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05 to 32-233: 내일을 맞자

내일을 맞자
1970.07.19 (일), 한국 전본부교회

32-205
내일을 맞자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이달을 맞이하여 세 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당신의 영광이 이 민족과 이 세계 위에 임하시옵소서. 당신이 바라시는 소망의 뜻도 이 인류와 더불어 일체가 되시옵소서. 그리고 하여 당신의 참다운 사랑을 중심삼은 자녀들이 당신의 존전에 찬양과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과 땅은 영원히 영원히 홀로 있을 수 없는 인연인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땅은 하늘로 말미암아 시작되었고, 하늘은 땅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이상을 추구해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 하늘과 땅의 인연을 하나로 종합하여 당신의 사랑의 실체로서, 만우주의 중심의 격을 갖추어 지음받은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한 인간에게 당신의 소망이 깃들어 있었으며, 또한 사랑의 한날을 고대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는 것을 저희 자신들이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도 보잘것없는 저희 자신들의 마음과 몸 위에 당신의 영광이 임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새로운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존엄하고 귀하고 높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마음을 갖출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가 저희를 부르기 전에 저희 자신이 스스로 나설 수 있는 모습이 되게 하시고, 저희들이 아버지를 고대하기 전에 아버지가 저희 마음속에 계실 수 있도록 정성을 들이는 모습으로 묶어지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와 같이 높고 귀한 인연을 지녀야 할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조상의 후예로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저희 자신들은 흑암의 세계에서 광명한 내일을 추구하기 위해 오늘의 이 한 시점을 타개해 나가야 할 운명권에 놓여 있는 것을 아옵니다. 이것이 슬픔이요, 이것이 고통이요, 이것이 한탄할 내용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이 시점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새로운 아침, 새로운 내일, 새로운 미래,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 그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보다 가치적인 나를 추구하면서도 오늘도 내일도 생애를 바쳐 싸우겠다는 결의가 저희 마음에 불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잠들고 시들어 가는 입장에 있다 할지라도 저희의 생명력만은 아버지가 소원하시는 세계를 향하여 힘차게 뻗어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자유로운 환경 가운데 있어서 저희가 모든 힘의 원천으로 드러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 생명력을 지니고 나타날 모든 개체들을 하늘의 찬양의 실체로 거두어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루한 역사과정에서 참다운 인류를 찾아 나오시던 아버지의 소원의 마음을 지금까지 이 땅의 역사를 엮어온 저희 선조들이 얼마나 짓밟고 유린 하였사옵니까? 그런 과거를 저희들이 회개하고 아버지의 심정을 체득하여 오늘 이 시점에서 새로운 소망의 실체의 모습을 갖추어서 아버지의 뜻앞에 내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과 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런 아들과 딸이 되어 아버지의 사랑을 몽땅 상속받아 가지고 선한 세계, 새로운 천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필요한 중심적 존재들로서 아버님이 자랑하고도 남을 수 있는 참다운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끼옵니다. 저희들이 그런 모습이 될 것을 이 시간 결의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당신은 생명의 주체이시며 능력의 본체이시니, 이 시간 저희의 마음과 몸을 당신의 장중에 완전히 장악하시어서 옳지 못하고 합당하지 못한 내용이 있거든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선한 본성의 인연으로 화할 수있는 본질만을 일깨워 주시어서 아버님의 전체의 본성과 일체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당신께서 소망하시는 그 마음과 일체화되게 하시어 당신의 기쁨과 슬픔과 외로움을 직접적으로 체휼할 수 있는 존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는 아버님 앞에 겸손히 부복하였사옵니다. 저희의 소망은 다른 것이 아니옵니다. 오직 당신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것이옵니다. 저희는 이름뿐인 아들딸이 아니라 당신의 영원히 영원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당신이 내세워서 칭찬하고 싶어할 수 있는 그런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될 때에 그 아들딸이 갖춘 모든 것은 아버지의 소유요, 아버지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그 아들딸을 위해 있다는 것을 느낄 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자신이 무엇보다도 가치 있고 귀하다는 것을 느낄 줄 앎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 가치 있는 모습이 되어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오니 이 시간 남한 각지에서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 이곳을 위해서 기도하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들이 가야 하는 길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가는 길이요, 그들이 살아야 할 것은 아버지를 중심삼고 살아야 할 것이옵니다. 이 악한 세상의 흑암의 권세가 그들의 갈 길을 막고 있사오니, 그 환경을 개척해야 할 그들의 입장이 얼마나 괴롭고 외로운 것인가를 아시는 아버지여, 그들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오늘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고, 내일을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영원한 세계에서 보람을 느끼며 사는 아들딸로서 당신이 품에 품고 사랑하고 높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참다운 아들의 격, 딸의 격을 갖출 수 있는 자녀들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시여, 해외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은 오늘도 외로운 복귀의 도상에서 홀로 개척자의 사명을 책임지고 수고하고 있사오니, 당신의 사랑으로 그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그들은 자기의 백성만 구원하기 위해 나선 무리가 아니오라 하늘의 백성을 위하여 어려운 길을 나선 무리인지라 그들이 생활하는 환경과 그들이 가는 길에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외로움과 고충이 있으리라는 것을 당신은 잘 아실 것이옵니다.

