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19 to 32-342: 생사의 한계

생사의 한계
1970.07.28 (화), 한국 전본부교회

32-319
생사의 한계
[기 도]

복귀섭리의 노정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앞으로 가야 할 싸움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을 절절이 느끼옵니다. 오늘의 이와 같은 기준을 마련하시기까지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해 아셨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부족한 저희들은 마음을 모으고 옷깃을 여며야 되겠습니다. 행여 그런 당신의 현재의 입장을 동정해 드리지 못하는 불효자식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설 뿐이옵니다.

지금까지의 섭리노정에서 새로운 역사의 기원을 마련할 수 있는 기반을 남기신 아버지의 수고의 역로였사오나, 이런 아버지의 배후와 전후 좌우에서 아버지의 편이 되어 심정으로 그리는 하나의 소원을 갖춘 입장에서 아버지를 동정하고 위로하는 한 사람의 동지도, 한 사람의 아들딸도 없었사옵니다. 그 아버지의 모습이 얼마나 불쌍하고 얼마나 처량하였던가를 생각하며 오늘날 이와 같이 부끄러운 선조의 후손으로 태어난 자신들을 탄식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나이다.

아버지여, 저희들에게 슬픈 사실이 있다 할진대는 아버지의 슬픔에 의한 슬픔이 되어야 되겠고, 저희들에게 기쁨이 있다 할진대는 아버지의 기쁨에 의한 기쁨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간들이 자기들의 기쁨을 아버지의 슬픔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였던 것을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앞에 효도를 다 할 수 있는 조상들을 갖지 못한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선조들의 모든 부족한 것을 용납해 달라고 아버지 앞에 호소할 수 있는 입장에 처해진 것만도 감사하옵나이다.

아버지, 당신은 천만번의 수난의 길 가운데에서도 인내하는 마음을 가다듬어 나오셨습니다. 거듭되는 고난의 역사시대를 거치면서도 그 시대마다 참으시기를 생활의 천리로 삼아 나오셨사옵고, 희생하기를 생활의 표준으로 삼아 나오셨사옵고, 밟히고 치욕당하는 일을 하나의 낙으로 삼아 나오셨사옵니다.이런 아버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이 이상 원통한 것이 없음을 느꼈사옵니다.

그러나 수많은 인간들 중에서 보잘것없이 쓰러져 가는 이 무리들을 아버지께서 수습하여 놓으시고, 이들을 바라보시며 원대하고 방대한 섭리의 목적과 우주사적인 사명을 감당해 주길 바라시는 것이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마음임을 아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세계에서 훌륭한 나라를 찾는 것이 아니라, 불쌍한 이 민족 가운데에서 불쌍한 저희들을 찾는 것이옵니다. 저희들에게 아버지의 전체의 시선과 전체의 심정이 향하여 있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몸둘 바를 모르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명 앞에 선 저희들이 아버지의 동정을 받고, 아버지의 염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도 두려운 사실인 것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오늘날 나라는 개체는 나 자신 하나만이 아니라 역사과정의 시대 시대를 거쳐오면서 역사적인 실체라고 부르고 그리워하시던 그 모습인 것을 알게 될 때에,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하신가를 다시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것을 느낄 줄 모르는 불쌍한 자식들이 되었던 것을 다시 한 번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과거의 인연만이 아니라 현재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혼탁한 세상, 혼란된 역사적인 모든 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밤낮으로 권고하시며 채찍질하시옵는데, 이 세상에는 그런 아버지의 딱한 사정을 위로해 드릴 자가 없는 것을 다시 한 번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의 통일교단의 창설은 아버지의 수고와 피와 땀과 눈물의 보답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진정으로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이러한 터전을 유린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경거망동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 시간 저희들이 여기에 모인 것을 당신이 잘 아십니다.

저희들에게 귀한 것이 있다 할진대 그것을 당신이 다 가져가시더라도 저희들은 한탄할 것이 없습니다. 이 땅 위에 자랑하고 싶은 그 무엇을 당신이 몽땅 빼앗아가도 저희들은 염려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온전히 아버지만이 기쁠 수 있는 일이요, 아버지 앞에 플러스 될 수 있는 일이라 할진대는 천번 만번이라도 그 일을 자랑하여야 할 저희들인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기간을 통하여 역사시대를 거쳐오시던 아버지의 슬픔의 환경을 다시 한 번 회상해야겠습니다. 통일교회를 반박하는 수많은 무리들이 저희들을 대하여 갖은 말로써 비판하는 기간도 될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지만 비난의 화살을 문제삼지 않고 당신의 마음 앞에 위로의 대상이 되어 현재 처해 있는 민족의 한스러운 입장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아시아의 어려운 고빗길을 저희들이 붙안고, 세계의 종교를 붙들고 아버지 앞에 책임을 지고 희생의 길을 가야 할 것이 아들딸의 사명이며 이제 그 길이 열린다 할진대는 어떠한 수욕이 있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하겠습니다.

아버님, 저희들에게 귀한 것이 있다면 그 귀한 것은 당신을 위한 것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모든 생명이 당신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이기에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순응해야 할 것이 아들딸의 도리인 것을 다시 한번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날은 당신이 이 땅 위에 보내셔서 수난의 생애를 거치고 고생의 길을 가게 하신 한 아들과 최후의 작별을 하는 날입니다. 여기에 모인 자들의 마음 마음을 당신이 수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세계의 정세로 보나, 아시아의 정세로 보나, 한국의 정세로 보나 최후의 정세를 펴는 이런 시점에 있어서, 아버님은 반드시 사랑하는 그 무엇을 대가로 치르더라도 이 나라 이 민족은 물론 이 세계 복귀섭리 앞에 좋은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서슴지 않고 행하실 것이옵니다.

