 것을 밤이나 낮이나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모든 수난의 과정과 복귀노정을 통하여서 아버님께서는 몰리고 쫓기는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 앞에서는 인자하신 아버지가 되시지만, 뒤에서는 엄한 아버지이신 것을 수난의 뜻길을 따라나오는 길 가운데서 알았사옵니다.

저희가 모시고 따라 나오던 아버지께서 멀어지실 때는 낙망하기 쉽기 때문에, 아버지 대신 원수가 나타난다는 것을 압니다. 그 원수로 하여금 아버지 대신 나를 죽으라고 명령하는 지경에까지 끌어가는 것이 복귀섭리노정인 것을 알게 될 때, 아버지, 복귀섭리의 탕감노정은 기쁘고 영광스러운 길만이 아니라 슬픔의 길을 몇 번이고 뒤넘이쳐 가야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뜻을 안 가정에 평화가 지속되는 것은 아직 그 가정을 중심삼은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가정에 피할 수없는 고빗길이 닥치는 때가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결실의 때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을이 되면 모든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다운 아내, 참다운 아들, 혹은 참다운 남편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는 때는 평탄한 때가 아니요 곤궁의 시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곤궁의 시대에 처한 인연을 중심삼고 봉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환경을 찾아갈 수 있는 가정들만이 천상과 육계에 영원히 남아질 수 있고, 당신의 혈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금까지 걸어온 통일교단이 세계적인 교단으로 남아지기 위해서는 교단적 양심의 소리가 칠흑같은 어두움의 장벽을 뚫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와 같은 운명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운명이고, 나아가 한국의 운명이며, 아시아의 운명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이 암담한 운명을 타파할 수 있는 돌파구는 오직 아버지로 말미암아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희들은 정성을 들이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저희들은 이 민족을 살리기 위해 정성들여야 되겠고, 삼천리 반도를 중심삼고 정성을 들여야 되겠기 때문에 결코 통일교회 이름으로 정성을 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한민족의 이름으로 정성들이고 싶고, 이 나라에 왔다 간 충신들의 명예를 걸고 정성들이고 싶은 것이 저희들의 심정이오니, 아버지,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저희들은 통일교회의 승리를 다짐한 것이 아니옵니다. 이 민족의 승리를 바라는 것이 저희의 소원이었고, 민족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승리를 바라는 것이 저희의 소원이었사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이기 때문에 저희는 아버지의 아들 된 도리를 실천해야 되겠사옵니다. 그 소원과 더불어 싸우고, 그 소원과 더불어 죽고자 하는 신념을 가진 무리가 통일의 무리들이오니, 이들이 가는 길이 처량하지 않게끔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세계 만민이 살 수 있는 복귀의 동산을 건설하는 데 선봉자의 사명과 개척자의 사명을 가지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은 높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기에 저희의 모습이 결코 비참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밤이 있으면 낮이 오는 것이요, 낮이 있으면 밤이 온다는 것을 알고, 우리들이 현재 비록 밤과 같은 어두움에 처하여 있더라도 미래의 낮을 소망하며 어두운 밤길을 헤쳐 가야 되겠사옵니다. 새아침을 맞아 아침 해가 동녘에 떠오를 때까지 극복해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1970년도에 있어서 넘을 수 있는 고개를 넘었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민족과 세계라고 하는 광명한 새 아침을 향하여 갈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과거에는 헌옷을 입고 누더기를 걸쳤었지만, 이제는 정장을 하고 예의를 갖추어서 엄숙히 아버지를 모시고 가야 할 시점에 놓여 있기 때문에, 불초한 저희들은 당신 앞에 나서기가 부끄러운 것을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는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는 못난 자식으로서 아버지 앞에 심히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그래도 긍휼의 아버지를 부르면서 수난의 아버지를 위한다는 마음만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영광스러운 존전에 광명한 새아침을 맞이해서 천상의 인연을 드높이 찬양할 수 있는 그때가 다가올 때, 저희들은 아버지 나라의 방패로서 당신을 앞에 세우고 그 영광을 맞고 싶은 것이 저희들의 간절한 소원이옵니다.

