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53 to 32-189: 하늘이 찾아온 길

하늘이 찾아온 길
1970.07.12 (일), 한국 전본부교회

32-153
하늘이 찾아온 길
[기 도]

아버지, 저희들은 당신의 역사적인 숙원(宿怨)을 해원성사 해드릴수 있는 효자 효녀들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아들딸 가운데서 나타나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당신께서 오랜 역사과정 동안 그렇게도 수많은 고빗길을 참아 나오실 수 있었던 것은, 만나고 싶은 아들과 상봉하고자 하는 내정적인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런 것을 알게 될 때, 과연 우리가 그러한 아버님을 맞아 드릴 수 있고, 또 역사과정에서의 모든 어려움을 잊게 해 드릴 수 있는, 아버님이 만나고 싶은 아들딸이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당신 앞에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사옵니다.

그런 저희들은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당신의 뜻 앞에 생축의 제물이 된다 해도, 그렇게 지루하고도 슬픈 역경을 극복해 오신 당신의 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고, 당신에게 보답해 드릴 수 있는 아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저희들이옵니다. 이러한 저희의 모습을 생각할 적마다 불쌍하신 아버님이심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이러한 아들딸을 사탄 앞에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라고 자랑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아버지의 입장이 얼마나 외롭고 비참한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니 이 땅 위에는 기필코 아버님께서 마음 놓을 수 있는 아들딸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아버지의 체면과 위신과 사정을 염려할 줄 알아야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아무리 안팎으로 그 무엇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당신의 뜻 앞에 나타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부끄러운 모습인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아버님께서 찾아 주신 은사 앞에 황공한 마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사옵니다. 그러한 마음이 저희의 생활 가운데, 혹은 생애노정 가운데 어리어 스스로 머리 숙여 종과 같은 입장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입장에 서야만 아버님의 위로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아버님께서 저희의 겸손함을 칭찬하실 수 있으며, 저희가 아버지의 뜻앞에 있어서 순응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자랑하실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그런 자리에 가 있지 못한 저희들을 다시 한 번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끝날에 남아지게 될 최후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생명을 다 바쳐서라도 그 사명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나서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아침 여기에 모인 아들딸 가운데에서 당신이 축복하고 싶으신 아들딸이 있으면 마음 깊이 기억하시옵고, 그를 온 천지에 자랑하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역사과정에 왔다 간 어떤 사람보다도 낫다고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이 여기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그렇지 못하거든 아버님께서 친히 저희의 마음에 좌정하시어서 저희들의 마음을 재촉하시사 강하고 담대한 모습으로 아버지의 뜻앞에 있어서 책임수행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오늘 아침에도 전국에 널려서 이곳을 그리워하며 마음 모아 아버지 앞에 축도를 드리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있을 것이오니, 그들이 모인 곳곳마다 당신의 자비스런 손길이 같이하시옵소서. 또 세계 각국에 널리어 외로운 싸움의 길을 가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시간에도 이곳을 흠모하면서, 환경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외로운 마음을 억누르고 있사옵고 눈물지으며 아버지를 부르면서 같이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사오니, 그들을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당신이 사랑의 인연으로 남기신 뜻이 그들과 더불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 길을 대하여 지금까지 개척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온갖 지성을 다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그들의 머리와 심장 위에 당신이 같이하신다는 것을 드러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옵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의 긍휼의 마음과 사랑의 마음을 베푸사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이 불길처럼 타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이 그립고 본향 땅이 그리워 내일의 소망을 방패삼아서 오늘의 싸움터에서 승리하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얼마만큼이나 충효의 도리를 다하였는가를 각자가 다시 한 번 반성하면서, 자비로우신 아버지 앞에 스스로 몸 마음을 맡기어 당신이 소원하시는 터전 앞에 청지기가 되겠다고 엎드리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는 온 세계 통일가의 자녀들에게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들을 모으고 또 모으시어서 통일된 세계를 향하여 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 세계에 어서 속히 가기 위해서 하나의 종족,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시고, 더 나아가 아시아의 대국을 이루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축복의 나라, 사랑의 나라, 승리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한국을 위주로 하여 일본과 미국과 독일, 4개국을 중심삼고 40여개 국가를 연결해서 그 나라 곳곳에 지정된 성지를 지키고 있는 아들딸들에게 무한하신 당신의 사랑을 부으시사, 그들이 영원한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있게 하시옵소서. 그곳에 아버님께서 같이하시어서 사람들이 그곳을 지날 적마다 마음이 끌려 아버님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는, 그러한 인연들로 빚어질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특별한 기간을 통하여 당신의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사오니, 일생에 있어서의 모든 문제를 아버님께 맡겨 해결지을 수 있는 중요한 기간 위에 있는 당신의 아들딸에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부디부디 당신의 무한하신 긍휼과 사랑이 충만한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은 시간도 당신의 뜻과 더불어 하나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2-156
말 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나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는 길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32-156
직접 만날 수 없는 하나님
사람들은 기도하는 것을 자기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그런 단순한 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그 자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문답하는 것과 같은 그런 자리가 아니라 기도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와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자리,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 자리는 하늘에 속한 자리가 아닙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들도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실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렇듯 직접주관권 밖에 있는 사람이 그런 환경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고 상관하거나, 혹은 그 기도를 이루어 주기 위해 거기에 응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는 하늘길을 가겠다고 나선 여러분보다 악한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동시에, 가정적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겠다는 환경보다 악한 환경 쪽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세계적으로 에워싸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평면적 기준의 인간세상에서만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삼은 인간 이상의 세계, 다시 말하면 4차원 세계인 영계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과 관계맺을 수 없는 악한 영의 무리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환경 가운데에 있는 우리 개체가 하나님께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고 거기에 응해 주려고 해도, 깊고 높고 거룩하신 하늘 보좌로부터 직접적으로 나에게 찾아오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나라를 두고 볼 때, 그 나라의 주권자면 주권자, 대통령이면 대통령을 제일 말단에 있는 백성과 연결되기 위해 그 백성을 직접 찾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찾아가지 못하는 입장에서 인연지어야 할 때는, 순차적인 단계를 거쳐 가지고 인연지어 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조직적인 형태를 가진 무리가 있다할 때, 그 제일 상단부에서 말단중의 말단부에까지 연락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순서를 통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한 국가나 사회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할 때에 자기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영한테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자리에 계시는 지고지성(至高至聖)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지만, 그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자리와 여러분과의 자리 사이는 현격한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를 무엇으로 메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거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을 중심삼고 다리를 놓아야 될 입장에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들은 이렇게 다리를 거쳐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이러한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첩첩히 가로놓여 있는 영계의 조직사회를 거쳐 가지고서야 우리 개체와 연결될 수 있도록 수많은 연락체가 조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땅에서 정성을 들여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직접 대하시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정성이 지극하면 지극할수록,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지성이면 하늘이 감동한다는 말이지만 하늘을 감동시키는 것만 가지고는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감동시켜서 나와 관계를 맺어 나 자신이 목적하는 바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늘이 감동한 후에 그 결과가올 때까지는 시간적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인연이 한 번, 두 번, 세 번, 점점 빈번하게 맺어짐에 따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는 조직적인 형태를 점점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때에는 소개를 받게 됩니다. 그런 때 소개받은 사람은 자기를 상대방에게 소개해 준 사람의 입장에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자신이 잘났든 못났든간에 소개해 준 사람의 훌륭함과 정성 여하에 따라 상대방에서 자기를 평가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32-158
하나님을 만나려면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맺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잇는 모든 단계를 넘어가야 하고, 혹은 넘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 길을 개척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영계 역시 수많은 조직적인 환경 가운데 싸여 있기에 영인들이 이 길을 개척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단 한가지 이 길을 개척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분들이 많은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들인 정성이 하나님에게까지 알려져 하나님이 호응하실 수 있는 하나의 동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명령하고 지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인연을 맺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이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되풀이되어 그 과정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하나님과 인간과의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소개자에 의해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만나는 횟수가 가중됨에 따라 안팎으로 서로가 친해지고 서로의 사정이나 목적이 같아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통해서 상세히 아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신자들은 그와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우리들 자신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리까지 단번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왔다간 수많은 성인들을 중심삼고 가야 합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특별히 보내신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다리 놓아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땅 위에서 인륜의 도리라든가 천리를 밝혀 놓은 참된 진리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다리 놓아 가지고 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입체적인 세계를 향하여 수직적으로 올라가기 전에 횡적인 세계에 있어서 얼마나 넓게 영향을 비치는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횡적인 세계는 역사적인 결실의 터전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이 현실은 현실 자체가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인연을 거쳐 가지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역사적인 인연 가운데에는 이 땅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성인의 도리와 참다운 사람들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중심삼고 어떤 조직의 형태나 사회의 현상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것이 국민의 애국정신에까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이 땅 위에 성인들이 남겨 놓고 간 그 길이 단축되고 집약되어 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 하나의 내적 인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살펴볼 때, 그러한 내적인 인연을 남의 인연으로 생각지 않고, 또 한 국가면 국가의 인연도 다른 국가의 인연으로 생각지 않고 내 인연, 자기 국가의 인연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책임지고 자기와 직접 적으로 관계를 맺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인연 맺는 환경이 점점 널어질 뿐만 아니라, 그 국가의 위정자면 위정자와의 직접적인 거리도 단축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이렇게 내정적인 인연이 횡적으로 넓어지게 되면 그것이 바로 역사과정에 왔다 간 수많은 선조들이 가르친 인연에 접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영계에 간 성현들과 우리들이 인연을 맺게 되면 그 사람들이 우리를 진리의 세계로 점점 가까이 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는 배후의 인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도의 길을 찾아가려면 비단 이 땅에 와서 선한 도리를 가르쳐 주고 간 성인 뿐만이 아니라, 그 가르침을 중심삼고 땅 위에 인연된 종교까지도 계속 찾아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어떠한 사회나 새로운 문화 형성의 배후에는 반드시 종교가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인륜만을 중심삼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천륜을 소개하고 천륜의 도리를 중심으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32-160
영계와의 거리를 단축시키려면
오늘날 우리들이 정성을 들일 때는 과거에 왔다 간 성인들이 가르쳐 준 도리를 중심삼고 그들이 소망하던 최고의 기준을 자기의 소망으로 삼아 그것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영계와의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는 내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지상의 인간들은 그런 성인들 가운데 참다운 성인을 섬기면서, 그 성인의 도리를 자기의 생명을 다 기울여 자기의 도리와 같이 지키며 그것이 최후까지 가야 할 길로 생각하며 나가야 합니다. 그럴때 그 성인이 영계에서 영향을 미치는 권이 크면 클수록 그 큰 영향권은 내가 지상에서 영계와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연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터전 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많은 정성을 들이지 않더라도 빠른 시일내에 영계와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 거리도 가까와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이 땅 위에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교라든가, 혹은 역사적인 도리를 기반으로 한 종교의 형태를 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의 과거의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간 길을 자기도 응당 가야 할 길로 알고 그 길을 소망하며 가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종교를 중심삼고 왔다 갔던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과 하나되면 그 도의 세계, 종교의 세계에 자연적으로 자리가 잡히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 위에서 기도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의 종교권을 넘어설 수있는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에 그만큼 하나님과의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서 종교의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은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런 사람들을 중간에 세워서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 인간들 중에는 정성을 들여 가지고 종교의 길을 찾아가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선한 선조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들이 바라던 것을 향하여 그냥 곧바로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바라던 것이 무엇이냐?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종교가 추구하는 목적의 세계입니다.

