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4 to 31-105: 견고한 기반

견고한 기반
1970.04.26 (일), 한국 전본부교회

31-94
견고한 기반
[기 도]

아버님, 복귀노정을 걸어오는 동안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희생당하였사옵니다. 당신은 시대와 더불어 얼마나 싸워왔사오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려왔사옵니까? 기나긴 세월 동안 당신께서 슬픔과 한을 남기신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가진 것 없는 저희들이지만 남겨진 복귀의 사명 앞에 더욱더 충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이 세상의 모든 만상은 당신의 수고와 은혜로 말미암아 지어졌사오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만상이 당신에게 슬픔의 기점으로 남아졌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절실히 느끼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런 슬픔 가운데에 처해 있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요, 나라요, 민족이요, 종족이요, 가정이요, 개인인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라는 한 개인을 위해 세상을 지으신 아버지의 수고 앞에 저희들은 면목을 세울 수 없고 체면을 세울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얼마만한 인격체가 되었느냐고 묻게 된다면 저희들은 면목을 세우고 체면을 세워 나갈 수 없는 모습이옵니다. 이러한 모습인 것을 발견하면 할수록 불쌍한 분은 아버지밖에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옵니다. 전국에 널려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시고,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최후의 싸움이 저희의 목전에 다가오면 올수록 행보를 맞추고 대열을 갖추어 최후의 승부를 종결지어야 할 때라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적으로는 물론이요, 외적으로도 그럴 수 있는 나 자신이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이 엄청난 사명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녀의 모습을 간절히 고대하고 계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은 금년에 계획하는 이 엄청난 섭리의 뜻을 받들기 위하여 온갖 충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부족한 자신들을 거룩한 성소에 바치어 승리의 깃발을 드높이 들고 온 우주가 해방될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는 시간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의 처지와 사정을 돌보지 마시옵소서. 저희들은 당신께서 믿으실 만한 아무런 내용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처지와 사정을 알아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아버지의 처지와 사정을 알지 못하고 있었사옵니다. 하오나 그 입장까지 가기 위하여는 수많은 수난과 고생의 노정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오니, 이 싸움터에서 지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전면적인 싸움터에서 아버지의 보호를 받아 가면서 최후의 격전지를 향하여 총진군하고 총출동하기에 바쁜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서 이곳을 바라보며 경배하고, 하늘의 은사를 바라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 위에 만배의 복을 가하여 주시옵소서. 또 세계에 널리어 당신이 남기신 섭리의 뜻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통일의 자녀들에게도 당신의 깊으신 가호의 손길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어려울 때나 외로운 때나 항상 당신이 친히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금년에는 저희들, 국가 이상 가는 목표를 이루어야겠사옵니다. 국가를 지키기 위하여 일본을 세운 후, 거기에 당신이 축복의 손길을 펴시어서 싸움을 시켰사올진대, 그들이 끝까지 싸워 거둔 유종의 미가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있게 하여, 그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날을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통일의 족속들이 아시아에서 당신의 뜻을 들고 나올 수 있고, 당신의 섭리의 뜻이 이러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다고, 자랑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모여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곳곳마다 당신의 거룩한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고,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승리의 터전을 넓혀 나가시어서 통일의 족속들이 상속받을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개인을 위하여 찾아오시는 아버지가 아니고, 전체를 위하여 찾아오시는 아버지의 그 깊은 뜻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모든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1-96
말 씀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보다 좋은 것을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좋은 것을 요구하느냐 하면 그것이 보다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동시에 보다 더 영원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31-96
복귀섭리에 가장 필요한 것
사람은 보다 선해지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자기 개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형보다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더불어 남아질 수 있는 내용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한 사람은 어느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견고한 기반 위에 서기 때문에 인간들은 선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악은 한 순간에만 대항하는 것입니다. 또한 시대권을 초월하여 역사를 창건할 수 있는 내용도 지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영원을 두고 연속하는 것이요 그것을 연속시킬 수 있는 동기는 순간 순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과정을 통해서는 영원한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악한 사람이나 악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선한 것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선한 것을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변하지 않는 어떤 견고한 터전이나 확고한 기초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복귀섭리의 뜻 앞에 있어서도 이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복귀섭리의 뜻 앞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외적인 어떤 물질 보다도 견고한 터전 위에 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물질을 추구하는 것보다 먼저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복귀 역사도상에 있어서 변치 않는 견고한 기반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으로 말미암아 역사가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움직여 온 것입니다. 아무리 외적인 여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없으면 그 여건은 선한 기반이 될 수 없기에 선한 목적에 사용될 수 없으며, 선한 목적을 이룰 수도 없으며, 선한 곳에 머물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보아 복귀섭리를 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사람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되겠습니다.

