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37 to 32-284: 개척자의 사명

개척자의 사명
1970.07.19 (일), 한국 전본부교회

32-237
개척자의 사명
내일은 하계전도가 시작되는 7월 20일입니다. 따라서 내일부터는 여러분이 새로운 활동을 개시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32-237
하계 전도기간을 맞이해서 본 둘째 수의 위치
금년에 전도 기간을 척 맞이하면서 생각나는 것이 뭐냐하면, 작년 하계 전도 때의 희진이가 전도하러 나가다가 타계한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해 볼 때 금년 하계전도 기간에는 보다 보람 있는 활동을 여러분이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금년부터는 가정 전체가 동원돼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개인을 중심삼은 동원을 해나왔습니다. 즉 60년대에 활동했던 전체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개인을 위주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각자 각자가 지방에 나가 활동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70년대에는 60년대에 개인을 중심삼고 이루어 놓은 터전 위에 가정을 연결시키어 보다 발전할 수 있는 무대를 조성해야 하는 천적인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서 금년으로 넘어가는 지난 12월에 그런 섭리의 노정을 출발했던 것입니다.

이번에 실시하는 40일 하계전도는 금년들어 두번째 실시하는 전도활동입니다. 뜻적인 입장에서 보면 언제나 둘째 번이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 두 형제 중에서 둘째인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역사를 했던 것을 보더라도 그렇고, 복귀섭리적으로 볼 때 둘째 번 가인인 노아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께서 심판한 사실을 두고 볼 때도 그렇습니다. 또 노아 가정에 있어서도 둘째 아들인 함이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둘째가 책임을 못하면 가정 전체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한다는 원리적인 내용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런 3대의 하나님을 논하며 나오고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도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책임을 누가 졌느냐 하면 아브라함 자신이 진 것이 아니라 둘째 번 되는 이삭이 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둘째 번 되는 이삭이 책임을 못하게 된다면 3대를 통한 하나님의 뜻은 완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울 왕, 다윗 왕, 솔로몬 왕, 이 세 왕을 중심삼은 시대에도 다윗 왕의 책임이 다른 왕들의 책임보다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역사적인 여러 사실을 두고 미루어 볼 때, 이 둘째 번의 위치는 최종적인 사명의 해결점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위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2-238
둘째를 중심삼고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그러면 왜 둘째 수가 문제가 되느냐? 뜻은 반드시 3수를 거쳐 넘어가야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도, 부모의 입장에서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1대라 하면 아담 해와는 2대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첫째 수라면 아담 해와는 둘째 수인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이성성상이 하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과 여성으로 분립되었던 아담 해와도 완전히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속시킬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자 인류의 사랑, 아담 해와의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1대 2대가 하나되고 좌우가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아담 해와가 성장기간을 통하여 완성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사랑의 이상을 이룰 수 있는 단계에까지 나가기 전에 타락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되지 못하고 분립되어 아직까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참다운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지 못한 채로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3대의 기준을 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입니다. 여러분이 사위기대에 대해서 배웠지만 통일교회의 진리는 4수의 내용을 중심삼은 진리입니다. 이 4수는 하나님과 아담 해와와 아담 해와의 자녀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이성성상으로 계십니다. 이것을 플러스로 분립시킨 것이 남자인 아담이요, 마이너스로 분립시킨 것이 여자인 해와입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를 다시 합한 모양과 같은 것이 자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중심삼고 1대 2대 3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3대 중에서 문제가 벌어진 것이 몇대냐 하면 2대인 아담해와 대(代)입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더라면 하나님이 임하실 수 있는 인연이 결정됨으로 말미암아 자녀에게도 하나님과 관계맺을 수 있는 사랑의 기준이 연결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축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혼식이라는 것은 부부가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참사랑을 대표해 가지고 남성으로서 완전히 사랑받고 여성으로서 완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체의 품성을 중심삼고 플러스적 성품의 대표로 아들인 아담을 지으시고 그 아들을 최고로 사랑하셨습니다. 그 아들을 사랑하는데는 여성적인 사랑을 합해 가지고 사랑하셨습니다. 또한 딸인 해와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남성적인 사랑을 합해 가지고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분립된 둘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제3의 출발의 기원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1상대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담 해와가 상대적으로 결합하면, 결합된 이 세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의 동기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는 보다 새로운 희망을 촉발시켜 주는 사랑의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을 대신한 실체로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그 아들딸들을 하나님도 좋아하고 아담도 좋아하고 해와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삼대상목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삼대상목적이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모든 내용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는 중심적인 위치가 둘째 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째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을 그릴 때에도 반드시 둘째 번 점이 중심점이 되는 것입니다. 전후 좌우의 중심점은 반드시 둘째 번 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우주의 중심적 위치를 결할 수 있는 상관적 인연이 둘째 번이기 때문에 이 둘째 번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한 집안이 잘되느냐 못되느냐 하는 것도 아버지보다 아들이 더 훌륭하냐 그렇지 못하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아들이 부모보다 훌륭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태어나게 되면 그 집안은 흥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데도 둘째 번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경기도에서 지방의 지도자들을 모아서 수련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 수련회를 15회까지 할 계획인데 지난 금요일까지 5회가 끝났습니다. 1차적으로 5회때까지의 수련회를 승리적으로 마쳐 거도적(擧道的)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관심을 갖고 문제시할 수 있는 때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2차적인 수련회가 문제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 2차로 5회의 수련회를 어떻게 해나가느냐? 여러분은 1차적으로 5의 수련회를 잘 했다고 해서 편안하게 생각하고 자신을 가졌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그러한 체험을 갖춘 위에 보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보다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고 2차 5회를 잘 넘겨야 합니다. 언젠가 선생님이 그렇게만 하면 3차는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1차는 여러분이 알게 모르게 출발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2차는 확실히 알고 출발하는 시대에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2차 40일 하계전도 기간을 어떻게 뜻있게 넘어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은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을 해야 되겠습니다.

32-241
70년대는 가정 중심삼고 복귀의 사명을 해야 할 때
지금까지는 우리가 개인탕감노정, 즉 개인복귀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이민족 앞에 등장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개인을 중심삼은 복귀의 사명을 해결하기 위하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이상과 가정의 이념을 중심삼고 복귀의 사명을 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는 개인적인 탕감의 제물을 바쳐 왔지만 이제부터는 가정 자체를 탕감의 제물로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됐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탄이 분립된 입장에서 서로 상충하며 반대하던 역사시대를 넘어 가지고 평면 도상에서 상대적인 인연을 가릴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금년 정초에 70년대는 통일교회 운세시대라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과거에는 개인이 제물을 드렸지만 이제부터는 가정이 하나되어서 제물을 드려야 하는 시대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개인구원에 그 목적을 두었습니다. 잘 믿는다고 하는 신앙자들도 믿는 목적을 자기 개인의 구원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천당도 자기 개인만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정구원, 종족구원, 민족구원, 국가구원, 세계구원이라는 관념은 가져보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구원, 종족구원, 민족구원, 국가구원, 세계구원을 할 수 있는 첫출발의 기준은 뭐냐? 가정구원입니다. 가정구원의 기틀이 지상에 공고히 세워질 수 있도록 승리적 발판을 조성하지 않고서는 국가구원 섭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지금까지 뿔뿔이 흩어져 국가에 쫓기고 몰리면서 그러한 기틀을 닦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영적인 한쪽 분야만을 책임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 세상에 근거할 수 있는 상대적 여건을 양면으로 갖출 수 있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양면을 갖추어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시대권내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천운은 기필코 그 기반을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기반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서 종교를 세워 나오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길이 결정되면 그 길을 중심삼고 새로운 가정의 편성과 더불어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를 편성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60년대를 중심삼고 보면 그 때에는 이 평면적인 과정을 개인적으로 걸어나오면서 사탄과 싸워 역사적인 탕감의 조건을 세워 나왔습니다. 이제 70년대를 맞이하면서 그런 기준이 자리를 잡아 하나의 중심을 결정할 수 있는 시대권내로 들어왔습니다. 지금 이때는 가정을 중심삼은 시대권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천주주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뜻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그 글자를 보고 `천주라면서 왜임금 주(主)자를 쓰지 않고 집 주(宙)자를 쓸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에는 도를 중심삼은 도주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도주, 즉 주인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면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천주라고 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체가 들어가야 하는데 왜 집 주(宙)자를 쓰느냐는 것입니다.

집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집이 있어야 행복이 시작되는 것이며, 집이 있어야 사랑도 시작되는 것입니다. 집이 없어 가지고는, 가정이 없어 가지고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가정적으로 십자가를 지는 때는 세계가 새로운 이상시대로 갈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드는 때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그 분은 지금까지의 종교들처럼 개인 구도의 길을 개척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십자가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사명을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도주가 온다면 그 도주는 만민 앞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구세주입니다.

구세주는 메시아적 가정을 지니고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날의 종교인들은 이것을 모르고 막연하게 주님이 오시면 천변지이가 벌어져서 온 천하가 일시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계로 바뀔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계가 되려면 먼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의 가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런 가정이 없어 가지고는 종족이 나올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종족이 없어 가지고는 그러한 민족이 나올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민족이 없어 가지고는 그러한 국가가 나올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국가가 없어 가지고는 그러한 세계도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를 낳을 수 있는 모체 중 제일의 모체가 가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새로운 가정을 추구해야 되느냐? 오늘날 여러분들의 가정은 타락한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천적인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중심삼은 부부의 인연을 맺지 못함 것이 한이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수습해야 할 하나님의 섭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지금까지 기나긴 역사를 거치면서 모든 인류를 다 저버리면서까지 수많은 종교를 세워 역사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하나의 가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종교중의 종교는 어떠한 종교이냐? 행복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종교는 어떠한 종교이냐? 또한 수많은 사람 중에 행복한 사람은 과연 어떠한 사람이냐? 이것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종교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32-243
어떤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이냐
오늘날 선진 국가의 백인들은 세계를 주도하여 움직이는 높은 자리에 있고, 흑인들은 대부분 피지배자로서 낮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그 농도에 있어 백인과 흑인의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또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과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은,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 끼리 끼리의 사랑하는 마음은 역사가 아무리 변동되고 발전하고 혁명의 과정을 거쳐오고 거쳐간다 하더라도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어머니를 사랑하는데 아버지가 그 아내를 보고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아들은 사랑하지 마시오’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이상으로 아들을 사랑하면 좋아합니다. 또 자식이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사랑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그 자식에게 `너는 어머니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하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교육법은 없습니다.