그러기에 그 일을 위하여 감사할 수 있는 무리가 되는 것이 여기에 모여 무릎을 꿇은 당신의 자녀들의 소망이옵니다. 저희들은 이 일을 위해 큰일을 당할 때마다 아버지가 사랑하시는 가정에서부터, 사랑하시는 교회에서부터 이런 일이 있으며, 이것이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에 기념될 수 있는 하나의 엄숙한 시점인 것을 아옵니다. 하오니 오늘 영영 이 땅에서 사라져 간 당신의 아들을 당신의 품에 고이 품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는 이 땅에서 참되게 싸워 한을 풀고 결실할 수 있는 한날을 위하여 모든 정성을 다 들였습니다. 식구들 또한 그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들였으나 당신의 뜻이 있는 연고로 갔사옵니다. 그가 이렇게 간 것을 당신 앞에 맡긴 것으로 생각하면서 기쁜 마음을 가지고 간 아들의 앞길을 축원하는 것이 남아 있는 저희들의 사명이요, 또한 그 아들이 이 당에 남기고 간 일에 책임져야 할 것이 남아 있는 저희 형제들의 사명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이 민족에 대한 책임을 위해 나라 대신으로 세워서 역사시키고자 하셨던 그 아들이 갔으니, 이 시간 여기에 모인 아들딸들은 마음속 깊이 간 협회장을 대신하여 각자 자기의 처소에서 맡은 책임을 다하기에 누구한테도 지지 않겠다고, 온갖 정성을 다 들이겠다고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여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간 아들을 위하는 길이요, 그 아들이 이 땅 위에 남기고 간 일을 상속받는 길이 될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그럴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겠다고 스스로 아버지 앞에 결의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땅의 일들은 저희들이 책임지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진군할 것을 결의하옵니다. 영계에서도 그 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 아들을 세우시어서 갈라진 영계와 육계의 중간역할을 하게 하심으로써 이 민족과 이 세계의 모든 어려운 문제를 막아냄은 물론, 수많은 영인들을 지상에 동원시켜 새로운 역사의 기반을 닦는데 도움이 되는 직접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모든 것을 오늘 이 시간을 기하여 자녀들이 바라고 있사오니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통일의 새로운 역사적인 인연이 온 영계를 수습하여 원수들이 바라는 그 세계를 선의 세계로 복귀함에 있어서, 선한 영들을 동원하여 악한 영들을 수습하는 일선에서 안팎으로 갖추어 싸우는 데 있어서 협조하여 줄 수 있게끔,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에게는 남아 있는 사랑하는 딸과 자라고 있는 어린 아들들을 당신이 원하시는 뜻 앞에서 사랑하는 딸과 귀여운 아들들로 길러 아버지 앞에 바쳐야 할 책임이 있사오니, 유협회장을 위하는 마음으로 남아 있는 딸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들이는 무리가 많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본부를 책임 맡았던 그가 그 모든 전체를 남기고 갔기 때문에, 지방에 있는 식구들은 각자가 맡은 부서에 대한 책임감을 배가로 가짐으로 먼저 간 협회장의 일을 덜어 드리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내일의 싸움터를 향하여 저희들은 또다시 진군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사오니, 이들에게 새로운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적 노정은 기필코 탕감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 다가오는 운명의 한때를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이 7월을 중심삼은 안팎의 절기가 영원의 절기로써 잊혀지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우리 협회에 새로운 소망과 희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사적인 새로운 인연이 연결되어 천상의 인연과 일치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민족과 아시아에 새로운 인연이 출발하는 하늘의 내적 기반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아들의 영원한 생명의 인연을 아버지 앞에 맡기었사오니, 그로 하여금 땅 위에 있는 모든 염려를 끊게 하시옵고, 영계에서 아버지의 명령에 의해서 전체의 책임 수행에 충성을 다하게 하시옵소서. 땅에서 하지 못한 것을 영계에서 완결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책임을 지고 더욱 모범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땅 위에 남아 있는 저희 형제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무리가 아니옵니까? 저희들이 땅에서 사는 이 한 기간은 아기가 복중에서 자라고 있는 기간과 마찬가지의 기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들이 슬퍼하는 그 죽음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육적 생애를 떠나서 영원한 생애로의 새로운 출발이요, 영원한 세계에서의 새로운 탄생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며, 이 길은 어느 누구나 기필코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이와 같은 기간을 새로운 계기로 삼아서 자기 자신이 어떠한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가느냐 하는 문제를 심사숙고하여 스스로 갈 길을 닦음으로 지상에서 온갖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새로운 본보기 노정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으면서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당신의 자녀들이 슬픈 마음을 품고 이날을 지내고 있사오면, 그 마음을 당신이 직접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해외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비보를 듣고 이 한국을 향하여 눈물로써 기도하면, 천만 배의 복으로 그들을 위로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외로이 눈물짓는 눈물이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위하는 눈물일 때, 그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이들이 눈물짓고 가슴 아파하는 모든 사실들을 천정의 인연이 저희 민족과 세계 인류에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동기로, 하나의 조건으로 삼으시옵소서. 그리하여 지상복귀의 인연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아버지의 활동의 터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뜻을 더 염려하여야 되겠습니다.