한 집안을 바로잡아 견고한 터전을 갖기 위해서도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처럼 복귀섭리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한 나라 역시 사람들로 형성되어 있고 사람들로 유지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그 사람들이 개인의 목적보다도 전체의 목적과 일치되는 기반을 갖춘 국가관을 갖고 있다면 그 국가는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추구하는 우리에게는 변하지 않는 견고한 기반 위에 선 사람이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1-97
공고한 기반 위에 선 사람의 가치
우리가 어떤 사람을 중심삼고 `그 사람’ 하면 그 사람의 언행심사를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의 말, 그 사람의 행동, 그 사람의 마음가짐, 그 사람이 하는 일이 확고한 기반 위에 서 있는가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모든 것이 전부 확고부동한 기반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때에 따라 변하고 환경에 따라 변하는 사람은 국가나 민족, 혹은 가정이나 개개인에 대해서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못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공고한 기반 위에 서 있는 사람의 행동과 마음가짐, 그리고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인격자라 할 때, 인격자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말이나 행동은 공고한 기반 위에서 하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그것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친구일지라도, 혹은 어떠한 권세를 쥐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또 아무리 가까운 사이의 사람일지라도 움직일 수 없는 확고부동한 말을 하게 될 때 거기서부터 새로운 인연이 벌어지고, 거기서부터 만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변치 않는 확고한 자리에서 행동을 하게 될 때, 그것이 일시적인 행동이라 해도 그것은 역사를 움직일 수 있고, 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인들의 수가 더하여져 하나의 행동으로 나타나게 될 때, 그것은 국가를 변혁시킬 수 있는 운동도 되는 것이요, 또 새로운 국가를 창건할 수 있는 기원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고한 기반 위에 선 개인들로 형성된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이 있다면 그 종족이나 민족은 어떤 시한권내에서 시작되었다가 그 권내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시한권을 초월한 자리에서 시작되어 영원을 향하여 뻗어 나갈 수 있는 종족이나 민족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과연 우리들은 그런 개인의 모습을 얼마만큼 추구하였느냐 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31-98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
우리는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해 나오셨지만 아직까지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찾지 못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는 남자도 많았고, 여자도 많았으며, 부부도 많았습니다. 또한 민족과 국가, 세계의 형태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영원하고 변치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응할 수 있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위업을 상속받아 영속시킬 수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슬픔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가정이면 가정이 이름 있는 가정으로서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내용과 민족의 전통을 지녔는데, 그 가정에 그러한 것들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식이 없다면 슬픔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 가정에 자식이 있다면 그 가정에 갖추어진 모든 내용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과 관계되어 있는 모든 인연도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정의 깊은 내용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식이 없다면 그 가정은 거기서부터 쇠퇴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도 우리의 이런 환경적인 내용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속적인 뜻을 상속받을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이 있다면, 미래의 영광을 향하여 출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지만 그런 인간이 없을 때에는 아무리 공고한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라 하여도 우리 인간에게나 역사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의 모든 위업 또한 상속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공고한 터전 위에 서 있는 인간이 얼마나 귀한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러한 개인을 찾기 위해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나 자신은 하나님께서 찾고자 하시는 그 뜻 앞에 있어서 그런 공고한 자리를 취하였느냐? 이것은 우리가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뜻과 더불어 같이할 수 있는 확고부동한 개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게 될 때에는 아무리 뜻이 크고, 그 뜻을 성사시킬 수 있는 때가 왔다 하더라도 그 뜻과 그 시기는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세계사적인 사명을 짊어졌다고 하는 우리 통일신도들 개체 개체는 과연 뜻과 더불어 그 누가 변화시키려 해도 변하지 않고, 변경시키려 해도 변경되지 않은 자가 되었으며, 가중한 힘을 가해 가지고 어떤 내용을 더 보충해줄 필요가 없는 완전한 자가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여기에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기쁨이요, 오늘날 수많은 인류들의 소망의 중심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이 지구상에 나타나게 될 때, 인간이 비로소 복귀섭리의 터전 앞에 공고한 하나의 기점으로서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언제 그런 기준 위에 서고, 언제 그런 입장에 서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선 개인이 역사를 대신하여 동기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나서게 되면 그 역사는 그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이며, 또 그 동기와 더불어 어떤 실천 방안을 갖고 나가게 될 때,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실천의 결과가 역사상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두고 볼 때, 확고부동한 자리에 선 개인이 얼마나 필요한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31-100