그들은 생활 환경에 있어서 모든 것을 화합하기에 필요한 여건을 갖추진 않았사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투쟁의 행로를 개척해야 할 하늘의 사명을 짊어진 당신의 사도들이오니, 당신이 그 자리를 지키고 보호하시어서 남아진 역사의 사명 앞에 책임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그 생애의 거룩함을 인정하시옵고, 그 생활이 보다 가치 있음을 인정하시옵소서. 또한, 당신이 그들을 보호하심으로써 당신의 권한을 나타내시옵고, 살아 계신 당신의 능력이 그들과 같이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모든 환경을 굴복시키고 거기에 처한 모든 무리들을 당신 앞에 부복시킬 수 있는 직접적인 역사가 그곳에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동서양의 역사의 방향이 한 기점을 통하여 아버지와 더불어 일체화될 수있는 그날이 오고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고, 그들도 알고 있사옵니다.비록 동서로 갈라졌지만 아버지가 소망하는 승리의 한때를 서로가 바라고 있사오니, 때를 향하여 개척하고 싸워 나가고 있는 그들 앞에 힘이 되어 주시옵고, 능력의 실체가 되시옵소서. 그들 전체를 보장하시어서 당신의 고난과 슬펐던 과거를 대신 탕감할 수 있는 직접적인 당신의 아들딸로서 세우시옵소서. 그들의 모든 생활과 생애를 지켜 주시옵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곳을 흠모하며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들일 적마다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들이 외로울 때에 당신의 외로움을 체득할 수 있고, 슬플 때 당신의 슬픈 내정을 체득할 수 있는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당신의 깊고 넓은 은사를 가하시어서 하나로 묶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동하면 그들도 동하고, 당신이 정하면 그들도 정하는 일체의 인연 가운데에 화할 수 있는 인연을 갖추어 사는 하늘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자리일지라도 당신께서 사랑의 은사로 그곳을 덮으시어서 그들이 승리의 한 터전을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부탁드리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알아서 당신 앞에 몽땅 바쳐 드릴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아버지께서 은은한 가운데 각자의 이름을 부르시어서 명령하시옵소서. 너는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살 것이며, 어디로 갈것이냐고 묻게 될 때에 제가 여기에 왔사오니 당신과 더불어, 당신의 뜻과 더불어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 되겠다고 결의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사방에서 모여든 당신의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고, 오늘 하루도 복된 하루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욱이 저희 가정을 통하여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이 땅 위에 보내 주신 것을 감사드리오며, 그 이름과 더불어 이 나라가 흥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그가 자람으로 말미암아 당신 앞에 영광이 되고 자랑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체의 환경을 지키시옵고 모자(母子)위에 거룩한 은사를 가하신 것에 감사드리옵니다. 더더욱 금후에 모든 전체가 아버지 앞에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오늘 저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한 핏줄에 매인 형제와 같은 사연을 품고 가는 모습이기에 아버지의 거룩한 승리의 그날을 위하여 일체를 묶어 바치오니, 거룩히 받으시옵소서. 그날의 승리를 온 천지의 인류와 더불어 찬양할 수 있게끔, 아버지, 보살펴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친히 맡아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2-209
말 씀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다 희망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희망을 갖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더 나은 한날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현재보다 미래가 못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32-210
오늘을 사는 인간이 바라는 것
여러분이 현재 처해 있는 자리는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자리요, 미래를 향해 출발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70년대가 되든, 50대가 되든, 20대가 되든 사람이 처해 있는 자리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중심인 것입니다. 그 자리를 중심삼고 천태만상의 과거가 있었고, 현재도 천태만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미래에도 천태만상으로 벌어질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이 서 있는 것은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인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자리는 자기 개인의 입장으로 서 있는 것 같지만, 자기 혼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면 사회를 대표해서 서 있는 것이요, 민족이면 민족을 대표해 서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를 대표해 서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개인이 내일을 맞게 될 때, 과거보다도 현재보다도 나은 미래를 바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보다도 나은 가치 있는 것을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보다 나을 수 있는 이런 인연을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는 사방의 환경을 대표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환경의 무엇보다도 나은 자기 스스로의 자리를 결하지 않고서는 미래의 좋은 환경을 가질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나이기에 역사를 대표한 내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은 과거보다 못한 자리, 현재보다도 못한 자리가 아닙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역사를 대표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이 세상이 선한 세상으로 우리의 영원한 이상의 터전이라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고, 최고의 성인이 입증할수 있으며, 하나님이 보장할 수 있는 세상이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자유와 평화와 통일의 세계, 즉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도 앞으로 다가올 희망의 세계를 위해 보다 나은 인격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새로이 느껴야 할 것은, 나 스스로가 보다 가치적인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 이 땅에는 수많은 인간이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민족이 있고, 민족을 넘어 국가와 세계가 있습니다. 여기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종교를 믿는 사람이 영계의 영인들이 동원된 현재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현재의 입장은 보다 나을 수 있는 스스로의 입장을 결하지 않고는 보다 나은 내일의 가치적 세계를 추구하기에 합당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국 아무리 역사가 좋고 사회가 좋다 하더라도 그 좋은 역사와 사회앞에나 자신이 보다 나은 입장에 서야만 보다 나은 미래의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못하고, 그보다 낫지 못한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역사와 환경 앞에 심판받게 되는 것이요, 비판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요, 환경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32-211
인간이 지녀야 할 가치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존재라면 그 인간은 과거의 사실을 오늘날에 입증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존재로서 지음받았을 것입니다. 현재에 있어서도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미래에 입증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런 가치적인 존재로 지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람은 희망을 품을 뿐만 아니라 희망하는 전체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가치적 존재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만물 중에서 유일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이 만물 가운데에서 가장 높고 귀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서 있는 그 자리는 역사가 우러러볼 수 있는 자리요, 이 시대가 중심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리요, 미래가 그 가치 앞에 들어가 머리를 숙일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이처럼 미래까지 품고 나갈 수 있는 가치적인 존재라야만 유일체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영장이라는 말은 반드시 중심에 서서 전체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사람에게는 세계적인 중심이 되려고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무한한 가치를 가진 중심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존재가 있으면 그 존재 중에 최고의 존재가 되고 싶어하고, 또한 절대적인 중심이 있다면 그 중심과 하나되고 싶어합니다. 이와 같이 보다 낳은 가치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의 마음이 왜 그렇게 되어 있느냐? 그것은 본래 우리 인간이 역사시대의 전체 가치를 대표하는 중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타락한 인간세계에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들이 자기를 보고 기뻐하고 자기가 생활하는 환경에서 즐거워하고 있느냐 할 때, 나 자신을 두고 기뻐하는 나 자신의 생활로 말미암아 행복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찾았다 할진대 그 사람은 전체의 중심이 아닐 수 없고, 전체 행복의 가치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그런 가치를 지닌 중심존재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이 거리를 어떻게 단축시키느냐? 이 거리를 어떻게 단축시켜서 그 결정적 중심 앞에 일치화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역사시대를 거치는 동안 뜻을 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간격을 좁히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 바로 인생인 것입니다.