뜻을 더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간 아들은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이제는 안심하고, 그 아들을 생각하는 이상 뜻을 위하여야 될 책임이 저희들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아옵니다. 민족 복귀라는 거룩한 과제가 저희 앞에 다가온이 70년대는 통일의 운세가 뻗어 나가는 시대이옵기에 10월까지 정성들이는 기간에 여러 가지 복잡한 고빗길이 있을 줄 예상하였사옵니다. 지금 이것이 이렇게 사실대로 나타나는 것을 볼 때에, 탕감의 법도는 어길 수 없는 것을 저희들이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이와 같은 노정을 느끼면 느낄수록 오늘 저희의 불충이 자기 자신에게 미쳐지는 것만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후손과 민족과 세계 인류 앞에 미쳐질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분부와 명령에 대해 가일층 책임을 느끼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기준 앞에 어긋날까봐 온갖 지성과 심혈을 기울여 노력하는 자녀들이 되어 내적 결의와 외적 결의를 다짐할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사랑하는 통일교단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소서. 이 교단을 지도하는 것은 문 아무개도 아니요, 그 누구도 아니옵니다. 오직 당신이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이 교단을 이끌어 오셨으며 이 교단은 이끌림을 받아 가지고 나오던 노정이 50여년을 지나 이와 같은 자리에 선것을 생각할 때에, 제가 아버지 앞에 면목없어 함을 아버지께서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가야 할 고빗길이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 저희들의 십자가가 가중되어 있어 아버지 앞에도 저희들과 더불어 가지 않으면 안 될 어려운 고비의 행로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저희들은 하루하루 마음 조이면서 아버지 앞에 동정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을 알고있습니다.

당신이 동행하시사 이 통일교단의 운명을 당신이 맡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이 교단인 것을 알기 때문에, 당신이 전권을 가지시옵고 중심이 되시옵소서. 내일부터 또 가야할 길로 저희들을 채찍질하시어 내몰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민족을 복귀시켜야 할 사명을 앞에 놓고, 세계를 대신하여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앞에 놓고 몸부림치며 가야할 행로 앞에 당신이 눈물짓는 일이 없도록 저희는 정성에 정성을 가하여야 되겠습니다. 충효의 도리를 다하여야 되겠습니다. 아침과 저녁을 구분하지 않고 자기의 생애를 다하여 이 길을 달려가고 또 달려가는 충효를 남기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와 같이 인도하시는 아버지의 교단에 속한 당신의 아들딸들은 자기를 위하여 생각하는 것을 초월해야만 되겠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생각하는 길은 막히는 길이요, 자기를 세우는 길은 죽음의 길이오니 그러한 길에 처하는 무리가 없게 각자의 마음에 겸손이 동하게 하시옵소서. 또한 충성의 마음을 일깨우셔서 당신께서 승리하시는 그날까지 그 마음이 지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절개와 기개를 각자의 생애노정 위에 남기게끔, 아버지께서 공고히 붙들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방에 있던 당신의 아들딸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인간들이 추모하는 것과 같은 슬픔의 추모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역사노정에는 이와 같은 날들이 수없이 많았겠지만, 오늘 저희들은 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이 날을 맞이하여 새로운 역사의 인연을 새로운 터전 위에 세워야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사람이 가는 모습을 보여 주어 땅 위에 증거하고도 남음이 있게 아버지의 협조의 인연을 공고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70년대를 당신이 맡으시옵소서. 이 나라를 염려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를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이 나라를 책임질 사람은 저희들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이 이 나라를 책임져야만 되겠습니다. 당신이 가신 십자가의 길은 저희들을 위한 길보다 더 큰, 이 나라를 위한 길이었사오니, 이 나라를 위한 십자가의 길은 저희에게 맡기시옵소서. 그 십자가의 길은 찾아가게끔 밤낮으로 당신이 몰아내는 데 있어 저희들이 지치지 않을 마음의 친구가 되고, 생활의 동지가 되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나라의 모든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저희에게는 이 나라뿐만이 아니라 아시아를 책임질 사명이 있는 것이요, 이 세계를 책임질 사명이 있는 것을 잘 압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때에, 이번에 간 아들도 생전에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기준 앞에 100퍼센트 도달하지 못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성격적 결함이 있었던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과거의 모든 잘못을 아버지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아들딸들이 여기에 부복하여 바라고 있사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번에 간 아들을 이 민족을 대신한 제물로서, 또한 인류가 지니고 가야 할 십자가의 행로를 대신 갈 수 있는 영광의 동참자로서 환영하여 주시옵고 사랑해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에게 슬픈 것이 있다면 당신이 원하시는 뜻 앞에서 그 아들을 중심삼고 일을 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보다도 더한 당신의 뜻이 있기 때문에, 참으로 억울하고 섭섭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당신을 바라보며 나아갔사옵니다. 