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95 to 31-337: 기도와 생명

기도와 생명
1970.06.07 (일), 한국 전본부교회

31-295
기도와 생명
[기 도]

타락한 후손이기 때문에 복귀의 길을 거슬러 올라가 아버님을 상봉해야 할 자신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수많은 우리 조상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그곳을 향하여 걸어 올라갔고 지금도 그곳을 향하여 싸우며 올라가고 있사옵니다.

이런 노정에 있어서는 어느 한때 한 개인이 자기 종족의 관계를 중심삼고 귀결점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저희들의 생애에 대한 모든 애착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함임을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당신과 더불어 상면상답(相面相答)할 수 있는 그곳을 찾아가는 저희들은 그 길에 있어서 언제나 충효의 도리를 다하지 않고는 갈 수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은 이 길을 가기 위해서 죽음의 길, 수난의 길, 몰림의 길, 슬픔의 길, 고독의 길을 걸어 나오면서도 아버지와 관계 맺는 곳이 어디인가를 몸부림치며 지금까지 더듬어 찾아왔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역사를 통하여, 오늘 저희들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종적인 과거를 통하여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이것을 현실 생활을 횡적 무대에 연결시켜야만이 저희들의 마음에 평화가 온다는 사실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체험하게 되옵니다. 이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이것이 역사 전체에 연결될 수 있는 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과거의 우리 선조들에게 그와 같은 인연을 맺지 못한 슬픔의 시기 시기가 얼마나 많았는가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러한 역사에 대하여 회개하고, 오늘 이 시대에 책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힘과 자비와 긍휼을 바라야 할 자신의 모습들인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가 내가 아닌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하겠사옵니다. 나는 누구일 것이냐? 부모를 통해 태어났지만 부모의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종족을 통하여 태어났지만 종족의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민족을 통하여 태어났지만 민족의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오로지 세계를 넘어 아버지의 것이라는 이 엄청나고도 고귀한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천주의 대주재 되시는 분이 우리의 부모라는 것, 영원히 영원히 무한한 가치를 지닌 분이 우리의 부모임을 알게 될 때, 그 무한한 존재이신 아버지의 가치를 내가 어떻게 평가하였으며, 얼마나 음미하였는가를 생각하며 아버지앞에 머무르기에 부족한 자신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저희들은 당신의 거룩한 존전에서 부족하고 참담한 자신을 슬퍼하지 않을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희를 슬픔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칭찬과 기쁨으로 맞아 주시는 아버지가 계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이 외로운 환경에 휩싸여 들어가더라도 그 심정이 외로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옵니다. 뜻을 향하여 가는 저희들앞에, 하늘을 대하여 가는 그 길 앞에 슬픔과 고독과 비참함이 몰려온다 하더라도 그 자리는 처참한 자리가 아닌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가고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가는 발걸음 앞에서는 그 비참한 모든 전부에 비례하여 아버님은 사랑의 마음, 긍휼의 마음, 순교의 마음으로 저희에게 더 빨리 다가오신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옵니다.

생명이 살아 있는 순간에 아버님을 대한다고 할 수 있는 그 한때가 올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와 저희 사이에 있어서 사탄세계의 모든 혈연적인 인연을 타파해 버리고 하나의 생명의 빛과 더불어 스쳐갈 수 있는 이 우주사적인 한 순간이 각자의 생애노정에 필연적으로 오게 하시옵소서. 이러한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 오늘도, 내일도, 일년, 십년, 아니 생애를 바쳐 그 길을 향하여 달려갈 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남한 각지에 널려서 이곳을 그리워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긍휼히 보시옵고 부복한 그 모습들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품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상이 아니다 하고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환경적 기준을 타파하기 위해 저희들은 많은 눈물의 고비를 넘겼사옵니다. 서글프고 한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복귀의 노정을 가던 그때의 일들은 과거지사로 모두 흘러갔사옵니다. 그러나 남아진 우리 자체는 아버지의 사랑의 실체로서, 그런 결실체로서 남아져야 할 것이옵니다.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민족의 비판을 받아 쓰러지고 없어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오늘의 `나’는 나를 위한 `나’가 아닌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나는 역사를 짊어져야 할 나요, 세계사를 개척해야 할 나요, 천정(天情)의 인연을 책임지고 증거해야 할 나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부족한 모습이지만 아버지여, 당신께 드리기 위한 예물로서 고이 바쳐져야할 `나’라는 것을 깨닫는 당신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런 나의 손길은 당신의 손길과 같이 거룩한 손길이 되어야 하겠고, 나의 용모는 당신이 기쁨을 헤아릴 수 있는 용모가 되어야 하겠으며, 나의 태도는 당신이 천년 만년 자랑할 수 있는 태도가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또한 나의 행적은 하나님이 눈물로써 맞으며 내 아들이라고 칭찬할 수 있는 환경을 그려내는 것이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께서 소원하시고 뜻하시는 최후의 능선 앞에 가는 저희 자신들이 얼마나 부끄러운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옵니다.

찾아오시는 아버지의 발걸음 앞에 낙심의 조건과 슬픔의 조건을 가해 드리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소망과 생명의 인연을 가하시어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자녀,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하며 기필코 후대에 무한한 복을 계승해 주고자 온 세계앞에 충성하는 아들, 그러한 딸을 그 마음으로 얼마나 얼마나 고대하고 계시옵니까? 이것을 느낄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를 부를 때 무미건조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피가 끓고 마음이 감겨 들어가는 아버지의 부름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 아버지를 바라는 저희는 비장함을 가져야 할 것이며, 저희의 모든 간절한 표정은 아버지의 심정을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깨달을 줄 아는 자신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에게 쌍수 합장하는 자리에 아버지께서 달려올 수 있게 해야겠사옵니다. 그런 순간을 생애노정에 얼마나 남기느냐 하는 것이 영광스러운 아들이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짓는 절대적 요인이 되고 조건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사망세계의 그늘 아래서 슬픔과 고독과 탄식의 실체를 가지고 생에 대한 애착심을 갖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자리에 있더라도 자기의 생을 걸고 아버지에 대해 애착심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을 남기기 위하여 가는 사람들을 찾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기에 모인 자녀들이 누구를 위하여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당신은 저희들의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 아버지의 마음 바탕이 되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계시옵니까? 저희들 중 한 개인을 위시해서 또 다른 개인과 개인을 연결시키시옵소서. 아버지의 마음이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연결되어 사방성을 갖춤으로써 아버지께서 얼마든지 현현하실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이 생겨나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통일교단에 모인 통일종족 전체가 아버지의 마음에 들 수 있는 종족적 환경이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렇지 못하거든 종족을 이끄는 족장의 책임, 제사장의 책임을 져야 할 저희들이요 나라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긍휼히 보아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망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수의 하는 일을 구경하고 감상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원수와 싸워야만 되겠습니다. 그들을 치고 그들과 원수가 되어야 망할래야 망할 수 없는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악을 용서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악에 속해 있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악을 제거시키기 위한 아버지의 뜻임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저희들의 책임이 얼마나 지중한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의 나를 자랑하기 전에 내일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을 염려하면서 내 일생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보다 영원한 세계의 영광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보다 가치있고 보다 크고 보다 보람있는 것을 추구해 나가야겠사옵니다. 그것을 지적으로 판단하여 보다 나은 인간의 가치를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참은 영원을 입증하는 것이요, 참은 영원과 같이하는 것이요, 참은 영원한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참된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참된 말을 해야 되겠습니다. 참된 오관을 통하여 느끼는 감정 전체가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참된 제물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원리를 통하여 배운 저희들이기 때문에 지난날도 그러했고, 현실도 그렇고, 미래도 그렇게 바쳐 드릴 수 있는 길을 저희들은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자기 혼자서도 슬픔을 깨달아 외로운 심정을 가지고 아버지를 위로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는 아들딸, 자신의 슬픔이 있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슬픔이 있음을 알고 자기의 슬픔을 감추며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자녀들이 있다면, 이는 하늘의 것으로 남아질 수 있는 자녀들이요, 아버지의 복을 가지고 천추만대에 아버지의 인연을 뿌리 깊게 뻗어나가게 할 수 있는 개인들인 것을 깨달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이들이 여기에 무엇을 위해 나왔사옵니까? 지나가는 세월과 더불어 한때의 인연을 맺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옵니다. 영원한 때를 세우고 영원한 인연을 세우기 위해 나왔사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삼고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이 놀라운 아버지의 사랑은 온 역사의 기쁨일 것이요, 온 시대의 기쁨일 것입니다. 또한 거기서부터 미래의 새로운 출발이 벌어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인간은 아버지의 사랑을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에 사랑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사옵니다. 사랑을 위해 태어났고 사랑으로 아버지를 모셔 드려야 하며, 주체이신 아버지 앞에 상대로서 서로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무한한 가치 때문에 여기에 나온 당신의 아들딸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와 상관없는 만남은 쓸데없는 것이옵니다. 매일 습관처럼 출석하는 것은 아버지 앞에 보탬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옷자락을 붙들고 아버지의 목을 안고 간절한 마음으로 흐느끼면서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한때를 맞게 해 달라고 절규하고 마음속에 사무쳐 들어오는 아버지의 생명의 맥박을 간직할 수 있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 찾아온 무리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사랑이 저희의 깊은 마음속에서 은은히 흘러나와 심정과 심정을 이을 수 있고, 당신의 마음 바탕에 흐르는 그 피의 맥박이 저희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시옵소서. 본질적인 사랑의 맥박에 저희의 온 피를 사무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용기와 더불어 분노심을 가지고 싸우게 하여 주시고, 아버지의 원한의 맥박이 나에게 뻗쳐 나와 생애의 순간순간을 넘어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아버지, 은은한 가운데 자신을 돌이키게 하여 주옵고 인연맺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존귀하신 당신 앞에, 무한하신 사랑의 주체 앞에, 무한한 생명의 원천이신 당신 앞에 부족한 모습들 가운데 연약한 모습이 있사옵니까? 있다면 그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잊어버릴 만큼 전체 앞에 아버지의 인식을 표면화시키는 자리에서 쓰러지면서 아버지를 고대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오늘날 통일교회의 갈 길을 지켜 보아 주시옵소서. 어디로 가야 하옵니까? 후퇴해야 하는 가운데에서 서러움의 눈물을 지으며 아버지 앞에 구해 달라고 소리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은 무한한 축복을 준비해 놓고 이 땅에 오는 아들을 맞아 주고 싶고 품어 주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이러한 아버지를 만나 가지고 생애를 마치고 아버지 앞으로 가야 할 것이 저희의 필연적인 인생길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 그 길이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한 자리에 저희들을 불러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저희들을 참석시키기 위해서는 수만 배의 수난의 길이 있더라도 저희들을 몰아쳐 주시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이 땅 위에 뿌리 박아 그것을 중심삼고 하나의 사랑의 나무가 되고 사랑의 줄기가 되고 사랑의 가지가 되고 사랑의 꽃이 된 후 사랑의 결실을 맺어 천년 원한을 풀어야 할 자가 저희들임을 알았사옵니다. 그럴 수 있는 실체로서 생긴 모양이 어떻든간에 아버지의 마음을 우려내어 아버지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있어야 된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저희들의 골수에 사무치게 느낄 줄 아는 사랑의 아들딸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사회환경을 바라보면서 바라볼수록 원한의 함성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세계의 흐름을 책임지고 아버지의 슬픔을 가누어 드릴 수 있는 아들딸이 없는 것을 생각해볼, 저희들은 고독함을 느끼옵니다. 저희들이 고독함을 느낄 적마다 아버지의 고독함은 얼마나 크겠느냐고 하면서 자기의 고독을 잃어버리고 아버지의 고독을 위로하고, 자기의 일신을 전체를 위해 희생하며 아버지를 위로하는 제물이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자들이 다른 곳에는 없을지라도 통일교단에는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민족의 운명을 가려 가야 할 생사의 판결이 저희들의 두 어깨에 걸려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와 같은 책임을 다짐하며 그 책임을 지고 사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하늘을 봐도 하늘은 오늘의 하늘을 원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민족을 봐도 오늘의 민족을 원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밥을 먹으며 사는 것도 오늘의 이 환경을 원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내일의 하늘땅을, 내일의 민족을, 내일의 새로운 생활환경을 고대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민족을 가지고 있다 해도 불쌍한 사람들이옵니다. 그런 자들은 가정을 가졌다 하더라도 외로운 자들이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땅 위의 잘못된 것들을 해소시키고 생활과 심중을 통해 아버지의 인연을 남기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거룩한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6월 7일이옵니다. 아버지, 이 달은 복되어야 하겠습니다. 근자에 주위에서 들러보고 주위로 번져 나가는 사연들을 보면, 통일교회가 문제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내용을 바라볼 때에 오늘 이 민족 앞에 저희들이 무엇을 남겨 주어야 하겠사옵니까?