이처럼 자신보다도 더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는 입장을 어디에서 가질 수 있느냐? 그곳은 가정입니다. 그런 것은 가정을 떠나서는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데는 있을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사랑을 좋아하시겠습니까, 싫어하시겠습니까? 「좋아합니다」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인간들의 주체자이니만큼 인간들보다 천만배는 더 좋아하실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어느 자리에 세워 놓고 사랑하고 싶어하실 것이냐?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 `저기 가서 땀을 흘리고 일하고 와’라고 하시면서 그 땀 흘리는 것을 보시고 `아이고 좋구만’하실 그런 종의 자리이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이라면 필요없다 이겁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어느 자리에다 세워 놓고 사랑하고 싶으실 것이냐? 만약 인간을 종의 자리에 두고 사랑하고 싶어 하신다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다면 종교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이것만 찾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의 임금님과 백성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할 것이냐? 하나님이 그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제일 위대한 분입니다. 그분은 천주에 한분밖에 안 계시는 분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영원히 절대자로 계실 분입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 해도 그 이상 잘난 사람이 없으며, 지금까지의 역사속에서 능력 있다고 했던 어떠한 군왕보다도 위대한 군왕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러한 분과 관계를 맺는다고 했을 때, 여러분이 여자라면 그분과 무슨 관계를 맺고 싶겠어요?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그분의 며느리가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몸종이 되는 길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분의 몸종이 되겠습니까, 며느리가 되겠습니까? 무엇이 되겠습니까? 몸종이 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몸종이 되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벼락을 맞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까 욕을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럼 며느리 되겠다는 사람? 웃는 거 보니까 알겠습니다. 다들 며느리 되길 바라죠? `내가 하나님의 며느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 며느리 보다 더 가까운 자리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자리에 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어요? 며느리보다 아버지에게 더 가까울 수 있는 길은 딸이 되는 길입니다. 딸은 왜 딸이라 하느냐 하면 딸딸 말아 지갑에 넣고 다니라고 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면 여러분은 며느리가 되겠습니까, 딸이 되겠습니까? 「딸이 되겠습니다」 왜 딸이 되겠다는 것입니까? 딸은 시집가면 며느리만 못하잖아요? 그렇지만 유사시에는 며느리는 쫓겨나도 딸은 안 쫓겨나는 것입니다. 만일 이혼을 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딸은 시집을 갔다가 이혼을 당해도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즉, 딸은 아버지의 사랑을 영원히 보장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며느리보다 아버지께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뭐가 되고 싶습니까? 도둑놈 사촌 같은 남자들이지만 (웃음)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위가 아니라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 되겠다’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얼굴을 보니까 물어보기도 전에 전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일 것이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어떤 종교라야 하는가? 하나님과 가까운 자리에서 하나님과의 사랑의 인연을 귀히 여길 수 있는 철두철미한 내용을 갖춘 종교라야 합니다. 그런 종교가 역사를 지배하는 것이며, 그런 종교라야 세계 종말시대까지 남아지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훌륭한 점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성경을 보고 나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이래야 된다. 이게 만지 않으면 성경은 거짓말이다’라는 확실한 결론을 내린 후에 거기에다가 성경을 맞춘 것입니다. 처음부터 성경이라는 감투를 쓰고 성경을 표본으로 했다면 이런 길을 개척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타당한 이론을 중심삼고, 우리 심정세계에 관계되는 내용을 중심삼고 최고로 깊은 골짜기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탐지해 보게될 때, 그 머무를 수 있는 닻 중에 최고의 닻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심정입니다. 이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남자들 가운데서 제일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택한다면 과연 어떤 사람을 택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종을 택하겠습니까, 사위를 택하겠습니까? 사위는 들락날락하는 도둑놈입니다. (웃음) 딸한테 쑥덕여 가지고 장인의 감투까지 도둑질해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장인의 상투끈도 자기 것보다 좋으면 가져가려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다 사위가 되어 봐서 알겠군요? 그런 마음이 있습디까, 없습디까? 그러니 사위는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물어 볼 것도 없이 누구나 아들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32-246
하나님 앞에 어떤 아들이 될 것이냐
아들도 여러 종류의 아들이 있습니다. 불효하는 아들, 효자도 불효자도 아닌 평범한 아들, 효도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아들 중에 어떤 아들이 되고 싶습니까? 효도하는 아들이 되고 싶습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데려가도 좋고 안 데려 가도 좋은 그런 아들이 되고 싶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불효하는 아들이 되고 싶습니까? 어디 대답해 봐요. 어떤 아들이 되고 싶어요? 「효자가 되고 싶습니다」 효자! 효자가 돼야 합니다.

효자 중에서도 어떠한 효자가 되어야 하느냐? 아들이 다섯 명 있으면 그 다섯 아들이 전부다 효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다섯 아들이 전부다 효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도 일하는 데 있어서 대표적인 효자도 있을 것입니다. ‘아,저 녀석은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누구보다 제일 믿을수 있는 효자야’라고 할 수 있는 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생활하는 데 있어서의 효자도 있습니다. `아, 이 녀석은 일은 못하지만 귀여워 죽겠어’라고 할 수 있는 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랑을 받음으로써 효도할 수 있는 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어떤 효자를 더 좋아하겠습니까? 어떤 효자를 더 원하겠어요? 나가서 일이나 잘 도와주는 효자를 원하겠습니까? 아니면 이불 속에서 깨가 쏟아지도록 `너 없으면 나 죽고, 나 없으면 너 죽는다’라고 하며 사랑할 수 있는 효자를 더 원하겠습니까? 생각해 봐요. 어떤 효자를 더 원하겠습니까? 그건 물어 볼 것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보고 `너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뼈 주의 뼈요, 살 중의 살이면 뭘 하자는 것입니까? 구경하자는 것입니까?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는 데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속 깊은 골짜기에서부터 우러나와 가지고 온 세상이 캄캄한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랑만은 빛날 수 있을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생긴 얼굴을 가진 추녀들도 `이 마음에도 붉은 장미꽃 향기 이상의 붉은 사랑이 있다’하며 자랑을 합니다. 그러니 그런 사랑을 한번 맛보면 어떻겠어요? 죽는다고 해서 잊어버리겠습니까? 목이 잘린다고 잊어버리겠어요? 못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타락한 인간들 사리에도 남녀 사랑 때문에 죽고 살고 하는데, 하물며 동그랗다면 최고로 동그랗고, 맛있다면 최고로 맛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홀딱 반해 가지고 취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목을 백번 자른다고 그 사랑을 버리겠습니까? 어림도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랑을 받는 아들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도 그런 아들이 있어서 내 대신 이 아들을 천하의 누구보다도 사랑해 달라고 주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행복하겠어요, 불행하겠어요?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오! 전지전능하시고 언제나 태평 왕국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이여!’ 하면서 수작은 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대통령의 감투 끈을 마음대로 조르고 풀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집에서 정서적인 안식을 갖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불행하겠습니까, 행복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불행한 것입니다.

32-248
최고의 승리자, 최고의 종교
아무리 어여쁜 아가씨도 사춘기는 단 한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때는 꽃중의 꽃이요, 일생에 가장 귀한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혼자 살지’하고 생각하는 여자가 있어요? 그건 여자가 아니예요. 그런 동물 있어요? (웃음) 또한 남자들 중에서도 허우대가 멀쩡해 가지고 좋고 좋은 이팔청춘에 자기 혼자 살겠다고 하는 녀석 있어요? 그런 때에는 반드시 상대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닮아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지 않은데 그런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생의 가장 귀한 때인 이팔청춘 때 상대를 찾아 나서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요, 안그래요? 안 그렇다면 혼자 늙어 죽으라우.

미인에게, `미인은 박복한 거니까, 당신 같은 미인은 혼자 늙어 죽어야지’라고 해보십시오. 아무리 얌전한 미인이라도 얼굴에서 독이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지독한 욕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미인의 가치는 어디에 있느냐? 그 미인을 완전히 감상해 줄 수 있고 천상의 사랑을 인연지어 줄 수 있는 남성이 있어야 미인도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서적인 안정을 갖지 못한 사람은 불행해요, 행복해요? 어디, 할머니들 대답해 봐요. 「불행합니다」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불행하셨겠어요, 행복하셨겠어요?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어보면 `아버지께서는 6천년 동안 눈물 흘리시고, 십자가의 고난 가운데 불쌍하게 뭐 어떻게 어떻고’하면서 잘도 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그 엮는 것에 하나도 걸리지 않을 방법이 있다는 겁니다. `나더라 불쌍하다고 하는데 내가 왜 불쌍해, 내가 고생했다고 하는데 무슨 고생을 했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겁니다. 이럴 수 있는 그 자리는 역사를 거쳐 찾아 나오던 최고로 사랑하는 아들을 찾고 딸을 찾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서게 될 때 지금까지의 모든 수난과 고통은 영광의 상징으로 변할 것이며, 인간을 더욱더 사랑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 중에 최고의 사람이 누구냐?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효자로서의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이요, 인생노정에 있어서 최고의 승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종교 중에 최고의 종교는 어떤 자리냐? 간단한 것입니다. 물론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공자의 도리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나라만 다스리면 뭘 합니까? 그것은 외적인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에는 불심(佛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불심이 있으면 뭘 합니까? 또 아무리 잘난 미남 미녀가 있으면 뭘 합니까? 사랑을 받으면서도 눈만 껌벅껌벅하고 있으면 뭘 해요? 서로가 위하는 운동이 벌어지지 않으면 있으나 마나한 존재인 것입니다. 도리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기독교를 택한 것입니다.

32-249
복귀섭리의 목적은 영원히 사랑할 아들딸을 찾는 것
내가 기독교 감투를 쓰고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세상에는 전부다 잘못 쓴 사람들 뿐이니 그 사람들이 바로 쓴 나를 보면 내가 잘못 쓴 것 같이 보이거든. (웃음) 그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르쳐 주는 것이 맞는가 틀리는가 시험해 보십시오. 틀림없을 것입니다. 세계 만민을 데려다 놓고 역사시대에 살다 영계에 간 사람들까지 전부 부활시켜 데려다 놓고 내가 한 말이 맞는지, 그들이 한 말이 맞는지를 한번 물어보라는 겁니다. 그들은 모두 내 편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들어보니 그렇겠지요?

종교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맺어 주는 것입니다. 그 관계는 무엇으로 맺느냐?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무슨 인연으로 맺을 것이냐? 주인과 종의 인연도 아니고 나라와 백성의 인연으로 맺는 것도 아닙니다. 무슨 인연으로 맺느냐?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부자의 인연으로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하나님은 죽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신앙은 멋진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내 모가지를 자르더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그런 신앙 말입니다.