종교의 목적은 하나의 참된 사람을 찾는 것이요, 참된 가정과 참된 국가와 참된 세계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의 목적이자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땅을 대하여 섭리하시는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종교 지도자들이 정성들인 그 터전 위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목적권내를 자연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경지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종교를 믿는 사람이 있다 할 때, 그 사람은 그 종교의 최고 지도자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종교를 따라간 사람들과 그 종교를 위해서 사방에서 정성들이고 있는 지도자들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종교가 세계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으면 세계의 수많은 지도자들까지 믿고 따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영계와 종교권과의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행정부의 조직을 보면 중앙청의 조직과 도청의 조직과 군청의 조직과 면의 조직과 리의 조직이 각각 그 형태는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한 것처럼 하늘나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도 오늘날 우리 사회의 조직형태와 마찬가지의 조직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늘나라가 움직이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도 동서남북으로 갈라져서 수많은 종교권이 있습니다. 위로는 최고의 종교권이 있고, 그 아래로는 다른 잡도의 영계가 있고, 또 그아래로는 양심적인 사람과 선한 사람들로 구성된 영계, 그리고 그 이하에는 악한 영계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정성을 들여서 종교권 세계와 관계를 맺게 되면 지금까지의 말단세계와 관계된 것을 초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를 중심삼고 정성을 들인 성인의 가르침을 남을 위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나를 위하는 가르침으로 알고, 그 가르침에 따라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된다면, 도를 가르친 성인을 통하여 땅 위에서 영계로 직접 연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런던이나 워싱턴에 가 있다고 할 때, 그곳과 여기 한국의 청파동이면 청파동과는 대단히 먼 거리입니다. 이 거리는 단축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서로의 심정을 중심삼은 믿음의 힘이 있다면 그 거리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인연이 심정의 인연, 믿음의 인연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절대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32-162
신앙의 길과 절대 믿음
절대신앙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자기가 믿고 있는 한 종교의 지도자가 있다면, 그 지도자와 나는 역사적으로 수천년이라는 먼 거리를 두고 있지만 믿는 마음을 중심삼고는 그와 평면적으로 대등한 시대권내에 들어 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믿을때 그 사람과 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과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새롭게 인식시키고 자극시키기 위한 것이 신앙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종교의 지도자가 하나님을 위해서 애절히 기도하던 사정을 믿는 사람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정을 아는 기준에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사정을 알면 알수록 더 깊은 정적인 인연, 혹은 충성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계에 가 있는 사람이 반드시 협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종교 지도자가 협조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협조하게 하는데 있어서 누구를 통해서 협조하게 하느냐? 땅에서 살 때 하늘 앞에 충성을 다하는 자리에서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 땅 위에 참의 도리를 남긴 사람을 통하여 협조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그 지도자의 내정을 아는 자리에서 그 사람을 대신하고, 그 사람과 더불어 정성을 들이는 입장에 섰다 할진대 나는 수천년의 역사도 비약하여 그 사람이 하나님을 대하던 자리에 동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길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선택할 때는 참된 종교를 선택하여야 되고, 그 참된 종교 가운데에서 참된 신앙자들이 남긴 역사적인 인연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도, 물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렇게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 혹은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는 땅에서 수고하여 정성의 터전을 닦아 나온 사람들을 의지해 가지고 정성들여 나가는 것이 제일 빠른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찾기 위해서는 기독교면 기독교를 중심삼고 오랜 역사를 지나오는 과정에서 충성하였던 옛 성현들이나 혹은 지도자들이 나를 대신해서 그 길을 갔다는 입장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내가 가는 길을 협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탕감복귀 원칙에 있어서 그들도 완성의 세계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도의 길, 즉 자기가 간 길을 따라오는 후대 사람들을 끌어 주어야 할 인연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입장에서 기도하고 정성들이게 되면 영계에 있는 종교 지도자나, 도의 지도자가 반드시 지상에 있는 사람에게 연락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32-163
단계적으로 밟아가야 하는 신앙생활
역사 가운에의 사도 바울이니 베드로니 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찾고자 했으나 찾지 못했던 것을 나 자신이 한 가지 두 가지 찾아 나오게 되면 그때는 주객이 전도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지도하던 베드로면 베드로, 혹은 바울이면 바울이 그 당시에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던 것을 한 가지, 두 가지 찾게 되면 그들과 자리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혁신을 해 가지고 바울이면 바울 이상, 베드로면 베드로 이상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정성들이던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 이상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이상의 길을 찾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간 길을 찾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베드로가 믿음의 대표자라면, 베드로가 믿음의 대표자로서 나가던 그 입장을 대신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 자리가 강하고 담대한 자리라면 강하고 담대한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길은 자기 나름대로 판단한 길, 자기가 바라보는 그런 길로 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신앙길은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도의 지도자들과 인연 맺어 가지고 높은 단계로 하나씩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 세 제자 이상의 자리에 나아가야 비로소 예수님과 관계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자기보다 높은 사람을 만났을 때, 그 높은 사람에게 자기를 직접 소개하는 것은 실례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국민학교 선생이 대통령에게 자기를 직접 소개하는 것은 실례가 되는 것입니다. 내정적으로그 국가의 누구보다도 가까운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불경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은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길을 빨리 영광에 접할 수 있는 길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어떤 도의 길을 책임지고 간 사람들의 길을 내가 찾아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 믿는다는 자신감만을 위주로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수많은 도의 지도자들은 교회면 교회 앞에 충과 효의 도리를 다해 가지고 인정받는 길을 갔던 것입니다. 여기서 그 인정받는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종교를 중심삼고 정상적인 도의 길을 갔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길을 갔기 때문에 널리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이 자기를 대신해서 간 것으로 알고 그들과 관계맺는 길이 제일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목적지에 빨리 갈 수 있는 다리를 놓을 줄 알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대번에 ‘예수님!’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리를 놓아서 가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의 평면적 생활에 있어서 다리를 놓기 위해 교회면 교회를 가게 될 때, 그 교회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도자가 못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지도자에게 중간다리를 놓아 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교인들을 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교인들을 위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교인들의 정신적인 문제나 교인들의 생명문제까지도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지도자는 그러한 자기가 책임진 분야를 중심삼고 교인들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보아서 그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할 때, 교인들이 그 사람과 하나되면 그 교인들도 높은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정성을 들여 주고 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기도를 해주면, 나는 그의 기도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선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은혜 받은 사람의 기도를 받겠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다리를 놓아 가지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끝날이 되면 될수록 영적인 세계의 내정이 지상 위에 나타날 수 있는 때가 되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 가운데에는 하늘의 역사를 직접 하는 사람들도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복귀도상에 있어서 지금까지 왔다 간 많은 지도자들 중에는 영계에서 한 동리를 중심삼은 이장과 같은 책임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면을 중심삼은 면장과 같은 책임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군수와 같은 책임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도지사와 같은 책임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앙청이면 중앙청의 책임자의 사명을 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사람을 중심삼고 단계적으로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32-166
단계를 높여야 할 은혜받은 사람들
은혜받은 사람들이 은혜 가운데 생활을 하다가 그 은혜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놓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인연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기 혼자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혼자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반드시 어느 특정한 사람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갑이 있으면 을이 있어야 하고, 을이 있으면 병이 있어야 하고, 병이 있으면 정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동쪽이 있으면 서쪽이 있고, 남쪽이 있으면 북쪽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다른 생활처럼 신앙생활에도 반드시 신앙의 동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중심삼고 은혜의 역사를 할 때에는 한 사람만 세워서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동쪽 분야의 역사를 하는 사람, 서쪽 분야의 역사를 하는 사람, 남쪽 분야의 역사를 하는 사람, 북쪽 분야의 역사를 하는 사람을 세워서 하시는 것입니다.