과거에는 슬픔과 괴로움과 저주의 대상이 되었던 통일교단이 근자에 와서는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것을 통하여 전해지는 모든 내용이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 주고 이 민족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일진대, 이 민족이 그것을 읽어 볼 적마다 놀라우신 아버지의 뜻이 통일교단과 같이한다는 것을 깨달아 자신들도 모르게 마음을 고취시킬 수 있는 하나의 자극제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겪어 나오신 환경을 거쳐야 하겠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에게 그러한 순간 순간을 허락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이 나라, 이 민족을 일깨워 줘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울부짖는 사자와 같은 악의 환경을 저희들이 맞이할 때에 갖추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한 초조함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아버지, 이제 민족자결이 필요한 때가 왔습니다. 삼천만 민중이 무릎과 무릎을 합하고 마음과 마음을 합하여 천성의 인연을 고대할 때는 왔사옵니다. 오늘 이 민족이 당신의 영광을 받드는 존전에서 제물이 되든가 제물을 드리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아시아에서 제일 불쌍한 민족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오늘 이 민족이 그러한 것 모두를 못 하기 때문에 저희들이 제물이 되어야 할 책임을 느끼게 되옵니다. 하오니 제사장은 아버지가 되어 주시옵소서.

이제 이사명을 감당해야 할 저희들은 정성들여 당신과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이 민족을 구하기 위한 필연적인 것임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이 민족의 앞날을 지키시옵고 아시아와 세계의 앞날을 지키시옵소서.

슬픔 가운데 나오신 아버지의 그 슬픔을 해결해 드려야 할 중차대한 사명이 가중되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것이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니 이 책임을 바라보는 저희의 마음이 얼마나 초조하겠사옵니까? 초조하지 못한 자신들은 거짓된 자이옵니다. 애달파하지 않고 몸부림치지 않는 자들은 거짓된 자이옵니다. 망운에 놓여 있는 민족을 바라보고 사망권내로 휩쓸려 가는 세계를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스스로 체휼하고 염려하며 아버지 앞에 제물이 되어 제단을 지킬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경지에서 자기의 생사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아바 아버지시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절규하였사옵니다. 그 간곡한 한마디, 그 처량하고 슬픈 예수님의 표정이 아버지의 마음을 거머쥐게 했으며, 새로운 결심을 다짐하는 소망의 세계를 그 마음과 인연지어지게 하였사옵니다. 그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생애 노정에서 민족 앞에 기억될 수 있는 조상들이 되어 수많은 민족으로 하여금 눈물로써 따라오게 할 수 있는 생애노정을 남겨야겠사옵니다. 이것이 이 땅 위에서 뜻을 아는 저희들이 가야 할 운명길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도와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해외에 나가서 외로운 제단을 붙들고 동녘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로써 기도하는 수많은 무리들이 있사옵니다. 이곳을 날마다 그리워하며 정성들이는 그들 앞에 천배 만배의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여기에 있는 저희들은 그들 앞에 빚을 지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 앞에 주체적 입장에서 주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을 위로해야 할 될 줄로 아옵니다.

남아진 날들을 저희와 더불어 기쁨으로 찬양하고 아버지의 승리를 안고 가는 영광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 뜻 앞에 맡기오며, 이 나라 이 민족이 아버지의 뜻과 하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1-303
[말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인간이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그 타락이 어떤 내용을 빚어냈으며, 그 인연이 우리와 어떠한 관계를 남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그 남겨진 자체는 하나의 개인으로부터 세계에까지 모두 걸리는 크나큰 문제를 형성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알고 있습니다. 즉, 타락권이 우리의 생활권내에, 우리의 세계 앞에 전개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31-304
하나님과 인간의 고충
이 타락한 세계를 거쳐 나가야 하는 우리들은 지극히 불쌍한 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권을 벗어나려는 입장에 설 때, 미래의 소망을 향해서 현실을 타개해 나가려는 입장에 서게 될 때 나타나는 모든 환경은 그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 앞에 편이 될 수 없고, 협조할 수 없고, 위로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길을 가야 할 인생 행로이기 때문에 이것을 보편적으로 고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슬픈 바다요, 외로운 바다요, 처량한 바다요, 무서운 바다입니다. 생사의 모든 판정을 결정하고도 남을 수 있는 위협과 절박감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고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해의 길을 가려는 한 사람이 있다 하고 그 사람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고해와 같은 환경에서 배를 타고 출항하는 그의 앞에는 폭풍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수많은 생명을 삼키던 노도가 가로막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에 일엽편주와 같은 형상을 지닌 한 개인의 생명체가 있다고 할 때, 그가 가는 길이 얼마나 고독하고 얼마나 처량하고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길을 알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 일을 천번 만번 말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그 일을 말려 끝이 날 일이냐? 말릴래야 말릴 수도 없는 입장에 선 것이 타락한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 길을 아는 사람의 배후에는 그러한 길을 떠나려 하는 사람에게 어서가라고 그가 가는 길을 축복하기 전에 염려의 마음과 걱정의 마음과 지극히 안타까운 마음이 깃들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 타락된 이 세계, 칠흑같이 어두운 암흑 가운데 사로잡힌 이 천지, 방향도 없고 갈 표준도 없는 인류의 행로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인간이 어떻게 가야 된다는 것을 알지만 가르쳐 줄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지금까지 이 둘 사이에는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함과 서러움과 슬픔과 고충이 깃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고충이 얼마나 컸을 것이냐? 여러분의 생애를 다 지내고도 느낄래야 느낄 수 없는, 여러분의 고충의 한계선 이상의 고충이 있었을 것입니다. 고통과 억울함과 공포가 있었다면 그것 또한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공포와 억울함과 슬픔은 아무 근거도 없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근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주체가 누구냐? 그것은 하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 인간의 부모로서 인간에게 방향을 제시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서 방향을 제시하며 명령하게 될 때, 하나님은 소망을 가지고 우리가 승리할 줄 알고, 기필코 갈 줄 알고 우리에게 명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이 되었느냐? 이것을 생각해 볼 때, 복귀섭리도상에서 뜻을 알고 따라나온 수많은 의인들은 출발과 더불어 실패의 인연을 거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더 고통을 느꼈으며, 얼마나 더 외로움을 느꼈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우리들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가라고 명령했는데 그 사람이 그 길을 못 갔을 때에는 세 사람을 동원해야 하고, 그 세 사람마저 못 갈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운명입니다. 한번 하려고 했던 것을 실패하게 되면 또 해야 되고 그래도 실패하면 또다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명령은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하늘이 또 명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따라가는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거쳐 가면 갈수록, 때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역사시대의 수많은 선지들 앞에 많이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절대적인 위치에서 절대를 향하여 명령할 수 있는 때는 한 번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도 절대적이기 때문에 재차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령을 인간이 실천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루어야 합니다. 또, 그것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남아지는 것이지 인간의 것으로 남아질 수 없기에 하나님은 인간과 상관하기 위해서 또다시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이 다리를 놓기 위해 하나님은 개척자의 행로를 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1-306
사망의 물결을 극복하는 문제와 기도
한 사람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그 한 사람으로서 사명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절대적으로 책임지어진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느 한때 한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은 묵묵히 천번이고 만번이고 거듭해 역사를 끌고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역사시대의 어려운 환경, 공포의 환경을 타파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이 있었느냐? 그러한 참다운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참은 둘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참을 위해 산다고 하였고 참을 위한다고 하였지만, 그들이 위하는 것이 참이 못 되었고 그리워한 것이 참이 못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역사를 남기고 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고독한 항해를 떠나는 일엽편주와 같은 입장입니다. 그러기에 각자의 환경에 따라 노도도 만날 것이고, 폭풍도 만날 것입니다. 그런 환경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신념이 서 있느냐? 어떤 항구를 향하여 간다 하는 목적관이 뚜렸하냐? 그 환경에 들어갈 수 있다는 신념, 다시 말하면 몰아치는 모든 슬픔의 여건들, 모든 사망의 여건들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과 신념을 갖고 있느냐?