당신이 지금 저희와 함께 있기 때문에 그는 갔어도 우리와 같이 있는 것이요, 이 자리에 없더라도 저희들을 협조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내가 바라는 모든 뜻을 이루고 당신의 뜻 앞에 선두에 서서 달려가야 할 한날을 위하여 다시 결의할 수 있는 이 시간으로 맞이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엎드린 당신의 자녀들이 10년, 혹은 20여년을 아버지의 뜻을 따라 나왔다고 하지만 천륜 앞에 책임 다하지 못한 것을 무어라 말로 할 수없사옵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그러한데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섭섭한 것이 많으셨겠습니까? 용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를 위할 수 있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여 민족 해방의 서광을 통일교단에 비출 수 있도록 새로운 기치를 들고 나서는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잊을 수 없는 지난날들의 추억과 더불어 연상되는 모든 사연들이 하늘가는 길 앞에 방해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히려 하늘 가는 길앞에 참이 되고 하늘의 동지들 앞에 힘이 되고, 하늘의 뜻 앞에 공고한 터전이 되어 당신이 만날 아들딸 앞에 충성의 아름다운 미를 단장할 수있는 인연들로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는 철부지한 어린애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손길로 따듯이 맞아주시옵소서. 자기가 죽을지 살지 모르는 길에서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애가 되어 곤욕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가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의 손에 붙들려 가지 않겠다면 끌려라도 가고 채찍질을 당하면서라도 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될 것을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땅에서의 여생을 당신과 더불어, 당신이 원하시는 책임과 더불어, 당신이 역사시대에 있어서 기뻐할 수 있는 섭리적 터전과 더불어 힘차고 가치 있게 살게 하시옵소서. 당신 앞에 염려의 대상이 되지 않겠다고, 효가 무엇이며 충이 무엇인지를 헤아릴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새로운 결의를 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 자리에는 축복가정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아버지여, 36가정에게 세계사적인 책임을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책임하지 못하였던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72가정, 124가정들도 여기에 모였사오며 430가정도 참석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축복가정의 권위와 위치가 얼마나 엄청나고 두려운 것인가를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가정으로서의 긍지와 가정으로서의 고귀함을 지니고, 사탄 앞에 권위를 가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내세워 자랑하고 칭찬할 수 있는 가정의 일원들이 되겠다고, 아버지의 사정과 동정이 영원히 깃들 수 있는 눈물어린 심정의 터전이, 보금자리가 되겠다고 새로운 결의를 하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여기에는 축복가정이 아닌 식구들도 많이 모였사오니, 당신이 허락하신 뜻앞에 있는 그들의 마음을 아버지, 뜻 안에 품으시옵소서. 새로운 시대에 남은 싸움터를 지키고 각자 맡은 바의 책임 수행에 있어서 아버지가 명령하는 것 이상의 명령을 수행하기에 온갖 성심과 성의를 다 기울일수 있게끔 힘을 가하여 주시고, 이끌어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참부모의 이름을 통하여 참다운 자녀들이 하나 돼야 하겠고, 참다운 가정을 중심삼은 수많은 축복가정들과 수많은 통일의 무리들이, 한국을 중심삼고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계의 혼란기를 수습해야 할 천적인 인연을 꼭 붙들고, 죽든지 살든지 승리의 그날까지 저희들은 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저희의 소원으로 알고 일체가 되어서 모든 전체를 바치는 제물이 되더라도 이 기준을 남기고 가겠다고 총결의할 수 있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로써 슬픔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이제 사흘만 지나면 희진 애기가 갔던 양력으로 8월 초하루가 됩니다. 이번 기간내에 되어진 모든 사실들이 안팎으로 슬픈 일이었지만 그 모든 전부를 이 민족의 한 고비로서, 이 세계의 어려움을 밟고 넘어갈 수 있는 한 계기로서, 아버지, 인정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천상의 인연을 따라 살 수 있는 지상의 인간들이 되어서 새로운 소망을 그 마음에 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소망의 천국을 그들이 사는 터전 위에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전부를 당신 앞에 맡기 올 때,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