공고한 기반 위에 서야 할 통일교인들
오늘날 여러분은 삼천만 민족을 대신한 사람들입니다. 삼천만 민족을 대신한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인 여러분들은, 이 민족 전체를 대신한 하나의 기반 위에 설 수 있는 자신을 얼마나 동경했습니까? 여러분은 삼천만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중간적 입장에 설 것이 아니라, 공고한 기반 위에, 즉 하나님이 출발할 수 있는 기점에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삼천만을 책임지고 싸워 나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뜻에서는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연결되어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들이 연결되어 종족이 편성되고, 그런 종족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민족이 편성되었다 하면, 그 민족을 통해서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힘차게 펼쳐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도 공고한 기반 위에 선 자아가 얼마나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 때까지의 4천년 역사를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역사는 요동하는 역사였습니다. 일정한 정착점을 잡지 못한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반석으로서 공고한 터전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거기에 두 발을 딛지 못하였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행동하는 모든 것이 역사 앞에 새로운 모색방안이 되지 못하였고, 그 시대를 좌우할 수 있는 기반 위에 서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명이 2천년 후인 지금까지 연장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그 사명을 재차 수습하여야 할 책임을 느끼고 그 책임을 수행하겠다는 무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무리는 얼마나 심각하겠습니까?

오늘날 세계 정세는 요동하고 있습니다. 국가적인 운명도 요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세 가운데에 있는 국가와 세계를 수습하여 그것을 기점으로 공고한 터전을 만들 수 있는 개인이나 가정, 혹은 종족이 이 시대에 나타난다면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세계는 창건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럴 수 있는 `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나를 바라고 나오셨기에 하나님의 뜻은 우리 자체가 없어서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 닻을 내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지라든가 또는 시발의 동기를 그 터전 위에서 찾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두고 볼 때 우리는 견고한 기반 위에 서야겠습니다. 견고한 기반 위에 선 개인, 견고한 기반위에 선 가정, 견고한 기반 위에 선 종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무리가 그러한 기반 위에 서는 종족이 되어야겠느냐?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 위에 서는 민족도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또 그러한 기반 위에 서는 국가도 제3차 이스라엘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대한민국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디까지나 견고한 기반 위에 선 개인으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그런 개인이 되려면 `내가 행동하는 것은 틀림없는 행동이요, 말하는 것도 틀림없는 말이다. 그러므로 내 말과 행동은 역사를 대신한 것이니 내 말을 믿고 내 행동을 보고 따라와야만 역사적인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결정될 수 있다’ 할 수 있는 신념 위에 선 개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는 말은 일시적인 말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그럴 수 있는 결과로 나타날 때까지 지속할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나아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견고한 기반 위에 선 우리에게는 그것이 문제되지 않는다’ 하는 입장에 서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도 이런 입장에 서서 나아간다면 우리가 가는 길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어려움이 우리가 서 있는 견고한 터전 이상의 자리가 아닐진대 우리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기필코 승리의 결과를 다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우리 각자의 책임으로 해결되는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믿음이 약한 자에게 권고하기를 `믿으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믿으라’는 말씀은 막연하게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공고한 기반 위에 서고 반석 위에 서서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 위에서 누구의 간섭이나 침범에 좌우되는 입장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31-102