그러기에, 나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 다가올 것이냐? 또 내가 그 위협을 제거하고 일어설 수 있는 하나의 모습으로서 이것을 극복하고 돌파하고도 남을 수 있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찬양할 수 있는 그 모습을 얼마나 그리워해 봤느냐 하는 것이 문제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한 번 믿었으면 그 누가 간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신앙을 가져라. 그리고 한 번 결심하고 한 번 말한 것은 절대적으로 실천하라.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가는 신앙세계가 인류 앞에 제시했던 내용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절대적인 신앙과 절대적인 실천으로서만이 이것을 극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일 가는 과정에서 절망하게 되면 목적의 세계, 소망의 때를 맞지 못할 것입니다. 다가오는 환경을 극복하지 않으면 소망의 한때를 맞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에 도달하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절대적이 신앙과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사망의 물결이 휘몰아친다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천하는 데는 앞을 바라보면서 여유 있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최후의 순간을 맞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촌각 중의 촌각을 다투는 자리에서 생명을 걸고 나서는 모범적인 실천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어려운 고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것이로되 그렇지 못하면 가능성마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염려의 역사노정을 우리 생애에 남기고 있음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여러분은 하나님이 틀림없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또한 필요한 것이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서의 기도는 습관적으로 경을 읽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판정짓고 판가리하기 위한 기도인 것입니다. 내 생명의 맥박이 연장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지을 수 있는 해결의 요점으로 제시하는 것이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순간을 걸어 놓고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담판 기도를 해보았느냐 하는 것이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각자가 남겨야 할 중대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31-308
영원한 생명의 발판이 되는 것
이 땅 위에 왔다가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는 최후의 자리에서 과거를 뉘우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과거의 모든 사실들이 영상으로 지나갈 것입니다.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 것입니다.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생명체를 가지고 지금까지 인연된 환경과 남겨 놓은 사연 등, 지난날의 모든 것이 일생의 최후의 순간에 자기의 마음에 영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참이 있었다, 내 생명보다도 귀한 그 무엇을 남겼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비록 이 땅에 왔다가 가더라도 보람있는 한때를 남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왔다 가는 이 인생 행로가 행인과 같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었다’ 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모든 과거의 사연을 회상해 볼 때, 그 모든 사연이 머리를 흔들며 회상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가졌으면 그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과거를 회상하면 회상할수록 자기 얼굴에 환희가 넘치며 자기의 모든 문제가 이상에 잠길 수 있다면 죽음의 공포도 그에게는 위로의 한 장면으로 장식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이 공포의 순간이 아니고 다른 그 무엇을 남겼다면 그의 과거도 죽지 않은 것이요, 현실도 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과거를 지닌 사람은 반드시 민족이 따라올 수 있는 인연을 가진 사람이요, 세계 만민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는 인연을 남긴 사람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떠한 사연일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어떠한 민족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비참하고 비정한 때가 있을 때 그 문제를 자기가 책임지고 해결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거기에 부딪친 때가 있었다면 그것은 그의 과거지사에서 잊을 수 없는 한때일 것입니다. 생애노정에서 자기를 위해 죽음의 자리까지 가는 것보다 형제면 형제, 친족이면 친족, 남이면 남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서 그들을 구했다면, 그들을 구하기 위해 부딪친 때가 있었다면 그러한 사실들이 최후의 운명의 자리에서 그의 마음 선상에 영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를 중심삼은 행복한 때가 있었고, 수많은 군중으로부터 환영받고 자기가 영광스럽게 찬양받는 거룩한 때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순간에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하였느냐, 참되었느냐, 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참과 선은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남에게서 결과를 맺게 하든가, 남에 의해서 시작되어 나에게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야만 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리에서 천지의 모든 존재는 주고 받는 인연을 거쳐야 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생활이 주는 생활이었으면 죽음길에도 공포가 없을 것입니다.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었고 남을 위해 희생했으며, 참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눈물도 남으로 말미암아 흘렸고, 내 생명도 남으로 말미암아 투입했고, 내 소원도 남으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내 맥박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생명력을 끌어모아 남을 위해서 투입했다고 할진대는 그 과거는 빛날 수 있는 과거일 것입니다.

그런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민족을 생각하게 될 때, 소망의 민족은 이런 민족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그가 그런 과거를 그리워하게 될 때, 남을 위해 희생하며 소망하는 본연의 선은 이래야 된다는 결정을 지을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내가 그것을 위하여 싸워 온 과거가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럴 수 있는 미래가 있어야 된다’는 내용을 지니고 하나님 앞에 간다고 할 때, 그 내용은 자기의 영원한 생명의 발판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성현이 가는 길과 범인(凡人)이 가는 길은 다릅니다. 성현은 역사와 더불어 살려고 했고, 세계와 더불어 살려고 했고, 미래와 더불어 살려고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범인은 자기로 말미암아 살려고 했고, 세계도 자기로 말미암아 있게 하려던 사람입니다. 범인은 과거를 생각하면 흑암이지만, 성인은 과거를 생각하면 광명입니다. 그 광명은 무엇이냐? 그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소망의 민족을 그려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의 천국이 있다면 그 천국은 그들로 말미암아 출발을 봐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입니다.