그 절대적 가치의 기준과 일체화하기 위해서 우리 인간만이 힘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절대적 가치의 기준까지 갈 수 있도록 우리를 협조해 주는 하나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절대적인 존재로 짓고, 또 하나님이 인간을 책임지고 인간과 절대적인 관계를 가졌다면, 어느 한때엔가 기필코 절대적 가치의 기준과 인간이 일치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존재요, 무한한 능력을 지닌 분이기 때문에 인간도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또 그것이 성사될 수 있는 때가 기필코 오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적인 사람들은 내일을 위해, 미래를 향해 하나의 세계를 바라나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의 역사는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출발의 때가 아니라, 역사적 종말시대에 머무른 때입니다. 우리는 이때에 하나님과 나와 일체화될 수 있는 기점을 나 스스로의 생활권내에서 내 인격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결지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현재를 말세라고 하고, 끝날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현재는 과거보다 더 나아야 되고, 미래보다도 더 나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불행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으며, 역사의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시대의 규탄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품고 나온 희망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가문을 중심한 희망, 즉 김씨면 김씨 가문을 대표한 희망만 가져서는 그 가문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것이 희망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희망의 기준이 되려면 역사의 희망과 일치되고 이 시대의 희망과 일치되며 미래의 소망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어떠한 특정한 종족, 특정한 민족, 특정한 국가를 중심삼은 희망이 되면 결국에 가서 하나밖에 남을 수 없는 그 희망 앞에 심판받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인간은 이런 길을 피해 가기 위해서 양심이 바라는 길을 찾고,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누구든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하나님도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섭리역사와 인류역사노정에 인연을 맺어 놓아야 됩니다. 이런 인연을 맺기 위한 것이 종교가 가는 길인 것입니다.

종교가 가는 길은 역사의 배후를 따라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과정을 넘어 환경을 초월하여 미래를 추구할 수 있는 보다 새롭고 가치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길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취하지 않는 종교는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시대권내에서 규탄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와 통할 수 있는 내용, 시대를 이끌고 미래로 갈 수 있는 종교적인 길을 찾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2-214
인간이 역사적인 중심자리에 섰다면
우리가 보다 나은 내일을 맞기 위해서는 보다 나은 역사적인 실체가 되어야 하고 보다 나은 시대적인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역사적인 실체와 시대적인 중심이 되려면 이 시대에 있어서 한 종족이나 한 민족을 중심삼은 대표뿐만 아니라 역사적이며 시대적인 대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가치와 능력을 지녀야 됩니다. 이런 존재가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중심인 것입니다.

이런 기점 위에 서서 보다 나은 내일을 끌어들인다면 그 내일은 끌려들어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세계, 죽음의 세계, 즉 사망의 세계가 그 앞에 다가온다 하더라도 보다 나은 내일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적인 가치의 중심, 혹은 역사적이고 시대적이고 섭리적인 중심에 자리를 결정했다면, 그는 과거를 지배할 수 있고 현재를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면 앞으로 가는 길에 아무리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 어려운 환경 너머에 있는 새로운 소망을 끌어당겨 어려운 환경을 제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인격체가 이 땅에 나타나면 그는 인류역사의 끝날이 멀다 하더라도 그 끝날을 단축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겠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내일을 위해 나서게 될 때 과거와 현재는 미래를 보증할 수 있는 미래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인연을 통하여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대신해서 승리할 수 있는 입장에 선다면 거기에서 미래를 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서 미래의 소망을 품고 개척자의 사명을 하기 위해 왔다 갔던 성인들 앞에는 시련과 핍박의 길, 버림받는 길, 죽음의 길이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그 가로놓였던 것들을 그들이 제거하고 몰아내기 위하여 대결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대결밖에 되지 못했습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한 승리로는 남아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반드시 훗날 한 중심에 의해서 수습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일 통일된 하나님의 뜻,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하나되고 백 퍼센트 체득한 자리에서 그 환경과 싸워 나왔다면, 그들은 생애노정에서 뜻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뜻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 뜻은 절대적인 아들을 위한 뜻이자 절대적인 딸을 위한 뜻입니다. 절대적인 가치를 중심삼은 아들딸을 위한 뜻이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룬 아들딸이 이 땅에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섭리노정 앞에 과거를 대표한 자가 되고, 현시대의 중심존재가 되며, 미래의 출발자가 될 수 있는 확고한 중심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이상을 몽땅 품을 수 있는 대표적인 존재가 되었다 할진대, 거기서부터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벌어지고 초역사적인 새로운 능력의 역사가 벌어질 것입니다.