공고한 기반 위에 서려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스스로 주체성을 갖추어 주도적인 권한을 세우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막연한 자리에 있는 여러분에게 절대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것도 일시적으로나마 절대적으로 공고한 터전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하신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기반 위에서 만유의 존재와 만세계를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끌고 나가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주체적인 입장을 상실해 버리고 임시변통으로 상대적 기준을 갖추어 동기를 찾아 들어겠다는 입장에 서서 섭리의 뜻을 펴나오시는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쌍한 하나님인가를 우리들은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원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원리원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원리원칙은 어느 누구에게 간섭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권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초월하여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기점에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 결과의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원리는 어떤 조상이나 후손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조상도 순응해야 되고, 후손도 순응해야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도 순응해야 됩니다. 원리라는 그 자체가 절대적인 주체성을 지닌 원칙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원리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원리의 길은 공고한 기반을 빛내기 위해서, 공고한 기반을 넓히기 위해서, 공고한 기반을 드러내기 위해서 주장하며 가는 길입니다. 이 점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원리의 길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 쉽사리 밟고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원리의 길은 하나 하나 밟아 넘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열 사람이 간다면 가는 그 모양이 모두 같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길을 갔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백 사람이라도 가는 모양이 모두 같지 않으면 이 길을 갔다고 할 수 없는 것이며, 천만 사람이라도 그 가는 길이 모두 같은 모양의 행로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리의 길이라는 것은 열 발자국 되는 거리의 길을 가더라도, 역사를 초월하여 형태를 남기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조상도 가감할 수 없는 것이요, 우리의 후손도 가감할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까지도 가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이 원리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탕감의 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10분의 1이면 10분의 1, 100분의 1이면 100분의 1이라도 조건적인 형태를 갖추면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길이 탕감복귀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탕감복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원리입니다. 이 원리가 있어야 비로소 거기에서부터 역사적인 기원이 벌어지는 것이요, 이 원리에 입각하게 될 때에 비로소 견고한 기반 위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반 위에 선 자아를 얼마만큼 드러내느냐 하는 것은 원리와 얼마만큼 일치된 생활을 하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고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이나 이번 축복 특별수련생들을 두고 보더라도, 그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가 뜻을 알고난 후의 생활이 과거의 기간보다 짧더라도 뜻을 알고 난 후에 얼마나 원리적 내용과 일치된 생활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 한 시간, 혹은 1년, 3년, 10년이라는 그 기간 동안 자신이 얼마나 원리적인 입장과 공고한 터전 위에 서서 나왔느냐 하는 문제가 금후에 자기의 생애의 가치를 빛나게 할 수 있고 생애의 문제를 좌우할 수 있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원리적인 기준에 섬으로써 절대적 기준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리에 생활 기준이 일치되면 거기서부터 그 생애는 영원한 뜻과 일치되는 것이요, 그 기준에 일치된 내용으로 영원한 자기의 생사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리를 중심삼고 생활하는 것이 하나의 견고한 기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를 떠난 생활은 지극히 위험합니다. 그러나 원리에 의거하고, 원리에 보조를 맞추는 생활을 했을 때는 견고하고도 공고한 기반이 우리 생애노정에 남아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리와 더불어 말하고, 원리와 더불어 생활하고, 원리와 더불어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만이 역사를 일깨울 수 있고, 역사를 이끌고 갈 수 있으며, 새로운 시대를 창건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1-104
철저한 원리 생활을 해야 할 우리
이런 기반 위에서 내적 생활이나 외적 생활, 혹은 경제적 생활이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정된 생활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런 입장의 원리화된 생활은 우리의 생사 문제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세의 그런 생활은 현재만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까지 남아지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원리인 것을 알고, 여러분은 이 원리에 입각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생에서 요구하는 모든 목적도 원리와 일치되는 생활에서부터 영원히 남아 질 수 있는 하나의 확고한 터전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그 내용을 음미하고 그 내용을 투입하면서 착실히 생활해 나가는 사람은 지칠래야 지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해서 행동하게 되면 보다 공고한 기반이 되어서 내일의 새로운 역사를 창건하는 동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러한 생활을 계속해 나간다면 스스로의 횡적인 발전과 종적인 발전의 기원이 된다는 것을 알고 보다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취해야 할 입장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오늘날 한국의 정세가 위기일발의 시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면 이 시점을 어떻게, 그 누구의 힘으로 변경시킬 것이냐? 그것은 어떠한 국책으로도 변경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민족의 운명을 세계의 운명에 연결시킬 수 있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그 민족 가운데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나라의 위급한 운명을 구할 수 있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시점에서 통일교회의 원리에 입각한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통일교회의 신앙자들의 태도, 혹은 그 입장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나를 여러분들은 더욱더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만민이 모여들게 할 수 있는 하나의 기원과 기초가 어디 있느냐 할때 그것을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원리를 중심삼은 우리의 생활권내에서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들이 처해 있는 입장이 얼마나 엄숙하고 엄청난 자리인가를 느껴야 합니다. 우리 개체가 세워야 할 공고한 기반, 가정이 세워야 할 공고한 기반, 민족과 국가가 세워야 할 공고한 기반이 원리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겠습니다. 그러기에 원리생활의 철저화를 더욱더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31-105