여러분은 험상스런 환경을 갖춘 이 타락권내에서 여러분 자신이 가는 모습을 도표로 그려 보게 될 때, 1년은 이렇게 가고 1년은 저렇게 갈 것이다, 혹은 10년은 이렇게 가고 10년은 저렇게 갈 것이다 하며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일생 행로를 계획하면서 높고 낮음을 예측할 것입니다. 그 높고 낮음이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사람은 최후의 운명을 맞이하게 될 때, 자기를 위해 살면서 남을 희생시킨 그 모든 것이 자기를 얽어맬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이란 자아를 속박하는 것이 아닙니까? 양심의 가책을 받는 생애를 반평생 이상 남겼으면 그것이 자기를 절반 이상 꽁꽁 얽어맬 것입니다. 이러한 생애를 남겼다면 최후의 운명길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자리에 설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생애의 도표가 선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그려져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내려갔다고 하더라도 슬픔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이와 같은 인생행로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인륜 도덕도 그런 길을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1-310
이 모순된 환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남을 위해서 가는 길이 쉬운 길이냐? 쉽지 않습니다. 쉬운 길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해 가는 길도 쉽지 않거늘 하물며 남을 위해 가는 길이 쉽겠습니까? 이건 더더욱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타락인간이 그냥 그대로 간다면, 타락세계에서 그 환경을 벗어 나지 못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자기를 위해 가는 생활을 해서는 타락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타락한 환경권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살다가는 그냥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몸부림을 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혁명을 해야 됩니다. 투쟁을 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갖은 여건들이 개재될 것입니다. 그 일들은 고개를 끄떡이며 환영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닙니다. 이 길은 손을 설레설레 흔들고 몸을 비틀면서 가야 할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은 고통의 길이요, 슬픔의 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처한 타락권내의 환경은 모순된 환경입니다. 모순된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그 모순된 환경을 타개해야 합니다. 그 환경에 돌입하라는 진격 명령을 받을 수 있는 돌격대의 사명과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런 명령을 받아 움직여야 할 우리들의 인생행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인간들은 자기를 위주로 하는 생활에서 떠나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현의 도리는 자기 개인의 생활과 부모와 처자를 위한 생활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떠나서 사는 생활, 자기의 종족을 위해 사는 생활에서 떠나 사는 생활, 자기의 국가를 위해 사는 생활에서 떠나 사는 생활, 더 나아가서는 타락된 이 세계를 떠나 사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면 떠나서는 어디에 가서 살 것이냐? 떠나 가지고는 살 곳이 없습니다. 이 세계 외에는 살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선한 세계를 이루어 선한 세계의 주인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부르고 참을 고대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겠습니다. 그러려면 이 세상과 타협하고 거래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세상의 경계선을 돌파해 가지고 넘어선 경지에서부터 그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역사시대를 두고 볼 때, 어느 한때 그 경계선을 돌파한 때가 있었으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픈 조건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아직까지도 밤중이요, 자정을 넘기지 못한 권내에서 미명을 바라보고 나오고 있기 때문에 비애와 슬픔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 이러한 역사시대라는 것을 깨달아야겠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헤아려 볼 때, 인간들은 가야 할 방향을 몰랐습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방향을 알지 못한 채 그 환경권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스스로 몸부림치는 것이 개인에게서 그쳐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미쳐지고 세계에까지 미쳐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의 역사를 종결지어야 할 운명을 남기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갈림길에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갈림길을 타파하고 넘어서 고귀한 생명을 흠모하기를 원하는 내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이 욕망은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것이지만 이 욕망을 이루려면 힘이 들기 때문에 인생을 고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뜻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생명을 넘나들면서 새로운 인연을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생활이요,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이니, 종교니, 절대자니, 하나님이니 하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요인이 되어 거기서부터 문화가 형성되었고 전통적 기원이 마련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잘 아는 바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될 때, 여러분은 역사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인간이 못 됐습니다. 역사시대를 붙들고 뒤넘이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힘을 의지해서라도 이것을 돌파하고 초월해야 됩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넘어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인들이 가는 도의 길입니다. 종교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한다면 그 종교는 최후의 운명과 더불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짓고 가야 할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1-312
자기 초월의 경지를 체험해야
그러면 여러분은 개인을 초월했느냐? 가정을 초월했느냐? 사회를 초월했느냐? 나라를 초월했느냐? 세계를 초월했느냐? 이러한 것을 한 순간에 몰아서 느끼고 자극받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심각한 자입니다.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심각하리만큼 고독해집니다. 그 자리는 누구나 동정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누구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누구나 같이 운행해 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처럼 나만이 살아서 결단하고 해결지어야 할 사망의 구렁텅이가 여러분 앞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이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해방될 수 있는 한 순간을 어떻게 생활권내에서 모색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이 방법을 찾기 위하여 연구하며 찾아 나서는 길이 도의 길인 것입니다. 이 도의 길을 들어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길을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그는 얼마나 심각할 것이냐? 아무렇게나 가고 오는 걸음이 아닐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가리의 고개를 넘는 걸음일 것입니다. 그의 실체는 이러한 절박한 심정으로 고개를 넘기 위한 결의에 찬 마음 자세를 가지고 행동하는 실체일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그런 고개를 넘어서는 그 순간은 생명의 맥박이 고도로 움직이는 순감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생애의 비참함을 알고 생애의 모든 사연과 고통의 짐을 다 버려야 합니다. 그 순간은 새로운 절규를 들을 수 있는 순간일 것이며, 그 자리는 몸부림치는 내정적인 사무침이 있어야 되는 자리입니다. 또한 그 사무침과 더불어 `하나님이시여! 아버지이시여!’ 하는 부르짖음이 여러분의 생명선을 넘고 새로운 세계에 가서 맞부딪치는 경각에 다다랐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심정을 가지고 아버지를 불러 보았습니까?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면 참된 종교의 문이 팔방으로 열려졌다 하더라도 그 문을 통할 수 없습니다. 그 문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야 열려지기 때문에 그 문을 통해 가려면 그 이상의 절박한 생명의 심정을 가지고야만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에서는 희생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깊다면 무한히 깊은 곳을 찾아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요한 밤에, 모든 세상이다 없어진 듯한 그런 고요한 순간에 자기 맥박 소리만이 들리는 것을 느끼게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맥박이 자기의 온 세포의 생명력을 움직이고 격려하는 것을 느끼는 경지에 도달해야 됩니다. 나아가서는 그 맥박까지 잊어버리고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무친 심정으로 쏘아진 포탄같이 한 표적을 향하여 무한히 달려가 자기의 마음에 생명의 인연을 결속시킬 수 있는 경지, 떨어지면 무한히 떨어지고 끌려가면 한없이 끌려가서 타락한 세계와 부딪쳐 그 세계를 산산조각으로 부수어 버릴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지 않고는 이 사망권을 격파시키고 초월할수 있는 승리의 새로운 세계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경지는 복잡다단하고 험난한 오늘날의 사회환경과 생활감정에 찌들은 이 육적 자극을 통하는 권내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깊다면 무한히 깊고 고요하다면 무한히 고요한 경지에서 간절한 심정으로 무한한 생명력을 갖고 하나의 대상을 찾아 들어가야만 그러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무한히 가다가 그것이 없다고 느껴지게 되면 천지에 어떠한 것보다도 큰 가치의 존재에 부딪쳐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없어지더라도 있다고 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지게 될 때, 지금까지 살아오던 내가 아닌 다른 나로서 그 실체가 거기에서 소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는 오늘날의 이 복잡다단하고 험악한 사회 환경에서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밀실에 들어가서 하라는 거예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그러한 체험을 한 사람은 기도의 가치를 알 것입니다.

31-314
예수님의 고통의 3일노정
그 누가 타락하라고 해도 타락할 수 없는 길, 아니 갈래야 아니갈 수 없는 길, 당연히 흠모할 수 밖에 없는 길, 그 길만이 내 생명의 원천이요, 그 길만이 내 생명의 주체입니다. 이러한 것을 스스로 갖고 싶고 인연맺고 싶어하고 그런 생활을 그리워하는 사람만이 오늘날 사망권을 넘어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는 기도의 순간은 평상시와 같은 순간이 아니었습니다. 눈에는 눈물이 흘렀을 것이며, 온 몸에는 골수에서 솟아나는 땀이 흘렀을 것입니다. 힘을 주더라도 죽느냐 사느냐 하는 이상의 힘을 주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앞에서의 짧은 몇 마디의 말이었지만 그 말은 뼛골에서 우러나온 최후의 음성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말하는 그 자리는 보통 자리가 아닙니다. 정성을 다 들이면서 아버지와의 인연을 찾아온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냐고 간곡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 배후에 숨겨진 실낱 같은 소망의 한 빛이 바로 마음에서 솟아난 울부짖음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그런 경지를 필히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거기에서 잡아지는 것은 없는 것 같지만 절대로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한번 잡은 것은 천년 만년 놓고 싶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잡은 것은 무엇이 될 것이냐? 그것은 아버지의 어깨가 될 수도 있는 것이요, 아버지의 팔굽이 될 수도 있는 것이요, 아버지와 인연된 어떠한 옷자락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잡고 잡아당길 때는 내가 끌려가지 않으면 그가 끌려올 것이니 하나님과 더불어 뒤넘이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런 시간이 개인들 앞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도의 길을 간 사람들이 입산수도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먹고 놀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정성을 들이기 위해서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성은 얼마만큼 들이느냐? 그 정성의 한계점이 어디냐? 그것은 먼저 무아지경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무아경지는 정상적인 자리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일 밑의 골짜기에 떨어진 입장에 서 가지고 어려운 세상의 짐을 졌다면 누구보다도 큰 짐을 졌고 불쌍하다면 최고로 불쌍한 자리에서, 최고의 절박감을 느끼는 그러한 자리에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탐지해 나가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뒤 3일 동안 고통을 당했다는 사실은 무슨 뜻이냐? 하늘땅이 사망권에 남아 있고 지옥도 사망권의 인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늘땅을 주관하기 위해서는 이 사망권을 밑으로도 넘고 위로도 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과 같은 맨 밑바닥의 경지에 가서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넘어 가지고 생명의 인연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소망의 길을 가야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지옥과 같은 그 환경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소망의 천국을 향하여 재출발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으며, 지상에서도 버림받고 몰리고 죽음의 길을 갔지만 소망의 길을 남겨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3일노정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3일 동안 예수님은 지옥을 구경하러 간 것이 아닙니다. 지옥을 모르는 그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판결을 내려 가지고 사망세계에서 생명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터 놓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망의 지옥 세계인 이 지상에 승리의 기반을 닦아 놓았으며 천국에 갈 수 있는 기원을 이루어 놓았던 것입니다.