32-329
말 씀
이 시간 여러분 앞에 잠깐 말씀드릴 제목은 `생사의 한계’입니다. 오늘과 같은 날을 맞이할 적마다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허무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젊은 사람들은 앞으로 일생을 어떻게 살다가 종말을 맞을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했으리라고 봅니다.

32-329
인간의 비극이 청산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과거로부터 현재는 물론이요 후세까지 하나 알아야 할 것이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은 병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땅 위의 인간들의 일과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상반된 환경에서 가려져 나가고, 또 발전되어 나간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극이요, 인류의 비극입니다.

만일에 인륜을 중심삼고 가는 길이 하나의 원칙에 방향을 갖추어 나가 천륜과 보조가 맞는다면, 오늘 인간 세상에 되어지는 모든 기쁨은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이요, 인간 세상에 되어지는 모든 슬픔은 하나님의 슬픔이 될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우리 인류 앞에 기쁨과 슬픔을 같이 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기쁨을 위에 두고 슬픔을 반응적인 것으로 두었을 것입니다. 실체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높은 산이 있으면 골짜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필요한 자극의 요인으로 삼기 위해서라면 필요할는지 모르지만, 그 기쁨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슬픔을 주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지 못한다고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를 붙들고 오늘날까지의 인류 역사를 물어 보더라도 인간의 생활은 비극이라고, 인류가 살아 나온 역사 그 자체가 비극이라고 말하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에게 물어 보더라도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고, 그러한 역사시대를 우리 선조들 역시 살다가 간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역사가 엮어져 나왔다면 시대의 환경을 감싸 가지고 새로운 역사시대, 미래로 향하는 이 순간에 있어서 내일을 어떻게 되어질 것이냐?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슬펐던 모든 것을 내일에 슬픔으로 넘겨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소원일 것이냐? 땅 위에 어떠한 뜻을 품은 사람이 있다면 그도 그 슬픔을 자기 대에서 종말짓고 싶지 자기 후대에 넘겨주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단체적으로, 가정적으로도 그럴 것이며, 그 한계는 천태만상일 것입니다. 그러한 한계가 있더라도 양심을 가진 사람은 그 한계권내에서 스스로 선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천성의 인연을 이어받은 우리들의 자연적인 심상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이 비극의 역사, 슬픔의 모든 요인을 내 일대에서 막을 길이 없겠느냐? 내 일대에서 안 되면 우리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막을 길이 없겠느냐? 가정으로 안되면 우리 친척이면 친척, 씨족이면 씨족, 종족이면 종족을 중심심아 가지고 막을 길이 없겠느냐? 그것으로 안 되면 어떠한 다른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막을 길이 없겠느냐? 민족을 통해서도 안 되면 어떠한 하나의 주권국가를 세워서라도 막을 길이 없겠느냐? 이것은 선한 미래를 남기고 싶고, 기쁘고 행복한 미래를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중대사가 아닐 수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슬픔의 역사가 미래에까지 지속되기를 과거에도 생각하지 않으셨고 현재에도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비극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서슴지 않고 `오냐, 남기고 싶었던 소원의 실체가 나타났구나!’ 하시며 역사를 들어 맞이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나타났다면, 그 가정 앞에 세계의 슬픔을 다 책임지워 주고, 그 가정 앞에 전부를 맡기고 싶으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럴 수 있는 씨족이 있으면 그 씨족 앞에 맡기고 싶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미래에 이러한 원한의 터전이 남아지기를 원치 않으니 자기들에게 그런 화를 막아내는 책임을 지워달라고 하는 민족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민족 앞에 서슴지 않고 슬픔으로 엮어온 역사를 몽땅 책임 지울 것입니다. 하나의 민족을 제물삼고, 하나의 국가를 제물로 삼더라도 하나님은 당장에 그슬픔과 어려움을 그들 앞에 맡기고자 하실 것입니다. 그 민족이 죽어 가는 입장이 아무리 슬프고, 아무리 보기에 끔찍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가고 싶으신 아버지의 내심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32-331
하나님께서 중심인물, 중심종교, 중심민족을 세우신 뜻
그러면 그러한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선민을 택한 원인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이스라엘 선민을 세운 것은 세계적인 행복을 최후에 누려 가지고 역사의 슬픔을 대신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역사적 행복을 누리라고 하나님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민족을 앞세워 가지고 최고의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독자적인 주권을 중심삼은 행복의 터전 위에서 그들만 행복하고, 그들만 기쁠 수 있는 자리를 맺어 주기 위해서 세운 이스라엘 선민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종교를 세운 원인이 어디 있느냐? 그럴 수 있는 참된 하나의 모습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한꺼번에 찾아지지 않기 때문에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종족의 배후를 더듬어 가지고 하나의 모습을 길러 나오는 것입니다. 온상의 터전을 마련하겠다고 그 민족 나름대로 가는 모든 정성의 도리를 가려 주기 위해 하나님은 수많은 종교를 키워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교인들은 역사적인 슬픔을 책임질 수 있는 소원의 한 개인, 소원의 한 종족, 소원의 한 민족, 소원의 한 국가가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신앙을 하고 정성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런 책임을 짊어진 종교가 어디 있었느냐? 내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그런 종교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유대교도 그러지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유대교를 다시 새로운 차원으로 높여 가지고 그것을 개인에게 계승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당신의 아들로 보낸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아들은 이 땅 위에서 영광의 보좌 위에 올라가기 전데 만민의 슬픔과 역사의 역로를 순탄한 행복의 터전으로 마련할 수 있는 길을 가리기 위해서 왔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입장에서 이 땅 위에 오셨지만, 그 뜻을 세우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 뜻을 믿고 나오는 수많은 성도들 중에 자기 개인의 구원을 되찾겠다고 자진하여 죽음길을 찾아간 사람들은 많았지만, 하나님의 찾고 있는, 역사와 시대의 슬픔을 책임질 수있는 하나의 옥동자, 미래의 수난을 책임질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남아야 된다는 소원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순교한 열사들이 역사시대에 있었느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로서 지금까지 피를 뿌려왔고, 수난의 역로를 거듭해 왔다고 하지만 역사의 종말시대에 그럴수 있는 한 사람이 지상에 나타나지 않는다 할진대는 하나님 이상 불쌍한 분이 어디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종교를 수습하여 이제는 4대 종교의 형태를 남겨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말세의 한계선까지 몰아내 온 기독교 앞에 역사적 슬픔은 물론, 시대적 슬픔과 미래에 다가올 슬픔까지 몽땅 책임 지우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의 슬픔을 하나님 대신 안고 세계 전체를 책임지고, 우주 전체를 책임지고, 인류의 전후 안팎을 전체를 책임지고서 이 슬픔의 역사를 탕감하겠다고 할 수 있는 아들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맞을 수 있는 준비도 하지 못하고 있는 기독교를 볼 때, `하나님은 과연 불쌍한 분이구나’하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32-332
생사의 한계점이 결정되지 못한 현시점
오늘 이런 날을 맞이하여, 나는 옛날에 하나님 앞에 맹세했던 것을 다시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노정에 있어서 그 누구도 모르는 이런 사명을 책임 지을 수 있는 아들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 아들이 누가 되겠느냐? 통일교회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그 책임을 짊어지기 위해서 나왔느냐? 나는 사실 그러려고 나왔다 이겁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럴 수 있는 한날을 고대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길을 가는 도상에서 우리 협회가 해야 할 책임은 하나님 앞에 짊어져 있는 슬픔을 만족을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여 짊어지는 것입니다. 아들의 그런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나가는 길에는 상대적인 환경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으로서 책임질 수 있는 완전한 한계점을 결할 수 있는 것이요, 사망권 앞에 생명의 기준을 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 한계점이 아직까지 결정되어 있지 못한 것을 볼 때, 여기에는 상대적 환경에 그런 탕감의 제물적인 조건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내가 뜻을 받들고 나가는 데 있어서 가정이나 단체, 또는 아들이 그와 같은 자리에 나가는 것을 볼 때, 나는 슬퍼할 수 없습니다. 슬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찾아 세우려는 것은 슬픔의 역사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쁨의 역사를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당할 적마다 가일층 이 비정한 환경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울부짖고, 내일의 역사에 슬픈 내용 모두를 전부 책임지겠다고 결의하고 다짐해야 되는 것입니다.