자기아들이 불한당이 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져 갈 입장에 있다면 그 부모는 천법이 있고 인간의 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넘어 자식을 구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의 인간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그 심정이 가는 길 앞에는 수난과 고난과 민족의 어떠한 비참함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마음대로 조정하여 넘어갈 수 있는 하나의 핵심적인 사랑의 기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하는 것이 보다 큰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을 희생시켜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분을 동원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청춘시대에도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제일가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자기의 그 모든 재산과 서슴지 않고 바꿀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 어떠한 길이냐? 그것은 사랑의 상대를 찾아 나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길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타락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받으며 수고하시면서 복귀섭리를 해 나오신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내심에 언제나 뼈와 살이 합하여도 영원히 싫다고 하지 않을 아들딸의 인연을 찾는 데 있는 것입니다.

자식의 살이 닿는 것을 싫어하는 부모가 있어요? 여기 자식 있는 사람들, 부모되는 사람들은 잘 알 겁니다. 자기 자식에게 손을 대고 뺨을 대 볼 때 싫은 부모가 있습니까? 만약에 그게 싫다는 부모가 있다면 그런 부모는 돼지보다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부모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한번 대면 또 대고 싶어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뽀뽀할 때에는 복잡한 자연현상이 입체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시며 사랑할 수있는 아들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아들이 구경거리가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32-251
기독교가 세계적 종교가 된 이유
종교 중에서도 유독 기독교만이 사랑을 중심삼고 가르쳐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첫째는 아들의 사랑이요, 둘째는 신랑 신부의 사랑이요, 셋째는 형제의 사랑을 표준으로 해서 사랑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라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를 하나님께서 내세우지 않는다면 망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기독교는 세계적인 문화를 창조하면서 이 종말시대까지 남아질 수 있었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던 내정적인 모든 여건을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반을 떠난 하나님의 섭리는 있을 수 없고 그 기반을 떠나서는 세계를 구하고 세계를 수습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가진 종교는 세계적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론적으로 맞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누가 부정하더라도 내 아버지다’하는 것을 떳떳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에게 하나님과는 얼굴도 틀리고 역사적인 거리나 시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봐도 하나될 수 없는 입장이라고 아무리 부정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내 아버지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나와라!’하였던 것입니다. 악한 사탄마저도 그런 내용을 가지고 나올 수 없었기에 이것을 원칙으로 이 사탄세계에 새로운 판도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중에서도 심부름이나 잘하고 일이나 잘 하는 그런 외적인 입장에서의 효자가 되는 아들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입니다. 독생자가 뭔 줄 압니까? 독생자는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의 사랑을 독차지해서 받고 나온 아들입니다. 그래서 종교의 도주 중에서도 세계적인 도주로 등장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기독교는 오랜 역사과정을 통해서 죽임을 당하고 찢기고 피를 흘리고 수많은 희생을 당해 나오면서도 사탄 앞에 꺾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천륜이 그것을 따라갔기 때문에, 그 뿌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아무리 가지가 잘리더라도 봄절기만 되면 또 싹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기독교가 세계를 재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를 좋아했던 나라가 있어요? 기독교를 좋아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있어요?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든 전부 다 선교사를 죽였습니다. 전부 미워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기독교가 지금까지 남아졌느냐? 뿌리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지를 잘라도 또 나오는 것입니다. 천운이 가는 길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했는데 이 자리가 효자의 자리입니다. 자기의 뜻을 초월하여 아버지의 뜻을 위주로 아버지와의 심정적인 유대를 맺고 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충신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요, 효자의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리를 기독교가 만대에 계승하여 맺고 나왔기 때문에 비로소 기독교를 중심삼은 구도의 역사가 번식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려면 그 사랑의 뿌리와 가지를 통해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역사시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들은 기독교권내로 흡수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신랑 신부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있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대신한 주체적인 입장에서 상대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하셨습니다. 심정적인 자리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이상의 가까운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말씀하신 것은 형제간의 사랑입니다. 앞으로 믿는 사람들은 전부다 형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도 심정의 모금자리가 가정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고차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가정적인 이념을 표준해서 섭리해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세계를 보고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보고 웃는 데도 그 내용을 알고서 웃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우스운 얘기를 해서 여러분이 하하 웃는데, 졸던 사람은 그 웃는 것만을 보고 미쳤다고 하는 겁니다. 자기들끼리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기쁨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느냐?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기쁨의 동기를 갖지 못하면 두 사람이 기쁠 수 있는 동기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요, 두 사람이 기쁠 수 있는 동기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세 사람, 네 사람, 열 사람, 백 사람, 천 사람, 만 사람이 기쁠 수 있는 동기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 가운데는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남자는 좋아서 춤추고 한 여자는 슬퍼서 울고 있다면 그걸 보시는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 남자와 여자가 함께 좋아서 춤출 수 있고 하나님까지도 거기에 맞춰 춤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럴 수 있는 날이 어떤 날이냐 하면 아담 해와의 결혼식 날인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는 타락하지 않고 서로 `당신이 가려면 날 데려가고 나는 당신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해야 한다’고 하면서, 웃을 때도 마주 보면서 입만 빵긋하며 웃는 것이 아니라 크게 소리를 내면서 팔다리까지 허우적 거리며 세포 하나하나까지 몽땅 웃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좋은 것이지 입만 웃고 몸뚱이는 가만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차가 고속도로를 달려가다가, 앞에서 달려오는 해와 차하고 한번 키스하면 어떨까요? (웃음) 부서지지 않는다면 위로 올라가든지 밑으로 내려가든지 두 길밖에 없는데,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올라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그거 멋지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생각 한번 해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100퍼센트 사랑을 해야 되고, 웃는 데 있어서도 100퍼센트 웃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100퍼센트 웃는데 여자는 조금만 웃으면 안 됩니다. 남자가 웃을 때 몸 마음 다해서 웃으면 여자도 그렇게 웃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천지가 다 웃으면서 거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서 사랑을 해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사랑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이 땅 위에 나온다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벌 주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이라면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하나님이라면 인간 세상과 사랑세계에서 추방해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사랑의 하나님을 초대하자는 것입니다. 말만 들어도 근사하지요? 이것이 통일교회가 기성종교와 다른 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의 기성종교는 전부다 허수아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막연하고 관념적인 분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주체적인 하나님을 어떻게 실감나게 체휼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시대를 넘어 세계를 구할 수있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32-254
진정한 사랑
여러분 중에서 축복받은 가정은 손들어 보세요. 참 많군요. 이 축복가정들은 무엇을 중심삼고 생겨났습니까? 박씨면 박씨, 김씨면 김씨의 종족이 잘살라고 축복해 준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몸은 둘이로되 하나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부부가 하나되는 데 있어서 사랑 없이 하나될 수 있어요? 또 민족을 통일하고, 민족이 단합하는데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정신 없이 될 수 있습니까? 사랑을 빼 놓고, 수단 방법으로써 하나되라 하는 그런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망할 주장입니다.

공산당이 주장이 바로 그런 주장입니다. 공산당은 위협, 공갈, 협박을 해서 강제로 따르게 합니다. 여기에 맞서면 맞겠으니 억지로라도 하나되는 것입니다. 할수없이 외적으로라도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된 것은 강제성만 없어지면 금방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돌아서겠습니까, 안돌아서겠습니까? 반드시 그렇게 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그것을 조종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러한 가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나보다 잘났기 때문에 그런 거 안 바랄 거예요. 나는 여러분보다 못났지만 그런 가정을 바라보고 나갑니다. 여러분들은 지금의 가정 그대로가 좋아요? 그런 가정을 바라보고 나가요? 여러분들도 그런 가정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런 가정이 되기를 바라야 될 것 같아요? 「예」 그렇다면 섭섭하더라도 내 말을 들으라는 겁니다. 이런 가정이 되기를 바라거든 내 말을 들으라는 겁니다. 내가 금맥을 알고 있으니, 여러분은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벼랑이 올라갈 때에도 내가 거꾸로 올라가라고 하면 여러분은 거꾸로 올라가라는 겁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정상에 갈 때까지는 독재하는 것 같을 것입니다. 어느 누가 힘들게 가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가 보면 `야!’ 하고 감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소를 키우면서 꼴을 먹여 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장마철이나 궂은 날에는 소한테 꼴을 먹이기가 참 싫습니다. 나도 옛날에 소 꼴을 먹이러 가다가 소에게 매질도 했습니다. 지금 웃는 사람은 그런 경험이 있어서 통하는 모양이군요.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부모님이 소를 끌고 가서 꼴을 배불리 먹이고 몇 시까지 돌아오라고 했는데 평지에는 풀이하나도 없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럴 때는 `에라 모르겠다 뒷동산에 아버지가 제일 사랑하는 초원이 있으니 거기 가서 먹이자’하고 그 가파른 산으로 끌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가 올라가지 않고 중간에서 얼마 되지 않는 풀을 먹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놈의 소야’하며 들이치고, 몽둥이로 때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불쌍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거 느껴 봤어요? 이렇게 억지로 끌어 가지고 강을 건너고 산으로 올라가게 해서 딱 그 자리에다가 풀어 놓으면 그 소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먹지 말라고 했다고 안 먹겠습니까? 그때는 혀로 물론, 입술, 귀, 눈까지 모두 고맙다고 하면서 판을 치며 먹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럴 수 있는 곳을 알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분을 제재하면서 나가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곳이 있다는 것도 모른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것을 확실히 알면 오히려 제재해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전도하러 나가라고 하면 전부 다 꽁무니를 뺍니다. `아이고 남들은 피서 가는데 뭐, 전도? 망신살이 뻗쳤구만’하고 불만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민족이 해방될 수 있고, 세계가 해방될수 있는 길을 안 가겠다고 할 때는 알고 있는 사람이 때려 몰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때려 모는 것이 정의입니까, 가만히 놔두는 것이 정의 입니까? 어디 가냘픈 여자들, 어떤 것이 정의인지 대답해 보세요? 「때려 모는 것이 정의입니다」