31-316
기도의 효력
예수님 혼자 3일 동안 무엇을 했느냐? 뼛골에 사무친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자리에 둘이 갈 수 있느냐? 아닙니다. 그 자리는 둘이 갈 수 없는 자리입니다. 절대의 상대는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절대자 앞에 절대의 상대는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절대적인 경지에서 자리를 잡고 우리를 부르고 있는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 분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서 `아버지!’ 하고 부르면 천년사를 넘나든 아버지를 배우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바로 아버지의 수고와 괴로움을 배우지 않고도 일시에 체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이 바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버지의 심정을 내 마음에 몽땅 움켜쥘 수 있는 순간이 아니겠느냐?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마음이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인연이 맺어지는 순간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잃었던 아버지를 찾은 그 마음, 그 태도가 최후의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류에 대해서 구원의 역사를 해 나온 섭리의 최고의 목적이 무엇이냐? 아버지로서 아들을 찾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아들 아무개야!’ 할 수 있는 그 자리, 그것만이 최후의 목표였던 것이요, 그것만이 최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기도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자리로 나가는 데 있어서는 절대세계와 사망세계가 교차되는 점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냥 그런 경지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그 교차점에 가 가지고 거기에서부터 직행할 수 있는 하나의 길과 접선해야 하며 거기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고 하나님의 종적인 슬픈 심정이 있으면 그것을 풀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부활의 환희를 느낄 수 있고 해방의 한 순간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이 천국의 상속자가 될 수 있는 것이요, 천국에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공포에 휩싸인 사망권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사망권 안에서 노력하고, 뒤로 떨어지고, 내가 이러고 저러고 하고 혹은 더 깊은 환경의 골짜기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과의 인연의 줄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 줄을 붙들어 줄 수 있는 주인이 있고, 나를 위해 주는 사람이 있고 또 나를 붙들고 어려움을 극복해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인연될 줄이라도 가지고 이 땅 위에서 살고 있느냐? 이 땅 위의 환경을 초월하여 살고 있느냐?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보면 여러분들은 모두 껄렁패들입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와 정성입니다. 내가 스스로 부활된 자리에 섰느냐? 서지 못했다면 간절히 구할 수 있는 자리에라도 섰느냐? 신앙을 하면서 환경을 책임질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느냐?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생사의 기준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능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내가 넓은 탑을, 천길 높은 탑을 쌓는다면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넓고 높은 탑을 쌓으려면 얼마나 바쁘겠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50년이면 50년 동안에 다 쌓아 올려야 되겠다고 다짐했다면 쉴 새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주위로부터 공포가 들이닥칠 것입니다. 자연의 공포, 환경의 공포가 있을 것입니다. 이 타락한 세계에서는 정성의 탑을 쌓기만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쌓아 놓으면 사탄은 번번이 그것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를 쌓으면 둘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과 싸우면서 쌓아야 합니다. 그러한 운명 가운데에 있는 우리들이 쉴 새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사탄이 쉬지 않고 대적해 나오는 중간 입장에서, 사탄과 대결하고 하나님을 받들어 모시면서 이것을 쌓아 올려야 할 사명을 짊어진 우리들인데 언제 쉴 새가 있겠어요? 일생을 다 마칠 때까지 한 순간도 마음 놓고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공포의 바다를 건너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놔서는 안 됩니다.

31-318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나님을 위해 죽는 길이 있다면 죽어도 행복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죽는 길이 있다면 내 생명을 끊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당하면서 느꼈던 안팎의 시련을 뒤돌아보게 될 때,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는 가치있는 자가 된다면 죽음길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은 현재 그러한 입장에 있습니까? 천국길은 그런 길로서 쭉 연결되어 있어요. 알겠어요? 6천년 역사를 죽 거슬러 올라가 그런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더불어 생활해야 합니다. 절대와 통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자리는 단 하나입니다. 사탄세계와 하늘세계가 하나되려면 먼저 교차되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하늘세계를 넘어가려면 현실의 인연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완성하면 기도가 필요없다고들 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패들 이거 참, 틀려 먹었다는 거예요. 말이야 잘하지, 완성하면 기도가 필요없다고. 사실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 완성의 기준은 국가를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예수님이 소원을 성취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유대교와 합해 가지고 세계의 중심국가로 등장하게 하려 했습니다. 그런 자리가 완성의 자리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개인완성을 하면 개인으로는 설 수가 있지만 가정의 사탄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가정이 완성하면 종족 사탄이 남아 있고, 종족 완성을 이루면 민족 사탄이 남아 있고, 민족 완성을 이루면 국가적인 사탄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도어 있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오자마자 다 완성이예요? 완성하려면 절실히 기도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기도하는 대로 해야 합니다.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선생님은 담판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얼마나 절박한 때인지 모를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첨단에서 책임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그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러한 때인 것을 절감했다면 그 다음엔 멍청하게 세월을 보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담판기도를 해야 합니다. 잠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나무가 잘 자라려면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 뿌리가 깊어지려면 아무도 모르는 괴로움을 겪어야 되고 수고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조금만 좋아도 자랑하려고 합니다. 또, 몰라준다고 이러고 저러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뿌리가 못 됩니다. 잎밖에 못됩니다. 잎은 조금만 돋아나면 드러나게 되지만 뿌리는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깊을수록 안 드러납니다. 깊은 뿌리를 간직해야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뿌리는 깊습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를 수십년 믿어도 아직 선생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너무 모른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깊은 뿌리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 줄기에 해당되겠습니까? 통일교회에 들어와 선생님을 만나서 순수한 마음을 갖고 이런 길을 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나 잘 하는 사람들을 대해 부끄러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똑바로 가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옆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가면 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 망합니다.

자기가 이만큼 왔더라도 떨어져 나가면 그만입니다.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는 큰 고통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보다 3배 이상의 충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책망하시는 그 경지를 지나서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된 후에 자기의 잘못을 회상할래야 회상할 수 없는 자리까지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다시 들어온 사람들은 대개 고충이 참 많습니다. 거꾸로 넘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충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가만 있는데도 자기 자신이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자기의 마음속에서 자꾸 들락날락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31-320
탕감과 부활
도의 길에 들어서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죽음길을 가야 합니다. 죽어서 할 고생을 살아서 탕감하려니 그런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어서 억천만년 고생할 것을 이 땅 위에서 생전에 축소시켜 가지고 탕감해 버리자는 겁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이처럼 도의 길은 영원히 수난의 노정을 가야 하는 것을 이 땅 위에서 수난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탕감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탕감이라는 말 알지요? 탕감에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조건, 그 조건이 없으면 여러분이 구원받겠어요? 여러분은 조건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니 큰소리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랑하긴 무엇을 자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축복도 조건축복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의 길을 넘어가야 됩니다. 여기는 사망세계이기 때문에 이 사망권을 전부 끊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것은 전부 사탄과 가까운 것입니다. 전부 반대입니다.

이제까지는 통일교회가 그저 나쁘다고만 소문나더니 요전에는 신문에 통일교회가 나쁘지 않다는 기사가 났지요?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돈도 많고 외교수단도 좋다고 합니다. 또, 머리가 좋기 때문에 쓱싹해 가지고 통일교회를 위해 돈을 무진장 많이 썼을 것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점심 사 먹을 돈도 없는데 쓰긴 어디다 쓰겠습니까?

이 자리에 올 때까지 수난의 고개가 있었습니다. 그 고개의 십자가를 누가 졌느냐? 이 십자가를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짊어지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짊어졌을 것입니다. 미래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크게 회개해야 할 순간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크게 청산지어야 할 순간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효를 결정하고 충을 결정하여 선포할 순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지극히 초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내 사랑하는 아들의 권위와 그 수고의 길을 너는 아느냐?’라고 물으면서 천세 만세의 영광과 함께 축복을 내 아들에게 준다 할 수 있는 조건을 지녀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내용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면 세계가 여러분을 잡아당길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어디에 처해 있습니까?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디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밤이나 낮이나, 언제 어디 가든 선생님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이 머리 가지고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이 가는 방향에 보조를 맞추면서 모든 생명을 다 투입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이제는 삼합(하나님, 선생님, 여러분)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보조를 맞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사의 결정적 내용이 달려 있기에 삼자가 일치되는 점에서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점에 생명의 부활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점이 아버지와 선생님이 하나되고 선생님과 여러분이 하나되어 일치될 수 있는 연결점입니다. 거기서 일심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뜻과 일치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뜻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모르니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선생님이 나타나서 가르쳐 줍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뜻과 일치된 생활을 하려면 옛날과는 달라야 합니다. 옛날에는 종적으로 내려온 역사이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책임해야 했습니다. 그 명령을 받아 책임을 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오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옛날에는 종적 역사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그 일을 이루었다 해도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내려오실 수 없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올라가서 바쳐 드려야 했습니다. 바쳐 드리고서야 그 일을 책임질 사람이 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교만하지 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31-322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려면
자기의 일을 위해서 자신의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왜 망하느냐? 하나님은 그런 일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일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올라가 가지고 그 일과 하나되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새로운 시대에 보냄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종적 역사시대에 하던 하나님의 섭리의 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모셔 나오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바쳐야 됩니다. 복귀역사는 제물을 바치는 역사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전도상을 받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자신으로 돌아와 나는 얼마나 바칠 수 있느냐? 나라를 바치고, 세계를 바쳐야 합니다. 그 바치는 길을 책임지고 달려가는 사람은 세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100을 명령했다고 실지 하나님이 나에게 그 100만을 원할 것이냐?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의 120퍼센트를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에서 조금이라도 더 바쳐 드리면 `오냐’ 하고 칭찬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치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명령을 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단 하나의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종의 자식과 같은 입장에 있으니 칭찬받을 수 있어요? 하나님께 100이라는 명령을 받으면 여러분은 그 이상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개인에게 있어서는 영광이요,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하라는 대로 백만 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여러분, 기록이라는 것이 있지요? 올림픽 기록이니 무엇이니 하는 기록이 있지요? 그 기록은 깰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기에 우리가 백만큼만 한다면 사탄은 `하나님, 그것은 아무나 다 할 수 있습니다. 백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참소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노력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00이상으로 노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내세워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100퍼센트를, 어떤 사람은 90퍼센트, 어떤 사람은 80퍼센트, 어떤 사람은 20퍼센트, 어떤 사람은 10퍼센트, 어떤 사람은 0, 어떤 사람은 마이너스 10퍼센트, 어떤 사람은 마이너스 20퍼센트, 어떤 사람은 마이너스 100퍼센트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됐을 것 아니예요? 이처럼 책임한 내용이 다 다를 것입니다. 이것(100퍼센트)은 천국의 높은 자리요, 이것(마이너스 100퍼센트)은 지옥의 높은 자리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통일교인들에게 무엇을 하자고 했을 때에 가만히 보면, 그렇게 못난 사람들도 없는 것 같아요. 여러분이 그 일을 100퍼센트 하지 못하니 그 중에서 선생님이 제일 못났습니다. 내가 명령을 하였으니 결국은 내가 제일 못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자고 할 때는 누구 때문에 하자고 하겠어요? 임자들 때문에 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알아요? 여러분이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손해보느냐? 아닙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하자고 하는 것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온 여러분은 상대적인 환경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이 남긴 누더기 보따리를 팔아먹기 위해 온 것입니다. 가치평가를 받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조상이 선한 조상이면 선한 조상답게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안 하면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그 조상의 자리를 전부다 내가 거둔다는 것입니다. 독차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손해볼 것이 없습니다. 다 거둔다는 것입니다.