32-215
내일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신령한 자리에 들어가 기도하게 되면 그 기도하는 가운데 미래의 전체가 여러분과 관계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낄 것이며, 말할 수 없는 힘이 자체에 깃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하나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초민족적이요 초세계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뻐하는 것은 여러분의 기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기뻐하는 순간 만물들이 함께 기뻐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또, 승리를 다짐하게 될 때는 온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의 모든 존재물이 그 승리권 앞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신령한 자리에서 기도하고 정성들이는 순간만은 상대적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대적 관계가 순간적인 권내에서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에 그런 역사를 통하여 환경의 제재도 받지 않고 나타난다 할진대는, 그런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같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사는 환경에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말도 그런 자리에서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주인이 되는 사람은 누구냐? 오늘 우리 자신만이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절대자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결과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주체적인 입장이 아니라 상대적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가 그리는 하나의 권이 있을 것이고, 주체가 그리는 하나의 승리적 환경이 있을 것이고, 주체가 그리는 내일의 이상이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스스로의 가치를 지닌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 자리까지는 못 갔다 하더라도 주체의 사랑, 주체의 소망, 주체의 현실이 그에게 연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미래의 실체와 미래의 환경, 그리고 미래의 승리적 가치에 연결될 수 없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은 출발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미래를 맡겠다고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가는 길은 개인이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세계를 대신해서 가는 길이요, 인간만이 아니라 절대자를 대신해서 가는 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런 입장에 선 사람은 언제나 과거도 현재를 대신할수 있는 것이요, 현재도 과거를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 자체가 내일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자극시키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즉, 과거는 과거로서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위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자극을 가할 수 있는 인연으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현실도 역시 현실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향할 수있는 자극적인 현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나간다 할진대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에는 차이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일을 추구하더라도 미래에 그 존재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에서 생각하더라도 이 현재의 자리가 미래의 중심의 자리도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역사를 이긴 사람이 되는 것이며, 역사 앞에 있어서 최고의 희망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대 앞에 있어서 최고의 승리적 중심이 아닐 수 없으며, 미래 앞에 있어서도 중심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32-217
아들딸을 찾아 나온 하나님의 사랑의 참된 의미
그러한 존재가 하늘과 땅,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한 이 세상에서의 인연을 중심삼은 환경이나 생활권 가운데에서 결정될 수 있는 한날을 어떻게 우리의 생애노정에 남길 것이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심정세계를 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소망이 무엇이며, 최고의 희망이 무엇이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계를 자신의 품에 품으려고 하시는 것도 아니요, 하늘과 땅을 자신의 권세로 다스리고자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외적인 모든 상대적 여건이 아무리 풍족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에게는 간접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오직 기쁨으로 포괄할 수 있고, 기쁨으로 움직일 수 있는 주체적인 운동의 중심, 즉 핵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일체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역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승리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시대를 포괄할 수 있는 주체권, 이것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심정의 세계를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 지금까지 더듬어 나온 것은 이 세계를 통일시키기에 앞서 통일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참된 아들과 참된 딸을 세워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서 시대 환경을 개척하여 시대의 중심 자리에 설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을 이끌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끌고 나올 때 끌려나올 수 있는 심정적인 유대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나는 얼마나 일체적 관계를 갖고 있느냐? 개인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서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보다 가치적인 존재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보다도 인간을 누구보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앞에 세계가 굴복했던 안 했든, 혹은 시대와 환경이 수습되었든 안 되었든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낼 수 있고, 전체의 마음을 대표한 하나의 상대로 나타날 수 있는 참다운 사랑의 인연을 가졌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런 아들딸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이 세계에서 가장 영광된 자리에 나갔다고 하더라도 그 영광을 영원히 품고 영원히 위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느냐? 그 자리는 자기 혼자 모든 영광을 바라보는 자리가 아닙니다. 서로서로 기쁜 마음이 넘쳐나 가지고 그 영광이 환경 전체를 덮고도 남을 수 있는 자리여야 됩니다.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사랑이라는 가치 있는 기반이 개재되어야 모든 환경을 움직여 나갈 수 있는 주체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재되지 않고는 세속과 더불어 흘러가 버릴 수밖에 없는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랑은 과거를 수습할 수 있는 것이요, 시대를 주관할 수 있는 것이요,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수고로운 것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요, 어려운 환경도 소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의 힘은 강하기 때문에, 그 힘과 하나될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에 부딪히더라도 능히 소화시킬 수 있고, 능히 주관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런 힘의 모체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와 떨어진 사랑을 말하신 것이 아닙니다. 시대와 분리된 사랑을 말하신 것도 아닙니다. 미래에 올 수 있는 사랑을 말하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출발과 더불어 영원히 같이할 수 있는 사랑을 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태어나서 생애 노정을 거치는 가운데, 즉 나면서부터 죽어가는 순간까지 그런 사랑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일생을 통해서 뜻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득하는데 있어서 그때가 생애의 3분의 1의 기간에 해당된다면, 나머지 3분의 2에 해당하는 기간은 여러분에게 있어서 슬픔의 기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생애의 절반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위한 생활을 하였다면, 그 나머지 절반의 생애는 부끄러운 생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부끄러운 생애와 슬픔의 생애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과 맺어진 사랑이 몇 퍼센트이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해 볼 때, 미완성적 사랑에서 역사가 흘러나와 지금도 그런 시대권을 이루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백 퍼센트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 경지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게 되면 그에게는 아들이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요, 하나님과 같이 있기를 바랄 필요도 없으며, 하나님을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찾아진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리라야 영원히 행복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수습해야할 내용을 남긴 자리에 서게 된다면 영원한 행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완전히 수습되어서 절대적인 기준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고, 또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영원한 승리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32-219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관계가 이루어지게 되면
그러면 승리 중에서 최고의 승리는 어떤 것이냐? 본래 인간은 승리의 본향에서 출발하게 되어 있는데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자리에서 승리의 세계를 찾아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 찾아 나가는 표준이 무엇이냐 하면 인격의 완성을 이룬 자리입니다. 물론 인격도 필요하겠지만 그 인격을 움직일 수 있는 내심적인 핵, 즉 사랑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그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관계가 이루어지게 되면 내가 슬퍼할 때 하나님도 슬퍼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부자의 관계라든가 혹은 부부의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도 부모면 부모, 아들이면 아들이 슬퍼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뼛골에서 슬픔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설명을 초월하고 환경의 모든 인연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거리와 사정을 초월해서 상대와 일치된 감정이 유발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사랑은 설명을 초월하고 사연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기뻐하는 것도 그 내용이 어떻게 되었든지, 그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지를 초월해서 같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아들이든지, 부모든지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상대적 존재로서 자기도 모르게 끌려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순수하게 자기와 절대적인 인연인 하나의 핏줄을 중심삼고 영원히 같이할 수 있는 내적인 심정의 인연으로 묶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내가 움직이는 전체는 주체와의 상대적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가 기뻐하면 나도 기뻐하고, 그가 슬퍼하면 나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과 하나님, 하나님과 사람이 기뻐하면 서로 기뻐하고 슬퍼하면 서로 슬퍼하는 것을 볼 때에, 오늘 우리가 기뻐하면 절대자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기쁘게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슬퍼하면 절대자도 이걸 피할래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틀림없이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있다면 우리는 슬픈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슬퍼하게 되면 절대자도 슬퍼하게 되고, 절대자가 슬퍼하게 되면 나뿐만 아니라 전세계도 슬퍼하게 되는 이런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쁠 때는 모든 것을 품고 용서할 수 있지만, 슬플 때는 용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짐이 되고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 그런 것들은 차 버리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 것들과는 아예 관계를 맺으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일체화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고, 하나님과 더불어 슬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로 말미암아 슬픔을 느끼실 때 나도 자연히 슬픔을 느끼게 되고, 내가 기뻐하게 될 때 자연히 하나님도 기뻐하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슬픈 환경을 넘어 더 고차적인 자리에서 기쁨을 느끼게 되면, 기쁨을 이 땅 위에 반영시키는 일이 영계를 중심삼고 우리 인간의 배후에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을 많이 하고 영적으로 높은 안목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슬픔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분석해 보면, 그때에 반드시 하나님이 슬픈 자리에 계신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벅차는 기쁨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하나님이 기쁜 자리에 처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32-221
참된 내일을 맞으려면
우리 인간은 현실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있지만, 영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을 초월한 권내에서는 이것이자 저것이요, 저것이자 이것인 것입니다. 영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반영되어 들어오는 관계의 세계에 있어서는 슬픔과 기쁨이 언제나 나를 중심한 하루의 생활을 통해서 접선돼 나가는데, 오늘 우리들은 이것을 감지하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고, 너무나 부족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일을 맞자’, `참된 내일을 맞자’라고 할 수 있으려면 참된 나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된 내일이 나와 더불어 관계맺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자리에서 제일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체휼적인 신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체휼적인 신앙이란 하나님이 슬퍼할 때 나도 슬퍼하고, 하나님이 기뻐할때 나도 기뻐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나는 매일 매일 그런 생활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슬픈 마음을 풀어 드리고 세계 앞에 기쁨을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었다 할진대는 나로 말미암아 세계는 수습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 속에 나타난 성인들을 보면, 그 사람들은 당시대에는 배척을 받았지만 그들이 남긴 도(道)는 역사를 수습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거리를 두고 수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체화하면 거리를 초월해서 수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주체와 더불어 시대의 환경을 극복하여 비약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새롭게 개혁될 것입니다.