그날이 될 때까지, 아버지께서는 저희의 뒤에 계셔서 섭리를 조정하시고, 저희는 아버지의 영광과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복귀의 길에서 영광과 더불어 아버지를 만나게 될 때 `이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것을 다 너희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라고 기쁘게 베푸시는 은혜로운 축복의 은사를 받아야만이 탕감해원성사라는 거룩한 뜻이 이 천지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런 엄숙한 사연 앞에 저희들은 너무나 옹졸하였고, 너무나 저급했습니다. 너무나 인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힘이 없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길은 홀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세 사람을 끌고 가야 할 것이요, 한 가정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세 가정을 품고 가야 할 것이며, 하나의 나라로는 갈 수 없기 때문에, 세 나라를 품고 가야 된다는 것을 저희는 알았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백성이지만 대한민국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도 사랑해야 하고, 미국도 사랑해야 되며, 독일도 사랑해야 되는 것을 아옵니다. 전세계 국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기 때문에, 세계의 아픔을 우리의 살과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신창이가 된 저희들의 신세를 바라보시며 눈물을 머금으시는 아버지의 그 아픈 심정에 수많은 민족의 사정이 미쳐오기 때문에, 그들의 아픔이 당신의 아픔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렇듯 그들과 저희들은 끊어질 수 없는 한 지체이기 때문에, 그들의 슬픔이 저희의 슬픔이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어야만 천지의 인연을 상속받을 수 있는 거룩한 당신의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제 이 민족을 세계에 자랑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의 권위를 들고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역사 가운데에서 민족이 찾아 나오던 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잊어버리라고 하였고, 자기 가정을 제물삼으라 하였고, 자기 나라를 제단삼으라고 하였던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흰옷을 갈아 입고 새로운 제물을 가지고 제사드릴 수 있는 제사장의 책임을 할 수 있게 허락하시옵소서. 제물을 갖추어 가지고 천상의 인연을 인간의 인연과 연결하기 위하여, 또한 천정의 인연을 누군가에게 맺어 주기 위하여 몸부림칠 수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뜻길을 바라보며, 저희가 답답하면 답답할수록 고생하시는 아버님이 불쌍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통곡할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을 꿈에서라도 잊어버리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가 흰옷을 입고 기뻐하기 전에 당신에게 천의를 입혀 드리고 기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 세계의 중차대한 일을 친히 아버지께서 주관하실 수 있는 그날을 그리워하며 어서 그날이 오라고 목놓아 통곡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불쌍한 모습을 동정할 수 있는 통일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오니, 그럴 수 있는 아들딸이 있거든 천만번 이상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만세에 길이 빛날 후손을 세워 만국을 치리할 수 있는 은사를 가질 수 있게 하시고, 그 영광의 고개를 넘을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지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탕감복귀의 노정은 수난의 길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눈물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뜻을 대할 수 없고, 눈물 없이는 아버지를 부를 수 없다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이 망하게 될 때는 이 나라, 이 민족 전체의 슬픔 이상의 슬픔을 지니시는 아버지시요, 세계가 망하게 될 때는 세계 국가들이 슬퍼하는 이상의 슬픔을 가지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 나라를 흥하게 하고, 그 세계를 흥하게 하더라도 당장 아버지의 슬픔을 거둬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니 아버지는 불쌍하고 불쌍한 분이시요, 십자가 중의 십자가를 지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한 당신을 아버지로 모신 저희들이 십자가를 지지 않은 것이 불행이요, 수많은 원수 앞에 설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 불효한 몸이라는 것을 아는 아들딸들이 통일가내에 많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가의 전통은 아버님께서 역사과정을 통하여 이 땅 위에 주장한 전통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전통을 세우기 위해 숱한 수난의 길도 마다하지 않고 생애를 바쳐 하루같이 당신의 뒤를 따라가겠다고 다짐한 저희들이지만, 아직도 모양과 형식을 갖추지 못하고 또다시 아버지 앞에 나타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모습이 부족하여 저희 자체가 부끄러운 것을 당연하거니와, 저희로 말미암아 민족이 망하고 세계가 망한다는 이 엄청난 책임을 아버지께서 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아버지께서는 말할 수 없이 불쌍한 분이신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 아버지 앞에 심정적으로 염려가 되는 저희들은 천만번 죽어도 마땅하오나, 이제는 하나의 제물이 되어 당신의 뜻앞에 고인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하나의 자식이라고 외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탕감의 제물로 몽땅 바쳐질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통일의 자녀가 가야 할 길이요, 승리의 길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세계 곳곳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일깨워 주시옵소서. 그들에게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거든 그 마음으로 민족을 사모하게 하여 주시옵고, 스승에게 충성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으로 아우성치는 세계 인류의 슬픈 운명을 책임지겠다고 몸부림치는 통일의 자녀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금년도 반이 지나가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다시 면목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이 나라의 절박한 정세와 아시아에 있어서 고아와 같은 신세에 놓인 이 슬프고 처량한 모습을 잊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저희 자신들은 낙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나라와 이 민족은 망하더라도 세계는 남아질 수 있을 것이오니, 이 민족이 망하더라도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에 저희들은 정성을 다하고,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께서 내리신 국가적인 책임을 부여받은 자로서 새로이 각성하고 결심하는 이 아침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당신이 사랑하는 일본의 어린 딸들이 여기에 왔사옵니다. 그들이 무엇을 느꼈는가를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고, 그들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에 왔다 가는 이 길이 일본에 도움이 되고, 아시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발걸음이 되기 위하여 거룩한 아버지의 제단에 끝까지 정성을 바칠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 민족을 중심삼고 아시아에 진출해야 할 뜻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 섭리 앞에 선도적이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귀중한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각자 각자를 아버지께서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