곧 추수의 계절인 가을이 오니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겁니다.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열매가 되지 못할 것 같으면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죽을 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무슨 특권으로? 수많은 조상의 특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도인들이 나한테 보따리를 많이 빼앗겼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선생님이 도적이죠? 도적 같은 놈이다 그말이에요. 도적 중에 제일 큰 도적입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 됐으면 이미 망했을 것입니다. 계약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종적인 시대에서는 언제든지 어디든지 왔다갔다할 수 있어요. 세계의 어디라도 갈 수 있어요. 그렇지요? 그러나 이 시대가 그냥 그대로 넘어 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때에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이때에는 후퇴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는 길에는 후퇴가 없는 것입니다.

31-324
하나님의 친자녀가 되라
사람들 중에는 통일교회 교인이 60년대보다 적어졌지 않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져도 좋다는 것입니다. 나무의 잎사귀는 가을이 되면 여름보다 더 적어집니다. 그렇지요? 많아져요, 적어져요? 바람이 불면 잎이 떨어져 나뭇가지는 벌거숭이가 됩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나만 남으면 내가 발벗고 나설 것입니다. 그러는 날에는 지금 임자들이 수고한 몇십 배로 거둬들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자신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옛날같이 심각한 자리에서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럴 자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미국이면 미국, 구라파면 구라파, 외국 어디를 가더라도 그러한 작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청중이 많더라도 내 손안에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방법을 내가 지니고 있습니다. 저 아프리카의 식인종이 사는 섬에 가더라도 절대로 잡혀 먹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그런 무엇이 있다는 겁니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사지에서도 영계의 협조를 받아 전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여러분은 원래 부자 관계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양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자의 관계이기 때문에 아들이 하는 것은 아버지가 하는 것이며, 아버지가 하는 것은 아들이 하는 것입니다. 같이 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것이 아들의 것이요, 아들의 것이 아버지의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무서운 것은 이러한 부자의 인연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이게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공짜로 입만 벌리고 받아먹으려고 그러지요? 하나님이 진짜 아버지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들딸이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진짜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안 되어야겠어요, 되어야겠어요? 아들딸은 누구를 닮느냐? 아버지 어머니를 닮습니다. 부모를 닮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와 함께 사느냐? 부모와 함께 삽니다.

여러분은 부모와 천리 만리 떨어져 있어도 부모를 닮아야 됩니다. 여러분, 닮았어요? 자식이 뛰는 모양이나 걸음걸이가 부모와 비슷하지요? 그렇지요? 부모와 똑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는 거예요. 눈을 깜박거리는 것도 그렇고, 웃는 소리도 그렇고, 몸을 봐도 그렇고, 밥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다 비슷합니다. 부모는 자기 닮은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세상에서 아무리 못생긴 추물이라도 딸이든 아들이든 자기처럼 생겼으면 그 자식을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회에서는 종이 주인하고 닮을 수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하자’고 할 때, `안 하겠다’고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안 하겠다면 그것은 사탄입니다. 하나님이 `하자’고 할 때 `예’ 하는 것 하고 `우’ 하는 것 하고 어떤 것이 더 좋겠어요? 눈만 껌벅껌벅한다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종도 있고, 양자도 있고, 아들딸도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있다고요? 종이 있고 다음에는 양자가 있고 다음에는 아들딸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귀되는 기준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편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입장에서도 종의 권이 있고, 양자권이 있으며 아들의 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종의 패가 있는 것입니다. 종이 양자에게 `못난이는 할 수 없어’라고 하는 것은 똥묻은 개가 재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경우입니다. 또, 양자가 아들에게 `아이구 저게 무슨 상속자야, 그 집안 망했다’라고 하는 것도 같은 경우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가자’라고 하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단숨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들이겠어요, 양자겠어요, 종이겠어요? 부모가 `가’ 하기도 전에 벌써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아들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어물쩍하다가 나중에 가는 사람은 양자라 볼 수 있습니다. `에이, 자기들이 뭐라고 먼저 가고 저 야단이야’ 하는 사람은 종입니다.

자, 여기 종 되기를 원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양자 되기 원하는 사람? 아들딸 되기를 다 원하지요? 그렇게 되려면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행동에 있어서나 모습에 있어서나 집안 살림을 하는 데에 있어서나 부모를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상속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닮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양자밖에 안 됩니다.

31-326
하나님이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람이 되라
내가 지금까지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하나님을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저를 고생시킵니까? 축복해 주신다고요?’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선생님하고 얼마나 약속을 많이 했겠어요? 얼마나 많이 했는 줄 알아요? 수십만 번 약속을 했습니다. `너는 요렇게 될 것이다’ 하고 말입니다. 그때에 내가 그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증거 자료를 갖다가 이것이 무엇이라고 하면서 약속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얼마나 많이 속았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을 속인 종자와 인연맺은 타락권내의 미스터 문이니 별 도리가 있겠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선생님을 염려했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믿지 못할 까봐 별의별 사람을 다 선생님 앞에 증거시켰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나오면서 이제까지 고문을 당하고 별의별 서러운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인간이 가야 할 길을 가는 사람, 즉 하나님이 바라는 사람,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지금까지 흘려 보지 못했던 새로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내 생애에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나왔습니다. 이제까지 흘려 보지 못한 새로운 눈물을 흘리고 죽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활철학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만한 심정을 가지고 죽었느냐? 선생님은 그 이상의 심정을 가짐으로써 하나님께서 `너는 누구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위해 죽은 사람이 있다면 아버지는 천년 만년 세월이 흐르더라도 그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죽더라도 그러한 심정과 내용을 갖고 그러한 자리에서 죽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매를 맞아 피를 토하며 죽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은 이보다 더 슬픈 눈물을 짓고 안타까와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하나님은 역사시대의 그 누구에게보다도 나를 통하여 애석한 사연을 남길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것을 필생의 소원으로 삼고 나왔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이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세계 만민 가운데 많다 하더라도 통일교회의 문선생만큼 되겠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나는 복귀노정을 다 알고 하나님에게 `당신이 가야 할길이 이 길이 아닙니까? 이것은 이렇게 되어야 될 것이 아닙니까?’ 하는 기도를 합니다. 시시하게 지나간 것에 대해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같이하실수 있는 이 길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십년, 아니 백년, 혹은 천년 후에 이루어져야 할 것을 이 시대에 어떻게 인연을 맺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 어떻게 그때를 위해서 피땀 흘리고, 그때를 위해서 어떻게 수고의 조건을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이 모색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나온 선생님인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자’ 하는 데에 반대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망하는지 안 망하는지 두고 보라는 겁니다.

자기의 욕심대로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참소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욕심장이의 정성에 지배받지 않습니다. 정의라는 것은 폭군의 칼날 앞에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길이 어디에 있느냐? 어떤 길이냐? 어디를 향해 가는 길이냐? 하나님을 따라가야 되는 길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런 길을 가게 하기 위해 수많은 작전을 해 나왔습니다. 마음은 하루만에 가고 싶지만 6천년이나 걸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에라도 갈 수 있는 길을 닦자는 것입니다. 6천년의 종적인 역사를 하루권내로, 한 시간권내로 좁혀 타락했다는 그 기준을 탕감시키려면 얼마나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 통일교회를 따라 나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 앞에 짐을 짊어진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고 저렇고 하며 별의별 비판을 합니다.