협회장이 갈 곳을 놓고 이미 오래 전에 아버지 앞에 내가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눈물의 기도를 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요, 죽기를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아버지의 뜻이 죽어서는 안 될 것이요, 아버지의 사명이 죽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죽더라도 아버지의 뜻은 살아야 되겠고, 우리가 희생되더라도 아버지의 뜻은 남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에, 아들이 천만번 죽더라도 뜻을 살리는 길이 있다면 그 죽음길을 기쁨으로 보내야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겠다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나 자신을 스스로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올 때가 왔구나!’ 하며 하나님은 정말 슬픈 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아들이 60년대에 불구의 몸으로도 뜻을 중심삼고 정성을 다 들이겠다고 몸부림친 내적 고충, 외적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내가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인상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필생에 내가 저 아들을 대신하여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불구의 그 신세는 면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가 하루라도 건전한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다운 모습으로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루만이라도 기쁜 얼굴로 웃는 모습을 보면 한이 없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수술을 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또 뜻이 찾아 나온 모든 역로를 헤아려 볼 때, 그가 피를 흘려야할 때인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한 수난의 행로를 책임지고 선생님의 명령에 의하여 입원하였다가 선생님의 뜻을 중심삼고 갔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 협회가 가야 할 수난의 노정에 있어서 전체는 안 되더라도 한 부분의 슬픔을 대신하여 책임지고 가는 아들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그가 낫기를 간절히 기도할 수 없는 나 자신인 것을 느끼며 하나님 앞에 맡기고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왜? 광활한 이 세계를 맡기 위해 세계의 슬픔을 남겨서는 안 될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32-334
탕감원칙에는 용서가 없다
오늘날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단체적으로, 국가적으로, 아시아적으로, 세계적으로 책임져야 할 수난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작년 동계 기간에 축복가정 부인들을 내 보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탕감의 원칙에는 용서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나에게도 용서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50여년 평생을 살면서 내가 사랑하던 친구들을 다 데려갔습니다. 내가 사랑하던 동생들도 다 데려갔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가 하나님보다도 그들을 더 사랑하는 입장에 서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이번 기간을 통해서 느끼고 반성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도 전에 내가 먼저 협회장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랑이 하나님께 짐이 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그가 간 것에 대해서는 이미 하나님 앞에 맡겼기 때문에 미련을 안 가지려고 청산지은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생사의 한계점이 어디서부터 결정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역사시대의 한을 누가 어떻게 청산지어 주며, 그 어떤 민족이, 그 어떤 나라가 청산지어 주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짓지 않고는 이 사망권에 생명권을 이루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축복받은 가정들 중에 60년대와 70년대에 있어서 각자의 가정을 중심삼고 염려한 가정이 있었을는지 모르지만, 자기 가정만 염려한다고 해서 그 가정이 수난의 길을 쉽게 해결할 도리는 없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들은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염려해서 그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가정보다도 민족을 생각해야 되고, 자기 가정보다도 세계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는 이 슬픈 역사를 탕감해 버릴 수 있는 개인을 찾고, 가정을 찾고, 종족을 찾고, 민족을 찾고, 국가를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셨는데 그들이 책임을 못하여 잃어버리자 기독교를 세우셨고 그 또한 책임을 못하고 잃어버리자 제3이스라엘의 기반을 위해 민족적 생명권에 한계선을 그어 놓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단체가 어떤 단체냐? 오늘날의 기독교회도 아니요, 불교도 아닙니다. 이 땅 위에 있는 그 어떤 종교 단체도 아닙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그건 우리 통일교회가 아니고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모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2-335
역사적인 슬픔을 책임지는 아들딸이 되라
하나님이 찾고 있는 것은 세계사적인 슬픔을 탕감시키고, 수난의 역사의 슬픔을 해소시킬 수 있는 가정들을 규합하여 종족을 편성하고, 그런 종족들을 규합하여 민족을 편성하고, 그런 민족을 규합하여 편성한 나라, 즉 세계적인 화를 막는 제사장의 사명을 할 수 있는 한 나라인 것입니다. 이런 책임을 질 수 있는 국가 형태를 누가 만드느냐? 이것은 우리 통일교회밖에는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 길을 다 가기 전에는 우리에게 돈이 있어도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그 뜻과 그 목적을 위하여 갈 수 있는 아들딸을 갖지 못했다면 그것은 한입니다. 즉, 그 뜻 앞에서 그런 아들딸을 갖지 못하면 한이 될 것이요,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그런 아들딸을 갖지 못하면 축복받은 가정이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도리어 역사적인 한을 매듭짓기 위한 노정을 슬픔과 불행으로 가는 가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희생되고 한 가정이 희생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라는 하나의 종단이 희생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라는 종단은 희생되더라도 민족이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 앞에 승리적 제사장권을 차지할 수 있는 민족을 남기기 위해서는 하나의 종단이 희생해야 되는 것이 철칙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천신만고의 수난과 역로의 행로를 감사에 감사의 심정으로 소화시켜 나가며 그날 그날을 이 민족의 행방을 위하여 정성껏 충성하는 생을 지니고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보람있는 생활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민족과 국가라는 하나의 형태를 세우지 못하게 될 때는 아무리 몸부림치고, 아무리 수고했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한 종족, 그러한 민족이 되었다 해도 국가로 못 올라가면 안 됩니다. 그러면 민족에서 국가까지 누가 책임을 계승받아 가지고 나갈 것이냐? 한 종단이 그것을 책임하지 못하게 되면 그 시대에서는 할 수 없습니다. 다시 재림역사와 마찬가지의 역사를 하여 재탕감이라는 비운의 역사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그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손에 손을 잡고, 마음에 마음을 합하여 그런 역사적인 슬픔을 막아낼 수 있는 개인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의 소원을 책임질 수 있는 아들이고 딸이라고 하며,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한 아들과 딸이 합하여 하나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밤잠을 못 자며 갖은 수욕과 극난에 부딪히는 한이 있더라도 나서야 합니다. 여기에서 그 아들은 죽더라도 그것은 슬픔으로 말미암아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탕감으로 말미암아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정의 인연에 말뚝 박고 죽지 않으면 거기에 종족의 터전을 넘어 민족의 터전을 남길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2-337