기 도
아버님, 저희들은 복귀원리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희가 배우고 있는 그것은 세상의 물리학이나 화학의 정의도 아니요, 공식도 아니요, 원리도 아닙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생이 아버지편으로 귀의하기 위한 하나의 탕감법칙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모한 행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천만 사람의 의로움을 합하여 새로운 의의 권한을 마련해야 할 것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수천년 동안 기독교 역사를 엮어 오신 아버님은 내심의 변치 않는 공고한 기반으로 역사를 대해 나오셨습니다. 그 과정에 복잡한 단계들을 탕감의 대가를 치르며 축소시켜 나오신 것이 아버지가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신 역사적인 사연인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역사를 축소시킨 하나의 기점에서 `이것이다’ 할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수천년 동안 선한 사람들을 희생시켜 나온 것이 아버지의 뜻의 길인 것을 헤아리게 되옵니다. 그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지만 `이것이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서 피를 흘린 사람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아옵니다. 그것이 아버님의 한이었기 때문에, 아버님께서는 그 결정적인 기점을 해결짓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셨사오나 예수님마저 땅과 영계를 중심삼고 그 기점을 찾지 못하는 슬픔을 갖고 죽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역사를 연장시켜가며 섭리하신 아버지의 노고의 역사는 가중된 십자가의 비참한 길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다시 한번 역사적 끝날에 이것을 해결짓기 위하여 통일가를 세우시어 이런 엄청난 하나의 기점을 마련하신 줄 아옵니다. 그런데 그 기점은 무모한 자리에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공고한 어떠한 원칙을 따라 변치않는 내용을 갖추어야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지금까지 저희가 원리와 일치하는 생활관을 얼마나 중요시했느냐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반성해 보면 아버지 앞에 불충한 자신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리는 원리대로 두어두고 생활은 생활대로 하고, 자신은 자신대로 간다고 하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걸어 나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나 자신을 위해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불충이었고 불효이었음을 저희들 각자가 다시 한번 자인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원리와 자신의 생활이 일체된 자리에서 아버지와 일체될 수 있는 주권을 갖지 못한 과거의 슬픔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러한 현재에 처해 있는 저희 자신을 폭파시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께서 하나의 기점상에 머무를 수 있음과 동시에, 저희가 영원히 아버님을 대신하는 데 대해 자신감을 가지는 원리적인 내용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공고한 기반 위에 섰다고 자각하는 한 순간이 없어 가지고는 자기 일생에 영원한 승리는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자기에게 있어서 영원한 아버지의 뜻의 출발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1960년부터 1970년까지 10년 기간을 싸워 나왔습니다. 70년대를 즈음한 이 시점에서 아버님께서 저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외적인 세력 기반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공고한 터전 위에서 원리화된 하나의 개인과, 하나의 가정과, 하나의 종족을 형성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 운동이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이제 4월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달을 보내면 일년의 3분의 1이 지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이 세월을 덧없이 무의미한 날들로 흘려 보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원리원칙과 일치화된 자리에서 이날들을 수습하고 소화하여 공고한 터전을 결정짓는 하루 하루가 되게 하며 아버지를 향하여 전진하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저희들의 하루 하루의 생활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하루 하루의 생활이 얼마나 얼마나 헛된 생활이었으며, 부평초와 같이 뜬 생활이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견고한 기반 위에 선 자아의 모습을 아버님 앞에 자랑하는 것이 저희의 간절한 욕구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런 자리에서 자아를 수습하여 저희들의 모든 생활이 아버님의 동기가 되게 만들어야겠다고 몸부림치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곳이 아버님께서 주관하고 천지가 소생하는 자리인 것을 느껴서 생활에서 승리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지금까지 말을 하였으되 무의미한 말을 하였고 행동을 하였으되 무의미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또한 인연을 갖추었지만 흘러갈 인연을 갖추어 나왔습니다. 