31-328
뜻을 대하는 사람이 취해야 할 자세
한 나라를 놓고 섭리하는 데 있어서도 비밀이 많습니다. 조그마한 가정에도 말 못할 비밀이 있습니다. 하물며 천지를 복귀하기 위한 노정에 비밀이 없겠습니까? 여러분 앞에 한마디도 털어 놓을 수 없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을 털어 놓으면 그 누구도 이 길을 가겠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한꺼번에 털어 놓지 못하는 하나님의 비밀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따라 나오면서 이렇고 저렇고 하며 말을 해 가지고 지금까지 선생님이 욕을 먹고 있습니다. 내가 잘못해서 욕먹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못해 가지고 내가 욕먹은 것입니다. 그저 여러분의 입 때문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뭐, 어떻고 어떻고…. 그것이 여러분의 입이에요. 가야 할 길이 천년의 사연을 담고 있는데, 이러고 저러고 별의별 얘기를 다하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제까지 핍박을 당해 왔던 것입니다. 누더기 보따리를 쓰고 놀음을 해 왔던 것입니다. 따른다는 사람들의 십자가까지 짊어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모아 이끌어 나오면서 복을 베풀어 주어야 하는 하나님은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 일을 책임진 자에게만 지워서 그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환경을 개척해 주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도적 같은 패들이 야단입니다. 전부다 망해야 됩니다. 망해야 될 패들이 많아요. 하나님은 인간 전부에게 알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책임을 지고 갈 수 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알고 가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배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압니까? 모르지요? 솔직이 말하면 전쟁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그것을 모를 것입니다. 온 세계가 전부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민주주의가 영원히 성립 안 됩니다. 원수가 있는 한 민주주의는 패합니다. 작전상 언제나 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나 월맹이 강력히 나갔다가 후퇴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무슨 짓이든 다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지금 지극히 잘못된 작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전쟁할 때 포를 쏜다고 예고하고 쏩니까? 전쟁에도 민주주의가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원수 앞에서도 민주주의가 있습니까? 원수의 칼날과 독재자 앞에도 민주주의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모든 비밀을 가르쳐 준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선생님을 따라 나가는 여러분은 선생님 앞에 방해자냐, 협조자냐? 지나치게 말하는 사람들은 방해자입니다. 수난을 직접 체험하지도 못한 입장에서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말하는 사람들은 심판받습니다. 그렇게 되면 생명을 내어 놓고 탕감해야 할 한때가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기누설(天機漏洩)이라는 말이 있지요? 첩보작전을 하는 중 정보가 누설되면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높은 분을 모시면 모실수록 그 앞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가려야 할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머리를 숙이라고 하고 조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뜻을 대한 여러분은 누구나 그래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할 때는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 기준을 통해서 천주의 인연을 가려 가지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 앞에서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언제나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철없는 말들을 막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입장에서 사망권을 귀결시켜 가지고 생명권으로 맞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면서 생명이요, 죽을 때까지도 생명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다 가야 합니다. 천주에서 나서 천주에서 살고 천주를 품에 안고 죽음을 맞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를 통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31-330
통일교인들이 세워야 할 신앙 기준
우리 통일교인들은 완성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선생님 자신도 아직까지 완성의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 완성의 자리에 서려면 나라를 완전히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나라를 어떻게 통일시키느냐를 생각하며 그때를 위해 하나님과 담판하면서 기도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물 속에 들어가지도 않고 뜻이 다 이루어져 간다고 생각하고 골수도 알지 못하면서 물가에서 놀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열심히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이 기성교인과 다른 것은 무엇이냐. 지금까지의 종적인 역사를 중심삼고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결사적인 기도를 해 나왔습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갈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그러기에 여러분이 조금만 노력하면, 일주일만 그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정성을 들이면 다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같이 선생님을 모시고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직접 지도받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어머니가 기도해서 그런 계시를 받는다면 그 어머니를 위주해서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식구가 어머니에게 기도 가운데서 받은 내용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그 소식이 제일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그 집안이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어머니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가정에 대한 것을 가르쳐 준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선생님을 대하게 되면 선생님이 가르쳐 준다는 겁니다. 기뻐서 그렇게 하면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라는 겁니다. 그것이 하루에 안 되면 3일, 3일에 안 되면 7일, 7일에 안 되면 3개월, 3개월에 안 되면 3년, 이렇게 넘어갑니다. 3년에도 안 되면 7년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원리적으로 그렇게 넘어가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자기들이 기도 가운데 있었던 것을 감정해서 불화가 오기 전에 이를 막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기쁜 일이건 슬픈 일이건 일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 다릅니다. `이럴 때에는 좋은 일이 생기더라. 이럴 때에는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 하고 다 아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틀림없이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좋은 길로 가는지 나쁜 길로 가는지 그것을 알아 가지고 갈 길을 가려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기도나 몽시 가운데서 선생님으로부터 지도를 직접 받아야 됩니다. 우리 식구들 가운데는 어디를 가더라도 그 자리에서 선생님의 지시를 직접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 때 이상으로 실감나는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을 직접 모시고 산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예수님 때보다 더한 일이 종종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일이 있기 때문에 세계가 통일교회와 하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망권을 지나가려면 결사적인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는 데에는 한 순간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24시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유로운 시대에 그러한 체험을 하지 못하고 직접 모시면서 살지 못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본래 그런 기준과 경험이 있어서 그런 내용에 전부다 결부되어 있어야 합니다. 원래는 선생님과 영적으로 접붙여 가지고 하나되어야만 축복대상자로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가 현실과의 인연에서 벗어나는 것이 복귀의 원칙이 아닙니다. 과거의 사실이 현실무대에 그냥 그대로 전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에 대한 것을 가르치는 통일교회 교리는 진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100이면 100 다 기도 가운데 선생님이 직접 가르쳐 주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을 모시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몽시로 가르쳐 주게 되어 있습니다. 몽시를 통해 선생님을 보지 못한 사람은 축복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몽시 가운데 선생님이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일본 식구들이 몽시 가운데 선생님을 대하는 수는 여러분보다 70배나 더 많습니다. 이걸 볼 때, 일본 식구들이 여러분들보다 심정적으로 더 간결하다는 것입니다. 간절하면 기도하게 되고, 그러면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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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인들이 가져야 할 심정 기준
그러면 어느 정도 간절해야 하느냐? 세상에서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이상, 애인을 사모하는 이상으로 간절해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이렇게 간절한 심정을 갖고 살면 영계에 가 가지고도 이 심정의 한도에서 머물게 되기 때문에 사탄세계에서 사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기 전에 재미있게 살던 아주머니도 교회에 들어와 정코스를 밟아서 영적 세계를 실제로 체험하게 되면 옛날에 가깝던 남편이 자연히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면박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심령체가 사탄을 넘어서서 힘차게 운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사탄의 세계이기 때문에 사망의 세계를 물리치지 않고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위해서 선생님이 기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선생님이 맨 처음에는 은사지요? 그리고 아버지같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 해와가 아버지의 품에서 자랄 때와 같은 것입니다. 다음에는 오빠같이 느껴지며 그 다음에는 상대적 관계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한 여인으로서 이 세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여자들도 선생님이 아무리 끊으려고 해도 이런 것을 느끼면 끊을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끊어지는 것은 가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와 같은 시대, 그 다음에 내 일을 해 달라고 의논할 수 있는 오빠와 같은 시대가 있습니다. 아담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대신한 영적인 입장에서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해와를 대해서 내적으로는 아버지와 같고 외적으로는 오빠와 같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들이 하나되어 상대적 관계를 맺으면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그렇게 하나되어야 했던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다니는 부인들이 선생님을 따르니까 남편들이 자기 옆에 안 온다고 야단하고 이와 반대로 여자들도 남편들이 선생님을 따르니까 자기 옆에 안 온다고 야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남자들도 선생님이 보고 싶으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통일교회 천국시대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지 못하고 눈물로 갈라진 아담이기 때문에 눈물로 합해야 하고, 눈물로 갈라진 가인과 아벨의 원한을 눈물로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아니면 합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남자들중에도 선생님을 보고 싶어하면서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그러한 사람 있어요? 이 엉터리들…. 옛날에는 다 그렇게 나왔습니다. 초창기에도 다 그렇게 했습니다.

통일교회가 그러한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복귀의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아무리 남자라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못 견뎠습니다. 상사병이라고 있지요? 그 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이라도 다 귀찮아했습니다. 선생님에게서 뭘 하라는 명령을 받고 일을 해야 몸이 풀리고 힘이 나지, 그러지 않으면 힘이 안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습니까? 가짜들…. 먼저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동기를 갖고 있고 그런 작전을 하는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은 하나님을 얼마만큼 사모했겠느냐?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사모했으며, 햇빛을 보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그리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이러한 사람에게 이단이니 뭐니 하고 있습니다. 이놈의 자식들, 누가 망하나 보자. 누가 이기나 보자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선생님에 대한 내용을 알면 할말이 없을 것입니다. 영계에 가 봐도 할말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선생님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합니다. 부모에게 진 빚을 갚아야 됩니다. 또, 하나님 앞에 있어서의 선생님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상을 타는 여자들을 가만히 보면, 그의 배후에는 선한 조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종종 그런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은 조상과 같이 기도도 하고 산보도 합니다. 영적으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심정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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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복귀 시대
지금 이 시대에 있어서는 완성한 아담 해와를 세워서 인류를 복귀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랑 신부의 인연을 들어서 사랑의 법도를 세워야 하는 것이며 거기에 따라 지켜야 할 하늘의 법도와 규범도 엄청나게 많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그래 가지고 천국 가겠어요?