그로부터 가해지는 파장은 온 세계 인류와 과거 현재 미래의 세계까지 파급되어 나갈 것입니다. 또한 그때의 기쁜 사연은 세계를 소화하고 세계를 감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인의 기도는 감화시킬 수 있는 능동력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 경지를 찾아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것은 체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이런 체휼적인 사랑을 제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자리가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어디일것이냐 하는 것을 연구해 봅시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는 문제는,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이 부모라면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자리에서 하나님대신 그 사랑을 널리 만인류에게 적용시키는 자리, 그런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다릅니다. 우리 인간은 자기 아들딸이 어려움을 당할 때는 만인을 희생시키더라도 자기 아들딸을 구하고 싶은 마음을 가집니다. 그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뭐냐?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만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아들딸을 희생시키는 것을 당연한 일로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지금의 마음을 어떻게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돌려 잡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동기는 무엇인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자기 아들을 번제의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가 제사를 드린 것은 미래의 후손을 위하여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제사를 드리게 된 동기인 것입니다. 미래의 후손을 위하여 자기 자식을 잡아 제사드리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얼마나 비장했겠는가?

현재보다 미래의 세계를 위하여 자기 아들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 제사드릴 수 있는 사람은 미래의 승리의 기반을 현재에 끌어들일 수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아들을 미래의 세계를 위해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나기의 아들딸을 사랑하기를 그 시대의 무엇보다도 미래의 어떠한 무엇보다도 사랑하지만, 만민을 그 아들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었기에 자기 자식을 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32-223
그 나라를 맞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의 자세
그와 같은 마음을 갖고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은 거기에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냐, 못 가는 사람이냐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여러분,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를 중심삼고 욕심부리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갑니다. 자기 중심한 것을 버리고, 자기를 희생시키고 제물로 삼으려는 사람만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자기의 몸은 물론 자기의 아들딸까지도 다 제물로 드려 만민을 구원하고 사랑하려는 주체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섭리를 해 나오시면서 원수를 쳐 가지고 추진시켜 나온 적이 없습니다. 원수를 쳐서 섭리하기 보다는 자기의 사랑하는 존재, 제일 가까운 존재를 희생시켜 가지고 섭리를 추진시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섭리를 발전시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발전은 천국을 향하여 발전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중심적인 사람은 자기를 초월하고 만민의 가치를 찾아 나오는 사람입니다. 즉, 자기를 희생시켜서 만민에게 사랑의 중심을 결하기 위해 나온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 그시대에 사람들에게 우대받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국가를 대표할 때 그는 애국자가 되며,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서면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다른 점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자기의 아들딸까지도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시킬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될 때에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랑하는 수많은 종들을 희생시켜 나왔습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냈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반대하고 핍박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앞에 두고 하나님 앞에 호소하기를 “아바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마 26:39)”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자신을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사랑하고 살리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고이고이 그 뜻에 순응해 가는 것이 아들의 도리인 것을 알고 독생자 예수는 제물이 되어 갔습니다.