근세 한국에 있어서의 도의 세계에도 신령한 사람이 많이 왔다 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목사급, 장로급, 집사급, 평신도급 등 각급에서 신령한 사람들이 나타나 천태만상으로 은혜의 역사를 하고 갔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그것이 어떠한 조직에서 어떠한 계통으로 형성되어 그와 같은 역사가 벌어졌는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쪽이면 동쪽의 한 분야를 중심으로 역사하는 한 사람을 중심삼고 그가 역사하는 것이 하늘 전체인 양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에다가 온갖 정성을 다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가 아니기 때문에 가다가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전체라고 믿고 나오던 양심적 문제, 심정적 문제들이 완전히 중단되어 버리기 때문에 찾았던 은혜를 놓치는 서러운 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은혜 받은 사람을 한 사람만 통하지 말고 반드시 여러 사람들을 비교해 보아서 통해야 합니다. 높은 내용을 가진 영적 지도자를 만나서 스스로 그 단계를 높여 가는 지혜로운 방법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신앙자들은 이런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나장로 패니, 박장로 패니, 이성봉 목사 패니, 혹은 무슨 패니 하는 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패들이 자기들이 하는 일이 전체인 양, 최고인 양 생각하고 지탱해 나가고 있지만 그 내용을 분석, 종합해 보면 그 단계에서 더 높여 나가기 위해 정성을 들여야 할 입장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는 종합적인 관측, 종합적인 비교, 종합적인 분석을 하여 나 자신이 제일 빠른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새로운 길을 갈 때는, 반드시 그냥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지금 갑이라는 사람한테 있다가 그 한계선에 도달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는, 을이라는 다른 사람을 찾아가야 합니다. 찾아가려는 그때에는 필사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자가가 속해 있던 종교권내에서 정성들이던 그 이상의 최고의 정성으로 `하늘이여 내가 가야 할 길이 여기에 끝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하며 결사적으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자기가 과거에 대하고 있던 영계, 그 기준 이상의 자리에 나 스스로 올라갈 수 있는 정성의 도수를 갖추게 되면 내가 머무를 곳이 거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의 것이란 어떤 것이냐? 만일 그 이상의 자리가 없을 때에는 그 이상의 자리를 나 자신이 개척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은혜의 생활이 끊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은혜를 받겠다고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이 파 놓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을 것이 아니라, 그 우물의 수맥을 따라가서 새로운 생수 줄기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지도하며 은혜를 주던 지도자의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생각될 때에는, 그 지도자가 한창 은혜받을 때 정성들이던 그 이상의 정성을 들여야만 그 길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앙자들은 이러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32-168
하나님의 사랑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어떤 은혜받은 사람이 있다면, 현재 그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가 지금까지 은혜생활을 하면서, 즉 하나님을 모셔 나오는 생활과정에 있어서 어떻게 정성을 들였고, 현재에는 어떻게 정성을 들이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정성을 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비교 판단해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서 그는 최고로 정성을 들여 가지고 하나님과 인연맺기에 그 정성을 우려먹는 기간이 은혜생활을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이렇듯 이 기간은 한때 최고의 정성을 들여 은혜를 받아 가지고 인연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이상의 자리를 찾아가기 전에는, 그 은혜가 다하여 지나갈 때에 스스로 수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였던것입니다.