이제는 이것을 가정적으로 세워야 합니다. 가정에 부모를 모시고 그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는 때입니다. 통일교회는 무슨 목적을 중심삼고 나가고 있느냐? 가정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 사탄세계에 한 여자를 세우기 위해 싸워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남자를 중심삼고 여자를 지으셨으나 천사장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이 타락세계를 복귀하는 노정에 있어서는 여자를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사장은 아담을 위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천사장으로 말미암아 비극적인 세계가 된 것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도 이 땅 위에 여성을 위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미스 코리아니, 미스 월드니 하는 대회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이러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여자들이 출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게 딱 들어맞는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내적인 그런 핵심적인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인 하늘과 외적인 땅, 즉 안팎으로 사연이 벌어지는 이때 가정을 중심삼아서 온 천하를 하나의 이념세계로 만들어야 될 게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은 복귀섭리에 있어서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심국가입니다. 이북에서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하지요? 그리고 통일교회에서도 선생님을 아버지라 하지요? 이것은 가인과 아벨의 입장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을 훈련시키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선생님이 훈련시키면 받겠어요, 안 받겠어요? 남자들, 받겠어요? 「받겠습니다」 받겠다는 사람 손들어봐요? 내려요. 여러분에게 내가 불철주야 가르쳐 줄 것입니다. 하늘의 법도가 있고 하늘의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지혜를 주지 않으면 알지 못합니다. 역사를 통하고 시대를 통하여 세상의 법도를 반증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바쁘겠어요? 여기에는 공산당도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한국에서 통일교회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시대로 돌입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 300명 정도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올라갔다내려갔다하고 있지만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떠한 환경에 처해서도 계속 발전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횡적인 시대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법도를 지켜 나가야 합니다. 알겠지요? 가정의 어머니면 어머니를 중심삼고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일 잘 듣는 사람이 아벨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기도하라는 겁니다. 담대하게 기도하라는 거예요. 그 얼마나 좋아요?

이제는 가정적인 생명권을 갖추어야 되기 때문에 가정에서 하나의 주체를 중심삼고 거기에 절대 따라야 되겠습니다. 어머니가 하늘편이면 아버지도 하늘적인 생활권을 지니고 어머니를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새벽같이 일어나 궁금해하면서 어머니에게 하나님에게 받은 새로운 소식이 무엇이냐고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31-335
하나되어 끊임없이 기도하라
선생님이 지금은 남에게 물을 필요가 없지만 하늘과 통하는 사람들이 세 사람 이상 증거를 해주어야 됩니다. 천법이 그렇습니다. 세 사람 이상 증거를 받고 일을 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늘과 통하는 사람을 불러다가 물어봅니다. 그거 뭐 물어볼 게 있어요? 내가 다 아는 것인데. 그러나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때가 절박하고 상대적 환경을 거쳐 가지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선생님 혼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교회의 기반을 닦기 위해 할머니 세 분을 세워 기도시키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되지 못하면 큰일난다는 겁니다. 성격이 뾰죽해서 하나 못 되는 할머니들이지요. 성격이 깍쟁이 중에 상깍쟁이어서 세상에서는 사흘도 못 갈 사람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되어야만 이런 저런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 심정을 중심삼고 해결해 가는 것입니다. 부자의 인연을 갖춘 통일교회이니만큼 여러분은 단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누구를 닮아야 되겠습니까? 선생님이 여러분을 닮아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선생님을 닮아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선생님을 닮아서 손해볼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나를 위해서는 살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인격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제일 시급한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교육기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제일 시급한 문제입니다.

후대 사람의 인격 기반을 닦아 주는 인적 자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세계에서 제일 가는 학교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그래서 선생님이 서울대학교의 부지 120만 평보다 한 40만평이 더 넓은 160만 평을 확보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각지도 않지만 그 일을 지금 선생님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아들딸이 있지요? 지금 여러분은 고생을 하지만 그것은 미래에 여러분을 대신할 여러분의 아들딸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고생하고 희생하더라도 그것은 여러분의 아들딸을 위한 것으로 자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아들딸을 위해서 여러분을 죽도록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여러분을 아무리 때려 몰더라도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이게 정도(正道)입니다. 여러분이 싫다고 꼬리를 빼 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아들딸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나가 보라 이겁니다. 개인을 중심한 주도권은 개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권내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천하를 화합시킬 수 있는 가정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6천년 동안 가정적 기반을 닦아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교회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 있어 그 환경을 조정하고 절충하여 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기 위해서 여러분에게는 끊임없는 노력과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시겠지요? 「예」

31-337
[기도]
아버님, 한 많은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나’라는 존재를 세우시어 사지에서도 남겨 주신 아버지의 은사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문제들이 많사오니 충효의 도리를 다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충신이 남길 수 있는 최후의 승리의 한 날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어느 한때 아버님을 모셔 볼 것인가? 저희들은 그것을 이루겠다고 첫밤부터 다짐하고 나왔사옵고, 지금도 그것을 향해 달리고 있사옵니다. 청춘시대에 이 나라 이 민족을 아버님 앞에 봉헌하여 후세에 자랑할 수 있는 민족의 운세를 다 잃어버리고 이제 50이 넘어 이 나라 이 민족과 더불어 재봉춘할 수 있는 시대권이 저희들 앞에 다가왔사옵니다. 원수들이 다 물러간 평화의 자리에서 새로이 옷깃을 여미고 아버지 앞에서 춤을 추며 아버지를 찬미하며 기쁘게 모실 수 있는 끝날이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원수들이 가로막고 있기에 최후의 싸움의 고개를 남겨 놓고 아버지를 대하고 있는 오늘이옵니다. 5천년 역사의 인연이 오직 당신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쓰시고자 이끌어 나온 것인 줄 아옵니다. 하나의 민족의 기점을 마련하기 위한 일이 그것인 줄 아오니, 이 민족의 앞날에 있게 될 처참한 피의 노정을 가리지 않고는 그 일을 해결할 수 없는 줄 아옵니다. 당신의 사랑만이 이것을 해결할 수 있사오니 새로운 운동이 이 땅 위에 벌어져야 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이 땅위에 국가 부활의 역사가 벌어져야 되겠사옵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국가 부활권을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이 나와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이 민족과 국가의 한계선을 가정에 집중시켜 가지고 가정에서부터 불이 붙어 이 민족과 국가의 한계선을 넘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옵니다. 더우기 1970년서부터 1972년도까지는 제일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저희는 5월에서 10월까지를 특별기도기간으로 선포하였사옵니다.

저희가 진정 나라를 사랑해야 할 때가 왔사옵고, 민족을 위할 수 있는 최후의 고빗길에 이르렀사옵고, 이 민족을 붙들고 이 나라를 붙들고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담판을 지어야 할 때가 왔사옵니다. 아버지와 저희가 하나되지 못하게 되는 모든 여건을 제거시켜 주옵소서.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어떻게 맺혀 있나 하는지를 알고 해결하려는 것이 이 나라의 최후의 운명을 판결지을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을 위해 싸워 나갈 수 있는 아들딸이 얼마나 되며 그럴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되옵니까? 그러한 가정, 그러한 아들딸이 없으면 없을수록 여기에 서 있는 외로운 아들이 이것을 책임져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한없이 슬펐던 역사의 고빗길에서 목을 놓아 울면서 찾아오신 딱한 당신의 심정을 제가 알았사옵니다. 제가 그러한 아버지의 사정을 느끼며 제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때, 그 감동의 인연이 슬픔의 환경을 넘어 도리어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을 세우게 될 줄 아옵니다. 오늘날까지 나오시던 아버지의 길 가운데 안타까운 사연이 아주 많았다는 것을 제가 알고 있사옵니다.

금후에 저희들이 이 나라 이 민족을 책임지겠다고 나설지라도 아버님은 저희들에게 마음대로 맡길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과연 불쌍하신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그런 아버지를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땅 위에는 없사옵니다. 그 아버지를 붙안고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아들을 찾고 있는 아버지 앞에 통일교단이 있지만 이 교단 가운데에 그런 아들이 있사옵니까? 그러한 아들이 있사오면 그에게 천배 만배 복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저 자신이라도 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저는 제가 가는 길에서 아버지께 염려를 끼쳐 드리지 않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환경을 갖추기 위해 지금까지 몸부림치며 나오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민족이 하나되지 못하고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여 아버지 앞에 염려를 남기고 눈물만 가지고 아버지 앞에 아뢸 수밖에 없는 때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때가 다가올수록 더더욱 조급한 마음이 앞서는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것은 당신을 믿지 않음이 아니요, 당신의 그 뜻을 모름이 아니옵니다. 가고 난 후에 염려의 요건을 남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오니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당신의 아들딸로서의 갖추어야 할 생명의 인연을 저희에게 연결시켜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중에 그런 가정을 가진 아들딸이 있사옵니까?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 있사옵니까?

꿈에도, 생시에도, 죽어도 아버지의 뜻, 그 뜻을 위해 미쳐야 할 것이 우리의 축복받은 가정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민족을 대신하여 제물이 되든가 제사장이 되든가 둘 중의 어느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 가정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가정이 많사옵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 축복을 해준 제가 책임을 다시 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도 그 책임을 지셔야 할 입장에 선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이들을 거두어 수습하여 주시옵소서. 미래의 복된 세계를 위하여 면목이 없지만 할수없이 그 상처와 허물을 가리고 아버지 앞에 내세울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을, 아버지,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금후의 이 나라 이 민족을 아버님이 지키시옵소서. 이 절박한 정세 가운데 악의 세계로 방향을 갖추느냐, 선의 세계로 방향을 갖추느냐의 기로에 선 이 민족을 선의 세계로 방향을 결정지어야 할 통일의 무리들 위에 당신의 후대하심을 잃지 마시옵고, 사랑의 손길로 가호의 은사를 길이길이 내려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 이날을 그리워하고 이곳을 위하여 경배하고 정성들이는 자녀들에게 당신의 지극한 내적인 사랑의 심정이 공고히 맺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아버님이 같이하실 수 있는 승리적 생활권을 이루게 하시어서 뭇 무리 앞에 존경을 받고 생명을 책임지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무리들로 삼아 주시옵길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아버님, 이 하루를 받아 주시옵고 이 한 달과 이 한 해를 아버지의 달과 아버지의 해로 받아 주시옵길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