그분은 제물 중의 제물이 되어 간 것입니다. 칼이 자신의 몸을 지나가더라도, 그 칼을 넘고 갈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만이 남아진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은, 소원하던 하나의 세계가 기필코 이뤄질 것을 믿고 갔던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세계는 수습되는 것이요,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의 기원은 한 단계 고차적인 입장을 결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한계선을 자기와 어떻게 관계맺게 하느냐 하는 것이 곧 자신이 내일의 천국을 현재에서 맞이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이 없으면 내일이 있을 수 없듯이 오늘의 승리의 기원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내일의 인연으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오늘이 입장을 그렇게 결정짓지 않고는 내일은 나와 상관이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오늘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 확실한 길을 가야만 내일은 여러분의 손에 의해 수습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승리의 내일을 맞겠지만 그것은 맞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의 차이가 무엇이냐?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하나님의 사랑은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시켜 원수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을 중심한 섭리역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은 자기 개인뿐만이 아니라 가정까지도 희생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뿐만이 아니라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종족까지도 희생시켜야 됩니다. 그리고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는 민족까지도 희생시켜야 되며,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국가까지도 희생시켜야 됩니다. 이런 권을 만들어야 됩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하나님이 내 개인을 희생시키더라도 감사해야 되고, 내 가정을 희생시키더라도 감사해야 되며, 내 종족을 희생시키더라도 감사해야 됩니다. 또 내 민족을 희생시키더라도 감사해야 되며, 내 나라를 희생시키더라도 감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나라가 나타나야 세계는 그 나라로 말미암아 수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이 아무리 희생되더라도 그 나라가 나오지 않으면 개인의 희생은 계속됩니다. 또, 가정이 아무리 희생되더라도 그 나라가 결정되지 않으면 가정의 희생은 계속되는 것이며, 종족과 민족이 아무리 희생을 한다 하더라도 그 나라를 세우지 못하면 그 종족과 민족의 희생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과거의 역사노정에서 그 나라를 찾기 위해서 섭리를 추진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생각하고 나라를 위할 수 있는 개인이 있다면, 그의 개인 전통을 이어받은 가정을 통해서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게 했고, 또 종족과 민족이 그 가정의 전통을 이어받아서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렇듯 그 나라를 찾기 위하여 하나님이 지금까지 섭리를 추진해 나오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이 어디 있느냐?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섭리하시는 목적도 그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32-225
그 나라를 찾아 세우려 했던 예수님의 슬픔
여러분이 잘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1-33)”고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그 의라는 것은 행동의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기 않고는 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리에서 희생해야 되느냐? 하나님과 나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자리, 즉 종적인 역사에 있어서 수직으로 흐르는 직계의 심정을 상속받아 가지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개인을 그 나라 대신 사랑하고, 수많은 종족을 그 나라 대신 사랑하고, 수많은 민족을 그 나라 대신 사랑하고,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는 그 나라를 위해서 수많은 나라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랑의 전통의 인연을 가져 가지고 그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 희생의 길로 나가야만 의인의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이지, 그것 외에는 의인의 입장을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위해서 죽더라도 절대적으로 정의에 입적한 생활을 해야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한 말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나라를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는 입장에 섰습니다. 마음으로는 사랑했지만, 실제로 사랑할 수 있는 이스라엘이 되지 못했기에 예수는 나라를 사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라가 이미 이즈러졌고, 민족이 이즈러졌으며, 백성이 이즈러졌습니다. 더욱이 12사도들까지 전부 다 이즈러져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붕괴되는 입장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말은 비참한 말입니다. 그 말이 바로 역사를 통해 지금까지 엮어져 온 하나님의 사연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느끼며 낙심하기 보다는 하나님은 나보다 더 불쌍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나 30여년의 생애를 통한 짧은 과정에서 나라를 갖지 못한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로되, 아버님은 태초부터 역사시대의 배후에서 복귀의 사명을 주도적으로 책임지시고 수습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셨는가? 사랑하고 싶은 나라를 갖지 못한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한가? 그 나라가 나올 때까지 오랜 역사를 이끌어 나오시면서 희생의 대가를 치렀는데도 불구하고 나라를 갖지 못한 아버님은 얼마나 슬플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아버지여!’ 하고 부르며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표한 아들이 아닐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천국과 지옥은 여기에서부터 갈라지는 것입니다.

32-227
사랑과 희생
내 아들딸, 내 가정을 중심삼고 팔려가는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 세상의 어떤 민족이나 국가를 중심삼고 팔려가는 신세가 되어서도 안되겠습니다. 신앙인들은 국가 앞에 제재를 받았고, 사회 앞에 규탄을 받았으며, 가정과 제일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도 핍박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핍박을 단절하고 밟고 넘어선 사람들이 오늘의 종교를 개척하여 온 중심적인 책임자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들이 그 시대에 배척을 받고 몰림당했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그런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움직여 나왔던 것입니다.

정성들이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봄절기가 한때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정성들이는 그 자리를 찾아서 그 사람을 중심으로 인연맺어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그리하여 그 인간의 일생을 통하여 조건을 세우면서 새로운 역사의 소망으로 접근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에서는 심정의 세계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심정을 중심삼은 개인적이 인격을 말하고, 심정을 중심삼은 가정적인 기준을 말하고, 심정을 중심삼은 민족과 국가 형태를 말하는 그 기준은 무엇이냐? 오늘 이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관념적, 습관적으로 말하는 그런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내용에 입각한 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아들딸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세계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 혹은 자기 남편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세계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자기라는 존재를 중심삼고 이러고 저러고 하는 자는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고 맙니다. 그것을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이 천년한의 역사를 품고 억울하게 죽어갔다면, 그는 미래의 소망으로 오는 수많은 인간들에게 자기의 한을 풀어 달라고 누구에게든지 독려하고 축원할 것입니다. 그러한 수많은 선민의 죽음과 의인들의 피흘림이 한이 되어 역사에 나아졌기 때문에, 끝날에 있어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 이 지상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모두들 내일을 맞을 수 있는 개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땅에서 자기의 아들딸만을 사랑하는 데 급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을 떠나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하고, 혹은 하나님의 보장하에 사랑할 수 있느냐? 그래야 보다 큰 사랑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어차피 소망의 한때를 이루기 위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슬픈 사연을 내가 인식하고, 그 슬픈 사연을 내 심정으로 느끼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교차할 수 있는 교차점에 서야 합니다. 그러면, 그 교차점은 어디일 것이냐? 나의 생활권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마음이 뼛골에서 우러나와 사랑하는 아들딸을 제물로 드릴 수 있느냐 없느냐? 세계를 위해 내 아들딸을 희생시키고, 내 가정을 희생시키고, 내 종족을 희생시키고, 내 민족을 희생시키고,, 내나라까지 희생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라까지가 문제입니다.

오늘 통일교회가 가야 할 운명의 길은 내일의 나라, 내일의 세계를 상속받기 위하여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가기 위하여 결속한 무리입니다. 그러므로 내 아들딸을 제물로 삼아 내 종족을 희생시켜서라도이 나라를 위하고, 이 세계를 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때에, 오늘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이 여러분을 고생의 자리로 내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희생의 자리에 내모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 자체는 억울할는지 모르지만, 쓰러지고 죽어 제물되는 그 배후에 하나님의 사랑의 터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쌓여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넓혀 종족권을 넘고 그것을 넓혀 민족권 앞에 영향을 주고, 그것을 넓혀 국가의 기준을 바꾸는 날에는 새로운 나라의 깃발을 들고 세계를 향하여 진군할 수 있는 출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향하여 가는 길이 통일교회의 길입니다.