옛날 6·25사변이 일어났을 때 피난길에서 내가 이런 것을 많이 봤습니다. 어머니가 다섯 살짜리 자식을 업고 나섰는데, 철이 없으니까 전쟁이 나서 피난가는 줄도 모르고 어디 간다 하니까 콧노래를 부르며 좋다고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업고 가다 보니 엄마가 힘이 빠져서 아이를 내려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 싫어, 나 업어 주지 않으면 안 가, 업어 줘, 업어 줘’ (웃음)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업어 줘야 합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그러나 업어 주면 둘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걸어가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안걷겠다고 하면 위협을 하고, 뺨을 때려서라도 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난처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부모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버리고 가겠습니까, 죽이겠습니까? 아니면 강제로라도 끌어서 데리고 가겠습니까? 어떤 방법이 제일 좋겠습니까? 버릴 겁니까? 죽일 겁니까? 그것이 다 싫으면 어떻게 할거예요? 어떻게 해서든지 끌고 가야 됩니다. 귀를 잡아 째든가 코구멍을 꿰서라도 끌고 가야 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다 데려다 놓으면 자기친구는 다 죽었는데 나만 살았다 하며 `아이고, 우리 어머니 감사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귀가 째진 것이 미인 얼굴에 흠이 되어서 시집 못 간다고 불평하는 간나가 있다면 날벼락을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 찢어진 귀를 보면 볼수록 `우리 어머니의 사랑이 위대했구나, 부모의 사랑이 무섭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천년 만년 부모를 존경할 수 있는 표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밥만 먹고 나면 우리를 고생시키려 한다’고 하지요? 그래요. 나는 여러분들에게 정이 없습니다. 일시킬 때는 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같이 살 때에는 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을 시킬 때에는 무자비하게 코를 꿰서라도 끌어내야 합니다.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하면 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려서라도 내몰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당한 방법입니다. 이 말이 이해됩니까? 저기 할아버지, 이봉운 장로 이해됩니까? 「예, 이해됩니다」 백수노인도 때려 몰아서라도 가도록 해야 됩니다. 몇십 년을 같이 살던 할머니한테 실례가 되더라도 가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어떠한 종교인도 넘지 못했던 그 기준을 넘고, 어떠한 단체도 들이지 못했던 정성을 들여서 어떠한 나라도 갖추지 못했던 그 나라의 형태를 갖춰 가지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사랑하고 싶어도 어떠한 단체를 사랑하지 못했고, 어떠한 나라를 사랑하지 못했고, 어떤 세상을 사랑하지 못했던 그 사랑을 몽땅 독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정당한 교육 방법이요, 정당한 작전인 것입니다. 여기에 이의 있어요? 그렇게 해 가지고 망하거든 복수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 왔어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32-257
신랑 신부 하나님 3자가 하나되어 인류애의 기원 마련해야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에 무엇을 갖고 있어야 하느냐? 도중에서도 최고의 도의 기준을 설파한 예수님의 도리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 도리를 중심삼고 신부가 되어 신랑으로 다시 오시는 메시아를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날이 기독교가 바라는 어린양 잔치의 날입니다.

그러면 그 어린양 잔치에서 신랑 신부가 만나 가지고 무엇을 해야 되느냐? 아까도 말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3자가 완전히 하나되어 인류애의 기원을 마련해야 합니다. 기뻐도 셋이 같이 기뻐할 수 있고, 웃어도 셋이 같이 웃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기원을 상실한 것이 타락인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인류 역사는 기쁨으로 출발하지 못하고 슬픔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재봉춘하여 기쁠 수 있는 한때를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인류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대표자가 반드시 와야 되는데, 그분이 재림주님입니다. 그러면 재림주님은 이 땅에 와서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은 하나의 아들은 사랑하셨지만 하나의 딸은 사랑하지 못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종교는 아들을 중심삼고 사랑의 도리를 찾아 나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들을 찾기 위해서 수많은 도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도주 가운데 여자 도주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여자를 덜 사랑해서 그러는 것이냐? 아닙니다. 천지의 원칙은 주체인 플러스가 없는데 대상인 마이너스가 생겨날 수 없는 것입니다. 플러스가 있어야 마이너스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대를 이을 수 있는 남자를 중심삼고 세계를 치리해 나오시기 때문에 역사과정에서 여자는 제물이 되어 희생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자들로 하여금 모성애를 인계받게 해서 새로운 어머니 아버지의 심정을 상속시키는 놀음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성현들의 배후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던 것입니다.

32-258
효자와 충신과 성인의 다른 점
여러분들,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럼 못되기를 바라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은 벼락을 맞을 거예요. 아무리 얌전한 아가씨들에게도 물어 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잘되는 길을 몰라서 그렇지 잘되는 길이 있다면 손뿐만 아니라 발까지도 들고 싶을 거예요. 어느 누구도 망하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도 전부다 잘난 남자 되고 싶지요? 그러면 어디서부터 잘되고 싶으냐? 내 친구들 사이에서부터 잘되면 좋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친구들이 자기의 모든 비밀 보따리를 갖다 천년 만년 보관해 두어도 안심할 수 있는 친구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친구가 제일의 친구입니다. 자기 부인, 부모, 형제를 두고도 찾아올 수 있는 친구가 되면 친구 중에서 대표적인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친구로서 과거 현재 미래의 대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에 있어서 대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는 아들을 자기 가정의 대표자로 세우기 위해서 효도하라고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면 효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서적으로 제일 먼저 하나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이냐? 효자가 되는 길입니다. 하늘 땅이 알 수 있는 효자의 인연을 가진 사람은 그 나라를 중심삼고 상속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 삼강오륜의 가르침이 무엇이냐? 그 가정에서 나라가 알고 세계가 알 수 있는 효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효자는 하나님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혈통을 통해서 나라를 다스릴 사람을 보내는 것입니다.

효자가 못 되는 사람은 충신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충신이라는 말은 한 나라를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충신은 많습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은 충신, 일본을 중심삼은 충신,미국을 중심삼은 충신 등 한 나라를 중심삼은 충신은 많습니다. 그러나 전부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효자란 가정을 중심삼고 결정되고, 충신은 나라를 중심삼고 결정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자기 나라를 사랑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충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충신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다 들 것입니다. 뭐물어 볼 것도 없습니다. 눈들을 보니 다 원하고 있군요. 하지만 충신이 되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충신만 되어 가지고는 오래 못 갑니다. 충신에게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한 나라만의 충신을 원하지 않습니다.

세계는 어떤 사람을 원하느냐? 또 인류는 어떤 사람을 원하느냐? 성인을 원하는 것입니다. 성인이란 어떤 사람이냐? 이걸 알아야 합니다. 효자가 있고, 그 다음엔 충신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잘 알지요? 그 다음에는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성인을 잘 알 겁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성인의 확실한 개념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위인은 많았습니다. 한국의 이순신 장군도 위인이요, 충신입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대한민국, 한민족, 배달민족에 있어서 위인이고 충신이지, 일본에게도 위인이고 충신입니까?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단칼에 베어 버리고 싶은 원수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렇게 볼 때, 충신은 만민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충신의 도리를 가르쳐 줘야 되고, 효성의 도리를 가르쳐 줘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효성의 도리는 충신의 도리를 초월하는 자리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초국가적이고 초세계적인 기준에서 만민이 제일 가치있다고 하는 기준으로 숭상할 수 있는 그런 위대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런 사람이 성인입니다.

성인의 영역은 `국가내(國家內)’가 아닙니다. 국가를 초월하여 세계적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알겠습니까? 성인의 가르침 중 공자의 도리는 노나라의 혼란한 시대에 있어 그 나라의 치리 방법도 되겠지만, 자기 나라와 같은 혼란한 세계를 바라보면서, 후대의 만민들이 거쳐가야 할 인생의 도리를 모색한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중심삼고 억조창생의 해방을 마음으로 그리면서 민간인들이 가야 할 길을 대표적으로 간다고 갔던 사람들이 성인이라는 것입니다.

32-260
성현들의 가르침이 내포하고 있는 특징
예수님이 자신의 생애 33년 동안 한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뭐 한 게 없다는 것입니다. 거지같이 밥을 얻어먹고 돌아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길은 참의 길이었습니다. 마지막 3년 동안 소란을 피우고 야단법석을 했지만 그가 가르친 도리는 이스라엘이라는 일개 나라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기 때문에 만민은 이래야 된다고 하며 `회개하라 이스라엘 나라가 가까이 온다’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천국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태평왕국을 이루어 가지고 세계를 재패하는 그런 천국이 아닙니다. 세계만민이 태평왕국에서 노래할 수 있는 천국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적인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민족도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친 도리인 것입니다. 결국 그 도리가 무엇이냐 하면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 그리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몰림받고, 이방의 사람들에게 배척받아 장가도 못 가고 갈보리 산상에서 비참하게 죽은 불쌍한 애혼입니다. 이렇게 원귀밖에 될 수 없었던 예수님이 가르친 도리가 어떻게 세계의 문화권을 형성해서 20세기의 이 민주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정신적인 밑바탕이 되었느냐? 이것은 생각해 볼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신 것은 자기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사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자기를 죽여서 이스라엘 민족보다도 세계 인류를 구하려고 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나라를 제물삼고 자기 나라는 잃어버리더라도 세계를 위해서 죽은 예수님이었기에 그를 중심삼은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환영받을 수 있는 종교가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도리가 성현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성현의 도리는 일개 민족만을 중심삼지 않습니다. 그런 성현의 가르침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람만을 중심삼고 나온 성현은 없습니다. 인류만을 중심삼은 도리로 출발한 성현은 없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에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 (天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보지이화(天報之以禍)니라”하는 말이 있습니다. 즉, 선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으로 갚아 주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화로써 갚아 준다는 말입니다. 공자가 이 말을 할수 있었다는 것은 하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하늘을 중심삼고 도리의 기준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막연하나마 하늘을 재개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가 성현의 반열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석가모니 역시 구체적인 내용은 못 되지만 하늘을 개재시켰던 것이며, 마호메트도 그랬고, 예수가 그랬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4대 성인이란 말을 하는데, 인륜만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성인의 이름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인류만을 중심삼고는 성인도 종단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전부다 도주의 이름을 갖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상은 세계적인 기준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천륜을 중심삼은 효성의 도리와 충신의 도리를 가르쳐 주려고 역사를 초월하여 미래의 세계를 현실 생활의 기점으로 삼아, 그 이념 앞에 자기를 일치시키기 위해, 자기의 모순을 타개하기 위해 희생해 간 사람들이 성인의 반열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머리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작전권내에서 벌어지는 과정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는 결론이 나오는것입니다. 오늘날 성인들이 인간들에게 가르쳐 준 최후의 교훈이 무엇이냐? 세계를 위해서 태어나서, 세계를 위해서 살다, 세계를 위해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인륜에 일치될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일치되고, 사람과 일치되는 기준의 세계를 붙들고 살 수 있는 가정을 대표한 주인이 되고, 나라를 대표한 주인이 되고, 세계를 대표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이 이 땅 위에 태어난 본래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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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의 가르침
그러면 통일교회의 가르침은 무엇이냐? 어떤 사람을 만들자는 것이냐? 이 타락권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역사의 서글픔이요 한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이 권내를 타개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민에게 충신의 도리와 효성의 도리를 넘어서서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성인의 도리를 가르쳐 주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이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통일교회에 가면 가정이 파괴된다고 합니다. 또 통일교인들은 민족의 배신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배신자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 성인의 도리를 따라가는 길임에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가기 때문에, 우리가 성인의 인품을 닦음으로 인하여 서인이 지배할 수 있는 그 나라가 자리를 잡는 날에는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해방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는 것이요, 수많은 가정들은 자연적으로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성서를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성인의 도리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인을 넘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을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누가 나를 끊으리요’ 해야 합니다. 최후에 남아질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제일 중요한 가르침이 뭐냐 하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성인보다도 높은 분이 누구지요?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성인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성인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성인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가정을 세워서, 하나님의 나라를 번영시킬 수 있는 도리를 세워 나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교리입니다. 원리책의 내용은 천주주의와 그 가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 가르침이 뭐냐? 오늘날 이 세계의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이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적인 사랑을 만민에게 베풀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논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되고, 성인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제한된 인생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 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다 하려고 하다가는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 높으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얼마만큼 사랑해야 되느냐? 자기의 아내보다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에 이르러 하나님이 소개해 주는 아내를 맞을 것입니다. 또 여자는 자기의 남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에 이르러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남편으로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아들딸보다 세계 만민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앞으로 시련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자리에서 자기의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를 넘은 입장에서 민족과 국가를 사랑해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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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냐? 지금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을 통해서 세계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지금처럼 공산주의의 유물사관과 민주주의의 유심사관이 싸우는 그런 세계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계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이 지배할 수 있는 나라를 바라며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성인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냐?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자기의 아들딸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면 됩니다. 성인의 도리가 그것입니다. `네 아들딸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라, 네 몸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라, 네 나라의 백성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는 타락한 세계가 아닙니다. 보다 나은 그 세계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남아질 것이 무엇이냐? 나와 세계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세계를 내 것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어요? 내 것 만들고 싶어요, 만들고 싶지 않아요? 「만들고 싶습니다」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은 바보 천치입니다. 그런 사람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돈을 백만 불을 가지고 있으면 뭘 합니까? 심정의 세계에서 남아지는 것은 나, 세계, 그리고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오는 오늘의 타락된 내가 아니라 부활된 나요, 세계도 오늘의 타락된 세계가 아니라 부활된 세계요, 나아가서 하나님도 고통받고 신음하는 오늘날의 하나님이 아니라 해방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이 시대 앞에 소망의 가정을 소개하고, 소망의 나라를 소개하고, 소망의 세계를 소개하며, 소망의 천국을 지배하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은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거쳐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신천주의 사상을 갖고 나타난 것입니다. 문제는 뭐냐면, 여러분이 보다 나은 개인, 보다 나은 세계적인 중심존재, 보다 나은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아들이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도상에 있는 세상에 걸릴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라를 버리고 나서는 것도 문제가 아니요, 세계를 부정하고 나서는 것도 문제가 아니며, 자기가 사랑하는 처자를 버리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다 나은 가정, 보다 나은 가정을 중심삼은 세계가 그 세계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사람, 이 삼자가 일체될 수 있는 하나의 터전이 있어야 하는데 그 터전이 무엇이냐 하면 부부입니다. 이 부부의 인연을 중심삼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이 신랑 신부의 사상이요 어린양 잔치입니다.