어떤 지도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나와 너와의 관계로써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형제의 인연으로 사랑하고, 형제의 인연이 아니거든 신랑 신부의 인연으로 사랑하고, 신랑 신부의 인연이 아니거든 아버지와 어머니와 같은 인연으로써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길은 이 세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이냐?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합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좌우로 갈라 보면 형제의 사랑이요, 부부의 사랑이요,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도리 가운데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모체로 하여 제일 가까운 사랑의 인연을 찾아가는 것이 도의 길이요, 도가 넘어야 할 최고의 고개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있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되느냐? 부모의 사명을 하겠다는 종교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 길이 마지막 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형제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 모두는 신랑 신부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준 다음에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인류의 조상되는 아버지 어머니의 내용을 완결지어 가르쳐 주어야 했는데, 이것은 못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르쳐 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교의 길을 간 수많은 신령한 사람들은 무엇을 바랐는가?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이 지상의 인연으로 맺어진 인간관계를 바랐습니다. 그런 관계로 맺어진 인간관계는 형과 동생의 관계요, 그렇지 않으면 신랑 신부의 관계요, 그 관계도 아니면 아버지 어머니의 관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볼 때에 형제들이 사는 생활이나, 부부가 사는 생활이나, 부모가 사는 생활을 보면 그 모양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다릅니다. 이것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볼 때, 그들은 어떤 입장에서 예수님을 따랐느냐? 그들은 예수님을 한낱 스승으로만 따랐던 것입니다. 형제의 인연이라든가,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인 인연이라든가, 혹은 더 차원 높은 부자의 인연으로 따라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은 스승과 제자의 인연으로만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최후의 고빗길에 가서는 서로 버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신앙길에서 추구하는 최후의 길을 가려면,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제일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형제의 인연을 갖고 나오는 지도자의 도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주체와 대상, 즉 부부의 인연을 중심삼고 나오는 지도자의 도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의 인연을 가지고 나오는 지도자의 도리가 있어야 합니다.

끝날은 어떤 때냐? 수많은 종교가 앞에서 말한 것들을 추구해 나오는 이러한 역사가 세계 도상에 평면적으로 전개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때에는 종교 가운데에서 형님적 종교, 남편적 종교, 아버지적 종교를 찾아가야 합니다. 영계는 이러한 권을 중심삼은 각자의 목적을 두고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내용을 중심삼고 기도해야 하느냐? 수많은 종교 지도자 가운데 형님의 사명을 가진 한 사람이 누구이며, 신랑의 사명을 가진 한 사람이 누구이며, 아버지의 사명을 가진 한 사람이 누구냐 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내용을 전부다 갖추고 이 땅 위에 오는 사람이 있다 할 때, 그 한 사람만 붙들게 되면 나 자신이 동생도 될 수 있는 것이요, 아내도 될 수 있는 것이요, 어머니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32-170
주종관계밖에 맺지 못한 예수님과 제자들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할 때, 형님의 책임을 짊어지고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면 예수님과 인간들은 형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형님이요, 그 다음에는 예수님은 인간들의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인간들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내용을 갖추고 온 주체적인 존재가 역사상의 수많은 도인들 가운데 예수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길을 갔느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가 간 길이 어떤 길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가 간 길이 형제의 인연을 맺고 간 길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를 중심삼고 볼 때, 그들은 예수님과 형제의 인연을 맺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인연이 깊어지면 신랑 신부의 인연을 맺어야 했으며, 신랑 신부의 인연이 깊어지면 부자의 인연을 맺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형제의 인연조차도 맺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과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었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이 죽음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 한 부모의 핏줄을 이어받은 형제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면, 자기 형님과 같은 예수, 자기 동생과 같은 예수가 죽어가는 자리에 처했을 때 그냥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피가 끓어 올라 사랑하는 동생과 같은 예수를 대신해서 자신이 죽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아갔을 것이 아니겠어요? 세상에서도 동생을 위해 형이 죽고, 형을 위해서 동생이 죽는 일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중심삼고야 그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므로 그들은 형제의 인연도 맺지 못한 주종의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스승과 제자의 입장으로 그런 관계로는 친척관계도 맺을 수 없었다는것입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에 있어서는 주인이 죽게 되면 종은 떠납니다. 주인이 망하게 되면, 보따리 싸가지고 그 집을 떠나 버리는 것이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의 관계라면 형님이 망할 입장이 되었을 때, 동생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투입하여 온갖 정성을 다해 형님이 망하는 것을 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형제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과 베드로는 주종관계, 즉 주인과 종의 자리에밖에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맺어지는 것이 형제의 도리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그이상의 자리에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예수를 형님 이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것이 문제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어떤 자리에서 예수를 배척했습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5)”하고 사랑 문제를 강조했던 것이 어떤 내용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내용은 네가 동생 중의 동생이 되고 형님 중의 형님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내용이요, 혹은 남편과 아내의 심정 이상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느냐 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아들이고 나는 아버지의 입장에까지 나갈 수 있느냐 하는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몬에게 물어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한 말은, 베드로의 사랑을 분석한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앙길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가 찾는 동생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색하는 사람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상의 자리까지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을 모시기에 얼마나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했느냐 하는 것을 알고서 그것을 첩경으로 삼아 그들보다 더 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은 것은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예수님을 반대하고 배반하였던 불신의 입장을 넘어서려는 하나의 방편으로서의 죽음이었지, 예수님 앞에서의 내일을 약속하고 다짐하는 죽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즉 탕감하는 죽음은 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복을 직접 연결해 줄 수 있는 죽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가 갔던 그길을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길을 넘어야만 그들보다도 예수를 더 사랑하는 입장에까지 접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상의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것이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세워 그들에게 다리 놓은 역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당신의 사도들 이상의 사람들이 안 나왔다 할 때는 그 사도들을 세워서 다리 놓는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월권해서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부장이 있고 그 밑에 과정이 있고 계장이 있고 반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장이 직접 반장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질서를 혼란시키는 것입니다. 한 부분에 있어서는 잘될는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망치게 되는 겁니다. 자기의 위치를 지켜서 그 주의에 관계되어 있는 계열을 통해서 순리적으로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영계의 조직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32-172
선한 선조 이상의 기준이 돼야
여기에서 하늘이 찾아온 길이라는 제목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상의 신앙자를 어떻게 찾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신앙자들 중에서 베드로 이상의 신앙길을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수많은 탕감노정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수많은 탕감노정이 있는거예요.