뜻을 위해 희생되는 자녀를 놓고 슬퍼하지 말자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까지 선생님을 따라 나왔습니다. 1964년도에 들어서면서 협회장한테 교회를 맡겼습니다. 내가 지금 거쳐가야 할 길은 개인의 길이 아닙니다. 가정적인 시대를 맞아 역사적인 비운의 가정적 환경을 기쁨으로 소화하고 종족적 슬픔권을 맞이해야 할 책임을 졌기 때문에, 그 인연을 가리기 위해서 그 누구도 모르는 내정적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혼자 싸워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이것은 협회장도 몰랐을 거예요. 가까이 있는 그 누구도 모르는 심정을 지니고 나왔던 것을 이 시간 여러분 앞에 말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가정에, 우리 부락에 천 사람 만 사람이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혹은 애기들이 죽어가는 일이 이더라도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그럴 때 오히려 인류를 위해서 역사적인 원한을 막아낼 수 있는 가정으로 서지 못할까봐 염려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작년에 희진이가 갔습니다. 희진이가 전도 나가기 전에 원리 말씀을 다 듣고 하는 말이 `한국에 주님이 오시다니, 우리집에 그런 일이 있다니….’라고 하면서 마룻바닥에서 뛰며 좋아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때, `오냐 내가 하나님 앞에 효도하지 못한 것을 희진이가 대신 효도하여 하나님이 보시고 위로 받을 수 있겠구나. 네가 그런 마음 바탕이라도 가졌구나’ 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작년 여름에 축복 받은 가정 전체를 동원하라고 명령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축복가정 전체가 동원되지 못했습니다. 그때 희진이가 `식구들이 가지 않으니 나라도 가야 되겠다’고 하는 말을 내가 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남기고 길을 떠난 뒤에 내가 식구들한테 `역사시대에 한 번밖에 없는 거룩한 이 시대에 하나님 앞에 제일 첫번 제물되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씨족은 복받는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런 일을 회상하면서 희진이가 갔을때 `하나님이여, 우리 가정에서 그럴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은 내가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가정의 기쁨입니다’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 가는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오늘날 이 스승이 가야 할 길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피곤한 발걸음을 거두어 다시 몸을 수습해 가지고 내일의 민족과 내일의 국가와 내일의 세계를 염려하는 마음을 품고서 피곤한 무릎을 꿇고 호소하여야 할 사명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내리는 날이나, 혹은 외로운 환경이 지나가기 전에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자리에 누워서 자는 것이 내 소원이 아닙니다. 앞으로 이루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필생에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출발할 때의 결의를 아버지 앞에 민족과 더불어 다했다고 할 수 있는 그날에 있어서 과거를 돌아보면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 내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부끄러움 없이 얼굴을 들고 아버지 앞에서 자연스런 몰골로 호소할 수 있는 그 한마디를 하는 것입니다. 철들어서부터 지금까지 영어의 신세를 거치고 투쟁의 일생을 거쳐오면서 이것을 신조로 삼아 왔던 것을 여러분이 이날을 기해 마음 깊이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32-338
하나님의 기쁨과 위로의 대상이 되려면
우리는 가야 됩니다. 우리는 울어야 할 자리에서 울 수 없는 사람들이요, 가슴을 쳐야 할 자리에서 가슴을 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불쌍하다면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쌍한 하나님이 동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협회장이 가면서 여러분 앞에 선물로 남긴 것입니다. 나는 그가 이 이상 더 큰 일을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눈을 뜨면서 이 민족을 붙안고 통곡해야 될 것이요, 아시아와 세계를 붙안고 통곡해야 되겠습니다. 이 나라와 온 세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책임 다하지 못한 입장에서 좋은 옷을 입고 나서게 될 때는 부끄러워 얼굴을 숙여야 되고, 또 첫 걸음을 내디딜 때에는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고 나서는 걸음이어야 합니다. 그런 삶이 축복가정들이 나라를 찾아 나가는 길이요, 이 민족을 이끌며 가는 길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민족의 사망선이 우리를 향하여 성난 사자와 같이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길에 있게 될 모든 비애와 처량한 모습을 지워버리고 이 땅 위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모셔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단단히 모셔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과 위로의 대상이 되려면 어떤 자리에 서야 되느냐? 행복한 자리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슬픔이 찾아오는 길에 서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세 번씩이나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알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가정의 아들딸이 귀합니까? 여러분의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귀합니까? 하나님은 그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부모의 입장에서 사랑을 가지고 평화의 동산, 자유의 동산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한날을 아직 맞지 못한 한이 민족 앞에 가려져 있고, 국가 앞에 가려져 있고, 세계 앞에 가려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자기 가정을 붙들고 자기 제단을 붙들고 자기 환경을 붙들고 통곡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로하며 가야 합니다. 그러면 최후에 도리어 하나님께서 슬퍼하는 아들딸을 붙들고 동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동정의 인연을 남기지 않는 무리는 남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32-340
천국 사람이냐 지옥 사람이냐가 결정되는 기준