오늘날 기성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은 모르면서 공중잔치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깨우쳐 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깨우쳐 주기 위해 입을 다물라고 하면 벌리고, 벌리라고 하면 다물어 버립니다. 그러니 그들을 이끌고 가기 위해서는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길을 개척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태어난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세계를 위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더라도 이 길을 가야 됩니다. 세계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앞에 세계를 봉헌해야 할 제사장으로서 `당신이 찾고 있는 세계를 받으시옵소서’라고 해야 할 사명이 오늘날 땅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사명을 짊어지고 멋지게 가야 할 사나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모두다 시시하게 돈에 팔려 가서 목을 매는 졸장부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이런 세계가 될 때까지 수습을 해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사조가 어떠한 권한을 가지고 막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 앞에 주체로서의 능동적인 자세를 갖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러한 일을 무난히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성교회와 다른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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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의 중심사상과 목적
우리 통일교회 사상은 가정주의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가정을 보면 전부다 망할 가정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의 가정들도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도 아랑곳 없고, 자녀도 아랑곳 없이 이혼하기 일쑤라는 것입니다. 이런 혼란한 상황으로 세계가 몰아 들어가는 이 때에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형태를 갖추어야 할 사명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통일교인들은 태어난 것이나 뜻 앞에 부름받은 것이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나깨나 세계를 붙안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충신이 되어야 하고, 그 가정의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효자가 되려 해도 효자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없기 때문에 효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가정은 있지만 하늘 가정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 조상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장 큰 소망이 무엇이냐? 메시아를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여 오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그 주님은 부모로 오십니다. 참된 부모로 오시는 것입니다. 인간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거짓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인류는 전부 다 그 거짓된 부모의 피와 살을 받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전 인류를 정상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되게 하기 위해서 참부모의 인연을 가지고 오시는 한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가 6천년 전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혼해야 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지 못했던 것을 6천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다시 수습하기 위해 부모의 자격을 갖고 오시는 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요, 그 메시아가 신랑이 되어 신부를 맞는 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간단하다는 거예요. 이래야 이치에 맞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지요? 효도하고 싶겠지만 자기를 낳아 준 현재의 아버지 어머니는 정상적인 부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 때려죽이는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그런 세상이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부정할 수 있는 현시점에서 자기 자신이 처할 수 있는 하나의 발판을 인간은 찾을 수 있는 절대적인 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결정적인 승리의 기반을 세울 수 있는 도리를 갖춘 한분이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님이요, 그 사상이 재림사상입니다.

그분은 참부모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 부모가 오심으로써 내가 부모한테 효도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고 하면 그때에야 비로소 인생길에 있어서 자기의 자세를 갖추어 천자의 입장에서 자식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법이이 땅 위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부모가 없기 때문에 효도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없으니 고향도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도 없고, 종족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잃어버린 전체의 무한한 가치를 대신하는 중심적인 가치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본연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효도하는 길은 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아니요, 충성하는 길도 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이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를 이루어 바치지 못했으므로, 우리가 성인의 사명을 대신하여 그 나라를 바쳐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하늘 앞에 바쳐 드리지 못한 것을 한으로 삼아 내 일생에 바쳐 드리기 위해서 정성들이며 가야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이 가야 하는 최후의 길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운이 좋지요?

인륜의 도리는 전부다 성인의 도리를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결국 온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으면 전부다 지옥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째째한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의의 사명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는 세계 인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하느냐? 참부모에 대해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참부모는 이러한 분이다 하는 것을 확실히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참아들딸은 이러한 아들딸이요, 참형제는 이러한 형제요, 참종족은 이러한 종족이요, 참민족은 이러한 민족이요, 참국가는 이러한 국가요, 참세계는 이러한 세계라는 것을 확실히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 원리입니다.

이 사상으로써 세상의 민주세계나 공산세계의 억천만 형제를 사탄이 아무리 빼앗아 갈래야 빼앗아 갈 수 없는 영원불변의 주체성을 가진 성인 이상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민족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원리가 표방하는 목적입니다.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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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인이 처한 입장과 가져야 할 태도
지금까지 이 땅에 왔던 성인들은 온갖 고생을 다하고 갔지만 상대적인 이념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면 아들을 찾아 나오는 과정에 희생되어 간 사람은 있지만 하나의 복귀된 천국의 이상을 이루어 천상세계에서 안식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기반을 갖춘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지요? 종교 중의 최고의 종교를 가지고 온 예수님도 가정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축복받은 가정들은 갈 길이 바쁩니다.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서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을 향하여 밤이나 낮이나 쉬지 말고 가야 합니다. 거기가 정상이예요. 또한 축복가정들이 가야 할 뚜렷한 목적지인 것입니다. 그 어려움이 극하면 극할수록 그것은 그 목적을 빛낼 수 있는 하나의 인격을 세우는 데 필요한 재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닥쳐오는 시련과 고통을 자기를 막는 것으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자극할 수 있는 간접적인 충격으로 알고 흡수시킬 수 있는 능동성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늘의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그것을 생각하며 먹어야 합니다. `내 가정을 끌고 세계까지 가야 한다, 그리하여 그 세계가 내 말을 중심삼아 가지고 따라올 수 있도록 아버지의 아들로서 이 세계를 보호할 것이다, 그래서 만민이 그 도리의 거룩함과 영원함과 성스러운 내용을 찬양할 수 있을 그런 도리를 남기고 가겠다’고 하는 지성어린 생활노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정상적인 신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내 아들딸, 내 아내’ 하겠습니까? 나는 내 부모, 형제들을 다 버렸습니다. 내가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어머니도 버렸습니다. 감옥에 찾아와 눈물짓는 어머니를 쫓아 보냈습니다. 당신이 낳았지만 나는 김아무개 여인의 배를 통해 가지고 그 품에 품어 기른 그 아들이 아니니 함부로 나타나지 말라고 하며 쫓아 보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불효이지만, 천적인 법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면 부모에게도 처자에게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중요시되는 모든 제도를 우리는 중요시할 수 없는 입장에 있으며, 또한 세상에서 존경받는 모든 제도를 우리는 존경할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분야의 체제를 형성하고 새로운 분야의 사상적인 체계를 중심삼은 세계관을 꿈꾸며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통일사상인 것입니다. 통일사상은 간단한 것입니다. 결국 그 사상이 뭐냐? 성인의 아버지가 되는 도리입니다.