그 탕감노정을 다 거치며 정성을 들여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시겠습니까? 물론 베드로를 중간 다리로 세워서 역사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베드로가 탕감하지 못한 내용을 하늘이 배후에서 찾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한 자리를 넘어서야 합니다. 베드로는 죽음의 자리에서 배반하였지만 베드로 이상의 자리에 서려면 사지에 들어가서도 배반하지 않을 수 있는 심적 작용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뒤만 따라가게 되면 베드로가 배반할 때는 같이 배반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과정을 밟아가는 사람이 있거든 베드로는 배반을 했지만, 그 사람은 배반하지 않도록 배후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베드로가 배반하던 때의 단계를 거칠 때에는 베드로는 제쳐놓고 베드로가 배반한 것을 조정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은사를 통하여서 하나님과 직접 상봉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사람과 대등한 입장에서 베드로가 지도하면 베드로가 배반한 자리에서는 그 사람도 배반하게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즉 베드로가 배반하던 그런 입장을 모면해 주기 위해 미리부터 내정적인 은사의 역사를 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많이 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나가다 보면 그런 때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척 대해 보면 가을 같은 기분이 나는 게 아니라 봄 같은 기분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은사의 인연이 빚어지는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도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분석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도의 책임자나 지도자들이 지상에서 영계의 길을 닦아 나가다가 실패하여 그 길을 넘지 못하게 되었는데, 다시 그 길을 위해 정성을 들이며 찾아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를 보호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앞서 간 사람들의 실패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 혹은 그런 자리에 들어갔더라도 거기에서 정성을 들이면 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이 실패권내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끔 배후에서 조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은사를 받을 수 있게끔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도의 세계를 책임졌던 사람들이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고 간 길의 배후에서 수많은 영계의 인연을 중심삼고 언제나 또다시 책임지울 수 있는 은사의 터전을 마련하여 다시 그 길을 따라 나오는 사람들에게 실패의 길을 모면케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자기 입장을 중심삼고 생각하시는 것이 아니라, 도의 길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입장을 중심삼고 역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높이 올라갈 수 있게끔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이런 도의 세계와 관계가 없는 사람을 대했을 때는 어떻게 역사하시겠습니까? 도의 세계와 관계가 없다 할 때는 그들의 선한 선조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선한 선조들이 이렇게 나갔으면 반드시 그 후손들도 그대로 따라 나가야 됩니다. 자기의 선한 선조들이 도리를 따라서 살았던, 그 선조들이 산 그 길을 본을 받아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을 받고 가기는 가되 선조들은 도의 길을 갈 때 자기를 중심하여 가다가 끝났기 때문에 그들 이상의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그 선조들이 나라에 충성한 이상의 충성을 하지 않고는 선조들이 남긴 선한 기준 이상을 넘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길을 닦아서 선조들이 실패한 자리까지 나온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사람을 지켜서 실패하지 않는 길을 모색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2-174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수 있는 길
여러분들은 전부 종족이 다르고, 씨족이 다르고, 또한 개성도 다르기 때문에 신앙길을 가는 과정도 전부다 다릅니다. 개개인의 개성이 다르니 만큼 그 가는 길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각기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기에 선민으로서 가야 할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은 하늘나라까지 나 하나를 끌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탕감에는 개인 탕감시대가 있고, 가정 탕감시대가 있고, 종족 탕감시대가 있고, 민족 탕감시대가 있고, 국가 탕감시대가 있고, 세계 탕감시대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기에게 해당되는 탕감노정을 중심삼고 단계 단계에 있어서 그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또한 그 대가를 치르려고 하다가 실패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간 수많은 지도자들이나 선조들이 있을 것이니, 그들이 실패한 것까지 메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선조들이 들인 정성 이상의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지도자들을 따라가고 그 이상 가기 위해서는 그들이 실패한 자리에서 특별정성을 들여야 하는데, 그때를 모르더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 정성들여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지 여러분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여러분 대신 죽음길을 가려 가면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희생하여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에게 접근해 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깊은 은혜의 생활을 해보면 한 단계 한 단계 넘어설 때마다 비약적으로 하나님의 은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세계를 복귀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시겠습니까? 어떤 한 사람이 갑이라는 지도자를 중심삼고 그 사람의 도의 길을 따라 정성들여 나간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지도자의 급수가 하급이기에 그 사람의 뒤를 따라가다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한계선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이 대신 그것을 이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과 부자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러한 죽고 사는 운명의 자리에서 대신 담판을 지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속죄의 제를 드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나 자신이 알게 되면 다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기가 힘들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언제 그렇게 해봤어요?

여러분이 은혜생활 가운데 있을 때 처음에는 무엇인지도 모르게 좋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곧 끝이 가까와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일수록 정성들이게 되면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그 자리에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수 있는 길은 그 길밖에 없습니다.

종교를 놓고 보더라도 갑이라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도 어떤 기준을 중심삼고 나왔기에 그 갑이라는 종교 외에는 구원받을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종교에는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교가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에는 쓰러지게 됩니다. 그런 때에 여기에 쓰러지는 자를 위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그 자리에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갑이라는 그 종교의 기준을 넘어 그 이상의 기준으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도 중의 도가 무엇이냐 하면 종교입니다. 또한 사람 중에서 의인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은 역사를 두고 그 의인을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문화는 참다운 진리를 중심삼고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것이 참다운 세계적 진리냐 하는 것은 그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의 정성의 기준을 중심삼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즉, 그것으로써 새로운 사상과 이념이 세워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32-176
종의 자리를 극복해야 하는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종교권을 중심삼고 역사를 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임으로써 이 땅 위에서 이루려 하였던 뜻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하게 될 때,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영적 구원만 이루었지 영육 아우른 완전구원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있는 정성을 다함으로써 예수의 내정을 다 알았더라면 예수님이 형님이요, 신랑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나중에는 예수님이 아버지가 된다는 것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나갔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도 자신이 기도한 자리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중심삼아 가지고 주인과 종의 관계가 맺어진 자리였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정성을 들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21)”하신 것입니다. 이르지 못한 내용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주종관계 이상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느냐? 예수님은 종을 대하는 입장에서만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이상의 자리인 형제의 자리나, 신랑 신부의 자리, 또는 부모의 자리에 관해서는 성경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종의 자리를 극복할 것인가를 추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형의 자리, 신랑의 자리, 부모의 자리의 기준을 중심삼아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예수는 그런 입장에서 정성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자리를 찾아 나가기 위해 정성들이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즉, 예수가 정성들이던 그 이상의 자리를 중심삼고 정성들이게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가 정성들이던 그 기준을 중심삼고 정성들이게 되면 예수가 협조하겠지만, 예수가 정성들이던 그 이상의 기준을 중심삼고 정성을 들이면 누가 협조하여 가르쳐 주겠습니까? 예수가 정성들이던 것과 같은 종의 인연을 찾기 위해 정성들일 때는 예수가 수고하여 가르쳐 주고 붙들고 나왔지만, 그가 실패한 자리의 인연은 누가 가르쳐 주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예수가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나도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은 했지만 독생자가 못 되었습니다.