32-229
통일신도들이 가야 할 길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나라를 자신의 아들딸보다 더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뜻을 따라가는 입장에서는 대표적으로 책임지고 가는 때가 많아야 됩니다.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는 삼각권내에 들어갈 때가 많습니다. 이리 갈래야 갈 수 없고 저리 갈래야 갈 수 없는 처지, 이리 가서도 안 되고 저리 가서도 안 될 때는 갈 길이 없게 됩니다. 그럴 때는 제물을 통해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이 나라가 그런 입장에 있습니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아시아의 정세 가운데 이 나라가 처해 있는 운명이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입장에 서서 이리 갈 것이냐 저리 갈 것이냐를 생각하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는 압니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려면 그에 해당되는 제물을 대가로 바쳐야 됩니다. 그때에 제물을 바치는 책임자가 누구일 것이냐? 이걸 생각해 볼 때에, 여러분을 책임지며 지도하는 나 자신은 국가의 운세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운세까지도 대신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민족을 대신해 전체의 심정을 결합해야 합니다. 이북에 있는 천 삼백만과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 전체를 규합해 가지고 구원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가치있는 존재를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그 제물을 어떻게 모색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딸과 사랑하는 가정, 자기가 사랑하는 종족, 자기가 사랑하며 이끌고 있는 통일교회를 어떻게 제물로 드리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로 말미암아 이 나라는 구원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의식적으로 그렇게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는 길에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태어났고, 이것을 위해 살고, 이것을 위하여 죽는 것이 내 본래의 천직이요, 하나님이 나를 이땅에 보내시어 부여하신 임무입니다. 그래서, 그 임무를 수행하는 운명길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도 당연히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자기 생명의 고개, 생명의 한계선을 넘은 자리에서 긍정할 수 있고 시정할 수있는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어떻게 지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나라를 갖겠느냐 자기 가정을 갖겠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나라를 갖겠다고 대답해야 됩니다. 또 교단을 갖겠느냐 나라를 갖겠느냐고 물어도 하나님이 찾아오는 나라를 갖겠다고 해야 됩니다. 또 민족을 갖겠느냐 나라를 갖겠느냐고 묻는다면, 민족을 희생시키더라도 나라를 갖겠다고 대답해야 됩니다.

초민족적인 시대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낙심하거나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때가 가까워졌다는 증거입니다. 그때의 절정을 맞을수 있는 삼각지점에 있어서, 즉 사탄의 악과 하나님의 선이 교차하려 부딪쳐 들어오는 순간에 이것을 선편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도 아니요, 사탄도 아닙니다. 오직 인간입니다.

이제 나라가 그럴 수 있는 때가 가까이 온 것입니다. 아시아의 정세가 세계의 모든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기운이 휘몰아쳐 오는 절박한 때가 다가온다는 것은 우리 앞에 세계적인 운세를 결할 수 있는 최후의 순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간을 맞아 가지고 어떻게 이때를 뜻맞게 넘기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는 무리와 종족과 단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중심한 그런 단체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그런 단체가 없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그런 단체가 된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통일을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교단을 제물삼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감정을 한 기점으로 일치시켜 불을 지른다면 여기서부터 새로운 창조의 능력은 무한히 뻗어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가 수습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사회와 이 나라에 여론이 분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얼마만큼 전체를 동원해 가지고 나라를 구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마음을 갖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결속시켜서 나갈 사랑하는 마음을 합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그 가운데에 나라가 있는 것이요, 나라 가운데 민족이 있는 것이요, 그 가정 가운에 개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라를 부활시킬 수 있는 국민이 되었다 할진대 그 국민은 자동적으로 해방을 맞을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국민이 선주권내에 서게 될 때에는 일시에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라의 주권이 서게 되면 민족도 구원할 수 있고, 종족도 구원할 수 있으며, 가정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나라가 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평면 세계에서는 이것이 핵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상에서 인류가 찾아 나온 것이 바로 이 핵입니다.

하나의 국가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개인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일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정을 제물로 삼을 수 있는 자가 되지 못하면 국가에 대해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제물로 삼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은 나라를 위하여 몽땅 제물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점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가 여기서부터 갈라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알고 말을 잘하는 것으로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적과 심정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천국과 지옥의 경계선은 심정의 경계선, 실적의 경계선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축복받은 가정들은 축복받고 태어난 자녀들이 귀하다고 감싸려고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축복받은 가정의 자녀들을 제물로 삼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자녀들을 나라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그 나라를 위해서 희생시킬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이들을 희생시킨다는 각오로 나서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신도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2-232
참된 내일을 맞기 위해 제물의 길, 희생의 길로 가라
이렇게 살고 이렇게 싸워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현재에 있어서 내일을 맞을 수 있고, 내일을 차지하고도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내일을 준비해 놓고 가기 때문에 미래의 천국은 그의 것이 되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천국 가자’고 하는데, 천국을 그냥 갈 수 있습니까? 먼저 땅 위에서 천국을 맞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천국을 맞기 위해서는 사랑의 법도를 거치고 가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사랑하는 자녀들이 많이 태어나면 태어날수록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사랑해야 할 십자가가 가중된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 가정에 아들딸을 많이 보내는 것은 짊어질 십자가 많다는 것이므로 나라를 위해 바쳐야 할 책임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런 내용을 알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정이라야 그 가정에 후대를 상속받을 수 있는 운세를 가진 아들딸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과거 현재 미래를 몽땅 차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체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한 심정적인 대표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그런 심정적인 대표가 되어야 하고, 종족이 그런 심정적인 대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개인 가정 종족은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 가정 종족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때든지 우리 가족, 우리 종족 전체가 희생되더라도 하나님 앞에 당연하게 바칠 수 있는 전통을 남겨야 됩니다. 그러한 일을 하다가 죽은 가정, 종족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이미 승리하여 미래를 차지한 종족이기 때문에 죽어서 저나라에 가서도 그것이 바꿔지지 않습니다. 저나라에 가서도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러한 길을 거쳐 나가지 않고는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이 7월 19일, 이제 내일이면 우리는 사방으로 또 떠나야 됩니다. 아기가 있는 사람은 아기를 업고서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이번에는 모두 심각하게 떠나야 합니다. 과거에 습관적으로 출발하던 것과는 달리, 나라의 위기를 극복해야 할 책임을 졌기 때문에 통일가와 통일의 족속이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몽땅 바쳐지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이 기간만이라도 힘껏 싸워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여름인 8월은 지나가고, 가을인 9월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금번 이 40일 전도 기간이 중요한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한 각지, 이 민족 전체를 단결시켜서 심정적 일치점을 가지게 하여 이 나라를 앞으로 올 소망의 나라를 위해 제물로 바쳐야 되겠습니다.그리하여 이 환경의 터전 위에 천상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새로운 창조역사를 이룰 수 있는 세계적인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내일을 맞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으니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아시겠지요? 「예」

32-233
기 도
아버님! 4천년 역사를 엮어오신 아버지, 아버지의 슬픔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어서 세계를 위하여 제물드릴 수 있는 민족이 없었던 데에 있사옵니다. 그러한 나라가 없었던 것이 아버지의 슬픔이었음을 다시 한 번 회상해 봅니다.