성인의 아버지가 누군지 압니까? 성인의 한을 풀어 주는 사람입니다. 여러 성인들이 이 세계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막연한 사랑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을 해본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축복가정 여러분은 논두렁을 파고 김을 매더라도 천상세계의 인연을 갖고 온 하늘의 왕자 왕녀로서의 거룩한 위신을 가지고 매는 것입니다. 땅을 파더라도 역사상의 그 누구 이상으로 땅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파고, 길을 가더라도 천리 길을 멀다 말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면서 세계의 모든 인류를 찾고 나라를 찾기 위해 비운의 운명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내가 걷는 한걸음 한걸음이 모두 그런 의미에서 걸은 걸음이라는 것을 역사가 알게 되면 이 길은 금으로 장식되는 탄탄대로가 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눈물과 더불어 보냈던 아들이, 가는 길을 기념하기 위해 찾아오실 그날을 찾아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도리인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을 보면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가치의 내용을 지닌 하나의 도리를 갖추고 인생에 있어 그 누구도 추구할 수 없었던 역사적인 한의 기준을 일시에 타파하여 천국의 왕자권을 가질 수 있고, 왕녀권을 쟁취할 수 있는 이 거룩한 도리와 길 앞에 여러분의 걸음걸이가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시한 사람들은 다 물러가야 합니다. 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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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륜을 배반하면
선생님은 통일교회 지도자로서 나이 50세가 되었어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옥중의 수난 가운데서 채찍을 맞고, 피를 토하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나는 채찍질하는 원수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참이신 하나님은 당신이 제일 사랑하시는 아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원수를 구해 주고, 뿐만 아니라 제일 귀한 예물까지도 그 원수한테 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채찍질하는 원수들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런 놀음을 해 나왔습니다. 그래도 나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통일교회 문 아무개는 벌거벗고 춤춘다고 말을 하지만, 내가 정말로 벌거벗고 춤을 추고 욕을 먹었다면 한이라도 없겠는데, 벌거벗고 춤추는 것은 구경도 해보지 못했는데 벌거벗고 춤추는 괴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 백성이 복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한 사람을 치고 저주를 해서 이 민족이 복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선한 것입니다. 그러니 고이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의 발로에서 그랬다면 내가 그것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의로운 것으로 소개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이미 60년대에 대한민국에 이럴 때가 반드시 올 것을 알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기성교회 목사들이 전부다 망쳐 놓은 것입니다. 그런 목사는 눈 목(目)자에 죽을 사(死)자 목사지요. (웃음) 내가 그들에게 밥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20년동안 단에 서가지고 `통일교회 문 아무개 이단 괴수다. 죽어라, 망해 버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망하지 않고 더 신나게 나온 것입니다.

천륜을 배반하면 맨 처음에는 자기 동네에 있는 개가 전부 훌쩍 없어집니다.다음엔 소가 없어지고, 그 다음엔 종이 없어지고, 그 다음엔 그 아들딸이 없어지고, 나중에는 자기 가족까지 없어집니다. 전부다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거지 보따리를 들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천륜을 배반하고도 망하지 않는 자는 없습니다. 내가 천륜 앞에서 매를 맞으면 그것은 생명의 전선을 갖다 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보급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것을 거두어 가지 않으면 그 길을 통해서 자기의 아들딸들이 건너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반대하는 목사, 장로들은 나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그들의 아들딸들은 전부다 내 종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원수에게 복수하는 데는 그 이상의 복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목사나 장로의 아들딸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펄썩 주저앉아 가지고 뭐 `기성교회 예배는 40분밖에 안 보는데 여기는 벌써 몇시간 됐어? 네 시간이 가까워 오는데 배도 안 고프나?’ 하고 불평을 할 것입니다. 나도 아침을 안 먹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침 안 먹었지요? 아침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루쯤 안 먹었다고 해서 죽겠다는 어서 죽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갖지 못하면 죽어도 개죽음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라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종교인들은 세상에서 찌르면 찔려 죽고, 밟으면 밟혀 죽고, 몰면 몰려 죽는 서러운 입장에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종교인들이 그렇게 피를 흘리며 나온 것은 부모를 갖지 못하고, 나라를 갖지 못하고, 세계를 갖지 못하고,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주권을 갖지 못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을 풀어 줘야 할 책임을 대표적으로 지고 나온 사람이 통일교회의 문 아무개 라는 것입니다.

32-272
조국광복을 위해 싸우는 충신 열녀가 되라
우리는 희망에 벅찬 내일의 새 아침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본향땅을 향하여 돌아가는 승리의 왕자가 되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알겠습니까? 지금은 추방을 당한 망명객이 되어 절망해 있는 고아와 같은 입장에 있지만, 새로운 희망을 품고 모든 것을 정복해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금의환향하는 미래의 광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지금까지는 반대를 받고 있지만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백성을 대표해서 대한민국 보다도 하늘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나라가 망한다 하더라도 통일교회는 오히려 이 나라를 구해 줘야 할 책임을 지고 남아질 것입니다. 설령 세계가 망한다 하더라도 세계를 구해야 할 책임을 지고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무리가 있다면 그 무리로 말미암아 세계는 구원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러한 엄청난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하지요? 나를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선생님! 말은 좋습니다. 자기가 필요하면 선생님이라 부르고, 자기가 불리하면 외면하는 것은 효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불리할수록 `예’, 어려울수록 `명령하시옵소서’ 하는 것이 효자의 도리요 충신의 도리입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이 전도하러 내보낼까봐 꽁무니를 빼는 사람을 벼락을 맞을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지금 당장은 안 맞아도 날벼락 맞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날벼락이 뭐냐? 전차, 기차, 자동차가 날벼락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선생님을 이용하려고 하지만 선생님은 절대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보기에는 선생님이 어수룩하게 생겼지만 눈을 보십시오. 눈만은 어수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무서움을 많이 타는 것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절대 무서움 같은 건 타지 않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통일교회가 모험을 할 그때가 아직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때를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은 조국 광복을 위해 싸우는 충신, 열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갖 시련의 과정을 거쳐 연단해야 합니다. 그것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갈 길은 벌써 선생님이 다 닦아 놓았습니다. 그 길을 선생님이 다 닦아 놓고 여러분에게 땀을 흘리며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해서 죽는지 사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기 싫으면 죽어야지 별 수 있어요? 이것이 간접적인 공갈 협박입니다. 원래 공갈 협박하면 망해야 하는데 이런 공갈협박은 얼마든지 해도 흥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자신에 대한 자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떠한 자각이냐면, `세계는 내 것이다, 세계는 내 나라다, 이 세계를 다스릴 군왕은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모셔 놓고 만국을 아버지 앞에 바치고 나서 충효의 도리를 해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신자들의 최고의 희망인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리하여 세계의 군왕으로부터 `너는 효자다, 충신이다, 성인의 아버지다’라는 인정을 받게 되면 세 가지 소원은 영원히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살면 자기 개인을 위해 사는 것이 곧 세계를 위해 사는 것이요, 자기 개인을 위해 죽는 것이 곧 세계를 위해 죽는 것이 됩니다. 즉, 목적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자리에서는 밥을 먹어도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먹는 것이요, 세계의 수많은 주권국가에다 하나님의 주권을 세우기 위해서 먹는 것이 됩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사모하는데는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밤을 새워 가면서 사랑하고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그리움의 한날을 맞아서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로부터 효의 도리, 충의 도리, 성인의 도리를 다했다고 칭찬받을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아버지께서 천하에 없는 기쁘신 모습으로 웃을 수 있는 그 소원의 날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그날이 바로 우리 통일교인들이 소원하는 날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나 깨나 이것을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세계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급변하는 동서양의 정세에 대하여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 없습니다. 또한 아시아의 정세에 대해서도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중심삼은 민주주의와 소련을 중심삼은 공산주의가 금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타진하는 것입니다. 매일 이러한 것을 감정하고 비판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 신자들의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고빗길의 회오리바람과 소용돌이 속에 세계 인류가 말려 들어가는 이때, 인류의 생사를 판가름지어야 할 사명을 절감하며 하나님 앞에 생명을 걸어 놓고 담판 기도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통일교인들인 것입니다.

32-274
어쩌다가 이런 길을 택하게 되었는가
우리 나라는 국토가 남북으로 갈라짐으로 인해 그리운 부모 형제와 처자가 전부다 갈라졌습니다. 또한 북괴가 호시탐탐 남침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현시점에 있어서 대한민국 정세는 몹시 격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있는 우리는 편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의 인연을 중심삼고 `하나님이여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 주소서’ 하고 이 민족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호소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사명을 다하는 종교가 있느냐? 없거든 우리 통일교회에게 그 사명을 맡기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그 사명을 못하면 그 전부를 내가 맡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신념입니다.

나는 돈이 있어도 좋은 집을 짓거나 내 일신의 행락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민족을 위해 돈 쓸 곳이 있으면 빚을 지고서라도 쓴다는 신념을 갖고 나왔습니다. 왜냐? 세계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남겨야 할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회의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지도자가 생활 가운데서 그러한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여러분을 교육할 수 있는 교재를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교재를 남겨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슬퍼도 슬픈 표정을 지을 수 없고, 억울해도 억울함을 나타낼 수없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개척자의 사명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조금만 어려우면 `선생님, 나 좀 도와 주십시오’하고 매달립니다. 전체의 일은 개인을 떠나서 할 수 없습니다.

전체의 십자가를 짊어진 입장에서도 개인의 십자가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을 도와 주면서 이 길을 가는 거예요. 그래서 또 여러분은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절대 손해나는 길은 안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이 길을 걸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를 이용하려하고, 선생님을 이용하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나 안 망하나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나를 못살게 하는 사람들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하늘이 전부다 청산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 문이라는 사람이 무서운 사람입니다.

무서운 게 뭐냐면, 선생님이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려고 하면 기도문이 딱 막혀 버립니다. 원수를 구해 주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요, 원수까지 사랑하리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도 주된 가르침이 아닙니까? 그래서 원수를 위해 기도를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딱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막는데도 기도를 하려고 하면 `이놈의 자식! 고약한 자식’ 하는 말이 입으로 나옵니다. 그런 사람의 집안은 폭삭 망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그 집안을 칠 때에는 외적인 것부터 치는 것입니다. 먼저 물질을 치고, 그 다음에는 자식을 치는 것입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을 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하고 남아진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이런 것을 알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그런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한테 물어 보십시오. 선생님의 생년월일만 들이 대면 전부 다 머리를 숙입니다. 내게는 망하지 않을 자료가 있기 때문입니다.여러분, 망하고 싶습니까, 흥하고 싶습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망하고 싶어요? 「흥하고 싶습니다」 흥하고 싶으면 이 나라를 위해서 제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이 나라를 위해서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대한민국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런 일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길을 출발할 때는 전부다 배척했기 때문에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노동자 농민을 중심삼고 출발했습니다. 집으로 찾아가면 침을 뱉으면서 반대하기 때문에 밭고랑을 찾아가서 농민들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 나라와 이 강토를 사랑하기 위해 이 길을 출발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힙니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길을 택하게 되었는가. 본연의 기준을 중심삼고 대한민국과 아시아와 나아가 세계 정세를 요리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사나이로서 이런 심정을 가지고는 억천만세에 한스러운 길을 다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남아지기까지는 하나님께서 나 이상으로 수고하셨다고 하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지치지 않고 싸워 나온 것입니다.