그러면 독생자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사람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사랑이란 독차지하게 되면 죽게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영계에서 이미 독생자라는 인연은 결정되었지만, 그것은 지상을 통해서 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통해 가지고 세례 요한 이상의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양자의 자리에 있고 예수님은 아들의 자리를 상속받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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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지는 주종관계를 초월한 자리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통일교회가 어디까지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통일교회가 무슨 급이냐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의 급이냐, 아들의 급이냐, 신랑신부의 급이냐, 혹은 부모의 급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 길을 찾아가려면 이 땅에서 그 길을 인계받아야 합니다. 예수가 가던 기준 이상을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가 세례 요한의 정성을 통해서 인계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계받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통일교회 선생님이 그 길을 계승해 가려면 예수님한테 모든 것을 인계받아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부탁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나와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머리 숙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치가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온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감으로 말미암아 그 자신은 이제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그를 대신한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대신 세움을 받은 사람은 그 모든 전체를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신 상속받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주종관계로 맺어진 제자들을 중심삼고 책임하던 그 이상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래서 그 이상의 자리에 섰다 할 수 있는 심정적 유대가 맺어지면, 지상에서 맺어진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영계의 내용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과 여러분은 어떠한 책임을 가졌느냐? 또 선생님과 여러분은 어떤 관계가 되어야 하느냐? 주인이 종을 대하는 것과 같은 그런 관계라면 안 됩니다.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해 종 부리듯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형제와 같은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형님과 같이 생각하고,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은 동생과 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형제 뺨칠 정도의 마음이 있어야만 어떤 것이라도 맡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부모와 자식간에도 그러지 못했고 부부간에도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부부사이에서도 얘기 못할 지난날의 사연을 몽땅 얘기해도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생명이나 재산을 지켜 주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이런 생각이 자기의 내정적 본심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합니다.

그 단계를 지나면 어떻게 되느냐? 남자들이 선생님을 보면 남자로 생각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선생님을 만났을 때 남자라고 하는 관념을 가지고 있으면 서로 뺨을 대기도 어색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나 그런 기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서 선생님을 대하면 남자라는 기분이 없어지고 여자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왠지 모르게 그렇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볼 때, 마음으로 보면 여자 같은데 몸뚱이는 남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으로는 여자 같은데 몸뚱이로 부면 남자라는 것입니다.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상대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그 무엇으로도 뗄 수 없는 내정적 인연이 우리들 사이에 싹터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그런 것이 느껴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선생님이 아버지같이 느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그저 뺨을 비벼대고, 또 선생님이 어디에 가면 따라가고 싶어하는 아들딸 같은 기분이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삼단계의 정서적인 인연이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 맺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자리까지 들어가게 되면 최후의 자리까지 간 것입니다. 그 자리는 도를 초월한 자리인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 중에 예수가 가르쳐 준 이상의 종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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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직접주관권과 정성의 필요성
그러면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문제될 것은 무엇이냐? 선생님이 모시는 아버지, 여러분이 그 아버지를 직접 대하는 자리에 임하게 되면, 즉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리에 가게 되면 거기가 마지막자리인 것입니다. 그 자리는 바로 예수님이 간 도의 길의 마지막 자리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직접주관권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들딸, 그리고 아내와 동생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형님이 주관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직접주관권이라는 거예요. 횡적으로 주관하더라도 하나님을 대신해서 주관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형이 동생을 주관하는 것이나, 남편이 아내를 주관하는 것이나 모두 하늘을 대신해서 주관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탄을 배신해서 사탄노릇하게 되면 사탄은 떠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세계복귀의 운세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제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정성들을 들이는 것입니다. 누구를 따라 정성을 들여야 되겠어요? 지금 통일교회의 책임자가 누구예요? 선생님이지요? 「예」 그러므로 여러분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정성을 들이게 되면 선생님이 정성들이는 것과 같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활이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의 근간이 되고,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한 마음으로 정성들이지 않고는 선생님이 지금 죽는다면 세계를 위해 책임할 수 없게 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님이 정성들인 것 이상 정성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나라에 충성하다가 죽는다고 할 경우 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에까지 충성해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충성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한 길밖에 없다 하고 생각하면서 가야지, 그렇지 않고는 이 길을 세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선생님이 책임을 못하고 가게 되더라도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 계속 정성들여서 선생님이 간 자리까지 나오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 뜻이 선생님대에서 끝나서는 안 되겠기에, 여러분이 세계를 향하여 나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에게 선생님 살아 생전에 어떻게 하면 그러한 인연을 맺어 주느냐, 여러분 스스로의 자유로운 입장에서 하나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내적 인연을 어떻게 하면 맺어 주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이 생각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자리를 찾아서 정성들여 나왔다고 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과 부자의 인연을 중심삼고 나왔기 때문에 그 자리를 찾아가서, 그 사람이 망하지 않게 그 사람을 대신하여 내적 정성의 기반을 닦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때가 오면 그 사람에게 뜻을 상속해 주어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들이 있었지만, 역사과정에서 사라져 버린 종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종교를 믿어 나오던 개체들을 새로운 은사의 인연으로 모아서 종교를 하나로 수습하시는 일을 해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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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종교를 함부로 평하지 말라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수고를 하셨겠습니까?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해 나가지만, 하나님도 우리 인간을 찾아오기 위해서 무척 많은 수고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작 자기 일생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저 한 방향을 거쳐 가지만 하나님은 역사 이래 지금까지 사방에 널려 있는 수많은 인류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런 일을 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갑이라는 사람에게 직접 역사하지 못할 때는 을이라는 사람을 세워서 간접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이때의 역사는 도주를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를 시켜서 하시는 것입니다. 본연의 인간 앞에 협조해야 할, 즉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협조하라는 사명을 받은 천사들을 중심삼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 이상의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하는 그 자리는 여자로서 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가시지 않고 천사를 보내서 정성의 도를 닦게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할 때 하나님께서 협조하셨습니까? 협조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랬겠습니까? 에서와 야곱을 중심삼고 볼 때, 야곱이 얍복강으로 가기까지는 하나님께서 그럴 수 있는 방향으로 몰아넣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정성을 들이도록 외적으로 내적으로 충격을 주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야곱이 밤을 새워 기도한 것입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어갈 수 있는 내적인 기준이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보내 가지고 탕감시키기 위한 외적 싸움을 시켰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은 반드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중심삼고 수많은 종교를 연결시켜 나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모든 종교는 그 고하를 막론하고 오랜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하나님의 수많은 수고의 터전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면에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말하는 통일이라는 것은 기독교만을 통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의 이념을 갖고 나온 우리에게 있어서는 기독교의 이념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교면 불교를 나쁘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불교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불교를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가 힘들고 그 급이 낮을 뿐이지 불교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의 도의 한계선까지도 정성을 들이지 않은 사람이 불교를 비판하면 그만큼 정성을 들였던 석가모니면 석가모니가 도리어 그 사람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다른 종교를 함부로 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남의 신앙을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함부로 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와 가는 길이 같지 않다고 해서 `저 사람은 왜 저래’하고 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서로 계통이 다르다는 거예요. 계통이 다르니만큼 다른 계통의 책임자를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계통의 한계선을 넘을 적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탕감적인 은사의 역사를 해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쌍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이 한 단계 한 단계 넘을 적마다 끌어올리는 역사를 하시기 위해 소모전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수고하시는가를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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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중요한 문제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바로 그런 길입니다.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가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갈 때에는 틀림없이 압니다. 그때에는 참 심각합니다. 그때에는 어느 개인이나 가정이 문제가 아니고, 교회가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어떤 나라가 문제가 아닙니다. 오로지 주종관계면 주종관계를 어떻게 세워서 넘어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고비를 한 단계 한 단계 넘어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자리까지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정을 들고 나오는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 이상 가는 것이 있어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 이상의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최고입니다. 하나님의 심정 가운데에 모든 것이 포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심정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 가운데에서 한 단계 올라가려면 반드시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나 자신이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하늘에서 반드시 책임 문제가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이때에 반드시 제물을 드려 제사하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인다고 할 때도 갑이라는 사람이 정성을 들였다면 그 사람 이상의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가 열흘을 금식했다면 그 배 이상의 금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가 정성들인 한계선 이상의 정성을 들이고, 그가 정성들여 바친 이상의 제물을 바쳐 가지고서야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자리를 넘어갈 수 있도록 마음이 준비가 된다면 하나님은 준비 안 해도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끝날 때가 되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고빗길이 오게 됩니다. 그때 우리들은 판결을 지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먼저 준비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도 먼저 땅에서 그것을 알고 미리 준비해서 제물을 드리거나 정성을 들이게 되면 하나님은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문제되는 것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보다 신앙의 고개길을 넘기 위해 온갖 수난을 다 겪으며 나오시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나오기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수고하셨겠습니까? 수많은 탕감의 노정을 거쳐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로 단계를 높이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수고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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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의 원리와 통일교회의 성전
그러면 통일교회 원리는 무엇이냐? 이러한 고개길을 넘어가는 데 있어서 벌어진 하나님의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지상에서 미리 알아 가지고 탕감시킬 수 있는 교리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원리입니다. 알겠어요? 이것만 따라가게 되면 직접적으로 아들의 자리도 갈 수 있는 것이요, 형제의 자리도 갈 수 있는 것이요, 부모의 자리도 찾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가정의 자리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앉아 있는 통일교회의 마루바닥은 최고의 정성을 들였거나 수많은 눈물과 피의 대가를 치르고 찾아진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알겠어요? 「예」 이 자리를 위해 수많은 선열들이 사라져 갔고 그들이 흘린 피가 강을 이룰 수 있을 만큼의 희생의 대가를 치른 터전 위에 우리가 올라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가 얼마나 무서운 자리인가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부자의 도리, 부부의 도리, 자녀의 도리, 형제의 도리를 중심삼고 형제 중의 형제가 되어야 하고, 부부 중의 부부가 되어야 하고, 부자 중의 부자가 되어야 하고 자녀 중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사이가 된다고 할 때, 그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있는 다른 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 통일교회가 망하느냐 망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결정짓게 됩니다. 여러분을 갈라 놓을 수 있는 다른 힘이 있어요? 「없습니다」 다른 힘에 의해 갈라진다면 그 사람은 가짜입니다. 세상의 남자가 통일교회 아가씨를 슬쩍슬쩍 건드린다면 끌려갈 사람이 있어요? 「없습니다」 또 세상의 미녀들이 통일교회 남자들을 낚아채려 한다면 갈사람 있어요? 「없습니다」 없어요? 「예」 요즈음에 보면 그런 여자와 남자가 더러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들은 통일교회 교인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몸의 때 같은 사람입니다. 때는 씻어 버려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전부 다 망할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우리의 아들딸을 가르치기 위한 간접적인 교재와 같은 존재로서 필요할는지는 모르지만 그 외에는 필요가 없습니다. 진짜 통일교인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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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하려면 사랑의 인연을 맺어야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영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그렇지요? 기도 가운데 선생님을 영적으로 가끔 만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 가운데서 선생님을 만나지 않는 사람은 가짜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만 하면 선생님은 틀림없이 가르쳐 줍니다. 선생님이 반드시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사람은 아직 멀었어요. 기도를 안 해서 그래요. 정성을 안 들였다는 거예요. 정성들이고 기도하게 되면 가르쳐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가르쳐 주는 것은 공식입니다. 과학적이라는 거예요. 공식적으로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첫 단계는 무엇이고 둘째 단계는 무엇인가를 여러분이 기도만 하면 가르쳐 준다는 겁니다.