그 나라와 그 민족을 중심삼고 제사장의 책임을 다했어야 할 예수께서 나라를 잃어버리고, 민족을 잃어버리고, 씨족을 잃어버리고, 가정을 잃어버린 방랑자로서 3년의 공생애를 종결짓고 갔다는 사실이 얼마나 비통하고 억울한 사실인가를 저희들은 아옵니다.

예수님은 개인을 위하여 제물이 되었고, 가정을 위하여 제물이 되었고,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제물이 되었습니다. 또한 피의 제단을 피할 수 없었던 억울한 기독교 역사를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렇지만 기나긴 6천년의 한 많은 역사를 지닌 채 종말시대에 처하게 된 기독교의 운명, 이 세계사적인 운명을 염려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사람들이 이 땅에는 없사옵니다.

아버지, 당신은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이 세계와 기독교를 중심삼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생애 전체를 기울여, 그 표준을 맞추기 위하여 몸부림칠 수 있는 무리로 이 땅에 세워 주셨사옵니다. 이러한 현재의 시점에서 그런 마음을 지니고 몸부림칠 수 있는 개인이 세계 선진국가의 어떠한 나라보다도, 앞으로 세계를 상속받을 어떠한 나라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또 그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족을 편성하고, 민족적인 인연을 넘어서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무리가 얼마나 귀하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것이 아니라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남겨야 할 본분과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염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당신 앞에 고요히 엎드린 아들로서, 천명을 받아야 할 하나의 책임자로서이 방대하고도 엄청난 역사적인 내용을 귀결시켜야 할 줄 아옵니다. 이러한 저희들을 당신은 얼마나 마음 졸이며 보고 계시옵니까? 오늘도 `아무개야, 아무개 집단아, 너는 이래야 되고 너희들이 갈 길은 이 길이다’고하시는 당신의 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러한 마음을 지니신 아버지 앞에 갈 때 스스로의 모습을 갖춰 가지고 나타낼 수 없는 실패자의 마음을 가질 때가 많았습니다. 또한 외로운 고아의 신세가 되어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가 많았사옵니다. 이런 것을 아시면서도 아버지께서는 보잘것없는 저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영계와 통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증거하시려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도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은 단지 저희 인간들이 아버지의 마음에 깃들 수 있고 아버지의 심정에 일치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임을 아옵니다. 그것이 곧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이란 것을 느낄 때마다 천 갈래의 한을 남기는 죽음길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민족을 넘어 세계 앞에 승리의 제물로서 당신께 고이 바쳐질 수 있는 그날을 찾아가야 함을 느끼옵니다. 이렇게 나온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였습니다. 아버지, 그것이 비참한 역사 같았사오나 비참한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저희들보다 더 비참하신 분이 아버지이심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 내일의 비참을 개척하여야 할 책임, 당신의 비참함을 면케 해 드리기 위한 책임을 다할 것을 더욱 다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삼팔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이 나라 이 민족의 현실은 본래 당신이 뜻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아들딸이 가야 할 운명길에 이런 것이 나타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당신의 딱한 사정이 있다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이러한 당신의 사정에 저희 마음을 묶어 가지고 그런 사정을 안정시켜 드려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일구월심 당신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한때를 맞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 하옵니다. 그와 같은 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천지의 기원과 해원성사의 바탕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민족을 바라보며 나온 것입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이 민족에게 문제가 되고 있사옵니다. 수많은 종교 앞에 문제가 되고 있는 기점에 섰사옵니다. 여기에서 저희는 자신을 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민족을 대표하고 수많은 종단을 대표하여 이 나라를 소망의 천국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제단을 쌓고, 끝까지 희생하며 몸부림치는, 사명을 다하는 거룩한 무리가 되고자 하옵니다. 이것이 통일가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런 심정의 밑바탕을 중심삼아 나온 통일교단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앞에 배척받던 무리였고, 몰리는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배척받는 무리에게도 힘이 필요한 때가 왔사옵고, 몰리는 무리에게도 지팡이가 필요한 때가 왔사오니, 이때에 저희들을 세우시어서 민족이 분열되어 있는 이 비참한 현실을 타개하고 민족의 마음을 수습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제 엄숙히 선택된 제물이옵니다. 제물로서의 가치를 민족 앞에 제시할 수 있는 한때를 맞기 위해서 내일 전국적으로 거국적인 출발을 하려는 순간에 있사옵니다.

1970년은 7천년 역사를 평면적으로 탕감하는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엄숙하고도 지중한 시점이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이 40일 기간을, 아버지여, 지켜 주시옵소서. 이 땅에 아버지의 나라를 이루고 민족 해방의 기원을 조성할 수 있는 거룩한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이 당신이 군림하여 치리할 수 있는 영원한 발판이 되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그때를 위하여 가일층 마음과 몸을 다하여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고, 민족의 성스런 제단을 책임질 수 있는 종족적인 사명과 통일가의 사명을 다하고 남음이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아버지 앞에 약속하고 다짐하는 모든 사연들을 맡아 이끌어 주시옵소서. 부디 보람있는 제물된 생활을 함으로 인하여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당신의 상속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각기 제단에 모여서 이날을 기념하고 내일을 향해 출발을 결의하고 있사오니, 그 모임 위에 당신의 은사를 일률적으로 내려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시대 앞에 맡겨진 사명을 다할 수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