32-276
선생님의 철학
이제는 반대하던 사람들이 눈물로써 회개하고 종의 자리를 자처해 나설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제부터는 점점 문제가 벌어질 것입니다. 세상에 통일교회의 소문이 파다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알아보지 못하면 제삼국을 통해 채찍질을 해서라도 깨우치게 할 것입니다. 일본이 지금 한국을 깨우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무슨 장관이나 어떤 저명한 사람이 일본에 가서 통일교회를 보고 놀란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런 줄 몰랐다며 스스로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다는 거예요. 기가 막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이 민족이 통일교회를 이렇게 간접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불쌍한 민족이 되었느냐? 기독교가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게 되면 누구든 기독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책임 못한 것을 이 나라의 백성이 알고, 세계의 만민이 알기 때문에 그들이 기독교의 하나님은 죽었다는, 기성세대를 지도하는 하나님은 죽었다는 결론까지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 죽었던 하늘을 부활시키고, 죽었던 기독교를 부활시키고, 죽었던 세계 인류를 부활시키자는 기치를 들고 나와 지금까지 욕을 먹고, 죽었던 기독교를 부활시키고, 죽었던 세계인류를 부활시키자 기치를 들고 나와 지금까지 욕을 먹고, 쫓김받고 핍박받아 나온 것이 통일교회인 줄을 누가 알았느냐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지도자들도 몰림받고 핍박받으면서 개척의 길을 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자도 그랬고, 석가도 그랬고, 마호메트도 그랬고, 예수 역시 그랬습니다. 어느 누구도 몰리지 않고 쫓기지 않은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성인의 반열에 동참하여 거룩한 이름을 남긴 이들은 그 시대를 위하여 희생함으로써 그 시대의 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가는 이 민족 앞에 배척을 받아 추풍에 떨어지는 낙엽 같이 되었지만, 그 잎이 떨어질 때는 씨를 품고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씨가 다시 싹이 나고 잎이 나올 것을 기대해 나왔던 것이며 사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망하더라도 통일교회는 망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철학입니다.

여러분이 쉴 때에도 나는 쉬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쳐서 허덕이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무릎을 꿇고 `아버지여 제가 아직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했나이다. 저는 3, 40대에 당신이 바라던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50대를 넘어서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죄인의 실체가 된 이 처량한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나타날 면목이 없습니다’하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호소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생활합니다.

세계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고, 인류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천칙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못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이 사상과 이념을 세계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은 열두 제자 중에서 세 제자도 못 가졌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가 오늘날 세계를 정복했지요? 그렇지만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많아요.

여러분 중에서 선생님이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이만한 수라면 할 만하지요. 김일성이 문제가 아닙니다. 만일 김일성 이놈의 자식이 옛날에 그의 주권하에 있는 흥남감옥에 아무것도 없는 고아와 같은 신세로 있는 문 아무개가 오늘날의 통일교회 문선생이 될 줄 알았다면 그때 나를 잡아 죽였을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얄궂은 것입니다.

그때 나는 `두고 보자, 미래에 너와 상봉해서 네 주권과 우리의 자체력을 중심삼고 대결하여 너를 내 손으로 자연굴복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천하의 산 죄수인 너로부터 항서(降書)를 받아 가지고 이 땅을 전부다 편답할 것이다,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네가 치리 방법을 몇십 배로 가장하더라도 나는 정당한 입장을 보증시키겠다’라고 하는 실증적인 역사의 내정을 결정하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공산당을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환경이나 시련이 닥쳐오면 닥쳐 올 수록 더욱더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32-278
우리는 죽어도 이 길을 가야 한다
사탄은 하늘보다 앞서서 갑니다. 그래서 거짓 부모의 행세를 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이를 아버지라고 하지요? 참다운 아버지가 이 땅에 와서 가르치고 치리할 세계적인 주권의 도리를 그들이 먼저 거짓되게 흉내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겨울절기를 지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기간은 새생명이 움트는 봄절기, 광명한 통일의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준비 기간이 1969년도까지요, 1970년대부터는 봄을 맞이하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년에 들어와 가지고 통일교회에 상당한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1972년도까지 3년 동안 계속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여러분이 자기의 아들딸을 더 사랑하느냐, 자기의 몸뚱이를 더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효자가 되고 싶어요? 효자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다? 「되겠습니다」 효녀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충신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되겠습니다」 충녀가 되어야 되겠어요, 안되어야 되겠어요? 「되어야 되겠습니다」 성녀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성녀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녀를 만들어야 합니다.그래서 어머니란 이름이 나온 것입니다. 어머니가 나와야만 그 어머니를 중심삼고 새로운 딸이 나오는 것이며 새로운 딸들이 나와야만 새로운 형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여자들이 해방을 시킬 때가 올 것입니다. 자, 그럼 가야 되겠습니까, 가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가야 되겠습니다」 어디로 가야 되겠습니까? 대한민국으로 가야됩니다. 세계로 나가려니 먼저 대한민국을 찾아야 되고, 아시아를 찾아야 됩니다.

우리는 아시아를 수호해야 됩니다.그래서 일본을 끌어넣고 중국을 끌어들이는 작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수년 전에 이 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차 단계로 환경과 분위기를 갖추어서 그 범위를 넘고 나가야 합니다. 이제 일본 정부에서 통일교회 문선생님을 문제삼을 때가 왔습니다.

우리가 아시아를 필요로 하고 아시아를 개척하는 것은 세계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을 복귀하려는 것은 세계를 광복하는 데 표준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세계의 광복을 맞이하는 날, 탯줄을 끊었던 어머니 아버지와의 정을 연결시키고 콧노래 부르며 행복한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본향땅을 위하여, 본향의 심정적 주체인 부모를 찾고 그 부모의 안식처를 위하여 맹세하고 나선 것입니다. 천년 한이 자기 앞에 부딪혀 들어온다고 해서 이 길을 포기하고 돌아서 가지고는 효자가 될 수 없는 것이요, 충신이 될 수 없는 것이요, 성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우리는 가는 길 앞에 감옥이 있든지, 죽음이 있든지 상관 말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7:31-33)”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 나라는 무슨 나라냐?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중심삼은 만민의 천국, 태평왕국이며 사랑으로 통일된 이상세계입니다. 그러한 나라를 위하여 피를 흘리고 참을 위하여 죽는 것이 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은 천륜의 도리 앞에 입증되고 영원히 남아질 참다운 인생길인 것입니다.

32-280
하루 하루의 생활을 가릴 줄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
그러면 이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내가 생활하는 가운데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세계는 멀어서 내가 관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방법은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흥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다 들지요? 선하게 살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역시 다 들지요? 그러나 망하겠다는 사람, 악하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 악한 것은 전부다 싫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런 것은 나를 중심삼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길에서 이기고 가는 방법은 나 자신의 확실한 생활적인 기반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늘날의 모든 종교는 이러한 기준이 막연합니다. `술을 먹지 말라’고 해놓고서는 술 먹는 것이 어떻게 해서 죄가 되느냐고 물으면 `먹지 말랬으니 먹지 말아야지’ 하는 식의 막연한 대답을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러한 기준을 확실하게 제시합니다. 통일교회는 사탄세계를 다 알고 어떤 것이 사탄편에 속하는 일인지를 다 압니다.

마음이 벌써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나가서 전도하라고 지시를 했는데 전도하러 나가지 않고 길거리에서 선생님을 만나면 머리가 숙여집니까, 안 숙여집니까? 「숙여집니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선생님이 주먹으로 때릴까봐 그래요? 그것은 마음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하루라도 나가서 욕이라도 먹고 핍박이라도 받고 들어와야 그것이 탕감조건이 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조건이라도 세웠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러라고 가르쳐 줘서 그럽니까? 아닙니다. 천리의 공법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개인의 생활이 있지요?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루를 중심삼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애란 무엇입니까? 생애라는 것은 일생을 중심삼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생활을 바칠 것입니까, 생애를 바칠 것입니까? `나는 하나님 앞에 생애를 바치겠나이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 하루의 생활을 가려 가야 합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을 가릴 줄 몰라 가지고는 일생을 승리적인 생애로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의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알겠습니까?

32-281
공적인 사람의 결과
여러분은 선할 수 있는 화살과 악할 수 있는 화살, 즉 선할 수 있는 길과 악할 수 있는 길, 두 길을 품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두 사람의 모체입니다. 몸뚱이는 나를 중심삼고 살고자 하고, 마음은 남을 중심삼고 살고자 합니다. 그렇지요? 몸뚱이는 나를 위해서 일하려 하고 마음은 남을 위해서 일하려 합니다. 이 둘이 합동작전을 하지 못해요.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현실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마음과 몸뚱이는 하나입니다. 몸뚱이도 남을 위하여 살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둘로 갈라진 것입니다. 타락한 자가 방탕하게 될 때에는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부모 형제까지도 부정합니다. 전부 자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남의 등을 치고, 사기를 해서라도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되지’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까, 악한 사람입니까? 「악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명동 바닥을 활보하며 다닌다 하더라도 그가 죽으면 그의 무덤은 어디에 파야 되겠습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사람은 집안까지 망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생활에 있어서 천국과 지옥, 선과 악, 흥과 망의 가름길을 무엇으로 쌓을 것입니까? 그것이 무엇으로 결정되느냐? 공적일 때에는 선이요, 사적일 때에는 악입니다. 간단해요. 대한민국의 공무원들이 사적으로 살게 될 때 대한민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지 말라고 제사를 드려도 망한다는 것입니다.부패하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가정을 희생시켜 서라도 나라를 위한 공적인 일을 하면 흥하지 말라고 제사를 드려도 흥한다는 것입니다. 공적이냐, 사적이냐에 따라 선과 악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악은 뭐냐? 사적인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사적인 간판을 들고 나서는 것이 최고의 악입니다. 공산당은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삼은 패입니다. 자기 주권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자연굴복을 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선이냐? 어떤 것이 더 공적이냐는 것입니다. 공적이라는 것은 희생하는 것이요, 양보하는 것입니다. 공적인 것 가운데서도 개인보다 더 공적인 것은 가정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은 가정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천리입니다.

천리를 중심삼고 사는 사람은 영원히 망하지 않습니다. 만 사람의 아들딸이 있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부모와 형제를 위해 공적인 생활을 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은 후에 어머니 아버지의 재산은 물론 형님 누나의 재산까지 전부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공적인 입장에서 사는 사람은 자기 개인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터전 전체의 중심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간단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가정보다 자기 친척을 위하여 희생하고 자기 동네를 위하여 희생하라는 것입니다.그렇게 하는 것이 보다 공적인 것입니다. 자기 집보다도 동네를 위하여 희생하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이 그 동네의 모든 권한을 좌지우지하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그 마을을 떠나려 한다면 붙잡고 `제발 천년 만년 반장해 주고 이장해 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틀림없이 그 동네의 모든 환경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씨족보다 더 공적인 것은 민족입니다. 민족의 수많은 씨족 가운에 김씨라고 하는 문중이 민족을 위해 희생을 했다면 그 김씨 문중은 그 나라 전체를 주도할 민족적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이것이 정치적으로 보면 공화당과 같은 당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당도 나라의 위신과 장래를 망각하고 자기 당만을 위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당은 나라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가정과 씨족이 함께 나라를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한 당과 나라는 망하라고 제사를 지내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부흥하려면 다른 것은 다 잃더라도 이 사상만은 모든 국민에게 주입시켜야 됩니다.