영적으로 선생님을 보면 누구 같습니까? 선생님이 오빠 같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해와의 오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심정을 복귀해야 합니다. 본질적인 영적 심정을 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복귀하는 데에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입장이 다릅니다. 남자들은 천사장형이고, 여자들은 해와형이고, 선생님은 아담형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다 도둑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웃음)

이것을 타락한 세상적인 기준에서 보면 거꿀잡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남자들은 아담형이고, 여자들은 해와형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한 아담형으로 온 선생님과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싸움은 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도둑질해 간 것을 빼앗아 오자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남자들을 전부다 천사장의 자리에 세우는 거예요. 그러기에 주님이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누구나 다 사망선 고개를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고개를 넘어가는 방식은 전부다 같습니다. 그 고개는 신랑 신부가 아니면 못 넘어갑니다. 혼자서는 넘어갈 수 없습니다. 신랑 신부가 함께 넘어가는 거예요. 타락할 때 이 고개를 넘어왔기 때문에 복귀할 때 거꾸로 이 고개를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아담이 타락을 함으로써 하나님은 아담을 진정한 아들로서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아담도 하나님의 진짜 아들로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부부의 사랑도 못해 보았습니다. 즉, 진정한 남편의 입장에서 사랑을 못했고, 그 다음에는 진정한 아버지 입장에서 사랑을 못했고, 그 다음에는 부모의 입장에서 사랑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사랑을 못해 봤다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으니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 사랑의 인연을 다시 맺어야 한다는 거예요.

선생님 자신도 그렇겠지만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할 때, 형제와 같이 느껴지고, 부부와 같이 느껴지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와 같이 느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이 세 인연을 한 사람의 사랑을 중심삼고 느끼므로 말미암아 타락한 전부를 탕감하고, 그 심정이 하늘 앞으로 복귀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세계의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아무리 선생님을 잊어버리라고 해도 잊어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양 여자들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영적으로인지 육적으로인지 잘 모르게 제자들을 지도해 주었던 것 같이 선생님도 영계인지 육계인지 모르게 통일교인들을 지도해 준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선생님을 증거하고 받드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기에 가만히 앉아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그런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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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수습해야 할 통일교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이런 삼단계의 심정적 사랑의 인연의 최종적인 결정을 볼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아니고서는 세계를 수습할 수 없고, 도의 세계 또한 수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그러한 심정적 사랑의 인연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거치며 무한한 대가를 치르고 찾아진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입니다. 수많은 나라를 망하게 하면서까지 찾아 나온 무한한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런 것을 가지고 전전긍긍하고 또 뭐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생명이 숨겨진 것이기 때문에 고이고이 간직해 가지고 영원한 조상으로 삼고 가야 합니다.

여러분을 그러한 자리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영계의 조상들이 전부 다 동원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지 바보 같은 여러분들과 인연 맺기 위해서 영계에서는 최고의 정성을 들인다는 것입니다.그런 정성의 인연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무한한 가치를 알아야 됩니다.

옛날에는 신도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려면 밤낮없이 7년이상을 정성들여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7일만 정성들이면 선생님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걸어 놓고 7일 동안만 금식하면서 정성을 들이면 선생님이 틀림없이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찾아온 길이 얼마나 수고로운 길이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찾아오기는 왔지만 찾아온 길을 또 찾아가야 합니다. 나를 찾아오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잘못된 것을 탕감하면서 가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모시고 갈 때에는 어떤 입장에서 가야 하느냐? 여러분들 중심삼고 가는 게 아닙니다. 영계로부터 하늘의 인연을 통해 결정된 기준을 가지고 이 세계 앞에 앞장서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누가 이 세상을 정복하느냐? 하나님이 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원리와 선생님이 정복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어느 한때가 오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가려 가는 데 있어서 그 선두에 선생님이 서는것입니다.