여기에서 생사의 한계를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천국 사람이냐, 지옥 사람이냐는 무엇으로 결정되느냐? 하나님의 소원이 이 땅 위에 기쁨을 남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나 자신이 필생의 과업으로써, 또는 필생의 사명으로써 얼마나 기쁨을 남기기 위해 살았느냐? 얼마나 슬픔을 남기기 위해 살았느냐 하는 것에 따라 결정됩니다. 생애를 종결하게 될 때, 기쁨을 슬픔보다 더 많이 남긴 사람은 천국인이요, 슬픔을 기쁨보다더 많이 남긴 사람은 지옥인입니다. 이렇게 갈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뜻을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뜻은 이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을 이용하려고 하면 뜻은 여러분에게서 떠나가게 되고, 여러분은 사탄에게 먹힙니다. 사탄의 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70년대는 통일교회의 운세시대라 했습니다. 그때가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안 여러분들이 북녁 땅에 있는 김일성 도당과 혹은 북괴의 소유권을 중심삼은 소련과 중공이라는 이 거대한 사탄진영과 어떻게 대결할 것이냐? 여러분은 골리앗 앞에 나섰던 다윗과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이를 무서워하기 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중공과 소련을 무서워하기 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이 민족의 한을 풀기 위해 찾아온 천운 앞에 책임을 하기 위해 하나님을 붙안고 누구보다도 선두에 서서 생사를 각오하고 나설 수 있는 다윗과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이 문제가 승패를 결정할 수 있는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런 입장에서 이날을 맞이할 때, 협회장에게 그와 같은 자리에 쓰러지고 싶었던 마음을 생전에 가졌던 여러분도 그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민족과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시하고 뜻과 하나님 앞에 절대시하던 그의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민족을 마음으로 녹이고 세계를 그 마음과 심정으로 녹여 가지고 하나님의 염려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터전을 닦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민족을 사망권에서 해방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통일신도, 여기에 모인 여러분의 책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32-341
새롭게 결의하고 분발하라
여러분이 책임 못 하여 축복받고 태어난 아들딸에게 그 수난의 행로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들은 여러분이 축복을 받고 난후에 태어난 아들딸들이지만, 여러분들은 축복받기 전에 사탄세계에서 찾아온 자들로서 부모가 된 것입니다. 이런 자신들이니 하나님 앞에 깨끗이 제물되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분에게 맡겨진 책임을 수행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책임 여하에 따라 민족의 한과 세계의 한을 탕감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이 오늘날 우리들의 자신과 우리들의 가정과 우리들의 교회에 책임 지워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 젊은이나 노인을 막론하고 몽땅 하나되어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그들의 모든 환경과 사정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민족 해방, 국가 복귀라는 소원을 이룰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민족을 평화의 왕궁 앞에 세워 만민의 제단을 갖추어 가지고 슬픔을 엮어 나왔던 역사를 청산짓고 가겠다는 천주사적인 개척자요, 하늘의 용병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이 오늘 우리 통일교회 신자들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 이 슬픈 일은 우리 교회에서의 슬픈 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기쁨으로 맞이하여 내일의 창건이념을 새로이 갖고 연마해 나서는 데에 있어 하나의 표본이 되게 해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협회장이 길이길이 우리 생활권내에 살아 있을 것이요, 길이길이 우리 민족의 품 가운데, 역사적인 수많은 인간의 심정 가운데 살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여러분들이 다시 한번 재분발할 것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민족을 사망권내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한계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난의 길, 사망의 길, 골고다의 길을 거쳐오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펼 수 있는 하나의 경계선이 되어야 합니다. 6천년 유구한 역사시대에 전무후무한 시점에 놓여진 통일교회를 드높여 가지고 내일을 향해 전진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삼천만 민족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통일의 용사들이 되기를 여러분 앞에 부탁하는 바입니다. 그러기 위한 새로운 결의를 하기를 이 시간 여러분에게 바라면서, 여러분이 마음 가운데 다시 한번 다짐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32-342
기 도
아버지, 제가 협회장한테 한가지 하고 싶었던 말은 저를 만나 가지고 기뻐하던 그 기쁨을 죽을 때까지 갖지 못하고,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나타내지 못하고 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간 여기에 모인 통일교회 교인들 앞에, 살아남아 있는 이들 앞에 통일교회에 처음으로 들어와서 통일교회를 그리워하고, 선생님 만나기를 사모하던 그 마음을 영원히 갖고 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다시 묻고 싶은 마음이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교훈을 명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보고 싶어 죽고 못살겠다는 그 마음, 그리워 그리워 안타까워하는 그 마음, 아버지 앞에서는 그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 마음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화입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을 찾고 아들을 찾아야 될 것이요, 그 마음을 안고 자식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자식들 앞에 기쁨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이 이 민족의 사망권과 역사적 사망권을 가로막고, 생명의 권한을 책임질 수 있는 새로운 소망의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안 스승은 자신의 모습을 처량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사를 드려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 협회장을 통하여 당신이 얻은 것이 무엇이옵니까?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자랑하시옵소서. 없으면 저희들은 다시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저 자신도 그래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이 시간 그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용서해 달라고 또다시 비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아버지가 그립고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답답하고 깜깜한 밤중에 찾아 가다가 길이 막히는 절박감 가운데에 놓일지라도, 아버지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하여 외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사무칠 수 있는 경지에서 저희들은 즐겁게 넘어야 되겠습니다. 태양빛이 일시에 없어져 칠흑 같은 흑암에 사로잡혀서 `아이고, 나 살려라’하고 하늘 높이 외치는 자리에 있어서도, 아버지를 흠모라는 마음에 사무칠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그럴 수 있는 마음, 그럴 수 있는 생애, 그럴 수 있는 죽음을 남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 죽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30의 나이에 죽어도 어떤 자리에서 죽느냐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30여 년의 생애에 있어서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번 기간을 통하여 70년대를 힘차게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이 슬펐던 6월과 7월을 기쁨으로 보내고 힘찬 소망의 8월을 맞이하여 이 나라와 이민족, 이 아시아와 이 세계를 책임진 하늘의 용사들로서 당신의 통일의 깃발을 높이 들고 섭리적 통일전선을 형성하여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여기에 천군천사를 합하시어 사망의 적진을 쳐부수고, 생명의 봉화로 천국을 이 천지에 이루시옵소서.

새로이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기념되는 날이 있다면 오늘이 최고로 기념되는 날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도 그럴 수 있는 마음을 닦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에게 맡기오며, 참부모의 성호로 기도드려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