한마디 말이나, 한 번의 행동이나, 하나의 인연을 공고한 터전 위에서 쌓으면 쌓을수록 아버님의 것이 되고, 넓히면 넓힐수록 아버님의 터전이 되는 것이옵기에 그런 견고한 기반 위에 선 사람들이 지금 필요한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런 입장에서 오늘날 통일가의 역사를 다시 한번 더듬어 볼 때, 당신 앞에 남겨진 인물이 얼마나 있으며, 그런 재산이 얼마나 있으며, 또한 당신이 관리할 수 있는 기일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들 자신이 그렇지 못하다는 심정을 느끼면 느낄수록, 자기 자신을 확고한 기반위에 세우기 위하여 이것을 수습하고 비판할 줄 아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럴 수 있는 역사적인 하나의 기점을 저희는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가정적 승리의 기반을 저희들은 추구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개인적인 승리의 기점을 저희들은 쟁취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개인과 가정이 나오지 않고는 이런 종족이 나올 수 없는 것이요, 이런 종족이 나오지 않고는 이런 민족이 나올 수 없는 것이요, 이런 민족이 나오지 않고는 이런 나라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런데도 아버님이 이루어야 할 성업의 목표는 국가 복귀이기에, 이 엄중한 책임을 이루기 위해 한의 역사를 더듬어 온 아버님이 얼마나 슬픈 입장에 계신가를 저희들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언제나 변하기 쉬운 자신, 언제나 생활이 요동하기 쉬운 입장에 있는 저희 자신, 이러한 저희의 마음과 몸의 자세를 놓고 볼 때, 아버지의 영원한 기반 위에 설 수 있는 자신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저희들에게는 영원히 찾아올 수 없는 아버지요, 영원히 인연을 맺을 수 없는 아버지인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버지께서 얼마나 불쌍하신가를 이 시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역사는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공고한 기반 위에 서고, 역사의 흐름은 사방으로 퍼져 나가더라도 나는 중심이 되어 역사를 인도하고 수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문제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개인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한 나라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요, 이 세계와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그런 공고한 터전 위에 서는 모습을 그리워하며 저희들 자체를 풀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생활을 연속해 나왔사옵니다. 그런 과거를 부끄러움으로 깨달을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역사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시대를 주고도 바꿀 수 없으며, 세상의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기원과 일치되는 공고한 자아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이 문제였습니다. 그럴 수 있는 하나의 남성이 문제였고, 하나의 여성이 문제였습니다. 이런 남성과 여성이 손에 손을 잡고 나설 수 있는 가정이 문제였습니다. 그러한 가정이 통일가 가운데 있느냐, 그러한 가정이 이 민족 가운데 있느냐, 그러한 가정이 이 세계 가운데 있느냐는 물음에 아직까지 그런 가정이 없다고 할 때, 암담한 흑암의 권세가 이 천지를 뒤덮을 것입니다. 그때에 어려움을 어느 누가 극복할 것이겠사옵니까? 인간 중에 그러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책임져야 할 입장에 서셔야 할 아버님은 제일 불쌍한 분이옵니다.

아버님은 안일한 곳을 찾아가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저희들이 처해진 환경을 미루어 볼 때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앞에 짐을 지우는 저희들이 아니라 오히려 아버지를 먼저 염려하고 동정해야 하는 저희들인 것을 발견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해 바라옵니다.

자신을 구하기보다도 공고한 터전 위에서 아버지를 구해 드리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아버지를 따라가야 한다고 믿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인간을 따라가야 된다는 입장에서 생각하게 될 때, 움직일 수 없는 견고한 터전 위에 선 인격자가 얼마나 귀하며, 천지가 그 사람을 겨누어 나오고 역사가 그것을 겨누어 나오고 있으며, 섭리가 그것을 겨누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기반 위에 선 사람은 비록 인간의 신체의 모습을 다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버지에게는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라는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공고한 터전 위에 절대부동의 자리에 선 개인의 가치를 두고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기반 위에서 아버님도 해원성사할 수 있는 것이요, 거기에서 아버님께서 승리할 수 있는 방패도, 도성도, 모든 국가의 권한도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희들 앞에 남겨진 원리의 길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을 더더욱 깊이 깨닫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은 원리의 길을 남기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그런데 원리를 안다는 무리가 원리의 길을 이탈하게 될 때, 그 얼마나 비참하고 그 얼마나 원통한 사실이 되는 가를 저희들이 다시 한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원리를 통한 인격, 원리를 통한 생활, 원리를 통한 심성을 갖추어 아버지앞에 경배하는 모습을 아버지께서 보시고 동정하고, 아버지께서 보시고 찾아올 수 있는 그런 아들딸이 이 통일교단에 남아지지 않으면 세상을 그 누가 지도할 것이냐고 자문자답할 때, 아무도 없다는 결론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이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저희들이 이 엄중한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 역사적인 것이요, 천주적인 소원이라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이런 것을 바라볼 때, 초조하고 절박하고 비통하고 애절한 자리에 서서, 이 모든 문제를 저희들이 해결지어야 된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원리와 일치된 생활의 터전을 갖추어 생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귀한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법도에 순응하는 아들딸이 이제부터 많이 나오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남아진 내일에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견고한 기반 위에 서는 것이 가장 절박한 문제임을 깨달으면서, 당신의 품에 안기기를 그리워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견고한 기반을 원리를 통하여 저희 자체 앞에, 이 교단 앞에, 이 민족 앞에 다 바치게 허락하여 주시길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