그러기에 세계의 통일은 하나님이 아니라 선생님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타락하여 책임을 못했기 때문에, 아담을 복귀된 입장에 세우지 않고는 탕감해야 할 혈통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예」 그래서 선생님이 선두에 서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님 앞에 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후원자가 되고 선생님의 손발이 되라는 것입니다. 내가 청파동에 혼자 앉아 있어 가지고 되겠습니까? 지방에 있는 통일교인들까지도 통일적인 심정을 갖추어 가지고 자기의 맡은 분야에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통일된 인연을 갖추게 되면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영계도 전부 통일되는 것입니다.

영계에도 수많은 계급이 있다고 그랬지요? 영계의 수많은 종적인 계급이 통일되어 횡적인 계급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횡적인 계급으로 발전해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뜻이 이루어지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거쳐 이 자리까지 찾아 들어오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세계를 거쳐 나가야 합니다. 세계적인 기독교의 판도를 만든 터전 위에 통일교회를 세워서 찾아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국가들이 있습니다. 그 중앙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내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외적인 기준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내적 외적 기준을 실천할 수 있어야만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에 영적으로 찾아오신 것이나, 육적으로 선생님이 여러분 앞에 찾아온 것이나 그것이 얼마나 수고한 것이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을 가치로 따진다면 무한한 가치인 것입니다. 온천주를 주고도 살 수 없는 대가를 치르고 나서 얻어진 최후의 승리적 결실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함부로 놀아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양반의 자식은 얼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잿불을 쬐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요? 또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버려진 밥을 주어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분들도 자기 스스로의 긍지를 지니고, 하나님께서 수고해서 찾아 주신 보화의 가치를 상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32-189
기 도
아버님, 멀고 먼 복귀의 길에 있어서 영계를 중심삼고 지상에서 천태만상으로 역사하신 그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볼 때, 아버님께서는 원칙적인 힘과 더불어 역사하신 것을 아옵니다. 이러한 당신의 수고와 투쟁의 역사를 생각해 볼 때 저희들은 진정으로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어느 한때 아버지께서 찾아와 수고하시는 것을 알았으며, 어느 한때에 당신이 수난의 탕감노정을 걸어 나오시면서 이 땅 위에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복귀의 판도를 넓혀 왔다는 사실을 알았었사옵니까? 저희들이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부모의 입장에 계시는 당신께서 자녀들을 위하여 이렇듯 수고해 나오셨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의 그 은사 앞에 감사, 감격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자녀의 명분을 갖고 나타나야 할 통일의 무리인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그 누구도 끊을 수 없고, 자를 수도 없으며 사망의 권세를 가져 가지고도 밀어낼 수 없는 절대적인 인연이 여기에서부터 싹트게 되면 이 땅은 기필코 하나의 부모를 중심삼은 한 혈육으로서 형제의 인연이 맺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도의 결과가 이 땅 위에 맺혀지고 이 땅 위에서 승리가 결정되기 시작하였사오니, 이 모든 권위와 전통을 무너뜨리는 패배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물적인 자리에 서더라도, 천번 만번 죽더라도 오늘 이 거룩한 자리에까지 인연되게 하기까지의 아버지의 사연을 잊어버리는 자녀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가 수고하는 모든 사연이 영원히 남아지는 도의 터전이 될 것을 알고 각자의 생활을 통하여 수난의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부모를 대신하여 개척자가 되고, 또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내 한 자체가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늘의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 하고 이 땅 위의 실체 부모가 지켜 주어야 되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렇게 영적 아버지와 육적 아버지가 실체로 하나되어서 나를 품고 나를 뒷받침해 주어야만 승리한 통일의 자녀들의 모습이 갖추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를 다시 한 번 자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남 모르는 가운데 수난의 길을 찾아 나오셨다는 것을 저희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사옵니다. 당신의 그 은사는 천만금을 제물로 드려도 갚을 수 없는 크나큰 은사인 것을 아옵니다. 그러하오니 저희의 생활 전체를 눈물로써 감사드리고 저희의 생활의 전체를 아버지 앞에 제물로 바쳐 드리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날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삼천만 민족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세계 만민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승리를 다짐하는 통일의 시대가 저희의 목전에 다가오는 것을 느끼오니, 만민이 쌍수를 들어 찬양하고 머리 숙여 감사하고 환영하는 때가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의 주체 앞에 팔다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수많은 단계와 분야에서 아버지를 대신할 사람들이 많아야 된다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시고 찾아 나오시던 아버지를 대신하여 눈물과 피와 땀으로써 인류와 하늘땅을 위하여 몽땅 바쳐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심정에 기록되지 아니할 수 없고, 아버지께서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은 사망에 처해 있다가 광명한 부활과 생명으로의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특권적인 은사를 받아 어떠한 조상들에게도 기뻐 자랑할 수 있는 모습들이오니, 이런 사실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세계에 널려서 이 시간을 흠모하는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영적으로 인도하시는 아버지의 모든 뜻이 어서 속히 이 세계에 승리로 귀일되고, 하나의 가정적인 형태를 이루기 위한 아버지의 거룩한 뜻이 지상에 어서 빨리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탄도 이제 아버지를 협조하여 승리의 법도를 따라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니, 이북과 공산권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승리의 깃발을 들고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의 만권(萬權)을 대신할 수 있는 기쁨의 날, 영광의날, 찬양의 귀결점이 이 천지간에 어서 속히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정세가 아무리 위급하다고 하더라도 저희가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는 긍지를 지니고, 아버지와 끊을 수 없는 사랑의 인연을 맺어 아버지를 잊지 않고 살아갈 때, 이 사탄세계를 녹여내고도 남을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솟아나서 온 지구상에 아버지의 승리가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그러니 저희가 그럴 수 있는 하나의 분기점이 되고 하나의 분수령이 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찾아 나오신 그 걸음이 얼마나 힘드셨는가를 몰랐던 자신들을 다시 한 번 견책하고, 저희가 그와 같은 입장에 서서 자신들의 부모를 깨우치기 위하여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하고 아버지 대신 그들의 생명을 염려하게 될 때 저희들은 기필코 망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가 이 민족을 위하여, 이 국가를 위하여, 이 세계를 위하여 남이 알아 주지 않는 가운데 정성을 들이게 되면 아버지의 수고가 덜어지게 되는 것이요, 이 땅 위에 오신 부모의 수고가 덜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아들된 책임과 도리이며, 효자들이 가야할 길이요, 충신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후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소서. 이들은 남에게 신세를 지면서 따라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하면서 형제들 앞에 신세를 지지 않기 위해 싸움의 길을 자처하여 책임지고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의 가정은 흥할 것이요, 그 가정을 중심으로 연결된 그 나라도 흥할 것이요, 세계 또한 기필코 그들 앞에 굴복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가 그들 앞에 굴복하게 되면, 이 땅에 왔다 갔던 천상세계의 천천만 성도들과 과거에 왔다 갔던 수많은 애혼들이 해방의 기쁨을 맞이하는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이 이런 높고 광범위하고 놀라운 특권적인 사명을 가지게 된 것을 무한히 감사하오니 이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제물되는 자리에 온전히 나설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나아진 시간 위에 당신의 긍휼과 자비와 보호가 영원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