개인보다는 가정이 공적이요, 가정보다는 씨족이 공적이요, 씨족보다는 민족이 공적이요, 민족보다는 국가가 더 공적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또한 국가보다는 세계가 더 공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입장에서 공적인 생애를 거쳐간 사람들은 역사상에 성인이라는 이름을 남기는 것입니다. 성인의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세계에 대한 상속권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판도를 넓혀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자기의 배를 채우기 위해 사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사적인 입장에서 사는 사람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직장에서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직장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수많은 백성 가운데서도 자기의 사리사욕이나 자기 가정의 이익을 위해 욕심을 부리면 그 가정은 망하는 것입니다.

32-283
보다 공적인 것을 위하여
우리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은 세계주의만이 아니고 천주주의입니다. 하늘땅의 복귀를 위하여 죽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공적인일 중에서 최고의 공적인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역사에 안 남겠다고 땅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죽더라도, 혹은 맞아 죽었더라도 역사상에 안 남아질래야 안 남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 기성교회 목사의 아들딸이 왔다면 듣고 기분나빠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이 길을 반대해 보라는 것입니다. 누가 죽나, 통일교회에서는 그렇게 지도하고 있습니다.

이 본부교회를 보고 `아이고 통일교회 세계본부가 이거야?’ 하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좋습니다. 하지만 본부가 이렇게 초라한 것은 집을 지을 능력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 남모르는 가운데 투자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지금 경기도에 수련소를 짓고 있는데 거기에 많은 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각 지역에 있는 통일교회의 방을 한 칸이라도 더 넓히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책임이지만 이 나라를 위해서 통일교회를 고생시키고 나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이끄는 내 손이 마르고, 내 뼈가 마르지 않는 한 나에게 소속된 동족이 희생될 것입니다. 이것은 천리원칙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라를 위하고 그 누구를 위했을 때는 망할래야 망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도 중의 최고의 도요, 가르침 중의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그래도 망했다면 내 목을 쳐도 좋습니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는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반공연맹에서는 우리 승공연합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기성교회는 우리를 미워합니다. 우리는 기성교회가 욕을 하든 말든 나라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기 위하여 피땀 흘리며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리가 점점 커 가니까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식으로 우리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고질적인 우리의 민족성이 그렇다는 거예요.

기성교회는 작년까지만 해도 `통일교회 그 까짓 것들이 뭘 해’하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코웃음치는 것에 놀아나는 무리 정도로, 꿈 가운데 나타났다 사라지는 재수없는 여자 정도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알았던 통일교회였는데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갑자기 득세할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반년 동안에 자기들이 손잡고 넘겨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를 가 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방은 그들의 변소만도 못합니다. 본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젊은 역군들이 아시아를 개척하고 세계를 짊어지고 세계의 봉화를 들고 우리의 것을 세계적으로 본받으라고 하며 나섰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천적인 거룩한 사명을 짊어지고 나설 수 있는 무리가 통일교단을 통하여 나타날 줄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삼복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마에서 구슬 같은 땀이야 흐를테면 흐르라고 하며 이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극한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호소하며 지금까지 이끌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본부의 건물을 보고는 침을 뱉을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닦아 놓은 터 위에서는 춤을 추어야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앞으로는 자기 집 위주의 세계가 아니라 자연적인 세계주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수많은 기성교회가 있지만 그들은 통일교회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박장로가 전도관을 많이 짓고 있지만 그건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집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집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통일교회 신자들은 나를 보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데 그렇게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러움이 탄다는 거예요. 나는 여러분이 마음으로 그릴 수 있는 그런 째째한 스승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계 인류를 갖다 맡기고 싶고, 세계 전체를 상속해 주고도 더 주고 싶어하는 그런 아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금후의 세계는 기필코 통일교회의 사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관권으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런 신념을 갖고 나갑니다.

선생님도 여러분과 같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뼈와 살을 가진 사람이요, 붉은 동맥의 고동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나이입니다. 그렇지만 정의에 입각한 천도를, 공적인 도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내 육신의 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하늘의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더 공적이기 때문에 나는 육신의 혈통을 끊고 공적인 부모와 인연을 맺기 위하여 이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나’ 개인뿐만 아니라 나의 가정도 종족도 민족도 그것을 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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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상의 취지
통일교회는 대한민국 안에서의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앞으로 모색해야 할 새로운 대한민국의 이름을 중심삼은 통일교회의 권내에서 살아가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상이요, 우리로 말미암아 세계를 입증하고 세계를 보장하겠다는 천적인 심정의 주체성을 갖고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선생님과 하나되고 이러한 내용으로 자기를 긍정하고 그러한 각오 아래 나가는 무리가 통일교단입니다.

세상에는 시시한 껄렁패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통일교회에 많이 왔다 갔습니다. 흐르는 물줄기는 대해를 이루는 것이 목적이지, 과정에서의 어떤 현상이 목적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내 갈 길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바쁜 그 길만을 가려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선생님의 지도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이야 지치든 말든 나는 갈 길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바쁜 선생님을 따라가겠습니까? 「예」 천리길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천리길을 따라갈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 가운데 자기만을 중심삼고 `아이고 내가 무엇이 되지’ 하고 생각하는 시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세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것을 보증받을 수 있는 사람을 남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계가 필요로 하는 사람,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들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셰계주의요 통일사상입니다. 공사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보다 공적인 입장에서 살아 가지고 천국을 이루어 후대에 남겨 주자는 것이 통일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사상이 무엇인지 알겠어요? 그것이 뭡니까? 보다 공적인 것, 보다 큰 것을 위해서 살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산당보다 나아야 합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남한으로 쳐들어 오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원한 장래에 우리의 청춘 남녀들을 공산당 이상 가는 정예대로 양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삼팔선을 넘나들어도 북한에서 막아내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이 많은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대로,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내가 이북에 가서 감옥살이까지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길을 가겠습니까, 안 가겠습니까?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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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세계를 위하여 달음질치자
삼천리 반도는 우리의 수중에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소련과 중공의 국경을 넘어 공산당을 때려잡고 그 나라들을 수습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통일교회의 문이라는 사람은 죽지 않고 남아졌습니다. 나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죽이려고 하면 죽을 줄 알았지만 나는 안 죽었습니다. 오히려 나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먼저 죽었습니다. 선생님이 죽을 자리에 가게 되면 반드시 해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하나님의 보장 가운데 살고 싶은 청년 남녀들 손들어 봐요. 정말 그래요? 「예」 내려요. 한번 더 힘차게 손들어 봐요. 됐습니다. 이제는 내가 죽더라도 눈을 감고 죽을 수 있겠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이제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내가 가르친 도를 중심삼고 대를 이어 살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남을 것이니, 통일교회의 주의는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갈 것입니다.

나까무라상! 선생님한테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예」 (박수) 일본에 있는 통일교인들은 일본산 한국 사람이고, 미국에 있는 통일교인들은 미국산 한국 사람이고, 독일에 있는 통일교인들은 독일산 한국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어느 나라 사람과 결혼해도 한국 사람끼리 결혼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동양과 서양의 결혼이 가능한 것입니다.

금년이 통일교회가 세계적으로 판도를 넓혀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 시대적인 가정의 운세를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그래서 7개국에서 청년남녀들을 모집해 가지고 700쌍을 결혼시켜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따라서 조국에 있는 우리 가정들이 먼저 본향 땅에 세계적인 십자가의 단을 쌓고, 가정적인 거룩한 제사장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러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시기가 금번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대한 문제를 결정지어야 할 노정이 지금의 2차적인 노정인 것을 알고 앞으로 세계의 가정들 앞에 전통으로 남길 수 있는 보람있는 업적을 세워 주길 부탁드립니다.

자, 움직여야 되겠습니까, 움직이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움직이지 않고서도 망하지 않으면 내가 망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달음질쳐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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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아버님, 70년대를 맞이하여, 망할 수밖에 없었던 저희들을 오늘날까지 지켜 주신 아버지의 수고가 얼마나 크셨는가를 생각할 때, 날이 가면 갈수록 아버지 앞에 황공함을 느끼옵니다.

뜻을 알고 감사하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사는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가 알았습니다. 아버지, 쫓기는 무리를 통하여 세계에 개척자의 전통을 세워 나오시는 아버지의 섭리는 과거나 현재나 다름없이 역사적인 운명의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이 자녀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러한 운명의 보금자리를 향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스스로 느끼고 가기로 결정하였사오니, 아버지여, 그 모습들을 공고한 터전 위에 서게 하여 주시옵고,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삼천만 민중을 움직여 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격을 갖추어서 세계에 널려 있는 어떠한 민족의 힘보다도, 어떠한 사상보다도 강한, 천적인 심정에 일치될수 있는 통일사상을 지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이러한 거룩하고 보람있는 승리의 인생행로를 가는 우리의 생애에 대한 고귀함을 느끼면서 내일의 희망의 총아가 되고 내일의 국가와 내일의 세계에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 위해 오늘 이 한 시간을 의의 있게 살아가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서울에 널려 있던 아들딸들이 여기에 모였사옵니다. 이날을 기하여 각자가 내일을 다짐해야 되겠사옵고, 그 다짐하는 모든 것이 내가 살기 위한 것이 아님을 이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살기 전에 가정이 살아야 되고, 가정이 살기 전에 민족, 국가, 세계가,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세계를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하여야 할 엄숙한 사명을 위해서 사는 것만이 최후의 결정적인 승리의 터전을 다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 길을 가기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들이는 하늘의 아들딸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러한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40일 하계전도기간을 통하여 여기에 모인 이들이 새로운 역사적인 전통과 민족중흥의 깃발을 들고 나서서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내심적인 결의와 외심적인 각오를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다가오는 70년대의 모든 천적인 행운을 받아들일 수 있는 복된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 세계를 위하여 승리할 때까지 참으며 싸워 나갈 것을 다짐하고 기필코 아버지를 모시고 갈 것을 맹세하오니, 부디 저희를 보호하여 주시옵고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